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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성 벌교 홍교(보물 304호), 큰 규모의 조선시대 홍예교

전남 보성군 벌교읍 벌교리에 남아 있는 벌교 홍교(보물 304호)이다. 잘다듬은 석재로 아치모양으로 쌓은 홍예교이다 규모는 폭 4 m, 길이 80 m로 현재 남아 있는 홍예교 중 가장 큰 규모이다. 현재는 길이 약 27 m 정도로 높이 3 m의 홍예 3개가 남아 있으며, 나머지 부분은 최근 옛모습을 복원해 놓고 있다. 홍예 밑 천장에는 용머리를 조각한 돌이 돌출되어 있으며, 아래를 향하도록 되어 있다. 조선 후기 영조 때 (1729년) 선암사 승려들이 처음 만들었으며, 여러차례의 보수공사를 거치면서 오늘에 이르고 있다. 인근 조계산 선암사의 승선교(보물 400호)나 여수 흥국사 홍교(보물 563호)와 비슷한 형태이다. 조선후기 산성의 축조에 동원되었던 승병들의 건축기술을 보여주고 있다.

소설 『태백산맥』에는 주인공 김범우가 살던 마을 앞에 놓여진 다리로 묘사되고 있는데, 낙안벌을 지나 남해안으로 흐르는 벌교천을 건너는 다리이다. 아마도 동쪽 순천에서 서쪽 보성을 연결해주는 거의 유일한 육로였던 것으로 보인다. 이 다리가 세워지기 전에는 뗏목을 연결하여 만든 뗏목다리가 있었으며, 이 다리에서 ‘벌교’라는 지명이 유래했다고 한다.

OLYMPUS DIGITAL CAMERA보성 벌교 홍교(보물 304호). 순천과 보성을 연결하는 육상교통로에 세워진 큰 규모의 돌다리이다. 원래 이곳에 뗏목다리가 놓여 있어 이 지역을 벌교라고 불렀다고 한다.

OLYMPUS DIGITAL CAMERA원래 길이 80 m였는데 홍수로 일부가 유실되어 옛 다리중 3개의 홍예만 남아 있다. 홍예 가운데 돌출되어 있는 용머리 조각상을 볼 수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아치는 잘 다듬은 화강석 석재를 이용해서 쌓았는데 그 기술 수준이 높은 편이다.

OLYMPUS DIGITAL CAMERA홍수로 유실된 것을 복원해 놓은 부분. 홍교 건너편으로 소설 『태백산맥』 주인공 김범우가 살았던 곳으로 소개된 마을이 보인다.

OLYMPUS DIGITAL CAMERA다리 상판은 폭 4.5 m로 우마차가 충분이 지나갈 수 있는 규모이다.

OLYMPUS DIGITAL CAMERA동쪽편에서 본 벌교 홍교. 홍수로 유실된 부분을 복원해 놓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낙안들판을 지나 남해안으로 흘러드는 벌교천. 지금은 다리가 많이 있지만 옛날에는 이 돌다리가 벌교천을 건너는 유일한 다리였던 것으로 보인다.

OLYMPUS DIGITAL CAMERA다리 앞 도로변에 세워진 중수비. 벌교 홍교가 수차례의 수해로 무너진 것을 복구했음을 알 수 있다.

보성 벌교 홍교 중수비군
비는 어떤 일의 행적을 후세에 남기기 위해 세운 기념물이다. 보통 쇠나 돌에 글을 새겨 놓아 금석문이라고 한다. 금석문은 지역 역사 연구에 중요한 자료이다. 홍교 앞 도로변에는 모두 5기의 비가 있다. 홍교가 낡고 헐어 다시 고친 내력과 참여자 등을 자세히 기록한 중수비와 단교명비이다. 이곳 홍교는 단교라고도 불렀는데, 큰 물이 나면 다리가 끊어지고 사람의 통해이 끊어진데서 유래되었다. 비문은 대부분 마모가 심하거나 훼손되어 내용 판독이 어려워 아쉬움이 남는다. 1737년, 1844년, 1899년에 건립한 3기의 중수비만이 연대가 밝혀질 뿐이다. 이 비군은 홍교의 역사와 지역의 연혁을 알 수 있는 자료로 가치가 있다. (안내문, 보성군청, 2012년)

벌교 홍교, 보물 304호, 전남 보성군 벌교읍 벌교리
홍교는 벌교천 위에 걸쳐진 돌로 만든 무지개 다리로 전체 길이 27 m, 높이 약 3 m, 폭 4.5 m 내외이다. 이 다리는 조선 영조 5년(1729)에 순천 선암사의 승려인 초안과 습성 두 선사가 만들었다고 전해지고 있다. 불교에서는 다리를 놓아 사람이 편안히 다닐 수 있게 하는 월천공덕을 중요한 보시(은혜를 널리 베품)로 꼽고 있다. 이 홍교는 영조 13년(1737)과, 다시 헌종 10년(1844)에 고친바 있다. 지금의 모습은 1981 ~1984년까지의 4년에 걸쳐 보수하여 원형을 찾은 것이다. 우리나라에 남아 있는 홍교 가운데 가장 규모가 큰 대표적인 돌다리이다. 홍교가 놓이기 이전에는 뗏목다리를 놓아 건너 다녔다고 하는데 벌교라는 이름이 여기에서 유래되었다. (안내문, 보성군청)

  1. 안내문, 보성군청, 2012년
  2. 국가문화유산포탈, 문화재청, 2018년

순천 송광사 약사전(보물 302호), 앞면 1칸 규모 작은 불전

전남 순천시 조계산 송광사에 있는 약사전(보물 302호)이다. 앞면과 옆면이 각 1칸씩으로 현존하는 불전 중 가장 작은 규모로 약사여래를 모시고 있다. 지붕은 팔작지붕이며, 화려한 다포계 공포를 사용하고 있다. 건물 형태 등으로 볼 때 17세기에 지어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대웅전이 있는 경내 한쪽편에 영산전과 함께 나란히 세워져 있는데 독립적인 공간을 형성하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송광사 약사전(보물 302호). 화려한 다포계 공포를 사용하는 등 불전으로서의 격식을 제대로 갖추고 있다.

SANYO DIGITAL CAMERA약사전 현판과 단청으로 장식한 화려한 공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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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사전 모퉁이 귀공포

OLYMPUS DIGITAL CAMERA건물 앞과 옆에 출입문을 두고 있으며, 잘 다듬은 주춧돌 위에 굵은 기둥을 올려놓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약사전 내부.

OLYMPUS DIGITAL CAMERA송광사 경내 한쪽 구석에 나란히 서 있는 약사전(보물302호)과 영산전(보물303호).

송광사 약사전, 보물 302호
약사전은 송광사 경내에서 가장 규모가 작은 법당으로 내부에는 중생들의 모든 질병을 고쳐주는 부처님인 약사여래를 모시고 있다.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여덟 팔(八)자 모양을 한 팔작지붕이다. 건물의 형태로 보아 조선 중기인 17세기 무렵 건립한 건물로 추정된다. (안내문, 송광사, 2018년)

 

<출처>

  1. 안내문, 순천 송광사, 2018년
  2. 국가문화유산포탈, 문화재청, 2018년

순천 송광사 삼청교와 우화각, 빼어난 경치를 자랑하는 곳

전남 순천 조계산 송광사 삼청교와 우화각이다. 대웅전이 있는 경내로 들어가는 돌다리로 송광사에서도 경치가 가장 아름다운 장소로 손꼽힌다. 삼청교는 잘다듬은 돌을 쌓아 홍예를 만든 돌다리로 조선후기 숙종 때 처음 만들어졌다. 규모가 웅장하거나 건축수법이 뛰어나지는 않지만, 사찰 앞을 흐르는 작은 개울과 전각인 임경당, 사자루와 어우러져 하나의 아름다운 풍경을 만들어내고 있다. 삼청교 위에 있는 작은 통로 건물인 우화각이 있는데,  종교적인 의미가 있는 것은 아니고 사찰을 출입하는 사람들의 편의를 위해서 세운 것이다.

송광사는 고려중기 이후에 크게 번창한 사찰로 통일신라 사찰과는 달리 가람배치에 큰 의미를 두는 않고 주위 환경에 어울릴 수 있도록 여러 전각들을 배치하고 있다. 삼청교를 건너자면 바로 출입문인 천왕문이 있고, 그 안쪽에 주불전인 대웅전을 비롯하여 불전과 요사채들이 배치되어 있다. 가람배치에 큰 의미를 두지 않고 수행을 중시하는 승보사찰 송광사의 특징을 잘 보여주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승보사찰 송광사를 대표하는 풍경을 손꼽히는 사찰 앞을 흐르는 개천을 건너는 돌다리인 삼청교와 우화각.

OLYMPUS DIGITAL CAMERA삼청교와 우화각. 능허교라고도 불리는 삼청교는 잘다듬은 돌로 쌓아 홍예를 만든 돌다리로 그 규모가 크지는 않지만 주위 환경들과 조화를 잘 이루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다리위에 세워진 우화각은 통로 역할을 하는 건물로 안쪽 천왕문과 함께 ‘丁’자 형태를 이루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대웅전이 있는 경내로 들어가는 우화각 내부.

OLYMPUS DIGITAL CAMERA우화각 내부에 걸려 있는 현판들.

OLYMPUS DIGITAL CAMERA아래쪽에 있는 요사채 건물인 임경당. 개천쪽으로 돌출된 누마루를 두고 있다. 사찰에서는 잘 볼 수 없는 건물구조로 조선후기 고택에서 볼 수 있는 형태를 하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창청교 위쪽에 있는 강당 건물인 사자루와 그 앞을 흐르는 개천

OLYMPUS DIGITAL CAMERA잘 다듬은 돌로 쌓은 축대와 배수구.

<출처>

  1. 안내문, 순천 송광사, 2018년
  2. 국가문화유산포탈, 문화재청, 2018년

영주 무섬마을 김위진 가옥

경북 영주시 문수면 수도리 무섬마을에 있는 김위진 가옥이다. 19세기 말에 지어진 한옥으로 안채와 사랑채가 ‘ㅁ’자형을 이루고 있는 전형적인 경북 북북지방 양반가옥의 평면배치를 하고 있다. 앞면 5칸, 옆면 5칸반의 비교적 큰 규모의 한옥이다. 사랑채는 앞면에 툇마루를 설치하고 난간이 있는 구한말 누마루 형식을 하고 있는데 안채에 비해 크고 웅장한 느낌을 준다. 당시 유행했던 건축양식을 따르고 있지만, 마굿간이 집 안에 두는 등 전통 가옥의 특징도 남아 있다.

영주 무섬마을은 17세기 중엽이후 반남박씨와 선성김씨가 터를 잡고 살고 있는 집성촌이다. 마을은 삼면이 내성천에 접해 있어 ‘물 위에 떠 있는 섬’이라는 의미로 무섬마을이라 불린다. 마을에는 해우당고택을 비롯하여 규모가 큰 저택을 비롯하여 까치구멍집, 겹집 등 다양한 형태의 한옥들이 남아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영주 무섬마을 김위진 가옥, 구한말 유행했던 한옥 양식이 많이 반영되어 있는 가옥이다. 앞쪽에 사랑채가, 뒷편에 안채가 ‘ㅁ’자를 이루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앞면 3칸 규모의 사랑채. 앞쪽에 툇마루를 두고 난간을 설치하였다. 왼쪽에 1칸 누마루를, 오른쪽에 온돌방 2칸을 두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왼쪽에 안채를 출입하는 중문을 두고 있으며, 건물 옆쪽에 안채 뒷마당을 출입하는 작은 문을 두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중문 안쪽으로 보이는 안마당. 외양간을 안마당이 두는 경북 북부지방 전통양식을 따르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사랑채 옆쪽에 있는 작은 별채.

영주 수도리 김위진 가옥
이 가옥은 정면 5칸, 측면 5칸 반의 목조로 된 기와집으로 홑처마에 ‘ㅁ’자형 건물이다. 건물 전면의 사랑채는 사랑방과 연접된 1칸 사랑마루가 좌측으로 나와 있어 편 날개집을 형성하고 있으며, 사랑채 앞면에는 툇마루를 설치하고 헌함을 둘렀다. 5량가의 소로 수장집이며 팔작지붕을 올려 사랑채로서의 격식을 갖추었다. 건물 안채는 대청을 중심으로 좌측과 우측에 도장방과 안방이 자리하고 있다. 앞방 앞쪽으로는 부엌과 고방이 전면의 마구와 연결되면서 우익사를 형성하였다. 도장방 앞으로 상방과 작은 부엌이 사랑방 뒤의 중방과 연결되면서 좌익사를 이루고 있다. 19세기 말기에 건립한 집이나 마구간이 주택내에 설치된 점, 사랑채에서 안채로 진입하기 위한 문을 사랑부엌 쪽으로 낸 점으로 보았을 때 평면구성에서 옛날 형식을 따르고 있다. (안내문, 영주시청, 2017년)

<출처>

  1. 안내문, 영주시청, 2017년
  2. 국가문화유산포탈, 문화재청, 2018년
  3.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2018년

영주 무섬마을 만죽재고택, 반남 박씨 입향조가 살았던 종택

경북 영주시 문수면 수도리 무섬마을에 있는 만죽재고택이다. 반남 박씨 입향조인 박수가 17세기에 마을로 이사오면서 처음 자리잡은 종택을 마을 중심부 높은 곳에 위치하고 있다.  건물은 안채와 사랑채가 ‘ㅁ’자형을 이루고 있는 전형적인 경북 북부지방 양반가옥의 평면배치를 하고 있는데, 앞쪽에 사랑채는 난간이 있는 2층 누각처럼 지었다. 웅장하지는 않지만 종택답게 간결하면서도 격식을 갖추고 있는 고택이다.

영주 무섬마을은 17세기 중엽이후 반남박씨와 선성김씨가 터를 잡고 살고 있는 집성촌이다. 마을은 삼면이 내성천에 접해 있어 ‘물 위에 떠 있는 섬’이라는 의미로 무섬마을이라 불린다. 마을에는 해우당고택을 비롯하여 규모가 큰 저택을 비롯하여 까치구멍집, 겹집 등 다양한 형태의 한옥들이 남아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영주 무섬마을 반남 박씨 종택인 만죽재고택.

OLYMPUS DIGITAL CAMERA사랑채는 앞면 3칸 규모로 경사진 지형에 기둥을 세워 2층 누각건물처럼 지었다.

OLYMPUS DIGITAL CAMERA 만죽재 현판 원본, 1800년대, 박기양

OLYMPUS DIGITAL CAMERA옆쪽에서 보이는 안채. 사랑채 마당과 담장으로 공간을 분리하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안채를 출입하는 중문. 그 옆에 안채 뒷마당을 출입하는 작은 협문이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안채 뒷마당에 있는 장독대.

OLYMPUS DIGITAL CAMERA뒷마당 안쪽에 있는 초가지붕을 하고 있는 곳간채. 뒷편 언덕에 별채로 보이는 건물이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마을 앞쪽에서 보이는 별채. 마을 풍경이 내려다 보이는 전망좋은 곳에 자리잡고 있는 작은 건물이다.

만죽재고택, 경북 영주시 문수면 수도리
이 건물은 마을의 입향시조인 반남 박씨 휘.수(1641~1729년)가 마을 서편 강건너 머럼에 거주하다가 현종 7년(1666)에 이곳에 들어와 최초로 지은 집이다. 원래 당호는 “섬계초당”이었으나 입향조의 8대손인 승훈이 중수하고 당호를 “만죽재”라 하였다. 무섬마을 중심부 높은 곳에 위치하고 있고, 건물의 평면구성은 안마당을 중심으로 정면에 5칸의 정침을 두고 양쪽에 익사를 달았으며, 전면에 사랑을 두어 전체적으로 ‘ㅁ’자형 평면을 구성하고 있다. 안채와 좌.우익사는 납도리 삼량가로 간결하게 처리하였으나, 사랑채만은 그 격을 높여 전면에 원주를 세우고 오량가에 합각지붕을 얹었다. 이 마을에 산재하고 있는 ‘ㅁ’자형 가족 중 건립 연대가 가장 오래된 집으로 당시의 평면구성을 잘 유지하고 있다. (안내문, 영주시청, 2017년)

<출처>

  1. 안내문, 영주시청, 2017년
  2. 국가문화유산포탈, 문화재청, 2018년
  3.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2018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