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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불국사 사리탑(보물 61호), 불상이 새겨진 독특한 형태의 사리탑

경북 경주사 불국사 비로전 앞에 있는 사리탑(보물 61호)이다. 외형상 승탑처럼 생기는 했지만, 여래의 사리탑인지 승탑인지 확인되지 않고 있다. 탑신을 중심으로 아래에는 받침돌이 있고 위에는 머리장식이 얹었다. 아래받침돌과 위받침돌에는 연꽃무늬가 큼지막하게 새겨졌으며 그 사이에 장고모양의 가운데받침돌이 있다. 볼록한 원통모양의 몸돌에는 4면에 감실을 파서 여래상과 보살상을 조각해 놓았으며 4곳에 꽃모양의 기둥을 새겼다. 지붕돌은 경사가 완만하며 머리장식은 일부반 남아 있다. 8각형 평면이 주를 이루고 있던 당시의 승탑이나 석등과는 달리 새로운 형태를 보여주고 있다. 통일신라를 계승한 화려한 조각수법이 돋보이는 고려초 작품이다. 일제강점기에 일본 우에노공원으로 반출되었다가 반환되었다.

불국사는 2,000여칸에 이르는 건물이 있었던 큰 사찰이다. 오늘날 불국사는 5개의 공간으로 구분되는데, 석탑이 있는 대웅전 영역에는 석가모니불을 모시고 있고, 극락전 영역은 아미타불, 비로전 영역은 비로자나불, 관음전 영역은 관음보살 그리고 나한전이 있다. 극락전에는 통일신라시대에 만들어진 금동아미타불좌상(국보27호), 비로전에는 금동비로자나불좌상(국보26호)가 있는 것으로 볼 때 창건 당시부터 불상을 모셨던 불전을 다수 두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통일신라시대를 대표하는 사찰로 그 가치를 인정받아 1995년 석굴암과 함께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었다.

SANYO DIGITAL CAMERA불국사 비로전 앞에 있는 사리탑(보물 61호). 승탑과 비슷한 형태를 하고 있지만 몸돌이 둥근 원통형이다. 몸돌에 불상이 모셔져 있으며, 승탑인지 석가모니 사리를 모신 탑인지 확인되지 않고 있다.

SANYO DIGITAL CAMERA8각형의 바닥돌 위에 연꽃무늬를 큼직하게 조각한 아래받침돌이 올려져 있다.

SANYO DIGITAL CAMERA가운데 받침돌은 장고모양을 하고 있는데 구름무늬를 입체감있게 조각해 생동감이 넘친다. 윗받침돌에도 연꽃무늬를 큼직하게 새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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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록한 원형 형태를 하고 있는 탑신 몸돌, 감실을 새겨 여래상, 보살상 등을 모셨다.

SANYO DIGITAL CAMERA보살상이 모셔진 부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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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대쪽 보살상이 모셔진 부분.

SANYO DIGITAL CAMERA지붕돌. 머리장식이 일부 남아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등재된 경주 불국사. 통일신라와 우리나라를 대표한 사찰이다.

경주 불국사 사리탑, 보물 61호, 경북 경주시 진현동
이 사리탑은 불국사 강당 뒤쪽에 있으며 외형이 석등과 비슷한데, 『불국사사적기』에 광학부도라고 기록된 것이 바로 이것이라고 추정된다. 네모난 지대석에는 창 모양의 안상을 조각하고 그 안에 꽃을 조각하였다. 8각형의 하대석에 큼직한 연꽃 8잎을 구성하고 장고 모양의 중대석에는 구름문양을 조각하였다. 상대석에는 아랫면에 9잎의 연꽃을 조각하여 안에 원형을 그리고 윗면에는 연밥을 조각하였다. 원통형의 탑신에는 장식이 있는 기둥을 세워 네 부분으로 나누었다. 각 면에는 얕게 조각된 불상을 모시는 감실을 만들어 윗쪽에 장막을 드리우고 구 안에 불(佛).보살.신장을 조각하였다. 기와지붕을 본 뜬 지붕돌 아랫면에는 연꽃을 조각하였다. 윗부분 꼭대기의 머리장식은 없어졌다. 통일신라시대의 팔각당형에서 벗어난 특이한 형태를 보여주는 것으로 고려 초기의 작품으로 추정된다. 이 사리탑은 1905년 일본으로 옮겨졌다가 1933년 회수되어 다시 세워진 것이다. (안내문, 문화재청)

<출처>

  1.  문화재청
  2.  두산백과
  3.  위키백과
  4.  한국민족문화대백과

충추 탑평리칠층석탑(국보 6호), 중앙탑이라 불린 통일신라 석탑

충북 충주시 중앙탑면 탑평리 남한강변 공원에 자리잡고 있는 칠층석탑(국보 6호)이다. 한반도의 중앙에 있다고 ‘중앙탑’으로도 불리며, 중부지방에서는 흔치 않은 통일신라 석탑이다. 탑은 2단의 기단 위에 7층 탑신을 올려 놓고 있다. 기단부는 높은 탑신을 받치기 위해 넓게 만들었으며 각면에는 여러개의 기둥모양을 새겨두고 있다. 탑신부에는 몸돌 모서리에 기둥모양을 새긴 것 외에는 특별한 장식을 두지 않고 있다. 불국사 삼층석탑처럼 장식이 없는 단순한 외형을 하고 있지만 탑신을 높게 쌓아 크고 웅장하게 보인다. 탑신 몸돌에서 고려시대 거울이 발견되어 당시 해체.보수가 있었던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충주 지역은 고구려 전성기때 한강유역을 장악하기 위해 삼국간의 경쟁이 치열했던 곳이다. 이 탑이 있는 곳에서 멀지 않은 곳에 고구려가 세원 고구려비(국보 205호), 고구려인 쌓았던 산성인 장미산성(사적 400호), 신라가 한강유역을 장악한 이후 거주했던 신라 지배층의 무덤들인 누암리 고분군(사적 464호) 등이 있다.

SANYO DIGITAL CAMERA충주 탑평리칠층석탑(국보 6호). 삼국시대 한강유역을 장악하기 위한 경쟁이 치열했던 남한강변 경치좋은 곳에 세워져 있다.

SANYO DIGITAL CAMERA탑은 2단의 기단 위에 7층 탑신을 올려 놓고 있다. 탑신을 놓게 쌓아 크게 웅장한 느낌을 주고 있으나, 안정감은 떨어지는 편이다.

SANYO DIGITAL CAMERA기단부. 높은 탑신을 받치기 위해 넓게 만들었다. 기단부 각면에는 여러개의 기둥모양을 새겨 두고 있으며, 특별한 장식은 없다. 일제강점기 해체.복원 과정에서 기단부 아래에 청동합이 발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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탑신부. 1층 몸돌만 높게 조성해 놓고 있다. 각층 몸돌 모서리에 기둥 장식을 새겨놓고 있다.

SANYO DIGITAL CAMERA옆쪽에서 본 모습.

SANYO DIGITAL CAMERA석탑 앞에서 내려다 보이는 남한강과 공원.

SANYO DIGITAL CAMERA충주 탑평리 칠층 석탑.

OLYMPUS DIGITAL CAMERA탑이 있는 곳에서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한 누암리 고분군(사적 464호). 삼국시대 중원지역을 장악하기 위해 이 지역으로 이주해 온 신라 지배층들의 무덤이다.

충추 탑평리칠층석탑, 국보 6호, 충북 충주시 중앙탑면 탑평리
중원(中原) 문화를 대표하는 유산인 이 탑은 신라탑 중 유일한 7층석탑으로 통일신라기에 우리나라의 중앙에 세줘져 ‘중앙탑’이라고 한다. 건립시기에 대해서는 여러 주장이 있으나 대체로 8세기 후반 ~ 9세기 초로 파악되고 있으며, 10여 개의 크고 긴 돌로 지대석을 마련하고 2층 기단을 쌓아 올렸다. 탑 전체의 높이는 12.951m로 높이에 비해 상승감이 두드러지는 탑이다. 1917년 해체.복원시 6층 몸돌에서 훼손된 고서류 일부와 구리거울 2점, 목제 칠합과 은제사리함이 나왔고 기단부에서는 청동합이 발견되었는데, 구리거울은 고려시대의 것으로 이떄에도 변화가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이 탑은 여러 차례 해체.복원으로 원형과 달라진 부분이 많은 것으로 보인다. (안내문, 충주시청, 2009년)

<출처>

  1. 안내문, 충주시청, 2009년
  2. 국가문화유산포탈, 문화재청, 2019년
  3.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소, 2019년

 

남양주 수종사 팔각오층석탑(보물 1808호), 고려시대 팔각석탑을 계승한 조선초기 석탑

경기도 남양주시 조안면 송촌리 운길산 수종사에 있는 오층석탑(보물 1808호)이다. 조선전기에 조성된 석탑으로 중국의 영향을 받은 월정사 팔각구층석탑을 축소한 형태를 하고 있다. 탑의 기단부는 연꽃무늬가 새겨진 불상 대좌와 같은 형태를 하고 있다. 탑신은 팔각모서리에 기둥을 새겨놓은 것 외 특별한 장식은 없다. 조각수법은 세밀하거나 정교하지 않으며, 장식적인 용도로 바뀐 조선전기 석탑 양식을 잘 보여주고 있다. 원래 수종사 동쪽편 능선에 세워져 있던 것을 옮겨 놓았다. 석탑을 해체.수리하는 과정에서 태종의 후궁이 발원조성하고 성종의 후궁들이 넣었다는 불상과 선조 계비 인목대비가 발원했다는불상 등이 발견되어 왕실과 관련되었음을 보여주고 있다.

수종사는 남한강과 북한강이 만나는 두물머리를 내려다 보고 있는 운길산 중턱에 자리잡고 있다. 조선초 불교에 관심이 많았던 조선초 세조때 창건되었다. 한양과 가깝고 왕실과 관련된 사찰이었으며, 한강의 아름다운 경관을 감상할 수 있는 잇점 등으로 여러차례 중수를 통해서 오늘날까지 명맥을 이어오고 있다.

SANYO DIGITAL CAMERA남양주 수종사 경내로 옮겨진 팔각오층석탑(보물 1808호). 월정사 팔각구층석탑같은 고려시대 팔각석탑의 전통을 계승하고 있다. 신앙의 대상이라기보다는 장식적인 용도의 조선초기 석탑의 특징을 잘 보여준다. 그 옆에 정형화된 고려시대 삼층석탑이 있다.

남양주 수종사 팔각오층석탑, 보물 1808호, 경기도 남양주시 조안면 송촌리
수종사에 서 있는 8각 5층 석탑이다. 탑은 여러 단을 쌓아 기단(基壇)을 삼고 그 위에 5층 탑신(塔身)을 올린 뒤, 머리장식을 얹은 모습으로, 각 부분이 8각을 이루고 있다. 특이하게도 불상의 대좌와 같은 형식을 취하고 있는 기단부는 엎어놓은 연꽃무늬와 솟은 연꽃무늬가 장식되어 화려한 모습이다. 탑신의 몸돌은 위로 올라가면서 규모가 점차 줄어들었다. 지붕돌은 밑면의 받침이 3단씩이고, 낙수면은 경사가 완만하며, 처마는 느린 곡선미를 보이고 있다. 꼭대기에는 삼각형무늬가 새겨진 복발(覆鉢:엎어놓은 그릇모양의 장식)과 보주(寶珠:꽃봉오리모양의 장식)가 올려져 머리장식을 하고 있다. 절의 중창시기인 조선 전기의 석탑으로 추측된다. 1957년 지금의 자리로 옮길 때 탑신에서 불상, 보살상 등 18점의 유물이 발견되어 국립중앙박물관으로 옮겨 보존하고 있다. <출처:문화재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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탑은 불상을 얹어놓는 연화대좌처럼 생긴 기단부 위에 탑신을 올려놓고 있다. 조각수법이나 조형미가 뛰어난 것은 아니며 형식적인 면모를 보인다.

SANYO DIGITAL CAMERA기단부, 아래에는 안상이 새겨진 팔각형의 대석을 놓고 그 위에 연꽃무늬가 새겨진 불상대좌 모양의 기단을 올려 놓고 있다.

SANYO DIGITAL CAMERA탑신 몸돌은 모서리에 기둥모양을 새겨 놓은 것 외에는 특별한 장식을 두고 있지 않다.

SANYO DIGITAL CAMERA석탑 앞 배례석.

SANYO DIGITAL CAMERA오층석탑에서 출토된 불상. 인조 6년 인목대비가 발원하여 조성한 불상이다. 이때 탑이 중수되었음을 보여주고 있다.

경기도 남양주 운길산에 있는 수종사는 세조에 의해 크게 중창된 절이다. 이 곳에 있는 오층석탑을 1957년에 해체했는데, 여기서 수많은 금동불이 발견되었다. 오층석탑 1층 탑신에서 발견된 금동 불감 안에는 석가모니불과 반가사유상, 두건을 쓴 지장보살로 구성된 삼존불이 봉안되어 있는데, 발원문에 의하면, 이 삼존불은 성종의 후궁인 명빈김씨가 1459년에서 1493년 사이에 발원해 만든 것이다. 이 밖에도 이 탑에서는 인조 6년 정의대왕대비(인목대비)가 발원한 불.보살상23구가 발견되었다. <출처:국립중앙박물관>

<출처>
1.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2. 두산백과
3. 문화재청
4. 고궁박물관
5. 위키백과

안성 봉업사지 오층석탑(보물 435호)

경기도 안성시 죽산면 죽산리 봉업사지 절터에 있는 오층석탑(보물 435호)이다. 고려초기에 세워진 것으로 보이며 ‘봉업사’라 적힌 청동제 반자가 발견되어 봉업사지 오층석탑이라 부른다. 이 석탑은 단층 기단위에 5층 탑신이 올려져 있는 정형화된 고려시대 오층석탑의 모습을 하고 있다. 탑신 1층 몸돌을 크게 만들어져 기단의 역할을 겸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기단부나 탑신 몸돌에 특별한 장식이 없으며, 모서리에 기둥모양을 새겨 놓고 있다. 1층 몸돌에는 불상 등을 안치하는 작은 감실이 있을 뿐이다. 전체적인 비례에서 주는 조형미나 조각수법 등은 통일신라 석탑에 비해 많이 떨어진다. 정형화된 양식의 고려초기 석탑의 특징을 잘 보여주고 있다.

봉업사(奉業寺)는 고려시대 주요 교통로에 위치하고 있던 큰 사찰로 고려 태조의 진영을 모셨던 왕실과 관련된 사찰이다. 옛 절터에는 오층석탑과 당간지주가 남아 있으며, 옛절터 대부분은 농경지로 사용하고 있다. 절터 뒷편에는 이지역을 지키던 죽주산성이 있으며, 남쪽으로는 청주와 진천, 서쪽으로는 안성, 동쪽으로 충주, 북쪽으로 용인과 연결되는 교통의 요지이다. 중부지방 교통로에 위치하면서 번성했던 다른 평지사찰과 마찬가지로 조선시대에 경제력이 없어지면서 폐사된 것으로 보인다.

OLYMPUS DIGITAL CAMERA안성 봉업사지 오층석탑(보물 435호). 1층 기단 위에 5층 탑신을 올려놓은 고려초기 오층석탑이다. 조각수법이나 조형미는 통일신라 석탑에 비해 떨어지는 편이다.

안성 봉업사지오층석탑, 보물 435호, 경기도 안성시 죽산면 죽산리
고려시대의 큰 사찰이었던 봉업사가 있었던 이곳은, 조선시대에 폐사되었으나 발굴결과 명문이 있는 유물이 대량으로 출토되어 그 연혁을 대략 알 수 있었다. 이곳에 있는 탑은 그 높이가 6m로 여러 장의 크고 넓적한 돌로 지대석을 만들고 그 위에 단층 기단을 두고 위에 5층의 탑신을 올렸다. 이 탑의 기단을 이루는 석재에는 모서리 기둥이 잘 남아 있다. 1층 탑 몸돌의 남쪽 면에는 작은 감실을 만들었는데, 그 감실을 막기 위한 문을 달은 듯한 흔적이 보인다. 지붕돌은 얇으면서 각 층마다 5단의 지붕받침이 표현되어 있으며, 낙수면의 경사는 완만하여 편평한 느낌을 준다. 현재 상륜부는 남아 있지 않다. 기단부가 둔중한 점, 1층 탑신이 다른 층에 비해 유난히 높은 점 등에서 고려시대 석탑의 특성을 잘 나타내고 있다. <출처: 문화재청>

OLYMPUS DIGITAL CAMERA기단을 1층으로 쌓고 그 위에 탑신을 올려 놓았다. 탑신 1층을 높게 만들어 기단 역할을 하고 있으나, 전체적으로 안정감은 떨어지는 편이다. 탑신 1층 몸돌에 불상을 모신 것으로 보이는 작은 감실이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탑신의 지붕돌은 얇은 편으로 추녀는 거의 수평을 이루고 있으며, 날렵하게 치켜들어 올리는 멋이 부족하다. 정형화된 고려초기 석탑의 특징을 보여주는 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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옆쪽에서 본 오층석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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뒷쪽에서 본 오층석탑.

OLYMPUS DIGITAL CAMERA당간지주 사이로 보이는 오층석탑.

OLYMPUS DIGITAL CAMERA고려시대 큰 절이었던 봉업사 옛 절터는 지금은 대부분 농경지로 사용되고 있다. 옛절터에는 오층석탑과 당간지주가 남아 있고, 이곳에 있던 석조여래입상은 인근 칠장사로 옮겨졌다.

<출처>
1.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2. 두산백과
3. 문화재청
4. 고궁박물관
5. 위키백과

양양 낙산사 칠층석탑(보물 499호), 고려석탑 양식이 남아 있는 조선초기 다층석탑

강원도 양양군 강현면 전진리 낙산사에 있는 칠층석탑(보물 499호)이다. 낙산사를 창건한 통일신라 때 삼층석탑을 조선초 세조가 중건하면서 칠층석탑으로 만들었다. 중국의 영향을 받은 고려 석탑 양식이 적용된 석탑이다. 기단부는 정사각형으로 지대석이 놓여 있는데 윗면에 겹연꽃 무늬를 장식하고 있으며, 탑신부는 조선시대 다층석탑 양식을 보여주고 있다. 상륜부에는 청동 복발.보륜 등을 장식하고 있다. 상륜부 형식은 원나라의 영향을 받은 라마탑과 닮은 장식들의 거의 원형대로 잘 남아 있다. 인근 월정사 팔각구층석탑과 양식적으로 비슷하다.

낙산사는 신라 문무왕 때 의상대사가 창건한 사찰로 남해 보리암, 서해 보문사와 더불어 우리나라 3대 기도처이자 관음도량이다. 통일신라 때 크게 중건한 이후 여러차례 중건되었으며, 2005년 큰 산불로 대부분의 전각들이 소실된 후 새로 중건되었다. 경내에는 세조 때 세운 7층석탑과 홍예문 등이 남아 있다. 낙산사 아래 해안가에는 의상대사가 참선했던 장소인 의상대와 해안 절벽에 세워진 작은 암자인 홍련암이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양양 낙산사 칠층석탑(보물 499호). 낙산사 주불전인 원통보전 앞에 세워져 있는 칠층석탑이다. 조선초 낙산사를 크게 중건할 때 칠층으로 다시 조성된 것으로 고려석탑 양식이 많이 남아 있다.

양양 낙산사 칠층석탑, 보물 499호, 강원도 양양군 강현면 전진리
이 석탑은 창건 당시 3층이던 것을 세조 13년(1467)에 이르러 현재의 7층으로 조성한 탑이다. 이때 수정으로 만든 염주(念珠)와 여의주를 탑 속에 봉안하였다 한다. 조선은 유교를 통치 이념으로 삼음으로써 천여년간 국교로 자리잡고 있었던 불교는 쇠퇴의 길을 걷게 되었다. 그와 함께 불교와 관련된 조형 미술의 분야도 위축되지 않을 수 없었는데, 그나마 조선 전기에는 불교미술 분야에서 조성 양식이나 수법이 고려적인 작품이 다소 조성되었다. 낙산사7층석탑도 고려시대의 여운이 남아 있는 석탑 중 하나이다. 탑의 받침이 되는 기단부(基壇部)는 정사각형의 바닥돌 위로 밑돌을 놓았는데 윗면에 24잎의 연꽃무늬를 새겼다. 탑신부(塔身部)는 지붕돌과 몸돌을 1층으로 하여 7층을 이루고 있다. 각 층의 몸돌 아래로는 몸돌보다 넓고 두꺼운 괴임이 1단씩 있어 특징적이다. 지붕돌은 경사면이 평탄하며 네 귀퉁이의 들림이 잘 어우러져 전체적인 모양이 경쾌하다. 탑의 또 다른 특징이 되고 있다. 고려시대의 양식을 이어 받고 있으나 전체의 조형이 더욱 간략화 되었다. 강릉 신복사지삼층석탑·월정사팔각구층석탑 등의 탑신부와 비교해 볼 수 있다. <출처:문화재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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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층 기단 위에 7층 탑신을 올려 놓고 있다. 고려석탑의 양식을 따르고 있으나 전체적으로 간략화된 모습을 보이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연꽃문양이 새겨진 기단부. 고려석탑 양식이 남아 있는 부분이다.

OLYMPUS DIGITAL CAMERA탑신부는 몸돌과 지붕돌로 되어 있는데 전체적으로 낮게 만들었으며, 특별한 장식이 없는 간략화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머리장식에는 원나라의 라마탑(喇嘛塔)을 닮은 여러 장식들이 원형대로 잘 보존되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낙산사 주불전인 원통보전 앞에 세워진 칠층석탑.

<출처>
1.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2. 두산백과
3. 문화재청
4. 고궁박물관
5. 위키백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