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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안 천복사 소안탑(小雁塔), 화엄탑으로 불렸던 벽돌로 쌓은 전탑

시안 천복사(薦福寺)에 있는 소안탑(小雁塔, The small wild goose Pogoda)이다. 당나라 때 (707년) 처음 세워졌으며 천복사탑(薦福寺塔)이라 불렸는데 천복사가 화엄종 중심 사찰이었기 때문에 화엄탑(華嚴塔)으로도 불렸다. 명.청대 대자은사 대안탑과 비교되어 소안탑으로 이름이 바뀌었다. . 벽돌로 쌓은 15층 전탑(塼塔)이었는데 여러차례 지진으로 손상되어 여러 차례 중수되었으며 1965년 옛방식으로 복원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당나라 전탑(塼塔)의 원형이 비교적 잘 보존되어 있으며 동시대를 대표하는 건축양식을 잘 보여주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시안 천복사 소안탑>

벽돌로 쌓은 전탑으로 원래는 높이 88 m, 15층이었는데 현재는 높이 43 m이며 13층을 하고 있다. 기단은 높이 3.2 m, 둘레 23.38 m의 벽돌로 쌓은 기단부 위에 탑신이 올려져 있다. 내부는 비어 있으며 벽돌로 쌓은 계단을 통해 오를 수 있다. 각층마다 남북에 아치형 창문이 있으며 벽돌로 목조건축물을 모방한 지붕이 있다. 대안탑과는 달리 벽면에 목조기둥을 표현한 장식을 두고 있지 않다.

OLYMPUS DIGITAL CAMERA<벽돌로 쌓은 기단부>

기단부 앞.뒤에 탑내부로 오를 수 있는 계단이 있으며, 계단 앞 양쪽에 소안탑을 중수하면서 그 내력을 기록한 중수비가 세워져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소안탑을 오르는 계단과 양쪽에 세워진 중수비>

OLYMPUS DIGITAL CAMERA<남쪽 출입문과 그 앞에 세워진 명.청대 양식의 패방>

OLYMPUS DIGITAL CAMERA<북쪽 출입문>

탑신은 현재 13층이 남아 있는데 1층은 높고, 2층부터는 낮게 만들었다. 4면에 창문과 출입문이 있는 대안탑과는 달리 남북 방향으로만 출입문과 창문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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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안탑 탑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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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옆쪽에서 본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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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뒷편에서 본 모습>

OLYMPUS DIGITAL CAMERA<목조건축물의 지붕을 모방해서 만든 지붕>

천복사(薦福寺)는 당나라 때 측천무후가 당고종의 명복을 빌기 위해 세워졌던 큰 사찰이다. 통일신라 불교의 주류이기도 했던 화엄종의 중심 사찰이었으며 845년 당무종에 의한 회창폐불 사건 때 폐사를 모면했던 4대 사찰 중 하나이다. 명.청대 크게 중건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명.청대 건축양식을 보여주고 있는 천복사 전경>

OLYMPUS DIGITAL CAMERA<시안박물관 정원에서 본 소안탑>

 Built in 707 AD in the Tang Dynasty , the Small Wild Goose Pagoda was initially called “Jianfu Pagoda “, and had this new name in the Ming and Qing dynasties. It was originally a fifteen-storey multi-eaved brick pagoda. Due to many earthquakes, its top part was completely damaged, and its body developed cracks. In 1965, the Chinese government renovated the pagoda using materials and techniques that are exactly the same as those used for building it. Presently, it stands at a height of 43.38 m, with a pedestal, a body, and a top. Sitting on an underground palace, this square-shaped pedestal has a brick shell with a clay core, a height of 3.2 meters, and a perimeter of 23.38 meters. The body of the pagoda has a brick frame built around a hollow interior. Brick stairs can be followed up the internal wall of the body. The pagoda’ souter contours are a naturally elegant convex curve that is very similar to the entasis curve in Greek architecture. Each storey has gradually-tiered dense eaves. There are arched windows in the south and north walls of the second and higher stories. With the overall structure being well preserved, the Small Wild Goose Pagoda was a perfect example of multi-waved square brick pagodas built in ancient China. In 1961, the Small Wild Goose Pagoda was listed by the State Council of China as one of the first batch of “Major Historical and Cultural Sites Protected at the National Level”. (안내문, 시안 천복사, 2019년)

<출처>

  1. 안내문, 시안 대자은사, 2019년
  2. 위키백과, 2020년
  3. 百度百科, 2020년

시안 대자은사 대안탑(大雁塔), 당나라 장안의 랜드마크였던 탑

중국 시안시 대자은사(大慈恩寺)에 있는 대안탑(大雁塔, Wild Goose Pagoda)이다. 당고종 때인 652년 현장법사가 실크로드를 통해 인도에서가져온 불경을 비롯한 유물을 보존하기 위해 세워졌다. 처음에는 5층으로 지어졌으나 측천무후(則天武后) 때 무너진것을 수리하면서 10층으로 증축하였으며, 명나라 때 지진으로 손상된 것을 수리하면서 현재와 같이 7층으로 바뀌었다. 1959년에 현재의 모습을 수리되었다. 내부는 일반에 공개되어 있으며 7층에서 시안시 경치가 한눈에 내려다 보인다. 당나라 건축과 문화를 이해하는 중요한 문화유산이 되어왔으며 남아 있는 많은 기록을 통해 그 역사가 전해내려오고 있다. 오랜 세월 동안 장안(長安, 현 시안시)의 랜드마크가 되었던 유서깊은 탑으로 통일신라 경주 황룡사 구층목탑, 일본 헤이안시대 교토 도지(東寺) 오층목탑과 함께 동시대를 대표하는 유물이다.

OLYMPUS DIGITAL CAMERA<시안 대자은사와 대안탑>

대안탑은 인도의 스투파와 중국 전통 건축양식이 융합된 벽돌로 전탑이다. 탑은 정사각형 평면에 높이 64.7 m에 이르는 7층 전탑이다. 탑의 외관에는 중국 목조건축양식이 많이 반영되어 있는데 각층 4면에는 아치형 문이 있으며 내부에는 목조계단으로 연결되어 있다. 대안탑은 전통 목탑이 화재나 천재지변으로 경전이 손상될 것을 염려하여 벽돌로 지어졌다고 기록되어 있다. 당태종 때 인도를 다녀온 현장은 수많은 불상, 불경 등을 가져왔는데 이를 보관하기 위해 대안탑을 세울 것을 황실에 요청했다고 한다.

OLYMPUS DIGITAL CAMERA<벽돌로 쌓은 기단>

OLYMPUS DIGITAL CAMERA<7층으로 된 탑신>

대안탑은 벽돌을 쌓으면서도 기둥이나 대들보 등을 표현하고 있으며, 각층마다 벽돌로 기와지붕을 표현하고 있으며 각면에 1개씩 아치형의 창문을 두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1층 출입문>

OLYMPUS DIGITAL CAMERA<벽돌로 쌓은 벽면에 표현된 기둥>

OLYMPUS DIGITAL CAMERA<탑신 각층에 표현된 기둥과 출입문, 지붕>

이곳에는 대당삼장교비(大唐三藏聖敎碑)가 있었다. 당태종이 현장법사가 번영한 불경에 대해 적은 서문을 짓고   당태종의 아들 고종이 황세자 시절에 불경번역 경위에 대해 지은 글이 적혀 있다. 당대 명필 저수량이 쓴 글씨를 썼다. 원본은 중국 국보급 유물로 시안 비림박물관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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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당삼장성교서비(大唐三藏聖敎序碑, 복제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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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당삼장성고서기비(大唐三藏聖敎序記碑, 복제품)>

대안탑은 인도에서 가져온 불경을 비롯한 유물을 보존하기 위해 세워졌다. 내부는 일반적인 건물처럼 보물을 보관하기 위한 공간이 있으며 각층에는 대안탑을 상징하는 각종 유물들(복제품)을 전시하고 있다. 각층은 목재로 만든 계단으로 연결되어 있는데 이는 당시 중국의 목탑 등의 건축 양식을 반영하고 하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1층 내부>

OLYMPUS DIGITAL CAMERA<각층을 연결하는 목조 계단>

OLYMPUS DIGITAL CAMERA<불상이 모셔진 2층>

OLYMPUS DIGITAL CAMERA<명대동주도금불상(明代铜铸鎏金佛像, A gilt bronze Buddha figurine of the Ming Dynasty)>

OLYMPUS DIGITAL CAMERA<2층 창문>

OLYMPUS DIGITAL CAMERA<현장법사가 인도에서 가져온 불경을 볼 수 있는 3층>

패엽경(Pattra-leaf scriptures) 은 고대 인도에서 종이대신 나뭇잎에 글씨를 적은 불경이다. 현장법사가 인도를 방문했을 때 인도에서는 종이가 없었기 때문에 종이에 불경을 적었다. 현장법사가 인도에서 가져온 불경을 패엽경이라 부른다. 중국 국보급 문화재로 이곳에는 복제품이 전시되어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패엽경(貝葉經, Pattra-leaf scriptures, 복제품)과 한문으로 번역한 불경>

OLYMPUS DIGITAL CAMERA<4층 내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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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층에 전시된 인도 스투파 모형>

OLYMPUS DIGITAL CAMERA<5층, 풍탁과 옛 벽돌을 볼 수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당전(唐磚, Broken bricks of the Tang Dynasty)>

OLYMPUS DIGITAL CAMERA<풍탁(風鐸, Wind bell), 명나라 때 제작된 탑의 추녀에 걸려있던 것을 복제한 것이다.>

OLYMPUS DIGITAL CAMERA<6층 창문>

OLYMPUS DIGITAL CAMERA<7층 창문>

대안탑 내부는 지금도 일반에 공개되어 관람객들이 내부를 살펴볼 수 있다. 각층 창문에서 바깥 경치를 감상할 수 있는데, 지금도 시안 도심 풍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당나라 때 대안탑이 처음 세워진 이래 많은 사람들이 이곳을 찾아 화려했던 당나라 장안(長安) 경치를 감상했을 것이다. 대자은사는 궁궐인 대명궁과 남북으로 일직선 상에 위치하고 있어 도시의 중심축을 형성하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북쪽 창문에서 내려다 보이는 풍경, 대명궁과 일직선 상으로 약 7 km 정도 떨어져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서쪽 창문에서 내려다 보이는 풍경>

OLYMPUS DIGITAL CAMERA<남쪽 창문으로내려다 보이는 풍경>

OLYMPUS DIGITAL CAMERA<동쪽 창문으로 내려다 보이는 풍경>

대자은사(大慈恩寺)는 당나라 시대를 대표하는 사찰로 당고종이 어머지 문덕황후의 명복을 빌기 위해 세워졌다. 인도에서 불경을 가져온 현장법사가 머물면서 불경을 번역했던 곳으로 현장법사의 발원으로 대안탑이 세워졌다.

OLYMPUS DIGITAL CAMERA<대자은사 입구 현장법사 동상과 대안탑>

OLYMPUS DIGITAL CAMERA<북쪽 광장에서 본 대안탑>

OLYMPUS DIGITAL CAMERA<남쪽에서 본 대안탑>

<출처>

  1. 안내문, 시안 대자은사, 2019년
  2. 위키백과, 2020년
  3. 百度百科, 2020년

경주 불국사 사리탑(보물), 불상이 새겨진 독특한 형태의 사리탑

경북 경주시 불국사 비로전 앞에 있는 사리탑(보물)이다. 외형상 승탑처럼 생기는 했지만, 여래의 사리탑인지 승탑인지 확인되지 않고 있다. 탑신을 중심으로 아래에는 받침돌이 있고 위에는 머리장식이 얹었다. 아래받침돌과 위받침돌에는 연꽃무늬가 큼지막하게 새겨졌으며 그 사이에 장고모양의 가운데받침돌이 있다. 볼록한 원통모양의 몸돌에는 4면에 감실을 파서 여래상과 보살상을 조각해 놓았으며 4곳에 꽃모양의 기둥을 새겼다. 지붕돌은 경사가 완만하며 머리장식은 일부반 남아 있다. 8각형 평면이 주를 이루고 있던 당시의 승탑이나 석등과는 달리 새로운 형태를 보여주고 있다. 통일신라를 계승한 화려한 조각수법이 돋보이는 고려초 작품이다. 일제강점기에 일본 우에노공원으로 반출되었다가 반환되었다.

불국사는 2,000여칸에 이르는 건물이 있었던 큰 사찰이다. 오늘날 불국사는 5개의 공간으로 구분되는데, 석탑이 있는 대웅전 영역에는 석가모니불을 모시고 있고, 극락전 영역은 아미타불, 비로전 영역은 비로자나불, 관음전 영역은 관음보살 그리고 나한전이 있다. 극락전에는 통일신라시대에 만들어진 금동아미타불좌상(국보27호), 비로전에는 금동비로자나불좌상(국보26호)가 있는 것으로 볼 때 창건 당시부터 불상을 모셨던 불전을 다수 두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통일신라시대를 대표하는 사찰로 그 가치를 인정받아 1995년 석굴암과 함께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었다.

SANYO DIGITAL CAMERA불국사 비로전 앞에 있는 사리탑(보물 61호). 승탑과 비슷한 형태를 하고 있지만 몸돌이 둥근 원통형이다. 몸돌에 불상이 모셔져 있으며, 승탑인지 석가모니 사리를 모신 탑인지 확인되지 않고 있다.

SANYO DIGITAL CAMERA8각형의 바닥돌 위에 연꽃무늬를 큼직하게 조각한 아래받침돌이 올려져 있다.

SANYO DIGITAL CAMERA가운데 받침돌은 장고모양을 하고 있는데 구름무늬를 입체감있게 조각해 생동감이 넘친다. 윗받침돌에도 연꽃무늬를 큼직하게 새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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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록한 원형 형태를 하고 있는 탑신 몸돌, 감실을 새겨 여래상, 보살상 등을 모셨다.

SANYO DIGITAL CAMERA보살상이 모셔진 부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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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대쪽 보살상이 모셔진 부분.

SANYO DIGITAL CAMERA지붕돌. 머리장식이 일부 남아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등재된 경주 불국사. 통일신라와 우리나라를 대표한 사찰이다.

경주 불국사 사리탑, 보물 61호, 경북 경주시 진현동
이 사리탑은 불국사 강당 뒤쪽에 있으며 외형이 석등과 비슷한데, 『불국사사적기』에 광학부도라고 기록된 것이 바로 이것이라고 추정된다. 네모난 지대석에는 창 모양의 안상을 조각하고 그 안에 꽃을 조각하였다. 8각형의 하대석에 큼직한 연꽃 8잎을 구성하고 장고 모양의 중대석에는 구름문양을 조각하였다. 상대석에는 아랫면에 9잎의 연꽃을 조각하여 안에 원형을 그리고 윗면에는 연밥을 조각하였다. 원통형의 탑신에는 장식이 있는 기둥을 세워 네 부분으로 나누었다. 각 면에는 얕게 조각된 불상을 모시는 감실을 만들어 윗쪽에 장막을 드리우고 구 안에 불(佛).보살.신장을 조각하였다. 기와지붕을 본 뜬 지붕돌 아랫면에는 연꽃을 조각하였다. 윗부분 꼭대기의 머리장식은 없어졌다. 통일신라시대의 팔각당형에서 벗어난 특이한 형태를 보여주는 것으로 고려 초기의 작품으로 추정된다. 이 사리탑은 1905년 일본으로 옮겨졌다가 1933년 회수되어 다시 세워진 것이다. (안내문, 경주 불국사, 2009년

<출처>

  1. 안내문, 경주 불국사, 2009년
  2.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2022년
  3.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소, 2022년

충추 탑평리칠층석탑(국보), 중앙탑이라 불린 통일신라 석탑

충북 충주시 중앙탑면 탑평리 남한강변 공원에 자리잡고 있는 칠층석탑(국보)이다. 한반도의 중앙에 있다고 ‘중앙탑’으로도 불리며, 중부지방에서는 흔치 않은 통일신라 석탑이다. 탑은 2단의 기단 위에 7층 탑신을 올려 놓고 있다. 기단부는 높은 탑신을 받치기 위해 넓게 만들었으며 각면에는 여러개의 기둥모양을 새겨두고 있다. 탑신부에는 몸돌 모서리에 기둥모양을 새긴 것 외에는 특별한 장식을 두지 않고 있다. 불국사 삼층석탑처럼 장식이 없는 단순한 외형을 하고 있지만 탑신을 높게 쌓아 크고 웅장하게 보인다. 탑신 몸돌에서 고려시대 거울이 발견되어 당시 해체.보수가 있었던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충주 지역은 고구려 전성기때 한강유역을 장악하기 위해 삼국간의 경쟁이 치열했던 곳이다. 이 탑이 있는 곳에서 멀지 않은 곳에 고구려가 세원 고구려비(국보), 고구려인 쌓았던 산성인 장미산성(사적), 신라가 한강유역을 장악한 이후 거주했던 신라 지배층의 무덤들인 누암리 고분군(사적) 등이 있다.

SANYO DIGITAL CAMERA충주 탑평리칠층석탑(국보). 삼국시대 한강유역을 장악하기 위한 경쟁이 치열했던 남한강변 경치좋은 곳에 세워져 있다.

SANYO DIGITAL CAMERA탑은 2단의 기단 위에 7층 탑신을 올려 놓고 있다. 탑신을 놓게 쌓아 크게 웅장한 느낌을 주고 있으나, 안정감은 떨어지는 편이다.

SANYO DIGITAL CAMERA기단부. 높은 탑신을 받치기 위해 넓게 만들었다. 기단부 각면에는 여러개의 기둥모양을 새겨 두고 있으며, 특별한 장식은 없다. 일제강점기 해체.복원 과정에서 기단부 아래에 청동합이 발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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탑신부. 1층 몸돌만 높게 조성해 놓고 있다. 각층 몸돌 모서리에 기둥 장식을 새겨놓고 있다.

SANYO DIGITAL CAMERA옆쪽에서 본 모습.

SANYO DIGITAL CAMERA석탑 앞에서 내려다 보이는 남한강과 공원.

SANYO DIGITAL CAMERA충주 탑평리 칠층 석탑.

OLYMPUS DIGITAL CAMERA탑이 있는 곳에서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한 누암리 고분군(사적 464호). 삼국시대 중원지역을 장악하기 위해 이 지역으로 이주해 온 신라 지배층들의 무덤이다.

충추 탑평리칠층석탑, 국보 6호, 충북 충주시 중앙탑면 탑평리
중원(中原) 문화를 대표하는 유산인 이 탑은 신라탑 중 유일한 7층석탑으로 통일신라기에 우리나라의 중앙에 세줘져 ‘중앙탑’이라고 한다. 건립시기에 대해서는 여러 주장이 있으나 대체로 8세기 후반 ~ 9세기 초로 파악되고 있으며, 10여 개의 크고 긴 돌로 지대석을 마련하고 2층 기단을 쌓아 올렸다. 탑 전체의 높이는 12.951m로 높이에 비해 상승감이 두드러지는 탑이다. 1917년 해체.복원시 6층 몸돌에서 훼손된 고서류 일부와 구리거울 2점, 목제 칠합과 은제사리함이 나왔고 기단부에서는 청동합이 발견되었는데, 구리거울은 고려시대의 것으로 이떄에도 변화가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이 탑은 여러 차례 해체.복원으로 원형과 달라진 부분이 많은 것으로 보인다. (안내문, 충주시청, 2009년)

<출처>

  1. 안내문, 충주시청, 2009년
  2. 국가문화유산포탈, 문화재청, 2019년
  3.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소, 2019년

 

남양주 수종사 팔각오층석탑(보물), 고려시대 팔각석탑을 계승한 조선초기 석탑

경기도 남양주시 조안면 송촌리 운길산 수종사에 있는 오층석탑(보물)이다. 조선전기에 조성된 석탑으로 중국의 영향을 받은 월정사 팔각구층석탑을 축소한 형태를 하고 있다. 탑의 기단부는 연꽃무늬가 새겨진 불상 대좌와 같은 형태를 하고 있다. 탑신은 팔각모서리에 기둥을 새겨놓은 것 외 특별한 장식은 없다. 조각수법은 세밀하거나 정교하지 않으며, 장식적인 용도로 바뀐 조선전기 석탑 양식을 잘 보여주고 있다. 원래 수종사 동쪽 능선에 세워져 있던 것을 옮겨 놓았다. 석탑을 해체.수리하는 과정에서 태종의 후궁이 발원조성하고 성종의 후궁들이 넣었다는 불상과 선조 계비 인목대비가 발원했다는 불상 등이 발견되어 왕실과 관련되었음을 보여주고 있다.

남양주 수종사 팔각오층석탑 보물1808호  01-20200301
<남양주 수종사 팔각오층석탑(보물)>

기단은 지대석 위에 안상이 새겨진 팔각형의 대석을 놓고 같은 모양의 기단과  연꽃무늬가 새겨진 불상대좌 모양의 기단을 올려 놓고 있다. 안상은 기단과 탑신에서 같은 형태를 하고 있다.

남양주 수종사 팔각오층석탑 보물1808호  05-20200301<기단부>

탑신 몸돌은 모서리에 기둥모양을 새겨 놓은 것 외에는 특별한 장식을 두고 있지 않다. 지붕돌에는 3단 받침이 새겨져 있으며 처마를 부드러운 곡선으로 처리하고 있다. 상륜부는 팔작기와지붕 형태를 하고 있다.

남양주 수종사 팔각오층석탑 보물1808호  04-20200301
<탑신>

SANYO DIGITAL CAMERA<석탑 앞 배례석>

남양주 수종사 팔각오층석탑 보물1808호  02-20200301
<옆에서 본 모습>

남양주 수종사 팔각오층석탑 보물1808호  03-20200301
<뒤에서 본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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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탑의 해체.수리과정에서 탑신, 옥개석, 기단 중대석에서 불상들이 출토되었다. 발견된 묵서에 따르면 성종 때 처음 발원하여 불상들이 조성되었으며 인조 6년 인목대비가 발원하여 조성한 불상이 추가로 납입되어었다고 한다. 탑이 중수되었음을 보여주고 있다.

남양주 수종사 팔각오층석탑 출토 유물(보물) 20220125_01<15세기 성종의 후궁 명빈 김씨가 발원하여 조성한 불상>

남양주 수종사 팔각오층석탑 출토 유물(보물) 20220125_03<인조 6년 인목대비가 발원하여 조성한 불상>

경기도 남양주 운길산에 있는 수종사는 세조에 의해 크게 중창된 절이다. 이 곳에 있는 오층석탑을 1957년에 해체했는데, 여기서 수많은 금동불이 발견되었다. 오층석탑 1층 탑신에서 발견된 금동 불감 안에는 석가모니불과 반가사유상, 두건을 쓴 지장보살로 구성된 삼존불이 봉안되어 있는데, 발원문에 의하면, 이 삼존불은 성종의 후궁인 명빈김씨가 1459년에서 1493년 사이에 발원해 만든 것이다. 이 밖에도 이 탑에서는 인조 6년 정의대왕대비(인목대비)가 발원한 불.보살상23구가 발견되었다. (안내문, 국립중앙박물관, 2010년)

수종사는 남한강과 북한강이 만나는 두물머리를 내려다 보고 있는 운길산 중턱에 자리잡고 있다. 조선초 불교에 관심이 많았던 조선초 세조때 창건되었다. 한양과 가깝고 왕실과 관련된 사찰이었으며, 한강의 아름다운 경관을 감상할 수 있는 잇점 등으로 여러차례 중수를 통해서 오늘날까지 명맥을 이어오고 있다.

남양주 수종사 팔각오층석탑 보물1808호  06-20200301<남양주 수종사 사리탑(보물 2013호), 삼층석탑, 팔각오층석탑(보물 1808호)>

남양주 수종사 팔각오층석탑, 보물 1808호, 경기도 남양주시 조안면 송촌리
남양주 수종사 팔각오층석탑은 경기도 남양주 운길산 중턱에 위치한 수종사에 전해오는 조선시대 석탑이다. 수종사는 조선 세조 5년(1459)에 창건되었다고 전해지며 석탑은 원래 사찰의 동쪽 능선에 있었으나 후대에 대웅전 옆으로 옮겨졌다. 1957년 해체 수리 중에 1층 탑신과 옥개석 등에서 19구의 불상과 1970년 이전 도중에 2층, 3층 옥개석에서 12구의 불상이 각각 발견되었는데 함께 발견된 묵서명 을 통해 성종 23년(1493)에 건립되었고 인조 6년(1628)에 중수된 것을 알 수 있다. 석탑의 형태는 고려시대 팔각석탑의 전통을 이으면서 규모가 작아지고 장식적으로 변모한 조선 초기 석탑의형태로지대석 위에 팔각의 대석 을 올리고 그 위에 팔각형 기단석 을 올렸다. 기단부 는 아래로 향한 연꽃과 위로 향한 16엽의 연꽃문양을 각각 새겼고 5층으로 된 탑신 역시 팔각형으로 옥개석(지붕돌 처마의 부드러운 곡선과 원형기둥, 옥개받침 등이 특징적이다. 정상부에는 합각지붕 형태의 삼각형 문양을 2단으로 조성하였고 그 위에 연봉우리 모양의 보주를 올렸다. 수종사 팔각오층석탑은 현재까지 확인된 조선시대 석탑 중 유일한 팔각오층석탑으로 건립 연대가 확실하고 비교적 작은 규모임에도 안정적인 비율과 지대석에서 상륜부까지의 섬세한 조각으로 인해 역사적, 학술적 가치는 물론 높은 품격을 보여주고 있다. (안내문, 남양주 수종사, 2020년)

<출처>

  1. 안내문, 남양주 수종사, 2020년
  2.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2021년
  3. 국가문화유산포탈, 문화재청, 2021년
  4. 안내문, 중앙박물관, 2010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