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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박물관특별전, 아라비아로 가는 길] 고대 유적지 울라와 마다인 살레

알-울라(Al Ola)는 사우디아라비아 부서부에 있는 도시로 메디니(Median)에서 북쪽으로 약 300 km 떨어져 있다. 이 도시는 고대 향료 교역로의 주요 거점이있던 데단(Dedan)이 있었던 지역이다. 벽으로 둘러싸인 도시 알-울라는 기원전 6세기에 지어졌는데 사막의 오아시스로 비옥한 토양과 물이 풍부한 지역이다. 이곳에는 고대 리흐얀(Lyeyan)왕국이 있었으며 아라비아 사막을 경유하는 대상들을 대상으로 세금을 부과하는 등 경제적으로 크게 번성하였다. 도시에는 진흙벽돌과 돌로된 집들이 많이 남아 있다. 이 지역에서는 이집트나 페르시아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이는 거대 조각상들이 출토되고 있으며, 사원의 건축부재 등에서 당시 발달된 문화수준을 확인할 수 있다.

울라(Al-’Ula)
아라비아 북서부의 울라는 향 교역로의 주요 거점이었던 고대 도시 데단이 위치해 있던 지역입니다. 오랫동안 리흐얀왕조의 지배를 받았던 이 지역은 북서 아라비아를 경유하는 대상들의 물품을 보관하고 세금을 부과하면서 경제적으로 번성했습니다. 리흐얀 인들은 고유 문자를 사용했고 웅장한 건축물을 만들었습니다. 데단의 고대 유적 중 하나인 쿠라이바는 다양한 바위 무덤이 조성되어 죽은 자들을 기렸던 흔적이 남아 있습니다. 이 지역은 기원전 1세기 말 큰 지진으로 쇠락하기 시작하여 나바테아 왕국의 일부가 되었지만, 풍부한 수자원을 바탕으로 고대 중동지역의 문명들이 교류하는 교역로에서 핵심역할을 했습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아라비아의 길’, 2017년)

640px-Al_Ula_old_town,_Saudi_Arabia_2011흙벽돌로 지은 집들이 남아 있는 알-울라 유적지.  (사진출처:위키피디아, 2019년)

OLYMPUS DIGITAL CAMERA울라 지역에서 출토된 거대 조각상. 기원전 5~2세기 이 지역 문화를 대표하는 유물이다. 이집트나 페르시아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발까로 가는길, 히자즈 근처의 데단은 폐허로 남았지만 아름다운 도시였다.
- 야꾸트 알하마위, 『세계사전』, 13세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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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각상, 울라, 기원전 5 ~ 2세기, 사암

한 덩어리의 사암을 깎아 만든 이 조각상은 형태와 자세에서 리흐얀 조각상들의 전형적 양식을 따르고 있습니다. 리흐얀 왕조의 조각가들은 장소와 수요에 따라 다양한 크기의 조각상을 제작했습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아라비아의 길’, 2017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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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각상의 머리, 울라, 기원전 4~3세기, 사암

사암으로 된 거대한 남성 머리 조각으로 두건의 일부가 남아 있습니다. 역청으로 칠한 표면은 여러 군데에 균열이 생겼습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아라비아의 길’, 2017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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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각상의 머리, 울라, 기원전 4~3세기, 사암

사암으로 된 남성 조각상의 머리 부분으로 표면에 역청을 겹겹이 칠한 흔적이 남아 있습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아라비아의 길’, 2017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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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성상, 울라, 기원전 4~3세기,

석상의 왼쪽 팔에 원형 구슬로 된 줄무늬 보석이 장식되어 있습니다. 짧은 튜닉을 입고 있으며 허리를 감싼 두 끈이 양측에 매듭 져 있습니다. 팔과 다리, 복부의 근육을 명확히 표현한 데서 조각가의 뛰어난 해부학적 지식을 알 수 있습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아라비아의 길’, 2017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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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성상, 울라, 기원전 4~3세기, 사암

이 거대한 조각상은 허리에 두 겹의 띠를 두른 튜닉을 입었습니다. 복부와 팔 그리고 근육의 해부학적 묘사가 뛰어납니다. 상반신 부분이 검게 보인 것은 석유와 같은 역청으로 칠을 했었기 때문입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아라비아의 길’, 2017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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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성상, 울라, 기원전 4~3세기, 사암

이 조각상은 리흐얀 사원에서 발견된 일반적인 조각상과 형식적으로 유사합니다. 납작한 등을 벽에 기댄 채 서 있었을 것으로 추정되며 몸의 일부분에 빨간 안료가 남아 있습니다. 이 조각상이 출토된 사원 주위에서 나온 명문으로 미루어 볼 때, 이 석상은 리흐얀 시대의 통치자를 표현한 것으로 추정됩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아라비아의 길’, 2017년)

OLYMPUS DIGITAL CAMERA데안 어 명문, 울라, 기원전 6~3세기, 적사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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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각상, 울라, 기원전 5~2세기, 사암

OLYMPUS DIGITAL CAMERA머리 조각상, 울라, 기원전 4~3세기, 사암

OLYMPUS DIGITAL CAMERA리흐얀 어 명문, 울라, 기원전 4~3세기, 사암

OLYMPUS DIGITAL CAMERA리흐얀 어 명문, 울라, 기원전 6~2세기, 적사암

OLYMPUS DIGITAL CAMERA리흐얀 어 명문, 울라, 기원전 5~2세기, 사암

OLYMPUS DIGITAL CAMERA사자조각, 울라, 기원전 6~4세기, 사암

고대 중근동에서 사자는 왕의 힘과 위대함을 상징했습니다. 특히, 사자는 주로 사원과 궁전에서 입구를 지키는 모습으로 많이 나타납니다. 울라 지역에서도 무덤 입구에 사자를 새겨 넣기도 했습니다. 새끼 사자에게 젖을 먹이는 암사자의 모습은 맹수로서의 사자와 다른 새로운 면모를 보여줍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아라비아의 길’, 2017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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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흐얀 어 명문, 울라, 기원전 5~2세기, 사암

리흐얀 왕조 시대에는 고유한 문자를 사용했습니다. 이 명문은 한 장인이 두가바트에게 작은 조각상을 바친다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장인이 두-가바트 신이 만족하기를 기원하며 이 작은 조각상을 바쳤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아라비아의 길’, 2017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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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단(또는 향로) 조각, 울라, 기원전 4~3세기, 사암

두 줄 사이로 염소 행렬의 모습이 저부조로 새겨져 있습니다. 이 조각은 제단의 아랫 부분이나 향로의 일부였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울라 지역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붉은 사암으로 만들어졌습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아라비아의 길’, 2017년)

Al-Hijr라 불리는 마다인살레(Mada’in Saleh)는 알-울라 부근에 위치한 고대 유적지로 요르단의 페트라(Petra)로 기원전 1세기 나바테아 왕국의 영역이었다. 이곳은 지중해와 페트라를 연결하는 주요 거점으로 페트라의 건축물을 연상시키는 거대한 사암무덤들이 남아 있다. 나바테아왕국은 106년 로마제국에 병합되면서 이 지역 또한 로마제국의 일부가 되었다. 전시된 유물로는 로마시대 유물을 연상시키는 글자가 새겨진 건죽부재 등이 있다.

마다인 살레(Mada’in Saleh)
울라 인근의 마다인 살레(또는 히즈르)는 기원전 1세기부터 나바테아 왕국의 지배를 받았습니다. 당시 헤그라로 불렸던 이 도시는 물과 식량자원이 풍부했고 지중해와 페트라로 이어지는 교역의 중심지였습니다. 이곳에 정착한 나바테아 인들은 페트라의 웅장한 건축물을 연상케하는 거대한 사암무덤을 만들었습니다. 모두 94개에 이르는 이 무덤들의 크기와 세부 장식은 다양합니다. 무덤 주인의 이름이 입구에 새겨져 있으며 때로는 조각가도 찾아 볼 수 있습니다. 나바테아 왕국은 그들만의 언어와 수준 높은 건축 기술을 보유했지만 106년 로마 제국에 병합되었고, 이후 마디안 살레는 아라비아 주의 일부로서 로마 제국의 영토가 되었습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아라비아의 길’, 2017년)

640px-Madain_Saleh_(6730361263)페트라 유적을 연상시키는 마다인 살레의 거대 무덤(사진출처: 위키피디아, 2019년)

OLYMPUS DIGITAL CAMERA나바테아 어 명문, 타이마, 기원전 1세기, 사암

OLYMPUS DIGITAL CAMERA라틴어 명문, 마다인 살레, 175~177년, 사암

로마 황제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치세에 만들어진 이 사암 판에는 헤그라(마다인 살레)에 있었던 한 건물의 재건축을 기념하는 내용이 담겨 있습니다. 명문에는 로마 군대의 도움으로 공사가 진행되었지만 헤그라 시에서 자금을 조달했다는 내용이 적혀 있습니다. 이 라틴 어 명문은 로마의 한 지방으로 전락한 헤그라와 중앙 정부 사이의 정치, 경제적 관계를 보여줍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아라비아의 길’, 2017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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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로, 타이마, 기원전 1세기 ~ 기원후 1세기, 사암

향로 윗 부분에 나바테아 어로 된 비문이 적혀 있습니다. 비문에는 “볼란의 아들, 압둘 카타브의 무덤”이라고 새겨져 있습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아라비아의 길’, 2017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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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로, 타이마, 기원전 1세기 ~ 기원후 1세기, 사암

OLYMPUS DIGITAL CAMERA나바테아 양식 기둥머리, 마다인 살레, 1세기경, 사암

라틴어 명문과 함께 발견된 이 기둥머리는 아랫 부분에 기둥이 연결되어 있습니다. 크기로 보아 문이나 대문 장식용이었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아라비아의 길’, 2017년)

OLYMPUS DIGITAL CAMERA물고기 무늬 토기, 마다인 살레, 6세기 추정, 토기

물고기 장식이 있는 토기는 6~7세기 요르단 북부에서 주로 발굴되는 것으로 이슬람 시대 이전, 원거리 무역으로 번성했던 마다인 살레 문명의 흔적을 보여줍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아라비아의 길’, 2017년)

OLYMPUS DIGITAL CAMERA옷조각, 마다인 살레, 기원전 3세기 ~ 기원후 3세기, 직물과 가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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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아리, 마다인 살레, 기원전 3세기 ~ 기원후 3세기, 토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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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아리, 마다인 살레, 2~4세기, 토기

  1. 안내문, 중앙박물관 특별전, 2017년
  2. 위키피디아, 2019년

[중앙박물관특별전, 아라비아로 가는 길] 사막위의 고대도시

향신료 무역은 아시아와 동북 아프리카, 유럽 사이의 무역을 말하며 계피와, 생강, 울금등 향신료가 주요 물품이었다. 기원전 1,000년 이전 이집트인들은 아라비아반도에서 홍해를 통해 인도의 향신료 등을 거래했으며, 그 이전 신석기인들도 홍해를 통해 여러 물건들이 거래되었을 것으로 생각되고 있다. 대항해시대 신항로가 개척되기 전까지 아라비아반도와 홍해를 경유하는 향료무역로는 지속되었다.

고대 향신료 교역의 주요 거점이었던 아라비아반도의 주요 도시들은 교역을 통해 부를 축척하면서 고대도시로 크게 번성하였다. 타이마, 울라 그리고 카르얏 알파우는 대표적인 무역거점으로 당시 부유했던 도시국가로 이곳에는 당시의 경제력과 문화수준을 보여주는 다양한 유물들이 출토되고 있다. 대표적인 유물들로는 기하무늬가 그려진 수준높은 토기들을 비롯하여, 뛰어난 수준을 보여주는 각종 장신구와 청동기, 다양한 그림들이 조각된 사원 건축 부재들이 있다. 출토유물들은 인근 메소포타미아와 페르시아의 영향을 많이 받은 부분도 있으며, 여러 지역의 문화가 융합되면서 독작적인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사막위의 고대도시: 타이마, 울라 그리고 카르얏 알파우
기원전 1000년 무렵부터 남부 아라비아에서 생산된 향료가 북쪽으로 메소포타미아, 서쪽으로 이집트와 지중해로 퍼져 나가기 시작하면서 전설적인 향료 교역로가 만들어졌습니다. 이 길 위에서 경제적 부를 축적한 국제 도시들이 번성했습니다. 아라비아 북서쪽의 타이마에는 바빌로니아의 마지막 왕인 나보니두스가 10년 동안 지배하면서 새로운 예술 양식이 전파되었습니다. 기원전 6세기 무렵부터 기원전 1세기까지 리흐얀 왕조가 지배했던 울라는 거대한 조각과 사원이 가득한 웅장한 고대도시였습니다. 아라비아 남부와 북동부를 이어주는 핵심적인 교역로에 있던 까르얏 알파우는 가장 부유했던 도시 중의 하나로 지중해 지역 문화의 영향이 가미된 독자적인 문화를 꽃피웠습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아라비아의 길’, 2017년)

OLYMPUS DIGITAL CAMERA아라비아의 고대도시들

타이마(Tayma)
아라비아 북서쪽에 위치한 타이마는 거대한 오아시스가 있었기 때문에 기원전 3천년기부터 사람들이 정착하기 시작했습니다. 기원전 1천년 무렵에는 아라비아 북쪽과 동쪽을 잇는 향 교역로의 중요한 중간 경유지로서 경제적 번영을 누렸습니다. 타이마에서 출토된 토기와 청동기들은 메소포타미아나 동부 지중해 지역의 영향과 지역 토착 양식이 혼재되어 있습니다. 기원전 6세기 무렵 바빌로니아의 마지막 왕 나보니두스가 한때 점령하기도 했던 이 지역은 이슬람이 도래하던 7세기 무렵까지 북서 아라비아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타이마의 홍수는 야자나무 한 그루도, 바위 위에 세우지 않은 어떤 성도 남기지 않는다.
- 6세기 아랍 시인 이므루 알까이스, 「무알라까트」 70행 -

OLYMPUS DIGITAL CAMERA사발, 타이마.사나이예, 기원전 1천년기 초, 토기에 채색

이 그릇은 타이마의 사나이예에 있는 한 무덤에서 출토되었습니다. 타이마에서 출토된 토기 중 비교적 큰 이 사발은 질적으로도 우수한 토기입니다. 곱게 정제된 흙으로 나팔 모양의 형태를 만들고 외면에 적갈색으로 기하무늬를 그려 넣었습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아라비아의 길’, 2017년)

OLYMPUS DIGITAL CAMERA채색 사발, 타이마.사나이예, 기원전 1천년기 초반, 토기에 채색

OLYMPUS DIGITAL CAMERA채색 사발, 타이마, 사나이예, 기원전 1천년기 초반, 토기에 채색

고운 흙으로 만든 사발에 기하무늬가 그려져 있습니다. 구연부 안쪽은 흰 바탕에 검은 선을 교차하여 무늬를 채웠고, 바닥 면은 선으로 4개의 공간을 나누어 무늬를 넣었습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아라비아의 길’, 2017년)

OLYMPUS DIGITAL CAMERA채색사발, 타이마, 기원전 12~9세기, 토기에 채색

그릇 안쪽 면에 직선을 그어 여덟 공간으로 나누고, 네 곳에 왼쪽을 향한 새를 그렸습니다. 점과 선, 간략한 형태만으로 새의 특징을 정확히 포착하여 타이마 사람들의 예술적 감각이 드러납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아라비아의 길’, 2017년)

OLYMPUS DIGITAL CAMERA채색 사발, 타이마.시나이예, 기원전 1천년기 초, 토기에 채색

흰 바탕에 기하무늬로 공간을 구획하고 각 공간에 새의 모습을 규칙적으로 배열하였습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아라비아의 길’, 2017년)

OLYMPUS DIGITAL CAMERA채색사발, 타이마.사나이예, 기원전 1천년기 초, 토기에 채색

바닥이 깊어 모양이 원뿔에 가깝습니다. 외벽에는 흰 바탕에 적갈색으로 그림이 그려져 있습니다. 하단에는 두 평행선 위로 불규칙한 수평선으로 둘러싸인 기하무늬가 있습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아라비아의 길’, 2017년)

OLYMPUS DIGITAL CAMERA항아리, 타이마.사나이예, 기원전 1천년기 초, 토기에 채색

OLYMPUS DIGITAL CAMERA채색 잔 또는 향로, 타이마.사나이예, 기원전 1천년기 초, 토기에 채색

바닥이 편평하고 구연부에 작은 손잡이가 달렸습니다. 바깥 면은 긴 선으로 장식되어 있으며 손잡이도 채색되었습니다. 손잡이가 달린 것으로 보아 향로로 쓰였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아라비아의 길’, 2017년)

OLYMPUS DIGITAL CAMERA붉은간토기, 타이마,기원전 1천년기 초, 토기에 채색

OLYMPUS DIGITAL CAMERA채색사발, 타이마.사나이예, 기원전 1천년기 초, 토기에 채색

표면이 거칠고 물레질 할 때 생긴 홈들이 있습니다. 바깥면에는 나란히 그은 선 사이에 X자 문양이 띠를 이루고 있습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아라비아의 길’, 2017년)

OLYMPUS DIGITAL CAMERA항아리,타이마, 기원전 1천년기 초, 토기에 채색

몸체가 구형에 가깝고 구연부가 넓은 이 항아리는 거친 붉은색 점토로 만들었습니다. 바깥 면에는 평행선 세개가 구연부 아래쪽을 두르고 있고, 그 아래쪽에는 물결선 세 개를 그려 넣어 장식적인 효과를 높였습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아라비아의 길’, 2017년)

OLYMPUS DIGITAL CAMERA항아리, 타이마, 기원전 7세기경, 토기에 채색, 항아리, 타이마, 기원전 7세기경, 토기

OLYMPUS DIGITAL CAMERA팔찌, 타이마.사나이예, 기원전 1천년기 초

타이마의 무덤군에서 모두 여덟개의 조개 팔찌가 발굴되었습니다. 각 팔찌는 큰 조개껍질을 한 방향으로 자른 뒤 조개 안을 제거하고 잘린 가장자리 부분을 부드럽게 다듬어 만들었습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아라비아의 길’, 2017년)

OLYMPUS DIGITAL CAMERA청룡도끼, 타이마, 기원전 1천년기, 청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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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동검, 타이마, 기원전 1천년기, 청동

타이마에서 출토된 청동무기는 전사를 상징하며 무덤에 부장되었습니다. 기원전 2천년 무렵에 북쪽의 시리아나 레반트 지역에서 사용한 청동검과 형태가 유사하여, 타이마와 레반트 지역 사이의 직접적인 교류를 알 수 있습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아라비아의 길’, 2017년)

OLYMPUS DIGITAL CAMERA목걸이, 타이마.사나이예, 기원전 1천년기 초, 조개껍질.돌.유리.나무

펜던트의 크기와 모양, 재질이 다양합니다. 양 끝에 구멍이 뚫린 것으로 보아 줄을 꿰어 목걸이로 사용했던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아라비아의 길’, 2017년)

나보니두스(Nabonidus)
기원전 6세기 중반 바빌로니아의 왕 나보니두스가 10년 동안이나 타이마에 머물렀던 이유는 정확히 밝혀지지 않았습니다. 이전 아시리아의 왕들이 그러했듯이 그 역시 부유했던 북서 아라비아 지역을 지배하고 싶었던 것으로 추측해 볼 수 있습니다. 최근에 발견된 명문에서 그가 이곳에서 활발한 건축 사업을 펼쳤다는 것이 밝혀졌습니다. 나보니두스가 타이마에 머물면서 메소포타미아 문화가 이 지역에 널리 확산 되었습니다. 하지만 그가 떠난 바빌로니아는 아케메네스 왕조의 본격적인 침략을 받고 몰락의 길로 접어들었습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아라비아의 길’, 2017년)

OLYMPUS DIGITAL CAMERA노니두스 석비, 탁본, 타이마, 기원전 6세기 중엽, 사암

긴 옷을 입고 왕관을 쓴 긴 수염의 인물로 왕을 표현하는 것이 당시 아시리아 왕을 묘사하는 일반적인 방법이었습니다. 아치모양의 비석 윗부분에 희미하게 보이는 인물은 타이마에서 10년동안 머무른 나보니두스왕(기원전 556 ~ 539 재위)으로 추정됩니다. 그의 주변에는 초승달, 날개달린 태양, 별과 같은 상징적인 도상들이 함께 나타나 있습니다. 일부 판독 가능한 설형문자는 나보니두스가 타이마에 세운 화려한 건축물에 대해서 언급하고 있습니다. 이 명문은 나보니두스가 아라비아 북서지역에서 정주했다는 것을 증명하는 이른 시기의 사료 중 하나입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아라비아의 길’, 2017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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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문이 있는 원판, 타이마, 기원전 6세기 중엽, 사암

설명문자가 새겨진 두 조각은 원판모양의 조각 일부였습니다. 가장자리에 신바빌로니아 설명문자로 “바빌로니아의 전능한 왕 – 나보니두스의 그림과 석비”라는 글이 새겨져 있습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아라비아의 길’, 2017년)

OLYMPUS DIGITAL CAMERA주춧돌, 타이마, 기원전 5~4세기, 사암

타이마의 함라 사원 유적에서 출토된 이 정육면체 형태의 돌은 건축물의 기단부를 장식했던 주춧돌로 추정됩니다. 두 면에 걸쳐 새겨진 도상들은 매우 다양합니다. 태양원반을 들고 있는 소가 중심에 있고 이는 이집트의 아피스 황소와 매우 유사하며 긴 옷을 입은 사제와 초승달과 날개달린 태양 등 메소포타미아 지역의 도상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도상들도 혼재되어 있습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아라비아의 길’, 2017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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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라 석비, 타이마.사스르 함라, 기원전 4세기경, 사암

상부에 메소포타미아 지역에서 많이 볼 수 있는 상징적인 도상들이 있고, 아랫부분에 일부 판독이 가능한 아람 어 명문이 새겨져 있습니다. 고대 근동지역에서 아람 어는 국제 무역어였습니다. 명문에는 리흐얀 왕실 가문의 아들이 봉헌물을 바친다는 내용이 담겨 있습니다. 이로써 이 비석의 연대는 타이마가 리흐얀왕조의 지배 아래 있던 기원전 4세기경임을 추정할 수 있습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아라비아의 길’, 2017년)

OLYMPUS DIGITAL CAMERA그림이 새겨진 석판, 타이마, 기원전 4세기, 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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묘비, 타이마, 기원전 5~4세기, 사암

사암으로 만들어진 이 비석에는 직사각형의 틀 안에 낮은 부조로 사람의 얼굴이 새겨져 있습니다. 아래쪽에는 “자드의 아들 타임을 기념하여”라는 아람어 명문이 새겨져 있습니다. 이러한 형태의 비석은 남부 아라비아에서 나타나는 것으로 북서부 아라비아와 남부 지역 간의 문화적 교류를 보여줍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아라비아의 길’, 2017년)

OLYMPUS DIGITAL CAMERA머리조각상, 타이마, 기원전 4~2세기, 사암

머리의 크기로 보아 원래 약 4 m 크기의 거대한 석상의 일부분이었습니다. 이집트 인들처럼 머리카락을 뒤로 빗어 넘긴 모습이지만 리흐얀 왕들을 표현한 조각상들과도 비슷합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아라비아의 길’, 2017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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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상 조각, 타이마, 기원전 4~2세기, 사암,

이 석상은 무릎까지 덮는 천을 두르고 있었습니다. 천을 고정시키는 벨트 왼쪽 끈 부분에 붉은 안료가 남아 있어 이 조각상이 일부 채색되었던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뒷면은 편형하여 기둥이나 벽면에 기대에 세워졌을 것입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아라비아의 길’, 2017년)

OLYMPUS DIGITAL CAMERA제단의 부분, 타이마, 까스라 함락, 기원전 5~4세기, 사암

붉은 사암으로 만든 이 물건은 탁자나 제단 등 종교용품의 아랫부분으로 추정됩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아라비아의 길’, 2017년)

OLYMPUS DIGITAL CAMERA아람어 명문이 있는 세면대, 타이마, 기원전 1세기경, 사암

녹색을 띠는 사암 덩어리를 조각하여 만든 이 세면대에는 아람어 계열인 나바테아 문자로 쓰여진 명문이 있습니다. 그 내용은 아합이라는 사람이 자신과 후손들의 영혼을 위해 여신 만화에게 봉헌한다는 것입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아라비아의 길’, 2017년)

아인자완(Ayn Jawan)
타투만의 북서쪽에 위치한 아인 자완은 아라비아에서 매우 규모가 큰 유적지 중 하나입니다. 이곳에서 9개의 방으로 조성된 대규모 가족 무덤이 발굴되었습니다. 무덤에는 남성 3명, 여성 1명이 묻혀 있었고, 금 목걸이와 귀걸이와 같은 화려한 보석들이 함께 묻힌 여자 아이의 무덤도 있었습니다. 이 가족 무덤은 지중해 지역과의 교역으로 막대한 부를 축적한 상류층 가문의 것입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아라비아의 길’, 2017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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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걸이.펜던트, 아인 자완, 2세기, 금

OLYMPUS DIGITAL CAMERA목걸이, 아인자완, 2세기, 금.마노.자수정.홍혹수.진주

OLYMPUS DIGITAL CAMERA귀걸이, 아인자완, 2세기, 금

OLYMPUS DIGITAL CAMERA장신구, 아인 자완, 2세기, 금.진주.준보석

타즈의 무덤(Tomb of Thaj)
1998년 여름, 아라비아 북동쪽 주바일에서 80킬로미터 떨어진 작은 마을인 타즈에서 1세기 무렵에 조성된 6세로 추정되는 어린 소녀의 무덤이 발굴되었습니다. 놀랍게도 소녀의 얼굴에는 황금 가면이 놓여 있었고 금과 루비, 진주, 터키석으로 장식된 목걸이와 아르테미스 여신이 새겨진 금귀걸이를 차고 있었습니다. 소녀 주변에는 200개가 넘는 금으로 된 단추들이 널려 있었습니다. 지중해에서 온 화려한 수입품들이 가득한 이 무덤은 부유한 가문의 자녀에 대한 애뜻한 사랑뿐만 아니라 아라비아 동쪽까지 확산된 그리스 헬레니즘 문화의 흔적을 보여줍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아라비아의 길’, 2017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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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모양의 침대 다리, 타즈, 텔 알지에르, 1세기, 철.역청.납.

소녀가 누웠던 침대는 지중해 양식으로 꾸몄고, 침대 다리는 어린 아이의 모습으로 만들었습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아라비아의 길’, 2017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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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메오가 있는 목걸이, 타즈.엘 알자예르, 1세기, 금.진주.터키석.루비

소녀의 머리맡에 있던 목걸이는 루비, 진주, 터키석으로 장식되었습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아라비아의 길’, 2017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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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금가면과 황금장갑, 타즈.엘 알자예르, 1세기, 금

소녀가 얼굴에 쓰고 있던 황금 가면에는 얼굴의 특징적인 부분만 간단히 표현되었습니다. 가면의 크기로 보아 여자 아이를 위해 특별히 제작되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아라비아의 길’, 2017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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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신구(팔찌, 목걸이, 금판), 타즈.텔 알지예르, 1세기, 금.진주.터키석.루비

소녀가 누웠던 자리에서 발견된 금판의 일부에는 제우스 신의 형상이 새겨져 있습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아라비아의 길’, 2017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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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전자, 타즈, 기원전 3~1세기, 토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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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각상, 타즈, 기원전 3~1세기, 토기에 채

  1. 안내문, 중앙박물관 특별전, 2017년
  2. 위키피디아, 2019년

 

 

[중앙박물관특별전, 아라비아로 가는 길] 오아시스에 핀 문명

아라비아반도는 메소포타미아문명과 인접한 지리적 환경과 인도양으로 연결되는 중요 해상교통로라는 점 때문에 오아시스 지역을 중심으로 비교적 이른 시기인 기원전 4천년부터 문명화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오늘날 바레인섬으로 추정되는 딜문을 중심으로 타루트섬, 담맘 등 동부 해안 지역에서 당시 교역의 모습을 보여주는 문명의 흔적들이 확인되고 있다. 전시에서는 이 지역에서 출토된 석상들을 비롯하여 다양한 형태의 토기들을 볼 수 있었는데 동시대 다른 지역에 비해 세련되고 기술적 수준도 높았음을 알 수 있었다. 

사우디아라비아의 고고학
아랍의 시인들은 아라비아를 여행한 첫 탐험가들이었습니다. 그들의 시 속에는 폐허가 된 고대 유적의 모습이 생생히 담겨 있습니다. 유럽의 탐험가들도 아라비아에 관심을 두었습니다. 독일의 카르스텐 니부어와 영국의 찰스 다우티 같은 일부 탐험가들은 아라비아의 역사와 고고학에 대한 귀중한 자료를 남겼습니다. 20세기 초, 해리 존 필비(압둘라 필비)는 최초로 남서부 아라비아 지역에 대한 조사를 기록하였습니다. 1960년대부터 사우디아라비아는 아라비아 전역에 대한 대규모 발굴조사를 시작했습니다. 조사는 꾸준히 진행되었지만 여전히 아라비아 고고학에 대한 이해는 아직 초기 단계입니다. 이 전시는 최근 10년 동안의 발굴을 포함하여 지난 수십년 동안의 발굴 성과가 담긴 사아디아라비아 고고학의 현재입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아라비아의 길’, 2017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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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모양의 석상, 카르얏 알카파, 아일 인근, 기원전 4천년기, 사암, 전시에서 볼 수 있는 석상들은 고대문명이 발생했던 시기에 만들어졌던 것으로 단순하지만 세련된 조형미를 보여주고 있다. 이 석상들이 아라비아반도의 고대문명을 대표하는 유물로 여겨지고 있는 것으로 보이며 전시회장 입구에 전시되고 있었다.

이 석상은 비록 상반신만 표현되어 있으나, 신체의 특징은 매우 정확하게 표현되어 있습니다. 둥근 얼굴에는 귀가 달려 있으며, 비대칭적인 눈과 조그만 입술은 인물의 감정까지 느껴지게 합니다. 몸통은 직사각형의 특에서 벗어나지 않았지만 팔고 손으로 몸을 감싸 안아 자연스럽게 신체의 형태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아라비아의 길’, 2017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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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모양의 석상, 몰라.마다인 살레 인근, 기원전 4천년기, 사암

이 석상은 몸체의 특징보다 다양한 장신구들이 더욱 강조되었습니다. 표정없는 사다리꼴 형태의 머리 어깨에는 한줄의 선으로 목걸이가 표현되었고, 팔이 없는 몸통에는 뾰족한 무기를 매단 띠와 허리띠가 뒷면까지 이어져 있습니다. 단검이 표현된 사람모양의 석상은 청동기시대로 접어든 이후에는 유럽과 중동 전역에서 두루 나타납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아라비아의 길’, 2017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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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모양의 석상,

오아시스에 핀 문명: 딜문, 타루트 섬 그리고 게라
아라비아의 동쪽, 아라비아 만 연안의 타루트 섬은 대추야자 나무가 무성한 오아시스로 신석기시대부터 이곳에 사람들이 정착하여 살기 시작했습니다. 이 지역은 기원전 4천년기말 부터 3천년기 초까지 고대 ‘딜문’문명의 중심지 중 하나였습니다. 타루트 섬뿐만 아니라, 다란, 도사리야, 아브까이끄 등 동부 연안지역의 다양한 출토품들은 메소포타미아와 페르시아, 인더스 문명과의 활발했던 교역을 보여줍니다. 고대 도시 ‘게라’로 추증되는 타즈는 기원전 3세기부터 1세기까지 그리스 문화의 영향을 받기도 했습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아라비아의 길’, 2017년)

딜문(Dilmun)
오랫동안 메소포타미아의 기록에서 ‘바다 건너 천국’으로 묘사되었던 ‘딜문’의 정확한 위치는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1960년대 이후 아라비아 동쪽 해안 지역에서 딜문의 존재를 밝혀주는 고고학적 발굴 조사를 진행했습니다. 오늘날 바레인 섬이 그 중심지였습니다. 딜문 문명은 메소포타미아와 인더스 문명 사이의 해상 교역로 위에 위치해 있었기 때문에 기원전 1700년 무렵에 매우 번성했습니다. 금이나 은, 진주, 대추야자와 같은 지역 생산품을 수출하고 목재나 구리를 수입하여 재수출 하기도 하여 부를 축적해 천국으로 여겨졌습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아라비아의 길’, 2017년)

멜루하, 마간, 딜문 사람들이여, 어서 나 엔키를 보라.
딜문의 배에 나무를 실어라. 마간의 배에 짐을 하늘 높이 실어가.
멜루하의 마길룸 배에 금과 은을 실어 날라가.
- 기원전 3천년기 엔키 신 관련 비석중 “엔키와 세상의 질서” -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아라비아의 길’, 2017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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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성상, 타루트, 기원전 3천년기 중엽, 석회석

1966년 타루트 섬에 소재한 무덤을 발굴하던 도중 출토된 석상입니다. 이 남성상처럼 두 손을 가슴에 모은 자세와 허리띠를 착용하고 있는 모습은 기원전 3천년기 메소포타미아 지역의 조각상이나 인장에 새겨진 그림에서도 나타납니다. 이러한 점에서 이 석상은 메소포타미아 지역과 교역이 증가하던 기원전 3천년기 중엽에 타루트 섬에서 제작된 것으로 보입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아라비아의 길’, 2017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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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릇, 아인 앗사이, 기원전 5천년기, 토기

거친 점토로 만든 이 그릇은 아라비아 만 연안 지역에서 생산된 것입니다. 그릇 안쪽에 붙어 있는 따개비들은 기원전 5천년기 중반에 아라비아 만의 해수면이 지금보다 높았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깨진 부분은 역청으로 메꿔 놓았는데, 이 시기 역청은 우바이드 채색 토기와 더불어 메소포타미아의 주요 수입품이었습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아라비아의 길’, 2017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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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날, 도사리야, 기원전 5천년기, 흑요석

도사리아 지역에서 출토된 흑요석은 아나톨리아 지역에서 수입한 것 입니다. 기원전 6천년 후반에서 5천년 사이에 아라비아 반도는 터키지역을 포함하는 광범위한 교역 네트워크의 한 부분이었습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아라비아의 길’, 2017년)

OLYMPUS DIGITAL CAMERA우바이드 토기, 유바이드 5기(기원전 5,300 ~ 4,700년경), 토기에 채색

아라비아 북동부 지역에서 메소포타미아의 고대 토기들이 대량으로 출토되었습니다. 우바이(ubaid) 토기라 불리는 이 토기는 기원전 7천년기 중엽에 메소포타미아에서 시작되어 3천년 넘게 생산되었습니다. 잘 정제된 녹황색 점토로 만들어졌고, 진한 갈색으로 무늬가 그려져 있는 이 토기는 당시 아라비아 지역에서 만든 것보다 정교하고 섬세합니다. 우바이드 문화는 기원전 5,300 ~4,700년 무렵에 아라비아 북동쪽으로 확장했습니다. 이 움직임은 이후 수천년 동안 지속된 아라비아와 메소포타미아의 교역 관계의 시작을 알립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아라비아의 길’, 2017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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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아리, 이브키이크, 기원전 3000 ~ 2250년, 토기에 채색

양식화된 염소가 그려져 있는 이 토기는 이란 남동부 지역에서 수입한 것입니다. 비슷한 형태의 토기들이 발루 치스탄의 밤푸르(Bampur), 테페야흐아(Tepe Yahya)에서도 확인됩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아라비아의 길’, 2017년)

OLYMPUS DIGITAL CAMERA채색항아리, 다란, 기원전 2000 ~ 1800년, 토기

이 커다란 용기는 장례의식 때 사용되는 술과 같은 액체류를 저장했습니다. 이러한 토기들은 오만지역이나 남부 메소포타미아인 우르와 라르사(Larsa)에서도 발견됩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아라비아의 길’, 2017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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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간토기, 다란, 기원전 2000 ~ 1800년, 토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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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간토기, 다란, 기원전 2000 ~ 1800년, 토기

무덤에서 주로 발견되는 이 토기는 표면에 산화철을 바르고 문질러서 광택을 냈습니다. 이러한 붉은 간 토기류는 메소포타미아와 아라비아 북동부 지역에서 기원전 2천년기 중엽까지 사용되었습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아라비아의 길’, 2017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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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아리, 타루트.루파야, 기원전 3천년 전반, 토기

기름이나 곡식을 운반할 때 사용하던 저장용기로 메소포타미아 초기 왕조시대의 특징적인 항아리입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아라비아의 길’, 2017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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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아리, 아브까이크.샤브카 함맘, 기원전 3천년기 전반, 토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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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아리, 아브까이크.샤브카 함맘, 기원전 3천년기 전반, 토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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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아리, 아브까이크.샤브카 함맘, 기원전 3천년기 전반, 토기

이 항아리들은 이라크의 우르와 카파예(Khafaje) 무덤에서 나온 그릇과 유사합니다. 이들 또한 아라비아 북동부 지역과 메소포타미아와의 관계에 대한 중요한 자료입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아라비아의 길’, 2017년)

OLYMPUS DIGITAL CAMERA1.채색 항아리, 다란, 기원전 2100년경, 토기에 채색

OLYMPUS DIGITAL CAMERA2.채색 병, 다란, 기원전 2200 ~ 1800년, 토기에 채색

OLYMPUS DIGITAL CAMERA3.채색 사발, 다란, 기원전 3천년기, 토기에 채색

OLYMPUS DIGITAL CAMERA4.채색사발, 다란, 기원전 2200~1800년, 토기에 채색

검은 세로선과 짧은 평행선으로 장식된 붉은 색 계통의 토기들은 다란에서 발견되는 지역 생산품입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아라비아의 길’, 2017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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뱀무늬 그릇, 타루트 추정, 기원전 3천년기, 녹니석

녹니석으로 만든 그릇은 고대 중근동 전지역에서 사용되었습니다. 타루트 섬에서 발굴된 녹니석 그릇은 대부분 타루트에서 제작되었으나, 일부는 페르시아 남동부에서 들어온 것입니다. 이란 남부 지역에서 생산된 녹니석 그릇들은 아라비아에서 매우 귀한 사치품이었습니다. 서로 몸이 꼬여 있는 뱀의 모습은 가장 많이 등장하는 동물 문양 중 하나입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아라비아의 길’, 2017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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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 다란, 기원전 1600 ~ 1250년경, 녹니석

OLYMPUS DIGITAL CAMERA1.병 조각, 타루트, 기원전 3천년기 후반, 백운모 편암, 2.그릇, 타루트, 기원전 3천년기 중엽, 녹니석

OLYMPUS DIGITAL CAMERA3.야자나무 무늬 그릇, 타루트 추정, 기원전 3천년기 후반, 녹니석

OLYMPUS DIGITAL CAMERA4. 병, 타루트, 기원전 2650 ~ 2250년경, 녹니석

OLYMPUS DIGITAL CAMERA 4. 병, 타루트, 기원전 2650 ~ 2250년경, 녹니석

OLYMPUS DIGITAL CAMERA1. 병, 타루트, 기원전 3천년기 후반, 녹니석,

OLYMPUS DIGITAL CAMERA2. 건축물이 새겨진 병조각, 타루트, 기원전 3천년기 후반, 녹니석

오두막 같은 건물 형태뿐만 아니라 윗가지 엮기방식으로 만든 울타리 형태도 새겨져 있습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아라비아의 길’, 2017년)

OLYMPUS DIGITAL CAMERA3.그릇조각, 타루트, 기원전 3천년기 전반, 녹니석

사슴, 사자 꼬리, 독수리 머리가 묘사되어 있습니다. 이는 수메르 신화에 등장하는 사자 머리리를 한 독수리인 안주(Anzu)를 표현한 것입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아라비아의 길’, 2017년)

OLYMPUS DIGITAL CAMERA4. 그릇조각, 타루트, 기원전 3천년기 후반, 녹니석

OLYMPUS DIGITAL CAMERA남성상, 메소포타미아 추정, 기원전 3천년기, 청금성

이 작은 조각상은 오늘날 아프카니스탄에서 생산되는 값비싼 청금석으로 만들어졌습니다. 외투를 덮고 있는 남성의 눈과 긴머리, 수염은 메소포타미아 지역 조각상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양식입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아라비아의 길’, 2017년)

OLYMPUS DIGITAL CAMERA그릇조각, 타루트, 기원전 3천년기 후반, 녹니석

뱀 두 마리를 잡고 싸우는 사람의 모습은 이란 남동부나 메소포타이아의 그릇에서도 나타납니다. 이 문양은 중근동에서 자주 등장하는 도상인 야수의 제왕 모티프에서 변형된 것입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아라비아의 길’, 2017년)

OLYMPUS DIGITAL CAMERA사발, 타루트, 기원전 3천년기 후반, 녹니석

OLYMPUS DIGITAL CAMERA그릇조각, 타루트, 기원전 3천년기 후반, 녹니석

OLYMPUS DIGITAL CAMERA사발, 타루트, 기원전 3천년기, 설화 석고

OLYMPUS DIGITAL CAMERA사발, 타루트, 기원전 3천년기, 설화 석고

설화 석고로 만든 그릇들은 부와 지위의 상징으로 여겨졌습니다. 액체류를 저장하는 데 적합하지는 않았지만 기원전 2천년에서 1천년대까지 고대 중근동 지역에서 많이 사용했습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아라비아의 길’, 2017년)

OLYMPUS DIGITAL CAMERA잔, 타루트, 기원전 4~3천년기 추정, 석회석

이 잔은 오만 해안가에서 발견되는 매우 희귀한 재료인 화석화된 산호 석회석으로 만들어졌습니다. 비슷한 그릇들이 이란의 테페 야흐야에서 발견되었습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아라비아의 길’, 2017년)

OLYMPUS DIGITAL CAMERA인도 보리수나무잎 무늬 항아리, 타루트, 기원전 2200 ~ 1800년, 토기

잎이 넓은 보리수나무잎 무늬는 인더스 계곡의 하라파 지역에서 만든 토기의 특징적 요소로 타루트 섬에서 인더스 문명이 영향을 보여줍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아라비아의 길’, 2017년)

OLYMPUS DIGITAL CAMERA그릇, 타루트, 기원전 3천년기 후반, 녹니석

동심원으로 장식된 이 그릇은 오만 반도에서 수입된 것입니다. 이러한 그릇들은 기원전 3천년기 후반에 메소포타미아, 이란, 인더스 계곡, 아라비아 만 연안에서 널리 쓰였습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아라비아의 길’, 2017년)

OLYMPUS DIGITAL CAMERA접시, 타루트, 기원전 3천년기, 녹니석

OLYMPUS DIGITAL CAMERA사발, 타루트, 기원전 3천년기, 동석

OLYMPUS DIGITAL CAMERA종모양 그릇, 타루트, 기원전 2550 ~ 2350년경, 녹니석

OLYMPUS DIGITAL CAMERA 잔, 타루트, 기원전 3천년기, 동석

OLYMPUS DIGITAL CAMERA 병, 타루트, 기원전 6세기, 토기, 유약바른 접시, 타루트, 기원전 1천년기, 채색도기

OLYMPUS DIGITAL CAMERA1. 인장, 타루트, 기원전 2200 ~ 2000년경, 녹니석. 2. 인장, 타루트, 기원전 3천년기 후반, 테라코타 또는 스텔라이트, 3. 스카라브, 다란, 기원전 2천년기 후반 추정, 석회석, 4. 딜문인장, 다란, 기원전 2000 ~ 1800년경, 스텔라이트

이 인장(1번)은 아라비아 만 연안에서 가장 이른 시기의 것입니다. 시기는 기원전 2200년으로 거슬러 올라가며, 북동부 지역에서 주로 발견되었습니다. 젖은 진흙이나 왁스에 인장을 찍어서 행정문서나 서신을 봉인하는 용도로 사용 하거나, 벨트나 목걸이의 장신구로도 이용하였습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아라비아의 길’, 2017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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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어 명문이 있는 석비, 타루트.루피아, 기원전 3~2세기, 석회석

이 석비에는”하빌리 나무마트, 안녕히”라는 명문이 새겨져 있습니다. 동부 아라비아에 발견된 몇 안되는 그리스어 명문 중 하나로 이와 비슷한 묘비가 바레인에서 발견되었습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아라비아의 길’, 2017년)

OLYMPUS DIGITAL CAMERA석상, 타루트, 기원전 2 ~ 1세기, 석회석

사람 모양이 이 석상들은 무덤에 위치를 표시하고, 죽은 이를 기억하기 위해 세워졌습니다. 네페쉬석상(Nehpesh stele)으로 불리는 이 석상들은 바레인에서도 발견되었습니다. 네페쉬는 ‘숨(영혼)’을 뜻하는 아람 어에서 파생된 다어로 헬레니즘문화의 영향을 보여줍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아라비아의 길’, 2017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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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사 지역 방언이 새겨진 석비, 타즈, 기원전 2~1세기,

‘아라비아의 길’은 고대 아라비아의 다양한 언어로 된 명문들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이 문자들은 기원전 8세기부터 기원후 6세기까지 고대 아라비아의 문화적 환경을 이해할 수 있는 중요한 자료입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아라비아의 길’, 2017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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묘비, 타즈, 기원전 3~1세기, 이 묘비는 기원전 3~1세기 아라비아 북동쪽에서 사용하던 하사어(Hasaean)으로 쓰여졌습니다. 죽은 이는 가디야트라는 이름의 여성으로 특이하게도 모계 혈통의 조상들만 묘비에 언급되어 있습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아라비아의 길’, 2017년)

게라(Gerraha)
기원전 4세기에 알렉산드로스3세가 메소포타미아를 차지한 이후, 그리스 문화의 영향은 아라비아 반도로 퍼져 나갔습니다. 아라비아 북동부 지역에서 고대 그리스인들의 거주지는 아직 발견되지 않았지만, 당시의 보석, 동적, 조각 등 교역품에서 그리스 문화의 흔적이 나타납니다. 고대 문헌으로 만 알려진 아라비아 북동부의 게라는 메소포타미아, 아나톨리아, 페르시아, 그리스를 비롯하여 인도와 중국과도 교역하며 매우 번성했던 도시였습니다. 현재 그 위치는 타즈 지역으로 추정하고 있는데, 그리스에서 온 금 세공품이 가득한 왕족 무덤이 이곳에서 발굴되었습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아라비아의 길’, 2017년)

사바인과 게라인들보다 풍요로운 사람들은 없다.
이들안 마치 아시아와 유럽에서 가져온 세상 모든 것을 가진 창고와 같다.
- 포티우스, 『비블리오테카(Bibliotheca)』, 7권, 9세기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아라비아의 길’, 2017년)

  1. 안내문, 중앙박물관 특별전, 2017년
  2. 위키피디아, 2019년

 

[중앙박물관특별전, 아라비아로 가는 길] 아라비아의 선사시대

사우디아라비아는 한반도 면적의 14배에 이르는 아라비아반도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중동을 대표하는 큰 국가이다. 아라비아반도는 사막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고대문명 발상지인 메소포타미아와 이집트, 인도 사이에 위치하고 있으며, 홍해.아라비아해.페르시아만 등을 통한 해상교역로와 아라비아 사막을 통한 육상교통로에 위치하고 있어 고대 이래로 교역이 발달하였다. 또한 이슬람이 처음 생겨난 지역으로 메카를 비롯한 주요 성지들이 이곳에 위치하고 있어 이슬람세계에서도 가장 중요한 국가로 여겨지고 있다.

2017년 중앙박물관에서는 “아라비아의 길”이라는 특별전을 개최하였다. 전시에서는 선사시대부터 고대문명이 발생했던 시기, 로마시대, 이슬람의 창시와 확산기, 사우디아라비아의 건국까지 다양한 시대의 역사를 살펴볼 수 있게 하였다. 중동의 역사와 유물을 접해볼 기회가 많지 않은 우리나라에서 중동지역의 역사를 살펴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유익한 전시회였다.

아라비아의 선사시대
아라비아에 인류가 정착하기 시작한 시기는 130만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아라비아 북부의 슈와이티티야와 남서부의 비르 히마에서 출토된 석기들은 아프리카에서 탄생한 인류가 아라비아를 거쳐 전 세계로 확장해 갔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약 1만년 전 무렵의 아라비아는 수목이 무성하고 깊은 호수, 비옥한 습지, 풍부한 야생자원을 보유한 지금과 전혀 다른 모습의 땅이었습니다. ‘초록의 아라비아’라고 불리는 이 시기에는 지중해 연안의 근동지역에서 사람들이 건너와 다양한 도구와 무기를 제작했습니다. 기원전 5천년 경부터 기후가 다시 급격히 건조해지면서 사람들은 다시 이동생활을 시작했습니다. 화살촉과 돌날 같은 신석기시대 도구들은 아라비아 전역으로 확산 되었습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아라비아의 길’, 2017년)

OLYMPUS DIGITAL CAMERA1.찍개, 슈와이티타야.조우프, 올도완기(180만~100만년전), 규암, 4.양면석기. 동부 주. 아슐리안기, 부싯돌

아라비아의 최초 석기는 북부 지방의 슈와이히타야에서 확인되었습니다. 여기서 나온 찍개와 긁개 등 여러 석기들은 탄자니아 올도바이 협곡에서 나온 석기의 제작기법과 일치합니다. 이는 아라비아에 올도완기(260만년전 ~ 170만년전)에 해당하는 전기 구석기문화가 유입되었다는 것을 증명해 줍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아라비아의 길’, 2017년)

OLYMPUS DIGITAL CAMERA2.찍개, 파티마 계곡.메카, 아슐리안기(100만 ~ 10만년전), 안산암

OLYMPUS DIGITAL CAMERA3.양면석기, 사파카.리야드, 아슐리안기(100만 ~ 10만년전), 안산암

OLYMPUS DIGITAL CAMERA1.화살촉, 루마마.리야드, 신석기시대, 플린트

OLYMPUS DIGITAL CAMERA2.양면석기, 동부 주, 신석기시대, 플린트, 3. 긁개, 동부 주, 신석기시대, 플린트

기원전 8천년~6천년 사이, 아라비아는 사바나에 가까운 초원지대였습니다. 따라서 양, 소 뗴를 몰던 레반트(동부 지중해 연안지역)의 유목민들은 아라비아 북동부로 이동해 정착했습니다. 이 지역의 취락지에서 발굴된 석기들은 돌을 다듬고 떼어내는 장식에서 레반트 남쪽에서 출토된 것과 매우 비슷합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아라비아의 길’, 2017년)

OLYMPUS DIGITAL CAMERA4. 양면석기, 동부 주, 신석기시대, 플린트

OLYMPUS DIGITAL CAMERA5.6.7.8 화살촉, 동부 주, 신석기시대, 플린트

아라비아 북동부 지역 신석기유적에서 화살촉이 다량으로 나온 것으로 보아 사냥이 공동체 생활에 있어 중요한 역할을 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돌날 화살촉은 기원전 7천년경에 레반트 남쪽에서 만들어진 화살촉과 유사합니다. 이는 아라비아 동부의 신석기시대가 레반트에서 기원했음을 보여주는 증거로 볼 수 있습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아라비아의 길’, 2017년)

OLYMPUS DIGITAL CAMERA9.좀돌날, 동부 주, 신석기시대, 플린트

마가르 문명(Al-Magar Civilization)
2010년 사우디아라비아의 남서쪽 마가르에서 낙타에게 먹일 물을 얻기 위해 우물을 파던 도중 돌로 만든 칼, 가락바퀴, 갈판, 화살촉 등 신석기시대 도구들이 다량으로 출토되었습니다. 그 중에는 말, 개, 염소와 같은 동물모양으로 된 것도 있었습니다. 방사성 탄소 연대 측정 결과 이 출토품들은 기원전 8110년에 제작된 것으로 밝혀져 세계 고고학계를 놀라게 했습니다. 지금까지 말 사육의 역사는 중앙아시에서 기원전 3500년에 시작된 것으로 알려져 왔으나, 이 발견으로 아라비아에서 더 오래 전에 시작되었다는 것이 증명되었습니다. 또한 돌칼을 차거나 개를 이용하 동물을 사냥하는 아라비의 풍습이 오랜 역사를 지닌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아라비아의 길’, 2017년)

OLYMPUS DIGITAL CAMERA갈판, 마가르, 기원전 8810년 경, 동석

마가르 유적에서는 화살촉 외에도 긁개, 절굿공이, 가락바퀴, 기하학 무늬로 장식된 동석항아리들이 나와 당시 사람들의 석기 제작 기술을 폭넓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아라비아의 길’, 2017년)

OLYMPUS DIGITAL CAMERA동물 이빨과 뼈, 타이마, 신석기시대

OLYMPUS DIGITAL CAMERA코끼리 뼈, 타이마, 신석기시대

아라비아 반도는 한때 코끼리가 서식할 정도로 초목이 풍부한 초원 지역이었습니다. 최근 나푸드에서 발견된 동물화석은 이러한 기후 조건을 유추할 수 있게 합니다. 코끼리 뿐만 아니라 유라시아 표범, 영양, 야생 당나귀, 늑대 등 지금은 아라비아 반도에서 볼 수 없는 동물 화석들이 확인 되었습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아라비아의 길’, 2017년)

OLYMPUS DIGITAL CAMERA1.돌칼, 마가르, 기원전 8810년, 돌

이 돌칼의 형태는 오늘날 아라비아에서 사용하는 의례용 단검과 비슷합니다. 몸에 단검을 차는 것은 아라비아의 대표적인 문화 중의 하나로, 기원전 9000년 무렵부터 지금까지 내려오는 오랜 관습입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아라비아의 길’, 2017년)

OLYMPUS DIGITAL CAMERA2.가락바퀴, 마가르, 기원전 8810년, 플린트, 3.그릇조각, 마가르, 기원전 8810년 경, 동석

OLYMPUS DIGITAL CAMERA양의 머리, 마가르, 기원전 8819년경, 돌

OLYMPUS DIGITAL CAMERA타조의 머리, 마가르, 기원전 8810년경, 돌

OLYMPUS DIGITAL CAMERA말, 마가르, 기원전 8810년경, 돌

머리와 몸통만 남아 있는 이 조각은 마가르 지역에서 발견되는 돌로 만들어졌습니다. 목의 길이나 머리의 형태로 볼 때 순수 아라비아 혈통의 말과 비슷합니다. 입 주변에 굴레 형태가 확연하게 드러나는데, 이는 당시 사람들이 말을 가축으로 길렀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아라비아의 길’, 2017년)

OLYMPUS DIGITAL CAMERA사냥개, 마가르, 기원전 8810년경, 돌

마가르 유적의 바위 그림에 개를 이용해 사냥하는 장면이 그려져 있어, 사냥개의 모습으로 추정해 볼 수 있습니다. 개의 모습은 메소포타미아와 이집터에서 오래전부터 사육되었던 살루키 개와 비슷합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아라비아의 길’, 2017년)

OLYMPUS DIGITAL CAMERA새(독수리 추정)의 머리, 마가르, 기원전 8810년경, 돌, 염소의 머리, 마가르, 기원전 8810년경, 돌

OLYMPUS DIGITAL CAMERA화살촉, 마가르, 기원전 8810년경, 플린트

OLYMPUS DIGITAL CAMERA긁개, 마가르, 기원전 8810년경, 플린트

OLYMPUS DIGITAL CAMERA여성상, 마가르, 신석기시대, 사암

여성의 모습을 매우 단순한 형태로 양식화하여 표현한 석상입니다. 표정과 신체 특징이 살아 있는 4천년 전의 남성상과는 대비됩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아라비아의 길’, 2017년)

OLYMPUS DIGITAL CAMERA여성상, 마가르, 신석기시대, 사암

  1. 안내문, 중앙박물관 특별전, 2017년
  2. 위키피디아, 2019년

 

 

[중앙박물관특별전, 이집트보물전] 신성한 동물들

고대 이집트 종교에서는 동물들도 신성한 존재로 여겼으며, 수많은 신들과 동물들의 특징을 연관지어 신과의 매개체로 여겨습니다. 초기에는 조각상 등으로 만들어져 신전에 모셔졌으며, 후대에 미라로 만들어져 신에게 받쳐졌다. 바스테트와 연관된 고양이를 비롯하여 호루스를 상징하는 매, 태양신 레(Re)와 동일한 존재로 여겨졌던 암사자 여신 사크메트, 혼돈과 두려움의 존재인 소베크를 상징하는 악어, 고대 멤피스에서 숭상받았던 아피스 황소 등 다양한 동물들이 신을 상징하는 신성한 동물로 여겨졌다.

신성한 동물들
이집트인들은 영원한 삶을 얻기 위해 자신이 가지지 못한 능력을 동물에게서 찾고자 했습니다. 그리고 그 능력은 곧 신의 능력이었습니다. 그들은 동물이 사람과 함께 창조되었다고 믿었을 뿐만 아니라 신처럼 자신을 보호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수많은 신들을 숭배하던 이집트인들에게 다양한 동물의 특성들은 신들과 비교할 때 좋은 대상이었습니다. 그 결과 동물의 얼굴을 한 신이 등장하게 되었고, 때로는 동물 그 자체가 신으로 여겨져 신전에서 길러지기도 하였습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17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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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의 관, 기원전 664~332년(제26왕조 ~ 제31왕조), 나무.아마천.고양이

고양이는 고대 이집트에서 가장 흔하게 미라로 만들어진 동물 가운데 하나입니다. 고양이 미라는 바스테트, 사크메트(Sakmet)와 같은 고양이과 동물과 연결된 신과 관련됩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17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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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의 관, 사카라, 기원전 664 ~332년(제26왕조 ~제31왕조), 나무.고양이

고대 이집트에서는 정교하게 금박을 입힌 고양이 형상의 목관에 고양이 미라가 안치되는 경우가 있었습니다. 이 나무로 만들어진 고양이 모양 관에도 고양이가 들어가 있었습니다. 머리 부분에는 도금한 흔적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17년)

OLYMPUS DIGITAL CAMERA고양이의 관, 사카라, 기원전 850 ~ 540년(제22왕조 ~ 제26왕조), 청동, 아마천.고양이

새끼 고양이 조각상과 관 안에 안치된 동물 미라가 함께 등장하는 것은 봉헌용 조각상에서 봉헌용 동물 미라로 넘어가는 시기의 과도기적 유물임을 알 수 있습니다. 동물 미라와 조각상은 모두 신에게 바치는 동일한 목적을 갖고 있습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17년)

OLYMPUS DIGITAL CAMERA고양이와 쥐, 테베, 기원전 1295 ~ 1075년경(제19왕조 ~ 제20왕조), 석회석에 안료

귀족과 같은 옷차림으 통통한 쥐가 의자에 앉 술잔과 꽃(혹은 생선가시), 직물 조각으로 보이는 물건을 들고 있습니다. 그 앞에 있는 홀쭉한 고양이는 쥐의 시종과 같은 모습으로 부채질을 하면서 다리를 묶은 가금류를 쥐에게 건네고 있습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17년)

OLYMPUS DIGITAL CAMERA땃쥐의 관, 기원전 664 ~ 30년(제26왕조 ~ 프톨레마이오스 왕조, 청동.땃쥐

OLYMPUS DIGITAL CAMERA땃쥐의 관, 기원전 664 ~ 30년(제26왕조 ~ 프톨레마이오스왕조), 청동.땃쥐

이집트인들은 야성성 땃쥐를 숭배하였습니다. 야행성인 이집트몽구스처럼 땃쥐도 뱀을 물리치는 동물로 여겨졌기 때문입니다. ‘밝은 눈’이라는 의미를 갖는 케티이르티(Khenti-Irty)는 어둠 속에서도 볼 수 있다고 하는데 바로 땃쥐는 켄티이르티의 야행성을 나타냅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17년)

OLYMPUS DIGITAL CAMERA따오기의 관, 투나 엘게벨, 기원전 305 ~ 30년(프톨레마이오스 시대), 나무.은.금.수정.아마천.따오기

정교하게 도금된 이 따오기 형태의 관 안에는 따오기 미라가 있습니다. 수정으로 만든 뒤 금 테두리를 입힌 눈, 도금된 몸체, 그리고 은으로 된 다리와 섬세한 묘사가 돋보이는 발은 이 관이 훌륭한 동물 관으로 뽑히는 이유입니다. 따오기는 달, 지혜, 글의 신으로 알려진 토트를 상징하는 동물입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17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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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의 관, 사카라, 기원전 664 ~30년(제26왕조 ~ 프톨레마이오스 왕조), 구리.합금.새.아마천

이 관에는 새의 미라 두 개체가 들어 있었습니다. 이집트 신전처럼 생긴 이 관의 양 옆면에는 이시스와 네프티스가 애도하고 있는 모습이 새겨져 있습니다. 관의 뒷부분에는 오시리스의 척추를 상징하는 제드 기둥이 남아 있습니다. 이 관을 만든 주인공은 ‘리헤테크’라는 남성인데, 이처럼 특이한 형태의 관을 제작한 이유에 대해 서는 밝히지 않았습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17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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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 모습의 호루스, 기원전 664 ~ 30년(제26왕조 ~ 프톨레마이오스 왕조), 청동.금

‘이중관’을 쓰고 있는 매는 오시리스의 적법한 왕위 계승자인 호루스를 상징합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17년)

OLYMPUS DIGITAL CAMERA샤크메트(Sakhmet), 기원전 664 ~ 332년(제26왕조 ~ 제31왕조), 청동

몇몇 신화에서 암사자 여신 사크메트는 태양신 ‘레(Re)’의 눈과 동일한 존재로 인식되었습니다. ‘레’의 눈은 모든 적으로부터 태양신 자신을 보호하는 위력을 가졌기 때문에 사크메트 역시 매우 강력한 힘을 가지게 되어 때로는 위협적인 존재로 여겨졌습니다. 이때는 사람의 피처럼 보이는 붉은 맥주만이 사크메트의 화를 달랠 수 있었는데, 맥주는 그녀를 고양이처럼 조용하게 만드는 효과가 있었다고 합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17년)

OLYMPUS DIGITAL CAMERA소베크(Sobek), 기원전 664 ~ 30년(제26왕조 ~ 프톨레마이오스 왕조), 청동

소베크는 흔히 악어 머리에 인간의 몸을 한 것으로 묘사됩니다. 고대 이집트 사람들은 소소한 일상의 문제점들을 해결해 달라는 바람과 함께 악어 미라를 소베크에게 봉헌했습니다. 다 큰 악어는 위험했기 때문에 주로 어린 악어를 잡아 미라로 만들어 바쳤습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17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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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브라를 쥐고 있는 이시스, 기원전 1세기, 로마 시대, 청동

이집트 신앙의 복잡한 성격은 각각의 신들이 가진 특징적인 물건을 통해 드러납니다. 오시리스의 아내 이시스가 들고 있는 고브라는 남편을 부활시키고, 그녀의 아들 호루스를 보호하는 마법의 힘을 상징합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17년)

OLYMPUS DIGITAL CAMERA아누비스(Anubis), 사카라, 기원전 664 ~ 30년(제26왕조 ~ 프톨레마이오스 왕조)

아누비스는 미라를 방부 처리하는 미라제작자, 죽은자를 심판하는 재판의 기록관, 죽은 자를 사후 세계로 인도하는 안내자로 묘사되었으며 가끔은 미라의 수호자이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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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코원숭이, 신왕국시대 이후, 나무

개코원숭이는 따오기와 마찬가지로 글쓰기와 지식의 신인 토트에게 바쳐지던 봉헌물이었습니다. 나무로 만든 개코원숭이 조각상은 토트의 신전을 꾸미던 장식품입니다. 작은 공예품처럼 만든 것은 개코원숭이 이라를 장식하던 것이며,청동으로만든 조각상은 토트를 숭배한 서기들이 사용한 상징물입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17년)

OLYMPUS DIGITAL CAMERA사자, 소하그 혹은 빌라나, 기원전 3300 ~ 3100년경(나카다 3기), 페그마카타이트(화강암의 일종)

머리만 남아 있는 이 사자 조각상은 형태로 보아 이른 시기에 만들어진 동물조각상으로 보입니다. 이집트에서는 예로부터 사자가 왕의 힘과 권력을 상징했기 때문에 이 조각상은 왕의 권력을 드러내는 용도로 사용되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17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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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렛세게르(Meretseger), 사카라, 기원전 1479 ~ 1400년경(제 18왕조), 사암에 채색

사람의 머리에 코브라의 몸을 가진 이 여신은 얼굴과 왕관에 있는 두 손가락의 특징적인 모습을 보아 풍요와 풍년을 관장하는 신인 ‘메셋세게르’로 보입니다. 테베의 수호신 메셋세게르는 ‘왕가의 계곡’과 그 일대에서 일하는 장인들을 보호한다고 여겨졌습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17년)

OLYMPUS DIGITAL CAMERA하마, 기원전 664 ~ 30년(제26왕조 ~ 프톨레마이오스 왕조), 석회석

사원에 봉헌된 이 독특한 조각상은 종 모양의 몸체에서 튀어나오 ㄴ두 동물의 머리가 특징적입니다. 머리와 귀를 보면 하마인 듯하지만, 비늘이 덮힌 피부는 악어와 비슷합니다. 수컷 하마의 조각상은 위험, 혼돈, 무질서의 신인 세트(Seth)를 뜻하고, 암컷 하마는 출산과 다산의 여신 타와레트(Tawaret)를 상징합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17년)

OLYMPUS DIGITAL CAMERA뱀의 관, 기원전 664 ~ 30년(제26왕조 ~ 프톨레마이오스 왕조), 청동

이 관에서 볼 수 있는 사람 머리를 한 코브라는 태양신 아툼(Atum)을 나타냅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17년)

OLYMPUS DIGITAL CAMERA악어가 있는 새김돌, 다함사, 기원전 1295 ~ 1070년경(제19왕조 ~ 제20왕조), 석회석

악어가 새겨진 이 새김돌은 제단과 함께 신전에 놓여 있던 것으로 악어 숭배에 사용되었습니다. 새김돌의 윗부분에서 제단 형상의 주춧돌 위에 있는 악어는 깃털 두 개와 태양 원반으로 이루어진 왕관을 쓰고 있으며, 그 오른편에는 음식과 꽃이 봉헌되어 있습니다. 아랫부분에는 관을 쓰지 않은 두 마리의 악어가 비어 있는 봉헌 탁자를 마주하고 있습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17년)

OLYMPUS DIGITAL CAMERA개코원숭이 장식, 사카라, 기원전 305 ~30년(프톨레마이오스 시대), 리넨

OLYMPUS DIGITAL CAMERA오릭스 모양의 접시, 기원전 1390 ~ 1352년경(제18왕조), 나무

사막에 사는 영양의 일종인 오릭스는 정의의 신인 마아트(Ma’at)를 위협하는 악마의 신으로 여겨졌습니다. 오시리스의 적으로도 인식된 오릭스는 보통 묶여 있는 상태로 표현되었습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17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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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과 함께 있는 호루스, 기원전 3세기(프톨레마이오스 시대), 동석

이집트인들은 이시스가 호루스를 세트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습지에 숨겨서 길렀다고 믿었습니다. 습지에서 자란 호루스는 전갈과 독사의 공격을 이겨냈으며, 이러한 전설은 주술적인 새김돌(이집트어로 ‘카푸스(Cappus)’, 마법의 석비’라는 의미가 만들어지는 배경이 되었습니다. 이 새김돌에는 악어를 딛고 서서 양손에 뱀과 전갈을 쥐고 있는 어린 호루스가 새겨져 있습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17년)

OLYMPUS DIGITAL CAMERA황소의 머리, 기자, 기원전 664 ~ 332년(제26왕조 ~ 제31왕조), 나무.유리.상아

황소는 이로운 힘과 풍요로움을 가져다 주는 신이었습니다. 또한 힘과 생식력은 왕과 연관되었기 때문에 초기 왕들은 자신의 무덤에 황소 미라를 함께 넣었습니다. 신으로 선택된 황소는 특별한 표시가 있었는데, 이마에 흰색 점이 있는 어두운 색의 소가 바로 아피스 황소입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17년)

OLYMPUS DIGITAL CAMERA물고기, 사카라, 기원전 1390 ~ 1336년경(제18왕조), 토기에 채색

흙으로 빚은 다음 아름답게 색을 칠한 이 물고기는 나일강에 사는 ‘틸라피아(tilapia)’를 나타낸 것입니다. 틸라피아는 수정된 알을 부화할 때까지 입에 담고 있기 때문에 이집트인들은 이를 부활, 재생, 번식의 상징으로 여겼습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17년)

OLYMPUS DIGITAL CAMERA물고기, 기원전 664 ~ 30년 (제26왕조 ~ 프톨레마이오스 왕조), 청동

‘물고기들의 우두머리’라는 뜻의 이름을 가진 델타의 여신 하트메히트(Hatmehit)는 물고기 쉴브(shilbe)의 모습 혹은 물고기 장식을 한 여인으 모습으로 등장합니다. 한편 물에 빠져 죽은 오시리스의 몸을 물고기가 내세에서 부활하기 전에 뜯어 먹었다는 신화 때문에 일반인들과는 달리 왕족은 물고기를 먹을 수 없었습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17년)

OLYMPUS DIGITAL CAMERA아피스 황소 (Apis Bull), 기원전 664 ~ 30년(제26왕조 ~ 트톨레마이오스 왕조), 청동

아피스 황소는 동물 중에서도 가장 신성하게 여져졌습니다. 고대 그리스 역사가 헤라도토스는 아미스 황소를 ‘검은 이마에 하얀 다이야몬드가 박혀 있고, 등에는 독수리처럼 날개가 달렸으며, 꼬리에는 털이 두 가닥 있고, 혀 아래에는 쇠똥구리 모양의 표시가 있다”고 했습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17년)

OLYMPUS DIGITAL CAMERA동물무늬 건축용 장식, 헤라클레오클리스, 기원후 4세기(로마시대), 석회석에 채색

둥근 덩굴무늬 안에 동물이 새겨진 이 새김돌은 건물을 장식하던 부재의 일부입니다. 여기에는 야생돼지가 가젤을 쫓고 있고, 하이에나는 개를 쫓고 있는 모습이 담겨 있습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17년)

OLYMPUS DIGITAL CAMERA개구리, 원숭이, 고슴도치

개구리. 개구리 조각상은 글을 새겨 부적으로도 사용했는데, 특히 안전한 출산과 다산을 기원하는 여인들에게 인기가 많았습니다. 이집트 사람들은 부활의 시기인 신년에 개구리 조각상을 선물로 주고 받았다고 합니다. 원숭이. 귀에 구멍이 뚫려 있는 것으로 보아 원래는 금속 귀걸이를 하고 있던 것으로 보입니다. 이집트인들은 인간 흉내를 곧잘 내고 익살스러운 원숭이를 좋아했습니다. 고슴도치.고슴도치는 식량이 부족해지면 오랫동안 땅굴에서 은둔하다가 풍족한 시기가 되면 다시 밖으로 나와 활동합니다. 이집트인들은 이런 습성을 부활관련시켜서 생각했습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17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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숫양을 숭배하는 모습의 비석, 수단 어머라, 기원전 1292 ~1196년경(제19왕조), 사암

이 새김돌의 가장 윗부분에는 “아문 레, 서 아마라 앞 두 개의 땅(이집트)에 있는 왕좌의 주인”이라는 내용의 글이 적혀 있습니다. 그리고 주인공은 양의 머리를 한 사자 앞에 무릎을 꿇고 있습니다. 양은 생색력, 사자는 힘을 상징합니다. 한편 이집트에서의 숫양 숭배는 숫양을 제물로 바치는 유대계 관습과 마찰을 일으키기도 했습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17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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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라피스, 그리스, 기원전 30년 ~ 기원후 335년(로마시대), 대리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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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라피스(앞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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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라피스(뒷면)

이집트를 통치하던 그리스인들은 그리스와 이집트 신들을 결합함으로써 통치를 공고히 하였습니다. 세라피스는 이런 과정에서 나타나 이집트와 그리스 신들이 합쳐진 것을 말합니다. 수염이 난 쪽은 이집트 신 오시리와 그리스 신 제우스, 그리고 수염이 없는 여성스런 모습은 이집트 신 이시스와 그리스 신 헤라가 합쳐진 모습입니다. 그리스에서 만들어진 이 조각상은 사람의 얼굴에 동물의 뿔과 귀를 결합하는 이집트의 관습을 따르고 있습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17년)

<출처>

  1.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 “이집트 보물전”, 2017년
  2. 위키백과, 2018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