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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산 동서리 유적, 고조선시대 서남지역 지배계층 무덤

충남 예산군 대흥면 동서리에 있는 고조선시대 무덤유적이다. 예산과 청양을 연결하는 주요 교통로와 예당저수지가 있는 무한천이 내려다 보이는 봉수산 능선에서 무덤이 발견되었다. 고조선과 삼한시대 한반도 서남해안 해상교통로의 거점에 자리잡았던 유력 세력의 무덤인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주변에는 아산 궁평리, 백암리, 예산 동서리, 당진 소소리 등 고조선과 삼한 초기의 유적지들이 확인되고 있으며, 백제 부흥운동이 있었던 대흥 임존성이 이곳에 위치하고 있다.

주민들에 의해 유물이 발견되어 부여박물관에서 유적에 대한 발굴.조사가 실시되었는데 무덤 구조의 일부만 확인되었다. 무덤에서는 한국식 동검, 거친무늬 거울, 나팔형 동기, 청동거울, 원개형 동기, 검파형 동기 등이 출토되었다. 나팔형 동기는 이곳에서만 출토되었으며 대쪽모양의 검파형 동기는 이곳과 대전 괴정동, 아산 남성리에서만 출토된 유물이다. 출토된 유물들로 볼 때 대전 괴정동이나 아산 남성리보다 약간 늦은 기원전 3세기 후반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예산 동사리 유적이 있는 예산군 대흥면 동서리. 유적은 백제 부흥이 있었던 대흥 임존성 아래 능선에 위치하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옛 대흥군 관아. 이 곳은 조선시대 대흥군 관아가 있던 곳으로 지금도 옛 동헌 건물이 남아 있다. 시골마을 작은 면소재지이지만 고대 이래로 주요 교통로에 자리잡고 있었던 고장임을 말해주고 있다.

예산 동서리유적 11-20170422예당호 저수지. 예산과 청양을 연결하는 주요 교통로가 있는 무한천을 막아 조성한 저수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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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팔형 동기, 예산 동서리, 중앙박물관, 한반도에서는 유일하게 이곳에서만 2점 출토되었다. 말머리를 장식했던 것으로 추정되는 이형동기이다.

OLYMPUS DIGITAL CAMERA대쪽모양동기, 예산 동서리, 부여박물관. 대쪽모양을 하고 있는 이형동기이다. 대전 괴정동, 아산 남성리에서도 출토되었다.

OLYMPUS DIGITAL CAMERA그 중 1점에는 손바닥 모양이 장식되어 있는데, 아산 남성리에 출토된 동기에 새겨진 사슴무늬와 함께 샤머니즘적 성격을 가진것으로 추정되는 부분이다.

OLYMPUS DIGITAL CAMERA민무늬거울, 예산 동서리, 부여박물관.

OLYMPUS DIGITAL CAMERA잔무늬거울(예산 동서리), 거친무늬거울(부여 구봉리, 예산 동서리),  부여박물관

OLYMPUS DIGITAL CAMERA뚜껑모양 동기, 예산 동서리, 부여 박물관

OLYMPUS DIGITAL CAMERA뚜껑모양 동기, 예산 동서리, 부여박물관

OLYMPUS DIGITAL CAMERA한국식동검, 예산 동서리, 부여박물관, 총 9점이 출토되었는데, 요령식 동검에 비해 가늘게 만들어 졌다.

OLYMPUS DIGITAL CAMERA한국식 동검, 예산 동서리, 부여박물관.

OLYMPUS DIGITAL CAMERA대롱옥, 예산 동서리, 중앙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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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간토기(예산동서리, 부여 구봉리), 부여박물관

충남 예산 동서리 유적
한국식 동검, 거친무늬 거울, 검파형.원개형.나팔형 동기, 대롱옥.둥근옥, 검은간토기, 돌화살촉 등이 출토된 돌무지널무덤이다. 나팔형 동기는 현재까지 한반도에서 출토된 유일한 예로 중국 랴오닝 지역 장가와자 유적 출토품과 비교해 볼 수 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2014년)

<출처>

  1. 고고학사전, 국립문화재연구소, 2001년
  2. 중앙박물관
  3. 부여박물관
  4.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소

아산 남성리 유적, 고조선시대 서남지역 지배계층 무덤

충남 아산시 신창면 남성리에 있는 고조선 시대 무덤유적이다. 온양 시내에서 서쪽으로 4 km 정도 떨어진 곳에 위치한 낮은 구릉에 위치하고 있으며, 북쪽으로는 곡교천이 흐른다. 지금은 주변지역이 넓은 평야를 이루고 있지만, 당시에는 갈대숲이 무성한 늪지였을 것으로 보인다. 고조선시대 한반도 서남해안을 따라 형성되었던 해상교역로에서 중요한 거점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주변에는 아산 궁평리, 백암리, 예산 동서리, 당진 소소리 등 고조선과 삼한 초기의 유적지들이 확인되고 있다.

1976년 주민에 의해 청동기 유물이 발견되었으며, 이후 중앙박물관에서 발굴.조사를 진행했는데 돌무지널무덤 구조가 일부가 확인되었다. 이곳에서는 한국식동검, 한국식 동검, 거친무늬 거울, 검파형.방패형 동기, 청동도끼와 끌, 곱은옥.대롱옥, 검은간토기, 덧띠토기 등이 출토되었다. 출토된 청동기유물들은 지배계급의 신분을 나타내거나 샤머니즘과 관계가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출토 유물의 특징 등을 고려할 때 고조선 시대인 기원전 3세기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아산 남성리 유적. 온양 도심에서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한 낮은 구릉지대에 위치하고 있다. 1976년 과수원 우물 작업 도중 이곳에서 유물이 출토되었다. 지금은 유적지 흔적은 남아 있지 않고 과수원으로 유지되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유적 동쪽으로는 온양 도심 지역이 보인다.

OLYMPUS DIGITAL CAMERA유적지 서쪽편. 온양 도심 북쪽을 흐르는 곡교천이 아산만으로 흘러드는 지점이다. 지금은 넓은 평야지대를 이루고 있지만 당시에는 갈대숲이 우거진 늪지였을 것으로 보인다. 한반도 서남해안을 따라 형성된 해상교통로의 거점이었을 것으로 보인다.

OLYMPUS DIGITAL CAMERA유적지 북쪽은 낮은 구릉을 이루고 있으며, 그 너머로 곡교천이 흐른다. 주변지역에 비해 상대적으로 높은 곳에 위치하고 있다.

당진 소소리유적 15-20170905유적지 주변으로 예산 동서리, 아산 궁평리, 아산 백암리, 당진 소소리 등지에서 한국식 동검 등 청동기시대와 철기시대 유물들이 출토되고 있다. 고조선 말에서 삼한시대까지 한반도 서남해안 해상교통로에 위치하고 있었던 주요 성읍국가들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한반도 서남부지역의 성장
한국식 동검 문화 단계에 들어서면서 한반도 서남부 지역에서도 강력한 지배자의 출현을 엿볼 수 있는 자료들이 집중적으로 발견된다. 대표적으로 대전 괴정동, 아산 남성리, 예산 동서리 유적 등을 들 수 있다. 돌무지 널무덤으로 추정되는 이 유적들에서는 청동 무기류, 공구류, 의기류가 다량 출토되었다. 이 중 의기류는 랴오닝 지역의 출토품과 비슷하다. 껴묻거리의 양적.질적 차이를 통해 사회적 위계화가 상당히 이루어진 정치집단이 존재했음을 알 수 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2012년)

OLYMPUS DIGITAL CAMERA방패형 동기, 아산 남성리, 기원전 3세기, 방패형동기, 기원전 3세기 충남지역에서 출토되고 있는 일종의 의기(儀器)이다. 돌무지널무덤에서 세형동검, 청동거울 등과 함께 출토되는데 대전 괴정동과 이곳에서 출토되었다. 제사장의 목에 걸었던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검파형 동기, 아산 남성리, 기원전 3세기. 대전 괴정동, 예산 동서리와 함께 이곳에서 출토되고 있는 청동기 유물이다. 대나무를 쪼개 놓은 모양을 하고 있어 대쪽모양동기라고도 한다. 위쪽에 사슴 무늬가 새겨진 것이 있어 당시의 샤머니즘 문화와 관련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검파형 동기에서 볼 수 있는 사슴 무늬.

OLYMPUS DIGITAL CAMERA한국식 동검. 아산 남성리, 기원전 3세기. 세형동검으로 불리는 이 동검은 한반도 청천강 이남에서 발견되는 청동기시대 후기, 초기 철기시대를 대표하는 유물이다. 이전의 비파형동검(요령식동검)과 차이를 보이는 고조선시대를 대표하는 유물이다.

OLYMPUS DIGITAL CAMERA31. 부채모양동기, 32. 끌, 아산 남성리, 기원전 3세기

OLYMPUS DIGITAL CAMERA거친무늬 거울, 아산 남성리, 기원전 3세기, ‘다뉴조문경(多鈕粗文鏡)’으로도 불리는 거친 무늬가 새겨진 거울이다. 청동기시대 초기에 제작된 것으로 요령지방의 청동기문화의 영향을 받아 한반도에서 만들어진 한국식 청동거울이다.

OLYMPUS DIGITAL CAMERA덧띠토기, 아산 남성리, 기원전 3세기,

충남 아산 남성리 유적
한국식 동검, 거친무늬 거울, 검파형.방패형 동기, 청동도끼와 끌, 곱은옥.대롱옥, 검은간토기, 덧띠토기 등이 출토된 돌무지널 무덤이다. 청동 의기류의 문양이 대전 괴정동 유적 출토품에 비해 정교하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2012년)

<출처>

  1. 고고학사전, 국립문화재연구소, 2001년
  2. 중앙박물관
  3.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소

[공주박물관 선사고대문화실] 마한과 한성백제기 충남지역

삼한(三韓)은 서쪽 마한에 54국, 동쪽 진한에 12국, 동남쪽 변한에 12국이 연맹체를 이루고 있었다고 중국 역사서에 남아 있다. 그 중 마한(馬韓)은 호서, 호남 지방에 존재한 연맹체로 기원전 3세기에서 기원후 4세기 중반까지 존재하였다. 마한은 54개의 작은 성읍국가들의 연맹체로 그 중 천안지방에 근거를 둔 목지국이 중심이 되었다.  지금도 교통의 중심지인 천안삼거리 인근에 위치한 천안 청당동에서는 무덤도랑을 지닌 묘제, 동물형상의 허리띠고리, 한반도를 대표하는 무기인 고리자루칼을 비롯한 철제무기, 공구 등이 출토되었다. 마한의 집터들은 에서는 발전된 토기제작기술을 보여주는 유물들과 유리구슬을 제작했던 거푸집 등이 출토되어 촌락에서 다양한 생산활동을 했음을 보여준다.

OLYMPUS DIGITAL CAMERA마한지역 무덤에서 출토된 유물들. 다른 지역과 마찬가지로 무덤주인의 권위를 나타내는 칼을 비롯한 무기류, 생활용품에 해당하는 각종 토기들이 부장품으로 묻혔다. 중국과의 교류가 많았던 지역답게 중국의 영향을 받은 토기 제작기술을 가졌던 것으로 보인다.

마한의 무덤
기원 전후부터 300년경까지는 백제.신라.고구려가 소국을 통합해가던 시기이다. 그러나 충남지역에는 독자적인 마한(3~4세기)의 문화가 유지되고 있었다. 마한에서는 시신을 묻을 때 나무널과 나무덧널을 이용하였다. 무덤 주위에 ‘ㄷ’ 또는 ‘ㅁ’자 모양의 도량을 돌린 주구묘를 만들었다. 이러한 무덤 형태는 충청도의 내륙과 중서부지역에 주로 분포항였지만, 최근에는 경기도 남부와 전남지역에서도 확인되고 있다. 무덤에는 각종 철기와 함께 둥근바닥 항아리.깊은바리.두귀단지.겹입단지.새모양토기.톱니무늬 토기 등 지역색이 강하게 나타나는 특징적인 토기가 주로 껴묻혔다. 이 시기에는 철기의 제작이 보편화되고, 중국 전국계와 낙랑의 새로운 토기제작기술이 도입되었다. 모양을 만들기 위한 물레와 토기의 겉면을 다듬기 위한 두드림법이 사용되었으며, 소성온도를 높일 수 있는 밀폐된 가마의 도입으로 단단한 회색계열의 토기가 만들어졌다. <출처:공주박물관>

OLYMPUS DIGITAL CAMERA표주박모양 토기, 공주 하봉리, 마한

OLYMPUS DIGITAL CAMERA네귀달린 단지, 공주 남산리 출토, 마한

OLYMPUS DIGITAL CAMERA겹아가리단지, 두귀달린 단지, 공주 남산리 출토, 마한

OLYMPUS DIGITAL CAMERA손잡이잔, 천안 두정동, 마한

OLYMPUS DIGITAL CAMERA둥근바닥항아리, 공주 하봉리, 마한

OLYMPUS DIGITAL CAMERA바리, 연기 용호리, 마한

OLYMPUS DIGITAL CAMERA고사리모양장식검(연기 용호리), 둥근고리 자루칼(연기 응암리), 마한. 한반도지역 고유의 고리자루칼이다. 장식이 거의 없는 초기 고리자루칼로 보인다.

OLYMPUS DIGITAL CAMERA쇠도끼(공주 남산리. 천안 용원리. 공주 분강.저석리), 쇠투겁창(천안 용원리, 공주 분강.저석리), 둥근고리자루칼(천안 청당동), 마한

OLYMPUS DIGITAL CAMERA덩이쇠, 공주 남산리.대전 구성동, 마한

OLYMPUS DIGITAL CAMERA쇠낫, 천안 용원리, 마한

마한의 집터,
마한의 집터들은 구릉지대에 위치하며, 방형의 집터 안쪽 네 모서리에 각각 1개씩의 기둥을 세운 형태이다. 한성백제 지역에서 확인되는 ‘凸’ 또는 ‘呂’자형 집터와는 다른 또렷한 지역적 특징을 보여준다. 집터에서는 계란모양토기.시루.깊은바리 등 취사와 관련된 일상생활용기를 비롯하여 사발 등의 식기와 아궁이테 등이 출토되었다. 특히 마한문화를 대표하는 두드림무늬토기는 정선된 점토띠로 그릇모양을 만들고, 그릇 안쪽에 받치모루를 대고 토기 겉면을 두드리며 단단하게 한 뒤, 물레로 형태를 다듬과 바닥을 마무리한 토기이다. 이러한 작업과정은 바탕흙이 굳기 전에 진행해아 하므로 숙련된 동작이 필수적이다. 그릇의 표준화에 따른 대량생산, 밀폐된 가마로 높은 온도에서 단단하게 구워져 오래 사용할 수 있게 된 점 등은 토기 제작기술이 이전보다 훨씬 발전된 결과라고 할 수있다. 또한 집터에서 출토된 유리구슬 제작과 관련된 거푸집은 집터 안에서 다양한 생산활동이 이루어졌음을 보여주는 자료이다.

OLYMPUS DIGITAL CAMERA받침모루, 아산 갈매리, 마한

OLYMPUS DIGITAL CAMERA목걸이, 천안 용원리.연기 응암리, 마한

OLYMPUS DIGITAL CAMERA유리구슬 거푸집, 아산 갈매리, 연기 응암리

거푸집은 광물을 녹여 만든 금속이나 유리 등의 액체를 제품으로 만들기 위한 모형이나 틀이다. 유리는 석영.탄산소다.석회암 등을 섞어 높은 온도에서 녹인 후 급히 얼리면 생기는 투명한 물질이다. 유리구슬을 만드는 방법은 유리를 가열하여 말랑해지면 막대에 감아 대롱모양으로 만든 다음 기위로 자르거나, 거푸집으로 작은 구슬을 한꺼번에 만드는 방법 등이 있다. 전시품은 둥근 유리구슬을 만드는 거푸집이다. 갈색 연질의 네모난 점토판에 벌집처럼 구멍을 뚫고, 구멍 가운데에 작은 구멍을 뚫어 구슬의 구멍이 생기도록 철심 혹은 나무침을 세운 후 유리액체를 부어 구슬을 만들었다. <출처:공주박물관>

OLYMPUS DIGITAL CAMERA얼굴무늬 손잡이, 천안 두정동, 마한

OLYMPUS DIGITAL CAMERA귀때토기, 대전 구성동, 마한

OLYMPUS DIGITAL CAMERA바리(아산 갈매리), 깊은 바리(공주 장원리), 마한

OLYMPUS DIGITAL CAMERA시루, 대전 송촌동, 마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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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란모양토기, 공주 장선리, 마한

OLYMPUS DIGITAL CAMERA아궁이틀 편, 아산 갈매리, 마한

아궁이는 방고래에 불을 넣거나 솥이나 가마에 불을 지피기 위해 만든 시설이다. 틀은 아궁이의 앞부분을 장식하는 것으로, 마한.백제지역에서는 대부분 흙으로 만들어졌다. 모양은 ‘∩’자 모양의 점토판에 돋을띠로 표현된 무늬가 있다. 백제에서는 서울 풍납토성이나 부여 군수리 등 도성의 집터 유적에서 출토되고 있어 상당한 위상을 갖는 집단만이 사용할 수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또한 문헌에 남아 있지 않은 백제에서의 취사(炊事) 연구를 위한 중요한 자료를 제공하고 있다. <출처:공주박물관>

서상 부장리 고분군
한성백제(기원전18년~475년) 시기인 4~5세기 충남지역은 여전히 마한의 문화가 남아 있었다. 그렇다면 당시 해안교통로의 거점이자 철과 소금의 주요 생산지였던 태안반도의 맹주는 어느지역이었을까? 2004~2005년 충청남도 서산시 음암면 부장리 고분군 발굴조사에서는 마한의 전형적인 ‘ㅁ’자형 도랑이 돌려진 분구묘 13기가 확인되었는데, 한변의 길이가 20~40m에 이르는 것도 있다. 무덤 안에서는 금동관모와 신발, 자루솥, 고리자루큰칼, 중국제 자기편, 흑색마연토기 등으로 대표되는 위세품과 함께 짧은목단지, 넓은입항아리 등의 백제토기류, 큰칼.창.도끼.손칼 등의 철기류, 금동귀걸이.곱은옥.구슬 등의 장신구류가 다량 출토되었다. 서산 부장리 고분군에서는 마한의 전통묘제인 ‘ㅁ’자형 도랑이 돌려진 분구묘와 함께 한성백제에서 하사한 최고 수준의 위세품이 출토된 것이다. 이로 보아 당시 이 지역의 지배세력은 한성백제에 철과 소금을 공물로 바친 대가로 태안반도의 맹주로 부상할 수 있었으며, 한성백제와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였음을 짐작할 수 있다. 서산에 대해서는 『삼국지』 위서(魏書) 동이전(東夷傳) 한조(韓朝)에 마한 54소국 가운데 치리국국(致利鞠國)으로 비정하는 견해가 있으며, 부장리 고분군은 2006년 사적 제475호로 지정되어 사적공원으로 정비되어 있다. <출처:공주박물관>

OLYMPUS DIGITAL CAMERA충남 서산시 음암면 부장리에서 발견된 삼국시대 무덤 서산 부장리고분군(사적475호)이다. 2000년 이후 이곳에 임대아파트를 건설하는 과정에서 발견된 유적으로 청동기시대에서 백제시대에 이르기까지 무덤, 주거지 증 다양한 유적이 발굴되었다. 무덤은 토광묘에서 목관묘까지 다양하다.

OLYMPUS DIGITAL CAMERA서산 부장리 고분 출토 유물. 서산 부장리고분군에서는 백제의 지방세력을 대표하는 형태의 다양한 유물들도 출토되었다고 한다. 특히 5호분에는 공주지역에서 볼수 있는 금동관모, 철제초두, 각종구슬을 비롯하여 환두대도, 철검, 도끼, 각종 토기들이 출토되었다. 한성백제기 지방의 유력한 세력으로서 마한의 전통이 많이 남아 있다고 한다.

OLYMPUS DIGITAL CAMERA둥근바닥항아리, 서산 부장리, 백제. 상당히 큰 규모의 항아리이다. 중국과 교류가 많았던 이 지역의 특징을 잘 보여준다.

OLYMPUS DIGITAL CAMERA병모양토기, 짧은목단지, 곧은입단지, 서산 부장리, 백제

OLYMPUS DIGITAL CAMERA세발토기, 흑색마연토기, 서산 부장리, 백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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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부달린투겁창, 쇠투겁창과 창고달, 쇠투겁창, 서산 부장리, 백제

OLYMPUS DIGITAL CAMERA쇠낫, 삼칼, 서산 부장리, 백제

OLYMPUS DIGITAL CAMERA끌, 손칼, 서산 부장리, 백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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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 손칼, 쇠도끼, 서산 부장리, 백제

OLYMPUS DIGITAL CAMERA쇠도끼, 서산 부장리, 백제

OLYMPUS DIGITAL CAMERA세잎장식둥근고리자루큰칼, 두잎장식둥근고리자루큰칼, 백제. 장식이 들어간 고리자루칼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쇠자루솥, 서산 부장리, 백제. 두(鐎斗)라고 불리는 액체를 데우는데 사용하는 용기이다. 청동으로 만드는 것이 일반적이나 이곳에서 출토된 것은 철로 만든 것이다. 왕릉이나 지배층 무덤에서 출토되고 있는 유물로 상류층에서만 사용하는 것이다.

OLYMPUS DIGITAL CAMERA유리구슬, 유리곱은옥, 박유리구슬, 서산 부장리, 백제

OLYMPUS DIGITAL CAMERA금동귀걸이, 서산 부장리, 백제

OLYMPUS DIGITAL CAMERA흑옥달린귀걸이, 서산 부장리, 백제

OLYMPUS DIGITAL CAMERA유리 대롱옥, 서산 부장리, 백제

OLYMPUS DIGITAL CAMERA금동관편, 천안 용원리, 백제

관이나 관장식은 머리에 쓰는 장식품인 동시에 의관제의 중요한 품목으로 정권의 질서체계를 상징한다. 백제의 금동관은 역U자 형태로 관 윗부분에 대롱모양의 장식이 달린 형태를 하고 있다. 이 금동고나편은 천안 용원리 9호 석곽묘에서 출토된 것으로, 백제 중앙으로부터 사여 받은 것으로 여겨진다. <출처:공주박물관>

<출처>
1. 국립공주박물관
2. 두산백과
3. 문화재청
4. 중앙박물관

 

 

 

 

[중앙박물관특별전, 베트남 고대문명전] 사후인문화, 철기시대 베트남 중.남부

1. 청동북, 동선문화 상징2. 홍강 유역 청동기문화3. 동더우, 고문문화4. 동선문화, 국가의 성립, 5. 동선문화 사람들6. 사후인문화7. 남비엣국, 동선문화의 전승

사후인(Sa Huynh, 기원전 500 ~ 기원후 100년)문화는베트남 중부 꽝빈(Quang Binh)성에서부터 남부 메콩강 델타지역까지 광범위하게 번성했던 철기시대 문화이다. 사후인문화 사람들은 해을을 따라 농사짓기에 좋은 평양지대에 살았다. 중국과 교류가 많았던 북부 동선문화와는 달리 사후인문화는 인도 등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사후인 문화 사람들은 북부 동선문화와는 달리 철기를 많이 만들었다. 대표적인 유물로는 도끼, 칼, 창 등의 철기와 연옥 등으로 만든 동물머리 장식 귀걸이를 비롯한 장신구 등 이 있다. 또한 장례풍습으로는 화장을 하여 독무덤에 넣어 뚜껑을 덮여 매장하는 것이 특징이다.  독무덤 주위에는 그릇을 깨뜨려 놓기도 하고, 생활 용기를 함께 매장하였다. 토기를 사용한 독무덤은 한반도 서남부지역에서도 볼 수 있는 형태이다.

사후인 문화, 해양 교역망을 형성하다.
사후인(Sa Huynh)문화는 기원전 500~기원후 100년경 베트남 중부의 해안과 도서 지역에서 번성했던 청동기~철기시대의 문화이다. 베트남 중부의 꽝빈(Quang Binh)성에서부터 남쪽으로 꽝나이(Quang Nai)성까지 해안을 따라 넓게 분포한다. 사람들은 농경에 유리한 평야지대에 주로 거주했으며, 사후인 문화는 해안에 위치한 지리적인 특징으로 동남아시아와 인도 등의 영향을 받았다. 사후인 문화는 독특한 장례법이 특징이다. 사람이 죽으면 시신을 화장해서 독무덤에 넣어 뚜껑을 덮고 세워서 매장한다. 밀집된 공동묘지 대부분은 해안 사구에 위치하고 있으며 관으로 사용된 항아리는 지역에 따른 형태의 차이가 있다. 독무덤 주위에 제기와 같은 그릇들을 일부러 깨뜨리는 풍습도 확인되었다. 부장품으로 사용된 금속유물은 청동기보다 철기가 많았다. 이러한 특징은 같은 시기 북부의 문화와는 뚜렷한 차이가 있음을 알 수 있다. 사후인 사람들은 2세기 말 참파(Cham pa)국을 세운 참족의 선조이다. 참파국은 동남아시아의 강국이었던 캄보디아의 앙코르 왕국에 영향력을 행사할 정도로 성장하였다. 이 지역은 15세기경 베트남의 영토로 편입되었다. <출처:중앙박물관>

OLYMPUS DIGITAL CAMERA<사후인문화를 대표하는 토기들>

토기제작기술이 비교적 뛰어나고 수준이 높은 편이다. 도기로 발전하는 전단계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사후인 장신구
사후인의 대표적인 장신구는 연옥과 마노, 유리로 만들어진 동물머리 장식 귀걸이와 꼭지 장식 귀걸이이다. 사후인의 귀걸이는 이 지역뿐만 아니라 남부의 동나이 지여과 멀리 홍콩, 타이, 타이완, 캄보디아와 필리핀 등 동남아시아 여러 지역에서도 출토되었다. 이것은 당시 연안 항로를 이용하여 사후인 사람들이 구축한 교역망이 있었음을 말해 주는 것이다. 한편 원석이 나지 않는 사후인 지역에서 유리, 홍옥, 마노, 감람석, 석류석으로 된 보석 장신구를 대량 제작했다는 것은 다른 곳에서 수입한 원석을 가공하여 장식품을 만든 후 재수출하였다는 것을 알려준다. <출처:중앙박물관>

OLYMPUS DIGITAL CAMERA<1.꼭지장식 귀걸이(사후인문화 BC 500~0년, 돌.유리)>

OLYMPUS DIGITAL CAMERA<2.귀걸이(바이꼬이,하틴성, 사후인문화 BC 500~0년, 돌.수정)>

OLYMPUS DIGITAL CAMERA<3.목걸이(사후인문화 BC 500~0년, 유리.마노)>

OLYMPUS DIGITAL CAMERA<4.동물머리모양 귀걸이(사후인문화 BC 500~0년, 유리.연옥)>

OLYMPUS DIGITAL CAMERA<5.팔찌(사후인문화 BC 500~0년, 청동)>

OLYMPUS DIGITAL CAMERA<사후인 문화 귀걸이 분포도.>

베트남 중부와 남부지방의 청동기.철기시대 문화인 사후인 문화를 대표하는 장신구들이 출토된 지역들이다. 해안을 따라서 넓은 지역에서 유물이 출토되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사후인 문화 사람들의 매장방식인 독무덤.>

토기로 만든 독에 시신을 묻는 방식으로 한반도 서남부지역에서 볼 수 있는 형태이다.

OLYMPUS DIGITAL CAMERA<독무덤(왼쪽, 사후인문화, 동꾸응, 빈딘성), 독무덤(오른쪽, 사후인문화, 바이꼬이, 하틴성)>

P6252780-horz-2015_10_07<독무덤(사후인문화, 바이꼬이, 하틴성)>

OLYMPUS DIGITAL CAMERA<토기(사후인문화, 바이꼬이, 하틴성)>

. 이 토기들은 3호 독무덤과 함께 묻혀 있었던 부장용 토기이다.

OLYMPUS DIGITAL CAMERA<독무덤(전북 익산 석천리 유적, 청동기시대, 토제)>

한국 청동기시대의 대표적인 무덤 양식 중의 하나로서 일상 생활에서 사용하던 독(甕)을 사용하여 죽은 사람의 시신이나 뼈를 묻는 무덤양식이다. 토기의 크기나 형태로 볼 때 유아 전용 무덤이거나 성인의 시체가 썩은 후 뼈만 남은 유골을 안치하기 위한 무덤으로 보인다. 익산 석천리 무덤에서 발견된 독널은 골아가리무늬가 새겨진 토기를 사용하고 있고, 돌로 뚜껑을 덮었으며 세워서 수직으로 안치하였다. 베트남 사후인 문화의 독무덤과 차이가 있지만 우리나라에서 발견된 청동기 시대의 무덤으로서 세워져 안치하는 방식이 비교가 된다. <출처:중앙박물관>

OLYMPUS DIGITAL CAMERA<독무덤(사후인문화, 바이꼬이, 하틴성)>

OLYMPUS DIGITAL CAMERA<독무덤(사후인문화, 출토지미상).>

OLYMPUS DIGITAL CAMERA<토기(사후인문화, 바이코이, 하틴성)>

독무덤과 함께 묻혀 있었던 부장용 토기이다.

OLYMPUS DIGITAL CAMERA<독무덤(사후인문화, 바이꼬이, 하틴성)>

OLYMPUS DIGITAL CAMERA <독무덤(사후인문화, 바이꼬이, 하틴성)>

, 왼쪽 독무덤 안에는 작은 항아리가 들어있었다. 이 항아리는 화장용 뼈단지이다.

바이꼬이 유적의 특징
바이꼬이(Bai Coi)유적은 베트남 중북부의 대표적인 청동기~철기시대의 유적이다. 동해안을 따라 길게 형성된 하틴(Ha Tinh)성의 해안 사구에 위치하며, 그동안은 동선 문화권의 남단에 포함된 지역으로 분류되어 왔다. 2012년 국립중앙박물관과 베트남 국립역사박물관이 공동으로 발굴조사 한 결과 이 유적은 사후인 문화에 속하지만 동선문화의 특징도 가지고 있는 문화 접점으로서의 요소가 있음을 확인하였다. 바이꼬이 유적은 사후인의 귀걸이가 출토된 독무덤(甕棺墓)과 동선 팔찌를 채워 시신을 매장한 움무덤(土壙墓)이 혼재한 상태로 조사되었다. 또한 무덤안에서 출토된 청동 유물을 보존 처리하는 과정에서 표면에 붙어 있는 직물 조각을 발견하였다. 분석 결과 마직물로 확인 되었으며, 이를 통해 2000년 전 사후인 사람들이 직조 기술을 이미 보유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출처:중앙박물관>

OLYMPUS DIGITAL CAMERA<1.도끼 (바이꼬이, 하틴성, 사후인문화 BC 500~0년, 청동)>

OLYMPUS DIGITAL CAMERA<2.팔찌 (바이꼬이, 하틴성, 사후인문화 BC 500~0년, 청동)>

OLYMPUS DIGITAL CAMERA<3.직물(바이꼬이, 하틴성, 사후인문화 BC 500~0년, 마)>

OLYMPUS DIGITAL CAMERA<4.어망추(바이꼬이, 하틴성, 사후인문화 BC 500~0년, 토제)>

OLYMPUS DIGITAL CAMERA<5.삽날과 창(바이꼬이, 하틴성, 사후인문화 BC 500~0년, 철)>

사후인 사람들의 토기제작
사후인 사람들은 일찍부터 토기를 사용하여 무덤을 만들었다. 독무덤 주위에는 그릇을 깨뜨려 놓기도 하고, 생활 용기를 함께 매장하였다. 이처럼 사후인 지역에서 토기제작 기술이 발달한 원인은 토기를 좋아하는 문화적 풍토에서 시작되었다. 독무덤에 사용되는 대형토기를 만들기 위해서는 기형을 만들고 굽는 과정에서 높은 수준의 기술을 필요로 한다. 독무덤에 사용된 토기를 통해 사후인 사람들이 좋은 점토를 선택할 줄 알았으며, 회전판을 이용하여 정교한 토기들을 제작하였음을 알 수 있다. 토기의 표면은 파상문이나 음각선을 이용하여 기하학적 문양과 점열문으로 아름답게 장식하였다. 한편 표면에 흑색칠을 하여 매끈하게 마연하는 등 장식에 많은 정성을 들여 제작하였다. <출처:중앙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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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찜솥(바일로이, 하틴성, 사후인 문화 BC 500~0년, 토제)>

사후인 문화의 토제 찜솥이다. 외형은 목이 긴 항아리처럼 생겼으나 토기 안쪽에 몸체와 목의 경계에 전이 달려 있다. 그 위에 성긴 발을 깔고 수증기로 음식을 쪄서 조리하는 용기이다. 생활용뿐만 아니라 부장용으로도 출토된다.

OLYMPUS DIGITAL CAMERA<1.뚜껑이 있는 단지(바일로이, 하틴성, 사후인 문화 BC 500~0년, 토제), 2.단지(바이꼬이, 하틴성, 사후인 문화 BC 500~0년, 토제)>

OLYMPUS DIGITAL CAMERA<3.솥(바이꼬이, 하틴성, 사후인 문화 BC 500~0년, 토제)>

OLYMPUS DIGITAL CAMERA<1.항아리(바이꼬이, 하틴성, 사후인 문화 BC 500~0년, 토제), 2.굽다리단지(바일로이, 하틴성, 사후인 문화 BC 500~0년, 토제)>

OLYMPUS DIGITAL CAMERA<3.뚜껑이 있는 단지(티우도옹, 타인호아성, 동선문화 BC 500~0년, 청동)>

OLYMPUS DIGITAL CAMERA<4.새모양 토기(사후인 문화 BC 500~0년, 토제)>

<출처>
1. 중앙박물관
2. 두산백과
3. 위키백과

 

 

 

[중앙박물관 부여.삼한실] 삼한의 대표적 유적지

삼한(三韓)은 마한.진한.변한을 말한다. 고조선 지배계층 중 중국에서 이주한 세력에 밀려 남쪽에 정착한 세력과 토착세력이 연맹체를 이루었던 진국(辰國)이 삼한으로 바뀌었다. 삼한은 서쪽 마한에 54국, 동쪽 진한에 12국, 동남쪽 변한에 12국이 연맹체를 이루고 있었다고 중국 역사서인 <위지>와 <후한서> 등에 남아 있다. 이후 마한은 백제를 중심으로, 진한은 신라을 중심으로 통일된 고대국가를 형성했으며, 변한은 가야연맹체로 발전하였다.

삼한의 유적지는 비교적 많은 곳에 남아 있는데, 중앙박물관에서는 삼한시대 유적적 중 대표적인 곳으로 마한의 맹주였던 목지국이 있던 천안 청당동, 진한의 중심지였던 경주 탑동, 변한과 삼한을 대표하는 유물이 출토되었던 창원 다호리 지역에서 출토된 유물들이 전시되어 있다. 지금도 교통의 중심지인 천안삼거리 인근에 위치한 천안 청당동에서는 무덤도랑을 지닌 묘제, 동물형상의 허리띠고리, 한반도를 대표하는 무기인 고리자루칼을 비롯한 철제무기, 공구 등이 출토되었다. 경주의 중심인 경주 탑동에서도 지배층의 무덤에서 호랑이모양 허리띠고리를 비롯하여, 고리자루칼, 투겁창 등이 출토되었다. 주남저수지가 있는 창원 다호리 늪지에서는 삼한시대를 대표하는 많은 유물들이 출토되었는데, 한국형동검, 철제무기와 농기구, 제사에 사용했던 칠기그릇 등이 출토되었다. 특히, 당시 사람들의 문자생활을 보여주는 붓,손칼,벼루 등 다양한 문방구들이 같이 출토되었다.

마한
마한은 중부 일대, 호서 지방과 호남 지방에 기원전 3세기에서 기원후 4세기 중반에 존재한 소국 연맹체였다. 목지국을 중심으로 54개 소국 연맹체로 구성된 마한은 중부지방에서는 중도 유형 문화, 호서 지방에서는 방형 집자리와 주구토광묘, 호남지방에서는 주구묘와 독널무덤을 남기며 토착문화를 발전시켜 나갔다. <출처:중앙박물관>

OLYMPUS DIGITAL CAMERA마한의 대표적인 유적지인 천안 청당동에서 출토된 유물들이다.

충남 천안 청당동(1996년 발굴),
청당동 유적은 무덤 도랑을 지닌 묘제, 허리띠 고리의 성행 등이 특징적이다. 짧은 목항아리와 경질무문의 깊은 바리가 부장품으로 많이 나오고 고리자루칼을 비롯한 각종 철제 무기와 공구, 구슬 등이 확인되었다. <출처:중앙박물관>

OLYMPUS DIGITAL CAMERA 무기, 1.화살촉,  3.손칼,

OLYMPUS DIGITAL CAMERA2.창,

OLYMPUS DIGITAL CAMERA8.고리자루칼

OLYMPUS DIGITAL CAMERA농공구, 4.조각칼, 5.도끼, 6.낫, 7.송곳,

OLYMPUS DIGITAL CAMERA장신구, 9.말모양 허리띠고리,  11.허리띠고리

OLYMPUS DIGITAL CAMERA10.옥장신구,

진한
진한은 기원 전후부터 경주와 대구 지역을 중심으로 발전하였다. 12개의 소국으로 이루어졌으며, 사로국에 의해 통합되어 삼국의 하나인 신라로 발전했다. 고고학적으로는 널무덤과 덧널무덤을 만들어 쓰고 주머니호와 쇠뿔손잡이 항아리, 다양한 철기를 부장하는 특징이 파악된다. <출처:중앙박물관>

OLYMPUS DIGITAL CAMERA진한의 대표적 유적지인 경주 탑통에서 출토된 유물들이다.

경주 탑동 유적 (2010년 발굴)
경주시 탑동의 목관묘 유적이다. ‘ㅍ’자 형태의 나무널이 확인되고, 묘광 중앙에는 부장 구덩이가 설치되어 있었다. 나무널 내부에서는 무기류와 장신구류가 출토되었고, 충전토에서 토기와 쇠솥, 투겁창 및 다수의 칠기흔 등이 확인되었다. 주로 경주 외곽에서 확인되던 수장급의 무덤이 경주 시내에서 처음으로 조사되었다. <출처:중앙박물관>

OLYMPUS DIGITAL CAMERA무기 1.칼,  3.고리자루 칼, 4.칼,

OLYMPUS DIGITAL CAMERA2.칼.칼집, 5.창, 농공구,  8.낫

OLYMPUS DIGITAL CAMERA6.화살촉, 농공구, 7.도끼,

OLYMPUS DIGITAL CAMERA장신구, 9.호랑이 모양 허리띠 고리,

OLYMPUS DIGITAL CAMERA10.곰모양 장신구,

OLYMPUS DIGITAL CAMERA 11.거북모양단추, 12.개구리모양 단추,

OLYMPUS DIGITAL CAMERA13.팔찌,

OLYMPUS DIGITAL CAMERA14.거울, 15.거울,

OLYMPUS DIGITAL CAMERA16.유리구슬

변한
삼한의 하나로 마한의 동쪽 진한의 서쪽에 위치하며, 지금의 김해 지방에 있던 구야국 등 12개의 소국으로 이루어졌다. 변진으로도 불리며, 이들 중 대부분이 뒤에 가야 연맹체를 구성했다. 중국 군현과 왜에 철을 수출한 철 산지로 유명하다. <출처:중앙박물관>

OLYMPUS DIGITAL CAMERA변한의 대표적 유적지인 창원 다호리에서 출토된 유물들이다.

경남 창원 다호리 유적 (1988년 발굴)
삼한 시기 변한의 대표적인 무덤 유적이다. 수장의 무덤을 만들면서 통나무로 속을 파서 만든 관 안에 시신을 안치하고, 관 아래에 부장 구덩이를 파고 바구니에 여러 보물들을 넣어 매장하는 풍속이 있었다. 그 안에 철제 도끼, 낫, 괭이, 따비 등의 농기구와 창, 칼, 화살과 같은 무기들, 제사에 사용했던 각종 칠기 그릇들과 제사했던 음식들을 함께 묻었다. <출처:충앙박물관>

OLYMPUS DIGITAL CAMERA무기류, 1.화살촉, 농공구, 8.도끼

OLYMPUS DIGITAL CAMERA2.검, 3.칼.칼집, 4.창,6.꺽창,

OLYMPUS DIGITAL CAMERA5.창,

OLYMPUS DIGITAL CAMERA농공구, 7.낫,

OLYMPUS DIGITAL CAMERA장신구, 9.허리띠고리, 10.톱니무늬 청동고리, 12.거울

OLYMPUS DIGITAL CAMERA11.유리구슬,

OLYMPUS DIGITAL CAMERA칠기, 13.뚜껑있는 원통모양 칠기, 14.원통모양 칠기

OLYMPUS DIGITAL CAMERA통나무널에 묻힌 변한의 지배자, 창원 다호리 유적(사적327호)은 경상남도 창원시 동읍 다호리 일대의 낮은 구릉에 자리잡은 변한의 대표적인 공동묘지로 70여기의 무덤이 조사되었다. 이 가운데 1호 무덤에는 통나무널과 그 아래 구덩이에 유물이 가득 담긴 대바구니가 있었다. 무덤의 형태나 출토되는 유물로 보아 기원전 1세기 후반에 만들어진 지배층의 무덤으로 추정된다. <출처:중앙박무관>

OLYMPUS DIGITAL CAMERA다호리 유적 목관 노출 모습과 껴묻거리 바구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