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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천 낙안읍성 주막집

전남 순천시 낙안면 동대리 낙안읍성 남문 안쪽에 위치한 주막집이다. 성문을 들어서면 첫번째로 볼 수 있는 작은 초가집이다. 성벽 안쪽 좁은 공간을 활용하여 지은 집으로 방2개, 점포, 부엌으로 구성된 ‘田’자형 평면을 하고 있다. 읍성을 드나드는 사람들을 상대로 장사를 하기 위해 지은 작은 점포로 18세기에 지어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방 앞에는 툇마루를 두어 오가는 사람들이 잠시 앉아 쉴 수 있도록 하고 있다. TV사극에서 많이 볼 수 있는 주막집을 실제로 볼 수 있는 곳이다.

OLYMPUS DIGITAL CAMERA낙안읍성 남문 안쪽에 위치한 주막집. 좁은 공간을 활용하기 위하여 ‘田’자형 평면을 하고 있다. 안쪽에 방과 부엌이, 바깥쪽에 점포와 방이 1칸씩 있다. 방 앞에는 사람들이 쉬어갈 수 있도록 툇마루를 설치해 놓았다.

OLYMPUS DIGITAL CAMERA헛간채 건물. 돌담을 벽면으로 사용하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성벽 위에서 보이는 남문과 그 안쪽에 있는 주막집.

OLYMPUS DIGITAL CAMERA남문에서 관아로 연결되는 큰 길.

낙안성 최선준 가옥
이 집은 18세기 초에 지은 것으로 여겨지는데, 밭 전(田)자 모양의 특이한 구조로 이루어졌다. 낙안성 안의 유일한 밭 전(田)형 집인데, 땅이 좁아서 택한 평면이라 생각된다. 남동쪽 방향이며 동쪽과 남쪽에 각각 방 1칸이 있다. 안방인 동쪽방에는 그 밖으로 뜰마루 처럼 생긴 마루가 있으며, 사랑방인 남쪽방 밖 또한 안마루와 같은 분위기의 마루가 있다. 남문성벽에 붙여서 가게집으로 계획한 조그만 집이지만 성벽을 이용해서 만든 마당과 생활 시설물들이 짜임새 있게 놓여 있다. 생활상의 요구에 따라 지어지는 우리나라 민가의 아름다움을 간직했다고 할 만 하다. (안내문, 순천시청, 2012년)

  1. 안내문, 순천시청, 2012년
  2. 국가문화유산포탈, 문화재청, 2019년

순천 낙안읍성 대나무 서까래집.

전남 순천시 낙안면 서내리 낙안읍성 내에 있는 대나무 서까래집이다. 낙안읍성 서문 바로 안쪽 큰 길에 있는 집이다. 안채는 부엌 1칸, 방 2칸의 서민들이 살았던 작은 ‘-’자형 초가집이다. 작은방 옆에는 돌담을 쌓아 헛간으로 사용되고 있다. 앞쪽에는 후대에 지은 것으로 보이는 작은 사랑채가 있다. 아마도 관아에 소속되어 일했던 사람이 살았던 가옥으로 보인다.

OLYMPUS DIGITAL CAMERA낙안읍성 대나무 서까래집. 서문 안쪽에 있는 서민들이 살았던 3칸짜리 작은 초가집이다.

순천 낙안읍성 대나무 서까래집 03-20100705마당은 넓은 편이며 대문 옆에 작은 사랑채를 후대에 지은 것으로 보인다. 건물 한쪽편에 돌담을 쌓아 헛간으로 사용하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큰길에서 본 모습.

낙안성 주두열 가옥
이 집의 건립 연대는 19세기 초로 추정된다. 한일자 모양의 3칸 전퇴집(앞에 마루가 있는집)으로 뒷벽은 처마밑까지 쌓아 내부 공간을 크게 쓸 수 있게 하였다. 부엌 1칸, 방이 2칸인 아주 작은 집이다. 집의 방향은 남서쪽이지만 서쪽으로 약간 치우쳐져 있다. 왼쪽에서부터 부엌, 안방, 작은방 순서로 되어 있다. 작은방의 옆쪽으로는 ‘ㄱ’자로 꺾인 돌담을 쌓아 그 사이의 공간을 헛간으로 이용되고 있다. 부엌 앞에는 우물이 설치되어 있고, 넓은 마당의 한 곳을 텃밭으로 쓰고 있어 민가의 고유한 정취를 맛보게 한다. (안내문, 순천시청, 2012년)

 

  1. 안내문, 순천시청, 2012년
  2. 국가문화유산포탈, 문화재청, 2019년

순천 낙안읍성 마루방집

전남 순천시 낙안면 서내리 낙안읍성 안에 있는 마루방집이다. 낙안읍성 내 동.서를 연결하는 큰 길 옆에 있는 초가로 지은 가옥이다. 마당이 비교적 넓은 집으로 안쪽에 ‘-’자형 안채가 자리잡고 있다. 안채는 부엌.안방.마루.작은방이 나란히 배열되어 있으며, 부엌에는 조왕신을 모시던 자리가 남아 있다. 초가집이지만 비교적 큰 규모의 가옥으로 관아에 근무했던 아전 또는 향리가 살았던 것으로 보이는 집이다.

OLYMPUS DIGITAL CAMERA낙안읍성 마루방집. 19세기초에 지어진 것으로 비교적 넉넉한 규모의 초가집이다.

순천 낙안읍성 마루방집 05-20100705

부엌에는 조왕신을 모셨던 곳과 관솔불을 켜던 선반을 설치한 자리가 남아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가옥 뒷마당에 있는 오래된 고목.

OLYMPUS DIGITAL CAMERA출입문과 담장.

OLYMPUS DIGITAL CAMERA이 가옥은 낙안읍성을 동.서로 가로지르는 큰 길에 위치하고 있다.

낙안성 김대자 가옥
19세기 초에 건축된 집으로 추정되며 평면은 중앙에 대청을 둔 한일자 모양의 4칸 전퇴집(앞에 마루가 있는집)이다. 특이한 점은 작은방 앞 처마 밑에 토담을 둘러쳐서 한칸반의 부엌을 만든 것으로 반칸은 후대에 넓혔다. 이것은 중부지방의 오래된 민가에서 가끔 볼 수 있는 방법이다. 부엌 중간쯤에 조왕전을 모시던 자리와 관솔 불을 켜던 선반을 설치한 자리가 있다. 선반은 돌이나 기왓장 깨어진 것을 이용하였다. 장독대의 모양새나 집 앞의 잇돌과 디딤돌의 구조, 그리고 각종 민구와 가정신앙에 관련된 부뚜막 위의 조왕 등 모두 선조들의 생활을 읽을 수 있게 해 준다. (안내문, 순천시청, 2012년)

  1. 안내문, 순천시청, 2012년
  2. 국가문화유산포탈, 문화재청, 2019년

보성 벌교 홍교(보물 304호), 큰 규모의 조선시대 홍예교

전남 보성군 벌교읍 벌교리에 남아 있는 벌교 홍교(보물 304호)이다. 잘다듬은 석재로 아치모양으로 쌓은 홍예교이다 규모는 폭 4 m, 길이 80 m로 현재 남아 있는 홍예교 중 가장 큰 규모이다. 현재는 길이 약 27 m 정도로 높이 3 m의 홍예 3개가 남아 있으며, 나머지 부분은 최근 옛모습을 복원해 놓고 있다. 홍예 밑 천장에는 용머리를 조각한 돌이 돌출되어 있으며, 아래를 향하도록 되어 있다. 조선 후기 영조 때 (1729년) 선암사 승려들이 처음 만들었으며, 여러차례의 보수공사를 거치면서 오늘에 이르고 있다. 인근 조계산 선암사의 승선교(보물 400호)나 여수 흥국사 홍교(보물 563호)와 비슷한 형태이다. 조선후기 산성의 축조에 동원되었던 승병들의 건축기술을 보여주고 있다.

소설 『태백산맥』에는 주인공 김범우가 살던 마을 앞에 놓여진 다리로 묘사되고 있는데, 낙안벌을 지나 남해안으로 흐르는 벌교천을 건너는 다리이다. 아마도 동쪽 순천에서 서쪽 보성을 연결해주는 거의 유일한 육로였던 것으로 보인다. 이 다리가 세워지기 전에는 뗏목을 연결하여 만든 뗏목다리가 있었으며, 이 다리에서 ‘벌교’라는 지명이 유래했다고 한다.

OLYMPUS DIGITAL CAMERA보성 벌교 홍교(보물 304호). 순천과 보성을 연결하는 육상교통로에 세워진 큰 규모의 돌다리이다. 원래 이곳에 뗏목다리가 놓여 있어 이 지역을 벌교라고 불렀다고 한다.

OLYMPUS DIGITAL CAMERA원래 길이 80 m였는데 홍수로 일부가 유실되어 옛 다리중 3개의 홍예만 남아 있다. 홍예 가운데 돌출되어 있는 용머리 조각상을 볼 수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아치는 잘 다듬은 화강석 석재를 이용해서 쌓았는데 그 기술 수준이 높은 편이다.

OLYMPUS DIGITAL CAMERA홍수로 유실된 것을 복원해 놓은 부분. 홍교 건너편으로 소설 『태백산맥』 주인공 김범우가 살았던 곳으로 소개된 마을이 보인다.

OLYMPUS DIGITAL CAMERA다리 상판은 폭 4.5 m로 우마차가 충분이 지나갈 수 있는 규모이다.

OLYMPUS DIGITAL CAMERA동쪽편에서 본 벌교 홍교. 홍수로 유실된 부분을 복원해 놓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낙안들판을 지나 남해안으로 흘러드는 벌교천. 지금은 다리가 많이 있지만 옛날에는 이 돌다리가 벌교천을 건너는 유일한 다리였던 것으로 보인다.

OLYMPUS DIGITAL CAMERA다리 앞 도로변에 세워진 중수비. 벌교 홍교가 수차례의 수해로 무너진 것을 복구했음을 알 수 있다.

보성 벌교 홍교 중수비군
비는 어떤 일의 행적을 후세에 남기기 위해 세운 기념물이다. 보통 쇠나 돌에 글을 새겨 놓아 금석문이라고 한다. 금석문은 지역 역사 연구에 중요한 자료이다. 홍교 앞 도로변에는 모두 5기의 비가 있다. 홍교가 낡고 헐어 다시 고친 내력과 참여자 등을 자세히 기록한 중수비와 단교명비이다. 이곳 홍교는 단교라고도 불렀는데, 큰 물이 나면 다리가 끊어지고 사람의 통해이 끊어진데서 유래되었다. 비문은 대부분 마모가 심하거나 훼손되어 내용 판독이 어려워 아쉬움이 남는다. 1737년, 1844년, 1899년에 건립한 3기의 중수비만이 연대가 밝혀질 뿐이다. 이 비군은 홍교의 역사와 지역의 연혁을 알 수 있는 자료로 가치가 있다. (안내문, 보성군청, 2012년)

벌교 홍교, 보물 304호, 전남 보성군 벌교읍 벌교리
홍교는 벌교천 위에 걸쳐진 돌로 만든 무지개 다리로 전체 길이 27 m, 높이 약 3 m, 폭 4.5 m 내외이다. 이 다리는 조선 영조 5년(1729)에 순천 선암사의 승려인 초안과 습성 두 선사가 만들었다고 전해지고 있다. 불교에서는 다리를 놓아 사람이 편안히 다닐 수 있게 하는 월천공덕을 중요한 보시(은혜를 널리 베품)로 꼽고 있다. 이 홍교는 영조 13년(1737)과, 다시 헌종 10년(1844)에 고친바 있다. 지금의 모습은 1981 ~1984년까지의 4년에 걸쳐 보수하여 원형을 찾은 것이다. 우리나라에 남아 있는 홍교 가운데 가장 규모가 큰 대표적인 돌다리이다. 홍교가 놓이기 이전에는 뗏목다리를 놓아 건너 다녔다고 하는데 벌교라는 이름이 여기에서 유래되었다. (안내문, 보성군청)

  1. 안내문, 보성군청, 2012년
  2. 국가문화유산포탈, 문화재청, 2018년

순천 송광사 약사전(보물 302호), 앞면 1칸 규모 작은 불전

전남 순천시 조계산 송광사에 있는 약사전(보물 302호)이다. 앞면과 옆면이 각 1칸씩으로 현존하는 불전 중 가장 작은 규모로 약사여래를 모시고 있다. 지붕은 팔작지붕이며, 화려한 다포계 공포를 사용하고 있다. 건물 형태 등으로 볼 때 17세기에 지어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대웅전이 있는 경내 한쪽편에 영산전과 함께 나란히 세워져 있는데 독립적인 공간을 형성하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송광사 약사전(보물 302호). 화려한 다포계 공포를 사용하는 등 불전으로서의 격식을 제대로 갖추고 있다.

SANYO DIGITAL CAMERA약사전 현판과 단청으로 장식한 화려한 공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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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사전 모퉁이 귀공포

OLYMPUS DIGITAL CAMERA건물 앞과 옆에 출입문을 두고 있으며, 잘 다듬은 주춧돌 위에 굵은 기둥을 올려놓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약사전 내부.

OLYMPUS DIGITAL CAMERA송광사 경내 한쪽 구석에 나란히 서 있는 약사전(보물302호)과 영산전(보물303호).

송광사 약사전, 보물 302호
약사전은 송광사 경내에서 가장 규모가 작은 법당으로 내부에는 중생들의 모든 질병을 고쳐주는 부처님인 약사여래를 모시고 있다.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여덟 팔(八)자 모양을 한 팔작지붕이다. 건물의 형태로 보아 조선 중기인 17세기 무렵 건립한 건물로 추정된다. (안내문, 송광사, 2018년)

 

<출처>

  1. 안내문, 순천 송광사, 2018년
  2. 국가문화유산포탈, 문화재청, 2018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