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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천 명동 닭갈비골목, 춘천을 대표하는 향토음식

춘천의 대표적인 먹거리인 닭갈비를 파는 음식점들이 많이 들어서 있는 춘천 명동 닭갈비골목이다. 춘천시청과 도청에서 멀지 않은 중심부 상업지구에 위치한 먹거리골목이다. 다른 음식점들도 많았겠지만 춘천닭갈비가 전국적으로 명성을 떨치는 먹거리인 까닭에 대부분 업종을 바꾼 것으로 보인다. 도심 중심부에 자리잡고 있어 외관상 음식점별로 큰 차이는 없어 보이지만 MBC 예능프로그램 ‘무한도전’에 출연했던 음식점에 손님이 제일 많아 보였다. 닭갈비는 조리법이 특별하지 않아 음식점별로 차이가 많지 않아 방송에 등장했던 음식점을 사람들이 많이 찾는 것으로 보인다.

춘천 닭갈비는 돼지갈비처럼 양념고추장에 재워둔 닭갈비를 양배추,고구마 등 야채와 함께 볶은 음식이다. 춘천 닭길비는 1960년대 말 선술집에서 숯불에 굽는 술안주에서 시작되었다고 한다. 1970년대 도심 상가 뒷골목에 닭갈비집이 많이 생기면서 휴가나온 군인, 대학생 등이 많이 찾으면서 전국적으로 유명해진 것으로 보인다.

OLYMPUS DIGITAL CAMERA춘천 도심 상업지구 골목길에 위치한 명동닭갈비골목. 행정구역으로는 조양동이지만 명동이라고 한다.

OLYMPUS DIGITAL CAMERA골목을 들어서면 닭갈비를 전문으로 하는 많은 음식점들이 들어서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골목에 들어서 닭갈비 전문 음식점 안내. 20여개의 음식점이 골목길에 들어서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다른 음식골목과 마찬가지로 ‘원조’라고 적힌 간판들을 많이 볼 수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MBC 예능프로그램 ‘무한도전’에서 소개된 우미닭갈비. 유명세때문인지 손님이 제일 많았다.

OLYMPUS DIGITAL CAMERA방송에 등장했음을 알려주는 표지판

OLYMPUS DIGITAL CAMERA우미닭갈비 식당 내부. 최근 수리 해서 그런지 시장골목의 음식점과는 다른 분위기를 주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조리하기전 춘천닭갈비. 양념에 재어둔 닭고기와 양배추를 비롯하여 다양한 채소들이 재료로 들어간다.

OLYMPUS DIGITAL CAMERA조리 중인 닭갈비.

OLYMPUS DIGITAL CAMERA맛있게 익은 닭갈비.

OLYMPUS DIGITAL CAMERA접시에 담아본 닭갈비

OLYMPUS DIGITAL CAMERA춘천막국수,

OLYMPUS DIGITAL CAMERA많은 음식점들이 들어서 있는 춘천 명동 닭갈비골목

OLYMPUS DIGITAL CAMERA반대편 닭갈비골목 입구

OLYMPUS DIGITAL CAMERA닭갈비골목이 있는 춘천 중심부 도로

<참고문헌>
1.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2. 두산백과

춘천 오봉산 청평사, 경치좋은 계곡에 자리잡은 사찰

강원도 춘천시 북산면 청평리 춘천의 명산인 오봉산 계곡에 자리잡고 있는 청평사(淸平寺)이다. 한국전쟁으로 회전문(보물164호)을 제외하고 대부분 전작이 불타버려 절터만 남아 있어 정식 명칭은 청평사지(淸平寺址)이다. 현재 볼 수 있는 사찰 전각들은 대부분 남아 있던 계단이나 축대 등을 활용하여 최근에 중수한 것이다. 청평사는 원래는 춘천과 화천, 양구를 연결하는 교통로에 가까운 계곡에 자리잡고 있었던 사찰이었는데, 소양감댐이 건설되면서 유람선을 이용하여 갈 수 있는 외딴 곳에 자리잡고 있다는 느낌을 주는 곳이다. 청평사 일대 계곡은 고려시대 문벌귀족이었던 이자현이 선원을 열고 은둔했던 곳으로 경치가 빼어난 명승으로 지정되어 있다.

청평사는 고려초기인 973년 창건되어 백암선원이라 불리었다. 이후 문벌귀족인 이자현이 1089년 절을 중수하였다. 조선중기 명종대 불교를 크게 중흥시켰던 승려 보우가 이 절을 크게 중수하면서 청평사로 이름을 바꾸었다. 이때 능인전을 제외한 모든 건물들을 새로 지었다. 이후 한국전쟁때 폭격으로 회전문을 제외한 전각들이 불타버렸던 것으로 복구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청평사가 있는 계곡은 공기가 좋고 경치가 빼어난 곳으로 심신을 단련하고 수행하기 적합한 장소이다. 이곳에는 고려초기부터 문벌귀족들이 이곳에 선원(禪院)을 열었으며, 조선시대까지 그 전통은 이어져 왔다. 지금의 있는 청평사는 조선중기 승려 보우가 크게 중창한 것이다. 승려 보우가 문정왕후의 후원 아래 큰 영향력이 있었던 인물이었기때문에 사찰규모는 크지는 않지만 격조있고 웅장하게 지었다. 남아 있던 초석과 계단 등을 바탕을 복구한 청평사의 건물과 가람배치 등을 살펴보면 대웅전 영역은 월대와 회랑, 박석을 깔아 놓은 길 등 궁궐 정전영역처럼 꾸며 놓고 있다. 또한 지금은 불타버린 극락전은 당대를 대표하는 걸작으로 일제강점기에 국보로 지정되어 있었다고 한다.

OLYMPUS DIGITAL CAMERA춘천의 명산 오봉산 계곡에 자리잡고 있는 청평사. 고려초에 창건된 사찰로 16세기 승려 보우가 크게 중창하였다. 가람배치는 회랑(행각)이 있는 회전문, 누각, 중문을 들어서면 대웅전, 관음전, 나한전이 있는 대웅전 영역이 있고, 뒷편에 극락전과 산신각이 있다. 사찰의 규모는 크지 않지만 궁궐 정전영역같은 공간배치를 하고 있다.

청평사지(淸平寺址), 강원 춘천시 북산면 청평리
청평사는 고려 광종 24년(973)에 지어져 ‘백암선원’이라 부르던 유서깊은 사찰이다. 그후에 보현원, 문수원으로 불려오다 조선 명종 때 보우선사가 크게 고쳐 지으면서 이름을 청평사로 변경해 오늘에 이르고 있다.오랜 세월과 한국전쟁으로 인해 문수원기비와 국보였던 극락전 등이 불타 없어졌으며, 현재의 극락전은 최근에 다시 지은 것이다. 남아 있는 유물로는 회전문(보물 제164호), 삼층석탑, 진락공 부도, 환숙당 부도 등이 있다. 또한 고려시대에 관직에 있던 이자현이 벼슬을 버리고 숨어 지내던 문수원과 영지가 남아 있는데, 이곳은 고려시대의 정원을 알 수 있는 중요한 유적이다. (안내문, 청평사, 2015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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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평사는 한국전쟁때 폭격으로 회전문을 제외한 나머지 전각들이 불에 타서 절터만 남아 있었다. 사진은 극락전을 복원한 직후의 모습으로 보인다. 잘다듬은 화강석으로 만든 돌계단과 석축 등에서 궁궐건물에서 볼 수 있는 격조높은 모습을 볼 수있다.

OLYMPUS DIGITAL CAMERA청평사 앞을 흐르는 계곡과 돌다리.

OLYMPUS DIGITAL CAMERA청평사 입구 계단.

OLYMPUS DIGITAL CAMERA계단을 올라서면 넓은 마당이 있고 청평사가 한눈에 들어온다. 한국전쟁 이후 회전문만 남아있던 것을 복구하여 오늘과 같은 모습을 갖추었다. 절터에 남아 있던 초석이나 축대 등을 사용하여 복원했기때문에 승방이 주로 들어선 다른 사찰과는 달리 원래 사찰의 모습이 남아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마당 한쪽편에는 청평산 문수사 시장경비가 있었던 자리가 남아 있다. 문수사 지장경비는 고려 말 원라라에서 청평사에 보내온 대장경과 사찰 후원금에 대한 내용을 기록한 비석이다. 이는 당시 고려와 원나라의 국제관계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된다. 고려말 대학자인 익제 이제현이 비문을 짓고 당대 최고의 명필인 문하시중 행촌 이암이 비문을 썼으나 1800년대 훼손되어 현재는 비석을 세울 때 받침돌로 썼던 비좌와 비문의 탁본이 전하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마당 왼쪽편에 있는 진락공 중수 문수원비(복원), 전란 등으로 파손된 비석을 탁본, 문헌 등의 자료를 통해 복원한 것이다. 고려 중기인 1130년(인종8)에 건립된 것으로 이 절의 창건, 중건 내력과 이곳에서 수행한 고려중기 세도가 이자현의 행적 등을 기록해 놓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청평사 회전문(보물164호). 앞면 3칸 규모의 작은 출입문인 불이문. 건축적으로는 뛰어나다고 할 수는 없지만 독특한 형태의 사찰출입문으로 조선중기 건축양식이 반영되어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안쪽에서 본 회전문과 좌우행각. 일반적인 사찰에서 보기힘든 건물배치이다. 벽이 없고 개방된 형태의 행각은 궁궐 정전영역의  회랑형식의 행각을 연상시킨다.

OLYMPUS DIGITAL CAMERA범종각

OLYMPUS DIGITAL CAMERA회전문을 들어서면 2번째 출입문으로 누각이 있고, 그 양쪽에 각 4칸 규모 회랑형식 행각이 있다. 전란으로 소실된 옛 건물을 복원한 것으로 보인다. 일반 사찰에서는 보기 힘든 공간배치이다.

OLYMPUS DIGITAL CAMERA2층 누각. 앞면 3칸 규모이다.

OLYMPUS DIGITAL CAMERA누각은 대웅전 영역과 연결되어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누각 내부.

OLYMPUS DIGITAL CAMERA대웅전 영역 앞쪽에는 ‘-’자형 회랑형식의 행각이 있다. 삼국시대와 통일신라시대에는 궁궐 정전영역처럼 회랑을 둔 공간배치가 일반적이었으나, 이후 사찰에서는 거의 볼 수 없는 구조이다.

OLYMPUS DIGITAL CAMERA회랑 내부.

OLYMPUS DIGITAL CAMERA청평사 주불전인 대웅전. 잘다듬은 화강석으로 축대를 쌓고 그 위에 건물을 올려 놓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관음전. 사당처럼 건물 앞에 툇간을 두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건물 축대와 돌계단 등이 궁궐건물처럼 세련되고 격조있다.

OLYMPUS DIGITAL CAMERA나한전

OLYMPUS DIGITAL CAMERA뒷편에는 산중사찰에서 많이 볼 수 있는 극락전과 삼성각이 있다. 한국전쟁으로 소실된 건물 중 가장 먼저 복원되었다.

OLYMPUS DIGITAL CAMERA청평사 극락전은 건축미가 뛰어나서 국보로 지정되었는데, 한국전쟁으로 소실되어 지금은 남아 있지 않다. 건물은 앞면 3칸 규모로 팔작지붕을 하고 있으며, 다포계 공포를 사용하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극락전 앞 고목. 사당 등에서 많이 볼 수 있는 측백나무 계통인 것으로 보인다.

OLYMPUS DIGITAL CAMERA삼성각

OLYMPUS DIGITAL CAMERA불전이 있는 영역과 요사채 사이를 흐르는 작은 개울. 돌다리가 놓여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승려들이 수행하는 공간인 요사채. 조선초기 천재이자 생육신의 한명인 김시습도 청평사 요사채에서 머물렀었다고 한다.

OLYMPUS DIGITAL CAMERA요사채 앞 마당에 심어진 은행나무

<참고문헌>
1.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2. 문화재청, 3. 두산백과

 

 

 

 

 

 

춘천 청평사 회전문(보물)

강원도 춘천시 북산면 청평리 청평사 출입문으로 사용하고 있는 회전문(보물)이다. 회전문은 사찰을 수호하는 사천왕이나 금강역사를 모신 천왕문이나 금강문과는 달리 중생들에게 윤회전생을 깨우치게 하는 의미를 갖게하는 출입문으로 삼층석탑과 마찬가지로 상사뱀에 얽힌 설화와 관련되었다는 견해도 있다. 청평사는 고려 광종대(973년)에 처음 세워진 사찰로 조선중기 보우선사가 사찰을 중건하면서 청평사라 불렀다고 한다.

건물은 앞면 3칸 옆면 1칸의 맞배지붕을 하고 있는 출입문이다. 가운데 1칸은 통로로, 양쪽에는 조각상이나 그림 등을 걸어 놓을 수 있는 마루로 되어 있다. 지붕을 받치는 공포는 주심포양식에서 익공계 양식으로 변화하는 모습을 잘 보여주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춘천 청평사 회전문(보물)>

청평사는 출입문으로 회전문을 두고 있으며, 양쪽에 범종 등을 걸어두기 위한 공간으로 맞배지붕의 건물을 두고 있다. 청평사는 조선중기 보우선사가 중건한 사찰이다. 중문의 형태는 일반사찰과는 달리 출입문과 양쪽에 행각을 두고 있는 궁궐같은 공간배치를 하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앞면 3칸 규모의 작은 출입문인 불이문. 건축적으로는 뛰어나다고 할 수는 없지만 독특한 형태의 사찰출입문으로 조선중기 건축양식이 반영되어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양쪽에는 앞면 3칸 규모에 맞배지붕을 한 건물을 배치해 놓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가운데 1칸은 통로, 양쪽 1칸씩 마루를 두고 있다. 마루에는 그림을 걸어놓거나 사천왕상 등을 놓을 수 있도록 하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지붕을 받치는 공포는 주심포에서 익공계로 변화하는 전환기적인 형태를 하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천장은 연등천장을 하고 있으며, 아래에 홍살을 세워놓았다.

OLYMPUS DIGITAL CAMERA안쪽에서 본 회전문.

청평사 회전문, 보물164호, 조선시대, 강원 춘천시 북산면 청평리
이 문은 청평사의 대문으로 1555년(명종5) 경에 보우대사가 건립했다고 알려져 있다. 가운데 칸은 출입문으로 하고 양쪽에 사천왕상을 조각하여 세우거나 그림으로 그려서 걸도록 하였던 것으로 생각된다. 회전문에는 공주에게 붙었던 상사뱀이 윤회를 벗어나 해탈하였다는 전설이 전해진다. 그러나 회전문의 본래 뜻은 불교의 경전을 두었던 윤장대(輪藏臺)를 돌린다는 의미세어 비롯된 것으로 생각된다. <출처:문화재청>

 

<참고문헌>
1.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2. 문화재청, 3. 두산백과

춘천 청평사 삼층석탑, 공주탑 설화가 남아 있는 고려 석탑

강원도 춘천시 북산면 청평리 청평사를 들어가는 고갯길에 있는 고려시대 삼층석탑이다. 탑은 통일신라때가지는 신앙의 중심이 되었던 대상으로 주로 사찰 경내 금당 앞에 세워졌는데, 이 탑은 계곡이 내려다 보이는 길목에 자리잡고 있다. 2층 기단 위에 3층 탑신을 올려놓고 있다. 통일신라 석탑에 비해 조각수법은 떨어지는 편이나 전체적으로 아담하면서도 안정감이 있다. 중국 당나라(원나라?) 공주가 이곳에서 상사뱀을 떼어냈다는 설화가 남아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춘천 청평사 삼층석탑. 계곡이 내려다 보이는 언덕에 석탑이 자리잡고 있다. 2층 기단 위에 3층 탑신을 올려 놓고 있다. 조각수법이 뛰어난 것은 아니지만 기단과 탑신 등 각 부분의 비례가 양호하여 안정감을 주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2층으로 된 기단부. 아래단은 낮게, 윗단은 높게 하여 안정감을 주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3층으로 된 탑신.

OLYMPUS DIGITAL CAMERA청평사 삼층석탑.

OLYMPUS DIGITAL CAMERA삼층석탑 앞을 지나는 오솔길. 이 길은 넓은 길이 생기기 전 청평사로 들어가는 원래 길이다.

OLYMPUS DIGITAL CAMERA석탑이 있는 이곳은 오솔길에서도 약간 높은 고갯길에 위치하고 있는데 환희령이라 불렀다고 한다.

OLYMPUS DIGITAL CAMERA바위 아래에서 본 삼층석탑

청평사 삼층석탑, 고려시대, 강원 춘천시 북산면 청평리,
이 탑은 고려초기에 건립된 석탑으로 3m가 조금 넘는다. 기단 위에 3층을 쌓은 탑으로, 지붕돌인 3층 옥개석은 계곡에서 찾아 복원을 하고 3층 탑신석은 새로 만들어 얹었다. 이 탑 아래의 가파른 오솔길은 현재의 포장길이 생기기 전에 청평사를 오가던 옛길로 환희령이라 불렸었다. 탑은 대체로 법당 앞에 세우는데, 이 탑은 절 주변 산의 암반위에 세운 것이 특징이다. 경주 남산의 용장사지 삼층석탑에서도 이러한 예를 찾을 수 있다. 중국 당나라의 평양공주가 몸에 붙었던 상사뱀을 청평사에 와서 떼어내게 되자 그 은혜를 갚기 위해 이 탑을 세웠다는 공주설화가 전하고 있어서 공주탑이라고도 불린다. (안내문, 문화재청, 2015년)

<출처>

  1.  문화재청
  2.  두산백과
  3.  위키백과
  4.  한국민족문화대백과


 

춘천 신매리유적(사적), 춘천지역의 대표적 선사유적지

강원도 춘천시 서면 신매리 일대에 있는 선사시대 유적지이다. 1981년 이후 여러 차례의 발굴조사결과 5기의 고인돌과 신석기시대부터 철기시대까지 다양한 시기이 유물층이 발굴.조사되었다. 이 지역은 북한강 상류지역에 형성된 사질 충적대지로 화천과 양구 등을 거쳐 동해안 지역과 연결되는 주요 교통로이다. 산악지대가 많은 북한강 유역에서 비교적 넓은 농토가 있으며, 북한강이 마을 옆을 흐르고 있어 농사짓기에 좋은 자연환경을 갖추고 있다.

유적지에 있던 고인돌을 발굴조사하는 과정에서 주거지 유적과 토기편, 인골편, 석검편 등 다양한 유물들이 출토되었다고 한다. 발굴된 유물들은 춘천박물관 등에서 전시하고 있다. 사적489호로 지정된 중요한 유적지이지만, 발굴.조사가 끝난 후 원래모습으로 복구했기때문에 농지와 사적임을 알려주는 팻말 등을 제외하고는 일반적인 농촌마을 풍경을 하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춘천 신매리유적지(도로부근). 북한강변 충적대지에 위치한 선사시대 유적지.발굴.조사가 끝난 후 원래 모습으로 복구했기때문에 실제 볼 수 있는 것은 없다. 이곳이 유적지임을 알려주는 경작금지 팻말이 세워져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도로에서 유적지로 들어오는 길.

OLYMPUS DIGITAL CAMERA북한강변 유적지. 비교적 넓은 지역에 유적들이 분포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OLYMPUS DIGITAL CAMERA이곳에도 농작물경작을 금지한다는 안내표지판이 세워져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춘천 신매리 선사유적지

OLYMPUS DIGITAL CAMERA신매리 앞을 흐르는 북한강. 건너편에 위도(고슴도치섬)라는 섬이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북한강변을 따라 연결되는 농로.

OLYMPUS DIGITAL CAMERA신매리 마을.

OLYMPUS DIGITAL CAMERA신매리유적지 부근에 위치한 초등학교

춘천 신매리 고인돌
강원도 춘천시 서면 신매리의 북한강 서쪽 충적대지에 위치한 신매리 유적은 1981년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청동기시대 집터를 처음 발굴 조사한 이후 2003년까지 6차에 걸치 지표 및 발굴조사가 이루어졌다. 이를 통해 신석기시대부터 삼국시대까지의 집터와 무덤유적이 밀집 분포하고 있는 복합유적으로 밝혀져 국가지정문화재 사적 제9호 ‘춘천신매리유적’으로 지정되었다. 이 가운데 고인돌은 모두 8기가 확인되었는데, 모두 북방식 고인돌이다. 3기는 덮개돌은 없어지고 하부구조만 남아 있으며, 5기는 덮개돌 아래에 돌널을 만들고, 돌무지를 깔거나, 돌널없이 돌무지 위에 바로 덮개돌을 얹어 놓인 형식으로 나눌 수 있다. 고인돌 안팎에서 민무늬토기편, 돌도기, 돌살촉 등이 출토되었다 시기는 2,200~2,300년 전 무렵으로 추정된다. <출처:춘천박물관>

OLYMPUS DIGITAL CAMERA고인돌 덮개돌(Dolmen’s Lid), 강원도 춘천시 신매2리에 위치하고 있었던 북방식 고돌의 덮개돌이다. 1990년 한림대학교 박물관에서 발굴조사한 이후 원래의 위치로 옮겨졌던 것을 춘천박물관으로 이전 전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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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멍무늬 토기(Rim-perforated potte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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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멍무늬 토기(Rim-perforated pottery),

OLYMPUS DIGITAL CAMERA단지(small jars)

OLYMPUS DIGITAL CAMERA화살촉(Stone Arrowhead), 창(stone spear), 돌도끼(axes),

OLYMPUS DIGITAL CAMERA돌자귀(stone adzes), 돌화살촉(stone arrowheads), 창(Stone spear), 바퀴날 도끼(Discoidal Mace)

OLYMPUS DIGITAL CAMERA홈자귀, 돌도끼,

OLYMPUS DIGITAL CAMERA반달돌칼, 가락바퀴

춘천 신매리유적, 사적489호, 강원 춘천시 서면 신매리
춘천신매리유적은 북한강 옆의 충적대지에 형성된 취락유적으로 1981년 국립중앙박물관이 청동기시대 주거지를 처음 발굴조사 한 이후 한림대학교박물관, 강원문화재연구소에 의한 지속적인 지표조사와 발굴조사를 통하여 신석기~삼국시대에 이르는 주거지와 무덤이 밀집 분포된 복합유적으로 확인된다. 특히 지난 1996년 신매대교 접속도로 개설을 위한 발굴조사에서 우리나라 청동기시대의 유적으로는 이른 시기에 속하는 주거지와 유물들이 확인되었을 뿐만 아니라 시기를 달리하는 주거지와 유물들이 출토되어 우리나라 동북지역과 한강유역을 연결하는 중요한 유적으로 확인되었다. <출처:문화재청>


1. 춘천박물관, 2. 고고학사전, 국립문화재연구소, 3. 두산백과, 4.문화재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