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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천 낙안읍성(사적 302호), 왜구 침입을 대비하여 쌓은 대표적인 조선시대 읍성

전남 순천시 낙안면에 있는 낙안읍성(사적 302호)이다. 조선시대 옛 낙안관 읍치를 둘러싸고 전형적인 읍성이다. 고려말 왜구의 침입에 대응하기 위해 전국적으로 쌓았던 읍성 중 하나로 처음에는 흙으로 성벽을 쌓은 토성이었으나, 세종대 이후 돌로 다시 쌓았다. 동서를 가로지르는 큰 길을 중심으로 북쪽에 관아와 부속 건물들이, 남쪽에 향리계층을 비롯하여 읍치에서 터를 잡고 살았던 사람들의 가옥들이 배치되어 있다.  읍성의 규모가 크지 않은 편이며, 객사를 비롯한 관아건물들과 민가들이 원형에 가깝게 남아 있다.

낙안읍성은 돌로 쌓은 석성으로 성의 둘레 1,410 m이며, 동서로 직선 거리 약 500 m, 남북으로 약 400 m 정도이다. 동.서.남문을 두고 있으며, 성문 앞에는 적의 공격을 적절히 대응하기 위해 옹성을 두고 있다. 성벽 바깥쪽에는 해자를 두고 있으며, 동문 양쪽에 2개씩 돌출된 방어시설인 치성을 두고 있고, 남문 서쪽편 언덕이 장대 역할을 했던 것으로 보인다. 읍성내에는 비상시 식수로 사용할 수 있도록 큰 우물과 연못을 두고 있다. 성문 주위를 제외하고는 성벽 위에 조총공격에 대비한 여장을 두지 않는 등 조선전기 읍성의 특징을 잘 보여주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낙안읍성 동문과 문루인 낙풍루. 목조건축물인 문루를 출입문으로 사용하고 있는 개거식 성문이다. 성문 앞에 옹성을 쌓아 개거식 성문의 취약점을 보완하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낙안읍성 배치도. 전체적으로 서남쪽을 향하고 있으며, 성문으로는 동.서.남문을 두고 있다. 동문 좌.우와 모퉁이에 바깥으로 돌출된 치성 4곳을 두고 있다.남문 서쪽에 약간 높은 언덕이 있는데 전투를 지휘하는 장대 역할을 했던 것으로 보인다. 서문을 나서면 송광사와 선암사가 있는 조계산으로 연결되는 길이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낙안읍성 동문 옆 성벽. 성벽은 커다란 돌을 잘 다듬어 석축을 쌓은 석성이다. 성문 주위를 제외하고는 조총 공격에 대비한 방어시설인 여장을 두고 있지 않다.

OLYMPUS DIGITAL CAMERA성벽 앞쪽에는 규모가 크지는 않지만 물이 흐를 수 있는 해자를 파서 방어력을 보완하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동문 앞 해자를 건너는돌다리.

OLYMPUS DIGITAL CAMERA성문 안쪽에서 본 낙풍루.

OLYMPUS DIGITAL CAMERA낙풍루 내부.

OLYMPUS DIGITAL CAMERA낙안읍성 동문에서 서문으로 연결되는 큰길. 낙풍루에서 내려다 본 모습이다. 큰길 북쪽으로 관아 등이, 남쪽으로 민가들이 배치되어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동문 남쪽편 성벽과 치성. 성벽 위에 방어시설인 여장이 설치되어 있지 않다. 조선전기 읍성의 특징을 보여주는 부분이다.

OLYMPUS DIGITAL CAMERA동문 북쪽편 성벽. 성문 옆에는 깃발을 세워둔 여장을 볼 수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동문 북쪽편에 있는 바깥으로 돌출된 방어시설인 치성.

OLYMPUS DIGITAL CAMERA치성에서 보이는 동문과 주위 성벽. 성벽 앞으로 해자를 파 놓았으며, 성문 앞에는 옹성을 두고 방어력을 보완하고 있다. 성벽과 해자 사이에 서민들이 살았던 작은 초가집이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읍성 북동쪽 모서리에 있는 치성. 낙안읍성은 동문 방향이 왜구의 예상 침입로인 벌교 방향과 연결되기 때문에 적의 침입에 대비하기 위해 동문 주위에만 4곳의 치성을 두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낙안읍성 북쪽 성벽. 관아 뒷편으로 성문을 두고 있지 않다.

OLYMPUS DIGITAL CAMERA성벽 바깥으로는 군사훈련을 하기 위해 조성해 놓은 넓은 공간이 있다. 동문 주위와는 달리 해자가 잘 보이지 않는다.

OLYMPUS DIGITAL CAMERA안쪽에서 본 성벽. 안쪽에서도 돌로 쌓은 견고한 석축성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성벽을 오르는 계단.

OLYMPUS DIGITAL CAMERA북쪽 성벽 바깥으로는 순천 지역으로 연결되는 교통로가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북쪽 성벽에서 내려다 보이는 관아 건물인 객사. 관아 건물 중 원형이 유일하게 남아 있는 건물이다.

OLYMPUS DIGITAL CAMERA낙안군수가 근무했던 동헌. 사적지로 바뀌면서 복원된 건물이다.

OLYMPUS DIGITAL CAMERA관아 뒷편 성벽. 성벽길 너비가 꽤 넓은 편이다.

OLYMPUS DIGITAL CAMERA동헌 뒷편을 지나 서문으로 연결되는 성벽길. 멀리 장대로 사용되었던 언덕이 보인다.

OLYMPUS DIGITAL CAMERA낙안읍성 서문. 원래 그랬는지 알 수 없지만 문루를 두고 있지는 않다. 방어시설로 성문 앞에 옹성을 두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서문에서 북쪽으로 이어지는 성벽.

OLYMPUS DIGITAL CAMERA서문에서 장대역할을 했던 서남쪽 언덕으로 연결되는 성벽.

OLYMPUS DIGITAL CAMERA읍성 내부에서 본 서문. 양쪽에 성벽을 오르는 계단이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서문 안쪽 성벽.

OLYMPUS DIGITAL CAMERA언덕으로 오르는 성벽길.

OLYMPUS DIGITAL CAMERA성벽 중 가장 높은 곳에서 위치한 언덕. 보통 이곳에 군사를 지휘하는 장대를 두는데 낙안읍성에는 장대를 별도로 두고 있지 않다.

OLYMPUS DIGITAL CAMERA언덕에서 남문으로 이어지는 성벽길. 양쪽으로 낙안읍성에서 터를 잡고 살았던 사람들의 민가들이 보인다. 낙안읍성을 대표하는 명장면이다.

OLYMPUS DIGITAL CAMERA아래쪽 성벽에서 보이는 언덕.

OLYMPUS DIGITAL CAMERA낙안읍성 남문과 문루인 쌍청루. 전형적인 개거식 성문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으며, 앞쪽에는 상당히 견고한 옹성을 쌓았다.

OLYMPUS DIGITAL CAMERA남문 문루인 쌍청루.

OLYMPUS DIGITAL CAMERA성문의 방어력을 보완하기 위해 성문 앞에 쌓은 옹성.

OLYMPUS DIGITAL CAMERA남문 앞쪽으로는 낙안벌 넓은 평야가 펼쳐져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치성에서 보이는 성밖 마을과 장대역할을 했던 언덕.

OLYMPUS DIGITAL CAMERA동쪽으로 이어지는 성벽길.

OLYMPUS DIGITAL CAMERA동남쪽 모서리로 이어지는 성벽길.

OLYMPUS DIGITAL CAMERA바깥쪽에서 본 남쪽 성벽. 멀리 모퉁이에 설치해 놓은 치성이 보인다.

OLYMPUS DIGITAL CAMERA안쪽에서 본 남쪽 성벽.

OLYMPUS DIGITAL CAMERA남쪽 성벽 안쪽으로는 비상시 식수로 사용하기 위해 조성해 놓은 연못과 우물이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연못 한쪽편에 있는 우물.

OLYMPUS DIGITAL CAMERA읍성 바깥으로 물길을 연결시켜주는 작은 수문.

낙안읍성, 사적 302호, 전남 순천시 낙안면 동.서.남대리
낙안읍성은 현존하는 조선시대의 읍성들 가운데 원형이 가장 잘 보존 된 곳으로 특히 성 안에는 전통적인 가옥들이 그대로 남아 있다. 이 읍성은 고려 후기에 왜구의 잦은 침입이 있어 조선 태조 6년(1397)에 흙으로 쌓았었다. 『세종실록』에 의하면 세종6년(1424)부터 여러 해에 걸쳐 돌로 다시 쌓아 성의 규모를 넓혔다고 한다. 읍성 전체 모양은 장방형이며 길이는 1,410 m이다. 동.서.남쪽 3곳에는 성 안의 큰 도로와 서로 연결된 문이 있고 적의 공격을 효과적으로 방어하기 위한 4군데의 치성이 성 밖으로 돌출되어 있다. 성 안에는 90여 가구의 민가들이 있는데, 보통 1가구당 2~3채의 초가집과 마당, 텃밭으로 구성되었다. 초가집들은 3칸 정도의 일자형 안채와 아래채, 그리고 농기구 등을 보관하거나 외양간으로 겸용하는 헛간채와 재래변소로 이용하는 잿간으로 이루어졌다. 그러나, 현대화 물결에 따라 전통적인 마을의 모습이 변형되기 시작하였고, 성의 일부가 점진적으로 붕괴 소실됨에 따라 1983년 사적 제302호로 지정하고 읍성의 종합적인 보존사업을 시작하였다. 특히 백성들이 살던 초가집들 가운데 보존가치가 가장 높은 9동은 중요민속자료로 지정하였고, 일부 변형되었거나 낡은 집들은 복원.수리하였다. 관청터에서는 관아와 객사 주변의 담장.월대.삼문 등을 발굴.복원하고 성곽과 문루 등을 복원하였다. 여러 성씨가 모여 사는 이 마을 중앙에는 선정을 베풀었던 군수 임경업(1594~1646)의 선정비가 있고, 600여년 이상된 노거수 은행나무가 마을을 수호한다고 믿고 매년 추모.당제를 지내고 있다. 동문 밖 1 km거리에는 낙안향교가 있어 예전에는 이 지역 선비들을 양성하였으나, 지금은 당시의 풍속과 생활문화를 전하고 있다. (안내문, 순천시청, 2012년)

  1. 안내문, 순천시청, 2012년
  2. 국가문화유산포탈, 문화재청, 2019년

 

전라도 낙안군 관아

전남 순천시 낙안면.외서면과 보성군 벌교읍 등에 있었던 옛 지방 고을이었던 낙안군(樂安郡) 관아이다. 낙안군은 삼국시대 백제의 분차군이었으며, 그 후 여러차례 이름이 바뀌었다가 고려 초 낙안군으로 바뀌면서 구한말까지 존재해오다 1908년에 폐지되었다. 원래 읍치는 벌교읍 부근이었으나 고려말 왜구의 침략에 대응하기 위해 낙안읍성이 있는 현재의 위치로 옮겼다.

낙안읍성에는 당시 쌓았던 읍성을 비롯하여 관아, 읍치에 거주했던 주민들이 살았던 오래된 가옥들이 원형에 가깝게 남아 있다. 낙안군 읍치는 조선시대 관아가 있었던 읍치의 모습이 잘 보존되어 있어 역사적 가치가 매우 높으며 옛사람들이 살았던 모습을 살펴볼 수 있는 유적지로서 많은 사람들이 찾는 지역의 관광 명소로 잘 알려져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낙안군 읍치였던 낙안읍성. 읍치는 남해안에서는 꽤 넓은 평야였던 낙안들판 북쪽편에 자리잡고 있다. 동쪽으로는 순천과 연결되며, 북쪽으로는 승주, 구례를 거 남원과, 서쪽으로는 보성지역과 연결되는 교통로이다. 고려말, 조선초에 왜구의 침입이 많았던 지역으로 해안에서 비교적 안전한 거리에 떨어져 있는 곳에 읍성을 쌓아 대비했다.

OLYMPUS DIGITAL CAMERA관아 입구에 세워져 있는 임경업 장군 선정 비각, 인조 때 낙안군수를 역임한 임경업 장군의 공덕을 기리기 위해 세워졌다.

OLYMPUS DIGITAL CAMERA관아 중심 건물인 객사 입구에 세워져 있는 홍살문.

OLYMPUS DIGITAL CAMERA관아의 중심이 되는 객사. 조선시대 국왕을 상징하는 궐패를 모시며 이곳을 방문한 중앙관리가 머무는 숙소로 사용되는 곳이다.

OLYMPUS DIGITAL CAMERA객사를 출입하는 객사문.

OLYMPUS DIGITAL CAMERA객사문은 맞배지붕을 하고 있는 건물로 양쪽에 손님들을 수행했던 인원들이 묵을 수 있는 문간방을 두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객사문 안쪽으로 보이는 낙안 객사.

OLYMPUS DIGITAL CAMERA낙악객사. 가운데 궐패를 모시는 앞면 3칸 규모의 정청을 두고 양쪽에 각 앞면 2칸씩 익랑을 두고 있는 전형적인 조선시대 객사 건물 형태를 하고 있다. 낙안읍성에서 볼 수 있는 관아 건물 중 유일하게 남아 있던 건물이다.

OLYMPUS DIGITAL CAMERA국왕을 상징하는 궐패를 모시고 있는 가운데 정청 건물. ‘낙안지관’이라 적힌 현판이 걸려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동쪽편 익랑. 손님이 묵을 수 있는 온돌방 1칸과 손님과 연회를 할 수 있는 툇마루를 두고 있다. 문신들이 머무는 숙소이다.

OLYMPUS DIGITAL CAMERA서쪽편 익랑. 무신들이 머무는 숙소이다.

OLYMPUS DIGITAL CAMERA옆쪽에서 본 낙안객사.

OLYMPUS DIGITAL CAMERA뒷편 낙안읍성 성벽 위에서 내려다 보이는 낙안객사.

낙안객사
객사는 손님을 접대하기 위하여 만들어진 곳으로, 외국이나 조정에서 파견된 사신의 숙소였을 뿐만 아니라 임금을 상징하는 궐패를 모셔두고 매월 초하루와 보름 때 고을의 관리와 선비들이 모여 망궐례를 올리는 장소이기도 하였다. 이 객사는 세종 32년(1450) 군수 이인이 건립한 후 인조9년(1631)과 철종 8년(1857)에 각각 수리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현재는 객사 본전만 남아 있어 전체의 모습은 알 수 없으나 1900년대 초까지는 모두 보존되어 있었다고 한다. 이 객사본전은 1909년 이후 낙안초등학교 건물로 사용되어 안팎으로 변조된 부분이 많았으나 1982년에 다시 보수하여 지금에 이르고 있다. 건물은 정면 7칸, 측면 2칸으로 완벽한 좌우 대칭구조를 이루고 있다. 지붕은 본사의 경우 맞배지붕이고, 양쪽 날개집은 팔작지붕이다. (안내문, 순천시청, 2012년)

OLYMPUS DIGITAL CAMERA동헌 입구에 세워져 있는 문루인 낙민루. 남원 광한루 등과 함께 호남지방에서는 유명한 문루였으나 한국전쟁 때 불타버려 남아 있지 않았는데 최근에 옛모습을 복원하였다.

OLYMPUS DIGITAL CAMERA낙민루 앞에 남아 있는 오래된 고목.

낙민루
낙민루는 조선 헌종 때 군수 민중헌이 중건하였다고 전해지며 1924년 일부분을 수리하였다고 한다. 남원의 광한루, 순천의 연자루와 더불어 호남의 명루로서 오랜 세월동안 희로애락을 나눈 누각이었으나 6.25전쟁 당시 불타 소실되었던 것을 1986년 기존이 초석 위에 17평 규모로 겹처마 팔작집의 누각형으로 복원하였다. (안내문, 순천시청, 2012년)

OLYMPUS DIGITAL CAMERA낙안군수가 집무를 보던 동헌을 출입하는 문. 양쪽에 행랑채를 두고 있는 형태이다.

OLYMPUS DIGITAL CAMERA안쪽에서 본 모습. 양쪽 행랑채는 창고로 사용된 것으로 보인다.

OLYMPUS DIGITAL CAMERA낙안군수가 집무를 보던 건물인 동헌. 앞면 5칸으로 양쪽에 넓은 대청마루를 두고 양쪽에 앞면 1칸씩 온돌방을 두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가운데 대청마루. 낙안군수가 송사를 다루는 모습을 재현하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군수가 손님을 접견하고 일상적인 업무를 보는 공간인 온돌방.

OLYMPUS DIGITAL CAMERA옆쪽에서 본 동헌

OLYMPUS DIGITAL CAMERA마당에 재현해 놓은 재판을 받는 모습

OLYMPUS DIGITAL CAMERA곤장을 맞는 모습도 재현해 놓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뒷편 읍성 성벽 위에서 내려다 보이는 동헌

동헌(시무당)
이 건물은 조선왕조 때 지방관청으로 감사, 병사, 수사, 수령 등이 지방행정과 송사를 다루던 곳으로동쪽은 수령이 서쪽방은 관리들이 사용하던 곳이다. 좌측에 있는 건물은 내아로서 수령의 안채로 사용하던 건물로 내동헌이라고 한다. 당초 건립 연대나 퇴락한 연대는 기록에 없어 알 수 없으나 문헌을 참고하여 옛 터의 발굴 조사와 전문가의 고증을 거쳐 1990년 복원하였다. (안내문, 순천시청, 2012년)

OLYMPUS DIGITAL CAMERA동헌 옆에 있는 군수의 생활공간인 내아를 출입하는 문.

OLYMPUS DIGITAL CAMERA생활 공간인 내아. 옛모습을 복원해 놓았다.

OLYMPUS DIGITAL CAMERA내아 대청마루.

OLYMPUS DIGITAL CAMERA건물 앞 통로로 사용되었던 툇마루.

OLYMPUS DIGITAL CAMERA온돌방 내부.

OLYMPUS DIGITAL CAMERA내아 뒷마당.

OLYMPUS DIGITAL CAMERA읍치 마을 가운데 위치한 옥사.

OLYMPUS DIGITAL CAMERA옥사 건물.

  1. 안내문, 순천시청, 2012년
  2. 위키백과, 2019년
  3.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2019년

순천 송광사 묘법연화경관세음보살보문품삼현원찬과문(보물 204호)

순천 송광사박물관에서 소장하고 있는 묘법연화경관세음보살보문품삼현원찬과문(보물 204호)이다. 법화경이라고도 불리는 묘법연화경은 천태종의 근본경전으로 화엄종과 함께 우리나라 불교에 큰 영향을 미친 경전이다. 이 책은 법화경 중 제25품인 관세음보살보문품을 송나라 시효가 풀이해서 쓴 것으로 관세음보살에 관한 내용을 담고 있다. 고려시대 의천이 간행한 교장의 하나로 조선초 세조 때 간경도감에서 다시 목판을 새겨 간행한 것이다.

OLYMPUS DIGITAL CAMERA묘법연화경관세음보살보문품삼현원찬과문, 보물 204호, 조선 1461년

묘법연화경은 줄여서 ‘법화경’이라고 부르기도 하며, 부처가 되는 길이 누구에게나 열려있다는 것을 기본사상으로 하고 있다. 이 책은 법화경 28품 중에서 제25품인 관세음보살보문품을 송나라 시효가 알기 쉽게 풀이하여 쓴 책이다. 책 끝에는 고려 숙종 4년(1099)에 만들어졌다는 기록이 있으나 조선 세조 때 간경도감에서 다시 펴낸 것으로 보인다. (안내문, 송광사박물관, 2018년)

<출처>

  1. 안내문, 송광사박물관, 2018년
  2. 국가문화유산포탈, 문화재청, 2018년

 

순천 송광사 대반열반경소(보물 90호)

순천 송광사박물관에서 소장.전시하고 있는 대반열반경소(보물 90호)이다. 대반열반경은 열반을 종교적.철학적으로 이해시키기 위해 만든 경전이며, 이 책은 당나라 법보가 주석을 붙인 것이다. 고려시대 의천에 간행한 교장(敎藏) 중 하나로 조선초 세조 때 간경도감에서 다시 목판을 새겨 간행한 것이다.

OLYMPUS DIGITAL CAMERA대반열반경소, 보물 90호, 조선 1461년

『대반열반경』은 부처님의 열반을 다루고 있는 경전으로, 중생들에게 열반을 종교적.철학적으로 같이 이해시키기 위해 만든 것이다. 고려 숙종 4년(1099)에 대각국사 의천이 각국에서 구해온 불경을 간행한 숙장경을 조선 세조 때 간경도감에서 다시 새긴 것이다. (안내문, 송광사박물관, 2018년)

<출처>

  1. 안내문, 송광사박물관, 2018년
  2. 국가문화유산포탈, 문화재청, 2019년

순천 송광사 대방광불화엄경소 목판(보물 1909호)

순천 송광사 박물관에서 소장하고 있는 대방광불화엄경소 목판(보물 1909호)이다. 조선중기 1634 ~ 1635년에 간행된 것으로 100매 정도가 없어졌으나 2,347매가 큰 손상없이 남아 있다. 팔만대장경을 제외하고는 현존하는 불서 목판 중 그 규모가 가장 방대하다. 대방광불화엄경소는 『화엄경』에 해석을 달아 놓은 교장류의 일종이다. 고려 대각국사 의천의 요청으로 판본이 처음 수입된 이후 여러차례 간행되었다.

OLYMPUS DIGITAL CAMERA순천 송광사 대방광불화엄경소 목판(보물 1909호)

『대방광불화엄경소』는 대승경전의 하나인 『화엄경』을 중국 당나라 징관이 주소하고 여기에 송나라 정원이 주해한 교장류의 일종이다. 일반적으로 『대방광불화엄경』은 줄여서 화엄경이라 통칭되기도 하며, 부처와 중생이 둘이 아니라 하나라는 것을 중심사상으로 하고 있다. (안내문, 송광사박물관, 2018년)

<출처>

  1. 안내문, 송광사박물관, 2018년
  2. 국가문화유산포탈, 문화재청, 2018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