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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제 금산사 당간지주(보물 28호)

전북 김제시 금산면 금산사 입구에 세워져 있는 당간지주(보물 28호)이다. 높이 3.5 m의 지주가 남북으로 마주보고 있다. 기단은 단층이며, 기단 위 당간을 세우는 받침에는 기둥과 둥근 형태의 무늬를 새겨 놓고 있다. 지주의 안쪽에는 조각이 없는 반면 바깥쪽에는 세로띠를 돋을새김으로 장식해 놓고 있으며, 당간을 고정시키기 위한 구멍을 3곳 뚫었는데 통일신라 전성기 양식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라 한다. 기단부와 당간받침을 제대로 갖추고 있는 작품으로 장식은 거의 없지만 전체적으로 조각수법과 조형미가 뛰어나다. 통일신라 전성기 8세기 작품으로 추정되고 있다.

SANYO DIGITAL CAMERA금산사 입구에 세워져 있는 당간지주(보물 28호). 통일신라 전성기 때 조성된 것으로 조각수법이나 조형미가 뛰어나다.

SANYO DIGITAL CAMERA당간지주 기단과 받침. 기단은 1층이며 받침에는 기둥고 둥근 꽃무늬를 새겨놓고 있다.

SANYO DIGITAL CAMERA옆쪽에서 본 모습. 세로로 기둥모양을 돋을새김해 놓았다. 다른 당간지주에 비해 조각수법이 양호한 편이다.

SANYO DIGITAL CAMERA뒷편에서 본 모습

당간지주, 보물 28호
당간지주는 사찰을 상징하는 깃발이나 괘불을 세울 때 버팀목으로 사용하는 석조물이다. 이 지주는 높이가 3.5 m이며 양 지주가 남북으로 상대하여 있다. 기단석과 간대를 완벽하게 구비하고 있는 국내 유일의 당간지주이다. 양 지주의 각면에 장식된 조각기법이 현저하게 두드러지며 한국 당간지주 가운데 가장 완벽한 형식을 갖추고 있다. 석력대, 석종, 석탑, 석등은 통일신라시대에서 고려시대에 걸쳐 만들어진 유물들인데 이 당간지누는 통일신라시대 전성기인 8세기 후반에 건립된 것으로 보고 있다. (안내문, 김제 금산사, 2009년)

<출처>

  1. 안내문, 김제 금산사, 2009년
  2. 국가문화유산포탈, 문화재청, 2019년
  3.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소, 2019년

완도 청해진 유적(사적 308호), 해상왕 장보고가 근거지로 삼은 작은 섬

전남 완도군 완도읍 장좌리 앞바다 작은 섬인 장도에 있는 청해진 유적(사적 308호)이다. 중국와 일본을 잇는 한반도 서남해안 연안항로의 주요 거점으로 통일신라 때 장보고가 해상무역을 장악하기 청해진을 설치한 곳이다. 지금도 이곳에서는 장보고를 기리는 제사(완도 장좌리 당제 및 당굿)를 올리고 있다.

장도는 육지에서 멀지 않은 작은 섬이다. 발굴.조사 결과 판축식 토성을 쌓았으며 둘레는 약 890 m이다. 서남쪽에 출입문인 외성문과 우물이 있으며, 안쪽에 내성이 있다. 섬과 육지사이는 수심이 얕아 걸어서 왕래할 수 있으며 방어력을 보완하기 위해 섬주위에 목책을 쌓았다. 동쪽 정상부에 올라서면 남쪽 신지도와 완도읍 사이, 동쪽 신지도와 고금도 사이 바다와 북쪽 강진만이 한눈에 들어온다.

OLYMPUS DIGITAL CAMERA통일신라 말 장보고가 근거지로 삼았던 청해진 유적지(사적 308호). 장도라 불리는 작은 섬으로 육지와 붙어 있어 썰물 때 걸어서 들어갈 수 있는 곳이다.

OLYMPUS DIGITAL CAMERA청해진 유적지와 육지를 연결해 놓은 다리. 섬과 육지 사이의 좁은 수로가 해자 역할을 하고 있으며, 섬 바깥에 목책을 설치하였다.

OLYMPUS DIGITAL CAMERA외성문. 청해진 성의 입구에 위치하고 있다. 외성문은 성의 내외를 연결하는 통로로 유사시 적의 공격을 저지하고, 적을 역습하거나 격퇴하는 통로이다.

OLYMPUS DIGITAL CAMERA‘ㄷ’자형 판축유구와 우물. 외성문 앞에는 식수를 공급하기 위한 우물이 있었고 그 주위 판축으로 성벽을 쌓아 우물을 보호하고 있다. 성벽은 외성문과 우물을 보호하기 위한 옹성 역할을 하고 있는데 청해진에서만 볼 수 있는 독특한 시설이다.

청해진 성의 입구에 위치하고 있다. ‘ㄷ’자형 판축유구는 해안 구조물로서 국내는 물론 중국이나 일본에서도 그 유례가 없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ㄷ’자형 판축유구는 우물을 보호하고, 외성문을 보완하는 기능을 하고 있다. 우물은 잔존깊이 5.8 m이며, 이곳에서는 주름무늬 병과 철제편 등 다량의 유물이 출토되었다. (안내문, 완도군청, 2018년)

OLYMPUS DIGITAL CAMERA외성에서 남쪽으로 이어지는 성벽. 성벽은 흙을 쌓아 만든 판축 토성이다. 전체 성벽의 둘레는 890 m 정도이다.

OLYMPUS DIGITAL CAMERA성벽을 쌓은 판축.

청해진이 성벽은 판축법으로 만들어졌다. 판축이란 흙으로 기초 및 성벽을 쌓는 방법 중 하나로 돌을 판판하게 깔고 그 위에 흙을 고르며 다져가는 공법을 말한다. 청해진 성은 자연지형을 그대로 이용하여 능선을 따라 축조하였으며, 성의 규모는 둘레 길이가 890 m이다. 성벽은 좌우 내.외측에 기단석렬을 깔고 기단석렬을 맞물린 상태에서 그 안쪽으로 흙을 시루떡처럼 다져 쌓은 판축토성이다. (안내문, 완도군청, 2018년)

OLYMPUS DIGITAL CAMERA외성문 안쪽 중턱에 위치한 내성문. 청해진은 외성문과 내성문을 두어 방어력을 보완하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내성 성벽과 내성문.

OLYMPUS DIGITAL CAMERA성의 남쪽 높은 지점에 위치한 고대(高臺). 바깥쪽 바다에서 들어오는 선박을 감시하기에 좋은 곳에 위치하고있다.

동서로 이어지는 청해진 남쪽, 성벽의 높은 중간 지점에 위치하고 있다. 청해진 성의 고대는 동쪽, 북쪽, 남쪽 3곳에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이곳은 일본과 중국 등 외국에서 내륙으로 통하는 길목으로 연안의 상선과 해적을 감시하기 유리한 곳이다. (안내문, 완도군청, 2018년)

OLYMPUS DIGITAL CAMERA고대를 지나 동남 치로 이어지는 성벽. 비교적 평탄한 지형을 이루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동남쪽 모서리에 위치하고 있는 동남 치(雉). 남쪽 바다와 완도읍 일원을 조망하고 있으며, 바깥쪽 바다에서 안쪽으로 들어오는 배를 살피는 기능을 하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동남 치에서 내려다 보이는 남쪽바다. 멀리 완도읍과 신지도를 연결하는 신지대교가 보인다.

OLYMPUS DIGITAL CAMERA동쪽으로는 신지도와 고금도를 연결하는 장보고대교가 보인다. 강진만으로 들어노는 선박들을 한눈에 감시할 수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동쪽으로 이어지는 성벽

OLYMPUS DIGITAL CAMERA성벽 아래로 보이는 바다. 고금도와 육지 사이에 있는 내해로 비교적 넓은 편이다.

OLYMPUS DIGITAL CAMERA동쪽 섬 정상부는 평탄한 지역을 이루고 있다. 이곳에는 장보고 등을 모시는 사당이 있다. 이곳에서는 매년 음력 정월 대보름 아침 동이 틀 무렵 이곳에서 당제(완도 장좌리 당제 및 당굿)를 지낸다. 모시는 신격으로는 장보고, 송징, 정년, 혜일대사 등 네 분이다.

OLYMPUS DIGITAL CAMERA사당 남쪽편에 있는 건물터.

OLYMPUS DIGITAL CAMERA사당 북쪽편에 있는 건물터. 굴립주(堀立住)라고 부르며 사당 북쪽과 남쪽에 위치하고 있다. 굴립주는 기초를 놓지 않고 땅에 기둥을 박아 세운 건물이며, 주변 해역과 완도 본 섬을 조망할 수 있었던 시설이다.

OLYMPUS DIGITAL CAMERA사당 앞 성벽

OLYMPUS DIGITAL CAMERA청해진 북쪽에 위치한 북치(雉). 인근 강진, 해남쪽에서 들어오는 배들을 감시하고 주변을 조망하는 기능을 하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북치에서 내려다 보이는 강진만 바다.

OLYMPUS DIGITAL CAMERA북쪽을 따라 이어지는 성벽

OLYMPUS DIGITAL CAMERA성의 북서쪽 모서리에 위치한 서북치.

OLYMPUS DIGITAL CAMERA서북치에서 남쪽으로 이어지는 성벽.

OLYMPUS DIGITAL CAMERA서쪽 성벽에서 올려다 보이는 내성문과 고대.

OLYMPUS DIGITAL CAMERA섬의 서쪽 수로를 감시하기 위해 세워진 서치.

OLYMPUS DIGITAL CAMERA서쪽 성벽.

OLYMPUS DIGITAL CAMERA성벽 아래 해안에는 목책을 쌓아 방어를 보완하였다.

완도 청해진 유적, 사적 308호, 전남 완도군 완도읍 장좌리
신리 흥덕왕 3년(828) 장보고는 서남해안의 중심지 완도에 청해진을 설치하고 해적을 소탕하였다. 이후 ‘바다를 지배하는 자가 세계를 제패한다’는 신념으로 청해진 본영을 중심으로 한민족의 기상을 떨치며 해양을 개척하였다. 장보고는 한국과 중국, 일본을 연결하는 장대한 해상항로를 개척하였으며, 청해진을 본거지로 중국과 일본을 잇는 중계무역을 실시하고, 이슬람 세계와도 교역한 아시아 최초의 민간 기업인이자 세계적 무역왕이 되었다. (안내문, 완도군청, 2018년)

주요 발굴성과 (1991 ~1998년)

  •  판축기법으로 이루어진 890 m에 달하는 성벽과 내부 건물지, 굴립주 건물지, 매납유구 등을 확인하였으며, 331 m에 달하는 해안 원목렬의 분포 범위 확인과 함께 총 3만여 점이 넘는 많은 유물을 발굴하여 장도가 청해진의 주요 근거지였음을 밝혀내는 성과를 거두었다.
  •  매납유구는 직경 1 m, 깊이 150 cm 정도의 원형 구덩이 안에 인위적으로 유물을 매납한 제사와 관련된 유구이다. 수혈 중앙의 가장 바닥에 회청색 경질 대옹을 바로 안치하고, 대옹과 수혈벽 사이에 토기편병 2점.철제 솥 2점.한 개체를 반으로 절단하여 각각 나누어 묻은 철제반 1점.청동병 1점.철제 자물쇠 등의 철기류를 매납하였다. 이들 유구와 유물은 청해진 조음도에서 중사(中祀)를 거행했다는 「삼국사기 권32잡지 1 제사조」의 기록과 견주어 검토해 보아야 할 자료이다. 또한 국가 제사인 중사가 지내졌던 장도 유적은 청해진 내에서도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었음을 추정할 수 있다.

주요 발굴 성과 (2, 3차 발굴: 1999 ~ 2001년)

  • 7차 발굴조사에서는 장보고의 해상활동과 관련된 해안 출입 겸 접안시설로 ‘ㄷ’자형 석축석렬 유구와 우물 등 중요 유구들을 발굴하여 청해진의 본영이 바로 이 장도에 있었음을 보여주는 결정적인 자료를 확보하게 되었다.
  • 8차 발굴조사에서는 섬 입구 해안지대에서 노출 된 ‘ㄷ’자형 석축석렬 유구와 우물의 구조에 대한 조사를 마무리 지어 그 구조를 파악하였으며, 그 앞의 바다 해저 면에서 기존에 이미 알려져 있던 원목렬과 나란히 또 하나의 목책렬이 지나가고 있음을 새로이 확인하였다. 그 외에도 성벽에 나 있는 배수구를 처음으로 발굴조사하였고, 청해진의 판축토성 성벽이 내외측 모두 2중 기단 석렬을 깔고 조성한 것도 함께 밝혀냈다. ‘ㄷ’자형 석축석렬 유구는 21 x 22 m 정도의 규모로서 내외측에 기단 석렬을 깔거나 석심을 쌓고, 그 사이에 판축다짐을 하여 만든 해안 구조물로서 국내는 물론 중국이나 일본에서도 그 유례가 없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우물은 깊이 6 m로 바닥에는 통나무를 ‘井’자형으로 깔아 기초를 잡고 그 위에 석축을 쌓아 만들었는데 위가 좁고 (직경 150 cm 내외) 중간이 약간 넓어지다가 (직경 180 cm 내외) 바닥은 다시 좁아지는 모양이다. 우물의 바닥에는 자갈을 약 50 cm 두꼐로 깔아 물을 정화할 수 있게 하였음이 확인되었다. 이 우물 바닥에서는 사면편병, 주름무늬 병 등의 토기류와 재갈편, 철제자귀, 금제고리 등의 금속제 유물과 어망추, 가락바퀴, 숫돌 등의 유물이 다수 출토되었다. 특히 이곳에서 출토된 편병류는 구연부만 파손된 채 4점이 나란히 깔려 있어 우물을 축조할 때에 의도적으로 매납한 것이 분명하다고 보여 지며, 이는 우물의 축조 및 사용 시기가 청해진 성의 축성 및 운영시기와 동일하였음을 증명한다. 또한 깊이 6 m의 이 우물은 청해진 뿐만 아니라 항해하는 장보고 선단의 주요 식수원 역할을 하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장도 서쪽 저지대에서는 성벽의 사이에 좌우 양쪽으로 석축을 하여 막음을 하고, 바닥에는 판석을 깔고 그 사이에는 잡석을 채워 물이 스며들게 하는 암거식 배수구가 조사되었는데 입구가 깔대기 모양으로 되어 있어 물이 잘 모여들게 하였다. 이러한 구조는 판축토성의 배수방법과 관련된 대단히 중요한 자료로 평가된다.

주요 발굴 결과

  • 완도 청해진 유적에서 발굴조사 된 수 많은 유구와 유물들을 장보고의 해상 활동의 근거지로서의 청해진의 실체를 규명하는 기초 자료가 될 것이며, 특히 절대연대가 9세기 전반인 많은 유물들은 앞으로 통일신라시대이 ‘표지유물’로서의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된다. (안내문, 완도군청, 2018년)

<출처>

  1. 안내문, 완도군청, 2018년
  2. 국가문화유산포탈, 문화재청, 2018년

광양 중흥산성 쌍사자 석등 (국보 103호), 사실적 표현이 돋보이는 걸작

국립광주박물관 중앙 로비에 전시중인 광양 중흥산성 쌍사자석등(국보 103호)이다. 간결하면서도 사실적인 표현이 돋보이는 걸작으로 통일신라 후기에 유행했던 쌍사자 석등을 대표하는 걸작이다. 원래 광양시 옥룡면 중흥산성 절터에 있었는데 일제강점기에 일본인 반출하려던 것을 회수하여 경복궁 내에 옮겼다가 이후 현재의 위치로 옮겨졌다.

쌍사자 석등은 2마리의 사자가 석등을 받치고 있는 형태로 통일신라의 독창적인 양식이다. 동시대를 대표하는 작품으로 보은 법주사 쌍사자 석등(국보 5호), 합천 영암사지 쌍사자 석등(353호)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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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양 중흥산성 쌍사자석등(국보 103호). 2마리의 사자가 불을 밝히는 화사석을 받치고 있는 석등이다. 통일신라 후기에 유행했던 쌍사자 석등을 대표하는 걸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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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마리의 사자가 가슴을 맞대고 석등을 받치고 있는 형태로 사실적 표현과 조각수법이 돋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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뒷편에서 본 사자 석상. 사실적이며 힘이 넘치는 모습을 표현하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연꽃무늬가 새겨진 평이한 모습의 아래받침돌.

OLYMPUS DIGITAL CAMERA불을 밝히는 화사석은 팔각형으로 4곳에 창을 두고 있다. 특별한 장식이 없으나 간결하면서도 세련된 조형미를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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옆쪽에서 본 모습.

쌍사자 석등, 국보 103호, 통일신라 9세기 후분, 전남 광양시 옥룡면 중흥산성 절터
석등은 부처의 자비심을 상징하는 빛을 밝히기 위해 불을 켜는 곳이다. 받침은 두 마리의 사자가 늠름하게 가슴을 맞대고 있는 모습이며, 화사석을 받치고 있다. 사자는 갈기가 달린 숫사자로 입과 갈기, 꼬리가 서로 다르게 표현되어 있다. 불을 켜는 곳에는 창을 댄 못 구멍이 남아 있고, 지붕돌에는 연꽃모양 장식을 얹었다. 이 석등은 통일신라 후기에 유행한 양식이다. (안내문, 광주박물관, 2018년)

<출처>

  1. 안내문, 광주박물관, 2018년
  2. 국가문화유산포탈, 문화재청, 2018년
  3. 한국의 석등, 박경식, 학연문화사, 2013년

영주 부석사 석조석가여래좌상(보물 1636호)

경북 영주시 부석면 북지리 부석사에 있는 석조석가여래좌상(보물 1636호)이다. 부석사 부근 절터에 있던 것을 옮겨 온 불상이다. 항마촉지인의 수인을 하고 있는 석가여래를 표현한 불상이다. 팔각형의 대좌위에 올려져 있는데 대좌에는 향로와 7사자, 보살상 등이 조각되어 있다. 장식적인 경향을 보이는 통일신라 9세기 불상 양식을 잘 보여주고 있다.

SANYO DIGITAL CAMERA영주 부석사 석조석가여래좌상(보물 1636호)

SANYO DIGITAL CAMERA불상이 모셔진 자인당. 인근 절터에서 옮겨온 비로자나여래를 표현한 2기의 불상과 함께 모셔져 있다.
<출처>

  1. 안내문, 영주 부석사, 2017년
  2. 국가문화유산포탈, 문화재청, 2018년
  3.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소, 2018년

영주 북지리 석조여래좌상(보물 220호), 9세기 후반 비로자나여래 불상을 대표하는 작품

경북 영주시 부석면 북지리 부석사에 있는 석조여래좌상(보물 220호)이다. 부석사 부근 절터에 있던 것을 옮겨 온 2기의 불상이다. 왼손 검지를 오른손을 감싸진 지권인을 하고 있는 전형적인 비로자나여래를 표현한 불상이다. 팔각형의 대좌위에 올려져 있는데, 각 면에 보살상이 조각되어 있다. 불상 뒷편 광배에도 다양한 형태의 불상들이 조각되어 있다. 통일신라 9세기 후반에 유행했던 비로자나여래를 표현한 대표적인 불상으로 평가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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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주 북지리 석조여래좌상 중 동쪽에 있는 불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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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쪽에 있는 불상. 광배에 삼존불상을 비롯하여 다양한 불상들이 표현되어 있으며, 석조 대좌에도 보살상이 표현되어 있다.

SANYO DIGITAL CAMERA불상이 모셔진 자인당. 조사당을 지나 숲길을 조금 걸어가면 볼 수 있다. 원래 승려들이 기거하는 선방이었으나 지금은 석조여래좌상을 모시고 불전으로 바뀌었다.

영주 북지리 석조여래좌상, 보물 220호,
이 두 불상은 원래 부석사 동쪽 폐사지에 있었던 것을 부석사 자인당으로 옮겨 놓은 3좌의 석불좌상 중 양편에 모셔진 두 불상이다. 동편의 불상은 나선형 머리에 상투 모양의 형태가 불분명한데, 얼굴은 둥근 편으로 단정한 인상이다. 눈은 뚜렷하지 않지만 약간의 미소 흔적은 남아 있다. 어깨가 나무 뒤로 젖혀지고, 가슴과 배가 편평하게 표현되었으며, 신체의 볼륨은 없는 편이다. 두 손은 없어졌던 것을 보수하여 놓았다. 서쪽의 불상은 동쪽 불상과 비슷하지만 신체가 좀 더 풍만하여 부드러운 편이다. 9세기 후반기에 유행하던 비로자나불상으로서, 당시 불교사상의 특징과 불상 양식을 알려주는 대표적인 작품으로 높이 평가되고 있다. (안내문, 영주 부석사, 2013년)

<출처>

  1. 안내문, 영주 부석사, 2017년
  2. 국가문화유산포탈, 문화재청, 2018년
  3.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소, 2018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