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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우장식 장경호(국보), 삼국시대 신라의 민간신앙을 표현하고 있는 유물

국립경주박물관에서 소장하고 있는 토우장식 장경호(국보)이다. 경주 대릉원 계림로 30호 무덤과 노동동 11호 무덤에서 출토된 2점의 토우장식 목항아리를 말한다. 2점의 목항아리는 밑이 둥글고 윗부분은 밖으로 약간 벌어진 채 세워져 있다. 목부분과 몸체에 개구리, 새, 거북, 사람, 뱀 등 다양한 형상의 토우를 장식하고 있다. 토우는 생산, 풍요, 귀신을 물리치는 민간신앙을 표현하고 있다.

노동동 11호 무덤에서 출토된 목항아리에는 남자가 성기를 드러내고 있는 장면과 뱀이 개구리를 잡아먹는 장면을 표현하여 있으며 겉면에 선과 동심원 등을 새겼다. 높이는 40.5 cm, 윗부분 너비는 25.5 cm 정도의 크기이다.

토우장식 장경호 (국보) 20231006_11
<토우장식 긴목 항아리, 신라 5세기, 경주 노동동 11호 무덤, 국립경주박물관, 국보>

토우장식 장경호 (국보) 20231006_12
<2번째 면>

토우장식 장경호 (국보) 20231006_13
<3번째 면>

항아리의 목 부분에 개구리의 뒷다리를 물고 있는 뱀, 성기를 드러낸 남자 등의 토우가 붙어 있다. 뱀과 성기를 드러낸 남자는 강인한 생명력을 상징한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2014년)

토우장식 장경호 (국보) 20231006_22<경주 노동동 11호 무덤 출토 토우장식 긴목 항아리의 토우 부분을 펼친 모습>

토우장식 장경호 (국보) 20231006_07<지팡이를 든 사람>

토우장식 장경호 (국보) 20231006_10<뱀과 개구리>

토우장식 장경호 (국보) 20231006_09<남자>

토우장식 장경호 (국보) 20231006_08<뱀과 개구리>

토우장식 긴목 항아리, 신라 5세기, 경주 노동동 11호 무덤, 국립경주박물관, 국보
토우장식 항아리에 붙어 있는 토우는 뱀과 개구리 그리고 지팡이를 든 사람입니다. 지팡이를 든 사람은 제사장으로 추정됩니다. 이러한 사람모양 토우는 황남동 유적과 쪽샘지구 유적에서도 출토되었습니다. 황남대총 북쪽 무덤 봉토에서 나온 토기 조각에도 비슷한 사람의 모습이 있습니다. 오래전부터 이어져온 토속종교의 의례와 관련된 장면으로 보입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특별전, 2023년)

미추왕릉지구 계림호 30호 무덤에서 출토된 항아리는 신라 토우를 대표하는 걸작이다. 높이 34 cm, 윗부분 지름 22.4 cm로 큰 편이며, 위에서 아래로 한번에 5개의 선을 그었고 그 선 사이에 동심원을 새기고 개구리.새.거북이.사람 등의 토우를 장식했다.

토우장식 장경호 (국보) 20231006_14
<토우장식 긴목 항아리, 신라 5세기, 경주 미추왕릉지구 계림로 30호 무덤, 국립경주박물관, 국보>

토우장식 장경호 (국보) 20231006_15
<2번째 면>

토우장식 장경호 (국보) 20231006_16
<3번째 면>

이 항아리에는 뱀.개구리,거북, 토끼 등의 다양한 동물들과 거문고를 타는 임산부, 남녀간 성행위 모습 등 다양한 모양의 토우들이 있다. 뱀이 개구리 뒷다리를 물려고 하는 모습이 해학적이다.

토우장식 장경호 (국보) 20231006_21<경주 미추왕릉지구 계림로 30호 무덤 출토 토우장식 긴목 항아리의 토우 부분을 펼친 모습>

토우장식 장경호 (국보) 20231006_01<현악기를 연주하는 여자>

토우장식 장경호 (국보) 20231006_02<성적인 장면>

토우장식 장경호 (국보) 20231006_04<남자>

토우장식 장경호 (국보) 20231006_03<뱀과 개구리>

토우장식 긴목 항아리, 신라 5세기, 경주 미추왕릉지구 계림로 30호 무덤, 국립경주박물관, 국보
토우장식 항아리의 이야기는 3개의 장면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뱀과 개구리가 장면마다 반복되고 있습니다. 첫번째는 남자와 새, 두번째는 성적인 장면과 새.물고기.육상동물, 세번째는 현악기를 연주하는 여자.새.거북입니다. 인물에 따라서 장면마다 동물구성이 달라지고 있습니다. 이 이야기는 재생과 탄생, 생명을 의미하는 것으로 죽음과 부활의 의미가 담겨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특별전, 2023년)

완성된 한 편의 이야기
토우장식 항아리에는 가장 상징적인 인물과 동물들의 모습이 파노라마처럼 한편으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이것은 당시 신라 사회에서 장송의례와 관련한 정형화된 이야기가 있었음을 보여줍니다. 개구리의 뒷다리를 무는 뱀이 일정한 간격을 두고 반복적으로 표현되어 있고 그 사이사이에 현악기를 연주하는 여자, 성적인 장면, 지팡이를 든 남자, 새, 물고기 등 이야기의 주인공들이 등장합니다. 토우장식 토기는 신라 경주지역에서 5세기 후반에 집중적으로 만들어졌다가 6세기에 들어서면서 점차 사라집니다. 이 시기가 신라에 불교가 도입되기 전임을 생각한다면 토우로 연출된 장면들은 오래 전부터 전승된 토속종교 의례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계세적 내세관이 유행했던 당시, 죽음 이후 또 다른 삶을 위한 재생과 부활의 메세지를 담은 것으로 생각됩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특별전, 2023년)

<출처>

  1. 안내문, 중앙박물관 특별전, 2023년
  2. 안내문, 중앙박물관, 2011년, 2020년
  3. 안내문, 경주박물관 특별전, 2015년
  4. “국보 토우장식 장경호”, 국가문화유산포탈, 문화재청, 2023년

경주 금령총 출토 배모양 토기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소장하고 있는 배모양 토기이다. 경주 대릉원 금령총에서 출토된 1쌍의 도기이다. 배모양 토기에는 노를 젓고 있는 사람이 있다. 그리스 신화 등에 나오는 저승세계로 여행을 떠나는 배를 표현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저승세계로 떠나는 주인과 시종을 표현한 도기 기마인물형 명기(국보)와 함께 출토되었다.

금령총 출토 배모양 도기20231006_01<배모양 토기, 신라 6세기, 경주 금령총, 국립중앙박물관>

금령총 출토 배모양 도기20231006_02<배모양토기>

금령총 출토 배모양 도기20231006_03<옆에서 본 모습>

금령총 출토 배모양 도기20231006_05<배모양 토기>

금령총 출토 배모양 도기20231006_06<위에서 본 모습>

금령총 출토 배모양 도기20231006_07<말탄 사람 토기 (주인), 신라 6세기, 경주 금령총, 국립중앙박물관, 국보>

금령총은 신라 어린 왕족의 무덤입니다. 무덤 안에는 말탄 사람 토기와 배모양 토기가 한쌍씩 묻혀 있었습니다. 말 탄 사람 토기는 주인상과 시종상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시종상은 한 손에 방울을 들고 있어서 흔들어 소리를 내며 가는 것 같습니다. 배모양 토기에도 노를 젓고 있는 두사람이 있습니다. 금령총에 묻힌 사람은 뭍에서도 물길에서도 어디든 함께 가는 동행이 있어서 외롭지 않을 것 같습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특별전, 2023년)

금관이 발견된 경주 노동리 고분 중 금령총은 일제강점기에 발굴.조사가 이루어졌다. 작은 규모의 고분이지만 금관을 비롯하여 기마인물형토기, 금령총 방울 등 많은 유물들이 출토되었다.

OLYMPUS DIGITAL CAMERA<경주 금령총>

경주-대릉원-호우총-09-202201291<경주 대릉원 노서동, 노동동 고분군>

<출처>

  1. 안내문, 중앙박물관, 2011년
  2. 안내문, 중앙박물관 특별전, 2023년

[중앙박물관 가야실] 가야의 토기와 상형토기

삼한 중 한반도 동남부에 존재했던 변한을 계승한 가야연맹체는 국가체제를 갖추었던 고구려.백제.신라와는 달리 연맹체국가 형태를 유지하였다. 가야연맹체는 한.중.일 해상교역로의 이점을 적극 활용하고, 지역에서 생산되는 철을 기반으로 상당한 수준의 경제력을 가졌던 것으로 보인다.

가야연맹체는 중국과의 교류를 통해 높은 온도의 밀폐가마, 고속 회전 물레 등 발달된 토기 제작기술을 가졌던 것으로 보이며 회청색의 아주 단단한 토기를 만들었다. 높은 기술수준과 조형미를 갖춘 가야의 토기는 곡선적인 다리를 가진 굽다리접시와 다양한 형태의 그릇받침이 특징적인데 연맹체 국가답게 지역별로 다양한 특징을 보여준다.

가야 토기의 발생
가야는 높은 온도의 밀폐가마, 고속 회전 물레 등 더욱 발달된 토기 제작 기술로 회청색의 아주 단단한 토기를 만들었다. 가야 토기는 곡선적인 다리를 가진 굽다리접시와 다양한 형태의 그릇받임이 특징적인데 높은 온도에서 구워 대체로 밝은 회청색을 띠고 있다. 3세기 후반 금관가야(김해 일대)에서는 물결무늬가 새겨진 화로 모양의 그릇받침과 입술이 바깥으로 꺾인 굽다리접시, 그리고 두귀가 붙은 항아리가 등장한다. <출처:중앙박물관>

OLYMPUS DIGITAL CAMERA가야 토기의 발생

OLYMPUS DIGITAL CAMERA굽다리접시, 1.경남 함안 도항리, 1992년 발굴, 삼국시대(가야) 4세기, 2.경남 창원 현동, 2010년 발굴, 삼국시대(가야) 4세기,

OLYMPUS DIGITAL CAMERA 굽다리접시, 3.경남 김해 양동리, 1996년 발굴, 삼국시대(가야) 4세기, 4.경남 김해 예안리, 1980년 발굴, 삼국시대(가야) 4세기,

OLYMPUS DIGITAL CAMERA 굽다리접시, 5.부산 동래 복천동, 1991년 발굴, 삼국시대(가야) 4세기, 6.경남 김해 북부동, 1993년 발굴, 삼한시대(변한) 3세기,

OLYMPUS DIGITAL CAMERA 굽다리접시, 7.경남 김해 대성동, 1992년 발굴, 삼국시대(가야) 4~5세기, 화로모양그릇, 1.경남 김해 여래리, 2012년 발굴, 삼국시대(가야) 4세기,

OLYMPUS DIGITAL CAMERA화로모양그릇, 2.경남 김해 북부동, 1993년 발굴, 삼국시대(가야) 3세기,  두귀붙은 항아리, 3.부산 동래 복천동, 1989년 발굴, 삼국시대(가야) 4세기

여러 지역의 가야 토기
대가야(고령, 합천 일대)에서는 얕은 접시에 작은 네모 투창이 뚫린 굽다리접시와 잘록한 목에 뚜껑받이턱이 있는 항아리, 몸통에 긴 띠를 세로로 장식한 원통형 그릇받침 등이 성행한다. 대가야의 토기는 소백산맬을 넘어 남원, 임실지역에도 출토되어 대가야 세력의 확장을 알 수 있다. 또 소가야(진주, 고성 일대)에서는 납작한 몸체에 긴 네모꼴 굽구멍이 뚫린 굽다리접시와 아가리 끝이 수평을 이루며 퍼진 항아리가 나타난다. 5세기 대 아라가야 토기의 가장 큰 특징은 불꽃 모양의 투창을 가진 굽다리접시의 출현이다. 원통형의 그릇받침에는 고사리무늬가 더해진다. <출처:중앙박물관>

OLYMPUS DIGITAL CAMERA가야의 토기

금관가야
금관가야는 변한의 구야국이 성장.발전한 나라로 오늘날의 경남 김해와 부산지역에 있었다. 금관가야는 초기부터 철을 매개로 대외교역을 장악하면서 성장하여 전기 가야연맹의 중심체가 되었다. 금관가야의 토기는 물결무늬가 새겨진 화로모양의 그릇받침과 입술이 바깥으로 크게 꺾인 굽다리 접시가 주를 이룬다. <출처:중앙박물관>

OLYMPUS DIGITAL CAMERA긴목항아리.그릇받침, 1.경남 김해 대성동, 1992년 발굴, 삼국시대(가야) 4~5세기, 항아리.그릇받침, 2.부산 동래 복천동, 1991년 발굴, 삼국시대(가야) 4세기

OLYMPUS DIGITAL CAMERA그릇받침, 3,4.경남 김해 여래리, 2012년 발굴, 삼국시대(가야) 4~5세기,

OLYMPUS DIGITAL CAMERA짧은 목 항아리.그릇 받침, 5.경남 김해 여래리, 2012년 발굴, 삼국시대(가야) 4~5세기, 그릇받침, 6.부산 동래 복천동, 1989년 발굴, 삼국시대(가야) 4세기

대가야
대가야는 변한의 반로국이 성장.발전한 나라로 지금의 경북 고령 지역이 중심지였다. 철산지인 합천 지역을 차지하면서 성장의 기반을 마련하고 점차 주변의 전북 남원.장수, 경남 하동 지역까지 세력을 확장하여 후기 가야연맹을 주도하였다. 대가야의 특징적인 토기는 얕은 접시에 작은 네모 구멍이 뚫린 굽다리접시와 잘록한 목항아리, 몸통에 세로로 띠를 붙여 장식한 원통모양 그릇받침 등이 있다. <출처:중앙박물관>

OLYMPUS DIGITAL CAMERA‘大王’명이 새겨진 긴목항아리, 1.전 경북 고령, 복제품, 삼국시대(가야) 5~6세기, 짧은 목항아리.그릇받침, 2.경남 합천 송림리, 1986년발굴, 삼국시대(가야) 5세기

OLYMPUS DIGITAL CAMERA굽다리접시, 3.경북고령 지산동, 2008년 발굴, 삼국시대(가야) 5~6세기, 4.경북 고령 지산동, 1919년 입수, 삼국시대(가야) 5~6세기,

OLYMPUS DIGITAL CAMERA굽다리항아리, 5.경북 고령 지산동, 1918년 입수, 삼국시대(가야) 5~6세기, 뚜껑바리, 6.경북 고령 지산동, 1919년 입수, 삼국시대(가야) 5~6세기

OLYMPUS DIGITAL CAMERA뚜껑접시, 7.경북 고령 지산동, 1978년 발굴, 삼국시대(가야) 5세기, 8.경남 합천 삼가, 1981년 발굴, 삼국시대(가야) 5세기

OLYMPUS DIGITAL CAMERA긴 목 항아리.그릇받침, 9.경남 합천 저포리, 1987년 발굴, 삼국시대(가야) 5세기, 그릇받침, 10.경북 고령 본관동, 1983년 발굴, 삼국시대(가야) 5세기

아라가야
아라가야는 변한의 안야국이 성장.발전한 나라로 중심 지역은 지금의 경남 함안 지역이었다. 낙동강과 남강이 합류하는 지점에 자리잡은 아라가야는 편리한 지리적 이점을 이용하여 발전하였다. 아라가야의 대표적인 토기는 굽다리접시의 상하 폭이 같은 통모양의 것과 불꽃모양의 구멍이 뚫린 굽다리접시가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굽다리접시, 1,2.경남 창원 현동, 2010년 발굴, 삼국시대(가야) 5세기,

OLYMPUS DIGITAL CAMERA굽다리접시, 3.경남 함안 도항리, 1993년 발굴, 삼국시대(가야) 5세기, 4.경남 함안 도항리, 1994년 발굴, 삼국시대(가야) 5세기,

OLYMPUS DIGITAL CAMERA굽다리접시, 5.경남 함안 도항리, 1917년 발굴, 삼국시대(가야) 5세기, 화로모양 그릇, 6.경남 함안 황사리, 1991년 발굴, 삼국시대(가야) 5세기,

OLYMPUS DIGITAL CAMERA긴목항아리, 7.경남 함안 도항리, 1992년 발굴, 삼국시대(가야) 5세기, 그릇받침, 8.경남 함안 도항리, 1993년 발굴, 삼국시대(가야) 5세기

소가야
소가야는 고자국으로 불리며 경남 진주, 사천과 고성 반도의 남해안 일대에 자리잡고 있었다. 해로와 육로를 이어주는 지리적 이점을 이용한 교역으로 발전하였다. 소가야 특유의 토기로는 키가 작고 네모 구멍이 뚫린 굽다리접시와 위가 벌어진 항아리 등이 있다. <출처:중앙박물관>

OLYMPUS DIGITAL CAMERA굽다리접시, 1.경남 고성 내산리, 1999년 발굴, 삼국시대(가야) 5세기, 구멍단지, 2.경남 고성 내산리, 1999년 발굴, 삼국시대(가야) 5세기

OLYMPUS DIGITAL CAMERA굽다리항아리, 3.경남 고성 내산리, 1999년 발굴, 삼국시대(가야) 5세기, 4.경남 고성 연당리, 1991년 발굴, 삼국시대(가야) 5세기, 그릇받침, 5.경남 고성 내산리, 1999년 발굴, 6.경남 진주 무촌리, 1993년 발굴, 삼국시대(가야) 5세기

가야 토기의 아름다움
가야 사람들은 일상생활에서 많은 생활 용기들을 만들어 사용했는데 그 중 일부는 무덤에 넣어 죽은 사람을 위로하였다. 가야 토기는 같은 시기 한반도 다른 지역에서 발견되는 어떤 토기보다 단단하며 형태적으로 도 아름답다. 가야 토기의 종류로는 굽다리접시, 항아리, 그릇받침 등이 있다. 신라의 굽다리접시는 굽다리가 직선적이고 투창은 사각형이며 상하가 서로 엇갈리게 배치되어 있다. 이에 비해 가야의 굽다리접시는 굽다리가 곡선적이며 투창의 형태가 다양해 불꽃모양이나 작은 원형도 있다. 사각형의 투창은 상하 일렬로 뚫어 놓은 것이 대부분이다. 이와 더불어 신라나 백제에 비해 다양한 형태와 무늬를 가진 그릇받침은 가야 토기 중 가장 특징적이다. <출처:중앙박물관>

OLYMPUS DIGITAL CAMERA뚜껑바리, 1,2.경남 합천 옥전, 1991년 발굴, 삼국시대(가야) 5~6세기,

OLYMPUS DIGITAL CAMERA화로모양 그릇, 3.경남 김해 북부동, 1993년 발굴, 삼국시대(가야) 5~6세기, 굽다리 바리, 4.경남 함안 도항리, 1994년 발굴, 삼국시대(가야) 5~6세기

OLYMPUS DIGITAL CAMERA항아리, 5.경남 합천 저포리, 1987년 발굴, 삼국시대(가야) 5~6세기, 토기병, 6.경남 합천 저포리, 1987년 발굴, 삼국시대(가야) 5~6세기, 긴목항아리, 7.경북 고령 지산동, 1978년 발굴, 삼국시대(가야) 5~6세기

OLYMPUS DIGITAL CAMERA굽다리접시, 8.경남 창원 현동, 2010년 발굴, 삼국시대(가야) 5~6세기, 9,10.경남 합천 저포리, 1987년 발굴, 삼국시대(가야) 5~6세기,

OLYMPUS DIGITAL CAMERA11.경남 합천 옥전, 1988년 발굴, 삼국시대(가야) 5~6세기, 12.2002년 최영도 기증, 삼국시대(가야) 5~6세기

OLYMPUS DIGITAL CAMERA뚜껑접시, 13.경남 함안 도항리, 1998년 발굴, 삼국시대(가야) 5세기, 항아리, 14.경남 합천 저포리, 1986년 발굴, 삼국시대(가야) 5~6세기, 긴목항아리.그릇받침, 15.경남 산청 생초, 2002년 발굴, 삼국시대(가야) 5세기

가야가 남겨놓은 많은 고분들에서는 부장품으로 각종 유물들을 남겨 놓고 있는데, 철제무기류와 함께 가야를 상징하는 유물로 다양한 모양의 상형토기를 들 수 있다. 인물이나 기물 등을 본떠서 만든 토기인 상용토기는 가야와 신라지역에서만 주로 출토되는 유물로 수레.배.집 등의 토기에서는 당시 가야인의 생활 모습을 엿볼 수 있게 해주며, 각종 동물모양의 토우에서는 그들의 사후관이나 정신세계를 추론해 볼 수 있게 해준다. 지금도 바퀴모양토기를 가야를 상징하는 아이콘으로 사용하고 있다. 또한 각배라고도 하는 뿔모양의 잔에서는 중앙아시아와의 교류관계를 보여주는 등 다양한 문화교류의 흔적을 남겨놓고 있다

가야의 상형토기
상형토기는 사람이나 동물 또는 물건의 모양을 본떠서 만든 토기를 말한다. 이 중에는 속이 비어 있거나 뿔잔 등이 붙어 있어 주전자나 잔과 같은 역할을 하도록 만든 것도 있다. 또 배, 수레, 집, 신발, 방울 등의 모양을 지닌 토기가 많은데 당시 사람들의 생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사슴이나 말, 돼지 등 동물모양의 장식을 토기에 붙인 것도 있다. 가야 지역의 상형토기는 대부분이 무덤에서 출토되어 장송의례에 사용된 것으로 보인다. 죽은 사람의 안식과 영혼의 구원처럼 사후세계의 안락에 대해 상징적 기원을 표현한 것이다. <출처:중앙박물관>

OLYMPUS DIGITAL CAMERA가야의 상형토기

OLYMPUS DIGITAL CAMERA사슴이 있는 구멍단지, 1.1910년 입수, 삼국시대(가야) 5~6세기, 삼각구멍무늬 잔, 2.경남 합천 저포리, 1988년 발굴, 삼국시대(가야) 5~6세기.  사슴이 붙은 구멍단지로 제사나 각종 행사에 사용한 것으로 보인다. 고대인들에게 사슴은 신령스러운 동물이었다. 사슴은 특히 시베리아 지역에서 신성시 여겨지는 동물로 샤머니즘과 관련이 있다고 한다.

OLYMPUS DIGITAL CAMERA말머리모양 뿔잔, 3.부산 동래 복천동, 1969년 발굴, 보물598호, 삼국시대(가야) 5세기. 부산 복천동 무덤에서 출토된 대표적인 각배로 말 머리가 달린 뿔모양 잔이다. 낙동강 유역의 가야와 신라 지역에서 발견되며 남성적이고 신성한 말에 대한 신앙을 엿볼 수 있다. 이런 각배는 다양한 형태의 유물로 남아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신선로모양 토기, 4.전 경상도 지역, 1931년 입수, 삼국시대(가야) 5~6세기, 받침, 7.부산 동래 복천동, 1991년 발굴, 삼국시대(가야) 5~6세기. 굽다리접시의 받침 부분에 아가리가 넓게 벌어지고 세 개 또는 네 개의 고리가 받치고 있는 작은 잔을 올려 결합시킨 형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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받침, 5,6.1981년 이홍근 기증, 삼국시대(가야) 5~6세기,

OLYMPUS DIGITAL CAMERA원통모양 토기, 8.1981년 이홍근 기증, 삼국시대(가야) 5~6세기, 이형잔, 9.1981년 이홍근 기증, 삼국시대(가야) 5~6세기

OLYMPUS DIGITAL CAMERA뿔모양 잔, 10.전 경상도 지역, 1982년 입수, 삼국시대(가야) 5~6세기. 굽받침 위에 말이 서 있고 말 등에 긴 뿔모양 잔이 붙어 있다. 각배라고도 불리는 이런 유물은 중앙아시아 민족과의 교류관계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유물로 제사 의식 등에 사용한 그릇이다.

OLYMPUS DIGITAL CAMERA수레 모양 토기, 11,12. 전 경상도 지역, 1964년 입수, 삼국시대(가야) 5~6세기. 둥글고 큰 수레바퀴를 뿔잔의 양 옆에 붙여 만든 것으로 무덤에서 출토된다. 영혼을 나르는 의미로써 제사 등의 의례시 사용된 것으로 추정된다.

 

[중앙박물관 신석기실] 빗살무늬토기로 대표되는 신석기시대 토기

한반도 신석기인들의 토기 사용은 2008년 제주도 고산리에서 기원전 8,000년 무렵에 만들어진 토기가 발견되어 그 이전부터 사용했던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토기는 형태와 무늬 등이 지역에 따라서 다르게 나타나고 있다. 한반도 신석기시대 토기는 6,000년경부터 사용한 덧무늬토기와 기원전 4,500년 무렵부터 사용한 빗살무늬토기가 있다.

덧무늬 토기는 주로 남해안과 동해안 등 해안가에서 발견되고 있으며 겉면에 진흙띠를 붙여서 무늬를 만든 토기이다. 빗살무늬토기는 한반도 중서부 지역을 중심으로 나타난 토기로 전국적으로 발굴지역이 전국적으로 고루 분포되어 있어 한반도를 대표하는 신석기시대 토기라 할 수 있다. 가장 잘 알려진 빗살무늬토기로는 길쭉한 포탄 모양에 기하학적 무늬로 장식한 서울 암사동에서 출토된 빗살 무늬 토기가 있으며, 지역적으로 약간씩 다른 형태와 무늬를 가지는 지역성으로 보인다.

토기의 등장
토기는 1만년 전 인간이 진흙을 구우면 단단해진다는 화학적 변화를 깨닫고 만든 최초의 발명품이다. 토기는 흙으로 빚은 그릇 그 이상의 이미를 지닌다. 끓이고 데치고 삶는 등 다양한 조리방법이 가능해져 먹을 수 있는 재료가 많아 지고 보관, 운반도 이전보다 손쉬워졌기 때문이다. 이처럼 식생활이 안정적으로 유지되면서 사람들은 한 곳에 비교적 오래 머물며 생활할 수 있게 되었다. <출처:중앙박물관>

OLYMPUS DIGITAL CAMERA토기는 인간이 흙과 불을 이용하여 만들어 낸 최초의 발명품이다. 토기 발명 이전에는 나무와 갈대, 가죽 등으로 그릇을 만들어 식량을 담거나 운반하는 데 이용하였다. 새로이 토기를 사용하게 되면서 음식물의 가공법이 발달하였고, 음식물의 종류도 많아졌다. 지금까지 우리나라 최초의 토기는 기원전 6,000년 무렵의 덧무늬 토기로 알려져 왔다. 덧무늬토기는 겉면에 진흙 띠를 붙여 무늬를 만든 것으로, 주로 동해안과 남해안의 여러 유적에서 출토되고 있다. 그러나 최근에 제주 고산리 유적에서 기원전 8,000년 무렵의 새로운 토기가 발굴됨에 따라 우리나라 신석기시대의 시작 연대가 앞당겨지게 되었다. <출처:중앙박물관>

OLYMPUS DIGITAL CAMERA 고산리식토기, 2.제주 강정동(2008년 발굴), 현재까지 한반도에서 발견된 신석기시대 가장 이른 시기의 토기로 바탕흙에 식물의 줄기 등 유기물질을 넣어 빚어 그 흔적이 무질서하게 남아 있다.

빗살무늬토기의 등장과 확산
빗살무늬토기는 기원전 4,500년 무렵부터 중서부 지역을 중심으로 나타난 새로운 형식의 토기로, 바닥이 뾰족한 포탄 모양이다. 토기 겉면은 점과 선으로 구성된 기하학적 무늬로 장식되어 있다. 초기의 빗살무늬토기는 겉면을 아가리, 몸통, 바닥으로 나누어 각기 다른 무늬로 장식하는 규칙성을 보인다. 빗살무늬토기는 기원전 3,500년 무렵 한반도 전 지역으로 빠르게 펴져 나갔다. 이전의 덧무늬토기와 달리 빗살무늬토기는 한반도 전 지역에서 출토되고 있어 우리나라 신석기 문화를 빗살무늬토기 문화라고 부르기도 한다. <출처:중앙박물관>

OLYMPUS DIGITAL CAMERA바리, 서울 암사동(1971~1975년 발굴), 서울 암사동에서 출토된 빗살무늬토기이다. 화려하면서도 세밀한 기하학적 문양으로 장식한 포탄모양의 토기이다. 우리나라 선사시대를 대표하는 유물로 각종 책자나 등장하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단지, 1.경북 김천 송죽리, 2.경남 진주 상촌리

빗살무늬토기의 지역성
빗살무늬토기는 그릇 생김새와 장식 무늬에 따라 크게 중서부지역.남부지역.동북지역.서북지역 등 네 개의 지역군으로 나눌 수 있다. 각 지역에서도 시간의 흐름에 따라 무늬의 종류와 장식 방법에 차이를 보인다. 빗살무늬토기는 기본적으로 지역성이 두드러지지만, 공통적으로 무늬가 점차 간략해지고 무늬의 면적이 줄어드는 경향을 보인다. 이러한 빗살무늬토기는 기원전 1,000년 무렵 청동기시대로 접어들면서 점차 새로운 형식의 민무늬토기로 대체되었다. <출처:중앙박물관>

동북지역
동북 지역의 빗살무늬토기는 바닥이 납작하고 아가리와 몸통에 무늬가 있다. 평행한 두 선을 나선형으로 돌려 구획하고 그 안을 점과 선으로 채워 넣은 번개무늬 토기는 이 지역 신석기시대 후기의 대표적인 토기이다. <출처:중앙박물관>

OLYMPUS DIGITAL CAMERA바리, 1,2,함북 청진 유판(1933년 지표조사)

OLYMPUS DIGITAL CAMERA바리, 3,5.함북 청진 유판(1933년 지표조사)

OLYMPUS DIGITAL CAMERA바리,6,8, 함북 청진 유판(1933년 지표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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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리, 7. 함북 청진 유판(1933년 지표조사),

OLYMPUS DIGITAL CAMERA바리, 4,9,함북 경성 원수대 (1933년 지표조사)

OLYMPUS DIGITAL CAMERA바리, 10,11. 함북 경성 원수대 (1933년 지표조사)

중서부 지역,
중서부지역의 빗살무늬토기는 길쭉한 포탄 모양으로, 시기에 따라 무늬구성이 다르다. 처음에는 아가리.몸통.바닥으로 나누어 각기 다른 무늬로 장식하였으나, 점차 무늬가 생략된다. <출처:중앙박물관>

OLYMPUS DIGITAL CAMERA바리, 12, 13, 서울 암사동(1971~1975년 발굴)

OLYMPUS DIGITAL CAMERA바리, 14. 전북 군산 비응도(1993~1994년 발굴), 16. 인천 삼목도(2003년 발굴)

OLYMPUS DIGITAL CAMERA바리, 17,18. 경기 안산 신길동(2006~2007년 발굴)

OLYMPUS DIGITAL CAMERA바리, 19.인천 운서동(2008년 발굴), 20. 충북 청원 쌍청리(1993년 발굴)

OLYMPUS DIGITAL CAMERA바리, 21.전북 진안 갈룡리(2000년 발굴), 22.전북 군산 가도(1993~1994년 발굴)

OLYMPUS DIGITAL CAMERA바리, 23,24,서울 암사동(1971~1975년 발굴),

OLYMPUS DIGITAL CAMERA바리, 26. 서울 암사동(1971~1975년 발굴), 25.평남 호남리(1979~1981년 발굴, 복제품)

중동부 지역
누른무늬토기는 기원전 4,000~3,000년 무렵에 사용한 토기로 아가리 주변에만 무늬새기개로 누르거나 벌려서 무늬를 넣은 것이다. 동북 지역에서 남해안 지역에 걸쳐 분포하며, 동남해안 지역은 둥근 바닥이, 강원도와 동북 지역은 납작 바닥이 많다. 덧무늬토기는 기원전 6,000~4,000년 무렵에 사용된 것으로 겉면에 진흙 띠를 엇붙여 무늬효과를 낸 것이다. 남해안의 여러 조개더미에서 빗살무늬토기층 아래에서 출토되고 있어 빗살무늬토기보다 이른 시기에 제작되었음을 알 수 있다. 덧무늬 토기는 강원도 고성, 양양 등 동해안과 전남 여수 등 남해안 지역에서 출토된 것으로 봐서는 해안가에서 어로생활을 하던 신석기인들이 주로 사용한 것으로 보인다. <출처:중앙박물관>

OLYMPUS DIGITAL CAMERA바리, 27. 강원 고성 문암리(2002년 발굴), 28.강원 춘천 교동(1962년 발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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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리, 29,33.강원 양양 오산리(1981~1983년 발굴),

OLYMPUS DIGITAL CAMERA바리, 30,31. 강원 고성 문암리(2002년 발굴),

OLYMPUS DIGITAL CAMERA바리, 32. 강원 양양 오산리(2006~2007년 발굴), 34.강원 양양 지경리(1995년 발굴)

실용과 예술, 토기
토기는 기본적으로 음식을 조리하고 담는 실생활도구였지만 신석기인의 예술작품이자 정신세계를 엿볼 수 있는 상징물이기도 하다. 한반도 신석기시대 토기 겉면에는 점토 띠를 붙이거나 새기는 등 다양한 방법으로 기하학적 무늬가 표현되어 있다. 둥근면을 따라 일정한 크기와 형태로 아름답게 배치한 모습은 신석기인의 뛰어난 미적감각과 공간 구성력을 보여준다. 또한 토기는 사람의 뼈를 추려 넣은 무덤으로도 사용되었다. <출처:중앙박물관>

남해안지역
남부지역의 빗살무늬토기는 바닥이 둘글며 새겨진 선이 굵다. 선의 시작과 끝에 홈이 깊게 남아 있는 것이 특징이다. 점차 아가리에만 무늬가 남게 되며, 무늬 없이 입술을 겹으로 만든 겹아가리토기도 나타난다. <출처:중앙박물관>

OLYMPUS DIGITAL CAMERA바리, 36.부산 영선동(1933년 지표조사), 38,부산 동삼동,

OLYMPUS DIGITAL CAMERA바리, 37.부산 가덕도(2010~2011년 발굴).

OLYMPUS DIGITAL CAMERA바리, 39.부산 동삼동(1999년 발굴), 41.울산 신암리(1974년 발굴),

OLYMPUS DIGITAL CAMERA 바리, 40,42.부산 동삼동,

OLYMPUS DIGITAL CAMERA 바리, 43.경남 김해 수가리(1978~1979년 발굴), 44.부산 동삼동(1970년 발굴),

OLYMPUS DIGITAL CAMERA45.전남 여수 송동(1989년 발굴)

OLYMPUS DIGITAL CAMERA바리, 47.부산 가덕도(2010~2011년 발굴), 48.경남 통영 연대도(1988~1991년 발굴)

OLYMPUS DIGITAL CAMERA바리, 49.부산 금곡동(1972~1973년 발굴), 50.울산 황성동(2009~2010년 발굴),

OLYMPUS DIGITAL CAMERA단지, 46.경남 김해 수가리(1978~1979년 발굴), 54.경남 통영 연대도(1988~1991년 발굴)

OLYMPUS DIGITAL CAMERA단지, 52,53.부산 가덕도(2010~2011년 발굴)

OLYMPUS DIGITAL CAMERA굽다리접시, 51.경남 사천 구평리(1967년 발굴)

남해내륙 지역

OLYMPUS DIGITAL CAMERA바리, 55.경북 김천 송죽리(1991~1993년 발굴), 56.경남 거창 입불리(1988년 발굴)

OLYMPUS DIGITAL CAMERA바리, 59,60.경북 김천 송죽리(1991~1993년 발굴),

OLYMPUS DIGITAL CAMERA바리, 57.경북 청도 오진리(1993년 발굴), 58.경남 진주 상촌리(1996~1998년 발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