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g Archives: 정자

예천 선몽대 일원(명승)

경북 예천군 호명면 백송리에 있는 선몽대 일원(명승)이다. 조선중기에 처음 세워진 정자인 선몽대와 주변 숲, 그 앞을 흐르는 내성천과 백사장이 아름다운 풍경을 만들어 내는 곳이다. 선몽대 일대는 기러기가 백사장에 한가로이 쉬고 있는 형태라 하여 풍수상 평사낙안형(平沙落雁形)이라 전하고 있다. 내성천의 아름다운 풍경과 많은 문인들이 찾았던 선몽대의 내력을 더하여 한국을 대표하는 명승지로 손꼽히는 곳이다.

예천 선몽대 (명승) 20221130_01<예천 선몽대 일원(명승)>

선몽대(仙夢臺)는 퇴계 이황의 조카인 이굉(1515~1591년)이 1563년에 창건하였다고 한다. 현판에 적힌 ‘선몽대(仙夢臺)는 퇴계 이황이 친필로 알려져 있으며 약포 정탁, 서애 류성룡, 청음 김상헌, 한음 이덕형, 학봉 김성일 등의 친필시가 목판에 새겨져 전해오고 있어 많은 문인들이 이곳을 찾아 교류했음을 보여주고 있다. 건물은 2층 문루가 있는 대문간채와 내성천 경치가 한눈에 내려다 보이는 정자 건물로 이루어져 있다.

예천 선몽대 (명승) 20221130_10<선몽대>

대문간채는 크지는 않지만 앞면 6칸의 건물로 가운데 문루가 있는 대문이 있으며 양쪽에 온돌방과 부엌 등이 있다.

예천 선몽대 (명승) 20221130_17<대문간채>

예천 선몽대 (명승) 20221130_12<안쪽에서 본 모습>

예천_선몽대_일원_대문_현판_(촬영년도___2015년)
<선몽대 현판>

정자는 앞면 4칸 규모로 암반 위에 축대를 쌓고 건물을 올렸다. 앞쪽에 기둥을 세워 반칸 정도 툇간을 달아내어 누마루처럼 꾸몄으며 난간을 둘렀다.

예천 선몽대 (명승) 20221130_15<선몽대 정자>

예천 선몽대 (명승) 20221130_13<옆에서 본 모습>

예천 선몽대 (명승) 20221130_14<정자에서 내려다 보이는 풍경>

선몽대 숲은 뒤편 백송리 마을을 보호하기 위해 인공적으로 조성된 숲으로 소나무, 은행나무, 버드나무 등 다양한 나무들이 심어져 있다. 수해를 방지하는 수해방비림, 방풍림의 역할과 함께 풍수상 단점을 보완하기 위한 수구막이 숲과 비보림의 역할을 하고 있다.

예천 선몽대 (명승) 20221130_18<백사장에서 올려다 보이는 선몽대와 선몽대 숲>

예천 선몽대 (명승) 20221130_04<백사장 입구>

예천 선몽대 (명승) 20221130_03<백사장 옆 울창한 소나무숲>

예천 선몽대 (명승) 20221130_08<선몽대 표지석>

예천 선몽대 (명승) 20221130_02<백사장에서 보이는 소나무숲>

내성천은 경북 봉화군 선달산(1,236m)에서 발원하여 영주시, 예천군을 지나 문경시에서 낙동강과 합류하는 지천이다. 백두대간 높은 봉우리에서 흘러내려 온 크고 작은 하천들이 내성천을 거쳐 낙동강으로 흘러든다. 낙동강 중류와 상류에 해당하는 곳으로 수량이 풍부하며 땅을 휘감아 도는 곡류가 많고 백사장도 상당히 넓은 편이다. 내성천 주변에는 봉화에서부터 양반들이 터를 잡고 살았던 부유한 전통마을이 많으며 경치가 빼어난 곳도 많다. 예천 선동대(명승)는 영주 무섬마을, 예천 회룡포(명승)와 함께 내성천을 대표하는 명승지이다.

예천 선몽대 (명승) 20221130_16<선몽대 앞 내성천(하류방향)>

예천 선몽대 (명승) 20221130_19<선몽대와 내성천(상류방향)>

예천 선몽대 (명승) 20221130_07<내성천 백사장>

예천 선몽대 (명승) 20221130_09<내성천 백사장>

예천 선몽대 일원, 명승
선몽대(仙夢臺) 일원은 예천읍지에 수록된 약 450여년의 역사를 가진 유서깊은 곳으로, 한국의 전통적 산수미를 보여주는 내성천 유역의 대표적 경승지의 하나이다. 지형은 풍수상 평사낙안형(平沙落雁形)으로 내성천의 백사장과 어우러져 아름다운 경관을 자아내고 있으며 이 곳에 위치하는 선몽대 숲은 역사적으로 유래가 깊은 숲으로 수해 방비림, 방풍림, 수구막이 숲 및 비보림의 역할을 하고 있다. 선몽대는 퇴계 이황의 종손이며 문하생인 우암 이열도(1538~1591) 공이 1563년 창건한 정자로서 “선몽대”의 대호 세글자는 퇴계 선생의 친필로 알려져 있으며, 정자 내에는 당대의 석학인 퇴계 이황, 약포 정탁, 서애 류성룡, 청음 김상헌, 한음 이덕형, 학봉 김성일 등의 친필시가 목판에 새겨져 지금까지 전해져 오고 있는 곳으로 선인들의 유교적 전통공간으로서 역사적 의미가 큰 경승지이다. (안내문, 예천군청, 2022년)

<출처>

  1. 안내문, 예천군청, 2022년
  2.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2022년
  3.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소, 2022년
  4. 위키백과, 2022년

예천 초간정 원림(명승)

경북 예천군 용문면 죽림리에 있는 초간정 원림(草澗亭 園林, 명승)이다. 조선 중기 문신 초간 권문해가 처음 세운 정자와 주변 숲을 말한다. 용문산(770m)에서 발원하여 용문면 일대를 흐르는 금곡천이 암반 지역을 굽이쳐 흐르는 곳에 위치하고 있다. 큰 암반 위에 세워진 정자와 정 아래에 형성된 좁은 계곡이 주변의 울창한 숲과 어우러져 빼어난 경치를 만들고 있다. 용문사로 가는 골짜기 입구에 위치하고 있다. 조선시대 선비들이 낙향하여 정자를 세우고 자연경관과 어우러져 지냈던 모습을 잘 보여주고 있는 곳이다.

예천 초간정 원림(명승) 20221130_19<예천 초간정 원림(명승)>

예천 초간정 원림(명승) 20221130_20<초간정을 휘감으면서 흐르는 금곡천과 주변숲>

예천 초간정 원림(명승) 20221130_18<초간정 주변 숲>

예천 초간정 원림(명승) 20221130_09<상류방향 개천을 건너는 다리>

예천 초간정 원림(명승) 20221130_17<다리를 건너면 보이는 초간정과 주변 숲>

예천 초간정 원림(명승) 20221130_01<초간정>

예천 초간정 원림(명승) 20221130_08<암반지형을 뚫고 흐른 하천>

예천 초간정 원림(명승) 20221130_06<초간정 아래 하천과 주변 숲>

예천 초간정 원림(명승) 20221130_16<초간정 입구>

예천 초간정 원림(명승) 20221130_14<초간정 건너편 숲>

예천 초간정 원림(명승) 20221130_12<하류 방향>

예천 초간정 원림, 명승
예천 초간정 원림은 용문면 원류마을 앞 계곡 가의 암반 위에 세워진 초간정과 주변의 자연이 하나로 어우러진 전통원림이다. 경치가 아름다운 한국의 자연유산으로 관광지 및 영화.드라마 촬영지로 주목받고 있다. 초간정은 조선 선조 때의 문신 초간 권문해가 벼슬에서 물러난 뒤 몸과 마음을 수양하기 위해 세운 정자이다. 선조 15년 처음 세운 후 여러 차례 화재로 불탔다가 다시 지었다. 현재의 건물은 정면 3칸, 측면 2칸 규모의 정자로, 영조 16년에 권문해의 현손인 권봉의가 원래 터에서 약간 서쪽으로 옮겨 지은 것을 고종 7년 후손들이 새로 고쳐지었다. 초간정이 세워진 바위를 위돌아 흐르는 계곡은 주변의 울창한 소나무 숲과 어우러져 시원한 운치를 자아낸다. 이곳의 풍경은 있는 그대로의 자연을 아름답게 여겼던 옛 선조들의 무위자연사상을 보여준다. (안내문, 예천군청, 2022년)

초간정은 권문해가 처음 세운 이래 여러번의 화재를 거치면서 다시 지어졌다. 현재의 건물은 조선후기 영조 때(1739년) 후손 군봉의가 원래의 위치에서 약간 서쪽으로 옮겨 지은 것이다.  암반 위에 돌로 쌓은 축대 위에 건물을 올렸다. 건물은 앞면 3칸, 옆면 2칸 규모이며 왼쪽 2칸은 온돌방, 오른쪽은 1칸은 대청마루로 되어 있다. 대청마루에 앉아 주변 경치를 감상하기에 좋은 구조이다. 옆에는 손님들을 위한 작은 살림집이 있다.

예천 초간정 원림(명승) 20221130_15<예천 초간정>

예천 초간정 원림(명승) 20221130_10<초간정 건물과 마당>

 예천 초간정 원림(명승) 20221130_11<초간정>

예천 초간정 원림(명승) 20221130_02<바깥에서 본 모습>

예천 초간정 원림(명승) 20221130_07<정면에서 본 모습>

예천 초간정 원림(명승) 20221130_05<아래에서 본 모습>

예천 초간정 원림(명승) 20221130_04<아래에서 본 모습>

예천 초간정 원림(명승) 20221130_13<초간정에 딸린 살림집>

예천 초간정
초간정(草澗亭)은 조선 선조 때 문신 초간 권문해(1534~1591)가 벼슬에서 물러난 뒤 심신의 수양을 위해 세운 정자이다. 권문해는 퇴계 이황의 제자로서 문과에 급제하여 대구부사, 좌부승지 등을 지냈고, 우리나라 최초의 백과사전인 <대동운부군옥>을 지은 인물이다. 선조 15년(1582)에 처음 세워진 초간정은 1592년에 화재로 불탔으며 권문해의 아들 권별이 인조 4년(1626) 다시 지었으나, 인조 14년(1636)에 다시 불탔다. 지금 남아 있는 건물은 영조 16년(1740)에 권문해의 현손인 권봉의가 원래의 터에서 약간 서쪽으로 옮겨 지은 것을 고종 7년(1870)에 후손들이 새로 고쳐지었다. ‘초간정사’라는 현판은 소고 박승임의 글로, 정자에 여러차례 화재가 나면서 잃어버렸다가 훗날 다시 발견하였는데, 정자 앞 늪에서 영롱한 빛이 보여 파보았더니 현판이 묻혀있었다는 전설이 있다. 정자는 암반 위에 돌로 쌓아 만든 축대 위에 정면 3칸 측면 2칸 규모로 세워졌다. 정면의 왼쪽 2칸은 온돌방을 배치하였고, 나머지는 대청마루로 사면에 난간을 설치하였다. 지붕은 겹처마 팔작지붕 양식이다. 주변의 아름다운 경관과 어우러진 초간정은 현재 관광지, 영화 및 드라마 촬영지로 주목받고 있다. (안내문, 예천군청, 2022년)

<출처>

  1. 안내문, 예천군청, 2022년
  2.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2022년
  3.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소, 2022년

봉화 닭실마을 석천계곡(명승)과 석천정

경북 봉화군 봉화읍 유곡리에 있는 석천계곡(명승)과 석천정(石泉亭)이다. 석천계곡은 닭실마을 북쪽을 흐르는 동막천과 마을 앞을 흐르는 창평천이 마을 서쪽에서 합류하여 작은 협곡을 이루면서 흐르는 곳이다. 수량이 풍부하며 기암괴석이 있는 좁은 계곡으로 맑은 개울물이 흐로고 있어 조용하면서도 풍치가 아름다운 곳이다. 이곳에는 권벌의 아들 권동보가 지은 정자 건물인 석천정이 있다.

봉화 닭실마을 석천정과 석천계곡(명승) 14-20221028<봉화 닭실마을 석천계곡(명승)>

석천정은 닭실마을 종가인 청암정에서 800m 정도 떨어진 곳에 위치하고 있는데 봉화읍으로 연결되는 오솔길에 위치하고 있다. 조용하고 한적한 곳에 위치하고 있지만 일반적 정자에 비해 규모가 상당히 큰 편이다. 조선시대 청암정은 경치가 좋은 명소이자 봉화읍을 지나는 주요 교통로에 위치하고 있어 손남들이 많았던 것으로 보인다. 닭실마을을 찾은 방문객들이 묵을 수 있도록 많은 건물들을 두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봉화 닭실마을 석천정과 석천계곡(명승) 01-20221028<봉화 닭실마을 석천정>

정자는 앞면3칸 옆면 2칸의 건물과 앞면 2칸반 건물이 연결된 형태이다. 정자 옆에는 작은 별채가 있으며 담장 바깥쪽에도 독립된 별채 건물이 있다.

봉화 닭실마을 석천정과 석천계곡(명승) 03-20221028<석천정>

별채는 앞면 3칸 규모로 부엌과 온돌방이 있는 작은 건물로 손님들이 묵었던 곳으로 보인다.

봉화 닭실마을 석천정과 석천계곡(명승) 02-20221028<작은 별채>

바깥에 있는 별채는 온돌방과 큰 마루가 있는 독립된 건물로 별도의 손님이 묵을 수 있도록 배려한 것으로 보인다.

봉화 닭실마을 석천정과 석천계곡(명승) 17-20221028<바깥에 있는 별채>

석천계곡은 마을 앞을 흐르는 비교적 큰 하천인 창평천과 청암정 북쪽을 흐르는 동막천이 합류하여 작은 산을 휘감고 흐르고 있다. 수량은 비교적 풍부하고 계곡에는 바위가 많아 물이 상당히 맑아 보인다.

봉화 닭실마을 석천정과 석천계곡(명승) 08-20221028<청암정 앞을 흐르는 동막천>

봉화 닭실마을 석천정과 석천계곡(명승) 11-20221028<닭실마을 앞을 흐르는 창평천>

문수산을 분수령으로 남서류하는 창평천과 닭실마을 뒤에서 흘러 내리는 동막천이 유곡 앞에서 합류하여 기암괴석으로 이루어진 이곳을 흘러 석천이라 한다. (안내문, 봉화군청, 2022년)

봉화 닭실마을 석천정과 석천계곡(명승) 10-20221028<창평천을 따라 석천정으로 연결되는 길>

봉화 닭실마을 석천정과 석천계곡(명승) 12-20221028<석천계곡 입구>

봉화 닭실마을 석천정과 석천계곡(명승) 13-20221028<기암괴석 사이를 흐르는 개울물>

봉화 닭실마을 석천정과 석천계곡(명승) 16-20221028<마을에서 흘러내려오는 석천계곡>

봉화 닭실마을 석천정과 석천계곡(명승) 05-20221028<석천정 아래>

봉화 닭실마을 석천정과 석천계곡(명승) 04-20221028<석천계곡과 석천정>

봉화 닭실마을 석천정과 석천계곡(명승) 07-20221028<봉화읍 내성천으로 흘러 내려가는 개울>

석천계곡은 맑은 물과 울창한 송림, 기암괴석들로 이루어져 자연경관이 수려하고 척천정 정자가 있어 더욱 고아한 분위기를 주며 많은 인파가 찾고 있는 명소이다. 석천계곡과 가까운 거리에 권씨종가와 청암정 및 삼계서원, 충재유물전시관 등 조선시대 유교문화 유산이 산재해 있다.  (안내문, 봉화군청, 2022년)

<출처>

  1. 안내문, 봉화군청, 2022년
  2.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2022년
  3.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소, 2022년

봉화 닭실마을 청암정(靑巖亭, 명승)

경북 봉화군 봉화읍 유곡리에 있는 청암정(靑巖亭, 명승)이다. 조선중기 문신 권벌이 살았던 종가 옆에 위치하고 있다. 정자는 거북모양 바위에 위에 세워졌는데 주변에는 물이 흐르며 그 바깥으로 울창한 나무울타리가 있다. 퇴계 이황을 비롯하여 당대 학자들이 방문하여 학문을 교류했던 곳으로 관련된 많은 유물들이 전해오고 있다. 정자 앞에는 권벌이 공부를 했던 별채 건물인 충재(冲齋)가 있다. 규모는 크지 않지만 정자, 바위, 고목이 작은 숲을 이루고 있는 전통정원의 모습을 잘 보여주고 있다.

봉화 닭실마을 청암정(명승) 01-20221028<봉화 닭실마을 청암정(명승)>

봉화 닭실마을 청암정(명승) 06-20221028<충재박물관 마당에서 보이는 청암정과 출입문>

거북모양의 바위 위에 정자를 세워놓고 있다. 거북바위 주위로 냇물을 끌여들여 작은 못을 조성하고 있다. 거북이 물위에 떠 있는 형상을 하고 있다. 연못 위에 돌다리를 만들어 건널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봉화 닭실마을 청암정(명승) 02-20221028<연못을 건너는 돌다리와 정자>

건물은 앞면 4칸, 옆면 2칸 규모이다. 1칸은 문이 있는 온돌방이며 나머지 3칸은 넓은 대청마루를 하고 있다. 온돌방은 양쪽에 누마루를 달아내어 주변 경치를 감상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봉화 닭실마을 청암정(명승) 22-20221028<청암정 정자 건물>

봉화 닭실마을 청암정(명승) 16-20221028<온돌방 바깥쪽 누마루>

봉화 닭실마을 청암정(명승) 21-20221028<반대편 누마루>

넓은 대청마루에는 이곳을 다녀간 유력인사들이 남겨둔 글과 글씨들이 남아 이다. ‘청암정(靑巖亭)’이라 적힌 현판의 글씨는 남명 조식이 쓴 글이라 전하고 있으며, ‘청암수석(靑巖水石)’이라 적힌 현판은 당대 명필이자 전서체의 대가로 손꼽히는 미수 허목이 쓴 글씨이다. 퇴계 이황이 청암정을 주제로 지은 시를 적은 현판인 <청암정제영시>가 있었다.

봉화 닭실마을 청암정(명승) 15-20221028<청암정 대청마루, ‘청암정’이라 걸린 현판이 보인다.>

봉화 닭실마을 청암정(명승) 20-20221028<’청암수석(靑巖水石)’이라 적힌 현판>

SANYO DIGITAL CAMERA<’청암수석’ 글씨 원본, 충재박물관>

SANYO DIGITAL CAMERA<’청암정제영시’, 충재박물관>

정자 앞 마당에는 충재 권벌(權橃, 1478 ~ 1548년)이 공부를 하던 작은 별채 건물이 충재(冲齋)가 있다. 앞면 3칸에 맞배지붕을 하고 있는 작은 건물로 혼자 지내면서 공부하기에 좋은 건물이다.

봉화 닭실마을 청암정(명승) 19-20221028<청암정에서 내려 보이는 충재>

‘충재’는 그의 호로 그가 이 별채 건물을 좋아했던 것으로 보인다. 건물 1칸은 작은 마루로 되어 있는데, 공부할 때 청암정 경치를 볼 수 없도록 판문을 달아 놓았다.

봉화 닭실마을 청암정(명승) 12-20221028<별채 마루>

봉화 닭실마을 청암정(명승) 11-20221028<온돌방>

봉화 닭실마을 청암정(명승) 05-20221028<뒷편에서 본 별채>

청암정이 있는 거북바위 둘레에는 개울에서 끌어들인 물이 연못을 이루면서 흐르고 있으며 그 주위에는 왕버들과 단풍 등 다양한 나무들이 심어 놓고 있다. 왕버들은 오랜 세월을 보여주는 고목의 모습을 하고 있으며 넓지는 않지만 울창한 숲을 이루고 있다.

봉화 닭실마을 청암정(명승) 23-20221028<청암정에서 내려다 보이는 연못과 고목들>

봉화 닭실마을 청암정(명승) 14-20221028<동쪽편 왕버들>

봉화 닭실마을 청암정(명승) 25-20221028<서쪽편 왕버들>

봉화 닭실마을 청암정(명승) 04-20221028<바깥에서 보이는 청암정>

봉화 닭실마을 청암정(명승) 13-20221028<권벌 종가>

봉화 닭실마을 청암정(명승) 21-20221028<바깥에서 본 청암정 정자>

SANYO DIGITAL CAMERA<종가에서 보이는 청암정>

청암정(靑巖亭)
조선 중종 떄의 문신 충재 권벌선생의 유적지로 종가 우측에 위치하며 거북바위 위에 건립되었다. 정자 둘레로 물이 흐르고 그 밖은 나무울타리가 쳐있으며 동,남,북쪽으로 3개의 문이 있으며 정자 1동 외 충재선생이 공부하던 별채가 있으며, 바로 옆에는 충재유물 전시관이 있다. (안내문, 봉화군청, 2022년)

<출처>

  1. 안내문, 봉화군청, 2022년
  2.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2022년
  3.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2022년
  4. 위키백과, 2022년

울진 망양정과 망양해수욕장

경북 울진군 근남면 산포리에 있는 망양정(望洋亭)이다. 조선시대 관동팔경 중 하나였던 곳으로 조선후기 철종 때(1854년)에 기성면 망양리에 있던 것을 현재의 위치로 옮겼다. 원래 있던 정자는 없어지고 여러차례 다시 지으면서 오늘에 이르고 있다. 현재 망양정이 있는 곳은 울진 왕피천이 동해바다와 만나는 지점으로 근처에 울진 성류굴이 있다. 읍치에서 3km 정도 떨어진 곳으로 구한말 망양정을 옮길 때 읍치와 가까운 점이 크게 고려되었다. <관동별곡> 등 조선시대 글과 그림에서 표현된 망양정은 옛터에 있던 망양정이다.

울진 망양정 01-20220711<울진 망양정>

망양정은 울진 왕피천이 동해바다와 만나는 곳이 내려다 보이는 언덕에 위치하고 있다. 망양정 아래 해안에는 모래사장이 비교적 넓게 펼쳐져 있어 많은 피서객들이 찾는다.

울진 망양정 03-20220711<망양정해수욕장 뒷편 언덕에 위치한 망양정>

울진 망양정 02-20220711<망양정해수욕장>

울진 망양정 04-20220711<망양정 오르는 길>

울진 망양정 05-20220711<언덕 위로 보이는 망양정>

울진 망양정 07-20220711<망양정>

울진 망양정 08-20220711<망양정에서 보이는 울진 왕피전과 동해안>

울진 망양정 10-20220711<망양정 남쪽으로 보이는 풍경>

울진 망양정 06-20220711<망양정 산책로>

망양정, 경북 울진군 근남면 산포리
이 정자는 관동팔경의 하나로 넓은 동해를 바라보며 산 정상에 날을 듯 앉아 아름다운 경관을 자랑하고 있다. 원래 망양정은 기성면 망양리 현종산 기슭에 있던 것을 조선 철종 11년(1860)에 지금의 위치로 이건하였다. 그후 허물어져 없어진 것을 1958년에 중건하였으나, 다시 심하게 낡아 2005년 완전 해체하고 새로 지었다. 특히 조선 숙종은 관동팔경 중 망양정 경치가 최고라 하여 ‘관동제일루’한 현판을 하사하였으며, 망양정의 절경을 읊은 유명한 시와 글로는 숙종과 정조의 어제시, 정철의 <관동별곡> 등이 전해오며, 그림으로는 정선의 <백납병>.<관동병승첩>에 있는 망양정도가 유명하다. (안내문, 울진군청, 2022년)

<출처>

  1. 안내문, 울진군청, 2022년
  2. 디지털울진문화대전, 한국학중앙연구소, 2022년
  3. 위키백과, 2022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