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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주 장선리 유적(사적), 삼한시대 마한의 주거유적이 확인된 곳

충남 공주시 탄천면 장선리에 장선리유적지(사적)이다. 이곳에서는 청동기시대 생활유적과 무덤, 마한의 생활유적 및 조선시대 유적이 발굴되었다. 청동기시대 주거지는 언덕 위 평탄한 곳에 위치하고 있는데 가운데 구덩이와 주변의 기둥 구멍이 배치되어 있다. 인근 부여 송국리 유적지와 거의 비슷한 형태이다. 원삼국시대의 주거지는 하나 또는 여러개의 흙을 파서 만든 큰 구덩이 형태를 하고 있는데 이는 중국 사서『삼국지』표현된 마한사람들의 생활모습과 확인할 수 있는 중요한 유적이다. 출토유물로는 송국리형토기와 석기류, 계란형 토기를 비롯한 다양한 생활용 토기 등이 있다.

천안-논산간 고속도로 휴계소를 조성하는 과정에서 확인된 유적이다. 고속도로 탄천휴게소 뒷편 언덕에 위치하고 있으며 탐방로 계단을 통해 유적지를 들어갈 수 있다. 유적지가 위치한 탄천면 일대는 공주시, 부여군, 논산시가 경계를 이루는 곳에 있다. 북쪽과 동쪽으로는 계룡산을 비롯하여 금강 이남으로 비교적 산이 많은 편이며, 남쪽으로는 논산 일대의 넓은 평야가 있다. 산을 등지고 있고 비교적 물이 풍부하여 농사에 적합한 자연조건을 갖추고 있다. 인근 부여 송국리 유적과 비슷한 입지조건을 갖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공주 장선리 유적지(사적). 천안.논산고속도로 휴계소를 조성하는 과정에서 확인된 유적지이다. 이곳에서는 청동기시대 주거지, 무덤, 원삼국시대 마한의 주거지 등이 확인되었다.

OLYMPUS DIGITAL CAMERA탄천휴게소에서 장선리 유적지로 들어가는 입구. 앞쪽에 보이는 언덕에 장선리 유적이 위치하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유적지 입구에 재현해 놓은 청동기시대 주거지. 둥근 형태로 굴을 파서 만든 원형 수혈주거지이다.

OLYMPUS DIGITAL CAMERA휴게소 탐방로를 따라 언덕에 올라서면 유적들과 멀리 계룡산 일대가 보인다.

OLYMPUS DIGITAL CAMERA언덕 아래로 보이는 탄천휴게소.

OLYMPUS DIGITAL CAMERA마한 사람들이 살았던 생활 유적인 토실. 발굴이 끝난 후 흙으로 덮어 놓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장선리 토실유적 공간활용 추정개념도. 마한의 생활 유적중 토실(土室)은 지하에 하나 또는 여러개의 굴을 연결하여 개미굴과 같은 형태를 하고 있다. 중국 역사서인 『삼국지』에 표현된 마한의 주거양식을 확인할 수 있는 부분이다.

사적433호_공주 장선리유적_16-2017_04_18발굴당시의 주거유적 모습. 여러개의 굴이 연결되어 있다. 중국 역사서에 표현된 내용을 확인할 수 있는 중요한 유적지이다.

마한 토실, 집이 마치 무덤과 같다.
<삼국지> 위서 동이전 한조에는 “마한인은 지붕을 풀로 덮은 토실에서 사는데, 가옥의 형태는 무덤과 같고 그 출입구는 위에 있다. 토실 속엣 온 집안 식구가 함께 살기 때문에 어른.아이와 남녀의 분별이 없다”고 기록되어 있다. 계단을 두고 출입해야 할 정도로 외부 지면과 2~3단의 차이를 둔 토실을 만든 이유는 겨울철의 추운 외부 공기를 차단시켜 실내 기온을 일정하게 유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부여박물관, 2012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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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란모양토기, 공주 장선리, 마한, 공주박물관

OLYMPUS DIGITAL CAMERA완(Bowl), 깊은바리, 바리, 공주 장선리, 마한. 부여박물관

OLYMPUS DIGITAL CAMERA가락바퀴, 공주 장선리, 마한,

OLYMPUS DIGITAL CAMERA장선리 유적 전경. 넓은 들판이 내려다 보이는 나즈막한 언덕에 위치하고 있다. 이곳에서 청동기시대 주거지 4기, 원형유구 30여기, 석관묘 1기, 옹관묘 1기, 마한시대 주거지로 추정되는 토실유구 39기, 장방형 주거지 5기, 장방형 수혈유구 15기, 횡혈묘 1기가 확인되었다.

OLYMPUS DIGITAL CAMERA언덕에서 내려다 보이는 모습. 앞쪽으로 넓은 평야가 펼쳐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언덕 높은 곳에 위치한 유적.

OLYMPUS DIGITAL CAMERA다양한 곳에서 확인된 다양한 유적들.

OLYMPUS DIGITAL CAMERA경사진 언덕에 마한사람들의 주거유적인 토실들이 자리잡고 있다.

공주 장선리유적, 사적 433호, 충남 공주시 탄천면 장선리
공주 장선리 유적은 천안-논산간 고속도로 상.하행선 휴게소 부지를 조성하는 중에 확인된 유적이다. 하행선 휴게소부지 가운데 발굴조사가 실시된 약 17,000 ㎡의 면적에서는 청동기시대 생활유적과 분묘유적, 마한의 생활유적 및 조선시대유적이 확인되었다. 청동기시대 주거지는 원형의 수혈주거지로서 인접하고 있는 부여 송국리 유적과 문화맥락을 같이 하며, 주거지와 저장구덩이의 배치관계는 당시의 생활상이 농경과 밀접한 관련이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마한(馬韓)의 생활유적 중 토실(土室)은 지하에 하나 또는 여러 개를 연결하여 개미굴과 같은 형태를 하고 있다. 이는 중국 사서인 『삼국지』의 “거처는 초가에 토실을 만들어 사는데, 그 모양이 마치 무덤 같고 그 문은 윗 부분에 있는데 온 집안 식구가 그 속에 함께 산다.”라는 기록과 일치한다. 그 외에 장방형(長方形)의 수혈주거지와 수십기의 다양한 생활유적이 조사되어 당시 촌락의 규모나 성격, 주거양식 등을 유추할 수 있다. 공주 장선리 토실 유적은 문화사적.고고학적으로 삼국시대 초기 주거문화를 연구하는데 중요한 자료이며, 청동기 시대 유구와 중첩되어 있어 이 지역에서의 주민 및 생활상의 시대적 변화를 잘 보여주는 유적이다. (안내문, 문화재청, 2017년)

<출처>

  1.  문화재청
  2.  두산백과
  3.  위키백과
  4.  한국민족문화대백과

[중앙박물관 중앙아시아실] 주거지 유적과 무덤 출토 유물

실크로드(Silk Road)는 중국 서안에서 출발하여 중앙아시아 사막과 초원지대를 지나 페르시아를 거쳐 로마의 비잔티움으로 연결되는 길이다. 고대 이래로 동.서 교역로이자 문화교류의 통로였다. 실크로드 상에 존재했던 정치와 문화의 중심지였던 니야, 누란, 호탄, 투르판 등지에서는 많은 주거지와 무덤이 발견되고 있으며, 그곳에서는 당시의 생활모습을 보여주는 많은 유물들이 출토되고 있다. 이곳에서 출토된 유물 중에는 중앙아시아 사막의 건조한 기후 때문에 종이, 나무, 직물과 같은 유물들이 오랜 세월에도 변하지 않고 온전한 남아 있는 경우가 많다.

중앙박물관이 소상.전시하고 있는 투르판 지역 유물 중에는 오타니 컬렉션이라 불리는 유물들이 많다고 한다. 이 유물들은 20세기초 일본 교토의 니시혼간지 주지승인 오타니 고즈이가 총3차에 걸친 중앙아시아 원정을 통해 구입하거나 약탈한 유물들로, 일제강점기에 일본 재벌이 데라우치가 총독이었던 시절 조선총독부에 기증하여 오늘날에 이르고 있다. 오타니가 수집한 5천여점의 유물중 1/3이 중앙박물관에, 1/3은 일본에, 1/3은 중국 뤼순에 있다고 한다. 오타니는 혜초가 신라의 승려였다는 것을 증명한 사람이기도 하다.

OLYMPUS DIGITAL CAMERA말을 탄 여인, 騎馬女人像, 투루판, 7~8세기

중앙아시아와 실크로드
아시아 대륙의 중심에 위치한 중앙아시아는 일반적으로 중국의 신장 위구르 자치구와 옛 ‘소련령 중앙아시아’에 속하는 카자흐스탄, 우즈베키스탄, 키르기스스탄, 타지키스탄, 투르크메니스탄을 가리킨다. 우리른 이 지역을 ‘투르키스탄(투르크인의 나라)’ 또는 ‘서역’이라고 부란다. 중앙아시아의 역사와 문화에서 유라시아를 연결하는 여러갈래의 교역로인 ‘실크로드’가 차지하는 비중은 매우 크다. 이 지역의 주민들은 동서교역로를 장악하려는 주변 여러 세력의 침입과 지배를 지속적으로 받았다. 그리고 교역로는 다양한 인종, 언어, 문화가 이 지역으로 유입되는 중요한 통로로 작용했다. 그 결과 이 지역의 문화는 고대 지중해, 인도, 서아시아, 중국 문화의 요소가 복합된 독특한 모습을 띤다. 국립중앙박물관의 중앙아시아 소장품은 대부분 현재의 신장 위구르 자치구에 해당하는 동투르키스탄 지역에서 발견된 것이다. 이 지역은 텐산산맥 이북의 초원지대에서 전개된 유목세계와 그 남쪽으 타클라마칸 사막을 중심으로 한 오아시스 세계로 구성되어 있다. 타클라마칸 사막의 남단과 북단을 지나는 서역남도와 서역북도를 통해 기원전 2세기 무렵부터 인도, 서아시아, 중국간의 교류가 본격화 되었다. 그 길목에는 여러 오아시스 도시가 세워져 상업과 종교의 중심지로 번영했다. <출처:중앙박물관>

OLYMPUS DIGITAL CAMERA중앙아시아와 실크로드. 지중해 동안 무역항 아티오크에서 당나라 수도 장안까지 이어지는 긴 교역로이다. 장안에서 신라의 수도 경주까지 교역로는 실제적으로 연장되며, 한반도를 거쳐 유라시아대륙 동쪽끝 일본열도까지 이어진다.

당나라 현장법사의 서역순례 이야기를 전해주는 소설 ‘서유기’에 등장하는 많은 왕국들과 기나긴 여정에 등장하는 고장들은 실제 실크로드상에 존재했던 곳들이다. 그 중 가장 많이 알려진 곳으로는 뜨거운 화염산과 고창국이 등장하는 투루판이 있다. 한나라가 천산산맥 북쪽 유목민족 흉노를 제압하기 위해 군사기지를 건설하고 둔전을 경영한 이래로 한족이 지역토착민과 함께 거주하면서 당나라때까지 실크로드에서 중요한 역학을 했다. 또한 남북조시대에 불교가 동아시아에 전파되는 중요한 경로이기도 하다. 투루판에서 서쪽으로 떨어진 타림분지 남부에 위치한 호탄은 옥의 생산지로 고대 월지국이 있었던 곳이다. 고대 이래로 동.서 교역에 중요한 역할을 한 지역으로 대승불교의 동아시아 전파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

주거지 유적과 무덤 출토품
극도로 건조한 기후 때문에 중앙아시아에서는 종이, 나무, 직물과 같은 유기질의 유물이 천년의 세월을 지나고도 온전한 모습으로 보존되어 있다. 이슬람화되기 이전 이 지역의 정치와 문화의 중심지였던 니야, 누란, 호탄, 투르판 등지에서는 많은 주거지와 무덤이 발견되었다. 여기에서는 문서, 가구, 직물과 같이 일상생활에 사용된 물건을 비롯하여, 죽은자를 위해 특별히 제작된 그릇, 옷, 인형, 그림 등이 출토되었다. 이를 통해 당시 사용된 여러 문자와 언어, 다양한 풍습, 그리고 안락하고 풍요로운 내세에 대한 바람을 찾아볼 수 있다. 무덤에서는 때때로 미라가 된 시신이 발견되기도 한다. <출처:중앙박물관>

SANYO DIGITAL CAMERA투루판 분지. 천산산맥 북쪽 초원지대가 끝나고 남쪽으로 드넓고 타클라마칸 사막이 시작되는 지점에 위치하고 있다. 천산산맥에서 관개수로를 통해 물을 끌여들여 농업을 하고 있다. 고대 이래로 중국이 흉노를 비롯한 초원지대의 유목민들을 견제하기 위해서 요새를 중심으로 한족이 들어와 살던 지역이다. 지금은 위그루인이 주민의 다수를 이루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로프노르 지역 소하(小河) 무덤과 유물(Xiaohe Tomb in Lop Nor). 중앙아시아 사막은 메마른 건조기후 덕분에 사막에서 수천년이 지난 직물, 가구, 문서등이 다량으로 출토되어 당시의 생활모습을 알 수 있게 해준다.

OLYMPUS DIGITAL CAMERA니야의 유적(Ancient site in Niya)

OLYMPUS DIGITAL CAMERA토기받침, 土器臺, 호탄(和田) 요트칸(約特干), 2~4세기, 그릇을 구울 때 사용한 것으로 보이는 그릇 받침이다.

OLYMPUS DIGITAL CAMERA향로, 香爐, 차르크릭, 3~4세기

OLYMPUS DIGITAL CAMERA작은 항아리, 小壺, 호탄

OLYMPUS DIGITAL CAMERA인물상, 人物像, 요트칸, 3~5세기,

소형 인물상의 단편에 해당한다. 이 중에 얼굴이 하트 모양인 여인상의 경우 완형으로 남아 있는 예가 있는데, 이는 화려한 머리 장식을 하고, 긴 옷을 입고, 아기를 안고 있는 모습을 하고 있다. 여기 전시된 예에서도 높이 올린 머리모양과 동그란 머리장식이 보인다. <출처:중앙박물관>

OLYMPUS DIGITAL CAMERA테라코타 동물상, 動物像, 요트칸, 3~5세기,

OLYMPUS DIGITAL CAMERA테라코타 동물상, 動物像, 요트칸, 3~5세기,

OLYMPUS DIGITAL CAMERA테라코타 동물상, 動物像, 요트칸, 3~5세기,

호탄 지역에서 발견된 테라코타 조각은 세계 여러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특정 유적의 발굴품이 아닌 경우가 많아 그 성격을 파악하기 어렵다. 장난감이었거나 부적과 같은 기능을 했을 것으로 여겨진다. 다양한 얼굴표정과 자세에 중점을 두고 만들어졌다. 원숭이가 자주 등장하는 점이 특징이다. <출처:중앙박물관>

OLYMPUS DIGITAL CAMERA사람과 동물의 얼굴조각, 人面.獸面彫刻, 요트칸, 3~5세기.

여기 전시된 다양한 인물, 동물의 얼굴이 묘사된 조각은 뒷면이 평평하여 용기에 부착했던 것으로 여겨진다. 형태는 단순하지만, 공통적으로 눈을 크게 뜨고 있으며, 얼굴표정에 생동감이 넘치는 점이 특징이다. <출처:중앙박물관>

OLYMPUS DIGITAL CAMERA청동거울, 銅鏡, 투루판, 7~8세기,

거울 뒷면에는 나무, 산, 냇가를 배경으로 두 인물이 등장한다. 왼쪽 인물은 물가에 앉아 있으며, 오른쪽 인물은 소를 끌어 가고 있다. 이는 허유세이(許由洗耳)의 고사를 표현한 것으로 여겨진다. 왼쪽 인물이 왕위에 오를 것을 청하는 것을 듣고 귀를 씻었다는 허유이며, 오른쪽은 그 물을 소에게 먹일 수 없어 위쪽 개울로 소를 끌고 가는 소부(巢父)이다. <출처:중앙박물관>

OLYMPUS DIGITAL CAMERA나무접시, 木器, 쿠차(庫車) 쿰트라(庫木吐拉) 석굴사원, 7~8세기,

표면이 검게 칠하여져 있고 바닥에는 ‘금사사(金沙寺)’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다. 금사사는 쿰트라에서 살았던 당나라 사람이 운영했던 사원으로 여겨진다. 쿰트라의 GK제7굴에도 이를 언급한 글씨가 남아 있다. <출처: 중앙박물관>

OLYMPUS DIGITAL CAMERA도구, 木製道具, 투루판(吐魯番), 6~7세기

OLYMPUS DIGITAL CAMERA가면, 木製假面, 쿠차 수바시(蘇巴什), 6~7세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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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인형, 木製人形, 투루판 시르캅(期瑞克晋), 10~12세기

OLYMPUS DIGITAL CAMERA청동으로 만든 도장, 靑銅製 印章, 쿠차 쿰트라, 1~4세기

봉니(封泥)에 문양을 찍는 데 사용한 도장이다. 봉니는 고대 지중해 지역에서 유래한 것으로, 문서를 봉한 부분에 진흙을 붙이고, 그 위에 문양을 찍은 것이다. 중앙아시에서는 나무 편지를 봉할 때 사용한 봉니가 자주 발견된다. 여기에는 고대 그리시, 로마 신을 비롯하여, 페르시아 문양, 중국의 한자와 이를 변형한 문양 등이 보인다 <출처: 중앙박물관>

OLYMPUS DIGITAL CAMERA등잔, 燈盞, 호탄,

청동으로 만든 등잔으로, 서아시아 이슬람 문화군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유형이다. 벽면에 걸 수 있게 만들었느데, 걸개의 한쪽은 떨어진 상태이다. <출처: 중앙박물관>

OLYMPUS DIGITAL CAMERA주전자, 注子, 호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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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잡이 달린 항아리, 雙耳壺, 투루판, 3~4세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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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식이 있는 항아리, 壺, 호탄, 3~5세기,

그리스의 암포라(amphora)를 연상시키는 기형을 지닌 항아리이다. 페르시아에서 유래한 길상문인 연주문 형태를 따로 만들어 표면에 부착했다. 이외에도 선이나 점으로 이루어진 장식을 새겨 넣었다. 입체적인 장식이 많은 점을 고려할 때, 실용적인 용기보다는 부장을 위해 만들어졌을 가능성이 큭다. <출처:중앙박물관>

OLYMPUS DIGITAL CAMERA가면, 假面, 누란(樓蘭), 청동기시대,

OLYMPUS DIGITAL CAMERA바구니, 織造容器, 누란(樓蘭), 청동기시대,

‘떠도는 호수’라고 알려진 로프노 일대에 해당하는 누란지역의 묘에서 발견된 유물이다. 바구니의 경우 풀의 뿌리로 짜서 만들었으며, 표면에는 계단 모양의 무늬가 있다. 이러한 용기는 식량 등을 넣고 천으로 입구를 덮은 후 시신의 머리맡 등에 안치되었다. 가면의 경우 나문에 가죽을 씌워 만든 것으로 눈과 치아에는 뼈를 부착하였다. 눈을 부릎뜨고 있고, 치아를 모두 드러낸 다소 위협적인 표정으로 보아, 무덤을 지키기 위하여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출처:중앙박물관>

OLYMPUS DIGITAL CAMERA삼족벼루, 三足硯, 차르크릭(若羌),3~4세기, 붓과 붓통, 筆.筆筒, 누란, 7~8세기, 당대의 유물로 추정된다. 허리에 찰 수 있도록 고안된 것으로 보아 휴대용인 것을 알 수 있다.

<출처>
1. 중앙박물관
2. 두산백과
3. 위키백과
4. 한국민족문화대백과

 

 

 

대전 둔산 선사유적지

대전시 서구 둔산동에 있는 선사유적지이다.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구석기.신석기.청동기시대 유적이 한곳에서 발굴된 곳이라 한다. 구석기시대 유적에서는 몸돌, 망치돌 등의 석기와 석기를 만들 때 나온 부스러기 등이 발견되었다. 신석기시대 유적은 13기의 집터가 조사되었는데, 빗살무늬토기 등이 출토되었다. 청동기시대 유적에서는 3기의 집터가 조사되었는데 팽이모양 민무늬토기 등이 출토되었다.

둔산선사유적지는 90년대 초 대전에 정부청사를 옮기기 위한 부지조성과정에서 발굴.조사되었다. 이 지역은 서쪽과 북쪽으로 갑천이, 동쪽으로 유등천이 흐르고 있어 천연해자 역할을 하고 있으며, 주위에는 낮은 구릉과 넓은 농토가 펼쳐져 있어 비교적 이른 시기부터 사람이 정착해 살아왔던 지역이다. 둔산선사유적지 외 주변의 다른 곳에서도 선사시대 유물들이 출토되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대전 둔산동 선사유적지. 90년대 둔산 지역에 택지를 조성하는 과정에서 발굴.조사가 이루어진 지역이다. 같은 지역에서 구석기.신석기.청동기시대 유적이 발굴되었다. 대전정부종합청사 건물이 보인다.

신석기시대 움집터
북쪽 경사면에 자리하고 있는 점이 매우 특이하다. 예전에는 갑천이 유적지 근방까지 범람했는데, 갑천유역에 생활근거를 두고 고기잡이와 초보적인 농경으로 생계를 이어갔다. 이 주민들은 15~20여명의 규모로 생산과 소비를 공동으로 영위한 친족공동체로 추정된다. <출처: 대전시청>

OLYMPUS DIGITAL CAMERA신석기시대 움집터. 이곳에서는 13기의 집터가 조사되었으며, 빗살무늬토기.보습.갈돌.어망추 등이 출토되었다.

신석기시대 움집
규모가 작고 평면이 우묵하여 사람이 살기에 불편하다. 화덕이 없는 점으로 보아 계절에 따라 이동했던 주민들의 집자리로 추정된다. 주변에 불탄 돌이 나와 화덕을 바깥에 만들었던 듯 하다. 바리형 토기가 주류를 이루고, 무늬로 보면 한강유역과 금강유역 빗살무늬토기 요소가 많이 보인다. <출처: 대전시청>

OLYMPUS DIGITAL CAMERA유적지에 재현해 놓은 신석기시대 움집.

청동기 집터 유적
이곳은 청동기시대 3기의 집터 유적으로, 1991년 둔산지구를 개발하면서 원래 발견된 집터자리에서 북쪽으로 약 15m 지점으로 옮겨 놓은 유적입니다. 이들 유적에서는 팽이형민무늬토기편, 가락바퀴, 돌도끼, 돌화살촉 등의 유물이 출토되었습니다. 출토된 유물은 공주박물관에 소장되어 있습니다. <출처: 대전시청>

OLYMPUS DIGITAL CAMERA청동기시대 집터유적.

OLYMPUS DIGITAL CAMERA청동기시대 집터 단면도.

청동기시대 움집터, 1호집자리
언덕 꼭대기에 동서방향으로 길게 자리하고 있었다. 동쪽에 긴 돌로 덧대어 만든 화덕 2개가 있고 서쪽에 저장용 토기를 놓아, 집 가운데에 커다란 공간을 두었다. 기둥은 양쪽 가장자리에 세웠다. 겹아라기의 토기와 목기형 토기, 화살촉 파편, 돌도끼 등이 나왔다. <출처: 대전시청>

OLYMPUS DIGITAL CAMERA청동기시대 1호집터.

청동기시대 움집터, 2호 집자리
방형에 가까운 평면으로, 긴 병 양쪽을 따라 5개의 기둥구멍과 가운데 기둥을 받쳤던 초석이 2줄에 3개씩 확인되었다. 화덕이 없고, 저장용 토기를 북쪽 벽쪽에 두었다. 가락동식 토기와 화살촉, 돌칼 편 등이 나왔다. <출처: 대전시청>

OLYMPUS DIGITAL CAMERA청동기시대 2호 집터.

OLYMPUS DIGITAL CAMERA3호 집터는 평면도를 볼 수 있게 구성하였다.

OLYMPUS DIGITAL CAMERA3호집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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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동기시대 집터에서 출토된 팽이모양 토기.

1.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2. 두산백과
3. 문화재청

단양 금굴, 구석기 유물이 발견된 선사 유적

단양 금굴유적은 단양읍 도담리 남한강가 해발 135m에 위치한 석회암 동굴이다. 이곳은 한반도에서 가장 오래된 구석기 유적이 발견된 곳이다. 단양팔경 중 가장 잘 알려진 도담삼봉과 충주댐 건설 이후 새로 건설된 단양읍 시가지와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하고 있다. 동굴의 규모가 크고 외부에 노출되어 있기때문에 멀리서도 잘 보인다. 도심에서 가깝기는 하지만 도로가 연결되지 않고, 주위에 마을이 없어 접근하기 어려운 곳이었으나 최근에 건설중인 다리를 통해 남한강을 건너면 쉽게 접근할 수 있어 단양지역을 여행할 때 한번 찾아가 볼 만한 곳이다.

금굴유적은 1980년대 충주댐 건설을 위한 문화유적 발굴조사로 1983~85년까지 3차에 걸쳐 발굴.조사되었다. 발굴조사 결과 아래쪽 5개층이 구석기 문화층이고 빗살무늬토기층과 민무늬토기층이 확인되었다. 유적에서는 다양한 석기와 함께 코뿔소, 원숭이, 사자, 하이에나, 사슴 등 다양한 동물들의 벼까 발견되어 전기구석기(약70만년전)부터 청동기(3천년전)까지 각 시기의 자연환경과 선사문화의 발달과정을 보여주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한반도에서 가장 오래된 구석기 유물이 발견된 단양 금굴. 남한강변에 위치한 석해암 동굴로 길이 80m, 너비 6m, 높이 9m 정도 규모이다. 

OLYMPUS DIGITAL CAMERA단양 금굴이 있는 남한강변. 단양읍 시내에서 멀지 않은 곳이지만 근처에 마을이 없고 단양시내와 도로가 연결되지 않아 접근이 쉽지 않은 곳이었다.

OLYMPUS DIGITAL CAMERA금굴 북쪽 남한강. 단양팔경 중 첫번째로 꼽히는 도담삼봉으로 도로가 연결되어 있다. 금굴이 있는 도담리마을은 단종이 유배되었던 영월 청령포나 하회마을처럼 뒷쪽은 높은 산이 있고, 삼면이 남한강과 접행있는 곳이다. 최근에 다리가 건설되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금굴이 있는 남한강변으로 건너가는 다리. 아직 완공되지 않았지만 편의를 위해서 개방하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다리 아래쪽 강변 절벽 아래에 금굴이 위치하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단양 금굴 주변

OLYMPUS DIGITAL CAMERA단양 금굴 입구

OLYMPUS DIGITAL CAMERA금굴 내부. 길이 80m의 자연동굴로 구석기시대 이전부터 존재하고 있었다고 한다. 이곳에는 석기 등의 도구들과 함께 약40여 종의 동물뼈들이 출토되었다.

도담 금굴유적의 출토유물
금굴유적의 구석기문화층에서는 석기, 뼈연모뿐만 아니라 약40종의 짐승뼈화석이 출토되어 당시의 자연환경 연구에 중요한 자료가 된다. 전기구석기 문화층에서는 쌍코뿔이, 짧은턱하이에나, 사자 등의 뼈화석이 출토되어 비교적 따뜻한 기후에 형성된 층임을 알 수 있다. 가장 두꺼운 중기구석기 문화층에서는 37종의 다양한 동물뼈 화석이 출토되었는데, 쌍코뿔이, 짧은꼬리원숭이, 사자, 하이에나 등 온대성 짐승과 동굴곰, 이리, 늑대 등 한대성 짐승이 발견되어 기후의 변화를 짐작할 수 있다. 후기구석기 문화층에서는 사슴과 같은 온대성 짐승들의 화석이 많이 발견되었다. 석기를 보면 금굴에서 가장 오랫동안 사람이 살았던 시기인 중기구석기층을 포함한 하층에서 찍개, 주먹도끼, 주먹찌르개, 사냥돌 등 제작수법이 거칠고 큰 것이 많았으며 상층(후기구석기층)으로 갈수록 돌날, 긁개, 톱니날 등 정교하게 제작된 소형석기가 많이 출토되었다. <출처:수양개선사유물전시관>

OLYMPUS DIGITAL CAMERA주먹도끼, 격지, 망치돌, 찍개

OLYMPUS DIGITAL CAMERA뼈연모와 동물뼈(사슴, 토끼, 새)

OLYMPUS DIGITAL CAMERA갈돌

OLYMPUS DIGITAL CAMERA금굴 남쪽편으로 단양읍 시가지가 보인다.

OLYMPUS DIGITAL CAMERA남한강을 건너는 다리.

SANYO DIGITAL CAMERA단양팔경 중 첫번째로 꼽히는 도담삼봉. 뒷편으로 금굴이 있는 도담리 마을이 보인다.

단양 금굴유적, 충북 단양군 단양읍 도담리
금굴은 구석기시대(약 70만년전)부터 청동기시대(약4천년전)까지의 선사시대 문화가 남아 있는 석회암 동굴 유적으로, 연세대학교에서 1983~1985년 발굴.조사하였다. 전기 구석기문화층(약70만년 전)에서는 찍개, 주먹도끼, 사냥돌, 주먹대패 등 형태가 단순한 큰 석기들이 출토되었다. 중기 구석기문화층(약10만년 전)에서는 큰 석기가 줄고 밀개, 홈날, 톱날 등 작은 격지석기가 늘어난 양상을 보인다. 또한 이 시기의 문화층에서 코뿔소, 원숭이, 사자, 하이에나 등 짐승화석 37종이 출토되었다. 후기 구석기문화층(2만5천년 전)에서는 돌날떼기수법으로 만든 밀개, 새기개 등 후기 구석기시대의 특징을 잘 나타내주는 짐승화석 14종과 석기가 출토되었다. 또한 구석기에서 신석기로 옮겨 가는 중석기 문화(1만1천년전)가 확인되어 학계의 주목을 받았다. 신석기문화층에서는 불을 땐 자리와 빗살무늬토기, 바늘, 송곳 등과 남해안의 투박조개로 만든 치레걸이(장신구) 등은 남해안 지역과의 교류가 있었던 것을 보여준다. 청동기문화층(약4천년 전)에서는 짐승화석 7종, 민무늬토기와 간석기가 출토되었다. 금굴유적은 선사시대의 각 시기별 문화가 잘 발달되어 있어, 우리나라 선사문화연구를 위한 대표적인 유적으로 평가된다. <출처:문화재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