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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박물관 세계문화관] 투루판 지역의 한문자료, 실크로드 경계의 삶

고창국(高昌國)은 투루판분지를 5~7세기 동안 한족이 지배했던 정권을 말한다. 고창국은 서유기에 등장하는 현장법사 일행이 방문하여 융숭한 대접을 받은 것으로 유명하다. 유적으로는 현 투루판 도심에서 동쪽으로 40여km 떨어진 곳에 위치한 고창고성이 남아 있다. 중앙아시아에 위치하지만 한족문화와 중앙아시아문화가 혼합된 형태를 보여주고 있다. 남북조시대에 서역을 통해서 불교가 전래되면서 크게 번성한 지역이기도 하다.

투루판 아스타나 고분군은  고창고성 부근 포도밭 한 가운데에 위치한 고창국과 당나라 때의 무덤들이다. 약 456기의 무덤이 발굴되었는데, 무게가 총 6톤이 넘는 2,700여 건의 문서가 출토되었다. 출토문서들 중에는 소그드어, 위구르어로 쓰인 불교, 마니교, 경교 등의 종교 문서가 있어 사료적 가치가 상당히 높다.

중앙박물관 세계관 투루판 한문자료 20220125_01<2. 당 중앙정부가 서주로 보낸 전국의 예산 집행 지침에 관한 문서, 투루판 아스타나 230호 무덤/당 676년/종이, 먹>

중앙박물관 세계관 투루판 한문자료 20220125_02<2. 당 중앙정부가 서주로 보낸 전국의 예산 집행 지침에 관한 문서, 투루판 아스타나 230호 무덤/당 676년/종이, 먹>

당 고종 시기에 중앙정부가 전국 각 지방관청에 내려 보낸 679년도 예산편성과 집행 지침으로, 투루판의 서주(西州) 관청에서 하위 5개 현에 배포하기 위해 베낀 문서의 일부이다. 중국 신장 위구르자치구박물관과 일본 류코쿠대학이 소장한 문서 조각과 함께 본래는 하나의 문서였으나, 1912년 오타니 탐험대가 무덤 속 부장품을 거두어 가는 과정에서 뜯겨 나갔다. 이 문서 조각은 현존하는 한.중.일 소장 문서 가운데 가장 앞부분에 해당한다. 조사를 통해 드러난 문서에는 당 제국 각지에서 거둔 조세의 배분.보관 및 운송, 외국 사신의 접대 비용, 호랑이 등 맹수를 죽인 자에 대한 포상 재원 등에 관한 지침이 담겨 있다. 다른 사료에서는 확인할 수 없는 당대 제도 전반의 다양한 항목을 담고 있어 당 전기 국가 재정 운용의 구체적인 모습을 살펴 볼 수 있는 귀중한 문서이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2022년)

중앙박물관 세계관 투루판 한문자료 20220125_03<3. 고창현의 도주 위사 처분 보고에 대한 서주 창조사의 지시 문서, 투루판 아스타나 230호 무덤/당 675~676년 추정/종이, 먹>

시신깔개를 덮고 있던 또 다른 종류의 문서 조각이다. 당이 투루판 지역을 점령한 시기에 고창현에서 신고한 도주한 병사(衛士)의 처분에 대한 안건을 서주도독부의 창조사(倉曹司)에서 처리한 문서이다. 2020년 중앙아시아 고문자 조사에서 신장위구르자치구박물관에 소장된 같은 문서 두 점을 찾았고, 그중 한 조각과 연결되는 것을 확인했다. 투루판에서 출토된 당대 관문서 중에는 문서를 검사한 관리의 서명 또는 이름이 적혀 있는 것들이 있다. 중국 측 조각에 있는 문서 결재자의 서명이 ‘장원리’라는 인물의 것임을 확인하여 문서의 작성 연대가 그가 해당 직위에 있던 675~676년 무렵으로 밝혔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2022년)

중앙박물관 세계관 투루판 한문자료 20220125_04<1. 시신깔개, 투루판 아스타나 230호 무덤/ 당 703년/초제>

시신을 눕히기 위한 장례용품이다. 보통 투루판 지역에서는 국씨고창국시기부터 당왕조 지배기에 걸쳐 관 대신에 갈대 줄기를 엮은 자리를 사용하였다. 무덤의 주인인 장예신은 국씨고창국 최고 가문의 후손이다. 이 시신깔대의 앞뒷면에는 당이 이 지역에 설치한 서주도독부에서 폐기한 문서가 감싸고 있었다. 문서 뒷면에는 테두리를 따라 기(綺)라는 자주색 직물 조각이 붙어 있다. 이처럼 문서와 직물을 덧대어 꾸민 시신깔개는 매우 희귀한 사례이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2022년)

부장품을 만드는데 사용된 투루판 문서
투루판 문서는어떤 형태로 남아 있을까? 여기 있는 신발과 인형은 모두 투루판 무덤에서 발견된 부장용품으로 문서를 재료로 사용한 것들이다. 문서는 투루판의 건조한 기후 덕분에 거의 완전한 상태로 보존되었다. 당시 투루판에서는 관청 등에서 폐기한 문서를 재활용하여 장례용품을 만들었다. 문서를 꼬아서 무덤에 넣을 인형의 팔을 만들거나 신발의 안감 등으로 종이 문서를 사용하였다. 문서는 장례용품을 만드는 과정에서 재단되어 대다수가 파편으로 남아 있다. 이런 문서는 일부 조각들을 접합하여 대략의 내용을 파악할 수 이다. 문서는 공문서가 많지만 일부 매매 계약서, 편지, 처방전, 글씨기 연습장 등도 있다. 투루판 문서는 편집되지 않은 당대의 기록으로 구체적인 내용을 담고 있어 동시기 역사를 연구하는데 중요한 자료로 평가된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2022년)

높은 지위에 있던 관리의 무덤에서는 시종, 무사, 관리, 무용수나 약사를 표현한 인형이 다량으로 출토되는 경우가 많다. 고대 이래로 이어온 순장의 풍습이 남아 있는 부분으로 죽은이를 사후세계에 보필할 수 있도록 껴묻거리로 묻은 것으로 보인다. 투루판 지역에서는 건조한 기후 때문에 종이로 만든 인형이 손상되지 않고 남아 있었다. 종이는 문서를 재활용한 것으로 그 내용은 자료로서 큰 가치가 있다.

중앙박물관 세계관 투루판 한문자료 20220125_33
<1. 문인, 투루판 카라호자/7~8세기>

당대의 정형적인 관식인 복두를 쓰고 있다. 팔 부분은 종이를 꼬아서 만들었으며, 이는 투루판에서만 볼 수 있는 제작 방식이다. 이처럼 이 지역에서는 부장품을 만들 때 폐기된 문서를 재활용한 경우가 많다. 이러한 자료는 ‘투루판 문서’라고 불리며, 당시 역사를 연구하는데 중요한 자료를 제공한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2022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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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여인, 투루판 카라호자/7~8세기>

7~8세기 당대의 이상적인 여인상을 보여주는 인형들이다. 납이 섞인 흰색 안료인 연백(鉛白)을 바른 후 채색을 하여 색이 매우 선명하다. 머리 부분에는 금박의 장식이 있어 고위층의 무덤에 매장되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2022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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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환관, 투루판 카로호자/7~8세기>

중앙박물관 세계관 투루판 한문자료 20220125_07<4. 신발, 투루판/6~7세기,>

신코 부분이 구름 모양을 솟은 전형적인 당대의 신발이다. 겉감으로 녹색 계통의 마름모꼴 능화(菱花紋)이 표현된 견직물을 사용했다. 신의 안쪽은 줄무늬가 있는 견직물로 장식했고, 밑창에는 종이를 대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2022년)

중앙박물관 세계관 투루판 한문자료 20220125_08<5. 신발, 투루판/6~7세기>

중앙박물관 세계관 투루판 한문자료 20220125_09
<6. 신발, 투루판.6~7세기>

여덟 겹의 종이로 신발을 만들었고, 안쪽에는 붓글씨의 흔적이 나아 있다. 남가 귀한 투루판에서는 장례 때 죽은 이의 신발을 종이로 만들어 함께 묻는 예가 많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2022년)

묘표(墓表)는 사각형으로 다듬은 돌이나 전돌 위에 죽은 이의 이름과 관직, 사망일자, 사망 당시의 나이 등을 간략하게 기록한 것으로, 무덤 입구에 매장했다. 관직이 기록되어 있기 때문에 관인과 그의 가족의 무덤에만 매장할 수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한인의 이주와 함께 유입된 문화로 5~8세기까지 제작되었으며, 당시의 제도와 사회상을 연구하는데 중요한 자료이다. 무령왕릉에서도 비슷한 형식의 것이 발견되었다.

중앙박물관 세계관 투루판 한문자료 20220125_11<1. 가매구의 부인 삭겸의 묘표, 국씨고창국/582년(연창 22년)/벽돌, 진사>

중앙박물관 세계관 투루판 한문자료 20220125_10
<모표 내용>

중앙박물관 세계관 투루판 한문자료 20220125_13<2. 가매구의 묘표, 국씨고창국/586년(연창 26년)/벽돌, 진사>

중앙박물관 세계관 투루판 한문자료 20220125_12<묘표 내용>

중앙박물관 세계관 투루판 한문자료 20220125_15<3. 범숭경의 묘표, 국씨고창국/592년(연창 32년)/벽돌, 연단>

중앙박물관 세계관 투루판 한문자료 20220125_14<묘표 내용>

중앙박물관 세계관 투루판 한문자료 20220125_17<1. 국효숭의 부인 장씨의 묘표, 국씨고창국/600년(연창 40년)/벽돌, 연단>

중앙박물관 세계관 투루판 한문자료 20220125_16<묘표 내용>

중앙박물관 세계관 투루판 한문자료 20220125_19<2. 후륭관의 부인 장씨의 묘지, 당 677년(의봉 2년) 추정/벽돌>

중앙박물관 세계관 투루판 한문자료 20220125_18<묘표 내용>

중앙박물관 세계관 투루판 한문자료 20220125_21<3. 장ㅁㅁ의 묘표, 국씨고창국/583년(연창 23년)/벽돌, 먹, 산화철>

중앙박물관 세계관 투루판 한문자료 20220125_20<묘표 내용>

투루판 출토 묘전
묘전(墓塼)은 무덤 주인의 이름과 이력 등을 기록한 판 모양의 벽돌을 말한다. 당시 사람들은 먼 훗날 무덤이 허멀어진 뒤라도 무덤 주인공이 누구인지 확인할 수 있도록 묘전을 제작하여 두덤의 널방 입구나 통로에 두었다. 중국에서는 주로 돌에 글자를 새겼지만 돌이 귀했던 투루판에서는 흙을 구운 벽돌을 사용했다. 묘전은 국씨고장국 시기인 530년대부터 확산되었다. 동시기를 전후로 이 지역에는 한인 인구가 급격히 증가하여 무덤에서도 복희여와도, 진묘수 등 중국문화의 영향을 볼 수 있다. 투루판 묘전은 투루판 문서와 더불어 다른 문헌에서 볼 수 없는 국씨고창국의 독자적 연호와 관제 및 동시기 사람들의 생사관을 살펴볼 수 있는 중요한 사료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2022년)

고창고성에서 발견된 당나라 비에서는 주인공인 강거사가 대장경을 베껴 쓰는 사경(寫經) 사업을 했던 내용이 기록되어 이다. 당나라의 영향을 받은 부분으로 상당히 오래된 비(碑)이다.

중앙박물관 세계관 투루판 한문자료 20220125_28<강거사의 대장경 조성 업적을 새긴 비석 조각, 투루판 고창고성, 당 무주 695~697년 추정, 돌>

중앙박물관 세계관 투루판 한문자료 20220125_26<아래 부분>

중앙박물관 세계관 투루판 한문자료 20220125_27<윗 부분>

중앙박물관 세계관 투루판 한문자료 20220125_36
<탁본>

중앙박물관 세계관 투루판 한문자료 20220125_22<비에 대한 설명>

중앙박물관 세계관 투루판 한문자료 20220125_23<측천 문자>

SANYO DIGITAL CAMERA<투루판 고창고상 대불사 절터>

도성유적인 고창고성에서 발견된 당나라 비의 조각이다. 비문에 따르면 주인공인 강거사(康居士)는 강국(康國, 현 사마르칸트) 출신의 소그드인 지도자였으나, 7세기 중반에 당나라로 귀순하여 투루판에 터전을 잡고 높은 지위에 올랐던 인물이다. 불교 신자였던 그는 말년에 공덕을 쌓기 위해 대장경을 베껴 쓰는 사경(寫經) 사업을 벌이고 그 경전 목록을 새긴 이 비를 세웠다. 비의 글자 가운데는 당의 측천무후가 창제하여 반포한 측천문자가 있기 때문에 무주(武周) 시기의 비로 여겨진다. 중앙아시아 고문자 조사에서 비에 새겨진 경전 목록이 당시 널리 유통된 불교경전목록인 <대당내전록(大唐內典錄)> 제8권 전체와 <대주간정중경목록>의 일부에 기초하고 있음을 밝혔다. 나아가 비 전체에 적혀 있던 사경목록의 대부분을 복원하였다. 이 두 목록에 근거하면 온전했을 당시의 비면에는 818부 4,039권이 넘는 경전의 이름이 새겨져 있어던 것으로 생각된다. 이 비는 6~7세기 투루판 지역의 비 가운데 실물로 현존하는 유일한 예로, 이 비에 새겨진 대장경의 실제 경전들을 향후 투루판 지역에서 찾아낼 수 있는 기초 자료로서 가치가 매우 높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2022년)

중앙박물관 세계관 투루판 한문자료 20220125_05<말을 탄 여인, 투루판/7~8세기>

당대 전형적인 상류층의 모습을 보여주는 여인상이다. 얼굴 전체에 하얀 분을 바른 후 뺨에는 붉은 색을 칠하고, 이마에는 붉은색 꽃문양을 그렸다. 이것은 사홍(斜泓)과 화전(花鈿)이라고 불리는 당시 유행한 화장법이다. 말에는 안장, 고삐 등이 묘사되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2022년)

중앙박물관 세계관 투루판 한문자료 20220125_32
<새머리가 있는 장식병, 투루판 카라호자/7~8세기>

물 따르는 곳과 손잡이가 만나는 부분에 새의 눈을 표현하여, 물을 따르는 부분이 새의 부리와 같은 느낌을 준다. 이와 같은 기형은 그리스의 오이노코에(oinochoe)에서 유래한 것으로 지중해 지역, 사산조 페르시아, 중국에서 금은기, 유리기, 도자기로 다양하게 제작되었다. 신라의 황남대총 남쪽 능에서도 유사한 형태의 유리병이 발견되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2022년)

무덤을 지키는 상상의 동물인 진묘수(鎭墓獸)는 시신을 안치한 널방 입구에 한 쌍이 배치되어 있는 경우가 많다.  사람 또는 짐승의 얼굴을 하고 있는데 널방을 지키는 역할을 한다. 비슷한 시기에 조성돤 백제 무령왕릉에서도 동물 진묘수가 발견되었다.

중앙박물관 세계관 투루판 한문자료 20220125_06<진묘수(鎭墓獸), 투루판 아스타나/7~8세기/흙에 채색>

투루판의 아스타나 카라호자의 무덤에는 시신을 안치한 묘실 입구에 상상의 동물 한 쌍이 배치된 경우가 많다. 이 동물은 흔히 ‘진묘수’라고 불리며 묘실 내부로 나쁜 기운이 들어오이 못하도호록 막는 기능을 ㅎ나다. 전시된 진묘수는 사람 얼굴에 짐승의 몸이 결합된 모습이며 머리 위쪽에 잘려 나간 흔적이 남아 있다. 이와 같은 형태의 진묘수는 성당(盛唐) 시기에 유행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2022년)

아스타나 고분은 투루판시 도심에서 35km 정도 떨어진 외곽에 위치해 있다. 중국 남북조시대에 해당하는 국씨 고창국과 당나라 지배기에 조성된 지배층들의 무덤이다. 유적지에 있는 2층 누각에 올라서면 남쪽편에 넓게 고분이 펼쳐져 있다. 봉분을 크게 만들지 않아 무덤을 구분하기는 힘들다.

SANYO DIGITAL CAMERA<투루판 아스타나 무덤>

중앙박물관 세계관 투루판 한문자료 20220125_30<투루판 주요 유적>

중앙박물관 세계관 투루판 한문자료 20220125_31
<투루판 지역의 한문자료, 시크로드 경계의 삶>

투루판 지역이 한문자료, 실크로드 경계의 삶
국립중앙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는 투루판 지역의 한문자료는 1912년 일본 오타니 탐험대의 대원 요시카와 고이치로(1885~1978년)가 중국 신장 위구르자치구 북동부의 투루판 지역에서 수집한 것이다. 이 한문자료들은 투루판의 한인왕조였던 국씨고창국 시기인 6세기 말부터 당 왕조 지배기인 7세기 말에 작성된 것들로, 이번 전시를 통해 처음으로 공개된다. 대표적인 것으로는 먼저 투루판의 독특한 장례용품인 시신깔개에 붙어있던 당나라 문서가 있다. 이 문서를 조사한 결과, 같은 문서의 읿부가 현재 중국과 일본에도 소장되어 있으며, 특히 중국 소장 문서 조각과 서로 연결됨을 확인하였다. 이 문서는 7세기 후반 당 고종 때 국가 재정 전반과 군사 제도에 관한 당나라 관문서이다. 한편 죽은 자의 존재를 후세에 기억하기 위한 묘전도 전시한다. 특히 일부 묘전 조각을 새롭게 확인하거나 접합하여 복원한 해석문을 볼 수 있다. 마지막으로 투루판의 중심지였던 고창고성에서 출토된 소그드인 불교 신자의 대장경 조성 업적을 새긴 비편을 소개한다. 비문에 새겨진 경전들이 당대 장안 서명사(西明寺)에서 조성한 대장경 목록과 일치하는 것을 확인하고 서로 비교하여 사라진 부분을 포함한 전체 비의 형식을 복원했다. 투루판 지역의 한문자료는 국내외 관련 연구에 큰 반향을 불러 일으킬 것으로 기대되며, 실크로드 경계에서 한인과 서역인이 공존했던 삶의 흔적을 살피는 소중한 기회가 될 것이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2022년)

<출처>

  1. 안내문, 중앙박물관, 2022년
  2. 안내문, 중앙박물관, 2017년
  3. 위키백과, 2023년

 

 

 

 

[중앙박물관 세계문화관] 로프노르와 누란 수집품, 중앙아시아 선사문화

누란(樓蘭, Kroraina)은 중국 신장 위구르 자치구에 있는 작은 고대 도시국가였다. 실크로도 남도의 로프노르(Lop Nor) 서안에 위치하고 있다. 한나라 때 장건 등을 사절단으로 보내고 이곳을 선선(鄯善)이라 불렀다. 중앙박물관에서 소장하고 있는 로프노르.누란 수집품은 일본인 오타니의 탐험대가 20세기 초에 수집한 문화재들이다. 로프토르 지역 샤오허 무덤 출토 유물은 기원전 17~15세기의 것으로 당시 사람들이 살았던 모습을 살펴볼 수 있는 중요한 자료가 된다. 실크로드 상 고대 도시와 국가가 있었던  중심지였던 니야, 누란, 호탄, 투르판 등지에서는 많은 주거지와 무덤이 발견되고 있으며, 그곳에서는 당시의 생활모습을 보여주는 많은 유물들이 출토되고 있다.

샤오허(小河, Xiaohe) 무덤은 ‘떠도는 호수’라고 알려진 로프노르 호수에서 약 60km 떨어진 사막에 위치한 무덤이다. 메마른 건조기후 덕분에 사막에서 수천년이 지난 직물, 가구, 문서등이 다량으로 출토되어 당시의 생활모습을 알 수 있게 해준다.

중앙박물관 세계관 중앙아시아 선사시대 20220125_21
<1. 사람 형태의 막대, 로프노르 샤오허 묘지/기원전 17~15세기/나무, 털실, 깃털 등>

사람 형태의 막대 2점은 형상과 구조가 기본적으로 동일하다. 제작 방법을 추정해 보면, 먼저 나무를 깎아서 상중하 3단의 형태를 만든다. 상단 정면에는 동물성 아교를 사용하여 뼈로 만든 인면(人面) 조각을 박아 넣고, 뒷면에는 깃털을 붙인다. 중단 안쪽에는 동물의 힘줄을 이용하여 마황의 잔가지와 동물의 털을 넣고, 바깥쪽에는 끝이 탄 붉은색 버드나무 가지를 고정한 후 갈색 끈 등으로 묶는다. 하단은 어딘가 꽂을 수 있도록 끝을 뾰족하게 다듬는다. 인면 조각의 과장되게 튀어난 코는 샤오허 묘지 출토 얼굴 조각의 코와 유사하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2022년)

중앙박물관 세계관 중앙아시아 선사시대 20220125_01<2. 가죽 신발, 로프노르 샤오허 묘지/기원전 17 ~ 15세기/가죽, 털실 등>

가죽 신발은 바닥, 앞면, 뒤꿈치 세부분으로 구성되었다. 세 부분의 가죽은 갈색 털실로 연결되었는데, 신발의 앞면에는 털실이 남아 있지 않고 구멍만 뚫려 있다. 가죽 신발을 세 개의 가죽으로 이어 붙인 점, 신발의 정중앙에 붉은색 선을 칠한 점, 신발 끈의 위치 등이 샤오허 묘지 출토 가죽 신발과 유사하다. 샤오허 묘지 출토 가죽 신발의 경우, 바닥은 소가죽을 , 나머지 부분은 오소리 가죽을 사용했다고 알려져 있다. 청동기시대 가죽 신발의 출현은 당시 목축업의 발달과 함께 가죽이나 털실을 정교하게 꿰맬 수 있는 뼈나 금속 바늘의 사용이 주요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2022년)

바구니는 풀의 뿌리로 짜서 만들었으며, 표면에는 계단 모양의 무늬가 있다. 이러한 용기는 식량 등을 넣고 천으로 입구를 덮은 후 시신의 머리맡 등에 안치되었다.

중앙박물관 세계관 중앙아시아 선사시대 20220125_02<3. 바구니, 로프노르 샤오허 묘지/기원전 17 ~ 15세기/풀>

‘풀로 만든 바구니’는 샤오허 묘지에서 대량 발굴되었고, 형태나 크기에서 국립중앙박물관 소장품과 거의 동일하다. 또한 씨대와 날대를 이용한 직조 방식과 광택이 나는 씨대를 이용해 수평무늬, 삼각형무늬, 계단무늬를 장식한 점도 서로 유사하다. 이와 같은 바구니의 기하학적 무늬 구성은 시베리아 지역의 청동기문화인 안드로노보(Andronovo) 문화의 토기에서도 확인된다. 특히 계단무늬는 안드로노보 문화를 규정하는 가장 특징적인 문양으로, 샤오허 묘지 출토 바구니의 무늬와 유사하다. 바구니 안에서는 보리, 기장 등의 마른 음식물 외에도 액체 유제품의 흔적이 발견되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2022년)

중앙박물관 세계관 중앙아시아 선사시대 20220125_03<4. 모자, 로프노르 샤오허 묘지/기원전 17 ~ 15세기/펠트, 털실 등>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샤오허 묘지 출토 모자는 펠트로 속을 채우고, 그 위에 여러 가닥의 붉은 색 꼰 줄과 주황색 꼰 줄이 가로로 연결되어 있다. 황갈색과 갈색 펠트로 모자의 중단에는 각각 작은 나무 막대와 말라버린 동물 가죽이 매달려 있다. 일반적으로 샤오허 묘지에서 발견된 모자 중단에는 족제비 가죽이 한 바퀴 둘러져 있고, 모자 앞쪽에 족제비의 머리가 위치한다. 모자 좌측에는 조류의 깃털을 동물 힘줄로 묶어 나무 막대에 고정시키고, 나무 막대기 위헤 세밀한 선을 새긴다. 남성의 모자는 여러 개의 깃털로 장식한 반면, 여성의 모자는 한 개의 깃털로 장식한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2022년)

가면은 나무에 가죽을 씌워 만든 것으로 눈과 치아에는 뼈를 부착하였다. 눈을 부릅 뜨고 있고, 치아를 모두 드러낸 다소 위협적인 표정으로 보아, 무덤을 지키기 위하여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중앙박물관 세계관 중앙아시아 선사시대 20220125_04<5. 얼굴조각, 로프노르 샤오허 묘지/기원전 17 ~ 15세기/나무, 가죽 등>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얼굴 조각은 높게 돌출된 눈두덩과 작은 눈구명, 높이 솟은 코와 커다란 이빨이 특징이다. 과학조사 결과, 눈은 마그네슘의 함량이 높은 활석 혹은 해포석이고, 이빨은 인산칼슘이 주성분인 뼈나 상아일 가능성이 높다. 얼굴 조각 중에는 이마와 턱에 얇고 작은 주석판이 부착된 예도 확인된다. 안면에는 얇은 가죽이 붙어 있고, 그 주위로 붉은색과 자주색 안료가 칠해져 있다. 얼굴 조각을 의식구로 보는 견해도 있다. 즉 어떤 의식을 거행할 때 얼굴에 가면처럼 착용했다는 것인데, 상의 크기가 작아 실제로 착용했을 가능성은 낮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2022년)

샤오허(小河, Xiaohe) 묘지
샤오허 묘지는 콘체강(孔雀河) 중류에서 남쪽으로 약 60km 떨어진 사막지대에 위치하며, 동쪽의 누란고성(樓蘭古城)과는 약 170km 떨어져 있다. 묘지의 전체 면적은 2,500㎡이고, 가운데 목책을 기준으로 남구와 북구로 구분한다. 샤오허 묘지는 1934년 스웨덴 고고학자 폴케 베리만의 조사로 학계에 알려졌으며, 2002년에서 2005년까지 중국 신장문물고고연구소 발굴팀이 이곳에서 167기의 무덤을 조사했다. 2016년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자료 조사 사업을 통해 로프노르 일대의 수집품을 정리했다. 당시에 여기 전시 중인 ‘바구니’, ‘얼굴 조각’, ‘모자’등을 조사했다. 이 수집품은 오타니 탐험대가 1909년에서 1910년 사이 차르클르크에서 현지인에게 구입한 것으로 보이는데, 당시의 기록으로 보아 샤오허 묘지에서 유출되었을 가능성이 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2022년)

로프 노르(Lop Nur) 호수는 타클라마칸 사박 북동부에 존재했으나 20세기 말라버린 호수이다. 고대 중국에서는 실크로드 상에 위치한 이 호수를 <염택(塩澤)> 또는 <포창해(蒲昌海) 등의 이름으로 알려져 이었다. 기원전 1세기경 ‘가로세로 모두 300리의 함호(鹹湖)로 겨울이나 여름에도 그 수량이 변하지 않는다’고 《한서》 서역전 서문에 기록된 광대한 호수였다.

중앙박물관 세계관 중앙아시아 선사시대 20220125_22
<1. 기둥, 누란, 1~4세기, 나무>

곧게 뻗는 긴 원통형 나무를 회전시켜서 홈을 내고, 표면을 깍아 조각한 기둥 2점이다. 이 중 길이가 긴 기둥은 난간의 부재로 사용되었다. 이 기둥과 유사한 형태의 문화재가 누란 L.A.III유적에서 발견되었고, 현재 영국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최근 과학조사 결과, 제작에 사용된 나무는 1~3세기 버드나무과 사시나무류로 확인되었다. 이 수종은 오늘날에도 신장 일대에서 많이 자생하고 있으며 가공성이 좋아 건축자재로 활용된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2022년)

향로는 중국 한대 박산로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이며, 세발 단지 또한 중국의 영향받은 형태로 보인다. 당시 중국과 실크로드 국가들과의 교류관계를 보여준다.

중앙박물관 세계관 중앙아시아 선사시대 20220125_05<2. 향로와 세발 단지, 차르클리크(Charklik)/3~4세기/토제>

차르클리크 출토 향로와 세발 단지이다. 향로는 한대 크게 유행했던 박산로(博山爐)의 영향을 받았고, 향을 담는 몸체와 뚜껑, 원형 그릇받침으로 이루어져 있다. 세발 단지는 짐승다리 형상을 본떠 만든 세다리가 특징적이다. 뚜껑과 그릇 안쪽 중앙에 날카로운 도구로 표면을 긁어낸 흔적과 검은 얼룩이 남아 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2022년)

중앙박물관 세계관 중앙아시아 선사시대 20220125_06<3. 대접과 시루, 로프노르/1~3세기/토제>

대접과 시루는 그릇 모양이 거의 동일하며 전반적으로 회색에 가깝다. 로프노르 일대에서 중국식으로 만들어진 추기 중원식 토기이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2022년)

벼루는 형태가 둥글고 다리가 3개인 것으로 3~4세기 중국의 도제 벼루와 유사하다. 한나라 때 누란과 교류한 이래 실크로드를 통해 중국과 교류관계가 계속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중앙박물관 세계관 중앙아시아 선사시대 20220125_07<4. 벼루, 차르클리크/3~4세기/토제>

원판 모양의 연반에 3개의 짐승다리형상 다리가 달려 있다. 이 벼루는 중앙에 지름이 다른 동심원을 연속적으로 구획한 것이 특징이다. 먹을 가는 벼루의 중앙은 볼록하지 않고 편평하며, 다리는 붙인 후 대칼 등으로 깎고 물손질로 마무리했다. 형태가 둥글고 다리가 3개인 점은 3~4세기에 유행한 중국의 도제 벼루와 유사하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2022년)

중앙박물관 세계관 중앙아시아 선사시대 20220125_08<5. 대접, 차르클리크/3~5세기/토제>

중앙이 넓고, 굽이 낮은 회색의 무문토기이다. 유사한 형태의 대접이 4~5세기 투루판 아스타나 고분 출토품에서 확인된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2022년)

중앙박물관 세계관 중앙아시아 선사시대 20220125_10<6. 토기편, 누란/기원전 3세기 ~ 기원후 3세기/토제>

완형이 원통형이었을 것으로 보이는 황회색 토기편 1점과 소성도가 매우 높은 회색의 경질토기 4점이다. 황회색 토기는 다른 경질토기에 비해 무르고, 소성상태도 양호하다. 2점이 경질토기의 표면을 장식한 작은 동그라미와 삼국형 무늬는 영국박ㅁ루관 소장 누란 출토 토기편에서도 확인된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2022년)

중앙박물관 세계관 중앙아시아 선사시대 20220125_09<7. 합, 로프노르/1~3세기/토제>

회전판에서 바닥면을 만든 후 점토대에 덧붙여 형태를 만들었다. 표면은 거칠고 기포와 가공의 흔적이 난아 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2022년)

가죽주머니는 유목민들이 물이나 술을 담기 위해 사용한 휴대용 주머니이다. 유목민의 삶을 보여주는 유물로 북방유목민의 영향을 받은 다양한 형태의 유물들이 도기, 자기 등으로 만들어져다.

중앙박물관 세계관 중앙아시아 선사시대 20220125_11<8. 가죽주머니, 누란/시대미상/가죽, 털실>

아래쪽은 넓게 벌어지고 위쪽은 좁은 형태로 상부와 하부에 바느질 자국이 남아 있다. 이런 형태의 가죽 주머니는 <사기> 제66권<오자서전(伍子胥傳)>에 등장하는 치이(鴟夷)와 유사하다. 치이의 모양이 올빼미의 배처럼 불룩하여 붙여진 이름으로, 술을 담기 위해 말가죽을 이용하여 만든 휴대용 주머니이다. 유목민들이 소금이나 물을 담는 용도로 사용했을 가능성이 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2022년)

누란(樓蘭)
누란은 옥문관에서 서역으로 나아갈 때 가장 먼전 만나게 되는 실크로드상의 주요 거점이며 ‘크로라이나(Kroraina)’라는 이름으로도 알려져 있다. 사마천의 <사기> 권110 <흉노열전>에서 존재가 최초로 확인되며, 기원전 1세기 한(漢)의 영향으로 국명을 선선(鄯善)으로 바꿨다. 선선국은 기원후 2세기 이후 로프노르에서 니야(尼雅)에 이르는 서역남도의 동쪽 지역 전체를 장악했고, 기원후 5세기 북위(北魏)의 공격 후 쇠퇴했다. 20세기 초, 누란/선선이 존재했던 지역의 여러 유적에서 카로슈티 문서와 채관 등을 비롯한 다양한 문화재가 발견되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2022년)

로프노르(羅布泊, Lop Nor). 누란(樓蘭, Loulan) 수집품
로프노르.누란 수집품은 오타니 탐험대의 대원인 다치바나 츠이초(1890~1968년)가 1909년에서 1910년 사이에 수집한 문화재이다. 로프노르 일대 샤오허(小河) 묘지 수집품은 기원전 17세기에서 기원전 15세기 사이의 문화재로 추정되며, 로프노르의 선사문화를 연구하는 데에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또한 누란국 영토 수집품은 기원전 2세기에서 기원후 5세기에 동서교역의 주요 거점이었던 선선(鄯善)의 역사와 문화를 살펴볼 수 있는 귀중한 자료이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2022년)

<출처>

  1. 안내문, 중앙박물관, 2022년
  2. 안내문, 중앙박물관, 2017년
  3. 위키백과, 2023년

 

[중앙박물관 세계문화관] 중앙아시아 불교문화, 사막에 핀 신앙의 꽃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소장.전시하고 있는 중앙아시아 유물은 투루판지역에서 출토된 유물들이 주를 이루고 있다. 일제강점기인 20세기초 일본 교토 니시혼간지의 주지승인 오타니 고즈이라는 사람이 대규모의 자본과 인력을 동원하여 3차에 걸쳐서 중앙아시아 원정을 떠나 무려 5천여점에 이르는 유물을 수집했으며 이를 ‘오타니 컬렉션’이라 한다. 이를 일본 자본가 구하라가 구입하여 조선총독부에 기증하면서 중앙박물관에 유물들이 남아 있다. 오타니 컬렉션은 전체 유물의 1/3은 한국에, 1/3은 중국뤼순에, 1/3은 일본에 남아 있다고 한다.

중앙박물관 세계문화관 중앙아시아 불교문화 20220125_39<중앙아시아, 동서문명이 통하는 길>

중앙아시아와 실크로드
아시아 대륙의 중심에 위치한 중앙아시아는 일반적으로 중국의 신장 위구르 자치구와 카자흐스탄, 우즈베키스탄, 키르기스스탄, 타지키스탄, 투루크메니스탄을 가리킨다. 우리는 이 지역을 ‘투푸키스타(투르크인의 나라)’ 또는 ‘서역(西域)’이라고 부른다. 중앙아시아 역사와 문화에서 유라시아를 여러 갈래의 교역로인 ‘실크로드’가 차지하는 비중이 매우 크다. 이 지역의 주민들은 지속적으로 동서 교역로를 장악하려는 주변 여러 세력의 침입과 지배를 받았다. 그리고 교역로는 다양한 인종, 언어, 문화가 이 지역으로 유입되는 중요한 통로로 작용했다. 그 결과 이곳의 문화는 고대 지중해, 인도, 서아시아, 중국 문화의 요소가 복합된 독특한 모습을 띤다. 국립중앙박물관의 중앙아시아 소장품은 대부분 현재의 신장 위구르 자치구에 해당하는 동투르키스탄 지역에서 발견된 것이다. 이 지역은 텐산산맥 이북의 초원지대에서 전개된 유목세계와 그 남측의 타클라마칸사막을 중심으로 한 오아시스 세계로 구성되어 있다. 타클라마타사막의 남단과 북단을 지나는 서역남도와 서역북도를 통해 기원전 2세기 무렵부터 인도, 서아시아, 중국 간의 교류가 본격화되었다. 그 길목에는 여러 오아시스 도시가 세워져 상업과 종교의 중심지로 번성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2022년)

세계문화관에서 중앙아시아 유물을 전시하는 공간 입구에는 아프로시압 벽화(복제품)를 전시하고 있다.  벽화는 사마르칸트 옛 중심시였던 아프로시압 도성유적에서 발견된 것으로 7세기 경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벽화에는 한반도인으로 추정되는 조우관을 쓰고 환두대도를 차고 있는 사람이 등장하고 있어, 당시 한반도와 중앙아시아 사이의 교류를 보여주는 유적으로 평가받고 있다.

중앙박물관 세계문화관 중앙아시아 불교문화 20220125_21<아프라시아브 벽화(Afrasiab), 서쪽 벽화>

중앙박물관 세계문화관 중앙아시아 불교문화 20220125_41<서쪽벽화 앞부분>

서쪽 벽화
서벽은 입구에 들어설 때 마주 보게 되는 벽으로, 가장 중요한 벽화가 그려진 곳이다. 현존하는 벽화를 보면 여러 사신과 무사가 서 있거나 앉아 있는 모습이 그려져 있다. 이들이 향하고 있는 벽의 윗부분에 누가 그려져 있었는지에 대해서는 여러 의견이 있다. 가운데 부분에 바르후만왕, 돌궐왕, 또는 소그드의 신이 그려져 있었다고 보는 견해와, 벽의 양측에 바르후만왕과 돌궐 왕이 좌우대칭으로 배치되었다는 견해가 있다. 오른쪽 끝에는 조우관을 쓴 고대 한국인이 등장한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2022년)

중앙박물관 세계문화관 중앙아시아 불교문화 20220125_22<조우관을 쓴 인물>

벽화 속의 한국인
서벽에 그려진 벽화에는 새의 깃털로 장식된 모자인 조우관(鳥羽冠)을 쓴 인물이 등장한다. <<위서>> <고구려전>에 “머리에 절품건(折風巾)을 쓰는데, 그 모양이 고깔과 같고 두건의 모서리에 새의 깃을 꽂는다.”라는 기록이 나온다. 또 고구려 고분벽화, 양나라에 파견된 외국인 사절을 그린 <양직공도>, 신라, 백제, 가야 고분의 출토품으로 볼 때 새의 깃털이나 모형을 모자에 부착하는 장식법이 고대 한반도에서 보편적이었음을 보여준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2022년)

중앙박물관 세계문화관 중앙아시아 불교문화 20220125_40<아프라시아브 도성유적>

벽화의 시기
서벽 왼편에 그려진 한 인물의 옷자락에 남아 있는 소그드 명문은 벽화의 연대를 추정하는데 결정적인 증거를 제공한다. 명문에는 차가니안(Chaganian, 사마르칸트 남부의 작은 나라)과 차치(Chach, 타슈켄트 지역)의 사신이 사마르칸트에 와서 이곳의 왕인 바르후만을 만나 대화를 나누는 내용이 담겨 있다. 바르후만왕은 중국 역사서에 ‘불호만(拂呼縵)’으로 언급되는 인물로, 658년 당 고종에 의해 강거도독부(康居都督府)의 도독으로 임명되었다. 이러한 자료를 근거로 아프라시아브 벽화의 연대는 7세기 중엽으로 추정한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2022년)

아프라시아브 벽화의 발견
사마르칸트의 옛 중심지인 아프라시아브 도성지 유적에서 1965년 도로 공사 중 우연히 발견되었다. 발견된 지점은 제23구역 제1호실에 해당하는 방으로, 왕이나 상류층 저택의 접견실에 해당하는 공간으로 추정된다. 방은 정사각형 모양으로, 한 변의 길이가 11m에 달한다. 방의 윗부분이 공사 중에 파괴되어 내부 벽면을 장식했던 벽화는 현재 2m 정도의 높이까지만 보존되어 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2022년)

석굴사원은 수도자들이 더위와 비를 피하여 명상을 하기 위해 벼랑에 동굴을 파서 만들었다. 기원전 3세기 인도 아소카왕때 처음 생겼으며, 아프카니스탄, 중앙아시아를 거쳐 중국과 한국에도 전해졌다. 인도의 아잔타 석굴, 아프카니스탄의 바미안 석굴, 중앙아시아의 키질, 투루판 베제클릭, 둔황석굴, 중국의 윈강 석굴 등이 규모도 크고 잘 알려진 석굴들이다. 우리나라에는 화강석 석재로 인공적으로 조성은 석굴암이 대표적이다. 특히, 둔황 석굴은 불교가 중국에 전래 이후 4세기부터 원나라때까지 끊임없이 조성되었다. 막고굴에는 불상들과 벽화로 꾸며져 있으며, 불경을 비롯하여 많은 문화재가 발견되었다.

중앙박물관 세계문화관 중앙아시아 불교문화 20220125_01
<서원화(誓願畵), 투루판 베제클리크 석굴 제15굴/10~12세기/흙벽에 채색, 복제품>

투루판 지역의 베제클리크 석굴사원 제15굴에 그려진 서원화의 일부분이다. 베제클리크 석굴사원은 이 지역의 대표적인 종교 유적이다. 제15굴에는 열다섯 가지 주제의 서원화가 회랑 양측 벽에 그려져 있었다. 이 벽화는 석가모니가 전생에 가시왕으로 태어났을 때 당시 부처였던 크세맘카라로부터 미래에 부처가 될 것이라는 약속을 받는 내용을 묘사한 제1주제 서원화의 일부분이다. 여기에서 크세맘카라 부처를 향해 공양물이 가득 담긴 쟁반을 두 손에 들고 서 있는 두 인물은 왕으로 태어난 전생의 석가모니와 왕비이다.(안내문, 중앙박물관, 2022년)

석굴사원과 벽화
중앙아시아의 종교 유적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는 석굴사원은 서역북도에 집중되어 있다. 투루판 지역의 베제클리크, 토유크, 야르호, 셍김-아기즈와 쿠차 지역의 키질, 쿰트라, 키질 가하와 같은 유적이 유명하다.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는 중앙아시아 벽화 가운데 대부분은 투루판의 석굴사원에서 가져온 것이며, 쿠차 지역의 벽화도 일부 소장되어 있다.(안내문, 중앙박물관, 2022년)

서원화(誓願畵)는 석가모니가 각기 다른 전생에서 당시의 부처(현재의 시점에서 볼  과거불)로 부터 깨달음을 얻을 것이라는 약속을 받는 이야기가 한 화면에 압축적으로 그려져 있다.

중앙박물관 세계문화관 중앙아시아 불교문화 20220125_23<비슈반타라 왕자 본생도, Visvantar Jataka, 미란 제5사원지/3세기/흙벽에 채색>

이 벽화는 미란 제5사원지 회랑 벽에 그려진 본생도의 일부분이다. 영국 탐험대를 이끈 스타인(Aurel Stein, 1862~1943년)의 보고서에 수록된 사진을 통해 본생도의 전체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이 본생도의 주인공은 비슈반타라 왕자로, 석가모니의 여러 전생 중 하나이다. 비슈반타라 왕자는 신비한 능력을 지닌 하얀 코끼리를 비롯하여 자신이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을 남에게 보시했다.(안내문, 중앙박물관, 2022년)

사막에 핀 신앙의 꽃
유라시아 대륙을 가로지르는 여러 교역로를 통해 불교, 조로아스터교, 마니교, 네스토리우스교, 이슬람교와 같은 다양한 종교가 중앙아시아로 전해졌다. 종교 활동을 위해 세워진 많은 사원은 여러 신의 모습과 종교적 설화, 이상향, 신도 등을 표현한 그림과 조각으로 화려하게 장식되었다. 이슬람교가 전파되기 이전인 10세기경 동투르키스탄 지역에서는 불교가 특히 성행했다. 이곳의 여러 불교 사원에는 헬레니즘 미술과 인도, 페르시아, 중국의 다양한 요소가 섞인 불상과 벽화가 남아 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2022년)

중앙박물관 세계문화관 중앙아시아 불교문화 20220125_24<1. 서원화, 투루판 베제클리크 석굴 제15굴/10~12세기/흙벽에 채색>

꽃을 들고 있는 우아한 자태의 손을 묘사한 서원화 단편이다. 단편의 왼쪽에 과거불의 광배 일부가 남아 있다. 광배 가장자리에 흰색 띠를 둘렀고, 안쪽에는 붉은 색 바탕에 흰색과 적갈색의 문양이 그려져 있다. 손과 광배 사이로 상상의 꽃이 공중에 떠 있다. 벽화의 바탕색은 현재 흐린 갈색으로 보이지만, 제15굴의 다른 서원화와 마찬가지로 원래의 바탕색은 푸른색이었을 것이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2022년)

중앙박물관 세계문화관 중앙아시아 불교문화 20220125_02
<2. 서원화, 투루판 베제클리크 제33굴/10~12세기/흙벽에 채색>

제33굴 우측 벽에 배치된 서원화의 일부이다. 서원화는 석가모니가 각기 다른 전생에서 당시의 부처, 즉 현재의 시점에서 볼 때 과거불을 만나는 이야기를 주제로 한다. 이 벽화에는 두 명의 상인이 나란히 앉아 공양물이 담긴 화려한 쟁반을 들고 있고 왼쪽에 공양의 대상이 되는 과거불의 광배, 발, 옷자락 등의 일부가 남아 있다. 상인의 얼굴에 각기 다른 개성이 잘 표현되었다. 왼쪽 상인은 약간 넓은 얼굴에 코가 높고 머리카락과 수염이 검은색이다. 이에 비해 오른쪽 상인은 매부리코에 광대뼈가 튀어 나왔고 머리카락과 수염이 적갈색이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2022년)

‘베제클리크’은 위구르어로 ‘아름다운 그림으로 장식된 곳’이라는 뜻이다.  화려한 벽화가 많이 남아 있는 베제클리크 석굴사원은 서역북도에 위치한 투루판 일대에서 가장 큰 석굴사원군이다. 원래 80기 이상의 불교와 마니교 석굴이 만들어졌으나, 현재는 50기 정도 남아 있다.

SANYO DIGITAL CAMERA<투루판 베제클리크(伯孜克里克, Bezekllik) 석굴사원,  2010년>

베제클리크 석굴사원
베제클리크 석굴사원은 투루판시에서 동쪽으로 40km 떨어진 무르투크강 서쪽에 위치하고 있다. 위구르어로 ‘아름다운 그림으로 장식된 집’이라는 뜻을 가진 이 석굴사원에는 83기의 석굴이 확인되며, 그중 40기에 벽화가 남아 있다. 베제클리크 석굴사원은 6세기 국씨고창국(麴氏高昌國) 시기부터 13세기까지 만들어졋으며, 10세기 위구르 지배기에는 왕실의 종교적 성지로 번영했다. 베제클리크 석굴사원에는 석가모니의 전생 이야기를 소재로 한 ‘서원화’가 많이 그려졌다. 서원화는 ‘공양화供養畵’ 또는 ‘본행경변本行經變’이라고도 불리는데, 여기서 ‘서원’은 바라는 바를 이루겠다는 맹세를 뜻한다. 베제클리크 석굴사원은 서하어(西夏語), 위구르어 등 다양한 언어로 쓰인 불교 경전과 여러 시기에 걸쳐 그려진 벽화가 있는 중요한 불교유적이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2022년)

중앙박물관 세계문화관 중앙아시아 불교문화 20220125_26<마혜수라천(Maheshvara), 투루판/10~12세기/흙벽에 채색>

힌두교의 신 시바가 불교에 포섭되어 등장한 신으로 다면다비(多面多臂)에 3개의 눈을 가진 점이 특징이다. 마혜수라천은 일반적으로 위로 올린 손에 해와 달을 들고 있는데, 여기에서도 위로 올린 오른손에 해처럼 보이는 둥근 원반을 들고 있다. 나머지 손은 합장하거나 밧줄을 잡고 있다. 머리 위의 작은 인물은 바람이 가득 찬 주머니를 들고 있어 풍신(風神)을 연상시킨다. 손바닥과 얼굴은 살구색으로, 나머지는 녹색을 띤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2022년)

중앙박물관 세계문화관 중앙아시아 불교문화 20220125_03
<악귀상, 투루판 베제클리크 석굴 제15굴/10~12세기/흙벽에 채색>

베제클리크 석굴 제15굴 중당(中堂)의 네 모퉁이에는 사천왕이 그려져 있다. 이 벽화는 안쪽 좌측벽에 그려진 사천왕 앞에 앉아 있는 악귀 부분이다. 악귀는 겁에 질린 듯이 눈을 크게 뜨고 입을 벌리고 있으며, 두 손은 가슴 앞으로 모아 화살 2개를 쥐고 있다. 오른쪽에는 사찬왕의 오른쪽 발과 코끼리 머리 장식을 한 오른쪽 다리 일부가 보인다. 악귀의 과장된 표정과 근육, 화려한 채색 등이 특징이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2022년)

중앙박물관 세계문화관 중앙아시아 불교문화 20220125_04
<천불도, 투루반 베제클리크 석굴 제18굴/6~7세기/흙벽에 채색>

베제클리크 석굴사원 제18굴에서 가져온 천불도의 일부이다. 제18굴은 석굴 중앙에 큰 기둥을 배치한 중심 주굴(柱窟)이며, 천불도는 석굴의 회랑을 장식했다. 천불도에 표현된 각 부처는 가는 흰색 선으로 구획된 사각형 안에 통견(通肩)의 법의를 입고 선정인(禪定印)을 취한 모습으로 그려졌다. 부처의 눈은 비교적 크고 콧날이 뚜렸하다. 얼굴과 목, 손의 윤곽선에 붉은색을 더해 음영을 주고, 배경에는 짙은 색을 칠했다. 음영의 표현, 어두운 배경색, 라피스 라줄리 안료를 사용한 푸른색은 무두 쿠차 지역과의 연관성을 보여준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2022년)

중앙박물관 세계문화관 중앙아시아 불교문화 20220125_20<제15굴 서원화 장막>

중앙박물관 세계문화관 중앙아시아 불교문화 20220125_27<1. 서원화 장막, 투푸판 베제클리크 석굴 제15굴/10~12세기/흙벽에 채색>

중앙박물관 세계문화관 중앙아시아 불교문화 20220125_28<서원화 장막>

제15굴 회랑에 그려진 서원화의 가장 윗부분에는 화려한 장막이 묘사되었다. 상하로 배치된 두 단편은 장막의 상단에 짧은 회색천을 내렸고, 그 아래로 그물 문양의 붉은 천을 늘어뜨렸다. 붉은 천 위로 흰색, 초록색 구슬을 엮은 장식물이 보인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2022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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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위구르어 명문, 투루판 베제클리크 석굴/10~12세기/흙벽에 채색>

베제클리크 석굴사원은 6세기부터 개착되었으며 위구르 세력이 이 지역을 지배하던 9~13세기까지 조상활동이 활발히 이루어졌다. 현재 남아 있는 석굴의 벽화는 대체로 위구르가 이 지역을 지배하던 9세기 이후의 것이다. 위구르인들은 원래 마니교를 믿었으나, 10세기 후반부터 투루판 지역 사람들이 오랫동안 믿어온 불교로 개종했다. 위구르어 명문은 대체로 공양자의 이름과 공양을 한 연월일에 관한 기록으로 추정된다. 오른쪽 위 단편에 서툰 글씨로 한자가 기록되었는데, 이는 이 지역 기층문화였던 한인(漢人) 문화의 영향이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2022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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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살을 그린 번(菩薩幡), 둔황/10세기/비단에 채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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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 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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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 아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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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른쪽 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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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른쪽 아래>

SANYO DIGITAL CAMERA<둔황 막고굴, 2010년>

번(幡)은 불교 건축물을 꾸미거나 의식을 진행할 때 사용하던 걸개그림이다. 둔황 지역에서는 8세기경부터 번이 제작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왼쪽의 번에는 3m가 넘는 감색 비단 바탕에 정면을 향해 선 보살을 연속적으로 배치하였다. 보살은 채색 없이 노란 선으로만 그려졌다. 신체의 굴곡을 나타내는 선과 장신구, 가슴을 가로지르는 옷차림은 당 말기 보살사의 특징과 유사하다. 오른쪽의 번에는 2명의 보살이 그려져 있다. 위쪽의 보살은 가사를 걸친 채 왼쪽을 향하고 있고, 아래쪽 보살은 군의를 입고 천의를 걸친 채 정면을 향해 서 있다. 붉은색 선으로 윤곽을 그리고 부분적으로 음영을 가해 입체감을 주었다. 보살 옆에는 보살의 이름을 써 넣은 방제가 있는데, 아래 보살의 경우 “나무불휴식보살”이라는 글씨가 확인된다. 둔황 발견 자료 중에는 전문적으로 경전을 베껴쓰는 사경생(寫經生) 이외에 번을 만드는 사람(書幡人)이 언급되어 있어 당시 번의 제작이 보편화되었음을 알 수 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2022년)

호탄(和田)은 타림분지 남서쪽에 위치한 고대의 왕국이다. 옥(玉) 생산지였던 대월지(大月氏)가 있었던 곳으로 고대 동.서교역로에서 중요한 거점이었다. 한무제때 실크로드가 개척된 이후 서역문화와, 불교의 전파에 큰 역할을 했던 곳이다. 투루판은 한나라 때 한인들이 거주한 이래로 당나라때 고창국을 비롯한 한족의 영향을 받은 지역으로 지역중심지였던 교하고성, 고창고성을 비롯하여 주변 계곡 등에 많은 불교 유적들이 남아 있는 곳이다. 이 지역에서 출토된 불상들은 건축물과 마찬가지로 흙으로 빚어 만든 소조상이 대부분이며, 그 형태는 인도와 중동의 영향을 받은 간다라 양식이 많다.

중앙박물관 세계문화관 중앙아시아 불교문화 20220125_29<부처의 머리, 호탄/4~5세기/흙에 채색>

국립중앙박물관 소장된 호탄 출토의 소조상 중에서 크기가 가장 큰 예이다. 얼굴의 전반적인 형태와 반쯤 감고 있는 눈의 형식적인 표현이 호탄의 대표적인 불교 유적인 라와크(Rawak) 스투파에서 발견된 불상과 유사하다. 머리 부분에는 물결치는 듯한 머리카락이 표현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2022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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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인, 투루판 무르투크/6~7세기/흙에 채색>

중앙아시아 지역에서 만들어진 불교 조각은 헬레니즘과 로마 조각의 특징을 수용한 간다라 조각의 영향을 바탕으로 하면서, 이를 보다 추상화하고 형식화한 모습으로 재창조되었다. 이 여인상의 둥근 얼굴, 눈썹, 눈, 콧날 등은 간략하고 도식적으로 표현되었으며, 가슴 부분의 소용돌이 무늬는 갑옷을 연상시킨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2022년)

중앙박물관 세계문화관 중앙아시아 불교문화 20220125_30<1. 광배조각, 호탄/6~7세기/스투코에 채색, 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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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부처, 호탄/5~6세기/스투코에 채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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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세라피스, 호탄/2~3세기/테라코타>

세라피스는 이집트 프톨레마이오스 왕조 시기에 새롭게 탄생한 신으로, 그리스의 제우스와 같은 모습으로 형상화되었다. 대좌에 앉아 있는 세라피스는 왼손에는 풍요의 뿔을 들고, 오른손은 나체의 소년 머리 위에 올려놓고 있다. 오른편에 서 있는 소년은 침묵의 신 하포크라테스이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2022년)

중앙박물관 세계문화관 중앙아시아 불교문화 20220125_33<4. 코끼리, 쿠파 쿰투라 석굴사원/8세기/흙>

중앙박물관 세계문화관 중앙아시아 불교문화 20220125_34<1. 연꽃 위의 부처, 호탄/6~7세기/스투코에 채색>

중앙박물관 세계문화관 중앙아시아 불교문화 20220125_35<2. 연꽃에서 태어나는 모습, 호탄/6~7세기/스투코에 채색>

몇 겹의 꽃잎으로 이루어진 연꽃 가운데에서 인물이 화생하는 순간을 묘사한 스투코로 만든 조각이다. 불교에서는 부처의 세계인 정토에서 태어날 때 연꽃에서 태어난다고 하는데, 연꽃은 청정함과 깨달음의 상징으로 불교 미술에 자주 이용되는 모티프이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2022년)

중앙박물관 세계문화관 중앙아시아 불교문화 20220125_36<3. 명상하는 승려, 둔황/10세기/흙에 채색>

중앙박물관 세계문화관 중앙아시아 불교문화 20220125_37<4. 무사의 머리, 카라샤르/6~7세기/흙>

서역북도에 위치한 카라샤르는 중국 문헌에 언기국 또는 오이국으로 기록되어 있다. 이곳의 불교 유적은 불교사찰과 석굴사원으로 이루어졌으며, 5~8세기로 편년되는 다양한 불상이 출토되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2022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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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천부의 머리, 투루판/6~7세기/흙에 채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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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천부의 머리, 투루판/6~7세기/흙에 채색>

불교 조각
중앙아시아의 불교 조각은 미란, 호탄, 쿠차, 투루판 지역의 여러 유적에서 발견되었다. 이곳의 불교 조각은 소조상이 대부분이며, 양식과 도상은 간다라의 영향을 기반으로 하면서 지역적인 특징을 발전시킨 모습이다.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는 불교 조각은 주로 서역 남도의 대표적인 불교 중심지인 호탄에서 출토된 것이다. 이외에 서역 북도의 투루판과 옛 언기국에 속하는 카라샤르 지역의 문화재도 소장되어 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2022년)

중앙박물관 세계문화관 중앙아시아 불교문화 20220125_38<회화 단편, 투루판 토유크 석굴/10~11세기/면에 채색>

화면 왼쪽에 있는 반쯤 열린 문을 향해 세 명의 인물이 나란히 서 있다. 문의 왼쪽에도 또 다른 인물의 윤곽이 희미하게 보인다. 배경은 붉은색이며 오른쪽 윗부분은 여러 개의 검은 점으로 덮여 있다. 흰 옷을 입은 세 명의 인물을 마니교도로 보는 견해도 이다. 다만 이들이 쓰고 있는 모자가 투루판 지역에서 출토된 자료에 등장하는 마니교도의 모자와 다른 모양이어서 앞으로 면밀한 연구가 필요하다. 최근 과학적 조사를 통해 그림이 그려진 천은 면으로 밝혀졌으며, 이 그림 아래에 다른 밑그림이 있는 것이 확인되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2022년)

가운데 관음보살이 있으며, 그 주위에 관음보살을 모시고 예배하는 보살과 인물이 여럿 그려져 있다. 관음보살이 쓰고 있는 높은 모자의 정면에는 관음보살이 모시는 부처인 아미타여래가 작게 표현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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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음보살이 그려진 번, 투루판 토유크 석굴/9~10세기/면에 채색>

토유크 석굴사원은 고창고성에서 약 50킬로미터 떨어진 곳에 위치하고 있다. 화염산 골짜기로 천산산맥의 눈이 녹아내린 물이 투루판분지로 흘러드는 계곡이다. 여기에 있는 46기의 석굴은 5세기 말과 7세기 사이에 만들어졌다. 이곳에서는 문서와 불화도 다수 발견되었다. 지금은 위구르 전통 마을이 남아 있는 외진 골짜기에 위치하고 있지만, 사막과 황무지로 이루어진 투루판지역에서 그나마 사람의 통행이 많은 교통로에 위치해 있다.

SANYO DIGITAL CAMERA<투루판 토유크(Toyuk, 吐浴溝) 석굴사원, 2010년>

산산현에 위치한 토유크 석굴은 46기의 석굴로 이루어진 유적이다. 이곳에서는 문서와 불화도 다수 발견되었다. 화면의 중앙에 앉아 있는 보살은 보관에 작은 불좌상이 있어 일찍부터 관음보살로 판ㅁ여되었다. 보살은 머리 좌우에 원형 장식을 부착하고, 검은 머리카락을 어깨 위로 늘어뜨렸다. 오른손을 가슴 앞에서 들고 있으며, 왼손은 아래로 내려 지물을 받치고 있다. 중앙의 관음보살을 둘러싸고 있는 보살은 원래 3단에 각 2명씩, 모두 6명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와 거의 동일한 크기와 구성을 지닌 그림이 베를린 아시아미술관에 소장되어 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2022년)

중앙아시아실 전시품은 대부분 20세기 초 오타니 고즈이(1876~1948년) 탐험대가 수집한 것이다. 오타니 고즈이는 1902년부터 1914년까지 모두 3차에 걸쳐 중앙아시아 지역으로 탐험대를 보냈고, 이후 탐험대 수집푸의 상당수가 오타니의 별장이었던 고베의 니라쿠소에 보관되었다. 1916년 1월, 당시 상인이었던 구하라 후사노스케가 니라쿠소와 문화재를 함께 구입했다. 구하라는 1916년 5월 조선총독부에 오타니 수집품을 기증하였고 조선총독부박물관에서 관리했다. 이후 오타니 수집품은 국립중앙박물관을 비롯하여 중국 국립뤼순박물관, 중국국가도서관, 일본 류코쿠대학, 도쿄국립박물관, 교토국립박물관 등에 소장되어 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2022년)

<출처>

  1. 안내문, 중앙박물관, 2022년
  2. 안내문, 중앙박물관, 2017년

 

 

 

[중앙박물관 중앙아시아실] 석굴사원과 벽화, 중앙아시아 사막의 불교문화

석굴사원은 수도자들이 더위와 비를 피하여 명상을 하기 위해 바위로 된 벼랑에 동굴을 파서 만들었다. 기원전 3세기 인도 아소카왕때 처음 생겼으며, 아프카니스탄, 중앙아시아를 거쳐 중국과 한국에도 전해졌다. 인도의 아잔타 석굴, 아프카니스탄의 바미안 석굴, 중앙아시아의 키질, 투루판 베제클릭, 둔황석굴, 중국의 윈강 석굴 등이 규모도 크고 잘 알려진 석굴들이다. 우리나라에는 화강석 석재로 인공적으로 조성은 석굴암이 대표적이다. 특히, 막고굴이라 불린 둔황 석굴은 불교가 중국에 전래 이후 전진(前秦)이 지배하던 4세기부터 원나라때까지 끊임없이 조성되었다. 막고굴에는 불상들과 벽화로 꾸며져 있으며, 불경을 비롯하여 많은 문화재가 발견되기도 한다. 20세기초 혜초의 왕오천축국전을 비롯하여 많은 문서들이 둔황의 장경동에서 발견되면서 세계적으로 석굴사원의 가치가 재조명되었으며, 이 시기에 서구인들은 벽화를 떼어가는 등 약탈에 가까운 방법으로 석굴사원의 유물들을 반출하여 세계각지의 박물관에서 소장.전시하고 있다.

국립중앙박물관에서도 중앙아시아 석굴사원에서 약탈한 문화재들을 다수 소장.전시하고 있는데 투루판지역에서 출토된 유물들이 주를 이루고 있다. 일제강점기인 20세기초에는 세계적인 중앙아시아 유물 수집의 유행이 있었는데, 이때 일본 교토 니시혼간지의 주지승인 오타니 고즈이라는 사람이 대규모의 자본과 인력을 동원하여 3차에 걸쳐서 중앙아시아 원정을 떠났는데, 현지에서 약탈과 구매 등의 방법으로 무려 5천여점에 이르는 유물을 수집했으며 이를 오타니 컬렉션이라고 있다. 많은 중앙아시아 유물들을 수집한 오타니가 파산을 하게 되면서 이를 구매한 일본 자본가 구하라가 당시 조선총독부 총독이었던 데라우치를 위해 조선총독부에 이를 기증하면서 오늘날까지 그 유물이 남아 있다. 오타니 컬렉션은 전체 유물의 1/3은 한국에, 1/3은 중국뤼순에, 1/3은 일본에 남아 있다고 한다. 투루판의 베제클리크 석굴사원과 토유크 석굴사원에서 수집한 벽화편은 당시의 야만적인 유물수집의 모습을 잘 보여주는 것들로 벽면에 칠해져 있던 벽화를 떼어내어 옮겨 왔는데, 원본이 손상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비슷한 사례는 서구 각지의 둔황유물에서 볼 수 있다고 한다.

OLYMPUS DIGITAL CAMERA천불도, 千佛圖, 투루판, 6~7세기.

우주에 현재하는 불법 등을 상징하는 천불도의 일부이다. 동일한 크기의 불상을 반복하여 배열하면서, 채색을 달리하여 변화를 주었다. 다른 천불도와 비교할 때, 매우 간략한 표현과 부처 사이사이에 등장하는 물결무늬가 특징이다. (출처: 중앙박물관)

석굴사원과 벽화
중앙아시아의 종교 유적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는 석굴사원은 서역북도(西域北道)에 집중되어 있다. 투루판지역의 베제클리크, 토유크, 야르호, 셍김아기즈와 쿠차지역의 키질, 쿰트라, 키질가하와 같은 유적이 유명하다.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는 중앙아시아벽화 중 대다수는 투루판의 석굴사원에서 가져온 것이며, 쿠차지역의 벽화도 일부 소장되어 있다. (출처: 중앙박물관)

OLYMPUS DIGITAL CAMERA투루판의 야르호 석굴(Yarkhoto Caves, Turpan), 쿠차의 키질 석굴(Kizil Caves, Kucha). 중앙아시아는 뜨거운 사막이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더위를 피하기 위해 인도에서 조성되었던 석굴사원이 중앙아시아에도 많이 조성되었다. 건조한 기후덕분에 석굴사원에 있던 많은 유물들이 오늘날까지 남아 있다.

SANYO DIGITAL CAMERA막고굴이라고도 불리는 둔황석굴. 전진(前秦)이 지배했던 4세기부터 원나라때까지 천년에 가까운 세월동안 수많은 석굴사원들아 조성되었다. 이 곳 석굴사원 중 하나인 장경동에서는 혜초의 왕오천축국전을 비롯하여 많은 문서들이 발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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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하는 승려, 行脚僧圖, 둔황, 9~10세기

이 그림은 경전을 짊어지고 여행하는 승려의 모습을 그린 것이다. 주인공은 노란 점과 붉은 선으로 장식된 검은색 천을 어깨에 걸치고, 챙이 넓은 모자를 썼다. 왼손에는 주미(麈尾)를 들고 발에는 붉은색 샌들을 신었다. 승려의 머리 위에는 작은 부처가, 다리 사이에는 호랑이가 보인다. 부처 옆 방제의 윗부분은 박락되었고 아랫부분에 “여래불(如來佛)”이라는 글자만 보인다. 그림의 주인공에 대해서는 현장(玄裝), 보승불(寶勝佛), 티베트 불화에 보이는 18나한(羅漢) 가운데 한명이 달마다라(達磨多羅), 실크로드를 여행하며 공연하는 이야기꾼 등의 다양한 견해가 있다. (출처: 중앙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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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살이 그려진 번, 菩薩幡, 둔황(敦煌), 10세기

20세기 초 중국 간쑤성(甘肅省)에 위치한 둔황에서는 수많은 문서와 불화가 발견되었다. 이 중에는 좁고 긴 천으로 만들어진 드리개가 포함되어 있는데, 이를 전문용어로는 ‘번’이라고 부른다. 둔황에서 발견된 번에는 2명의 보살이 그려져 있다. 위쪽의 보살은 가사를 걸친 채 왼쪽을 향하고 있고, 아래쪽의 보살은 군의를 입고 천의를 걸친 채 정면을 향해 서 있다. 붉은색 선으로 윤곽을 그리고 부분적으로 음영을 가해 입체감을 주었다. 보살 옆에는 보살의 이름을 써 넣은 방제가 있는데, 아래 보살의 경우 “나무불휴식보살(南無不休息菩薩)”이라는 글씨가 확인된다. (출처: 중앙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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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살 그림 드리개, 菩薩立像幡, 둔황, 10세기.

이 드리개에는 풍만한 신체를 지닌 보살이 굵기가 일정하지 않은 선으로 그려져 있다. 이와같은 변화 있는 선은 중국회화에서 볼 수 있는 특징으로, 그 영향이 이 지역에 미친 것으로 보인다. 원래는 현재보다 더 길었을 것이라고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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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상에 잠긴 승려, 僧像, 둔황, 10세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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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상에 잠긴 승려, 僧像, 둔황, 10세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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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상에 잠긴 승려, 僧像, 둔황, 10세기

승려를 표현한 부조 3점은 건축물의 벽면에 부착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각각의 승려는 감실에 앉아 있다. 눈을 감고 있는 모습의 승려들은 명상에 잠긴 상태를 표현한 것으로 보인다. 머리를 두건같이 감싸며 몸을 완전히 가리는 두꺼운 옷을 입고 있으며, 그 옷은 승려마다 각기 다른 색을 띤다. 일부 상에는 금칠의 흔적도 보인다.  (출처: 중앙박물관)

사막에 핀 신앙의 꽃
유라시아 대륙을 가로지르는 여러 교역로를 통해 불교, 조로아스터교, 마니교, 네스토리우스교, 이슬람교와 같은 다양한 종교가 중앙아시아로 전해졌다. 종교활동을 위해 세워진 많은 사원은 여러 신의 모습과 종교적 철학, 아상향, 신도 등을 표현한 그림과 조각으로 화려하게 장식되었다. 10세기 이슬람교가 전파되기 이전의 동투르키스탄 지역에서는 불교가 특히 성행하였다. 이곳의 여러 불교 사원에는 헬레니즘 미술과 인도, 페르시아, 중국의 요소가 섞인 불상과 벽화가 남아 있다. (출처: 중앙박물관)

SANYO DIGITAL CAMERA투루판 토유크(Toyuk, 吐浴溝) 석굴사원. 고창고성에서 동북으로 약 50킬로미터 떨어진 곳에 위치하고 있다. 서유기에 등장하는 화염산 골짜기로 천산산맥의 눈이 녹아내린 물이 투루판분지로 흘러드는 계곡이다. 여기에 있는 46기의 석굴은 5세기 말과 7세기 사이에 만들어졌다. 이곳에서는 문서와 불화도 다수 발견되었다. 지금은 위구르 전통 마을이 남아 있는 외진 골짜기에 위치하고 있지만, 사막과 황무지로 이루어진 투루판지역에서 그나마 사람의 통행이 많은 교통로에 위치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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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음보살이 그려진 번, 觀音普薩幡, 투루판 토유크 석굴, 9~10세기. 가운데 관음보살이 있으며, 그 주위에 관음보살을 모시고 예배하는 보살과 인물이 여럿 그려져 있다. 관음보살이 쓰고 있는 높은 모자의 정면에는 관음보살이 모시는 부처인 아미타여래가 작게 표현되어 있다.

산산현(鄯善县)에 위치한 토유크 석굴은 46기의 석굴로 이루어진 유적이다. 이곳에서는 문서와 불화도 다수 발견되었다. 화면의 중앙에 앉아 있는 보살은 보관에 작은 불좌상이 있어 일찍부터 관음보살로 판명되었다. 보살은 머리 좌우에 원형 장식을 부착하고, 검은 머리카락을 어깨 위로 늘어뜨렸다. 오른손을 가슴 앞에 들고 있으며, 왼손은 아래로 내려 지물을 받치고 있다. 중앙의 관음 보살을 둘러싸고 있는 보살은 원래 3단에 각 2명씩, 모두 6명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와 거의 동일한 크기와 구성을 지닌 그림이 베를린 아시아미술관에 소장되어 있다. (출처: 중앙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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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살이 그려진 드리개, 菩薩幡, 토유크 석굴사원, 8~9세기,

앞뒷면에 그림이 그려져 있는 드리개이다. 상단의 삼각형 공간에는 작은 불좌상이 있고, 그 아래에 몸을 한쪽으로 약간 틀고 있는 보살이 서 있다. 머리에는 화려한 관을 쓰고, 어깨에는 휘날리는 천의를 두르고 있다. (출처: 중앙박물관)

OLYMPUS DIGITAL CAMERA회화 단편, 繪畵斷片, 투루판 토유크 석굴, 10~11세기. 세명이 인물이 흰옷을 입고 있어 마니교도를 그린 그림으려 알려져 있지만, 논란이 되는 부분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 그림에는 왼쪽에 있는 문을 향해 세 명의 인물이 나란히 서 있다. 문의 왼쪽에도 또 다른 인물의 윤곽이 희마하게 보인다. 배경은 붉은색이며 오른쪽 윗부분은 여러 개의 검은 점으로 덮여 있다. 흰옷을 입은 세명의 인물을 마니교도(摩尼敎徒)로 보는 견해가 있다. 다만 이들이 쓰고 있는 모자가 투루판 지역에서 출토된 자료에 등장하는 마니교도의 모자와 다른 모양이어서 앞으로 면밀한 연구가 필요하다. 최근 과학적 조사를 통해 이 그림은 면에 그려진 것으로 밝혀졌다. (출처: 중앙박물관)

SANYO DIGITAL CAMERA투루판 베제클리크(伯孜克里克, Bezekllik) 석굴사원, ‘베제클리크’은 위구르어로 ‘아름다운 그림으로 장식된 곳’이라는 뜻이다.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화려한 벽화가 많이 남아 있는 베제클릭 석굴사원은 서역북도에 위치한 투루판 일대에서 가장 큰 석굴사원군이다. 원래 80기 이상의 불교와 마니교 석굴이 만들어졌으나, 현재는 50기 정도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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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화경변단편, 法華經變斷片, 투루판 베제클리크 석굴 제23굴, 9세기

제23굴 전실에 그려진 <법화경변> 단편이다. 벽화의 윗부분에는 여러 색의 구름으로 이루어진 둥근 구획 안에 보살의 성중(聖衆)이 배치되어 있다. 중앙의 연꽃대좌 위에는 정면을 향해 가부좌(跏趺坐)를 한 보살이 있고, 그 주위로 보관과 목걸이, 팔찌 등의 장신구를 한 보살이 있다. 벽화의 아랫부분에는 상대적으로 작게 표현된 인물들이 말, 낙타 등을 이끌고 오른쪽으로 나아가고 있다. (출처: 중앙박물관)

OLYMPUS DIGITAL CAMERA천불도 단편, 千佛圖斷片, 투루판 베제클리크 석굴 제18굴, 6~7세기

제18굴 회랑에 그려진 천불도 단편이다. “천불”이란 무수히 많은 부처를 가리킨다. 부처는 불법과 동일시되기 때문에, 수많은 부처를 그린 천불도는 불법이 우주에 편재함을 상징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대체로 열과 행에 따라 동일한 형식의 부처가 반복되는 구성이다. 천불도 단편에서 부처는 가는 흰색선으로 이루어진 사각형의 구획 안에 배치되어 있으며, 통견의 법의를 입고 선정인(禪定印)을 취하고 있다. 이목구비가 큰 얼굴, 명암법, 어두운 배경색은 모두 베제클리크 초기 벽화의 특징이다. (출처: 중앙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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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귀상 단편, 惡鬼像斷片, 투루판 베제클리크 석굴 제15굴, 10~12세기,

베제클리크 석굴 제15굴 중당(中堂)의 네 모퉁이에는 사천왕이 그려져 있다. 이 벽화는 안쪽 좌측 벽에 그려진 사천왕 앞에 앉아 있는 악귀를 그린 것이다. 악귀는 겁에 질린 듯이 눈을 크게 뜨고 입을 벌리고 있으며, 두 손은 가슴앞으로 모아 화살 2개를 쥐고 있다. 오른쪽에는 사천왕의 오른쪽 발과 코끼리 머리장식을 한 오른쪽 다리 일부가 보인다. 악귀의 과장된 표정과 근육, 화려한 채색 등이 특징이다.
베제클릭석굴사원, ‘베제클릭’은 위구르어로 ‘아름다운 그림으로 장식된 곳’이라는 뜻이다.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화려한 벽화가 많이 남아 있는 베제클리크 석굴사원은 서역북도에 위치한 투루판 일대에서 가장 큰 석굴사원군이다. 원래 80기 이상의 불교와 마니교 석굴이 만들어졌으나, 현재는 50기 정도 남아 있다.  (출처: 중앙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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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귀상단편, 惡鬼像斷片, 투루판 베제클리크 석굴 제 15굴, 10~12세기,

눈이 세개인 악귀가 표현된 벽화 단편이다. 제15굴 중당에는 각 모퉁이에 사천왕이 그려져 있는데, 이 악귀는 입구 좌측에 그려진 사천왕 옆에 그려 있던 것으로 추정된다. 녹색 피부의 악귀는 타원형의 얼굴에 눈을 부릅뜨고 있으며 화려한 장신구를 착용하였다. 오른손은 아래로 내리고 왼손은 위로 올려 긴 화살통을 들고 있다. 악귀의 색채 구성과 표현방식이 제15굴 중당에 그려진 화두금강(火頭金剛) 단편과 유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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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막, 帳幕壁畵斷片, 투루판 베제클리 석굴사원 제15굴, 10~12세기, 회랑 벽면과 천정이 만나는 부분에 그려진 장식문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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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막, 帳幕壁畵斷片, 투루판 베제클리크 석굴사원 제15굴, 10~12세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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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씨가가 있는 벽화 단편, 베제클리크 석굴사원, 10~12세기. 위구르어와 한자로 쓴 명문이 있는 벽화 단편이다. 공양자의 이름과 발원 시기를 기록한 것으로 여겨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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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왕(Vidya-raja), 베제클리크 석굴사원, 10~12세기,

분노에 찬 모습을 한 채로 화염에 둘러싸여 있는 명왕의 하반신에 해당하는 벽화이다. 베제클릭 제 20동굴의 중당 벽화에서 확인되는 유사한 도상에 의거하여 볼 때, 이 상은 6개의 팔을 지니고 각각 칼, 도끼, 법륜 등을 든채 오른쪽을 향해 공격하는 자세를 취하고 있었을 것이다. (출처: 중앙박물관)

서원화(Pranidhi scene in Bezeklik Caves),
베제클릭 석굴사원, 베제클릭 석굴사원에서 그 형식이 완성되고 널리 그려진 대표적인 벽화로 ‘서원화’가 있다. 석가모니가 각기 다른 전생에서 당시의 부처(현재의 시점에서 볼 떄 과거불)로 부터 깨달음을 얻을 것이라는 약속을 받는 이야기가 한 화면에 압축적으로 그려져 있다. <출처:중앙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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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원화 단편, 誓願畵斷片, 투루판 베제클리크 석굴, 제33굴, 10~12세기, 복제품, 석가모니가 전생에 상인이었을 때 모습을 그린 그림이다.

제33굴 오른쪽 벽 안쪽에서 2번째로 배치된 서원화의 일부분이다. 서원화는 석가모니가 각기 다른 전생에서 당시의 부처, 즉 현재의 시점에서 볼 때 과거불을 만나는 이야기를 주제로 한다. 이 벽화에는 두 명의 인물이 나란히 앉아 공양물이 담긴 화려한 쟁반을 들고 있고, 왼쪽 끝에는 공양의 대상이 되는 과거불의 광배, 발, 옷자락 등의 일부가 보인다. 인물의 얼굴과 복장에 각기 다른 개성이 잘 표현되어 있다. 차림새로 보아 당시 실크로드에서 상인으로 활약한 소그드인과 위구르인을 모델로 한 것으로 보인다. (출처: 중앙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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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원화, 석가모니가 전생에 왕이었을 때, 베제클리크 석굴사원, 10~12세기. 복제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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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원화, 석가모니가 전생에 왕이었을 때, 베제클리크 석굴사원, 10~12세기. 복제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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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원화, 석가모니가 전생에 수행자였을 때, 베제클리크 석굴사원, 10~12세기, 복제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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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원화, 석가모니가 전생에 왕이었을 때, 베제클리크 석굴사원, 10~12세기. 복제품

SANYO DIGITAL CAMERA투루판 교하고성 대불사 절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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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불도 단편, 千佛圖斷片, 투루판 아르호 석굴 제4굴, 10~12세기

야르호 석굴은 투루판의 교하고성(交河古城) 서쪽면의 암벽을 파서 만들었고, 총7기가 현존한다. 이 벽화는 제4굴에 그려진 천불도의 일부이다. 제4굴의 천불도에는 밝은 바탕색 위에 선묘 위주로 표현된 부처가 그려져 있다. 얼굴, 법의, 연꽃 대좌 모두 단순하고 평면적으로 표현되었다. 법의의 경우 다리부분은 좌우로 긴 타원형이며, 상의는 U자형 선을 반복하여 묘사했다. 두광(頭光)과 신광(身光)으로 이루어진 광배는 몇겹의 원으로 표현하고 녹색과 함께 붉은 색을 더했다. 이 천불도의 방제에는 “나무(南無)”라는 존칭과 함께 부처의 이름인 “통천불(通天佛)”이 쓰여 있다. (출처: 중앙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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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화단편, 壁畵斷片, 투루판, 10~12세기

<출처>

  1.  중앙박물관
  2.  두산백과
  3.  위키백과
  4.  한국민족문화대백과

 

[중앙박물관 중앙아시아실] 중앙아시아의 불교조각

중국 신강 위그루 자치구에 위치한 호탄(和田)은 타림분지 남서쪽에 위치한 고대의 왕국이다. 옥(玉) 생산지였던 대월지(大月氏)가 있었던 곳으로 고대 동.서교역로에서 중요한 거점이었다. 한무제때 실크로드가 개척된 이후 서역문화와, 불교의 전파에 큰 역할을 했던 곳이다. 투루판은 한나라때 흉노를 견제하기 위해 한인들이 거주한 이래로 당나라때 고창국을 비롯한 한족의 영향을 받은 지역으로 지역중심지였던 교하고성, 고창고성을 비롯하여 주변 계곡 등에 많은 불교 유적들이 남아 있는 곳이다. 이 지역에서 출토된 불상들은 건축물과 마찬가지로 흙으로 빚어 만든 소조상이 대부분이며, 그 형태는 인도와 중동의 영향을 받은 간다라 양식이 많다.

불교는 기원전 3세기경 아소카왕에 의해서 인도와 주변국으로 전파되기 시작하여 기원전 2세기경에는 중앙아시아 박트리아를 비롯하여 실크로드 교역상에 있던 크고 작은 국가들을 통해서 중국에 전파되었다. 당시 불교가 크게 융성했던 지역으로는 대월지, 안식국이라 불린 파르티아, 강거라 불렸던 소그드, 쿠챠 등이 있다. 또한 서유기의 주인공인 현장이나 왕오천축국전을 남긴 혜초 등 많은 학승들이 실크로드를 경유해서 불교성지 순례를 다녀왔으며, 불경들이 다양한 언어로 번역되었다.

OLYMPUS DIGITAL CAMERA보살/불법을 수호하는 신, 菩薩/天部像, 투루판, 6~7세기. 그리스 조각상에서 볼 수 있는 사실적인 표현이 특징인 간다라미술의 특징이 잘 나타나 있다.

머리 부분만 남아 있는 불상의 일부로, 보살이나 불법을 수호하는 신이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각 상이 조금씩 차이는 있지만, 넓은 이마와 우아한 곡선을 그리는 머리카락의 표현, 머리 장식에서 유사성을 보인다. 얼굴 표현에서는 이목구비가 중앙에 집중되어 있는 것이 특징이다. 오타니 탐험대가 교하고성(交河古城)과 무르툭에서 가져온 다른 불상과 유사한 모습을 지니고 있다. (출처:중앙박물관)

불교조각
중앙아시아의 불교 조각은 미란, 호탄, 쿠차, 투루판 지역의 여러 유적에 전한다. 이 지역의 불교 조각은 소조상이 대다수를 차지하며, 양식과 도상은 간다라의 영향을 기반으로 하면서 지역적인 특징을 발전시킨 모습을 보인다.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는 불교 조각의 대다수는 서역 남도(西域南道)의 대표적인 불교의 중심지인 호탄에서 출토된 것이다. 이외에도 투루판과 옛 언기국(焉耆國)에 속하는 카라샤르 지역의 예도 일부 소장되어 있다. (출처: 중앙박물관)

OLYMPUS DIGITAL CAMERA불교전파 경로에 있는 중앙아시아의 주요 불교유적.

OLYMPUS DIGITAL CAMERA실크로드의 주요 거점도시였던 호탄과 카라사르에서 출토된 불교 조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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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 佛像, 호탄(和田), 4~5세기. 실크로드의 중요 거점이었던 호탄에 출토된 소조불상이다. 전형적인 간다라 불상의 형태를 하고 있다.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된 호탄 출토의 소조상 중에서 가장 크기가 큰 예이다. 얼굴의 전반적인 형태와 반쯤 감고 있는 눈의 형식적인 표현이 호탄의 대표적인 불교 유적인 라와크 스투파에서 발견된 불상과 유사하다. 머리부분에는 물결치는 듯한 머리카락 표현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출처: 중앙박물관)

OLYMPUS DIGITAL CAMERA무사, 武士像, 카라사르, 6~7세기. 언기국으로 알려진 중앙아시 카라사르에서 출토된 소조상이다. 틀을 이용해 대량으로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서역 북도에 위치한 카라사르(Karashar)는 중국 문헌에 언기국(焉耆國) 또는 오이국(烏夷國)으로 기록되어있다. 이곳의 불교유적은 평지 사원과 석굴사원으로 이루어졌으며, 5~8세기로 편년되는 다양한 불상이 출토되었다. 쇼르축(Shorchuk), 식신(Shikshin)등 다양한 명칭으로 불린다. 여기 전시된 작품은 무사의 머리 부분이다. 영국박물관 등 여러 박물관의 컬렉션에도 동일한 유형의 상이 전하고 있어, 틀을 이용하여 대량으로 제작된 것으로 보인다. (출처: 중앙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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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가 있는 나무 막대기, 木片, 호탄, 6세기, 공양자의 이름을 적어 불상 안쪽에 안치해 두는 주심목(主心木)이다. 앞뒤에 글씨가 있어, 공양자의 이름과 제작연대를 추정할 수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연꽃무늬 벽돌, 蓮花紋方甎, 투루판(吐谷渾) 토유크(吐浴溝), 8세기, 삼국시대 이후 한반도에서도 많이 볼 수 있는 벽돌의 형태이다.

투루판 토유크 석굴사원에서 출토된 벽돌로, 사원 바닥에 깔려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위에서 내려다 본 활짝 핀 연꽃이 벽돌의 중앙 부분을 가득 채우며, 네 모퉁이에는 꽃봉우리가 작게 묘사되어 있다. 가장자리의 좁은 운양대에는 당초문이 새겨져 있다. (출처: 중앙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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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라피스와 하포크라케스, 호탄, 2~3세기

세라피스는 이집트 프롤레마이오스 왕조(기원전 304 ~ 30년) 시기에 새롭게 탄생한 신으로, 그리스의 제우스와 같은 모습으로 형상화되었다. 대좌에 앉아 있는 세라피스는 왼손에는 풍요의 뿔을 들고, 오른손은 나체의 소년 머리 위에 올려놓고 있다. 오른편에 서 있는 소년은 오른손으로 입을 가리고 있는데, 그는 세라피스와 종종 함께 숭배되었던 침묵의 신 하포크라케스이다. (출처: 중앙박물관)

OLYMPUS DIGITAL CAMERA코끼리, 像, 쿠차(庫車) 쿰트라(庫木吐拉) 석굴사원, 8세기.

OLYMPUS DIGITAL CAMERA 코끼리, 像, 쿠차(庫車) 쿰트라(庫木吐拉) 석굴사원, 8세기.

정면을 바라보고 있는 코끼리 머리와 발을 표현한 부조이다. 간다라 지역과 서역북도의 불교 유적지에서 유사한 예가 보이며, 건축물의 기단부나 불상의 대좌 장식의 일부였던 것으로 보인다. (출처: 중앙박물관)

OLYMPUS DIGITAL CAMERA연꽃에서 다시 태어나는 모습, 蓮花化生像, 호탄, 6~7세기

OLYMPUS DIGITAL CAMERA연꽃에서 다시 태어나는 모습, 蓮花化生像, 호탄, 6~7세기

몇겹의 꽃잎으로 이루어진 연꽃 가운데에서 인물이 화생(化生)하는 순간을 묘사한 스투코로 만든 조각이다. 불교에서는 부처의 세계인 정토(淨土)에서 태어날 때 연꽃에서 태어난다고 하는데, 연꽃은 청정함과 깨달음의 상징으로 불교 미술에 자주 이용되는 모티프이다. (출처: 중앙박물관)

OLYMPUS DIGITAL CAMERA연꽃에서 태어나는 모습, 蓮花化生像

OLYMPUS DIGITAL CAMERA연꽃 속의 작은 불상, 蓮花中佛座像, 호탄, 6~7세기

OLYMPUS DIGITAL CAMERA연꽃 속의 작은 불상, 蓮花中佛座像, 호탄, 6~7세기

OLYMPUS DIGITAL CAMERA광배 파편, 光背破片, 호탄, 6세기

OLYMPUS DIGITAL CAMERA광배 파편, 光背破片, 호탄, 6세기

스투코로 만든 광배의 테두리 부분으로, 연꽃 문양으로 장식된 띠와 불꽃무늬 일부가 남아 있다. 원래는 화려하게 채색되어 있었다. (출처: 중앙박물관)

OLYMPUS DIGITAL CAMERA광배 파편, 光背破片, 호탄 부근, 6~7세기

여기 보이는 조각 파편 중에는 교각의 자세를 취한 불상, 꽃무늬, 기하학적 문양이 보인다. 호탄의 라왁 사원지에서 발견된 불상 광배의 일부와 비슷한 모습을 보여, 이와 유사한 모습의 광배에서 떨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출처: 중앙박물관)

SANYO DIGITAL CAMERA투루판 고창고성 대불사 절터. 당대(唐)에 투루판에서 번성했던 국씨고창국의 도읍이었던 고창고성 중심부에 있는 절터이다. 이곳에서 현장법사가 머물면서 설법을 전했다고 한다.

SANYO DIGITAL CAMERA투루난 교하고성에 남아 있는 대불사 절터. 중앙아시아에 있었던 사찰의 모습을 살펴볼 수 있다.

<출처>

  1.  문화재청
  2.  두산백과
  3.  위키백과
  4.  한국민족문화대백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