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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성 관덕리 절터

경북 의성군 단촌면 관덕리에 있는 통일신라 절터이다. 절터에 삼층석탑(보물)과 석조보살좌상 등이 남아 있다. 사찰이 자리잡고 있는 산의 형세가 사자를 닮았다 하여 ‘사자골’이라 부르며 절의 이름은 ‘사운사(獅雲寺)’ 혹은 ‘사운사(思雲寺)’였다고 한다. 현재 남아 있는 절터의 규모나 형태 등으로 볼 때 작은 규모의 사찰이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부근에 금동불상 등 유물과 기와조각 등이 출토되었다고 한다. 절터 바로 아래에 인근 사촌마을 만취당을 지은 조선중기 유학자 김사원의 재실이 있다. 마을가 가까운 곳에 있으나 내려다 보이지는 않는다.

의성 관덕리 절터 20230830_01<의성 관덕리 절터>

삼층석탑(보물)은 2층 기단 위에 3층 탑신을 올려놓은 통일신라 삼층석탑이다. 높이 3.65m로 크지 않은 규모이지만 기단부와 탑신 1층 몸돌에 부조상을 새겨놓고 있으며, 기단부 모서리에 사자상을 올려놓고 있다. 꼭대기 머리장식은 남아 있지 않고 받침돌만 거꾸로 놓여져 있다. 통일신라 전성기 석탑에 비해 웅장함은 줄어들었으나 조각상으로 화려하게 장식하고 있는 점이 특징이다.

의성 관덕리 절터 20230830_02<삼층석탑(보물)>

석사자(보물)는 기단 모서리에 올려져 있는 석상이다. 암수 1마리씩 두쌍이 있었는데 현재는 1쌍만 남아 있다. 조각수법을 알볼 수 없을 정도로 심하게 닳아 있다. 암사는 앞발을 곧게 세우고 뒷발을 구부린채 앉아 있는데 그 아래 새끼 사자가 젖을 빨고 있다. 삼층석탑이 조성되었던 9세기 작품으로 전체적으로 균형이 잘 잡혀 있으며 힘찬 기상을 보여주고 있다. 지금은 대구박물관에서 소장.전시하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의성 관덕동 석사자(보물)>

삼층석탑 뒷편에는 석조보살좌상을 모신 작은 불전이 있다. 석조보살좌상은 얼굴이 심하게 닳아 코부분만 남아 있고 얼굴을 알아 보기는 힘든 상태이나 전체적 비례, 세부적인 조각수법에서 통일신라 전성기 불상양식을 보주고 있다.

의성 관덕리 절터 20230830_03<불상이 모셔진 불전>

의성관덕동석불좌상
<의성 관덕동 석조보살좌상>

의성 관덕리 절터 20230830_04<불전 앞에서 보이는 절터와 삼층석탑>

의성 관덕리 절터 20230830_06<절터 아래 재실과 마을로 내려가는 길>

<출처>

  1. 안내문, 의성군청, 2023년
  2. ‘관덕리 사운사 터’, 디지털의성문화대전, 한국학중앙연구소, 2023년

 

 

의성 관덕동 석사자(보물)

국립대구박물관에서 소장,전시하고 있는 의성 관덕동 석사자(보물)이다. 의성 관덕리 절터에 남아 있는 삼층석탑(보물) 기단 모서리에 올려져 있는 석상이다. 암수 1마리씩 두쌍이 있었는데 현재는 1쌍만 남아 있다. 조각수법을 알볼 수 없을 정도로 심하게 닳아 있다. 암사는 앞발을 곧게 세우고 뒷발을 구부린채 앉아 있는데 그 아래 새끼 사자가 젖을 빨고 있다. 삼층석탑이 조성되었던 9세기 작품으로 전체적으로 균형이 잘 잡혀 있으며 힘찬 기상을 보여주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의성 관덕동 석사자(보물)>

OLYMPUS DIGITAL CAMERA<숫사자>

OLYMPUS DIGITAL CAMERA<암사자>

의성 관덕리삼층석탑(보물) 20230830_22
<의성 관덕리 삼층석탑(보물)>

의성 추원재 20230830_59<절터>

사자, 의성 관덕동, 통일신라 9세기
의성 관덕동 삼층석탑(보물) 기단 네 모서리를 지키던 석상이다. 사자는 불법을 지키는 수호상으로 불상의 대좌나 탑, 석등, 승탑 등 불교와 관련된 석조물에 많이 표현된다. (안내문, 대구박물관, 2013년)

가장 흥미 있다고 말할 것은 상층기단 위의 네 귀퉁이에 놓여 있는 네 개의 석사자이다 ..
암사자는 겨드랑 밑으로 새끼사자를 넣고 젖을 빨게 하였다. 암사자를 곁들임은 중국에서도 송대 이상으로 오래된 것을 구하기 힘들며, 조선에서는 각 대를 통하여 그 예가 없고 .. 동상에서 아사(兒獅)로 최고(最古)의 예가 도니다. – 후지시마 가이지로, <건축잡지>, 1934년 -

<출처>

  1. 안내문, 대구박물관, 2013년
  2. ‘보물 의성 관덕동 석사자’,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2023년

 

의성 관덕리 삼층석탑(보물)

경북 의성군 단촌면 관덕리 절터에 남아 있는 삼층석탑(보물)이다. 2층 기단 위에 3층 탑신을 올려놓은 통일신라 삼층석탑이다. 높이 3.65m로 크지 않은 규모이지만 기단부와 탑신 1층 몸돌에 부조상을 새겨놓고 있으며, 기단부 모서리에 사자상을 올려놓고 있다. 꼭대기 머리장식은 남아 있지 않고 받침돌만 거꾸로 놓여져 있다. 보통 석탑에는 인왕상, 사천왕상, 팔부중상을 새겨놓는 것이 일반적이나 이 석탑은 기단에 사천왕상과 천부중이 같이 새겨져 있다. 통일신라 전성기 석탑에 비해 웅장함은 줄어들었으나 조각상으로 화려하게 장식하고 있는 점이 특징이다. 탑에 장식적인 화려함이 강조되는 9세기 경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의성 관덕리삼층석탑(보물) 20230830_01<의성 관덕리 삼층석탑(보물)>

의성 관덕리삼층석탑(보물) 20230830_22
<의성 관덕리 삼층석탑(보물)>

아래층 기단 4면에는 8곳에 비천상을 새겨 놓고 있으며, 위층 기단에는 4천왕상과 천부상(天部像)을 새겨놓고 있다. 1면에 천부상과 사천왕을 같이 배치하는 형태는 보기 드문 경우로 장식적인 면을 강조한 통일신라 후기의 경향을 보여준다.

의성 관덕리삼층석탑(보물) 20230830_03<기단부(남쪽)>

의성 관덕리삼층석탑(보물) 20230830_05<기단부(동쪽)>

의성 관덕리삼층석탑(보물) 20230830_07<기단부(북쪽)>

의성 관덕리삼층석탑(보물) 20230830_09<기단부(서쪽)>

탑신 1층 몸돌에는 4면에 보살상을 새겨놓고 있다. 기단부 모서리에는 사자상을 올려놓고 있다.

의성 관덕리삼층석탑(보물) 20230830_04<탑신부 1층(남쪽)>

의성 관덕리삼층석탑(보물) 20230830_06<탑신부 1층(동쪽)>

의성 관덕리삼층석탑(보물) 20230830_08<탑신부 1층(북쪽)>

의성 관덕리삼층석탑(보물) 20230830_10<탑신부 1층(서쪽)>

기단 위에는 암수 2마리씩 4마리의 사자상이 있었는데 2마리만 남아 있다. 현재 대구박물관에서 소장, 전시하고 있다.  사자상은 가장 오래된 석탑인 분황사 모전석탑에서도 볼 수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의성 관덕동 석사자(보물), 대구박물관>

의성 관덕리삼층석탑(보물) 20230830_21
<남쪽에서 본 모습>

의성 관덕리삼층석탑(보물) 20230830_23
<동쪽>

의성 관덕리삼층석탑(보물) 20230830_24
<북쪽>

의성 관덕리삼층석탑(보물) 20230830_25
<서쪽>

삼층석탑이 남아 있는 곳은 통일신라 시대 절터아디. 창건연대나 내력에 대해서 알려진 바는 없지만 남아 있는 석탑과 불상으로 볼 때 통일신라 때 창건된 것으로 보인다. 절터가 있는 곳을 ‘사자골’이라고 부르며, 절의 이름은 사운사였다고 한다.

의성 관덕리삼층석탑(보물) 20230830_02<사운사 절터>

의성 관덕리 삼층석탑, 보물
탑은 부처의 유골을 모신 조형물이지만, 실제 유골이 없는 경우에도 상징적으로 보처를 모신 곳으로 여겨진다. 의성 관덕리 삼층석탑은 장식, 크기, 형식으로 볼 때, 통일 신라 시대인 9세기 무렵에 만든 것으로 보인다. 바닥돌부 2단으로 되어 있는데 아래층 바닥돌에는 비천상이, 위층 바닥돌 각 면에는 사천왕상과 보살상이 새겨져 있다. 위층 바닥돌 네 귀통에 있는 돌사자는 최근에 다시 만든 것이다. 원래의 사자 한 쌍은 일제강점기 때 없어지고, 나머지 한 쌍은 국립대구박물관에서 보관하고 있다. 석탑의 한 층은 몸돌과 지붕돌받침, 지붕돌로 이루어지는데, 이 탑은 세개의 층이라서 삼층석탑이다. 머리장식부는 받침돌이 거꾸로 놓여 있다. 관덕리 삼층석탑은 조각 장식이 아름답고 화려하다. (안내문, 의성군청, 2023년)

<출처>

  1. 안내문, 의성군청, 2023년
  2. ‘보물 의성 관덕리 삼층석탑’,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2023년
  3. ‘보물 의성 관덕동 석사자’,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2023년
  4. ‘의성 관덕리 삼층석탑’,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소, 2023년
  5. ‘관덕리 사운사터’, 디지털의성문화대전, 한국학중앙연구소, 2023년
  6. ‘의성 관덕리 삼층석탑’, 위키백과, 2023년

의성 고운사 석조여래좌상(보물)

경북 의성군 단촌면 등운산 고운사에 있는 석조여래좌상(보물)이다. 항마촉지인을 하고 있는  8세기 불좌상을 모델하여 조성된 지방양식의 불상이다. 대좌와 광배를 제대로 갖추고 있으며 손상이 거의 없이 원래의 모습을 유지하고 있다. 얼굴에 눈.코.입을 작게 표현했으며 허리가 작고 약간 치켜 올라간 어꺠로 불안전상 자세를 하고 있다. 광배는 배모양을 하고 있는데 연꽃과 덩굴무늬, 불꽃이 타오르는 모양 등을 잘 표현하고 있다. 대좌 중대석이 8각형 기둥모양으로 장색했으며 상.하대석은 연꽃모양을 하고 있다. 전형적인 9세기 불상으로 영주 북지리 석조여래좌상(보물)과 함께 경주와는 다른 지역적 특징을 잘 보여주고 있다. 고운사 약사전에 모셔져 있다.

의성 고운사 석조여래좌상(보물) 20230830_04
<의성 고운사 석조여래좌상(보물)>

의성 고운사 석조여래좌상(보물) 20230830_03
<반대편에서 본 모습>

의성 고운사 석조여래좌상(보물) 20230830_01<약사전 내부>

의성 고운사 석조여래좌상(보물) 20230830_02<고운사 약사전>

의성 고운사 석조여래좌상, 보물
고운사 석조여래좌상은 약사전 안에 모셔져 있는 불상이다. 광배와 받침대는 온전히 남아 있고, 불상도 오른손 등 일부를 빼고는 부서진 곳이 거의 없다. 불상의 머리에는 꼬불꼬불한 작은 소라 모양의 머리카락인 나발을 붙여 놓았으며 육계는 낮고 편평하여 분명하지 않다. 불상의 옷은 오르ㅉ쪽 어깨를 드러내고 있으며, 왼쪽 겨드랑이 밑에서 오른쪽 옆구리까지 옷 주름을 같은 간격의 선으로 표현하였다. 불상 뒤쪽의 광배는 끝이 날카로운 배 모양이다. 머리 고아배와 몸 광배에는 연꽃과 덩굴무늬 등을 표현하였고, 가장자리에는 불꽃이 타오르는 모양을 표현하였다. 받침대 중 윗받침석은 연꽃을 위로 떠 받드는 모양으로, 가둔데 받침석은 팔각으로 모서리를 기둥모양으로 장식하였다. 아래 받침석은 연꽃잎을 엎어 놓은 모양이다. 광배가 불상보다 더 섬세하고 화려하게 표현된 고운사 석조 여래 좌상은 통일신라 시대 9세기의 특징을 잘 보여준다. (안내문, 의성 고운사, 2023년)

<출처>

  1. 안내문, 의성 고운사, 2023년
  2. ‘보물 의성 고운사 석조여래좌상’,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2023년
  3. ‘의성 고운사 석조여래좌상’,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한국학중앙연구소, 2023년

경주 남산 삼릉곡 제6사지 석조약사여래좌상

국립중앙박물관에 있는 석조 약사여래 좌상이다. 경주 남산 삼릉곡 6번째 절터에 있던 불상을 옮겨온 것이다. 석조약사여래좌상은 석가여래가 도를 깨닫는 순간을 표현한 항마촉지인을 하고 있는 약사여래의 모습을 하고 있다. 약사여래는 질병을 고쳐주는 부처로 둥근 약단지를 들고 있어 쉽게 구분할 수 있다. 광배에는 불상과 꽃무늬, 불꽃무늬로 화려하게 장식하고 있으며 대좌에는 향로와 공양천인상을 새겨놓고 있다. 신체의 표현이나 옷주름 등에서 통일신라 전성기 불상의 모습을 보이고 있으며, 화려한 광배 장식 등 9세기 불상의 특징도 같이 가지고 있다.

경주 남산 삼릉곡 제6사지 석조여래좌상 20220803_05<경주 남산 삼릉곡 제6사지 석조약사여래좌상>

경주 남산 삼릉곡 제6사지 석조여래좌상 20220803_06
<왼쪽에서 본 모습>

경주 남산 삼릉곡 제6사지 석조여래좌상 20220803_08
<오른쪽 옆에서 본 모습>

경주 남산 삼릉곡 제6사지 석조여래좌상 20220803_09
<왼쪽 옆에서 본 모습>

광배에 불상과 불꽃무늬, 꽃무늬 등으로 화려하게 장식하고 있다.

경주 남산 삼릉곡 제6사지 석조여래좌상 20220803_01<불상 모습>

불상을 올려 놓은 대좌는 아래, 위에 연쪽을 세워 놓았으며 가운데 받침돌은 팔각형을 하고 있다. 안상에는 공양자상과 화로 등을 새겨 놓은 것으로 보인다.

경주 남산 삼릉곡 제6사지 석조여래좌상 20220803_02<불상을 올려 놓은 연화대좌>

경주 남산 삼릉곡 제6사지 석조여래좌상 20220803_03<공양자상>

경주 남산 삼릉곡 제6사지 석조여래좌상 20220803_04<공양자상>

OLYMPUS DIGITAL CAMERA<불상이 있었던 남산 삼릉곡 정상 부근 제6사지 절터>

석조 약사불 좌상(石彫 藥師佛 坐像), 통일신라 9세기, 경주 남산 삼릉곡
이 불상은 원래 경주 남산 삼릉곡 정상 가까이에 있는 마애대불(磨崖大佛) 건너편에 있던 것을 옮겨온 것이다. 약사불은 질병을 고쳐주고 재난에서 구해주며 음식과 옷을 주는 부처로 왼손에는 약단지를 들고 있다. 통통한 얼굴, 건장한 신체, 얌전하게 흘러내린 계단식 옷주름 등에서 통일신라 절정기인 8세기 불상의 여운이 보인다. 그러나 엄숙한 얼굴표현, 고개를 앞으로 숙인 자세, 화려하고 장식적인 광배와 대좌 등은 9세기 불상의 특징이므로 800년을 전후한 시기에 만든 것으로 추정된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2022년)

<출처>

  1. 안내문, 중앙박물관, 2022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