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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천 동본리 석조여래입상(보물)

경북 예천군 예천읍 동본리 절터에 남아 있는 석조여래입상(보물)이다. 높이 3.46m의 거대한 석조불상으로 하나의 돌에 조각해 놓고 있다. 옷주름, 적절한 신체의 비례, 경직되지 않은 얼굴모습 등 통일신라 불상양식이 많이 남아 있다. 고려시대로 넘어가는 과도기에 조성된 작품으로 추정된다. 절터에는 불상과 함께 삼층석탑(보물)이 남아 있다.

예천 동본리 석조여래입상(보물) 20221130_01<예천 동본리 석조여래입상(보물)>

머리에는 크고 넓은 육계가 솟아 있으며 네모반듯하고 풍만한 얼굴, 반쯤 뜬 눈, 넓적한 코, 웃는 입이 표현되어 있다. 현실적이고 인간적은 얼굴에서 통일신라 말기 불사의 특징을 보여주고 있다.

예천 동본리 석조여래입상(보물) 20221130_02<불상 얼굴>

신체는 얼굴에 비에서 작은편이 짧은 목, 좁은 어깨, 짧은 팔 등 평판적인 가슴과 함께 위축된 모습을 보여준다. 옷은 허벅지에서 Y자형으로 갈라지는데 둔중하고 도식적은 옷주름을 보여주고 있다. 통일신라 후기 불상의 특징을 잘 보여주는 부분이다.

예천 동본리 석조여래입상(보물) 20221130_03<불상 신체>

예천 동본리 석조여래입상(보물) 20221130_07
<정면에서 본 모습>

예천 동본리 석조여래입상(보물) 20221130_05
<옆에서 본 모습>

예천 동본리 석조여래입상(보물) 20221130_06
<뒤에서 본 모습>

주택가에 있는 절터에는 석조여래입상(보물)과 삼층석탑(보물)이 남아 있다. 발굴조사 결과 건물터와 우물 등 유구와 기와, 청자접시 등이 발견되었다.

예천 동본리 석조여래입상(보물) 20221130_04<절터>

예천 동본리 석조여래입상, 보물
동본리 석조여래입상은 높이 3.46m의 석불로, 보물인 동본리 삼층석탑과 함께 있다. 발견 당시에는 불상의 무릎 아래가 땅속에 묻혀 있었는데, 1960년 발굴되어 지금의 모습으로 정비되었다. 석불은 큰 얼굴에 길게 감은 눈, 넓적하고 짧은 코, 미소를 띤 입이 적절하게 잘 표현되어 있어 인상이 자비롭고 온화하다. 광배가 있었던 흔적은 없다. 전체적으로 큼직한 머리와 몸, 경직되지 않은 얼굴과 양다리에 있는 긴 타원형의 옷주름 등 통일신라 시대의 불상 양식을 이으면서도 고려시대 불상의 특징도 함께 나타난다. (안내문, 예천군청, 2022년)

<출처>

  1. 안내문, 예천군청, 2022년
  2.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2022년
  3.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소, 2022년

예천 동본리 삼층석탑(보물)

경북 예천군 예천읍 동본리 절터에 남아 있는 삼층석탑(보물)이다. 발견 당시 기단이 땅에 파묻혀 있어 1층인지 2층인지 알 수 없지만 기단부에 사천왕상을 새겨놓고 있다. 탑신부는 몸돌과 지붕돌은 각각 하나의 돌로 되어 있으며, 몸돌 모서리에는 기둥모양을 새겼다. 지붕돌 추녀는 반듯하면서 경쾌한 느낌을 준다. 높이 4m의 크니 않은 규모이지만 전체적인 비율이나 조각수법이 세련되었다. 통일신라 후기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절터에는 삼층석탑과 함께 석조여래입상(보물)이 같이 남아 있다.

예천 동본리삼층석탑(보물) 20221130_00<예천 동본리 삼층석탑(보물)>

기단부 가운데 돌은 4장으로 짜서 맞추었다. 모서리에는 기둥모양을, 가운데에는 사천왕상을 새겨놓고 있다.

예천 동본리삼층석탑(보물) 20221130_09<사천왕상이 새겨진 기단부>

예천 동본리삼층석탑(보물) 20221130_08<남쪽 사천왕상>

예천 동본리삼층석탑(보물) 20221130_01<동쪽 사천왕상>

예천 동본리삼층석탑(보물) 20221130_03<북쪽 사천왕상>

예천 동본리삼층석탑(보물) 20221130_10<탑신>

예천 동본리삼층석탑(보물) 20221130_07<남쪽에서 본 모습>

예천 동본리삼층석탑(보물) 20221130_02<동쪽>

예천 동본리삼층석탑(보물) 20221130_05<서쪽>

예천 동본리삼층석탑(보물) 20221130_21
<북쪽>

주택가에 있는 절터에는 석조여래입상(보물)과 삼층석탑(보물)이 남아 있다. 발굴조사 결과 건물터와 우물 등 유구와 기와, 청자접시 등이 발견되었다.

예천 동본리삼층석탑(보물) 20221130_06<절터>

예천 동본리 삼층석탑, 보물
동본리 삼층석탑은 예천읍을 중심으로 남북을 흐르는 한천의 둑 안쪽 주택가에 있다. 탑의 높이는 4m이며 기단의 폭은 1.6m이다. 기단의 네 면에 새겨진 사천왕은 조각 기법이 정형화되지 않아 독특하며, 탑의 몸돌이 줄어드는 비율과 지붕돌의 크기가 균형을 이루고 있어 아름답다. 지붕돌 밑면의 받침 수가 줄어드는 점이나 탑의 각 부분 아래에 있는 굄돌이 간략하다는 점에서 통일신라 후기에 만들어진 탑으로 보인다. 석탑의 뒤에는 보물인 동본리 석조여래입상이 함께 남아 있어 예전에는 이곳에 사찰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석탑 주변에 공동주택 부지를 조성하기 전 절터 등을 확인하고 실시한 2002년 발굴조사 결과, 문이 있던 자리 1곳과 건물이 있던 터 2곳, 고려 시대 우물 등의 유구와 기와, 청자접시 등 다양한 유물들이 발견되었다. 그러나 사찰의 이름 등 자세한 내력은 확인되지 않는다. (안내문, 예천군청, 2022년)

<출처>

  1. 안내문, 예천군청, 2022년
  2.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2022년

철원 도피안사 삼층석탑(보물)

강원도 철원군 동송읍 관우리 도피안사(到彼岸寺)에 있는 삼층석탑(보물)이다.  2층 기단 위에 3층 탑신을 올려 놓은 삼층석탑을 높이는 4.1m이다. 통일신라말에 조성된  일종의 이형 석탑으로 불상대좌처럼 생긴 기단 위에 탑신을 올려 놓고 있다. .탑신은 몸돌과 지붕돌에 각각 하나의 돌을 사용하였다. 탑신 몸돌은 모서리에 기둥 모양의 조각 외 별다른 장식이 없다. 지붕돌 받침이 3단, 4단으로 되어 있는 등 정형화된 규칙에서 벗어난 과도적인 모습을 보인다. 불전에 모셔진 철조비로자나불좌상(국보63호)과 함께 통일신라 말의 혼란상을 타파하고 호족세력의 힘을 과시하고자 하는 속성을 보여준다. 대적광전에 모셔진 철조비로자나불좌상(국보)에 기록된 내용을 볼 때 통일신라 말 도피안사를 창건할 때 같이 조성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철원 도피안사 삼층석탑(보물) 01-20220726<철원 도피안사 삼층석탑(보물)>

일반적인 석탑과는 달리 8각형의 돌로 기단을 쌓았는데, 불상을 올려놓는 대좌나 승탑을 받치는 기단과 비슷한 형태이다. 아래층은 팔각형을 기본으로 낮게 만들어 위층 기단을 받치고 있다. 위층 기단은 가운데 기둥과 위,아래에 받침돌을 두고 있는 형태이다. 아래층 기단에는 안상을 새겼으며, 윗층 기단 받침돌에는 연꽃무늬를 새겼다.

철원 도피안사 삼층석탑(보물) 03-20220726<기단부>

탑신은 일반적인 석탑과  같은 양식을 사용하고 있다. 지붕돌 밑면 받침이 3단, 4단으로 일정치 않다.

철원 도피안사 삼층석탑(보물) 04-20220726<탑신부>

철원 도피안사 삼층석탑(보물) 05-20220726<정면에서 본 모습>

철원 도피안사 삼층석탑(보물) 11-20220726
<동쪽에서 본 모습>

철원 도피안사 삼층석탑(보물) 07-20220726<북쪽에서 본 모습>

철원 도피안사 삼층석탑(보물) 06-20220726<서쪽에서 본 모습>

도피안사는 철조비로자나불좌상을 모시기 위해 통일신라 말(865년)에 도선국사가 세웠다고 전해진다. 호족세력의 후원으로 세워진 사찰로 통일신라 사찰의 전통적인 모습에서 벗어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불전들은 여러 전란을 거치면서 없어졌지만, 철조비로자나불좌상과 삼층석탑은 변함없이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현재의 사찰은 한국전쟁으로 소실된 것을 중수한 것이다.

철원 도피안사 삼층석탑(보물) 02-20220726<철원 도피안사>

철원 도피안사 삼층석탑, 보물, 강원도 철원군 동송읍 관우리
도피안사 법당 앞에 세워져 있는 탑으로, 2단의 기단 위에 3층의 탑신을 올린 모습이다. 기단은 그 구조가 특이해서 보통 4각의 돌을 이용하는데 비해 여기서는 8각 모양의 돌로 높게 2단을 쌓았다. 아래층 기단을 괴기 위한 높직한 8각의 괴임돌이 놓여져 있는데, 이곳에는 연꽃무늬가 새겨져 있다. 위층 기단은 매우 높으나 각 면에 꾸밈이 없다. 다만, 기단의 맨 윗돌 아랫면에 다소 두툼한 느낌의 연꽃무늬를 조각하여 둘러 놓았다. 탑신과 닿는 곳에는 높은 3단의 받침을 두어 1층 몸돌을 괴도록 하였는데, 이러한 기단의 꾸밈새는 석탑의 기법이라기보다는 불상의 기단 기법으로 보이며, 덮개돌 윗면의 높은 괴임형식은 9세기 통일신라의 석탑에서 볼 수 있는 특이한 수법이다. 탑신은 몸돌과 지붕돌에 각각 하나의 돌을 사용하였다. 각 층의 몸돌은 모서리에 기둥 모양의 조각이 얕아서 다소 무거워 보이긴 하나, 네 귀퉁이가 한껏 위로 들려 있어 아름다운 모습이다. 기단의 꾸밈새에서 보이는 특이한 양식, 지붕돌 받침이 4단, 3단으로 일정치 않은 점 등이 통일신라에서 고려로 넘어가는 과도기적인 모습임을 보여 준다. 탑을 만든 시기는 법당 안에 모셔진 불상에 기록된 내용을 통해, 통일신라 경문왕 5년(865) 절을 건립할 당시 불상과 함께 만들어졌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안내문, 철원군청, 2022년)

<출처>

  1. 안내문, 철원군청, 2022년
  2.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2022년

 

철원 도피안사 철조비로자나불좌상(국보)

강원도 철원군 동송읍 관우리 도피안사 대적광전에 모셔진 철조비로자나불좌상(국보)이다. 철로 만든 불상으로 대좌까지 철로 만들었다. 머리에는 작은 소라모양의 머리칼을 붙여 놓았으며 얼굴 갸름하고 온화한 인상이다. 신체는 생동감을 주는 굴곡의 표현이 거의 없으며, 옷주름은 형식적으로 보현되고 있다. 손은 왼손 집게손가락을 펴서 바른손을 감싸는 지권인(智拳印)을 하고 있어 비로자나불을 표현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불상 뒷면에 신라 경문왕 때(865년) 만들었다는 내용의 있어 조성연대를 확실히 알 수 있는 불상이다. 신라말에서 고려초에 유행했던 철조불상을 대표하는 작품 중 하나이다.

철원 도피안사 철조비로자나불좌상 (국보) 01-20220726
<철원 도피안사 철조비로자나불좌상(국보)>

철원 도피안사 철조비로자나불좌상(국보) 02-20220726<왼쪽에서 본 모습>

철원 도피안사 철조비로자나불좌상(국보) 01-20220726<오른쪽에서 본 모습>

명문에 따르면 이 불상은 철원 지역 신도 1,500여명이 참여하여 조성하였다고 한다. 통일신라말 지방호족세력의 활발한 활동을 보여주고 있다.

철원 도피안사 철조비로자나불좌상(국보) 04-20220726<불상이 모셔진 도피안사대적광전>

철원 도피안사 철조비로자나불좌상(국보) 03-20220726<대적광전 내부>

철원 도피안사 철조비로자나불좌상, 국보, 강원도 철원군 동송읍 관우리
이 불좌상은 신체와 대좌가 모두 철로 된 신라말의 보기드문 불상이다. 뒷면에 새겨진 139자의 명문 가운데 “함통6년 기유 정월”의 문구가 있어서 이 불상의 제작시기는 신라 경문왕 5년(865)임을 알 수 있다. 살상투의 표현이 분명하지 않은점, 계란모양의 단정한 얼굴, 이상적이며 생동하는 느낌이 사라진 극히 현실적인 체구 등에서 우리는 당시의 참선하고 있는 스님을 대하는 듯한 친근한 느낌을 받는다. 법의에는 얇게 빚은 듯한 평행 옷주름이 전면적으로 표현되어 있는데, 이러한 옷주름은 9세기 후반기 불상에 특징적으로 나타나고 있는 현상이다. 특히 명문에 의하여 이 불상은 철원군의 거사 신도 1,500여명의 열렬한 신앙심에서 만든 것으로써, 당시의 활발했던 불교신앙 결사의 한 단면을 엿보게 한다. 이와 함께 이 불상은 당시 유행하던 철조비로자나불상의 새로운 양식을 대표하는 작품으로 크게 각광받고 있다. (안내문, 철원군청, 2022년)

<출처>

  1. 안내문, 철원군청, 2022년
  2.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2022년
  3.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소, 2022년
  4. 위키백과, 2022년

 

 

산청 단속사지 동, 서 삼층석탑(보물)

경남 산청군 단성면 운리 단속사지 절터에 남아 있는 동, 서 삼층석탑(보물)이다. 금당터 앞에 2개의 삼층석탑이 동서로 나란히 세워져 있는 전형적인 통일신라 쌍탑식 가람배치를 보여주고 있다. 기단 이래층은 바닥돌 역할을 겸하고 있으며 그 위에 다시 기단을 올렸다. 몸돌과 지붕돌은 3층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몸돌 모서리에는 기둥모양을 새긴 것 외에는 특별한 장식이 없다. 꼭대기에는 머리 장식을 받치는 노반과 연꽃모양의 앙화가 남아 있다. 장식이 거의 없으나 각부분의 비례나 조각수법이 우수한 편이다. 통일신라 전성기 삼층석탑의 형식을 잘 보여주고 있다.

산청 단속사지 동서삼층석탑(보물) 01-20220222<산청 단속사지 동, 서 삼층석탑(보물)>

산청 단속사지 동서삼층석탑(보물) 08-20220222<동탑>

기단부 1층에는 양쪽 모서리와 가운데 2개의 모서리 장식을 새겨 놓고 있으며 2층 기단부에는 모서리와 가운데 1개의 기둥장식을 새겨 놓고 있다.

산청 단속사지 동서삼층석탑(보물) 02-20220222<동탑 기단부>

탑신 몸돌에는 모서리에 기둥장식을 새겨 놓고 있다. 지붕돌은 각각 5단의 받침을 새겨 놓고 있다.

산청 단속사지 동서삼층석탑(보물) 03-20220222<동탑 1층 몸돌과 지붕돌>

산청 단속사지 동서삼층석탑(보물) 05-20220222<동탑 머리장식>

산청 단속사지 동서삼층석탑(보물) 14-20220222<동탑 정면>

산청 단속사지 동서삼층석탑(보물) 24-20220222
<동탑 서쪽면>

산청 단속사지 동서삼층석탑(보물) 25-20220222
<동탑 북쪽면>

산청 단속사지 동서삼층석탑(보물) 26-20220222
<동탑 동쪽면>

서탑은 동탑과 같은 형태를 하고 있는데 동탑에 비해 많이 훼손되었다.

산청 단속사지 동서삼층석탑(보물) 07-20220222<서탑>

산청 단속사지 동서삼층석탑(보물) 11-20220222<서탑 기단부>

산청 단속사지 동서삼층석탑(보물) 12-20220222<서탑 1층 몸돌>

산청 단속사지 동서삼층석탑(보물) 13-20220222<서탑 지붕돌>

산청 단속사지 동서삼층석탑(보물) 06-20220222<서탑 머리장식>

산청 단속사지 동서삼층석탑(보물) 09-20220222<정면에서 본 모습>

산청 단속사지 동서삼층석탑(보물) 21-20220222
<서탑 서쪽면>

산청 단속사지 동서삼층석탑(보물) 22-20220222
<서탑 북쪽면>

산청 단속사지 동서삼층석탑(보물) 23-20220222
<서탑 동쪽면>

단속사(斷俗寺)신라 35대 경덕왕 때 창건되었다고 전해지는 사찰이다. 단속사는 조선초기 교종에 속한 사찰로 존속했으나 언제 폐사되었는지는 알 수 없다. 절터에는 동, 서 삼층석탑(보물)이 남아 있으며 건물 기둥을 받쳤던 초석 등이 일부 남아 있다. <삼국사기>에는 솔거가 그린 그림이 있었다고 기록되어 있으며 절터 입구에는 최치원이 쓴 글자를 새긴 돌과 최치원의 독서당이 있었다고 한다.

분황사 관음보살상과 단속사 유마상
또 경주의 분황사 관음보살과 진주의 단속사 유마상(維摩像)도 모두 그의 필적이다. 대대로 신화(神畵)라고 전한다. (삼국사기 권 제 48 열전 제8 솔거, 한국사 데이터베이스, 국사편찬위원회, 2022년)

산청 단속사지 동서삼층석탑(보물) 10-20220222<단속사지 동, 서 삼층석탑(보물)>

산청 단속사지 동.서 삼층석탑, 보물
불탑은 부처의 사리를 모시기 위해 돌이나 나무로 만든 조형물로, 실제 사리가 없더라도 부처를 모신 신성한 대상으로 여겨진다. 산청 단속사지 동삼층석탑과 산청 단속사지 서 삼층석탑은 단속사지의 금당 터 앞에 동서로 세워져 있는 불탑이다. 기단, 몸돌과 지붕돌, 머리장식이 남아 있는데, 기단은 2단이고 몸돌과 지붕돌은 3층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머리 장식은 일부만 남아 있다. 기단의 모서리와 가운데에 기둥 모양이 새겨져 있다. 아래층 가운데에는 기둥 모양이 2개 있고 위층 가운데에는 1개만 있으며, 각 층 몸돌의 모서리에도 기둥 모양이 새겨져 있다. 지붕돌에는 5단의 받침을 두었고, 모시리에는 풍경을 달았던 흔적이 남아 있다. 탑의 꼭대기에는 머리 장식을 받쳐 두는 네모난 장식인 노반과 연꽃 모양의 장식인 앙화가 남아 있다. 장식이 많지 않고 간략하다는 점에서 9세기 통일 신라 시대 석탑의 전형적인 모습을 보여주는 문화재이다. (안내문, 산청군청, 2022년)

<출처>

  1. 안내문, 산청군청, 2022년
  2.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2022년
  3.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소, 2022년
  4. 위키백과, 2022년
  5. 삼국사기 권 제 48 열전 제8 솔거, 한국사 데이터베이스, 국사편찬위원회, 2022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