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g Archives: 중앙박물관특별전

[중앙박물관특별전, 대고려] 고려시대 불화

불화(佛畵)는 불교에서 신앙의 대상이나 경전 내용을 그림으로 그린 것을 말한다. 부처와 보살의 모습, 어려운 경전의 내용을 그려서 신앙심을 두텁게 하고 교리를 쉽게 이해시키는 역할을 했다. 고려시대에는 연등회, 팔관회를 비롯하여 왕실과 국가가 주도하는 다양한 불교 행사가 있으며 이런 행사 때 신앙의 대상으로서 불화가 그 역할을 했을 것으로 보인다. 고려 중기 이전에 그려진 불화는 거의 남아 있지 않고 현재는 고려후기 불화 수십짐이 국내외에 전해오고 있다. 고려불화는 화려한 금선과 색감 등에서 고려후기 권문세가의 귀족적인 분위기를 잘 보여주고 있다. 고려불화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그림으로서 그 역사적, 예술적 가치도 매우 높다.

신앙 의례와 불화
고려 왕조 전 시기에 걸쳐 연등회·팔관회와 같은 정기적 행사와, 왕실과 국가가 주도하거나 종파별로 개최되는 다양한 의례가 있었습니다. 어떤 의식이든, 그 기본은 공양 의례였습니다. 불, 보살, 나한 등에게 향, 꽃, 등(燈)의 공양을 올리기 위해서는 도량을 깨끗이 하여 단(壇)을 가설하고 법식에 맞는 물품을 올린 후 의례의 존상(尊像)을 청했습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19년)

OLYMPUS DIGITAL CAMERA
<수월관음도(水月觀音圖), 둔황 천불동, 오대 10세기, 종이에 채색, 영국박물관>

OLYMPUS DIGITAL CAMERA
<수월관음도 중 관음보살>

둔황 천불동에서 발견된 관음보살도로, 물가에 면한 바위에 앉은 관음보살을 그렸다. 대나무와 죽순이 자라는 암좌에 모습을 드러낸 관음보살은 아미타불의 화불이 있는 보관을 썼으며, 오른손으로는 버드나무 가지를, 왼손으로는 작은 병을 들고 있다. 이러한 구성은 둔황 출토 관음보살도에 공통되어, 이 시기 수월관음도의 도상적 특징이 자리 잡았음을 알 수 있다. 상단에는 천개가 있으며 구름을 타고 내려오는 인물이 보인다. 관음보살의 아래로는 비단 탁의를 덮은 단(壇)에 향로와 기물이 놓여 있고, 손 향로를 든 관리 모습의 공양자를 그렸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19년)

OLYMPUS DIGITAL CAMERA
<수월관음도(水月觀音圖), 둔황 천불동, 오대 또는 북송, 비단에 채색, 영국박물관>

활짝 핀 꽃으로 장엄한 천개가 있고 대나무가 자라는 관음의 정토는 갈지(之)자 형태로 구획된 수면 위에 도해되었다. 관음보살은 오른쪽 다리로 왼쪽 다리를 누른 자세로 앉아 있으며 연봉우리 형태의 뚜껑이 있는 작은 금속병과 버드나무 가지를 들고 있다. 화면 하단에는 손 향로를 받쳐 든 승려와 관리 모습의 공양인과 시종이 있다. 불화의 명칭과 공양자의 이름을 적을 수 있는 칸이 마련되었으나 여백으로 남아 있다. 방제를 적지 않은 불화는 일종의 레디메이드 형식으로, 동서 교류 상의 실크로드에 위치한 둔황은 지역 거주민 뿐 아니라 이동 중에 있는 많은 이들의 기원의 장소이기도 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19년)

OLYMPUS DIGITAL CAMERA
<수월관음도, 고려 14세기, 비단에 채색, 미국 메트로폴리탄박물관>

OLYMPUS DIGITAL CAMERA
<수월관음도 중 얼굴 부분>

수월관음도는 현재 남아 있는 고려불화 가운데 큰 비중을 차지한다. 암좌(巖座) 위에 앉아 옆을 바라보는 관음보살과 배례하는 선재동자를 그리는 전형적인 구성이 대부분인데, 이 수월관음도에서는 선재동자가 화면 오른쪽으로 비켜나고 대신 관음보살의 발치에 갖가지 공양물을 든 인물과 바다 괴물을 그린 것이 특징이다. 관을 쓴 용왕을 선두로 여인들과 관리들이 따르고, 뒤에서는 바다 괴물들이 보물을 나르고 있다. 통일신라 승려 의상이 7일간 재계하자 불법을 수호하는 용천팔부(龍天八部) 시종이 수정 염주를 내주었고, 다시 7일간 재계하자 관음의 진신을 만나게 되었다는 <삼국유사>의 내용을 반영한 것으로 해석하기도 한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19년)

OLYMPUS DIGITAL CAMERA
<수월관음도, 고려 14세기, 비단에 채색, 보물 1903호, 호림박물관>

OLYMPUS DIGITAL CAMERA
<수월관음도 중 얼굴 부분>

큰 원형 광배와 대나무를 배경으로 아름다운 기암절벽 위에 관음보살이 반가좌로 앉아 있고, 관음보살의 시선이 머무는 화면 아래쪽에는 선재동자가 보살을 향해 무릎을 살짝 구부리며 합장하고 서 있다. 관음보살은 양손으로 흰색 염주를 쥐고 있는데, 이와 같은 도상(圖像)은 다른 수월관음도에서는 거의 볼 수 없다. 푸른 대나무와 바위 · 정병 등의 배치나 수월관음과 선재동자의 시선이 만드는 공간감에서 고려 수월관음도의 조화로운 구성을 느낄수 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19년)

OLYMPUS DIGITAL CAMERA
<수월관음도, 고려 14세기, 비단에 채색, 보물 1426호, 아모레퍼시픽미술관>

비교적 큰 화면의 수월관음도로 배경을 이루는 큰 원형 광배나 관음보살 뒤편으로 자라는 두 그루의 대나무가 잘리지 않고 한 폭에 담겨 있어 안정적인 화면 구성을 보인다. 관음보살의 얼굴이나 관음보살을 찾아가 배례하는 선재동자의 표정 묘사가 자연스럽다. 관음보살의 보관부터 발끝까지 투명한 사라(紗羅: 비단의 일종) 베일로 감쌌는데, 베일에는 유려한 원형의 당초무늬가 그려져 있다. 암좌 주변으로는 연꽃과 산호, 보주와 보석이 표현되어 관음의 정토를 상징한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19년)

OLYMPUS DIGITAL CAMERA
<오백나한도(제145희견존자), 고려 1236년, 비단에 채색, 보물 1883호>

오백나한은 부처가 열반에 든 뒤 불교 경전을 편찬하기 위해 모였던 주요 제자들이다. 이들은 깨달음을 얻은 성자로, 존경의 대상이자 신통력을 가진 존재로 여겨졌다. 고려시대에는 외적을 물리치거나 가뭄에 비를 내리도록 기원하며 나한재(羅漢齋)라는 불교 의식을 거행하였고, 나한을 주제로 한 불화와 조각도 제작되었다. 이 불화는 나라의 평안과 왕실의 안녕을 기원하며 무관 김의인의 주도로 1235년과 1236년 두 해에 걸쳐 제작된 오백나한도 중의 하나로 제145번째 희견존자를 그렸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19년)

수행을 돕는 불화
서방정토의 아미타불에 대한 신앙은 종파를 초월하여 대중적으로 성행했습니다. 이 시기에는 예불과 참회 등 여러 신앙 의례에서 아미타신앙이 확인됩니다. 마음 속 깊이 여래의 모습을 떠올리고 공덕을 되새기기 위해서는 수행을 도와줄 이미지가 필요했습니다. 아미타여래도는 개인의 수행 공 간이나 사찰 등 여러 공간 에서 예배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19년)

OLYMPUS DIGITAL CAMERA
<오백나한도, 남송 1178년, 비단에 채색, 미국 보스턴미술관>

OLYMPUS DIGITAL CAMERA
<오백나한도 중 선정인(禪定印)을 취한 나한>

동북아시아에서 성행한 오백나한 신앙을 대표적으로 보여주는 불화로, 연대가 알려진 오백나한도 중에서 시기적으로 가장 앞선다. 하단에는 네 명의 나한과 이국적인 복식의 공양인이 향을 올리며 합장하고 있으며, 화면 상단에는 구름 사이로 선정인(禪定印)을 취한 나한이 나타난다. 중국 저장성 닝보 동전호반에 있었던 혜안원(惠安院)에 봉안되었으며, 한 폭에 다섯 나한을 그려 총 100폭으로 구성했다. 일본 나라국립박물관과 동경문화재연구소의 광학 조사로 명문이 해독되어, 1178년부터 1188년에 이르는 시기에 인근 지역민의 시주를 받아 조성되었음이 밝혀졌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19년)

OLYMPUS DIGITAL CAMERA
<오백나한도(제92대수대장존자), 고려 1235년, 비단에 채색, 보물1883호>

OLYMPUS DIGITAL CAMERA
<얼굴 부분>

나한이란 ‘아라한(阿羅漢)’을 줄여 일컫는 말로 일체 번뇌를 끊고 깨달음을 얻어 중생의 공양에 응할 만한 자격이 있는 불교의 성자를 뜻한다. 고려시대는 나한신앙에 기초한 나한의례가 국가적인 규모로 성행했다. 1235년과 1236년에 무관과 군관 등의 주도로 제작된 오백나한 중 제92번째 수대장존자를 그린 것이다. 백발의 존자는 오래된 고목을 배경으로 흑칠 탁자를 앞에 두고 돈대형 의자에 앉아 있다. 먹을 위주로 하면서 가사의 금강저 무늬 등에는 금니를 사용했다. 손에 든 사리병에서 발하는 광채는 화면 상부로 뻗어 나간다. 나한의 도상으로 즐겨 그려진 사리공양을 그린 것이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19년)

OLYMPUS DIGITAL CAMERA
<아미타여래도, 고려 14세기, 비단에 채색, 보물1238호>

현존하는 고려 불화 중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것이 아미타계열의 불화이지만, 독존형 여래도는 총 6점만이 알려져 있다. 자세 면에서 대부분 측면을 향해 왕생자를 맞이하는 내영(來迎)의 상징성을 암시한다. 이에 비해 오른 손을 내리면서도 이처럼 정면을 향한 자세로 표현한 형식은 매우 드문 사례이다. 오른 손에는 금니로 법륜 무늬가 있으며, 가슴에는 반대로 된 ‘만(卍)’자형 무늬가 있다. 녹청의 내의에는 구름과 봉황무늬가, 군청의 치마끝단은 꽃무늬로 장식되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19년)

OLYMPUS DIGITAL CAMERA
<아미타여래도, 고려 14세기, 이탈리아 문화박물관>

어둠 속에 빛을 발하는 아미타불은 기도의 결과 만나게 되길 고대했던 존재의 모습을 숭고하게 재현했다. 푸른 연꽃 위에 서 있는 아미타여래는 왼손은 가슴 앞으로 올리고 오른손을 아래로 내려 뻗었다. 여래에게서 발하는 빛을 형상화한 두광(頭光) 만이 있을 뿐, 모든 이들이 태어나고 싶어 했던 정토에 대한 묘사는 없다. 그럼에도 고개를 숙여 응시 하는 시선에서 신비로운 공간의 느낌이 전해진다. 고려시대 에는 방대한 경전에서 축적된 지식을 기반으로 염송과 염불을 통해 여래의 상호와 공덕을 관상하는 수행 방식이 유행했다. 기존에는 중국 불화로 인식되다가. 2012년 국립중앙박물관의 조사를 통해 고려시대 아미타여래도임이 밝혀졌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19년)

OLYMPUS DIGITAL CAMERA
<아미타여래도, 남송 13세기, 비단에 채색, 미국 메트로폴리탄박물관>

오른손을 아래로 내려 누군가를 맞이하는 자세를 취하고 있는 아미타불를 그렸다. 이런 도성의 그림은 임종을 준비하기 위해 수행할 때나 실제 임종을 맞이하는 의식에서 사용되었을 것이다. 이 그림은 중국 불화이지만, 같은 시기 한반도와 일본에도 유사한 도상의 불화가 남아 있어 동아시아에 아미타 내영(來迎)에 대한 신앙과 불화가 유행한 것으로 생각된다. 이 아미타여래도는 선묘(線描)가 단순하고 장식적인 성격이 강하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19년)

OLYMPUS DIGITAL CAMERA
<아미타여래도, 남송 13세기, 비단에 채색, 미국 메트로폴리탄박물관>

중국 남송대에는 아미타정토 신앙이 성행하여 아마타불이 많이 그려졌다. 정토신앙에서는 관상(觀想) 수행을 중시하여 아미타불과 정토의 모습,아미타불이 죽은 자를 맞이하는 모습 등을 뚜렷해질 때까지 반복하여 상상함으로써 실제로 정토에 태어나 아미타불을 만나고자 하였다. 이 그림의 아미타불은 몸을 옆으로 틀어 죽은 자에게 손을 내미는 듯한 자세를 취하고 있다. 적외선 촬영 결과 하단 왼쪽에서 ‘경원부세마교동’라는 명문이 발견되었다. 경원부는 1195년부터 1277년 사이에 사용된 중국 닝보의 옛 지명이므로 이 그림이 해당 시기에 제작되었음을 알 수 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19년)

OLYMPUS DIGITAL CAMERA
<치성광여래강림도, 고려 14세기, 비단에 채색, 미국 보스턴박물관>

북극성을 여래의 모습으로 표현한 치성광불도이다. 화면 중앙에는 소가 이끄는 화려하게 장엄한 수레를 탄 치성광불이 있으며, 그 주위와 화면 상·하단에 걸쳐 여러 별을 의인화하여 배치했다. 인물 옆에는 각각의 명칭을 적은 제목이 있어 일부는 도상(圖像)을 확인할 수 있다. 이 불화는 현재까지 알려진 고려시대 치성광여래도로는 유일하며 북두칠성을 비롯한 명왕(明王), 이십팔수(二十八宿), 십이궁(十二宮) 등과 여러 별자리가 그려져있다. 당시의 신앙과 천문관을 살펴볼 수 있는 중요한 불화이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19년)

OLYMPUS DIGITAL CAMERA
<치성광여래와 오성도, 당 897년, 둔황 천불동, 비단에 채색, 영국박물관>

둔황 천불동에서 발견된 불화로, 두 마리의 소가 이끄는 마차를 탄 치성광불과 수성· 금성 · 화성 · 목성 · 토성을 상징하는 다섯 인물을 그렸다. 해·달·별을 부처로 의인화하고 북극성을 치성광불로 신앙하는 경향은 당·송·원대에 매우 성행했다. 화면 상단 왼편에 조성 배경을 알 수 있는 기록이 남아 있다. 이 그림은 제작 연도를 알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주제 면에서도 희소한 중요한 작품이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19년)

<출처>

  1.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19년
  2.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한국학중앙연구소, 2021년
  3. 국가문화유산포탈, 문화재청, 2021년
  4. 위키백과, 2021년

 

 

[중앙박물관특별전, 대고려] 고려시대 불상

통일신라 불상의 세련된 조각수법, 적절한 비례와 조형미는 통일신라 말 혼란기를 거치면서 투박하면서 토속적인 모습을 보여주기도 한다. 고려시대에는 통일신라 때 유행했던 석굴암 본존불같은 촉지인 불좌상들이 계속 조성되었으며 지방호족의 후원을 받은 토속적인 면을 보여주는 거대 석조불상들이 고려초기에 많이 조성되었다. 고려후기에는 원나라 라마불교의 영향을 받은 불상들이 조성되기도 했는데 장곡사금동약사여래상(보물 337호)가 떄표적이다. 또한 고려후기에는 개인이 예불을 올리기 위해 소형 전각에 불상을 안치한 금동불감들이 만들어지기도 했다.

사찰로 가는길
사찰은 불상과 불화로 표현된 부처를 만날 수 있는 신앙의 공간입니다. 신앙의 중심인 불상과 불화에도 고려 문화의 독자성과 다원성이 나타납니다. 거대한 석불처럼 이전 시기나 같은 시기 중국의 것과는 다른 고려만의 독특한 불상이 조성되기도 하였고, 과거의 전통을 기반으로 하되 주변의 여러 왕조와 활발히 교섭하면서 새로운 요소가 선별적으로 수용되기도 하였습니다. 고려는 외교사절에 의한 공식관계뿐만 아니라, 상인이나 승려의 왕래 등 민간 차원의 빈번한 교류로 송(宋)의 새로운 불교문화를 받아들였고, 동시에 요(遼)와 같은 북방민족과는 정치적 대립과 긴장 관계 속에서 교섭을 이어갔습니다. 남송(南宋)과는 수도였던 절강성 항저우(杭州), 무역항이었던 닝보(寧波)를 통해 민간 교류를 지속하였습니다. 원 간섭기에는 티벳 라마불교가 유입되어 고려 왕실과 상류층의 불사(佛事)에 반영되었습니다. 고려 불상과 불화에 보이는 여러 외래 요소들과 그로 인한 변화 양상에서 당시 통아시아의 복잡다단한 정세와 고려인의 주체적인 성격을 엿볼 수 있습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19년)

고려후기 개인이 예불을 올리기 위해 만든 불감을 대표하는 유물인 금동삼존불감(국보 73호)이다. 중국 요나라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고려시대 이전의 목조건축 양식을 보여주는 유물이다.

OLYMPUS DIGITAL CAMERA<부처와 보살을 모신 작은 집, 고려 11~12세기, 금동, 국보 73호, 간송미술관>

불감(佛龕)은 ‘부처를 모신 작은 집’입니다. 불감은 개인이 사찰 이외의 장소에서 예불을 드릴 때 사용하였고, 바위틈에 안치하거나 탑 안에 봉안하기도 했습니다. 정말 귀한 불감이 우리를 맞아줍니다. 고려의 사원 건축을 충실히 재현한 불당(佛堂)을 형태의 감실에 삼존불이 봉안되어 있습니다. 두 어깨를 덮는 법의(法衣)를 입고 허리가 다소 긴 비례의 불상은 요나라 불상과도 유사합니다. 주변국과의 정치적 대립과 긴장 속에서도 문화적 교류를 이어나가며 고려가 이룬 승고함이 이 작은 불감 안에 담겨있습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19년)

고려말 만들어진 금동보살상이다. 화려한 장신구와 장식성이 돋보이는 보살상이다. 조선초 양주 회암사지에서는 보살상을 장식했던 영락으로 보이는 유물이 출토되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
<1. 금동보살좌상, 고려 14세기, 금동, 일본 후묘지(普明寺)>

정교한 세부 묘사와 온몸에 걸친 화려한 장신구의 장식성이 돋보이는 금동보살상이다. 오른팔을 올리고 왼팔은 내려 각각 엄지와 중지를 맞댄, 아미타구품인(阿彌陀九品印) 가운데 중품하생인(中品下生印)을 취하였다. 굵은 장식이 달린 목걸이와 입체감 있게 도드라진 영락은 고려 후기 보살상의 특징이다. 이 상은 영락 장식을 함께 주조했지만, 영락을 따로 만든 후 상에 부착하기도 한다. 양주 회암사 터에서 출토된 장신구는 보살상을 장식 했던 영락으로 보인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19년)

OLYMPUS DIGITAL CAMERA
<2. 금동보살좌상, 고려말 ~ 조선초, 금동>

둥글고 넓적한 얼굴은 편평한 편이나 튀어나온 눈꺼풀과 우뚝 선 예리한 콧날, 굳게 다문 입술은 근엄한 인상을 풍긴다. 가슴 윗부분과 하반신에는 화려한 장신구를 걸쳤다. 전반적인 모습은 고려 후기 보살상의 전형적인 형식을 계승했지만 자세와 신체 비례, 복잡하게 치장한 장식 등은 고려 말에서 조선 초로 이행하는 보살상의 시기적 변화 과정을 보여 준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19년)

OLYMPUS DIGITAL CAMERA<3. 보살의 영락장식, 양주 회암사터 출토, 고려말 ~ 조선초, 금동>

목조불상은 나무로 만든 불상으로 일본에서 많이 조성되었다. 제작방시은 하나의 나무를 깎아서 만드는 방식, 2개이상의 나무로 머리 등 주요부분을 나누어서 조각한 후 조립하는 방식 등이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
<1. 목조아미타불좌상, 일본 헤이안 12세기, 일본 도쿄국립박물관>

서방 정토를 다스리는 아미타여래에 대한 신앙은 중국과 고려, 일본에서 공통적으로 확인된다. 일본에서는 특히 헤이안시대(794~1185) 후기 정토종(淨土宗)의 확산으로 아미타당(阿彌陀堂)과 아미타상이 빈번하게 조성되었다. 아미타불좌상은 아미타불의 아홉 가지 수인 가운데 두 손을 배 앞에서 마주하여 엄지와 검지를 맞댄 상품상생인(上品上生印)을 취하고 있다. 이 부처의 손 모양은 중생의 성품이 모두 다르기에 각 단계에 맞게 설법하여 정토왕생을 돕는 아미타불의 구제 방식을 보여준다. 고려시대 불상 중에서도 비슷한 수인을 취한 아미타불이 조성되어 동북아시아가 공유한 아미타 신앙과 도상을 확인할 수 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19년)

OLYMPUS DIGITAL CAMERA
<2. 목조대일여래좌상, 일본 헤이안시대 12세기, 일본 도쿄국립박물관>

일본의 헤이안시대(794~1185)는 중국에서 들어온 밀교의 영향으로 밀교의 본존인 대일여래상이 활발하게 제작되었다. 왼손 검지를 세우고 이를 오른손으로 감싼 지권인(智拳印)의 수인은 고려시대 비로자나불의 수인과 통일하다. 그러나 일본의 대일여래가 머리를 높게 묶고 신체를 장엄한 보살의 모습인 점은 고려의 여래형 비로자나불과 다른 점이다. 두 불상 모두 여러 목재를 결합하여 불상을 조각하는 분할조립기법으로 제작되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19년)

OLYMPUS DIGITAL CAMERA
<대흥사 금동관음보살좌상, 고려말 조선초, 금동, 보물 1547호, 대흥사>

한쪽 무릎을 세운 유희좌(遊戱坐)와 윤왕좌(輪王坐) 자세는 송대에 특히 성행한 형식으로 고려시대에 수용되어 많은 작품이 남아 있다. 이 보살상은 결가부좌 상태에서 오른쪽 다리를 세우고, 왼팔에 체중을 실은채 머리와 상체를 곧게 세우고 있다. 이 상과 유사한 상이 강진 고성사에서도 발견되었다. 고려시대에 대외 해상무역이 활발히 이루어면서서, 바다와 인접한 해남과 강진에 송대 윤왕좌보살상 도상이 유입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19년)

OLYMPUS DIGITAL CAMERA
<목조대세지보살좌상, 금 또는 남송 12 ~13세기, 나무, 영국 빅토리아엘버트박물관>

두 다리를 접어 편안히 바닥에 두고 오른손을 든 수인을 한 대세지보살(大勢至菩薩)이다. 높게 묶어 올린 보계(寶髻) 만큼 높은 보관을 착용하였고, 보관 중앙에 보병이 있다. 보살의 중량감 있는 체구, 장신구, 천의(天衣) 처리와 같은 전반적인 특징은 중국 산서성(山西省) 평양부(平陽府) 홍동현(洪洞縣)에서 출토 되었거나 혹은 그곳에 소재한 금대(金代) 불보살상과 공통점이 보인다. 관음보살과 쌍을 이루어 아미타 삼존불로 제작되었을 가능성이 있다. 전신에 채색의 흔적이 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19년)

OLYMPUS DIGITAL CAMERA
<목조관음보살좌상, 송, 나무, 영국박물관>

당나라 양식을 계승한 남방의 송과 북방의 요불상은 11세기 이후가 되면 각각 독자적인 특징을 보인다. 송대에는 관음보살은 반가좌(半跏坐)와 유희좌(遊戱坐), 윤왕좌(輪王坐) 등 다양한 자세를 취한 관음보살상이 제작되었다. 특히 해안가에 위치한 복건성과 절강성 지역에서는 보타락가산(補陀洛迦山)의 수월관음 신앙이 유행하여, 유희좌 혹은 윤왕좌를 취한 관음보살상이 많이 조성되었다. 이 상처럼 암좌 위에 앉아 한쪽 무릎을 세우고 다른 발을 대좌 아래로 편하게 내린 유희좌는 북송대 이래 수월관음상의 보편적인 자세로 정착되었으며, 암좌가 없는 경우라도 대개 수월관음상으로 간주된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19년)

OLYMPUS DIGITAL CAMERA
<장곡사 금동약사불좌상, 고려 1346년, 금동, 보물 337호, 청양 장곡사>

약사불은 갖가지 질병을 고쳐주고 재단에서 벗어나게 해주는 부처이다. 이 약사불상은 균형 잡힌 신체 표현과 뛰어난 조형성을 보여주는 고려 후기의 대표적인 금통불이다. 왼손에 위로 불룩 솟은 약그릇을 들고 있는데, 뚜껑이 아니라 약이나 음식 같은 내용물을 나타낸 것이다. 이러한 도상(圖像)은 통일신라 후기의 전통을 계승한 것이다. 이 상의 복장에서 다수의 발원문과 직물이 확인되었다. 발원문에는 승려 백운의 이름과 함께 천여 명의 이름이 적혀있다. 1346년에 백운의 주도로 수많은 사람들이 시주하여 불상을 조성했음을 알수 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19년)

OLYMPUS DIGITAL CAMERA
<철조비로자나불좌상, 고려, 철>

불교의 진리인 ‘법(法)’을 인격화 하여 형상화한 비로자나불상이다. 양손은 가슴 부분에 올려 왼손 주먹을 쥔 채 둘째 손가락을 세워 오른손으로 감싸 쥔 형태의 지권인(智拳印)을 하고 있다. 옷 주름은 간략하며 계단 식으로 층층이 표현되어 있고 두다리 밑으로는 형식화 된 부채꼴 모양의 옷 주름이 펼쳐져 있다. 철불은 통일신라 말부터 제작되어 고려시대에 유행했다. 이 불상에서도 확인할 수 있듯이 일반 적으로 주조 과정에서 불상의 표면에 가로와 세로의 외형틀 분할선 흔적이 남게 된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19년)

건칠불상은 삼베나 모시에 옻칠하여 만든 불상으로 고려시대 송나라에서 전래되어 주로 만들어졌다. 대표적인 유물로 합천 해인사 희랑대사좌상(국보333호)가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
<건칠보살좌상, 고려 14세, 건칠과 나무에 채색>

건칠불(乾漆佛)은 삼베나 모시에 옻칠한 후 여러 번 겹친 것을 건조시켜 완성한 불상이다. 이렇게 만든 상을 우리나라와 중국의 옛 문헌에서는 협저상(夾紵像) 또는 칠상(漆像)이라고 하였다. 송과의 교류로 중국 건칠불의 제작 전통이 전래되면서 고려에서도 제작되기 시작했다. 이 상은 건칠 기법으로 제작된 보살좌상 가운데 가장 크기가 크며, 광물을 새겨 넣은 장식판으로 화려하게 꾸며진 금동보관이 함께 남아 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19년)

OLYMPUS DIGITAL CAMERA
<금동아미타불좌상, 고려 14세기, 금동>

아미타불은 서방 극락정토에 머물며 설법 하는 부처로, 한없는 광명과 수명을 상징한다. 이 아미타불상은 얼굴이 계란형으로 가름하면서도 부피감이 있으며, 이목구비는 단정하고 부드러운 분위기를 자아낸다. 머리의 중간 계주(髻珠), 속옷인 승각기의 띠매듭과 왼쪽 가슴 아래로 드리워진 마름모꼴 장식, 왼쪽 팔뚝 위에 겹쳐진 옷주름 표현 등은 고려 후기 불상의 특징이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19년)

OLYMPUS DIGITAL CAMERA
<대승사 금동아미타불좌상, 고려 14세기, 금동, 보물 1634호, 문경 대승사>

아미타불은 중생을 고통에서 벗어나 극락세계에 태어나게 해주는 부처이다. 문경 대승사 극락보전에 봉안된 아미타불상은 고려 후기에 조성된 불상이다. 양손은 엄지와 약지를 구부린 수인을 취하고 있고, 손바닥에 ‘井’자 형태의 손금이 남아 있다. 불상의 육계 부분에서 대덕(大德) 5년(1301)에 인출된 아미타 삼존다라니(阿彌陀三尊陀羅尼)가 발견되어 제작 시기를 가늠해볼 수 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19년)

OLYMPUS DIGITAL CAMERA
<금동천수관음보살좌상, 대리국 11 ~ 12세기, 금동, 미국 메트로폴리탄박물관>

천수관음은 ‘천수천안관자재보살(千手千眼觀自在菩薩)’을 줄인 말로, 천 개의 손과 천 개의 눈으로 중생이 겪을 수 있는 모든 재난을 없애주는 보살이다. 천수관음에 대한 신앙은 중국 당나라 때 유입되어 아시아 각국에 퍼졌다. 고려시대의 천수관음신앙이 기록되어 있지만 조각상으로 남아 있는 것은 2점 정도 밖에 없다. 이 상은 24개의 팔로 천수관음의 형상을 표현했다. 가늘고 긴 허리와 상·하체의 비례, 낮게 걸친 군의(裙衣), 인동무늬(忍冬文)를 채운 보관의 형태로 보아 중국 운남성雲南省 일대에 자리했던 대리국(大理國, 937~1253)에서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19년)

OLYMPUS DIGITAL CAMERA
<십일면천수관음보살좌상, 고려 14세기, 금동>

천수는 천 개의 손이라는 의미로 이 보살의 능력과 표현 방법이 매우 다양함을 상징한다. 천수관음 신양은 중국을 통해 전해져, 우리나라에서도 관음 신앙의 중요한 부분으로 자리 잡았다. 고려 후기에는 국가적인 재난을 물리치기 위해 천수관음을 모신 법회가 열리기도 했다. 천수관음을 조각상으로 표현할 때에는 이 상치형 천수를 대표하여 40주나 42수로 조성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손에 전부 다른 지물을 들고 있는데, 모두 <대비심다라니(大悲心陀羅尼)>, <천수경(千手經)> 등 전수관음 계통 경전에서 규정하는 바와 일치한다. 보상의 머리는 원래 얼굴 1개에 하단에 5개, 중단에 4개, 상단에 1개가 있다. 경전에서는 분노의 얼굴, 크게 웃는 얼굴 등이 있다고 설명하지만 이 보살상의 얼굴은 모두 엄숙한 표정으로 내려다 보고 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19년)

OLYMPUS DIGITAL CAMERA
<1. 금동보살좌상, 고려 11세기, 금동>

요대(遼代, 916~1125) 보살상과 유사점이 많은 고려 전기 보살상이다. 화불(化佛)이 있는 높은 보관의 형태와 보관에 묶은 끈이 흘러 내리는 모양, 5개의 짧은 수직 장식이 있는 목걸이 등에서 요대에 다수 제작된 소형 금동보살상의 특징을 찾을 수 있다. 요대에는 보관에 화불이 있고 손에 연꽃을 들고 있는 백의관음(白衣觀音)이 유행했던 점에서 보면 이상 역시 관음상일 가능성이 높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19년)

OLYMPUS DIGITAL CAMERA
<2. 금동미륵보살좌상, 요 11세기, 금동, 영국박물관>

OLYMPUS DIGITAL CAMERA
<3. 금동대일여래좌상, 요 11세기, 금동, 미국 메트로폴리탄박물관>

감실은 신위(神位)나 불상, 영정 등을 모셔두기 위한 공간이다. 고려시대에는 개인이 부처를 모시고 예불을 올리기 위해 만든 작은 불감들이 만들어졌다. 금동이나 목재 등으로 만드는데 아주 정밀하게 조각된 불감은 당시의 높은 공예 수준을 보여준다. 대표적인 유물이 간송미술관 소장 금동삼존불간(국보 73호)이다.

OLYMPUS DIGITAL CAMERA<1. 부처를 모신 작은 집, 고려 14세기, 금동>

금속판을 조립해서 만든 전각 형태의 불감이다. 문 안쪽 면에는 금강역사를 좌우대칭으로 부조하고, 안쪽 벽에는 타출 기법을 사용하여 부처의 모임 장면을 표현하였다. 부처와 두 보살을 중심으로 그 주위에 10대 제자로 보이는 승려들이 서 있다. 불감 안쪽의 좌우 벽에는 각각 사자를 탄 문수보살상과 코끼리를 탄 보현보살상이 입구를 바라보는 자세로 배치되었다. 천정에는 능화문 안에 용을 새겨 넣었는 데, 전각의 닫집을 연상시킨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19년)

OLYMPUS DIGITAL CAMERA
<2. 비사문천과 관음보살이 있는 작은 불감, 고려 1156년 이전, 은에 금도금>

남원군부인 양씨의 석관에서 발견되었다고 전하는 작은 불감 이다. 탑을 든 비사문천과 연꽃을 든 관음보살이 감실 형태의 불감에 봉안되어 있다. 문을 열어 예배 할 수 있는 형식으로 제작되었으며, 뒷면에는 범자가 있다. 1156년에 부인을 장사 지냈다는 묘지명의 기록이 있어 1156년 이전에 제작된 것으로 본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19년)

OLYMPUS DIGITAL CAMERA
<고봉국사불감, 고려말 조선초, 금동, 송광사>

고봉국사 법장(法藏)이 소지했던 것으로 전하는 순천 송광사의 불감이다. 내부 공간의 깊이가 않은 점에서, 전각 형태로 안들어 불상을 안치하는 고려시대의 일반적인 불감과 구조가 다르다. 정면에 설치한 여닫이식 문의 바깥면에는 금강역사상이, 안쪽 면에는 두건을 쓰고 보주를 든 지장보살과 정병을 든 관음보살을 두드림 기법으로 돋을 새김했다. 지장과 관음이 나란히 등장하는 예는 14세기 고려 불화에서도 보인다. 강실 안에는 중앙에 지권인(智拳印)을 한 비로자나불을 포함하여 총 7구의 상을 새겼다. 감실 바로 위쪽에는 5개로 칸을 구획하고 밀교의 오방불(五方佛)을 상징하는 다라니가 쓰였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19년)

OLYMPUS DIGITAL CAMERA<아미타삼존불좌상, 고려 1383년, 은에 금도금>

아미타불,관음보살,지장보살로 구성된 삼존불로, 드물게 대좌와 광배를 모두 갖추었다. 삼존상의 주위를 둘렀던 은제 난간과 청동합, 은합이 일괄로 전하고 있다. 관음보살상에서 발견된 복장 발원문에서 1353년이라는 연대와 500명이 넘는 승려, 재가신도들이 삼존상 제작에 참여했음을 알 수 있다. 시주자 명단에 당시 동북면 도지휘사이자 9년 뒤 조선을 건국하는 이성계도 포함되어 있다. 이성계는 1383년에 2건, 1384년과 1385년에도 연이어 불사에 참여한 기록이 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19년)

OLYMPUS DIGITAL CAMERA불감과 관음보살상, 고려말 조선초, 금동, 은에 금도금(보살)

2018년 1월에 ‘국립중앙박물관회 젊은친구들(YEN)’이 기증하였다. 그동안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유리건판 사진으로만 전해오다가 국립중앙박물관회의 노력으로 국내로 돌아오게 되었다. 감실 내부의 가장 넓은 벽에는 본존과 협시보살 주위로 제자와 팔부중이 운집한 모습을 표현하였다. 석가모니의 설법 장면인 영산회상도로 생각된다. 관음보살상 1구가 불감과 함께 남아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19년)

<출처>

  1.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19년
  2. 문화유산포탈, 문화재청, 2021년
  3.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소, 2021년
  4. 위키백과, 2021년

 

 

 

[중앙박물관특별전, 대고려] 고려시대 불경

불경은 고려시대와 우리나라 불교를 대표하는 문화유산이다. 고려시대 불교는 국가적인 지원을 받아 많은 분야에서 성취를 이루었다. 그중 불교 경전의 간행은 동아시아 뿐 아니라 세계적으로도 높은 수준의 보여주고 있다. 세계최초의 금속활자로 인쇄한 ‘직지(直指)’, 오늘날까지 목판이 보존되어 있는 해인사 팔만대장경, 종이에 글자를 쓴 필사본 불경 등이 고려시대 불교문화를 대표하는 유물로 손꼽힌다.

1100년의 지혜
불교는 고려인들의 삶과 정신세계에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개경에 수백 개의 사찰이 세워져 종파에 따라 교리와 신앙이 발전하였고, 강원이나 충청 지역을 비롯한 전국에서 각 지역의 특징을 반영한 불교문화가 전개되었습니다. 고려는 필사와 목판에서 시작한 오랜 출판의 역사를 가지고 있었고, 종이와 금속을 다루는 기술력을 바탕으로 세계 최초의 금속활자 인쇄본인 ‘직지(直指)’를 간행했습니다. 고려의 뛰어난 인쇄 문화는 불교 성전의 총합체인 대장경에서 나타납니다. 송나라 대장경을 원본으로 간행한 초조대장경은 몽고의 침입으로 불에 타 없어졌고, 고려는 불교의 가호를 바라며 다시 대장경을 새겼습니다. 바로 오늘날 목판으로 온전하게 전하는 세계 유일의 대장경인 해인사 팔만대장경입니다. 대장경은 불교가 전파되는 경로를 따라 광범위한 지역에서 생겨나고 전승되었던 기억의 역사이자, 진리를 향한 여정입니다. 고려의 목판인쇄술은 방대한 양의 대장경을 간행할 만큼 뛰어났으며, 이를 바탕으로 통치에 필요한 여러 서적이 간행되어 지식 확산과 체계화에도 기여했습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19년)

초조대장경은 고려 현종 때 거란의 침임을 물리치기 위해 북송의 관판대장경(官版大藏經, 971∼983)을 바탕으로 판각한 대장경이다. 초조대장경은 1232년 몽골의 침입으로 불타버린 후 목판은 남아 있지 않지만 인쇄본은 국내에 약 300여 권, 일본 난젠지(南禪寺)와 대마도 등지에 상당량의 초조대장경이 남아 있다고 한다. 고려초기 목판인쇄술을 살펴볼 수 있는 중요한 문화재이다. 전시에서 볼 수 있는 초조대장경 인쇄본에서 초조대장경의 높은 수준을 알 수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1. 초조대장경판으로 찍은 유가파의 기본 경전, 초조본 유가사지론 권15, 고려 11세기, 종이에 인쇄, 국보 273호, 송성문 기증>

<유가사지론>은 인도 미륵보살이 지은 글을 당나라 현장이 번역하여 100권을 수록한 것으로 초조대장경 가운데 하나이다. 해인사 재조대장경 판본과 비교하면 세부 내용에 차이가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
<2. 유가사지론의 핵심을 정리한 경전, 초조본 현양성교론 권12, 고려 11세기, 종이에 인쇄, 국보 271호, 송성문 기증, 3. 초조대장경에만 수록된 경전, 초조본 신찬일체경원품차록 권20, 고려 11세기, 종이에 인쇄, 국보 245호>

<현양성교론>은  인도 무착보살이 지은 글을 당나라 현장이 번역하여 20권을 수록한 책이다. 고려대장경 초조본에 포함된 내용이다. <일체경원품차록>은 당나라 종범이 여려 경권(經卷)을 대조하여 정리하고 경전 이름(經名), 번역한 사람 등의 내용을 차례로 적어 30권으로 편입시킨것이다. 이 유물은 그 중 권20에 해당한다. 초조대당경에만 수록된 경전이라 한다.

OLYMPUS DIGITAL CAMERA
<4. 초조본으로 찍은 화엄경, 고려 12세기, 종이에 인쇄, 호림박물관>

OLYMPUS DIGITAL CAMERA
<5. 약사신앙의 근본이 되는 경전, 고려 11~12세기, 종이에 인쇄, 보물 1780호, 해인사 대적광전 목조비로자나불좌상 복장품>

고려의 첫번째 대장경, 초조대장경
불교에서 삼장(三藏)은 부처의 설법을 담은 경장(經藏)과 생활 규범을 담은 율장(律藏), 경과 율에 대한 고승들의 해설을 담은 논장(論藏)을 말하며, 이를 망라한 것이 대장경(大藏經)이다. 고려는 불교의 힘으로 거란의 침입을 물리치기 위해, 송에서 만든 개보판(開寶版) 대장경(개보장, 開寶藏)을 원본 삼아 1011년(현종 2) 부터 자체적으로 대장경을 목판에 새겨 간행하였다. 개보장의 오류를 수정하고 이후 나온 경전을 수집해서 포함시킨 초조 대장경은 고려의 사상과 학문 역량이 집결된 지식문화의 결정체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19년)

OLYMPUS DIGITAL CAMERA<수선사 노비문서, 고려 1281년, 종이에 먹, 보물 제572-2호, 송광사성보박물관>

수선사(修禪社, 지금의 송광사) 주지였던 원오국사 천영(圓悟國師 天英, 1215~1286)이 아버지인 양택춘에게 받은 노비와 그 자식을 수선사에 바쳤고, 이를 나라에서 공인한다는 내용이 적혀 있다. 원오국사는 수선사에 봉안되었던 거란대장경을 관리하기 위해 자신이 상속받은 노비를 수선사에 예속시켰다. 문서 끝부분에 지원(至元) 18년이란 연호가 남아 있어 문서가 작성된 연도(1281년)를 알 수 있다. 이 문서는 거란대장경의 전래 사실과 더불어 승려이지만 속세의 부모에게 상속 받은 노비를 관리했던 모습, 사원이나 승려가 노비를 소유하기도 했던 당시 사회상을 보여주는 매우 귀중한 자리이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19년)

OLYMPUS DIGITAL CAMERA<1. 경패, 고려, 상아.흑단목, 보물 175호, 송광사성보박물관>

OLYMPUS DIGITAL CAMERA<1. 경패, 고려, 상아.흑단목, 보물 175호, 송광사성보박물관>

OLYMPUS DIGITAL CAMERA<1. 경패, 고려, 상아.흑단목, 보물 175호, 송광사성보박물관>

경전을 펼치지 않아도 어떤 경전이 보관되어 있는지 확인할 수 있도록 한 일종의 꼬리표이다. 한쪽 면에는 경전 명칭과 권수를 새겼고, 반대 면에는 부처와 보살 등을 새겼다. 1278년 원감국사 충지(圓鑑國師 冲止, 1226 ~ 1293)가 강화도 선원사에 있던 거란대장경 1,000여 책을 수선사로 옮겨 봉안했고, 이후 거란대장경의 부족한 부분을 보완했다고 한다. 이 경패는 거란대장경과 함께 전해졌거나, 경전을 보완하는 과정에서 만들어진 것으로 보인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19년)

OLYMPUS DIGITAL CAMERA<2. 송나라 승려 정원의 ‘화엄경’ 주석서, 대방광불화엄경소, 고려 1372년, 종이에 인쇄, 보물964호, 천태종중앙박물관>

송나라 승려 정원(淨源, 1011 ~ 1088)이 <화엄경>을 쉽게 풀이한 주석서이다. 의천이 판각을 주문하여 1087년 송 상인 서진을 통해 고려에 목판이 들어오게 되었다. 조선시대에 일본이 끊임없이 고려 팔만대장경판을 달라고 요청하자, 이 목판을 대신 보냈다고 한다. 문화 유입에 있어 상인의 역할과 동아시아 삼국 불교 교류의 한 단면을 볼 수 있다. 원본에는 변상도(變相圖)가 없었는데 1372년 이마중.박성량.김사행의 발원으로 변상도를 추가하여 개경 영통사(靈通寺)에서 간행하였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19년)

OLYMPUS DIGITAL CAMERA3. 남송 판본을 원본으로 새긴 <법화경>, 묘법연화경 권1, 고려 14세기, 종이에 인쇄, 호림박물관

남송의 소자본 <묘법연화경> 변상도를원본으로 삼아 제작한 목판본이다. 소자본(小字本)이란 휴대하기 쉽게 작은 글씨로 판각한 경전이다. 앞부분에 석가모니가 여러 따르는 무리에게 법을 전하는 영산회상도 장면이 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19년)

해인사에는 팔만대장경 외 많은 목판들을 소장하고 있다. 이들 목판은 국가주도로 새긴 대장경판과는 달리 지방관청이나 절에서 새긴 것이다. 당시의 불경 간경 경향과 기술수준을 살펴볼 수 있는 중요한 유물들이다.

OLYMPUS DIGITAL CAMERA<지옥의 모습을 새긴 목판, 불설예수시왕생칠경변상도, 고려 목판, 보물 734-4호, 해인사>

OLYMPUS DIGITAL CAMERA<지옥의 모습을 새긴 목판, 불설예수시왕생칠경변상도, 고려 목판, 보물 734-4호, 해인사>

<시왕경(十王經)>이라고도 하는 이 경전에는 인간이 죽어서 만나게 되는 지옥의 모습이 묘사되어 있다. 지옥에 있는 열 명의 시왕은 살아서 지은 죄업과 복덕을 판결한다. 이 목판에는 각 지옥에서 만나게 될 왕과 판관, 옥졸, 심판받을 영혼의 모습을 새겼다. 제5 염라왕은 동그란 업경대(業鏡臺)에 비추어진 살아생전 지은 죄로 판결을 내린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19년)

OLYMPUS DIGITAL CAMERA<가장 오래된 ‘화엄경’ 목판, 대방광불화엄경, 고려 1098년, 목판, 해인사>

<대방광불화엄경(大方廣佛華嚴經)> 권45의 일부로, 마지막 부분에 수창(韓昌) 4년(1098) 3월에 판각했다는 기록이 남아 있고, 승려 성헌의 주도로 해인사에서 화엄경판이 간행되었다고 한다.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목판으로, 무수히 많은 지식이 담긴 고려대장경의 광대한 역사를 대표한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19년)

OLYMPUS DIGITAL CAMERA<’화엄경’의 장엄한 세계를 새긴 목판, 대방광불화엄경주본변상도, 고려, 목판, 국보 206-14호>

OLYMPUS DIGITAL CAMERA<’화엄경’의 장엄한 세계를 새긴 목판, 대방광불화엄경주본변상도, 고려, 목판, 국보 206-14호>

화엄종의 근본이 되는 경전인 『화엄경(華嚴經)』의 내용을 그림으로 묘사한 것이 『화엄경 변상도이다. 이 목판은 당나라 때 번역한 80권 『화엄경』의 내용을 요약하여 새긴 것이다. 보리수 아래에서 비로자나불이 문수와 보현보살에게 깨달음에 대해 설명하는 장면이 담겨 있다. 다양한 모습의 청중이 설법을 듣기 위해 모여들고 있다.(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19년)

해전 해인사 팔만대장경은 몽골의 침입으로 불타버린 초조대장경을 대체하고 몽골의 침입을 막기 위해 새긴 대장경판이다. 현존하는 대장경 중 가장 오래되었으며 체제와 내용도 완벽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고려 고종 23년(1236) 시작하여 고종 38년(1251)에 완성되었다. 현재 보존되어 있는 경판의 수는 81,352장이다.

법보종찰 해인사 고려대장경판
고려는 중국의 대장경을 가져오는 것에 만족하지 않고 독자적인 고려의 대장경을 만들었다. 짧은 시간에 목판을 짜고 새길 수 있는 축적된 기술뿐만 아니라, 인쇄에 필요한 종이와 먹을 생산하는 기술, 수많은 경전을 모아 비교하고 검증하는 지적 역량까지 갖춰야 가능한 일이었다. 해인사에는 팔만대장경과 함께 고려시대에 만들어진 다양한 경판이 보관되어 있다. 경전 내용을 그림으로 표현한 변상도 목판은 경전에 관한 지식의 정수(精髓)를 예술로 승화시켰음을 보여주며, 1098년에 만들어진 가장 오래된 화엄경 목판은 고려의 길고 긴 대장경 역사를 알려준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19년)

OLYMPUS DIGITAL CAMERA<해인사 대장경판에서 인쇄한 조선시대 팔만대장경, 1883년 인쇄, 종이에 인쇄, 월정사>

팔만대장경은 고려를 침략한 몽골을 불교의 힘으로 물리치기 위해 16년에 걸쳐 완성한 대장경이다. 경판의 수가 8만여 장에 이르기 때문에 ‘팔만대장경’ 이라고 부른다. 경판은 고려시대는 물론이고 1393(태조 2), 1458(세조 4), 1500(연산군 6) 등 조선시대에도 여러 차례 인쇄되었지만 국내에 온전히 남아 있는 경우는 많지 않다. 월정사에 소장된 팔만대장경은 해인사 경판에서 직접 찍은 것으로, 1865년(고종 2)에 흥선대원군 이하응의 후원으로 인쇄한 대장경 2부 중 하나이다.(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19년)

사경(寫經)은 불교 경전을 베껴쓰는 불교의식을 말한다. 불교가 전래된 삼국시대 이래 경전을 베끼는 사경은 불경을 보급하는 중요한 수단이었으나 목판본으로 불경이 배포되면서 사경의 기능은 상실하고 ‘공덕’의 의미가 강조되면서 그 전통은 이어졌다. 고려시대 국왕이나 민간 주도로 많은 사경이 이루어졌으며 금.은으로 글자를 새겨 상당히 화려하면 높은 예술적 수준을 보여주는 불경들을 볼 수 있다.

서원(誓願) , 모든 것의 시작
아주 오래전, 누군가 간절히 소원하였습니다. 모든 이들이 올바른 깨달음을 얻고 생사에서 벗어나 고통 없는 정토에 태어날 수 있게 돕겠다고 했습니다. 서원은 중생을 위해 소망을 세우고 반드시 이루겠다는 맹세입니다. 깊은 푸른빛과 찬란한 금빛의 사경(寫經)은 서원을 세우고 실천하여 깨달음의 세계에 도달한 존재들의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19년)

OLYMPUS DIGITAL CAMERA<법화경 변상도, 묘법연화경 권2 변상도, 고려 1340년경, 감지에 금니와 은니, 미국 메트로폴리탄박물관>

푸른색의 쪽빛 물감을 들인 종이인 감지(紺紙)에 금니로 그림을 그리고 은니로 글씨를 쓴 <법화경>이다. 화면 오른편에는 부처가 설법하는 장면이, 왼편에는 경전 내용 중 ‘불타는 집의 비유’, ‘가난한 아들의 비유’가 묘사되어 있다. 불타는 집의 비유는 아버지가 아이들을 불타는 집에서 나오게 하려고 선물을 약속한다는 내용이다. 가난한 아들의 비유는 어릴 때 집을 나가 고생하며 자란 아들이 부자 아버지를 다시 만났으나 알아보지 못하고 두려워하자, 아버지가 그를 일꾼으로 데려와 작은 일부터 시작하여 점점 중요한 일을 맡기며 결국 후계자로 심는다는 내용이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19년)

OLYMPUS DIGITAL CAMERA<국왕이 발원한 ‘불공견삭신변진언경, 고려 1275년, 감지에 금니와 은니, 국보 210호, 개인소장>

충렬왕 즉위 원년에 은자대장원(銀字大藏院)에서 만든 국왕 발원 사경으로, 9미터가 넘는 본문은 ‘삼중대사(三重大師)’라는 승계를 지닌 승려 ‘안체(安諦)’가 필사했다. 경전 내용은 관음보살의 변화신인 불공견삭관음보살(不空羂索觀音菩薩)의 진언과 염송법, 화상법(書像法) 등에 대한 것으로, 국가가 주도하여 대장경을 사경한 기념비적인 불사의 귀중한 사례이다. 사경의 바탕이 되는 푸른 감지와 표지의 장식, 역동적인 신장의 표현, 마치 먹으로 쓴 듯 부드러우면서도 강건한 필획을 구현한 글씨에서 최고의 격식과 예술성을 볼수 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19년)

OLYMPUS DIGITAL CAMERA<깨달음의 수행 방법을 담은 ‘원각경’, 대방광원각수다라료의경, 고려 1367년, 상지에 금니, 보물 753호, 호림박물관>

상수리 열매로 물들인 종이 위에 금니로 <대방광원각수다라요의경(大方廣圓覺修多羅了義經)>의 설법도를 그리고 경문(經文)을 적었다. 이어 <문수최상승무생계법(文殊最上乘無生戒法)의 경문을 적었으며, 뒷면에는 <법보단경(法實壇經)>의 경문을 적어 세 경전을 하나로 엮었다. 1357년 공민왕 계항을 위해 최적과 일장이 김청, 계심과 함께 발원하였다. 평민이 발원한 사경의 귀중한 자료이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19년)

OLYMPUS DIGITAL CAMERA<다양한 신중을 그린 화엄경 변상도, 대방광불화엄경신중합부, 고려 1350년, 감지에 금니>

1350년(충정왕2) 연안군부인 이씨가 돌아가신 남편 김석과 부모님의 명복을 빌며 발원한 사경이다. 표지에 쓰인 제목은 <대방광불화엄경신중합부(大方廣佛華嚴經神衆合部)>로, 감지의 앞면과 뒷면에 모두 경전을 필사했다. 앞면은 고려 시대에 가장 인기를 누렸던 보현보살의 서원 <보현 행원품(普賢順行品)>이고, 뒷면은 <화엄경>의 첫 번째 품인 <세주묘엄품(世主妙嚴品)>이다. 비로자나불의 설법 장면을 그린 변상도를 지나면 금강신, 신중신 등 39위 신중의 행렬과 이들의 서원을 담은 게송(偈頌)이 있다. 모든 여래가 형상으로 나타난 곳에 따라 가며, 거하시는 곳을 항상 수호하겠다는 큰 서원을 세운 이들이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19년)

OLYMPUS DIGITAL CAMERA<아미타경 변상도, 불설아미타경변상도, 고려 1341년, 감지에 금니와 은니, 영국박물관>

정토삼부경(淨土三部經)의 하나이자 정토신앙의 근본 경전인 <아미타경>을 필사한 사경이다. 감지 위에 금니로 아미타여래의 설법 장면과 연꽃에서 태어난 중생을 맞이하는 모습을 그렸고, 은니로 글씨를 썼다. 곳곳에 나무 여러 그루가 배치된 점이 독특하다. 경전 말미에는 비구 총고의 발원문과 지정원년(至正元年, 1341)이라는 제작 연도가 남아 있다. 총고가 1340년 사경한 묘법연화경이 일본의 사가현립박물관에 남아 있는 점으로 미루어, 비구 총고는 경전을 전문적으로 필사하는 사경승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19년)

OLYMPUS DIGITAL CAMERA<화엄경 보현행원품, 고려 1334년, 감지에 금니, 보물 752호, 호림박물관>

OLYMPUS DIGITAL CAMERA<글씨 부분>

OLYMPUS DIGITAL CAMERA<나전 모란넝쿨무늬 경함, 고려 13~14세기, 나무.나전, 보물 제1975호>

2014년 (사)국립중앙박물관회가 기증하였다. 현재 남아 있는 나전 경함은 모두 9점으로, 대부분 국외에 소재하여 높은 예술적 가치에도 불구하고 쉽게 감상할 수 없었다. (사)국립중앙박물관회의 기증으로 국내에서도 고려 공예의 정수를 직접 확인할 수 있는 기회가 마련되었다. 다양한 기법을 사용하여 복잡한 형태의 모란무늬를 능숙하게 표현했으며 고려 공예 기술의 정정을 보여준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19년)

OLYMPUS DIGITAL CAMERA<나전 국화 넝쿨무늬 경함, 고려 13세기, 나전, 영국박물관>

불교 경전을 보관하던 상자다. 현재 남아 있는 나전 경함은 형태나 크기, 무늬 표현 제작기법 등이 거의 유사하여, 국가적 차원에서 같은 장인들에 의해 제작된 것으로 보인다. 1272년에 원나라 황후가 고려에 대장경을 요구했을 때, 경함을 제작하는 전함조성도감(細函造成都監)이라는 임시 관청을 설치했다는 기록이 남아 있어 이를 뒷받침해준다. 국화넝쿨무늬를 연속적으로 배치하여 질서정연한 느낌을 주면서도 한 단씩 꽃의 위치를 어긋나게 하는 등 변화를 주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19년)

<출처>

  1.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19년
  2. 국가문화유산포탈, 문화재청, 2021년
  3.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한국학중앙연구소, 2021년
  4. 위키백과, 2021년

 

 

[중앙박물관특별전, 대고려] 고려 왕실 미술

고려는 세계에서 중국 다음으로 제기를 만들었는데 비색청자로 불리며 기술적, 예술적으로 높은 수준을 보여준다. 고려시대 미술은 왕실을 후원을 받아 회화, 금속공예, 나전칠기, 자기 등 다양한 분야에서 상당히 높은 수준을 보여준다. 비색청자라 불리는 고려청자의 빛깔, 상감기법 청자 등은 독창적이면서 높은 예술적 성취를 보여주고 있다.

온 개경이 떠들썩하게
고려의 국가적인 행사에는 볼거리와 먹거리가 풍성하게 제공되었습니다. 제례의 한 절차로 연회(宴會)가 개최되었고, 축제의 일환으로도 연희가 열렸습니다. 궁궐에 조성한 인공 정원과 흥을 돋우는 풍악 소리, 맛있는 음식들, 외국에서 들여온 온갖 진귀한 물건들이 한곳에 어우러진, 왕실의 화려한 취향이 담긴 연회 풍경을 재현했습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19년)

OLYMPUS DIGITAL CAMERA<은제 금도금 주자와 받침, 고려 12세기, 은에 금도금, 미국 보스턴박물관>

OLYMPUS DIGITAL CAMERA
<꽃모양 접시, 남송 12세기, 은, 미국 메트로폴리탄박물관>

OLYMPUS DIGITAL CAMERA
<은제 금도금 잔과 잔받침, 고려 12~13세기, 은에 금도금, 보물 1899호>

OLYMPUS DIGITAL CAMERA
<청자 기린장식 향로, 고려 12세기, 개인 소장>

OLYMPUS DIGITAL CAMERA
<청자 칠보무늬 향로, 고려 12세기, 개성부근 출토, 국보 95호>

OLYMPUS DIGITAL CAMERA
<청자 어룡 모양 주자, 고려 12세기, 국보 61호>

OLYMPUS DIGITAL CAMERA
<청자 주자와 받침, 고려 12세기, 개성부근 출토>

OLYMPUS DIGITAL CAMERA
<청자 연꽃 넝쿨무늬 주자, 고려 12세기, 이홍근 기증>

OLYMPUS DIGITAL CAMERA<청자 풀꽃무늬 꽃모양 잔과 잔받침, 고려 12세기>

봉은사(奉恩寺)로 향하는 등
밤하늘에 하나둘 작은 등불을 수놓습니다. 왕궁과 개경의 주요거리마다 걸린 등과 화려한 비단 장막을 구경하다보면 고려 국왕의 행렬을 만나게 될니다. 고려에서는 건국 초부터 거의 매해 국가 의례로 등불을 켜는 의식인 연등회를 성대하게 열었습니다. 연등회가 열리면 고려 국왕은 태조 초상이 봉안된 개경 봉은사 행차하여 제사를 올리고 향을 공양했습니다. 연등회는 개경에게 가장 볼거리가 많은 축제였고, 동시에 고려 국왕이 태조 왕건을 뵙고 자신의 권위를 드러내는 의식이었습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19년)

팔관회(八關會)
팔관회는 하늘의 신령과 오악(五嶽), 명산(名山), 대천(大川), 용신(龍神) 등 토속신께 제사를 지내는 고려 최고의 국가 행사입니다. 고려 국왕은 문무백관과 지방관, 외국의 사신단이 위계에 따라 자리한 행사를 주관하며 고려 국왕 중심의 질서를 만들고, 천자국 고려의 위상을 과시했습니다. 팔관회는 여러 물건이 오가는 교역과 문화 교류의 장이기도 했습니다. 사신과 상인은 다양한 물산을 바쳤고, 하례가 끝나면 그에 대한 답례로 연회가 열렸습니다. 이때 송, 여진, 탐라, 일본 등 각국의 상인과 수많은 고려인이 몰려와 물품을 거래했습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19년)

고려시대는 불교가 중시되었지만 국가를 운영하는 정치, 사회분야에서는 유가사상이 반영된 중국 제도를 받아들다. 북송의 예제를 수용하면서 다양한 예기(禮器)들이 만들어졌다.

OLYMPUS DIGITAL CAMERA<개국공신에게 하사한 잔과 잔받침, 고려, 나무, 보물 451호, 안동 태사묘>

태조 왕건이 안동에서 후백제의 견휜을 물리칠 때 큰 공적을 세웠던 세 인물 김선평, 권행, 장정필의 유품으로 전하는 잔과 받침이다. 공로를 인정받아 각각 개국공신과 태사(太師)란 칭호를 받았다. <옥으로 만든 피리>, <여지무늬 허리띠 장식>도 함께 있었다고 하는데, 피리는 현재 전하지 않는다. 잔의 겉과 안은 모두 주칠(朱漆)을 했고, 굽과 가장자리에는 흑칠(黑漆)을 했다. 잔과 받침의 형태가 개성부근에서 출토된 것과 유사하다. 목제보관함도 함께 전한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19년)

OLYMPUS DIGITAL CAMERA<청자 이룡무늬 잔 받침, 고려, 영국 피츠윌리엄박물관, 청자 용무늬 잔 받침, 고려, 개성부근 출토>

잔을 받치는 받침으로, 두 잔 받침의 형태나 문양구성이 비슷하다. 잔대 아래에는 음각으로 새긴 뇌문(雷紋)이 펼쳐진 손잡이 부분에는 도마뱀처럼 생긴 독특한 형태의 이룡(驪龍)이 새겨져 있다. 이룡무늬는 고려청자 일부 기종에서만 드물게 발견된다. 대부분 양질 청자인 점으로 보건대 왕실 및 귀족의 한정된 계층에서 사용되었을 것으로 짐작된다. 왕실의 제사 공간에서 차를 담는 용기로 사용했을 것이라는 견해가 있으며, 특별한 용도로 제작된 작품으로 생각된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19년)

OLYMPUS DIGITAL CAMERA<1. 잔과 잔받침, 고려, 개성부근 출토, 녹니석, 2. 잔과 잔받침, 고려, 녹니석>

돌로 만들어진 고려의 예기
차(業)나 술을 담을 때 사용하는 잔(또는 완)과 받침으로 구성되어 있다. 돌(石材)로 그릇을 만드는 것은 상당한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기 때문에 매우 귀중하게 여겨졌다. 『고려사』에는 예종이 서경(지금의 평양)을 방문했을 때 반룡산에서 보옥을 발견하였는데, 옥장(玉匠)에게 명하여 제기를 만들어 태묘(太廟)에서 관제(標察)를 지낼 때 올렸다는 기록이 있다. 희소성과 미적인 가치를 동시에 지니고 있어서 왕실 의례를 위한 예기로 추정된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19년)

OLYMPUS DIGITAL CAMERA<청자 도철무늬 향로, 고려 12세기, 개성부근 출토>

고려에서는 성종 대부터 본격적인 예제(禮制) 개혁을 시작하여 의종 대 상정고금례(詳定古今禮)를 완성한다. 북송의 예제를 수용하고 북송에서 보낸 제기를 받기도 하였다. 예제 개혁은 체계적인 국가 통치기반을 세워 왕권을 강화하기 위한 것이었다. 고려 향로의 문양이 중국 청동기에서 가장 높게 평가되는 상대 후기 청동기의 문양을 따른 것이어서 당시 고려왕실에서 주도했던 예제개혁의 수준을 가늠할 수 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19년)

OLYMPUS DIGITAL CAMERA
<청자 구름 학 국화무늬 퉁소, 고려 13세기, 미국 메트로폴리탄박물관>

청자로 만든 퉁소이다. ‘고려사’에는 퉁소에 여덟개의 구멍이 있다고 적혀 있다. 몸체에는 학과 구름, 국화절지무늬를 흑백 상감으로 새겼다. 여백을 적당히 두어 구성이 여유롭다. 퉁소 윗부분과 아랫부분에는 백상감으로 뇌문(雷紋)을 넣었다. 앞면에는 여섯 개의 구멍이 있으며, 옆으로 살짝 비껴 1개의 구멍을 뚫었다. 의례를 행할 때 이와 같은 악기로 장엄한 분위기를 연출하였을 것이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19년)

예기(禮器)
탁월한 기술력과 수준높은 고려의 미감이 결합되어 탄생한 고려청자는 왕실에서 사용하는 예기로도 만들어졌습니다. 고려왕실은 왕권에 대한 명분을 세우고 국가체제를 굳건히 확립하기 위해 중국의 예제(禮制)를 수용하고 선진 사상을 받아들이는데 힘썼습니다. 정밀한 기형, 상징적인 도상, 아름다운 비색은 왕실의 권위와 취향을 대변합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19년)

고려 왕릉은 대부눈 개경 부근에 조성되었는데 기록에 따르면 약 80여 기의 왕릉이 조성되었다고 한다. 고려왕릉은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상당수가 도굴되었다. 고려 왕릉 중 17대 인종과 19대 명종의 왕릉에 묻힌 부장품들이 일제강점기에 확인되었는데 청자를 비롯하여 상당히 높은 수준의 공예품들이 있었다.

OLYMPUS DIGITAL CAMERA<1.청자 여지 넝쿨무늬 대접, 2.청자 여의두무늬 접시, 고려 13세기, 명종 지릉 출토>

OLYMPUS DIGITAL CAMERA<3.청자 접시, 고려 13세기, 명종 지릉 출토, 4. 청자 연꽃무늬 퇴주기, 고려 13세기, 명종 지릉 출토>

명종 무덤에서 나온 부장품
명종(明宗, 재위 1170~1197)은 고려 제19대 임금으로, 인종의 셋째 아들이다. 명종의 능인 지릉(智陵)은 개성시 장풍군 지릉리에 위치한다. 1916년 도굴 사건을 계기로 조선총독부에서 조사에 착수하여 무덤 구조와 부장품 등을 확인하였다. 조사된 부장품은 발, 완, 접시와 같은 생활 용기가 대부분이며 제기로 분류할 수 있는 타호(唾壺)가 포함되었다. 상감과 틀로 문양을 찍어내는 압출양각(壓出陽刻) 등의 장식기법이 사용되었고 문양은 구름과 학, 연꽃, 연잎, 국화, 여지 무니 등이며, 유색은 전반적으로 맑은 비색을 띠고 있다. 문헌에는 1202년에 지름이 조성되었다고 하지만, 1255년(고종 42)에 몽골군에 의해 훼손되었던 지름을 보수했다는 기록이 있어, 일부 부장품이 새롭게 포함되었을 가능성이 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19년)

OLYMPUS DIGITAL CAMERA<1. 청자 합, 고려 12세기, 2. 청자 뚜껑 잔, 고려 12세기, 3. 청자 받침대, 고려 12세기>

OLYMPUS DIGITAL CAMERA
4. 청자 참외모양 병, 고려 12세기, 국보 94호

OLYMPUS DIGITAL CAMERA<1. 청동도장, 고려 12세기, 청동>

OLYMPUS DIGITAL CAMERA<2. 은제숟가락과 청동젓가락, 고려 12세기, 은.청동>

인종 무덤에서 나온 부장품
고려 제17대 임금인 인종(仁宗, 재위 1122-1146)의 장릉(長陵)에서 나왔다고 전해지는 부장품이다. 19세기 후반에서 20세기 초반 일본인 사이에서 고려청자 수집 열풍이 일어났고, 개경 인근의 수많은 왕릉과 무덤이 도굴되었다. 인종 장릉 부장품 역시 1916년에 조선총독부박물관에서 구입한 뒤 현재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인종시책(仁宗諡冊))을 비롯하여 <청자 참외모양 병〉, 〈청자 합〉, 〈청자 뚜껑 잔》, <청자 받침대〉, 〈청동 도장>, <은제 숟가락과 청동 젓가락〉, 〈청동 내함)과 <석제 외함>이 인종의 장릉에서 나왔다고 전한다. 청자는 모두 4점으로, 정제된 기형에 맑고 청아한 느낌을 준다. 12세기 전반 고려 사회와 문화를 이해하는 데 매우 중요한 자료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19년)

개경의 왕릉
왕릉의 부장품은 고려 왕실 미술의 품격을 보여줍니다. 대몽 항쟁기 임시 수도였던 강화도에 묻힌 몇몇 왕을 제외하고, 대부분의 고려 왕릉은 개경 인근에 조성되었습니다. <고려사>를 비롯한 각종 문헌에는 80여 기의 왕릉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수많은 왕릉이 이미 도굴되어 흩어졌고, 그 전모를 파악하기 어렵습니다. 17대 인종(仁宗, 재위 1122~1146)과 19대 명종(明宗, 재위 1170~1197)의 무덤에서 나온 청자는 고려 왕릉의 부장품을 살펴볼 수 있는 매우 드문 예로, 왕실의 고상하고 기품있는 취향을 보여줍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19년)

서긍은 고려 중기 사신으로 고려를 방문하면 당시 고려의 문물을 글과 그림으로 상세히 기록해서 북송 황제에게 보고하였다. 서긍이 작성한 보고서는 글로 적은 내용만 남아 있지만 당시 고려사회의 모습을 간접적으로 살펴볼 수 있는 좋은 자료가 되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서긍의 고려 견문 보고서 ‘선화봉사고려도경’ 지부족재본, 송 1124년, 청대 재간행>

서긍(徐兢)은 한 달 남짓한 체류 기간 동안에 보고 들은 고려의 역사.정치.경제.문화.종교 등 거의 모든 부분을 글과 그림으로 정리하여 『선화봉사고려도경(宣和奉使高麗圖經, 이하 고려도경) 40권을 엮어 송 휘종에게 바쳤다. 안타깝게도 현재 그림 부분은 없어지고 글만 전하고 있다. 조선 후기에 고려에 대한 관심이 증가하며 <고려도경>이 유통되었고, 중국에서도 고증학의 영향으로 재조명을 받으면서 여러 종류의 목판본이 전하게 되었다. 이 책은 청나라 때 포정박이 편찬한 <지부족재총서(知不足齋叢書)>에 실린 판본이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19년)

OLYMPUS DIGITAL CAMERA<청자 사자장식 향로, 고려 12세기, 국보 60호>

서긍은 <고려도경>에서 고려의 각종 문물에 대하여 평을 덧붙였다. 그 중 ‘산예출향(狻猊出香) 역시 비색인데, 위에는 쭈그리고 있는 침승이 있고 아래에는 연꽃이 있어 그것을 받치고 있다. 여러 기물들 가운데 가장 뛰어나다.’라는 내용이 관심을 끈다. 서긍이 목격했던 연꽃 받침이 있는 예는 아니치만, 이 향로를 떠올리게 하는 기록이다. 뛰어난 조형미와 청자 유색이 어우러져 고려 상형청자(사물의 형태를 만든 청자) 가운데 수작으로 손꼽힌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19년)

OLYMPUS DIGITAL CAMERA<나전 대모 국화 넝쿨무늬 합, 고려 12세기, 나전, 미국 메트로폴리탄박물관>

세 개의 둥그런 잎 윗부분이 서로 연결된 모양의 합으로, 이와 같은 형태는 고려 상감청자나 주칠기(朱漆器)에도 보인다. 뚜껑과 몸체의 옆면은 나전으로 국화 넝쿨무늬를 장식하고, 뚜껑 윗면에는 얇게 저민 대모(玳瑁, 거북 등껍질) 뒷면을 칠해서 자연스럽게 색을 내는 기법으로 꽃무늬 3개를 장식했다. 각 면의 테두리는 끈 금속선을 사용했고, 넝쿨무늬의 줄기는 단선의 금속선을 사용하였다. 서긍은 고려의 나전을 보고 ‘세밀함이 뛰어나 가히 귀하다’고 평가했다. 세밀함과 화려함의 절정을 보여주는 이 나전칠기에서 고려 장인의 창의성과 기술력을 엿볼 수 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19년)

OLYMPUS DIGITAL CAMERA<청자 꽃모양 발, 고려 12세기, 일본 오사카시림동양도자미술관>

서긍은 <고려도경>에서 ‘도기의 색이 푸른 것을 고려인은 비색이라고 한다. 근년에 들어와 제작이 섬세해지고 광택이 더욱 아름다워졌다.’라고 적었다. 서긍이 기술했던 비색의 고려청자는 맑고 푸른 빛깔이 은은하게 감도는 최고 수준의 자기였다. 도자기 빛깔에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은 유약이다. 비색청자의 유약층은 초기의 청자보다 2~4배 정도 두꺼워 깊고 푸른 유색을 띤다. 유약 성분과 번조 분위기 조절은 비색청자 제작의 핵심 기술이었다. 고려인은 이 기술을 얻기 위해 오랜 기간 실험과 노력을 하였고 이 작품들은 그 결과이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19년)

OLYMPUS DIGITAL CAMERA<청자 용무늬 발, 고려 12세기, 영국 피츠윌리암박물관>

OLYMPUS DIGITAL CAMERA<청자 용머리장식 붓꽂이, 고려 12세기>

붓을 꽂아 보관하는 붓꽂이(筆架)다. 고려, 청자 문방구 가운데 이러한 예는 많지 않다. 요삼채(還三彩)에 유사한 형태의 붓꽂이가 알려져 있어서 양식적 연관성을 생각해 볼 수 있다. 북송 자기와 다른 특성을 지닌 요삼채 중 일부를 고려 왕실에서 선호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아름다운 조형과 유색, 다양한 장식기법이 조화를 이룬 최상급 청자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19년)

OLYMPUS DIGITAL CAMERA청자 병, 고려 12세기, 일본 오사카시림동양도자기미술관

서긍이 본 고려
1122년 예종(睿宗)이 승하하자, 이듬해 6월 북송 휘종(徽宗)은 위로의 뜻을 전하기 위해 200명이 넘는 대규모 사절단을 고려로 파견했습니다. 사절단의 일원으로 고려에 한 달 남짓하게 머물렀던 서긍(徐兢)은 보고 들은 문물을 상세히 기록하고 직접 그림을 그려 황제에게 올렸습니다. 그로부터 4년 후 북송은 금에 의해 멸망하였고 그림은 전란 속에 사라져 문장만이 전하게 됩니다. 이국인의 눈으로 본 고려는 어떤 모습이었고, 우리가 ‘기억하는 고려와 어떻게 달랐을까요?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19년)

최상의 아름다움, 왕실 미술
고려 왕실은 최대의 미술 후원자가 되어 가장 높은 수준의 미술문화를 이끌었습니다. 고려가 지향했던 사회는 다원적이고 개방적인 사회였으며, 그러한 분위기는 문화에도 그대로 반영되었습니다. 새로운 재질의 물품 제작에도 도전했는데, 그중 하나가 바로 자기(磁器)입니다. 10세기에 고려에서 자기를 제작하기 전까지, 중국을 제외한 전 세계 어느 곳에서도 자기를 만든다는 것은 불가능 했습니다. 이것은 일대 혁신이었고, 이로써 새로운 문화의 시대가 열리게 되었습니다. 왕실은 고려만의 빼어난 문화가 꽃필 수 있도록 기술을 발전시키고 아름다움에 대한 안목을 키웠습니다. 다양한 기법과 무늬로 장식된 자기는 고려의 독자적인 미감과 왕실의 취향을 잘 보여줍니다. 고려 왕실은 고급 공예 기술을 보유한 다른 나라의 장인도 적극 받아들이는 포용력을 발휘했습니다. 특히 왕실 주도하에 회화.금속공예품.나전칠기.자기 등 미술 각 분야에 선호되었던 소재와 무늬, 기법을 융합하여 새로운 차원의 물질문화를 창조하였습니다. 발상의 전환을 통해 왕실 미술문화의 수준을 한 차원 더 높이 끌어올렸던 것입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19년)

<출처>

  1.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19년
  2. 국가문화유산포탈, 문화재청, 2021년
  3. 한국민족문화백대백과사전, 한국학중앙연구소, 2021년
  4. 위키백과, 2021년

 

[중앙박물관특별전, 왕이 사랑한 보물] 도금은의 방, 청동의 방

‘청동의 방’은 출입구 역할을 했던 공간으로 그리스.로마시대 이래 유럽에서 오랜세월 장식품으로 사랑받았던 청동조각품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주로 그리스 신화를 모티브로 한 표현된 청동조각상들이 전시되어 궁전의 장엄함을 더해주는 역할을 했던 공간이었다.  도금은의 방에는 바로크시대에 유행했던 금속세공 장인들의 뛰어난 작품들이 전시되었다.

도금은의 방
도금은의 방은 16세기 후반까지 기념행사를 위한 공간으로 사용되다가 17세기 후반부터 왕실 소유의 보물을 보관하는 장소가 되었습니다. 이 방의 벽면에는 1723년 그린볼트가 처음 건축될 때부터 거울과 녹색 패널이 장식되어 있었습니다. 18세기 도금은의 방에 전시된 작품은 1733년 강건왕 아우구스투스의 지시로 작성된 소장품 목록으로 알 수 있습니다. 후기 바로크 양식의 조각상 50여 점을 포함하여 금속세공 장인이 만든 약 300여 점의 작품이 250여 개의 콘솔 위에 전시되었습니다. 이중 3분의 2 이상은 7년 전쟁으로 인한 재정난 때문에 녹여졌습니다. 오늘날 전시된 작품들은 1772년 당시 파괴를 면한 작품뿐 아니라, 그 뒤에 수집한 후기 바로크 양식의 작품들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17년)

OLYMPUS DIGITAL CAMERA<주전자와 수반, 다니엘 새플러 1세, 아우크스부르크, 1711~1715년경, 은에 도금>

바로크 시대에는 커다란 은제 그릇이 유행했습니다. 귀중한 재료를 아낌없이 사용하여 만든 크고 훌륭한 은제품은 자신의 지위와 부를 드러내는 데 효과적이었습니다. 강건왕 아우구스투스는 화려하게 도금된 용기들은 선제후 가문에 전해지던 보물들과 함께 전시되다가, 1723년 새롭게 설치된 ‘도금은의 방’에 식기 세트 형식으로 진열되었습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17년)

OLYMPUS DIGITAL CAMERA
<타조 형상의 타조알 술잔, 엘리아스 가이어, 라이프치히, 1589 ~ 1595년경, 타조알, 은에 도금>

16세기 초 뛰어난 금세공사였던 엘리아스 가이어는 이 작품으로 말미암아 작센 선제후들이 사랑하는 장인이 되었습니다. 드레스덴 궁정은 타조알에 금세공 장식을 더해 타조 모양으로 만든 이 독특한 술잔을 매우 높이 평가했습니다. 타조는 여러 상징적 의미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당시 사람들은 소화를 위해 돌을 삼키는 타조의 습성을 잘못 이해하여 철을 먹는다고 믿었고, 이 때문에 타조를 고난 속에서도 살아 남는 동물로 여겼습니다. 입에 물고 있는 편자는 이러한 생각에서 비롯된 표현입니다. 또한 타조는 알을 모래에 묻어 햇빛으로 부화시키는 습성떄문에 ‘원죄 없는 잉태를 하신 성모’를 상징하기도 했습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17년)

OLYMPUS DIGITAL CAMERA
<체인이 달린 병, 게오르크 프리벨, 아우크스부르크, 1711~1715년경, 은에 도금>

도금된 은으로 만든 병의 표면을 돋을새김으로 섬세하게 장식한 이 병에는 뚜껑과 몸통을 연결하는 체인이 달려 있습니다. 드레스덴 궁정에서는 이 병을 얼음 통에 넣어, 연회에서 와인을 시원하게 보관하는데 썼습니다. 그러나 아우구스투수가 소장하였던 화려한 은제품들은 대부분 7년 전쟁으로 인한 재정난 때문에 녹여져 은화로 유통되었습니다. 이병의 밑바닥에 새겨진 무게는 이러한 예술품이 돈으로 환산될 수 있는 대상이기도 했음을 보여줍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17년)

OLYMPUS DIGITAL CAMERA
<체인이 달린병, 독일남부, 18세기초, 금색유리.은에 도금>

이 유리병의 붉은 빛깔은 고난도의 제작 기술을 갖춘 독일 남부의 장인들만이 만들 수 있었습니다. 이러한 루비빛을 내기 위해서는 유리가 녹았을 때 특별한 금속 산화물을 첨가해야 했습니다. 이 때문에 금적유리로 만든 용기는 진기한 물품으로 여겨졌습니다. 금적유리 용기는 금세공 장식을 더해 보다 아름답고 튼튼하게 쓸 수 있도록 만들어졌습니다. 전구 같은 둥근 몸체에 더해진 주름과 금속 체인은 이러한 용기에 자주 쓰인 장식입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17년)

OLYMPUS DIGITAL CAMERA
<순례자의 물병, 마이센, 1710~1715년경, 뵈트거 석기.은에 도금>

검붉은 색을 띠는 뵈트거 석기로 만든 그릇입니다. 이 석기의 이름은 유럽 최초로 경질자기를 발명한 요한 프리드리히 뵈트거(1682~1719)의 이름에서 따온 것입니다. 뵈트거 석기는 자기의 발명을을 예고하듯, 기존 유럽의 도기에 비해 매우 단단한 것이 특징입니다. 이 용기는 순례자들이 들고 다니던 귀금속 물병의 모양을 모방해 만들었습니다. 석기의 단단한 재질 덕분에 기존에 금속 재질로만 만들 수 있던 형태를 도자기로 제작할 수 있었습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17년)

OLYMPUS DIGITAL CAMERA
<탁상시계, 아르라함 드렌트베트2세, 아우크스부르크, 1680~1685년경, 은에 도금.다이아몬드.에메랄드.루비.석류석.터키석.토파즈.감람석, 실제크기 높이 46 cm>

OLYMPUS DIGITAL CAMERA

<성을 등에 지고 있는 코끼리 형상의 잔, 우르만 볼프, 뉘른베르크, 1593 ~ 1598년경, 은에 도금.자개.에메랄드.루비, 실제크기 높이 52 cm>

OLYMPUS DIGITAL CAMERA
<여성 형상의 술잔, 프리드리히 힐레브란트, 뉘른베르크, 1603 ~ 1608년경, 은에 대부분 도금.바다빙석고 등>

바로크 시대 궁정에서 유행한 드레스를 입은 이 여인은 머리 위로 높이 잔을 들고 있습니다.이러한 잔은 결혼식에서 ‘술자리 놀이’에 사용되었던 것으로 생각됩니다. 걸쇠에 걸려 있어 움직일 수 있도록 한 잔 뿐 아니라, 종 모양의 치마 역시 잔으로 사용될 수 있도록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신랑은 치마에 담긴 술을, 신부는 화려한 금세공 장식을 더한 바다방석고둥 잔을 비워야 했습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17년)

OLYMPUS DIGITAL CAMERA
<공이 굴러 나오는 시계, 한스 술로트하임, 아우크스부르크 추정, 1600년경, 은.황동에 도금.철.강철.목재.가죽.수정.창자줄, 실제크기 112 cm>

OLYMPUS DIGITAL CAMERA
<아르테미스와 켄타우로스, 한스 아코프 바흐만 1세, 아우그스부르크, 1600 ~1610년경, 은에 도금.에나멜.황동.강철.루비.에메랄드.상아.흑단.떡갈나무, 실제크기, 높이 49.6 cm>

OLYMPUS DIGITAL CAMERA<바다 유니콘 형상의 술잔, 엘리아스 가이어, 라이프치히, 1600년경, 은에 도금.금에나멜 흔적.바다방석고등>

엘리아스 가이어는 자연물을 사용하여 창의적인 작품을 잘 만들기로 유명했습니다. 이 작품에서 가이어는 바다 유니콘의 꼬리를 바다방석고둥으로 표현했습니다. 그 위로는 한 손에 삼지창을 든 포세이돈이 다른 손으로 고삐를 잡고 있습니다. 자연물과 인공물을 혼합한 작품으로, 자연에 대한 인간의 도전을 상징합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17년)

OLYMPUS DIGITAL CAMERA<용을 무찌르는 성 게오르기우스 형상의 자동기계, 요하힘 프리스, 아우크스부르크, 1618 ~ 1622년경, 은에 도금.철>

중세 기사의 모습을 한 성 게오르기우스가 용에게 최후의 일격을 가하려는 모습입니다. 제물로 바쳐진 공주는 그의 도움으로 도망쳐 나오고 있습니다. 악으로부터의 승리와 용맹함을 상징한 성 게오르기우스는 유럽의 군주들에게 귀감이 되는 인물이었습니다. 말을 머리 부분을 열면 술을 담을 수 있는 잔이 되어 연회 때 사용되었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바닥에는 태엽장치로 움직이는 바퀴가 있어서 탁자 위에서 굴러다닐 수 있었습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17년)

청동의 방
청동의 방은 바로크 시대에는 입구이자 출구의 역할을 했습니다. 하지만 몇차례의 수리와 증축을 거치면서 그린볼트박물관의 마지막 방이 되었습니다. 아우구스투스는 떡갈나무 패널과 거울로 벽을 장식하였고, 방 전체에 선반과 받침대를 놓아 그 위에 파리에서 구입한 100여 점의 작은 청동상들을 전시했습니다. 이 중 많은 작품이 그리스 신화나 알레고리를 형상화했습니다. 특히 4계절, 4대륙, 4원소 등 우주적 가치를 의인화한 알레고리는 바로크 궁정에서 즐겨 사용한 주제였습니다. 즉 우주를 구성하는 요소들을 왕이 신으로부터 위임받아 관장함으로써 그의 권력이 모든 국가와 대륙, 나아가 세계에 미치는 것을 의미했습니다. 이러한 점에서 청동의 방은 왕의 권위와 위엄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소우주’와도 같았습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17년)

OLYMPUS DIGITAL CAMERA<청동 조각상을 전시했던 ‘청동의 방’을 재현하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
<데이아네이라를 납치하는 네소스, 프랑스, 1700년경, 청동>

켄타로우스족 네소스는 헤라클레스의 아내 데이아네이라를 납치하려다 헤라클레스의 손에 죽음을 맞습니다. 당장이라도 달려나갈 듯 높이 치켜든 네소스의 앞발과, 이에 놀라 한껏 젖혀진 데이아네이라의 몸은 마치 이 신화의 클라이막스를 지켜보는 듯 생생합니다. 아우구스투스는 이 조각상을 비롯하여 ‘청동의 방’에 전시할 여러 작품들을 예술품 중개인을 통해 파리에서 구입하였습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17년)

OLYMPUS DIGITAL CAMERA
<흙의 알레고리, 앙투와 쿠와즈보 파, 프랑사, 1726년 이전, 청동>

OLYMPUS DIGITAL CAMERA
<물의 알레고리, 앙투와 쿠와즈보 파, 프랑사, 1726년 이전, 청동>

우주적 가치를 형상화한 알레고리는 그리스 신화와 더불어 ‘청동의 방’에 전시된 작품들의 핵심 주제였습니다. 특히 고대의 네가지 원소 물, 불, 공기, 흙을 의인화한 조각은 왕이 신으로부터 권리를 위임받은 존재임을 효과적으로 드러내는 소재로, 바로크 궁정에서 인기가 많았습니다. 성벽 모양의 왕관을 쓰고 과일로 가득 찬 뿔을 든 여인은 흙을 의인화한 인물입니다. 한편, 물병을 든 수염 난 남성은 물을 상징합니다. 발치에 조각된 돌고래는 비늘이 있는 물고기처럼 양식화된 모습으로 묘사되었습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17년)

OLYMPUS DIGITAL CAMERA
<시간의 알레고리, 잔 로렌초 베르니니 파, 로마, 1650 ~ 1660년경, 청동>

제우스의 아버지이자, 시간의 신인 크로노스는 바로크 예술에서 자주 묘사되었습니다. 그는 흔히 날개가 있는 늙은 남성의 모습으로 표현되었습니다. 크로노스를 상징하는 물건 가운데 하나인 낫이 손에 쥐어져 있었지만 지금은 남아있지 않습니다. 구체 위에서 중심을 잡는 모습에서 느껴지는 긴장감, 자연스러운 옷주름과 근육의 표현이 뛰어납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17년)

OLYMPUS DIGITAL CAMERA
<에우로페와 황소, 프랑스, 17세기, 청동.나무>

아우구스투스가 구입한 청동상 중에는 그리스 신화를 주제로 한 작품이 많았습니다. 이 조각상도 제우스의 유명한 신화를 묘사했습니다. 제우스는 페니키아의 공주 에우로페의 미모에 반해 새하얀 황소로 변신하여 접근한 뒤, 그녀를 태우고 바다를 건너가 사랑을 나누었습니다. 바람결에 날리는 옷자락과 황소의 온순한 모습은 극적이지는 않지만, 신화 속 두 주인공을 떠올리기에 충분합니다. 에우로페의 오른손에는 꽃다발이 쥐어져 있었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17년)

  1. 안내문, 중앙박물관 특별전, 2017년
  2. 위키피디아, 2019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