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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암 도갑사 해탈문(국보)

전남 영암군 군서면 도갑리에 있는 도갑사 출입문인 해탈문(국보)이다. 도갑사에서 가장 오래된 건축물로 조선초 성종 때인 1473년에 처음 지어졌다. 건물은 앞면 3칸, 옆문 2칸으로 맞배지붕을 사용하고 하고 있다. 조선초기 목조건축물로 주심포식과 다포식 공포형식이 섞여 있다. 가운데 1칸은 통로로 사용하고 있으며 양쪽에 금강역사와 문수.보현동자상을 모시고 있다. 사찰 출입문 규모가 크거나 웅장하지는 않지만 건축연대가 오래된 것으로 사찰 건축을 대표하는 건축물 중 하나이다.

영암 도갑사 해탈문 국보50호 06-20191025
도갑사 해탈문(국보). 잘 다듬은 화강석으로 기단을 쌓고 그 위에 건물을 올렸다. 규모가 크거나 웅장하지는 않지만 사찰건축을 대표하는 건축물 중 하나이다.

SANYO DIGITAL CAMERA해탈문 들어가는 길

SANYO DIGITAL CAMERA해탈문 입구 돌계단. 궁궐 건축물을 연상시키는 형태의 돌계단이다.

SANYO DIGITAL CAMERA해탈문 가운데 통로와 그 사이로 보이는 사찰 전경. 해탈문을 들어서면 오층석탑과 주불전인 대웅전이 웅장하게 세워져 있다.

SANYO DIGITAL CAMERA금강역사와 문수.보현보살을 모시는 공간. 다른 사찰 출입문과는 달리 공간이 분리되어 있다.

영암 도갑사 해탈문 국보50호 07-20191025
건물 지붕을 받치는 목조 구조물. 주심포 양식과 다포계 양식이 섞여 있는데 전체적으로 주심포양식으로 보인다.

SANYO DIGITAL CAMERA도갑사 경내에서 내려다 보이는 해탈문

도갑사 해탈문, 국보 50호
해탈문은 속세를 벗어나 정토세계로 들어가는 문이다. 이 문을 지나면 속세의 번뇌에서 벗어나 근심없는 부처님의 품안에 들어선다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도갑사는 신라시대의 승려인 도선국사에 의해 창건되고, 고려 말에 크게 중흥되었다고 전한다. 이 해탈문은 1960년 해체하여 수리할 때 발견된 상량문에 따르면 조선 성종4년(1473)에 다시 세운 것이다. 석조 기단 위에 중앙 칸은 통로가 되고, 좌우 한 칸씩에 사천왕상을 안치하게 되어 있으나 현재는 금강역사와 문수.보현동자상이 봉안되어 있다. 기둥은 약하게 배흘림을 한 둥근 기둥이 사용되었고, 전체적인 건축양식은 경북 영주 부석사 조사당과 유사하다. 특이한 점은 기둥 위의 구조가 주심포식과 다포식 양식이 섞인 형태로 우리나라에서 유례가 드문 매우 귀중한 자료이다. (안내문, 영암 도갑사)

<출처>

  1. 안내문, 영암 도갑사
  2. 국가문화유산포탈, 문화재청, 2019년

강진 무위사 극락보전(국보), 조선전기를 대표하는 불교건축

전남 강진군 성전면 월하리에 있는 무위사의 주불전인 극락보전(국보)이다. 조선전기 사찰건축을 대표하는 건축물로 세종 12년(1430)에 지어졌다. 건물은 앞면 3칸, 옆면 3칸 규모로 맞배지붕을 하고 있다. 건물을 받치는 공포가 기둥위에만 있는 고려시대 주심포양식을 하고 있다. 곡선적인 건축재료를 많이 쓰던 고려후기 건축물에 비해 직선재료를 사용하여 간결하면서도 세련된 기법을 보여주고 있다. 내부에는 아미타삼존여래좌상(보물)을 모시고 있으며 아미타삼존벽화(국보), 백의관음도(보물), 내벽사면벽화(보물) 등으로 화려하게 장식하고 있다.

SANYO DIGITAL CAMERA강진 무위사 극락보전(국보). 맞배지붕에 주심포양식을 사용하는 고려후기 불전 건축양식을 계승하고 있으나 간결하면서 직선적인 조선전기 건축의 특징을 잘 보여주고 있다.

SANYO DIGITAL CAMERA무량보전 현판

SANYO DIGITAL CAMERA지붕을 받치는 공포는 기둥 위에만 있는 주심포계 공포를 사용하고 있다. 직선적이며 간결한 느낌을 주고 있다.

SANYO DIGITAL CAMERA옆면에서 본 기둥과 공포. 기둥은 배흘림을 주어 안정된 느낌을 주면서도 직선적이다.

SANYO DIGITAL CAMERA간결한 느낌을 주는 문살.

SANYO DIGITAL CAMERA옆쪽 출입문과 기둥.

 

SANYO DIGITAL CAMERA앞쪽에서 본 모습.

SANYO DIGITAL CAMERA옆쪽에서 본 모습.

SANYO DIGITAL CAMERA뒷면.

강진 무위사 극락보전 23-20190712
내부 천장. 우물천장을 하고 있으며, 불단 위에 용이 그려져 있다.

강진 무위사 극락보전 22-20190712
아미타삼존여래좌상(보물 1312호)와 후불벽화(국보 313호)

강진 무위사 극락보전 21-20190712
백의관음도(보물 1314호)

강진 무위사 극락보전 24-20190712
극락보전 사면벽화(보물 1315호) 중 서쪽 벽면에 그려진 벽화. 극락보전 안쪽에는 삼존불화를 비롯하여 총 29점의 벽화가 그려져 있었다.

SANYO DIGITAL CAMERA무위사 극락보전

무위사 극락보전, 국보 13호, 전남 강진군 성전면 월하리
극락보전은 불교의 이상향인 서방극락정토를 묘사한 건물이다. 이 건물은 조선 세종 12년(1430)에 지어진 우리나라 대표적인 목조건축물의 하나이다. 건물자체가 국보이지만 내부에는 조선 성종 7년(1476)에 그림을 끝맺었다는 화기가 적혀 있는 아미타후불 벽화(보물 제313호)와 백의관음도(보물 제1314호)가 그대로 보존되어 있다. 이 그림은 토벽에 그려진 가장 오래된 후불벽화로 화려하고 섬세했던 고려불화의 전통을 그대로 이어받은 명작이다. 무위사에 현존하는 대부분의 건물은 1555년에 건립된 것이나, 극락보전만은 비교적 이른 시기인 세종 12년(1430)에 건립됐다. 규모는 정면 3칸, 측면 3칸이다. 직선재료를 사용하여 간결하면서 균형을 잘 이루고 있는 조선초기의 건물로 뛰어나다. (안내문, 강진 무위사, 2006년)

<출처>

  1. 안내문, 강진 무위사, 2006년
  2. 국가문화유산포탈, 문화재청, 2019년
  3.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2019년

순천 송광사 하사당(보물), 조선전기 승방의 모습이 남아 있는 건물

전남 순천시 조계산 송광사 요사채 건물인 하사당(보물)이다. 승려들이 머물면서 수행하는 공간으로 승보사찰로 불리는 송광사의 많은 요사채 중 가장 오래된 건물이다. 건물은 앞면 3칸에 맞배지븡을 하고 있는데, 부엌 위에 환기구를 두고 있는 점이 특이하다. 국사당과 함께 조선초부터 있었던 것으로 보이며 당시 승려들이 수행했던 공간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는 건물이다.

OLYMPUS DIGITAL CAMERA수행을 중시했던 승보사찰 송광사의 여러 요사채 건물들 중 가장 오래된 하사당(보물)이다.

순천 송광사 하사당
건물은 앞면 3칸 규모로 맞배지붕을 하고 있다. 부엌 위에 솟을지붕을 하고 있는 환기구를 두고 있는 점이 특이하다.

OLYMPUS DIGITAL CAMERA뒷편에서 본 모습.

SANYO DIGITAL CAMERA부엌 위 솟을지붕을 하고 있는 환기구.

OLYMPUS DIGITAL CAMERA뒷편 언덕에서 내려다 본 하사당과 여러 요사채 건물들. 대웅전 뒷편 언덕에 국사전(국보 54호)을 중심으로 크고 작은 요사채들이 수행공간을 형성하고 있다. 외부인의 출입이 허용되지 않고 있다.

순천 송관사 하사당 내부
하사당 내부. 앞면 2칸규모의 큰 온돌방이다.

<출처>

  1. 국가문화유산포탈, 문화재청, 2018년

합천 해인사 장경판전(국보), 팔만대장경을 보관하기 위해 지은 전각

경남 합천군 가야면 치인리에 있는 해인사 장경판전(藏經板殿, 국보)이다. 고려 팔만대장경(국보)를 비롯한 불경 목판을 보관하고 있는 전각으로 해인사에서도 제일 높은 곳에 위치하고 있다. 이곳에 많은 불경 목판을 보관하고 있어 해인사를 법보사찰이라 불리우며 이로 인해 해인사는 전국 3대 사찰로 손꼽힌다. 장경판전은 해인사에 가장 오래된 건물로 언제 처음 지었는지는 알려져 있지 않다. 현재의 건물은 조선 세조 때 크게 다시 지었으며, 성종 때 다시 중건한 건물이 오늘에 이르고 있다. 해인사 경내 여러 전각들은 여러 차례 화재로 소실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장경판전은 피해를 입지 않고 오늘날까지 팔만대장경을 지켜오고 있다.

건물은 앞면 15칸, 옆면 2칸 크기 건물을 남북에 나란히 배치였으며, 마당 동.서쪽에 앞면 2칸 규모의 작은 서고를 두고 있어 전체적으로 긴 네모형 건물 배치리를 하고 있다. 남쪽에 있는 건물을 ‘수다라장’, 북쪽은 ‘법보전’이라 부른다. 대장경을 보관하기 위해 기능적인 요건만 고려하였으며, 장식적인 요소를 배제하고 있다. 통풍을 위하여 창의 크기를 남쪽과 북쪽을 서로 다르게 하고 각 칸마다 창을 내었다. 내부는 흙바닥을 하고 있는데 흙속에 숯과 횟가루, 소금을 모래와 함께 넣어 습도를 조절하고 있다. 자연적인 조건을 적절히 활용하고 목판을 보관하기 위한 기능적인 면을 강조해 지은 조선 목조 건축물의 걸작 중 하나이다. 대장경판과 함께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같이 등재되어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해인사 주불전 뒷편에 높은 축대를 쌓아 조성한 부지 위에 건물이 세워져 있는 장경판전(국보).

OLYMPUS DIGITAL CAMERA법보공간이라 불리는 장경판전 마당. 고려대장경 목판 등을 보관하고 있는 앞면 15칸의 긴 건물이 나란히 있으며, 마당 양쪽에 앞면 2칸 규모의 서고가 배치되어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해인사 장경판전 출입문. ‘팔만대장경’이라 적힌 현판이 걸려 있는 작은 협문이다. 양쪽에는 기와를 얹은 토담이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출입문 안으로 보이는 장경판전.

OLYMPUS DIGITAL CAMERA앞쪽에 있는 건물인 수다라장(修多羅藏)이다. 앞면 15칸, 옆면 2칸의 우진각지붕을 하고 있는 건물이다. 앞쪽은 윗쪽에 작은 창문, 아래쪽에 큰 창문을 두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안쪽에서 본 수다라장. 뒷편은 앞쪽과 달리 윗쪽에 큰 창문, 아래쪽에 작은 창문을 두고 있다. 이는 00판전으로 들어간 공기가 내부 전체를 순환한 후 밖으로 빠져 나갈 수 있도록 했기 때문이다.

OLYMPUS DIGITAL CAMERA‘수다라장’이라 적힌 현판.

OLYMPUS DIGITAL CAMERA수다라장 출입문과 목판을 보관하고 있는 판전 내부. 바닥이 흙으로 되어 있음을 알 수 있는데, 목판을 보관하기에 좋은 조건인 것으로 보인다.

OLYMPUS DIGITAL CAMERA안쪽에서 본 출입문. 일반적인 출입문과는 달리 과일과 비슷한 모양으로 출입문을 만들었는데 특별한 효과를 얻기 위함이라고 한다.

OLYMPUS DIGITAL CAMERA출입문은 춘분과 추분 부근 오후 3시경에 출입문 기와장과 함께 연꽃무늬 모양의 그림자를 만들어낸다. 해인사 장경판전의 유명한 장면이다.

OLYMPUS DIGITAL CAMERA수다라장 안쪽 출입문. 일반적인 출입문과 같은 사각형을 하고 있다. 윗쪽에도 작은 창문을 두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수다라장 안쪽은 윗쪽에 큰 창문을 달았다.

OLYMPUS DIGITAL CAMERA아래쪽에 있는 작은 창문. 안쪽으로 팔만대장경 목판이 보인다.

OLYMPUS DIGITAL CAMERA지붕을 받치는 공포는 장식성이 거의 없이 기능적인 면만 고려한 것으로 보인다.

OLYMPUS DIGITAL CAMERA북쪽에 있는 법보전. 수다라장과 마찬가지로 앞면 15칸, 옆면 2칸의 우진각건물을 하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법보전 출입문. 내부에 불상이 모셔져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동쪽에 있는 앞면 2칸의 작은 서고인 동사간판전.

OLYMPUS DIGITAL CAMERA맞은편에 있는 서사간판전.

OLYMPUS DIGITAL CAMERA
장경판전 내부에 모셔진 팔만대장경 목판. 흙바닥 위에 목판을 보관하는 서고를 만들어 놓았다. 2006년 경 내부가 일반인에 공개되었을 당시 모습이다.

고려팔만대장경판은 글자를 새긴 경판 판면과 경판 양끝에 각목으로 덧댄 마구리로 이루어져 있다. 마구리를 포함한 경판의 가로 길이는 약 70 cm, 세로 길이(폭) 약 24 cm, 두께는 약 3.25 kg이다. 글자는 경판 양면에 돋을새김(양각) 되었다. 한 면에 글자를 새긴 세로줄 수는 23행이며, 행마다 새긴 글자 수는 14자 정도이다. 해인사의 고려대장경은 석가모니 부처님의 말씀을 담은 인류 최대의 기록물이다. 약 240여년 동안 3차에 걸치 고려대장경 판각은 불교를 꽃피우게 하였고 인쇄문화와 기록문화의 발전에도 크게 공헌하여 아시아 문화 발전의 견인차 역할을 해왔다. 이는 정신문화사적으로도 세계적인 자랑거리다. 이러한 가치가 인정되어 장경판전은 1995년 세계문화유산으로, 고려대장경판은 해인사의 다른 경판과 함께 2007년 6월 세계기록 유산으로 등재되었다. (안내문, 합천 해인사, 2017년)

OLYMPUS DIGITAL CAMERA해인사 장경판전에 모셔진 고려 팔만대장경(국보 32호) 중 일부를 바깥에 전시하고 있다.

국보 제32호, 『반야다라밀다심경』 팔만대장경판 가운데 가장 짧게 260자로 서술된 1판 단권의 경판. 당나라 삼장법사 현장의 한역 반야심경 또는 심경이라고도 하며, 반야사상의 중심인 공(空)사상을 260자로 축약하여 서술한 경전ㅇ로 우리나라의 모든 불교의식에서 독송, 유명한 문구는 본 경판의 3행9번째 글자부터 4행 2번째 글자인 “색즉시공 공즉시생(현상에서는 실체가 없다. 실체가 없으므로 형상일 수 있다.)” (안내문, 합천 해인사, 2017년)

OLYMPUS DIGITAL CAMERA팔만대장경과 함께 장경판전에 모셔진 목판 중 『대방광불화엄경변상도』 주본 (국보 260호)

국보 제260호, 『대방광불화엄경변상도』 주본
대방광불화엄경 80권(주본)을 80면으로 함축한 판화 가운데 16번째 면의 경판, 3종의 『화엄경』 한역본 가운데 『대방광불화엄경』 주본은 당나라 실차난타가 번역. 화엄사상의 근본경전으로 비로나자불을 주불로 하며, 부처님께서 진리를 깨달은 37일동안 설법한 내용. 이 목판은 『화엄경』 80권을 변상도(불경 등의 내용을 집약한 판화나 그림)로 묘사한 그림을 새긴 경판. 제16면은 부처님께서 수미산 정상에 올라 설법하시는 장면으로, 타방세계에서 보살들이 구름처럼 모여들어 부처님의 공덕을 찬타하는 모습이 묘사. (안내문, 합천 해인사, 2017년)

OLYMPUS DIGITAL CAMERA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음을 알려주는 인증서

OLYMPUS DIGITAL CAMERA유네스코 세계 기록유산임을 알려주는 증서,

SANYO DIGITAL CAMERA2010년 합천 해인사 장경판전.

SANYO DIGITAL CAMERA2010년 장경판전 마당.

법보공간
팔만대장경판은 부처님께서 진리의 세계에 대한 차별 없이 말씀하신 법과 그에 대한 주석서를 포함한 일제의 총서(이를 경.율.론 3장이라 한다)를 81,350판에 달하는 목판에 양각으로 새겨 놓은 것이다. 이는 세계에서 가장 포괄적이고, 한역경전 중 가장 오래된 원판본이며 틀린 곳이 없다고 한다. 총 1,514경전, 52,389,400글자, 6,791책으로 되어 있다. 해인사를 ‘법보종찰’이라 부르는 것은 바로 이 대장경판을 봉안하고 있기 때문이다. 법보공간은 대적광전 뒤로 가파른 계단 위에 ‘八萬大藏經’이라는 현판을 단 문 뒤로 위치한 네 건물을 포함한다. 마당 앞쪽의 동서로 긴 건물은 수다라장이고 뒤에 있는 긴 건물은 법보전이다. 이 두 건물에 고려대장경판이 모셔져 있다. 그 양쪽 끝에 있는 작은 건물은 고려각판을 모신 동.서 사간판전이다. 장경판전은 대장경을 보관하는 데 필요한 기본 구조만 갖추고 장식이 적으서 겉으로는 평범해 보인다. 그러나 장경판전은 건물이 자리잡은 위치, 건물 배치와 좌향, 건물 구조와 창호 처리, 판가 구조, 경판 배열 등의 측면에서 동푼이 잘되고 일조량도 적당하도록 하여 목판을 보존하는데 최적의 조건인 항온, 항습의 상태를 유지하게 되어 있다 예컨대 판전 외벽의 앞뒷면에는 크기가 다른 살창이 칸마다 아래위로 나 있어서 건물 뒤쪽에서 내려오는 습기를 억제하고 판전으로 불어온 바람이 건물 안에서 골고루 퍼진 다음 밖으로 나가도록 되어 있다. 대장경판이 지금까지 잘 보존되어 있는 것은 이처럼 기후환경이 자연적으로 조절되도록 설계되어 있기 때문이다. 해인사에는 조선 후기에 일곱 차례 불이 났으나 신기하게도 장경판전에는 불길이 미치지 않았다. (안내문, 합천 해인사, 2017년)

<출처>

  1. 안내문, 합천 해인사, 2017년
  2. 국가문화유산포탈, 문화재청, 2018년
  3.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2018년

성주 성주향교, 명륜당과 대성전이 보물로 지정된 유서깊은 향교

경북 성주군 성주읍 예산리에 있는 성주향교 있다. 조선시대 성주목 관아에서 운영했던 중등교육기관으로 읍치 북쪽 낮은 구릉에 위치하고 있다. 조선 초(태조 7년)에 처음 세워졌는데 세워졌으며 현재 남아 있는 건물들은 조선후기에 다시 지어졌다. 동쪽에 제향공간인 대성전을, 서쪽에 강학공간이 명륜당이 있는 동묘서학의 공간배치를 하고 있는데, 우리나라에서는 보기 드문 경우이다. 명륜당과 대성전은 문화재(보물 1575호)로 지정되어 있다. 전국의 향교 건축물이 보물로 지정된 곳은 나주향교, 전주향교 등이 있으며 그 숫자는 많지 않다.

경북 성주군은 삼국시대 가야연맹체 중 하나인 성산가야가 있었던 곳이다. 조선 초에는 성주목이 설치되었으나, 경상감영인 대구와 가까이 있었던 까닭에 성산현으로 강등되었던 시기도 많았다. 조선시대에는 문인들을 많이 배출하였으며 유교적 색채가 짙은 고장으로 성주 향교는 전국 향교 중에서도 큰 규모를 자랑하고 있다. 가야산 북쪽편에 위치하고 있으며 고대국가가 자리잡을 수 있을 정도로 농업생산력이 풍족했던 것으로 보이며, 지금은 성주참외로 유명하다.

OLYMPUS DIGITAL CAMERA성주향교 전경. 성주목 읍치였던 성주군소재지에서 북동쪽으로 1 km 정도 떨어진 나즈막한 동산에 자리잡고 있다. 동쪽에 제향공간을, 서쪽에 강학공간을 둔 동묘서학의 공간배치를 하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향교 입구에 세워진 하마비.

OLYMPUS DIGITAL CAMERA동쪽편에 위치한 제향공간. 공자와 선현들의 위패를 모신 대성전을 중심으로 그 앞에 동.서무가 배치되어 있다. 내삼문 앞에 담장으로 분리된 작은 마당이 있고 별도의 출입문을 두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 대성전(보물 1575호)은 앞면 3칸에 맞배지붕을 하고 있는 건물로 특이하게 다포계 공포를 사용하고 있다. 유교식 건축물로 간결하면서도 웅장한 느낌을 주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강학공간 출입문인 입덕문. 원래는 문루인 만화루가 있었는데, 임진왜란 때 소실된 후 작은 협문을 출입문으로 두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향교에서 교육기능을 담당하는 강학공간. 강당인 명륜당을 중심으로 동.서재가 배치되었는데, 한국전쟁 때 동.서재가 소실되어 지금은 명륜당만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강학공간의 중심 건물인 명륜당(보물 1575호). 앞면 5칸 규모의 맞배지붕을 하고 있는 큰 건물로 가운데 3칸은 대청마루, 양쪽에 온돌방을 두고 있는 전형적인 강당 건물이다.

OLYMPUS DIGITAL CAMERA명륜당 대청마루.

OLYMPUS DIGITAL CAMERA명륜당 대청마루에서 내려다 보이는 풍경. 성주목 읍치와 주변 풍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OLYMPUS DIGITAL CAMERA강학공간 마당에 심어진 배롱나무. 조선시대 선비들이 좋아했던 나무이다.

OLYMPUS DIGITAL CAMERA마당 앞쪽에 있는 앞면 2칸 규모의 작은 건물. 서적 등을 보관 했던 건물로 보인다.

OLYMPUS DIGITAL CAMERA강학공간과 향교 관리인이 사는 살림집인 수직사를 경계짓고 있는 낮은 돌담.

OLYMPUS DIGITAL CAMERA수직사 건물. 제사를 준비하는 공간으로 보인다.

OLYMPUS DIGITAL CAMERA수직사에 딸린 작은 살림집.

OLYMPUS DIGITAL CAMERA수직사를 출입하는 문. 지금은 성주향교를 출입하는 문으로 사용하고 있다.

<출처>

  1. 안내문, 성주군청, 2011년
  2.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2018년
  3.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2018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