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둔황 아단국가지질공원(敦煌雅丹国家地質公園)

둔황 도심에서 서북쪽으로 168km 떨어진 곳에 위치한 둔황아단국가지질공원(敦煌雅丹国家地質公園)이다. . 지표면이 바람과 비에 의해 침식되면서 단단한 암석만 남아 산, 성벽, 탑 등 다양한 형상을 만들어내고 있다. 사막 가운데 기암괴석들이 우뚝 솟아 있어 미국 서부 영화에서 볼 수 있는 경관을 연출하고 있다. 중국 영화나 드라마 뿐 아니라 한국 영화나 드라마에도 사막을 배경으로 한 장면에 자주 등장했던 곳이다. 마귀성이라도 부르며, 기암괴석 형상에 다양한 이름이 붙여졌으며 전설들을 만들어 내고 있다. 국가 AAAA급 명승지로 지질학을 체험할 수 있는 지질공원으로 운영되고 있다.

SANYO DIGITAL CAMERA<둔황국가지질공원 전경>

공원은 만리장성 서쪽 끝 옥문관에서 25km 정도 거리에 위치하고 있다. 옥문관을 나서 사막길에 볼 수있었던 이채로운 풍경이은 많은 전설을 만들어 냈던 것으로 보인다. 옥문관에서 사막을 가로질러 물이 흘렀던 강을 따라서 도로가 개설되어 있는데 주변에 모습의 바위들을 볼 수 있다. 지금도 비가 오거나 눈이 많이 녹으면 물이 이 곳을 흐르는 것으로 보인다. 도로 곳곳에 강을 건너는 다리가 설치되어 있다.

SANYO DIGITAL CAMERA<옥문관에서 아단지질공원으로 가는 길>

SANYO DIGITAL CAMERA<가는 길에 볼 수 있는 바위산과 물이 흘렀던 강>

SANYO DIGITAL CAMERA<바위 절벽>

공원 입구에는 탐방객들을 위한 지질학박물관이 있어 공원 형이 형성된 역사를 설명해 주고 있다. 아름다운 기암괴석이 명소까지 갈려면 승합차를 타고 들어가야 한다.

SANYO DIGITAL CAMERA<공원 입구>

SANYO DIGITAL CAMERA<공원 입구 박물관>

SANYO DIGITAL CAMERA<뒷편 바위산>

SANYO DIGITAL CAMERA<뒷편으로 보이기 시작하는 기암괴석들>

SANYO DIGITAL CAMERA<공원에서 처음으로 볼 수 있는 사자바위>

SANYO DIGITAL CAMERA<바람침식에 의해 바위만 남은 산>

둔황 아단은 빙하기가 끝나고 둔황 남쪽 고지대에서 흘러내린 빙하가 녹은 물로 계곡이 형성된 후 오랜 세월에 걸쳐서 바람에 의한 침식과 폭우에 의한 침식이 반복되면서 바람 침식 계곡이 형서어되었다고 한다. 이를 보여주듯 계곡은 한쪽 방향을 향하고 있다.

SANYO DIGITAL CAMERA<오랜 침식에 의해 형성된 계곡>

SANYO DIGITAL CAMERA<다양한 형상의 바위들을 볼 수 있는 명소>

SANYO DIGITAL CAMERA<계곡을 형성하고 있는 기암괴석>

SANYO DIGITAL CAMERA<기암괴석>

SANYO DIGITAL CAMERA<거대한 바위산>

SANYO DIGITAL CAMERA<기암괴석>

SANYO DIGITAL CAMERA<북쪽으로 끝없이 이어지는 마른 사막>

<출처>

  1. 위키백과, 2020년
  2. 百度百科, 2020년

둔황 만리장성 양관(陽關)과 양관박물관

중국 둔황에 있는 한대(漢代) 만리장성 관문인 양관(陽關)이다. 한 무제 때 흉노를 공략하기 위해 하서사군(河西四郡)을 설치하면서 옥문관과 함께 세워졌다. 옛 실크로드 남도(南道)로 나가는 관문으로 당대(唐代) 인도를 방문했던 현장법사가 양관을 통해 중국으로 돌아왔다. 양관 일대는 소륵하(疏勒河, Shule River) 주변 오아시스를 중심으로 크게 번창했는데 송대(宋代) 이후 실크로드와 함께 쇠퇴하였다. 당시 쌓았던 성벽은 남아 있지 않으며 언덕에 봉수대터만 볼 수 있다. 지금은 양관박물관이 세워져 실크로드 관련 유물을 전시하고 있으며 한대 만리장성 관문을 재현해 놓고 있다.

SANYO DIGITAL CAMERA<재현해 놓은 옛 양관과 성벽>

만리장성 양관은 둔황 도심에서 남서쪽으로 75 km 떨어진 곳에 위치하고 있다. 타클라마칸 사막 언저리에서 쿤룬산맥을 따라 인도 방면로 이어지는 실크로드 남도 관문이다. 한대(漢代) 이래 많은 왕조들이 서역을 장악하기 위해 군대를 이곳을 통해 파견했으며, 인도를 향해 순례를 떠났던 승려들이 관문을 지나갔다.

SANYO DIGITAL CAMERA<유일하게 남아 있는 양관 부근 봉수대>

양관박물관에는 엣 양관의 모습을 재현해 놓고 있다. 벽돌로 쌓은 명청대 성벽에 비해 성벽이 높지 않으며 내부도 넓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양관 성문, 성벽, 치성, 공성과 방어무기 등을 재현해 놓고 있다.  옥문관 주변 있는 한대 장성의 원래 모습을 볼 수 있다.

SANYO DIGITAL CAMERA<양관 성벽>

1973년 양관 일대에 대한 발굴.조사가 있었는데 수많은 성벽터, 건물터 등이 확인되었으며 석비, 청동제 무기, 동전, 도기 등 많은 유물들이 출토되었다. 양관박물관에 출토된 유물들이 전시된 것으로 보인다.

SANYO DIGITAL CAMERA<양관박물관 출입문이자 성문>

둔황지역은 주변 오아시스에서 자라는 갈대와 모래자갈을 섞어서 쌓았는데 비가 없는 사막지역에 있어 거의 원형에 가까운 모습을 남겨 놓고 있다. 진시황이 건설했던 옛 만리장성의 원형을 잘 보여 주고 있다.

SANYO DIGITAL CAMERA<갈대와 자갈을 섞어 쌓은 성벽>

SANYO DIGITAL CAMERA<옥문관 부근에 남아 있는 엣 성벽>

SANYO DIGITAL CAMERA<양관 부근 오아시스에서 볼 수 있는 갈대>

SANYO DIGITAL CAMERA<성문과 모서리를 호위하는 치성>

SANYO DIGITAL CAMERA<성벽 안쪽에 재현해 놓은 병사들의 숙영지>

성벽 바깥에는 북방 유목민과 전쟁에서 많이 사용된 공성무기들을 전시해 놓고 있다. 실제 유목민들이  사용했는지 알 수 없지만 다양한 기록으로 전해져 오는 옛 중국 공성무기들을 살펴볼 수 있다.

SANYO DIGITAL CAMERA<운제(雲梯), 성벽을 오르는 사다리 수레>

SANYO DIGITAL CAMERA<궁수들을 성벽높이 만큼 들어올려 불화살공격을 하는 수레>

SANYO DIGITAL CAMERA<투석기>

SANYO DIGITAL CAMERA<망루차처럼 보이는 공성무기>

SANYO DIGITAL CAMERA<적의 화살을 막는데 사용한 수레>

SANYO DIGITAL CAMERA<성문을 부수는데 사용한 공성무기>

SANYO DIGITAL CAMERA<앞에 칼이 있어 성문이나 밀집대형을 돌파할 때 사용하는 수레>

SANYO DIGITAL CAMERA<성벽을 오르는 병사를 공격하는 무기>

SANYO DIGITAL CAMERA<비슷한 용도의 무기>

<출처>

  1. 위키백과, 2020년
  2. 실크로드 문명기행, 정수일, 한겨레출판, 2006년
  3. 실크로드사전, 편저 정수일, 창비, 2013년
  4. 百度百科, 2020년

둔황 만리장성 옥문관(玉門關)과 한장성(漢長城)

중국 둔황에 있는 한대(漢代) 만리장성 서쪽 끝 관문인 옥문관(玉門關)이다. 한 무제 때 흉노를 공략하기 위해 하서사군(河西四郡)을 설치하면서 옥(玉)을 수입하던 통로라 하여 옥문관이라 불렀다. 옥문관은 설치된 이래 여러 차례 위치를 옮겼으며 당대(唐代)까지 서역과 연결되는 중요 교통로로 번창하였다. 둔황 북서쪽 90km 정도 떨어진 곳에 위치한 옥문관 유적은 1907년 영국 탐험가가 소방반성(小方盤城)을 조사하다가 옥문도위(玉門都尉)라 적힌 목간을 발견하면서 그 위치가 확인되었다. 현재의 유적은 당나라 때 건설된 것이다.

옥문관은 ‘옥이 들어오는 문’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으며, 고대 옥의 산지인 타클라마칸 사막 남쪽에 위치한 허텐이라고 곳에서 중국의 은.주 시대부터 옥을 수입해 왔다고 한다. 이는 중국이 서역과 무역을 하고 서역을 경영하고자 했던 큰 이유 중의 하나라고 한다. 한무제때는 이 곳에 ‘옥문관도위’를 설치하고 흉노를 공략하기 위해서 수차례 출병하였으며, 실크로드를 개척한 장건 역시 아마도 이 곳을 거쳐서 서역으로 떠났던 것으로 보인다.

SANYO DIGITAL CAMERA<옥문관 유적>

옥문관은 투루판을 거쳐 천산산맥을 따라 중앙아시아로 연결되는 오아시스 북로의 첫번째 관문이다. 옥문관을 지나면 중국땅을 떠나 서역으로 나가는 것으로 중화사상을 가진 중국인의 입장에서는 관문 바깥이 세상밖이라 여겨졌다. 둔황에서 옥문관까지 대중교통으로 갈 수는 없고 택시를 이용해서 찾아갈 수 있다.

SANYO DIGITAL CAMERA<옥문관 유적지 출입문>

SANYO DIGITAL CAMERA<안쪽에서 본 모습>

옥문관 주위는 사막이 끝없이 펼쳐져있고, 멀리 지평선이 보인다.  사막에서는 불어오는 거센 모래바람은 ‘삭풍(朔風)’이라는 단어를 만들어 냈을 분위기이다. 수도 장안(시안)에서 상당히 멀리 떨어져 있는 이 곳에 주둔했던 병사들에게 변경이라는 의미를 뼈저리게 느끼게 했을 것이다. 초원에서 흉노 기마병이 갑자가 몰려오는 것을 상상해 보면, 장관을 이루었을 것으로 보이며 변경을 지키는 병사들에게는 공포 그 자체였을 것이다.

SANYO DIGITAL CAMERA<옥문관 주위 사막>

목간이 발견되어 옥문관이었음이 확인된 관성(關城)이다. 반상 작은 밥상처럼 생겨 소방반성(小方盘城)이라 불렸다. 관성은 동서로 24m, 남북으로 26.4m이 북쪽과 서쪽에 출입문을 두고 있다. 황토로 성벽을 쌓았는데 높이 10m, 상부 너비 3m, 하부너비 5m이다.

SANYO DIGITAL CAMERA<옥문관 관성>

SANYO DIGITAL CAMERA<관성 서문>

SANYO DIGITAL CAMERA<흙으로 쌓은 관성 성벽>

SANYO DIGITAL CAMERA<북쪽과 동쪽 성벽>

SANYO DIGITAL CAMERA<북문>

SANYO DIGITAL CAMERA<동쪽 성벽>

SANYO DIGITAL CAMERA<남쪽 성벽>

이 곳 사막은 모래가 거의 없고 메마른 흙만 끝없이 이어지고 있다. 장성 바깥쪽으로는 지금은 물을 볼 수 없지만 소륵하(疏勒河, Shule River)라는 강이 흘렀으며 주위는 초원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사막화가 진행되면서 사람이 살기 힘들어져 송대 이후 옥문관과 실크로드는 그 중요성이 크게 줄었다. 

SANYO DIGITAL CAMERA<옥문관 남쪽 지평선>

SANYO DIGITAL CAMERA<옥문관 주변에 보이는 봉수대 자리>

새원(塞垣)이라 불린 옥문관 주변 한장성(漢長城)은 옥문관 주위 한무제 때 흉노를 공락하기 위해 실크로드를 개척하면서 건설되었다.  둔황 동쪽 안서(安西)부터 서쪽 로프노르 호수부근까지 약 150km이르며 현재 남아 있는 유적은 동서로 45km, 폭 500m 정도로 분포하고 있다. 현존하는 유적으로 고성(古城) 2곳, 봉수대 20곳, 성벽 18 정도가 남아 있으며 그중 옥문관과 대방반성(大方盘城)이라 불리는 고성이 잘 알려져 있으며 여러곳의 창고터가 있다.

SANYO DIGITAL CAMERA<옥문관 부근 한대 장성 유적>

명대에 벽돌로 쌓은 북경 주변 만리장성에 비해서 보잘 것 없어 보이지만, 당나라 때까지 유지되었던 성벽이다. 한무제때 명장 곽거병, 서역으로 가는 실크로드를 개척한 장건, 후한때 명장 반초, 고구려인 후손으로 서역을 경영하였던 고선지 장군까지 수많은 역사적인 인물들이 이 곳을 거쳐갔던 역사적인 의미가 큰 유적이다.

SANYO DIGITAL CAMERA<한장성 성벽>

만리장성 성벽은 지역에 따라 다른 형태로 쌓았는데 둔황지역은 주변 오아시스에서 자라는 갈대와 모래자갈을 섞어서 쌓았는데 비가 없는 사막지역에 있어 거의 원형에 가까운 모습을 남겨 놓고 있다. 진시황이 건설했던 옛 만리장성의 원형을 잘 보여 주고 있다.

SANYO DIGITAL CAMERA<갈대와 자갈을 섞어 쌓은 고대 둔황지역 성벽>

SANYO DIGITAL CAMERA<가까이서 본 모습>

SANYO DIGITAL CAMERA<안쪽에서 본 모습>

SANYO DIGITAL CAMERA<인근 양관에 재현해 놓은 옛 성벽 모습>

옥문관 앞쪽으로는 로프노로 호수로 흘러가는 지금은 말라버린 소륵하가 있었다. 사방이 사막으로 되어 있는 지금과는 달리 옛날에는 물이 부족하지는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인근 오아시스에서 성벽을 쌓았던 갈대를 볼 수 있다.

SANYO DIGITAL CAMERA<인근 오아시스와 근처에서 자라는 갈대들>

SANYO DIGITAL CAMERA <사막을 따라서 이어지는 만리장성 흔적>

SANYO DIGITAL CAMERA<멀리 보이는 봉수대>

<출처>

  1. 위키백과, 2020년
  2. 실크로드 문명기행, 정수일, 한겨레출판, 2006년
  3. 실크로드사전, 편저 정수일, 창비, 2013년
  4. 百度百科, 2020년

둔황 명사산(鳴沙山)과 월아천(月牙泉), 실크로드를 대표하는 풍경

중국과 서역을 연결하는 실크로드를 대표하는 장면으로 잘 알려진 둔황(敦煌) 명사산(鳴沙山)과 월아천(月牙泉)이다. 명사산은 감숙성 둔황시 남쪽에 자리잡고 있는 모래언덕으로 모래들이 바람에 날리는 소리가 울림소리처럼 들린다고 하여 명사산(鳴沙山)이라 부르며 그 아래 샘이 솟는 작은 오아시스인 월아천이 사막의 극적인 풍경을 잘 표현하고 있어 예로부터 둔황을 대표하는 명소로 많은 사람들이 찾고 있다. 명사산과 월아천은 낙타를 타고 실크로드를 출발하는 장면으로 많이 등장하지만 실제로는 만리장성 서쪽 끝 관문인 옥문관(玉門關)과 양관(陽關)이 실크로드 출발점이었다.

SANYO DIGITAL CAMERA<둔황 명사산과 월아천>

실제 둔황 도심에서  남쪽으로 5km 정도 떨어진 곳에 위치하고 있는 도심 공원에 가깝다. 명사산은 일몰 풍경이 아름다워 그 시간에 맞추어서 많은 관광객이 찾고 았다. 입구에서는 사막을 걷기 위해서는 덪신이 필요하다며 돈을 받고 대여해 주고 있으며, 명사산 사막을 즐기기 위한 낙타들이 관광객을 기다리고 있다.

SANYO DIGITAL CAMERA<명사산 출입문>

SANYO DIGITAL CAMERA<관광객을 기다리는 낙타들>

SANYO DIGITAL CAMERA<출입문을 들어서면 보이는 명사산 모래언덕>

명사산은 서쪽 막고굴에서 시작하여 동서 약 40km, 남북으로 약 20km에 이르는 모래언덕으로 최고 높이가 1,700m 정도이나 상대 높이 100 m 정도 크고 작은 모래언덕들이 연결되어 있다. 지형이 수시로 변하는 사막에서 오랜세월 현재와 비슷한 모습을 유지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명사산에서 보이는 해가 뜨는 일출이나 해가 지는 일몰 풍경이 아릅답다.

SANYO DIGITAL CAMERA<명사산 모래언덕>

명사산을 오르는 방법은 낙타를 타고 모래산을 천천히 올라가는 방법과 월아천 근처의 모래산에 설치해 놓고 있는 나무계단을 타고 올라가는 방법이 있다. 사막을 즐기고 체험을 하고자 하는 사람은 낙타를 타고 모래언덕을2~3시간 올라가서 일출이나 일몰을 감상하며, 일정이 바쁘거나 체력이 달리는 사람은 월아천 부근 모래언덕에 설치된 나무계단을 타고 올라가 그 아래의 월아천 풍경을 감상하게 된다.

SANYO DIGITAL CAMERA<낙타들이 기다리는 휴게소>

SANYO DIGITAL CAMERA<낙타를 타고 모래언덕을 오르는 관광객들>

SANYO DIGITAL CAMERA<낙타를 타고 실크로드를 떠나는 풍경을 만들고 있다.>

입구에서 명사산 월아천까지는 약 1km 정도 떨어져 있는데 꼬마열차를 타고 들어가야 한다. 명사산을 다양한 풍경을 감상할 수 있다.

SANYO DIGITAL CAMERA<꼬마열차에서 보이는 입구>

SANYO DIGITAL CAMERA<멀리 보이는 월아천 입구>

SANYO DIGITAL CAMERA<사막 가운데 있는 월아천 입구 휴게소>

SANYO DIGITAL CAMERA<휴게소를 지나면 보이는 월아천과 월아산장>

SANYO DIGITAL CAMERA<모래바람을 느낄 수 있는 월아천 맞은편 모래언덕>

월아천(月牙泉)은 길이 200m, 폭 30m의 작은 오아시스로 초생달처럼 생겼다. 월아천 옆에는 드라마 『선덕여왕』에 등장했던 월아산장이 있다. 월아산장은 오층목탑처럼 생긴 건물을 중심으로 여러동의 중국풍 유곽의 모습을 재현한 것으로 1997년에 만든 것이라 한다. 사막 주거양식과는  동떨어진 중국 강남지역 건축양식이지만, 많은 관광객들이 찾는 명소로 이곳을 대표하는 장면으로 자리잡고 있다.

SANYO DIGITAL CAMERA<월아산장 누각건물>

SANYO DIGITAL CAMERA<2층 누각>

SANYO DIGITAL CAMERA<객실 건물>

SANYO DIGITAL CAMERA<정원의 작은 정자>

SANYO DIGITAL CAMERA<누각에서 내려다 보이는 월아천>

월아천은 사막에 샘이 솟는 오아시스 특징을 극적으로 보여주는 장소이다. 월아천의 존재는 기록만으로도 2천년이 넘는 곳이며 그 동안 물이 마르지 않았다고 한다. 현재는 둔황지역 관개농업의 발달로 지하수 수위가 내려가 오아시스가 마르고 있다고 한다. 명사산 입구에 큰 연못 두개를 만들어 다른 곳에서 물을 끌어 월아천의 수위를 유지하고 있다고 한다.

SANYO DIGITAL CAMERA<월아천과 주위에 자라고 있는 식물들>

SANYO DIGITAL CAMERA<월아천 맞은편 모래언덕>

OLYMPUS DIGITAL CAMERA<인근에 인공적으로 조성해 놓은 연못>

월아천 뒷편 모래언덕은 관광객들이 많이 찾는 명소로 언덕위에서 월아천과 월아산장 풍경을 감상할 수 있으며, 모래언덕에서 썰매를 타고 내려올 수 있다.

SANYO DIGITAL CAMERA<월아천 뒷편 모래언덕>

SANYO DIGITAL CAMERA<모래언덕을 오르는 나무계단>

SANYO DIGITAL CAMERA<모래썰매를 대여해 주는 곳>

SANYO DIGITAL CAMERA<모래썰매>

SANYO DIGITAL CAMERA<모래가 나무를 덮고 있는 이국적인 풍경>

OLYMPUS DIGITAL CAMERA<언덕에서 내려다 보이는 월아천과 월아산장>

<출처>

  1. 위키백과, 2020년
  2. 중국 국가급풍경명승구총람, 도서출판 황매희, 2011년

둔황 막고굴(莫高窟), 혜초 왕오천축국전이 발견된 석굴사원

중국 감숙성(甘肅省) 둔황(敦煌)에 있는 대표적인 천불동인 막고굴(莫高窟, Mogao Cave)이다. 명사산 동쪽 벼랑에 남북으로 약 1.6km 걸쳐 약 600 여개의 동굴이 남아 있으며 약 2,400여 개의 불상이 안치되어 있다. 오호십육국 때 처음 조성되기 시작되어으며 원대(元代)까지 약 1,000에 걸쳐 조성되었다.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것은 5세기 북양 때 조성된 것이며 북위 때 조성된 굴에는 서역의 영향을 많이 받았으며, 북주(北周)와 수당(隋唐) 조성된 굴에서는 중국적인 모습을 많이 보인다. 명대(明代) 이후 중앙아시아의 교류가 줄여들면서 교역도시로서 둔황의 역할이 줄어들면서 막고굴도 쇠퇴하게 되었다. 19세기 말 장경동에서 많은 고문서들이 발견되면서 서구에 그 존재가 알려졌으며, 혜초의 『왕오천축국전』도 이곳에서 발견되었다.

SANYO DIGITAL CAMERA<둔황 막고굴>

들어가는 길

막고굴은 둔황 도심에서 동남쪽으로 약 20km 떨어진 명사산 절벽에 있는 석굴사원들을 말한다. 자동차로 사막길을 1시간 정도 달리면 사막에 있는 바위산이 보이는데 그 곳에 막고굴이 조성되어 있다. 막고굴이 있는 바위산을 흐르는 강 건너편에 주차장이 있으며 약 10여분 걸으면 막고굴에 도착한다.  매표소에서 입구에 들어가는 길에는 북송(서하)시대에 조성된 고승들이 사리탑을 볼 수 있고, 다리를 건너면 최근에 만든 중국풍의 목조 패루가 있으며 석굴을 파서 만든 세계문화유산인 막고굴을 볼 수 있게 된다

SANYO DIGITAL CAMERA<주차장에서 막고굴로 들어가는 길>

막고굴이 있는 바위산 앞에는 평소에 강물은 없지만, 비가 오거나 눈이 많이 녹았을 때만 물이 흐르는 강이 있다.  불교에서 바깥세상과 부처님의 세상을 분리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오랜 세월 이 곳을 흐른 강물이 절벽을 만든 것으로 보인다.

SANYO DIGITAL CAMERA<막고굴 바위산 앞을 흐르는 강>

SANYO DIGITAL CAMERA<주위 흩어져 있는 승탑들>

SANYO DIGITAL CAMERA<강을 건너는 다리>

SANYO DIGITAL CAMERA<막고굴 입구 패루>

 장경동이 있는 북쪽 석굴

막고굴은 사막 한가운데 위치하고 있기는 하지만 오랜 세월 실크로드 중심지였던 둔황 도심에서 약 20 km 정도 거리에 있어 걸어서 반나절이면 도착할 수 있는 곳에 위치하고 있다. 수백개의 석굴들이 오늘날 아파트처럼 좁은 거리에 몰려있어 한적한 곳에 수행하는 선종계열 사찰과는 약간 거리가 있는 듯 하다. 신라 혜초 스님이 쓴 ‘왕오천축국전’을 비롯하여 수 많은 언어로 쓰여진 고문서들이 발굴된 16굴은 막고굴 중 북쪽에 위치하고 있다. 북쪽에는 석굴을 조성하는데 종사했던 이름없는 장인들이 거처했던 불상이나 벽화가 없는 석굴들이 있다.

SANYO DIGITAL CAMERA<막고굴 출입문>

막고굴 북쪽에는 『왕오천축국전』을 비롯한 수 많은 고문서들이 발굴된 ‘장경동(藏經洞)’이라 불리는 제16굴이 있다. 1900년 둔황 막고굴을 지키던 도사가 제16굴을 청소하다가 우연히 밀실에 숨겨둔 5만여점의 고문서를 발견하여 영국인에게 넘기면서 세상에 널리 알려졌다. 이후 여러차례 유물들이 서 유럽인들에게 넘겨졌다.

SANYO DIGITAL CAMERA<장경동이 있는 16호굴 부근 석굴들>

석굴의 크기는 일정하지 않으며, 제일 큰 것은 10층 높이 정도 되는 것도 있고, 작은 토굴도 있다. 석굴 내부는 밖에서 보는 것 보다는 훨씬 넓고 시원하다. 현재의 석굴 입구는 석굴 보호와 관람 편의성을 위해 최근에 만들어 졌다. 사다리를 타고 들어가거나 나무 계단을 이용했던 것으로 보인다.

SANYO DIGITAL CAMERA<북쪽편 석굴들>

석굴들 중 크고, 목조로 만든 출입문과 처마, 벽화가 남아 있는 석굴들은 위층에 있고 아래에는 작은 석굴들이 자리잡고 있다. 석굴들은 지역 유력자의 후원을 받았으며, 규모가 큰 석굴에는 이름난 승려가 기거하면서 수행하였고 한다.

SANYO DIGITAL CAMERA<다양한 규모의 석굴들>

SANYO DIGITAL CAMERA<벽화, 지붕, 출입문 등을 제대로 갖춘 큰 규모의 석굴>

SANYO DIGITAL CAMERA<비천상 벽화가 유명한 428호 굴>

SANYO DIGITAL CAMERA<다양한 규모와 형태의 석굴들>

SANYO DIGITAL CAMERA <296굴, 421호굴 주변>

SANYO DIGITAL CAMERA<벽화, 지붕, 출입문을 제대로 갖춘 큰 규모의 석굴>

SANYO DIGITAL CAMERA<273호굴 주변>

SANYO DIGITAL CAMERA<’오대산형상도’로 유명한 61호굴 주변>

SANYO DIGITAL CAMERA<아파트를 연상시키는 석굴들>

SANYO DIGITAL CAMERA<아래쪽 석굴들>

북대불전

막고굴을 높이 34.5m 의 제96호굴인 북대불전(北大佛殿)이다. 외부에 드러난 처마만으로도 약 10층 건물처럼 보이는 거대한 석굴이다. 내부에는 미륵불 입상이 모셔져 있으며, 외부는 7층 이상의 목탑과 비슷한 모양을 하고 있다. 북대불전은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오대십국 때 세워진 석굴이라고 한다. 당시 이지역을 지배한 서하(西夏) 유력자의 지원을 받아서 세워진 것으로 보인다. 북대불전은 오랜 세월에 유지되어 왔으며, 미륵불상은 수차례에 걸쳐 보수가 이루어졌다고 한다. 통일신라 때 미륵불상을 모신 장륙전과 같은 의미를 갖는 것으로 보인다.

SANYO DIGITAL CAMERA<막고굴 96호굴>

SANYO DIGITAL CAMERA<96호굴 입구>

SANYO DIGITAL CAMERA<96호굴 앞에 세워진 비석>

SANYO DIGITAL CAMERA<94호굴>

SANYO DIGITAL CAMERA<94호굴 벽화>

SANYO DIGITAL CAMERA<96호굴 북쪽 석굴들>

막고굴에는 벽화와 불상들이 남아 있는 곳은 474개라고 한다. 막고굴에는 전체 4,500 ㎡에 이르는 벽화가 그려져 있는데, 방문객들은 극히 일부분만 볼 수 있다. 막고굴에는 석굴 내부에만 벽화를 그려놓은 것이 아니라 외부에도 벽화들을 남겨놓고 있다. 막고굴에 그려진 벽화는 르네상스 시대에 사용된 프레스코 기법으로 회반죽 위에 안료를 이용해서 벽화를 그렸다.

SANYO DIGITAL CAMERA<북대불전 주변에 남아 있는 벽화>

SANYO DIGITAL CAMERA<벽화>

막고굴 남쪽으로는 와불이 있는 158호굴을 비롯하여 남대불이 있는 130호굴 유명한 석굴들이 많다. 석굴들은 수당(隋唐)대에 만들어진 것이 많지만 서하(西夏) 때 벽화와 불상들이 조성되고 보수되었다고 한다. 현재 볼 수 있는 유물들은 후대에 만들어진 곳이 많고 청대(淸代)까지 보수가 이루어 진 것으로 보인다.

SANYO DIGITAL CAMERA<북대불전 남쪽 석굴들>

SANYO DIGITAL CAMERA<다양한 형태 석굴들>

SANYO DIGITAL CAMERA<석굴을 오르는 계단>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둔황 막고굴 유물

국립중앙박물관에서도 중앙아시아 석굴사원에서 약탈한 문화재들을 다수 소장.전시하고 있다.  20세기초 일본 교토 니시혼간지의 주지승인 오타니 고즈이라는 사람이 대규모의 자본과 인력을 동원하여 3차에 걸쳐서 중앙아시아 원정을 떠났는데, 현지에서 약탈과 구매 등의 방법으로 무려 5천여점에 이르는 유물을 수집했으며 이를 오타니 컬렉션이라고 있다.

<여행하는 승려(行脚僧圖)>는 경전을 짊어지고 여행하는 승려의 모습을 그린 것이다. 주인공은 노란 점과 붉은 선으로 장식된 검은색 천을 어깨에 걸치고, 챙이 넓은 모자를 썼다. 그림의 주인공에 대해서는 현장(玄裝), 보승불(寶勝佛), 티베트 불화에 보이는 18나한(羅漢) 가운데 한명이 달마다라(達磨多羅), 실크로드를 여행하며 공연하는 이야기꾼 등의 다양한 견해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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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하는 승려, 行脚僧圖, 둔황, 9~10세기, 중앙박물관>

둔황에서 발견된 번에는 2명의 보살이 그려져 있다. 위쪽의 보살은 가사를 걸친 채 왼쪽을 향하고 있고, 아래쪽의 보살은 군의를 입고 천의를 걸친 채 정면을 향해 서 있다. 붉은색 선으로 윤곽을 그리고 부분적으로 음영을 가해 입체감을 주었다. 보살 옆에는 보살의 이름을 써 넣은 방제가 있는데, 아래 보살의 경우 “나무불휴식보살(南無不休息菩薩)”이라는 글씨가 확인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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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살이 그려진 번, 菩薩幡, 둔황(敦煌), 10세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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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살 그림 드리개, 菩薩立像幡, 둔황, 10세기.>

승려를 표현한 부조 3점은 건축물의 벽면에 부착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각각의 승려는 감실에 앉아 있다. 눈을 감고 있는 모습의 승려들은 명상에 잠긴 상태를 표현한 것으로 보인다. 머리를 두건같이 감싸며 몸을 완전히 가리는 두꺼운 옷을 입고 있으며, 그 옷은 승려마다 각기 다른 색을 띤다. 일부 상에는 금칠의 흔적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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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상에 잠긴 승려, 僧像, 둔황, 10세기>

사막에 세워진 승탑들

입구 주차장에서 막고굴까지 가는 중 길가를 비롯하여 멀리 사막 한가운데까지 많은 승탑들을 볼 수 있다.  주로 서하(西夏) 때 승려들의 승탑이라 한다. 목조 건축물을 모방해서 만든 본 한국의 승탑과는 달리 인도 불교 사원의 모습과 비슷하다.

SANYO DIGITAL CAMERA<인도 불교사원 모습을 하고 있는 승탑>

SANYO DIGITAL CAMERA<다른 형태의 승탑>

SANYO DIGITAL CAMERA<사막에 흩어져 있는 승탑들>

둔황 막고굴 앞쪽에는 사막의 모래바람으로부터 문화재를 보호하고 관람객의 편의를 위해서 많은 방풍림을 심어 녹지를 조성해 놓고 있다.

SANYO DIGITAL CAMERA<방풍림을 심어 놓은 정원>

SANYO DIGITAL CAMERA<막고굴 앞 방풍림길>

SANYO DIGITAL CAMERA<막구굴 입구 휴게소>

<출처>

  1. 안내문, 둔황 막고굴유적지, 2010년
  2. 위키백과, 2020년
  3. 실크로드 문명기행, 정수일, 한겨례출판, 2006년
  4. 안내문, 중앙박물관, 2012년
  5. 百度百科, 2020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