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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박물관] 청동기문화의 발전

한반도 청동기문화를 대표하는 청동기 유물이(국보143호)가 화순군 대곡리 에서 출토되었다. 샤머니즘적인 용도로 사용되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가지방울을 비롯하여 청동거울, 청동검 등이 함께 통나무관으로 만든 무덤유적에서 출토되었다. 이외 함평 초포리, 화순 백암리 등에서 비슷한 성격의 청동기 유물들이 출토되고 있어 청동기시대 한반도에 살았던 사람들은 흔적들을 살펴볼 수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가지방울, 복제품, 화순 대곡리, 국보 143호. 한반도 청동기문화를 대표하는 유물 중 하나로 샤머니즘적인 용도로 사용되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청동기문화의 발전
한국 청동기 문화는 크게 비파형동검과 세형동검을 기준으로 시기를 구분한다. 비파형동검문화는 기원전 9세기 무렵부터 형성되었다. 거친무늬거울, 청동투겁창 등이 함께 제작되었다. 세형동검문화는 기원전 4~3세기부터 기원전.후에 해당된다. 잔무늬거울과 같은 정교한 청동기가 제작되며, 가지방울과 같은 의례용청동기가 다양하게 제작된다. 이 시기 광주.전남지역 유적은 화순 대곡리 유적이 태표적이며, 함평 초포리, 화순 백암리, 고흥 소록도 유적 등이 있다. (안내문, 광주박물관, 2018년)

OLYMPUS DIGITAL CAMERA가지방울, 복제품, 화순 대곡리, 국보 143호.

OLYMPUS DIGITAL CAMERA청동거울, 화순 대곡리, 국보 143호

OLYMPUS DIGITAL CAMERA1. 돌도끼, 2. 돌화살촉, 청동기시대, 고흥 소록도

OLYMPUS DIGITAL CAMERA3. 청동거울, 청동기시대, 고흥 소록도

OLYMPUS DIGITAL CAMERA동검,  화순 대곡리(국보 143호),

OLYMPUS DIGITAL CAMERA동새기개.청동도끼, 화순 대곡리(국보 143호), 청동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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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동검, 화순 백암리, 칼자루 끝 장식, 영암 장천리

화순 대곡리유적
화순 대곡리유적은 전남 화순군 도곡면 대곡리에 있는 청동기시대 돌무지널무덤이다. 1971년, 배수로 공사 중에 동검 3점.청동거울 2점.팔주령 2점.쌍두령 2점.도끼 1점. 새기개 1점 등 청동유물 11점이 발견되었다. 이후 2008년, 국립광주박물관이 재조사를 실시하였다. 무덤은 2단 구덩이에 길이 약 180 cm, 너비 약 60 cm 크기의 통나무관을 묻고 그 위에 3~4단 돌을 쌓은 뒤 봉분을 덮은 구조이다. 통나무관 밑에서 동검 2점을 추가로 확인하였다. 무덤의 연대는 기원전 4~3서ㅔ기로 추정되며, 통나무관이 사용된 가장 이른 시기의 유적으로 청동기시대 무덤 변천 연구에 중요한 자료이다. 무덤 출토 청동유물은 국보 제143호로 지정되었다. (안내문, 광주박물관, 2018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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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널, 화순 대곡리

OLYMPUS DIGITAL CAMERA통나무관 모형

통나무관
대곡리유적에서 출토된 통나무관은 관의 바깥쪽과 뚜껑안쪽에 각각 턱을 만들어 서로 맞물리도록 제작되었다. 이러한 방식은 중국 절강성 소흥의 인산대묘나 베트남박물관에 전시된 베케 유적 통나무관에서도 확인된다. 대곡리 유적 통나무관에 사용된 나무는 굴피나무로 동아시아 지역에만 분포한다. 같은 시기 통나무관이 사용된 예는 창원 다호리 유적 1호 무덤이 있다. (안내문, 광주박물관, 2018년)

OLYMPUS DIGITAL CAMERA무덤유적이 확인된 화순 대곡리 유적.

<출처>

  1. 안내문, 광주박물관, 2018년
  2. 국가문화유산포탈, 문화재청, 2019년

 

강진 송정리 지석묘군

전남 강진군 칠량면 송정리에 있는 지석묘군이다. 고인돌이라 부르는 청동기시대 지배계층 무덤 유적이다. 이곳에는 24기의 고인돌이 남아 있는데 대부분 남방식으로 불리는 바둑판식이다. 발굴.조사 결과 민무늬토기.붉은간토기조각.돌화살촉 등의 유물들이 출토되었다. 이곳은 강진만 서쪽 해안에 위치하고 있는데 고대 이래 한.중.일을 연결하는 연안해상교통로 주요 거점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인근 대구면에는 고려시대 청자를 굽던 가마터(사적 68호)가 있으며, 병영면에는 조선시대 전라병영이 설치되었다.

SANYO DIGITAL CAMERA강진 송정리 지석묘군. 남방식 고인돌로 불리는 청동기시대 무덤유적이 남아 있다.

SANYO DIGITAL CAMERA상당히 큰 규모의 고인돌.

SANYO DIGITAL CAMERA받침돌이 없는 전형적인 바둑판식 고인돌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SANYO DIGITAL CAMERA안쪽에 있는 큰 규모의 고인돌들.

<출처>

  1. 국가문화유산포탈, 문화재청, 2019년

영주 가흥리 암각화, 청동기시대 사람들이 새겨놓은 바위그림

경북 영주시 가흥동에 있는 암각화이다. 마애여래삼존상(보물 221호)이 새겨진 바위 아래에 새겨진 것으로 높이 1 ~ 1.5 m, 너비 4.5 m 정도이다. 바위에 도구로 쪼아 새긴 방법을 사용한 것으로 3 ~ 5개의 선을 연결하고 있는데 청동기시대에 새겨진 것으로 보인다. 고령 장기리 암각화(보물 605호)의 얼굴그림을 변형하여 표현한 것으로 보이는데 그 의미는 알 수 없다. 암각화란 선사시대 바위나 동굴벽면에 기호나 물건, 동물 등을 새겨 놓은 것으로 풍요와 생산을 기원하는 주술행위의 결과로 보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영주 가흥리 암각화. 청동기시대에 새겨진 것으로 추정되며 풍요와 다산을 기원하는 제의 활동과 관련된 것으로 보인다. 고령 장기리 암각화처럼 큰 하천이 내려다 보이는 바위에 새겨져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그림은 얼굴모양을 간략화한 것으로 보이는데 그 내용은 알 수 없다.

OLYMPUS DIGITAL CAMERA암각화가 새겨진 큰 바위. 위쪽에 통일신라 때 조성한 것으로 보이는 마애여래삼존상이 있다. 지역에서 큰 의미를 갖는 장소였던 것으로 보인다.

영주 가흥리 암각화, 경북 영주시 가흥동
이 암각화는 내성천의 지류인 서천이 영주시 서편을 따라 남쪽으로 흐르다가 다시 서남쪽으로 굽어도는 지점에 있다. 가흥리 마애삼존불상과 같은 암반의 남쪽 수직 석벽에 새겨져 있으며 1989년에 발견되었다. 그림이 새겨진 암벽은 거친 화강암질로 높이 약 4 m, 폭이 5 m가 넘는 꽤 큰 규모이다. 암벽은 상하로 구분되는데, 암각화는 하단부에 있으며, 전체 암각화가 차지하는 규모는 높이 1.5 m, 길이 4.5 m 정도이다. 검포형의 암각화가 점차 도식화되어 가는 과정을 보여주며 청동기 시대에 새겨진 것으로 추정된다. 암벽에 신앙의 대상물을 새기고 풍요와 다산을 기원하던 제의 장소로서의 특징이 나타난다. (안내문, 영주시청, 2017년)

<출처>

  1. 안내문, 영주시청, 2017년
  2. 국가문화유산포탈, 문화재청, 2018년
  3.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소, 2018년

제천 청풍지역 고인돌

충풍 제천시 청풍면 물태리 청풍문화재단지에 전시해 놓은 청동기시대 무덤인 고인돌이다. 옛 청풍. 수산.덕산.한수 지역에 산재해 있던 에 산재해 있던 것들을 충주댐 건설로 수몰되면서 현재의 위치로 옮겨 남한강 유역의 청동기시대 문화를 살펴볼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북방식과 남방식 고인돌이 같이 발견되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청풍문화재단지로 옮겨 놓은 고인돌. 충주댐 건설로 수몰된 지역에 있던 고인돌이다.

OLYMPUS DIGITAL CAMERA절반이 깨어진 채 남아 있는 고인돌. 탁자모양을 하고 있는 북방식 고인돌로 보인다.

OLYMPUS DIGITAL CAMERA북방식으로 보이는 고인돌.

OLYMPUS DIGITAL CAMERA작은 규모의 남방식 고인돌. 별자리모양을 새긴 성혈이 남아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고인돌에 새겨진 성혈.

고인돌과 성혈(星穴)
고인돌은 선사시대 거석문화의 일종으로 지상이나 지하의 무덤방 위에 괴었던 거대한 돌로 이루어진 일종의 무덤양식이다. 지역에 따라 조금씩 형태의 차이는 있으나 일반적으로 받침돌 위에 덮개돌이 있는 탁자모양을 띄고 있다. 본 고인돌군은 충주댐 건설로 인해 수몰된 청풍면 황석리 지역에서 옮겨온 남방식 고인돌로 특히, 중앙에 배치된 고인돌은 하늘의 별로 보이는 성혈이 새겨져 있어 특이하다. 전국에 있는 많은 고인돌 중 별자리가 표시되어 있는 고인돌은 그리 흔치 않으며, 약 2,500여 년의 세월을 거치며 풍화작용에 의해 다른 별자리들은 마모되어 알아 볼 수 없지만 북두칠성(큰곰자리)과 북극성(작은곰자리)만은 선명히 남아 있다. 이 성혈은 묻힌 사람의 영생불멸을 기원하여 새긴 것으로 보이며, 별자리의 위치로 보아 당시 4~5월경에 조성된 것으로 추측된다. (안내문, 제천시청, 2011년)

OLYMPUS DIGITAL CAMERA작은 크기의 고인돌.

OLYMPUS DIGITAL CAMERA북방식으로 보이는 고인돌. 덮개돌만 남아 있다.

<출처>

  1. 안내문, 제천시청, 2011년

 

고령 장기리 암각화(보물 605호), 알터마을 입구 큰 바위에 새겨진 그림

경북 고령군 대가야읍 장기리에 있는 암각화(보물 605호)이다. 알터마을 입구 큰 바위에 동심원, 십자형, 가면모양 등 다양한 그림들이 새겨져 있습니다. 동심원은 풍요를 기원하는 태양신을 표현한 것으로 보이며, 십자형은 마을의 생활권을 표현한 것으로 보인다. 가면모양은 머리카락과 수염 등이 묘사되어 있는 것으로 보인다.

지산동 대가야 고분군에서 정면으로 내려다 보이는 낙동강 지천인 회천 옆 알터마을 입구에 위치하고 있다. 근처 고인돌에 있는 유적에서 석기와 토기 등의 출토되고 있어 청동기시대 후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암각화는 북방민족과 관련된 유적으로 민족의 기원을 보여주며 당시 사람들의 신앙 형태를 잘 보여주고 있는 유적이다.

SANYO DIGITAL CAMERA고령 장기리 암각화(보물 605호). 청동기시대 사람들이 바위에 새긴 그림으로 풍요를 기원하는 의미를 갖는 것으로 보인다.

SANYO DIGITAL CAMERA암각화 실측도

SANYO DIGITAL CAMERA바위 그림 중 태양신을 상징하는 동심원을 볼 수 있다. 농업사회에서 풍요를 기원하는 의미를 갖는 듯 하다.

SANYO DIGITAL CAMERA바위에 새겨진 그림 중 선명하게 보이는 부분. 청동기 유물 중 동기에서 볼 수 있는 형태이다. 수염이 있는 사람 얼굴을 표현한 것으로 보이며 부적의 성격을 갖는 것으로 보인다.

SANYO DIGITAL CAMERA암각화가 새겨진 바위가 있는 알터마을 입구.

고령 양전동 암각화, 보물 605호, 경북 고령군 고령읍 장기리
이 그림은 청동기시대에 새겨진 것으로 추정되는 암각화이다. 경북지역에서는 처음으로 발견되었으며 소칭 ‘알터마을’이라 불리는 곳에 위치한다. 그림은 높이 3 m, 너비 6 m 정도의 산비탈 절벽에 새겨져 있다. 검파형은 상하로 긴 장방형에 안쪽을 가로선만으로 2~3개로 구분하고 그 안에는 성혈을 묘사하였으며 윗부분은 U자형으로 홈을 파서 깃털모양의 선을 위와 양쪽으로 새겼으며, 모두 29개가 확인되었다. 그리고 가운데의 성혈을 중심으로 3중의 동심원이 가운데와 양쪽으로 각각 1개씩 확인되며, 오른 쪽 위에는 원안에 4개의 점을 찍은 것도 보인다. 이러한 동심원을 일반적으로 풍요를 기원하는 의미를 가진 태양신을 상징하는 것으로 여겨진다. 이 일대에서 청동기시대 유물이 함께 채집되었는데 이것들과의 직접적인 연관은 없으나 이곳이 청동기인들의 생활의 터전임을 추측케 한다. 청동기인들이 검파형암각으로 대표되는 신성물을 새기고 동심원으로 태양신을 묘사한 후 풍요와 다산을 기원하던 제의 장소로서의 특징을 보여주고 있는 곳이다. (안내문, 고령군청, 2009년)

<출처>

  1. 안내문, 고령군청, 2009년
  2. 국가문화유산포탈, 문화재청, 2018년
  3.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2018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