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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경문 청동기(보물), 고대 농경의례를 보여주는 유물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소장하고 있는 농경문청동기(農耕文靑銅器, 보물)이다. 청동기시대 유물로 한쪽면에는 밭을 일구는 남성과 새잡는 여성, 다른 면에는 나무 위에 새가 앉아 있는 생면을 새겨 놓고 있다. 중국 문헌 <삼국지>, <후한서> 등에 ‘소도(蘇塗)’라 기록되어 있는 솟대와 당시 사람들이 밭을 가는 모습 등 표현되어 있어 당시 사람들이 살았던 모습과 신앙을 살펴 볼 수 있게 해준다. 그림을 양각으로 새기고 주변은 음각으로 새기는 등 비교적 복잡한 주조법으로 제작하여 당시 청동기 주조기술의 높은 수준을 보여준다.

한쪽면에는 남성이 봄에 밭을 일구는 장면과 여성이 가을에 추수하는 모습을 표현하고 있다. 풍요를 기원하는 농경의례 용도임을 알 수 있다. 벌거벗은 남자가 밭을 갈고 있는 조선후기 함경지방에서 행해졌던 나경(裸耕)을 표현한 것이라고도 한다. 중국 고대 신화에 등장하는 봄의 신 “句芒(구망)”과 가을의 신  “蓐收(욕수)”를 표현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봄의 신은 쟁기질과 파종을 담당하며, 가을의 신은 수확과 곡물 저장을 담당한다.

보물1823호 농경문청동기 04-20200212<쟁기질과 추수모습을 표현한 부분>

다른쪽 면에는 나뭇가지 앉아 있는 새모양을 조각하고 있는데 솟대를 표현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인간을 저승으로 안내한다는 의미로 한반도와 시베리아 등에서 널리 분포되어 있는 민간신앙을 표현하고 있다.

보물1823호 농경문청동기 03-20200212<솟대가 표현된 부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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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신春神 “句芒구망” 화상석(with god of spring image), 한, 위린시 신목(神木)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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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신秋神 “蓐收욕수” 화상석(with god of autumn image), 한, 위린시 신목(神木)시>

농경문 청동기, 보물 1823호, 전 대전, 청동기시대, 기원전 5세기
농경문 청동기는 앞면에 솟대, 뒷면에 농경 의례(農耕 儀禮)를 표현하여 생산과 풍요를 비는 의식에 사용 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두 갈래의 나뭇가지 위에 앉은 새는 마을에 안녕과 풍요를 가져다 주는 솟대를 표현한 것이다. 뒷면에는 깃털을 꽂은 모자를 쓰고 벌거벗은 채 따비로 밭을 일구는 남자와 그 아래에 괭이를 들고 있는 사람, 곡식을 항아리에 담는 모습이 새겨져 있다. 이는 봄부터 가을까지 농사를 시작하여 수확하기 까지의 모습을 순서대로 표현한 것이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2020년)

<출처>

  1. 안내문, 중앙박물관, 2020년
  2. 국가문화유산포탈, 문화재청, 2021년
  3.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2021년
  4. 위키백과, 2021년
  5. 안내문, 중국 섬서역사박물관, 2019년

화순 대곡리 청동기 일괄(국보), 한반도 청동기문화를 대표하는 유물

전남 화순군 도곡면 대곡리에서 출토된 청동기 유물(국보)이다. 이 유물들은 1971년 마을주민이 집을 수리하는 과정에서 유물이 발견되었다. 총 13점의 청동기가 발견되었는데, 세형동검 5점, 청동도끼 1점, 청동손칼 1점, 잔무늬거울 2점, 청동팔령구 2점, 청동쌍령구 2점으로 청동기시대를 대표하는 유물들이 대부분 포함되어 있다.

발견된 유물 중 불가사리 모양으로 8개의 방울이 달린 팔령구와 2개의 방울이 달린 쌍령구는 한반도의 청동기시대를 대표하는 유물로 손꼽힌다. 시베리아 샤먼 계통의 사회에서 하늘과 통하는 매개체로서 사용되었던 것으로 보이는 유물로 지금도 굿을 하는 무당의 방울에서 그 흔적을 찾아볼 수 있다. 이곳에서 출토된 청동기 유물은 출토지가 분명하고 동시대에 같은 지역에서 사용했던 것으로 당시의 높은 금속공예 수준을 보여주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화순 대곡리 유적에서 출토된 청동팔령구. 방울이 8개 달린 것으로 청동방울 중 흔히 출토되는 것은 아니다. 농경생활과 관련하여 제사의식에 사용되었던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한반도 청동기 문화를 대표하는 유물 중 하나이다.

OLYMPUS DIGITAL CAMERA청동쌍령구(오른쪽).  비교적 여러 지역에서 출토되는 유물로 양끝에 방울이 달려 있다.

국보143호_화순 대곡리 청동기일괄_15-20050630출토된 유물. 한반도 청동기문화를 대표하는 다양한 유물들이 같은 지역에서 출토되었다. 당시의 발달된 금속공예 수준을 보여준다.

OLYMPUS DIGITAL CAMERA유물이 출토된 화순 대곡리 유적. 주민이 집수리를 하는 과정에서 발견되었다. 발굴.조사 결과 적석목곽묘로 추정되는 무덤이 확인되었다.

OLYMPUS DIGITAL CAMERA이 지역은 화순 일대의 하천들이 영산강의 큰 지류인 지석천에 합류하는 지역에 위치하고 있다. 부근에 화순고인돌(사적 410호) 유적지가 있다.

<출처>

  1.  문화재청
  2.  두산백과
  3.  위키백과
  4.  한국민족문화대백과

[중앙박물관 중국실] 예기(禮器), 권력의 상징

1. 예기(禮器)2. 명기와 도용, 3. 신선사상과 도교4. 불비상과 불상5. 도자기6. 중국회화

고대 중국에서 지배층이 신분을 나타내거나 종묘와 궁궐 등에서 의식을 거행할 때 사용하는 도구를 예기(禮器)라 한다. 벽(壁), 홀(珪) 등 옥으로 만든 예기는 주로 나타내고 장신구 역할을 했다. 청동으로 만든 예기로는 곡식 등을 담는 그릇, 술잔, 솥 등이 있으며 신분에 따라 사용이 제한되었다. 중국 역사와 문화를 관통하는 종묘와 왕실 의식의 유물인 예기는 중국은 물론 한반도에서도 고대국가에서부터 조선시대를 거쳐 현대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다. 종묘제례 등의 제사에 그 흔적들을 볼 수 있으며, 예기로 만들어진 청동솥(鼎) 등 다양한 형태의 유물들의 전국 각지에서 출토되고 있다.

권력의 상징 – 예기(禮器)
예기란 중국 고대 귀족들이 종묘와 궁실 등에서 의식을 거행할 때 사용한 도구이다. 사용자의 지위, 신분, 권력에 따라 엄격한 제한을 두어 사용되었으며 옥, 청동, 목재 등으로 만들어졌다. 옥예기는 원시사회말기 씨족사회의 출현 당시부터 사용되었다. 신석기시대에 생산성이 높아지면서 점차 정신적인 세계에 관심을 가지게 되어 주술적인 의미를 띠는 벽(壁),종(琮), 규(珪),장(璋) 등을 제작 사용하였는데, 이러한 옥예기는 장신구 역할도 겸하였다. 청동예기는 하대(夏代) 고대국가의 형성과 함께 출현하였으며 상주시대 이후 정치권력의 상징물이 되었다. 종류는 취기(炊器), 식기(食器), 주기(酒器), 수기(水器), 악기(樂器)가 있다. <예기(禮記)>에 의하면 신분 계급에 따라 청동기의 매장 수량을 달리했다고 한다. 이 기록은 허난 성(河南省), 산시 성(山西省) 등지의 왕, 제후 무덤에서 출토된 청동기에 의해 역사적 사실로 증명되고 있다. <출처: 중앙박물관>

“天子用九鼎八簋, 諸侯用七鼎六簋, 卿大夫用五鼎四簋, 士用三鼎二簋,”
(천자는 9개의 정과 8개릐 궤를, 제후는 7개의 정과 6개의 궤를, 경대부는 5개의 정과 4개의 궤를, 사는 3개의 정과 2개의 궤를 사용한다.)
- <禮記> “禮器篇” -

OLYMPUS DIGITAL CAMERA곡실을 담는 그릇, 靑銅 簋 Gui vessel, 1, 서주, 제사를 올릴 때 사용하는 제기 중 하나로 곡식을 담는 그릇인 궤(簋, Gui)이다. 궤는 지금도 종묘제례 등에 사용하는 제기이다.

정(鼎)과 함께 신분을 드러내는 중요한 예기로 곡식을 담는 식기(食器)이다. 신분에 따라 소유할 수 있는 수량을 엄격히 달리했는데, 짝수의 궤(簋)와 홀수의 정(鼎)을 짝을 이뤄 천자(天子)는 9정 8궤, 제후(諸侯)는 7정 6궤, 대부(大夫)는 5정 4궤, 원사(元士)는 3정 2궤를 사요하였다고 전한다. 이 궤의 안쪽 바닥과 뚜껑의 안쪽에는 동일한 내용의 명문(銘文) ‘卂伯作旅簋(신백이 만든 제사용 궤)’가 새겨져 있다. <출처: 중앙박물관>

중국의 고대 청동기는 하(夏)나라때부터 만들기었으며, 지금도 그 광택이 수려하여 당시의 수준 높았던 주조 기술을 알 수 있다. 상(商).주(周)대에는 예기로써 신분에 엄격한 제한을 두고 사용되었으며, 진한대 이후 점점 쇄퇴하였다. 그릇 안쪽에 새겨진 금문을 통해 역사적 사실과 제작자의 이름등을 알 수 있다

중국의 청동예기(靑銅禮器)
중국 고대의 청동기는 세계 다른 지역의 청동기와 차별되는 몇 가지 특징을 지닌다. 가장 주목되는 특징은 예기, 즉 의례용 용기가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점으로, 이는 조상 숭배를 위한 제사에 바치는 음식이나 술을 담는 데 사용되었다. 이러한 예기는 주로 합범(合笵), 즉 여러 개의 틀을 조합하는 방식으로 제작되었다. 장식무늬로는 후대인들이 ‘도철(饕餮)’이라고 명명한 무늬가 특징으로, 이는 상상 속 괴수를 표현한 것이다. 더불어 중국 청동기는 여려 개의 기형이 세트를 이루어 사용되었다. <출처: 중앙박물관>

OLYMPUS DIGITAL CAMERA고대 청동예기 주조법. 합범(合笵)이라 부르며 여러 개의 틀을 조합하는 방식으로 제작되었다.

OLYMPUS DIGITAL CAMERA곡실을 담는 그릇, 靑銅 簋 Gui vessel, 서주

OLYMPUS DIGITAL CAMERA곡식담는 그릇, 靑銅 簋 Gui vessel, 서주 초기 기원전 11세기 ~10세기

OLYMPUS DIGITAL CAMERA고기 삶는 솥, 靑銅 鼎 Ding vessel, 서주. 예기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고기를 삼는 솥인 발인 3개 달신 정(鼎, Ding)이다.

중국 고대 청동예기 중 가장 중요한 기물로 육류를 삶거나 끓이는 데 사용한다. 주대에는 천자(天子)가 12개 또는 9개의 정을, 제후는 7정, 대부는 5정, 원사는 3정 또는 1정을 사용했단느 기록이 전한다. 몸체 내벽에 ‘팽이 부친 일신을 위해 보물을 만들어 바치다’라는 명문이 새겨져 있다. <출처: 중앙박물관>

SANYO DIGITAL CAMERA네발 달린 솥, 靑銅 方鼎 Ding vessel, 상말기 기원전 12세기 ~11세기

OLYMPUS DIGITAL CAMERA고기 삶는 솥, 靑銅 鼎 Ding vessel, 서주, 발이  4개 달린 4각형의 솥인 방정(方鼎)이다. 육류를 끓이는 용기로 상대(商)에는 원형의 정이 가장 보편적으로 사용되었다. 방형의 정은 이형으로 보통은 대형으로 제작되었다. 다리에 매매무늬가 있고 그릇 안쪽에 명문이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고기 삶는 솥, 靑銅 鼎 Ding vessel, 2. 동주. 동주시대에 들어서면서 동물 발굽모양으로 다리 형태가 바뀌면서 오늘날까지 사용하고 있는 전형적인 제기 모습으로 바뀐다.

정(鼎)은 중국 고대의 제사와 연회에서 육류를 담아 끓이는 데 사용한 청동기로, 소유자의 귄위를 상징하는 중요한 기물이었다. 사각진 몸체에 4개의 다리를 가진 방정(方鼎)은 상대 말기에서 서주 초기까지 유행하였다. 동주 시대가 되면 오른쪽의 예처럼 기둥 모양의 다리가 동물의 발굽 모양으로 바뀌고 손잡이가 옆에 붙으며 뚜껑은 3개의 고리 모양 손잡이로 장식되는 변화를 보여준다. <출처: 중앙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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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잔, 觚 Gu vessel, 상말기 (기원전 12~11세기). 상대부터 주대까지 꾸준히 사용되었다. 술잔으로 중원지역 제후 이상의 무덤에서 출토된다. 복부에 도철무늬와 매미무늬가 있고 바닥 안쪽에 명문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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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잔, 觚 Gu vessel, 상 중기 기원전 14~13세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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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잔, 靑銅 觚 Gu vessel, 상(商). 술을 따르는 나팔모양의 잔인 고(觚)이다.

작(爵)과 함께 술잔으로 사용되었던 나팔모양의 청동기이다. 고(觚)는 오래된 예기(禮器) 중 하나로 어리터우(二里頭) 문화에서 도제(陶製)가 사용되었고, 상대에 청동제의 고가 유행하였다. 상부에는 파초문이, 중간과 하부에는 도철무늬로 장식되었으며 바닥 안쪽에는 명문이 새겨져 있다. <출처: 중앙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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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잔, 靑銅 爵, Jue vessel, 상말~서주. 술을 담아 마시던 술잔인 작(爵)이다. 신안해저유물에서도 발견되는 것으로 볼 때 실생활에도 많이 사용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술을 담아 마시던 술잔이다. 하대(夏)에 출현하여 서주대(西周)까지 제작되었다. 상 말기에 무덤에서 많이 출토되는데, 고(觚)와 짝을 이뤄 신분이 높을수록 많이 매장되었다. 술을 마시는 긴 주둥이와 반대편의 꼬리, 그 사이에 위치한 한 쌍의 작은 기둥(柱), 손잡이와 세 개의 다리가 있으며 기둥에는 ‘佰’이란 글자가 새겨져 있다. <출처: 중앙박물관>

OLYMPUS DIGITAL CAMERA주전자, 靑童 盉 He vessel, 서주. 주전자 용도의 예기인 화(盉, He)이다.

주전자 모양의 청동예기이다. 액체를 따르는 긴 주둥이인 귀때(流)와 손잡이가 있고 3~4개의 다리가 있는데 후대로 갈수록 몸체가 얕은 형태로 변화한다. 용도는 술의 농담을 조절하거나 대야와 같은 반(盤)과 짝을 이뤄 손을 씻는데 사용된 것으로 추정된다. 뚜껑 안쪽에는 ‘作祖辛(조신(15대 商王)을 추모하기 위해 만들다)’라는 명문이 새겨져 있다. <출처: 중앙박물관>

OLYMPUS DIGITAL CAMERA술그릇, 靑銅 瓿 Pou vessel, 상(商). 술을 담는 항아리 모양의 그릇인 부(瓿)이다. 하대 이후에는 오늘날 술독처럼 몸체가 깊은 뢰(罍)가 주로 사용되었다.

입이 크고 배가 부른 항아리에 굽이 달린 형태의 술 담는 예기이다. 상대(商) 초기에 출현하여 상대 말기에 유행하였는데, 부(瓿)보다 몸체가 깊은 뢰(罍)가 보편적으로 사용되면서 자취를 감추었다. 어깨에는 뿔달린 동물머리를 얹고 배부분에는 번개무늬(雷紋)와 볼록한 원형무늬를 주조로 표현했는데 이는 상대의 전형적인 장식이다. <출처: 중앙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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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담는 항아리, 靑銅 壺 Hu vessel, 상 말기 기원전 12세기 ~ 11세기. 상상의 동물을 연상시키는 도철(饕餮)무늬로 장식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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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그릇, 靑銅 壺 Hu vessel, 서주(西周), 술병처럼 생긴 예기인 호(壺, Hu)이다. 실제 생활에 사용하는 것과 큰 차이가 없는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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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그릇, 靑銅 壺 Hu vessel, 동주(東周)

목이 길고 입이 작은 형태의 의례용 술그릇(酒器)이다. 처음에는 토제로 제작되기 시작하여 청동제는 3세기까지 사용되었다. 목 부분에 새무늬로 장식된 왼쪽의 호는 대롱모양의 귀가 붙어 끝을 끼워 들 수 있게 한 ‘관이호(貫耳壺)’로, 기벽 안쪽과 뚜껑 안쪽에 동일한 명문이 있다. 오른쪽의 호는 금 입사 장식과 화려한 꽃잎 모양의 뚜껑, 고리 모양 손잡이 장식에서 동주(東周) 시기의 유개호(有蓋壺)의 특징을 볼 수 있다. <출처: 중앙박물관>

고대 옥기
중국 옥기는 사물(物).신(神).사람(人)의 이상을 대표하며 시대와 지역별로 오랜 기간 발전하였다. 신석기시대는 옥으로 석기를 모방하여 권력의 상징인 도끼를 만들고 예기인 벽璧을 만들어 천당을 상징하였다. 하대 이후 청동 공구가 발달하면서 옥을 다루는 기술이 급속히 발전하게 되어, 귀족사회를 대표하는 무기와 여러 가지 장신구가 제작되었다. 한대부터는 예기의 틀에서 벗어나 비교적 자유롭게 만들어졌다. 평민의 무덤에서는 옥기가 출토되지 않는다. <출처:중악박물관>

OLYMPUS DIGITAL CAMERA대표적인 고대옥기.  신분을 나타내는 용도로 사용되는 것으로 보이는 옥기로 벽(壁), 규(珪), 장(璋), 종(琮)이 있다. 규(珪)는 조선시대 근정전 조정에서 행해지는 조례를 할 때 신하들이 들고 있는 홀에서 그 흔적을 찾아볼 수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옥장신구, 玉璧, 양저문화 기원전 3300~기원전 2200년) 신석기시대 말기. 벽(壁)은 신분의 표시와 함께 벽사(僻邪)의 의미를 갖는 예기로 시신을 묻을 때 가슴위에 올려 놓는다.

OLYMPUS DIGITAL CAMERA옥장신구, 玉璧, 양저문화 기원전 3300~기원전 2200년) 신석기시대 말기

양저문화(良渚文化)
1936년 중국 저장성 위장현(余江县)의 양저에서 처음 발견된 신석기시대 문화로 기원전 3300~2300년 말기에 존재하였다. 대표 유물은 옥기(玉器)와 흑도(黑陶)가 있으며, 흑도 기벽이 매우 얇은 것이 특징이다. 옥기는 무덤에서 다량 출토되었는데 예기인 벽(壁), 규(珪), 장(璋), 월(鉞) 등도 출토되었다. 벼농사를 이미 시작하였고 콩, 깨, 마 등도 함께 경작하였다. 이곳에서 최초의 직물인 마직물이 발견되었다. <출처: 중앙박물관>

OLYMPUS DIGITAL CAMERA옥칼, 玉刀, 양저문화, 신석기시대 말기, 옥도끼, 玉斧, 양저문화 신석기시대 말기. 부월(斧鉞)도 조선시대까지 국왕의 권위를 상징하는 예기로 사용되었다. 

신석기시대 초기 권력의 상징으로 제작되었다. 그러나, 점점 칼날이 넓은 옥월(玉鉞)로 변모하면서 후에 황권(黃權)과 신권(神權)을 상징하게 된다. 후대 중국 역사를 통해서 황제의 상징인 부월의 근원이 되는 유물이다. <출처: 중앙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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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허리장식, 玉璏, 서진과 서한, 검을 허리에 찰 때 사용하는 장신구이다. 한대에 주로 사용하였다. 옥수라고도 한다. 돌출무늬뿐만 아니라 호랑이와 용이 부조로 새겨진 것도 있다.

중국의 공예
상대(商, 기원전 16 세기 ~기원전 11세기)와 주대(周, 기원전 11세기 ~ 기원전 256년)에는 하늘에 제사를 지내고 조상에게 기원하기 위한 목적으로 제사용 청동 그릇을 다수 제작하였다. 이 청동기는 신분 계급에 따라 소유할 수 있는 수량이 정해져 있었다. 종류는 취사용기(炊器), 식기(食器), 술그릇(酒器), 물그릇(水器), 악기(惡器)로 나눠진다. 주대 이후에는 실생활 기물이 많아졌고, 진한대(秦.漢, 기원전 221~ 기원후 220년)에 이르면 금은입사(金銀入絲), 감옥(嵌玉), 누금세공 등을 이용한 화려하고 세밀한 금속기가 만들어졌다. 도자기는 송대(宋, 960~1279년)에 들어 황금기를 맞으면서 각 지역의 가마(窯)에서 특색있는 자기가 많이 생산되었다. 원대(元, 2171~1368년)와 명대(明, 1368~1644년)에는 전국의 도공들이 경덕진에 모여들었고, 청화백자 등 다양한 종류의 자기가 제작되었다. 특히 명대에는 경덕진을 중심으로 새로운 기법의 채색차지가 만들어지고, 그 기술은 청대에 더욱 발전하였다. <출처: 중앙박물관>

OLYMPUS DIGITAL CAMERA등대, 獅子粧飾 燈臺, 청, 나무에 채색

사자, 용, 봉황 등 상서로운 동물로 장식한 등대이다. 사자 형상의 받침에는 연꽃과 박쥐무늬, 물결무늬 등을 화려하게 칠장식했고 사자는 장식된 안장돠 다래를 갗췄으며 안장 위에는 등을 연결하는 봉을 꽂는 구멍이 있다. 봉의 윗부분은 봉황의 형상으로 조각하여 둥근 공모양의 등롱(燈籠)을 달았고, 동제의 등롱은 9마리의 용을 투각으로 장식한 반구형 2개를 연결했다. 청대 칠공예품의 정교한 기교와 화려함을 보여주는 공예품이다. <출처: 중앙박물관>

<출처>
1. 중앙박물관
2. 두산백과
3. 위키백과
4. 한국민족문화대백과

 

 

 

 

[산동성박물관, 하.상.주시대] 상대(商代) 청동기

고대 중국 상대(商代, BC 1600~1046년)에는 청동기 제작은 중요한 귀족층이 장악하여 집중적으로 관리하면서 예기(禮器)를 비롯하여 도구, 무기 등을  생산했다. 당시 도읍이었던 유적지에서는 칼(刀)을 비롯하여 과(戈,창), 모(矛,창), 월(钺,도끼), 회(盔,투구) 등이 출토되고 있다. 또한 말이 끄는 전차가 사용되면서 수레(車) 제작에 필요한 여러 부속들과 말재갈 등 여러 종류의 마구(馬具)들도 제작되었다.

옥기(玉器)의 제작기술 또한 크게 발전하여 권력자의 권위를 상징하는 위세품에서 점차 상류층의 생활용구나 장신구 등이 제작되었다. 예기(禮器)로는 고대 이래로 도기로 만들어 사용했던 준(尊)을 술을 빚고 저장하고 마시는 용도로 다양한 형태의 청동제 용기들이 만들어졌다. 산동성박물관에서는 상대 산동성 지역을 대표하는 여러 유물들을 전시하고 있는데, 주로 지난시(濟南)와 칭저우(靑州) 일대에서 출토된 상대 청동기 유물들이다.

OLYMPUS DIGITAL CAMERA기와무늬용기(瓦纹霝, Bronze Ling-ewer with line design), 춘추시대(BC770~476년), 사수현 출토, ling이라 불리는 용기이다.

OLYMPUS DIGITAL CAMERA거뢰(举罍,Lei)라 불리는 술병, 글자가 새겨져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진후호(陈侯壶), 춘추시대(BC770~476년), ‘진후陈侯’라는 글자가 새겨진 술단지이다.

OLYMPUS DIGITAL CAMERA1. 청동칼(铜刀, bronze knives), 상대, 지난시(濟南) 출토. 한쪽면에만 날이 있는 도(刀)이다.

OLYMPUS DIGITAL CAMERA2. 청동창(铜矛, bronze spearhead), 상대. 모(矛)에 해당하는 창이다. 뾰족하고 폭이 넓은 양날의 창날이 부착된다.

OLYMPUS DIGITAL CAMERA3. 청동창(铜戈, bronze halberd), 상대. 과(戈)에 해당하는 무기이다. 긴나무에 청동제 날을 수직으로 부착한 창이다. 고대 전쟁에서 전차를 타고 공격할 때 사용하는 무기로 기마병이 보편화되면서 사용되지 않았다.

OLYMPUS DIGITAL CAMERA4. 청동창(铜戈, bronze halberd), 상대,

OLYMPUS DIGITAL CAMERA5. 청동물미(铜镦, bronze dui-knocker), 상대, 지난시 출토, 땅에 꽂거나 세우기 위해 창대 끝에 끼우는 뿔모양의 쇠인 물미(대镦)이다.

OLYMPUS DIGITAL CAMERA6. 청동화살촉(铜镞, bronze arrowheads), 상대, 지난시 출토

OLYMPUS DIGITAL CAMERA7. 자루모양옥기(玉柄刑器, jade plaque), 8. 옥으로 만든 도끼(玉钺, jade chopper-axe), 상대, 칭저우(靑州)소부둔(苏埠屯) 유적

OLYMPUS DIGITAL CAMERA9. 옥으로 만든 소머리모양 장신구(玉牛首形饰, jade ox-mask ornament), 상대, 칭저우(靑州)소부둔(苏埠屯) 유적. 10. 옥으로 만든 물고기형상(玉鱼, Jade fish), 상대, 칭저우(靑州)소부둔(苏埠屯) 유적
11. 옥으로 만든 도끼(玉钺, jade chopper-axe), 상대, 12. 옥으로 만든 새모양 장신구(玉鸟形饰, jade bird-shaped ornament), 상대, 칭저우(靑州)소부둔(苏埠屯) 유적, 13. 옥으로 만든 창(玉戈, jade halberd), 상대

OLYMPUS DIGITAL CAMERA14. 활모양 청동기물(铜弓形器, bronze adze inscribed), 15, 청동 말재갈(马衔, bronze bit), 16. 청동 말재갈(马镳, bronze cheek-piece), 상대, 지난시 출토. 전쟁에 말을 이용한 전차가 사용되면서 정교한 기술을 필요로 하는 청동제 마구들이 만들어졌다.

OLYMPUS DIGITAL CAMERA17. 청동 머리장신구(当卢, bronze head ornament), 상대, 지난시 출토, 18. 청동 머리장신구(泡饰, bronze bumps), 상대, 지난시 출토. 19. 청동조각칼(铜雕刻刀, bronze sculptor), 상대, 지난시 출토
20. 청동정(铜凿, bronze chisel), 상대, 지난시 출토. 21. “亚醜”글자가 새겨진 자귀(亚醜锛, adze inscribed with “ya chou”), 상대, 칭저우(靑州)소부둔(苏埠屯) 유적. 22. “亚醜”글자가 새겨진 도끼(亚醜斧, axe inscribed with “ya chou”), 상대, 칭저우(靑州)소부둔(苏埠屯) 유적. 23. 청동망치(铜锤, bronze chisel), 상대, 지난시 출토. 24. 청동자귀(铜锛, bronze adze ), 상대, 지난시 출토. 25. 청동도끼(铜斧, bronze axe ), 상대, 지난시 출토.  청동기 제작 기술이 발전함에 따라 일상생활에 사용하는 망치, 자귀, 도끼 등 다양한 생활도구들이 만들어졌다. 청동기의 특성상 실제로 사용하기 위해 만들지는 않았을 것으로 보인다.

OLYMPUS DIGITAL CAMERA26. 청동술병(铜卣 Bronze You-container), 28. 청동술병(铜卣 Bronze You-container), 상대, 술을 담아두는 그릇으로 손잡이가 있는 제기인 유(卣)에 해당한다.

OLYMPUS DIGITAL CAMERA27. 청동술병(铜卣 Bronze You-container), 29. 청동술병(铜卣 Bronze You-container), 31. 청동치(铜觯, Bronze zhi-container), 상대. 치(觯)는 작은 손잡이가 달린 작은 잔을 말한다.

OLYMPUS DIGITAL CAMERA30. 청동준(铜尊, Bronze zun-jar), 상대. 32. 청동준(铜尊, Bronze zun-jar), 상대. 준(尊)은 술을 마시는 고대의 술잔을 말한다. 34. ‘공’글자가 새겨진 잔(珙从盃, Bronze he-container inscribeed with “gong cong”), 상대, 칭저우(靑州)소부둔(苏埠屯) 유적. 37. 청동국자(铜斗 Bronze dou-ladle), 상대, 지난시 출토

OLYMPUS DIGITAL CAMERA33. 청동작(铜爵, Bronze jue-jar), 상대, 35. 청동잔(铜角, Bronze jiao-goblet), 상대, 지난시 출토

OLYMPUS DIGITAL CAMERA 34. ‘공’글자가 새겨진 잔(珙从盃, Bronze he-container inscribeed with “gong cong”), 상대, 칭저우(靑州)소부둔(苏埠屯) 유적. 작(爵)은 주구가 넓고 오른쪽에 손잡이가 붙고 다리가 셋 달린 술잔을 말하는데, 이 술잔은 주전자처럼 생겼다. 36. 청동잔(铜斝 Bronze Jia-warmer), 상대. 술을 데우는 비교적 큰 그릇으로 입 가장자리에 두 개의 삿갓 모양의 작은 기둥이 솟아 있고 측면에 하나의 손잡이가 있으며 다리가 셋인 가(斝)이다.

OLYMPUS DIGITAL CAMERA38. 청동잔(铜觚 Bronze Gu-beaker), 39. 청동잔(铜觚 Bronze Gu-beaker), 상대, 지난시 출토.  트럼펫 모양을 한 기다란 형태의 제기인 고(觚)에 해당한다.

<출처>
1. 산동성박물관
2. 두산백과
3. 한국고고학사전, 국립문화재연구소
4. 위키백과

 

[중앙박물관특별전, 베트남 고대문명전] 동선문화, 국가의 성립과 농업의 발달

1. 청동북, 동선문화 상징2. 홍강 유역 청동기문화3. 동더우, 고문문화4. 동선문화, 국가의 성립, 5. 동선문화 사람들6. 사후인문화7. 남비엣국, 동선문화의 전승

베트남의 고대 문화 중에서 잘 알려진 동선(Dong Son) 문화는 기원전 500~0년 사이 베트남 북부 지역에서 형성된 동남아시아를 대표하는 청동기문화이다. 명칭은 1924년 발견된 홍강델타 하류의 타인호아 성에 위치한 동선 유적에서 유래한 것이다. 동선문화의 주거 유적이나 무덤에서는 주로 청동기, 무기, 장신구 등의 유물이 발견되었다. 이 시기는 철기시대에 해당하지만 의례에 사용한 제기를 비롯하여 청동기 제작기술이 매우 발달되었으며 제사를 위한 의례용 용기로 알려져 있는 청동 북은 동선 문화를 대표하는 유물이다. 동선문화 시기의 청동기는 상당히 세련되고 발달된 모습을 보이는데 동선문화 사람들이 만들었던 청동기들은 타이, 인도네시아 등 동남아시아 전역에서 발견되고 있으며 중국 남부지역에까지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동선문화 사람은 의례용 제기뿐만 아니라 실생활에서도 청동제 도구들을 많이 사용했던 것으로 보인다. 이는 석기와 철기를 많이 사용하고 청동기는 의례용으로 제작했던 한반도와는 달리 베트남에서 구리가 풍부하게 생산되었던 보인다.

베트남 최초의 국가는 반랑국(Van Lang,文郞)으로 알려져 있으며, 우리나라와 마찬가지로 기원 3000년 경에 국가를 세웠다는 건국설화를 가지고 있다. 실제 반랑국은 동선문화와 비슷한 시기인 기원전 7세기에 시작되었던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반랑국은 뛰어난 청동 주조기술을 바탕으로 홍강 유역의 비옥한 농토에 기반한 쌀 경작 중심의 경제였다. 반랑국은 기원전 3세기에는 툭판(Thuc Phan)에 의해 멸망하고 어울락(Au Lac)국이 세워졌다. 어울락국은 기원전 111년에 전한의 무제의 의해 멸망하고 이후 1000년간 베트남은 중국의 지배를 받는다.

국가의 성립
비옥한 평야지대인 홍강 유역을 차지하기 위해 당시 부족들 사이에 많은 전쟁이 있었다. 동선 사람들은 전쟁을 치르기 위해 청동기로 창, 화살, 검 등의 공격용 무기와 가슴보호구와 같은 방어용 무기를 만들었다. 이 홍강 유역에 베트남 최초의 국가인 반랑(Van Lang)국이 세워진다. 당시 반랑국은 15개의 부족으로 구성된 부족연맹체 사회로 우리나라의 단군 신화처럼 흥브엉(Hung Vuong)의 건국신화가 전해지고있다. 하지만 반랑국은 당시 홍강 삼각주 일대에서 백월족(百越族)의 세력을 규합한 툭판(Thuc Phan)에 의해 기원전 257년 멸망하고, 툭판은 어울락(Au Lac)국을 세웠다. <출처:중앙박물관>

* 반랑국(Van Lang, 文郞): BC 690~BC 257년, 홍브엉(Hung Vuong, 雄王):반랑국의 시조
* 어울락국(Au Lac, 甌雒):BCE 257~179년, 툭판(Thuc Phan, 蜀泮):어울락 국의 왕

OLYMPUS DIGITAL CAMERA<청동기 동선문화시기 국가의 성립을 보여주는 각종 무기류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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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손칼(동선문화 BC500~0년, 청동).>

동선문화의 청동검을 우리나라의 비파형동검이나 한국형동검과는 완전히 다른 형태를 보여주고 있다.

칼의 몸통과 손잡이를 함께 주조한 것으로 우리나라의 청동 검과 제작 방식이 다르다. 칼날의 형태가 독특하며, 날의 양면과 손잡이 부분에 다양한 문양을 새겨 넣기도 하였다. <출처:중앙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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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손칼(동선문화 BC500~0년, 청동)>

손잡이가 투조로 장식된 칼이다. 날의 형태가 버들잎 모양이며, 중앙에 문양이 있다. 이 칼도 손잡이를 함께 주조한 일체형으로 제작된 것으로 우리나라의 것과는 차이가 있다. <출처:중앙박물관>

OLYMPUS DIGITAL CAMERA<1.꺽창(동선문화 BC500~0년, 청동)>

우리나라 청동기 시대 유물에서도 많이 볼 수 있는 형태이다. 표면에 세밀하게 장식을 하고 있다.

꺽창은 전투에서 마차나 말을 탄 적을 끌어내리기 위해 고안된 무기이다. 동선 시기에 실제 사용된 것인지는 알 수 없으나 표면에 동물이 새겨져 있고 투조(透彫)로 장식되어 의례용으로 사용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출처:중앙박물관>

OLYMPUS DIGITAL CAMERA<2.창(동선, 타안호아성, 동선문화 BC500~0년, 청동)>

OLYMPUS DIGITAL CAMERA<2.창(동선, 타안호아성, 동선문화 BC500~0년, 청동)>

창의 길이가 비교적 짧은 편이고, 거푸집에 용액을 부어 만드는 주조(鑄造) 기법으로 제작되었다. 자루가 끼워지는 공부의 끝이 ‘-’자형인 것과 제비꼬리처럼 갈라진 연미형(燕尾形)으로 구분된다.

OLYMPUS DIGITAL CAMERA<3.화살촉(동선문화 BC500~0년, 청동)>

투겁이 달려 있는 청동 화살촉이다. 촉의 머리는 삼각형으로 꼬리처럼 미늘이 달려 있다. 투겁에는 화살대에 고정시키기 위한 고정용 구멍이 뚫려있다. 동선 시기 제작된 장거리 공격용 무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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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사람모양 손잡이 칼(동선문화 BC500~0년, 청동).>

사람모양의 장식이 있는 손칼로 발달된 청동기 제작기술을 보여주고 있다.

동선문화의 대표적인 장식 손칼이다. 사람 모양 손잡이가 부착된 형태로, 당시 동선 사람들의 모습을 그대로 담고 있다. 남자상은 윗옷을 입지 않고, 바지인 ‘코(Kho)’를 입었다. 여자상은 치마와 저고리인 ‘엠(Yem)’을 입었다. <출처:중앙박물관>

OLYMPUS DIGITAL CAMERA<5.손칼(동선문화 BC500~0년, 청동)>

동선 문화의 청동 손칼이다. 구멍을 뚫어 장식하는 투조기법으로 장식된 것과 장식없이 실용성이 강조된 두가지 형식이 있다. 날과 손잡이가 연결된 일체형이다. <출처:중앙박물관>

OLYMPUS DIGITAL CAMERA<6.가슴걸이(동선문화 BC500~0년, 청동)>

청동판으로 제작된 사각형 가슴걸이는 전투에서 가슴부분을 보호해 주는 방어용 무기이다. 형태에 따라 정사각형과 직사각형으로 구분되며, 가장자리에 끈을 연결하여 고정시킬 수 있도록 되어 있다. <출처:중앙박물관>

OLYMPUS DIGITAL CAMERA<발모양 도끼(동선문화 BC500~0년, 청동).>

베트남 동선문화를 대표하는 청동기 형태인 발모양 도끼이다. 동선시기에 가장 유행한 청동도끼는 발모양 도끼이다. 발모양 도끼는 버선모양의 날과 투겁부분으로 이루어지는데 날의 형태에 따라 삼각형, 사각형, 곡선형 등이 있다. 날의 겉면에는 사람, 사슴, 악어 등의 동물 그림을 새겨 넣었다.

OLYMPUS DIGITAL CAMERA<1.도끼(동선, 타인호아성, 동선문화 BC500~0년, 청동)>

OLYMPUS DIGITAL CAMERA<2.발모양 도끼(동선문화 BC500~0년, 청동)>

OLYMPUS DIGITAL CAMERA<발모양도끼에 새겨진 장식>

OLYMPUS DIGITAL CAMERA<1.도끼(동선문화 BC500~0년, 청동)>

OLYMPUS DIGITAL CAMERA<2.발모양 도끼(동선문화 BC500~0년, 청동)>

OLYMPUS DIGITAL CAMERA<2.발모양 도끼(동선문화 BC500~0년, 청동)>

OLYMPUS DIGITAL CAMERA<3.끌(타우두옹, 타인호아성, 동선문화 BC500~0년, 청동)>

OLYMPUS DIGITAL CAMERA<4.집게(푸쑤엔, 하노이시, 동선문화 BC500~0년, 청동), 5.못(동선문화 BC500~0년, 청동)>

OLYMPUS DIGITAL CAMERA<6.가래(동선문화 BC500~0년, 청동)>

홍강 평야와 농경
홍강 유역에는 1,500㎢에 달하는 너른 평야가 형성되어 있다. 동선 사람들은 농경에 필요한 터전을 마련하기 위해 비옥한 홍 강 삼각주로 이주하며 저습지 개발을 시작하였다. 가장 먼저 홍수와 바닷물이 농지로 유입되지 않도록 하기 위하여 제방을 쌓았으며, 수로를 만들어 물을 저장하고, 배수시설도 설치하였다. 동선 사람들은 소로 논을 갈았으며, 볍씨 뿌리는 시기를 조절하고 관개(灌漑)도 하였다. 또한 겨울에 파종하여 봄에 수확하는 겨울벼가 보급되면서 2모작도 가능해졌다. 벼농사가 발달함에 따라 홍강 삼각주 주변의 인구가 폭발적으로 증가하였다. 기원후 2년 시행된 군현의 인구조사에서 홍강과 마강 유역의 호수는 128,174戶.912,250인으로 조사되었다. <출처:중앙박물관>

OLYMPUS DIGITAL CAMERA<동선문화 사람들의 농경생활을 보여주는 농기구와 토기들>

OLYMPUS DIGITAL CAMERA<쟁깃날(티우도용, 타인호아성, 동선문화 BC500~0년, 청동).>

동선문화 사람들이 실생활에서도 많이 청동기를 많이 사용했음을 보여주는 유물이다. 이 시기는 철기시대로 한반도에서는 철로 농기구를 만들어 사용했으며, 청동기시대에도 청동기는 의례용 기기로 사용되었던 것과는 다른 양상을 보여주고 있다. 이지역에서는 구리가 상당히 많이 생산되었던 것으로 생각된다.

OLYMPUS DIGITAL CAMERA<쟁깃날(티우도용, 타인호아성, 동선문화 BC500~0년, 청동)>

농경사회의 동선 사람들은 청동으로 다양한 농기구를 만들었다. 둥근 대형 쟁깃날은 소가 끄는 용도이고, 소형의 마름모꼴과 원형의 쟁깃날은 사람이 사용하는 도구이다. 청동쟁기와 황소.물소를 이용한 우경이 보급되면서 농업생산성이 증가하였다. <출처:중앙박물관>

OLYMPUS DIGITAL CAMERA<소형 낫(고문, 푸토성, 동선문화 BC500~0년, 청동).>

석기로 만든 한반도의 반달모양 돌칼과 비슷한 기능을 하고 있는 도구이다. 한반도에서는 철기시대 초기까지 석기를 사용했던데 반해 청동기가 광범위하게 사용되었던 것을 보여주고 있다.

조개 모양으로 생긴 소형 낫은 우리나라의 반월형 돌칼과 같이 칼 등을 한 손에 움켜쥐고 이상을 자르는 수확용이다. 손에 움켜쥐기 쉽도록 단면에 곡률이 있으며, 톱니와 같은 날이 형성되었다. 끈을 묶을 수 있는 구멍도 뚫려 있다. <출처:중앙박물관>

OLYMPUS DIGITAL CAMERA<낫(고문, 푸토성, 동선문화 BC500~0년, 청동)>

동선문화에서 처음 나타난 형식이다. 자루와 연결되는 공부(鞏部)가 함께 주조되어 자루를 끼워 넣은 방식이다. 날 중앙에 돌출된 등날을 만들어 날의 강도를 높였다. 동선 시기 청동 낫 사용은 보편화 되었다. <출처:중앙박물관>

동선토기, 두옹코(Duong Co)토기
동선토기는 그릇을 빚을 때 사용하는 점토가 매우 엄선되었다는 점이 큰 특징이다. 입자가 고운 흙을 사용하여 기벽이 단단하고, 물이 잘 투과되지 않았다. 그릇의 입은 넓게 벌어지고, 둥근 동체로 이어지는 형태가 대부분이다. 토기표면의 색조는 붉은 색을 내거나 회색을 띠며, 새끼줄무늬와 바둑판무늬가 장식되어 있다. 당시 두옹(Duon)천 주변에서 출토된 토기들은 홍강 유역의 동선 토기를 대표하였지만, 이후 중국 제도(製陶)기술이 베트남에 유입되고 도기(陶器)의 생산이 본격적으로 이루어지면서 동선토기의 제작 전통은 도자기로 전화되었다. <출처:중앙박물관>

OLYMPUS DIGITAL CAMERA<1.새모양토기(해남 군곡리 BC 100년, 토제), 2.새모양토기(동선문화 BC500~0년, 토제)>

OLYMPUS DIGITAL CAMERA<3.항아리(동선문화 BC500~0년, 토제)>

OLYMPUS DIGITAL CAMERA<4.단지(동선문화 BC500~0년, 토제)>

OLYMPUS DIGITAL CAMERA<5.사발(동선문화 BC500~0년, 토제)>

OLYMPUS DIGITAL CAMERA<6.항아리(동선문화 BC500~0년, 토제)>

<출처>
1. 중앙박물관
2. 두산백과
3. 위키백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