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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양동마을 심수정

경북 경주시 강동면 양동마을에 있는 정자인 심수정(心水亭)이다. 회재 이언적의 동생 이언괄을 추모하기 위해 1560년 경에 처음 세워졌다고 한다. 현재의 건물은 화재로 소실된 것을 1917년에 현재의 모습을 중건한 것이다. 건물은 정자와 바깥에 있는 행랑채로 구성되어 있다. 정자는 ‘ㄱ’자형 건물로 왼쪽 2칸은 대청마루, 오른쪽 2칸은 온돌방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대청마루 앞쪽에 큰 누마루를 달아 내었다. 여주 이씨 문중에서 후학을 양성하기 위한 서당역할을 했던 건물이다. 대청마루와 누마루에서 내려다 보이는 마을 풍경이 웅장하며, 종가인 무첨당과 향단을 마주 보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경주 양동마을 심수정>

OLYMPUS DIGITAL CAMERA<입구에 있는 고목>

OLYMPUS DIGITAL CAMERA<대청마루와 온돌방>

OLYMPUS DIGITAL CAMERA<마을 경치가 내려다 보이는 누마루>

정자 바깥에 있는 행랑채는 화재로 소실되지 않고 남아 있는 옛 건물이다. ‘ㄱ’자형건물로 가운데 대청마루를 두고 양쪽에 온돌방이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행랑채>

OLYMPUS DIGITAL CAMERA<뒷편에서 본 모습>

OLYMPUS DIGITAL CAMERA<아래쪽에서 본 모습>

OLYMPUS DIGITAL CAMERA<맞은편 향단에서 보이는 모습>

심수정(心水亭)
이 정자는 회재 이언적의 동생인 이언괄(1494~1553년)을 추모하기 위해 지은 것으로 이언괄은 벼슬을 마다하고 형 대신 노모를 모셨다. 여주 이씨 집안의 종가인 무첨당과 향단을 바라보기 위해 건물을 ‘ㄱ’자로 꺾고 그 자리에 누마루를 두었다. 이렇듯 집이 바라보는 방향은 조상들이 집을 지을 때 매우 중요하게 생각하던 부분이다. 마을 안팎에 있는 10여개의 정자 중 규모가 제일 크며, 안락정과 강학당이 세워지기 전까지 이 마을의 서당 역할을 했다. 철종 때 불에 타서 1917년경에 다시 지었다.(안내문, 경주시청, 2012년)

<출처>

  1. 안내문, 경주시청, 2012년
  2. 국가문화유산포탈, 문화재청, 2021년
  3.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소, 2021년
  4. 위키백과, 2021년

경주 양동마을 동호정

경북 경주시 강동면 양동마을에 이는 정자인 동호정(東湖亭)이다. 이언적의 손자 이의잠의 학덕을 기리기 위해 세워진 정자로 수졸당 고택 맞은편 언덕에 위치하고 있다. 앞면 4칸의 팔작지붕을 하고 있는데 가운데 2칸은 넓은 대청마루가, 양쪽에는 1칸씩 온돌방이 있다. 집안 모임을 갖거나 휴식을 위한 공간으로 보인다.

OLYMPUS DIGITAL CAMERA<마을에서 보이는 모습>

OLYMPUS DIGITAL CAMERA<동호정 출입문>

OLYMPUS DIGITAL CAMERA<동호정>

OLYMPUS DIGITAL CAMERA<대청마루>

OLYMPUS DIGITAL CAMERA<온돌방>

OLYMPUS DIGITAL CAMERA<동호정에서 내려다 보이는 풍경, 건너편 왼쪽 언덕에 수졸당 고택이 있다.>

<출처>

  1. 안내문, 경주시청, 2012년
  2. 국가문화유산포탈, 문화재청, 2021년
  3.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소, 2021년
  4. 위키백과, 2021년

경주 양동마을 영귀정

경북 경주시 강동면 양동마을에 있는 정자인 영귀정(詠歸亭)이다. 여주이씨 고택들이 모여있는 물봉골 서쪽 언덕에 위치하고 있다. 회재 이언적이 학문에 전념하기 위해 세운 정자가 있던 곳에 후손들이 중건한 것이다. 건물은 앞면 3칸에 팔작지붕을 하고 있는데 왼쪽 2칸은 넓은 대청마루가, 오른쪽 1칸은 온돌방이 배치되어 있다. 건물 앞면에는 구한말 이후 유행했던 난간이 설치되어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경주 양동마을 영귀정>

OLYMPUS DIGITAL CAMERA<솟을대문>

OLYMPUS DIGITAL CAMERA<대문을 들어서면 보이는 모습>

OLYMPUS DIGITAL CAMERA<대청마루 내부>

OLYMPUS DIGITAL CAMERA<언덕에서 내려다 본 모습>

<출처>

  1. 두산백과, 2021년

청도 삼족대, 조선중기 문신 김대유가 후학 양성을 위해 지은 정자

경북 청도군 매전면 금곡리에 있는 삼족대이다. 조선중기 문신 김대유가 세웠던 작은 정자로 동강천 경치가 아름다운 곳에 위치하고 있다. ‘삼족대’라는 이름은 김대유의 호 ‘삼족당’에서 따왔다. 김대유는 중종 때 일어난 기묘사화로 낙향하여 후학을 양성하면서 주세붕.조식.박하담 등 당대의 학자들과 교류를 하였다.

건물은 앞면 3칸, 옆면 2칸의 팔작지붕을 하고 있으며 사방에 담을 두르고 있다. 후대에 여러차례 중수를 하면서 조선후기 건축양식을 하고 있다. 건물 마루에서 내려다 보는 동창천과 주변 경치가 아름답다.

청도 삼족대 01-20200106동창천을 내려보는 경치가 아름다운 곳에 세워진 작은 정자인 삼족대. 후학을 양성하기 위한 공간으로 공부에 집중하기 위해 담을 둘러 쌓은 것으로 보인다.

청도 삼족대 06-20200106건물은 온돌방 2칸, 부엌 등을 두고 있는 작은 살림집 형태이다. 마루에 걸터 앉아 내려다 보는 경치가 아름답다.

청도 삼족대 07-20200106마루에서 내려다 보이는 동창천(상류방향)

청도 삼족대 05-20200106동창천 하류 방향

청도 삼족대 03-20200106삼족대 아래 경치를 감상하기 위해 지은 작은 정자

청도 삼족대 02-20200106정자에서 내려다 보이는 풍경

청도 삼족대 04-20200106삼족대 아래에 있는 집 마당에서 보이는 삼족대

청도 삼족대 11-20200204반대편에서 본 모습.

청도 삼족대, 경북 청도군 매전면 금곡리
이 정자는 조선 중종 14년(1519) 삼족당 김대유(1479 ~ 1552년)가 후진을 교육하기 위하여 처음 건립하였고, 그의 호를 따라 삼족대라 불렀다. 김대유는 조광조의 문인으로 중종 2년(1507) 정시에 장원급제한 이후 정언, 칠원 현감 등을 지내고 1519년 기묘사화 이후에는 관직을 사임하고 향리에 은거했다. 건물은 정면 3칸, 측면 2칸 팔작지붕으로 사방에 토담을 쌓고 일각문을 두어 그 안에 정자를 배치하였는데 방 두칸과 부엌, 우물마루가 ‘ㄱ’자로 배열되어 있다. 1519년 경에 건립되었다고 하나 후대에 여러 차례의 중수를 거치는 동안 조선후기 건축양식으로 변모하였다. (안내문, 청도군청, 2020년)

<출처>

  1. 안내문, 청도군청, 2020년
  2. 국가문화유산포탈, 문화재청, 2020년

정읍 피향정(보물), 호남지방을 대표하는 정자 건축

전북 정읍시 태인면 태창리에 옛 태인현 읍치에 남아 있는 피향정(披香亭, 보물)이다. 태인현 관아에서 공식행사를 위해 설치한 것으로 남원 광한루와 함께 호남지방을 대표하는 정자 건축물이다. 창건연대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가 없으나 현재의 건물은 조선중기 숙종 때(1716)에 새로 지은 것이다.

건물은 앞면 5칸, 옆면 4칸의 팔작지붕을 하고 있는 큰 규모로 사방이 개방되어 있다. 천장은 연등천장이나 가운데에는 우물천장으로 꾸며놓고 있다. 천장 아래에는 이곳을 찾았던 인사들이 남겨놓은 글이 적혀 있는 현판들이 많이 남아 있다. 건물 앞.뒤로 큰 연못이 있었다고 하는데 지금은 앞쪽 연못만 남아 있다. 조선중기 목조건축을 대표하는 건축물로 손꼽히고 있다.

SANYO DIGITAL CAMERA정읍 피향정(보물). 태인현 읍치에 남아 있는 조선중기를 대표하는 정자건축물이다.

SANYO DIGITAL CAMERA옆면에서 본 모습.

SANYO DIGITAL CAMERA정자를 받치는 기둥. 커다른 화강암 석재를 가공하여 초석 위에 기둥을 세우고 그 위에 건물을 올렸다.

SANYO DIGITAL CAMERA앞면에서 본 모습. ‘호남제일정’이라 적힌 현판이 걸려 있다.

SANYO DIGITAL CAMERA정자 내부. 넓은 마루로 되어 있으며 사방이 개방되어 있다.

SANYO DIGITAL CAMERA천장은 대부분 서까래가 드러나 있는 연등천장을 하고 있는데 가운데 부분만 우물천장으로 장식하고 있다.

SANYO DIGITAL CAMERA천장 아래 걸려 있는 ‘피향정’이라 적힌 현판

SANYO DIGITAL CAMERA천장 아래에는 이곳을 찾은 인사들이 남겨놓은 글이 적힌 현판들이 많이 걸려 있다. 통일신라 때 유학자 최치원의 발자취를 찾아 이곳을 방문했던 인사들이 많았음을 알 수 있다.

SANYO DIGITAL CAMERA정자에서 내려다 보이는 연못 풍경. 농업용 저수지 역할을 했던 것으로 보이는 오래된 연못으로 보인다. 원래는 앞.뒤에 연못이 있었는데 지금은 앞쪽 연못만 남아 있다.

SANYO DIGITAL CAMERA피향정이 있는 옛 태인현 읍치.

정읍 피향정(披香亭), 보물 289호, 전북 정읍시 태인면 태창리
피향정은 호남 제일의 정자이다. 원래 이 정자는 앞뒤로 상.하연지가 있어 아름다운 경승을 이루고 있었으나 현재는 하연지만 남아 있다. 신라시대에 최치원 선생이 태산군수로 재임중에 이곳 연지가를 소요하며 풍월을 읊었다는 전설이 있으나 정자의 창건연대는 확실하지 않다. 현재의 정자는 조선시대 중기의 건물로 정면 5칸, 측면 4칸의 팔작집이다. 4면이 모두 개방되어 있고 주위에는 난간이 둘러져 있다. 공포는 간결한 초익공 건물로 천장은 연등천장인데 합각 밑에는 작은 우물천장이 특이하게 설치되어 있다. (안내문, 정읍시청, 2010년)

<출처>

  1. 안내문, 정읍시청, 2010년
  2. 국가문화유산포탈, 문화재청, 2019년
  3.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한국학중앙연구소, 2019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