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g Archives: 통일신라

청도 장연사지 동.서삼층석탑(보물 677호)

경북 청도군 매전면 장연리 장연사지 절터에 남아 있는 동.서삼층석탑(보물 677호)이다. 전형적인 통일신라 삼층석탑으로 2층 기단위에 삼층 탑신을 올려놓고 있다. 기단과 탑신 모서리에 기둥모양을 새겨둔 것 외에는 특별한 장식은 없다. 전체적인 조형미나 세부조각수법은 양호한 편으로 높이 4,8 m 정도 높지 않은 편으로 정형화된 모습을 보이고 있어 9세기 통일신라 때 조성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서탑은 무너져 있던 것을 1979년 원래 자리로 복원해 놓았는데 기단부는 새로 석재를 보충하였다. 동탑은 해체.보수하는 과정에서 1층 몸돌에서 사리장치가 발견되었다.

석탑이 있는 장연사지 절터는 운문사에서 육로로 15 km 정도 떨어진 곳에 위치하고 있으며, 낙동강 지류인 동창천에서 가까운 계곡 입구에 위치하고 있다. 동창천을 따라 형성된 밀양과 경주를 연결하는 교통로에 있으며, 주위에 농토는 적지 않은 편이다. 2개의 탑을 세웠을 정도로 비교적 큰 규모의 사찰이었던 것으로 보이는데 주요 교통로에 있던 사찰과 마찬가지로 조선시대 이후에 폐사된 것으로 보인다.

청도 장연사지 동서삼층석탑 보물677호 01-20200106청도 장연사지 절터에 남아 있는 동.서삼층석탑. 통일신라 주요 사찰에서 볼 수 있는 전형적인 쌍탑식 가람배치를 보여주고 있다. 경주 감은사지와 비슷한 입지조건을 갖추고 있다.

청도 장연사지 동서삼층석탑 보물677호 07-20200106뒷쪽에서 본 동.서삼층석탑. 장연사지 절터는 들판이 내려다 보일 정도 높이에 절터가 자리잡고 있다. 동창천과 주위의 넓은 들판이 한눈에 내려다 보인다. 동해와 주변 들판이 내려다 보이는 경주 감은사지와 비슷한 입지조건을 갖추고 있다.

청도 장연사지 동서삼층석탑 보물677호11-20200106두개의 탑 중 원래의 모습을 유지하고 있었던 동탑. 높이 4.6 m 로 2층 기단 위에 3층탑신을 올려 놓은 전형적인 통일신라 삼층석탑이다. 동탑 몸돌에서 사리장치가 발견되었다.

청도 장연사지 동서삼층석탑 보물677호 05-20200106동탑 기단부. 몸돌 모서리에 가운데에 기둥을 새겨 놓고 있다.

청도 장연사지 동서삼층석탑 보물677호 06-202001063층 탑신. 몸돌 모서리에 기둥모양을 새겨 놓고 있다. 지붕돌은 처마밑이 수평이고 네귀퉁이를 살짝 치켜 올렸는데, 평이하면서 단순한 느낌을 준다. 머리장식은 남아 있지 않았는데 서탑 머리장식을 모방해 다시 만들어 올렸다.

청도 장연사지 동서삼층석탑 보물677호 08-20200106옆에서 본 모습.

청도 장연사지 동서삼층석탑 보물677호 02-20200106서탑은 동탑과 같은 형태를 하고 있다. 무너져 인근 개천가에 버려져 있는 것을 복구해 놓은 것으로 기단 1층은 새로 보충한 석재로 복원하였다.

청도 장연사지 동서삼층석탑 보물677호 03-20200106원래의 위치에 남아 있던 동탑.

청도 장연사지 삼층석탑, 보물 677호
이 탑은 통일신라시대의 3층 석탑으로 높이는 동탑 4.6 m, 서탑 4.84 m이다. 서탑은 일찍이 무너져서 개천가에 버려져 있었으나 1980년 2월 동탑 옆에 복원되었다. 몸돌과 지붕돌에 크고 작은 손상이 있으며 하층기단은 대부분이 보충한 석재로 이루어졌다. 동탑에서는 1984년 해체.보수 공사 때 몸돌 일단 내부에서 특이한 목재 사리합과 그 안에 장치했던 푸른색 사리병이 발견되어 현재 국립중앙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다. 쌍탑 기단부는 이중기단이며 각 면에 모서리 기둥 두 깨씩을 본떠 새겼을 뿐, 다른 장식은 없는 신라시대의 전형적인 석탑으로 9세기에 건립된 것으로 추정된다. (안내문, 청도군청, 2020년)

<출처>

  1. 안내문, 청도군청, 2020년
  2. 국가문화유산포탈, 문화재청, 2020년
  3.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소, 2020년

청도 박곡리 석조여래좌상(보물 203호), 통일신라 전성기 불상

경북 청도군 금천면 박곡리에 있는 석조여래좌상(보물 203호)이다. 운문사와 함께 서쪽 대비갑사로 창건된 사찰인 대비사로 들어가는 계곡 입구 마을에 모셔져 있다. 화재 등으로 광배와 대좌, 불상 등이 큰 손상을 입어 얼굴은 그 형체를 알아볼 수 없다. 신체는 가슴은 당당하지만 허리는 잘록하고 표현되어 있다. 옷은 몸에 밀착되어 있으며 옷주름도 간략하게 표현되어 있다. 전체적인 양감이 풍부하면서 세려되게 표현되어 있으며 세부적인 조각수법은 뛰어난 편이다. 석굴암 본존불의 양식을 따르고 있는 통일신라 전성기 불상으로 추정된다.

청도 박곡리석조석가여래좌상 보물203호05-20200106
청도 박곡리 석조석가여래좌상(보물 203호). 석굴암 본존불 양식을 따르고 있는 통일신라 전성기 불상이다. 대좌는 팔각형을 기본으로 상.중.하대로 구성되어 있으며, 연꽃무늬를 새겨놓고 있다.

청도 박곡리석조석가여래좌상 보물203호01-20200106얼굴 형체를 알 수 없으며 훼손된 부분이 많지만 전체적인 신체비례나 세부적인 표현이 뛰어난 작품이다.

청도 박곡리석조석가여래좌상 보물203호03-20200106불상은 대비사 계곡 입구 마을에 건물을 세워 그 안에 모셔져 있다. 그 앞에는 삼층석탑이 놓여 있어 작은 사찰같은 분위기를 주고 있다.

청도 박곡리석조석가여래좌상 보물203호04-20200106마당 한쪽편에 있는 석재. 화재로 크게 훼손된 광배처럼 보인다.

청도 박곡동 석조석가여래좌상, 보물 203호, 경북 청도군 금천면 박곡리
이 불상은 높이 276 cm의 석조 석가여래좌상으로 대비사 골짜기 입구의 보호각 속에 모셔져 있다. 몇차례의 화재와 인위적인 파손을 당해 원래의 모습을 잃었으나 지금의 모습으로도 예술적 안목과 세련된 솜씨를 느낄 수있다. 얼굴의 구체적인 모습은 알 수 없으나 이 불상은 풍만하면서도 박력있는 모습, 힘찬 어깨와 당당한 가슴, 몸에 밀착된 법의 등에서 강건하면서도 긴장감 넘치는 통일신라시대의 조각수법을 볼 수 있다. 대좌는 상.중.하대로 구분된 8각 연꽃모양으로 당대의 불상의 특징을 잘 나타내고 있다. 이 불상은 석굴암 불상과 그 양식이 비슷한 통일신라 전성기의 불상으로 높이 평가되고 있다. (안내문, 청도군청, 2020년)

<출처>

  1. 안내문, 청도군청, 2020년
  2. 국가문화유산포탈, 문화재청, 2020년
  3.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소, 2020년

청도 운문사 석조사천왕상(보물 318호)

경북 청도군 운문면 신원리 운문사에 있는 석조사천왕상(보물 318호)이다. 원래 운문사 경내에 있던 전탑 탑신에 있던 것으로 현재는 그 자리에 세워진 작압전에 석조여래좌상(보물 317호)와 함께 모셔져 있다. 갑옷을 입고 무기를 들고 있으며 악귀를 밟고 있는 전통적인 사천왕상과 같은 모습을 하고 있다. 돌기둥에 돋을새김으로 사천왕상을 새겨 놓았는데 입체적인 양감이 잘 드러나지 않으며 부드러운 얼굴을 하고 있다. 외형이나 세부 조각수법 등이 형식화된 점 등으로 볼 때 통일신라말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사천왕상이 모셔진 작압전은 운문사의 전신 대작갑사의 유래를 보여주는 건물이다. 신라말 작탑이라는 전탑이 있었으나 임진왜란 때 소실된 후 현재와 같은 불전으로 바뀌었다. 경주 분황사 모전석탑의 형태를 보면 옛 모습을 유추해 볼 수 있다.

청도 운문사 석조사천왕상 보물318호 01-20200106
운문사 석조사천왕상(보물 318호) 중 남방 증장천왕상과 서방 광목천왕상. 석굴암 등에 있는 이전 시기의 사천왕상에 비해 부드러운 얼굴을 하고 있다.

청도 운문사 석조사천왕상 보물318호 04-20200106상반신 부분

청도 운문사 석조사천왕상 보물318호 02-20200106

북방 다문천왕상과 동방 지국천왕상

청도 운문사 석조사천왕상 보물318호 03-20200106상반신 부분.

청도 운문사 석조사천왕상 보물318호 05-20200106사천왕상과 석조여래좌상이 모셔진 작압전. 원래 전탑이 있던 자리에 세워진 작은 불전이다.

OLYMPUS DIGITAL CAMERA가장 오래된 전탑형식을 보여주는 분황사 모전석탑. 감실 입구를 지키고 있는 인왕상과 같은 역할을 했던 것으로 보인다.

운문사 사천왕 석주, 보물 318호
이 사천왕 돌기둥은 현재 작압전에 모셔진 서조여래좌상 좌우에 배치되어 있으나 원래는 이 곳에 세워진 탑신 4면이나 안의 벽면에 모셔졌던 것으로 여겨진다. 삼고저를 든 증장천왕, 탑을 든 다문천왕, 불꽃을 든 광목천왕, 칼을 든 지국천왕 등은 천의 자락이 휘날리는 갑옷을 입고 악귀를 밟고 선 자세이다. 4개의 사천왕상 돌기둥은 신체는 장대하지만 양감이 줄어든 갸날픈 체구, 부드러운 인상, 갑옷의 굵은 띠주름 등으로 미루어 보아 형식미가 진전되었던 신라말 후삼국 시대인 900년 경을 전후한 시기의 작품으로 추정된다. (안내문, 청도 운문사, 2020년)

<출처>

  1. 안내문, 청도 운문사, 2020년
  2. 국가문화유산포탈, 문화재청, 2020년
  3.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소, 2020년

청도 운문사 동.서 삼층석탑(보물 678호)

경북 청도군 운문면 신원리 운무사 경내에 있는 동.서 삼층석탑(보물 678호)이다. 사찰 중심영역인 비로전 앞에 세워져 있는 쌍탑형식 통일신라 삼층석탑이다. 탑은 2층 기단 위에 3층 탑신을 올려 놓고 있다. 기단부 2층 몸돌에는 8부 중상을 새겨 놓고 있는데 앉아 있는 모습이 특이하다. 탑신은 몸돌 모서리에 기둥을 새긴 것 외 특별한 장식이 없다. 꼭대기 머리장식 일부 남아 있는데 원래 있던 것이다. 석탑이 정형화된 모습을 보여주는 통일신라  9세기경에 세워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전체적인 비례나 조각수법 등은 양호한 편이다.

청도 운문사 동서삼층석탑 보물678호 01-20200106청도 운문사 동.서 삼층석탑(보물 678호). 감은사지 등에서 볼 수 있는 쌍탑 형식을 가람배치를 보여주고 있다.

청도 운문사 동서삼층석탑 보물678호 04-20200106동탑. 2층 기단 위에 3층 탑신을 올려 놓은 정형화된 통일신라 삼층석탑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전체적인 비례나 세부 조각수법 등은 양호한 편이다.

청도 운문사 동서삼층석탑 보물678호 05-20200106기단은 2층으로 되어 있으며, 2층 기단에는 팔부중상이 앉아 있는 모습을 새겨 놓고 있다. 일제강점기에 무너져 가던 기단을 수리하였는데 일부 석재를 보충하였다. ㅇ

청도 운문사 동서삼층석탑 보물678호 09-20200106동쪽편 팔부중상

청도 운문사 동서삼층석탑 보물678호 08-20200106북쪽편 팔부중상

청도 운문사 동서삼층석탑 보물678호 07-20200106서쪽편 팔부중상

청도 운문사 동서삼층석탑 보물678호 06-20200106탑신은 특별한 장식이 없으며 지붕돌 처마를 살짝 들어올려 경쾌한 느낌을 준다.

청도 운문사 동서삼층석탑 보물678호 11-20200106서탑. 동탑과 거의 비슷한 모습을 하고 있다.

청도 운문사 동서삼층석탑 보물678호 12-20200106기단부.

청도 운문사 동서삼층석탑 보물678호 16-20200106동쪽편 팔부중상

청도 운문사 동서삼층석탑 보물678호 15-20200106북쪽편 팔부중상

청도 운문사 동서삼층석탑 보물678호 14-20200106서쪽편 팔부중상.

청도 운문사 동서삼층석탑 보물678호 13-20200106탑신.

청도 운문사 동서삼층석탑 보물678호 03-20200106쌍탑형식의 가람배치를 잘 보여주고 있는 모습.

청도 운문사 동서삼층석탑 보물678호 02-20200106뒷편에서 본 모습

운문사 동.서 삼층석탑, 보물 678호, 청도군 운문면 신원리
이 탑은 높이 5.4 m인 쌍탑으로 9세기 통일신라시대 3층 석탑의 전형적인 양식을 보여주고 있다. 상층기단에는 앉아 있는 팔부중상이 세련되게 조각되어 있으며 한 돌로 된 탑신에는 모서리 기둥이 뚜렷하게 새겨져 있다. 탑신부의 지붕돌은 각 층급 받침이 5단씩이며, 추녀 밑은 수평을 이루어 경쾌하고 날씬한 조형미를 보여준다. 전체적으로 이 탑은 하부가 약해 보여 다소 무거운 느낌을 준다.상륜부에는 노반.복발.위로 행해 새겨진 꽃이 남아 있으며 기단 일부는 새로운 돌로 보수하였다. 하층기단은 지대석과 중석을 한데 붙여서 짰고 중석에는 각 면의 모서리 기둥과 안기둥 2주씩이 있다. (안내문, 청도 운문사, 2020년)

<출처>

  1. 안내문, 청도 운문사, 2020년
  2. 국가문화유산포탈, 문화재청, 2020년
  3.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소, 2020년

서울 호암산성(사적 343호), 통일신라가 한강유역을 장악하기 위해 쌓은 산성

서울 금천구 시흥동에 있는 호암산성(사적 343호)이다. 관악산에서 서쪽으로 갈라져 나온 호암산(해발 347 m) 남쪽 정상부에 둘레 1,250 m 의 성벽을 쌓은 테뫼식 산성이다. 신라가 한강유역을 장악한 이후 안양천을 따라 안양에서 한강으로 연결되는 교통로와 멀리 대부도와 인천 사이의 서해바다를 장악하기 위해 쌓은 것으로 보인다. 신라가 쌓은 한강유역에 쌓은 산성 중 북한산성, 남한산성, 이성산성 다음으로 큰 규모를 하고 있다.

호암산성은 현재 약 300 m 정도이 성벽이 남아 있으며 성내에는 한우물이라 불리는 큰 연못과 정상부의 작은 연못, 4곳의 건물 등이 남아 있으며 우물 근처에서 개모양의 석수상이 발견되어 북문터 안쪽에 세워져 있다. 우물에서는기와, 청동숟가락 등 다양한 유물들이 출토되었다.

서울 호암산성 사적 343호 01-20191203호암산 정상부 아래 능선에서 내려다 보이는 호암산성(사적 343호). 그 너머로 금천구, 구로구와 경기도 광명시, 시흥시 등이 한눈에 내려다 보인다.

서울 호암산성 사적 343호 22-20191203호암산성 북문터. 호암산 정상에서 능선길을 따라서 내려오면 북문을 통해 산성 내부로 들어갈 수 있다.

서울 호암산성 사적 343호 21-20191203산성을 들어서면 호암산의 호랑이 기운을 누르기 위해 세워졌다고 전해지는 개모양의 석수상을 볼 수 있다.

서울 호암산성 사적 343호 20-20191203전시해 놓은 석구상.

석구상의 유래에 대한 기록은 조선시대 『경기읍지』의 「시흥읍지」에 있다. ‘호암’이라는 바위가 현의 진산인 금지산(금주산, 지금의 호암산)에 있는데, 그 모양이 웅크리고 있는 호랑이를 닮아서 한양으로 도읍을 삼을 때 이 호랑이의 기운을 누르기 위해 바위의 북쪽에 돌로 만든 사자를 묻고 남쪽에는 돌로 만든 개를 묻었다고 전한다. 과거에 해태상이라 부르기도했으나 그 형태가 개에 가깝다고 하여 석구상이라고 부른다. 또 1990년 제1우물지 발굴조사 당시 조선시대 건축물에서 석구지라는 글자가 새겨진 석재가 확인되었다. 석구상의 크기는 길이 1.7 m, 폭 0.9 m, 높이 1.0 m 가량으로 이목구비가 뚜렷하고 발과 꼬리 부분도 명확하게 드러나 있다. (안내문, 서울시청, 2019년)

서울 호암산성 사적 343호 12-20191203석구상을 지나면 통일신라 때 쌓은 석축이 남아 있는 약 300 m의 성벽을 볼 수 있다.

서울 호암산성 사적 343호 11-20191203남쪽 장대 역할을 했던 곳으로 이어지는 성벽

서울 호암산성 사적 343호 13-20191203호암산성 동쪽 경관이 한눈에 들어오는 지점. 장대 역할을 했던 곳으로 보인다.

서울 호암산성 사적 343호 14-20191203이곳에서 보이는 호암산성 동쪽편. 관악산과 삼성산 등 크고 작은 봉우리들로 막혀 있으며 주변지역이 상당히 넓어 보인다.

서울 호암산성 사적 343호 15-20191203남쪽 건물 등이 있는 곳으로 이어지는 길. 이 부근 성벽의 남아 있지 않다.

서울 호암산성 사적 343호 16-20191203호암산성 내 건물이 있었던 곳. 정상부에 약간 넓은 공간을 형성하고 있다.

서울 호암산성 사적 343호 18-20191203건물터임을 알려주는 안내문.

서울 호암산성 사적 343호 17-20191203반대쪽에는 작은 우물터가 있다.

제2우물지는 한우물에서 남쪽으로 200 m 정도 떨어진 곳에 있으며 직사각형 모양이다. 길이 18.5 m, 너비 10 m 이상, 추정깊이 2 m 이상의 규모이다. 길이 50 cm, 너비 35 cm, 높이 25 cm 가량의 화강암을 臣자 모양으로 1ㅔ단(높이 1.75 m)까지 쌓았는데 두 번에 걸쳐 15 cm 정도 물려 쌓은 형태가 확인된다. 바닥조성이나 석축 쌓기 방식, 석재의 크기와 모양 등이 제1우물과 유사하다. 이곳에서 출토된 청동제 숟가락에는 ‘잉벌내역지내말’이라는 글자가 새겨자 있는데 숟가락의 ‘잉벌내’는 고구려시대의 금천구 지명인 ‘잉벌노’와 유사하다. 신라 영토로 편입되었지만 지명은 여전히 고구려에서 사용하던 잉벌노를 쓰던 시기에 새겨진 것으로 보고 있다. 일벌내(한주 율진군의 속현으로 지금의 금천지역)에 사는 내말, 즉 나마 벼슬을 한 역지라는 인물이 사용하던 것으로 확인되었다. (안내문, 서울시청, 2019년)

서울 호암산성 사적 343호 07-20191203북문터 안쪽 서쪽편에는 약간 넓은 공간이 있으며 헬기착륙장이 표시되어 있다.

서울 호암산성 사적 343호 08-20191203헬기착륙장을 지나면 큰 우물이 있으며 그 옆에 작은 암자가 있다.

서울 호암산성 사적 343호 06-20191203호삼산성 큰 우물. 한우물이라 불리는 이 우물은 산 정상부 부근에 위치하고 있지만 비교적 큰 규모의 연못이다. 통일신라 때 처음 축조되었으며 조선시대에 약간 증축되었다. 조선시대에도 호암산성이 사용되었음을 보여주는 곳이다.

한우물(제1우물지)
‘큰 우물’ 또는 ‘하늘 못’이라는 뜻으로 서울 호암산성 안에 있는 두 개의 연못 중 하나이다. 통일신라 시기에 길이 17.8 m, 너비 13.6 m, 깊이 2.5 m의 규모로 만들었으며 조선시대에 서쪽으로 약간 이동하여 길이 22 m, 너지 12 m, 깊이 1.2 m의 규모로 증축하였다. 현재 물이 있는 부분은 통일신라 시기의 것이며, 1991년 2차 보수정비공사에 통일신라와 조선시대 두 시기의 연지를 함께 복원하였다. 문무왕 때 당나라와의 전쟁에 대비해 축조한 것으로 보이며, 임진왜란 떄에는 선거이 장군이 왜군과 전투를 하면서 이 우물을 군용수로 사용하였다고 전한다. 한편, 조선시대 건국설화와 관련하여 방화용이라는 설도 있으며 가물 떄에는 이곳에서 기우제를 지냈다고 한다. 남벽 상단에서 석구지라는 글자가 새겨진 석재가 뒤집힌 채로 발견되었다. (안내문, 서울시청, 2019년)

서울 호암산성 사적 343호 05-20191203한우물 옆에 있는 작은 암자.

서울 호암산성 사적 343호 04-20191203암자 앞 마당에서 내려다 보이는 풍경. 금천구, 구로가 일대가 한눈에 내려다 보인다. 호암산성 안양천을 따라 형성된 교통로를 통제하기 위해 쌓았음을 알 수 있게 해 주는 부분이다.

서울 호암산성 사적 343호 03-20191203암자에서 호암산 서쪽 성벽 아래로 이어지는 정상로.

서울 호암산성 사적 343호 02-20191203호암산성 서문이 있었던 자리 부근. 성벽과 성문의 흔적이 거의 남아 있지 않다.

서울 호암산성, 사적 343호, 통일신라, 서울 금천구 시흥동
금천구의 주산인 호암산(해발 347 m) 정상을 둘러 쌓은 테뫼식 석축산성이다. 둘레 1,547 m, 면적 133,790 ㎡이며 6세기 후반에서 7세기 초반에 신라가 삼국을 통일하는 과정에서 건축하여 군사적 전략 거점 및 행정치소(기관)로 사용한 것으로 추정된다. 산성 서측에서 보면 소래와 남양만까지도 한 눈에 볼 수 있는데 지리적으로 육로와 해로를 방어하고, 공격하기에 적합한 곳이었다. 서해 연안과 한강수로, 내룍 교통로의 중간 지점인 한강 이남 중심에 있어 삼국시대 양천고성.행주산성.오두산성을 잇는 거점 성곽이었으며, 당시 한강 유역의 18개 신라 산성 가운데 북한산성, 남한산성, 이성산성 등에 이어 네번째로 길었다. 고려시대에는 한강 수로를 통한 중국 무역의 경유지였던 것으로 추정되며 조선시대에는 임진왜란 때 군대가 주둔했다고 알려져 있다. 산성의 형태는 북동에서 서남으로 길쭉한 마름모꼴이며, 축조 방식은 외벽을 돌로 쌓고 뒷면을 잡석과 자갈을 채우는 내탁법을 사용했다. 현재 동벽의 북쪽 성벽이 잘드러나 있으며, 원형을 포함해 남아 있는 성벽은 1,016 m이다. 산성내의 시설로는 한우물(제1우물지)과 제2우물지, 건물지(터), 석구상이 있으며 많은 기와와 청동숟가락, 철제 월형도끼, 희령원보 등의 유물이 출토되었다. (안내문, 서울시청, 2019년)

<출처>

  1. 안내문, 서울시청, 2019년
  2. 국가문화유산포탈, 문화재청, 2020년
  3.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소, 2020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