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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박물관특별전, 중국고대청동기] 청동기 문화의 시작

고대 중국에서 지배층이 신분을 나타내거나 종묘와 궁궐 등에서 의식을 거행할 때 사용하는 도구를 예기(禮器)라 한다. 청동으로 만든 예기로는 곡식 등을 담는 그릇, 술잔, 솥 등이 있으며 신분에 따라 사용이 제한되었다. 중국 역사와 문화를 관통하는 종묘와 왕실 의식의 유물인 예기는 중국은 물론 한반도에서도 고대국가에서부터 조선시대를 거쳐 현대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다. 중국의 청동예기는 기원전 20세기 하나라 때부터 만들어지 시작한다. 이전에 사용했던 토기를 본 떠서 만들었는데 최초의 청동예기는 술을 데우는 세발 술잔인 가(斝, Jia)와 고(觚, Gu), 작(爵, Jue)와 고기를 삶는 그릇인 정(鼎, Ding), 력(鬲 Li) 등이다. 초기의 청동 예기는 형태와 문양이 단순했는데 기술의 발전에 따라 그릇의 종류와 무늬가 다양해진다.

정(鼎, Ding)은 청동예기를 대표하는 것으로 원형의 용기에 세발이 붙은 형태로 음식을 조리할 때 사용하는 식기(食器)에 해당한다. 가장 많이 사용된 예기로 상(商)대부터 한(漢)대까지 사용되었으며 후대에는 향로로 많이 사용되었다. 궤(簋)와 함께 왕이나 지배층의 권위를 상징하는 예기로 여겨졌다.

중앙박물관특별전 청동기문화시작 20211013_01<1.고기 삶는 세발솥(수면문정 獸面文鼎 Ding), Tripod Cauldron, 서주 전기 기원전 11~10 세기 전반>

신비한 무늬로 가득 차 있는 이 청동기는 고기를 삶을 때 사용한 세발솥(鼎)입니다. 하나라 때 등장한 뒤, 제사나 의례에 빠지지 않고 사용되던 가장 중요한 청동기입니다. 몸통에는 온통 동물얼굴무늬가 가득한데, 도철(饕餮)무늬라고도 합니다. 도철은 무엇이든 먹어치워 결국 자신의 몸도 먹어버려 머리만 남았다는 전설 속에 나오는 괴수입니다. 도철을 장식한 청동기는 신비한 힘으로 악령을 퇴치하는 힘이 있다고 믿었습니다. 이 때문에 절대적인 권위를 상징하게 되어 왕이 사용하는 청동기에 장식되었습니다. 동물얼굴무늬는 상 중기부터 서주 전기까지 유행하였습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21년)

중앙박물관특별전 청동기문화시작 20211013_02<2. 술 데우는 세발 그릇(연주문가連珠文斝 Jia), Wine Vessel, 하 후기, 기원전 18 ~ 16세기>

의례 때 사용한 울창주(울금향과 검은 기장으로 빚어 만든 술)를 따뜻하게 데워 담았던 그릇입니다. 아가리에 있는 두 개의 짧은 기둥은 술에 남은 찌꺼기를 거르는 망을 걸 때 사용하였습니다. 초기에는 제작 기술이 발달하지 못한 탓에 다리의 빈 공간에 술이 고였습니다. 표면에 불에 그을린 흔적이 남아 있고 내부에도 흰색 찌꺼기가 붙어 있어 당시 실제로 술을 데우는 데 사용하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 구슬무늬 장식은 하나라 청동기의 특징이며 상나라 때 점차 없어집니다.(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21년)

작(爵)은 중국 청동예기 중 하나로 술을 따르는 용도로는 사용되는 주기(酒器)이다. 손잡이와 발이 셋이 있는데 크기가 작고 참새를 닮았다고 하여 작(爵)이라 한다. 서주 중기까지 사용되었다.

중앙박물관특별전 청동기문화시작 20211013_03<3. 세발 술잔(수면문작 獸面文爵 Jue), 상 전기 기원전 16~15세기 중엽>

상나라 때는 세발 술잔의 아가리에 짧은 기둥 두 개를 세우는데 이 술잔은 모두 떨어져 버렸습니다. 두 개의 다리는 몸통 아래 양쪽으로 배치하고 한 개의 다리는 손잡이 아래에 배치하여 수평을 잡았습니다. 몸통 중간의 동물얼굴무늬 장식은 전형적인 상 전기의 양식입니다.(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21년)

고(觚)는 작(爵)과 함께 술잔으로 사용되었던 나팔모양의 청동기이다. 오래된 예기(禮器) 중 하나로 어리터우(二里頭) 문화에서 도제(陶製)가 사용되었고, 상대에 청동제의 고가 유행하였다. 상부에는 파초문이, 중간과 하부에는 도철무늬로 장식되었으며 바닥 안쪽에는 명문이 새겨져 있다.

중앙박물관특별전 청동기문화시작 20211013_04<4. 나팔 모양 술잔(수면문고 獸面文觚 Gu), Wine Beaker, 상 중기 기원전 15세기 중엽 ~ 13세기>

술을 마시거나 따르는 용도로 사용한 나팔 모양 술잔입니다. 원래 이름은 ‘동同’이고, 송나라 이후부터 ‘고觚’라고 불렀습니다. 이 술잔은 초기의 것으로 크기가 작고 굽다리에 십자형 구멍 3개가 있습니다. 굵은 선을 이용한 몸통의 동물얼굴무늬와 굽다리의 용무늬 장식 역시 이 시기의 특징입니다.(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21년)

중앙박물관특별전 청동기문화시작 20211013_05<동물얼굴무늬(몸통) 용무늬(굽다리)>

가(斝)는 술을 데우는 비교적 큰 그릇으로 입 가장자리에 두 개의 삿갓 모양의 작은 기둥이 솟아 있고 측면에 하나의 손잡이가 있으며 다리가 셋이다.

중앙박물관특별전 청동기문화시작 20211013_09<5. 술 데우는 세발 그릇(수면문가 獸面文斝 Jia), 상 중기 기원전 15세기 중엽 ~ 기원전 13세기>

술을 데울 때 사용한 그릇입니다. 목과 몸통에 동물얼굴무늬가 장식되어 있습니다. 돌출된 눈을 제외하고 선의 굵기로 무늬의 차이를 표현하였습니다. 목에는 가는 선을, 몸통에는 굵은 선을 사용했습니다. 이런 표현 방법은 상 중기에 유행한 장식기법입니다.(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21년)

중앙박물관특별전 청동기문화시작 20211013_06<6.고기 삶는 세발솥(수면문정 獸面文鼎 Ding), 상 전기 기원전 16 ~ 15세기 중엽>

배다 부른 몸통에 바닥이 둥글고 그 아래로 납작하며 끝이 뾰족한 용 모양 다리 세 개가 붙어 있습니다. 이런 다리를 가진 세발솥은 신석기시대 토기를 본 떠 만들던 세발솥이 청동예기로 바뀌는 과정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몸통에는 동물얼굴무늬를 한 줄로 두르고 그 아래위에 각각 구슬무늬를 장식하였습니다. 상 전기에 유행했던 무늬입니다. 솥의 바닥과 다리 안쪽에는 그을음이 있어 실제로 고기를 삶는데 사용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한편 다리 하나에는 용무늬가 없는데, 떨어져 나간 것을 뒤에 새로 붙이면서 용무늬가 생략된 것입니다.(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21년)

중앙박물관특별전 청동기문화시작 20211013_07<7. 고기 삶는 세발솥, (수면문정 獸面文鼎 Ding), 상 중기 기원전 15세기 중엽 ~ 13세기>

이 세발솥은 상 중기에 만들었지만 전기의 형태를 충실히 따르고 있습니다. 두꺼운 두 귀와 몸체에 비해 비교적 길고 공간이 비어 있는 송곳 모양 다리를 가지고 있습니다. 또 귀와 다리를 일직선상에 배치하여 시각적으로 불안해 보입니다. 다리는 지면에 닿는 부분이 둥글게 처리되어 있어, 뾰족한 모양의 다리가 원기둥 모양으로 변하는 과도기 형태임을 알 수 있습니다. 몸통에 동물얼굴무늬가 장식되어 있고, 그 아래위에 모두 구슬무늬가 있습니다. 허난성 은허 유적 무덤에서도 비슷한 모양의 세발솥이 발견되었습니다.(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21년)

역(鬲)은 음식을 조리하는 식기(食器)에 해당한다. 고기를 삶는데 주로 쓰였으며 정(鼎)에 비해 크기가 작은 편이다. 서주때 조리기구로 일상적으로 사용되었다고 한다.

중앙박물관특별전 청동기문화시작 20211013_08<8. 세발솥(수면문력 獸面文鬲 Li), Tripod Cauldron), 상 중기 기원전 15세기 중엽 ~ 13세기>

음식을 끓일 때 사용하던 세발솥으로 신석기새대에는 토기로 제작하던 그릇입니다. 상 중기 청동기의 가장 두드러진 변화는 무늬의 면적이 넓어지는 것입니다. 몸통에 한 줄의 띠로 무늬를 둘렀던 전기와 달리 중기부터는 몸통 전체에 장식하였습니다. 열을 가하지 않아 무늬와 색이 그대로 잘 남아 있습니다. 상 중기에는 이미 청동기 제작 기술이 상당한 수준에 도달하였음을 잘 보여줍니다.(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21년)

1. 청동기 문화의 시작
중국의 청동그릇은 기원전 2천년 무렵 하나라 때부터 제작되기 시작합니다. 처음에는 토기를 본떠 청동 그릇을 만들었습니다. 최초의 청동 그릇은 세발 술잔과 고기 삶는 세발솥입니다. 중국 역사에서 본격적으로 청동기를 만들기 시작한 것은 첫번째 나라인 하나라 때부터 입니다. 전설처럼 알려지던 하나라는 1959년 허난(河南)성 옌스(偃师)현 얼리터우(二里頭)에서 궁전유적이 발견되면서 역사적 사실로 확인되었습니다. 사마천의 <사기>에 따르면 하나라는 전설속의 우왕이 기원전 21세기에 세운 뒤 17대 걸왕에 이르기까지 500년 가까이 존속하였다고 합니다. 하나라 사람들은 이 지역에 오랜 기간 계속되고 있었던 신석기시대 룽산(龍山)문화의 구리 가공 경험을 바탕으로 여러 청동 그릇을 만들었습니다. 처음에는 신석기시대 토기의 모양을 본뜬 단순한 무늬의 세발 술잔이나 고기 삶는 세발솥이었습니다. 뒤이은 상나라 때에는 그릇의 종류와 무늬가 다양해집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21년)

우는 그제야 천자자리에 올라 …. 나라 이름은 하후, 성은 사씨라 하였다. <<사기>><하본기>
나라의 큰일은 제사와 전쟁에 있다. <춘추좌전>

중앙박물관특별전 청동기문화시작 20211013_10<1. 굽다리 술잔 모양 토기 만들기>

중앙박물관특별전 청동기문화시작 20211013_11<2. 바깥 거푸집 만들기>

중앙박물관특별전 청동기문화시작 20211013_12<3. 바깥 거푸집에 무늬 추가, 4. 안쪽 거푸집 만들기>

중앙박물관특별전 청동기문화시작 20211013_13<5. 거푸집 합치고 굽기>

중앙박물관특별전 청동기문화시작 20211013_14<6. 쇳물 부어 완성>

중앙박물관특별전 청동기문화시작 20211013_15<9. 청동기 주조 모형>

청동기의 제작
상주시대에는 청동예기를 만들 때 먼저 흙으로 만들고자하는 형태를 만들고 여기에 진흙을 발라 바깥 거푸집을 만들었습니다. 그 다음 처음 만든 토기의 포면을 깎아낸 뒤 바깥 거푸집과 합쳐 그 사이에 쇳물을 붓는 방법을 사용했습니다. 쇳물을 넣어 식힌 뒤, 바깥 거푸집을 부수고 청동기를 꺼내야 했기에 상주시대에 만든 청동기 중 똑깥은 것은 없습니다. 세상에 딱 하나만 존재합니다. 한편, 기원전 10세기 무렵 상나라의 분주법(分鑄法)은 복잡한 형태의 청동기 제작을 가능하게 했습니다. 분주법은 청동기의 손잡이나 다리 등 튀어 나온 부분을 먼저 주조한 뒤 이를 거푸집에 넣고 쇳물을 주입하여 몸통과 결합하는 방식입니다. 이로써 다양한 청동기의 제작이 가능해져 비약적인 발전을 하게 되었습니다.(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21년)

국립중앙박물관에서는 1921년 가을 <중국고대청동기, 신에서 인간으로>라는 제목으로 특별전시회를 개최하였다. 중국에서도 청동예기를 많이 소장하고 있는 상하이박물관과 협력하여 고대 중국을 대표하는 형태의 청동기를 체계적으로 정리하고 소개할 수 있는 유물들을 전시하였다. 여러 박물관에서 단편적으로 볼 수 있었던 중국 고대 청동기들의 역사와 용도, 의미 등을 살펴볼 수 있는 전시였다.

중앙박물관특별전 청동기문화시작 20211013_16
<중국고대청동기, 신에서 인간으로>

전시를 열며
국립중앙박물관은 중국 청동기 대표 박물관인 상하이박물관과 협력하여 중국 고대 청동기 특별전을 개최합니다. 1928년 은허(殷墟) 유적에서 삼천 삼백여 년 전의 청동기가 대규모로 발굴되었습니다. 안개 속에 싸여 있던 상나라의 실체가 처음으로 드러났습니다. 황하문명을 세계에 알린 순간이기도 합니다. 이어진 발굴조사로 중국 청동기는 기원전 21세기경 하나라 때부터 본격적으로 제작되었음이 확인되었습니다. 전쟁과 같은 생사를 가르는 중대사를 결정할 때 왕은 직접 신에게 제사를 지냈습니다. 이 의식에 사용하는 청동 그릇에 들이는 정성은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었습니다. 무서운 괴수 얼굴이 떠오르는 기괴한 무늬, 탄성을 자아내는 압도적인 크기와 형태는 신에게 바치기 위한 제례 도구의 특징을 보여줍니다. 이처럼 신을 위해 사용되던 청동기는 시간이 지나면서 왕과 제후의 권력을 상징하는 수단으로 변화합니다. 그리고 춘추전국시대에 철기가 사용되자 청동기는 일상용기로 쓰임새가 다시 한번 바뀝니다. 세계 다른 어떤 지역과도 비교할 수 없는 독보적인 문화유산 중국 청동기, 이번 특별전에서 시대에 따른 중국 고대 청동기 문화의 변화상과 함께 청동기의 제작방법, 무늬, 그리고 그 속에 담긴 중국 역사의 단면을 감상할 수 있습니다. 이웃나라 중국의 고대 역사를 담고 있는 그릇, 상하이박물관의 보물을 지금부터 만나 보십시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21년)

상하이박물관
1952년 개관한 상하이 박물관은 중국 동남부의 대표박물관으로 중국 국가박물관, 샨시역사박물관과 함께 중국 3대 청동기 박물관으로 세계 최고의 청동기 컬렉션을 자랑합니다. 청동기 이외에도 도자기, 회화 및 서예 작품이 유명하며 14만여 점의 중요 고대 유물을 포함하여 약 102만점의 문화재를 소장하고 있습니다. 건물 외관은 ‘천원지방’, 즉 둥근 하늘과 네모진 땅이라는 중국의 세계관을 반영하였고 위쪽에 솟은 반원형 장식은 세발솥을 모티브로 하였습니다. 이러한 독특한 외관으로 상하이의 랜드마크가 되었습니다. 상하이박물관은 1950년대 중국에서 일어난 ‘쇠붙이 모으기 운동’을 기반으로 발전하였습니다. 당시 항구가 있던 상하이에 가장 큰 제련소가 있었고 엄청나게 많은 청동기가 유입되었습니다. 이 중에 고대 청동기가 다수 포함되어 있었고 3만 여점의 청동기가 상하이박물관으로 전달되었습니다. 이 때문에 처음에는 청동기의 진위문제를 말하는 사람도 있었으나, 이후 중국 내 유적 발굴이 활발해지면서 상하이박물관 소장품 대부분이 진품인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21년)

<출처>

  1.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21년
  2. 안내문, 중앙박물관, 2021년
  3. 위키백과, 2023년
  4. 미술사대사전, 한국사전연구사, 2020년

 

 

농경문 청동기(보물), 고대 농경의례를 보여주는 유물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소장하고 있는 농경문청동기(農耕文靑銅器, 보물)이다. 청동기시대 유물로 한쪽면에는 밭을 일구는 남성과 새잡는 여성, 다른 면에는 나무 위에 새가 앉아 있는 생면을 새겨 놓고 있다. 중국 문헌 <삼국지>, <후한서> 등에 ‘소도(蘇塗)’라 기록되어 있는 솟대와 당시 사람들이 밭을 가는 모습 등 표현되어 있어 당시 사람들이 살았던 모습과 신앙을 살펴 볼 수 있게 해준다. 그림을 양각으로 새기고 주변은 음각으로 새기는 등 비교적 복잡한 주조법으로 제작하여 당시 청동기 주조기술의 높은 수준을 보여준다.

한쪽면에는 남성이 봄에 밭을 일구는 장면과 여성이 가을에 추수하는 모습을 표현하고 있다. 풍요를 기원하는 농경의례 용도임을 알 수 있다. 벌거벗은 남자가 밭을 갈고 있는 조선후기 함경지방에서 행해졌던 나경(裸耕)을 표현한 것이라고도 한다. 중국 고대 신화에 등장하는 봄의 신 “句芒(구망)”과 가을의 신  “蓐收(욕수)”를 표현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봄의 신은 쟁기질과 파종을 담당하며, 가을의 신은 수확과 곡물 저장을 담당한다.

보물1823호 농경문청동기 04-20200212<쟁기질과 추수모습을 표현한 부분>

다른쪽 면에는 나뭇가지 앉아 있는 새모양을 조각하고 있는데 솟대를 표현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인간을 저승으로 안내한다는 의미로 한반도와 시베리아 등에서 널리 분포되어 있는 민간신앙을 표현하고 있다.

보물1823호 농경문청동기 03-20200212<솟대가 표현된 부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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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신春神 “句芒구망” 화상석(with god of spring image), 한, 위린시 신목(神木)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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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신秋神 “蓐收욕수” 화상석(with god of autumn image), 한, 위린시 신목(神木)시>

농경문 청동기, 보물 1823호, 전 대전, 청동기시대, 기원전 5세기
농경문 청동기는 앞면에 솟대, 뒷면에 농경 의례(農耕 儀禮)를 표현하여 생산과 풍요를 비는 의식에 사용 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두 갈래의 나뭇가지 위에 앉은 새는 마을에 안녕과 풍요를 가져다 주는 솟대를 표현한 것이다. 뒷면에는 깃털을 꽂은 모자를 쓰고 벌거벗은 채 따비로 밭을 일구는 남자와 그 아래에 괭이를 들고 있는 사람, 곡식을 항아리에 담는 모습이 새겨져 있다. 이는 봄부터 가을까지 농사를 시작하여 수확하기 까지의 모습을 순서대로 표현한 것이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2020년)

<출처>

  1. 안내문, 중앙박물관, 2020년
  2. 국가문화유산포탈, 문화재청, 2021년
  3.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2021년
  4. 위키백과, 2021년
  5. 안내문, 중국 섬서역사박물관, 2019년

화순 대곡리 청동기 일괄(국보), 한반도 청동기문화를 대표하는 유물

전남 화순군 도곡면 대곡리에서 출토된 청동기 유물(국보)이다. 이 유물들은 1971년 마을주민이 집을 수리하는 과정에서 유물이 발견되었다. 총 13점의 청동기가 발견되었는데, 세형동검 5점, 청동도끼 1점, 청동손칼 1점, 잔무늬거울 2점, 청동팔령구 2점, 청동쌍령구 2점으로 청동기시대를 대표하는 유물들이 대부분 포함되어 있다.

발견된 유물 중 불가사리 모양으로 8개의 방울이 달린 팔령구와 2개의 방울이 달린 쌍령구는 한반도의 청동기시대를 대표하는 유물로 손꼽힌다. 시베리아 샤먼 계통의 사회에서 하늘과 통하는 매개체로서 사용되었던 것으로 보이는 유물로 지금도 굿을 하는 무당의 방울에서 그 흔적을 찾아볼 수 있다. 이곳에서 출토된 청동기 유물은 출토지가 분명하고 동시대에 같은 지역에서 사용했던 것으로 당시의 높은 금속공예 수준을 보여주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화순 대곡리 유적에서 출토된 청동팔령구. 방울이 8개 달린 것으로 청동방울 중 흔히 출토되는 것은 아니다. 농경생활과 관련하여 제사의식에 사용되었던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한반도 청동기 문화를 대표하는 유물 중 하나이다.

OLYMPUS DIGITAL CAMERA청동쌍령구(오른쪽).  비교적 여러 지역에서 출토되는 유물로 양끝에 방울이 달려 있다.

국보143호_화순 대곡리 청동기일괄_15-20050630출토된 유물. 한반도 청동기문화를 대표하는 다양한 유물들이 같은 지역에서 출토되었다. 당시의 발달된 금속공예 수준을 보여준다.

OLYMPUS DIGITAL CAMERA유물이 출토된 화순 대곡리 유적. 주민이 집수리를 하는 과정에서 발견되었다. 발굴.조사 결과 적석목곽묘로 추정되는 무덤이 확인되었다.

OLYMPUS DIGITAL CAMERA이 지역은 화순 일대의 하천들이 영산강의 큰 지류인 지석천에 합류하는 지역에 위치하고 있다. 부근에 화순고인돌(사적 410호) 유적지가 있다.

<출처>

  1.  문화재청
  2.  두산백과
  3.  위키백과
  4.  한국민족문화대백과

[중앙박물관 중국실] 예기(禮器), 권력의 상징

1. 예기(禮器)2. 명기와 도용, 3. 신선사상과 도교4. 불비상과 불상5. 도자기6. 중국회화

고대 중국에서 지배층이 신분을 나타내거나 종묘와 궁궐 등에서 의식을 거행할 때 사용하는 도구를 예기(禮器)라 한다. 벽(壁), 홀(珪) 등 옥으로 만든 예기는 주로 나타내고 장신구 역할을 했다. 청동으로 만든 예기로는 곡식 등을 담는 그릇, 술잔, 솥 등이 있으며 신분에 따라 사용이 제한되었다. 중국 역사와 문화를 관통하는 종묘와 왕실 의식의 유물인 예기는 중국은 물론 한반도에서도 고대국가에서부터 조선시대를 거쳐 현대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다. 종묘제례 등의 제사에 그 흔적들을 볼 수 있으며, 예기로 만들어진 청동솥(鼎) 등 다양한 형태의 유물들의 전국 각지에서 출토되고 있다.

권력의 상징 – 예기(禮器)
예기란 중국 고대 귀족들이 종묘와 궁실 등에서 의식을 거행할 때 사용한 도구이다. 사용자의 지위, 신분, 권력에 따라 엄격한 제한을 두어 사용되었으며 옥, 청동, 목재 등으로 만들어졌다. 옥예기는 원시사회말기 씨족사회의 출현 당시부터 사용되었다. 신석기시대에 생산성이 높아지면서 점차 정신적인 세계에 관심을 가지게 되어 주술적인 의미를 띠는 벽(壁),종(琮), 규(珪),장(璋) 등을 제작 사용하였는데, 이러한 옥예기는 장신구 역할도 겸하였다. 청동예기는 하대(夏代) 고대국가의 형성과 함께 출현하였으며 상주시대 이후 정치권력의 상징물이 되었다. 종류는 취기(炊器), 식기(食器), 주기(酒器), 수기(水器), 악기(樂器)가 있다. <예기(禮記)>에 의하면 신분 계급에 따라 청동기의 매장 수량을 달리했다고 한다. 이 기록은 허난 성(河南省), 산시 성(山西省) 등지의 왕, 제후 무덤에서 출토된 청동기에 의해 역사적 사실로 증명되고 있다. <출처: 중앙박물관>

“天子用九鼎八簋, 諸侯用七鼎六簋, 卿大夫用五鼎四簋, 士用三鼎二簋,”
(천자는 9개의 정과 8개릐 궤를, 제후는 7개의 정과 6개의 궤를, 경대부는 5개의 정과 4개의 궤를, 사는 3개의 정과 2개의 궤를 사용한다.)
- <禮記> “禮器篇” -

OLYMPUS DIGITAL CAMERA곡실을 담는 그릇, 靑銅 簋 Gui vessel, 1, 서주, 제사를 올릴 때 사용하는 제기 중 하나로 곡식을 담는 그릇인 궤(簋, Gui)이다. 궤는 지금도 종묘제례 등에 사용하는 제기이다.

정(鼎)과 함께 신분을 드러내는 중요한 예기로 곡식을 담는 식기(食器)이다. 신분에 따라 소유할 수 있는 수량을 엄격히 달리했는데, 짝수의 궤(簋)와 홀수의 정(鼎)을 짝을 이뤄 천자(天子)는 9정 8궤, 제후(諸侯)는 7정 6궤, 대부(大夫)는 5정 4궤, 원사(元士)는 3정 2궤를 사요하였다고 전한다. 이 궤의 안쪽 바닥과 뚜껑의 안쪽에는 동일한 내용의 명문(銘文) ‘卂伯作旅簋(신백이 만든 제사용 궤)’가 새겨져 있다. <출처: 중앙박물관>

중국의 고대 청동기는 하(夏)나라때부터 만들기었으며, 지금도 그 광택이 수려하여 당시의 수준 높았던 주조 기술을 알 수 있다. 상(商).주(周)대에는 예기로써 신분에 엄격한 제한을 두고 사용되었으며, 진한대 이후 점점 쇄퇴하였다. 그릇 안쪽에 새겨진 금문을 통해 역사적 사실과 제작자의 이름등을 알 수 있다

중국의 청동예기(靑銅禮器)
중국 고대의 청동기는 세계 다른 지역의 청동기와 차별되는 몇 가지 특징을 지닌다. 가장 주목되는 특징은 예기, 즉 의례용 용기가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점으로, 이는 조상 숭배를 위한 제사에 바치는 음식이나 술을 담는 데 사용되었다. 이러한 예기는 주로 합범(合笵), 즉 여러 개의 틀을 조합하는 방식으로 제작되었다. 장식무늬로는 후대인들이 ‘도철(饕餮)’이라고 명명한 무늬가 특징으로, 이는 상상 속 괴수를 표현한 것이다. 더불어 중국 청동기는 여려 개의 기형이 세트를 이루어 사용되었다. <출처: 중앙박물관>

OLYMPUS DIGITAL CAMERA고대 청동예기 주조법. 합범(合笵)이라 부르며 여러 개의 틀을 조합하는 방식으로 제작되었다.

OLYMPUS DIGITAL CAMERA곡실을 담는 그릇, 靑銅 簋 Gui vessel, 서주

OLYMPUS DIGITAL CAMERA곡식담는 그릇, 靑銅 簋 Gui vessel, 서주 초기 기원전 11세기 ~10세기

OLYMPUS DIGITAL CAMERA고기 삶는 솥, 靑銅 鼎 Ding vessel, 서주. 예기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고기를 삼는 솥인 발인 3개 달신 정(鼎, Ding)이다.

중국 고대 청동예기 중 가장 중요한 기물로 육류를 삶거나 끓이는 데 사용한다. 주대에는 천자(天子)가 12개 또는 9개의 정을, 제후는 7정, 대부는 5정, 원사는 3정 또는 1정을 사용했단느 기록이 전한다. 몸체 내벽에 ‘팽이 부친 일신을 위해 보물을 만들어 바치다’라는 명문이 새겨져 있다. <출처: 중앙박물관>

SANYO DIGITAL CAMERA네발 달린 솥, 靑銅 方鼎 Ding vessel, 상말기 기원전 12세기 ~11세기

OLYMPUS DIGITAL CAMERA고기 삶는 솥, 靑銅 鼎 Ding vessel, 서주, 발이  4개 달린 4각형의 솥인 방정(方鼎)이다. 육류를 끓이는 용기로 상대(商)에는 원형의 정이 가장 보편적으로 사용되었다. 방형의 정은 이형으로 보통은 대형으로 제작되었다. 다리에 매매무늬가 있고 그릇 안쪽에 명문이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고기 삶는 솥, 靑銅 鼎 Ding vessel, 2. 동주. 동주시대에 들어서면서 동물 발굽모양으로 다리 형태가 바뀌면서 오늘날까지 사용하고 있는 전형적인 제기 모습으로 바뀐다.

정(鼎)은 중국 고대의 제사와 연회에서 육류를 담아 끓이는 데 사용한 청동기로, 소유자의 귄위를 상징하는 중요한 기물이었다. 사각진 몸체에 4개의 다리를 가진 방정(方鼎)은 상대 말기에서 서주 초기까지 유행하였다. 동주 시대가 되면 오른쪽의 예처럼 기둥 모양의 다리가 동물의 발굽 모양으로 바뀌고 손잡이가 옆에 붙으며 뚜껑은 3개의 고리 모양 손잡이로 장식되는 변화를 보여준다. <출처: 중앙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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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잔, 觚 Gu vessel, 상말기 (기원전 12~11세기). 상대부터 주대까지 꾸준히 사용되었다. 술잔으로 중원지역 제후 이상의 무덤에서 출토된다. 복부에 도철무늬와 매미무늬가 있고 바닥 안쪽에 명문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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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잔, 觚 Gu vessel, 상 중기 기원전 14~13세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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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잔, 靑銅 觚 Gu vessel, 상(商). 술을 따르는 나팔모양의 잔인 고(觚)이다.

작(爵)과 함께 술잔으로 사용되었던 나팔모양의 청동기이다. 고(觚)는 오래된 예기(禮器) 중 하나로 어리터우(二里頭) 문화에서 도제(陶製)가 사용되었고, 상대에 청동제의 고가 유행하였다. 상부에는 파초문이, 중간과 하부에는 도철무늬로 장식되었으며 바닥 안쪽에는 명문이 새겨져 있다. <출처: 중앙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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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잔, 靑銅 爵, Jue vessel, 상말~서주. 술을 담아 마시던 술잔인 작(爵)이다. 신안해저유물에서도 발견되는 것으로 볼 때 실생활에도 많이 사용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술을 담아 마시던 술잔이다. 하대(夏)에 출현하여 서주대(西周)까지 제작되었다. 상 말기에 무덤에서 많이 출토되는데, 고(觚)와 짝을 이뤄 신분이 높을수록 많이 매장되었다. 술을 마시는 긴 주둥이와 반대편의 꼬리, 그 사이에 위치한 한 쌍의 작은 기둥(柱), 손잡이와 세 개의 다리가 있으며 기둥에는 ‘佰’이란 글자가 새겨져 있다. <출처: 중앙박물관>

OLYMPUS DIGITAL CAMERA주전자, 靑童 盉 He vessel, 서주. 주전자 용도의 예기인 화(盉, He)이다.

주전자 모양의 청동예기이다. 액체를 따르는 긴 주둥이인 귀때(流)와 손잡이가 있고 3~4개의 다리가 있는데 후대로 갈수록 몸체가 얕은 형태로 변화한다. 용도는 술의 농담을 조절하거나 대야와 같은 반(盤)과 짝을 이뤄 손을 씻는데 사용된 것으로 추정된다. 뚜껑 안쪽에는 ‘作祖辛(조신(15대 商王)을 추모하기 위해 만들다)’라는 명문이 새겨져 있다. <출처: 중앙박물관>

OLYMPUS DIGITAL CAMERA술그릇, 靑銅 瓿 Pou vessel, 상(商). 술을 담는 항아리 모양의 그릇인 부(瓿)이다. 하대 이후에는 오늘날 술독처럼 몸체가 깊은 뢰(罍)가 주로 사용되었다.

입이 크고 배가 부른 항아리에 굽이 달린 형태의 술 담는 예기이다. 상대(商) 초기에 출현하여 상대 말기에 유행하였는데, 부(瓿)보다 몸체가 깊은 뢰(罍)가 보편적으로 사용되면서 자취를 감추었다. 어깨에는 뿔달린 동물머리를 얹고 배부분에는 번개무늬(雷紋)와 볼록한 원형무늬를 주조로 표현했는데 이는 상대의 전형적인 장식이다. <출처: 중앙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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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담는 항아리, 靑銅 壺 Hu vessel, 상 말기 기원전 12세기 ~ 11세기. 상상의 동물을 연상시키는 도철(饕餮)무늬로 장식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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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그릇, 靑銅 壺 Hu vessel, 서주(西周), 술병처럼 생긴 예기인 호(壺, Hu)이다. 실제 생활에 사용하는 것과 큰 차이가 없는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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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그릇, 靑銅 壺 Hu vessel, 동주(東周)

목이 길고 입이 작은 형태의 의례용 술그릇(酒器)이다. 처음에는 토제로 제작되기 시작하여 청동제는 3세기까지 사용되었다. 목 부분에 새무늬로 장식된 왼쪽의 호는 대롱모양의 귀가 붙어 끝을 끼워 들 수 있게 한 ‘관이호(貫耳壺)’로, 기벽 안쪽과 뚜껑 안쪽에 동일한 명문이 있다. 오른쪽의 호는 금 입사 장식과 화려한 꽃잎 모양의 뚜껑, 고리 모양 손잡이 장식에서 동주(東周) 시기의 유개호(有蓋壺)의 특징을 볼 수 있다. <출처: 중앙박물관>

고대 옥기
중국 옥기는 사물(物).신(神).사람(人)의 이상을 대표하며 시대와 지역별로 오랜 기간 발전하였다. 신석기시대는 옥으로 석기를 모방하여 권력의 상징인 도끼를 만들고 예기인 벽璧을 만들어 천당을 상징하였다. 하대 이후 청동 공구가 발달하면서 옥을 다루는 기술이 급속히 발전하게 되어, 귀족사회를 대표하는 무기와 여러 가지 장신구가 제작되었다. 한대부터는 예기의 틀에서 벗어나 비교적 자유롭게 만들어졌다. 평민의 무덤에서는 옥기가 출토되지 않는다. <출처:중악박물관>

OLYMPUS DIGITAL CAMERA대표적인 고대옥기.  신분을 나타내는 용도로 사용되는 것으로 보이는 옥기로 벽(壁), 규(珪), 장(璋), 종(琮)이 있다. 규(珪)는 조선시대 근정전 조정에서 행해지는 조례를 할 때 신하들이 들고 있는 홀에서 그 흔적을 찾아볼 수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옥장신구, 玉璧, 양저문화 기원전 3300~기원전 2200년) 신석기시대 말기. 벽(壁)은 신분의 표시와 함께 벽사(僻邪)의 의미를 갖는 예기로 시신을 묻을 때 가슴위에 올려 놓는다.

OLYMPUS DIGITAL CAMERA옥장신구, 玉璧, 양저문화 기원전 3300~기원전 2200년) 신석기시대 말기

양저문화(良渚文化)
1936년 중국 저장성 위장현(余江县)의 양저에서 처음 발견된 신석기시대 문화로 기원전 3300~2300년 말기에 존재하였다. 대표 유물은 옥기(玉器)와 흑도(黑陶)가 있으며, 흑도 기벽이 매우 얇은 것이 특징이다. 옥기는 무덤에서 다량 출토되었는데 예기인 벽(壁), 규(珪), 장(璋), 월(鉞) 등도 출토되었다. 벼농사를 이미 시작하였고 콩, 깨, 마 등도 함께 경작하였다. 이곳에서 최초의 직물인 마직물이 발견되었다. <출처: 중앙박물관>

OLYMPUS DIGITAL CAMERA옥칼, 玉刀, 양저문화, 신석기시대 말기, 옥도끼, 玉斧, 양저문화 신석기시대 말기. 부월(斧鉞)도 조선시대까지 국왕의 권위를 상징하는 예기로 사용되었다. 

신석기시대 초기 권력의 상징으로 제작되었다. 그러나, 점점 칼날이 넓은 옥월(玉鉞)로 변모하면서 후에 황권(黃權)과 신권(神權)을 상징하게 된다. 후대 중국 역사를 통해서 황제의 상징인 부월의 근원이 되는 유물이다. <출처: 중앙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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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허리장식, 玉璏, 서진과 서한, 검을 허리에 찰 때 사용하는 장신구이다. 한대에 주로 사용하였다. 옥수라고도 한다. 돌출무늬뿐만 아니라 호랑이와 용이 부조로 새겨진 것도 있다.

중국의 공예
상대(商, 기원전 16 세기 ~기원전 11세기)와 주대(周, 기원전 11세기 ~ 기원전 256년)에는 하늘에 제사를 지내고 조상에게 기원하기 위한 목적으로 제사용 청동 그릇을 다수 제작하였다. 이 청동기는 신분 계급에 따라 소유할 수 있는 수량이 정해져 있었다. 종류는 취사용기(炊器), 식기(食器), 술그릇(酒器), 물그릇(水器), 악기(惡器)로 나눠진다. 주대 이후에는 실생활 기물이 많아졌고, 진한대(秦.漢, 기원전 221~ 기원후 220년)에 이르면 금은입사(金銀入絲), 감옥(嵌玉), 누금세공 등을 이용한 화려하고 세밀한 금속기가 만들어졌다. 도자기는 송대(宋, 960~1279년)에 들어 황금기를 맞으면서 각 지역의 가마(窯)에서 특색있는 자기가 많이 생산되었다. 원대(元, 2171~1368년)와 명대(明, 1368~1644년)에는 전국의 도공들이 경덕진에 모여들었고, 청화백자 등 다양한 종류의 자기가 제작되었다. 특히 명대에는 경덕진을 중심으로 새로운 기법의 채색차지가 만들어지고, 그 기술은 청대에 더욱 발전하였다. <출처: 중앙박물관>

OLYMPUS DIGITAL CAMERA등대, 獅子粧飾 燈臺, 청, 나무에 채색

사자, 용, 봉황 등 상서로운 동물로 장식한 등대이다. 사자 형상의 받침에는 연꽃과 박쥐무늬, 물결무늬 등을 화려하게 칠장식했고 사자는 장식된 안장돠 다래를 갗췄으며 안장 위에는 등을 연결하는 봉을 꽂는 구멍이 있다. 봉의 윗부분은 봉황의 형상으로 조각하여 둥근 공모양의 등롱(燈籠)을 달았고, 동제의 등롱은 9마리의 용을 투각으로 장식한 반구형 2개를 연결했다. 청대 칠공예품의 정교한 기교와 화려함을 보여주는 공예품이다. <출처: 중앙박물관>

<출처>
1. 중앙박물관
2. 두산백과
3. 위키백과
4. 한국민족문화대백과

 

 

 

 

[산동성박물관, 하.상.주시대] 상대(商代) 청동기

고대 중국 상대(商代, BC 1600~1046년)에는 청동기 제작은 중요한 귀족층이 장악하여 집중적으로 관리하면서 예기(禮器)를 비롯하여 도구, 무기 등을  생산했다. 당시 도읍이었던 유적지에서는 칼(刀)을 비롯하여 과(戈,창), 모(矛,창), 월(钺,도끼), 회(盔,투구) 등이 출토되고 있다. 또한 말이 끄는 전차가 사용되면서 수레(車) 제작에 필요한 여러 부속들과 말재갈 등 여러 종류의 마구(馬具)들도 제작되었다.

옥기(玉器)의 제작기술 또한 크게 발전하여 권력자의 권위를 상징하는 위세품에서 점차 상류층의 생활용구나 장신구 등이 제작되었다. 예기(禮器)로는 고대 이래로 도기로 만들어 사용했던 준(尊)을 술을 빚고 저장하고 마시는 용도로 다양한 형태의 청동제 용기들이 만들어졌다. 산동성박물관에서는 상대 산동성 지역을 대표하는 여러 유물들을 전시하고 있는데, 주로 지난시(濟南)와 칭저우(靑州) 일대에서 출토된 상대 청동기 유물들이다.

OLYMPUS DIGITAL CAMERA기와무늬용기(瓦纹霝, Bronze Ling-ewer with line design), 춘추시대(BC770~476년), 사수현 출토, ling이라 불리는 용기이다.

OLYMPUS DIGITAL CAMERA거뢰(举罍,Lei)라 불리는 술병, 글자가 새겨져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진후호(陈侯壶), 춘추시대(BC770~476년), ‘진후陈侯’라는 글자가 새겨진 술단지이다.

OLYMPUS DIGITAL CAMERA1. 청동칼(铜刀, bronze knives), 상대, 지난시(濟南) 출토. 한쪽면에만 날이 있는 도(刀)이다.

OLYMPUS DIGITAL CAMERA2. 청동창(铜矛, bronze spearhead), 상대. 모(矛)에 해당하는 창이다. 뾰족하고 폭이 넓은 양날의 창날이 부착된다.

OLYMPUS DIGITAL CAMERA3. 청동창(铜戈, bronze halberd), 상대. 과(戈)에 해당하는 무기이다. 긴나무에 청동제 날을 수직으로 부착한 창이다. 고대 전쟁에서 전차를 타고 공격할 때 사용하는 무기로 기마병이 보편화되면서 사용되지 않았다.

OLYMPUS DIGITAL CAMERA4. 청동창(铜戈, bronze halberd), 상대,

OLYMPUS DIGITAL CAMERA5. 청동물미(铜镦, bronze dui-knocker), 상대, 지난시 출토, 땅에 꽂거나 세우기 위해 창대 끝에 끼우는 뿔모양의 쇠인 물미(대镦)이다.

OLYMPUS DIGITAL CAMERA6. 청동화살촉(铜镞, bronze arrowheads), 상대, 지난시 출토

OLYMPUS DIGITAL CAMERA7. 자루모양옥기(玉柄刑器, jade plaque), 8. 옥으로 만든 도끼(玉钺, jade chopper-axe), 상대, 칭저우(靑州)소부둔(苏埠屯) 유적

OLYMPUS DIGITAL CAMERA9. 옥으로 만든 소머리모양 장신구(玉牛首形饰, jade ox-mask ornament), 상대, 칭저우(靑州)소부둔(苏埠屯) 유적. 10. 옥으로 만든 물고기형상(玉鱼, Jade fish), 상대, 칭저우(靑州)소부둔(苏埠屯) 유적
11. 옥으로 만든 도끼(玉钺, jade chopper-axe), 상대, 12. 옥으로 만든 새모양 장신구(玉鸟形饰, jade bird-shaped ornament), 상대, 칭저우(靑州)소부둔(苏埠屯) 유적, 13. 옥으로 만든 창(玉戈, jade halberd), 상대

OLYMPUS DIGITAL CAMERA14. 활모양 청동기물(铜弓形器, bronze adze inscribed), 15, 청동 말재갈(马衔, bronze bit), 16. 청동 말재갈(马镳, bronze cheek-piece), 상대, 지난시 출토. 전쟁에 말을 이용한 전차가 사용되면서 정교한 기술을 필요로 하는 청동제 마구들이 만들어졌다.

OLYMPUS DIGITAL CAMERA17. 청동 머리장신구(当卢, bronze head ornament), 상대, 지난시 출토, 18. 청동 머리장신구(泡饰, bronze bumps), 상대, 지난시 출토. 19. 청동조각칼(铜雕刻刀, bronze sculptor), 상대, 지난시 출토
20. 청동정(铜凿, bronze chisel), 상대, 지난시 출토. 21. “亚醜”글자가 새겨진 자귀(亚醜锛, adze inscribed with “ya chou”), 상대, 칭저우(靑州)소부둔(苏埠屯) 유적. 22. “亚醜”글자가 새겨진 도끼(亚醜斧, axe inscribed with “ya chou”), 상대, 칭저우(靑州)소부둔(苏埠屯) 유적. 23. 청동망치(铜锤, bronze chisel), 상대, 지난시 출토. 24. 청동자귀(铜锛, bronze adze ), 상대, 지난시 출토. 25. 청동도끼(铜斧, bronze axe ), 상대, 지난시 출토.  청동기 제작 기술이 발전함에 따라 일상생활에 사용하는 망치, 자귀, 도끼 등 다양한 생활도구들이 만들어졌다. 청동기의 특성상 실제로 사용하기 위해 만들지는 않았을 것으로 보인다.

OLYMPUS DIGITAL CAMERA26. 청동술병(铜卣 Bronze You-container), 28. 청동술병(铜卣 Bronze You-container), 상대, 술을 담아두는 그릇으로 손잡이가 있는 제기인 유(卣)에 해당한다.

OLYMPUS DIGITAL CAMERA27. 청동술병(铜卣 Bronze You-container), 29. 청동술병(铜卣 Bronze You-container), 31. 청동치(铜觯, Bronze zhi-container), 상대. 치(觯)는 작은 손잡이가 달린 작은 잔을 말한다.

OLYMPUS DIGITAL CAMERA30. 청동준(铜尊, Bronze zun-jar), 상대. 32. 청동준(铜尊, Bronze zun-jar), 상대. 준(尊)은 술을 마시는 고대의 술잔을 말한다. 34. ‘공’글자가 새겨진 잔(珙从盃, Bronze he-container inscribeed with “gong cong”), 상대, 칭저우(靑州)소부둔(苏埠屯) 유적. 37. 청동국자(铜斗 Bronze dou-ladle), 상대, 지난시 출토

OLYMPUS DIGITAL CAMERA33. 청동작(铜爵, Bronze jue-jar), 상대, 35. 청동잔(铜角, Bronze jiao-goblet), 상대, 지난시 출토

OLYMPUS DIGITAL CAMERA 34. ‘공’글자가 새겨진 잔(珙从盃, Bronze he-container inscribeed with “gong cong”), 상대, 칭저우(靑州)소부둔(苏埠屯) 유적. 작(爵)은 주구가 넓고 오른쪽에 손잡이가 붙고 다리가 셋 달린 술잔을 말하는데, 이 술잔은 주전자처럼 생겼다. 36. 청동잔(铜斝 Bronze Jia-warmer), 상대. 술을 데우는 비교적 큰 그릇으로 입 가장자리에 두 개의 삿갓 모양의 작은 기둥이 솟아 있고 측면에 하나의 손잡이가 있으며 다리가 셋인 가(斝)이다.

OLYMPUS DIGITAL CAMERA38. 청동잔(铜觚 Bronze Gu-beaker), 39. 청동잔(铜觚 Bronze Gu-beaker), 상대, 지난시 출토.  트럼펫 모양을 한 기다란 형태의 제기인 고(觚)에 해당한다.

<출처>
1. 산동성박물관
2. 두산백과
3. 한국고고학사전, 국립문화재연구소
4. 위키백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