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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불국사 청운교 및 백운교(국보)

경북 경주시 진현동 불국사 경내에 있는 청운교 및 백운교(국보)이다. 삼층석탑과 다보탑이 있는 불국사 대웅전 영역을 출입하는 계단으로 부처의 세계로 들어가는 길을 잘 표현하고 있다. 전체 34 계단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위에는 16계단의 청운교가 있고 아래에는 18계단의 백운교가 있다. 계단의 경사는 45˚이며 청운교와 백운교 사이에 무지개 모양 아치를 구성하여 그 아래로 도솔천을 상징하는 물이 흐르도록 하고 있다. 통일신라 떄 지어진 건축물로 그 원형을 잘 보존하고 있다. 아치형 다리는 성문이 돌다리에서 반원형 아치구조물인 홍예(虹霓) 중 가장 오래된 것으로 후대 건축물에 비해서도 건축기법이나 조형미가 뛰어난 것으로 보인다.

OLYMPUS DIGITAL CAMERA<경주 불국사 청운교 및 백운교(국보)>

불국사 대웅전 경내로 오르는 계단인 청운교와 백운교는 석굴암과 함께 리나라 불교 사찰을 대표하는 장면으로 손꼽힌다. 33계단으로 구성된 이 계단은 궁궐 정전영역처럼 웅장하면서 위압적인 면모를 보여주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불국사와 우리나라 사찰을 대표하는 장면>

OLYMPUS DIGITAL CAMERA<정면에서 본 모습>

OLYMPUS DIGITAL CAMERA<옆에서 본 모습>

청운교는 17단으로 이루어진 아래쪽 계단을 말하며 높이 3.82 m, 너비 5.14 m이며, 백운교는 16단으로 이루어진 위쪽 계단으로 높이 3.15 m, 너비 3.09 m이다. 이 다리는 계단을 다리의 형식으로 만든 것으로 경사면을 45도로 하고 있으며 축대를 쌓고 계단을 구성하는 자재를 다듬은 수법이 상당히 정교하다. 물이 지나가는 수로를 의미하는 아치형 구조물은 홍예형식으로 만든 다리의 초기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청운교>

SANYO DIGITAL CAMERA<홍예로 불리는 아치형 다리>

SANYO DIGITAL CAMERA<위쪽에서 본 모습>

SANYO DIGITAL CAMERA<돌난간>

불국사 청운교 · 백운교 (靑雲橋·白雲橋), 국보, 경북 경주시 진현동 15-1
불국사의 예배공간인 대웅전과 극락전에 오르는 길에 동쪽의 청운교와 백운교, 서쪽의 연화교와 칠보교가 있다. 청운교와 백운교는 대웅전을 향하는 자하문과 연결된 다리를 말하는데, 다리 아래의 속세와 다리 위의 부처의 세계를 이어주는 상징적인 의미를 지닌다. 두 계단 중 아래의 것은 17단의 청운교로 높이 3.82 m, 너비 5.14 m이며, 위의 것은 16단의 백운교로 높이 3.15 m, 너비 5.09 m이다. 전체 33계단으로 되어 있는데, 33이라는 숫자는 불교에서 아직 부처의 경지에 이르지 못한 서른세 가지의 단계를 의미한다. 청운교는 푸른 청년의 모습으로, 백운교는 흰머리 노인의 모습으로 인생을 상징한다. 백운교 다리 아래에 작은 통로가 있고, 그 양쪽에 길게 옆으로 뻗은 청운교와 제작 수법이 비슷한 얇고 넓은 덮개돌이 있다. 계단을 다리형식으로 만든 특이한 구조를 하고 있으며, 오르는 경사면을 45˚각도로 구성하여 세심한 주의를 기울여 만들었으며 다듬은 수법도 정교하다. 통일신라 경덕왕(景德王) 10년(750)에 세워진 것으로 보이며, 신라 시대의 다리로는 유일하게 완전한 형태로 남아있어 매우 귀중하다. 또한 무지개모양으로 이루어진 다리 아랫부분은 우리나라 석교나 성문에서 볼 수 있는 반원아치 모양을 한 횽예교(虹霓橋)의 초기형태를 보여주고 있어 중요한 자료가 되고 있다. (안내문, 경주 불국사, 2011년)

<출처>

  1. 안내문, 경주 불국사, 2011년
  2. 국가문화유산포탈, 문화재청, 2015년
  3.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소, 2022년
  4. 위키백과, 2022년

경주 불국사 연화교 및 칠보교(국보)

경북 경주시 진현동 불국사에 있는 연화교 및 칠보교(국보)이다. 불극사 극락전 영역을 출입하는 계단으로 안양문과 연결된다. 계단을 아치가 있는 다리형식으로 만들었으며 경사면을 45˚로 구성하고 있다. 계단은 18계단으로 이루어져 있는 아래 10단 연화교이고 위 8단은 칠보교이다. 연화교 계단에는 연꽃잎이 새겨져 있다. 동쪽의 청운교와 백운교가 웅장한 멋을 보여주는데 비해, 섬세한 아름다움을 보여주고 있다. 통일신라 경덕왕 때(751년) 세워진 건축물로 당시의 모습을 잘 보존하고 있다. 궁궐 정전 월대를 오르는 계단처럼 신성한 공간을 보여주는 구조물이다. 다른 사찰에서는 거의 볼 수 없는 형태의 건축물이다.

OLYMPUS DIGITAL CAMERA<경주 불국사 연화교 및 칠보교(국보)>

연화교와 칠보교는 아미타불이 있는 극락이 연화와 칠보로 장식되어 있다는 불경 내용을 상징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계단은 오르는 길과 내려오는 길이 구분되어 있으며 양쪽에 석재를 조립해서 만든 돌난간이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정면에서 본 연화교 및 칠보교>

연화교 계단에는 희미하게 남아 있는 연꽃무늬를 볼 수 있다.

SANYO DIGITAL CAMERA<위에서 본 계단>

연화교는 높이 2.31 m, 너비 1.48 m이며, 칠보교는 높이 4.06 m, 너비 1.16 m이다. 물길이 지나가는 돌다리 형태를 만드는 아치는 하나만 두고 있으며, 그 규모도 홍예가 아니라 그냥 돌판을 올려 놓은 형태이다.

OLYMPUS DIGITAL CAMERA<연화교 및 칠보교 계단과 아치>

OLYMPUS DIGITAL CAMERA<안양문을 받치고 있는 석축>

SANYO DIGITAL CAMERA<돌 다듬어 만든 난간>

OLYMPUS DIGITAL CAMERA< 연화교 및 칠보교(국보)와 청운교 및 백운교(국보)>

불국사 연화교 · 칠보교, 국보, 경북 경주시 진현동 15-1
불국사의 예배공간인 대웅전과 극락전에’ 오르는 길에 동쪽의 청운교(靑雲橋)와 백운교(白雲橋), 서쪽의 연화교(蓮華橋)와 칠보교(七寶橋)라는 계단이 있다. 연화교와 칠보교는 극락전으로 향하는 안양문과 연결된 다리로, 세속 사람들이 밟는 다리가 아니라, 서방 극락세계의 깨달은 사람만이 오르내리던 다리라고 전해지고 있다. 연화교는 구성면에서 다른 다리와 비슷하지만, 층계마다. 연꽃잎이 새겨져 있다는 점에서 독특하다. 전체 18계단으로, 밑에는 10단의 연화교가 있고 위에는 8단의 칠보교가 놓여있다. 연화교는 높이 2.31 m, 너비 1.48 m이며, 칠보교는 높이 4.06 m, 너비 1.16 m이다. 동쪽의 청운교와 백운교가 웅장한 멋을 보여주는데 비해, 섬세한 아름다움을 내보이고 있어, 불국사의 조형에 조화와 변화를 보여주고 있다. 통일신라 경덕왕(景德王) 10년(751)에 세워진 것으로 보인다. (안내문, 경주 불국사, 2011년)

<출처>

  1. 안내문, 경주 불국사, 2011년
  2. 국가문화유산포탈, 문화재청, 2015년
  3.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소, 2022년
  4. 위키백과, 2022년

 

경주 장항리 사지(사적)

경북 경주시 양북면 장항리에 있는 통일신라 절터인 장항리 사지(사적)이다. 불국사에서 감은사지와 대왕암으로 연결되는 도로변에서 볼 수 있는 절터이다. 절터에는 서오층석탑(국보)와 동탑의 석재들, 석조불대좌가 남아 있다. 토함산 동남쪽 계곡에 높은 곳에 위치하고 있는데 좁은 공간에 2개의 탑을 세우고 동쪽에 금당이 배치되어 있다. 강당이나 회랑 건물터는 확인되지 않고 있다. 전형적인 쌍탑, 1금당의 가람배치와는 약간 차이가 있다. 석조대좌 위에 놓여 있던 불상은 상반신만 남아 있는데 현재는 경주박물관 마당에 전시되어 있다. 절의 이름이나 내력에 대해서는 알려진 것이 없다.

OLYMPUS DIGITAL CAMERA<뒷편에서 본 장항리사지(사적)>

절터 동쪽에는 불상을 모셨던 석조대좌가 남아 있는 금당터가 있다. 석조대좌에는 안상에 신장상과 동물상이 새겨져 있으며 위에는 불상을 꽂았던 큰 구멍이 있다. 불상은 절터에 흩어져 있었는데 복원하여 경주박물관 마당에 전시하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금당터>

OLYMPUS DIGITAL CAMERA<경주박물관에 전시된 불상>

OLYMPUS DIGITAL CAMERA<석조대좌>

OLYMPUS DIGITAL CAMERA<금당터에서 볼 수 있는 주춧돌>

절터는 동.서 2개의 오층석탑이 세워진 쌍탑식 가람배치를 하고 있다. 서탑은 일제강점기에 파괴된 것을 복원하였으며, 동탑은 계곡에 남아 있던 1층 몸돌과 머리돌들을 모아서 쌓아두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동.서 오층석탑>

탑은 2층 기단위에 5층 탑신을 올려놓은 오층석탑이다. 탑을 구성하는 각 부분의 비례가 안정적이며, 돌을 다듬은 조각수법도 뛰어나다. 경주에서는 흔치 않은 오층석탑 형식을 하고 있다. 통일신라 전성기인 8세기 경에 만들어진 것으로 보인다.

OLYMPUS DIGITAL CAMERA<경주 장항리사지 서오층석탑(국보)>

OLYMPUS DIGITAL CAMERA<동오층석탑>

OLYMPUS DIGITAL CAMERA<1층 몸돌에 새겨진 문짝과 인왕상(남쪽)>

OLYMPUS DIGITAL CAMERA<인왕상 (동쪽)>

OLYMPUS DIGITAL CAMERA<인왕상 (북쪽)>

OLYMPUS DIGITAL CAMERA<인왕상 (서쪽)>

절터는 경주에서 감은사지와 대왕암이 있는 감포해변으로 가는 도로변 언덕에 위치하고 있다. 언덕에 우뚝 서 있는 오층석탑을 보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 곳에 절터가 있음을 알 수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경주 장항리사지(사적>

OLYMPUS DIGITAL CAMERA<절터가 있는 토함산 동쪽 계곡>

경주 장항리 사지, 사적, 경북 경주시 양북면 장항리 1081
이 절터는 토함산(吐含山)에서 동쪽으로 뻗어내린 산줄기가 두 계곡과 만나는 곳에 위치해 있다. 계곡 물은 대종천(大鐘川)을 따라 흘러 감은사지(感恩寺址)를 지나 대왕암(大王岩) 근처에서 동해에 이른다. 계곡의 높은 절벽 위에 터를 닦고 중앙에는 불상을 모시기 위한 금당을 마련하였다. 잘 다듬은 돌로 기단을 만들고 위에 덮개돌을 얹었던 흔적이 있으며 건물의 앞쪽으로 계단을 마련 하였다. 불상을 놓았던 대좌(臺座)가 남아 있는데 아래·위 두개로 되어 있다. 아래 돌은 여덟 방향에 창 모양의 안상 (眼象)을 만들어 네 곳에는 동물을, 다른 네 곳에는 신장(神將)을 조각하였다. 위에 얹은 돌은 아래·위로 붙은 연꽃을 16송이씩 조각하였다. 이 곳에 깨어진 불상이 있었는데 1932년 서탑을 복원하면서 국립경주박물관 정원에 옮겨 일부를 붙여 세웠다. 통일신라 시대의 일반적인 절 배치에서 보이는 금당 앞의 중문이나 뒤의 강당, 회랑에 대해서는 아직 밝혀진 것이 없다. 이 절터에 있는 동·서 5층석탑은 1923년에 도굴꾼들이 무너뜨린 것을 9년 뒤인 1932년에 복원·정비한 것이다. (안내문, 경주시청, 2011년)

<출처>

  1. 안내문, 경주시청, 2011년
  2. 국가문화유산포탈, 문화재청, 2015년
  3.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소, 2022년

경주 장항리사지 석조불입상과 석조대좌

경북 경주시 장항리 절터에 남아 있는 석조불입상과 석조대좌이다. 불상은 하반신은 남아 있지 않고 상반신만 있다. 현재 남아있는 부분은 높이 2.5 m인데, 원래는 4.8 m였던 것으로 추정된다. 이는 불교 경전에서 전하는 석가모니의 키가 1장 6척(4.8 m)라는 내용을 구현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조각수법이나 표현방식, 지역 등을 고려해볼 때 석굴암 본존불과 비슷한 시기에 조성되었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불상은 절터에 흩어져 있던 것을 복원하여 경주박물관에서 전시하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석조불입상(石造佛立像), 경주 장항리 절터 출토, 통일신라 8세기 높이 2.5 m>

장항리사지 절터에는불상을 놓았던 대좌(臺座)가 남아 있다.  아래 돌에는 여덟 방향에 안상(眼象)을 두고 있는데 네 곳에는 동물을, 다른 네 곳에는 신장상을 새겨놓고 이다. 위에 얹은 돌에는 연꽃을 16송이씩 조각하였다. 불상 대좌 윗부분에 불상을 꽂기 위한 촉구멍이 있어 불상이 입상임을 알 수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절터에 남아 있는 석조대좌>

OLYMPUS DIGITAL CAMERA<뒷편에서 본 모습>

OLYMPUS DIGITAL CAMERA<천인상>

OLYMPUS DIGITAL CAMERA<안상에 새겨진 동물상>

OLYMPUS DIGITAL CAMERA<안상에 새겨진 동물상>

경주 양북면 장항리의 한 절터에 흩어져 있던 것을 복원한 것입니다. 장항리 절터에는 오층석탑 2기와 불상대좌가 남아 있습니다. 이 불상은 하반신이 없는데도 서 있는 불상(立像)이라고 부르는 근거는 불상대좌에 불상을 세우기 위한 촉 구멍이 있기 때문입니다. 본래 크기는 대략 4.8 m로 옛날 척도로는 1장(丈) 6척(尺)에 달하는 매우 큰 불상이었을 것입니다. 이렇게 공들여 불상을 크게 만든 이유는 불교 경전에 석가모니부처의 키가 1장 6척 ‘이라고 전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언제쯤 만들었을까요? 불상이 언제 만들어졌다는 기록이 있다면 더할 나위 없겠지만, 대개의 불상은 언제 만들었다는 것을 알 수 없습니다. 이런 불상은 연대를 알 수 있는 불상과 얼마나 같고 다른가에 따라 대체로 시기를 결정합니다. 어느 한 시기, 특정 지역에서는 비슷비슷한 불상을 만들어내기 때문이지요. 이 불상과 비교할 수 있는 불상은 바로 8세기 중엽에 만든 석굴암 본존불입니다. 근엄한 얼굴, 건장한 신체, 사실적인 옷 주름 등 어딘지 모르게 석굴암 본존불과 비슷하다는 느낌을 줍니다. (안내문,경주박물관, 2012년)

<출처>

  1. 안내문, 경주시청, 2011년
  2. 안내문, 경주박물관, 2012년
  3.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2022년

 

경주 동궁과 월지(사적), 임해전지와 신라 별궁터

경북 경주시 인왕동 일대에 있는 신라 왕궁 별궁터이다. 신라 태자가 머물던 거처를 중심으로 국가적인 행사나 귀한 손님을 맞을 떄를 연회를 베풀던 곳으로 동궁 이상의 역할을 했던 것으로 보인다. <삼국사기>에는 문무왕 때(674) 큰 연못을 파고 꽃과 나무를 심어 정원을 조성다는 기록과 경순왕이 왕건을 초청하여 잔치를 베풀었다는 기록이 있으며, 조선시대 <동국여지승람>에는 “안압지의 서에는 임해전이 있다”고 기록되어 있다. 발굴조사 결과 연못 서쪽에는 크고 작은 건물터 26곳이 확인되었으며 그 중 연못 서쪽 건물터 중 3곳과 연못을 복원하였다. 당나라 장안의 대명궁 후원 태액지가 거의 비슷한 느낌을 주고 있다. 경주와 신라를 대표하는 장면 중 하나로 손꼽힌다.

SANYO DIGITAL CAMERA<경주 동궁과 월지(사적)>

OLYMPUS DIGITAL CAMERA<야경>

궁궐 안에 연못을 파다 ( 674년 02월(음) )
2월에 궁궐 안에 연못을 파고 산을 만들어 화초를 심고 진기한 새와 기이한 짐승을 길렀다. (삼국사기 권 제7 신라본기 제7, 한국사데이터베이스, 국사편찬위원회)

동궁을 짓고 문의 이름을 정하다 ( 679년 08월(음) )
동궁(東宮)을 짓고 처음으로 궁궐 안팎 여러 문의 이름을 정하였다. (삼국사기 권 제7 신라본기 제7, 한국사데이터베이스, 국사편찬위원회)

태조가 왕을 찾아가다 ( 931년 02월(음) )
5년(931) 봄 2월에 태조가 50여 명의 기병을 거느리고 경기(京畿)에 이르러 만나 뵙기를 청하였다. 왕이 백관(百官)과 교외에서 맞아 궁으로 들어와 상대하는데 간곡하게 정성과 예의를 다하였다. 임해전(臨海殿)에서 잔치를 벌였는데 ~ (삼국사기 권 제12 신라본기 제12, 한국사데이터베이스, 국사편찬위원회)

경주 동궁과월지<경주 동궁과 월지(사적) 일대>

안압지 서쪽에는 발굴, 조사 결과 회랑지를 비롯하여 26곳의 건물터가 확인되었다. 건물 배치는 출입문, 별궁 정전처럼 보이는 주건물과 편전처럼 보이는 뒷편 건물이 일렬로 배치되어 있고 마당 동쪽 안압지가 내려다 보이는 곳에 누각 용도의 건물들이 배치된 것으로 보인다. 건물들을 회랑으로 연결되어 있다. 동쪽 누각을 제외한 건물 배치는 불국사 대웅전 영역이나 조선시대 궁궐 정전 영역과 비슷하다. 확인된 건물 중 하나가 <삼국사기> 등에 기록된 임해전(臨海殿)인 것으로 추정된다.

SANYO DIGITAL CAMERA<안압지 동쪽 발굴 건물터>

SANYO DIGITAL CAMERA<발굴 건물터를 기준으로 재현한 모형>

SANYO DIGITAL CAMERA<뒷편에서 본 모형>

발굴 건물터
발굴 조사 결과 안압지 주변에는 26개소 (주 건물터 및 회랑터)의 크기가 각각 다른 건물터가 확인되었고 그중 연목 서쪽가의 5개 건물터 중 3개소에만 건물 추정 복원하여 현재의 모습으로 재현하였다. 그 나머지 23개소의 건물터는 발굴된 유구를 발굴 전의 형태로 덮고 그 위에 성토하여 건물의 기단부를 새로 만들어 재현하였다. 초석은 신라 시대의 초석 모습 그대로 화강석을 사용하여 재현하였다. 이들 건물터 중 서쪽에 자리잡고 있는 것 중의 하나가 임해전(臨海殿)이었던 것으로 여겨지나 확실하지는 않다. 새로 만들어 놓은 초석은 모두 267개로서 회랑터를 제외한 주 건물에만 설치하였다. (안내문, 경주시청, 2009년)

안압지 연못 남쪽에도 비교적 큰 규모 건물터가 있다. 건물 배치나 형태 등으로 볼 때 실무적인 용도의 부속건물인 듯 하다.

SANYO DIGITAL CAMERA<출입문 앞 동쪽 건물터>

SANYO DIGITAL CAMERA<출입문 앞 동쪽에 있는 부속 건물터>

앞쪽 가운데 있는 건물터는 임해전지 영역으로 들어가는 출입문인 것으로 보인다. 궁궐 정전처렴 회랑으로 연결되어 있다.

SANYO DIGITAL CAMERA<출입문과 회랑 건물터>

출입문을 들어서면 정전처럼 보이는 주건물터를 중심으로 회랑으로 둘러싸인 마당이 있으며 안압지가 있는 동쪽에 누각형태의 제1 건물터가 있다. 정전 건물 뒷편으로는 편전이나 사찰 강당처럼 생활공간으로 보이는 건물들이 들어서 있다.

SANYO DIGITAL CAMERA<동궁 영역 중심 건물로 보이는 건물터>

SANYO DIGITAL CAMERA<정전처럼 보이는 주건물터>

SANYO DIGITAL CAMERA<뒷편에서 본 주건물터 영역>

주건물이 있는 영역 동쪽 제 1 건물터에는 복원된 건물이 있다. 발굴, 조사  결과와 안압지 출토 유물 등을 고려 하여 건물을 복원하였다. 건물은 앞면 3칸, 옆면 2칸의 단층 누각 건물이다. 복원된 건물 규모로 볼 때 소규모 연회를 가졌던 공간으로 보인다.

SANYO DIGITAL CAMERA<복원된 제 1건물>

SANYO DIGITAL CAMERA<안압지에서 본 모습>

OLYMPUS DIGITAL CAMERA<야경>

복원 건물: 제 1 건물
발굴 조사 결과 확인된 연못 서쪽가의 5개 건물터 중 현재 복원된 3동의 건물(제1, 2, 5 건물)은 원래 기단부가 완전히 파괴되었던 것을 복원하고 건축부재는 목부재와 기와 등 출토유물을 본따 신라 시대의 원형대로 추정 재현한 것이다. 이 건물은 정면 3칸, 측면 3칸의 단층 목조 팔작지붕으로 건평 103 ㎡, 건물 높이 9 m의 누각 형태이다. (안내문, 경주시청, 2009년)

주건물 뒷편으로는 약간 긴 형태의 건물터가 남아 있다. 경복궁 건물 배치를 고려하면 정전 뒷편 편전에 해당하는 공간으로 보인다. 주건물이 대규모 공식행사를 하는 공간이라면 뒷편은 회의 등 일상적인 업무나 생활을 하는 공간인 것으로 보인다. 사찰 가람배치에서는 강당이 자리잡고 있다.

SANYO DIGITAL CAMERA<뒷편 건물터>

SANYO DIGITAL CAMERA<서쪽편 회랑과 뒷편 건물터>

SANYO DIGITAL CAMERA<뒷편 건물터>

SANYO DIGITAL CAMERA<건물과 건물을 연결하는 동쪽편 회랑 건물터>

건물을 따라서 빗물이르 흐르도록 만든 배수로로 추정되는 석조 유구를 볼 수 있다.

SANYO DIGITAL CAMERA<석조 유구>

석조 유구
건물터를 따라 연결되는 이 석조 유구(石造 遺構)는 건물 지붕에서 떨어지는 빗물이 흐르도록 만든 뚜껑없는 배수로로 생각되며 물은 서쪽에서 동쪽으로 흐르게 되어 있어 그 끝은 연못에 연결되었을 것으로 추정되나 현재 남아 있는 석조 유구는 그 일부분으로서 길이가 83 m이다. (안내문, 경주시청, 2009년)

주건물이 있는 영역 뒷편 모퉁이에는 복원된 제 3건물을 볼 수 있다. 안압지 풍경을 감상하기 좋은 곳에 위치하고 있는 건물로 앞면 5칸, 옆면 4칸 규모의 상당히 큰 누각건물이다. 경복궁에서 국가적인 연회가 열렸던 경회루와 같은 기능을 가졌던 것으로 보인다. <삼국사기>에는 임해전(臨海殿)이 8차례 등장하는데 대부눈 큰 연회를 베풀었다는 내용이다. 이 건물이 임해전으로 보이는데 확인된 것은 아니다.

SANYO DIGITAL CAMERA<제 3건물>

OLYMPUS DIGITAL CAMERA<제 3건물 야경>

복원 건물: 제 3건물
발굴 조사 결과 확인된 연못 서쪽가의 5개 건물터 중 현재 복원된 3동의 건물(제 1, 3, 5건물)은 원래 기단부가 완전히 파괴되었던 것을 복원하고 건축부재는 목부재와 기와 등 출토 유물을 본따 신라시대의 원형대로 추정 재현한 것이다. 이 건물은 정면 5칸, 측면 4칸의 단층 목조 팔작지붕으로 건명 187 ㎡, 건물 높이 10 m의 누각 형태이다. (안내문, 경주시청, 2009년)

안압지 서쪽은 석축을 높게 쌓았는데 석축에는 5개의 돌출된 건물지가 있다. 다양한 규모의 누각 건물들이 있어 다양한 경치를 감상할 수 있게 해준다.

SANYO DIGITAL CAMERA<다양한 규모의 누각 건물들이 있는 안압지 서쪽 석축>

OLYMPUS DIGITAL CAMERA<야경>

SANYO DIGITAL CAMERA<제 1건물과 제 3건물 사이의 1칸 규모의 건물터>

SANYO DIGITAL CAMERA<제1 건물과 제 3건물 사이 석축>

SANYO DIGITAL CAMERA<제 3건물과 제 5건물 사이의 석축과 건물터>

뒷편에 있는 제5건물은 앞면 3칸의 단층 목조건물이다. 뒷마당에 약간 떨어져 있는 누각 건물로 안압지 호수와 동궁 누각 건물들이 만드는 경치를 감상하기 좋은 곳이다.

SANYO DIGITAL CAMERA<제 5건물지>

SANYO DIGITAL CAMERA<안쪽에서 본 제 5건물지>

복원 건물: 제5건물
발굴 조사 결과 확인된 연못 서쪽의 5개 건물터 중 현재 복원된 3동의 건물(제1, 3, 5건물)은 원래 기단부가 완전히 파괴되었던 것을 복원하고 건축부재는 목부재와 기와 등 출토 유물을 본따 신라시대의 원형대로 추정 재현한 것이다. 이 건물은 정면 3칸의 단층 목조 사모 지붕으로 건물 43.5 ㎡, 건물높이 9 m로서 이 건물텉터 주변의 연못 속에서 나온 돌난간 부재를 본따 난간을 복원하였다. (안내문, 경주시청, 2009년)

SANYO DIGITAL CAMERA<뒷편에서 본 발굴 건물터>

경주 임해전지, 사적, 경북 경주시 인왕동
이곳은 통일신라시대 별궁 안에 있던 것으로 그 안에는 임재전을 비롯한 부속 건물들과 정원이 있었다. 신라 문무왕 14년(674)에 궁 안에 못을 파고 산을 만들어 화초를 심고 귀한 새와 기이한 짐승들을 길었다. 임해전은 931년 경순왕이 고려 태조 왕건을 위하여 잔치를 베풀었다는 등의 기록이 남아 있는 것으로 보아, 군신들의 연회나 귀빈 접대 장소로 이용되었음을 알 수 있다. 못 이름은 원래 월지(月池)였는데 조선시대에 폐허가 된 이곳에 기러기와 오리가 날아들어 ‘안압지(雁鴨池)’라고 부르게 되었다. 1975년 준설을 겸한 발굴조사에서 산라 떄 축조되었던 안압지의 모습을 거의 확인하였고, 임해전터에서 출토된 보상화문전에 새겨진 기년명으로 궁궐의 축조 연대를 확인할 수 있었다. 임해전은 별궁에 속해 있던 건물이지만 그 비중이 매우 컸던 것으로 보이며, 안압지는 신라 원지(苑池)를 대표하는 유적이다. (안내문, 경주시청, 2009년)

<출처>

  1. 안내문, 경주시청, 2009년
  2. 국가문화유산포탈, 문화재청, 2022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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