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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남산 삼릉곡 제6사지 석조약사여래좌상

국립중앙박물관에 있는 석조 약사여래 좌상이다. 경주 남산 삼릉곡 6번째 절터에 있던 불상을 옮겨온 것이다. 석조약사여래좌상은 석가여래가 도를 깨닫는 순간을 표현한 항마촉지인을 하고 있는 약사여래의 모습을 하고 있다. 약사여래는 질병을 고쳐주는 부처로 둥근 약단지를 들고 있어 쉽게 구분할 수 있다. 광배에는 불상과 꽃무늬, 불꽃무늬로 화려하게 장식하고 있으며 대좌에는 향로와 공양천인상을 새겨놓고 있다. 신체의 표현이나 옷주름 등에서 통일신라 전성기 불상의 모습을 보이고 있으며, 화려한 광배 장식 등 9세기 불상의 특징도 같이 가지고 있다.

경주 남산 삼릉곡 제6사지 석조여래좌상 20220803_05<경주 남산 삼릉곡 제6사지 석조약사여래좌상>

경주 남산 삼릉곡 제6사지 석조여래좌상 20220803_06
<왼쪽에서 본 모습>

경주 남산 삼릉곡 제6사지 석조여래좌상 20220803_08
<오른쪽 옆에서 본 모습>

경주 남산 삼릉곡 제6사지 석조여래좌상 20220803_09
<왼쪽 옆에서 본 모습>

광배에 불상과 불꽃무늬, 꽃무늬 등으로 화려하게 장식하고 있다.

경주 남산 삼릉곡 제6사지 석조여래좌상 20220803_01<불상 모습>

불상을 올려 놓은 대좌는 아래, 위에 연쪽을 세워 놓았으며 가운데 받침돌은 팔각형을 하고 있다. 안상에는 공양자상과 화로 등을 새겨 놓은 것으로 보인다.

경주 남산 삼릉곡 제6사지 석조여래좌상 20220803_02<불상을 올려 놓은 연화대좌>

경주 남산 삼릉곡 제6사지 석조여래좌상 20220803_03<공양자상>

경주 남산 삼릉곡 제6사지 석조여래좌상 20220803_04<공양자상>

OLYMPUS DIGITAL CAMERA<불상이 있었던 남산 삼릉곡 정상 부근 제6사지 절터>

석조 약사불 좌상(石彫 藥師佛 坐像), 통일신라 9세기, 경주 남산 삼릉곡
이 불상은 원래 경주 남산 삼릉곡 정상 가까이에 있는 마애대불(磨崖大佛) 건너편에 있던 것을 옮겨온 것이다. 약사불은 질병을 고쳐주고 재난에서 구해주며 음식과 옷을 주는 부처로 왼손에는 약단지를 들고 있다. 통통한 얼굴, 건장한 신체, 얌전하게 흘러내린 계단식 옷주름 등에서 통일신라 절정기인 8세기 불상의 여운이 보인다. 그러나 엄숙한 얼굴표현, 고개를 앞으로 숙인 자세, 화려하고 장식적인 광배와 대좌 등은 9세기 불상의 특징이므로 800년을 전후한 시기에 만든 것으로 추정된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2022년)

<출처>

  1. 안내문, 중앙박물관, 2022년

 

경주 감산사 석조아미타여래입상(국보)

경상북도 경주시 외동읍 괘릉리 감산사 절터에 있었던 석조아미타여래입상(국보)이다. 통일신라 성덕왕 때(719년)에 김지성이 부모의 명복을 위해 조성한 불상이다. 신체의 비례는 인체에 비례와 비슷하며, 각 비례에서 주는 전체적인 조형미도 뛰어난 편이다. 얼굴의 세부 표현도 섬세하며 사실적이다. 광배 뒷면에 불상을 조성한 내력에 대해서 기록해 놓고 있다.

경주 감산사지 석조아미타여래입상(국보) 20220803_01
<감산사 석조 아미타불 입상(石彫 阿彌陀佛 立像), 통일신라 719년 무렵, 경주 감산사터 출토, 국보>

경주 감산사지 석조아미타여래입상(국보) 20220803_02
<왼쪽에서 본 모습>

아미타여래의 얼굴을 풍만하게 사실적으로 표현하고 있으며 눈.코.입 등 세부 표현 또한 세련된 조각수법을 보여주고 있다.

경주 감산사지 석조아미타여래입상(국보) 20220803_08<얼굴 부분>

연화대좌는 맨아래에 8각형을 기본으로 그 위에 연꽃이 피어나는 모습을 표현하고 있다.

경주 감산사지 석조아미타여래입상(국보) 20220803_09<연화대좌>

경주 감산사지 석조아미타여래입상(국보) 20220803_06<감산사 아미타여래(국보), 미륵보살(국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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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배 뒷편에 새겨진 글자 탁본>

아미타불에 새겨진 글
아버지 인장 일길찬이 47세에 돌아가시자 동해흔지(지금의 포항) 앞바다에 그의 유골을 뿌렸다. 후대에 그를 따르고 사랑하는 사람은 이 착함이 그들을 도울 것이다. 중아찬 김지전(김지성)은 살아 있을 때 이미 이 착한 업을 이루었으므로 성덕왕 19년 4월 22일 김지성이 돌아가자 그를 위해서도 이것을 만든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2022년)

감산사 미륵보살.아미타불,
두 불상은 경주의 감산사(甘山寺) 터에서 옮겨온 것으로 광배 뒷면에는 이 불상을 만든 사람, 만든 목적 등이 자세하게 새겨져 있다. 명문에 따르면, 이 불상들은 집사부시랑(執事部侍郞) 김지성이 부모의 은혜와 임금의 언덕에 보답하고자 성덕왕 18년(719)에 만들기 시작한 아미타불과 미륵보살이다. 불상을 만들던 도중 성덕왕 19년(720)에 김지성이 죽자 김지성의 명복을 비는 내용도 아미타불 광배 뒷면에 함께 새겨졌다. 미륵보살은 온화한 표정과 허리를 약간 비튼 자세를 보이며, 이미타불은 엄숙한 표정으로 곧게 선 자세를 하고 있다. 통일신라 8세기 전반 석조 조각의 수준을 잘 보여 주는 빼어난 작품이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2022년)

감산사(甘山寺)는 불국사와 신라 원성왕릉(괘릉)에서 멀지 않은 마을 뒷편에 남아 있는 옛 절터이다. 통일신라 성덕왕 때(719년)에 김지성이 부모의 명복을 위해 창건했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현재 절터에는 석조비로자불상을 모신 대적광전을 비롯하여 크고 작은 불전들이 들어서 있으며, 뒷편에 통일신라 때 조성된 삼층석탑과 주변 공터만이 옛절터임을 알 수 있게 해준다. 일제강점기 이곳에서 출토된 석조미륵보살입상(국보), 석조아미타여래입상(국보)은 현재 중앙박물관에서 소장.전시하고 있다. 불상에 적힌 기록 외 감산사 내력에 대해서는 전해지지 않는다.

OLYMPUS DIGITAL CAMERA<경주 감산사 절터>

<출처>

  1. 안내문, 중앙박물관, 2022년
  2. ‘국보 경주감산사 석조아미타여래입상’,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2023년

 

경주 감산사 석조미륵보살입상(국보)

경상북도 경주시 외동읍 괘릉리 감산사 절터에 있었던 석조미륵보살입상(국보)이다. 통일신라 성덕왕 때(719년)에 김지성이 부모의 명복을 위해 조성한 불상이다. 머리에 보관을 쓰고, 목에는 2줄의 화려한 목걸이가 새겨져 있는 등 화려한 장신구로 장식한 미륵보살의 형상을 잘 표현하고 있다. 신체의 비례는 인체의 비례와 비슷하게 사실적이며, 각 비례에서 주는 전체적인 조형미도 뛰어난 편이다. 광배 뒷면에 불상을 조성한 내력에 대해서 기록해 놓고 있다.

경주 감산사지 석조미륵보살입상(국보) 20220803_01
<감산사 석조 미륵보살 입상(甘山寺 石彫 彌勒菩薩 立像),  통일신라 719년 무렵, 경북 경주 감산사터 출토, 국보>

경주 감산사지 석조미륵보살입상(국보) 20220803_03
<왼쪽에서 본 모습>

보관을 비롯하여 화려한 장신구들을 섬세하게 표현하고 있다. 조각수법이나 표현이 섬세하며 상당히 뛰어나다. 광배(光背)는 불꽃무늬가 새겨진 배 모양이며, 3줄의 도드라진 선으로 머리광배와 몸광배를 구분하였다.

경주 감산사지 석조미륵보살입상(국보) 20220803_06<보관을 쓰고 있는 얼굴부분>

대좌(臺座)는 하나의 돌로 만들었다. 맨 아래가 8각이고, 그 위에는 연꽃무늬를 간략하고 큼직하게 새기고 있다.

경주 감산사지 석조미륵보살입상(국보) 20220803_07<연화대좌>

경주 감산사지 석조미륵보살입상(국보) 20220803_09<감산사 미륵보살입상(국보), 아미타여래입상(국보)>

감산사 미륵보살.아미타불,
두 불상은 경주의 감산사(甘山寺) 터에서 옮겨온 것으로 광배 뒷면에는 이 불상을 만든 사람, 만든 목적 등이 자세하게 새겨져 있다. 명문에 따르면, 이 불상들은 집사부시랑(執事部侍郞) 김지성이 부모의 은혜와 임금의 언덕에 보답하고자 성덕왕 18년(719)에 만들기 시작한 아미타불과 미륵보살이다. 불상을 만들던 도중 성덕왕 19년(720)에 김지성이 죽자 김지성의 명복을 비는 내용도 아미타불 광배 뒷면에 함께 새겨졌다. 미륵보살은 온화한 표정과 허리를 약간 비튼 자세를 보이며, 이미타불은 엄숙한 표정으로 곧게 선 자세를 하고 있다. 통일신라 8세기 전반 석조 조각의 수준을 잘 보여 주는 빼어난 작품이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2022년)

미륵보살에 새겨진 글
개원 7년 기미년(719년) 2월 15일 중아찬 김지성이 돌아가신 아버지 인장 일길찬과 돌아가신 어머니 관초리 부인을 위하여 감산사와 석조아미타상 1구와 석조미륵상 1구를 삼가 만듭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2022년)

감산사(甘山寺)는 불국사와 신라 원성왕릉(괘릉)에서 멀지 않은 마을 뒷편에 남아 있는 옛 절터이다. 통일신라 성덕왕 때(719년)에 김지성이 부모의 명복을 위해 창건했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현재 절터에는 석조비로자불상을 모신 대적광전을 비롯하여 크고 작은 불전들이 들어서 있으며, 뒷편에 통일신라 때 조성된 삼층석탑과 주변 공터만이 옛절터임을 알 수 있게 해준다. 일제강점기 이곳에서 출토된 석조미륵보살입상(국보), 석조아미타여래입상(국보)은 현재 중앙박물관에서 소장.전시하고 있다. 불상에 적힌 기록 외 감산사 내력에 대해서는 전해지지 않는다

OLYMPUS DIGITAL CAMERA<경주 감산사 절터>

<출처>

  1. 안내문, 중앙박물관, 2022년
  2. ‘국보 경주감산사 석조미륵보살입상’,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2023년

 

 

석조 비로자나불 좌상

중앙박물관에서 소장하고 있는 석조 비로자나불 좌상(石彫 毘盧遮那佛 坐像이다. 경북지역 절터에서 있었다고 전해지는 불상이다. 통일신라 말기인 9세기에 조성된 불상으로 지권인 손갖춤을 하고 있는 비로자나불을 형상화하고 있다. 사실적인 조각수법, 화려하고 생동감 넘치는 광배와 대좌 등 통일신라말 불상의 특징을 잘 보여주고 있다.

석조 비로자나불 좌상 중앙박물관 20220803_01
<비로자나불(石彫 毘盧遮那佛 坐像), 통일신라 9세기, 중앙박물관 소장>

석조 비로자나불 좌상 중앙박물관 20220803_02
<왼쪽에서 본 모습>

석조 비로자나불 좌상 중앙박물관 20220803_03
<오른쪽에서 본 모습>

석조 비로자나불 좌상 중앙박물관 20220803_04
<옆에서 본 모습>

한쪽손으로 반대편 손가락을감싸고 있는 지권인 손갖춤을 하고 있어 비로자나여래를 형상화 했음을 알 수 있다. 광배에는 비로나자여래에 뿜어 나오는 광채를 화려하게 표현하고 있다.

석조 비로자나불 좌상 중앙박물관 20220803_11<불상과 광배>

불상은 연화대좌 위에 올려져 있다. 대좌는 팔각형을 기본으로 하고 있는데 아래 받침돌 안상에는 불법을 수호하는 사자를, 가운데 받침돌에는 부처를 새겨놓고 있다. 팔각형인 것으로 볼 때 팔부중상을 새긴 것으로 보인다.

석조 비로자나불 좌상 중앙박물관 20220803_12<연화대좌>

석조 비로자나불 좌상 중앙박물관 20220803_19 <가운데 받침돌에 새겨진 불상>

석조 비로자나불 좌상 중앙박물관 20220803_21<가운데 받침돌에 새겨진 불상>

석조 비로자나불 좌상 중앙박물관 20220803_14<아래 받침돌에 새겨진 사자상>

석조 비로자나불 좌상 중앙박물관 20220803_16 <아래 받침돌에 새겨진 사자상>

석조 비로자나불 좌상 중앙박물관 20220803_17 <아래 받침돌에 새겨진 사자상>

석조 비로자나불 좌상 중앙박물관 20220803_13<아래 받침돌에 새겨진 꽃무늬상>

비로자나불은 온 누리에 가득 찬 진리의 빛을 형상화한 부처이다. 우리나라에서 비로자나불상은 8세기에 등장하여 9세기에 크게 유행하였는데, 중국이나 일본과 달리 보관을 쓰지 않은 부처의 모습으로 표현되는 것이 특징이다. 손갖춤으로는 한쪽 손으로 반대편 손가락을 감싸 쥔 지권인(智拳印)을 하고 있다. 이 비로자나불상은 얼굴이 동그랗고 표정이 현실적이며, 신체는 둔중하고 옷주름은 계단 모양으로 규칙적이다. 화려하고 생동감 넘치는 광배와 대좌는 통일신라 후반기 석불의 특징을 잘 보여준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2022년)

<출처>

  1. 안내문, 중앙박물관, 2022년

 

세종 비암사, 통일신라 불비상 3점이 있던 사찰

세종시 전의면 다방리에 있는 사찰인 비암사(碑岩寺)이다. 1960년 삼층석탑에서 발견된 계유명전씨아미타불비상(국보)에 계유년에 국왕 및 대신, 칠세부모를 위하여 절을 짓고 아미타상과 관음.대세지보살상을 비롯한 불비상을 조성했다고 적혀 있어 삼국통일 직후 백제유민들이 창건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통일신라 때 도선(道詵)이 중창했으며 그 이후에도 크게 번창하지는 않았지만 지역을 대표하는 사찰로 명맥을 유지해 왔던 것으로 보인다. 조선후기 지도인 <여지도>에도 비암사(碑岩寺)가 표시되어 있다. 발견된 3점의 불비상은 국립청주박물관에서 볼 수 있으며 경내에는 극락보전(보전), 삼층석탑, 등의 문화재가 남아 있다.

세종 비암사 20230406_01<세종 비암사>

비암사는 경사진 지형에 축대를 쌓아 마당을 조성한 후 건물들을 배치하였다. 삼층석탑과 극락보전이 일렬로 배치되어 요사채와 함께 주불전이 있는 영역을 구성하고 있었는데 최근에 서쪽편에 축대를 높게 쌓고 극락보전과 명부전을 배치하였다. 산 정상부 아래에 위치하고 있지만 비교적 마당이 넓은 편이다. 축대를 쌓은 사찰 입구에는 수령 1000년이 넘은 느티나무가 있어 사찰의 오랜 내력을 말해주고 있다.

세종 비암사<비암사 가람배치(위성사진)>

세종 비암사 20230406_02<비임사 오르는 길과 느티나무>

세종 비암사 삼층석탑 20230406_08<비암사 전경>

삼층석탑은 1층 기단 위에 3층 탑신을 올려놓은 고려시대 석탑이다. 몸돌 모서리에 기둥을 새긴 것 외에는 특별한 장식이 없는 등 정형화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이곳에 통일신라 때 백제유민을 위해 조성한 것으로 보이는 3점의 불비상이 발견되었다.

세종 비암사 삼층석탑 20230406_05<비암사 삼층석탑>

계유명전씨아미타불비상(국보)은 4각의 긴 돌 각면에 불상과 글씨를 새겨 놓고 이다. 정면에는 아미타삼존상을 조각했다. 본존물은 부처가 설법할 때 손모양을 강조하고 있어 삼국시대 전통을 따르고 있다. 협시보살상은 얼굴에 심하게 훼손되어 알아볼 수 없으나 머리에 둥근 광배가 남아 있다. 주위에 나한상, 인왕상, 작은부처, 비천상 등이 새겨져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계유명전씨아마타불비상(국보)>

옆면에는 악기를 연주하는 사람을 표현하고 있으며, 뒷면에는 앉아 있는 작은 부처의 모습을 조각했으며 불상 사이에 사람의 이름과 관직을 새겨 넣었다. 이 불비상을 조성하게 된 경위가 새겨져 있는데 계유년에 국왕 및 대신, 칠세부모를 위하여 절을 짓고 아미타상과 관음.대세지보살상을 비롯한 불비상을 조성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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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가 새겨진 옆면>

미륵보살반가사유비상(보물) 정면에 새긴 불상은 왼발을 내리고 오른발을 왼쪽 다리에 올린 반가상을 표현하고 있다. 머리에는 화려한 관을 쓰고 목걸이와 구슬장식을 하고 있는 보살상을 표현하고 있는데 뒷면에 보탑을 크게 새긴 것으로 볼 때 미륵보살을 형상화한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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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륵보살반가사유비상, 보물, 통일신라(7세기), 연기 비암사>

기축명아미타불비상(보물)은 앞면에 본존불인 아미타여래가 앉아 있고, 주변에 여러 자세의 불상들이 나열되어 있다. 본존불 좌우에는 보살상이 있고 나한상, 인왕상, 야차상 등이 새겨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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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축’이 새겨진 아마타불과 보살, 보물, 통일신라(689년), 연기 비암사>

극락보전(보물)은 조선후기 17세기에 지어진 불전으로  앞면 3칸, 옆면 2칸의 팔작지붕을 하고 있으며 다포계 공포를 사용하고 있다.  앞면 3칸, 옆면 3칸의 일반적인 불전 건물과는 달리 옆면 2칸을 하고 있어 임진왜란 이후 형식적으로 간략화된 모습을 잘 보여주고 있다. 내부에는 아미타여래를 모시고 있는데 옆면을 1칸 줄였기때문에 내부는 협소한 편이다. 앞면 창호는 문설주 기둥이 있는 조선중기 이전 건축 양식을 유지하고 있다. 지역을 대표하는 조선후기 불전 건물로 평가받고 있다.

세종 비암사 20230406_11 <세종 비암사 극락보전(보물)>

 세종 비암사 20230406_06<극락보전에서 본 마당>

세종 비암사 20230406_03<극락보전 앞 요사채>

대웅보전은 1996년에 새로 지어진 불전으로 주불전 역할을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대웅전옆에는 명부전이 있으며, 뒷편에는 산신각이, 앞마당에는 큰 요사채 건물이 자리잡고 있다. 극락보전이 있는 마당과 공간을 분리하지 않고 마당을 넓게 쓰고 있다.

세종 비암사 20230406_09<대웅보전이 있는 공간>

세종 비암사 20230406_05<대웅보전>

세종 비암사 20230406_10<명부전>

세종 비암사 20230406_07<대웅보전 앞 마당>

세종 비암사 20230406_08<요사채>

<출처>

  1. 안내문, 세종 비암사, 2023년
  2. “비암사”,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한국학중앙연구소, 2023년
  3. “비암사”, 디지털세종시문화대전, 세종시, 2023년
  4.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2023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