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g Archives: 중앙박물관특별전

[중앙박물관특별전, 합스부르크 600년] 루돌프 2세와 ‘예술의 방’

루돌프 2세(독일어: Rudolf II., 1552~ 1612년)는 신성로마제국의 황제이자 보헤미아의 왕, 헝가리 왕국의 왕이다. 막시밀리안 2세의 아들로 어머니는 스페인 왕인 카를 5세의 딸이다. 외가인 스페인에서 자랐다. 오스만제국과의 전쟁에서 무능함을 드러냈으며, 개신교 탄압을 주도하는 등 정치적으로 인심을 잃어 말년에는 프라의 궁정에 유폐되었다. 그는 예술과 건축에 많은 관심을 가져 당대의 뛰어난 예숲품을 수집하고 뛰어난 궁정화가를 고용하여 작품을 남겼다. 그가 수집한 공예품들은 그의 뛰어난 예술가적 안목을 잘 보여준다.

중앙박물관특별전 합스부르크 예술의방 20230310_02<누금 장식 바구니, 16세기 후반, 금>

작은 크기의 바구니는 꽃과 잎 무늬의 가는 금줄과 작은 금 알갱이로 복잡하게 연결되어 있다. 누금 세공으로 섬세하게 작업한 이와 같은 금세공 작품은 장식용으로 수집되어 17세기 유럽에서 수요가 많았다. 루돌프 2세 황제는 이 작품을 가장 특별한 예술품만을 모은 소장품집에 포함시켰다. 17세기 당시 이러한 예술품은 대부분 인도 서부의 고아를 중심으로 생산되어 리스본을 통해 유럽에 들어온 것으로 여겨졌고, 루돌프 2세의 소장품집에도 인도의 작품으로 기록하고 있다.(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23년)

루돌프 2세와 ‘예술의 방’
루돌프 2세는 예술에 탁원한 안목을 가진 황제로 평가받습니다. 그는 스페인 왕궁에서 다양한 분야의 학문과 예술을 탐독하며 성장했습니다. 1576년 황제가 된 후 수도를 프라하로 이전하여 많은 예술가와 장인들을 불러들였고, 프라하를 보헤미아 예술의 중심지로 만들었습니다. 그는 폭넓고 깊은 예술적 안목을 바탕으로 회화부터 진기한 공예품, 학문적 성과물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예술품을 수집해 ‘예술의 방’에 전시했습니다. 루돌프 2세의 수집품은 현재 빈미술사박물관 공예관을 만드는 데 기초가 되었습니다. 예술 후원자이자 수집가로서 그가 남긴 문화유산은 합스부르크 왕가의 역사에서 중요한 의미를 가집니다.(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23년)

중앙박물관특별전 합스부르크 예술의방 20230310_12
<루돌프 2세, 마르티노 로타(1520년경 ~ 1583), 1576~80년경, 캔버스에 유화>

루돌프 2세의 궁정 화가였던 마르티노 로타가 황제 즉위를 기념해 제작한 초상화로 추정된다. 루돌프2세 치세에 구교와 신교의 갈등은 커져만 갔다. 또 13년 이상 지속된 오스만튀르크 전쟁에서는 별 다른 소득을 얻지 못해 무능한 황제라는 인식을 주기도 했다. 그러나 그가 수집한 공예품은 빈미술사 박물관 공예관의 모태가 될 정도로 그의 예술가적 감식안은 높게 평가된다.(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23년)

중앙박물관특별전 합스부르크 예술의방 20230310_03<누워 있는 비너스와 큐피드, 조반니 암브로조 미세로니 추정(1551~1616), 1600~10년, 옥수>

다루기 까다로운 재료인 옥수(玉髓) 한 덩어리를 인체 표현과 움직임을 정교하게 살려 만든 작은 조각상이다. 두 인물에 맞게 재료의 자연적인 색채를 그대로 살린 조각가의 방식도 놀랄만하다. 조반니 암브로조는 1600년부터 밀라노에 미세로니 가문 공방을 이끌었던 인물로, 당시 재료의 질감을 잘 살려 실력이 뛰어난 석공으로 평가받았다.(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23년)

중앙박물관특별전 합스부르크 예술의방 20230310_04<마노그릇, 오타비호 미세로니(1567~1624), 1615~24년, 이끼 마노, 은 도금>

그릇 바깥 면을 두르는 소용돌이 띠무늬와 겅교하고 얇게 깎은 가장자리는 오타비오 작품의 대표적인 특징이다. 이 그릇의 금속 장식은 ‘HC’라는 머리글자를 쓴 제작자가 한 것으로 작품의 받침대에 서명이 남아 있다. 이 제작자의 특징은 그릇과 받침대를 연결하는 도금 은제 장식에 투각 장식이 된 긴 암술대 모양의 장식을 더하는 것이다. 밀라노 출신 석공 오타비오 미세로니는 루돌프 황제의 초청을 받아 프라하에 공방을 차려 작업했고, 프라하가 유럽 석조 예술의 중심지로 자리 잡는데 일조했다.(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23년)

중앙박물관특별전 합스부르크 예술의방 20230310_05<조가비 모양 그릇, 오타비호 미세로니(1567~1624), 1615~24년, 연옥, 은 도금>

조가비 모양의 그릇을 장식하는 아칸서스 나뭇잎과 소용돌이 띠는 미세로니 가문의 공방에서 즐겨 사용했던 무늬 양식이다. 오타비오는 깎기 어려운 단단한 연옥을 사용했지만 마치 점토를 반죽한 것처럼 부드러운 형태의 그릇을 만들어냈다. 그릇 위에는 바다의 신 넵투누스(포세이돈)가 있는데, 은에 도금한 이 금속상은 오타비오가 사망한 후 추가된 것으로 추정한다. 루돌프 2세가 서거한 후 이 작품은 미완성 상태로 미세로니의 공방에 남겨졌다가 빈으로 옮겨 완성된 것으로 보인다.(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23년)

중앙박물관특별전 합스부르크 예술의방 20230310_13
<연수정 꽃병, 디오니시오 미세로니(1607? ~ 1661), 1651년, 연수정, 은, 도금>

하나의 큰 연수정 덩어리로 병의 몸통을 만들고 여기에 나뭇잎 무늬 입구와 손잡이, 받침대 금속 장식을 붙여 완성했다. 몸통에는 소용돌이와 괴수 얼굴을 닮은 무늬가 교차하고 옆면의 손잡이 가장자리 부분에는 과일바구니 무늬가 있다. 빛의 굴절과 반사, 투명도를 이용해 연수정의 특성을 살려 제작됐다. 루돌프 2세의 황실 석공 디오니시오 미세로니의 후기 작업에 나타나는 전형적인 양식으로, 그는 오타비오 미세로니의 아들로서 가업을 이어 프라하 궁정에서 일했다.(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23년)

중앙박물관특별전 합스부르크 예술의방 20230310_06<조가비 모양 그릇, 17세기 전반, 산호 석회암, 은, 도금>

산호 석회암은 16세기 과학에 관심이 있는 인문학자와 귀족이 매우 귀하게 여기는 수집품 중 하나였다. 이 그릇을 제작한 석공은 당시로서는 드물게 사용하던 산호석회암을 선택해서 마치 자연스럽게 주름이 진 것처럼 보이도록 제작했다. 석회암의 생김새에서 “별 무늬 돌”이라고 부리기도 했는데, 루돌프 2세도 이 ‘별무늬 돌”을 7점 소장했다고 한다.(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23년)

중앙박물관특별전 합스부르크 예술의방 20230310_11
<십자가 모양 해시계, 1619년, 구리 합금에 도금>

해시계는 근대 초기까지 시간을 알 수 있는 가장 확실하고 정확한 방법이었다. 기계식 시계처럼 오작동할 염려가 없었기때문이다. 이 해시계는 여러 방법으로 시각을 알려주는 다면십자 구조로 제작되었다. 해시계에 집약된 다양한 방법의 시간 측정법은 제작자의 수학, 기하학, 과학 그리고 예술에 대한 지식과 관심이 대단했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는 루돌프 2세 황제가 선호한 예술품들에서 나타나는 특징이다.(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23년)

중앙박물관특별전 합스부르크 예술의방 20230310_01<요새 다리와 물레방아가 있는 풍경, 조반니 카스트루치 추정(1598~1615년 추정), 17세기 전반, 마노, 벽옥>

멀리 산맥이 있고 가운데에는 우뚝 솟은 탑이 있는 성과 다리가 보인다. 보석류 석판을 형태에 맞게 깎아서 조립한 것으로 ‘보석 모자이크’라고 부른다. 조반니 카스트루치는 1610년 루돌프 2세 황제의 황실 석공이었다. 아버지 코지모카스트루치는 피렌체 출신 장인으로 프라하로 이주해 ‘보석 모자이크’를 전문으로 하는 공방을 설립했다.(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23년)

중앙박물관특별전 합스부르크 예술의방 20230310_09<유디트와 홀로페르네스 이야기가 있는 접시, 16세기 전반, 은에 금도금>

16세기 포르투갈에서 유행했던 형식의 접시로, 세 개의 동심원 안을 부조로 꾸몄다. 가장 바깥쪽에는 아시리아에게 포위당한 유대 도시 베툴리아의 이야기를 표현했다. 구약성서에서 신앙이 깊으며 남편을 잃은 여인 유디트는 자신의 고향을 지키려고 적장 홀로페르네스의 환심을 산 뒤 목을 잘라 도시를 구한다. 가장 안쪽 원에는 재판 받는 벌거벗은 남자, 광야, 세례와 천사, 옷을 받는 수도승이 묘사되어 있는데 어떤 이야기인지 아직까지 알려지지 않았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23년)

루돌프 2세는 ‘예술의 방’에서 외국 사절을 맞이하는 등, ‘예술의 방’이 사람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기기를 원했다. 이 방은 당시 ‘세계의 극장’으로 불릴 정도로 회화, 공예품뿐 아니라 세계 각지에서 입수한 화석과 암석, 각종 자연물을 소재로 그린 삽화와 같은 진기한 수집품도 전시되었다. 루돌프 2세의 ‘예술의 방’은 자연과 예술이 한데 모인 소우주와 같은 역할을 한 것이나 다름없다.(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23년)

루돌프 2세는 특유의 내성적인 성격으로 프라하의 왕성을 좀처럼 벗어나지 않았다고 한다. 다만 자신의 끝없는 지식적 욕구를 채우기 위해 일생동안 수많은 분야의 학문을 탐독했다. 그의 말년은 고독했지만, 우주에 대한 완전한 지식을 얻고자 했던 그의 열정은 과연 보상을 받았을까. 그 답은 진기한 수집품으로 가득한 빈미술사박물관 공예관의 ‘루돌프 2세의 방’에 있을지도 모른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23년)

요제프 하인츠 1세(Joseph Heintz the Elder, 1564~1609년)은 스위스의 화가, 제도가 및 건축가이다. 한스 폰 하엔 (Hans von Aachen)의 제자ㅣ로 보헤미아에 정착했으며 루돌프 2세이 궁정화가로 2년간 활동했다. 그의 작품에는 종교적 이미지, 초상화, 에로틱한 신화의 주제가 포함되어 있다.

중앙박물관특별전 합스부르크 예술의방 20230310_14
<주피터와 칼리스토, 요제프 하인츠 1세, 1603년 이후, 동판에 유화>

주피터는 사냥의 여신 다이아나로 변장하여, 다이아나를 따르며 순결서약을 한 님프 킬리스토를 속이고 있다. 주피터의 등 뒤로 보이는 분홍색 천은 그가 속임수를 쓰고 있다는 흔적이다. 주피터의 행동에 충격을 받은 킬리스토는 주피터의 포옹을 거부하고 있다. 요제프 하인츠 1세는 매너리즘을 대표하는 화가로 루돌프 2세의 궁정 화가였다. 길어진 신체 비례는 일반적인 매너리즘 화풍의 특징이다.(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23년)

바르톨로메우스 스프랑거(Bartholomäus Spranger, 1946~ 1611년)은 플랑드르 출신으로 북방매너리즘을 대표하는 화가이다. 막시밀리안 2세에 의해 궁정화가가 되면 루돌프 2세를 따라 프라하로 옮겨 활동했다. 작품에서는 신화를 주제로 채택하면서도 남성을 유혹하는 여성의 우아함과 요염함을 잘 표현하고 있다.

중앙박물관특별전 합스부르크 예술의방 20230310_15
<머큐리의 경고를 받는 비너스와 마스, 바르톨로메우스 스프랑거, 1686~87년경, 캔버스에 유화>

사랑의 여신 비너스는 주로 남편인 대장장이 신 불카누스가 아닌 다른 남성과 함께 그려지곤 한다. 이 그림에서는 전쟁의 신 마스와 등장한다. 날개 달린 모자를 쓴 머큐리는 훈계하듯 손가락을 들어 올려 간통하지 말라는 경고의 신호를 보내고 있다. 바르톨로메우스 스프랑거는 매너리즘을 대표하는 루돌프 2세의 궁정 화가이다. 매너리즘의 특징인 길어진 신체 비례와 모호한 자세 등이 나타난다.(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23년)

한스 폰 아헨(독일어: Hans von Aachen, 1552 – 1615년))은 독일 화가로 북부 매너리즘의 대표자 중 한 명이었다. 그는 왕실과 귀족의 초상화를 그리는 화가로 성공했으며, 종교, 신화와 우화 주제를 더 그렸다. 그의 에로틱한 신화적 장면은 그의 후원자였던 루돌프 2세가 즐겼으며 이로 인해 유명해졌다.

중앙박물관특별전 합스부르크 예술의방 20230310_08<콘스탄티노폴리스에서의 전쟁 선포, 한스 폰 아헨, 1603~04년경, 종이 또는 양피지에 유화>

콘스탄티노폴리스를 배경으로 두 무리의 사람들이 마주하고 있다. 붉은 옷을 입은 오스만 제국의 지도자는 언월도를 들고 있다. 반대편에는 신성로마제국을 대표하는 사신이 헝가리 전통 의복을 입고 쇠고랑을 차고 있다. 뒤에는 사자 가죽을 두르고 곤봉을 든 헤라클레스가 서 있다. 이 작품은 루돌프 2세 황제 재위기에 있었던 합스부르크와 오스만 제국 사이의 전쟁을 배경으로 한다.(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23년)

룰란트 사베리(네덜란드어: Roeland(t) Maertensz Saverij, 1576 ~ 1639년)는 플랑드르 출신의 네덜란드 황금시대를 이끌었던 화가이다. 그는 프라하에서 루돌프 2세와 마티어스의 궁정화가 되었으며 식물을 연구하기 위해 티롤 지방을 여행했다. 주로 신화와 성경을 이용해 다양한 동원해 풍경화를 그렸다. 매너리즘이 유행하면서 그의 작품은 유명해 졌으며 유럽과 미국의 여러 박물관에 그르이 작품이 남아 있다.

중앙박물관특별전 합스부르크 예술의방 20230310_07<벌목꾼이 있는 산 풍경, 룰란트 샤베리, 1606~07년, 동판에 유화>

나무가 자라는 바위와 벌목꾼 등 사실적으로 묘사한 요소들을 조합하여 연출했다. 룰란트 사베리는 얀 브뤼헐 1세와 동시대 화가로 풍경화 꽃 정물화에 뛰어났다. 그는 루돌프 2세의 궁정 화가로 일하면서 황제의 명으로 티롤 지역의 자연에 대한 연구를 수행했다. 화가의 시선으로 세밀한 부분을 예리하게 포착한 산 풍경은 그가 티롤을 여행하며 받은 인상에 근거한 것으로 보인다.(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23년)

루돌프 2세이 궁정화가들
스페인 왕실에서 유년기를 보낸 루돌프 2세는 정치, 종교보다 예술, 과학에 더 많은 관심을 보였습니다. 황제가 된 후에도 네덜란드와 이탈리아의 많은 화가를 프라하 황실로 불러들였습니다. 엄격한 가톨릭 교리 아래에서 성장한 루돌프 2세에게 인체의 비율을 비틀어 표현하는 매너리즘의 화법은 매력적으로 다가왔습니다. 특히 그리스.로마 신화 속 사랑을 나누는 장면 같은 에로틱한 주제의 그림을 선호했습니다. 루돌프 2세는 매너리즘을 대표하는 화가 바르톨로메우스 스프랑거 요제프 하인츠 1세 한스 폰 아헨 등을 궁정 화가로 삼았습니다. 꽃 정물화와 풍경화로 유명했던 룰란트 사베리 역시 루돌프 2세의 궁정 화가였습니다. 그는 황제의 명으로 티롤 지역을 방문해 다양한 풍경을 관찰했고 그를 토대로 뛰어난 풍경화를 남겼습니다.(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23년)

황제의 취향을 담다, 프라하의 ‘예술의 방’
16세기 종교개혁으로 촉발된 구교와 신교의 대립 속에서 합스부르크는 구교의 수호자로서 반종교개혁 입장을 고수하였습니다. 그러나 막시밀리안 2세는 종교에 대해 개방적인 생각을 가졌고, 그를 신뢰하지 못한 아버지 페르디난트 1세는 결국 구교를 신봉하겠다는 각서를 받고서야 황제의 자리를 물려주었습니다. 막시밀리안 2세의 아들 루돌프 2세는 스페인의 왕이자 오촌인 펠리페 2세에게 엄격한 후계자 교육을 받았습니다. 성격이 내성적이고 우울한 기질이었던 루돌프 2세는 정치적으로는 무능력했지만 예술품 수집가로서 큰 발자취를 남겼습니다. 그는 프라하로 수도를 옮긴 후 수많은 예술가들을 불러들여 후원했고, 이렇게 수집한 예술품들을 그의 ‘예술의 방’에 전시했습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23년)

<출처>

  1.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23년
  2. ‘루돌프 2세(신성로마제국)’, 위키백과, 2023년
  3. ‘한스 폰 하헨’, 위키백과, 2023
  4. ‘룰란트 사베리’, 위키백과, 2023년
  5. ‘Joseph Heintz the Elder’, Wikipedia, 2023년
  6. ‘Bartholomäus Spranger’, Wikipedia, 2023년

 

 

[중앙박물관특별전, 외규장각과 의궤] 예(禮)로써 구현하는 바른정치

의궤(儀軌)는 조선시대 국가 주요행사를 훗날 참고하기 위해 남기는 기록문서를 말한다. 국가적인 큰 행사가 있을 때 임시 기구인 도감(都監)을 두어 행사를 주관하게 하고 행사를 마친 후 의궤청을 설치하여 의궤의 편찬을 맏게 하였다. 국가 행사에 필요한 절차를 규정한 것이 <국조오례의>라면 의궤는 실행했던 내용을 기록으로 남기는 것으로 실무적인 용도와 함께 후대에 모범을 보이는 중요한 정치 행위라 할 수 있다.

중앙박물관특별전 의궤 바른정치 20230308_03<왕세자 책례(冊禮) 장면을 그린 병풍, 1784년, 비단에 색, 서울대학교박물관>

왕세자를 책봉하는 의례 중 국왕이 왕세자 책봉을 선포하는 ‘책왕세자의(冊王世子儀)’ 장면을 묘사한 병풍 그림입니다. 1784년 문효세자의 책례 때 그린 것입니다. 이때의 의례를 기준으로 삼아 1812년 효 명세자를 책봉하였기 때문에, 효명세자의 책례 장면 또한 이 병풍 그림과 같은 모습이었을 것입니다. 그림 속 장소는 창덕궁 인정전입니다. 전각 중앙에 왕이 앉았던 어좌가 보이고, 그 앞으로 예복을 갖추어 입은 신하들이 엎드려 있습니다. 어좌 앞 탁자에는 왕세자에게 줄 교명과 죽책, 옥인을 올려 놓았습니다. 전각 앞뜰에는 문무백관과 종친들이 양쪽으로 나뉘어 서서 왕세자의 선포를 지켜보고 있습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23년)

왕조의 정통을 세우다.
바른 예법으로 나라를 이끌기 위해서는 신하와 백성들이 기꺼이 따를 수 있는 권위가 필요합니다. 권위가 있으면 위상도 높아집니다. 그래서 조선시대에는 왕과 왕실의 위상을 정립하고 강화하기 위한 의례가 각별히 중요했습니다. 특히 왕에게는 정당한 왕위 계승자라는 사회적 인정, 즉 정통성을 세우는 것이 필요했습니다. 정통성에서 나라와 백성을 이끌 자격과 명분이 생겨나기 때문입니다. 왕과 왕실의 위상과 정통성은 의례를 통해 시각적으로 드러나고 확인되었습니다. 왕조의 정당한 후계자를 공표하거나, 국왕에게 위엄을 부여하거나, 왕실의 지위를 격상하는 의례입니다. 바른 예법에 따라 엄숙하면서 장엄한 의식을 치르는 동안 사람들의 마음속에 왕과 왕실의 특별한 존재감이 자리 잡게 되는 것입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23년)

책례(冊禮)는 조선시대 상왕, 대비.왕비.왕세자, 왕세자빈 등을 책봉하던 국가의례를 말한다. 책례는국왕이 종친과 신하들을 모아 놓고 책립을 선포하고 그에 따른 중요한 의물들인 교명.교책.교보를 당사자에게 전달하는 것을 내용으로 하고 있다. 책례의 절차를 통해 국왕과 왕세자를 비롯한 당사자들, 신하들의 사회적 관계와 의미를 숙고하게 한다.

중앙박물관특별전 의궤 바른정치 20230308_01<효명세자가 왕세자 책봉 때 받은 교명(敎命), 1812년, 비단, 국립고궁박물관>

왕세자 책봉 때 수여하는 교명은 국왕에 왕세자에게 내리는 훈유와 당부를 적은 것입니다. 왕조의 미래를 책임질 왕세자의 지위가 존귀하면서도 막중함을 강조하고, 본분과 책임을 다하여 훌륭한 왕이 되기를 바란다는 내용입니다. 효명세자의 교명의 책례도감의 하부 기구인 일방(一房)에서 만들었습니다. 홍색.황색.남색.백색.흑색의 오색 비단에 먹으로 내용을 쓴 후 옥으로 만든 축을 대어 만 두루마리 형태입니다. 교명이 시작하는 홍색 비단에 오르내리는 용 두마리와 ‘교명’이라는 글자를 넣었습니다. 비단을 짤 때 무늬로 넣어 직조한 것입니다. <효명세자책례도감의궤> 중 <일방의궤>에 교명과 교명함의 크기, 재질 및 형태를 그린 도설(圖說)이 실려 있습니다. 실제 유물과 비교해 보면 동일한 모습임을 알 수 있습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23년)

중앙박물관특별전 의궤 바른정치 20230308_02<교명함>

중앙박물관특별전 의궤 바른정치 20230308_04<효명세자가 왕세자 책봉 때 받은 옥인, 1812년, 옥, 국립고궁박물관>

왕세자 책봉의 핵심은 문무백관과 종친들이 보는 앞에서 왕이 세자에게 죽책과 교명, 그리고 옥으로 만든 도장 옥인을 전해주는 것입니다. 옥인은 왕세자의 상징으로서 실제로 사용하기 위한 것이 아닌 의례용 도장입니다. 효명세자의 옥인은 책레도감의 하부 기구인 이방(二房)에서 만들었습니다. 정사각형의 보신 위에 머리를 치켜 든 거북이 안자 있는 형태의 보뉴를 일체형으로 조각하고 붉은 인수를 달았습니다. 바닥면에는 ‘왕세자인’이라고 새겼습니다. <효명세자책례도감의궤>에 옥인의 형태를 그린 도설도 수록되어 있습니다. 실제 옥인과 동일한 모습입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23년)

중앙박물관특별전 의궤 바른정치 20230308_05<효명세자가 왕세자 책봉 때 받은 죽책, 대나무.금속, 국립고궁박물관>

효명세자가 책봉 때 받은 죽책으로 붉은 대나무 조각 36개를 6개씩 연결하여 만들었습니다. 죽책은 장차 왕위를 계승할 사람임을 선포하는 일종의 임명장입니다. 앞면에 왕세자로 책봉한다는 내용의 왕명을 새긴 후 금니로 글자를 채우고, 위.아래를 넝쿨무늬로 장식한 변철로 마무리하였습니다. 효명세자의 죽책은 책례도감 소속 일방에서 만들었습니다. <효명세자책례도감의궤> 중 <일방의궤>에 죽책의 크기와 재질, 죽책의 형태를 그린 도설은 물론 죽책에 새긴 왕명의 내용도 수록되어 있습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23년)

중앙박물관특별전 의궤 바른정치 20230308_06<효명사제책례도감의궤, 1812년, 어람용,>

제23대 왕 순조의 적장사 효명세자(180~1830)를 왕세자로 책봉한 과정을 담은 의궤입니다. 책봉의례를 거행하기까지의 논의부터 행사 준비 과정, 개별 의례의 내용까지 상세하게 수록하였습니다. 왕세자 책례는 창덕궁 인정전에서 성대하게 거행되었습니다. 그런데 당시 효명세자는 겨우 네 살이었기 때문에 장중한 의례에 적응하기 어렵지 않을까 염려되어 의례 절차를 두 단계로 나누었습니다. 먼저 인정전에서 왕세자 책봉을 선포하는 ‘책왕세자의’를 거행하고, 이어서 세자를 모시는 신하들이 희정당으로 가서 대기하고 있던 왕세자에게 교명, 죽책, 옥인을 전달하는 ‘왕세자자내수책의’를 올린 것입니다. 장차 보위를 이을 후계자를 정하는 중요한 의례인 만큼 실수 없이 예법에 맞게 잘 치를 수 있도록 참여자들의 동선까지도 일일이 정리해 놓았습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23년)

국본(國本)을 정하다
왕세자는 장차 왕위를 계승하게 될 후계자입니다. ‘나라의 근본’이라는 의미로 ‘국본’이라고도 했습니다. 조선시대에 왕세자를 정하는 책례는 왕실을 이어가고 나라를 안정적으로 경영하기 위해 무엇보다도 중요한 의례였습니다. 왕세자 책례는 공식적인 왕위 후계자가 되었음을 알리는 의식입니다. 궁궐 한 가운데 정전에서 성대하고 엄숙하게 거행하였습니다. 이때 왕세자는 문무백관 앞에서 왕으로부터 죽책, 교 명, 옥인을 받았습니다. 정통성 있는 왕위 후계자임을 상징하는 의물(儀物)입니다. 이제 왕세자는 여러 왕자 중의 한 사람에서 단 한 명의 정통 후계자로 지위가 격상하게 됩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23년)

어진도사 도감의궤는 왕의 초상화를 그리고 봉안하는 과정을 기록한 의궤이다. 의궤에 적힌 기록을 통해 화원의 선발과정과 그리는 과정의 주요 절차와 논의 사항 등을 자세히 살펴볼 수 있다.

중앙박물관특별전 의궤 바른정치 20230308_07<숙종어용도사 도감의궤, 1713년, 어람용>

1713년 숙종의 어진 도사 과정을 기록한 의궤입니다. 재위 중인 국왕의 얼굴을 화원이 직접 보고 그린 어진 관련 의궤 중 시기가 가장 빠른 것입니다. 앞서 1695년에 숙종이 자신의 어진을 그려 강화도 장녕전에 봉안하게 하였는데, 이 어진이 숙종의 모습을 제대로 담아내지 못했다고 하여 다시 그리게 된 것입니다. 이때 숙종은 신하들에게 자신의 어진을 대할 때 사배례를 올리도록 명하였습니다. 이에 돌아가신 선왕의 어진에 올리는 사배례를 살아있는 왕의 어진에도 적용하는 것은 과도하다는 반발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숙종은 국왕의 어진 또한 실제 국왕과 같은 대우를 받아야 한다며 사배례를 관철시켰습니다. 그 구체적인 의례의 내용이 의궤 속에 수록되어 있습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23년)

중앙박물관특별전 의궤 바른정치 20230308_21
<조영석이 그린 조영복의 초상화, 1725년(영조1), 비단에 채색, 경기도박물관, 보물>

사대부 출신 화가 조영석(1686~1761)이 자신의 맏형 조영복의 54세 때 모습을 그린 초상화입니다. 1724년(경종 4) 조영복이 충청도 영춘(단양)으로 귀양을 가자 그를 찾아가 초본을 그렸고, 조영복이 귀양에서 풀려난 이듬해에 채색한 것입니다. 1713년(숙종 39) 도사(圖寫)한 숙종의 어진을 1748년(영조 24)에 다시 그릴 때, 영조가 이 그림이 실제 조영복의 모습과 너무 흡사하다고 칭찬하면서 조영석에게 숙종 어진을 맡아 그려보라고 권하였습니다. 그러나 조영석은 기예(技藝)로 왕을 섬기는 것은 사대부의 예가 아니라며 거부하였습니다. 영조는 그의 생각이 잘못되었다고 지적하면서도 따로 책임을 묻지는 않았습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23년)

어진(御眞), 위엄을 더하다
어진은 왕의 모습을 그린 그림입니다. 어진을 그릴 때는 도사도감이나 모사도감을 설치하였습니다. ‘도사’는 왕의 모습을 직접 그리는 것이고, ‘모사’는 이전의 어진을 그대로 따라 그리는 것입니다. 도감이 설치되면 도화서 화원 중 실려이 뛰어난 사람을 뽑아서 작업을 감독하에 했습니다. 어진이 완성되면 대신들이 모여 살펴보는 봉심(奉審) 의례를 행하였는데, 이떄 실제 왕을 대하는 것 같은 예를 갖추었습니다.문무백관이 예복을 입고 어진을 모신 건물 앞에서 3번 절을 하는 사배례를 올린 것입니다. 어진에 대한 의례의 격을 최고 수준으로 높임으로써 어진의 주인공인 국왕의 위상을 강화한 것입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23년)

중앙박물관특별전 의궤 바른정치 20230308_08<단종장릉봉릉도감의궤, 1699년, 어람용>

1698년부터 1699년까지 노산대군을 ‘단종’으로 복위하면서 그의 무덤을 왕릉으로 높여 다시 조성한 과정을 기록한 의궤입니다. 처음에 단종의 무덤은 제대로 된 봉분도 없었습니다. 단종이 세상을 떠나자 지역 향리였던 엄흥도가 그의 시신을 거두어 가매장하였던 것입니다. 1516년에서 가매장한 자리를 찾아 봉분을 만들었을 뿐입니다. 숙종 때 단종이 복위되면서 비로소 왕릉의 모습을 갖추어 ‘장릉(莊陵)’이라 불리게 되었습니다. 단종의 무덤을 왕릉으로 봉하기 위한 논의 과정과 왕릉으로 고쳐 조성한 공사의 구체적 내용이 의궤에 날짜별로 정리되어 있습니다. 왕으로 바뀐 무덤 주인의 지위에 맞추어 왕릉으로서의 격식과 위상을 갖추어 가는 과정을 잘 살필 수 있습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23년)

중앙박물관특별전 의궤 바른정치 20230308_04<단종과 정순왕후의 복위 때 올린 시호 금보, 1698년>

단종을 다시 왕으로, 그의 부인을 왕비로 추숭하면서 만든 금보입니다. 돌아가신 두 사람의 덕을 칭송하는 호칭인 시호를 짓고, 이것을 도장으로 만든 후 금으로 도금했습니다. 조선시대에는 사람의 됨됨이나 사회적 지위가 명칭에서 드러난다고 여겼습니다. 그래서 왕과 왕비가 돌아가시면 살아 있을 때의 훌륭한 업적을 잘 표현하는 한자(漢子)를 선택하여 시호를 지었습니다. 단종의 시호는 ‘순정안장경순 돈효대왕’, 왕비 정순왕후의 시호는 ‘단량재경정순왕후’입니다. 두 시호 모두 어질고 예법을 잘 지켰다는 의미입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23년)

중앙박물관특별전 의궤 바른정치 20230308_10<동학지, 20세기>

단종과 관련된 사찰인 충청남도 공주 동학사의 문헌자료를 모은 것입니다. 동학사는 세조가 직접 행차하여 단종과 단종을 모신 여러 신하들을 위해 제사를 올린 사찰입니다. 지금도 동학사 동쪽에 숙모전이라는 건물이 있는데, 여기에 단종과 충신들의 위패를 모시고 있습니다. 상권에 단종 연간의 중요 사실들을 모은 <단종대왕실기>가 수록되어 있습니다. 더불어 단종과 관련된 인물 및 유적들도 자세히 소개하고 있어서 단종이 왕족의 지위를 박탈당하고 유배당하던 일과 조선후기의 단종 복위 과정을 종합적으로 살필 수 있습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23년)

왕실을 높이다.
왕실 조상들의 지위를 높여주는 추숭(追崇, 추존追尊) 의례는 왕실 전반의 위상을 높여 위엄을 더할 뿐만 아니라 그 후손인 현재 왕의 권위 또한 강화하는 것이었습니다. 나아가 조선 후기에는 예법에 대한 이해가 깊어짐에 따라 왕통을 바로 잡는다는 의미도 지니게 되었습니다. 대표적 사례가 제6대왕 단종입니다. 12세에 왕이 된 단종은 3년 만에 숙부 수양대군에게 왕위를 넘겨준 후, 역모에 휘말려 왕족의 지위를 박탈당한 채 죽음을 맞았습니다. 그로부터 200여 년이 지난 후 숙종은 단종을 다시 왕으로 추숭하고, 초라했던 그의 무덤을 왕릉으로 봉하였습니다. 이 모든 과정이 의궤 속에 상세히 기록되어 있습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23년)

중앙박물관특별전 의궤 바른정치 20230308_11<분무녹훈도감의궤, 1729년, 어람용>

1728년 3월에 발생한 무신란(이인좌의 난) 진압에 공을 세운 이들을 분무공신으로 책봉한 과정을 기록한 의궤입니다. 난의 평정을 총지휘한 오명항 등정공신 15명과 8,776명에 달하는 원종공신을 선정하고, 이들을 포상한 내용을 담았습니다. 나라에 공을 세운 신하들을 예로써 우대하는 모습을 잘 보여줍니다. 더불어 난을 진압하는 동안 각지에서 중앙에 올린 보고문서, 난의 주동자들을 잡아들인 후 심문한 내용, 영조가 역모에 대한 심정을 토로한 비망기까지 다양한 성격의 자료를 총망라하여 무신난을 둘러싼 영조 즉위 초반의 정국을 자세하게 살필 수 있는 중요한 자료입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23년)

신하와 백성을 향하다
조선의 왕이 권위를 강화하고 왕실의 위상을 높이고자 한 것은 결국 질서를 잡어서 나라를 잘 이끌기 위해서였습니다. 예법으로 위엄을 갖춘 왕이 다음으로 할 일은 신하와 백성을 돌아보는 것입니다. 조성이 안정되고 백성들이 편안하게 생활을 누리는 것, 그것이 바른 예를 실천함으로써 이루고자 한 바른 정치의 모습입니다. 그 첫걸음은 신하를 예로써 대하고 백성들의 삶을 돌아보는 자세를 내보이는 것이었습니다. 신의에 기반을 둔 군신관계를 정립하고, 백성들과 고락을 함께 하려는 애민의 자세입니다. 왕의 권위는 내세운다고 높아지는 것이 아니라 신하와 백성들이 인정하고 받아들일 때 비로소 힘을 얻기 때문입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23년)

중앙박물관특별전 의궤 바른정치 20230308_22
<오명항 분무공신화상, 조선후기, 비단에 색, 경기도박물관>

1728년 3월에 발생한 무신란(이인좌의 난)을 평정한 공으로 분무공신에 녹훈되고 ‘해은부원군’이라는 작호를 받은 오명항의 공신화상을 베껴 그린 이모본입니다. 오명항은 사로도순무사에 임명되어 무신란 진압을 총지휘하였으며, 한 달도 안 되어 난을 평정하는 큰 공을 세움으로써 1등 공신이 되었습니다. 공신에 책봉된 인물에게는 품계를 올려주고 노비와 재물을 하사하였으며, 그 후손들도 관직에 임용하는 등 여러 가지 혜택을 주었습니다. 왕명으로 초상화를 그려서 내려주는 것도 그러한 은전 중 하나입니다. 나라에 공이 있는 충신의 모습을 후세에 대대로 전한다는 의미입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23년)

중앙박물관특별전 의궤 바른정치 20230308_12<회맹축 목판, 조선, 국립광주박물관>

1404년 태종이 건국 초기의 삼공신(개국공신, 정사공신, 좌명공신)과 함꼐 회맹할 때 작성한 회맹문을 판각한 목판입니다. 조선시대에는 공신으로 책봉되면 국왕과 역대 공신 및 그 적장자손들이 모여 신의와 충성을 맹서하는 제례인 회맹제를 열었습니다. 회맹제가 끝나면 당시의 제문과 참석 대상 명단으로 구성된 회맹축을 제작해서 공신들에게 나누어 주었습니다. 이떄 공신들에게 나누어 준 회맹축은 목판에 새긴 후 인출하는 방식이 널리 사용되었습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23년)

중앙박물관특별전 의궤 바른정치 20230308_13<이삼 분무공신교서, 1728년, 비단에 필사, 한국유교문화진흥원>

1728년 3월에 발생한 무신난(이인좌의 난)을 평정한 공으로 분무공신 2등에 녹훈되고 ‘함은군’에 봉해진 이삼의 공신교서입니다. 무신난을 평정하는데 이삼이 세운 공로를 치하한 후 공신화상을 그려주고 본인과 가족들으리 품계를 2등급 올려주며, 노비와 말, 은자 등을 내린다는 내용의 왕명을 적은 것입니다. 공신으로 책봉되었을 때 국가로부터 받는 은전의 내역이 상세하게 기술되어 있어서 국가가 공신을 예로써 우대하는 모습을 잘 살필 수 있습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23년)

충신을 기리다
조선시대에는 국가나 왕실에 공을 세운 신하에게 공신의 칭호와 다양한 특혜를 내렸습니다. 이것을 ‘공신녹훈(功臣錄勳)’이라고 합니다. 큰 공을 세운 사람들은 정공신(正功臣)으로, 작은 공을 세운 사람들은 원종공신(原從功臣)으로 삼았습니다. 정공신은 소수였지만, 원종공신은 수백명, 수천명이 되기도 했습니다. 일반백성이나 노비도 포함되었습니다. 공신녹훈이 끝나면 국왕과 공신들이 모여 회맹제(會盟祭)를 열었습니다. 천지신명에게 제사를 지내면서 서로 의리를 지키고 대대로 나라에 충성하자고 맹서하는 의식입니다. 공신녹훈과 회맹제는 군신이 하나되는 의례입니다. 신하는 충심으로 왕을 보필하고, 왕은 충신을 예우함으로써 신의를 보이는 것입니다. 나아가 왕과 관료 및 사대부, 일반 백성들까지 모두가 함께 나라를 지키고 왕조를 이어간다는 인식을 확인하는 의례이기도 했습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23년)

중앙박물관특별전 의궤 바른정치 20230308_14<친경의궤, 1739년, 어람용>

1739년 1월 28일 영조가 직접 참여한 친경 의례에 대한 의궤입니다. 이때 영조는 도성 동쪽 밖 선농단에서 농경의 신에게 제사를 지낸 후 인근의 동적전으로 가서 쟁기질을 했습니다. 이 의례에는 인근 고을에서 선발된 100명이 농민과 75세 이상의 노인 40명 등 일반 백성들도 참여 했습니다. 의궤 앞부분에 친경의례가 열린 행사장의 배치도인 틴경도가 있습니다. 적전이 내려다보이는 관경대 바로 아래 중앙에 왕이 쟁기질을 할 자리인 ‘친경위’가 크게 써 있고, 그 옆으로 대신과 종친 및 여러 신하들의 자리가 표시되어 있습니다. 각자의 자리에는 쟁기질을 몇번씩 해야 하는지 횟수도 표기하였습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23년)

중앙박물관특별전 의궤 바른정치 20230308_15<국조오례의, 조선, 목활자본, 국립중앙도서관,>

중앙박물관특별전 의궤 바른정치 20230308_16<국조오례의, 조선, 목활자본, 국립중앙도서관,>

조선시대의 국가 의례는 5가지로 분류하였습니다. 국가 제사는 길례(吉禮), 국가 및 왕실의 경사는 가례(嘉禮), 외국의 사신을 맞이하는 빈례(賓禮), 군사와 관련된 군례(軍禮), 왕실의 장례와 관련된 흉례(凶禮)입니다. 이것을 ‘오례(五禮)’라고 하며, 오례의 구체적인 내용을 정리한 책이 <국조오례의>입니다. <국조오례의>에는 농산의 신에게 올리는 제사 선종제에 대한 내용도 수록되어 있습니다. 그림 자료와 관련 설명을 모은 <서례(序例)>에서는 <풍운.뇌우.산천.성황단> 그림에 붙여 선농단이 도성 동쪽 교외에 있다고 설명하였습니다. 권2 길례에서는 국왕이 제사를 올릴 때의 절차인 ‘향선농의’와 국왕 대신 신하가 제사를 올릴 때의 절차인 ‘향선농섭사의’가 함께 수록되어 있습니다. 국왕이 직접 참여한다는 점이 가장 중요했던 친경의궤에서 국왕 거동 관련 의식만 수록한 것과 다른 모습입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23년)

만백성을 돌보다
유교의 성인 맹자가 “항산(恒産, 안정적인 먹거리)이 없으면 항심(恒心, 바른마음)도 없다.”라고 했듯이 의례나 예법도 백성의 삶이 편안할 때 비로소 의미를 갖게 됩니다. 그래서 조선의 왕들은 예의 실천이 백성의 삶과 동떨어지지 않도록 경계하고 백성을 아끼는 마음을 기르기 위해 직접 농사짓는 시범을 보였습니다. 이 의례를 ‘친경(親耕)’이라고 합니다. 농사의 시작을 알리는 절기 경칩이 지나면 길을 날을 택하여 도성 동쪽 밖 선농단에서 농경의 신에게 제사를 올립니다. 그후 근처에 마련한 밭 적전(籍田)에서 소가 끄는 쟁기를 5번 밀어 땅을 갈았습니다. 이 행사에는 왕세자와 여러 신하들, 그리고 평범한 농부들도 참여했습니다. 국왕이 농사를 장려하고 백성과 고락을 같이 한다는 의미가 담긴 것입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23년)

중앙박물관특별전 의궤 바른정치 20230308_17<선농단이 표시된 한양지도, 김정호, 1850년대, 종이에 색>

<대동여지도>로 유명한 김정호가 <대동여지도>보다 앞서 만든 전국지도 <동여도> 중의 한양지도입니다. 중앙을 둥그렇게 에워싼 성곽의 오른쪽 밖으로 ‘선농단’이 보입니다. 지금의 동대문구 제기동입니다. 선농단은 농경의 신 신농씨와 후직씨에게 제사를 올리던 곳입니다. 국왕이 직접 농사 시범을 보이는 친경의례의 시작이 선농단에서 올리는 제사였습니다. 제사를 마친 후 왕은 선농단 오른쪽 ‘동적전’이라고 표시된 곳으로 갔습니다. ‘적전’은 왕이 직접 농사를 짓는 땅을 말합니다. 이곳에서 왕은 5번 쟁기를 밀어 밭을 가는 시범을 보였습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23년)

중앙박물관특별전 의궤 바른정치 20230308_18<벼베기, 볏단쌓기, 경직도 중>

중앙박물관특별전 의궤 바른정치 20230308_19<도리깨질, 벼 까부르기, 경직도 중>

농사짓기의 수고로움을 그린 경직도, 조선후기, 종이에 색
경직도(耕織圖)는 일년 동안의 농사 장면과 길쌈 장면을 그린 그림입니다. 중국 남송 때 절강성 어잠현의 현령이었던 누숙이 농사 장면과 길쌈 장면을 시와 그림으로 엮어 황제에게 바쳤는데, 이것을 후대에 본떠 그린 것입니다. 원래는 45장면이었지만 지금은 농사 장면 12장, 길쌈 장면 18장이 남아 있습니다. 지금보는 장면은 ‘벼 베기’, ‘볏단 쌓기’, ‘도리깨질’, ‘벼 까부르기’입니다. 그림 위쪽에는 각각의 일감에 어울리는 시를 적었습니다. 국왕은 항상 백성들의 농사짓는 노고를 생각해야 한다는 교 훈적인 내용입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23년)

예(禮)로써 구현하는 바른정치
의궤는 국가의례나 행사에서 모범적인 기준을 세우기 위해 만들었습니다. 모범적인 의례란 바른 예법을 잘 따른 의례입니다. 의례에 맞는 예법을 규정한 것이 <국조오례의(國朝五禮儀)> 같은 전례서(典禮書)라면, 의궤 그 예법을 실제로 적용하기 위해 구체적으로 어떻게 했는지의 경험을 모은 것입니다. 의례에서만 예법이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국왕이 추구해야 할 바른 정치도 예법을 따르는 데에서 시작합니다. 효나 충, 신의같은 사회적 덕목을 실천하는 구체적인 방법이 바로 예(禮)입니다. 왕이 먼전 바른 예를 실천함으로써 백성들의 마음을 움직여 스스로 따르게 하는 것, 그것이 예로써 구현하는 바른 정치입니다. ‘의식의 궤범’ 의궤, 거기에 만세의 모범이 될 조선의 의례 경험과 품격의 통치 철학이 고스란히 담겨 있습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23년)

<출처>

  1.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23년
  2. ‘조선왕조의궤’, 위키백과, 2023년
  3. ‘의궤’,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소, 2023년
  1. ‘책례’,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소, 2023년
  2. 어진도사(영정모사)도감의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소, 2023년

 

 

 

 

[중앙박물관특별전, 어느 수집가의 초대] 자연과 교감하는 경험

전시된 수집품의 첫번째 주제는 ‘자연과 교감하는 경험’이다. 자연의 아름다움을 표현한 걸작들을 볼 수 있는 공간이다. ‘황소’를 그린 이중섭을 비롯하여 현대 화가를 대표하는 김기장, 천경자, 오지호, 박노수 등의 걸작들과 함께 구한말을 대표하는 화가 장승업의 매그림을 비롯하여 시대를 대표하는 걸작들을 감상할 수 있다.

이중섭의 소를 그린 그림은 그의 대표작이자 가장 많은 사랑을 받는 작품들이다. <싸우는 소>, <흰소>, <황소>, <움직이는 흰소> 등이 여러점의 작품들을 남겨 놓고 있다. 그 중 <황소>는 고 삼성그룹 이건희 회장이 소장하고 있던 작품인데 최근 국립현대미술관에 기증되었다.

중앙박물관특별전 어느수집가 자연과 교감 20220824_01<황소, 이중섭(1919~1956), 1950년대, 종이에 유채, 국립현대미술관>

소는 인내와 끈기의 상징으로, 일제강점기 한국인에 곧잘 비유되었다. 이중섭의 소 그림은 작가의 자화상과도 같았다. 그림 속 때로는 힘차고, 때로는 힘겹고, 때로는 슬프게 피 흘리는 소는 변화무쌍한 삶을 살았던 이중섭의 모습이다. 소의 주름과 근육의 결을 드러내듯 그은 힘찬 선은 그림에 생명력을 불어 넣고 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22년)

<섶섬이 보이는 풍경>은 이중섭이 가족과 함께 제주도에서 피난살이 할 때 그린 작품이다. 가난하지만 행복했던 분위기가 있는 작품이다. 제주도 이중섭미술관에 기증되었다.

중앙박물관특별전 어느수집가 자연과 교감 20220824_16<섶섬이 보이는 풍경, 이중섭(1916~1956), 1951년, 패널에 유채, 이중섭미술관>

힘든 시기 자연의 아름다움은 우리에게 위로가 된다. 한국 전쟁기 제주도 서귀포로 피난을 간 이중섭은 섶섬이 보이는 바다를 보며 피란살이의 고난을 잊었을 것이다. 가난했지만 온 가족이 함께 모여 행복한 나날을 보내서인지 그의 다른 작품에 비해 매우 평온한 분위기가 느껴진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22년)

<소와 여인> 동양화가이자 추상화가로 한국 현대미술을 대표하는 김기창이 그린 작품이다. 따뜻한 색감과 만져질 듯 풍부한 질감으로 소와 여인을 표현하고 있다.

중앙박물관특별전 어느수집가 자연과 교감 20220824_21
<소와 여인, 김기창(1941~2001), 1960년대 초, 종이에 채색, 국립현대미술관>

자연을 표현하는 방식은 다양한데, 이 그림에서 ‘소’와 ‘여인’은 검은 선으로만 암시되어 있다. 그러나 따뜻한 색감과 만져질 듯 풍부한 질감으로 소와 여인의 본질을 전달한다. 김기창으 1960년대에 추상미술을 시작했는데, 종이를 구긴 채 거칠게 붓질을 하거나 구긴 종이에 물감을 묻혀 찍는 독특한 기법을 선보였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22년)

<만선>은 화가 천경자가 홍익대학교 재직 시절에 제작한 작품이다. 초기 일본 채색인물화풍의 영향을 받은 인물화를 제작했다. 해방이후 대다수의 한국 화가들이 수묵화에 경도되었을 때도 채색화를 지속하였다. 강렬한 색감과 문학적인 서정이 특징이다. <만선>은 전남 고흥 출신인 화가의 어린시절 추억이 묻어 있는 것으로 보인다.

중앙박물관특별전 어느수집가 자연과 교감 20220824_15<만선, 천경자(1924~2015), 1971년, 종이에 채색, 전남도립미술관>

배에 가득 실린 물고기는 자연이 인간에게 주는 풍요로움이다. 입자가 굵은 석채 안료를 여러 번 덧칠하여 질감 표현 또한 풍부하다. 천경자는 석채를 자유자재로 구사하여 환상적인 색채 감각을 펼쳐 보였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22년)

지호는 전남 화순 출신의 서양화가이다. 서구의 인상주의를 한국 환경에 맞도록 해석하고 표한 화가로 한국 서양화 발전에 앞장섰던 인물로 평가받고 있다.

중앙박물관특별전 어느수집가 자연과 교감 20220824_17<화물선, 오지호(1905~1982), 1970년, 캔버스에 유채, 전남도립미술관>

햇빛에 따라 변화하는 자연의 빛에 매료된 오지호는 한국의 날씨와 사계절 변화를 자신만의 방식으로 표현했다. 항구 주변의 푸른바다와 하늘, 정박한 배를 소재로 한 이 작품에서, 화가는 화물선의 하얀 선체가 빛을 받아 반짝이는 효과를 실감나게 표현했다. 대상의 세부를 세밀하게 그리기 보다, 그 대상이 빛의 효과에 따라 우리 눈에 어떻게 시각적으로 경험되는가 하는 문제에 집중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22년)

유영국은 1세대 서양화가로 한국 모더니즘과 추상미술의 선구자로 손꼽힌다. 그는 점, 선, 면, 형, 색 등 기본적인 조형 요소로 강한 에너지를 표현했다.

중앙박물관특별전 어느수집가 자연과 교감 20220824_18<무제, 유영국(1916~2002), 1993년, 캔버스에 유채, 전남도립미술관>

자연이 매력을 은유적으로 표현한 화가 유영국은 제한된 색과 도형으로 달밤의 정적을 표현했다. 어두운 푸른색을 배경으로 삼각형의 산, 달이 비치는 바다를 표현했다. 단순한 형태, 미묘하게 변주되는 제한적 색채가 절제된 아름다움의 극치를 보여준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22년)

중앙박물관특별전 어느수집가 자연과 교감 20220824_14<불국설경, 박대성(1945년생), 1996년, 종이에 수묵채색, 국립현대미술관>

겨울은 고요한 계절이다. 소복하게 쌓인 눈 속에 소리마저 묻혀버리면 새하얀 별세상이 펼쳐진다. 박대성의 <불국설경>에는 사람이 없다. 눈 덮인 소나무들만 저마다 가지를 늘어뜨리며 겨울의 고요함을 만낀하고 있다. 1995년 가을, 뉴욕에서 귀국한 박대성은 경주로 내려가 1년간 불국사 손님방에 머물며 불국사 연작을 선보였다. 마침 그해 겨울 경주에는 7년만에 눈이 내렸고, 박대성은 불국사의 설경을 고즈넉한 풍경으로 그렸다. 그림 왼쪽 윗부분에는 불국사에서 받은 감동을 한글 고체로 적어 놓았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22년)

중앙박물관특별전 어느수집가 자연과 교감 20220824_38
<홍매, 강요배(1952년생), 캔버스에 아크릴, 국립현대미술관>

꽃망을 틔우려는 붉은 매화를 표혀난 이작품은 전통적인 구상이나 추상이라는 표현의 경계를 넘어서 있다. 캔버스에 겹겹이 쌓아올린 물감과 흐릿하고 짧은 선을 매화나무 줄기를 표현했는데, 이러한 표현법은 조선 조화기법 분청사기를 떠올리게 한다. 강요배는 추상화 같은 풍경화로 자신의 심리 변화를 드러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22년)

중앙박물관특별전 어느수집가 자연과 교감 20220824_29
<피리, 박래현(1920~1976), 1956년, 종이에 수묵채색, 국립현대미술관>

나무둥치에 걸터 앉아 피리를 부는 소년의 모습은 한가롭기 그지없다. 구불거리며 뻗어나가는 나뭇가지가 피리 소리에 맞추어 흔들리는 듯하다. 이처럼 한가로운 그림을 그린 박래현은 실제로는 시간을 쪼개어가며 집안일, 육가와 그림 그리기를 병행했다. 그녀는 자신의 시간과 싸우면서 대작을 남겼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22년)

박노수는 동양화가 겸 한국화가로 서울대 미대 교수를 역임했다. 전통적인 동양수묵, 부채에 현대적인 감각을 가미시켜 개성이 뚜렷한 화풍을 확립했다. 한국 현대 동양화단의 대표적인 화가로 손꼽힌다. 그가 살던 집은 현재 종로구립박노수미술관으로 운영되고 있다.

중앙박물관특별전 어느수집가 자연과 교감 20220824_09<산정도, 박노수(1927~2013), 1960년, 종이에 수묵채색, 국립현대미술관>

어려운 상황에도 포기하지 않는 인간의 강인한 생명력과 도전 정신을 느낄 수 있는 작품이다. 큰 암석으로 이루어진 거대한 바위산을 향해 한 여인이 말을 타고 달려간다. 여인의 얼굴과 바위틈에 비치는 남청색은 세속과 동떨어진 맑은 기운을 드높인다. ‘산의 정기’를 뜻하는 제목처럼 신비롭고 활달한 생명력으로 가득차 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22년)

장승업은 안견, 김홍도와 함께 조선시대 3대 거장으로 손꼽힌다. 도화서 화원 출신으로 다양한 소재를 다루는데 뛰어 났다. 필치가 호방하고 대담하면소 소탈한 여운을 주고 있다. <기명절지도>, <풍림산수도> 등 여러 작품을 남겼는데 매를 그린 그림은 웅장하면서도 힘이 넘치는 표현이 돋보인다.

중앙박물관특별전 어느수집가 자연과 교감 20220824_28
<웅혼하게 세상을 바라보다, 雄視八荒圖, 장승업(1843~1897), 조선 19세기 후반, 비단에 엷은 색, 국립중앙박물관>

중앙박물관특별전 어느수집가 자연과 교감 20220824_08<그림 중 세상을 바라보는 매>

중앙박물관특별전 어느수집가 자연과 교감 20220824_07<그림 중 달아나는 토끼>

“온 세상을 웅혼하게 바라본다”는 제목은 매의 시선을 의미한다. 매와 토끼를 함께 그린 그림은 제왕의 위엄 앞에 소인배가 움츠린다는 의미이다. 높은 바위에서 날갯짓하는 매와 아래에 화들짝 놀라며 달아나는 토끼의 모습에서 자연에서 늘 일어나는 긴장 관계가 느껴진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22년)

이인상은 조선후기에 활동한 문인화가이다. 시서화를 다 잘하여 ’3절’이라 부리었으며, 인장도 잘 새겼다. 그의 작품은 문기(文氣)가 가득하고, 높은 운치를 보여준다.

중앙박물관특별전 어느수집가 자연과 교감 20220824_02<나무 아래 한가로운 담소, 그림 제발: 이인상, 제시:이윤영, 조선 18세기, 종이에 먹, 국립중앙박물관>

큰 바위와 절벽 사이에 두 그루의 큰 나무가 있고 그 아래에 두 선비가 한가롭게 앉아 있다. 담백함이 특징인 이 작품에서 문인화가 이인상이 추구했던 천연스러운 경지가 느껴진다. 화면 왼쪽 아래에 다른 사람이 그림을 가져가지 않도록 친구 임매를 위해 그린 그림이라고 적은 이인상의 글이 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22년)

이인문은 조선후기에 활동한 도화서 출신 화가이다. 그의 그림은 산만함을 없애고 정연하며 아담한 구도를 보여주고 있다.

중앙박물관특별전 어느수집가 자연과 교감 20220824_03<소나무 아래에서 폭포를 보다, 이인문, 조선 18세기 말 ~19세기 초, 종이에 엷은 색, 국립중앙박물관>

물가 소나무 아래에서 유유자적하는 인물이 그려져 있어, 무더위를 피해 계곡을 찾은 추억을 떠오르게 하는 그림이다. 화면을 장악하는 소나무 두 그루를 먹의 농담과 굵기를 조절하며 자신있게 표현했다. 소나무 사이로 보이는 폭포는 엷게 칠하고, 아래 물줄기는 선명하게 그려서 공간의 깊이를 구현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22년)

중앙박물관특별전 어느수집가 자연과 교감 20220824_04<구담봉, 윤제홍, 조선 19세기 전반, 종이에 먹, 국립중앙박물관>

단양 구담봉은 남한강 가에 솟아 있는 포이 338m의 바위다. 주위에 봉우리가 이어져 있으나 윤제홍은 다섯 개의 봉우리로 구담봉을 표현했다. 화가가 화면 왼쪽에 “구담봉은 웅장하고 막힘이 없다. 신기한 절경 중에서도 특별하고 기이하다”라고 적은 것처럼 신선이 사는 곳처럼 신비롭게 묘사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22년)

백자 청화동정추월문 항아리’이다. 원통형의 몸체에 입이 크게 벌어진 형태로 ‘떡메병’이라고도 부른다. 꽃을 꽂는 화병으로 사용되었을 것으로 추정되는데 극히 드문 형태이다. 몸통 전체에 청화안료 산수화를 그려놓고 있다. 한면에는 절벽위에 누각과 깃발을 표현하고, 다른 면에는 둥든달과 배를 저어가는 모습과 멀리 배가 정박해 있는 모습을 그려 놓았다. 그림의 필력과 구도가 뛰어나서 궁중화원이 그린 것을 추정되고 있다.

중앙박물관특별전 어느수집가 자연과 교감 20220824_05<백자 청화 산수무늬 병, 조선 18세기, 국립중앙박물관, 보물>

중앙박물관특별전 어느수집가 자연과 교감 20220824_06<반대편>

보름달 뜬 강가 풍경이 병 전면에 그려져 있다. 아래로 내려갈수록 풍만해지는 병의 형태와 너른 강에서 뱃놀이 하는 유유자적한 그림이 잘 어울린다. 이 병은 떡을 칠 때 사용하는 몽둥이처럼 생겼다 하여 ‘떡메병’이라고 하며 화병으로 사용되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22년)

<정사신 참석 계회도>는 조선 선조 때 문신 정사신이 관원으로 참여했던 계모임을 그린 6폭의 그림이다. 이 그림들은 1580년대 화풍을 잘 반영하고 있어 학술적, 회화사적 가치가 높다,

중앙박물관특별전 어느수집가 자연과 교감 20220824_22
<1폭 괴원장방계회도, 1582년 과거시험 합격 동기 중 승문원 현직 관원들이 1583년 경 강가에서 모인 계회>

중앙박물관특별전 어느수집가 자연과 교감 20220824_23
<2폭, 봉산계회도, 1585년 정사신이 일본 사신을 호송하기 위해 동래에 체류했을 때 부산에서 열린 모임>

중앙박물관특별전 어느수집가 자연과 교감 20220824_24
<3폭 태상계회도, 1585년 봉상시의 전현직 관원들이 강가에서 모인 계회>

중앙박물관특별전 어느수집가 자연과 교감 20220824_25
<4폭 예조낭관계회도, 1586년 예조 관원들이 강가에서 모인 계회>

중앙박물관특별전 어느수집가 자연과 교감 20220824_26
<5폭 형조 낭관 계회도, 1586년 형조 관원들이 강가에서 모인 계회>

중앙박물관특별전 어느수집가 자연과 교감 20220824_27
<6폭 미원계회도, 1587년 대사간 이하 사간원 관원이 경복궁 동쪽 사간원 청사에서 모인 계회>

정사신이 참석한 계회도, 작가 모름, 조선 1583~1587년, 비단에 먹, 국립중앙박물관, 보물
16세기 문인 관료 정사신이 처음 벼슬에 나아간 때부터 4년 동안 여섯 번 참석한 계회(契會) 그림을 모은 병풍이다. 조선시대에는 과거에 합격한 동기끼리, 같은 관청에서 일하는 동료끼리 시를 짓고 술을 나누는 모임이 성행했고, 모임 장면을 그림으로 그려 나누어 가졌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22년)

중앙박물관특별전 어느수집가 자연과 교감 20220824_30
<기러기, 가마우지와 새, 홍재섭(1832~1884), 조선 19세기 후반, 비단에 먹, 국립중앙박물관>

중앙박물관특별전 어느수집가 자연과 교감 20220824_31
<기러기, 가마우지와 새, 홍재섭(1832~1884), 조선 19세기 후반, 비단에 먹, 국립중앙박물관>

중앙박물관특별전 어느수집가 자연과 교감 20220824_32
<기러기, 가마우지와 새, 홍재섭(1832~1884), 조선 19세기 후반, 비단에 먹, 국립중앙박물관>

중앙박물관특별전 어느수집가 자연과 교감 20220824_33
<기러기, 가마우지와 새, 홍재섭(1832~1884), 조선 19세기 후반, 비단에 먹, 국립중앙박물관>

화가들은 자연의 매력을 그림에 담아내기 위해 늘 고심한다. 홍세섭은 자연물의 형태를 특색있게 변형하는 데에 뛰어났다. 겨울 산을 배경으로 새가 고개를 빳빳이 쳐들고 산봉우리를 향하는 동작이 극적이며, 눈 덮힌 봉우리의 단순한 표현이 상당히 역동적이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22년)

중앙박물관특별전 어느수집가 자연과 교감 20220824_34
<1. 난초, 신명연(1809~1886), 조선 1862년, 종이에 먹, 국립중앙박물관>

중앙박물관특별전 어느수집가 자연과 교감 20220824_35
<2. 괴석과 난초, 이하응(1820~1898), 조선 1887년, 비단에 먹, 국립중앙박물관>

중앙박물관특별전 어느수집가 자연과 교감 20220824_36
<3. 영지와 난초로 상서로움을 드리다, 김용원(1855~1921), 20세기 전반, 비단에 엷은 색, 국립중앙박물관>

인간은 자연 현상과 생명체에 추상적 의미를 부여한다. 동아시아에서는 은은한 향기를 풍기는 난초에 ‘인품이 고아한 선비’를 빗대어 표현했다. 선비를 상징하는 먹으로 그린 난초 그림은 점차 장식적으로 변모했다. 꽃대 하나에 여러 송이가 줄지어 핀 난초를 그리기도 하고 난초에 괴석 화분을 배치하기도 했다. 20세기가 되면 물감으로 난초를 그려 아름다움을 추구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22년)

남계우는 조선후기에 활동한 문인화가로 숙종 때 문신 남구만의 5대손이다. 나미를 잘그려 ‘남나비’라 불리기도 했다. 평생 나비와 꽃그림만을 즐겨 그려 많은 유작들을 남겼다. 그가 그린 그림은 사실적 묘사와 화려한 색감이 특징이다.

중앙박물관특별전 어느수집가 자연과 교감 20220824_13<나비, 남계우(1811~1890), 조선 19세기, 종이에 색, 국립중앙박물관>

봄이 시작되면 나비가 찾아온다. 나비는 아름다울 뿐만 아니라 좋은 의미를 지녔다. 나비 ‘접蜨’고 노인 ‘질 耋’의 중국어 발음이 모두 ‘디에’여서 나비 그림으로 장수를 축원한다. 19세기 문인화가 남계우는 나비를 관찰해서 종류와 암수를 알아볼 수 있도록 세밀하게 그렸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22년)

중앙박물관특별전 어느수집가 자연과교감 20220824_74
<나비, 이경승(1862~1927), 1919년, 비단에 수묵채색, 국립현대미술관>

중앙박물관특별전 어느수집가 자연과교감 20220824_82<나비>

중앙박물관특별전 어느수집가 자연과교감 20220824_75
<나비, 이경승(1862~1927), 1919년, 비단에 수묵채색, 국립현대미술관>

봄의 정경을 상상해보면 흐드러진 꽃과 꽃 사이를 날아 다니는 나비가 떠오른다. 이 그림에는 서로 다른 계절의 꽃들이 한꺼번에 피어난 기이한 풍경 속에 각양각색의 나비가 떠다닌다. 이경승은 남계우의 전통을 이어 나비 그림을 많이 남겼다. 나라 잃은 울분이 만세의 함성으로 터져 나왔던 1919년의 봄에도, 나비들은 여전히 산하를 날아다녔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22년)

자연과 교감하는 경험
인간은 자연과 교감한 경험을 남기고 싶어 합니다. 자연속에서 유유자적하게 보낸 경험이나 자연의 매력에 새롭게 눈뜬 경험을 예술로 발전시킵니다. 자연의 아름다움을 느낀 그대로 표현하려고 애쓰기도 하고, 관념적으로 접근해서 개성적으로 표현하려고도 합니다. 또한 자연물에 장생, 부귀영화와 같은 좋은 의미를 부여해 뜻을 전하기도 합니다. 삼국시대 토우 장식에도 현대의 풍경화와 동물화에도 인간이 자연과 교감한 경험이 반영되어 있습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22년)

중앙박물관특별전 어느수집가 자연과교감 20220824_71
<산수, 바위와 대나무, 조희룡(1789~1866), 조선 19세기, 종이에 엷은 색, 국립중앙박물관>

중앙박물관특별전 어느수집가 자연과교감 20220824_72
<산수>

중앙박물관특별전 어느수집가 자연과교감 20220824_73
<바위와 대나무>

마른 붓과 물기 많은 수묵을 번갈아 휘둘러 자연의 변화 무쌍한 매력을 포착한 그림이다. 서화 이론에 정통한 조희룡은 그림에 옛 선인들의 화론에서 뽑은 구절과 자신의 예술론을 그림에 적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22년)

중앙박물관특별전 어느수집가 자연과교감 20220824_81<해학반도도 병풍, 작가 모름, 조선 19세기, 비단에 색, 국립중앙박물관>

자연은 늘 변화하지만 짧은 시간을 살다 가는 인간의 눈에는 영원한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이 병풍은 바닷가 절벽에서 자라난 복숭아와 학 무리를 그린 것으로 십장생도에서 파생된 장식 그림이다. 반도는 삼천 년에 한 번 열매를 맺으며, 한 알을 먹으면 수명이 삼천년 늘어난다고 하는 복숭아다. 해가 떠올라 볼그스름하게 물든 대기 속에 신선의 세계처럼 환상적인 경치가 펼쳐져 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22년)

중앙박물관특별전 어느수집가 자연과교감 20220824_83<나전 칠 봉황무늬 원반, 조선 19세기, 나무, 자개, 상어가죽에 칠, 국립중앙박물관>

봉황은 현명한 군주가 이룩하는 태평성대의 상징이어서 왕실 기물에 널리 장식되었다. 이 원반은 두 사람 이상이 함께 식사하는 큰 상으로, 한국의 칠기 중에서도 색을 들인 상어가죽, 자개, 구리선 같은 갖은 재료로 화려하게 장식한 보기드문 작품이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22년)

중앙박물관특별전 어느수집가 자연과교감 20220824_84<작품, 김흥수(1919~2014), 1970년대, 캔버스에 유채, 국립현대미술관>

붉은색과 녹색 계통 물감이 번지고 서로 스며들면서 생명력을 표출하는 작품이다. 김흥수는 추상과 구상을 오가며 실험적인 작품을 남긴 화가이다. 구상과 비구상, 한국화와 서양화, 음과 양 등 양립하기 어려운 개념들이 함께 존재하는 작업을 했는데, 이 <작품>은 두가지 개념이 양립하는 시기 전에 제작한 작품이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22년)

중앙박물관특별전 어느수집가 자연과교감 20220824_86<난초, 대나무와 바위, 김규진(1864~1933), 비단에 색, 국립중앙박물관>

강렬한 녹색의 대나무가 눈길을 끈다. 대나무를 겸허한 스승으로, 난초를 의기투합한 친구로 빗댄 작품이다. 전통적인 서화의 소재와 주제를 따른 것이지만, 이전과 달리 크기가 크고 색채가 강렬하다. 서화가이자 국내 최초의 사진작가였던 김규진이 미술관 전시를 염두에 두고 큰 작품을 제작한 것이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22년)

중앙박물관특별전 어느수집가 자연과교감 20220824_76
<손, 권진규(1922~1973), 1963년, 테라코타, 국립현대미술관>

인간이 자연에서 이루어낸 것은 결국 손으로 해낸 것이다. 인간은 정교하고 힘찬 손동작으로 문명을 만들어냈다. 손과 팔뚝을 정교하게 재현한 이 작품에서 무엇이든 해내겠다는 강한 의지가 느껴진다. 권진규는 힘을 잔뜩 준 근육의 미묘한 변화를 잘 포착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22년)

<출처>

  1.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22년
  2. ‘이중섭’, 위키백과, 2023년
  3. ‘김기창,위키백과, 2023년
  4. ‘천경자’, 위키백과, 2023년
  5. ‘오지호’,위키백과, 2023년
  6. ‘유영국’,위키백과, 2023년
  7. ‘박노수’, 위키백과, 2023년
  8. ‘장승업’, 위키백과, 2023년
  9. ‘이인상’,위키백과, 2023년
  10. ‘이인문’,위키백과, 2023년
  11. ‘보물 정사신참석계회도 일괄’,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2023년
  12. ‘남계우’,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2023년

 

[중앙박물관특별전, 아스테카] 신성구역과 템플로 마요르

템플로 마요르(Templo Mayor)는 멕시코시티에 남아 있는 신전 유적으로 아즈테카의 수도의 중심 신전이다. 피라미드의 꼭대기에는 전쟁의 신 우치칠로포츠틀리와 비와 농사의 신인 틀랄록의 신전 2개가 있었다. 1325년에 지어진 이후 개축, 확장되었다. 신전은 스페인에 점령된 이후 대성당을 짓기 위해 헐러나갔으며 사람들의 기억에 사라졌다가 1978년에 공사를 하는 과정에서 그 실체가 발견되었다. 유적들은 의외로 잘 보존되어 있었으며 신들의 모습이 새겨진 점토항아리 등 다양한 유물들이 출토되었다.

중앙박물관특별전 템플로마요르 20220824_03<제의용 칼 모양 대형 석판>

중앙박물관특별전 템플로마요르 20220824_04<제이용 칼 모양 대형 석판>

세상의 중심, 신성구역과 템플로 마요르
이스테카 사람들은 테노츠티틀란의 신성 구역을 세상의 중심으로 여겼습니다. 이곳에서 아스테카의 종교, 정치, 경제 행위가 복합적으로 이루어졌습니다. 동-서 440m, 남-북 380m 크기의 이 구역에는 다양한 신전과 학교, 공놀이장 등이 자리하였습니다. 사제들은 멕시코 전역에서 가져온 공물들을 한데 모아 신께 봉헌하고, 신성한 제의를 거행했습닏. 이것은 태양, 즉 세상을 창조하기 위해 희생을 감내한 신들에 대한 보답이었습니다. 귀족 청년들은 칼메칵이라는 학교에 다녔으며, 아스테카의 통치자 우에이 틀라토아니의 즉위식 또한 이곳에서 치러졌습니다. 그리고 정복지의 틀라토아니를 제의나 축제에 초대하여 아스테카의 부와 권력을 과시했습니다. 신성 구역의 중심에는 대신전, ‘템플로 마요르’가 있었습니다. 신전 꼭대기에는 아스테카의수호신 우이칠로포츠틀리와 틀랄록을 모신 신전이 나란이 있었습니다. 우이칠로포츠틀리의 신전에는 정복지의 신상을 가져와 보관하는 코아칼코가 있었는데, 이는 아스테카 수호신의 우월함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입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22년)

중앙박물관특별전 템플로마요르 20220824_01<음악과 쾌락의 신 쇼치필리의 머리, 아스테카, 1500년경, 화산암, 오스트리아 빈 세계박물관>

쇼치필리는 음악과 춤, 놀이 외에도 귀족, 꽃, 옥수수와도 관련이 있습니다. 조각상은 새 부리 사이로 쇼치필리 신이 얼굴을 내밀고 있는 듯한 모습입니다. 구슬로 장식한 목걸이와 귀걸이, 코걸이를 착용하고 있으며, 본래 눈에는 보석을 박아 장색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22년)

중앙박물관특별전 템플로마요르 20220824_02<아스테카의 전통 북 모형>

중앙박물관특별전 템플로마요르 20220824_15<아스테카의 전통 북 모형>

1. 아스테가의 전통적인 북을 화산암으로 만든 모형입니다. 북에는 재규어 가죽을 씌웠습니다. 제의나 행렬 때 두르리며 연주했습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22년)

중앙박물관특별전 템플로마요르 20220824_14<나무북 ‘테포나츨리’ 모형>

2. 기다란 나무 북 ‘테포나츨리’의 모형입니다. 오늘날에도 몇몇 원주민 공동체는 이 북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계속 전승되어 수백 년 동안 사용한 북도 있습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22년)

중앙박물관특별전 템플로마요르 20220824_08<틀랄록이 지녔던 뱀 모양 지휘봉>

3. 비의 신 틀랄록이 지녔던 뱀 모양의 지휘봉입니다. 틀랄록이 대지에 양분을 주는 물줄기나 번개를 상징합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22년)

중앙박물관특별전 템플로마요르 20220824_10<’치카우아틀리’라 부르는 지휘봉>

4. ‘치카우아틀리’라고 부르는 이 지휘봉은 주로 나무로 만들고, 안에 씨앗이나 작은 돌을 넣었습니다. 그래서 지휘봉을 흔들면 빗소리가 났습니다. 대지에 양분을 주는 뜨거운 빛을 상징하며, 풍요를 기원하는 제의에 사용했습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22년)

중앙박물관특별전 템플로마요르 20220824_05<미스테 양식 가면 모형> <틀랄락신 작은 모형> <제의 때 사용하는 가면 모형> <고둥 장식물>

5. 미스테 양식의 가면 모형입니다. 미스테카 사람들이 고향은 오악사카 지역이며, 쇼치필리 신의 기원지도 오악사카 지역으로 알려졌습니다. 이에 쇼치필리 산을 위한 봉헌물에 미스테카 양식의 물품을 담았습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22년)

11. 녹색 돌로 만든 비의 신 틀랄록의 작은 모형입니다. 이렇게 작게 묘사한 조각을 틀랄록의 조수인 ‘틀라토케’라 불렀습니다. 이들은 산에 살며 틀랄록을 도와 비를 내리게 했습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22년)

12. 제의 때 사용하는 가면의 모형입니다.

15. 고둥으로 만든 장식물로, 물과 지하 세계와 관련이 있습니다. 이러한 바다 고둥은 멕시코만 연안에서 서식했습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22년)

중앙박물관특별전 템플로마요르 20220824_16<’래틀’의 모형>

6.7. 흔들어서 소리를 내는 악기, ‘래틀’의 모형입니다. 래틀은 제의에서 춤을 출 때 필수적이었습니다. 박의 속을 파낸 다음, 그 안에 씨앗을 넣어 만들었습니다. 이때 부채도 사용했는데, 주로 나무 막대에 깃털을 연결하여 만들었습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22년)

중앙박물관특별전 템플로마요르 20220824_17<’래틀’의 모형><구이로>

10. 사람의 넓적다리뼈로 만든 악기의 모형입니다. ‘구이로’라고 부르는 이 악기는 현재도 조롱박 등으로 만들어 메소아메리카 지역에서 널리 연주되고 있습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22년)

중앙박물관특별전 템플로마요르 20220824_13<’래들’ 모형><치치틀리><틀라피찰리>

13. 미스테카 양식의 호루라기 ‘치치틀리’입니다.
14. 미스테카 양식의 피리 ‘틀라피찰리’입니다.

중앙박물관특별전 템플로마요르 20220824_06<화살 모양 꾸미개>

8. 화살 모양의 꾸미개로, 머리에 장식한 새의 깃털을 흉내 낸 것입니다. 쇼치필리 신의 머리에도 이러한 새 깃털 장식이 있었습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22년)

중앙박물관특별전 템플로마요르 20220824_11<거북 등딱지 모형>

9. 돌로 만든 거북이 등딱지 모형으로, 목걸이였던 것으로 보입니다. 불과 태양, 음악을 상징하는 거북이는 쇼치필리 신과 연관된 동물입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22년)

신을 위한 봉헌물
템플로 마요르 주변에서 앞선 시대인 테오티우아칸 양식의 건물들을 발견했습니다. 테우티우아칸은 아스테카 사람들에게 신들의 도시이자 태양과 달이 탄생한 곳입니다. 이 가운데 ‘남쪽 붉은 신전’이라고 불리는 건물 내부에서 화산암으로 만든 상자를 발견하였고, 상자 안은 다양한 봉헌물로 가득했습니다. 주변에서 제의용 칼 모양의 대형 석판을 발견하였는데, 그 중 하나에 마쿠일쇼치틀-쇼치필리 신의 모습이 그려져 있었습니다. 이로 인해 이 78번 봉헌물 일괄이 그에게 바친 것임을 알 수 있었습니다. 발견 당시, 상자 내부의 봉헌물이 물에 의해 한곳으로 쏠려 있는 것을 확인했습니다. 이 건물은 1440년에서 1502년 사이에 지은 것으로, 테노츠티틀란에 대홍수가 일어난 1499년 이전에 봉헌물들을 매납한 것으로 보입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22년)

중앙박물관특별전 템플로마요르 20220824_19<깃털 달린 뱀, 아스테카, 16세기 초, 돌, 안료, 스위스 바젤 문화박물관>

메소아메리카 전역에서 숭배한 케찰코아틀 신은 다양한 모습으로 나타납니다. 대표적인 것이 바로 ‘깃털 달린 뱀’의 모습입니다. 이 모습의 케찰코아틀은 새벽의 신이자 인류의 창조자이며, 지식의 수호신입니다. 케찰코아틀의 또 다른 모습으로 붉은 부리 장식이 특징인 바람의 신 에에키틀-케찰코아틀 등이 있습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22년)

중앙박물관특별전 템플로마요르 20220824_21<피리>

1. 비의 신틀랄록을 장식한 피리, 콜리마, 멕시키, 기원전 200~ 기원후 300년, 점토, 오스트리아 빈 세계박물관
바람을 부는 취구 부분에 얼굴 장식이 있는 피리입니다. 얼굴에서 비의 신 틀랄록의 특징이 보입니다. 틀랄록은 아스테카뿐만 아니라 메소아메리카 전역에서 오랜 기간 특별하게 모신 신입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22년)

2. 이중 피리, 아스테카, 1450~1521년, 점토, 네덜란드 국립세계문화박물관
메소아메리카의 음악은 한 옥타브가 다섯 개의 음으로 이루어진 5음계를 기초로 했습니다. 피리, 나팔, 북, 구이로 등 다양한 악기를 사용해 음악을 연주했으며, 종교의식에서 음악은 가장 중요한 요소 중 하나였습니다. 음악가들은 제의와 축제에서의 엄숙한 임무를 위해 많은 훈련을 받았습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22년)

3. 사람의 뼈로 만든 피리, 아스테카, 1328~1415년, 사람의 뼈, 독일 슈투르가르트 린덴박물관
사람의 허벅지 뼈로 만든 피리입니다. 음악은 메소아메리카의 제의에서 매우 중요한 요소로, 오늘날에도 여전히 필수적입니다. 사슴과 인간의 허벅지 뼈로 만든 피리는 생명을 유지하고 풍요를 기원하는 중요한 제의에서 연주되었습니다. 허벅지 뼈는 다산과도 관련이 있으며, 전투에서 승리한 전사들은 자신의 군사적 능력을 과시하기 위해 처형한 포로의 허벅지 뼈를 간직하기도 했습니다. 이 피리에는 두 인물이 모습이 새겨져 있습니다. 한 명은 독수리 전사이며, 다른 한 명은 신의 모습으로 분장한 것으로 추정됩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22년)

중앙박물관특별전 템플로마요르 20220824_22<4. 통나무 북 테포나츨리, 미스테카, 1000~1500년경, 나무, 스위스 바젤 문화박물관>

아스테카에는 두 종류의 북이 있습니다. 하나는 속이 빈 통나무로 만들어 가로로 뉘어 놓고 연주하는 테포나츨리입니다. 다른 하나는 나무와 동물 가죽으로 만들어 세로로 세워 놓고 연주하는 우에우에틀입니다. 모두 축제와 제의에서 음악을 연주하는데 사용했습니다. 현대 원주민 공동체는 수백년 동안 사용한 테포타츨리 북을 여전히 사용하기도 합니다. 이 북에는 희생제의를 위해 새 복장을 한 두 명의 인물이 제의 물품 주위에서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는 못브을 장식했습니다. 측면에는 ‘꽃’과 ‘노래’를 나타내는 기호가 새겨져 있습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22년)

중앙박물관특별전 템플로마요르 20220824_23<1. 뼈무늬 채색 바리, 아스테카, 1450~1521년, 토기, 멕시코 국립인류학박물관>

아스테카 사람들은 음식과 음료를 신이 주신 선물로 여겼습니다. 이에 아름답게 장식한 그릇에 제의 음식을 담아 다시 신에게 바쳤습니다. 그릇 가운데를 장식한 뼈와 주변의 두개골 장식으로 이 그릇에 담긴 음식들이 돌아가신 조상들에게 바쳐졌음을 알 수 있습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22년)

중앙박물관특별전 템플로마요르 20220824_25<2. 방울 달린 향로, 아스테카, 1450~1521년, 토기, 멕시코 국립인류학박물관>

공처럼 생긴 향로 다리에 점토로 만든 작은 구슬이 들어 있어 흔들면 악기처럼 소리가 났습니다. 아스테카의 제의에서 송진으로 만든 향을 피우는 것은 필수적이었습니다. 중요한 제의와 축제가 있을 때마다 많은 양의 향을 피웠습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22년)

중앙박물관특별전 템플로마요르 20220824_24<3. 공놀이장 모형, 아스테카 추정, 1100~1400년경, 돌, 독일 함부르크 로텐바움세계문화예술박물관>

공놀이는 여러 명의 선수가 두 팀으로 나뉘어 고무로 만든 공을 엉덩이로만 쳐서 둥근 골대 안에 넣는 경기입니다. 일상적인 놀이이기도 했지만 제의의 일부로도 열렸습니다. 신성 구역에서의 공놀이는 아스테카의 창조신화를 재현하기도 했습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22년)

중앙박물관특별전 템플로마요르 20220824_56
<1. 마쿠일쇼치틀-쇼치필리, 아스테카, 1500년경, 화산암, 오스트리아 빈 세계박물관>

‘다섯 송이의 꽃’이라는 이름을 가진 마쿠일쇼치틀 신입니다. 그는 음악과 춤, 쾌락과 활기의 신이었으며, 쇼치필리 신의 또 다른 형상으로 여겨졌습니다. 전체적으로 붉은색이 감돌고 머리에는 새의 볏과 비슷한 장식이 있습니다. 다리를 구부린 채 앉아 그 위에 팔을 얹은 자세는 마쿠일쇼치틀 조각상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특징입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22년)

중앙박물관특별전 템플로마요르 20220824_57
<2. 지휘봉 치카우아스틀리, 아스테카, 1500년경, 규암, 멕시코 템플로마요르박물관>

‘치카우아스틀리’라고 부르는 이러한 지휘봉은 태양의 광선과 번개의 섬광을 상징합니다. 주로 풍요와 전쟁, 재생의 신 시페 토텍과 관련이 있습니다. 그는 이 지휘봉으로 번개를 만들고 땅에 구멍을 내어 옥수수가 자랄 수 있도록 했습니다. 돌이 아닌 다른 재료로 만든 치카우아스틀리는 악기로도 사용했습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22년)

중앙박물관특별전 템플로마요르20220824_71<1. 코펄, 2019년>

아스테카는 나무에서 나온 진액을 굳혀 만든 코펄을 불에 태워 향으로 사용했습니다. 오늘날의 제의도 마찬가지입니다. 이 고폴은 현대의 것이지만, 500년 전 테노츠티틀란에서도 이와 비슷한 것을 사용했을 것입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22년)

중앙박물관특별전 템플로마요르 20220824_26<2. 비의 신 틀랄록 장식 화로, 아스테카 16세기 초, 토기, 멕시코 템플로마요르박물관>

비의 신 틀랄록을 묘사한 화로는 템플로 마요르 옆에 위치한 ‘독수리의 집’에서 발견되었습니다. 이곳은 새로운 왕이 왕좌에 오르기 전에 마지막 의식을 거행한 곳으로 알려졌습니다. 건물의 건축 장식과 그곳에서 발견된 것들은 대부분 톨테카 양식으로 만들어졌습니다. 아스테카 사람들은 테오티우아칸과 함께 톨테카를 영광스러운 선조로 생각했으며, 자신들이 이들을 계승한다고 여겼습니다. 톨테카를 모방함으로써 새로운 아스테카의 왕은 톨테카와 자신을 연결했습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22년)

중앙박물관특별전 템플로마요르 20220824_27<3. 손잡이 향로, 아스테카, 1450~1521년, 토기, 멕시코 국립인류학박물관>

신성 구역에서 거행된 모든 제의에는 향연이 피어올랐습니다. 대부분 바닥에 놓인 큰 화로에 향을 피웠지만, 제사장들은 특정한 방향으로 향을 피우기 위해 이와 같이 손잡이가 달린 향로를 사용하기도 했습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22년)

중앙박물관특별전 템플로마요르 20220824_55
<바람의 신 에에카틀, 아스테카, 1480~1519년, 안산암, 독일 퀼른 라우테스트라우흐-외스트박물관>

아스테카에서 바람의 신은 매우 중요한 존재였습니다. 사람들은 바람의 신이 강한 바람을 일으켜 태양과 달을 움직이제 만들었다고 믿었습니다. 또한 회오리바람을 불러일으켜 농작물에 필요한 비를 내리게 한다고 여겼습니다. 이 독특한 조각상은 바람의 신 에에카틀을 묘사한 것으로, 회오리바람을 형상화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바람의 신을 모신 신전은 대부분 지붕과 건물이 둥근 형태로 지어졌는데, 바람이 자유롭게 건물 주변을 돌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였습니다. 신성 구역의 에에카틀 신전 역시 둥글게 만들어졌습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22년)

봉헌물의 발굴과 연구
템플로 마요르 발굴 조사를 담당한 ‘템플로마요르프로젝트’ 팀은 1978년부터 지금까지 총 204개의 봉헌물 상자를 발견했습니다. 이는 사제들이 제의 때 묻은 것으로 신에게 바치는 석제품 및 동물과 인간의 뼈, 그리고 각종 예술품 등을 넣었습니다. 아스테카가 번영할수록 봉헌물의 수도 늘어나, 14번 봉헌물에는 18,400여 점에 달하는 물품이 담겨 있었습니다. 봉헌물은 메소아메리카의 다양한 자연 생태계를 반영합니다. 지금까지 500여 종의 동물이 확인되었으며, 대부분 공물이나 교역을 통해 메소아메리카 전역에서 들여온 것입니다. 이는 아스테카의 정치적, 종교적 위상과 영향력을 보여주기도 합니다. 사진에서 보이는 126번 봉헌물 상자는 4개 층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총 13,000여 점의 봉헌물을 담고 있습니다. 가장 아래층에는 동물 뼈 9,000여 점을, 두 번째 층에는 불가사리 등의 해양 생물을 담았습니다. 세번째 층에는 희생제의용 칼을 넣었고, 마지막 맨 위층에는 틀랄록을 그린 파란색 토기를 봉헌했습니다. 상자에 담긴 봉헌물은 세상만물을 상징하는 동시에, 봉헌의 대상이 되는 신을 나타냅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22년)

신성한 구역은 ‘뱀벽(coatepantli)’이라는 벽으로 둘러져 있다. 주요 건물로는 칼메카크(성직자들을 위한 공간), 케찰코아틀 신전, 테스카틀리포카 신전, 태양의 신전, 테오틀라츠코(공놀이장) 등이 있다.

중앙박물관특별전 템플로마요르 20220824_29<신성구역 모형>

중앙박물관특별전 템플로마요르 20220824_30<템플로 마요르 모형>

위대한 신전, 템플로 마요르
아스테카의 피라미드 신전은 산을 형상화한 것입니다. 산은 풍요와 다산을 상징하며, 대지에서 생명을 자라나게 하는 비의 신 틀랄록이 사는 곳이기도 합니다. 템플로 마요르는 아스테카의 수호신 우이칠로포츠틀리가 탄생한 산, 코아테펙을 재현한 것입니다. 템플로 마요르 꼭대기에는 두 개의 신전이 있습니다. 남쪽은 태양과 전쟁의 신 우이칠로포츠틀리에게, 북쪽은 비의 신 틀랄록에게 헌정한 것입니다. 그리고 도시 위로 높이 솟은 이곳에서 봉헌물과 살아있는 제물을 신에게 바쳤습니다. 아스테카 사람들은 태양을 창조하기 위해 희생한 신들에게 감사를 표하고, 태양과 세상이 계속 움직일 수 있도록 자신들도 희생했습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22년)

템플로 마요르의 발굴
1521년, 아스테카를 정복한 스페인 사람들은 템플로 마요르를 파괴하고, 여기서 나온 돌로 새로운 가톨릭 성당을 지었습니다. 한참이 흐는 1978년, 멕시코시티 중심가의 메트로폴리타나 대성당의 공사 중에 오래된 건물의 기초가 우연히 발견됩니다. 멕시코의 고고학자 에두아르도 마토스 목테스마는 이 흔적이 템플로 마요르임을 밝혀냅니다. 이로써 전설과 신화를 걷어내고 진짜 역사에 한걸음 다가설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번에 소개하는 많은 전시품이 바로 템플로 마요르와 그 주변에서 발굴한 것입니다. 고고학자들은 지금도 이곳에서 새로운 발견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22년)

중앙박물관특별전 템플로마요르 20220824_31<비의 신 틀랄록을 묘사한 제단 착물, 아스테카, 1450~1521년, 돌, 멕시코 국립인류학박물관>

템플로 마요르 꼭대기의 틀랄록 신전 앞에는 제물을 바치는 제단, ‘착몰’이 있었습니다. 이 착몰은 비의 신 틀랄록을 묘사한 것으로 제물 그릇을 들고 반쯤 누워 있는 자세입니다. 몸에는 귀걸이, 목걸이, 팔찌와 같은 귀한 장신구를 차고 있습니다. 손에 든 그릇에는 신에게 올릴 신성한 액체와 제물을 담았습니다. 제물로 동물과 인간의 피와 심장을 바쳤습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22년)

중앙박물관특별전 템플로마요르 20220824_32<제의용 돌 테말라카틀, 아스테카, 1450~1521년, 돌, 멕시코 국립인류학박물관>

이러한 모양의 석조품을 ‘테말라카틀’이라 불렀습니다. 전쟁에서 잡혀 온 포로들 가운데 몇몇은 아스테카 전사와 결투를 펼쳐야 했습니다. 그러나 포로는 이러한 둥근 돌에 한쪽 발이 묶인 채 싸워야 했습니다. 또한 깃털로 만든 옷을 입고 깃털로 만든 검을 들기도 했습닌다. 이에 반해, 아스테카의 전사는 재규어 가죽을 입고 흑요석 칼날이 달린 무시무시한 검을 들고 결투에 임했습니다. 결투의 결과는 이미 정해진 것이나 다름없었습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22년)

중앙박물관특별전 템플로마요르 20220824_33<전쟁과 재생의 신 시페 토텍, 아스테카, 1450~1521년, 응회암.안료, 스위스 바젤 문화박물관>

전쟁과 재생의 신 시페 토텍은 항상 인간의 살가죽을 입고 있는 모습으로 묘사되었는데, 전쟁 포로의 살가죽을 벗겨내 입은 것입니다. 살가죽을 벗기는 것은 봄에 옥수수를 심기 위해 대지의 초목을 베고 불태우는 것과 비슷합니다. 또한 옥수수가 싹을 틔우기 위해 씨앗을 껍질을 벗는 것과도 같습니다. 이는 삶과 죽음의 순환을 상징한느 것으로, 시페 토텍은 부활과 재생의 신이기도 합니다. 스페인 정복자들의 기록에는 살아 있는 사람의 살가죽을 잔인하게 벗기는 제의 모습이 묘사되었으나 이는 직접 보고 기록한 목격담이 아닙니다. 살가죽을 벗기는 행위가 제의적 처형으로 적군이나 범죄자에게 겁을 주기 위해 행해졌을 수 있으나, 이에 대한 증거는 불분명합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22년)

중앙박물관특별전 템플로마요르 20220824_34<제단, 아스테카, 16세기 초, 돌, 멕시코 국립인류학박물관>

신에게 제물을 바치는데 사용한 제단입니다. 테오티우아칸의 상징들로 꾸며졌는데, 아스테카 신화에서 테오타우아칸은 태양이 탄생한 곳입니다. 제단을 장식한 인간의 심장은 가장 귀한 제물이었으며, 태양의 신에게 바쳤습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22년)

중앙박물관특별전 템플로마요르 20220824_35<심장을 담는 그릇 쿠아우시칼리, 아스테카, 1500년경, 돌, 오스트리아 빈 세게박물관>

가장 귀한 제물인 피와 심장을 담아 신에게 바친 그릇입니다. ‘독수리 그릇’이라는 이름처럼 바깥쪽을 독수리 깃털무늬로 장식했습니다. 그릇 안쪽 가운데에는 다섯번째 태양이자, 아스테카의 태양인 ‘움직임의 태양’기호가 새겨져 있습니다. 그릇 바닥에는 생명을 주는 동시에 이를 파괴할 수도 있는 대지의 신 틀랄테쿠틀리가 묘사되었습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22년)

중앙박물관특별전 템플로마요르 20220824_36<심장, 아스테카, 1450~1521년, 옥, 독일 함부르크 로테바움 세게문화예술박물관>

옥은 아스테카에서 가장 귀한 재료이며, 어린 옥수수를 상징하기도 합니다. 옥의 산지는 테노츠티틀란에서 멀리 떨어져 있었기 때문에 템플로 마요르에 제물로 바치기 위해 수백 킬로미터를 운반해야 했습니다. 인간의 심장은 신에 바치는 최고의 선물로 심장의 모형 역시 귀한 재료로 만들었습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22년)

중앙박물관특별전 템플로마요르 20220824_38<심장, 아스테카, 16세기 초, 금, 멕시코 템플로마요르박물관>

신에게 바치는 가장 귀하고 신성한 제물은 인간의 심장이었습니다. 금은 나우아틀러어로 테오쿠이카틀, 즉 ‘신들의 배설물’이라 불리며, 가장 귀한 재료였습니다. 따라서 금으로 만든 심장은 신에게 올리는 가장 강력하고 귀한 선물이라 할 수 있습니다. 심장 가운데에 구멍이 있어 목걸이나 팔찌 같은 장신구의 일부였던 것으로 보입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22년)

중앙박물관특별전 템플로마요르 20220824_37<얼굴 모양 의례용 칼, 아스테카, 16세기 초, 부싯돌.조개껍데기, 적철석, 코펄, 흑요석, 멕시코 템플로마요르박물관>

중앙박물관특별전 템플로마요르 20220824_39<향로, 아스테카, 16세기초, 토기, 멕시코 국립인류학박물관>

아스테카 사람들은 템플로 마요르 곳곳에 향로를 두고 나무 진액으로 만든 코펄을 불에 태워 끊임없이 향연이 피어오르게 했습니다. 이렇게 시작된 불을 52년마다 거행되는 ‘새로운 불’ 의식 때 꺼졌습니다. 이후 테노츠티틀란 외곽의 산꼭대기에서 새로운 불을 지핀 후, 가장 먼저 템플로 마요르의 향로에 불을 붙였습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22년)

중앙박물관특별전 템플로마요르 20220824_40<물과 풍요의 신 찰치우틀리쿠에 화로, 아스테카, 16세기 초, 토기, 멕시코 국립인류학박물관>

템플로 마요르에 배치한 향로 가운데에는 신의 모습을 한 것도 있습니다. 목에 화환을 걸고 머리에는 종이로 만든 화려한 장식이 있는 것으로 보아 물과 풍요의 신 찰치우틀리쿠에를 나타낸 것으로 보입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22년)

중앙박물관특별전 템플로마요르 20220824_41<뱀, 아스테카, 1450~1521년, 돌, 독일 함부르크 로테바움세계문화예술박물관>

뱀을 묘사한 조각상은 템플로 마요르 곳곳에서 발견되었습니다. 템플로 마요르는 아스테카의 수호신 우이칠로포츠틀리의 탄생 신화를 건축적으로 재현한 것으로 그가 태어난 곳은 ‘뱀의 산’이라는 뜻의 코아테펙입니다. 이곳을 상징적으로 나타내기 위해 신전 여기저기에 뱀 석상을 배치했습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22년)

중앙박물관특별전 템플로마요르 20220824_43<코욜샤우키의 귀걸이, 아스테카, 16세기 초, 금, 멕시코 템플로마요르박물관>

이 귀걸이는 코올샤우키의 상징물 가운데 하나입니다. 템플로 마요르 앞에서 발견된 코욜샤우키 석판에서도 이러한 형태의 귀걸이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22년)

중앙박물관특별전 템플로마요르20220824_72<방울, 아스테카, 16세기 초, 금, 멕시코 템플로마요르박물관>

아스테카의 신화에 따르면, 우이철로포츠틀리는 자신을 죽이려는 누이 코욜샤우키를 무찌르고 목을 잘라 그 시체를 산 아래로 던졌습니다. 이를 상징하는 조각상이 템플로 마요르 계단의 발치에서 발견되었습니다. 코욜샤우키의 이름은 ‘종으로 치장한 산을 의미합니다. 이 방울틀은 사우키를 물리치고 탄생한 우이칠로포츠틀리를 기념하기 위해 바친 봉헌물 가운데 하나로 보입니다. 방울과 함께 매납된 봉헌물에는 뱀조각상도 있었는데, 이는 우이칠로포츠틀리의 탄생지인 ‘뱀의 신’ 코이테펙을 상징한 것입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22년)

신화를 담은 템플로 마요르
이제 아스테카의 신성한 제의가 열렸던 대신전, 템플로 마요르와 마주하게 됩니다. 높이 60m의 피라미드 신전을 상징적으로 표현한 이 계단의 주변에는 신의 형상, 봉헌물, 그리고 신성한 제의도구가 있습니다. 템플로 마요르는 이스테카의 수호신 우이칠로포츠틀리가 태어난 코아테펙산과 탄생 신화를 건축적으로 재현했습니다. 어느날 대지의 여신 코아틀리쿠에의 배에 깃털이 내려앉아 우치칠로포츠틀리를 임신했습니다. 이를 불명예스럽게 여긴 코아틀리쿠에으이 딸 코올사우키와 400명의 형제들이 그를 죽이려고 했습니다. 이에 우이칠리포츠틀리가 무장한 상태로 태어나 형제들을 모두 물리치고 고콜사우키의 목을 자른 후 산 아래로 던졌습니다. 이후 우이칠리포츠틀리는 태양이 되고 코올샤우키는 달, 그리고 400명의 형제는 별이 되었습니다. 아스테카 사람들은 아침마다 어둠과 달이 사라지고 태양이 떠올는 것은 우이칠로포츠틀리가 코올사우키를 무찔렀기때문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우이칠로포츠틀리를 모심 템플로 마요로를 태양이 떠오르는 방향에 맞추어 건설하고, 신화 속의 상징적 요소를 건물에 장식했습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22년)

중앙박물관특별전 템플로마요르 20220824_44<비의 신 틀랄록의 머리, 아스테카, 16세기 초, 돌, 멕시코 국립인류학박물관>

틀랄록 신은 두꺼운 안경을 쓴 듯한 눈과 입 밖으로 튀어나온 긴 앞니가 특징입니다. 비와 풍요를 가져오는 신으로, 아스테카 사람들에게 가장 중요한 신 가운데 하나입니다. 우이리로포츠틀리가 아스테카의 고유의 신인데 반해, 틀랄록은 메소아메리카 전역에서 오랫동안 숭배된 신이었습니다. 이에 따라 지역마다 틀랄록을 서로 다른 이름으로 부르기도 합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22년)

중앙박물관특별전 템플로마요르20220824_73<틀랄록의 조수 틀랄로케, 아스테카, 1470 ~ 1515년경, 돌, 오스트리아 빈 세계박물관>

틀랄로케는 틀랄록이 땅에 비를 내리게 하는 것을 돕는 조수들입니다. 그들은 물병을 가지고 다녔는데, 비를 내리게 할 때는 이 물병을 깨트렸습니다. 사람들은 비가 내릴 때 나는 천둥소리를 틀랄로케가 물병을 깨트릴 때는 나는 소리라고 믿었습니다. 이와 같이 작은 틀랄로케 조각상을 커다란 틀랄록 항아리에 담아 신께 봉헌한 것으로 보입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22년)

중앙박물관특별전 템플로마요르 20220824_45<비의 신 틀랄록을 그린 항아리, 아스테카, 16세기 초, 토기, 멕시코 템플로마요르박물관>

두 마리의 뱀이 서로 얽혀 틀랄록의 눈과 눈썹을 나타내고 뱀들의 입으로 틀랄록의 입을 묘사했습니다. 비의 신 틀랄록은 템플로 마요르에서 가장 많이 만날 수 있는 신으로 토기와 크고 작은 석조 조각, 다양한 제단과 건물 장식 등에서 발견됩니다. 이에 반해 아스테카의 수호신 우이칠로포츠틀리의 조각상은 템플로마요르에서 한 점도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아마도 우이칠로포츠틀리 신상은 아마란스 반죽으로 만들어 내구성이 약했기 때문인 것으로 보입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22년)

중앙박물관특별전 템플로마요르 20220824_53
<지하세계의 신 믹틀란테쿠틀리, 아스테카, 1430~1502년, 점토, 멕시코 템플로마요르박물관>

믹틀란테쿠틀리는 지하세계의 신으로 죽은 자와 조상의 영역을 다스립니다. 죽음을 맞이한 모든 사람은 지하세계에서 그와 대면하게 됩니다. 아스테카 신화에 따르면 창조의 신 케찰코아틀은 믹틀란테쿠틀리가 다스리는 지하세계에서 거인의 뼈를 가져와 새로운 인간을 만들어냈습니다. 이 조각상은 신성 구역에 있는 ‘독수리의 집’에서 거의 동일한 형태의 다른 조각상과 쌍으로 발견되었습니다. 본래 하나에는 파란색과 붉은색이, 다른 하나에는 검은색, 갈색, 붉은색이 칠해졌던 것으로 보입니다. 머리에 있는 구멍에는 검은 곱슬머리 가발이 붙어 있었습니다. 갈비뼈 아래로 간과 쓸개가 튀어나와 있는데, 아스테카 사람들은 간에 ‘신성한 숨결’인 ‘이히요틀’이 있다고 믿었습니다. 이히요틀은 모든 인간에게 있는 세가지 영혼 중 하나로, 나머지 두 영혼은 각각 머리와 심장에 있었습니다. 발견당시 이 조각상은 수백 개의 조각으로 부서진 상태였습니다. 발굴하는 데만 5개월이 걸렸고 복원 작업은 거의 일년이 소요되었습니다. 복원된 모습은 높이 176cm, 무게 128kg에 달합니다. 아스테카 예술가들의 뛰어난 기술을 보여주는 훌륭한 작품 중 하나입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22년)

우이칠로포츠틀리와 틀랄록
템플로 마요르 꼭대기에는 두개의 신전이 있었습니다. 북쪽은 비의 신 틀랄록을 위한 것이고, 남쪽은 아스테카의 수호신이자 전쟁과 태양의 신 우이칠로포츠틀리를 위한 것입니다. 두 신이 함께하면 습함과 건조함, 차가움과 따뜻함, 농업과 전쟁 등을 의미합니다. 이것은 이 세상, 그리고 인간의 삶과 관련된 모든 것을 상징합니다. 틀랄록에게 비를, 우이칠로포츠틀리에게 전쟁의 승리를 기원했습니다. 이로써 풍요로운 농작물과 전쟁의 전리품인 공물이 아스테카 사회의 경제적 토대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22년)

중앙박물관특별전 템플로마요르 20220824_52
<두개골 장식 잔, 미스테카, 1507년경, 토기, 멕시코 국립인류학박물관>

본래 쌍을 이루는 잔 가운데 하나로, 1000개 이상의 토기가 포함된 대규모 봉헌물에서 발견했습니다. 목테수마 2세기 통치하던 1507년에 거행된 ‘새로운 불’ 의식에 바친 봉헌물로 보입니다. 잔에 칠해진 빨간 줄무늬는 전쟁과 재생의 신 시페 토텍을 상징하며, 두개골 장식은 촘판틀리를 떠올리게 합니다. 이 잔에는 제의에서 희생된 제물의 피를 담았던 것으로 추정됩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22년)

중앙박물관특별전 템플로마요르 20220824_51
<풀케 술잔, 아스테카, 16세기 초, 천매암, 오스트리아 빈 세계박물관>

이 용기는 성스러운 제의에서 풀케를 담았던 것으로 보입니다. 풀케는 선인장의 일종인 용설란의 수액을 발효시켜 만든 알코올음료로 아스테카의 제의에서 필수적이었습니다. 용기의 윗부분에는 태양 원반을 장식하였고 원반 안에는 ‘움직임의 태양’을 나타내는 기호가 새겨졌습니다. 용기의 뒷면에는 52년을 상징하는 갈대 다발 두 개와 신의 형상이 있습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22년)

중앙박물관특별전 템플로마요르 20220824_46<촘판틀리에 진열한 두개골, 아스테카, 15세기 또는 16세기, 사람의 뼈, 멕시코 템플로마요르박물관>

양쪽에 커다란 구멍이 있어 두개골을 나무 장대에 꿰어 진열하였던 두개골의 벽 ‘촘판틀리’와 관련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2015년, 발굴조사단은 템프롤마요르의 서쪽에서 촘판틀리 유적을 발견했습니다. 아직 일부만 조사하였으나, 현재까지 1000여개 이상의 두개골을 발견했습니다. 대부분 젊은 남성들의 것으로 전쟁에서 패배한 적군과 제의 및 공놀이 경기에서 희생된 사람으로 추정됩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22년)

중앙박물관특별전 템플로마요르 20220824_47<두개골 가면, 아스테카, 15세기, 사람 뼈, 부싯돌, 조개껍데기, 황철석, 멕시코 템플로마요르박물관>

두개골 가면은 전투에서 패배한 정예 전사들의 두개골로 만들었습니다. 아스테카 왕의 화장용 항아리나 귀족들의 무덤에 이러한 두개골 가면을 함께 묻었습니다. 가면으로 불리지만 실제 가면처럼 착용하지는 않았으며, 제의용 머리장식이나 허리띠를 꾸미는데 사용한 것으로 보입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22년)

죽음과 해골 = 생명과 사랑
아스테카 사람들은 돌아가신 조상을 위한 제의를 매우 중요하게 여겼습니다. 조상들은 여전히 사람들의 삶에 영향을 미치고 인생의 행로를 결정하는 데 중요한 도움을 준다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멕시코에는 이러한 전통이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습니다. 널리 알려진 ‘죽은 자의 날’ 축제도 그중 하나입니다. 아스테카 예술에 해골과 뼈의 형상이 자주 등장하는 것도 이런 이유입니다. 이것을 처음 본 유럽인들은 심한 충격과 공포에 사로잡혔습니다. 그들에게 해골과 뼈는 죽음, 악마, 주술을 연상시키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이는 문화적 차이에서 비롯된 오해였을 뿐입니다. 유럽 사람들은 ‘죽음의 이미지’를 떠올렸지만, 아스테카 사람들에게는 돌아가신 조상을 의미합니다. 죽음보다는 생명을, 파괴보다는 선조들의 사랑을 상징했습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22년)

스페인의 침략과 아스테카의 멸망
1519년 목테수마 2세가 통치하는 아스테카는 40여 개의 도시국가에 수백만명이 사는 거대한 국가였습니다. 면적이 200,000㎢ 이상으로 당시 메소아메리카에서 가장 강력한 국가였습니다. 그러나 같은해 스페인의 정복자 에르난코르테스가 멕시코 만에 상륙하였고, 곧 이들에 의해 멸망하고 말았습니다. 코르테스는 단 500명의 병사, 100명의 선원, 16마리의 말과 아프리카 및 쿠바 원주민 짐꾼과 함께 아스테카의 중심 네토츠티틀란으로 진격했습니다. 그리고 아스테카의 지배를 받던 많은 도시국가들이 코르테스의 편에 서서 그를 도왔습니다. 결국 테노츠티틀란은 1521년 8월 13일 함락되었고, 식민 도신인 멕시코시티로 바뀌게 됩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22년)

아스테카의 유산
아스테카는 500년 전에 멸망했지만 그 문화는 오늘날에도 여전히 살아 숨쉽니다. 현대 멕시코 문화는 아스테카로 대표되는 토착문화와 스페인문화를 기반으로 성장했습니다. 토착 종교들과 기독교, 전통의학과 현대 의학, 토착 언어와 스페인어가 함께 공존하며, 독특한 양상으로 융합하여 멕시코 특유의 문화를 만들었습니다. 멕시코라는 국가명도 아스테카 사람들이 스스로를 불렀던 ‘메시카’라는 이름에서 비롯되었습니다. 테노츠티틀란의 상징인 독수리와 선인장은 오늘날 멕시코 국기에 그려져 있습니다. 현재 약 150만 명의 사람들이 아스테카 언어인 나우아틀어를 사용하며, 공동체를 이루고 있습니다. 기회의 부족으로 인해 공동체를 떠난 이들도 많지만, 세계화의 변화 속에서 여전히 그들의 언어와 전통문화를 지켜가고 있습니다. 500여 년의 식문과 차별의 역사에도, 멕시코의 토착 문화는 여전히 살아 있습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22년)

<출처>

  1.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22년
  2. ‘템플로 마요르’, 위키백과, 2023년
  3. ‘Aztecs’, Wikipedia, 2023년

[중앙박물관특별전, 아스테카] 다섯번째 태양

국립중앙박물관에서는 2022년 봄 “아스테카(Aztecs), 태양을 움직인 사람들”이라는 특별전을 개최하였다. 아스테카 문명은 1521년 스페인에게 멸망될 때까지 멕시코에서 존재했다. 그들을 역사와 문화는 스페인 정복자에 의해 인신공양이라는 잔혹성과 스페인의 정복 이야기로 알려진 부분이 많다. 전시는 멕시코와 유럽의 박물관에서 소장하고 있는 중요한 유물들로 구성되었다. 전시를 통해 멕시코에 살았던 아스테카인의 예술, 지식, 경제와 통치체제 등에 대해 살펴볼 수 있다.

테오티우아칸(teotihuacan)은 중앙아메리카에 세거워진 거대 피라미드 건축물들이 위치해 있는 곳이다. 신대륙 발견 이전 아메리카대륙에서 가장 큰 도시였으며 인구는 10만 정도였다. 그 역사에 대해 알려진 바는 많지 않은데 기원후 500년까지 번성했던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후대 아스테카 사람들은 이 도시를 ‘신의 탄생지’로 틀별하게 여겼다,

아스테카 태양을움직인사람들20220824_01<1. 가면, 테오티우아칸, 200~600년, 돌, 독일 슈트르가르트 린덴박물관>

아스테카 태양을움직인사람들20220824_02<1. 가면, 테오티우아칸, 200~600년, 돌, 독일 슈트르가르트 린덴박물관>

콜럼버스 이전 시기 메소아메리카에서 가장 큰 도시국가 중 하나였던 테오티우아칸은 아스테카 신화에서 태양과 달이 타나생한 곳이기도 합니다. 테오티우아칸에서는 이런 가면을 대량으로 생산했는데, 후대의 아스테카 사람들은 이것을 발굴하여 봉헌물 상자에 담아 자신들의 신에게 바쳤습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22년)

신들의 도시, 테오티우아칸
현대의 멕시코, 과테말라, 온두라스, 벨리즈, 엘살바드로를 아우르는 메소아메리카 지역은 기원전 1500년경 태동한 올메카 문명을 시작으로 긴 문화적 전통을 자랑합니다. 이 지역에는 다양한 문화와 국가들이 번성하고 또 사라졌으며, 이 가운데 아스테카는 원주민이 세운 최후의 국가였습니다. 아스테카 사람들은 자신보다 앞서 멕시코 중앙고원에서 번영하였던 국가인 테오티우아칸과 톨테카를 특별하게 여겼습니다. 북쪽에서 내려온 아스테카는 테오티우아칸과 톨테카의 문화를 모방하고, 자신들과 연결하여 이 지역의 통치를 정당화했습니다. 특히 그들은 테오티우아칸을 ‘신들이 사는 도시’로 믿었습니다. 그래서 아스테카 사람들은 신성한 물품을 찾고자 이 도시를 발굴하였고, 그렇게 찾은 보물을 신을 위한 제의 때 바쳤습니다.

스페인에 정복되기 전 아스테카인들은 역사와 종교 등에 대한 내용을 기록한 많은 문서들을 남겼지만 현재는 스무권 정도만 남아 있다. 이후 귀족층들이 자신의 권리를 주장하기 위해 작성한 문서들도 남아 있다.

아스테카 태양을움직인사람들20220824_03<1. 주시-너틀 고문서, 복제품, 1987년 오스트리아 그라츠>

스페인 식민지 이전에 제작한 원주민 고문서입니다. 이러한 고문서에 역사와 종교에 관한 정보를 상세하게 기록했습니다. 유럽인들이 도착하기 전에는 수천권이 존재했지만 오늘날 남아 있는 식민지 이전 시대 고문서는 전부 합쳐 스무권이 채 안됩니다. 스페인의 정복자들과 선교들은 토착 지식을 말살하기 위해 대다수의 고문서를 파괴했습니다. 이 고문서는 아스테카의 남쪽에 위치했던 미스테카 종족 가운데 한 도시국가의 왕조에 관한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고문서의 이름은 소장자와 연구자의 이름에서 가져왔습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22년)

아스테카 태양을움직인사람들20220824_04<2. 돈 후안 치치메카테쿠틀리 고문서, 툴라스칼라, 1560년경, 면 위에 채색, 스위스 바젤 문화박물관>

스페인에 정복된 이후, 각 지역의 원주민 귀족들은 자신들의 권력을 유지하려고 애썼습니다. 이들은 커다란 면직물에 자신들의 계보를 적은 문서를 만들어 토지의 소유권을 증명하려 했습니다. 스페인 식민지 이전 시대의 전통에 따라 그림문자로 작성하였고, 그 옆에는 알파벳으로 주석을 달았습니다. 이 고문서는 틀라스칼라 지역의 한 수장이었던 돈 후안 치치메카테쿠틀리가 작성한 것입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22년)

아스테카의 정보, 고문서
오늘날 아스테카에 대한 지식은 원주민 그림 문서, 식민지 시대(1521~1821년) 유럽인의 기록, 고고학 발굴, 그리고 현대 원주민의 전통문화 등 다양한 경로로 수집됩니다. 우리는 그동안 식민지 시대 유럽인의 기록을 사실적인 목격담으로 여겨 왔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기록은 아스테카의 폭력성을 부풀리고, 잔혹한 제의에 집착한 사람들이라는 과장된 이미지를 만들었습니다. 여기에는 아스테카 사람들을 야만인으로 묘사하여 유럽의 식민 지배와 새로운 종교의 강요를 정당화하려는 의도가 깔려 있었습니다. 식민지 시대 이전 아스테카 사람들이 기록한 그림 문서는 그들의  생활상과 신화를 생생하게 묘사하고 있지만, 아주 소수만 전해지고 있습니다. 다행이 이러한 원주민 고문서와 식민지 시대 기록은 현대 고고학 발굴 성과를 해석하는데 많은 도움을 줍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22년)

멕시코 아스테카인들을 비롯하여 원주민들이 사용한 역법체계를 멕시카력(calendarios mexicas)라 부른다. 멕시카력은 365일 1주인 태양력 시우포우알리(xiuhpōhualli)와 260일이 1주기인 제의력 토날포우알리(tōnalpōhualli)로 구성된다. 두 달력은 52년에 만나며 이를 중요시 여겼다고 한다. 태양력은 농업을 위한 용도로, 제의력은 의례용으로 사용된 것으로 보인다.

아스테카 태양을움직인사람들20220824_05<날짜를 새긴 갈대 다발 시우몰필리, 아스테카, 1450~1521년, 돌, 멕시코 국립인류학박물관>

아스테카에서 사용한 두 종류의 달력, 즉 태양력과 제의력은 52년에 한 번씩 날짜가 겹쳐 새롭게 시작합니다. 이 중요한 날에는 52개의 갈대로 만든 다발을 불태우는 ‘새로운 불’ 의식을 거행했습니다. 이를 기념하기 위해 돌로 만든 갈대 다발 시우몰필리(xiuhmopilli)를 신께 봉헌물로 바치기도 했습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22년)

아스테카 태양을움직인사람들20220824_06<달력시스템>

달력
아스테카 사람들은 여러 달력을 사용했습니다. 260일로 이루어진 제의용 달력 토날포우알리는 제의와 점술에 사용했습니다. 오늘날 멕시코와 과테말라의 여러 원주민 공동체는 여전히 이 달력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태양력 시우포우알리는 365일로 이루어졌습니다. 두 달력은 52년마다 같은 날에 시작됩니다. 바로 이날, 아스테카에서는 ‘새로운 불씨’ 제의를 성대하게 열었습니다. 도시의 모든 불을 끄고 신성한 산에서 새로운 불씨를 지핀 후, 모든 곳으로 전달했습니다. 이것은 지난 세대의 종말을 의하는 동시에, 새로운 시작을 의미합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22년)

아스테카 태양을움직인사람들20220824_11<’3부싯돌’ 해 ’12도마뱀’ 날 장식판><’13재규어’ 날 장식판>

’3부싯돌’ 해 ’12도마뱀’ 날 장식판, 아스테카, 1450~1521년, 돌, 멕시코 국립인류학박물관
’3부싯돌’과 ’12도마뱀’이라는 아스테카 달력 기호를 돋을새김 한 석판입니다. 석판 가운데에 있는 커다란 부싯돌과 왼쪽의 점 세개는 ’3부싯돌’의 해를 나타냅니다. 오른쪽의 작은 형상은 ’12도마뱀’ 날을 나타낸 것입니다. 둘을 합치면 ’3부싯돌’ 해 ’12도마뱀’ 날이 됩니다. 이 석판은 본래 건축물을 장식하였던 것이어서 건축물과 관련 있는 기념일을 나타낸 것으로 보입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22년)

’13재규어’ 날 장식판, 아스테카, 1450 ~ 1521년, 돌, 안료, 스위스 바젤 문화박물관, 루카스 피셔 컬렉션
석판은 260일로 이루어진 아스테카의 제의용 달력 토날포우알리(tonalpohualli)의 날짜 중 하나인 ’13재규어’ 날을 돋을새김 했습니다. 완공일 등 건축물과 직접적으로 관련 있는 중요한 날을 기념한 것으로 보입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22년)

아스테카 태양을움직인사람들20220824_09<’1부싯돌’ 날과 ’13갈대’ 날을 새긴 인물><태양의 신 토나티우><등이 굽은 신 나나우아친>

’1부싯돌’ 날과 ’13갈대’ 날을 새긴 인물, 테오티우아칸, 제작 250~75년경, 재가공 1450~1521년, 사문석, 독일 함부르크 로테바움세계문화예술박물관
인물상은 아스테카 이전인 기원후 250~750년에 테우티우아칸에서 만든 것입니다. 그러나 가슴에 새긴 ’1부싯돌’과 ’13갈대’라는 날짜는 아스테카의 달력 표기법입니다. 아스테카에서 ’12갈대’는 태양의 탄생을 의미하며, ’1부싯돌’은 수호신인 우이칠로포츠틀리의 탄생일입니다. ‘신들의 도시’라고 불린 테오티우아칸에서 만든 인물상에 아스테카 사람들이 자신들의 기념일을 새겨 넣은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22년)

태양의 신 토나티우, 아스테카, 1450~1521년, 응회암, 안료, 스위스 바젤 문화박물관
태양의 신 토나티우가 등에 태양 원반을 지고 있는 모습입니다. 테오티우아칸에서 불길 속에 몸을 던진 나나 우아친은 태양의 신 토나티우가 되었습니다. 태양의 뜨거운 열기를 나타내듯 토나티우의 몸을 본래 붉은색 안료로 칠했습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22년)

등이 굽은 신 나나우아친, 아스테카, 1500년경, 화산암, 오스트리아 빈 세계박물관
네번째 태양이 빛을 잃은 뒤 등이 굽은 나나우아친 신은 ‘다선번째 태양이 되기 위해 주저없이 불길 속으로 뛰어 들었습니다. 그는 결국 태양의 신 토나티우로 다시 태어났습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22년)

다섯번째 태양
아스테카 사람들은 세상이 총 다섯 번의 탄생과 네 번의 파괴를 거듭했다고 믿었습니다. 그리고 각 세상에는 새로운 태양이 떠올랐습니다. 아스테카와 우리는 다섯 번째 세상, 즉 ‘움직임의 태양’ 세상에 살고 있습니다. 이 태양은 ‘신들의 도시’로 알려진 테오티우아칸에서 탄생했습니다. 신들은 부유한 테쿠시스테카틀 신과 가난한 나나우아친 신에게 불에 뛰어들어 새로운 태양이 되라고 했습니다. 거대한 불이 타올랐고, 성실한 나나우아친은 주저없이 불 속에 몸을 던져 태양의 신 토나티우가 되었습니다. 뒤늦게 뛰어든 테쿠시스테카틀도 해가 되었지만 신이 던진 토끼에 맞은 후 달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새로운 태양과 달은 여전히 하늘에서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이에 모든 신들이 피를 내어 자기를 희생한 후에야 비로소 태양이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이후 아스테카 사람들은 태양을 탄생생시키고 움직이게 한 신들의 희생에 보답하고, 태양, 즉 세상이 계속 움직일 수 있도록 피와 심장을 바쳤습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22년)

그날 밤 수호신 우이칠로포츠틀리께서 꿈에 나타나 말씀하였다. “돌 위에 쓰러진 적의 심장에서 자라난 멋진 선인장 위에 아름다운 독수리가 앉아 있는 곳을 찾으라. 그곳을 테노츠티틀란이라 하라” – 디에고 두란, <누에바에스파냐 원주민의 역사> 1581년 -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22년)

태양의 돌(Piedra del Sol)은 멕시코 아스테카를 대표하는 유물로 손꼽힌다. 직경 3.6m, 무게 25,000kg의 거대한 조각품이다. 스페인이 멕시코를 정복한 후 멕시코시대 중앙광장에 묻혔다가 1790년 대성당을 수리하는 과정에 발견되었다.  1502년에서 1521년 사이에 조각된 것으로 당시 통치자의 업적을 기념하는 기념비이다. 조각된 내용은 아즈테카인들의 우주 탄생 신화의 중요한 구성요소들을 표현하고 있다.

아스테카 태양을움직인사람들20220824_08<태양의 돌, 2019년 3D 프린트 복제>

가운데 신을 둘러싸고 있는 네개이 사각형은 이전 시대 ’4개의 태양 또는 시대를 나타낸다. 아크테카인들은 멕시코 중앙고원의 권력을 장악한 후 다섯번째 태양을 도입했다는 내용을 표현하고 있다. 1번째 고리는 태양력과 제의력의 주요 구성요소들을 표현하고 있다.

아스테카 태양을움직인사람들20220824_07<조명이 비친 모습>

아스테카 태양을움직인사람들20220824_10<조명이 비친 모습>

태양의 돌은 1790년 멕시코시티 메트로폴리타나 대성당 근처에서 발견되었습니다. 목테수마 2세 때 만든 것으로 보이며, 무게는 25,000kg에 달합니다. 지금은 멕시코 국립인류학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는데, 여기에 전시된 태양의 돌은 실믈을 3D프린터로 정교하게 재현한 것입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22년)

태양을 움직인 사람들
아스테카 사람들은 두 명의 창조신과 그들이 만든 수백 명의 신들이 세상을 만들었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렇게 많은 신들의 희생으로 태양과 세상이 탄생하고 올바르게 작동한다고 여겼습니다. 그리고 인간 역시 이러한 신들 덕분에 존재하고 이 세상을 살아갈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이에 사람들은 신들의 희생에 보답하고 세상이 계속 유지될 수 있도록 신성한 제의와 성스러운 제물을 바쳤습니다. 아스케카의 정치, 경제, 종교 등 모든 사회 시스템은 바로 이러한 아스테카의 세계관에 바탕을 두고 있습니다. 태양의 돌은 아스테카늬의 신비롭고 복잡한 세계관을 함축적으로 담고 있습니다. 아스케카를 대표하는 작품으로, 그 무게는 25,000kg에 달합니다. 영상을 통해 아스테카 사람들이 세상을 이해하는 방식과 그들의 신비로운 신화를 살펴보겠습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22년)

아스테카 태양을움직인사람들20220824_12<멕시코 아스테카 문명 지역>

멕시코 중앙고원의 강자, 아스테카

  • 지역: 멕시코 중앙고원/멕시코, 과테말라 일부
  • 시기: 11세기 ~ 1521년
  • 전성기” 1325년 ~ 1519년
  • 중심지: 테노츠티틀란(현재 멕시코 시티)
  • 언어: 나우아틀어
  • 문자: 그림문자

메소아메리카는 오늘날 멕시코, 과테말라, 온두라스, 벨리즈, 엘살바도르의 일부를 포함하는 지역으로 오랜 문화적 전통을 간직하고 있습니다. 이 지역에서는 기원전 1500년에서 기원후 1500년까지 수많은 국가와 문화가 등장했습니다. 이 중 멕시코 중앙고원에 자리하였던 아스테카는 메소아메리카 역사상 가장 강력한 국가이자 최후의 원주민 국가입니다. 북쪽에서 내려온 이주민 세력인 아스테카는 14세기 초에 테스코코 호수의 테노츠티틀란 섬에 정착한 후 테슼코코 틀라코판과 함께 삼각동맴을 맺고 중앙고원의 중심국가로 성장합니다. 이들은 활발한 정복전쟁과 공물시스템으로 멕시코 중부를 차지했으며, 북쪽으로 미국 남부, 남쪽으로는 과테말라까지 경제적 교류를 했습니다. 아스테카는 마야와 같이 거대한 피라미드 신전을 축조했으며, 이곳에서 희생제의를 포함한 다양한 종교적 의례가 행해졌습니다. 아스테카는 본래 ‘아스틀란 출신 사람들’이란 뜻으로 아스틀란은 그들의 신화적 고향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스스로를 ‘메시카’로 불렀습니다. 이 이름은 현재의 국명 ‘멕시코’와 수도 ‘멕시코시티’로 이어지게 됩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22년)

아스테카의 유산
아스테카는 500년 전에 멸망했지만 그 문화는 오늘날에도 여전히 살아 숨쉽니다. 현대 멕시코 문화는 아스테카로 대표되는 토착문화와 스페인 문화를 기반으로 성장했습니다. 토착 종교들과 기독교, 전통 의학과 현대 의학, 토착 언어와 스페인어가 함께 공존하며, 독특한 양상으로 융합하여 멕시코 특유의 문화를 만들었습니다. 멕시코라는 국가명도 아스테카 사람들이 스스로를 불렀던 ‘메시카’라는 이름에서 비롯되었습니다. 테노츠티틀란의 상징인 독수리와 선인장은 오늘날 멕시코 국기에 그려져 있습니다. 현재 약 150만 명의 사람들이 아스테카 언어인 나우아틀러을 사용하며, 공동체를 이루고 있습니다. 기회의 부족으로 인해 공동체를 떠난 이들도 많지만, 세계화의 변화 속에서 여전히 그들의 언어와 전통문화를 지켜가고 있습니다. 500여 년의 식민과 차별의 역사에도, 멕시코의 토착문화는 여전히 살아있습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22년)

<출처>

  1.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아스테카, 태양을 움직인 사람들”, 2022년
  2. ‘아즈텍 문명’, 위키백과, 2023년
  3. ‘Aztec sun stone’, wikipedia, 2023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