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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도 운문사 처진소나무(천연기념물 180호)

경북 청도군 운문면 신원리 운문사 경내에 있는 처진소나무(천연기념물 180호)이다. 가지가 밑으로 처진 모습을 하고 있는 처진소나무 품종 중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규모이다. 운문사 만세루 옆 마당에 자라고 있는데 높이 9.4 m 정도이며 높이 3 m에서 사방으로 가지가 뻗어나가는 처진소나무의 특징을 잘 보여주고 있다. 사방을 뻗어나간 가지가 처진 모습이 독특하면서도 매우 아름답다. 임진왜란 때 이 나무가 있었다는 기록이 있는 것으로 볼 때 수령은 400년 이상인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청도 운문사 처진소나무 01-20200106청도 운문사 처진소나문(천연기념물 180호), 운문사 동쪽 출입문으로 사용되고 있는 범종루를 들어서면 제일 먼저 볼 수 있는 장면이다.

청도 운문사 처진소나무 02-20200106앞쪼에서 본 모습. 처진소나무는 소나무 품종의 일종으로 높이 3 m 정도에서 가지가 옆으로 뻗어나가면서 처진 모습을 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처진소나무로 그 특징을 가장 잘 보여주고 있다.

청도 운문사 처진소나무 03-20200106뒷편 대웅전 앞 마당에서 본 모습.

처진소나무, 천연기념물 180호
소나무의 한 품종인 처진소나무로서 우리나라에서 최대 규모이다. 가지가 밑으로 늘어지는 점이 보통 소나무와 다른데 자연적으로 이 나무처럼 둥글게 자라는 나무는 매우 드물다. 나무모양이 아름답고 전형적인 처진소나무 모습을 보여주고 있어 생물학적 자료로서 가치가 크다. 어떤 고승이 소나무 가지를 꺾어서 심었다는 전설이 전해지며 운문사에서는 매년 봄에 막걸리를 물에 타서 뿌리 가장자리에 주고 있다. 높이는 약 6 m 이고, 둘레가 3.5 m 이며, 나무의 나이는 500여년 정도로 추정된다. (안내문, 청도 운문사, 2020년)

<출처>

  1. 안내문, 청도 운문사, 2020년
  2. 국가문화유산포탈, 문화재청, 2020년
  3.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소, 2020년

양평 용문사 은행나무(천연기념물 30호), 우리나라에서 가장 크고 오래된 나무

경기도 양평군 용문면 신점리 용문사 경내에 있는 은행나무(천연기념물 30호)이다. 수령 1,100살 정도이며 높이 42 m로 우리나라에서 가장 크고 오래된 나무이다. 통일신라 경순와의 아들이 망국의 한을 품고 심었다는 전설이 내려오는 유서깊은 나무이다. 조선초 세종 때 정3품에 해당하는 벼슬을 받았다고 하며 당시에도 전국적으로 크고 오래된 나무였던 것으로 보인다. 수령 천년이 넘은 고목이지만 지금도 열매가 열리고 있으며 생생하고 살아있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양평 용문사 정지국사탑20191109_094926
양평 용문사 은행나무. 수령 1,100년 된 고목으로 다른 고목과는 달리 지금도 살아있는 모습을 제대로 보여주고 있다.

양평 용문사 은행나무 20190603-02울창하고 생동감있는 모습을 보여주는 초여름의 은행나무

양평 용문사 은행나무 20191109-11가을

양평 용문사 은행나무 20190603-03은행나무 둘레는 뿌리 근처가 약 15.2 m 정도이며, 지금도 상한 부분 없이 온전한 형태를 유지하고 있다.

양평 용문사 은행나무 20190603-05용문사 경내에서 본 은행나무.

양평 용문사 은행나무 20191109-12
가을에 본 모습

양평 용문사 은행나무 20190603-04양평 용문사. 사찰 전각들은 의병전쟁 중 불타버린 것을 중건한 것들이다.

양평 용문사 은행나무, 천연기념물 30호
동양 최대의 용문사 은행나무에 얽힌 이야기는 많다. 신라의 마지막 왕인 경순왕의 세자 마의태자가 나라 잃은 설움을 안고 금강산으로 가다가 심었다고도 하고, 신라의 고승 의상대사가 짚고 다니던 지팡이를 꽂았더니 이 지팡이가 부리를 내려 성장한 것이라고도 한다. 이 나무는 오랜 세월 전란 속에서도 불타지 않고 살아남은 나무라 하여 천왕목이라고도 불렀으며, 조선 세종 떄에는 정3품 이상에 해당하는 벼슬인 당상직첩을 하사받기도 하였다. 정미년 의병이 일어났을 때 일본군이 절을 불태웠으나 이 나무만은 화를 면했으며, 옛날에 어떤 사람이 이 나무를 자르려고 톱을 대는 순간 피가 쏟아지고 하늘에서는 천둥이 쳤다고 한다. 또 나라에 변고가 있을 떄에는 이 나무가 소리를 내어 그것을 알렸으며, 조선 고종이 세상을 떠났을 때 큰 가지 하나가 부러져 떨어졌다고 한다. (안내문, 양평 용문사, 2019년)

<출처>

  1. 안내문, 양평 용문사, 2019년
  2. 국가문화유산포탈, 문화재청, 2020년

성주 경산리 성밖숲, 마을의 재앙을 막기 위해 읍성 바깥 강변에 조성한 숲

경북 성주군 성산읍 경산리에는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성주 경산리 성밖숲’이다. 풍수지리에 영향을 받아서 마을의 재앙을 막기 위해 옛 성주읍성 서문 밖 낙동강 지천인 이천변에 숲이 조성되어 있다. 원래 밤나무가 심어져 있었는데 임진왜란 이후 밤나무를 베어 버리고 왕버들을 심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이곳에 심어진 왕버들은 수령이 300~500년된 것으로 현재는 50여 그루가 남아 있다. 시골마을에 남아 있는 비보림 중에서도 규모가 크고 큰 고을의 중심지인 읍치에 남아 있다. 옛 읍성 성벽은 사라지고 숲만 남아서 지역민에게 휴식공간을 만들어 주고 있다

낙동강 서쪽에 위치하고 성주군은 고대국가인 성산가야가 자리를 잡았던 곳이다. 조선시대에는 문인들을 많이 배출하였으며 유교적 색채가 짙은 고장이다. 성주군 읍치에 남아 있는 성주 향교는 전국 향교 중에서도 큰 규모를 자랑하고 있다. 가야산 북쪽편에 위치하고 있으며 고대국가가 자리잡을 수 있을 정도로 농업생산력이 풍족했던 것으로 보이며, 지금은 성주참외로 유명하다.

OLYMPUS DIGITAL CAMERA성주 경산리 성밖숲. 성주읍치를 휘감고 흐르는 낙동강 지천인 이천변에 조성된 인공숲이다. 수령 수백년이 넘은 왕버들 50여 그루가 울창한 숲을 이루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주민들에게 휴식공간을 제공해 주고 있는 성밖숲.

OLYMPUS DIGITAL CAMERA수령이 수백년 되었음을 보여주는 고목.

OLYMPUS DIGITAL CAMERA지금은 받침목을 받쳐주어야만 지탱할 수 있지만, 아직도 무성한 가지를 자랑하며 나무 그늘을 만들어 주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이제는 가지가 얼마 남지 않은 고목.

OLYMPUS DIGITAL CAMERA아직도 울창한 가지를 자랑하고 있는 고목들도 많이 남아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공원 한쪽 끝에 있는 고목.

OLYMPUS DIGITAL CAMERA이천변에 심어져 있는 고목

OLYMPUS DIGITAL CAMERA이천을 따라 이어지는 산책로.

OLYMPUS DIGITAL CAMERA산책로 중간에 있는 고목

OLYMPUS DIGITAL CAMERA안쪽 숲속에 있는 고목들

OLYMPUS DIGITAL CAMERA숲이 만들어준 그늘에서 한가한 시간을 보내고 있는 주민들.

OLYMPUS DIGITAL CAMERA공원 바깥쪽에 정자나무 역할을 하고 있는 고목.

OLYMPUS DIGITAL CAMERA성주군 읍치를 휘감으면서 흐르는 낙동강 지천인 이천.

성주 경산리의 성밖숲, 천연기념물 403호, 경북 성주군 성주읍 경산리
이 숲은 풍수지라 사상에 따라 성주읍성 서문 밖에 조성한 숲으로 수령이 약 300~500년 된 왕버들 57그루로 이루어져 있다. 전설에 의하면 조선 중기에 성주읍성 서문 밖 마을의 어린이들이 아무런 이유 없이 죽어갔다. 답답한 주민들이 지관에게 물어 보니 “마을의 족두리 바위와 탕건바위가 서로 마주보고 있기 때문이라며 그 중간 지점에 숲을 조성하면 재앙을 막을 수 있다”라 하였다. 이에 주민들이 서문 밖 이천변에 밤나무 숲을 조성하였다. 그러나 임진왜란 이후 마을의 기강이 해이해지고 민심이 흉흉해지자 밤나무를 베어 내고 왕버들로 다시 조성하였다고 한다. 성밖숲은 오랜 기간 자생하고 있는 왕버들로만 구성된 단순림으로 학술적 가치가 있을 뿐만 아니라 마을의 풍수리지 및 역사.문화.신앙에 따라 조성되어 마을 사람들의 사회적 활동과 토착적인 정신문화의 재현 공간으로 이용되고 있으며, 전통적인 마을 비보림으로 향토성과 역사성을 가진 숲이다. (안내문, 성주군청, 2011년)

<출처>

  1. 안내문, 성주군청, 2011년
  2.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2018년
  3.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2018년

태백 구문소 전기고생대 지층 및 하식지형(천연기념물 417호)

강원도 태백시 동점동에 있는 구문소 전기고생대 지층 및 하식지형(천연기념물 417호)이다. 구문소(求門沼)는 낙동강 발원지인 황지에서 솟아난 황지천이 암반을 뚫고 지나면서 철암천과 만는 곳에 형성된 석문과 작은 소(沼)이다. 세종실록지리지 등 고문헌에는 구멍이 뚫린 하천이라는 뜻의 천천(穿川)으로 기록되어 있기도 하다. 구문소 부근 석회암 지대에는 건열, 물결자국 등 다앙한 형태의 퇴적구조와 삼엽충, 완족류, 두족류 등의 다양한 생물화석이 출토되고 있다.

구문소는 황지연못이 있는 태백시 도심에서 남쪽으로 8 km  정도 떨어진 곳에 있다. 지질시대인 약 1억년 전부터 황지천이 흐르면서 구문소의 암벽사면을 깎으면서 심한 곡류를 형성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암벽사면을 완전히 깎지 못하고 지하에 형성되어 있던 단층동굴과 연결되면서 구문소가 생겨났다. 이후 원래 황지천이 흐르는 곡류하천에는 물이 더이상 흐르지 않게되어 평탄한 지형의 구하도로 바뀌었다. 구문소 옆에는 태백과 봉화를 연결하는 국도 31호선이 지나가는 작은 동굴이 있다. 구문소 아래에서 황지천은 철암천과 만나 낙동강이 되어 흘러 내려간다.

OLYMPUS DIGITAL CAMERA태백 구문소(천연기념물 417호). 태백시 황지연못에서 발원한 황지천이 이곳에석 곡류를 형성하면서 흐르다 석회암을 깎아 내부 동굴과 연결되면서 소(沼)와 자연동굴이 형성되었다. 그 옆에는 자동차 통행을 위해 인위적으로 만든 동굴이 있다.

고생대의 신비, 구문소
구문소 지역은 한반도 고생대(약 5억년 전 ~3억년 전)의 지사를 잘 알 수 있는 유일한 지역이다. 상부 ~하부고생대의 부정합 관계를 쉽게 관찰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고생대의 바다에서 생성된 석회암층에 나타나는 다양한 퇴적구조와 삼엽충 등의 화석들이 잘 보전되어 있어 당시의 퇴적환경과 생물상을 알 수 있기 때문에 천연기념물 제 417호로 지정되어 보호되고 있는 지역이다. 구문소 지역은 고생대자연사박물관과 함께 우리나라 최고의 지질과학 체험 현장입니다. (안내문, 태백시청, 2016년)

OLYMPUS DIGITAL CAMERA낙동강 발원지 태백 황지연못에서 남쪽으로 약 8 km 쯤 떨어진 곳에 위치하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낙동강이 흐르면서 침식된 석회암 바위에서 다양한 종류의 퇴적지형과 화석들을 볼 수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구문소 지역 지질과학 체험자원.

OLYMPUS DIGITAL CAMERA구문소 상류 쪽 황지천. 석회암을 깎으면서 강물이 흐르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구문소 동굴로 흘러드는 황지천.

OLYMPUS DIGITAL CAMERA구문소의 석회암 층리

화석에는 왜 평향한 선이 있지?
앞쪽에는 있는 암석은 바다나 강에서 퇴적물이 차곡차곡 쌓여서 만들어진 퇴적암이다. 퇴적암은 퇴적물이 편평하게 쌓여서 만들어지기 때문에 수평방향으로 금이 생긴다. 이러한 금들은 층리면이라 한다. 층리면은 암석을 이루는 입자의 크기가 달라지거나 성분, 혹은 입자의 배열이 달라질 때 보통 만들어 진다. 대부분의 층리는 형행하게 쌓이지만 암석이 된 후 지각변동으로 기울어지거나 굽어지는 등 다양한 형태를 볼 수 있다.  (안내문, 태백시청, 2016년)

OLYMPUS DIGITAL CAMERA구문소로 흘러드는 황지천. 석회암 아래로 큰 동굴이 형성되어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하류에서 본 구문소. 상당히 큰 동굴과 소(沼)가 형성되어 있다.

구문소 생성과정
지질시대인 약 1억년 전부터 황지천과 철암천이 이곳 구문소 암벽사면의 단층선을 따라 활발한 침식을 진행시켜 오다가, 지하에 생성되어 있던 단층동굴과 관통되어 그 속으로 황지천이 흘러들면서 동굴을 점점 확장시켜 구문소가 생겨났다.  (안내문, 태백시청, 2016년)

OLYMPUS DIGITAL CAMERA황지천을 막고 있는 바위산. 그 아래에 구문소와 국도 31호선에서 사용하고 있는 작은 동굴이 있다. 원래 낙동강은 이 바위산을 뚫지 못하고 심한 곡류하천을 형성하고 있다가 바위내부에 형성된 단층동굴과 황지천이 연결되면서 이곳을 관통하게 되었다. 원래 황지천이 흐르던 지역은 물이 흘렀던 흔적만 남은 구하도(舊河道)가 되었다.

사군드리 구하도는 어떻게 생겨났을까?
낙동강 발원지 황지에서 시작된 황지천이 구불구불 흐르면서 구문소의 암벽사면을 깎고 있었다. 그러다가 암벽사면을 완전히 깎지 못하고 동굴로 연결되어 황지천이 조금씩 그 속으로 흘러들면서 구문소가 생겨난 것이다. 이후 사군드리 마을로 흘러가던 곡류(말밥굽 모양, Ω)하천은 더 이상 흐르지 않은 구하도가 되었다.   (안내문, 태백시청, 2016년)

OLYMPUS DIGITAL CAMERA구문소 동쪽편 바위산. 경사진 지층이 드러나 보이는 석회암 바위산이다.

OLYMPUS DIGITAL CAMERA구문소 위 고개에 세워진 작은 정자.

OLYMPUS DIGITAL CAMERA구문소 옆을  뚫고 만든 국도 31호선 터널. 원래는 이 길만 있었는데 옆쪽에 새로 터널을 뚫으면서 옛길도 같이 사용하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구문소를 지나 봉화군으로 흘러 내려가는 낙동강. 이곳에서 철암천과 만난다.

OLYMPUS DIGITAL CAMERA태백시 통동에서 발원하여 이곳에서 황지천과 만나는 철암천.


구문소 서쪽편으로 하천이 흘렀던 흔적인 구하도를 볼 수 있다.

<출처>

  1. 안내문, 태백시청, 2016년
  2.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2016년
  3. 국가문화유산포탈, 문화재청

 

 

보은 속리 정이품송, 세조가 벼슬을 내린 소나무

충북 보은군 속리산면 상판리에 있는 정이품송(천연기념물 103호)이다. 속리산 법주사 가는 길목에 위치하고 있는 소나무로 약600년 정도 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세조가 법주사를 찾았을 때 일화가 있는 나무로 정2품(장관급)의 벼슬을 받았다고 한다. 원래는 삿갓모양을 한 아름다운 모습이었는데 최근에 강풍과 폭설 들으로 가지가 부러져 옛모습을 많이 잃었다. 나무의 모양이 크고 아름다우며 일반 소나무와 다른 형태를 가지고 있어 생물유전차원에서도 가치가 큰 소나무로 평가받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속리산을 대표하는 아이콘이라 할 수 이쓴 정이품송. 법주사 들어가는 큰 길에 위치하고 있다. 폭설과 강풍으로 옛모습을 잃기는 했지만 아직도 우아한 자태가 남아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가지가 훼손되기 전 모습.

OLYMPUS DIGITAL CAMERA법주사 들어가는 옛길. 정이품송 소나무 가지 아래로 옛길이 지나가고 있다. 세조를 태운 가마가 지나갈 때 가지를 치켜 들었는 이야기가 전해오고 있으나, 이곳에서 비를 피했다는 것이 현실적인 이야기로 여겨진다.

OLYMPUS DIGITAL CAMERA옆쪽에서 본 정이품송. 부러진 가지가 잘 보이지 않아 옛모습과 약간 비슷한 느낌을 준다.

OLYMPUS DIGITAL CAMERA뒷쪽에서 본 모습. 부러진 가지가 확연하게 드러나는 안타까운 모습이다.

OLYMPUS DIGITAL CAMERA법주사 들어가는 길.

보은 속리 정이품송, 천연기념물 103호, 충북 보은군 속리산면 상판리
이 소나무는 나이가 약 800년 정도인 것으로 추정되는 우리나라에서 보기 드문 오래된 소나무다. 전해오는 말에 의하면 이 나무는 조선 세조가 속리산에 행차할 때 임금이 타는 가마인 연이 나무가지에 걸리어 지나가지 못하게 될 것을 염려하여 왕이, “소나무 가지에 연 걸린다.”하고 말하자 밑가지가 저절로 들려 그 밑을 통과하게 되어 이를 신기하게 여긴 왕이 지금의 장관급에 해당하는 정2품의 벼슬을 내렸다고 한다. 이로부터 소나무는 ‘연걸이 소나무’ 또는 ‘정이품송’으로 불리어지게 된 것이라고 한다. 1962년 천연기념물 103호로 지정하여 관리되고 있으며, 93년 2월 강풍을 동반한 눈부라로 서쪽가지(직경 약 26cm)의 훼손, 2004년 3월 폭설로 서쪽가지(직경 약 10cm) 3개소 및 남쪽가지 1개소가 훼손되어 과거 천연기념물로 지정당시의 아름다운 자태를 잃게 되어 훼손되기 전모습을 2004년도에 이르러 전시하게 되었다. (안내문, 보은군청, 2016년)

<출처>
1.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2. 두산백과
3. 문화재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