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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천 송광사 묘법연화경관세음보살보문품삼현원찬과문(보물 204호)

순천 송광사박물관에서 소장하고 있는 묘법연화경관세음보살보문품삼현원찬과문(보물 204호)이다. 법화경이라고도 불리는 묘법연화경은 천태종의 근본경전으로 화엄종과 함께 우리나라 불교에 큰 영향을 미친 경전이다. 이 책은 법화경 중 제25품인 관세음보살보문품을 송나라 시효가 풀이해서 쓴 것으로 관세음보살에 관한 내용을 담고 있다. 고려시대 의천이 간행한 교장의 하나로 조선초 세조 때 간경도감에서 다시 목판을 새겨 간행한 것이다.

OLYMPUS DIGITAL CAMERA묘법연화경관세음보살보문품삼현원찬과문, 보물 204호, 조선 1461년

묘법연화경은 줄여서 ‘법화경’이라고 부르기도 하며, 부처가 되는 길이 누구에게나 열려있다는 것을 기본사상으로 하고 있다. 이 책은 법화경 28품 중에서 제25품인 관세음보살보문품을 송나라 시효가 알기 쉽게 풀이하여 쓴 책이다. 책 끝에는 고려 숙종 4년(1099)에 만들어졌다는 기록이 있으나 조선 세조 때 간경도감에서 다시 펴낸 것으로 보인다. (안내문, 송광사박물관, 2018년)

<출처>

  1. 안내문, 송광사박물관, 2018년
  2. 국가문화유산포탈, 문화재청, 2018년

 

순천 송광사 대반열반경소(보물 90호)

순천 송광사박물관에서 소장.전시하고 있는 대반열반경소(보물 90호)이다. 대반열반경은 열반을 종교적.철학적으로 이해시키기 위해 만든 경전이며, 이 책은 당나라 법보가 주석을 붙인 것이다. 고려시대 의천에 간행한 교장(敎藏) 중 하나로 조선초 세조 때 간경도감에서 다시 목판을 새겨 간행한 것이다.

OLYMPUS DIGITAL CAMERA대반열반경소, 보물 90호, 조선 1461년

『대반열반경』은 부처님의 열반을 다루고 있는 경전으로, 중생들에게 열반을 종교적.철학적으로 같이 이해시키기 위해 만든 것이다. 고려 숙종 4년(1099)에 대각국사 의천이 각국에서 구해온 불경을 간행한 숙장경을 조선 세조 때 간경도감에서 다시 새긴 것이다. (안내문, 송광사박물관, 2018년)

<출처>

  1. 안내문, 송광사박물관, 2018년
  2. 국가문화유산포탈, 문화재청, 2019년

순천 송광사 대방광불화엄경소 목판(보물 1909호)

순천 송광사 박물관에서 소장하고 있는 대방광불화엄경소 목판(보물 1909호)이다. 조선중기 1634 ~ 1635년에 간행된 것으로 100매 정도가 없어졌으나 2,347매가 큰 손상없이 남아 있다. 팔만대장경을 제외하고는 현존하는 불서 목판 중 그 규모가 가장 방대하다. 대방광불화엄경소는 『화엄경』에 해석을 달아 놓은 교장류의 일종이다. 고려 대각국사 의천의 요청으로 판본이 처음 수입된 이후 여러차례 간행되었다.

OLYMPUS DIGITAL CAMERA순천 송광사 대방광불화엄경소 목판(보물 1909호)

『대방광불화엄경소』는 대승경전의 하나인 『화엄경』을 중국 당나라 징관이 주소하고 여기에 송나라 정원이 주해한 교장류의 일종이다. 일반적으로 『대방광불화엄경』은 줄여서 화엄경이라 통칭되기도 하며, 부처와 중생이 둘이 아니라 하나라는 것을 중심사상으로 하고 있다. (안내문, 송광사박물관, 2018년)

<출처>

  1. 안내문, 송광사박물관, 2018년
  2. 국가문화유산포탈, 문화재청, 2018년

 

 

순천 송광사 인천안목 목판(보물 1911호)

순천 송광사 박물관에서 소장.전시하고 있는 『인천안목 목판』(보물 1911호)이다. 간행 기록에 따르면 조선중기 1529년(중종 24)에 간행되었다. 전체 42매로 일부 손상되기는 했으나 전체 목판이 완전하게 남아 있다. 『인천안목』은 중국 남송 때 승려 지소(智昭)가 당시 불교 5개 종파의 기본사상과 창시자들의 행적을 요약하여 정리한 내용을 담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고려 때(1357년) 처음 간행되었으며 여러 차례 중수본이 간행되었다. 인쇄본은 여러 점이 전해지고 있으며 목판으로는  송광사에 간행된 것이 유일하게 남아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송광사 인천안목 목판(보물 1911호).

『인천안목』은 중국 남송의 고승 지소가 당시 중국 선종의 가르침, 특징 등을 기록하여 편찬한 책이다. 이 목판은 1529년 송광사에서 개판한 것으로, 유학자 이색의 발문, 무학대사의 증명 등이 수록되어 있다. 완전한 구성을 갖춘 42판 167장의 목판이 남아 있으며 현재 모본이 되는 목판이 전해지는 것은 송광사가 유일하다. (안내문, 송광사박물관, 2018년)

<출처>

  1. 안내문, 송광사박물관, 2018년
  2. 국가문화유산포탈, 문화재청, 2018년

 

완도 묘당도 이충무공 유적(사적 114호), 정유재란 말 조.명연합군 수군이 주둔했던 곳

전남 완도군 고금면 덕동리에 있는 묘당도 이충무공 유적(114호)이다. 이곳은 정유재란이 끝나갈 무렵 충무공이 이끌었던 조선수군과 진린의 명나라 수군이 진을 치고 머물렀던 곳으로 사실상 조.명연합군의 해군본부였다. 현재는 충무공을 모시는 사당인 충무사와 그가 죽은 후 잠시 묻혔던 가묘터가 남아 있다. 묘당도는 고금도 끝에 있는 작은 섬이었으나 지금은 간척사업으로 고금도의 일부분으로 바뀌었다.

이곳은 임진왜란 승리를 기원하기 위해 진린이 세웠던 관왕묘가 있었다. 정유재란 말 이순신 장군이 전사하자 진린은 그의 유해를 이곳에 모시시고 장례를 치렀다. 이후 17세기부터 관왕묘에 이순신장군과 진린장군을 같이 모시고 제사를 올려왔다. 일제강점기에 사당이 없어지고 제사가 중단되었다가 해방 이후 다시 사당을 세우고 충무공에 대한 제사를 올리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완도 묘당도 이충무공 유적(사적 114호). 고금도 동쪽끝에 있는 작은 섬이었으나 간척사업으로 지금은 고금도의 일부부으로 바뀌었다.

OLYMPUS DIGITAL CAMERA묘당도 유적지로 들어가는 길. 하마비가 세워져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충무공 가묘 유허, 이순신 장군은 노량에서 전사후 관음포에 올려졌고 남해 충렬사에 잠시 묻혔다가 이곳을 거쳐 충남 아산으로 옮겨졌다. 조.명연합군 수군 본영이 있었던 것으로 명나라 수군을 이끌었던 진린이 주도하여 이곳에서 장례를 치렀다고 한다.

충무공 이순신장군 가묘 유허
이곳은 임진왜란 때 왜적을 물리친 충무공 이순신 장군의 유해을 임시로 안장하였던 터이다. 이순신 장군은 이 고금도에서 수군본영을 설치하여, 수군을 훈련하고 전선을 건조.수리하는 등 군비를 재정비하여 왜적의 침입을 물리쳤다. 장군이 1598년 11월 19일 노량해전에서 순국하자 본영이었던 이곳에 80여일간 안장한 후 이듬해에 충남 아산으로 옮겼다. (안내문, 완도군청, 2018년)

OLYMPUS DIGITAL CAMERA가묘 유허 아래에 있는 재실로 보이는 건물.

OLYMPUS DIGITAL CAMERA묘당도 앞 바다. 앞쪽에 작은 섬들이 막고 있어 파도가 거의 없어 파도를 피하기 좋은 곳이다.

OLYMPUS DIGITAL CAMERA묘당도 북쪽 바다.

OLYMPUS DIGITAL CAMERA남쪽으로 보이는 바다. 사방이 섬으로 둘러 싸여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사당 입구에 세워진 홍살문.

OLYMPUS DIGITAL CAMERA충무사 외삼문.

OLYMPUS DIGITAL CAMERA충무공을 모신 사당인 충무사. 원래 관우를 모신 관왕묘가 있었으며, 그 앞쪽에 충무공과 진린을 모신 동.서무가 있었으나 일제강점기에 없어지고 지금은 해방 이후 다시 세운 충무공만을 모신 사당이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충무사 내부.

OLYMPUS DIGITAL CAMERA사당에 딸린 건물. 제사를 준비하는 재실 역할을 하는 건물이다.

OLYMPUS DIGITAL CAMERA마당 한쪽편에 있는 관왕묘비. 이곳에 관우를 모신 관왕묘가 있었음을 보여주고 있다.

이 비석은 숙종 39년(1713)에 세운 것으로, 관왕묘의 창건 이후의 내용을 기록한 비로, 명나라 수장이 충무공의 전사를 애석히 여겨 여기서 경혈하고 귀국하였다는 내용이 기록되어 있다. 비의 규모는 높이 253 cm, 폭 93 cm, 두께 20 cm이다. 비각은 정.측면 1칸의 팔작집으로 원형초석 위에 두리기둥을 세웠다. (안내문, 완도군청, 2018년)

OLYMPUS DIGITAL CAMERA묘당도 충무사 사당 아래 해안. 울창한 상록수가 숲을 이루고 있다.

완도 묘당도 이충무공 유적, 사적 114호, 전남 완도군 고금면 덕동리
묘당도 일원은 본래 진린 장군이 건립한 ‘관왕묘’였으며, 관우 장군을 사당에 모시고 전쟁의 승리를 기원했던 곳이다. 진린 장군은 이순신 장군이 노량해전에서 순국하자 이곳 (월송대)에 장군의 유해를 안장하고 장례를 치러주었다. 1666년, 동무에 진린 장군을 모셨으며, 1683년에 서무에 이순신 장군을 모셨다. 1791년 정조가 관왕묘에 ‘타보묘’라는 사액을 내렸으며, 1792년 동무에 명나라 부총관 등자룡 장군을 함께 모셨다. 일제강점시기(1940년대 초)에 유물이 훼손되고 제사가 중단되었으며, 사당이 황폐화 되었다. 1947년 11월 19일 사당에 이신신 장군만을 모시고 다시 제향하기 시작했다. 1953년 사당을 증건하고, 사당 명칭을 ‘충무사’로 개칭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 사당 내에는 숙종 39년 건립한 관왕묘비가 있으며, 이순신 장군이 전사한 후 명나라 진린 장군이 혈서로 애도문을 쓰고 명나라로 돌아갔다는 내용이 적혀 있다. (안내문, 완도군청, 2018년)

<출처>

  1. 안내문, 완도군청, 2018년
  2. 국가문화유산포탈, 문화재청, 2018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