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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동궁과 월지(사적), 안압지로 불렸던 월지(月池)

경북 경주시 인왕동에 있는 신라 궁궐 후원 연못인 월지(月池)이다. 안압지(雁鴨池)로 잘 알려진 이 연못은 동궁 영역에 있지만 국가적인 연회를 베푸는 경복궁 경회루 연못과 같은 기능과 위상을 갖는 곳이다. <삼국사기>에 문무왕 때(674년) 궁궐 안에 연못을 파고 산을 만들어 화초를 심고 짐승과 새를 길렀다는 기록이 있다. 연못의 규모는 동서 200 m, 남북180 m 정도이다. 궁궐 전각이 있는 서쪽과 남쪽은 석축을 높게 쌓아 직선적인 모습을 하고 있는데 반해 북쪽과 동쪽은 들쭉날쭉한 곡선으로 되어 있다. 연못에는 발해만 동쪽에 있다는 삼신도를 본떠서 만든 크고 작은 3개의 섬을 배치하고 북쪽과 동쪽에 무산12봉을 상징하는 언덕을 조성해 놓고 있다.

SANYO DIGITAL CAMERA<안압지로 불렸던 경주 월지(사적)>

OLYMPUS DIGITAL CAMERA<야경>

SANYO DIGITAL CAMERA<직선적인 연못 서쪽 석축과 연회가 열렸던 누각 건물들>

OLYMPUS DIGITAL CAMERA<야경>

조선시대 궁궐 연못이  ‘하늘은 둥글고 땅은 모나다(天圓地方)’는 우주관을 반영하여 직사각형 연못에  섬을 배치한데 비해 도교 신선사상이 많이 반영되어 신선세계를 구현하고 있다. 당나라 장안의 대명궁 후원 연못인 태액지(太液池)와 비슷한 분위기를 주고 있다. 대명궁 태액지 주변에는 도교사원, 불교사찰 등이 있었는데 안압지에서 불상 등 불교관련 유물이 출토되는 것으로 볼 때 비슷한 종교시설이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경주 동궁과월지<경주 동궁과 월지>

SANYO DIGITAL CAMERA<첫번째 누각 건물에서 보이는 섬>

OLYMPUS DIGITAL CAMERA<야경>

SANYO DIGITAL CAMERA<2번째 섬과 주변 숲>

SANYO DIGITAL CAMERA<1번째 섬과 2번째 섬>

안압지는 서쪽과 남쪽은 직선이지만 변화를 주었고 동쪽과 북쪽은 들쑥날쑥한 곡선으로 석축을 쌓아  한번에 연못 전체 경치를 볼 수 없다. 북쪽과 동쪽에는 신선이 사는 무산12봉을 상징하는 언덕을 조성해 놓고 있다. 그 중 큰 연회가 열렸던 제3건물터 누각 건물과 마주보고 있는 동쪽 호숫가를 화려하면서 신비롭게 조성해 놓고 있다.

SANYO DIGITAL CAMERA<경복궁 경회루처럼 국가적인 연회가 열렸던 제3건물터 복원건물>

OLYMPUS DIGITAL CAMERA<야경>

SANYO DIGITAL CAMERA<2번째 섬 뒷편 봉우리>

SANYO DIGITAL CAMERA<북쪽에서 본 모습>

배는 연못 동쪽에서 뒤집힌 채 발견되었다. 세쪽의 나무를 통째로 파낸뒤 이물과 고물쪽 뱃바닥에 참나무 각재를 가로질러 조립하였다.

OLYMPUS DIGITAL CAMERA<안압지  출토 통나무 배>

연뭇 북서쪽에는 작은 규모의 연회을 열 수 있는 정자 건물들이 있었던 것으로 보이며 북쪽 언덕은 자연스러운 풍경을 만들고 있다. 북동쪽 긑에는 물을 빼는 배수 시설이 당시의 나무물마개가 꽃힌채로 발견되었다.

SANYO DIGITAL CAMERA<안입지 북서쪽에 있는 제5건물터 복원 건물>

 

SANYO DIGITAL CAMERA<3번째 섬>

SANYO DIGITAL CAMERA<가까운데서 본 3번째 섬>

SANYO DIGITAL CAMERA<연못 배수시설이 있던 북동쪽 모서리로 들어가는 물길>

SANYO DIGITAL CAMERA<3번째 섬과 안압지 북쪽 석축>

SANYO DIGITAL CAMERA<안압지 북쪽 석축과 봉우리들>

안압지에서는 소.말.돼지.개.노루.산양.사슴.멧돼지, 그리고 꿩.오리.닭.거위.기러기 등의 뼈가 많이 출토되었다. 이것은 “궁안에 못을 파고 산을 만들어 진귀한 새와 짐승을 길렀다”는 <삼국사기> 내용이 사실임을 보여준다.

OLYMPUS DIGITAL CAMERA<산양뼈>

OLYMPUS DIGITAL CAMERA<맹금류, 기러기, 꿩의 뼈>

SANYO DIGITAL CAMERA<배수시설이 발견된 북동쪽 모서리>

SANYO DIGITAL CAMERA<동쪽 연못가 수로>

SANYO DIGITAL CAMERA<수로에서 보이는 풍경>

장석에 4개의 구멍을 뚫어 물을 빼는 배수 시설에서 발견된 통일신라시대에 사용했던 나무물마개이다.

OLYMPUS DIGITAL CAMERA<나무물마개>

연못 동남쪽 모서리에는 연못에 물을 대는 시설인 두개의 수조가 있는데, 수위 조절과 함께 물의 낙차를 이용, 산소를 연못에 공급함으로써 수질의 부패를 방지하는 효과를 거두었음을 알 수 있다. 

SANYO DIGITAL CAMERA<외부에서 안압지을 들어오는 물길>

SANYO DIGITAL CAMERA<연못에 물을 대는 시실인 수조 유구>

SANYO DIGITAL CAMERA <수조에서 연못으로 흐는 물길>

SANYO DIGITAL CAMERA<연못으로 연결되는 물길, 끝에 작은 폭포가 있다.>

수조 유구
화강석으로 만든 이 수조는 연못으로 흘러 들어가는 입수로에 놓여 있는데 40 cm 높이의 차이를 두고 2개가 연결되어 있다. 반월형으로 안쪽을 깎아 내어 물을 고이게 하였고 가장자리에는 용으로 보이는 조각의 흔적이 있다. 수조 좌우에는 큰 간설을 놓고 가장자라에 벽석을 세워 공간을 마련한 것으로 보아 이곳에서 물놀이를 했던 것으로 판단된다. 잔잔히 흐르는 물을 모아 폭포를 이루어 연못으로 흐르도록 변화를 주었었다. (안내문, 경주시청, 2009년)

태액지(太液池)는 대명궁 북쪽에 있는 황실정원으로 연꽃이 아름다워 연엽지(蓮葉池)라고도 불렀다. 태액지는 동쪽과 서쪽에 2개의 연못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서쪽이 더 큰 규모이다. 서쪽 연못은 인덕전과 함께 황실을 찾은 손님을 접대하는 공간으로 경복경 경회루 연못과 같은 기능을 하고 있으며 동쪽 연못은 황실 가족을 위한 공간이다. 태액지는 안압지(월지)처럼 타원형에 가까운 모양을 하고 있다. 서쪽 연못 가운데에는 작은 섬을 두어 신선이 사는 봉래산을 구현하고 있다. 연못 북쪽에는 여름 별궁에 해당하는 함량전(含凉殿)과 도교사원, 불교사찰 등이 있었다.

OLYMPUS DIGITAL CAMERA<중국 시안 당 대명궁 태액지>

1970년 발굴조사 결과, 기와를 비롯하여 건축부재와 장식물, 금동여래삼존상을 비롯한 금동불상, 당시 생활상을 보여주는 그릇을 비롯한 생활용품, 당시 문자생활을 보여주는 목간 등 다양한 유물들이 출토되었다.

OLYMPUS DIGITAL CAMERA<안압지 출토 금동판 불상(보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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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동여래입상>

자물쇠 중에는 ‘사정당북의문’, 동궁아일’ 등 명문이 있는 것도 발견되었다. 이러한 명문은 자물쇠가 사용되던 장소를 가리키는 것으로서, 안압지 주변의 ‘사정당’과 ‘동궁’이라고 부르던 건축물이 있었음을 추정할 수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동궁아일(東宮衙鎰)’명 자물쇠>

주령구(酒令具)는 연회장에서 흥을 돋우기 위한 놀이도구의 하나로 육각형이 8면, 정사각형이 6면인 14면체이다. 각면에는 주령구를 굴린 사람에게 어떤 행동을 지시하는 글이 새겨져 있다. 발굴당시 모습을 찍은 사진이 있기는 하지만 실물을 복원 중 불타버렸다.

 

OLYMPUS DIGITAL CAMERA<목제놀이기구, 주령구(복제품)>

<출처>

  1. 안내문, 경주시청, 2009년
  2. 국가문화유산포탈, 문화재청, 2022년
  3.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소, 2022년
  4. Cultural Heritage Wiki, 문화재청, 2022년
  5. 위키백과, 2022년

경주 포석정지(사적), 신라인이 유상곡수연을 하던 곳

경북 경주시 배동에 있는 포석정지(鮑石亭址, 사적)이다. 중국 동진시대 명필 왕희지가 즐겼던 유상곡수연(流觴曲水宴)을 하기 위해 조성한 시설이다.  유상곡수(流觴曲水)는 정원에서 술잔을 띄우고 자기 앞으로 떠내려 올 때까지 시를 읊던 연회로, 동양의 선비나 귀족들이 즐겼다. 유상곡수에 관한 가장 오래된 기록으로 알려진 것은 4세기 경에 쓰인 왕희지의 난정서로, 문인들을 모아 굽이진 물줄기에 줄서 앉아 시를 지으며 즐겼다는 내용이 있다. 당시 동아시아에서 귀족사회에 유행했던 유상곡수연의 모습을 살펴볼 수 있는 중요한 유적이다. 경주 남산 서쪽 계곡에 위치하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경주 포석정지(사적)>

포석정에는 정자를 비롯하여 별궁건물이 있었다고 하며 지금은 유상곡수연을 즐기던 석조구조물만이 남아 있다. 화강석으로 만든 수로는 길이 약 22 m이며, 높낮이 차는 5.9 cm이다. 남산에서 내려오는 물을 받아 토하는 돌거북이 있었다고 하며, 그 아래 있던 물을 받는 원형석조가 남아 있다. 수로는 전체적으로 곡선이 강조된 타원형이며 수로의 폭은 30 cm, 깊이는 20 cm 정도이다.

OLYMPUS DIGITAL CAMERA<포석지에 남아 있는 수로>

OLYMPUS DIGITAL CAMERA<포석정 수로가 시작하는 지점에 있는 물받이>

OLYMPUS DIGITAL CAMERA<물이 흐르는 수로>

<삼국사기>에 경애왕 4년(927) 왕이 포석정에 잔치를 하다 후백제 견훤의 기습을 받아 왕과 신하들이 죽음을 당한 역사적인 장소로 잘 알려져 있다.  <삼국유사>에 신라 49대 헌강왕 때 왕이 행차했다는 기록이 있는 것으로 볼 때 그 이전에 조성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OLYMPUS DIGITAL CAMERA<포석정지(사적)>

OLYMPUS DIGITAL CAMERA<포석정 정원에 있는 고목>

견훤이 경애왕을 자살하게 하고 경순왕을 세우다 ( 927년 09월(음) )
〔4년(927)〕 가을 9월에 견훤(甄萱)이 고울부(高鬱府)에서 우리 군사를 습격하였다. 왕이 태조에게 구원을 요청하자, 장수에게 명하여 정예 병사 10,000명을 내어 가서 구원하게 하였다. 견훤은 구원병이 아직 도착하지 않았으므로, 겨울 11월에 갑자기 왕경(王京)에 침입하였다. 왕은 비빈, 종실 친척들과 포석정(鮑石亭)에 가서 잔치를 열고 노느라 적병이 이르는 것도 깨닫지 못하였다. (삼국사기 권 제12 신라본기 제12 경애왕, 한국사데이타베이스, 국사편찬위원회, 2022년)

또 포석정에 행차했을 때 남산신이 임금의 앞에 나타나서 춤을 추었는데 좌우의 신하들은 보지 못하고 왕이 홀로 보았다. 어떤 사람[신]이 앞에 나타나 춤을 추니 왕 스스로가 춤을 추어 그 모양을 보였다. 신의 이름을 혹 상심(祥審)이라고 했으므로 지금까지 나라 사람들이 이 춤을 전하여 어무상심(御舞祥審) 또는 어무산신(御舞山神)이라고 한다.  (삼국유사 권 제2 제2 기이 처용랑 망해사, 한국사데이타베이스, 국사편찬위원회, 2022년)

OLYMPUS DIGITAL CAMERA<경주 포석정지>

OLYMPUS DIGITAL CAMERA<포석정지 입구>

OLYMPUS DIGITAL CAMERA<포석정지 뒷편 경주남산 해목령 일대>

경주 포석정지(鮑石亭址, 사적), 경북 경주시 배동 454
포석정은 신라 왕실의 별궁으로, 역대 임금들이 연회를 베풀던 곳이다. 지금은 정자 등의 건물이 모두 없어지고, 마치 전복같이 생긴 석조 구조물만 남아있는데, 화강석으로 만든 수로(水路)의 길이는 약 22m이다. 임금은 이곳에서 신하들과 더불어 잔을 띄우며 시를 읊었을 것으로 보인다. 포석정에 대한 기록은 신라 제49대 헌강왕(憲康王)이 신하들과 어울려 여흥을 즐길 때 남산의 신이 왕 앞에서 춤을 추자, 왕도 따라 추게되어 이로부터 ‘어무산신무(御舞山神舞)’ 라는 신라춤이 만들어졌다고 전해 준다. 경애왕(景哀王) 4년(927) 왕이 후백제 견훤(甄萱) 군대의 습격을 받아 최후를 마친 곳으로 알려져 있다. 유상곡수연(流鶴曲水宴)은 중국이나 일본에서도 있었으나, 오늘날까지 그 자취가 이처럼 잘 남아있는 것은 매우 드문 일로, 당시 사람들의 풍류와 기상을 엿볼 수 있는 장소이다. (안내문, 경주시청, 2012년)

<출처>

  1. 안내문, 경주시청, 2012년
  2. 국가문화유산포탈, 문화재청, 2022년
  3.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한국학중앙연구소, 2022년
  4. 위키백과, 2022년
  5. 삼국사기, 한국사데이타베이스, 국사편찬위원회, 2022년
  6. 삼국유사, 한국사데이타베이스, 국사편찬위원회, 2022년

경주 용강동 원지 유적(사적)

경주 북천 북쪽 황성동, 용강동 일대에서 발견된 통일신라 정원 유적이다. 발굴,조사 결과 연못터, 호악석축렬, 인공섬 2곳, 건물터 2곳, 다리시설, 도로배수시설 등이 확인되었다. 연못은 물이 개울처럼 흐르는 곡수지(曲水池)로 통일신라 정원 연못의 특징을 잘 보여주고 있다. 출토 유물로는 연화문 수막새, 귀면와, 마루기와 등이 있다. 통일신라 전성기인 8세기에 주로 사용되었으며 궁궐에 속한 정원인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경주 용강동 원지 유적(사적)>

OLYMPUS DIGITAL CAMERA<발굴조사 현장 모습과 출토 유물>

유적지에는 이곳이 연못이었을 보여주기 위해 발굴, 조사결과 확인된 연못의 형태에 따라 석축에 사용된 돌을 놓고 있다. 개울을 따라 물이 흐르고 가운데 섬을 두고 있다. 경주 동궁 월지와 비슷한 형식의 연못이다.

OLYMPUS DIGITAL CAMERA<곡선적인 모습을 모여주는 연못>

OLYMPUS DIGITAL CAMERA<연못 가운데 보이는 인공섬>

OLYMPUS DIGITAL CAMERA<반대편에서 본 인공섬>

OLYMPUS DIGITAL CAMERA<가운데 보이는 곡선적인 형태가 강조된 인공섬>

OLYMPUS DIGITAL CAMERA<폭이 넓은 부분>

OLYMPUS DIGITAL CAMERA<유적 바깥쪽>

OLYMPUS DIGITAL CAMERA<농경지로 사용되고 있는 유적 부근>

경주시 북천 북쪽지역인 황성동, 용강동 일대에 위치한 통일신라의 연못(苑池)유적이다. 이 유적은, 초등학교 신축을 위해 1998~1999년에 걸쳐 영남문화재연구원(嶺南文化財硏究院)이 발굴조사를 실시하였다. 발굴조사 결과, 연못지(苑池)와 호안석축(湖岸石築), 인공섬 2곳(1곳 416㎡, 나머지 일부확인), 건물지 2곳, 다리시설, 입수로(入水溝施設), 물받이시설, 연못주변 도로 등의 유구가 발견되었다. 연못은 일부만 확인되었고(현 1,471㎡) 곡선적인 호안을 가진 곡지(曲池)의 형태인데 북편으로 이어 지고 있다. 남쪽에 위치한 인공섬과 마주하는 건물지 사이에는 목조 누교(樓橋)같은 형태의 다리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목교지 주변에서 연화문(蓮花文)수막새, 용문(龍文) 암막새, 귀면와(鬼面瓦)와 같은 마루기와 200여점이 출토되었고 연못바닥에서는 인화문(印花文)토기 완(碗)과 병(甁)편이 출토되었다. 이 유적은 물이 개울처럼 굴곡을 이루면서 남에서 북으로 흐르는 곡수지(曲水池)의 유적이며, 섬이 절묘한 굴곡을 이루고 곡지를 조성한 것은 통일신라 원지(苑池)의 독특한 양식이라 할 수 있다. 출토유물이나 역사적인 기록으로 보아 연못은 8세기대 주로 사용한 것으로 추정된다. 제2의 안압지(雁鴨池)로 불리는 이 유적은 신라의 궁지(宮址)에 부속된 원지(苑池)로 추정된다. (안내문, 경주시청, 2019년)

<출처>

  1. 안내문, 경주시청, 2019년
  2. 국가문화유산포탈, 문화재청, 2021년
  3.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소, 2021년

달성 하엽정, 삼가헌 고택 별당으로 지어진 연꽃이 아름다운 정원

대구 달성군 하빈면 묘리에 있는 하엽정(荷葉亭)이다. 사육신 박팽년의 후손이 살고 있는 삼가헌 고택이 별당으로 하엽정은 연꽃잎의 정자라는 뜻이다. 삼가헌을 18세기에 별당이 지어졌으며 별당 앞 땅을 파서 연못을 만들고 주위에 국화와 연꽃을 심었다고 한다. 후학을 양성하기 위해 파산서당이라는 작은 서당 건물로 지어졌는데 고종때 누마루를 달아내는 등 크게 수리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건물은 그리 크지 않고 마당도 넓지 않으나 연못과 수목들을 잘 배치하여 절제된 듯 하면서도 화려한 느낌을 주고 있다. 정자 건물은 앞면 4칸 규모로 안쪽에 누마루를 달았으며, 가운데 마루를 중심으로 온돌방과 골방이 배열되어 있다. 조선시대 사대부 저택 정원과 별당의 모습을 잘 보여주고 있는 곳이다.

OLYMPUS DIGITAL CAMERA달성 하엽정. 삼가헌 고택 별당으로 지어진 건물로 연꽃이 활짝피는 계절에는 연꽃속을 떠다니는 배와 같은 느낌을 주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건물은 앞면 4칸으로 온돌방과 마루로 되어 있으며, 19세기에 당시 유행했던 누마루를 달아내었다.

OLYMPUS DIGITAL CAMERA하엽정은 원래 후학을 양성하기 위한 서당으로 지어진 건물로 ‘파산서당’이라 적힌 현판이 걸려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연못 경치를 즐기기 위해 만든 누마루. 문을 달지 않아 개방적인 느낌을 주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하엽정 정자와 연못. 이곳에 별당을 조성할 때 연꽃과 국화를 심었다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활짝피기 시작한 연꽃

OLYMPUS DIGITAL CAMERA정자 앞에서 본 연못

OLYMPUS DIGITAL CAMERA연못 한쪽편에는 선비들이 좋아했던 배롱나무가 심어져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사육신 박팽년 후손이 살고 있는 삼가헌 고택.

<출처>

  1. 안내문, 달성군청, 2011년
  2.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2018년
  3.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2018년

달성 하목정, 낙동강변에 자리잡고 있는 사랑채로 지어진 건물

대구 달성군 하빈면 하산리에 있는 정자인 하목정이다. 성주에서 대구로 가는 길에 낙동강을 건너는 성주대교 부근에 위치하고 있다. 임진왜란때 의병장이었던 이종문이 1604년에 지은 고택의 사랑채이다. 마을에는 낙동강 나룻터가 있었던 것으로 보이며 낙동강변 경치 좋은 곳에 위치하고 있다. 교통요지에 위치하고 있어 인조를 비롯하여 많은 유력인사들이 이곳에서 묵었던 것으로 보이며 그들이 남긴 글들이 적힌 현판이 대청마루에 걸려 있다.

하목정은 고택 사랑채로 지어진 앞면 4칸, 옆면 2칸의 건물이다.  왼쪽 3칸은 대청마루로, 오른쪽 1칸은 온돌방으로 되어 있는데, 온돌방 측면은 4칸으로 되어 있어 ‘丁’형의 모습을 하고 있다. 인조가 이 곳에서 머물렀다고 하여 특별한 대우를 받았는데, 하목정이라는 현판은 인조가 직접 써준 것이라고 한다. 또한 건물의 서까래는 일반 한옥과는 달래 덧서까래인 부연을 달고 있다. 지금도 후손들이 거주하고 있으며 건물과 정원이 깨끗하게 유지되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달성 하목정, 낙동강변에 위치한 고택 사랑채로 조선중기에 처음 지어졌다. 인조가 왕위에 오르기 전에 이곳에 잠시 머물렀다.

OLYMPUS DIGITAL CAMERA달성 하목정 사랑채로 들어가는 마당.

 

OLYMPUS DIGITAL CAMERA건물은 앞면 4칸, 옆면 2칸 규모로 오른쪽 온돌방 앞.뒤로 1칸씩 달아내어 전체적으로 ‘丁’자형 구조를 하고 있다.  낙동강 풍경이 내려다 볼 수 있도록 옆면에도 판문을 달았다.

OLYMPUS DIGITAL CAMERA옆쪽에서 본 모습. 인조가 머물렀다고 하여 겹처마를 사용하고 있다. 큰 돌로 쌓은 기단 위에 건물을 올렸는데 전체적인 조형미나 건축수법이 뛰어나다.

OLYMPUS DIGITAL CAMERA마루에서 내려다 보이는 낙동강 풍경.

OLYMPUS DIGITAL CAMERA사랑채 뒷편에 있는 연못

OLYMPUS DIGITAL CAMERA넓은 대청마루 내부. ‘하목정’이라 적힌 현판의 걸려 있으며, 그 주위로 이곳을 다녀간 유력 인사들이 남긴 글이 적힌 현판들이 글려 있다. 온돌방이 있는 동쪽을 제외한 3면에 문을 두어 여름 한철 시원한 정자 분위기를 만끽할 수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뒷편에서 본 대청마루

OLYMPUS DIGITAL CAMERA건물 오른쪽에 있는 온돌방.

OLYMPUS DIGITAL CAMERA사랑채 동쪽에 있는 작은 규모의 안채. 원래 있던 건물은 한국전쟁때 불타버렸으며, 그 후에 복원한 작은 규모의 살림집이다.

OLYMPUS DIGITAL CAMERA마당 한쪽편에 심어진 배롱나무. 정원에는 선비들이 좋아했던 배롱나무를 비롯하여 다양한 나무들이 심어져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석류나무에 매달린 석류

OLYMPUS DIGITAL CAMERA안채 뒷편 사당으로 올라가는 계단. 사당과 그 주변에 배롱나무들이 많이 심어졌음을 알 수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계단에서 내려다 보이는 사랑채.

OLYMPUS DIGITAL CAMERA사당을 출입하는 문과 담장.

OLYMPUS DIGITAL CAMERA불천위 조상을 모시는 사당. 앞면 3칸에 맞배지붕을 하고 있는 전형적인 사당건물이다.

OLYMPUS DIGITAL CAMERA사당 앞에서 내려다 보이는 낙동강. 성주군과 달성군을 연결하는 낙동강 다리가 내려다 보인다.

달성 하목정(霞鶩亭), 대구광역시 달성군 하빈면 하산리 1043-1
이 건물은 임진왜란 때 의병장이었던 낙포 이종문이 1604년(선조 37)에 세운 것이다. ‘하목정’이라는 정호는 인조가 왕위에 오르기 전에 이곳에 머문 적이 있어, 그 인연으로 이종문의 장남인 이지영에게 직접 써 주었다고 한다. 또한 일반 백성들의 주택에는 서까래 위에 덧서까래인 부연을 달지 않는 것이 관례였으나, 인조의 명으로 부연을 달았다고 한다. 사랑채로 사용하는 이 정자는 정면 4칸, 측면 2칸의 규모로 우측 1칸에는 앞쪽으로 누 1칸을 첨가하고 뒤쪽으로는 방 1칸을 더 만들어 평면이 정자형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지붕의 양쪽 추녀를 조금씩 잘라 처마끝을 둥그스름하게 만든 방구매기 수법을 사용한 것이 특징이다. 건물 내부에는 김명석, 남용익 등 명인들이 남긴 시액이 걸려 있다. (안내문, 달성군청, 2011년)

<출처>

  1. 안내문, 달성군청, 2011년
  2.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2018년
  3.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2018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