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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궐도안(보물), 경희궁을 그린 그림

서울 고려대학교 박물관에서 소장하고 있는 <서궐도안(보물)>이다. 경희궁의 건축과 주변의 자연경관을 한눈에 실감나게 파악할 수 있도록 부감법(俯瞰法)으로 그렸다. <동궐도(국보)>와는 달리 채색되지 않은 먹만을 사용해서 표현한 밑그림이다. 기록이나 낙관이 없어서 화가와 제작연대는 알 수 없으나 19세기 그려진 것을 추청하고 있다. 경희궁 전각 대부분은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훼손되어 남아 있지 않다. 옛 경희경의 모습을 살펴볼 수 있는 중요한 자료가 되고 있다.

중앙박물관특별전 외규장각과 의궤 20230308_29<서궐도안, 작가미상, 조선 19세기, 종이에 먹, 고려대학교박물관, 보물>

경희궁은 임진왜란 창덕궁이 공식적인 궁궐인 법궁(法宮)으로 바뀌면서 자연스럽게 국왕이 임시로 거처하는 이궁(離宮)으로 자리잡으면서 서궐(西闕)로 불렸다. 법궁으로 세워진 경복궁과는 달리 경희궁은 인왕산 자락 아래 경사진 지형에 맞추어 전각들을 자연스럽게 배치하였다. 정전인 숭전전이 인왕산 자락 아래 서쪽편에 치우쳐 있고, 정문인 흥화문은 종로를 바라보는 방향으로 세워져 있었다. 궐내각사와 동궁전 흥화문 주변에 있었으며, 그 안쪽으로 국왕과 가족들이 거처하는 편전과 내전들이 들어서 있었다. 숭정전 서쪽 인왕산 자락에는 국왕이 도심 풍경을 감상하면서 쉴 수 있도록 영취정과 춘화정 같은 정자들과 정원이 조성되어 있었다.

중앙박물관특별전 외규장각과 의궤 20230308_30<정전인 인 숭전전과 내전이 있는 영역>

법궁과는 달리 정전위주의 공간배치가 아닌 왕실가족들이 거처하는 공간으로서 역할을 했던 것으로 보이며, 궐내각사의 규모 또한 상대적으로 작은 편이다. 궁궐 규모는 동궐보다 작지만, 인왕산 자락에 위치하고 있어 지대가 비교적 높은 곳에 위치하고 있어 도성 안팎의 경치를 조망하기에 좋은 장점이 있었다. 특히, 숙종과 영조, 정조는 서궐에 머물면서 주변 경치를 감상하는 것을 즐겼다고 한다.

중앙박물관특별전 외규장각과 의궤 20230308_31<동쪽편>

경희궁은 국왕이 임시로 거처할 이궁(離宮)으로 세워졌기때문에 주변지형이나 환경에 적절히 맞추어 전각들을 배치하였다. 법궁과는 달리 국왕 일상적으로 머무는 편전과 내전, 왕실가족이 거처하는 전각 위주로 공간이 배치되어 있다. 정전인 숭정전이 서쪽편에 치우쳐 있다.

중앙박물관특별전 외규장각과 의궤 20230308_32<서쪽편>

지금의 경희궁 전경을 그린 초본입니다. 12장의 종이를 이어 붙여서 경희궁의 여러 전각과 주변 언덕의 자연 경관을 담았습니다. 경희궁은 1620년에 건립되었습니다. 당시에는 ‘경덕궁’이라 불렀고, 별칭으로 ‘서궐(西闕)’이라고 했습니다. 1693년에 쇠락한 건물들을 전반적으로 수리하였고, 1829년에 큰 불이 나자 이듬해부터 2년에 걸쳐 주요 전각들을 새로 지었습니다. 두 차례의 공사 내용이 <경덕궁수리소의궤>와 <서궐영건도감의구>로 남아 있습니다. <서궐도안>은 숙종 때의 공사와 순조 때의 공사 사이 기간에 그린 것으로 보입니다. 궁궐 전체 규모와 구체적인 전각의 모습을 잘 묘사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경희궁은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궁궐로서의 면모를 잃어버렸습니다. 그래서 지금은 위의 두 의궤와 이 <서궐도안>을 통해서 경희궁의 원래 모습을 추정할 수 밖에 없습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23년)

<출처>

  1.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23년
  2. ‘보물 서궐도안’,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2023년

안동 광흥사 동종(보물)

안동 광흥사에 전해오는 동종(보물)이다. 1583년에 만들어진 종으로 한국 범종을 전통적인 양식을 잘 따르고 있다. 높이 60cm 정도의 작은 종이지만 매끄러운 곡선과 사실적인 용의 표현 등 조각수법이 우수하다. 세부 문양은 단순하지만 4면에 표현된 보살입상이 돋보인다. 기록된 명문에 따르면 인근 수암사에서 사용하기 위해 조성되었으며 사장과 승장의 협업관계를 확인할 수 있다.

안동 광흥사 동종(보물) 20221116_01<광흥사 동종, 조선 1583년, 안동 광흥사, 보물>

안동 광흥사 동종(보물) 20221116_02<옆면>

안동 광흥사 동종(보물) 20221116_03<뒷면>

안동 광흥사 동종(보물) 20221116_04<옆면>

안동 광흥사 동종(보물) 20221116_11
<보살상과 명문>

안동 광흥사 동종(보물) 20221116_12
<보살상>

안동 광흥사 동종(보물) 20221116_13
<보살상과 명문>

안동 광흥사 동종(보물) 20221116_14
<보살상과 명문>

안동 광흥사 동종(보물) 20221116_07<용뉴와 음통>

안동 광흥사 동종(보물) 20221116_08<뒤에서 본 모습>

안동 광흥사 동종(보물) 20221116_09<연곽과 연뢰>

안동 광흥사 동종(보물) 20221116_10<하대>

광흥사 동종, 조선 1583년, 안동 광흥사, 보물
광흥사 동종은 크기는 작지만 종신의 매끄러운 곡선과 사실적인 용의 표현 등에서 완성도를 보여준다. 종신에 점으로 새겨진 주종기가 남아 있어, 1583년 하가산 수암사에서 사용하기 위해 조성한 것을 알 수 있다. 종의 조성은 주장 김자산과 17세기 조각승인 원오 스님이 함께 참여하였는데, 사장과 승장의 협업을 확인할 수 있는 자료로 중요하다. (안내문, 불교중앙박물관, 2022년)

<출처>

  1. 안내문, 불교중앙박물관, 2022년
  2. ‘보물 광흥사 동종,’,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2023년

정사신 참석 계회도 일괄(보물)

‘정사신 참석 계회도(보물)’는 조선 선조 때 문신 정사신이 관원으로 참여했던 계모임을 그린 6폭의 그림이다. 봉산계회도, 태상계회도, 형조낭관계회도는 16세기 전반 안견파의 편파구도 산수의 전통을 토대로 경치와 사물의 분리가 확대되는 변화를 보여준다. 괴원장방계회도, 예조낭관계회도는 서호계 야외계회도의 특징을 반영하고 있으며 미원계회도는 1570년대 경 대두된 관아묘사 계회도의 새로운 유형을 보여주고 있다. 이 그림들은 1580년대 화풍을 잘 반영하고 있어 학술적, 회화사적 가치가 높다.

’1폭 괴원장방계회도’는 1582년 과거시험 합격 동기 중 승문원 현직 관원들이 1583년 경 강가에서 모임을 그린 그림이다. 야외계회도의 특징을 잘 보여주고 있다.

중앙박물관특별전 어느수집가 자연과 교감 20220824_22
<1폭 괴원장방계회도>

’2폭, 봉산계회도’는 1585년 정사신이 일본 사신을 호송하기 위해 동래에 체류했을 때 부산에서 열린 모임을 그린 그림이다. 경치와 사물이 분리되는 경향을 보여주고 있다.

중앙박물관특별전 어느수집가 자연과 교감 20220824_23
<2폭 봉산계회도>

’3폭 태상계회도’는 1585년 봉상시의 전현직 관원들이 강가에서 모인 모임을 그린 그림이다.

중앙박물관특별전 어느수집가 자연과 교감 20220824_24
<3폭 태상계회도>

’4폭 예조낭관계회도’는 1586년 예조 관원들이 강가에서 모인 모임을 그린 그림이다.

중앙박물관특별전 어느수집가 자연과 교감 20220824_25
<4폭 예조낭관계회도>

’5폭 형조 낭관 계회도’는 1586년 형조 관원들이 강가에서 모인 모임을 그린 그림이다.

중앙박물관특별전 어느수집가 자연과 교감 20220824_26
<5폭 형조 낭관 계회도>

’6폭 미원계회도’는 1587년 대사간 이하 사간원 관원이 경복궁 동쪽 사간원 청사에서 모인 모임을 그린 그림이다. 관아를 묘사한 계회도의 새로운 유형을 보여주는 그림이다.

중앙박물관특별전 어느수집가 자연과 교감 20220824_27
<6폭 미원계회도>

정사신이 참석한 계회도, 작가 모름, 조선 1583~1587년, 비단에 먹, 국립중앙박물관, 보물
16세기 문인 관료 정사신이 처음 벼슬에 나아간 때부터 4년 동안 여섯 번 참석한 계회(契會) 그림을 모은 병풍이다. 조선시대에는 과거에 합격한 동기끼리, 같은 관청에서 일하는 동료끼리 시를 짓고 술을 나누는 모임이 성행했고, 모임 장면을 그림으로 그려 나누어 가졌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22년)

<출처>

  1.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22년
  2. ‘보물 정사신 참석 계회도 일괄’,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2023년

 

삼현수간(보물), 유학자 송익필, 성혼, 이이가 주고 받은 편지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소장하고 있는 삼현수간(三賢手簡, 보물)이다. 조선중기 유학자 송익필, 성혼, 이이 사이에 주고 받은 편지를 후손들이 편집하여 제작한 것이다. 이들은 16세기 성리학을 이끌었던 인물들로 조선후기 주도 세력인 서인들의 정신적인 지주가 되는 인물들이다. 편지에는 성리학의 주요 내용을 토론하고 논의한 내요들도 포함되어있는데 그들의 문집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내용도 있다고 한다. 그들 친필 편지라는 점에서 귀중한 자료가 되고 있으며 그중 율곡 이이의 친필이 남아 있다는 점에서 소중한 자료로 평가받고 있다.

삼현수간(보물) 20220824_01<성혼이 송익필에게 보내는 편지, 삼현수간첩 형권 제20~21면, 1580년>, <송익필이 성혼에게 보내는 편지, 삼현수간첩 형권 제20면, 조선1580년 7월>

성혼이 송익필에게 보내는 편지, 삼현수간첩 형권 제20~21면, 1580년
“오미자를 조금 보냅니다. 집에서 차마시는 용도로 두시기 바랍니다. 삼가 사람을 보내어 안부를 여쭙니다. 잘 계신다는 소식을 들어 멀리 있는 저의 마음이 위로되었으면 합니다. … 육포 세 덩어리를 아울러 보내드립니다. 평상시대로 드십시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22년)

송익필이 성혼에게 보내는 편지, 삼현수간첩 형권 제20면, 조서너 1580년 7월
“제가 지은 <소학집주발>에 대해 가르침을 주셨는데 말과 뜻이 한결 부드러워 좋았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소학>의 발문이고, <집주>에 대한 뜻은 빠져 있는 것 같습니다. 몇 마디 말을 엮어 <집주>를 지은 본래의 뜻과 일치하게끔 해주시기 바랍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22년)

삼현수간(보물) 20220824_02<송익필이 성혼에게 보내는 편지, 삼현수간첩 정권 제40면, 조선 1592년 이후 추정>, <성혼이 송익필에게 보내는 편지, 삼현수간첩 정권 제39면, 조선 1589년>

송익필이 성혼에게 보내는 편지, 삼현수간첩 정권 제40면, 조선 1592년 이후 추정
“소식이 오랫동안 끊겼는데 어느덧 가을이 되었습니다. 간절한 그리움이 쇠약한 늙은이에게 더욱 간절합니다. … (편찬중인) <율곡문집>은 조금도 진척이 없습니다. 길도 제법 가까운데 어찌 형께 물어보지 않았겠습니까? 그런데 초고본이 완성되지 못해 가져가지 못했습니다. “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22년)

성혼이 송익필에게 보내는 편지, 삼현수간첩 정권 제39면, 조선 1589년
“저는 비록 대단치 않은 사람이지만 형과 율곡과 더불어 말석이나마 끼게 되었습니다. 노둔한 성정을 채찍질하여 마음을 한가지로 하였고 주위의 환경이나 욕망에 빠지지도 않았습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22년)

삼현수간(보물) 20220824_03<송익필이 이이에게 보내는 편지, 삼현수간첩 리권 제20면, 조선 1581년 이후>, <성혼이 송익필에게 보내는 편지, 삼현수간첩 리권 제19면, 조선 1582년 가을>

송익필이 이이에게 보내는 편지, 삼현수간첩 리권 제20면, 조선 1581년 이후
“형께서 문형(대제학)에 임명되고 또 앞으로는 재상이 될 것이라고 들었습다. … 후대의 유자를 살펴본다면 가만히 있을 때는 도를 논하고 의리를 지키다가, 한번 움직이면 초심을 곧 잃어버립니다. 감히 천박한 의견을 말합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22년)

성혼이 송익필에게 보내는 편지, 삼현수간첩 리권 제19면, 조선 1582년 가을
“항상 형께서 몸에 질병이 없고 기력이 건강하여 날마다 학자들과 더불어 인의에 침참하는 모습을 생각하노라면, 나도 모르게 부럽고 감탄이 이어집니다. 제가 지금 오는 것은 오로지 형을 만나고자 기대하는 것입니다. 바라건대 왕림해줏서 며칠간 머물러 주시기를 바랍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22년)

삼현 수간첩(三賢 手簡帖), 송취대 편집 1599년, 종이에 먹, 국립중앙도서관, 보물
유학자 송익필, 성혼, 이이가 30년 넘게 주고 받은 편지를 모은 서간첩이다. 송익필의 아들이 가문에 남아 있던 편지들을 첩으로 편집했다. 세 학자는 편지로 성리학을 토론하거나 재상에 임명된 친구에게 국가 경영의 주의 사항을 일러주며 우정을 이어나갔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22년)

<출처>

  1.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22년
  2. ‘보물 삼현수간’,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2023년

 

월인석보 권11(보물)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소장하고 있는 ‘월인석보 권11(보물)’이다. <월인석보>는 <월인천강지곡>과 <석보상절>을 합하여 편찬한 불경언해서이다. 권11, 12는 1459년(세조5)에 간행된 초판본이다. <월인천강지곡>을 본문으로 쓰고 <석보상절> 구절로 해설한 후 작은 글씨로 보충설명을 적었다. 훈민정음 창제 이후 제일 먼저 나온 한글불교대장경으로 훈민정음 연구와 불교학, 서지학 연구에 중요한 자료가 된다.

월인석보(보물) 20220824_02<월인석보 권11, 조선 1459년, 종이에 목판 인쇄, 국립중앙박물관, 보물>

월인석보(보물) 20220824_01<옆에서 본 모습>

월인석보 권11, 조선 1459년, 종이에 목판 인쇄, 국립중앙박물관, 보물
1447년 완성된 <석보상절>과 세종이 1447년 무렵 노래 형식으로 지은 <월인천강지곡>을 합본한 책이다. <월인천강지곡> 노랫말을 본문으로 쓰고 <석보상절> 구절로 이를 해설한 뒤, 작은 글씨로 보충설명을 넣는 체제로 편집했다. 본문과 주석, 보충설명은 각기 글씨의 크기와 서체를 달리하여 위계를 체계적으로 구분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22년)

<출처>

  1.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22년
  2. ‘보물 월인석보 권11’,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2023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