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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박물관 세계문화관] 중앙아시아 불교문화, 사막에 핀 신앙의 꽃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소장.전시하고 있는 중앙아시아 유물은 투루판지역에서 출토된 유물들이 주를 이루고 있다. 일제강점기인 20세기초 일본 교토 니시혼간지의 주지승인 오타니 고즈이라는 사람이 대규모의 자본과 인력을 동원하여 3차에 걸쳐서 중앙아시아 원정을 떠나 무려 5천여점에 이르는 유물을 수집했으며 이를 ‘오타니 컬렉션’이라 한다. 이를 일본 자본가 구하라가 구입하여 조선총독부에 기증하면서 중앙박물관에 유물들이 남아 있다. 오타니 컬렉션은 전체 유물의 1/3은 한국에, 1/3은 중국뤼순에, 1/3은 일본에 남아 있다고 한다.

중앙박물관 세계문화관 중앙아시아 불교문화 20220125_39<중앙아시아, 동서문명이 통하는 길>

중앙아시아와 실크로드
아시아 대륙의 중심에 위치한 중앙아시아는 일반적으로 중국의 신장 위구르 자치구와 카자흐스탄, 우즈베키스탄, 키르기스스탄, 타지키스탄, 투루크메니스탄을 가리킨다. 우리는 이 지역을 ‘투푸키스타(투르크인의 나라)’ 또는 ‘서역(西域)’이라고 부른다. 중앙아시아 역사와 문화에서 유라시아를 여러 갈래의 교역로인 ‘실크로드’가 차지하는 비중이 매우 크다. 이 지역의 주민들은 지속적으로 동서 교역로를 장악하려는 주변 여러 세력의 침입과 지배를 받았다. 그리고 교역로는 다양한 인종, 언어, 문화가 이 지역으로 유입되는 중요한 통로로 작용했다. 그 결과 이곳의 문화는 고대 지중해, 인도, 서아시아, 중국 문화의 요소가 복합된 독특한 모습을 띤다. 국립중앙박물관의 중앙아시아 소장품은 대부분 현재의 신장 위구르 자치구에 해당하는 동투르키스탄 지역에서 발견된 것이다. 이 지역은 텐산산맥 이북의 초원지대에서 전개된 유목세계와 그 남측의 타클라마칸사막을 중심으로 한 오아시스 세계로 구성되어 있다. 타클라마타사막의 남단과 북단을 지나는 서역남도와 서역북도를 통해 기원전 2세기 무렵부터 인도, 서아시아, 중국 간의 교류가 본격화되었다. 그 길목에는 여러 오아시스 도시가 세워져 상업과 종교의 중심지로 번성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2022년)

세계문화관에서 중앙아시아 유물을 전시하는 공간 입구에는 아프로시압 벽화(복제품)를 전시하고 있다.  벽화는 사마르칸트 옛 중심시였던 아프로시압 도성유적에서 발견된 것으로 7세기 경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벽화에는 한반도인으로 추정되는 조우관을 쓰고 환두대도를 차고 있는 사람이 등장하고 있어, 당시 한반도와 중앙아시아 사이의 교류를 보여주는 유적으로 평가받고 있다.

중앙박물관 세계문화관 중앙아시아 불교문화 20220125_21<아프라시아브 벽화(Afrasiab), 서쪽 벽화>

중앙박물관 세계문화관 중앙아시아 불교문화 20220125_41<서쪽벽화 앞부분>

서쪽 벽화
서벽은 입구에 들어설 때 마주 보게 되는 벽으로, 가장 중요한 벽화가 그려진 곳이다. 현존하는 벽화를 보면 여러 사신과 무사가 서 있거나 앉아 있는 모습이 그려져 있다. 이들이 향하고 있는 벽의 윗부분에 누가 그려져 있었는지에 대해서는 여러 의견이 있다. 가운데 부분에 바르후만왕, 돌궐왕, 또는 소그드의 신이 그려져 있었다고 보는 견해와, 벽의 양측에 바르후만왕과 돌궐 왕이 좌우대칭으로 배치되었다는 견해가 있다. 오른쪽 끝에는 조우관을 쓴 고대 한국인이 등장한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2022년)

중앙박물관 세계문화관 중앙아시아 불교문화 20220125_22<조우관을 쓴 인물>

벽화 속의 한국인
서벽에 그려진 벽화에는 새의 깃털로 장식된 모자인 조우관(鳥羽冠)을 쓴 인물이 등장한다. <<위서>> <고구려전>에 “머리에 절품건(折風巾)을 쓰는데, 그 모양이 고깔과 같고 두건의 모서리에 새의 깃을 꽂는다.”라는 기록이 나온다. 또 고구려 고분벽화, 양나라에 파견된 외국인 사절을 그린 <양직공도>, 신라, 백제, 가야 고분의 출토품으로 볼 때 새의 깃털이나 모형을 모자에 부착하는 장식법이 고대 한반도에서 보편적이었음을 보여준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2022년)

중앙박물관 세계문화관 중앙아시아 불교문화 20220125_40<아프라시아브 도성유적>

벽화의 시기
서벽 왼편에 그려진 한 인물의 옷자락에 남아 있는 소그드 명문은 벽화의 연대를 추정하는데 결정적인 증거를 제공한다. 명문에는 차가니안(Chaganian, 사마르칸트 남부의 작은 나라)과 차치(Chach, 타슈켄트 지역)의 사신이 사마르칸트에 와서 이곳의 왕인 바르후만을 만나 대화를 나누는 내용이 담겨 있다. 바르후만왕은 중국 역사서에 ‘불호만(拂呼縵)’으로 언급되는 인물로, 658년 당 고종에 의해 강거도독부(康居都督府)의 도독으로 임명되었다. 이러한 자료를 근거로 아프라시아브 벽화의 연대는 7세기 중엽으로 추정한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2022년)

아프라시아브 벽화의 발견
사마르칸트의 옛 중심지인 아프라시아브 도성지 유적에서 1965년 도로 공사 중 우연히 발견되었다. 발견된 지점은 제23구역 제1호실에 해당하는 방으로, 왕이나 상류층 저택의 접견실에 해당하는 공간으로 추정된다. 방은 정사각형 모양으로, 한 변의 길이가 11m에 달한다. 방의 윗부분이 공사 중에 파괴되어 내부 벽면을 장식했던 벽화는 현재 2m 정도의 높이까지만 보존되어 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2022년)

석굴사원은 수도자들이 더위와 비를 피하여 명상을 하기 위해 벼랑에 동굴을 파서 만들었다. 기원전 3세기 인도 아소카왕때 처음 생겼으며, 아프카니스탄, 중앙아시아를 거쳐 중국과 한국에도 전해졌다. 인도의 아잔타 석굴, 아프카니스탄의 바미안 석굴, 중앙아시아의 키질, 투루판 베제클릭, 둔황석굴, 중국의 윈강 석굴 등이 규모도 크고 잘 알려진 석굴들이다. 우리나라에는 화강석 석재로 인공적으로 조성은 석굴암이 대표적이다. 특히, 둔황 석굴은 불교가 중국에 전래 이후 4세기부터 원나라때까지 끊임없이 조성되었다. 막고굴에는 불상들과 벽화로 꾸며져 있으며, 불경을 비롯하여 많은 문화재가 발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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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원화(誓願畵), 투루판 베제클리크 석굴 제15굴/10~12세기/흙벽에 채색, 복제품>

투루판 지역의 베제클리크 석굴사원 제15굴에 그려진 서원화의 일부분이다. 베제클리크 석굴사원은 이 지역의 대표적인 종교 유적이다. 제15굴에는 열다섯 가지 주제의 서원화가 회랑 양측 벽에 그려져 있었다. 이 벽화는 석가모니가 전생에 가시왕으로 태어났을 때 당시 부처였던 크세맘카라로부터 미래에 부처가 될 것이라는 약속을 받는 내용을 묘사한 제1주제 서원화의 일부분이다. 여기에서 크세맘카라 부처를 향해 공양물이 가득 담긴 쟁반을 두 손에 들고 서 있는 두 인물은 왕으로 태어난 전생의 석가모니와 왕비이다.(안내문, 중앙박물관, 2022년)

석굴사원과 벽화
중앙아시아의 종교 유적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는 석굴사원은 서역북도에 집중되어 있다. 투루판 지역의 베제클리크, 토유크, 야르호, 셍김-아기즈와 쿠차 지역의 키질, 쿰트라, 키질 가하와 같은 유적이 유명하다.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는 중앙아시아 벽화 가운데 대부분은 투루판의 석굴사원에서 가져온 것이며, 쿠차 지역의 벽화도 일부 소장되어 있다.(안내문, 중앙박물관, 2022년)

서원화(誓願畵)는 석가모니가 각기 다른 전생에서 당시의 부처(현재의 시점에서 볼  과거불)로 부터 깨달음을 얻을 것이라는 약속을 받는 이야기가 한 화면에 압축적으로 그려져 있다.

중앙박물관 세계문화관 중앙아시아 불교문화 20220125_23<비슈반타라 왕자 본생도, Visvantar Jataka, 미란 제5사원지/3세기/흙벽에 채색>

이 벽화는 미란 제5사원지 회랑 벽에 그려진 본생도의 일부분이다. 영국 탐험대를 이끈 스타인(Aurel Stein, 1862~1943년)의 보고서에 수록된 사진을 통해 본생도의 전체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이 본생도의 주인공은 비슈반타라 왕자로, 석가모니의 여러 전생 중 하나이다. 비슈반타라 왕자는 신비한 능력을 지닌 하얀 코끼리를 비롯하여 자신이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을 남에게 보시했다.(안내문, 중앙박물관, 2022년)

사막에 핀 신앙의 꽃
유라시아 대륙을 가로지르는 여러 교역로를 통해 불교, 조로아스터교, 마니교, 네스토리우스교, 이슬람교와 같은 다양한 종교가 중앙아시아로 전해졌다. 종교 활동을 위해 세워진 많은 사원은 여러 신의 모습과 종교적 설화, 이상향, 신도 등을 표현한 그림과 조각으로 화려하게 장식되었다. 이슬람교가 전파되기 이전인 10세기경 동투르키스탄 지역에서는 불교가 특히 성행했다. 이곳의 여러 불교 사원에는 헬레니즘 미술과 인도, 페르시아, 중국의 다양한 요소가 섞인 불상과 벽화가 남아 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2022년)

중앙박물관 세계문화관 중앙아시아 불교문화 20220125_24<1. 서원화, 투루판 베제클리크 석굴 제15굴/10~12세기/흙벽에 채색>

꽃을 들고 있는 우아한 자태의 손을 묘사한 서원화 단편이다. 단편의 왼쪽에 과거불의 광배 일부가 남아 있다. 광배 가장자리에 흰색 띠를 둘렀고, 안쪽에는 붉은 색 바탕에 흰색과 적갈색의 문양이 그려져 있다. 손과 광배 사이로 상상의 꽃이 공중에 떠 있다. 벽화의 바탕색은 현재 흐린 갈색으로 보이지만, 제15굴의 다른 서원화와 마찬가지로 원래의 바탕색은 푸른색이었을 것이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2022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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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서원화, 투루판 베제클리크 제33굴/10~12세기/흙벽에 채색>

제33굴 우측 벽에 배치된 서원화의 일부이다. 서원화는 석가모니가 각기 다른 전생에서 당시의 부처, 즉 현재의 시점에서 볼 때 과거불을 만나는 이야기를 주제로 한다. 이 벽화에는 두 명의 상인이 나란히 앉아 공양물이 담긴 화려한 쟁반을 들고 있고 왼쪽에 공양의 대상이 되는 과거불의 광배, 발, 옷자락 등의 일부가 남아 있다. 상인의 얼굴에 각기 다른 개성이 잘 표현되었다. 왼쪽 상인은 약간 넓은 얼굴에 코가 높고 머리카락과 수염이 검은색이다. 이에 비해 오른쪽 상인은 매부리코에 광대뼈가 튀어 나왔고 머리카락과 수염이 적갈색이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2022년)

‘베제클리크’은 위구르어로 ‘아름다운 그림으로 장식된 곳’이라는 뜻이다.  화려한 벽화가 많이 남아 있는 베제클리크 석굴사원은 서역북도에 위치한 투루판 일대에서 가장 큰 석굴사원군이다. 원래 80기 이상의 불교와 마니교 석굴이 만들어졌으나, 현재는 50기 정도 남아 있다.

SANYO DIGITAL CAMERA<투루판 베제클리크(伯孜克里克, Bezekllik) 석굴사원,  2010년>

베제클리크 석굴사원
베제클리크 석굴사원은 투루판시에서 동쪽으로 40km 떨어진 무르투크강 서쪽에 위치하고 있다. 위구르어로 ‘아름다운 그림으로 장식된 집’이라는 뜻을 가진 이 석굴사원에는 83기의 석굴이 확인되며, 그중 40기에 벽화가 남아 있다. 베제클리크 석굴사원은 6세기 국씨고창국(麴氏高昌國) 시기부터 13세기까지 만들어졋으며, 10세기 위구르 지배기에는 왕실의 종교적 성지로 번영했다. 베제클리크 석굴사원에는 석가모니의 전생 이야기를 소재로 한 ‘서원화’가 많이 그려졌다. 서원화는 ‘공양화供養畵’ 또는 ‘본행경변本行經變’이라고도 불리는데, 여기서 ‘서원’은 바라는 바를 이루겠다는 맹세를 뜻한다. 베제클리크 석굴사원은 서하어(西夏語), 위구르어 등 다양한 언어로 쓰인 불교 경전과 여러 시기에 걸쳐 그려진 벽화가 있는 중요한 불교유적이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2022년)

중앙박물관 세계문화관 중앙아시아 불교문화 20220125_26<마혜수라천(Maheshvara), 투루판/10~12세기/흙벽에 채색>

힌두교의 신 시바가 불교에 포섭되어 등장한 신으로 다면다비(多面多臂)에 3개의 눈을 가진 점이 특징이다. 마혜수라천은 일반적으로 위로 올린 손에 해와 달을 들고 있는데, 여기에서도 위로 올린 오른손에 해처럼 보이는 둥근 원반을 들고 있다. 나머지 손은 합장하거나 밧줄을 잡고 있다. 머리 위의 작은 인물은 바람이 가득 찬 주머니를 들고 있어 풍신(風神)을 연상시킨다. 손바닥과 얼굴은 살구색으로, 나머지는 녹색을 띤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2022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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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귀상, 투루판 베제클리크 석굴 제15굴/10~12세기/흙벽에 채색>

베제클리크 석굴 제15굴 중당(中堂)의 네 모퉁이에는 사천왕이 그려져 있다. 이 벽화는 안쪽 좌측벽에 그려진 사천왕 앞에 앉아 있는 악귀 부분이다. 악귀는 겁에 질린 듯이 눈을 크게 뜨고 입을 벌리고 있으며, 두 손은 가슴 앞으로 모아 화살 2개를 쥐고 있다. 오른쪽에는 사찬왕의 오른쪽 발과 코끼리 머리 장식을 한 오른쪽 다리 일부가 보인다. 악귀의 과장된 표정과 근육, 화려한 채색 등이 특징이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2022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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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불도, 투루반 베제클리크 석굴 제18굴/6~7세기/흙벽에 채색>

베제클리크 석굴사원 제18굴에서 가져온 천불도의 일부이다. 제18굴은 석굴 중앙에 큰 기둥을 배치한 중심 주굴(柱窟)이며, 천불도는 석굴의 회랑을 장식했다. 천불도에 표현된 각 부처는 가는 흰색 선으로 구획된 사각형 안에 통견(通肩)의 법의를 입고 선정인(禪定印)을 취한 모습으로 그려졌다. 부처의 눈은 비교적 크고 콧날이 뚜렸하다. 얼굴과 목, 손의 윤곽선에 붉은색을 더해 음영을 주고, 배경에는 짙은 색을 칠했다. 음영의 표현, 어두운 배경색, 라피스 라줄리 안료를 사용한 푸른색은 무두 쿠차 지역과의 연관성을 보여준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2022년)

중앙박물관 세계문화관 중앙아시아 불교문화 20220125_20<제15굴 서원화 장막>

중앙박물관 세계문화관 중앙아시아 불교문화 20220125_27<1. 서원화 장막, 투푸판 베제클리크 석굴 제15굴/10~12세기/흙벽에 채색>

중앙박물관 세계문화관 중앙아시아 불교문화 20220125_28<서원화 장막>

제15굴 회랑에 그려진 서원화의 가장 윗부분에는 화려한 장막이 묘사되었다. 상하로 배치된 두 단편은 장막의 상단에 짧은 회색천을 내렸고, 그 아래로 그물 문양의 붉은 천을 늘어뜨렸다. 붉은 천 위로 흰색, 초록색 구슬을 엮은 장식물이 보인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2022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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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위구르어 명문, 투루판 베제클리크 석굴/10~12세기/흙벽에 채색>

베제클리크 석굴사원은 6세기부터 개착되었으며 위구르 세력이 이 지역을 지배하던 9~13세기까지 조상활동이 활발히 이루어졌다. 현재 남아 있는 석굴의 벽화는 대체로 위구르가 이 지역을 지배하던 9세기 이후의 것이다. 위구르인들은 원래 마니교를 믿었으나, 10세기 후반부터 투루판 지역 사람들이 오랫동안 믿어온 불교로 개종했다. 위구르어 명문은 대체로 공양자의 이름과 공양을 한 연월일에 관한 기록으로 추정된다. 오른쪽 위 단편에 서툰 글씨로 한자가 기록되었는데, 이는 이 지역 기층문화였던 한인(漢人) 문화의 영향이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2022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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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살을 그린 번(菩薩幡), 둔황/10세기/비단에 채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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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 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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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 아래>

중앙박물관 세계문화관 중앙아시아 불교문화 20220125_10
<오른쪽 위>

중앙박물관 세계문화관 중앙아시아 불교문화 20220125_09
<오른쪽 아래>

SANYO DIGITAL CAMERA<둔황 막고굴, 2010년>

번(幡)은 불교 건축물을 꾸미거나 의식을 진행할 때 사용하던 걸개그림이다. 둔황 지역에서는 8세기경부터 번이 제작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왼쪽의 번에는 3m가 넘는 감색 비단 바탕에 정면을 향해 선 보살을 연속적으로 배치하였다. 보살은 채색 없이 노란 선으로만 그려졌다. 신체의 굴곡을 나타내는 선과 장신구, 가슴을 가로지르는 옷차림은 당 말기 보살사의 특징과 유사하다. 오른쪽의 번에는 2명의 보살이 그려져 있다. 위쪽의 보살은 가사를 걸친 채 왼쪽을 향하고 있고, 아래쪽 보살은 군의를 입고 천의를 걸친 채 정면을 향해 서 있다. 붉은색 선으로 윤곽을 그리고 부분적으로 음영을 가해 입체감을 주었다. 보살 옆에는 보살의 이름을 써 넣은 방제가 있는데, 아래 보살의 경우 “나무불휴식보살”이라는 글씨가 확인된다. 둔황 발견 자료 중에는 전문적으로 경전을 베껴쓰는 사경생(寫經生) 이외에 번을 만드는 사람(書幡人)이 언급되어 있어 당시 번의 제작이 보편화되었음을 알 수 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2022년)

호탄(和田)은 타림분지 남서쪽에 위치한 고대의 왕국이다. 옥(玉) 생산지였던 대월지(大月氏)가 있었던 곳으로 고대 동.서교역로에서 중요한 거점이었다. 한무제때 실크로드가 개척된 이후 서역문화와, 불교의 전파에 큰 역할을 했던 곳이다. 투루판은 한나라 때 한인들이 거주한 이래로 당나라때 고창국을 비롯한 한족의 영향을 받은 지역으로 지역중심지였던 교하고성, 고창고성을 비롯하여 주변 계곡 등에 많은 불교 유적들이 남아 있는 곳이다. 이 지역에서 출토된 불상들은 건축물과 마찬가지로 흙으로 빚어 만든 소조상이 대부분이며, 그 형태는 인도와 중동의 영향을 받은 간다라 양식이 많다.

중앙박물관 세계문화관 중앙아시아 불교문화 20220125_29<부처의 머리, 호탄/4~5세기/흙에 채색>

국립중앙박물관 소장된 호탄 출토의 소조상 중에서 크기가 가장 큰 예이다. 얼굴의 전반적인 형태와 반쯤 감고 있는 눈의 형식적인 표현이 호탄의 대표적인 불교 유적인 라와크(Rawak) 스투파에서 발견된 불상과 유사하다. 머리 부분에는 물결치는 듯한 머리카락이 표현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2022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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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인, 투루판 무르투크/6~7세기/흙에 채색>

중앙아시아 지역에서 만들어진 불교 조각은 헬레니즘과 로마 조각의 특징을 수용한 간다라 조각의 영향을 바탕으로 하면서, 이를 보다 추상화하고 형식화한 모습으로 재창조되었다. 이 여인상의 둥근 얼굴, 눈썹, 눈, 콧날 등은 간략하고 도식적으로 표현되었으며, 가슴 부분의 소용돌이 무늬는 갑옷을 연상시킨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2022년)

중앙박물관 세계문화관 중앙아시아 불교문화 20220125_30<1. 광배조각, 호탄/6~7세기/스투코에 채색, 흙>

중앙박물관 세계문화관 중앙아시아 불교문화 20220125_31
<2. 부처, 호탄/5~6세기/스투코에 채색>

중앙박물관 세계문화관 중앙아시아 불교문화 20220125_32
<3. 세라피스, 호탄/2~3세기/테라코타>

세라피스는 이집트 프톨레마이오스 왕조 시기에 새롭게 탄생한 신으로, 그리스의 제우스와 같은 모습으로 형상화되었다. 대좌에 앉아 있는 세라피스는 왼손에는 풍요의 뿔을 들고, 오른손은 나체의 소년 머리 위에 올려놓고 있다. 오른편에 서 있는 소년은 침묵의 신 하포크라테스이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2022년)

중앙박물관 세계문화관 중앙아시아 불교문화 20220125_33<4. 코끼리, 쿠파 쿰투라 석굴사원/8세기/흙>

중앙박물관 세계문화관 중앙아시아 불교문화 20220125_34<1. 연꽃 위의 부처, 호탄/6~7세기/스투코에 채색>

중앙박물관 세계문화관 중앙아시아 불교문화 20220125_35<2. 연꽃에서 태어나는 모습, 호탄/6~7세기/스투코에 채색>

몇 겹의 꽃잎으로 이루어진 연꽃 가운데에서 인물이 화생하는 순간을 묘사한 스투코로 만든 조각이다. 불교에서는 부처의 세계인 정토에서 태어날 때 연꽃에서 태어난다고 하는데, 연꽃은 청정함과 깨달음의 상징으로 불교 미술에 자주 이용되는 모티프이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2022년)

중앙박물관 세계문화관 중앙아시아 불교문화 20220125_36<3. 명상하는 승려, 둔황/10세기/흙에 채색>

중앙박물관 세계문화관 중앙아시아 불교문화 20220125_37<4. 무사의 머리, 카라샤르/6~7세기/흙>

서역북도에 위치한 카라샤르는 중국 문헌에 언기국 또는 오이국으로 기록되어 있다. 이곳의 불교 유적은 불교사찰과 석굴사원으로 이루어졌으며, 5~8세기로 편년되는 다양한 불상이 출토되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2022년)

중앙박물관 세계문화관 중앙아시아 불교문화 20220125_11
<5. 천부의 머리, 투루판/6~7세기/흙에 채색>

중앙박물관 세계문화관 중앙아시아 불교문화 20220125_12
<5. 천부의 머리, 투루판/6~7세기/흙에 채색>

불교 조각
중앙아시아의 불교 조각은 미란, 호탄, 쿠차, 투루판 지역의 여러 유적에서 발견되었다. 이곳의 불교 조각은 소조상이 대부분이며, 양식과 도상은 간다라의 영향을 기반으로 하면서 지역적인 특징을 발전시킨 모습이다.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는 불교 조각은 주로 서역 남도의 대표적인 불교 중심지인 호탄에서 출토된 것이다. 이외에 서역 북도의 투루판과 옛 언기국에 속하는 카라샤르 지역의 문화재도 소장되어 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2022년)

중앙박물관 세계문화관 중앙아시아 불교문화 20220125_38<회화 단편, 투루판 토유크 석굴/10~11세기/면에 채색>

화면 왼쪽에 있는 반쯤 열린 문을 향해 세 명의 인물이 나란히 서 있다. 문의 왼쪽에도 또 다른 인물의 윤곽이 희미하게 보인다. 배경은 붉은색이며 오른쪽 윗부분은 여러 개의 검은 점으로 덮여 있다. 흰 옷을 입은 세 명의 인물을 마니교도로 보는 견해도 이다. 다만 이들이 쓰고 있는 모자가 투루판 지역에서 출토된 자료에 등장하는 마니교도의 모자와 다른 모양이어서 앞으로 면밀한 연구가 필요하다. 최근 과학적 조사를 통해 그림이 그려진 천은 면으로 밝혀졌으며, 이 그림 아래에 다른 밑그림이 있는 것이 확인되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2022년)

가운데 관음보살이 있으며, 그 주위에 관음보살을 모시고 예배하는 보살과 인물이 여럿 그려져 있다. 관음보살이 쓰고 있는 높은 모자의 정면에는 관음보살이 모시는 부처인 아미타여래가 작게 표현되어 있다.

중앙박물관 세계문화관 중앙아시아 불교문화 20220125_13
<관음보살이 그려진 번, 투루판 토유크 석굴/9~10세기/면에 채색>

토유크 석굴사원은 고창고성에서 약 50킬로미터 떨어진 곳에 위치하고 있다. 화염산 골짜기로 천산산맥의 눈이 녹아내린 물이 투루판분지로 흘러드는 계곡이다. 여기에 있는 46기의 석굴은 5세기 말과 7세기 사이에 만들어졌다. 이곳에서는 문서와 불화도 다수 발견되었다. 지금은 위구르 전통 마을이 남아 있는 외진 골짜기에 위치하고 있지만, 사막과 황무지로 이루어진 투루판지역에서 그나마 사람의 통행이 많은 교통로에 위치해 있다.

SANYO DIGITAL CAMERA<투루판 토유크(Toyuk, 吐浴溝) 석굴사원, 2010년>

산산현에 위치한 토유크 석굴은 46기의 석굴로 이루어진 유적이다. 이곳에서는 문서와 불화도 다수 발견되었다. 화면의 중앙에 앉아 있는 보살은 보관에 작은 불좌상이 있어 일찍부터 관음보살로 판ㅁ여되었다. 보살은 머리 좌우에 원형 장식을 부착하고, 검은 머리카락을 어깨 위로 늘어뜨렸다. 오른손을 가슴 앞에서 들고 있으며, 왼손은 아래로 내려 지물을 받치고 있다. 중앙의 관음보살을 둘러싸고 있는 보살은 원래 3단에 각 2명씩, 모두 6명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와 거의 동일한 크기와 구성을 지닌 그림이 베를린 아시아미술관에 소장되어 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2022년)

중앙아시아실 전시품은 대부분 20세기 초 오타니 고즈이(1876~1948년) 탐험대가 수집한 것이다. 오타니 고즈이는 1902년부터 1914년까지 모두 3차에 걸쳐 중앙아시아 지역으로 탐험대를 보냈고, 이후 탐험대 수집푸의 상당수가 오타니의 별장이었던 고베의 니라쿠소에 보관되었다. 1916년 1월, 당시 상인이었던 구하라 후사노스케가 니라쿠소와 문화재를 함께 구입했다. 구하라는 1916년 5월 조선총독부에 오타니 수집품을 기증하였고 조선총독부박물관에서 관리했다. 이후 오타니 수집품은 국립중앙박물관을 비롯하여 중국 국립뤼순박물관, 중국국가도서관, 일본 류코쿠대학, 도쿄국립박물관, 교토국립박물관 등에 소장되어 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2022년)

<출처>

  1. 안내문, 중앙박물관, 2022년
  2. 안내문, 중앙박물관, 2017년

 

 

 

[중앙박물관 중앙아시아실] 석굴사원과 벽화, 중앙아시아 사막의 불교문화

석굴사원은 수도자들이 더위와 비를 피하여 명상을 하기 위해 바위로 된 벼랑에 동굴을 파서 만들었다. 기원전 3세기 인도 아소카왕때 처음 생겼으며, 아프카니스탄, 중앙아시아를 거쳐 중국과 한국에도 전해졌다. 인도의 아잔타 석굴, 아프카니스탄의 바미안 석굴, 중앙아시아의 키질, 투루판 베제클릭, 둔황석굴, 중국의 윈강 석굴 등이 규모도 크고 잘 알려진 석굴들이다. 우리나라에는 화강석 석재로 인공적으로 조성은 석굴암이 대표적이다. 특히, 막고굴이라 불린 둔황 석굴은 불교가 중국에 전래 이후 전진(前秦)이 지배하던 4세기부터 원나라때까지 끊임없이 조성되었다. 막고굴에는 불상들과 벽화로 꾸며져 있으며, 불경을 비롯하여 많은 문화재가 발견되기도 한다. 20세기초 혜초의 왕오천축국전을 비롯하여 많은 문서들이 둔황의 장경동에서 발견되면서 세계적으로 석굴사원의 가치가 재조명되었으며, 이 시기에 서구인들은 벽화를 떼어가는 등 약탈에 가까운 방법으로 석굴사원의 유물들을 반출하여 세계각지의 박물관에서 소장.전시하고 있다.

국립중앙박물관에서도 중앙아시아 석굴사원에서 약탈한 문화재들을 다수 소장.전시하고 있는데 투루판지역에서 출토된 유물들이 주를 이루고 있다. 일제강점기인 20세기초에는 세계적인 중앙아시아 유물 수집의 유행이 있었는데, 이때 일본 교토 니시혼간지의 주지승인 오타니 고즈이라는 사람이 대규모의 자본과 인력을 동원하여 3차에 걸쳐서 중앙아시아 원정을 떠났는데, 현지에서 약탈과 구매 등의 방법으로 무려 5천여점에 이르는 유물을 수집했으며 이를 오타니 컬렉션이라고 있다. 많은 중앙아시아 유물들을 수집한 오타니가 파산을 하게 되면서 이를 구매한 일본 자본가 구하라가 당시 조선총독부 총독이었던 데라우치를 위해 조선총독부에 이를 기증하면서 오늘날까지 그 유물이 남아 있다. 오타니 컬렉션은 전체 유물의 1/3은 한국에, 1/3은 중국뤼순에, 1/3은 일본에 남아 있다고 한다. 투루판의 베제클리크 석굴사원과 토유크 석굴사원에서 수집한 벽화편은 당시의 야만적인 유물수집의 모습을 잘 보여주는 것들로 벽면에 칠해져 있던 벽화를 떼어내어 옮겨 왔는데, 원본이 손상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비슷한 사례는 서구 각지의 둔황유물에서 볼 수 있다고 한다.

OLYMPUS DIGITAL CAMERA천불도, 千佛圖, 투루판, 6~7세기.

우주에 현재하는 불법 등을 상징하는 천불도의 일부이다. 동일한 크기의 불상을 반복하여 배열하면서, 채색을 달리하여 변화를 주었다. 다른 천불도와 비교할 때, 매우 간략한 표현과 부처 사이사이에 등장하는 물결무늬가 특징이다. (출처: 중앙박물관)

석굴사원과 벽화
중앙아시아의 종교 유적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는 석굴사원은 서역북도(西域北道)에 집중되어 있다. 투루판지역의 베제클리크, 토유크, 야르호, 셍김아기즈와 쿠차지역의 키질, 쿰트라, 키질가하와 같은 유적이 유명하다.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는 중앙아시아벽화 중 대다수는 투루판의 석굴사원에서 가져온 것이며, 쿠차지역의 벽화도 일부 소장되어 있다. (출처: 중앙박물관)

OLYMPUS DIGITAL CAMERA투루판의 야르호 석굴(Yarkhoto Caves, Turpan), 쿠차의 키질 석굴(Kizil Caves, Kucha). 중앙아시아는 뜨거운 사막이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더위를 피하기 위해 인도에서 조성되었던 석굴사원이 중앙아시아에도 많이 조성되었다. 건조한 기후덕분에 석굴사원에 있던 많은 유물들이 오늘날까지 남아 있다.

SANYO DIGITAL CAMERA막고굴이라고도 불리는 둔황석굴. 전진(前秦)이 지배했던 4세기부터 원나라때까지 천년에 가까운 세월동안 수많은 석굴사원들아 조성되었다. 이 곳 석굴사원 중 하나인 장경동에서는 혜초의 왕오천축국전을 비롯하여 많은 문서들이 발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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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하는 승려, 行脚僧圖, 둔황, 9~10세기

이 그림은 경전을 짊어지고 여행하는 승려의 모습을 그린 것이다. 주인공은 노란 점과 붉은 선으로 장식된 검은색 천을 어깨에 걸치고, 챙이 넓은 모자를 썼다. 왼손에는 주미(麈尾)를 들고 발에는 붉은색 샌들을 신었다. 승려의 머리 위에는 작은 부처가, 다리 사이에는 호랑이가 보인다. 부처 옆 방제의 윗부분은 박락되었고 아랫부분에 “여래불(如來佛)”이라는 글자만 보인다. 그림의 주인공에 대해서는 현장(玄裝), 보승불(寶勝佛), 티베트 불화에 보이는 18나한(羅漢) 가운데 한명이 달마다라(達磨多羅), 실크로드를 여행하며 공연하는 이야기꾼 등의 다양한 견해가 있다. (출처: 중앙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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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살이 그려진 번, 菩薩幡, 둔황(敦煌), 10세기

20세기 초 중국 간쑤성(甘肅省)에 위치한 둔황에서는 수많은 문서와 불화가 발견되었다. 이 중에는 좁고 긴 천으로 만들어진 드리개가 포함되어 있는데, 이를 전문용어로는 ‘번’이라고 부른다. 둔황에서 발견된 번에는 2명의 보살이 그려져 있다. 위쪽의 보살은 가사를 걸친 채 왼쪽을 향하고 있고, 아래쪽의 보살은 군의를 입고 천의를 걸친 채 정면을 향해 서 있다. 붉은색 선으로 윤곽을 그리고 부분적으로 음영을 가해 입체감을 주었다. 보살 옆에는 보살의 이름을 써 넣은 방제가 있는데, 아래 보살의 경우 “나무불휴식보살(南無不休息菩薩)”이라는 글씨가 확인된다. (출처: 중앙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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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살 그림 드리개, 菩薩立像幡, 둔황, 10세기.

이 드리개에는 풍만한 신체를 지닌 보살이 굵기가 일정하지 않은 선으로 그려져 있다. 이와같은 변화 있는 선은 중국회화에서 볼 수 있는 특징으로, 그 영향이 이 지역에 미친 것으로 보인다. 원래는 현재보다 더 길었을 것이라고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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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상에 잠긴 승려, 僧像, 둔황, 10세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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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상에 잠긴 승려, 僧像, 둔황, 10세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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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상에 잠긴 승려, 僧像, 둔황, 10세기

승려를 표현한 부조 3점은 건축물의 벽면에 부착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각각의 승려는 감실에 앉아 있다. 눈을 감고 있는 모습의 승려들은 명상에 잠긴 상태를 표현한 것으로 보인다. 머리를 두건같이 감싸며 몸을 완전히 가리는 두꺼운 옷을 입고 있으며, 그 옷은 승려마다 각기 다른 색을 띤다. 일부 상에는 금칠의 흔적도 보인다.  (출처: 중앙박물관)

사막에 핀 신앙의 꽃
유라시아 대륙을 가로지르는 여러 교역로를 통해 불교, 조로아스터교, 마니교, 네스토리우스교, 이슬람교와 같은 다양한 종교가 중앙아시아로 전해졌다. 종교활동을 위해 세워진 많은 사원은 여러 신의 모습과 종교적 철학, 아상향, 신도 등을 표현한 그림과 조각으로 화려하게 장식되었다. 10세기 이슬람교가 전파되기 이전의 동투르키스탄 지역에서는 불교가 특히 성행하였다. 이곳의 여러 불교 사원에는 헬레니즘 미술과 인도, 페르시아, 중국의 요소가 섞인 불상과 벽화가 남아 있다. (출처: 중앙박물관)

SANYO DIGITAL CAMERA투루판 토유크(Toyuk, 吐浴溝) 석굴사원. 고창고성에서 동북으로 약 50킬로미터 떨어진 곳에 위치하고 있다. 서유기에 등장하는 화염산 골짜기로 천산산맥의 눈이 녹아내린 물이 투루판분지로 흘러드는 계곡이다. 여기에 있는 46기의 석굴은 5세기 말과 7세기 사이에 만들어졌다. 이곳에서는 문서와 불화도 다수 발견되었다. 지금은 위구르 전통 마을이 남아 있는 외진 골짜기에 위치하고 있지만, 사막과 황무지로 이루어진 투루판지역에서 그나마 사람의 통행이 많은 교통로에 위치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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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음보살이 그려진 번, 觀音普薩幡, 투루판 토유크 석굴, 9~10세기. 가운데 관음보살이 있으며, 그 주위에 관음보살을 모시고 예배하는 보살과 인물이 여럿 그려져 있다. 관음보살이 쓰고 있는 높은 모자의 정면에는 관음보살이 모시는 부처인 아미타여래가 작게 표현되어 있다.

산산현(鄯善县)에 위치한 토유크 석굴은 46기의 석굴로 이루어진 유적이다. 이곳에서는 문서와 불화도 다수 발견되었다. 화면의 중앙에 앉아 있는 보살은 보관에 작은 불좌상이 있어 일찍부터 관음보살로 판명되었다. 보살은 머리 좌우에 원형 장식을 부착하고, 검은 머리카락을 어깨 위로 늘어뜨렸다. 오른손을 가슴 앞에 들고 있으며, 왼손은 아래로 내려 지물을 받치고 있다. 중앙의 관음 보살을 둘러싸고 있는 보살은 원래 3단에 각 2명씩, 모두 6명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와 거의 동일한 크기와 구성을 지닌 그림이 베를린 아시아미술관에 소장되어 있다. (출처: 중앙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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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살이 그려진 드리개, 菩薩幡, 토유크 석굴사원, 8~9세기,

앞뒷면에 그림이 그려져 있는 드리개이다. 상단의 삼각형 공간에는 작은 불좌상이 있고, 그 아래에 몸을 한쪽으로 약간 틀고 있는 보살이 서 있다. 머리에는 화려한 관을 쓰고, 어깨에는 휘날리는 천의를 두르고 있다. (출처: 중앙박물관)

OLYMPUS DIGITAL CAMERA회화 단편, 繪畵斷片, 투루판 토유크 석굴, 10~11세기. 세명이 인물이 흰옷을 입고 있어 마니교도를 그린 그림으려 알려져 있지만, 논란이 되는 부분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 그림에는 왼쪽에 있는 문을 향해 세 명의 인물이 나란히 서 있다. 문의 왼쪽에도 또 다른 인물의 윤곽이 희마하게 보인다. 배경은 붉은색이며 오른쪽 윗부분은 여러 개의 검은 점으로 덮여 있다. 흰옷을 입은 세명의 인물을 마니교도(摩尼敎徒)로 보는 견해가 있다. 다만 이들이 쓰고 있는 모자가 투루판 지역에서 출토된 자료에 등장하는 마니교도의 모자와 다른 모양이어서 앞으로 면밀한 연구가 필요하다. 최근 과학적 조사를 통해 이 그림은 면에 그려진 것으로 밝혀졌다. (출처: 중앙박물관)

SANYO DIGITAL CAMERA투루판 베제클리크(伯孜克里克, Bezekllik) 석굴사원, ‘베제클리크’은 위구르어로 ‘아름다운 그림으로 장식된 곳’이라는 뜻이다.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화려한 벽화가 많이 남아 있는 베제클릭 석굴사원은 서역북도에 위치한 투루판 일대에서 가장 큰 석굴사원군이다. 원래 80기 이상의 불교와 마니교 석굴이 만들어졌으나, 현재는 50기 정도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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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화경변단편, 法華經變斷片, 투루판 베제클리크 석굴 제23굴, 9세기

제23굴 전실에 그려진 <법화경변> 단편이다. 벽화의 윗부분에는 여러 색의 구름으로 이루어진 둥근 구획 안에 보살의 성중(聖衆)이 배치되어 있다. 중앙의 연꽃대좌 위에는 정면을 향해 가부좌(跏趺坐)를 한 보살이 있고, 그 주위로 보관과 목걸이, 팔찌 등의 장신구를 한 보살이 있다. 벽화의 아랫부분에는 상대적으로 작게 표현된 인물들이 말, 낙타 등을 이끌고 오른쪽으로 나아가고 있다. (출처: 중앙박물관)

OLYMPUS DIGITAL CAMERA천불도 단편, 千佛圖斷片, 투루판 베제클리크 석굴 제18굴, 6~7세기

제18굴 회랑에 그려진 천불도 단편이다. “천불”이란 무수히 많은 부처를 가리킨다. 부처는 불법과 동일시되기 때문에, 수많은 부처를 그린 천불도는 불법이 우주에 편재함을 상징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대체로 열과 행에 따라 동일한 형식의 부처가 반복되는 구성이다. 천불도 단편에서 부처는 가는 흰색선으로 이루어진 사각형의 구획 안에 배치되어 있으며, 통견의 법의를 입고 선정인(禪定印)을 취하고 있다. 이목구비가 큰 얼굴, 명암법, 어두운 배경색은 모두 베제클리크 초기 벽화의 특징이다. (출처: 중앙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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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귀상 단편, 惡鬼像斷片, 투루판 베제클리크 석굴 제15굴, 10~12세기,

베제클리크 석굴 제15굴 중당(中堂)의 네 모퉁이에는 사천왕이 그려져 있다. 이 벽화는 안쪽 좌측 벽에 그려진 사천왕 앞에 앉아 있는 악귀를 그린 것이다. 악귀는 겁에 질린 듯이 눈을 크게 뜨고 입을 벌리고 있으며, 두 손은 가슴앞으로 모아 화살 2개를 쥐고 있다. 오른쪽에는 사천왕의 오른쪽 발과 코끼리 머리장식을 한 오른쪽 다리 일부가 보인다. 악귀의 과장된 표정과 근육, 화려한 채색 등이 특징이다.
베제클릭석굴사원, ‘베제클릭’은 위구르어로 ‘아름다운 그림으로 장식된 곳’이라는 뜻이다.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화려한 벽화가 많이 남아 있는 베제클리크 석굴사원은 서역북도에 위치한 투루판 일대에서 가장 큰 석굴사원군이다. 원래 80기 이상의 불교와 마니교 석굴이 만들어졌으나, 현재는 50기 정도 남아 있다.  (출처: 중앙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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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귀상단편, 惡鬼像斷片, 투루판 베제클리크 석굴 제 15굴, 10~12세기,

눈이 세개인 악귀가 표현된 벽화 단편이다. 제15굴 중당에는 각 모퉁이에 사천왕이 그려져 있는데, 이 악귀는 입구 좌측에 그려진 사천왕 옆에 그려 있던 것으로 추정된다. 녹색 피부의 악귀는 타원형의 얼굴에 눈을 부릅뜨고 있으며 화려한 장신구를 착용하였다. 오른손은 아래로 내리고 왼손은 위로 올려 긴 화살통을 들고 있다. 악귀의 색채 구성과 표현방식이 제15굴 중당에 그려진 화두금강(火頭金剛) 단편과 유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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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막, 帳幕壁畵斷片, 투루판 베제클리 석굴사원 제15굴, 10~12세기, 회랑 벽면과 천정이 만나는 부분에 그려진 장식문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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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막, 帳幕壁畵斷片, 투루판 베제클리크 석굴사원 제15굴, 10~12세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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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씨가가 있는 벽화 단편, 베제클리크 석굴사원, 10~12세기. 위구르어와 한자로 쓴 명문이 있는 벽화 단편이다. 공양자의 이름과 발원 시기를 기록한 것으로 여겨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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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왕(Vidya-raja), 베제클리크 석굴사원, 10~12세기,

분노에 찬 모습을 한 채로 화염에 둘러싸여 있는 명왕의 하반신에 해당하는 벽화이다. 베제클릭 제 20동굴의 중당 벽화에서 확인되는 유사한 도상에 의거하여 볼 때, 이 상은 6개의 팔을 지니고 각각 칼, 도끼, 법륜 등을 든채 오른쪽을 향해 공격하는 자세를 취하고 있었을 것이다. (출처: 중앙박물관)

서원화(Pranidhi scene in Bezeklik Caves),
베제클릭 석굴사원, 베제클릭 석굴사원에서 그 형식이 완성되고 널리 그려진 대표적인 벽화로 ‘서원화’가 있다. 석가모니가 각기 다른 전생에서 당시의 부처(현재의 시점에서 볼 떄 과거불)로 부터 깨달음을 얻을 것이라는 약속을 받는 이야기가 한 화면에 압축적으로 그려져 있다. <출처:중앙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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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원화 단편, 誓願畵斷片, 투루판 베제클리크 석굴, 제33굴, 10~12세기, 복제품, 석가모니가 전생에 상인이었을 때 모습을 그린 그림이다.

제33굴 오른쪽 벽 안쪽에서 2번째로 배치된 서원화의 일부분이다. 서원화는 석가모니가 각기 다른 전생에서 당시의 부처, 즉 현재의 시점에서 볼 때 과거불을 만나는 이야기를 주제로 한다. 이 벽화에는 두 명의 인물이 나란히 앉아 공양물이 담긴 화려한 쟁반을 들고 있고, 왼쪽 끝에는 공양의 대상이 되는 과거불의 광배, 발, 옷자락 등의 일부가 보인다. 인물의 얼굴과 복장에 각기 다른 개성이 잘 표현되어 있다. 차림새로 보아 당시 실크로드에서 상인으로 활약한 소그드인과 위구르인을 모델로 한 것으로 보인다. (출처: 중앙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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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원화, 석가모니가 전생에 왕이었을 때, 베제클리크 석굴사원, 10~12세기. 복제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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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원화, 석가모니가 전생에 왕이었을 때, 베제클리크 석굴사원, 10~12세기. 복제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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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원화, 석가모니가 전생에 수행자였을 때, 베제클리크 석굴사원, 10~12세기, 복제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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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원화, 석가모니가 전생에 왕이었을 때, 베제클리크 석굴사원, 10~12세기. 복제품

SANYO DIGITAL CAMERA투루판 교하고성 대불사 절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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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불도 단편, 千佛圖斷片, 투루판 아르호 석굴 제4굴, 10~12세기

야르호 석굴은 투루판의 교하고성(交河古城) 서쪽면의 암벽을 파서 만들었고, 총7기가 현존한다. 이 벽화는 제4굴에 그려진 천불도의 일부이다. 제4굴의 천불도에는 밝은 바탕색 위에 선묘 위주로 표현된 부처가 그려져 있다. 얼굴, 법의, 연꽃 대좌 모두 단순하고 평면적으로 표현되었다. 법의의 경우 다리부분은 좌우로 긴 타원형이며, 상의는 U자형 선을 반복하여 묘사했다. 두광(頭光)과 신광(身光)으로 이루어진 광배는 몇겹의 원으로 표현하고 녹색과 함께 붉은 색을 더했다. 이 천불도의 방제에는 “나무(南無)”라는 존칭과 함께 부처의 이름인 “통천불(通天佛)”이 쓰여 있다. (출처: 중앙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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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화단편, 壁畵斷片, 투루판, 10~12세기

<출처>

  1.  중앙박물관
  2.  두산백과
  3.  위키백과
  4.  한국민족문화대백과

 

[중앙박물관 중앙아시아실] 중앙아시아의 불교조각

중국 신강 위그루 자치구에 위치한 호탄(和田)은 타림분지 남서쪽에 위치한 고대의 왕국이다. 옥(玉) 생산지였던 대월지(大月氏)가 있었던 곳으로 고대 동.서교역로에서 중요한 거점이었다. 한무제때 실크로드가 개척된 이후 서역문화와, 불교의 전파에 큰 역할을 했던 곳이다. 투루판은 한나라때 흉노를 견제하기 위해 한인들이 거주한 이래로 당나라때 고창국을 비롯한 한족의 영향을 받은 지역으로 지역중심지였던 교하고성, 고창고성을 비롯하여 주변 계곡 등에 많은 불교 유적들이 남아 있는 곳이다. 이 지역에서 출토된 불상들은 건축물과 마찬가지로 흙으로 빚어 만든 소조상이 대부분이며, 그 형태는 인도와 중동의 영향을 받은 간다라 양식이 많다.

불교는 기원전 3세기경 아소카왕에 의해서 인도와 주변국으로 전파되기 시작하여 기원전 2세기경에는 중앙아시아 박트리아를 비롯하여 실크로드 교역상에 있던 크고 작은 국가들을 통해서 중국에 전파되었다. 당시 불교가 크게 융성했던 지역으로는 대월지, 안식국이라 불린 파르티아, 강거라 불렸던 소그드, 쿠챠 등이 있다. 또한 서유기의 주인공인 현장이나 왕오천축국전을 남긴 혜초 등 많은 학승들이 실크로드를 경유해서 불교성지 순례를 다녀왔으며, 불경들이 다양한 언어로 번역되었다.

OLYMPUS DIGITAL CAMERA보살/불법을 수호하는 신, 菩薩/天部像, 투루판, 6~7세기. 그리스 조각상에서 볼 수 있는 사실적인 표현이 특징인 간다라미술의 특징이 잘 나타나 있다.

머리 부분만 남아 있는 불상의 일부로, 보살이나 불법을 수호하는 신이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각 상이 조금씩 차이는 있지만, 넓은 이마와 우아한 곡선을 그리는 머리카락의 표현, 머리 장식에서 유사성을 보인다. 얼굴 표현에서는 이목구비가 중앙에 집중되어 있는 것이 특징이다. 오타니 탐험대가 교하고성(交河古城)과 무르툭에서 가져온 다른 불상과 유사한 모습을 지니고 있다. (출처:중앙박물관)

불교조각
중앙아시아의 불교 조각은 미란, 호탄, 쿠차, 투루판 지역의 여러 유적에 전한다. 이 지역의 불교 조각은 소조상이 대다수를 차지하며, 양식과 도상은 간다라의 영향을 기반으로 하면서 지역적인 특징을 발전시킨 모습을 보인다.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는 불교 조각의 대다수는 서역 남도(西域南道)의 대표적인 불교의 중심지인 호탄에서 출토된 것이다. 이외에도 투루판과 옛 언기국(焉耆國)에 속하는 카라샤르 지역의 예도 일부 소장되어 있다. (출처: 중앙박물관)

OLYMPUS DIGITAL CAMERA불교전파 경로에 있는 중앙아시아의 주요 불교유적.

OLYMPUS DIGITAL CAMERA실크로드의 주요 거점도시였던 호탄과 카라사르에서 출토된 불교 조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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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 佛像, 호탄(和田), 4~5세기. 실크로드의 중요 거점이었던 호탄에 출토된 소조불상이다. 전형적인 간다라 불상의 형태를 하고 있다.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된 호탄 출토의 소조상 중에서 가장 크기가 큰 예이다. 얼굴의 전반적인 형태와 반쯤 감고 있는 눈의 형식적인 표현이 호탄의 대표적인 불교 유적인 라와크 스투파에서 발견된 불상과 유사하다. 머리부분에는 물결치는 듯한 머리카락 표현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출처: 중앙박물관)

OLYMPUS DIGITAL CAMERA무사, 武士像, 카라사르, 6~7세기. 언기국으로 알려진 중앙아시 카라사르에서 출토된 소조상이다. 틀을 이용해 대량으로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서역 북도에 위치한 카라사르(Karashar)는 중국 문헌에 언기국(焉耆國) 또는 오이국(烏夷國)으로 기록되어있다. 이곳의 불교유적은 평지 사원과 석굴사원으로 이루어졌으며, 5~8세기로 편년되는 다양한 불상이 출토되었다. 쇼르축(Shorchuk), 식신(Shikshin)등 다양한 명칭으로 불린다. 여기 전시된 작품은 무사의 머리 부분이다. 영국박물관 등 여러 박물관의 컬렉션에도 동일한 유형의 상이 전하고 있어, 틀을 이용하여 대량으로 제작된 것으로 보인다. (출처: 중앙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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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가 있는 나무 막대기, 木片, 호탄, 6세기, 공양자의 이름을 적어 불상 안쪽에 안치해 두는 주심목(主心木)이다. 앞뒤에 글씨가 있어, 공양자의 이름과 제작연대를 추정할 수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연꽃무늬 벽돌, 蓮花紋方甎, 투루판(吐谷渾) 토유크(吐浴溝), 8세기, 삼국시대 이후 한반도에서도 많이 볼 수 있는 벽돌의 형태이다.

투루판 토유크 석굴사원에서 출토된 벽돌로, 사원 바닥에 깔려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위에서 내려다 본 활짝 핀 연꽃이 벽돌의 중앙 부분을 가득 채우며, 네 모퉁이에는 꽃봉우리가 작게 묘사되어 있다. 가장자리의 좁은 운양대에는 당초문이 새겨져 있다. (출처: 중앙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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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라피스와 하포크라케스, 호탄, 2~3세기

세라피스는 이집트 프롤레마이오스 왕조(기원전 304 ~ 30년) 시기에 새롭게 탄생한 신으로, 그리스의 제우스와 같은 모습으로 형상화되었다. 대좌에 앉아 있는 세라피스는 왼손에는 풍요의 뿔을 들고, 오른손은 나체의 소년 머리 위에 올려놓고 있다. 오른편에 서 있는 소년은 오른손으로 입을 가리고 있는데, 그는 세라피스와 종종 함께 숭배되었던 침묵의 신 하포크라케스이다. (출처: 중앙박물관)

OLYMPUS DIGITAL CAMERA코끼리, 像, 쿠차(庫車) 쿰트라(庫木吐拉) 석굴사원, 8세기.

OLYMPUS DIGITAL CAMERA 코끼리, 像, 쿠차(庫車) 쿰트라(庫木吐拉) 석굴사원, 8세기.

정면을 바라보고 있는 코끼리 머리와 발을 표현한 부조이다. 간다라 지역과 서역북도의 불교 유적지에서 유사한 예가 보이며, 건축물의 기단부나 불상의 대좌 장식의 일부였던 것으로 보인다. (출처: 중앙박물관)

OLYMPUS DIGITAL CAMERA연꽃에서 다시 태어나는 모습, 蓮花化生像, 호탄, 6~7세기

OLYMPUS DIGITAL CAMERA연꽃에서 다시 태어나는 모습, 蓮花化生像, 호탄, 6~7세기

몇겹의 꽃잎으로 이루어진 연꽃 가운데에서 인물이 화생(化生)하는 순간을 묘사한 스투코로 만든 조각이다. 불교에서는 부처의 세계인 정토(淨土)에서 태어날 때 연꽃에서 태어난다고 하는데, 연꽃은 청정함과 깨달음의 상징으로 불교 미술에 자주 이용되는 모티프이다. (출처: 중앙박물관)

OLYMPUS DIGITAL CAMERA연꽃에서 태어나는 모습, 蓮花化生像

OLYMPUS DIGITAL CAMERA연꽃 속의 작은 불상, 蓮花中佛座像, 호탄, 6~7세기

OLYMPUS DIGITAL CAMERA연꽃 속의 작은 불상, 蓮花中佛座像, 호탄, 6~7세기

OLYMPUS DIGITAL CAMERA광배 파편, 光背破片, 호탄, 6세기

OLYMPUS DIGITAL CAMERA광배 파편, 光背破片, 호탄, 6세기

스투코로 만든 광배의 테두리 부분으로, 연꽃 문양으로 장식된 띠와 불꽃무늬 일부가 남아 있다. 원래는 화려하게 채색되어 있었다. (출처: 중앙박물관)

OLYMPUS DIGITAL CAMERA광배 파편, 光背破片, 호탄 부근, 6~7세기

여기 보이는 조각 파편 중에는 교각의 자세를 취한 불상, 꽃무늬, 기하학적 문양이 보인다. 호탄의 라왁 사원지에서 발견된 불상 광배의 일부와 비슷한 모습을 보여, 이와 유사한 모습의 광배에서 떨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출처: 중앙박물관)

SANYO DIGITAL CAMERA투루판 고창고성 대불사 절터. 당대(唐)에 투루판에서 번성했던 국씨고창국의 도읍이었던 고창고성 중심부에 있는 절터이다. 이곳에서 현장법사가 머물면서 설법을 전했다고 한다.

SANYO DIGITAL CAMERA투루난 교하고성에 남아 있는 대불사 절터. 중앙아시아에 있었던 사찰의 모습을 살펴볼 수 있다.

<출처>

  1.  문화재청
  2.  두산백과
  3.  위키백과
  4.  한국민족문화대백과

 

 

 

[중앙박물관 중앙아시아실] 주거지 유적과 무덤 출토 유물

실크로드(Silk Road)는 중국 서안에서 출발하여 중앙아시아 사막과 초원지대를 지나 페르시아를 거쳐 로마의 비잔티움으로 연결되는 길이다. 고대 이래로 동.서 교역로이자 문화교류의 통로였다. 실크로드 상에 존재했던 정치와 문화의 중심지였던 니야, 누란, 호탄, 투르판 등지에서는 많은 주거지와 무덤이 발견되고 있으며, 그곳에서는 당시의 생활모습을 보여주는 많은 유물들이 출토되고 있다. 이곳에서 출토된 유물 중에는 중앙아시아 사막의 건조한 기후 때문에 종이, 나무, 직물과 같은 유물들이 오랜 세월에도 변하지 않고 온전한 남아 있는 경우가 많다.

중앙박물관이 소상.전시하고 있는 투르판 지역 유물 중에는 오타니 컬렉션이라 불리는 유물들이 많다고 한다. 이 유물들은 20세기초 일본 교토의 니시혼간지 주지승인 오타니 고즈이가 총3차에 걸친 중앙아시아 원정을 통해 구입하거나 약탈한 유물들로, 일제강점기에 일본 재벌이 데라우치가 총독이었던 시절 조선총독부에 기증하여 오늘날에 이르고 있다. 오타니가 수집한 5천여점의 유물중 1/3이 중앙박물관에, 1/3은 일본에, 1/3은 중국 뤼순에 있다고 한다. 오타니는 혜초가 신라의 승려였다는 것을 증명한 사람이기도 하다.

OLYMPUS DIGITAL CAMERA말을 탄 여인, 騎馬女人像, 투루판, 7~8세기

중앙아시아와 실크로드
아시아 대륙의 중심에 위치한 중앙아시아는 일반적으로 중국의 신장 위구르 자치구와 옛 ‘소련령 중앙아시아’에 속하는 카자흐스탄, 우즈베키스탄, 키르기스스탄, 타지키스탄, 투르크메니스탄을 가리킨다. 우리른 이 지역을 ‘투르키스탄(투르크인의 나라)’ 또는 ‘서역’이라고 부란다. 중앙아시아의 역사와 문화에서 유라시아를 연결하는 여러갈래의 교역로인 ‘실크로드’가 차지하는 비중은 매우 크다. 이 지역의 주민들은 동서교역로를 장악하려는 주변 여러 세력의 침입과 지배를 지속적으로 받았다. 그리고 교역로는 다양한 인종, 언어, 문화가 이 지역으로 유입되는 중요한 통로로 작용했다. 그 결과 이 지역의 문화는 고대 지중해, 인도, 서아시아, 중국 문화의 요소가 복합된 독특한 모습을 띤다. 국립중앙박물관의 중앙아시아 소장품은 대부분 현재의 신장 위구르 자치구에 해당하는 동투르키스탄 지역에서 발견된 것이다. 이 지역은 텐산산맥 이북의 초원지대에서 전개된 유목세계와 그 남쪽으 타클라마칸 사막을 중심으로 한 오아시스 세계로 구성되어 있다. 타클라마칸 사막의 남단과 북단을 지나는 서역남도와 서역북도를 통해 기원전 2세기 무렵부터 인도, 서아시아, 중국간의 교류가 본격화 되었다. 그 길목에는 여러 오아시스 도시가 세워져 상업과 종교의 중심지로 번영했다. <출처:중앙박물관>

OLYMPUS DIGITAL CAMERA중앙아시아와 실크로드. 지중해 동안 무역항 아티오크에서 당나라 수도 장안까지 이어지는 긴 교역로이다. 장안에서 신라의 수도 경주까지 교역로는 실제적으로 연장되며, 한반도를 거쳐 유라시아대륙 동쪽끝 일본열도까지 이어진다.

당나라 현장법사의 서역순례 이야기를 전해주는 소설 ‘서유기’에 등장하는 많은 왕국들과 기나긴 여정에 등장하는 고장들은 실제 실크로드상에 존재했던 곳들이다. 그 중 가장 많이 알려진 곳으로는 뜨거운 화염산과 고창국이 등장하는 투루판이 있다. 한나라가 천산산맥 북쪽 유목민족 흉노를 제압하기 위해 군사기지를 건설하고 둔전을 경영한 이래로 한족이 지역토착민과 함께 거주하면서 당나라때까지 실크로드에서 중요한 역학을 했다. 또한 남북조시대에 불교가 동아시아에 전파되는 중요한 경로이기도 하다. 투루판에서 서쪽으로 떨어진 타림분지 남부에 위치한 호탄은 옥의 생산지로 고대 월지국이 있었던 곳이다. 고대 이래로 동.서 교역에 중요한 역할을 한 지역으로 대승불교의 동아시아 전파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

주거지 유적과 무덤 출토품
극도로 건조한 기후 때문에 중앙아시아에서는 종이, 나무, 직물과 같은 유기질의 유물이 천년의 세월을 지나고도 온전한 모습으로 보존되어 있다. 이슬람화되기 이전 이 지역의 정치와 문화의 중심지였던 니야, 누란, 호탄, 투르판 등지에서는 많은 주거지와 무덤이 발견되었다. 여기에서는 문서, 가구, 직물과 같이 일상생활에 사용된 물건을 비롯하여, 죽은자를 위해 특별히 제작된 그릇, 옷, 인형, 그림 등이 출토되었다. 이를 통해 당시 사용된 여러 문자와 언어, 다양한 풍습, 그리고 안락하고 풍요로운 내세에 대한 바람을 찾아볼 수 있다. 무덤에서는 때때로 미라가 된 시신이 발견되기도 한다. <출처:중앙박물관>

SANYO DIGITAL CAMERA투루판 분지. 천산산맥 북쪽 초원지대가 끝나고 남쪽으로 드넓고 타클라마칸 사막이 시작되는 지점에 위치하고 있다. 천산산맥에서 관개수로를 통해 물을 끌여들여 농업을 하고 있다. 고대 이래로 중국이 흉노를 비롯한 초원지대의 유목민들을 견제하기 위해서 요새를 중심으로 한족이 들어와 살던 지역이다. 지금은 위그루인이 주민의 다수를 이루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로프노르 지역 소하(小河) 무덤과 유물(Xiaohe Tomb in Lop Nor). 중앙아시아 사막은 메마른 건조기후 덕분에 사막에서 수천년이 지난 직물, 가구, 문서등이 다량으로 출토되어 당시의 생활모습을 알 수 있게 해준다.

OLYMPUS DIGITAL CAMERA니야의 유적(Ancient site in Niya)

OLYMPUS DIGITAL CAMERA토기받침, 土器臺, 호탄(和田) 요트칸(約特干), 2~4세기, 그릇을 구울 때 사용한 것으로 보이는 그릇 받침이다.

OLYMPUS DIGITAL CAMERA향로, 香爐, 차르크릭, 3~4세기

OLYMPUS DIGITAL CAMERA작은 항아리, 小壺, 호탄

OLYMPUS DIGITAL CAMERA인물상, 人物像, 요트칸, 3~5세기,

소형 인물상의 단편에 해당한다. 이 중에 얼굴이 하트 모양인 여인상의 경우 완형으로 남아 있는 예가 있는데, 이는 화려한 머리 장식을 하고, 긴 옷을 입고, 아기를 안고 있는 모습을 하고 있다. 여기 전시된 예에서도 높이 올린 머리모양과 동그란 머리장식이 보인다. <출처:중앙박물관>

OLYMPUS DIGITAL CAMERA테라코타 동물상, 動物像, 요트칸, 3~5세기,

OLYMPUS DIGITAL CAMERA테라코타 동물상, 動物像, 요트칸, 3~5세기,

OLYMPUS DIGITAL CAMERA테라코타 동물상, 動物像, 요트칸, 3~5세기,

호탄 지역에서 발견된 테라코타 조각은 세계 여러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특정 유적의 발굴품이 아닌 경우가 많아 그 성격을 파악하기 어렵다. 장난감이었거나 부적과 같은 기능을 했을 것으로 여겨진다. 다양한 얼굴표정과 자세에 중점을 두고 만들어졌다. 원숭이가 자주 등장하는 점이 특징이다. <출처:중앙박물관>

OLYMPUS DIGITAL CAMERA사람과 동물의 얼굴조각, 人面.獸面彫刻, 요트칸, 3~5세기.

여기 전시된 다양한 인물, 동물의 얼굴이 묘사된 조각은 뒷면이 평평하여 용기에 부착했던 것으로 여겨진다. 형태는 단순하지만, 공통적으로 눈을 크게 뜨고 있으며, 얼굴표정에 생동감이 넘치는 점이 특징이다. <출처:중앙박물관>

OLYMPUS DIGITAL CAMERA청동거울, 銅鏡, 투루판, 7~8세기,

거울 뒷면에는 나무, 산, 냇가를 배경으로 두 인물이 등장한다. 왼쪽 인물은 물가에 앉아 있으며, 오른쪽 인물은 소를 끌어 가고 있다. 이는 허유세이(許由洗耳)의 고사를 표현한 것으로 여겨진다. 왼쪽 인물이 왕위에 오를 것을 청하는 것을 듣고 귀를 씻었다는 허유이며, 오른쪽은 그 물을 소에게 먹일 수 없어 위쪽 개울로 소를 끌고 가는 소부(巢父)이다. <출처:중앙박물관>

OLYMPUS DIGITAL CAMERA나무접시, 木器, 쿠차(庫車) 쿰트라(庫木吐拉) 석굴사원, 7~8세기,

표면이 검게 칠하여져 있고 바닥에는 ‘금사사(金沙寺)’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다. 금사사는 쿰트라에서 살았던 당나라 사람이 운영했던 사원으로 여겨진다. 쿰트라의 GK제7굴에도 이를 언급한 글씨가 남아 있다. <출처: 중앙박물관>

OLYMPUS DIGITAL CAMERA도구, 木製道具, 투루판(吐魯番), 6~7세기

OLYMPUS DIGITAL CAMERA가면, 木製假面, 쿠차 수바시(蘇巴什), 6~7세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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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인형, 木製人形, 투루판 시르캅(期瑞克晋), 10~12세기

OLYMPUS DIGITAL CAMERA청동으로 만든 도장, 靑銅製 印章, 쿠차 쿰트라, 1~4세기

봉니(封泥)에 문양을 찍는 데 사용한 도장이다. 봉니는 고대 지중해 지역에서 유래한 것으로, 문서를 봉한 부분에 진흙을 붙이고, 그 위에 문양을 찍은 것이다. 중앙아시에서는 나무 편지를 봉할 때 사용한 봉니가 자주 발견된다. 여기에는 고대 그리시, 로마 신을 비롯하여, 페르시아 문양, 중국의 한자와 이를 변형한 문양 등이 보인다 <출처: 중앙박물관>

OLYMPUS DIGITAL CAMERA등잔, 燈盞, 호탄,

청동으로 만든 등잔으로, 서아시아 이슬람 문화군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유형이다. 벽면에 걸 수 있게 만들었느데, 걸개의 한쪽은 떨어진 상태이다. <출처: 중앙박물관>

OLYMPUS DIGITAL CAMERA주전자, 注子, 호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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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잡이 달린 항아리, 雙耳壺, 투루판, 3~4세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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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식이 있는 항아리, 壺, 호탄, 3~5세기,

그리스의 암포라(amphora)를 연상시키는 기형을 지닌 항아리이다. 페르시아에서 유래한 길상문인 연주문 형태를 따로 만들어 표면에 부착했다. 이외에도 선이나 점으로 이루어진 장식을 새겨 넣었다. 입체적인 장식이 많은 점을 고려할 때, 실용적인 용기보다는 부장을 위해 만들어졌을 가능성이 큭다. <출처:중앙박물관>

OLYMPUS DIGITAL CAMERA가면, 假面, 누란(樓蘭), 청동기시대,

OLYMPUS DIGITAL CAMERA바구니, 織造容器, 누란(樓蘭), 청동기시대,

‘떠도는 호수’라고 알려진 로프노 일대에 해당하는 누란지역의 묘에서 발견된 유물이다. 바구니의 경우 풀의 뿌리로 짜서 만들었으며, 표면에는 계단 모양의 무늬가 있다. 이러한 용기는 식량 등을 넣고 천으로 입구를 덮은 후 시신의 머리맡 등에 안치되었다. 가면의 경우 나문에 가죽을 씌워 만든 것으로 눈과 치아에는 뼈를 부착하였다. 눈을 부릎뜨고 있고, 치아를 모두 드러낸 다소 위협적인 표정으로 보아, 무덤을 지키기 위하여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출처:중앙박물관>

OLYMPUS DIGITAL CAMERA삼족벼루, 三足硯, 차르크릭(若羌),3~4세기, 붓과 붓통, 筆.筆筒, 누란, 7~8세기, 당대의 유물로 추정된다. 허리에 찰 수 있도록 고안된 것으로 보아 휴대용인 것을 알 수 있다.

<출처>
1. 중앙박물관
2. 두산백과
3. 위키백과
4. 한국민족문화대백과

 

 

 

[중앙박물관 중앙아시아실] 아프로시압 벽화, 조우관을 쓴 한반도인이 등장하는 벽화

중앙박물관 3층 중앙아시아실 입구에는 아프로시압 박물관의 협조를 받아 2년에 걸쳐 제작한 아프로시압 벽화를 전시하고 있다.  벽화는 사마르칸트 옛 중심시였던 아프로시압 도성유적에서 발견된 것으로 7세기 경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벽화에는 한반도인으로 추정되는 조우관을 쓰고 환두대도를 차고 있는 사람이 등장하고 있어, 당시 한반도와 중앙아시아 사이의 교류를 보여주는 유적으로 평가받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사마르칸트 아프로시압 벽화(Wall painting at the Ambassador’s Hall in Afrosiab, Samarkand), 모사본,

전시된 실벽모사도는 서벽에 그려진 조우관을 쓴 고대 한국인과 소그드 명문이 적힌 옷을 입고 있는 인물 등 일부를 복원 모사한 것으로 동북아역사재단이 아프로시압 박물관의 협조를 받아 2013년부터 2014년까지 2년에 걸쳐 제작한 것이다. <출처: 중앙박물관>

OLYMPUS DIGITAL CAMERA아프로시압 도성유적

OLYMPUS DIGITAL CAMERA아프로시압 벽화 중 서쪽벽화(오른쪽), 조우관을 쓴 인물을 볼 수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아프로시압 벽화 중 서쪽 벽화(왼쪽).

SANYO DIGITAL CAMERA벽화편, 사마르칸트 아프라시압, 7세기, 우즈베키스탄 국립역사박물관, 실제 아프라시압 벽화르 장식한 벽화편으로 푸른색 안료가 상당히 화려하고, 인물의 강인한 인상이 잘 묘사되어 있다.

아프라시압은 사마르칸트의 옛 도성지가 위치한 곳으로, 이곳에서는 고대 한국인이 등장하는 것으로 잘 알려진 벽화가 발견되었다. 전시품은 이곳에서 발견된 벽화편으로, 원추형 투구를 쓴 전사의 머리 부분이 그려져 있다. 타원형의 얼굴이 3/4관으로 표현되었고, 콧등에 모여 있는 눈섭과 치켜뜬 눈이 긴장된 심리 상태를 보여준다. 푸른색 안료가 잘 남아 있다. <출처:중앙박물관>

아프로시압 벽화의 발견
사마르칸트의 옛 중심지인 아프로시압 도성지 유적에서 1965년 도로 공사 중에 우연히 발견되었다. 발견된 지점은 제23구역 제1호실에 해당하는 방으로, 왕이나 상류층 저택의 접견실에 해당하는 공간으로 추정된다. 방은 정사각형의 모양으로, 한 변의 길이는 11m에 달한다. 방의 윗부분은 공사 중에 파과 되어 그 내부 벽면을 장색했던 벽화는 현재 2m 정도의 높이까지만 보존되어 있다. <출처: 중앙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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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화속에 등장하는 삼국시대 한반도인으로 추정되는 인물. 깃털로 장식된 모자인 조우관을 쓰고 있으며, 허리에는 고리모양큰칼(環頭大刀)을 차고 있다.

벽화속의 한국인
서쪽 벽면에 그려진 벽화 중에는 새의 깃털로 장식된 모자인 조우관(鳥羽冠)을 쓴 인물이 등장한다. 『위서』 「고구려전」에는 “머리에 절풍건(折風巾)을 쓰는데, 그 모양이 고깔과 같고 두건의 모서리에 새의 깃을 꽂는다.”라는 기록이 나온다. 또한 고구려 고분벽화, <양직공도(梁職貢圖>, 신라, 백제, 가야 고분에서 나온 출토품은 새의 깃털이나 그 모형을 모자에 부착하는 장식법이 고대 한반도에서 보편적이었음을 보여준다. <출처: 중앙박물관>

OLYMPUS DIGITAL CAMERA벽화의 연대를 추정할 수 있는 소그드어로 적힌 명문이 남아 있는 옷자락이 있는 부분. 명문에 언급된 인물은 바르후만 왕으로 당 고종에 의해 도독에 임명된 인물이다.

벽화의 시기
서쪽 왼편에 그려진 한 인물의 옷자락에 남아 있는 소그드 명문은 벽화의 연대를 추정하는 결정적인 증거를 제공한다. 명문에는 차가니안(Chaganian, 사마르칸트 남부의 작은나라)와 차치(Chach, 타수켄트 지역)의 사신이 사마르칸트에 와서 이곳의 왕인 바르후만을 만나 대화를 나누는 내용을 담고 있다. 바르후만 왕은 중국의 사서에 ‘불호만(拂呼縵)’으로 언급되는 인물로, 658년 당 고종에 의해 강거도독부(康居都督府)의 도독으로 임명되었다. 이러한 자료를 근거로 아프로시압 벽화의 연대는 7세기 중엽으로 추정한다. <출처: 중앙박물관>

OLYMPUS DIGITAL CAMERA왕으로 추정되는 벽화 가운데 등장하는 인물들.

OLYMPUS DIGITAL CAMERA벽화 아래쪽에 그려진 장식.

OLYMPUS DIGITAL CAMERA서벽벽화,

서벽은 입구에 들어설 때 되는 벽으로, 가장 중요한 벽화가 그려진 곳이다. 현존하는 벽화를 보면 여러 사신과 무사가 서 있거나 앉아 있는 모습을 볼 수있다. 이들이 향하고 있는 벽의 윗부분에 누가 그려져 있었는지에 대해서는 여러 의견이 있다. 가운데 부분에 바르후만 왕, 돌궐 왕, 또는 소그드의 신이 그려져 있었다고 보는 견해와, 벽의 양측에 바르후만 왕과 둘궐 왕이 좌우대칭으로 배치되었다는 견해가 있다. 오른쪽 끝에는 조우관을 쓴 고대 한국인이 등장한다. <출처: 중앙박물관>

OLYMPUS DIGITAL CAMERA동벽벽화,

훼손이 가장 심한 부분으로 정확한 내용은 파악하기 어렵다. 활을 쏘는 어린아이, 물결문양 등이 남아 이다. <출처: 중앙박물관>

OLYMPUS DIGITAL CAMERA북벽벽화,

왼편에는 중국식 복장을 한 여인들이 뱃놀이하는 장면이, 오른쪽에는 남자들의 사냥장면이 그려져 있다. <출처: 중앙박물관>

OLYMPUS DIGITAL CAMERA남벽 벽화, 왼쪽끝에는 사당으로 보이는 건물이 있으며 이를 향하는 행렬이 그려져 있다. 조상을 숭배하는 의식이나 결혼식 장면으로 해석된다.

<출처>
1. 중앙박물관
2. 두산백과
3. 위키백과
4. 한국민족문화대백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