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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박물관 조각 공예관] 분청사기 귀얄과 분장

분청사기(粉靑沙器)는 회색 또는 회흑색 태토 위에 백토로 표면을 분장한 다음 유약을 입혀서 구운 자기를 말한다. 14세기 중반에 시작하여 16세기에 백자에 밀려 쇠퇴할 때까지 만들어졌다. 분청사기의 특징은 다양한 백토의 분장기법에 있다. 분장기법으로는 인화(印花), 상감(象嵌), 음각(陰刻), 박지(剝地), 철화(鐵畵), 귀얄, 분장 기법이 있다. 귀얄기법은 귀얄자국 외에 다른 기법이 첨부되지 않은 상태를 말한다. 태토 위에 귀얄로 힘있고 빠르게 바르기 때문에 운동감을 줄 뿐만 아니라 회화적인 효과를 준다. 분장기법은 백토물에 담갔다가 꺼낸 뒤 유약을 입힌 것으로 매우 침착하고 조용한 분위기를 준다. 귀얄기법의 속도감과 분장기법의 안정감은 대조를 이루는 느낌을 주고 있다.

귀얄과 분장 20230310_01
<분청사기 귀얄 항아리, 조선 15세기 후반 ~ 16세기 전반, 1981년 이홍근 기증>

목 부분에 세 개의 귀가 부착된 대형 항아리이다. 거침없는 귀얄의 붓질 위에 자연스럽게 흘러내린 유약은 한 편의 추상화를 보는 듯하다. 자유로운 분장토의 붓질과 유약의 흐름이 멋스럽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2023년)

귀얄과 분장 20230310_02<분청사기 인화귀얄무늬 발, 조선 15세기 후반 ~ 16세기 전반, 1981년 이홍근 기증>

굽이 다소 높은 단정한 형태의 발로 귀얄과 인화 기법이 함께 쓰였다. 이처럼 귀얄은 인화 등 다른 분청사기의 장식 기법과 함께 쓰인 경우도 있다. 붓의 느낌과 도장의 단정함이 오묘하게 어울린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2023년)

귀얄과 분장 20230310_03<분청사기 분장무늬 완, 조선 15 ~ 16세기 전반, 1981년 이흥근 기증>

분장 기법은 백토물에 그릇을 덤벙 담그는 기법으로 대개 손으로 굽을 잡고 거꾸로 담근다. 따라서 백도가 자연스럽게 흘러내린 작구이 제각각이며 독특한 무늬가 생기기도 한다. 제작 과정 자체가 예술이 된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2023년)

귀얄과 분장 20230310_04<분청사기 분장무늬 대접, 조선 15~16세기 전반>

백토를 탄 물에 덤벙 담갔다 꺼내어 백토가 자연스럽게 흘러내린 자국이 있다. 안쪽 바닥면에는 철 성분으로 된 흑갈색 얼룩이 번져 있어 독특한 미감을 자아낸다. 분장 기법은 제작 공정의 단순화와 제작 효율을 향상시킬 수 있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2023년)

귀얄과 분장 20230310_06<분청사기 조화 풀꽃무늬 병, 조선 15~16세기 전반, 1981년 이홍근 기증>

무게 중심이 저부에 있고 목 위로 입술이 벌어진 전형적인 조선 초기 병의 형태이다. 귀얄로 분창토를 두텁게 칠하고 그 위에 조화 기법으로 풀꽃무늬를 그렸다. 무늬를 그린 이의 순박한 마음이 느껴진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2023년)

귀얄과 분장 20230310_05<분청사기 조화 구름무늬 대접, 조선 15~16세기 전반, 2006년 남궁련 기증>

그릇의 상단에 백토로 분장하고 조화 기법으로 구름무늬를 넣었다. 분장한 곳과 태토의 색의 대비가 뚜렷하다. 이와 비슷한 파편이 고흥 운대리 가마터에서 발견되었다. 그릇 안쪽 바닥에 그릇을 포개어 구운 자국이 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2023년)

귀얄과 분장 20230310_07<1. 분청사기 귀얄 대접, 조선 15~16세기 전반,1981년 이홍근 기증>

귀얄과 분장 20230310_08<2. 분청사기 귀얄발, 조선 15~16세기 전반, 1981년 이홍근 기증>

귀얄과 분장 20230310_09<2. 분청사기 분장무늬 합, 조선 15~16세기 전반>

귀얄과 분장 20230310_10<2. 분청사기 분장무늬 합, 조선 15~16세기 전반>

귀얄과 분장 20230310_11<1. 분청사기 귀얄 제기, 조선 15~16세기 전반>

제관들이 제사를 시작하기 전에 손을 씻는 그릇이다. 제기의 한 종류인 세(洗)로 손잡이와 높은 굽이 특징이다. 큰 크기의 중량감과 시원한 귀얄의 붓질이 멋스럽다. 조선 전기 분청사기 제기의 면모를 볼 수 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2023년)

귀얄과 분장 20230310_13<2. 분청사기 파초무늬 병, 조선 15~16세기 전반>

귀얄과 분장 20230310_14<2. 분청사기 파초무늬 항아리, 조선 15~16세기 전반>

귀얄과 분장 20230310_12<2. 분청사기 귀얄 편병, 조선 15~16세기 전반>

귀얄과 분장 20230310_15<분청사기 귀얄병, 조선 15~16세기 전반, 1981년 이홍근 기증>

귀얄과 분장의 묘미
조선의 분청사기는 장식 기법이 다양합니다. 그중에서 흰색 분장토가 돋보이는 귀얄과 분장 기법은 오늘날 널리 사랑받는 장식 기법입니다. 귀얄 분청사기가 무습한 듯 거친 붓질 자국이 매력이라면, 백토 물에 덤벙 담가 만든 분장 분청사기에는 백토물이 흘러 내리다. 멈춘 순간이 그대로 담겨 있습니다. 조선 전기의 장인들이 빚어낸 귀얄과 분장 분청사기의 아름다움에 현대인들은 빠져듭니다. 즉흥적인 붓의 율동감, 소박한 듯 거친 귀얄 자국, 거칠 것 없는 자유로움, 흘러내린 백토의 우연한 모습은 현대인의 감성을 자극합니다. 백색 분장토가 주는 미묘한 변화와 아름다움을 감상하면서 우리는 예술적인 영감을 얻습니다. 분청사기의 귀얄과 분장 기법은 현대 미술의 여러 분야에서 활발하게 재해석되고 발전하고 있습니다. 조선의 사기 장인이 지닌 소박한 심상이 오늘날에도 여전히 살아 숨 쉬고 있습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2023년)

<출처>

  1. 안내문, 중앙박물관, 2023년
  2. ‘분청사기(粉靑沙器)’,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소, 2023년

 

[중앙박물관특별전, 합스부르크 600년] 합스부르크가의 비상

국립중앙박물관에서는 2022년 겨울 <합스부르크 600년, 매혹의 걸작들>이라는 제목으로 특별전을  개최하였다. 합스부르크가(독일어: Haus Habsburg)는 유럽 왕실 가문들 중 가장 영향력이 있던 가문 중 하나로 중세 이후 거의 600년 동안 오스트리아를 통치했으며 유럽 대부분의 왕실과 연결되어 있다. 이전 전시에서는 빈미술사박물관에서 소장하고 있는 걸작 96점을 소개되었는데 루벤스를 비롯하여 합스부르크가의 후원을 받았던 화가들의 작품들을 볼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합스부르크가는 10세기 스위스 슈바벤 지방의 백작 가문에서 점차 독일 남부지방으로 영향력을 확대하여 신성로마제국의 큰 세력으로 부상하였다. 13세기 루돌프1세가 신성로마제국 황제가되면서 오스트리아지역으로 진출한다. 16세기초 막시밀리안 1세는 결혼으로 영토로 확장하여 독일 뿐만 아니라 이베리아반도 등으로 진출하였다. 전성기 합스부르크왕가는 오스트왕, 독일왕, 신성로마제국황제, 에스파냐 왕, 포르투갈 와으이 왕가로 유럽 최대읭 왕실가문으로 부상했다. 1804년 프란츠 2세는 오스트리아의 황제를 칭했으며 1867년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이 탄생했단. 제1차 세계대전 이후 합스부르크 왕가는 완전히 몰락하여 역사속으로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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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시밀리안 1세, 베른하르트 슈트리겔(1460~1528) 원작을 모사, 1508년 이전, 나무에 유화>

신성로마제국의 황제는 강력한 제후 세력과 맞서야 했고 실질적인 통치력은 약했다. 1508년 황제가 된 막시밀리안 1세는 군주의 권위와 명성을 드러내기 위해 초상화를 선전 수단으로 활용했다. 황제는 갑옷을 입고 오른손에는 황제의 홀을, 왼손으로는 검 손잡이를 쥐고 ‘명예의 천’이라 부르는 화려한 붉은색 천을 배경으로 서 있다. 이러한 양식의 초상화는 오늘날에도 다양하게 변화되어 전해지고 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23년)

설계자 막시밀리안 1세
신성로마제국 황제 역시 다른 군주처럼 자신의 공국만을 다스리는 특별하지 않은 군주였습니다. 그러나 1508년 신성로마제국 황제로 등극한 막시밀리안 1세는 나름의 비책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바로 결혼으로 영토를 확장하고 동맹을 맺어 제후들이 무시할 수 없는 황제의 권위를 세우는 것이었습니다. 막시밀리안 1세는 마리와 결혼하여 부르쿤트공국을 얻었고 아들과 딸을 스페인 왕실의 공주, 왕자와 결혼시켜 동유럽 까지 손에 넣었습니다. 막시밀리안 1세는 합스부르크 왕가가 유럽의 패권을 할 수 있도록 기초를 다진 진정한 설계자였던 셈입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23년)

중앙박물관특별전 합스부르크 20230310_04<마상시합>

마상시합의 종류
마상 시합은 11세기부터 있었지만 본격적으로 형식을 갖춘 것은 막시밀리안 1세 때였습니다. 마상시합은 본래 훈련의 일종으로 시작되었으나, 개인의 용맹함과 무예를 드러내고 역동적인 경기를 관람자에 보여줄 수 있어 크게 유행했습니다. 마상 시합에는 크게 네 종류가 있습니다.
1. 날카로운 창으로 하는 마상시합: 날카로운 창으로 상대의 방패나 머리를 공격해 떨어트리면 점수를 얻는 시합
2. 보호대를 씌운 창으로 하는 평화 시합: 창끝으로 뭉툭한 보호대를 씌우고 공격해 상대를 말 아래로 떨어뜨리면 점수를 얻는 시합
3. 지상 결투: 말을 타지 않고 지상에서 검으로 결투해 승패를 가리는 시합
4. 자유 마상 시합” 창으로 하는 시합과 지상 결투를 결합한 형태의 시합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23년)

중앙박물관특별전 합스부르크 20230310_14
<켄타우로스 에우리티온을 죽이는 헤라클레스, 안토니오 수시니(1558~1624), 1600년경, 청동>

중앙박물관특별전 합스부르크 20230310_12
<뒷면>

에우리티온은 올레노스의 왕 텍사메노스의 딸과 결혼하고자 왕을 위협하지만 헤라클레스와 결투를 벌여 결국 죽는다. 조각은 헤라클레스가 에우리티온을 죽이는 순간을 묘사한 것으로 수시니가 그의 스승이었던 메디치 가문의 궁정 조각가 잠볼로냐(1529~1608)의 작품을 복제한 것이다. 눈에 눈동자와 홍채를 새긴 것은 수시니 작품의 특징으로 꼽을 수 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23년)

중앙박물관특별전 합스부르크 20230310_15
<헤라클레스, 16세기 후반, 대리석>

중앙박물관특별전 합스부르크 20230310_11
<뒷면>

고대 영웅 헤라클레스는 그의 상징인 사자 가죽이 걸린 기둥에 기대서서 생각에 잠겨 있다. 오른손을 무심히 등 뒤에 대고 마치 영웅으로 보낸 지난날을 회상하듯 생각에 잠겨 바닥을 바라보고 있다. 헤라클레스를 근육질표현한 고대 그리스 조각과 달리, 날씬한 골격의 모습으로 그려낸 것이 이 작품의 특징이다. 카를 5세(1500~1558)는 영웅으로서 헤라클레스를 자신의 모습으로 즐겨 사용했다고 하여, 조각상의 얼굴이 황제를 연상시킨다는 주장도 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23년)

중앙박물관특별전 합스부르크 20230310_29
<마티아스, 뤼카스 판 필게보르흐(1535년경 경 ~ 1597), 1583년경, 캔버스에 유화>

마티아스(1557~1619)가 린츠에 머물던 시절에 그의 궁정 화가였던 뤼카스 판 팔켄보르흐가 그린 것이다. 그는 루돌프 2세의 동생이다. 정치적 야먕이 컸던 마티아스는 헝가리 신교 진영 세력을 규합해 1608년에는 오스트리아와 헝가리, 1612년 신성로마제국황제로 추대됐다. 황제가 된 이후에는 오히려 신교 진영을 탄압하는 정책을 펴 30년 전쟁의 단초를 제공하기도 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23년)

중앙박물관특별전 합스부르크 20230310_03<합스부르크 전성기 영역>

더 멀리, 합스부르크가의 비상
10세기 스위스 북부 지역의 백작 가문이었던 합스부르크가문은 1273년 루돌프 1세가 신성로마제국 황제가 되면서 ‘동쪽 영역’이라 불리던 오스트리아 지역으로 진출합니다. 신성로마제국의 황제가 된다는 것은 로마 황제의 권력을 계승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컸습니다. ‘더 멀리’라는 좌우명을 가진 가문답게 합스부르크 사람들은 오스트리아에 정착한 후 점점 세력을 넓힙니다. 마침내 16세기에는 프랑스와 영국을 제외한 유럽 대붑의 지역과 아메리카와 아시아에 이르기까지 ‘해가 지지 않는 제국’을 이룹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23년)

합스부르크 왕가에서 수집하여 소장했던 갑옷들은 16세기 이후에 마상창시합에 사용되었던 갑옷들이다. 실제 전투의 목적도 아니고 장식을 위한 것도 아닌 왕족과 귀족들의 패션 아이템으로 제작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중앙박물관특별전 합스부르크 20230310_19
<막시밀리안 1세의 갑옷, 로렌츠 헬륨슈미트(1450~1515), 1492년경, 강철, 황동에 도금, 가죽>

중앙박물관특별전 합스부르크 20230310_06<상체 부분>

중앙박물관특별전 합스부르크 20230310_20
<왼쪽>

중앙박물관특별전 합스부르크 20230310_21
<오른쪽>

1508년에 신성로마제국 호아제가 되는 막시밀리안 1세(1459~1519)가 1490년대 초 합스부르크 가문의 세습 영지를 지배하게 된 것을 기념하여 주문한 것으로 추정된다. 기록으로 전하는 갑옷 가운데 가장 오래된 것으로 갑옷 제작 역사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무릎보호대 양쪽에는 돋을새김이 장식되어 있다. 로렌츠 헬름슈미트는 막시밀리안 1세의 황실 갑옷 장인이었는데 로렌츠 가문은 16세기 중반까지 합스부르크 황제들을 위해 갑옷을 제작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23년)

중앙박물관특별전 합스부르크 20230310_22
<사브르, 1560년경, 코듀로이 직물, 철, 금, 은, 아말감 도금, 나무>

중앙박물관특별전 합스부르크 20230310_07<손잡이 장식>

사브르란 날이 휘어진 긴 칼이다. 전투용이 아니라 축제 행렬에서 의장용으로 사용했던 것이다. 이런 형태의 칼은 르네상스 초기에 나타난 것이지만, 16세기 무렵까지만 해도 고대의 무기로 잘못 알려져 있었다. 이 사브르는 페르디난트 1세(1503~1564)의 아들이자 루돌프 2세와 마티아스의 아버지인 막시밀리안 2세가 소장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23년)

중앙박물관특별전 합스부르크 20230310_23
<루돌프 2세의 ‘리본 장식’ 갑옷, 안톤 펜펜하우저(1525년경 ~ 1603), 1571년경, 연철,금,황동,직물,가죽>

중앙박물관특별전 합스부르크 20230310_08<상체 부분>

중앙박물관특별전 합스부르크 20230310_24
<왼쪽>

중앙박물관특별전 합스부르크 20230310_25
<오른쪽>

갑옷 전체를 장식하는 금색 리본과 잎 무늬가 인상적이다. 리본장식을 의미하는 ‘플레히트반트’라는 갑옷 이름은 이 장식에서 유래한 것이다. 이 마상 창 시합용 갑옷은 중세부터 전통적으로 사용되던 강철 치마가 없는 구조로 제작되어 지상 결투에 적합하도록 했다. 막시밀리안 2세가 1570년 열린 동생 카를 2세 대공과 바이에른의 마리아 안나의 혼인식 기념 축제에 참여하는 아들 루돌프 2세를 위해 이 갑옷을 주문한 것으로 추측한다. 가슴 부위에 돌출된 것은 창이나 깃발을 거치하는 용도이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23년)

중앙박물관특별전 합스부르크 20230310_16
<세로 홈 장식 갑옷, 빌헬름 폰 포름스 1세(1501~1537), 1525~30년경, 연철, 가죽>

중앙박물관특별전 합스부르크 20230310_05<상체>

중앙박물관특별전 합스부르크 20230310_17
<왼쪽>

중앙박물관특별전 합스부르크 20230310_18
<오른쪽>

갑옷 표면의 세로 홈은 당시 의복의 주름 상식을 모방한 것이다. 홈 장식은 빛을 반사해 표 현을 빛나게 하는 효과를 내고 갑옷의 강도를 높여 보호 기능을 강화했다. 얼굴 표정을 연상하게 하는 투구는 마상 창 시합과 함께 열린 가면극에서 영향을 받은 것이다. 이 갑옷은 뷔르템베르크의 울리히 공작(1487~1550)이 실제 사용했던 것으로, 그의 손자가 프르디나트 2세 대공에게 선물한 것이다. 페르디난트 2세 대공은 티롤의 암브라스 성에 ‘영웅들의 무기고’를 지어 무기와 갑옷을 수집하고 전시한 것으로 유명하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23년)

중앙박물관특별전 합스부르크 20230310_26
<페르디난트 2세 대공의 독수리 장식 갑옷, 외르크 조이젠호퍼(1528~1580), 1547년, 연철, 아말감 도금, 황동, 가죽, 천>

중앙박물관특별전 합스부르크 20230310_09<상체>

중앙박물관특별전 합스부르크 20230310_28
<왼쪽>

중앙박물관특별전 합스부르크 20230310_27
<오른쪽>

현존하는 르네상스식 갑옷 세트 중 가장 큰 것으로, 총 90개의 부속으로 구성되어 있다. 옛 오스트리아의 상징인 독수리가 금박으로 장식되어 있어 <독수리 갑옷>으로도 불린다. 이 갑옷은 페르디난트 1세가 아들 페르디난트 2세 대공을 위해 황실 갑옷 제조공 외르크 조이젠호퍼에게 주문해 제작된 것이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23년)

갑옷은 패션이다.
중세와 르네상스 시대에 갑옷은 남성이 소유할 수 있는 가장 비싼 물건 중 하나였습니다. 전투 때 몸을 보호하는 기능만 한 것이 아니라 사회적 지위와 권력을 나타내기도 했습니다. 갑옷이 빛을 발한 대표적인 행사는 중세 후기와 르네상스 시기에 유행한 마상시합 이었습니다. 마상 시합의 형식에 따라 특화된 갑옷이 필요해 주로 부품을 조립식으로 제작했습니다. 부품 수가 많을수록 비싸고 기능이 다양한 갑옷으로 여겨졌습니다. 단순히 전투를 위한 목적만이 아닌 시대의 패션으로서 유행에 따라 갑옷의 형태도 달라진, 합스부르크 왕가의 대표 수집품입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23년)

중앙박물관특별전 합스부르크 20230310_01<중앙박물관특별전 ‘합스부르크 600년, 2023년>

중앙박물관특별전 합스부르크 20230310_02<중앙박물관특별전 ‘합스부르크 600년, 2023년>

합스부르크 600년, 매혹의 걸작들
중세로부터 근대를 지나 현대에 이르기까지, 유럽에서 가장 영향력 있었던 왕가는 어디일까요? 합스부르크는 1273년 신성로마제국 황제로 선출된 루돌프 1세를 시작으로 역사의 중심으로 진출했습니다. 시간이 흘러 1918년 제1차 세계대전 뒤 황제에서 물러난 카를 1세에 이르기까지 600여 년간 유럽의 정치, 경제, 예술의 한 가운데에 있었습니다. 합스부르크는 서양 미술을 대표하는 걸출한 예술가들의 후원자로도 잘 알려져 있습니다. 루벤스, 벨라스케스, 반 다이크 등 이름만 들어도 가슴이 뛰는 위대한 예술가들에 대한 가문의 후원은 합스부르크 사람들이 가진 예술 사랑과 예술품 수집에 담은 남다른 철학 덕분입니다. 이번 특별전에서는 합스부르크가 수집하여 빈미술사박물관에서 소장하고 있는 걸작 96점을 소개합니다. 특히 1892년 한국과 오스트리아의 수교를 기념하여 고종이 프란츠 요제프 1세에게 준 선물도 130연 년 만에 우리를 찾아왔습니다. 19세기 말 조선과 오스트리아가 나눈 마음의 증표입니다. 600년 매혹의 세계로,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23년)

<출처>

  1.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23년
  2. ‘합스부르크가’, 위키백과, 2023년
  3. ‘판금갑’, 위키백과, 2023년

 

[중앙박물관특별전, 외규장각과 의궤] 왕의 책, 외규장각 의궤

외규장각은 조선 정조 때 왕실 서적을 보관할 목적으로 강화부 관아에 설치한 규장각이다. 구한말 병인양요 당시 외규장각은 프랑수군의 방화로 소실되었고 의궤를 비롯한 340여 권의 도서가 약탈되었다. 이후 프랑스 국립도서관 창고에 방치되어 있다가 여러차례 조사와 연구를 통해 그 내용이 확인되었으며 1990년대 이후 영구임대형식으로 국내로 반환되었다. 외규장각 의궤에는 국왕의 열람을 위해 제작한 어람용과 국내외에 한 점밖에 없는 유일본들이 상당수 포함되어 있다. 국립중앙박물관에서는 외규장각 의궤가 국내로 돌아온지 10년 된 기념로 특별전 <외규장각과 의궤>를 개최하였다. 의궤는 조선시대 중요 국가 행사의 전체 과정을 상세하게 기록한 책이다. 예법으로 왕조의 정통을 세우고 백성들을 통치하는 의도가 의궤에 담겨 있다.

중앙박물관특별전 외규장각과 의궤 20230308_01<어보를 담는 외함 보록(寶盝), 조선>

중앙박물관특별전 외규장각과 의궤 20230308_02<외규장각의 관리 대장, <외규장각형지안>, 1856년(철종7), 1책(48장)>

1856년(철종7) 11월에 작성한 강화도 외규장각의 형지안(形止案)입니다. ‘형지안’이란 지금의 관리 대장과 같은 것입니다. 내용을 보면 외규장각의 내부 구조와 물품의 보관 상태를 알 수 있습니다. 중앙 안쪽에 3층의 봉안장이 있었고, 여기에 왕과 왕실 구성원들이 책봉될 때 받은 옥책, 금보, 교명(敎命)을 보관하였습니다. 왕실의 위상을 직접 상징하는 가장 귀한 의물(儀物)입니다. 나머지 공간에는 탁자들을 배치했는데, 그 위에 각종 서적이나 족자를 올려두었습니다. 그중에서도 가장 많은 수량을 차지한 것이 의궤입니다. 1856년 형지안 1책에서 확인되는 의궤만도 430여 책에 달합니다. 왕실의 가장 귀한 물건들과 함께 보관할 만큼, 의궤는 귀한 책이었던 것입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23년)

중앙박물관특별전 외규장각과 의궤 20230308_93<어보를 담는 외함 보록(寶盝), 조선>

중앙박물관특별전 외규장각과 의궤 20230308_03<철인왕후에게 존호를 올리며 만든 옥책, 대한제국 1908년, 옥>

옥책(玉冊)은 왕비를 책봉하거나, 왕과 왕비.왕대비.대왕대비 등에게 덕을 높이 기리는 칭호(존호) 등을 올릴 때 그 내용을 옥에 새겨 첩으로 엮어 만든 것입니다. 1856년의 <외규장각형지안>을 보면 대왕대비였던 순조의 비 순원왕후와 왕대비였던 익종(효명세자)의 비 신정왕후의 옥책 여러 건을 보관하고 있었습니다. 지금 전시된 옥책은 1908년에 만든 철종의 비 철인왕후에게 존호를 올릴 때 만든 것으으로 외규장각에 보관하던 것은 아니지만, 순원왕후나 신정왕후의 옥책도 이와 같은 형태였을 것입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23년)

중앙박물관특별전 외규장각과 의궤 20230308_05<정조의 글을 모은 문집 <홍재전서>(인쇄본), 1814년(순조 14), 수원화성박물관>

중앙박물관특별전 외규장각과 의궤 20230308_06<조선 왕실 족보 <선원계보기략>, 조선>

중앙박물관특별전 외규장각과 의궤 20230308_91
<명나라 숭정황제의 글씨 탑본, 조선, 경기도박물관>

외규장각 중앙 봉안장의 옆 탁자에는 명나라 숭정황제의 글씨를 탑본한 족자가 9점 놓여 있었습니다. 조선은 임진왜란을 겪을 때 군대를 파견해 준 명나라에 의리를 지킨다는 의미에서 마지막 황제인 숭정황제를 높이 기렸고, 사대부들은 숭정황제의 글씨를 탑본이난 첩으로 만들어 소장하기도 했습니다. ‘사무사(思無邪)’라고 쓴 이 글씨는 공자가 고대 중국의 시를 모은 경전 <시경>에서 가장 중요한 구절로 꼽은 것입니다. ‘생각에 사특함이 없다’는 뜻입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23년)

중앙박물관특별전 외규장각과 의궤 20230308_07<흑칠 함, 조선, 나무에 칠>

중앙박물관특별전 외규장각과 의궤 20230308_08<주칠함, 조선후기, 나무에 칠>

외규장각과 의궤
여러분은 지금 외규장각 안에 있습니다. 조선 왕실의 귀한 물건들이 가득 차 있는 보물창고입니다. 왕실의 상징인 금보(金寶)와 옥책(玉冊), 선왕의 보배 같은 글귀와 유구한 역사를 담은 왕실 족보 등. 조선의 정체성이자 왕조의 역사 그 자체입니다. 그중에 가장 많은 것이 의궤(儀軌)였습니다. 우리가 지금 ‘외규장각 의궤’라고 부르는 바로 그것입니다. 외규장각은 한강이 끝나는 바다 위 강화도에 있었습니다. 조선시대에 강화도는 외적의 침입으로부터 국가와 왕실의 안전을 지켜주는 ‘보장지처’였습니다. 가장 안전한 땅에 특별히 건물을 지어서 보관할 만큼, 외규장각 의궤는 귀한 책이었습니다. 어떤 점이 특별했기에, 어떤 중요한 내용을 담고 있기에 이처럼 귀하게 보관했던 것인지, 지금부터 차근차근 살펴보겠습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23년)

조선시대 왕실이나 국가 행사를 상세하게 기록한 의궤는 3부에서 9부까지 발행하였다. 현재까지 총 608종이 남아 있는데 그중 왕실의 장례와 관련된 내용이 35% 정도이며, 서적의 편찬과수정에 관한 내용(17%), 공덕을 드러내는 존호와 관련된 내용(10%), 왕실 건물의 건축과 수리와 관련낸 내용(9%) 등이 포함되어있다. 현재 의궤의 주요 소장처로는 서울대 규장각 한국학연구원, 한국학중앙연구소 장서각, 국립문화재연구소, 국립고궁박물관, 국립중앙박물관 등이다.

중앙박물관특별전 외규장각과 의궤 20230308_10<어람용 헌종국장도감의궤(1), 1850년(철종1) 1책(176장)>

중앙박물관특별전 외규장각과 의궤 20230308_09<분상용 헌종국장도감의궤(1), 1850년(철종1), 1책(176장), 규장각한국학연구원, 보물>

어람(御覽)의 품격
일국을 경영하는 왕의 권위가 자극하듯이, 왕의 손길이 닿는 어람용 의궤 또한 그에 어울리는 품격을 갖추어야 했습니다. 또한 후세의 왕들에게 대대로 전해야 했기에 국격도 상징할 수 있어야 했습니다. 그래서 어람용 의궤는 일반 서책에서 볼 수 없는 고급스러운 장황(粧䌙) 방법을 썼습니다. 최상의 재료만 모아서 가장 뛰어난 솜씨의 장인이 조선만의 미으식으로 완성하였습니다. 그 결과 어람용 의궤는 일반적인 서책과는 다른 격조를 지니게 되었습니다. 눈길을 사로잡지만 결코 과하지 않은 화려함, 일부러 내세우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드러나는 우아함. 이것이 바로 ‘어람’의 품격입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23년)

중앙박물관특별전 외규장각과 의궤 20230308_11<어람용 효장세자책례도감의궤(하), 1725년(영조1) 1책(164장)>

중앙박물관특별전 외규장각과 의궤 20230308_12<분상용 효장세자책례도감의궤, 1725년(영조1), 1책(189장)>

어람용 의궤와 분상용 의궤
어람용 의궤는 최상의 재료를 써서 최고의 전문가가 만들었습니다. 은은하게 품위가배어나는 비단 표지와 반짝반짝 빛나는 놋쇠 장식, 깨끗하고 윤기가 나는 고급 종이에 한자 한자 정성스럽게 쓴 글자, 섬세한 솜씨로 그려 넣은 그림까지, 어느 하나 평범하지도 모자라지도 않습니다. 분상용 의궤는 행사 진행을 담당하는 관원들이 참고할 수 있도록 만든 책입니다. 중요한 국가 행사의 기록이기 때문에 종이로 표지를 만들고 실로 묶는 일반적인 서책보다 격을 높였지만, 튼튼한 삼베로 표지를 만들고 화려한 장식은 생략하여 실용성을 높였습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23년)

중앙박물관특별전 외규장각과 의궤 20230308_13<1. 숙종인경왕후인현왕후윈원황후존숭도감의궤(상) 책의, 1713년(숙종39)><2. 인조장릉천릉도감의궤(1) 책의, 1832년(영조8)>

1. 숙종인경왕후인현왕후윈원황후존숭도감의궤(상) 책의, 1713년(숙종39)
17세기 중엽에서 18세기 초에 만든 어람용 의궤는 주로 구름무늬와 보배무늬가 어우러진 구름보배무늬의 초록색 비단으로 표지를 만들었습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23년)

2. 인조장릉천릉도감의궤(1) 책의, 1832년(영조8)
18세기 전반에는 어람용 의궤의 표지로 커다란 연꽃과 넝쿨이 표현된 연꽃넝쿨무늬 초록색 비단을 주로 사용하였습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23년)

중앙박물관특별전 외규장각과 의궤 20230308_14<3. 헌종효현왕후가례도감의궤(하) 책의, 1837년(헌종 3)><4. 인선왕후빈전도감의궤 책의, 1674년(현종 15)>

3. 헌종효현왕후가례도감의궤(하) 책의, 1837년(헌종 3)
18세기 중반부터는 무늬가 없는 초록색 비단으로 표지를 만들었습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23년)

4. 인선왕후빈전도감의궤 책의, 1674년(현종 15)
보통의 초록색 비단 표지와 달리 푸른 비단으로 표지를 만들었습니다. 무늬는 구름무늬가 중심이 되고 사이사이에 보배무늬가 들어간 구름보배무늬입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23년)

중앙박물관특별전 외규장각과 의궤 20230308_15<5. 인조인열왕후부묘도감의궤(2), 1651년(효종2)>

18세기 초까지 어람용 의궤의 놋쇠 변철에는 별다른 무늬를 새기지 않았습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23년)

중앙박물관특별전 외규장각과 의궤 20230308_16<6. 순원왕후상호도감의궤, 1841년(헌종7), 1책(178장)><7. 효순현빈묘소도감의궤(하), 1792년(영조28)>

6. 순원왕후상호도감의궤, 1841년(헌종7), 1책(178장)
18세기 중엽부터는 변철에 연꽃덩쿨무늬 또는 넝쿨무늬를 새겼습니다. 구부러진 줄기와 잎 사이 빈 공간은 정으로 쪼아서 작은 점무늬를 채웠습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23년)

7. 효순현빈묘소도감의궤(하), 1792년(영조28)
변철에 악기, 약병, 부채 등 여러 가지 화려한 기물의 형상을 넣었습니다. 이러한 무늬를 ‘보배무니’라고 합니다. 보배무늬를 넣은 변철은 1752년(영조 28)에 제작한 어람용 의궤에서만 확인됩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23년)

어람용 의궤의 장황
어람용 의궤의 표지는 대부분 초록색 비단으로 만들었지만 푸른색 비단이나 염색하지 않은 비단을 사용하기도 했습니다. 비단에 들어간 무늬 중 가장 많이 쓰인 것은 구름무늬입니다. 화려한 연꽃넝쿨무늬가 표현된 비단도 많이 썼습니다. 풍성한 잎사귀가 달린 넝쿨이 큼직한 연꽃봉오리를 감싸고 있습니다. 구름이나 연꽃 사이사이 반짝이는 보배무늬가 들어간 비단도 보입니다. 영조 때에는 왕실이 앞장서서 검소함을 강조했습니다. 이때 만든 의궤는 별다른 무늬가 없는 비단을 사용하여 단아한 멋을 살렸습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23년)

표지와 내지를 묶을 때 쓰는 금속인 변철(邊鐵)은 처음에 문양이 없는 놋쇠 판을 썼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여기에도 다양한 문양을 새겼습니다. 가장 많은 것은 넝쿨무늬입니다. 유연하게 휘어진 줄기와 잎사귀, 활짝 핀 연꽃을 가득 새기고 여백에는 작은 점을 채웠습니다. 영조 때 만든 의궤 중에는 꽃송이 사이에 마름모꼴의 보배무늬를 넣어서 영화로움을 더한 변철도 있습니다. 변철 위에 박은 못은 국화동으로 장식했습니다. 빗금으로 꽃술을 표현하고 그 주위에 8장의 꽃잎이 둘러싼 모양, 꽃잎을 2겹으로 만들어서 화사함을 더한 모양 등 다양합니다. 작은 못 하나까지 아름답게 장식한 세심함이 느껴집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23년)

중앙박물관특별전 외규장각과 의궤 20230308_17<의소세손책례도감의궤, 1751년(영조27), 1책(221장)>

1751년(영조 27)에 의소세손을 왕세손으로 책봉한 과정을 기록한 의궤입니다. 의소세손은 사도세자와 혜빈 홍씨의 맏아들로 태어나자마자 곧바로 ‘원손’으로 불렸습니다. 원손을 크게 아낀 영조는 바로 이듬해에 왕세손으로 책봉하는 의례를 거행하였습니다. 지금 보는 면은 왕세손 책봉 때 수여하는 죽책의 제작과 관련한 부분입니다. 크기가 일정한 대나무쪽을 5개씩 한 첩으로 묶어서 만든다고 적었습니다. 대죽 2통, 초주지(고급한지) 반장 등 제작에 사용한 각종 재료의 이름과 수량도 꼼꼼하게 적었습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23년)

중앙박물관특별전 외규장각과 의궤 20230308_18<의소세손묘소도감의궤(상), 1752년(영조28), 1책(111장)>

1752년(영조28) 영조의 맏손자 의소세손이 세상을 떠나자 그의 묘소를 조성하면서 만든 의궤입니다. 지금 보는 면은 담당 관청인 묘소도감에서 호조와 강원감영 춘천부에 보낸 공문서입니다. 묘소 공사에 필요한 자재를 요청하는 내용으로, 호조에는 정철(正鐵, 쇠)를 보내달라고 하였고, 춘천부에는 소나무 150그루 등 목재를 보내달라고 하였습니다. 의소세손이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난 데에다 세손의장례는 3개월 만에 치러야 했기 때문에 매우 시급하다며 재촉하는 내용입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23년)

중앙박물관특별전 외규장각과 의궤 20230308_19<의소세손예장도감의궤(상), 1752년(영조28), 1책(207장)>

1752년(영조28) 영조의 맏손자 의소세손의 장례과정을 기록한 어람용 의궤입니다. 상권 마지막에는 의소세손의 관과 시책, 부장품과 각종 제사 물품을 싣고 묘소로 가는 발인 행렬을 그린 반차도가 28면에 걸쳐 수록되어 있습니다. 다른 반차도에 비해 인물 및 기물의 형태와 색채가 선명하여 완성도가 높습니다. 모든 인물과 물품들을 일일이 손으로 그린 것입니다. 사람들마다 이목구비와 옷주름, 각기 다른 자세까지 정교하게 묘사하였습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23년)

단 하나의 책, 외규장각 의궤 유일본
의궤는 한번에 3부~9부를 만들었지만 지금 단 한 부만 남아 있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런 의궤를 ‘유일본’이라고 합니다. 외규장각 의궤 중에는 유일본 의궤가 29책 포함되어 있습니다. 외규장각 의궤 유일본 중에 의소세손의 장례에 관한 것이 있습니다. <의소세손예장도감의궤>와 <의소세손묘소도감의궤>입니다. 의소세손은 사도세자의 첫번째 아들로 할아버지 영조의 큰 사랑을 받아 태어나고 얼마 후 왕세손에 책봉되었습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3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왕세손의 장례는 이때가 처음이었기 때문에 모든 의식 절차를 새로 마련했습니다. 장례 복식과 각종 물품 등의 격식을 왕세자보다 낮추고 세자빈보다는 높여서 왕세손의 지위를 명확하게 설정했습니다. 이러한 내용이 모두 이 의궤들에 감겨 있습니다. 조선시대 왕세손의 장례모습을 살필 수 있는 유일한 기록입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23년)

의궤에 보이는 화원
의궤에는 조선시대 화원의 이름도 여럿 보입니다. 국가기관에 소속되어 그림을 그린 전문가들입니다. 행사에 사용하는 각종 회화작품을 그리거나, 행렬 연습을 위한 배치도 또한 의궤에 실린 크고 작은 그림을 그리는 등 다양한 업무를 담당했습니다. 하지만 누가 어떤 그림을 그렸는지는 표기하지 않아서 의궤 속 그림이 누구의 작품인지는 알기는 어렵습니다. <의소세손예장도감의궤(상)><발인반차도>처럼 그린 사람을 짐작할 수 있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 의궤에는 반차도 제작을 담당한 부서의 화원으로 김덕성 한 사람의 이름만 기록되었기 때문입니다. 김덕성은 사람을 그릴 때 역동적이고 힘찬 표현을 잘했는데, 이 <발인반차도>에서도 그러한 특징이 보입니다. 조선시대 반차도는 일정한 형식과 구성으로 그리는 것이지만, 그속에서도 화원 개인의 실력과 개성이 묻어남을 잘 보여줍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23년)

중앙박물관특별전 외규장각과 의궤 20230308_20<희빈중궁전책례도감의궤, 1690년(숙종16), 1책(214장)>

1690년(숙종16) 숙종의 후궁인 희빈 장씨를 왕비로 책봉한 과정을 기록한 의궤입니다. 희빈 장씨는 중인 집안 출신으로 궁녀가 되었다가 숙종의 총애를 받아 후궁이 되었습니다. 1688년(숙종 14)에 왕자를 낳아 희빈으로 승격되었고, 이듬해에 세자로 책봉되면서 왕비가 되었습니다. 이때이 왕비 책봉 의식 절차, 의식의 준비 및 진행 과정에 관련된 모든 사항이 이 의궤에 정리되어 있습니다. 지금 보는 면은 왕비 책봉 때 하사한 금보와 옥책 등 의물 제작 내용을 적은 부분입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23년)

중앙박물관특별전 외규장각과 의궤 20230308_21<영조왕세제책례도감의궤(상), 1721년(경종1), 1책(138장)>

1721년(경종1) 영조를 왕세제로 책봉한 과정을 기록한 의궤입니다. 지금 보는 면은 책례도감의 하위 기구 중 하나인 일방의 관원 명단입니다. 일방에서는 왕세제 책례 때 수여하는 교명, 죽책, 면복 등의 제작을 담당하였는데, 품목마다 직책과 이름을 구분하여 기록한 것을 보면 당시에도 업무분장이 매우 확실하였던 같습니다. 영조는 숙종과 숙빈 최씨 사이에서 태어나 1721년 후사가 없던 이복형 경종에 의해 왕세제로 책봉되었습니다. 얼마 후 경종이 결국 병으로 승하하자 1724년 왕위에 올라 조선 제21대 왕이 되었습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23년)

중앙박물관특별전 외규장각과 의궤 20230308_22<사도세자묘소도감의궤(하), 1762년(영조 38), 1책(136장)>

1762년 사도세자가 세상을 떠난 후 묘소를 조성하면서 만든 의궤입니다. 묘소 조성을 총괄한 묘소도감의 업무내용이 수록되었습니다. 묘역에 건물을 짓거나, 각종 철물을 제작하거나, 석재를 다듬는 등 능을 조성할 때 필요한 작업들입니다. 지금 보는 면은 장례 기간 동안 제사를 담당한 관청인 혼궁도감에서 보낸 공문서입니다. 묘소에서 제사를 지낼 때 쓰도록 제상과 병풍 등 몇몇 기물을 보낸다는 내용입니다. 왕실 장례에서 필요한 기물을 매번 새로 만들지 않고, 다른 관청에 보관허던 것들을 재사용하기도 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23년)

하나하나 상세하게
역사기록물로서 조선왕조의궤의 가장 독보적인 가치는 내용의 상세함에 있습니다. 행사나 의례가 끝난 후 실무를 담당했던 도감에서 생산했거나 다른 관청으로부터 받은 공문서를 모아 그대로 베껴 엮었기 때문에 일의 준비와 진행 내용을 모두 확인할 수 있습니다. 하나의 행사를 설명하는 기록으로는 가장 풍부한 정보를 담고 있는 것입니다. 의궤 기록의 상세함은 실무적인 부분에 그치지 않습니다. 행사의 추진 배경과 다양한 층위에서 이루어진 의사결정 내용 등 일이 진행되어 가는 맥락도 설명하였습니다. 실록에서는 자세히 다루지 않는 궁궐 건축이나 수리 같은 분야도 포괄하고 있습니다. 결국 의궤는 하나의 행사를 진행할 때 참고하는 단순한 결과보고서의 수준을 넘어서 주요 사업의 추진 원리와 지향점을 보여주는 국가 경영 지침서인것입니다.(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23년)

중앙박물관특별전 외규장각과 의궤 20230308_23<헌종실록, 1851년(철종2) 간행>

1834년 11월부터 1849년 6월까지 헌종 재위 기간의 일을 수록한 실록입니다. 권제 13 헌종 12년(1846) 1월 26일 기사에 효명세자의 무덤 수릉의 이전에 대한 최초의 기록이 보입니다. 헌종이 대신들에게 수릉을 옮기고 싶다고 하자 영부사 조인영 등이 신중히 결정해야 한다고 답했다는 내용입니다. <조선왕조실록>은 임진왜란 때 대부분 없어지고, 전주사고에 보관하던 것만 가까스로 전란을 피했습니다. 이후 전주사고본을 바탕으로 4부를 추가로 인쇄하여 새로 건립한 사고에 분산시키고, 전주사고본은 강화도 정족산사고에 보관하였습니다. 이것이 지금의 정족산사고본입니다. 지금 전시되 실록은 전주시에서 정족산사고본을 바탕으로 하여 현대 인쇄기굴로 다시 펴낸 것입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23년)

중앙박물관특별전 외규장각과 의궤 20230308_24<익종수릉천봉도감의궤, 1846년(헌종12) 7책 중 2책(131장, 103장)>

1846년(헌종 12) 양주 천장산에 있던 효명세자의 묘 수릉을 용마봉 아래로 옮기는 과정을 기록한 의궤입니다. 첫번째 책 앞머리에 수릉 이전 문제를 둘러싸고 헌종과 신료들 사이에 오고간 구체적인 내용을 수록하였습니다. 헌종이 처음 수릉 이전을 제안하자 신하들이 신중히 결정해야 한다고 대답하였다는 내용은 실록의 기록과 동일합니다. 이후 헌종과 신하들이 여러 차례 만나 논의하고, 2차례에 걸쳐 수릉에 가서 풍수 형국을 살펴본 사실이 날짜별로 상세하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23년)

왕릉 이전을 위한 논의
8세에 왕위에 오른 헌종(재위 1834~1849)은 성인이 된 후 일찍 돌아가신 아버지 효명세자의 묘 수릉을 더 좋은 곳으로 옮기고 싶었습니다. 이에 헌종은 여러 신하들에게 이전을 제안합니다. 왕릉을 옮기는 것은 많은 인력과 비용이 필요하기 때문에 실행에 옮길 것인지를 결정하려면 깊이 있는 논의가 필요했습니다. 그러나 <헌종실록>에는 이 부분이 매우 짧게 언급되어 있어서 어떤 논의가 있었는지 파악하기 어렵습니다. 반면에 이때 만든 의궤는 2종 9책이나 되어서 상세한 내용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날짜별로 정리된 기록을 따라가면, 헌종과 신하들의 의견이 엇갈리자 며칠에 걸쳐 토의하고 또 2차례 현장 확인도 진행하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 국왕과 신하들이 의견을 조율해 가는 과정이 고스란히 담겨 있는 것입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23년)

중앙박물관특별전 외규장각과 의궤 20230308_25<효명세자의 어린 시절 글씨, 1819년, 종이에 먹>

효명세자가 11세 때 쓴 글씨로 만든 첩입니다. 세자의 교육을 담당한 박영원에게 써서 내려준 것입니다. <논어>에 나오는 구절로 ‘지혜로운 자는 즐겁고 어진자는 장수한다.’는 내용입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23년)

중앙박물관특별전 외규장각과 의궤 20230308_26<효명세자에게 존호를 올리며 만든 옥책의 탑본, 대한제국, 종이에 먹>

1902년 고종황제가 자신의 양아버지인 효명세자와 그의 비 신정왕후에게 존호를 올리면서 만든 옥책의 탑본입니다. 고종은 1899년에 익종을 황제로 추존하면서 시호를 ‘문조익황제’, 신정왕후의 시호를 ‘신정익황후’라고 하였는데, 이때 익종에게 ‘굉유신휘수서우복’이라는 존호를, 신정왕후에게 ‘계지’라는 존호를 다시 올린 것입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23년)

중앙박물관특별전 외규장각과 의궤 20230308_95<숙종실록, 1728년 간행>

1674년 8월부터 1720년 6월까지 숙종 재위 기간의 일을 기록한 <숙종실록>입니다. 권제25 숙종 19년 3월 23일 정묘일에 경덕궁(경희궁)과 관련된 기사가 보입니다. 경덕궁 수리 중 땅속에서 인골이 발견되자 숙종이 잘 수습하여 제사를 지내주라고 명령하였다는 내용입니다. <숙종실록>에는 1693년 3월부터 7월까지 진행된 경덕궁 보수 공사 관련 언급이 4건 수록되었는데, 그중 첫번째 기사입니다. <숙종실록>은 1720년 11월에 편찬을 시작하여 1728년 3월에 완성하였습니다. 전시품은 임잰왜란 당시 유일하게 전란을 피한 전주사고본(정족산사고본)을 바탕으로 하여 전주시에서 현대 인쇄기술을 활용하여 다시 펴낸 것입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23년)

 

중앙박물관특별전 외규장각과 의궤 20230308_27<경덕궁수리소의궤, 1693년, 1책(79장)>

1693년(숙종19)에 추진한 경덕궁의 보수공사 내용의 상세하게 기록한 의궤입니다. 분상용 의궤가 전하지 않는 유일본입니다. 이 의궤는 공사 담당 관청인 수리소가 설치된 1693년 3월부터 공사가 끝난 7월까지의 기록을 담고 있지만, 내용을 살펴보면 수리소 설치 이전에 이미 공사를 시작하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 경덕궁이 처음 건립된 광해군 대부터 인조 대를 거쳐 현종대에 이르는 동안 훼손된 전각들을 포함하여 40여 채의 건물에 대한 수리 내용을 상세히 담고 있어서 경덕궁의 원래 모습을 추정할 수 있는 중요한 자료가 됩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23년)

중앙박물관특별전 외규장각과 의궤 20230308_29<서궐도안, 작가미상, 조선 19세기, 종이에 먹, 고려대학교박물관, 보물>

지금의 경희궁 전경을 그린 초본입니다. 12장의 종이를 이어 붙여서 경희궁의 여러 전각과 주변 언덕의 자연 경관을 담았습니다. 경희궁은 1620년에 건립되었습니다. 당시에는 ‘경덕궁’이라 불렀고, 별칭으로 ‘서궐(西闕)’이라고 했습니다. 1693년에 쇠락한 건물들을 전반적으로 수리하였고, 1829년에 큰 불이 나자 이듬해부터 2년에 걸쳐 주요 전각들을 새로 지었습니다. 두 차례의 공사 내용이 <경덕궁수리소의궤>와 <서궐영건도감의구>로 남아 있습니다. <서궐도안>은 숙종 때의 공사와 순조 때의 공사 사이 기간에 그린 것으로 보입니다. 궁궐 전체 규모와 구체적인 전각의 모습을 잘 묘사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경희궁은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궁궐로서의 면모를 잃어버렸습니다. 그래서 지금은 위의 두 의궤와 이 <서궐도안>을 통해서 경희궁의 원래 모습을 추정할 수 밖에 없습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23년)

조선시대 공사 현장의 품삯은 얼마였을까?
영건의궤(營建儀軌)에는 건축 공사에 참여한 여러 기술자와 일꾼의 품삯도 정리되어 있습니다. ‘장인’이라고 불린 기술자로 나무를 다듬는 목수, 나무 부재나 장식을 만드는 조각장, 돌을 다듬거나 쌓는 석수, 지붕에 기와를 얹는 개장, 건물 안팎에 단청을 칠하는 칠장 등이 있습니다. 특별한 기술이 없는 일꾼 모군들은 짐을 나르고, 흙을 다지고, 매끼 식사를 준비하고, 장인들의 조수 역할을 했습니다. 17세기부터 18세기 중엽까지는 한 달 단위로 쌀고 포목(베, 무명)을 지급했습니다. 장인들은 분야에 관계없이 쌀 9말과 포2필을 받았는데, 단순한 잡역을 담당한 모근들도 동일한 액수를 받거나 떄로는 장인보다 더 많이 받기도 했습니다. 18세기 중엽부터는 일을 한 날 수에 따라 품삯을 계산해서 돈으로 지급하는 방식으로 바뀌었습니다. 전문 기술인 장인들이 일반 일꾼인 모군들보다 휠씬 많은 액수를 받게 되었고, 장인들 사이에서도 일이 많은 분야와 상대적으로 적은 분야의 품삯이 달라졌습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23년)

중앙박물관특별전 외규장각과 의궤 20230308_33<현사궁별묘영건도감의궤, 1824년, 1책(154장)>

정조의 후궁이자 순조의 생모인 수빈 박씨를 제사 지내기 위한 사당을 짓는 과정을 기록한 의궤입니다. 내용 중에 <장료식>이라는 항목이 있습니다. 공사에 참여한 사람들의 품삯 내역입니다. 이 시기에는 장인들의 품삯이 일반 일꾼에 비해 월등히 높아졌을 뿐만 아니라 장인들 사이에서도 기술 분야 및 일의 양에 따라 지급받는 액수가 달랐습니다. 18세기 후반들어 상품화폐경제가 발달하면서 전문 기술자인 장인들도 적절한 대가를받고 일을 하게 되었고, 일반 일꾼들은 그 수가 크게 늘어나면서 임금 수준이 낮아지게 된 것입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23년)

중앙박물관특별전 외규장각과 의궤 20230308_34<남별전중건청의궤, 1677년, 1책(109장)>

태조.세조.숙종.용조.순조의 어진을 모신 진전인 남별전을 고쳐 지을 때 작성한 의궤입니다. <미포상하식>이라는 항목에 공사에 참여한 인부들의 품삯이 정리되어 있습니다. 목수, 조각장, 석수 등 전문 기술자인 장인들은 한 달에 쌀 9말을 받았는데, 단순 일꾼들도 똑같이 9말을 받았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국가에서 관리한 장인들은 의무적으로 동원되었던 것과 달리 단순 일꾼들은 돈을 주고 모집하였기 때문에 일을 하려는 사람이 적을 때에는 기술자만큼이나 많은 돌을 주어야 했던 것입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23년)

궁궐 건축의 모든 것
외규장각 의궤 중에는 건축공사와 관련된 것도 있습니다. 궁궐이나 종묘, 왕실 사당을 새로 짓거나 수리한 일을 기록한 의궤입니다. 이런 의궤를 통틀어서 ‘영건의궤’라고 부릅니다. 지금 남아 있는 영건의궤는 특별한 건물이거나 규모가 매우 큰 공사를 기록한 것입니다. 예를 들면 숙종 때에 전반적으로 수리하고, 순조 때에 대대적으로 재건축한 경희궁 같은 경우입니다. 당시 의궤를 펼쳐보면 공사 배경부터 건물별 수리 내용, 사용한 자재의 종류와 수량, 공사에 참여한 장인의 이름과 지급받은 품삯까지 조선시대 궁궐 건축의 모든 과정을 상세하게 볼 수 있습니다. 새로 지은 건물의 정면 모습을 그린 그림도 있습니다. 조선시대 궁궐건축 문화를 생생하게 접할 수 있는 매우 귀중한 자료입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23년)

 

 

중앙박물관특별전 외규장각과 의궤 20230308_36<헌경혜빈양례도감의궤(3), 1816년, 1책(143장)>

1815년 혜경궁으로 더 잘 알려진 혜빈 홍씨의 장례 과정을 기록한 의궤입니다. 전체 4책 중 세번째 책에 제사를 지낼 때 쓰는 제기의 목록이 수록되어 있습니다. 원소(묘소)에서 제사 지낼 때 쓸 것과 신주를 모시는 혼궁에서 사용할 것 두 부류를 제작하였는데, 과자류와 과일류를 담는 우리와 촉대.향로 등 총 133건의 명칭과 수량, 재질, 크기, 무게를 적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제기마다 그 형태를 설명하기 위해 모습을 그림으로 그리고 채색한 도설을 바로 옆에 실었습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23년)

중앙박물관특별전 외규장각과 의궤 20230308_37<산자우리>

중앙박물관특별전 외규장각과 의궤 20230308_38<종자우리>

산자우리와 종자우리, 조선 20세기, 황동
우리(于里)는 다식이나 약과 등을 높이 쌓을 수 있도록 고정시키는 틀입니다. 위.아래가 뚫린 원통형이고, 옆면은 8개의 기둥 사이를 뚫어서 내용물이 보이도록 만들었습니다. 우리 윗부분에는 어떤 음식을 담았는지 이름을 새기기도 합니다. 종자우리는 작은 과일을 올려 놓을 때 쓰는 제기입니다. 산자우리와 달리 옆면이 막혀 있는 원통형입니다. 산자우리와 종자우리는 받침 위에 올려서 사용합니다. 이때 사용하는 받침은 바닥이 평평하고 낮은 원형 굽이 있습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23년)

중앙박물관특별전 외규장각과 의궤 20230308_39<향로.향합, 조선 20세기, 황동>

향을 피우면 신이 여기에 감응하여 내려온다고 합니다. 그래서 제사에서는 항상 향을 피우는 그릇인 향로와 향을 담은 향합을 준비합니다. 의궤 속 제기도설에 보이는 향로는 여러 가지 모습이지만, 가장 돋보이는 것은 뚜껑에 용머리가 있는 것입니다. 뚜껑에 있는 용은 왕실의 상징입니다. 정상에서 머리를 치켜 세우고 뚜껑 전체로 몸을 휘감은 모습입니다. 몸체는 크고 둥근 그릇에 세 개의 다리가 달린 형태이며 잘록한 목에는 번개문양을 두르고 길게 뻗은 두 귀에는 봉황이 장식되어 있습니다. 향합은 뚜껑과 몸체로 구성되어 있으며, 전체적으로 납작한 원형입니다. 제기도설에 보이는 향합은 뚜껑 윗면에 몇 개의 굵은선을 두른 것이 대부분이데, 가끔 번개문양을 넣은 경우도 있습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23년)

중앙박물관특별전 외규장각과 의궤 20230308_92
<촛대, 조선 20세기, 황동>

제사 떄에 초를 꽂기 위해 사용한 촛대입니다. 제상 남쪽 양 끝에 한 쌍을, 술 따르는 그릇을 올리는 준소상에 한개를 배치하였습니다. 왕실 제사에서 사용한 촛대는 원뿔 형태의 받침 위에 돌출된 마디를이 연이어 있는 긴 기둥을 세우고, 위쪽 끝에 둥근 촛물받이와 뾰족한 초꽂이가 있는 모습입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23년)

형태를 설명하는 도설(圖說)
의궤 속 그림 중 특정한 행사 장면이나 건물 구조, 행사 때 사용한 물건의 형태 등을 그린 것을 도설이라고 합니다. 설명하려는 대상의 기본적인 생김새뿐만 아니라 비례감, 색감, 전반적인 분위기까지 글자로는 표현하기 어려운 부분을 눈으로 직접 확인할 수 있습니다. 외규장각 의궤 297책에서 도설이 포함된 의궤는 172책(약 60%)입니다. 그중 대략 70%에 해당하는 115책이 왕실 장례식과 관련된 의궤들입니다. 기간이 길고 매우 복잡한 장례를 차질 없이 치르기 위해서 명확하고 상세한 규정이 필요했기 때문에 그만큼 도설도 많이 수록하였던 것입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23년)

중앙박물관특별전 외규장각과 의궤 20230308_40<효의왕후국장도감의궤(3), 1821년, 1책(134장)>

1821년 정조의 비 효의왕후 김씨의 장례에 관해 기록한 의궤입니다. 총 4책으로 구성되었습니다. 그중 세번째 책에 각종 제사 때 사용하기 위해 제작안 제기의 목록이 수록되어 있습니다. 제기마다 명칭과 수량, 재질, 크기, 무게를 적고, 바로 옆에 제기의 모습을 그린 채색도설도 수록하였습니다. 신주를 모시는 혼궁에서 사용한 제기 중 가장 먼저 수록한 것은 술항아리인 희준(犧尊)과 상준(象尊)입니다. 소와 코끼리 모습을 본뜬 그릇의 형태가 잘 묘사되어 있습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23년)

중앙박물관특별전 외규장각과 의궤 20230308_41<산뢰(山罍), 조선 20세기, 황동>

산과 구름, 우레 문양을 넣은 술항아리입니다. 각종 제사 때 술 따르는 용기들을 올려놓는 준소상(樽所床)에 한 쌍을 진열한 후 한 쪽에는 맑은 물, 다른 한 쪽에는 맑은 술을 담았습니다. 몸체에 굵은 띠를 둘러 구획한 후 우레, 구름 낀 산봉우리, 삼각형 문양을 넣은 모습입니다. 우레와 구름은 왕의 은덕이 우레나 구름처럼 세상에 널리 퍼진다는 의미입니다. 산뢰에 담긴 물과 술은 표주박 모양의 긴 국자로 뜹니다. 손잡이에 용머리가 장식되어 있어서 ‘용작(龍勺)’이라고 합니다. 술항아리 하나마다 용작 하나씩을 갖추는 것이 정식입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23년)

중앙박물관특별전 외규장각과 의궤 20230308_42<희준>

중앙박물관특별전 외규장각과 의궤 20230308_43<상준>

희준과 상준, 조선 18세기, 황동
희준(犧尊)은 소의 모습을 본뜬 술항아리이고, 상준(象尊)은 코끼리의 모습을 본뜬 술항아리입니다. 제사 때 술 따르는 용기들을 올려놓는 준소상에 한쌍씩 올려놓고 한 쪽에는 맑은 물, 다른 한 쪽에는 제사용 술을 담았습니다. 등에 얹은 뚜껑을 열고 소와 코끼리 모양의 몸통에 술을 담는 방식입니다. 이 희준과 상준의 배 부위와 뚜껑 안쪽에는 ‘문희묘’라는 글자가 있습니다. 문희묘에서 사용한 제기라는 표시입니다. 문희묘는 문효세자를 제사지내던 사당입니다. 정조의 맏아들로 출생 이듬해에 바로 왕세자로 책봉되었지만, 5살에 홍역으로 세상을 떠나고 말았습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23년)

제사용 그릇 제기
조선시대 왕실 제사는 조상의 은덕에 감사를 표하고, 대대로 내려온 왕위의 정통성을 지금의 국왕이 이어받았음을 사람들에게 보여주는 매우 중요한 의례입니다. 그래서 제사에서는 절차와 형식은 물론 사용하는 물품 하나까지도 왕실의 위상과 예법에 걸맞는 법식이 정해져 있었습니다. 특히 제사 때 쓰는 그릇인 제기는 의궤에 각각의 명칭과 수량, 재질, 크기를 적고 그 옆에 완성된 모습을 그림으로 그렸습니다. 다음에 제기를 만들 떄 참고하여서 크기나 모양이 달라지지 않도록 한 조선시대 방식의 표준화 지침인 것입니다. 덕분에 의궤 속 도설과 똑같은 모습을 한 왕실제기들이 지금도 많이 남아 있습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23년)

중앙박물관특별전 외규장각과 의궤 20230308_44<효현왕후경릉산릉도감의궤(하), 1843년, 1책(252장)>

1843년 헌종의 비 효현왕후 김씨가 세상을 떠나자 장례를 치르기 위해 묘소 경릉을 조성한 일을 기록한 의궤입니다. 상.하 2책으로 구성되었는데, 그중 하권 첫머리에 찬궁도가 수록되어 있습니다. 찬궁은 왕과 왕비의 관인 재궁을 매장하기 전 임시로 모셔둘 때 사용한 집 모양의 구조물입니다. 지금 보는 도설 속의 찬궁은 왕릉의 부속 건물인 정자각에 설치했던 것으로 나무로 골격과 벽체를 세우고 죽망으로 지붕을 덮었습니다. 내부 사방 벽에는 종이를 바른 후 방위에 맞추어 청룡.백호.주작.현무를 그렸습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23년)

중앙박물관특별전 외규장각과 의궤 20230308_45<헌종경릉산릉도감의궤(하), 1849년, 1책(233장)>

1849년 조선 제24대 왕 헌종이 승하하자 이보다 앞서 세상을 뜬 왕비 효현왕후의 묘소 바로 옆에 능을 조성하면서 만든 의궤입니다. 상.하 2책 중 하책에 찬궁에 그려 붙였던 사수도 도설이 수록되어 있습니다. 지금 보는 장면은 사수도 중 청룡의 도설입니다. 발톱이 5개의 오조룡으로 신성함을 상징하는 불꽃무늬 화염문을 두르고 몸을 S자형으로 틀어 날고 있습니다. 이전 시기의 ⊃자형에 비해 더 역동적으로 바뀐 모습입니다. 주변에는 상서로운 오색구름이 배치되어 있습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23년)

중앙박물관특별전 외규장각과 의궤 20230308_46<인원왕후명릉산릉도감의궤(상), 1757년, 1책(146장)>

1757년 숙종의 세번째 비 인원왕후 김씨의 묘소 조성에 관한 의궤입니다. 상.하 2책 중 상책 첫머리에 사수도 도설이 수록되어 있습니다. 지금 보는 장면은 삿도 중 백호와 주작의 도설입니다. 이전 시기에 백호는 불꽃무늬인 화염문을 두른 신령한 모습이었으나 이제는 화염이 사라진 채 산에서 어슬렁 걸어 나오는 호랑이 모습으로 바뀌었습니다. 가장 획기적으로 변한 것은 주작입니다. 머리와 다리가 3개인 삼수삼족의 봉황에서 하늘을 나는 붉은 새의 형태로 바뀌었습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23년)

중앙박물관특별전 외규장각과 의궤 20230308_47<헌경혜빈현륭원원소도감의궤(하), 1816, 1책(175장)>

1815년사도세자의 빈 혜경궁 홍씨로 더 잘 알려진 헌경혜빈이 흥서하자 사도세자의 묘소 현륭원에 합장하면서 제작한 의궤입니다. 상.하 2책 중 하책 첫머리에 사수도 도서리 수록되어있습니다. 지금 보는 장면의 사수도 중 북쪽을 수호하는 현무의 모습입니다. 이전에는 거북과 뱀이 뒤엉키 귀사합체 형상이었으나, 이 시기의 현무는 뱀이 사라지고 입에서 상서로운 기운인 영기를 뿜는 거북만 남았습니다. 이러한 변화는 영조 때 왕실 상례를 정비하는 과정에서 사수도 도상에 대한 재해석이 이루어졌기 때문이라고 알려졌 있습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23년)

왕의 관을 수호하는 사수도(四獸圖)
왕과 왕비의 관은 능에 묻기 전까지 찬궁이라고 하는 집모양의 구조물 안에 모셔두는데, 이떄 찬궁의안쪽 벽에 사수도를 그려 붙였습니다. 동서남북 사방을 지키는 수호신인 청룡.백호.주작.현무의 그림입니다. 하니만 장례의식이 끝나면 찬궁은 모두 불에 태워버리기 때문에 찬궁에 붙인 사수도가 어떤 모습이었는지는 오직 의궤에 실린 사수도 도설로만 확인할 수 있습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23년)

중앙박물관특별전 외규장각과 의궤 20230308_48<효종국장도감의궤(상.하), 1659년, 2책(293장.222장)>

1659년 5월에 승하한 효종의 장례 과정을 기록한 어람용 의궤입니다. 장례를 주관하는 국장도감을 설치해서부터 5개월 뒤 시신을 묘소인 영릉으로 옮겨 장사지내고, 창경궁으로 돌아와 문정전에 신주를 봉안하기까지 국왕 장례 전과정을 기록하였습니다. 상.하 2책으로 구성되었는데 그중 상책 마지막에 30면에 걸친 <발인반차도>가 수록되었습니다. 장례 기간 동안 빈전에 모시고 있던 효종의 혼백과 재궁을 모시고 묘소를 향해 가는 발인 행렬을 그린 것입니다. 선도 관원으로 시작해서 국왕의 평소 행차 때와 같은 구성의 길의장과 국왕 장례에서만 쓰는 의장인 흉의장, 그 뒤를 따르는 여러 관원들로 이루어진 모습닙니다. 지금 보는 면은 길의장의 주인공인 혼백거(魂帛車)가 나아가는 모습입니다. 돌아가신 왕의 영혼을 모시는 가마입니다. 하책에는 왕릉에 함께 묻기 위해 만든 부장품 내역이 정리되어 있습니다. 그중의 하나가 왕의 예복인 대례복입니다. 면류관과 구장복, 구장복 위에 두르는 붉은 치마 등으로 구성되었습니다. 각각의 명칭과 만드는 데에 들어간 재료의 양을 적고, 완성된 복식의 그림도 그렸습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23년)

중앙박물관특별전 외규장각과 의궤 20230308_49 <효종국장도감의궤(상.하), 1659년, 2책(293장.222장)>

행렬구성을 보여주는 반차도(班次圖)
국가 의례나 왕실 행사에서 왕과 왕비, 여러 관원과 군인들이 줄을 지어 행차를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때 행렬에 참여한 사람들과 깃발.가마 등 기물의 순서를 그린 것이 반차도입니다. 장중한 행차 의례를 실수 없이 진행하기 위해 사람과 기물의 위치를 미리 그려보고, 행사가 끝난 후에 정성껏 다시 그려서 의궤에 실었습니다. 행렬이 포함된 의례에서만 반차도를 그리기 때문에 외규장각 의궤 297책 중 반차도가 수록된 의궤는 60책(20%)에 불과합니다. 수량은 많지 않지만 사람 한 명 한 명, 기물 하나한 손으로 그려서 채색하였습니다. 덕분에 조선시대 왕실 행렬의 생생한 현장을 엿볼 수 있습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23년)

국왕의 장례 그림 <발인반차도>
외규장각 의궤 반차도 중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것이 <발인반차도>입니다. 돌아가신 분의 관을 모시고 묘소까지 가는 행렬을 그린 것입니다. 효종의 <발인반차도>는 1659년 10월 28일 창덕궁을 출발한 발인 행렬이 경기도 여주에 있는 묘소 영릉까지 가는 모습을 그렸습니다. 돌아가신 왕의 혼백을 모신 가마와 재궁을 실은 가마가 중심에 서고 그 주위를 수많은 수천 명의 관원과 군인, 각종 깃발과 의장물이 에워쌌습니다. 효종대왕이 살아계실 떄의 권위와 선왕으로서의 위엄을 한껏 드러내고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23년)

중앙박물관특별전 외규장각과 의궤 20230308_51<정조의 왕릉에 묻었던 명기, 1800년, 도자기 금속, 국립고궁박물관>

1800년 정조 장례 때 능에 같아 묻었던 명기입니다. 명기란 망자가 저승에서 사용하도록 그릇.장신구 등 각종 기물이나 노비.가축 등을 작게 만들어서 무덤에 넣어 주는 부장품입니다. 효종의 장례 때에는 제기 종류와 악기, 무기 등을 작게 만들어 묻었다고 기록되어 있는데, 정조의 명기 구성과 일치하는 항목이 많아 주목됩니다. 효종의 능에 부장한 명기들도 이와 비슷한 크기 및 형태였을 것 입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23년)

중앙박물관특별전 외규장각과 의궤 20230308_61<헌종의 혼례 축하 그림 병풍, 1844년, 비단에 색>

헌종이 효정왕후 홍씨와 혼례를 올린 후 이튿날 문무백관의 축하를 받는 진하 의례 장면을 그렸습니다. 창덕궁 인정전 마당에 예복을 갖추어 입은 신하들이 엎드려 있습니다. 실제로는 경희궁 숭정전에서 거행되었지만, 행사의 경사스러움을 기념하려는 목적에서 가장 규모가 큰 건물인 인정전을 배경으로 삼은 것입니다. 전각 안팎으로 용기.보검 등 의장과 왕이 타는 가마들이 보이고, 호마녀 아래 담장 너머로 큰 북 건고와 편경.편종 등 대형의 궁중 악기가 배치된 모습도 보입니다. 정전에서 거행된 국왕 혼례 의식의 성대함을 엿볼 수 있습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23년)

중앙박물관특별전 외규장각과 의궤 20230308_59중앙박물관특별전 외규장각과 의궤 20230308_60<궁궐로 들어가는 신부의 행차 그림, 18세기 후반, 종이에 색, 고려대학교박물관>

별궁에서 궁궐로 들어가는 신부의 행렬 그림입니다. 그림의 시작 부분 여백에 ‘궝궐 가는 행차 그림’이라는 의미로 ;예궐반차도’라고 제목을 써 넣었습니다. 교명 등 의물을 실은 가마와 수많은 관원들의 인도를 받는 신부의 가마를 그렸습니다. 그림 속에 신랑 가마의 모습이 보이지 않고, 신부의 가마 위에 ;교’라고 쓴 것으로 보아 후궁인 빈(嬪)의 혼례 행렬임을 알 수 있습니다. 후궁의 경우 신랑인 왕이 직접 맞으러 오는 친영례를 생략하고 혼자 궁궐로 이동하였으며, 왕비나 왕세자빈이 타는 ‘연’보다 한 단계 낮은 ‘교’를 탔습니다. 지위에 따라 혼례 예법에 차이가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23년)

중앙박물관특별전 외규장각과 의궤 20230308_62<순조순원왕후가례도감의궤(하), 1802년(순조2), 어람용>

1802년 순조와 순원왕후 김씨의 혼례 과정을 기록한 의궤 상.하 2책 중 하책입니다. 뒷부분에 66면에 걸친 채색 반차도가 수록되어 있습니다. 별궁에서 친영의를 마치고 궁궐로 돌아가는 왕과 왕비의 행차 모습을 그린 <친영반차도>입니다. 처음에는 <친영반차도>에 왕비의 가마 행렬만 그렸으나 영조 때 이후로는 왕의 가마도 등장합니다. 수많은 관리와 의장대, 호위 병력이 겹겹이 둘러싼 가운데 행차하는 왕의 행차를 장대하게 묘사하였습니다. 이어서 왕비의 행차가 뒤따릅니다. 책봉 때 받은 교명과 옥책, 금보, 명복을 실은 가마를 앞세우고, 왕비는 큰 가마인 연(輦)을 탔습니다.

생생하게 그림으로
사람들은 의궤를 ‘조선 기록 문화의 꽃’이라고 말합니다. 다른 기록물에서는 좀처럼 보기 힘든 아름다운 그림이 포함되었기 때문입니다. 대상의 세부 특징을 잘 묘사하였을 뿐만 아니라 빨강.파랑.노랑.초록 등 천연색으로 채색되어 있어서 눈길을 사로잡습니다. 의궤 소 그림은 단지 아름답기만 한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사진을 보듯, 조선시대 국가 행사 모습을 생생하게 전달하는 시각자료입니다. 글자로는 충분히 설명하기 어려운 것들을 그림으로 직접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의궤 속 그림은 감상하는 그림이 아니라 ‘읽는 그림’입니다. 가만히 들여다보면 어떤 목적을 가진 행사였는지, 예법에 맞는 의례 절차와 형식을 갖추었는지 알 수 있기 때문입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23년)

중앙박물관특별전 외규장각과 의궤 20230308_67<순조순원왕후가례도감의궤(상), 1802년(순조2), 어람용>

1802년 순조와 순원왕후 김씨의 혼례 과정을 기록한 의궤 상.하 2책 중 상책입니다. 세부 의례 절차를 딸 모은 <의주질>에는 국왕의 친영의례 절차를 적은 ‘납비친영의’ 항목이 보입니다. 왕비로 간택된 신부가 머물고 있는 별궁으로 왕이 직접 나가 신부 부모에게 인사를 올린 후 신부를 데리고 궁걸로 돌아오는 의례입니다. 유교적 생활의례 정착을 위해 왕실이 앞장서는 모습을 백성들에게 보이겠다는 의지가 반영된 의례입니다.

천하의 모범이 되다
조선은 건국 초기부터 성리학적 사회질서를 정착시키려고 노력했습니다. 그 중의 하나가 유교적 혼인의례로서 신랑이 신부를 직접 맞이하여 오는 친영례입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신랑이 신부의 집에서 혼례를 올린 후 그솟에서 생활하는 기존 관습을 따랐기 때문에 친영례는 쉽게 보급되지 못하였습니다. 조선 왕실은 앞장서서 왕실 혼례에 친영례를 도입하였습니다. 국왕의 의례는 평범한 사대부의 집에서 개최할 수 없기 때문에 처음에는 왕비로 간택된 신부의 집에 사신을 대신 보냈습니다.이후에는 신부를 위해 별궁을 마련하고, 국왕이 여기로 가서 신부를 맞아 궁궐로 오는 방법을 썼습니다. 덕분에 왕실의 격조를 유지하면서 친영례를 치를 수 있었습니다. 왕실이 먼저 모범을 보인 결과 18세기 이후에는 신랑이 신부 집에서 혼례를 올린 후 신부와 함께 돌아오는 혼인 의례가 민간에도 널리 퍼지게 되었습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23년)

왕의 책, 외규장각 의궤
의궤(儀軌)는 조선시대 국가나 왕실의 중요한 행사가 끝난 후 그 전 과정을 정리하여 책으로 엮은 기록물입니다. 한번에 3부에서 많게는 9부를 만들었는데, 그중 1부는 왕이 읽어보도록 올리고 나머지는 관련 업무를 맡은 관청이나 국가 기록물을 보관하는 사고(史庫)로 보냈습니다. 왕에게 올린 것을 어람용, 여러 곳에 나누어 보관한 것은 분상용(分上用)이라고 합니다. 외규장각 의궤는 몇권을 제외한 대부분이 왕을 위해 만든 어람용입니다. 왕이 열람을 마친 후 어람용 의궤는 왕실의 귀한 물건들과 함께 규장각 또는 외규장각에 봉안하였습니다. 후대의 왕들이 꺼내보면서 예법에 맞는 행사를 치를 수 있도록 한 것입니다. 왕을 위한 책 외규장각 의궤는 후세를 위한 모범적 선례이자 영구히 전해야 할 왕조의 정신적 문화 자산이기도 했던 것입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23년)

<출처>

  1.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23년
  2. ‘외규장각 의궤’,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소, 2023년
  3. ‘의궤’,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소, 2023년

[중앙박물관특별전, 어느 수집가의 초대] 인간의 변화를 탐색하는 경험

마지막 주제는 ‘인간의 변화를 탐색하는 경험’이다. 조선시대 유학자의 초상화, 풍속화, 근대 인물화 추상미술 등 인간의 모습을 표현한 다양한 작품들을 살펴볼 수 있다. 구한말 고종의 어진을 그렸던 화가 채용신의 초상화를 비롯하여 김득신, 이명기 등 조선후기 화가들이 그렸던 인물화와 박수근, 이인성 등의 인물화, 이응노, 김환기 등의 추상화, 백남준의 비디오아트를 비롯한 조각작품 등을 전시했다.

이명기(1756~1813년)는 조선후기에 활동했던 화가로 당대 최고의 초상화가로 평가받는다. 대표적인 작품으로 <서직수 초상>, <허목 초상> 등이 있다.

중앙박물관특별전 어느수집가 인간변화 20220824_11
<권상하 초상, 이명기(1756~1813 이전), 조선 18세기 말 ~ 19세기 초, 비단에 색, 국립중앙박물관>

일흔아홉의 권상하가 복건을 쓰고 심의를 입었다. 이 그림은 화원 김진여가 1719년에 그린 초상화를 본으로 하여 이명기가 18세기 후반에 다시 그린 것이다. 권상하는 송시열의 수제자였다. 권상하의 후학들도 그의 초상화를 다시 제작하여 추모와 계승의 뜻을 이어갔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22년)

채용신(1850~1941)은 구한말에 활동한 문신이자 화가로 초상화를 잘 그렸다. 고종황제 어진을 비롯하여 여러 왕들의 어진을 그렸으며, <전우 초상>, <황현 초상>, <최익현 초상> 등 당대를 대표하는 유학자이자 우국지들의 초상화를 그렸다.

중앙박물관특별전 어느수집가 인간변화 20220824_12
<전우 초생, 그림 채용신, 제발 김종호, 1920년, 비단에 색, 국립중앙박물관>

여든 살의 전우(1841~1922)를 황색 평상복과 장보관 차림으로 그린 초상이다. 완고한 선비의 느낌이 잘 전달된다. 전우는 근대의 격변기에 마지막까지 성리학을 수호하고 서구 문물을 배격한 도학자였다. 채용신은 최익현과 전우를 비롯한 우국지사의 초상을 여러 점 그려 그 정신을 기렸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22년)

중앙박물관특별전 어느수집가 인간변화 20220824_01<경현당선온도, 경현당갱재첩 제1면, 작가모름>

경희궁 경현당은 왕세자가 공식 의례를 행하고 공부하던 전각이다. 1741년 6월 21일 영조는 <춘추집전> 강독을 마쳤다. 다음날 경현당에서 신하들에게 술을 하사하는 선온(宣醞)을 열고 이를 그림으로 남겼다. 전각 중앙 일월오봉도 병풍 앞이 국왕(영조)의 자리이고, 그 오른쪽이 왕세자(사도세자)의 자리이다. 앞쪽에 행사에 참여한 관원 13명이 앉아 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22년)

경현당 갱재첩, 영조, 권적, 김상성 등 14인, 조선 1741년, 그림:종이에 색, 글씨:종이에 먹, 국립중앙박물관
경희궁 경현당에서 영조와 사도세자, 신하들이 모여 사도세자의 교육 상황을 점검하는 모임을 갖고 이를 기록한 글과 영조와 신하들의 시를 모은 첩이다. 일곱살 왕세자를 엄격하게 교육하는 아버지로서의모습, 학문으로 군신 간의 의리를 강조하는 임금으로의 면모를 살벼볼 수 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22년)

김득신(1754~1822년)은 조선후기에 활동한 도화서 출신의 화가이다. 자연과 풍속화를 잘 그렸는데 심사정, 정선과 함께 영조 때 삼재로 불렸다.

중앙박물관특별전 어느수집가 인간변화 20220824_02<나무 아래 일하는 가족, 김득신(1745~1822), 조선 18세기 말 ~ 19세기 초, 종이에 엷은 색, 국립중앙박물관>

사회적으로 존경받는 인물 외에도 일반인의 고단한 삶을 그린 조선시대 그림이 전해진다. 그림 속 부모는 생업에 여념이 없는데 아이는 배가 고파 입을 벌리며 엄마에게 기어간다. 짚신을 삼는 남성의 근육은 짤고 긴장된 선으로 묘사하고, 물레를 돌리는 여성의 옷주름은 부드러운 선으로 그려 동작에 어울리게 표현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22년)

이 그림은 구한말 서양인의 취향에 맞추어 그려진 풍속화의 모습을 잘 보여주고 있다. 김준근은 평민 출신 풍속화가로 <기산풍속도>, <천로역정> 등의 작품을 남겼다. 개항장에서 작을 그려 팔았기 때문 전세계 박물관에 그의 작품이 남아 있다.

중앙박물관특별전 어느수집가 인간변화 20220824_04<기녀와 도박을 하다, 기산풍속도첩 제20면, 김준근, 조선 19세기말 ~20세기 초, 비단에 색, 국립중앙박물관>

놀이에 몰두한 인간 군상를 생생하게 표현한 그림이다. 남자들이 기생과 어울려 골패 노름을 하고 있다. 띠를 머리에 동여매고 색안경을 낀 모습이 흥미롭다. 이 그림은 김준근이 개항장에서 외국인에게 팔기 위해 그린 그림 중 하나로 19세기 말 조선의 풍속을 알 수 있어 가치가 높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22년)

중앙박물관특별전 어느수집가 인간변화 20220824_17
<제1폭 학문을 시작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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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폭 혼례를 올리다>

중앙박물관특별전 어느수집가 인간변화 20220824_19
<제3폭 과거 급제해 집으로 돌아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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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폭 수군을 훈련시키다.>

중앙박물관특별전 어느수집가 인간변화 20220824_21
<제5폭 태조 고황제의 어진을 그리다.>

중앙박물관특별전 어느수집가 인간변화 20220824_22
<제6폭 새 임지로 부임하다.>

중앙박물관특별전 어느수집가 인간변화 20220824_23
<제7폭 세 임지에 도착하다.>

중앙박물관특별전 어느수집가 인간변화 20220824_24
<제8폭 아전들이 인사를 올리다.>

중앙박물관특별전 어느수집가 인간변화 20220824_25
<제9폭 황제의 은혜를 받들다.>

중앙박물관특별전 어느수집가 인간변화 20220824_26
<제10폭 화갑연을 열다.>

채용신의 평생도 병풍, 작가 모름, 20세기 초, 비단에 색, 국립중앙박물관
이상적인 사대부의 삶을 그린 평생도 병풍 전통을 이었지만 이 작품은 채용신의 개인사를 소개한 점에서 이전과 달라진 면모를 보여준다. 제5폭은 경운궁 흥덕전에서 태조 이성계의 어진을 그리는 장면이다. 서양식 제복과 전통이 혼재된 궁중 복식, 정동 언덕 위에 늘어선 외국 공사관들의 모습이 흥미롭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22년)

중앙박물관특별전 어느수집가 인간변화 20220824_03<한일(閑日), 박수근, 1950년대, 캔버스에 유채, 박수근 미술관>

1950년대 서울에 살던 박수근은 날마다 길을 오가며 마주치는 사람들을 즐겨 그렸다. 당시 서울에는 취미생활을 할 공간이 마땅치 않아 사람들은 길가에서 삼삼오오 모여 시간을 보냈다. 국민 화가 박수근의 우직한 손길을 거쳐 특유의 색감, 투박한 질감으로 탄생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22년)

중앙박물관특별전 어느수집가 인간변화 20220824_13
<노란 옷을 입은 여인, 이인성, 1934년, 종이에 수채, 대구미술관>

20세기 전반 인간을 향한 시선과 표현이 다양해지면서 근대 지식과 문물을 체현한 신여성이 그림에 등장한다. 화가 이인성이 연인지자 훗날 아내가 되는 김옥순을 주체적으로 생각하는 인간으로 표현했다. 그녀는 대구 유지의 딸로 당시 일본 도쿄에서 의상 디자인을 공부하고 있던 신여성이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22년)

중앙박물관특별전 어느수집가 인간변화 20220824_14
<나부입상, 서진달, 1934년, 캔버스에 유채, 대구미술관>

한국에 서양화가 들어오면서 누드화도 전해졌다. 한국 화가들은 1910년대부터 일본 유학 중에 누드화를 그렸다. 이 작품도 일본에서 제작되었다. 1910~1920년대 한국 화가가 여체의 뒷모습을 포착한 누드화를 그린 것과 달리 이 작품은 과감하게 정면을 포착했고 여체를 미화하지 않고 풍만한 모습 그대로 표현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22년)

중앙박물관특별전 어느수집가 인간변화 20220824_15
<인물(남자 누드), 이인성, 1940년대, 나무 패널에 유채, 대구미술관>

불안감은 인간에게 종종 찾아오는 감정이다. 이 나체의 남성은 얼굴과 얼굴을 감싼 손이 어둡게 처리되어 있어 괴롭고 갈등하는 상황임을 알 수 있다. 양손에 붓을 들고 있는 이 남성은 화가 자신이 모델인 것으로 보인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22년)

중앙박물관특별전 어느수집가 인간변화 20220824_16
<여인과 고양이, 박래현, 1959년, 종이에 수묵채색, 국립현대미술관>

불안한 현실과 이를 포용하듯 묵묵히 받아들이는 여인의 모습을 그린 그림이다. 여인의 다리 사이에 웅크리고 있는 검은 고양이, 여인 뒤쪽의 검은 그림자, 날카로운 가시와 나뭇가지, 그리고 거꾸로 매달린 새는 여인 주위에 존재하는 불안을 상징한다. 여러 불안 요소에 둘러싸여 있으면서도 여인은 묵상하고 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22년)

중앙박물관특별전 어느수집가 인간변화 20220824_05<손, 최종태, 1980년대, 철, 국립현대박물관>

우리 곁에 존재하는 불안함을 주위 사람의 도움으로 이겨낼 수 있다. 인간의 형태를 절제된 방식으로 표현하는 조각가 최종태의 <손>은 가느다란 손가락을 쫙 펴고 있는 형상이다. 곧게 뻗은 손은 우리에게 함께 하자고 청하는 듯하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22년)

중앙박물관특별전 어느수집가 인간변화 20220824_27
<군상, 이응노, 1985년, 캔버서, 종이에 수묵, 국립현대미술관>

수많은 사람이 함께 모인 이 작품은 이응노의 ‘군상’ 시리즈 중 하나이다. 많은 사람이 모여 있지만, 사람의 모양도 움직임도 다르다. 인간은 독립적으로 존재하면서 자유롭게 상상하고 창의적으로 생각하는 존재이다. 이처럼 독립된 인간의 상상력과 창의력이 모여 생각의 경계를 넘어설 수 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22년)

중앙박물관특별전 어느수집가 인간변화 20220824_06<하늘과 땅, 방혜자, 2010년, 패널, 종이에 채색, 국립현대미술관>

인간은 상상력을 발휘해서 보이지 않는 세계를 상상할 수 있다. 방혜자의 작품은 흙, 석채와 같은 천연 안료를 종이에 칠했다가 지우거나 문지르고, 재료를 구겼다가 펴는 기법을 써서 파장으로 퍼져나가고 은은하게 스며드는 빛을 표현했다. 이 빛은 우주의 존재를 담고 있는 매개체이자 깊은 명상과 사유로 얻어지는 내면의 빛이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22년)

중앙박물관특별전 어느수집가 인간변화 20220824_28
<산울림, 김환기, 1973년, 캔버스에 유채, 국립현대미술관>

인간은 보이는 세계를 창의적으로 표현할 수 있다. 이 작품은 대형 화면을 점으로 가득 채워, 마치 밤하늘을 수놓은 광대한 별자리처럼 보인다. 김환기는 광목을 바닥에 놓고 아교칠을 한 곳에 푸른 점을 무수히 채워 넣어 한지에 먹이 번지는 듯한 효과를 연출했다. 파란 점들이 이루는 파동이 합쳐져 광대한 우주의 에너지를 품은 듯하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22년)

중앙박물관특별전 어느수집가 인간변화 20220824_29
<천국의 계단, 박종배, 1980년대, 청동, 국립현대미술관>

박종배의 조각은 원과 사각, 구와 기둥 등 서로 다른 조형 요소가 능숙하게 결합해 하나의 덩어리로 존재감을 보여준다. 이 작품 역시 곡선과 직선의 이질적인 모양이 반복되면서 팽팽한 긴장감을 준다. 상승하는 느낌을 기하학적 형태로 표현했는데, 이는 긴장과 이완을 거듭하며 영원의 세계를 지향하는 인간의 의지를 대변한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22년)

존배DSC08107<가측성, 존배>

중앙박물관특별전 어느수집가 인간변화 20220824_07<가족, 전뢰진, 1978년, 대리석, 국립현대미술관>

아이 키우는 일은 힘들지만, 아이 모습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행복해진다. 부모는 아이와 살과 살을 맞대며 끈끈한 유대감을 가지게 된다. 두 아이와 엄마의 정겹고 평화로운 한때에서 원초적 생명에 대한 찬미가 느껴진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22년)

중앙박물관특별전 어느수집가 인간변화 20220824_30
<비상, 김정숙, 1985년, 대리석, 국립현대미술관>

‘비상’은 김정숙이 추구한 영원을 향한 초월의 의지를 반영한 시리즈이다. 작가는 나선이나 부채꼴 같은 행태를 실험하면서 상승과 하강의 움직임을 표현했다. 특히 엄격한 균형감과 표면 질감의 아름다움에 집중하며 작품의 완성도를 높였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22년)

중앙박물관특별전 어느수집가 인간변화 20220824_08<브람스, 백남준, 1993년, 채널 비디오, 컬러 무음, 모니터 3대, DVD플레이어, 바이올린 1대, 첼로 2대, 네온사인, 키보드, 캔버스 철에 아크릴릭, 오브제, 천, 국립현대미술관>

현대 미술의 개념을 확장한 백남준은 1963년 독일에서 본격적으로 TV모니터를 사용하여 실험을 하는 작품을 발표함으로써 비디오 아트의 선구자가 되었다. 그는 이 작품처럼 예술가나 역사적 인물을 비디오 모니터, DVD플레이어 등으로 로봇처럼 표현했다. 한자와 악보 등을 덧붙여 과거와 현재, 동양과 서양을 넘나들며 확장하고 뻗어나가는 인류의 문화를 상징한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22년)

중앙박물관특별전 어느수집가 인간변화 20220824_09<어느 수집가의 초대>

인간의 변화를 탐색하는 경험
자연에 대응하며 많은 물건을 만들고 문명을 이룩한 인간 사회가 추구하는 바는 다양합니다. 시대와 사회에 따라 이상적인 인간상은 계속 변했습니다. 사회적 신념이 개인의 생각보다 중시되었으나 점차 개인의 주체적인 생각과 감성이 인류 발전에 중요한 원동력이 되었습니다. 조선 유학자의 초상화와 풍속화, 근대 누드화, 현대 추상미술과 비디오 아트에서 상상력과 창의력으로 생각의 경계를 넘어온 인간의 궤적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22년)

<출처>

  1.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22년
  2. ‘이명기(화가)’, 위키백과, 2023년
  3. ‘채용신’, 위키백과, 2023년
  4. ‘김득신’, 위키백과, 2023년

[중앙박물관특별전, 어느 수집가의 초대] 자연을 활용하는 지혜

한반도의 토기는 신석기시대를 대표하는 빗살무늬토기와 청동기시대 무늬없는토기, 이후 철기제작과 함께 물레와 굴가마의 사용 등 새로운 기술적 발전을 보여주었으며, 역사시대에는 도기, 자기 등으로 발전하며 오늘날까지 인류의 삶에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중앙박물관특별전 어느수집가 자연과 교감 20220824_20<토우장식 그릇 받침, 삼국시대 5세기, 점토, 국립중앙박물관>,  <백자 철채 인물.소.말모양 명기, 조선 17세기, 국립중앙박물관>

중앙박물관특별전 어느수집가 자연과 교감 20220824_19<토우장식 굽다리접시, 삼국시대 5~6세기, 국립중앙박물관>, <백자 철채 인물.소.말모양 명기, 조선 17세기, 국립중앙박물관>

예로부터 인간은 자연에서 얻은 기본 소재인 흙으로 사람과 동물 모양을 만들어 토기를 장식하거나 무덤에 넣었다. 삼국시대 원통형 그릇 받침대에 부착된 도망가는 개구리와 쫓는 뱀 토우는 생사를 오가는 냉혹한 자연 현장을 보여준다. 이에 반해 더벅머리 총각, 소와 말 한쌍씩을 소박하게 만든 조선시대 백자 명기에서는 자연과 함께 더불어 살아가는 따뜻한 삶이 느껴진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22년)

중앙박물관특별전 어느수집가 자연의 활용 20220824_05<토기>

중앙박물관특별전 어느수집가 자연의 활용 20220824_06<붉은간토기, 검은간토기>

중앙박물관특별전 어느수집가 자연의 활용 20220824_07<가야 토기>

중앙박물관특별전 어느수집가 자연의 활용 20220824_08<가야 토기>

우리나라에서 자기가 언제부터 만들어졌는지에 대해서는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통일신라 말기인 9~10시에 시작되었다고 보는 견해가 많았던 것 같다. 황소의 난에서 시작된 당나라 말에서 오대에 이르는 혼란기에 중국 도자기 기술자들이 한반도로 넘어오면서 월주요의 영향을 받은 도자기들이 고려초기부터 생산되기 시작했던 것으로 보인다. 고려청자는 아름다운 비취색으로 대변되는 고려청자 특유의 색과 장식기법으로 고려만의 자기를 만들게 된다.

중앙박물관특별전 어느수집가 자연의 활용 20220824_01<고려청자>

중앙박물관특별전 어느수집가 자연의 활용 20220824_13<고려 청자>

중앙박물관특별전 어느수집가 자연의 활용 20220824_12<고려 청자>

중앙박물관특별전 어느수집가 자연의 활용 20220824_14<고려 청자>

분청사기는 고려 상감청자를 계승한 도자기제작기법으로 ‘백토로 분장한 회청색의 사기’라는 뜻으로 20세기에 들어서 붙여진 이름이다. 외형상 고려청자에 비해서 제작수법이 쇠퇴한 느낌을 주고 있지만, 투박하면서도 서민적인 면모를 보이는 등 한국적인 미를 잘 담아내고 있다.

중앙박물관특별전 어느수집가 자연의 활용 20220824_02<분청사기>

중앙박물관특별전 어느수집가 자연과 교감 20220824_39
<분청사기 조화 모란무늬 항아리, 조선 15세기 후반 ~ 16세기 전반, 국립중앙박물관>

큼직한 항아리에 흰 흙을 거칠게 바른 후 선으로 긁어 모란무늬를 간략하고 힘차게 표현했다. 갈색 바탕흘과 어이저운 백색 못자국 위로 모란무늬를 그린 선이 선명하게 드러난다. 청돈되지 않은 상황에서도 멈추지 않고 솟아 올는 생명력을 보여주는 듯하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22년)

중앙박물관특별전 어느수집가 자연과 교감 20220824_12<분청사기 조화 기법 편병, 조선 15세기 후반 ~ 16세기 전반, 국립중앙박물관>

중앙박물관특별전 어느수집가 자연과 교감 20220824_11<분청사기 조화 기법 편병, 조선 15세기 후반 ~ 16세기 전반, 국립중앙박물관>

과감하고 빠른 선이 특징인 조화기법 분청사기는 현대적이라는 평을 받는다. 조화(彫花)는 거친 갈색 바탕에 백토를 바른 뒤 표면을 선으로 긁어 무늬를 표현하는 기법이다. 조선 15세기 후반부터 지역마다 특징적인 기법으로 분청사기를 장식했는데, 자유분방하게 변형한 반추상적인 표현으로 장식된 분청사기가 많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22년)

중앙박물관특별전 어느수집가 자연과 교감 20220824_10<분청사기 조화 기법 편병, 조선 15세기 후반 ~ 16세기 전반, 국립중앙박물관>

중앙박물관특별전 어느수집가 자연의 활용 20220824_20<분청사기>

중앙박물관특별전 어느수집가 자연의 활용 20220824_21<분청사기>

백자는 유교사회를 추구했던 사대부라 불리웠던 지배계층의 취향에 잘 맞아 떨어졌다. 조선전기에는 사대부 취향의 백자와 서민 취향의 분청사기가 같이 만들어졌으나, 15세기 경기도 광주에 관요가 설치되면서, 왕실에서 주로 백자를 만들어 사용했기때문에 지방가마들도 지배계층의 수요에 맞추어 분청사기 대신 백자를 만들게 된 것으로 보인다.

중앙박물관특별전 어느수집가 자연의 활용 20220824_03<조선 백자>

중앙박물관특별전 어느수집가 자연의 활용 20220824_24<조선 백자>

중앙박물관특별전 어느수집가 자연의 활용 20220824_22<조선 백자>

백자는 무늬를 표현하는 수법이나 안료에 따라 분류할 수 있는데, 조선백자는 상감청자를 계승한 백자상감(白磁象嵌), 무늬가 없는 순백자(純白字), 코발트 안료를 사용하여 푸른색 무늬를 그린 청화백자(靑畵白磁), 산화철 안료를 이용한 철화백자(鐵畵白磁), 산화동으로 무늬를 그린 동화백자(銅畵白磁, 진사백자)가 있다.

중앙박물관특별전 어느수집가 자연의 활용 20220824_27<백자 투각 청화 장생무늬 필통, 조선 19세기, 국립중앙박물관>

중앙박물관특별전 어느수집가 자연의 활용 20220824_28<백자 양각 청화 장생무늬 필통, 조선 19세기, 국립중앙박물관>,<백자 청화 모란.봉황무늬 병, 조선 19세기, 국립중앙박물관>

중앙박물관특별전 어느수집가 자연의 활용 20220824_52
<백자 청화 구름.용무늬 항아리, 조선 18세기, 국립중앙박물관>

용은 구름을 몰고 비를 부르는 신령한 동물로, 동아시아에서 최고 권력자가 독점한 상징물이었다. 이 항아리는 왕실 연회에서 술을 담거나 종이와 비단으로 만든 꽃나무를 꽂는데 사용했다. 왕실 권위를 상징하는 기물이어서 청화를 사치스럽다고 여겨 금지했을 때도 계속 만들어졌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22년)

‘백자 청화죽문 각병(국보)는 몸통을 모깎기 방법을 사용하여 8각 형태로 만든 작품이다. 바탕에는 밝은 청화 안료를 사용하여 한쪽면에는 대나무 한그루를, 다른면에는 여러 그루의 대나무가 밀집해 있는 모습을 그렸다.

중앙박물관특별전 어느수집가 자연과 교감 20220824_37
<백자 청화 대나무무니 각병, 조선 18세기, 국립중앙박물관, 국보>

동아시아에서 선비를 상징하는 대나무를 단단한 팔각형 병에 간결하고 청초하게 그렸다. 이 병은 바탕흙이 눈부시게 희고 유약이 맑고 투명하여 최상품 조선백자의 면모를 보여준다. 18세기 전반 조선백자의 수준 높은 아름다움을 대표한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22년)

중앙박물관특별전 어느수집가 자연의 활용 20220824_25<청화 백자>

중앙박물관특별전 어느수집가 자연의 활용 20220824_26<동화백자 외>

흙을 다루는 지혜
인간이 밟고 있는 흙은 가장 구하기 쉬운 재료이자, 늘 함께 있는 물질입니다. 흙과 물을 섞어 형태를 만들고 불에 구워 그릇을 완성하는 기술은 인간의 지혜와 노력의 산물입니다. 고령토와 같은 좋은 흙을 찾아 잘 정제하고 1,300도 이상으로 굽는 온도를 높이고, 유약으로 물이 스며들지 않게 하고, 그릇 모양을 독창적으로 만들고, 표면을 장식하는 기법이 발전했습니다. 여러 과정을 거쳐 음식을 담는 그릇에서 예술 작품의 경지로까지 오르게 됩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22년)

금, 최고의 가치를 지닌 금속

중앙박물관특별전 어느수집가 자연의 활용 20220824_29<귀걸이, 삼국시대 5~6세기, 국립중앙박물관>

금은 녹이 슬지 않고 광택이 변하지 않으므로 인류가 가장 가치 있는 금속으로 아껴왔다. 삼국시대에는 지배계층의 지위를 상징하는 금제 장신구가 유행했다. 이 귀걸이는 금에 약간의 은을 합금해 강도를 높인 귀걸이다. 금판을 두드려 고리를 만들어서 속이 비어 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22년)

중앙박물관특별전 어느수집가 자연의 활용 20220824_30<여지무늬 허리띠, 고려 12~13세기, 청동에 금도금, 국립중앙박물관>

금은 희귀하기 때문에 다른 금속으로 물건을 만든 후 금을 얇게 입혀 금처럼 보이도록 만드는 금도금 기법이 개발되었다. 이 허리띠 장식은 청동에 금도금한 것으로, 여덟개의 판과 끝장식이 남아 있다. 각각의 판에 여지 무늬가 도드라지게 표현되어 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22년)

은, 빛나지만 변하는 금속

중앙박물관특별전 어느수집가 자연의 활용 20220824_54
<허리띠, 삼국시대 5~6세기, 은, 국립중앙박물관>

중앙박물관특별전 어느수집가 자연의 활용 20220824_53
<드리개, 삼국시대 5~6세기, 은, 국립중앙박물관>

은은 희고 반짝이지만 색이 잘 변한다. 은은 귀한 금속이지만 금보다 아래 등급으로 분류되었다. 은 허리띠 착용자는 금 허리띠 착용자보다 신분이 낮았다. 신라에서 금 허리띠는 수도 경주의 대형 무덤에서만 출토되는데, 은 허리띠는 경주와 신라에 편입된 지역의 대형 무덤에서 출토된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22년)

중앙박물관특별전 어느수집가 자연의 활용 20220824_31<연꽃.모란 넝쿨무늬 팔찌, 고려 12~13세기, 은, 국립중앙박물관>

은은 두들기거나 정으로 또아 무늬를 섬세하게 표현하기 좋은 재료이다. 이 팔찌 겉면에는 안쪽에서 바깥쪽으로 은판을 두들겨 모란과 연꽃 넝쿨무늬를 촘촘하게 표현했다. 팔찌 안쪽은 정으로 넝쿨무늬를 쪼아 새겼다. 팔찌 속에 부적과 다리니경문이 들어 있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22년)

청동, 인간이 만든 최초의 금속

‘전 덕산 청동방울 일괄(국보)’은 충남 예산군 덕산면 남연군묘 근처에서 출토된 청동방울이다. 출토된 청동방울은 8각형 별모양 팔주령 1쌍과 아령모양 쌍두령 1쌍, 포탄모 간두령 1쌍, x자 형태로 둥글게 말려있는 조합식쌍두령 1점이 있다. 중국에서 들어온 청동기 문화가 소멸해가던 기원전 3세기 후반에 만들어진 유물로 추정되고 있다. 청둥기시대 후반 제사장들이 주술적 용도로 사용했던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중앙박물관특별전 어느수집가 자연의 활용 20220824_36<팔주령, 덕산출토로 전해지는 청동방울, 초기철기시대, 청동, 국립중앙박물관, 국보>

중앙박물관특별전 어느수집가 자연의 활용 20220824_33<쌍두령, 덕산출토로 전해지는 청동방울, 초기철기시대, 청동, 국립중앙박물관, 국보>

중앙박물관특별전 어느수집가 자연의 활용 20220824_34<간두령, 덕산출토로 전해지는 청동방울, 초기철기시대, 청동, 국립중앙박물관, 국보>

중앙박물관특별전 어느수집가 자연의 활용 20220824_32<조합식쌍두령, 덕산출토로 전해지는 청동방울, 초기철기시대, 청동, 국립중앙박물관, 국보>

무른 구리에 주석을 섞으면 단단한 청동이 된다. 인류 최초의 인공합금인 청동은 계급사회의 출현을 증언한다. 이 청동 방울들은 당시 최고 권력자인 제사장이 의례에 사용한 도구이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22년)

중앙박물관특별전 어느수집가 자연의 활용 20220824_37<거울, 중국 한 2세기 후반, 청동, 국립중앙박물관>

중국에서는 상주시대부터 청동기를 만들었다. 이 두 점의 거울 뒷면 끈을 꿰는 고리 주변에 각각 봉황과 짐승무늬가 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22년)

중앙박물관특별전 어느수집가 자연의 활용 20220824_35<봉황무늬 향합, 고려 14세기, 청동과 은, 국립중앙박물관,>

끌로 무늬를 파내고 가는 금속선을 박아 넣는 입사 기법은 고려 때 높은 수준에 이르렀다. 이 합은 향을 담아두는 그릇으로, 은입사 기법으로 무늬를 표현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22년)

‘봉업사명 청동향로(보물)’는 경기도 안성시에 있는 봉업사 절터에서 출토된 것으로 추정되는 유물이다. 몸체와 덮개, 세개의 발이 달린 기대(器臺)로 구성되어 있다. 향로의 중간 부분은 고려시대 향완과 비슷한 형태를 보여주고 있으며 뚜껑에는 보주가 달려 있다. 전체적인 비례감과 형태에서 주는 조형미가 뛰어나다. 뚜껑에 ‘봉업사(奉業寺)’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어 고려초 봉업사에서 제작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중앙박물관특별전 어느수집가 자연의 활용 20220824_51
<’봉업사’가 새겨진 향로, 고려 11~12세기, 청동, 국립중앙박물관, 보물>

철, 인간과 가장 밀접한 금속

중앙박물관특별전 어느수집가 자연의 활용 20220824_55
<세잎무늬 둥근고리자루 칼, 삼국시대 5~6세기, 철과 은, 국립중앙박물관>

철광석은 지구에 고르게 분포하지만 철을 뽑아내는 제련 공정이 까다롭다. 한국에서는 삼국시대 3세기 무렵부터 철기를 대량으로 제작했다. 무기 제작에는 당시 금속을 다루는 최고의 기술이 집약되었고, 이를 바탕으로 강도가 높은 철제 칼이 만들어졌다. 둥근고리자루 칼은 삼국시대 지배계층을 대표하는 무기였다. 이 두 자루의 칼은 손잡이와 고리를 은으로 만들었다. 고리 안쪽에는 나뭇잎 모양을 장식해서 주인의 신분과 지위를 나타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22년)

금속을 다루는 지혜
선사시대부터 인간은 금, 은, 철, 수은, 주석, 구리, 납을 사용했습니다. 때로는 우연히, 때로는 노력으로 금속을 발견했습니다. 청동과 같은 금속을 만들기도 하고, 금동기법처럼 금속의 가치를 높이는 기술을 개발했습니다. 열을 가하면 녹고, 두드리면 펴지고, 잡아당기면 늘어나는 금속의 성질을 더 잘 활용하고자 노력했습니다. 인간은 계속 새로운 금속을 찾아내고 활용법을 탐색할 것입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22년)

중앙박물관특별전 어느수집가 자연의 활용 20220824_40<생각하는 여인 최종태, 1992년, 청동, 국립현대미술관>

자연은 인간에게 경이로움과 막연한 공포의 대상이었다. 그러나 자연에 대한 지식이 늘면서 인간은 삶을 근본적으로 사유하기 시작했다. 이 작품처럼 인간은 유한한 삶을 어떻게 살아야하고 죽음 뒤에 무엇이 있을지 고민하면서 종교의 차원이 높아졌다. 군더더기 없는 간결한 선과 절제된 형태, 소박한 재료의 성질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22년)

자연을 활용하는 지혜
인간은 변화무쌍한 자연환경에 살아남기 위해 자연을 슬기롭게 활용합니다. 인간이 자연을 활용하며 얻은 모든 경험과 지혜를 버무려낸 것이 바로 인류의 역사입니다. 멈추지 않은 도전 정신으로 인류의 기술은 눈부시게 발전했습니다. 이는 인간의 끝없는 호기심과 상상력, 문제 해결을 위한 집념으로 가능했던 것입니다. 선사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의 도토기와 금속공예품에는 우리 선조가 흙과 금속과 같은 자연의 물질을 활용한 지혜가 담겨 있습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22년)

<출처>

  1.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22년
  2. 국보 덕산 청동방울 일괄’,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2023년
  3. ‘보물 봉업사명 청동향로’,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2023년
  4. ‘국보 백자청화죽문 각병’,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2023년
  5. ‘보물 백자 청화동정추월문 항아리’,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2023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