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g Archives: 중국

[중앙박물관 세계문화관] 반송재, 청나라 말 학자의 서재(재현)

중앙박물관 세계문화관의 ‘반송재’라는 전시공간은 청나라말 중국 학자의 서재와 내실을 재현해 놓은 곳이다. 당시 유행했던 고증학이 반영된 서재의 모습으로 수집한 골동품을 비롯하여 그림 등으로 방을 장식하고 있다. 당시 한국 선비들의 사랑방을 재현해 놓은 모습과 비교해 보면 좋은 경험이 될 수 있다.

중앙박물관 세계관 반송재 20220215_01<세계문화관 반송재>

중앙박물관 세계관 반송재 20220215_03<책상과 문방구>

중앙박물관 세계관 반송재 20220215_02<수집한 골동품으로 장식한 벽면>

중앙박물관 세계관 반송재 20220215_04<산수화, 이사달, 1610년, 종이에 먹>

중앙박물관 세계관 반송재 20220215_05<경태람동향로, 귀갑문/기린/보수문, 청>

중앙박물관 세계관 반송재 20220215_21
<1. 금동박산향훈로, 서한, 2. 동박산향훈로(소형), 한 1~3세기,>

중앙박물관 세계관 반송재 20220215_06<3. 박산훈향로, 남조 6세기, 강서홍주요,>

중앙박물관 세계관 반송재 20220215_07
<4. 청자향훈로, 서진 월주요, 3세기>

중앙박물관 세계관 반송재 20220215_08
<5. 교태유도삼족정향로, 당 8세기초>

중앙박물관 세계관 반송재 20220215_09
<6. 소형향로명기(5점), 원대 용천요, 13~14세기>

중앙박물관 세계관 반송재 20220215_10<7. 백자삼족향로, 송 복건건녕요, 12~13세기, 8. 석조향동자, 명 15~16세기>

중앙박물관 세계관 반송재 20220215_11
<9. 청화백자향로, 원말명초 14~15세기, 10. 남유묘금어문향로, 명초 14~15세기, 11. 삼족향로, 금-원 13~14세기, 균요계학벽요>

중앙박물관 세계관 반송재 20220215_12
<12. 흑유향완, 명, 섬서요두요, 15~16세기, 13. 청자향로, 원말명초, 용천요, 14~15세기>

중앙박물관 세계관 반송재 20220215_22
<백유쌍용쌍이병, 당>

중앙박물관 세계관 반송재 20220215_13<고석도, 고양(17세기 활동), 목판화, 십죽재서화보(17세기 중엽), 현본 연대 미상>

중앙박물관 세계관 반송재 20220215_23
<수묵산수화, 사사표(1615~1698), 17세기 후반, 종이에 먹>

반송재(伴松齋)
반송재는 중국미술사학자이자 국립중앙박물관 제9대 관장을 역임한 김홍남박사가 세계문화관 개관을 기념하여 헌정한 전시실입니다. 중국 청말(18~19세기) 학자의 집을 서재와 내실을 중심으로 재현하고 그의 중국수집품을 배치하여 일상의 미학적 품격과 상고취향을 생동감 있게 담아내고자 하였습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2022년)

<출처>

  1. 안내문, 중앙박물관, 2022년

 

[중앙박물관 세계문화관] 중국도자기

중국에서는 상나라 때 도자기의 전신이라고 할 수 있는 회유도기가 제작되었다고 한다. 한나라때 녹유도기가 만들어지기 시작했으며, 당나라 때 화려한 색감을 자랑하는 당삼채가 제작되었다. 송나라부터는 중국은 전국 각지의 가마들에서 특색있는 도자기들이 생산되면서 국제교역에 있어서 중요한 거래품목이 되었다. 원나라 때에는 대량생산을 통해 선박을 이용한 교역이 활성화되면서 ‘도자의 길’이라는 해상실크로드가 생겨났다. 명.청대에는 경덕진을 중심으로 다양한 채색자기가 만들어졌다. 중국의 도자기 수출은 서구사회가 동방무역로 찾아 나서게 되는 대항해시대의 동기가 되기도 했으며, 유럽에 전해진 중국의 도자기들은 서구사회의 생활모습을 크게 바꾸기도 했다

중국의 주요 가마터와 도자기. 북송대까지는 중국 도자기는 황하 주변에서 많이 생산되었으나, 북방민족의 압박 등의 이유로 남송대 이후에는 월주요, 경덕진요 등이 중국도자기 생산의 중심지가 되었다.

중앙박물관 세계관 중앙아시아 중국자기 20220215_20<1,2. 백자 완, 당/형요(邢窯)>

중앙박물관 세계관 중앙아시아 중국자기 20220215_02<3. 청자 완, 당 말 ~ 오대(907~979년) 초 / 월요>

중앙박물관 세계관 중앙아시아 중국자기 20220215_67
<4. 청자 참외모양 주자, 오대, 월요>

남청북백(南靑北白)
당대에 차 마시는 문화가 널리 보급되면서 자기 문화도 함께 발전하였다. 남쪽 지방의 월요 청자, 북쪽 지방의 형요 백자를 중심으로 ‘남청북백’이라는 지역적 특징이 형성되어 자기의 문화적 가치를 더욱 높였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2022년)

자기(瓷器)
중국 자기는 한대 회유(灰釉) 계통의 시유 도자기에서 시작되었으며, 당대 저장성(浙江省) 월요(越窯) 청자로부터 본격적으로 전개되었다. 이 시기에 중국 북방 지역에서는 백자가 생산되어 ‘남청북백(南靑北白)’의 시대를 맞이한다. 청자와 백자의 제작 기술은 지속적으로 발전하여 송대에는 전국 각 지역의 가마에서 다양한 종류의 도자기가 생산되어 자기문화의 황금기를 이룬다. 이후 원대에는 백자와 청화백자를 주로 생산한 장시성(江西省) 경덕진요(景德鎭窯)가 자기 생산의 중심지가 되어 명대에는 화려한 채색 자기가 등장하였고, 청대에는 자기 생산의 모든 기술가 예술성이 집약되어 중국 자기 제작 발전의 정점에 이른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2022년)

송나라 이후 중국 각지에서는 각기 특색이 있는 도자기들을 생산하는 가마들이 생겨났는데, 북방지역에서는 백자계통을, 남방지역에서는 청자계통의 도자기를 많이 만들었다. 중국의 주요 가마로는 북방지역의 정요, 요주요, 여요, 균요, 자주요 등이 있고, 남방지역에서는 월주요, 용천요, 건요, 길주요, 경덕진요가 있다. 명대 이후에는 청화백자와 채색자기를 대량생산했던 경덕진요가 중국을 대표하는 곳으로 도자기 생산지가 되었으며, 서구의 도자기 문화에 많은 영향을 주었다. 지금도 서양에서 생산되는 많은 생활용품 도자기들에서 중국 경덕진요의 영향을 받은 흔적들을 찾아 볼 수 있다.

요주요(耀州窑)는 산시성(山西省) 동천시(銅川)이 부근에 있던 가마이다. 송대에 문양이 이씨는 청자를 만들었다. 금대에는 황갈색 유약을 칠한 자기를 구웠다. 용천요와 비교해서 북방청자라고 부르기도 한다.

중앙박물관 세계관 중앙아시아 중국자기 20220215_09<청자 인물무늬 주전자, 월요, 오대(907~960).>

중앙박물관 세계관 중앙아시아 중국자기 20220215_10<월요, 요주요>

중앙박물관 세계관 중앙아시아 중국자기 20220215_07<월요, 요주요>

중앙박물관 세계관 중앙아시아 중국자기 20220215_08<모란꽃무늬대접, 넝쿨무늬대접, 국화넝쿨무늬잔, 국화 넝쿨무늬 항아리, 요주요, 북송>

중앙박물관 세계관 중앙아시아 중국자기 20220215_05<연꽃잎무늬 침받이, 월요, 북송>

중앙박물관 세계관 중앙아시아 중국자기 20220215_06<월요, 요주요>

월요(越窯)
월요는 중국에서 가장 오래된 가마로 저장성(浙江省) 일대에 위치한다. 당대에 월주(越州)에 속해 있어 월요 또는 월주요라고도 한다. 월요에서는 동한 말기에 처음 청자를 제작하기 시작하여, 당대에 이르러 독특한 풍격을 이룸으로써 남방 청자의 대표적인 가마가 되어싿. 우리나라 초기 청자의 원류로 추정되는 ‘옥벽저완玉璧底碗’으로 더 잘 알려져 있다. 참외모양 주전자, 꽃모양 대접과 접시, 잔받침 등이 유명하다.(안내문, 중앙박물관, 2022년)

요주요(耀州窯)
요주요는 산시성(陝西省) 통촨(銅川) 일대에 위치한다. 당대부터 언대까지 700년간 자기를 생산하였다. 당대에는 흑자, 백자, 청자를 생산했고 송대에는 주로 청자를 제작했다. 도자기 표 면은 다양한 문양을 새기거나 찍어서 장식되었으며, 섬세하고 세련된 문양은 당시 도공의 뛰어난 솜씨를 보여준다. 주로 반(盤), 완(碗), 병(甁), 잔(盞), 향로 등을 제작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2022년)

용천요(龙泉窑)는저장성(浙江省) 부근에 있던 중국 최대의 청자가마이다. 북송대에 생겨 금,원때에 크게 흥성했다가 명대 정덕진에 밀려 쇠퇴하였다. 용천요는 장생일.장생이 형제가 만든 가요(哥窑)와 제요(弟窑)가 있다. 가요는 유약에 잔금효과(균열무늬)가 있는 검은색 자기이며, 제요는 매끄럽고 부드러운 것이 특징이다. 용천에서 만든 청차의 빛갈은 옥(玉)과 같은 빛깔을 내어 세계적으로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중앙박물관 세계관 중앙아시아 중국자기 20220215_12<용천요>

중앙박물관 세계관 중앙아시아 중국자기 20220215_13<용천요>

중앙박물관 세계관 중앙아시아 중국자기 20220215_14<용천요>

중앙박물관 세계관 중앙아시아 중국자기 20220215_15<용천요>

중앙박물관 세계관 중앙아시아 중국자기 20220215_16<용천요>

중앙박물관 세계관 중앙아시아 중국자기 20220215_24<용천요>

용천요(龍泉窯)
용천요는 저장성 서남부에 있는 용천 지역의 명칭에서 유래했다. 중국 청자의 상징이었던 월요가 쇠퇴의 길을 걷자 남송 시기에 용천요 청자가 절정기를 맞으며 중국 청자의 새로운 전통을 잇게 된다. 이 시기의 용천요 청자는 남송 관요(官窯)의 영향을 받아 바탕흙이 얇아지고 유약이 두터워지며 질 좋은 청자를 생산하기 시작한닫. 원대 용천요에서는 일상생활 용품에서 장식용 기물까지 매우 다양한 형태의 청자를 제작했으며, 큰 화병, 접시 등을 제작하였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2022년)

정요(定窑)는 중국 송대 5개 가마 중 하나로 백자를 만들었던 곳이다. 당나라말기부터 송대까지 상아와 같은 백자를 만들어 궁중에서도 사용했다고 한다. 가마터는 허베이성 곡양현 일대에 있다. 금.원대에 장인들이 강남으로 이주하면서 문을 닫았다고 한다.

중앙박물관 세계관 중앙아시아 중국자기 20220215_18<정요>

중앙박물관 세계관 중앙아시아 중국자기 20220215_19<정요>

중앙박물관 세계관 중앙아시아 중국자기 20220215_20<정요>

중앙박물관 세계관 중앙아시아 중국자기 20220215_21<모란무늬 꽃모양 대접, 정요, 북송>

중앙박물관 세계관 중앙아시아 중국자기 20220215_22<정요>

중앙박물관 세계관 중앙아시아 중국자기 20220215_23<헤엄치는 물고기무늬 대접,북송정요>

중앙박물관 세계관 중앙아시아 중국자기 20220215_24<정요>

정요(定窯)
정요는 송대 5대 명요(名窯)의 하나로 지금의 헤베이성(河北省) 취양현(曲陽縣) 일대에 있었다. 당대에는 백자만 생산하였으며, 송대에는 백자를 주로 생산하면서 흑유(黑釉), 갈유(褐釉), 녹유(綠釉) 자기도 생산하였다. 북송 후기에 도장으로 무늬를 찍는 인화(印花) 기법이 등장하여 바탕흙이 마르기 전에 접시나 대접 안쪽에 도구를 이용해 무늬를 찍어 장식하였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2022년)

자주요(磁周窑)는 하북성(河北省) 한단시(邯鄲)에 위치한 가마로, 송.금.원대 민간에서 선호한 자기들 생산하였으며 현재까지 민간용 자기를 만들고 있다고 한다. 자주요에서는 백유(白釉)를 많이 만들었고 흑유, 녹유, 삼채 등도 만들었다. 장식기법으로 그림을 그리거나, 음양각(陰陽刻), 가채(加彩) 등을 사용했다. 다양한 문양과 함께 자유롭고 소탈한 조형미를 보여준다.

중앙박물관 세계관 중앙아시아 중국자기 20220215_25<자주요>

중앙박물관 세계관 중앙아시아 중국자기 20220215_26<자주요>

중앙박물관 세계관 중앙아시아 중국자기 20220215_27<자주요>

중앙박물관 세계관 중앙아시아 중국자기 20220215_28<자주요>

중앙박물관 세계관 중앙아시아 중국자기 20220215_29<자주요>

중앙박물관 세계관 중앙아시아 중국자기 20220215_30<자주요>

중앙박물관 세계관 중앙아시아 중국자기 20220215_31<자주요>

자주요(磁州窯)
자주요는 송.원대의 대표적인 민간 운영 가마로 헤베이성(河北省) 츠현(磁縣)에 위치한다. 자주요 자기 제작법이 특징은 흰 바탕에 검은 선으로 그림을 그리는 백지흑화(白地黑花) 장식기법으로 허난성과 산성 등에서도 이런 방법으로 자기를 제작했다. 자주요의 도자기는 일반 서민들이 사용했다. 자주요의 바탕흙은 정요 백자의 것과는 달리 거칠고 조잡하며 짙은 색을 띤다. 접시, 대접, 병, 항아리, 베개 등이 생산되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2022년)

경덕진요(景德镇窑)는 도자기를 생산했던 중국의 많은 가마들 중에서 가장 잘 알려진 곳으로 장시성(江西省) 동북부 창강(昌江) 남부 부량현(浮梁縣) 일대에 위치하고 있다. 남북조시대부터 시작하여 당대에는 백자를 만들었다. 송대에 경덕진이라는 이름이 붙여졌으며 우수한 백자가 만들어졌는데 그 중 청백자(靑白瓷)가 유명하다. 원대에는 청화백자를 비롯하여 다양한 백자가 만들어졌다. 명대에는 관요(官窯)가 설치되었으며 명말청초에는 이곳에서 만든 자기들에 세계각철 대량 수출되어 중국을 대표하는 생산품이 되었다.

중앙박물관 세계관 중앙아시아 중국자기 20220215_32<경덕진요>

중앙박물관 세계관 중앙아시아 중국자기 20220215_33<경덕진요>

중앙박물관 세계관 중앙아시아 중국자기 20220215_34<경덕진요>

중앙박물관 세계관 중앙아시아 중국자기 20220215_35<경덕진요>

중앙박물관 세계관 중앙아시아 중국자기 20220215_36<경덕진요>

중앙박물관 세계관 중앙아시아 중국자기 20220215_37<경덕진요>

경덕진요(景德鎭窯)
경덕진요는 장시성(江西省) 경덕진(景德鎭)에 위치하며 오대부터 청자와 백자를 생산하였다. 송대에는 ‘영청(影靑)’이라 불리는 청백자를 제작하기 시작하였다. 원대에는 청백자에서 벗어나 난백유(卵白釉) 백자가 등장하고, 아울러 백자의 전성기를 이루는 청화백자가 제작되기 시작한다. 명.청대에는 청화백자가 대세를 이루면서 투채(鬪彩), 오채(五彩), 분채(粉彩), 법랑채(法朗彩) 등의 채색 자기(彩色瓷器) 제작이 활발해 진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2022년)

오채(五彩)는 유약을 발라 구워낸 백자 표면에 적색, 녹색, 황색 등의 그림물감으로 문양을 그리고 다시 가마에 넣어 낮은 온도로 구워낸 것이다. 송나라때 처음 만들어졌으며, 원말~명초에 경덕진요에서 굽기 시작하였으며, 명나라 중기에 대량 생산하여 해외로 수출하였다. 청나라때에는 금채, 분채, 양채 등 다양한 수법이 개발되었다.

중앙박물관 세계관 중앙아시아 중국자기 20220215_66
<1. 팔선도가 그려진 오채병, 청>

병의 목부분에는 동자가, 몸체에는 여덟 명의 신선을 오채로 그렸다. 팔선은 종리권, 장과로, 한상자, 이철괴, 조국구, 여동빈 6명화 남채화, 하선고 두 여선을 합한 8명이 신선을 가리킨다. 이철괴의 호리병에서 사람의 영혼이 빠져 나오는 모습이 표현되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2022년)

중앙박물관 세계관 중앙아시아 중국자기 20220215_38<2. 봉황무늬 분채 접시, 청>

중앙박물관 세계관 중앙아시아 중국자기 20220215_39
<3. 경직도(耕織圖)를 그린 오채 접시, 청>

중앙박물관 세계관 중앙아시아 중국자기 20220215_40<1,2 나비, 꽃무늬 오채접시, 청>

중앙박물관 세계관 중앙아시아 중국자기 20220215_41<3. 인물, 꽃, 나비무늬 오채접시, 명>

투채(鬪彩)는 먼저 청화안료로 문양의 윤곽선을 그리고 투명유약을 입혀 구워낸 다음, 철화 윤곽선에 각종 채색안료로 도안을 완성하고 다시 저온으로 굽는다. 명나라 때(15세기) 가장 발달했다.

중앙박물관 세계관 중앙아시아 중국자기 20220215_42<4. 꽃무늬 투채 완, 청>

분채(粉彩)는 도자기 장식기법 중 하나로 오채(五彩)와 마찬가지로 백자 위에 채색하여 다시 굽는 방식으로 법랑채라고도 한다. 칠보에 사용하는 산화석을 썩은 재료를 사용하며 색의 수가 많고 세밀한 그림이나 농담(濃淡)의 표현이 쉽기때문에 화조(火鳥)나 인물을 표현하기 쉽다. 청나라 강희제때 처음 만들어지기 시작하였다고 한다.

중앙박물관 세계관 중앙아시아 중국자기 20220215_43<5. 모란무늬 꽃모양 분채 완, 청>

중앙박물관 세계관 중앙아시아 중국자기 20220215_44<6. 모란무늬 법랑채 완, 청>

제홍유(霁紅釉)는 적색을 띠는 유약으로 ‘선홍유(鲜紅釉)’ 또는 ‘보석홍유’, ‘취홍유’ 등으로 불린다. 명 선덕(宣德, 선종)대에 동홍유가 만들어졌으며, 명청대에 주로 만들어졌다.

중앙박물관 세계관 중앙아시아 중국자기 20220215_65
<1. 홍유 매병, 청>

자기 제작 기술과 유약의 개발 등 비약적인 발전이 이루어진 명대를 거쳐 청대에는 화려한 기교, 다양한 기종 등 새로운 발전 양상을 보여준다. 이 매병은 몸체 전면에 복숭아빛 연지색과 흐린 진홍색의 미세한 반점을 띤 유약을 시유(施釉)하였는데, 백색 유약을 사용한 구연부 및 그 안쪽의 흰 빛깔과 대비되어 매우 화려하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2022년)

중앙박물관 세계관 중앙아시아 중국자기 20220215_45<2. 수탉무늬 잔, 청, 3. 용무늬 잔, 청>

녹유(綠釉)는 도자기를 굽는 온도가 낮가 납이 들어가서 구리로 녹색을 발색한다. 고대 로마에서 사용되었으며 한나라 때 실크로드를 통해 전해진 것으로 보인다. 한대 녹유는 기와를 비롯하여 다양한 그릇을 만드는데 사용되었으며, 낙랑군과 고구려에도 전해졌다. 당삼채와 요(遼)의 녹유, 송의 자주요 등에서 녹유를 볼 수 있다.

중앙박물관 세계관 중앙아시아 중국자기 20220215_46<1. 녹유 호, 요(遙, 916~1125년)>

말안장 모양이며, 전체적으로 녹색을 띠었고 유약을 엷게 박락되었다. 원통형 입에 뚜껑이 있으며, 끈을 달 수 있도록 2개의 구멍을 뚤었다. 각각의 구멍에는 인물이 표현되었고, 몸통 부분에는 음각으로 꽃잎을 표현했다. 요대(遙代)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2022년)

중앙박물관 세계관 중앙아시아 중국자기 20220215_47<2. 법화자기 인물무늬 항아리, 명>

중국 도자는 다양한 유약 개발과 제작 기법을 통해 다채로운 양상을 보인다. 그중 매우 특별한 채색 자기인 법화(法花)자기이다. 법화 기법은 점토 문양 안에 다른 색깔의 유약을 넣어 만드는 독특한 기법으로, 금속공예의 법랑(琺瑯)기법, 칠보 기법을 도자기에 도입한 것이다. 우선 표면에 점토 문양 외곽선을 만들어 높은 온도에서 구운 뒤 문양 안에 감(紺), 황(黃), 청색(靑色) 등의 유약을 칠하고 다시 낮은 온도에서 구워 내는 제작 과정을 거친다. 이때 망간이 주재료인 진한 유색의 바탕 면과 원색을 채운 점토 문양들 간의 강한 색채 대비와 입체감이 살아 감각적인 효과가 돋보인다. 이 항아리에는 소나무를 배경으로 말 탄 관리가 시총을 데리고 가는 장면을 표현하였다. 항아리의 목 부분에는 구름무늬가, 어깨에는 여의두 무늬 속에서 피어오른 연꽃이 묘사되어 있다. 법화자기는 산시성에서 처음 만들어져 하남을 비롯한 여러 곳에서 제작되었으며 특히 명대 후기 경덕진요에서 크게 유행하였다. 이 법화자기도 경덕진요에서 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2022년)

중앙박물관 세계관 중앙아시아 중국자기 20220215_48<접시, 청>

중앙박물관 세계관 중앙아시아 중국자기 20220215_49<1. 신발모양 잔, 청>

중앙박물관 세계관 중앙아시아 중국자기 20220215_50<2. 접시, 청>

중앙박물관 세계관 중앙아시아 중국자기 20220215_51<3. 손잡이가 달린 잔, 청>

채색자기(彩色瓷器)
경덕진요로 대표되는 명.청대 자기는 원대의 청화(靑花), 유리홍(釉里紅) 등의 장식 기법을 바탕으로 발전했는데, 특히 주목할 만한 기술적 성취는 유약 위에 채색을 가하는 채색자기의 탄생이다. 청화가 유약을 입히기 전 청화 안료로 무늬를 장식하는 것이라면, 채색자기는 유약을 입혀 구운 뒤 다양한 색채의 안료로 무늬르 ㄹ그린 후 저온에서 다시 구워 제작했다는 점에서 한 단계 발전된 기술이라고 할 수 있다. 채색자기는 기본적으로 홍(紅), 황(黃), 녹(綠), 남(藍), 자(紫)의 다섯 가지 색채를 사용해 일반적으로 오채(五彩)라고 하며, 분채(粉彩), 투채(鬪彩), 법랑채(琺瑯彩) 등 다양한 기법으로 개발되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2022년)

청화(靑花)는 흰바탕에 청색의 코발트 안료로 무늬를 그리고 그위에 투명유약을 입혀서 1300~1350℃의 고온에서 구워낸 자기이다. 당말기에 처음 만들어졌으며, 원대에 크게 발전하였다. 명 만력제(재위, 1572~1620) 때 황금기를 이루었으며, 청나라 강희,건륭,옹정제 때 최고수준의 청화백자를 만들었다. 안료인 코발트는 16세기까지 서남아시아에서 수입하여 사용하였으며, 이후 중국산 토청을 사용하게 되면서 색이 나빠졌다고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조선전기에는 청화백자를 만들었으나, 안료의 수입이 어려워 많이 제작되지는 않았다.

중앙박물관 세계관 중앙아시아 중국자기 20220215_62
<1. 인물고사가 그려진 항아리, 청>

중앙박물관 세계관 중앙아시아 중국자기 20220215_53
<2,3,4. 구름 용무늬 사발, 청>

중앙박물관 세계관 중앙아시아 중국자기 20220215_54
<5. 용무늬 필가, 명, 6. 산수 인물무늬 필통, 청>

중앙박물관 세계관 중앙아시아 중국자기 20220215_55<1. 용무늬 잔, 원>

중앙박물관 세계관 중앙아시아 중국자기 20220215_56<2. 꽃 과일무늬 주전자, 명, 3. 연꽃 넝쿨무늬 완, 명>

중앙박물관 세계관 중앙아시아 중국자기 20220215_57<4. 인물고사가 그려진 항아리, 명, 5. 꽃 구름 용무늬 접시, 명>

중앙박물관 세계관 중앙아시아 중국자기 20220215_58<6. 매화무늬 접시, 청, 7. 산수무늬 접시, 청>

중앙박물관 세계관 중앙아시아 중국자기 20220215_61
<8. 길상무늬 편병, 청>

세계를 매혹시킨 청화백자(靑畵白瓷)
경덕진의 청화백자는 원대 14세기부터 도약적인 발전을 이룬다. 무역의 경로인 실크로드를 따라 코발트가 수입되고, 경덕진의 질 좋은 백자원료와 유약의 생산으로 아름다운 청화백자가 제작되었다. 우수한 원료와 다양한 제작 기술의 개발로 경덕진의 청화백자는 중국 내 뿐만 아니라 명.청대에는 전 세계로 이름을 알리게 되었다. 청화백자는 코발트 안료를 사용하여 붓으로 무늬를 그린 후 투명유을 씌워 구워내면 흰바탕에 푸른색의 무늬가 강렬한 색상대비를 이룬다. 크기가 큰 대형의 자기부터 소형에 이르기까지 다양하게 제작되었으며, 도자표면에 묘사된 무늬 역시 세밀하고 정교한 꽃과 과일무늬부터 회화성을 강조한 사군자, 산수, 인물에 이르기까지 매우 다양하게 표현되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2022년)

중앙박물관 세계관 중앙아시아 중국자기 20220215_63
<사자, 명, 대리석>

중앙박물관 세계관 중앙아시아 중국자기 20220215_64
<사자, 명, 대리석>

명대 암수 한 쌍의 사자조각상이다. 수사자가 발로 누르고 있는 공은 권력을 상징하고 암사자의 새끼 사자는 계승자를 의미하여 자손이 흥성해져서 관직에 오르기를 바라는 염원이 담겨져 있다. 사자상은 궁궐의 아문이나 대문에 배치되다가 송대 이후에는 벽사와 길상의 의미로 개인의 주택이나 공원 등에도 세워지게 되었다. 명.청대에 이르러 이와같이 암수 한 쌍의 사자상을 문 앞에 세우는 형식이 정착되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2022년)

흙, 돌, 금속으로 만든 다양한 제품에 옻칠을 하는 칠기(漆器) 역시 한(限)대에 기술적으로 크게 발전하여 널리 보급되었다. 옻칠을 사용하면서 금, 안료 등 다양한 재료로 다양한 문양을 넣어 장식하였으며 후대에 도자기로 발전되는 기반이 되었다. 한나라의 영향을 받아 낙랑과 삼한 등 한반도에도 옻칠을 한 유물들이 발견되고있다.

중앙박물관 세계관 중앙아시아 중국자기 20220215_522. ‘대청건륭제’가 새겨진 합, 청

이 칠합(漆盒)은 다양한 제작 기법과 기교로써 최상의 화려함을 표현한 청대 공예품의 특징을 잘 보여준다. 조칠(彫漆) 기법으로 만들었으며, 이 합은 여러 번 칠한 칠층의 색감 변화로 입체감과 화려함을 극대화했다. 뚜껑 윗면 중앙에는 칠보(七寶)가 감긴 화분의 오색찬란한 기운 위로 커다란 ;春’자가 있고, 글자 획 위로 소나무 아래 복숭아를 든 신선과 사습이 표현된 원을 배치하였다. 굽바닥에 ‘대청건륭년제’가 새겨져 있어 이 합이 청나라 건륭 연간에 만들어진 것임을 알 수 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2022년)

칠기
중국 칠기고예는 일찍이 7천여 년 전 신석기시대부터 존재했다. 이후 수천년간 끊임없이 발전하여 채회(彩繪), 전칠(塡漆), 상감(象嵌), 조칠(彫漆), 금칠(金漆) 등의 다양한 기법을 선보이며 중국 전통문화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해 왔다. 전국시대의 옛 무덤에서는 일상생활 용구에서 제기, 악기, 무기 그리고 장례용 관에 이르기까지 매우 다양한 종류의 칠기가 출토되어 중국 고대 칠공예의 제작 상황을 알려 준다. 당대에 시작된 조칠기법은 송.원대에 높은 수준으로 발전하여 세계적인 명성을 얻었다. 척홍(剔紅) 또는 조홍칠(彫紅漆)이라고도 불리는 조칠은 나무나 동으로 만든 몸체에 붉은색 칠을 수십번 한 후 조각하는 기법을 말한다. 붉은색의 화려한 효과를 내는 조칠은 명.청대에 이르러 일상생활 용기에서부터 병풍, 침상, 의자, 건축 장식에 이르기까지 제작 범위가 확대되면서 중국의 독보적인 공예 예술로 발전한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2022년)

<출처>

  1. 안내문, 중앙박물관, 2012년, 2022년
  2. 안내문, 산동성박물관, 2014년
  3. 위키백과, 2023년

 

[중앙박물관 세계문화관] 불비상, 금은기, 도용 (남북조, 수, 당)

불비상은 비석형태에 돋을새김으로 불상 등이 새겨진 것으로 마을 입구, 주요 교차로, 사원 등 대외적이고 공적인 장소에 주로 세웠다. 조상의 안녕을 기리고 공덕을 쌓는 역할을 했다.우리나라에서 통일신라시대 초 충청도지방에서 불비상이 만들어 졌다.

중앙박물관 세계문화관 중국 수당시대 20220215_01<중국 불비상>

조상비(造像碑)
불교가 중국에 전래된 이래 새로운 형태의 조형물인 조상비가 등장했다. 조상비의 기본 형태는 네모난 돌에 불상과 명문을 새긴 것으로 중국의 전통적인 비(碑)에 종교적 숭배대상인 불상이 더해진 형식이다. 중국의 비가 지배계층을 위한 것이었다면 조상비 제작에는 지배계층뿐만 아니라 민간인들도 발원자로서 참여할 수 있었다. 이러한 조상비는 마을 입구, 주요 교차로, 사원 등 대외적이고 공적인 장소에 주로 세웠으며, 조상의 안녕을 기리고 공덕을 쌓는 역할을 했다. 이곳에 전시된 네 점의 중국 불비상은 북위(北魏)와 당(唐)대에 제작된 것으로 대체로 석가불이나 아미타불, 미륵불이 묘사되고 있고, 일부에는 공양자상과 조상기(造像記)가 새겨져 있다. 이처럼 조상비는 당시 유행했던 불교 도상에 발원자의 염원을 담아 이들의 신앙과 바람을 대외적으로 널리 알리고자 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2022년)

여래좌상을 중심으로 나한, 보살, 신장을 비롯하여 불화 등에서 볼 수 있는 다앙한 군상들이 묘사되어 있다. 하단에는 향로와 사자상이 새겨져 있다.

중앙박물관 세계문화관 중국 수당시대 20220215_31
<불비상(佛碑像), 북제 ~ 수(隨)>

다양한 군상이 빽빽하게 묘사된 북제의 불비상이다. 앞면에는 앉아 있는 불상을 중심으로 나한과 보살, 신장이 주위에 둘러 서 있고 상단에는 꽃줄을 든 천인과 보탑이, 불상 아래에는 향로와 사자, 인물상이 조각되어 있다. 뒷면은 2단으로 된 감실에 오존불과 반가사유상이 새겨져 있다. 다양한 상들로 가득 채워져 구도가 복잡하고 세부 표현이 다소 번잡하지만, 부피감이 살아 있는 인물 묘사나 허리를 쌀짝 비튼 보살의 삼곡(三曲) 자세는 눈길을 끈다. 앞면 하단의 명문에는 재주(齋主) 등 읍의 주요 인물 명단과 공양주 등이 “부모님을 위하여 한마음으로 부처를 모신다.”는 내용이 기록되어 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2022년)

중앙박물관 세계문화관 중국 수당시대 20220215_32
<불비상, 북제 ~ 수>

중앙박물관 세계문화관 중국 수당시대 20220215_02<윗부분 오존불>

중앙박물관 세계문화관 중국 수당시대 20220215_03<아랫부분 인물상>

높이가 162cm에 이르는 비교적 큰 북제 불비상이다. 앞면은 오존불(五尊佛)을, 중단에는 역사(力士)를 새겼고, 가장 윗부분에는 보탑(寶塔)과 천인을 조각했다. 중단의 역사는 자연스러우면서도 힘찬 모습이다. 뒷면은 상단에 용 장식과 오존불을 새기고, 중단에는 4개의 감실에 각각 삼존불을, 하단에는 향로와 사자, 인물상을 표현했다. 가장 아래에는 불비상에 조각된 각각의 상을 공양한 사람의 이름을 새겼다. 불상은 다소 경직된 모습이지만 사자는 예스럽고 소박한 느낌을 준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2022년)

중앙박물관 세계문화관 중국 수당시대 20220215_33
<불비상, 당 현경 5년(660년)>

중앙박물관 세계문화관 중국 수당시대 20220215_04<윗부분 불상과 협시보살>

중앙박물관 세계문화관 중국 수당시대 20220215_05<아랫부분 감실의 오존상>

당 현경 5년(660년)에 고만해 일가족이 발원한 불비상이다. 육감적이고 사실적으로 표현한 불상과, 보살상은 전형적인 7세기 당대 불상의 특징을 보여준다. 앞면 상단에는 의자에 앉은 자세의 불상과 협시보살이 있고 그 위로는 보탑과 천인이 있으며, 중단에는 2개의 감실에 오존상을 묘사했다. 뒷면 상단에는 용 장식이, 중단에는 삼존불과 나무를 새겼다. 명문은 앞면의 하단과 중단의 감실 사이에 새겨져 있는데, 고만해가 돌아가신 부모님을 위해 형수와 처, 조카, 아들, 딸 등 일가친척이 힘을 모아 불비상을 조성했다는 내용이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2022년)

앞쪽에 삼존불상이 새겨져 있으며, 위쪽에 서로 얽혀 있는 용으로 장식했다. 아래쪽에 발원한 사람들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 100여명 넘는 발원자가 참여했다고 한다.

중앙박물관 세계문화관 중국 수당시대 20220215_34
<불비상, 북위 영안 2년(529년)>

북위 영안 2년(529년)에 조성된 불비상이다. 꼭대기 부분은 서로 얽혀 있는 용 4마리로 장식했고 상단에는 삼존불과 발원자의 관직명이, 중단에는 공양자상, 그리고 하단에는 함께 발원한 이들의 이름을 새겼다. 공양자상 사이에 명문이 있는데, 영안 2년에 국왕과 칠세부모를 위하여 만들었다고 적혀 있다. 이 불비상은 마을의 신앙 공동체인 읍의 구성원인 개씨와 양씨, 왕씨 등을 포함하여 100명이 넘는 발원자가 함께 조성한 것이며 10여 명의 주요 공양자는 말을 타거나 일산(日傘)을 쓴 모습으로 표현되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2022년)

춘추전국시대 이후에는 금속으로 만든 실생활 기물이 많아졌고, 진한대에 이르면 금은입사(金銀入絲), 감옥(嵌玉), 누금세공 등을 이용한 화려하고 세밀한 금속기가 만들어졌다. 당대에는 실크로드를 통해 서역으로부터 금속제 그릇들이 수입되었으며, 그들로 부터영향을 받아 상당히 수준높은 금속제 그릇이 만들어졌다.

중앙박물관 세계문화관 중국 수당시대 20220215_09<금은기>

중앙박물관 세계문화관 중국 수당시대 20220215_14<금은기>

당(唐)대의 금은기(金銀器)
당대에는 수준 높은 금속 제조 기법으로 완, 합, 배, 반, 호 등 다양한 금은기를 생산하였으며, 궁정과 귀족 계층에서 널리 사용했다. 실크로드를 통해 서아시아 문화가 유입되어 당나라 사람들 사이에서 이국풍이 인기를 끌면서 다양한 형태의 금은제 그릇이 제작되었다. 손잡이가 있는 잔, 굽다리 은잔 등은 서아시아 그릇에서 영향을 받아 제작된 것들이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2022년)

중앙박물관 세계문화관 중국 수당시대 20220215_06<1. 사자 꽃무늬 은접시, 당>

중앙박물관 세계문화관 중국 수당시대 20220215_07<2. 원앙무늬 합, 당>

중앙박물관 세계문화관 중국 수당시대 20220215_08<3. 사자 보상화무늬 합, 당>

중앙박물관 세계문화관 중국 수당시대 20220215_10<1. 상자, 당>

중앙박물관 세계문화관 중국 수당시대 20220215_11<2. 포도 국화 넝쿨무늬 병, 당>

중앙박물관 세계문화관 중국 수당시대 20220215_12
<3. 당초문이 새겨진 잔, 당><4. 손잡이가 달린 잔, 당>

중앙박물관 세계문화관 중국 수당시대 20220215_13<5. 꽃 새 넝쿨무늬가 새겨진 은제 가위, 당>

중앙박물관 세계문화관 중국 수당시대 20220215_15<1. 상자, 당>

중앙박물관 세계문화관 중국 수당시대 20220215_16
<2. 동자무늬 주자, 요(遼, 916~1125년)>

중앙박물관 세계문화관 중국 수당시대 20220215_17
<3. 꽃모양 잔, 요>

중앙박물관 세계문화관 중국 수당시대 20220215_18
<4. 귀때잔, 요>

중앙박물관 세계문화관 중국 수당시대 20220215_19
<5. 잔, 요>

중앙박물관 세계문화관 중국 수당시대 20220215_20
<6. 굽다리잔, 요>

굽과 몸통이 모두 밖으로 벌어진 굽다리잔이다. 굽 하단은 작은 금 알갱이를 붙이는 누금세공 기법으로 장식했다. 몸통 바같 면에는 큰 보상화(寶相華) 무늬와 활짝 핀 꽃무늬를 번갈아 새겼다. 그릇 안쪽 바닥 중앙에는 두들겨서 표현하는 타출(打出)기법으로 거북이를 표현하였고, 그 주변에는 8개의 보상화무늬를 새겨 장식하였다. 몸통 외면에도 보상화 무늬 12개를 음각했고 문양 사이사이에 꽃잎이 4개인 꽃무늬를 장식했다. 굽 주변에 명문이 새겨져 있어, 1026년에 제기용으로 제작되었음을 알 수 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2022년)

도용(陶俑)은 중국에서 죽은이와 함께 묻는 인물.동물의 상을 말하며 명기의 일종으로 흙으로 빚어서 만든 것을 말한다. 이는 현실의 사람이나 가축 등을 본 떠 만들어 죽은이를 저승으로 호종한다는 의미를 갖고 있다. 전국시대 순장제도가 사라지면서 예기(禮器)제도가 무의미해지고 껴묻거리의 종류에도 많은 변화를 가져왔다. 한대 이전에는 옥기, 청동그릇 등의 예기와 실생활에 사용된 토기, 무기, 마구류가 주로 매장되었지만, 한대 이후에는 인간의 감정이나 생활상을 실감나게 표현한 인물과 동물도용 제작이 비약적으로 발전하면서 매장 수량이 급격히 증가하였다.

중앙박물관 세계문화관 중국 수당시대 20220215_22<도용>

중앙박물관 세계문화관 중국 수당시대 20220215_23<도용>

힘이 넘치는 사실성이 돋보이는 도용이다. 서역문화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서역지방을 통해서 외국말이 본격적으로 수입되기 전인 남북조시대까지는 다리가 짧은 중국 토종말 형태로 만들어지진다.

중앙박물관 세계문화관 중국 수당시대 20220215_26<도용>

도용(陶俑)
진.한대에는 많은 부장품을 함께 묻는 후장(厚葬)제도가 유행하면서 지배층 무덤의 부장품 종류에 많은 변화가 일어났다. 한대 이전 무덤에서는 옥기, 청동그릇 등의 예기(禮器)와 실생활에 사용된 토기, 무기, 마구류들이 출토된 반면, 한대 이후 무덤에서는 인간의 감정이나 생활상을 표현한 인물과 동물 도용이 다수 출토되었다. 또한 당대에는 무덤을 지키는 용도로 채색이 화려한 삼채 진묘수, 말, 낙타 등을 함께 매장하였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2022년)

중앙박물관 세계문화관 중국 수당시대 20220215_21<2. 문관과 무사, 남북조>

죽은 자를 받들어 모시기 위하여 무덤에 부장되는 문관과 무사 모습의 도용이다. 복장은 모두 호복(胡服) 차림이다. 호복은 전국시대에 말 위에서 활을 쏘는 궁술과 함께 기마에 편한 복장이 북방 유목문화로부터 유입된 것으로, 바지와 길이가 짧은 웃옷을 의미한다. 북조에서는 신분에 관계없이 평상복과 조복으로 입을 만큼 정착되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2022년)

중앙박물관 세계문화관 중국 수당시대 20220215_35
<3. 말 탄 여인, 당>

중앙박물관 세계문화관 중국 수당시대 20220215_36
<4. 호인, 당>

중앙박물관 세계문화관 중국 수당시대 20220215_37
<5. 매를 든 인물, 당>

손에 매를 들고 사냥하는 인물 모습의 도용이다. 북방 민족의 옷인 호복을 입고 복두를 쓴 남장한 여성으로, 당대에 매사냥은 여성들의 대표적인 야외 오락이었다. 인물은 옷깃을 양쪽으로 열어젖힌 번령포(飜領袍)를 입었고 허리에는 호풍의 여러 물품을 드리운 첩섭대(䩞鞢帶)를 둘렀는데, 이는 돌궐의 복제에서 유래된 것이다. 외래문화에 개방적이었던 당대에는 호풍이 이국 양식의 대명사로 여겨져 민간 및 여성들에게까지 유행하였음을 알 수 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2022년)

중앙박물관 세계문화관 중국 수당시대 20220215_38
<6. 남성과 여성, 서한>

중앙박물관 세계문화관 중국 수당시대 20220215_24<1. 무덤을 지키는 괴수, 남북조>

외부의 나쁜 기운으로부터 죽은 이를 지키기 위해 무덤에 매장하는 괴수 모양 도용이다. 진묘수는 날카로운 사슴의 뿔 또는 사자의 갈기, 긴 혀, 괴기스럽게 포효하는 괴수의 얼굴 등이 특징인데, 이것은 보는 이를 위협하여 감히 무덤 내부로 침입하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다. 이 진묘수는 네 발 짐승의 몸에 눈을 부릅 뜬 무서운 사람의 얼굴을 하였고 등의 갈기는 위로 곤두섰다. 이지러진 얼굴 표정에 보이는 생동감과 안정적인 자세는 장인의 숙련된 솜씨를 보여준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2022년)

중앙박물관 세계문화관 중국 수당시대 20220215_39
<2. 무덤을 지키는 괴수(鎭墓獸), 당>

중앙박물관 세계문화관 중국 수당시대 20220215_25
<4. 소, 당>

중앙박물관 세계문화관 중국 수당시대 20220215_40
<1. 당삼채말, 당>

중앙박물관 세계문화관 중국 수당시대 20220215_41
<2. 말, 남북조>

중앙박물관 세계문화관 중국 수당시대 20220215_42
<3. 낙타, 당>

 <출처>

  1. 안내문, 중앙박물관, 2023년
  2. 위키백과, 2023년

 

[중앙박물관 세계문화관] 중국 고대문화(하,상,주,춘추전국,진,한)

기원전 3,000 ~ 5,000 년 전 황하 유역에 번성했던 신석기 앙소문화(仰韶文化) 동아시아에서 가장 앞섰던 선사문화로 여겨진다. 중국에서 확인된 앙소문화유적의 2/5 정도인 2,000 여개의 유적이 섬서성에 분포하고 있는데, 바닥이 뾰족한 항아리와 도기가 유명하다. 섬서지역은 앙소문화의 중심지에 있었으며 인근 지역에 대한 영향력을 확대하고 상호 작용을 통해 지역 간의 통일을 촉진했다.

중앙박물관 세계문화관 중국 고대문화 20220215_01<채색항아리(彩陶), 신석기시대 앙소문화>

앙소문화(仰韶文化)는 황하 중상류에서 발생한 신석기 문화이며, 이 토기는 앙소문화권에서 생산된 것이다. 토기 표면에 흑색의 굵은 선으로 그린 반원형과 격자무늬, 그물무늬가 있고 허리 부분에는 양쪽으로 손잡이가 달려 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2022년)

갑골문(甲骨文)은 “계문(契文)”, “복사(卜辭), “라고도 부른다. 중국 상(商)말에서 주(周)초(기원전 1,300~1,100년경)까지 왕실에서 점복(占卜)의 결과를 거북껍질이나 동물뼈에 기록한 문자이다. 상나라 은허 유척에서 발견된 초기의 갑골문은 물체의 형상에 표현한 상형문자로 약 4,500여자 정도이다. 갑골문에서 발견된 문자는 내용이 확대되어 지사자(指事字, 상형자를 응용해서 만든 글자),상형자.회의자(여러개 문자를 합쳐 뜻을 만듬)뿐만 아리자 일부 형성자도 발견된다. 갑골문에 적힌 내용은 당시 상황을 보여주는 천문, 지리, 국방, 인물, 정벌, 교통, 의복, 목축, 종교 등 다양한 내용들을 포함하고 있다.

중앙박물관 세계문화관 중국 고대문화 20220215_02<갑골문(甲骨文), 상 기원전 16~11세기>

중앙박물관 세계문화관 중국 고대문화 20220215_03 <갑골문(甲骨文), 상 기원전 16~11세기>

갑골문은 중국의 고대 문자로 거북이 배와 짐승 뼈에 새겨진 상형문자이다. 중국 상나라 유적에서 발견된 이후 중국 여러 지역에서 발견되었다. 연대는 기원전 1300년까지 거슬러 올라가며 현재까지 십여 만 편에 4,600자 정도가 발견되었고, 그중 1,700여 자가 해독되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2022년)

고대 중국인들은 신체의 아홉개의 구멍을 금옥(金玉)으로 막으면 시신이 썩지 않는다고 하여 시신에 옥을 부장했는데, 이를 장옥(葬玉)이라 한다. 옛 사람들은 옥이 신령스러운 힘을 지녔다고 믿었는데, 매미는 부활, 돼지는 먹을 거리 같은 상징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었다.

중앙박물관 세계문화관 중국 고대문화 20220215_04<1. 옥함, 2. 옥벽, 한>

옥편(玉片)은 시신이 입는 옥의(玉衣)의 일부로 네 모서리에는 끈을 끼울 수 있는 구멍을 뚫었다.

중앙박물관 세계문화관 중국 고대문화 20220215_05<3. 색옥, 4. 옥돈, 5. 옥편(玉片), 한>

장옥(葬玉, Funerary Jades)
고대 중국인들은 옥이 시신을 보호하고 죽은 이를 선계(仙界)로 인도라는 힘을 가졌다고 믿었다. 신체의 아홉 구멍을 금옥(金玉)으로 막으면 시신이 썩지 않는다고 하여 시신에 옥을 부장했는데, 이를 장옥(葬玉)이라고 한다. 한대의 장옥은 용도에 따라 입믈 막는 함옥(含玉), 신체의 구멍을 막는 색옥(塞玉), 손에 쥐는 옥돈(玉豚), 가슴에 얹는 옥벽(玉璧) 등으로 구분된다. 매미모양의 함옥은 부활을 의미하고, 색옥은 유체의 정기가 빠져나가지 못하도록 막는 역할을 하며, 손에 쥔 돼지모양의 옥돈은 내세에서 먹을 양식을 상징한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2022년)

중국의 고대 청동기는 하(夏)나라때부터 만들기었으며, 지금도 그 광택이 수려하여 당시의 수준 높았던 주조 기술을 알 수 있다. 상(商).주(周)대에는 예기로써 신분에 엄격한 제한을 두고 사용되었으며, 진한대 이후 점점 쇠퇴하였다. 그릇 안쪽에 새겨진 금문을 통해 역사적 사실과 제작자의 이름 등을 알 수 있다

중앙박물관 세계문화관 중국 고대문화 20220215_06<청동예기>

중앙박물관 세계문화관 중국 고대문화 20220215_35
<1. 청동호(靑銅壺), 상 기원전 16~11세기>

청동기로 만든 술 담는 의례용 그릇이다. 몸체는 타원형이고 그릇 표면에는 용과 새 무늬가 장식되어 있으며 양쪽에 귀가 달려 있다. 전형적인 상대 말기의 청동호이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2022년)

중앙박물관 세계문화관 중국 고대문화 20220215_36
<2. 청동호, 상>

중앙박물관 세계문화관 중국 고대문화 20220215_37
<3. 청동고(靑銅觚), 상>

중앙박물관 세계문화관 중국 고대문화 20220215_38
<4. 청동고, 상>

고(觚)는 술을 담아 마셨던 잔이다. 나팔모양의 고는 오래된 청동 예기(禮器)로 상 말기 무덤에서 많이 출토되었다. 술잔 표면에는 상상 속의 괴수 도철(饕餮)무늬를 새겼고 잔 아래 바닥 안쪽에는 명문이 새겨져 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2022년)

중앙박물관 세계문화관 중국 고대문화 20220215_07<5. 청동정(靑銅鼎), 상>

정(鼎)은 양쪽에 손잡이가 있고 다리가 3개 또는 4개 달린 솥이다. 제사와 연회에서 육류를 담아 끓이는 데 사용했다. 지배층의 신분과 권위를 상징하는 중요한 기물로 정의 앞, 뒷면을 상상 속의 괴수 도철무늬로 장식하였다. 정 안에는 ‘子’ 모양의 글자가 새겨져 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2022년)

중앙박물관 세계문화관 중국 고대문화 20220215_08<6. 청동궤(靑銅簋), 서주 기원전 11세기 ~ 771년>

중국 고대의 청동 예기인 궤(簋)와 정(鼎)은 소유자의 신분이 높음을 나타내는 중요한 그릇으로, 여기에 곡식을 담았다. 이 궤는 안쪽 바닥 가운데에 상형문자로 된 명문이 새겨져 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2022년)

중국 고대문화
중국 고대 문명은 신석기시대의 채도(彩陶)와 옥기(玉器), 청동기시대의 갑골문과 청동기에서 기원을 찾을 수 있다. 채도는 정착 생활과 농경이 시작되면서 생산되었으며, 도기 표면에는 동물무늬나 기하학무늬 등이 표현되었다. 옥기는 지배계급의 상징물로서 주술적인 의미를 가졌으며 장신구 구실을 했다. 청동기는 고대국가 형성과 함께 제작되기 시작하여 주로 상나라와 주나라 때 제기와 식기, 무기 등으로 제작되었다. 왕과 제후무덤에서는 부장품으로 매장된 다양한 청동기가 발견되는데 신분계급에 따라 청동기의 매장 수량이 달랐다. 또한 청동그릇에는 사람이름과 관직명, 역사적 사실을 기록한 금문(金文)이 새겨져 있어서 당시의 사회 상황을 알 수 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2022년)

껴묻거리로 만들어진 누각 모형이다. 4층 건물 형태로 주택, 부엌 등과는 달리 실제 생활하는 용도는 아니다. 사후세계에서 신선처럼 살기를 바라는 소망을 담고 있다. 권력을 상징하는 건축물인 망루 형태의 궐(闕)이 변화된 것으로 보인다. 남북조시대 이후 불교의 목탑과 석탑으로 변화한다.

중앙박물관 세계문화관 중국 고대문화 20220215_31
<누각모형, 동한(東漢, 25~220년), 녹유도기>

중앙박물관 세계문화관 중국 고대문화 20220215_32
<옆에서 본 모습>

중앙박물관 세계문화관 중국 고대문화 20220215_33
<뒤에서 본 모습>

중앙박물관 세계문화관 중국 고대문화 20220215_34
<반대쪽 옆에서 본 모습>

한대(漢代)에는 장례를 성대하게 치르는 풍속이 유행하여 무덤에도 다양한 껴묻거리를 함께 묻었는데, 그 가운데는 집, 부엌, 축사, 방앗간, 화장실 등 망자를 위한 건축 모형도 있다. 이 망루 모형은 4층이며 층마다 난간을 만들어 인물상을 배치하고, 지붕 처마 끝에는 4개의 꽃잎이 달린 꽃모양 장식을 부착했다. 누각 모형의 양식은 한대의 실제 건축 양식이 반영된 것으로 해석되어 왔지만, 최근에는 신선 사상과 관련하여 망자의 사후 영생을 기원하는 관념적 건축이하는 의견도 제기되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2022년)

한(漢)대 막새기와에 새겨진 내용은 역사적으로 큰 의미가 있다. 1~12 개의 문자가 새겨져 있는데 4자로 구성된 경우가 많다. 그 의미는 상서로운 단어, 공직, 궁궐, 능원, 관역(關驛)의 이름 등 다양하다.  주제는 사회 생활의 다양한 측면을 다루고 있으며 인장 글씨 스타일로 서예적인 가치를 보여준다.

중앙박물관 세계문화관 중국 고대문화 20220215_09<1. ‘부귀만세(富貴萬歲)’가 적힌 수막새, 한><2. 구름과 나무무늬 수막새, 전국시대>

중앙박물관 세계문화관 중국 고대문화 20220215_10
<3. 도철무늬 막새, 전국시대 기원전 475~221년>

중앙박물관 세계문화관 중국 고대문화 20220215_11
<4. 꽃무늬 수막새, 전국시대><5. 도철무늬 막새, 전국시대>

중앙박물관 세계문화관 중국 고대문화 20220215_12
<6. 동물무니 수막새, 전국시대 기원전 475~221년>

중앙박물관 세계문화관 중국 고대문화 20220215_13
<7. 나무 동물무늬 반원막새, 전국시대 기원전 475~221년>

건죽의 미- 기와
기와는 비바람으로부터 지붕을 보호하고 동시에 건축을 장식하는 기능을 한다. 중국은 주나라 때부터 왕실을 주임으로 기와를 사용했으며, 전국시대에 본격적으로 발전하였다. 중국의 기와에는 시대와 출토 지역에 따라 귀신, 사슴, 나무 등 다양한 무늬가 표현되어 있으며, 이외에 좋은 글귀를 새겨 넣기도 했다. 수.당대 이후에는 불교의 영향으로 연꽃무늬 기와가 주류를 이루고, 송.원대 이후에는 청색과 황색 유약을 발라 구워 독특한 색깔을 띠는 다양한 기와들이 제작되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2022년)

청동거울은 제사장이나 부족장의 권위를 나타내는 주술적인 용도였으나, 점차적으로 화장을 위한 일상용품으로 그 용도가 변한다. 주술적의미나 장식적인 목적으로 다양한 그림이나 글자를 새겨 놓고 있으며, 조형미가 우수하며, 보존상태가 좋은 유물들이 많은 편이다.

중앙박물관 세계문화관 중국 고대문화 20220215_14<청동거울>

중앙박물관 세계문화관 중국 고대문화 20220215_15<1. 신선 동물무늬 거울(神獸鏡), 동한 25~220년>

중앙박물관 세계문화관 중국 고대문화 20220215_16
<2. ‘장의자손(長宜子孫)’명 거울, 동한 25~220년>

중앙박물관 세계문화관 중국 고대문화 20220215_17
<3. 용무늬 거울(龍文鏡), 한 기원전 206년 ~ 기원후 220년>

중앙박물관 세계문화관 중국 고대문화 20220215_18
<4. 용무늬 거울(龍文鏡), 전국시대 기원전 475~221년>

중앙박물관 세계문화관 중국 고대문화 20220215_19
<5. 신령스러운 동물무늬 거울(獸帶鏡), 동한 25~220년>

중앙박물관 세계문화관 중국 고대문화 20220215_20
<6. 네개의 ‘산(山)’자가 새겨진 거울(四山鏡), 전국시대 기원전 475~221년>

중앙박물관 세계문화관 중국 고대문화 20220215_21
<7. 네모난 청동거울, 전국시대 기원전 475~221년>

화장 도구 – 청동거울
고대에 주술적인 성격을 지녔던 청동거울이 점차 화장 도구로서의 기능을 갖추게 되면서, 춘추시대를 거쳐 전국시대에 이르면 정교하고 수준 높은 청동거울이 만들어진다. 동판의 표면을 잘 다듬어 얼굴을 비쳐볼 수 있는 청동거울은 뒷면에 다양한 무늬가 장식되어 있어서, 거울로서의 기능을 상실한 후대에 와서도 수준 높은 주조 기법과 장식 기법을 보여주는 금속공예로 주목을 받는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2022년)

등잔과 마찬가지로 향을 피우는 향로는 주나라 말기부터 나타나기 시작하여 한나라 때에는 박산향로가 크게 유행하였다. 향로는 인도에 성행했는데 불교의 전래와 함께 널리 사용된 것으로 보인다.

중앙박물관 세계문화관 중국 고대문화 20220215_22<1. 박산향로, 동한 25~220년, 황갈유도기>

한나라때 유행했던 박산(중첩된 산악모양) 형 뚜껑으로 바다에서 3개의 산이 용솟음치는 형상이다. 몸체의 외벽에 신선,파도,구름, 풀과 나무 등의 무늬를 새겨넣었고 술을 담던 그릇이다. 앞선 시기에는 동물모양 그릇이 많았으나 한대에는 자연을 형상하여 만든 그릇이 유행하였다.

중앙박물관 세계문화관 중국 고대문화 20220215_23
<2. 박산단지, 한, 황유도기>

박산향로와 박산준(博山樽)
한대에는 신선 사상이 유행하여 불사영생(不死永生)하는 신선이 산다는 선계의 산, 즉 박산(博山)을 표현한 향로와 술잔을 많이 제작하였다. 당시 사람들은 박산향로에 향을 피우면서 신선을 불러내 불사약(不死藥)을 얻고자 했고, 박산준에 술을 담아 신산(神山)의 불사수(不死水)처러머 생명의 술로 변하기를 바랐을 것이다. 아래에 전시된 박산향로는 뾰족한 산모양 뚜껑과 형태만 남은 가는 기둥으로 보아 단순화된 후대의 작품으로 보이며, 박산준은 세속화된 도교 신앙의 영향으로 틀을 이용해 많은 수량을 찍어 낸 제품으로 추정된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2022년)

중앙박물관 세계문화관 중국 고대문화 20220215_24<중앙박물관 세계문화관, 황화에서 꽃핀 예술>

황하(黃河)에서 꽃핀 예술
중국은 황하 문명을 기반으로 성장했으며, 광할한 영토에 여러 민족의 흥망성쇠가 거듭되면서 다채로운 문화가 전개되었다. 하나라(夏, 기원전 21~16세기)를 시작으로 상나라(商, 기원전 16~11세기)와 주나라(周, 기원전 11세기~256년)에 이르러 국가의 틀이 마련되었고, 정치적 혼란기였던 춘추전국시대(春秋戰國, 기원전770~221년)에는 새로운 가치와 규범을 제시하는 제자백가(諸子百家)의 등장으로 사상과 학문이 꽃을 피운다. 중국 최초의 통일 왕조 진나라(秦, 기원전 221~206년)와 그 뒤를 이은 한나라(漢, 기원전206~기원후220년)는 도량형과 문자를 통일하고 정치사회제도를 재정비하며 통합을 이루었다. 위진남북조시대(魏晉南北朝, 221~589년)에는 인도에서 전래된 불교가 융성하여 중국 전역에 사찰과 석굴사원이 조성되기 시작했다. 중국의 불교 사상과 미술 양식은 아시아 전역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당대(唐, 618~907년)에는 외래문화가 적극 수용되어 국제적인 성격의 문화가 융성하며 금속공예품과 삼채 도자기가 특히 발달하였다. 송대(宋, 960~1279년)에 이르면 전국의 가마에서 각기 개성을 살린 도자기들이 다양하게 생산되어 중국 도자문화가 크게 발전한다. 한편 자연의 위대함을 이상적으로 표현한 산수화와 함께 시서화(詩書畵)의 예술이라 부르는 문인화(文人畵)가 태동하여 원대(元, 1271~1368년)에는 복고적 문인화풍으로 이어진다. 명대(明, 1368~1644년)에는 고상한 취향의 문인화가 유행하고 궁정화원 소속 직업화가들의 활동이 활발했으며, 청대(淸, 1644~1911년)에는 서양화풍이 유행하면서 더욱 다채롭고 개성 있는 회화 세계가 펼쳐진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2022년)

<출처>

  1. 안내문, 중앙박물관, 2023년
  2. 위키백과, 2023년

[중앙박물관특별전 중국고대청동기] 일상 속 청동기

춘추전국시대를 지나면서 천자를 중심으로 한 신분질서는 느슨해지고 신분에 따른 사용을 규정한 열정제도도 지켜지지 않으면서 청동예기의 제작이 크게 줄어든다. 또한 철기가 대량생산되면서 무기나 공구 등은 철기로 대체된다. 반면에 일상 생활용품은 여전히 청동기로 제작되었다. 서역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이는 향로나 등잔, 사치품으로 사용된 거울이나 허리띠 등이 새로이 청동기로 만들어진다. 예기로 사용되었던 세발솥(鼎)이나 술통(壺) 등 여러 기물들도 일상생활 용품으로 사용되면서 화려한 장식 등은 간소화되고 실용성을 중시하게 된다.

중앙박물관특별전 생활속청동기 20211013_01<52. 고기 삶는 세발솥(용문정龍文鼎, Ding), 춘추 중기 기원전 7세기 전반 ~ 6세기 전반>

춘추시대가 되면 청동기는 의례보다 실생활에서 사용하기 위해 많이 만듭니다. 이런 실생활 청동기는 화려함보다는 기능을 더 중요하게 생각했습니다. 용무늬는 가장 중요한 무늬 중 하나입니다. 이 세발솥에 장식한 용무늬는 사방으로 연속되면서 겹칩니다. 혀를 내밀고 있는 용의 모습이 재미있습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21년)

중앙박물관특별전 생활속청동기 20211013_02<53. 곡식 담는 그릇(반룡문보蟠龍文盙, Fu), 춘추후기 기원전 6세기 전반 ~ 기원전 476년>

여러 기록에 따르면 기장, 벼, 조 등의 곡식을 담는 그릇 보(簠)는 서주 전기에 출현하였습니다. 뚜껑과 몸체는 모양이 같아 서로 뒤집어도 될 정도입니다. 몸체에 뚜껑을 닫으면 직육면체와 비슷한 모습이 됩니다. 뚜껑의 네 변에는 동물머리 모양의 작은 고리가 달려있고 경사진 벽에는 사방으로 연속하는 용무늬가 장식되었습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21년)

청동 예기의 변화
청동예기는 춘추시대에 급격한 변화를 맞이합니다. 많은 종류의 그릇이 사라지거나 형태가 변하고 새로운 예기가 등장하였습니다. 음식물을 담는 그릇인 대(敦)는 고기 삶는 세발솥인 정(鼎)과 곡물 담는 그릇인 보(盙)의 특징이 결합된 새로운 그릇입니다. 술병인 호(壺) 역시 몸통이 납작한 모양이 유행합니다. 전국시대를 거쳐 한나라에 이르면 대부분의 청동예기가 사라집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21년)

중앙박물관특별전 생활속청동기 20211013_08<54. 사슴 모양 돗자리 문진(녹형진鹿形鎭, Zhen), 서한 기원전 202년 ~ 기원후 8년>

중앙박물관특별전 생활속청동기 20211013_09<54. 사슴 모양 돗자리 문진(녹형진鹿形鎭, Zhen), 서한 기원전 202년 ~ 기원후 8년>

한나라 때까지 사람들은 대개 바닥에 앉아서 생활하였습니다. 이에 일어나고 앉을 때 돗자리 모서리가 말리거나 옷이 걸리는 것을 막기 위해 자리의 네 모서리를 누르는 돗자리 문진이 발달합니다. 이 사슴 모양 문진은 청동을 도금한 것입니다. 사슴의 등에는 조개껍질을 끼워 넣었으며, 흰색과 옅은 노란색 바탕에 크기가 다른 흑갈색 반점이 있어 열대나 아열대 바다의 조개임을 알 수 있습니다. 무겁게 하기 위해 문진 속에 납을 가득 채웠습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21년)

중앙박물관특별전 생활속청동기 20211013_10<55. 술단지(쌍룡락문령雙龍絡文령_Ling), 춘추후기 기원전 6세기 전반>

몸통에는 끈무늬로 네모 칸을 두었는데, 서로 연결되는 곳에는 매듭을 만들었습니다. 네모 칸 안은 용무늬를 장식하였습니다. 모든 용무늬는 작은 원점무늬를 바탕으로 하여 배열이 가지런합니다. 이런 장식은 진(晉)나라와 연나라 청동기에 많이 보입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21년)

등잔은 음식을 담는 용도의 예기인 두(豆)에 기름을 태워 불을 밝히는 용도로 사용되었다. 중국에서는 전국시대 이후에 제례의 용도 등으로 사용되기 시작했으며 한나라 때 다양한 형태의 등잔들이 만들어졌다. 아마도 서역의 영향을 받아 종교적인 의미가 더해진 것으로 보인다.

중앙박물관특별전 생활속청동기 20211013_11<56. 새모양 등잔(주작등朱雀燈, Deng), 서한 기원전 202년 ~ 기원후 8년>

한나라 때에는 동물 모양 등잔이 유행했습니다. 이 등은 주작 모양으로, 머리를 들고 꼬리는 세운 채 날개를 펴서 막 날아오르려는 모습입니다. 주작은 신령스러운 새로 상서로움을 나타냅니다. 청룡, 백호, 현무와 함께 사방을 지키는 신을 상징합니다. 비슷한 주작 모양 등잔이 허베이성의 유승 무덤에서 출토되었습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21년)

중앙박물관특별전 생활속청동기 20211013_12<57. 기러기 다리 모양 등잔(양신가안족등 陽身家雁足燈, Deng), 서한 기원전 36년>

다리 모양 등잔은 한나라의 궁전에서 자주 사용되는 등잔의 하나였습니다. 이 등잔의 접시 중심에는 원통형의 삽입구가 있어 기름으로 불을 붙여 사용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초를 사용할 수도 있었습니다. 등잔에는 서한 원제(元帝) 때인 기원전 36년 궁궐에서 사용한 뒤, 기원전 24년 성제(成帝)가 양평가(楊平家)에게 하사했던 사실을 기록했습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21년)

중앙박물관특별전 생활속청동기 20211013_13<58. ‘림광궁’ 글자가 있는 등잔(림광궁등林光宮燈, Deng), 서한 기원전 38년>

이 등잔은 원래 행등(行燈)이라 부르던 것입니다. 긴 손잡이가 붙어 있어 들고 걸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등 접시의 벽이 곧고 깊이는 얕으며 중심에는 심지 고정 못이 있습니다. 25자의 글자가 새겨져 있습니다. 림광궁은 서한 시기의 이궁(離宮)으로, 건소(建昭) 원년(기원전 38년)에 사용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21년)

등잔과 마찬가지로 향을 피우는 향로는 주나라 말기부터 나타나기 시작하여 한나라 때에는 박산향로가 크게 유행하였다. 향로는 인도에 성행했는데 불교의 전래와 함께 널리 사용된 것으로 보인다.

중앙박물관특별전 생활속청동기 20211013_14<59. 향로(훈로薰爐, Lu), 서한 기원전 202년 ~ 기원후 8년>

향로는 받침, 몸통, 뚜껑으로 구성됩니다. 일부 받침은 쟁반으로 제작되어 물을 담아 윤기 나게 하고 청결을 유지하였습니다. 이 향로는 ‘豆’와 닮았는데, 모양이 우아하고 곡선이 아름답습니다. 뚜껑의 정중앙은 불무늬를 표현하였고, 그 주위에 투조한 세 개의 양 머리를 장식했습니다. 얇고 짧은 손잡이 아래의 받침에는 용무늬가 장식되었습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21년)

청동거울(銅鏡)은 중국 상왕조부터 만들어졌는데 제사, 주술 등의 도구로 사용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신상이나 동물문양으로 장식하여 종교적인 의미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춘추전국시대 청동예기가 쇠퇴하면서 얼굴을 비치는 치장용으로 청동거울이 만들어졌으며 전국시대부터 당나라 때까지 많이 만들어졌다.

중앙박물관특별전 생활속청동기 20211013_16<60. ‘대락부귀’ 글자가 있는 거울(대락부귀반룡문경大樂富貴蟠龍文鏡, Jing), 서한 기원전 202년 ~ 기원후 8년>

청동거울은 한나라 때 가장 많이 만들어진 청동기로, 당시 일상용 청동기가 점차 칠기와 도자기로 대체될 때 청동거울은 오히려 중요한 발전을 이루었습니다. 뒷면에 3개의 꼭지를 만들고 주위에 용무늬를 두었습니다. 그 바깥에는 “大樂富貴, 千秋萬歲, 宜酒食”이라는 글을 둘렀습니다. 즐겁고 아름다운 생활에 대한 희망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21년)

중앙박물관특별전 생활속청동기 20211013_15<61. 거울 (사호문경四虎文鏡, Jing), 전국 기원전 475년 ~ 기원전 221년, 허난성 뤄양 진춘>

이 거울의 뒷면 가운데 다리 모양의 꼭지가 있습니다. 뒷면을 가득 채운 네 마리 호랑이의 머리는 가운데 꼭지 주위를 깨무는 모습입니다. 이런 호랑이무늬는 진(晉)나라 특유의 청동기 장식으로, 산시성 허우마 청동기 생산 유적에서 출토된 거푸집의 무늬와 굉장히 비슷합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21년)

대구(帶鉤)는 고대 귀족과 군인 등이 고대에는 ‘서비(犀比)’라고도 불렀다. 주로 청동을 주조하여 만들었는데 금, 은, 철, 옥 등으로 만들기도 했다. 대구는 서주 때 만들어지기 시작하여 진나라와 한나라 때 크게 유행했다. 대구는 허리를 매는 일상적인 용도뿐 아니라 지위를 나타내는 상징으로도 사용되었다. 용, 동물, 새 등의 형태로 만들어졌는데 다양한 가공기술을 적용하여 예술적으로 수준이 높은 유물이 많다. 한반도에서도 호랑이나 말 형태를 하고 있는 허리띠고리가 출토되고 있다. 당시 중국과의 교류관계를 보여주는 부분이다.

중앙박물관특별전 생활속청동기 20211013_21<62. 허리띠 고리(용문대구龍文帶鉤, Daigou), 전국 기원전 475년 ~ 221년>

허리띠 고리는 허리띠에 달아 옷의 매무새를 다듬는 것으로 춘추시대에 출현하였습니다. 이 허리띠 고리는 전체적으로 삽 또는 숟가락 모양입니다. 머리는 길고 뾰족한 부리를 가진 새머리 모양이며 긴 목으로 몸통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삽날과 비슷한 형태의 몸통에는 두 마리의 용이 장식되어 있으며 한 마리의 머리는 위를 향하고 다른 한 마리의 머리는 아래쪽을 향하여 몸통을 휘감고 있습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21년)

중앙박물관특별전 생활속청동기 20211013_20<63. 허리띠 고리(조문대구鳥文帶鉤, Daigou), 전국 기원전 475년 ~ 221년>

이 허리띠 고리는 물새 모양으로, 고리의 머리는 새의 머리 모양이고 몸통은 새의 몸통 모양입니다. 이처럼 날개를 편 물새 모양 허리띠 고리는 전국시대의 초나라 무덤에서 많이 발견되며, 대개 허리띠 위에 끼워 검을 차는 용도로 사용되었습니다. 전국시대와 서한시대의허리띠 고리는 물새 모양이 가장 많습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21년)

중앙박물관특별전 생활속청동기 20211013_19<64. 허리띠 고리(은상감기하문대구銀象嵌幾何文帶鉤, Daigou), 전국 기원전 475년 ~ 221년>

이 허리띠 고리는 머리는 짧고 작으며 목은 가늘고 깁니다. 몸통은 좁은 비파 모양입니다. 이런 형태의 허리띠 고리는 주로 전국시대에 조나라, 위나라, 한나라에서 유행합니다. 전체적으로 금박과 은박을 상감하여 구성한 기하무늬는 화려하고 눈부십니다. 인체의 허리 부분과 딱 맞는 곡면을 가지고 있습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21년)

중앙박물관특별전 생활속청동기 20211013_18<65. 허리띠 고리(도금녹송석용문대구鍍金綠松石龍文帶鉤, Daigou), 전국 기원전 475년 ~ 221년>

이 허리띠 고리의 몸통은 용모양이며 꼬리는 용의 머리입니다. 구불구불한 용 몸통 위에 터키석을 상감하였으며, 용의 발톱을 정교하게 새긴 뒤, 전체를 도금하였습니다. 이런 허리띠 고리는 전국 전기에 출현하며 전국 후기에 유행하였습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21년)

중앙박물관특별전 생활속청동기 20211013_17<66. 호랑이 모양 허리띠 고리(호문대구虎文帶鉤, Daigou), 전국 기원전 475년 ~ 기원전 221년>

사람 또는 동물 모양을 본떠 만든 허리띠 고리는 대칭을 이루지 않아 한 방향으로 걸 수밖에 없습니다. 고리의 머리는 짧고 작으며 목은 비교적 길고 몸통은 머리를 돌린 호랑이 모양입니다. 이런 허리띠 고리는 허난성과 산시성에서 많이 발견되었습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21년)

생활 청동기의 발달
전국시대 이후에는 춘추시대에 등장한 철기와 함께 칠기가 생활에서 광범위하게 사용되었지만, 황실과 귀족층에서는 여전히 청동기를 사용하는 습관을 유지하고 있었습니다. 이런 분위기 속에 청동기의 제작 방식 역시 변모합니다. 고기 삶는 세발솥인 정(鼎)과 술통인 호(壺)와 같은 전통적인 청동기는 예기로서의 특징이 사라지게 됩니다. 또 청동기에 있는 명문은 이전과 달리 무게나 용량 같은 실용적인 용도로 변하고 무늬가 없는 청동기의 제작수량도 늘어납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21년)

전국시대와 진한시대에는 다양한 장식이 더해진 청동기들이 많이 만들어졌다. 용, 새, 호랑이, 물고기 등 다양한 동물과 연꽃 같은 식물 등 화려한 무늬로 장식하거나 상감기법과 도금, 투조 등 새로운 기법을 적용하여 장식성을 극대화하였다.

중앙박물관특별전 생활속청동기 20211013_03<67. 상감 납작 술병(상감반사문편호 象嵌蟠蛇文編戶, Hu), 전국 후기 기원전 3세기 전반 ~ 221년>

납작 술병은 전국시대에 출현한 새로운 형태입니다. 앞면과 뒷면은 구리선으로 네모 칸을 만들고 그 안을 당시 유행하던 인모법(印模法)으로 만든 날개무늬로 장식하였습니다. ‘인모’란 흙을 구워 만든 무늬본입니다. 각종 무늬를 진흙판에 새겨 구워 무늬본을 만듭니다. 이런 무늬본은 반복해서 사용할 수 있어 청동기 제작 시간을 크게 감소시켰습니다. 청동기 주조 기술의 큰 발전으로서 청동기 장식에 예술성보다 효율성에 무게를 두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21년)

중앙박물관특별전 생활속청동기 20211013_04<68. 상감네모술병(상감기하문방호 象嵌幾何文方壺, Hu), 전국 후기 기원전 3세기 전반 ~ 221년)>

이 술병은 가로 단면이 네모 모양으로 입술이 작고 목이 곧습니다. 곡선인 양쪽 어깨에는 짐승 얼굴에 연결된 고리를 붙였습니다. 몸통은 우아한 곡선을 이룹니다. 전체 무늬는 마름모무늬가 서로 교차하여 겹치는데 위아래로 맞물려 복잡한 구조를 이룹니다. 굵은 무늬와 가는 무늬 모두 구리로 상감했는데 일부는 탈락되었습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21년)

중앙박물관특별전 생활속청동기 20211013_05<69. 물고기 모양 술병(어형호 魚形壺), 서한 기원전 202년 ~ 2022년>

이 술병은 입이 작고 목은 가늘며, 둥글게 부푼 몸통에는 비늘 무늬를 두었습니다. 밖으로 벌어진 굽다리는 꼬리지느러미를 선으로 표현하였습니다. 전국시대에 청동기의 표면에 끌과 정 같은 금속공구를 사용하여 점과 선을 새기거나 면을 파내어, 인물이나 동물 또는 생활 장면을 묘사하는 기법이 출현하였습니다. 이는 완전히 새로운 장식 기술로 서한시대에 유행합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21년)

중앙박물관특별전 생활속청동기 20211013_06<70. 거북이와 봉황받침 박산향로(龜鳳座博山爐, Lu), 동한 25년 ~ 220년>

중앙박물관특별전 생활속청동기 20211013_07<옆에서 본 모습>

뚜껑은 전설 속의 박산이고, 기둥은 날개를 펼친 봉황입니다. 봉황은 머리를 위로 들고 부리로 향로의 받침을 받치고 있습니다. 발로 머리를 든 거북이를 밟고 있으며 쟁반으로 연결됩니다. 봉황으로 만든 기둥은 진한 무덤에서도 보이는데, 기둥 아래에 연결된 거북이 받침은 전설 속 바다에 있는 산을 거북이가 등에 이고 있다는 것과 연결됩니다. 한나라 사람들의 신선사상을 사실적으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21년)

장식 청동기의 유행
전국시대와 진한시대에 유행한 일상용 청동기에는 다양한 장식이 더해집니다. 청동기 장식의 특징은 크게 두 갈래입니다. 하나는 화려한 무늬를 장식하는 것으로 용, 새, 호랑이, 물고기 등 다양한 동물과 연꽃 같은 식물을 사용했습니다. 다른 하나는 상감기법과 도금, 투조 등 새로운 기법을 채택하여 청동기의 장식성을 극대화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발전은 거푸집 제작에 밀랍을 사용하는 실랍법(失蠟法)의 등장으로 가속화되었습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21년)

4. 일상 속 청동기
춘추전국시대를 거치면서 주나라의 봉건질서가 약해지고 대량으로 철기도 대량으로 생산되기 시작합니다. 신분 질서를 유지하고자 만들었던 청동기는 사람들의 일상 속으로 들어옵니다. 춘추시대 중기가 되면 서주의 봉건제가 약해집니다. 이에 따른 천자를 정점으로 하는 신분 질서 역시 느슨해집니다. 신분에 따른 청동기 사용 규칙인 열정제도 역시 엄격하게 유지되지 않아, 전통적인 청동예기의 제작은 크게 줄어들었습니다. 또한 새롭게 철기가 등장하여 청동기 문화는 큰 변화를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전국시대가 되면 철을 생산하는 기술이 더욱 발전하여 무기나 공구 등은 급속히 철기로 대체됩니다. 무기나 공구가 아닌 일상 생활용품은 청동기로 제작되었습니다. 향로나 등잔 등 연회용구가 새롭게 등장하였고, 개인의 치장에 사용한 거울이나 허리띠 고리도 만들어집니다. 철기와 함께 청동기 제작기술도 발달하여 전국시대는 상나라 이후 가장 수준 높은 청동기가 제작되었습니다. 신분 질서를 유지하는 수단이었던 청동기는 춘추전국시대를 거치면서 사람들의 일상 속으로 들어왔습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21년)

<출처>

 

  1.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21년
  2. 안내문, 중앙박물관, 2021년
  3. 위키백과, 2023년
  4. 바이두백과(https://baike.baidu.com), 2023년
  5.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소, 2023년

 

청동 예기의 변화
청동예기는 춘추시대에 급격한 변화를 맞이합니다. 많은 종류의 그릇이 사라지거나 형태가 변하고 새로운 예기가 등장하였습니다. 음식물을 담는 그릇인 대(敦)는 고기 삶는 세발솥인 정(鼎)과 곡물 담는 그릇인 보(盙)의 특징이 결합된 새로운 그릇입니다. 술병인 호(壺) 역시 몸통이 납작한 모양이 유행합니다. 전국시대를 거쳐 한나라에 이르면 대부분의 청동예기가 사라집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21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