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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박물관특별전, 아라비아로 가는 길] 고대 유적지 울라와 마다인 살레

알-울라(Al Ola)는 사우디아라비아 부서부에 있는 도시로 메디니(Median)에서 북쪽으로 약 300 km 떨어져 있다. 이 도시는 고대 향료 교역로의 주요 거점이있던 데단(Dedan)이 있었던 지역이다. 벽으로 둘러싸인 도시 알-울라는 기원전 6세기에 지어졌는데 사막의 오아시스로 비옥한 토양과 물이 풍부한 지역이다. 이곳에는 고대 리흐얀(Lyeyan)왕국이 있었으며 아라비아 사막을 경유하는 대상들을 대상으로 세금을 부과하는 등 경제적으로 크게 번성하였다. 도시에는 진흙벽돌과 돌로된 집들이 많이 남아 있다. 이 지역에서는 이집트나 페르시아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이는 거대 조각상들이 출토되고 있으며, 사원의 건축부재 등에서 당시 발달된 문화수준을 확인할 수 있다.

울라(Al-’Ula)
아라비아 북서부의 울라는 향 교역로의 주요 거점이었던 고대 도시 데단이 위치해 있던 지역입니다. 오랫동안 리흐얀왕조의 지배를 받았던 이 지역은 북서 아라비아를 경유하는 대상들의 물품을 보관하고 세금을 부과하면서 경제적으로 번성했습니다. 리흐얀 인들은 고유 문자를 사용했고 웅장한 건축물을 만들었습니다. 데단의 고대 유적 중 하나인 쿠라이바는 다양한 바위 무덤이 조성되어 죽은 자들을 기렸던 흔적이 남아 있습니다. 이 지역은 기원전 1세기 말 큰 지진으로 쇠락하기 시작하여 나바테아 왕국의 일부가 되었지만, 풍부한 수자원을 바탕으로 고대 중동지역의 문명들이 교류하는 교역로에서 핵심역할을 했습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아라비아의 길’, 2017년)

640px-Al_Ula_old_town,_Saudi_Arabia_2011흙벽돌로 지은 집들이 남아 있는 알-울라 유적지.  (사진출처:위키피디아, 2019년)

OLYMPUS DIGITAL CAMERA울라 지역에서 출토된 거대 조각상. 기원전 5~2세기 이 지역 문화를 대표하는 유물이다. 이집트나 페르시아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발까로 가는길, 히자즈 근처의 데단은 폐허로 남았지만 아름다운 도시였다.
- 야꾸트 알하마위, 『세계사전』, 13세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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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각상, 울라, 기원전 5 ~ 2세기, 사암

한 덩어리의 사암을 깎아 만든 이 조각상은 형태와 자세에서 리흐얀 조각상들의 전형적 양식을 따르고 있습니다. 리흐얀 왕조의 조각가들은 장소와 수요에 따라 다양한 크기의 조각상을 제작했습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아라비아의 길’, 2017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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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각상의 머리, 울라, 기원전 4~3세기, 사암

사암으로 된 거대한 남성 머리 조각으로 두건의 일부가 남아 있습니다. 역청으로 칠한 표면은 여러 군데에 균열이 생겼습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아라비아의 길’, 2017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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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각상의 머리, 울라, 기원전 4~3세기, 사암

사암으로 된 남성 조각상의 머리 부분으로 표면에 역청을 겹겹이 칠한 흔적이 남아 있습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아라비아의 길’, 2017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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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성상, 울라, 기원전 4~3세기,

석상의 왼쪽 팔에 원형 구슬로 된 줄무늬 보석이 장식되어 있습니다. 짧은 튜닉을 입고 있으며 허리를 감싼 두 끈이 양측에 매듭 져 있습니다. 팔과 다리, 복부의 근육을 명확히 표현한 데서 조각가의 뛰어난 해부학적 지식을 알 수 있습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아라비아의 길’, 2017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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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성상, 울라, 기원전 4~3세기, 사암

이 거대한 조각상은 허리에 두 겹의 띠를 두른 튜닉을 입었습니다. 복부와 팔 그리고 근육의 해부학적 묘사가 뛰어납니다. 상반신 부분이 검게 보인 것은 석유와 같은 역청으로 칠을 했었기 때문입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아라비아의 길’, 2017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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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성상, 울라, 기원전 4~3세기, 사암

이 조각상은 리흐얀 사원에서 발견된 일반적인 조각상과 형식적으로 유사합니다. 납작한 등을 벽에 기댄 채 서 있었을 것으로 추정되며 몸의 일부분에 빨간 안료가 남아 있습니다. 이 조각상이 출토된 사원 주위에서 나온 명문으로 미루어 볼 때, 이 석상은 리흐얀 시대의 통치자를 표현한 것으로 추정됩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아라비아의 길’, 2017년)

OLYMPUS DIGITAL CAMERA데안 어 명문, 울라, 기원전 6~3세기, 적사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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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각상, 울라, 기원전 5~2세기, 사암

OLYMPUS DIGITAL CAMERA머리 조각상, 울라, 기원전 4~3세기, 사암

OLYMPUS DIGITAL CAMERA리흐얀 어 명문, 울라, 기원전 4~3세기, 사암

OLYMPUS DIGITAL CAMERA리흐얀 어 명문, 울라, 기원전 6~2세기, 적사암

OLYMPUS DIGITAL CAMERA리흐얀 어 명문, 울라, 기원전 5~2세기, 사암

OLYMPUS DIGITAL CAMERA사자조각, 울라, 기원전 6~4세기, 사암

고대 중근동에서 사자는 왕의 힘과 위대함을 상징했습니다. 특히, 사자는 주로 사원과 궁전에서 입구를 지키는 모습으로 많이 나타납니다. 울라 지역에서도 무덤 입구에 사자를 새겨 넣기도 했습니다. 새끼 사자에게 젖을 먹이는 암사자의 모습은 맹수로서의 사자와 다른 새로운 면모를 보여줍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아라비아의 길’, 2017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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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흐얀 어 명문, 울라, 기원전 5~2세기, 사암

리흐얀 왕조 시대에는 고유한 문자를 사용했습니다. 이 명문은 한 장인이 두가바트에게 작은 조각상을 바친다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장인이 두-가바트 신이 만족하기를 기원하며 이 작은 조각상을 바쳤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아라비아의 길’, 2017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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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단(또는 향로) 조각, 울라, 기원전 4~3세기, 사암

두 줄 사이로 염소 행렬의 모습이 저부조로 새겨져 있습니다. 이 조각은 제단의 아랫 부분이나 향로의 일부였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울라 지역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붉은 사암으로 만들어졌습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아라비아의 길’, 2017년)

Al-Hijr라 불리는 마다인살레(Mada’in Saleh)는 알-울라 부근에 위치한 고대 유적지로 요르단의 페트라(Petra)로 기원전 1세기 나바테아 왕국의 영역이었다. 이곳은 지중해와 페트라를 연결하는 주요 거점으로 페트라의 건축물을 연상시키는 거대한 사암무덤들이 남아 있다. 나바테아왕국은 106년 로마제국에 병합되면서 이 지역 또한 로마제국의 일부가 되었다. 전시된 유물로는 로마시대 유물을 연상시키는 글자가 새겨진 건죽부재 등이 있다.

마다인 살레(Mada’in Saleh)
울라 인근의 마다인 살레(또는 히즈르)는 기원전 1세기부터 나바테아 왕국의 지배를 받았습니다. 당시 헤그라로 불렸던 이 도시는 물과 식량자원이 풍부했고 지중해와 페트라로 이어지는 교역의 중심지였습니다. 이곳에 정착한 나바테아 인들은 페트라의 웅장한 건축물을 연상케하는 거대한 사암무덤을 만들었습니다. 모두 94개에 이르는 이 무덤들의 크기와 세부 장식은 다양합니다. 무덤 주인의 이름이 입구에 새겨져 있으며 때로는 조각가도 찾아 볼 수 있습니다. 나바테아 왕국은 그들만의 언어와 수준 높은 건축 기술을 보유했지만 106년 로마 제국에 병합되었고, 이후 마디안 살레는 아라비아 주의 일부로서 로마 제국의 영토가 되었습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아라비아의 길’, 2017년)

640px-Madain_Saleh_(6730361263)페트라 유적을 연상시키는 마다인 살레의 거대 무덤(사진출처: 위키피디아, 2019년)

OLYMPUS DIGITAL CAMERA나바테아 어 명문, 타이마, 기원전 1세기, 사암

OLYMPUS DIGITAL CAMERA라틴어 명문, 마다인 살레, 175~177년, 사암

로마 황제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치세에 만들어진 이 사암 판에는 헤그라(마다인 살레)에 있었던 한 건물의 재건축을 기념하는 내용이 담겨 있습니다. 명문에는 로마 군대의 도움으로 공사가 진행되었지만 헤그라 시에서 자금을 조달했다는 내용이 적혀 있습니다. 이 라틴 어 명문은 로마의 한 지방으로 전락한 헤그라와 중앙 정부 사이의 정치, 경제적 관계를 보여줍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아라비아의 길’, 2017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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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로, 타이마, 기원전 1세기 ~ 기원후 1세기, 사암

향로 윗 부분에 나바테아 어로 된 비문이 적혀 있습니다. 비문에는 “볼란의 아들, 압둘 카타브의 무덤”이라고 새겨져 있습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아라비아의 길’, 2017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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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로, 타이마, 기원전 1세기 ~ 기원후 1세기, 사암

OLYMPUS DIGITAL CAMERA나바테아 양식 기둥머리, 마다인 살레, 1세기경, 사암

라틴어 명문과 함께 발견된 이 기둥머리는 아랫 부분에 기둥이 연결되어 있습니다. 크기로 보아 문이나 대문 장식용이었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아라비아의 길’, 2017년)

OLYMPUS DIGITAL CAMERA물고기 무늬 토기, 마다인 살레, 6세기 추정, 토기

물고기 장식이 있는 토기는 6~7세기 요르단 북부에서 주로 발굴되는 것으로 이슬람 시대 이전, 원거리 무역으로 번성했던 마다인 살레 문명의 흔적을 보여줍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아라비아의 길’, 2017년)

OLYMPUS DIGITAL CAMERA옷조각, 마다인 살레, 기원전 3세기 ~ 기원후 3세기, 직물과 가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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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아리, 마다인 살레, 기원전 3세기 ~ 기원후 3세기, 토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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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아리, 마다인 살레, 2~4세기, 토기

  1. 안내문, 중앙박물관 특별전, 2017년
  2. 위키피디아, 2019년

[중앙박물관특별전, 아라비아로 가는 길] 사막위의 고대도시

향신료 무역은 아시아와 동북 아프리카, 유럽 사이의 무역을 말하며 계피와, 생강, 울금등 향신료가 주요 물품이었다. 기원전 1,000년 이전 이집트인들은 아라비아반도에서 홍해를 통해 인도의 향신료 등을 거래했으며, 그 이전 신석기인들도 홍해를 통해 여러 물건들이 거래되었을 것으로 생각되고 있다. 대항해시대 신항로가 개척되기 전까지 아라비아반도와 홍해를 경유하는 향료무역로는 지속되었다.

고대 향신료 교역의 주요 거점이었던 아라비아반도의 주요 도시들은 교역을 통해 부를 축척하면서 고대도시로 크게 번성하였다. 타이마, 울라 그리고 카르얏 알파우는 대표적인 무역거점으로 당시 부유했던 도시국가로 이곳에는 당시의 경제력과 문화수준을 보여주는 다양한 유물들이 출토되고 있다. 대표적인 유물들로는 기하무늬가 그려진 수준높은 토기들을 비롯하여, 뛰어난 수준을 보여주는 각종 장신구와 청동기, 다양한 그림들이 조각된 사원 건축 부재들이 있다. 출토유물들은 인근 메소포타미아와 페르시아의 영향을 많이 받은 부분도 있으며, 여러 지역의 문화가 융합되면서 독작적인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사막위의 고대도시: 타이마, 울라 그리고 카르얏 알파우
기원전 1000년 무렵부터 남부 아라비아에서 생산된 향료가 북쪽으로 메소포타미아, 서쪽으로 이집트와 지중해로 퍼져 나가기 시작하면서 전설적인 향료 교역로가 만들어졌습니다. 이 길 위에서 경제적 부를 축적한 국제 도시들이 번성했습니다. 아라비아 북서쪽의 타이마에는 바빌로니아의 마지막 왕인 나보니두스가 10년 동안 지배하면서 새로운 예술 양식이 전파되었습니다. 기원전 6세기 무렵부터 기원전 1세기까지 리흐얀 왕조가 지배했던 울라는 거대한 조각과 사원이 가득한 웅장한 고대도시였습니다. 아라비아 남부와 북동부를 이어주는 핵심적인 교역로에 있던 까르얏 알파우는 가장 부유했던 도시 중의 하나로 지중해 지역 문화의 영향이 가미된 독자적인 문화를 꽃피웠습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아라비아의 길’, 2017년)

OLYMPUS DIGITAL CAMERA아라비아의 고대도시들

타이마(Tayma)
아라비아 북서쪽에 위치한 타이마는 거대한 오아시스가 있었기 때문에 기원전 3천년기부터 사람들이 정착하기 시작했습니다. 기원전 1천년 무렵에는 아라비아 북쪽과 동쪽을 잇는 향 교역로의 중요한 중간 경유지로서 경제적 번영을 누렸습니다. 타이마에서 출토된 토기와 청동기들은 메소포타미아나 동부 지중해 지역의 영향과 지역 토착 양식이 혼재되어 있습니다. 기원전 6세기 무렵 바빌로니아의 마지막 왕 나보니두스가 한때 점령하기도 했던 이 지역은 이슬람이 도래하던 7세기 무렵까지 북서 아라비아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타이마의 홍수는 야자나무 한 그루도, 바위 위에 세우지 않은 어떤 성도 남기지 않는다.
- 6세기 아랍 시인 이므루 알까이스, 「무알라까트」 70행 -

OLYMPUS DIGITAL CAMERA사발, 타이마.사나이예, 기원전 1천년기 초, 토기에 채색

이 그릇은 타이마의 사나이예에 있는 한 무덤에서 출토되었습니다. 타이마에서 출토된 토기 중 비교적 큰 이 사발은 질적으로도 우수한 토기입니다. 곱게 정제된 흙으로 나팔 모양의 형태를 만들고 외면에 적갈색으로 기하무늬를 그려 넣었습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아라비아의 길’, 2017년)

OLYMPUS DIGITAL CAMERA채색 사발, 타이마.사나이예, 기원전 1천년기 초반, 토기에 채색

OLYMPUS DIGITAL CAMERA채색 사발, 타이마, 사나이예, 기원전 1천년기 초반, 토기에 채색

고운 흙으로 만든 사발에 기하무늬가 그려져 있습니다. 구연부 안쪽은 흰 바탕에 검은 선을 교차하여 무늬를 채웠고, 바닥 면은 선으로 4개의 공간을 나누어 무늬를 넣었습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아라비아의 길’, 2017년)

OLYMPUS DIGITAL CAMERA채색사발, 타이마, 기원전 12~9세기, 토기에 채색

그릇 안쪽 면에 직선을 그어 여덟 공간으로 나누고, 네 곳에 왼쪽을 향한 새를 그렸습니다. 점과 선, 간략한 형태만으로 새의 특징을 정확히 포착하여 타이마 사람들의 예술적 감각이 드러납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아라비아의 길’, 2017년)

OLYMPUS DIGITAL CAMERA채색 사발, 타이마.시나이예, 기원전 1천년기 초, 토기에 채색

흰 바탕에 기하무늬로 공간을 구획하고 각 공간에 새의 모습을 규칙적으로 배열하였습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아라비아의 길’, 2017년)

OLYMPUS DIGITAL CAMERA채색사발, 타이마.사나이예, 기원전 1천년기 초, 토기에 채색

바닥이 깊어 모양이 원뿔에 가깝습니다. 외벽에는 흰 바탕에 적갈색으로 그림이 그려져 있습니다. 하단에는 두 평행선 위로 불규칙한 수평선으로 둘러싸인 기하무늬가 있습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아라비아의 길’, 2017년)

OLYMPUS DIGITAL CAMERA항아리, 타이마.사나이예, 기원전 1천년기 초, 토기에 채색

OLYMPUS DIGITAL CAMERA채색 잔 또는 향로, 타이마.사나이예, 기원전 1천년기 초, 토기에 채색

바닥이 편평하고 구연부에 작은 손잡이가 달렸습니다. 바깥 면은 긴 선으로 장식되어 있으며 손잡이도 채색되었습니다. 손잡이가 달린 것으로 보아 향로로 쓰였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아라비아의 길’, 2017년)

OLYMPUS DIGITAL CAMERA붉은간토기, 타이마,기원전 1천년기 초, 토기에 채색

OLYMPUS DIGITAL CAMERA채색사발, 타이마.사나이예, 기원전 1천년기 초, 토기에 채색

표면이 거칠고 물레질 할 때 생긴 홈들이 있습니다. 바깥면에는 나란히 그은 선 사이에 X자 문양이 띠를 이루고 있습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아라비아의 길’, 2017년)

OLYMPUS DIGITAL CAMERA항아리,타이마, 기원전 1천년기 초, 토기에 채색

몸체가 구형에 가깝고 구연부가 넓은 이 항아리는 거친 붉은색 점토로 만들었습니다. 바깥 면에는 평행선 세개가 구연부 아래쪽을 두르고 있고, 그 아래쪽에는 물결선 세 개를 그려 넣어 장식적인 효과를 높였습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아라비아의 길’, 2017년)

OLYMPUS DIGITAL CAMERA항아리, 타이마, 기원전 7세기경, 토기에 채색, 항아리, 타이마, 기원전 7세기경, 토기

OLYMPUS DIGITAL CAMERA팔찌, 타이마.사나이예, 기원전 1천년기 초

타이마의 무덤군에서 모두 여덟개의 조개 팔찌가 발굴되었습니다. 각 팔찌는 큰 조개껍질을 한 방향으로 자른 뒤 조개 안을 제거하고 잘린 가장자리 부분을 부드럽게 다듬어 만들었습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아라비아의 길’, 2017년)

OLYMPUS DIGITAL CAMERA청룡도끼, 타이마, 기원전 1천년기, 청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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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동검, 타이마, 기원전 1천년기, 청동

타이마에서 출토된 청동무기는 전사를 상징하며 무덤에 부장되었습니다. 기원전 2천년 무렵에 북쪽의 시리아나 레반트 지역에서 사용한 청동검과 형태가 유사하여, 타이마와 레반트 지역 사이의 직접적인 교류를 알 수 있습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아라비아의 길’, 2017년)

OLYMPUS DIGITAL CAMERA목걸이, 타이마.사나이예, 기원전 1천년기 초, 조개껍질.돌.유리.나무

펜던트의 크기와 모양, 재질이 다양합니다. 양 끝에 구멍이 뚫린 것으로 보아 줄을 꿰어 목걸이로 사용했던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아라비아의 길’, 2017년)

나보니두스(Nabonidus)
기원전 6세기 중반 바빌로니아의 왕 나보니두스가 10년 동안이나 타이마에 머물렀던 이유는 정확히 밝혀지지 않았습니다. 이전 아시리아의 왕들이 그러했듯이 그 역시 부유했던 북서 아라비아 지역을 지배하고 싶었던 것으로 추측해 볼 수 있습니다. 최근에 발견된 명문에서 그가 이곳에서 활발한 건축 사업을 펼쳤다는 것이 밝혀졌습니다. 나보니두스가 타이마에 머물면서 메소포타미아 문화가 이 지역에 널리 확산 되었습니다. 하지만 그가 떠난 바빌로니아는 아케메네스 왕조의 본격적인 침략을 받고 몰락의 길로 접어들었습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아라비아의 길’, 2017년)

OLYMPUS DIGITAL CAMERA노니두스 석비, 탁본, 타이마, 기원전 6세기 중엽, 사암

긴 옷을 입고 왕관을 쓴 긴 수염의 인물로 왕을 표현하는 것이 당시 아시리아 왕을 묘사하는 일반적인 방법이었습니다. 아치모양의 비석 윗부분에 희미하게 보이는 인물은 타이마에서 10년동안 머무른 나보니두스왕(기원전 556 ~ 539 재위)으로 추정됩니다. 그의 주변에는 초승달, 날개달린 태양, 별과 같은 상징적인 도상들이 함께 나타나 있습니다. 일부 판독 가능한 설형문자는 나보니두스가 타이마에 세운 화려한 건축물에 대해서 언급하고 있습니다. 이 명문은 나보니두스가 아라비아 북서지역에서 정주했다는 것을 증명하는 이른 시기의 사료 중 하나입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아라비아의 길’, 2017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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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문이 있는 원판, 타이마, 기원전 6세기 중엽, 사암

설명문자가 새겨진 두 조각은 원판모양의 조각 일부였습니다. 가장자리에 신바빌로니아 설명문자로 “바빌로니아의 전능한 왕 – 나보니두스의 그림과 석비”라는 글이 새겨져 있습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아라비아의 길’, 2017년)

OLYMPUS DIGITAL CAMERA주춧돌, 타이마, 기원전 5~4세기, 사암

타이마의 함라 사원 유적에서 출토된 이 정육면체 형태의 돌은 건축물의 기단부를 장식했던 주춧돌로 추정됩니다. 두 면에 걸쳐 새겨진 도상들은 매우 다양합니다. 태양원반을 들고 있는 소가 중심에 있고 이는 이집트의 아피스 황소와 매우 유사하며 긴 옷을 입은 사제와 초승달과 날개달린 태양 등 메소포타미아 지역의 도상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도상들도 혼재되어 있습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아라비아의 길’, 2017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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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라 석비, 타이마.사스르 함라, 기원전 4세기경, 사암

상부에 메소포타미아 지역에서 많이 볼 수 있는 상징적인 도상들이 있고, 아랫부분에 일부 판독이 가능한 아람 어 명문이 새겨져 있습니다. 고대 근동지역에서 아람 어는 국제 무역어였습니다. 명문에는 리흐얀 왕실 가문의 아들이 봉헌물을 바친다는 내용이 담겨 있습니다. 이로써 이 비석의 연대는 타이마가 리흐얀왕조의 지배 아래 있던 기원전 4세기경임을 추정할 수 있습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아라비아의 길’, 2017년)

OLYMPUS DIGITAL CAMERA그림이 새겨진 석판, 타이마, 기원전 4세기, 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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묘비, 타이마, 기원전 5~4세기, 사암

사암으로 만들어진 이 비석에는 직사각형의 틀 안에 낮은 부조로 사람의 얼굴이 새겨져 있습니다. 아래쪽에는 “자드의 아들 타임을 기념하여”라는 아람어 명문이 새겨져 있습니다. 이러한 형태의 비석은 남부 아라비아에서 나타나는 것으로 북서부 아라비아와 남부 지역 간의 문화적 교류를 보여줍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아라비아의 길’, 2017년)

OLYMPUS DIGITAL CAMERA머리조각상, 타이마, 기원전 4~2세기, 사암

머리의 크기로 보아 원래 약 4 m 크기의 거대한 석상의 일부분이었습니다. 이집트 인들처럼 머리카락을 뒤로 빗어 넘긴 모습이지만 리흐얀 왕들을 표현한 조각상들과도 비슷합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아라비아의 길’, 2017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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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상 조각, 타이마, 기원전 4~2세기, 사암,

이 석상은 무릎까지 덮는 천을 두르고 있었습니다. 천을 고정시키는 벨트 왼쪽 끈 부분에 붉은 안료가 남아 있어 이 조각상이 일부 채색되었던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뒷면은 편형하여 기둥이나 벽면에 기대에 세워졌을 것입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아라비아의 길’, 2017년)

OLYMPUS DIGITAL CAMERA제단의 부분, 타이마, 까스라 함락, 기원전 5~4세기, 사암

붉은 사암으로 만든 이 물건은 탁자나 제단 등 종교용품의 아랫부분으로 추정됩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아라비아의 길’, 2017년)

OLYMPUS DIGITAL CAMERA아람어 명문이 있는 세면대, 타이마, 기원전 1세기경, 사암

녹색을 띠는 사암 덩어리를 조각하여 만든 이 세면대에는 아람어 계열인 나바테아 문자로 쓰여진 명문이 있습니다. 그 내용은 아합이라는 사람이 자신과 후손들의 영혼을 위해 여신 만화에게 봉헌한다는 것입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아라비아의 길’, 2017년)

아인자완(Ayn Jawan)
타투만의 북서쪽에 위치한 아인 자완은 아라비아에서 매우 규모가 큰 유적지 중 하나입니다. 이곳에서 9개의 방으로 조성된 대규모 가족 무덤이 발굴되었습니다. 무덤에는 남성 3명, 여성 1명이 묻혀 있었고, 금 목걸이와 귀걸이와 같은 화려한 보석들이 함께 묻힌 여자 아이의 무덤도 있었습니다. 이 가족 무덤은 지중해 지역과의 교역으로 막대한 부를 축적한 상류층 가문의 것입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아라비아의 길’, 2017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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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걸이.펜던트, 아인 자완, 2세기, 금

OLYMPUS DIGITAL CAMERA목걸이, 아인자완, 2세기, 금.마노.자수정.홍혹수.진주

OLYMPUS DIGITAL CAMERA귀걸이, 아인자완, 2세기, 금

OLYMPUS DIGITAL CAMERA장신구, 아인 자완, 2세기, 금.진주.준보석

타즈의 무덤(Tomb of Thaj)
1998년 여름, 아라비아 북동쪽 주바일에서 80킬로미터 떨어진 작은 마을인 타즈에서 1세기 무렵에 조성된 6세로 추정되는 어린 소녀의 무덤이 발굴되었습니다. 놀랍게도 소녀의 얼굴에는 황금 가면이 놓여 있었고 금과 루비, 진주, 터키석으로 장식된 목걸이와 아르테미스 여신이 새겨진 금귀걸이를 차고 있었습니다. 소녀 주변에는 200개가 넘는 금으로 된 단추들이 널려 있었습니다. 지중해에서 온 화려한 수입품들이 가득한 이 무덤은 부유한 가문의 자녀에 대한 애뜻한 사랑뿐만 아니라 아라비아 동쪽까지 확산된 그리스 헬레니즘 문화의 흔적을 보여줍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아라비아의 길’, 2017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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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모양의 침대 다리, 타즈, 텔 알지에르, 1세기, 철.역청.납.

소녀가 누웠던 침대는 지중해 양식으로 꾸몄고, 침대 다리는 어린 아이의 모습으로 만들었습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아라비아의 길’, 2017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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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메오가 있는 목걸이, 타즈.엘 알자예르, 1세기, 금.진주.터키석.루비

소녀의 머리맡에 있던 목걸이는 루비, 진주, 터키석으로 장식되었습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아라비아의 길’, 2017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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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금가면과 황금장갑, 타즈.엘 알자예르, 1세기, 금

소녀가 얼굴에 쓰고 있던 황금 가면에는 얼굴의 특징적인 부분만 간단히 표현되었습니다. 가면의 크기로 보아 여자 아이를 위해 특별히 제작되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아라비아의 길’, 2017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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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신구(팔찌, 목걸이, 금판), 타즈.텔 알지예르, 1세기, 금.진주.터키석.루비

소녀가 누웠던 자리에서 발견된 금판의 일부에는 제우스 신의 형상이 새겨져 있습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아라비아의 길’, 2017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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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전자, 타즈, 기원전 3~1세기, 토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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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각상, 타즈, 기원전 3~1세기, 토기에 채

  1. 안내문, 중앙박물관 특별전, 2017년
  2. 위키피디아, 2019년

 

 

[중앙박물관특별전, 이집트보물전] 신성한 동물들

고대 이집트 종교에서는 동물들도 신성한 존재로 여겼으며, 수많은 신들과 동물들의 특징을 연관지어 신과의 매개체로 여겨습니다. 초기에는 조각상 등으로 만들어져 신전에 모셔졌으며, 후대에 미라로 만들어져 신에게 받쳐졌다. 바스테트와 연관된 고양이를 비롯하여 호루스를 상징하는 매, 태양신 레(Re)와 동일한 존재로 여겨졌던 암사자 여신 사크메트, 혼돈과 두려움의 존재인 소베크를 상징하는 악어, 고대 멤피스에서 숭상받았던 아피스 황소 등 다양한 동물들이 신을 상징하는 신성한 동물로 여겨졌다.

신성한 동물들
이집트인들은 영원한 삶을 얻기 위해 자신이 가지지 못한 능력을 동물에게서 찾고자 했습니다. 그리고 그 능력은 곧 신의 능력이었습니다. 그들은 동물이 사람과 함께 창조되었다고 믿었을 뿐만 아니라 신처럼 자신을 보호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수많은 신들을 숭배하던 이집트인들에게 다양한 동물의 특성들은 신들과 비교할 때 좋은 대상이었습니다. 그 결과 동물의 얼굴을 한 신이 등장하게 되었고, 때로는 동물 그 자체가 신으로 여겨져 신전에서 길러지기도 하였습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17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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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의 관, 기원전 664~332년(제26왕조 ~ 제31왕조), 나무.아마천.고양이

고양이는 고대 이집트에서 가장 흔하게 미라로 만들어진 동물 가운데 하나입니다. 고양이 미라는 바스테트, 사크메트(Sakmet)와 같은 고양이과 동물과 연결된 신과 관련됩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17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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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의 관, 사카라, 기원전 664 ~332년(제26왕조 ~제31왕조), 나무.고양이

고대 이집트에서는 정교하게 금박을 입힌 고양이 형상의 목관에 고양이 미라가 안치되는 경우가 있었습니다. 이 나무로 만들어진 고양이 모양 관에도 고양이가 들어가 있었습니다. 머리 부분에는 도금한 흔적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17년)

OLYMPUS DIGITAL CAMERA고양이의 관, 사카라, 기원전 850 ~ 540년(제22왕조 ~ 제26왕조), 청동, 아마천.고양이

새끼 고양이 조각상과 관 안에 안치된 동물 미라가 함께 등장하는 것은 봉헌용 조각상에서 봉헌용 동물 미라로 넘어가는 시기의 과도기적 유물임을 알 수 있습니다. 동물 미라와 조각상은 모두 신에게 바치는 동일한 목적을 갖고 있습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17년)

OLYMPUS DIGITAL CAMERA고양이와 쥐, 테베, 기원전 1295 ~ 1075년경(제19왕조 ~ 제20왕조), 석회석에 안료

귀족과 같은 옷차림으 통통한 쥐가 의자에 앉 술잔과 꽃(혹은 생선가시), 직물 조각으로 보이는 물건을 들고 있습니다. 그 앞에 있는 홀쭉한 고양이는 쥐의 시종과 같은 모습으로 부채질을 하면서 다리를 묶은 가금류를 쥐에게 건네고 있습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17년)

OLYMPUS DIGITAL CAMERA땃쥐의 관, 기원전 664 ~ 30년(제26왕조 ~ 프톨레마이오스 왕조, 청동.땃쥐

OLYMPUS DIGITAL CAMERA땃쥐의 관, 기원전 664 ~ 30년(제26왕조 ~ 프톨레마이오스왕조), 청동.땃쥐

이집트인들은 야성성 땃쥐를 숭배하였습니다. 야행성인 이집트몽구스처럼 땃쥐도 뱀을 물리치는 동물로 여겨졌기 때문입니다. ‘밝은 눈’이라는 의미를 갖는 케티이르티(Khenti-Irty)는 어둠 속에서도 볼 수 있다고 하는데 바로 땃쥐는 켄티이르티의 야행성을 나타냅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17년)

OLYMPUS DIGITAL CAMERA따오기의 관, 투나 엘게벨, 기원전 305 ~ 30년(프톨레마이오스 시대), 나무.은.금.수정.아마천.따오기

정교하게 도금된 이 따오기 형태의 관 안에는 따오기 미라가 있습니다. 수정으로 만든 뒤 금 테두리를 입힌 눈, 도금된 몸체, 그리고 은으로 된 다리와 섬세한 묘사가 돋보이는 발은 이 관이 훌륭한 동물 관으로 뽑히는 이유입니다. 따오기는 달, 지혜, 글의 신으로 알려진 토트를 상징하는 동물입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17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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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의 관, 사카라, 기원전 664 ~30년(제26왕조 ~ 프톨레마이오스 왕조), 구리.합금.새.아마천

이 관에는 새의 미라 두 개체가 들어 있었습니다. 이집트 신전처럼 생긴 이 관의 양 옆면에는 이시스와 네프티스가 애도하고 있는 모습이 새겨져 있습니다. 관의 뒷부분에는 오시리스의 척추를 상징하는 제드 기둥이 남아 있습니다. 이 관을 만든 주인공은 ‘리헤테크’라는 남성인데, 이처럼 특이한 형태의 관을 제작한 이유에 대해 서는 밝히지 않았습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17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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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 모습의 호루스, 기원전 664 ~ 30년(제26왕조 ~ 프톨레마이오스 왕조), 청동.금

‘이중관’을 쓰고 있는 매는 오시리스의 적법한 왕위 계승자인 호루스를 상징합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17년)

OLYMPUS DIGITAL CAMERA샤크메트(Sakhmet), 기원전 664 ~ 332년(제26왕조 ~ 제31왕조), 청동

몇몇 신화에서 암사자 여신 사크메트는 태양신 ‘레(Re)’의 눈과 동일한 존재로 인식되었습니다. ‘레’의 눈은 모든 적으로부터 태양신 자신을 보호하는 위력을 가졌기 때문에 사크메트 역시 매우 강력한 힘을 가지게 되어 때로는 위협적인 존재로 여겨졌습니다. 이때는 사람의 피처럼 보이는 붉은 맥주만이 사크메트의 화를 달랠 수 있었는데, 맥주는 그녀를 고양이처럼 조용하게 만드는 효과가 있었다고 합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17년)

OLYMPUS DIGITAL CAMERA소베크(Sobek), 기원전 664 ~ 30년(제26왕조 ~ 프톨레마이오스 왕조), 청동

소베크는 흔히 악어 머리에 인간의 몸을 한 것으로 묘사됩니다. 고대 이집트 사람들은 소소한 일상의 문제점들을 해결해 달라는 바람과 함께 악어 미라를 소베크에게 봉헌했습니다. 다 큰 악어는 위험했기 때문에 주로 어린 악어를 잡아 미라로 만들어 바쳤습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17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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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브라를 쥐고 있는 이시스, 기원전 1세기, 로마 시대, 청동

이집트 신앙의 복잡한 성격은 각각의 신들이 가진 특징적인 물건을 통해 드러납니다. 오시리스의 아내 이시스가 들고 있는 고브라는 남편을 부활시키고, 그녀의 아들 호루스를 보호하는 마법의 힘을 상징합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17년)

OLYMPUS DIGITAL CAMERA아누비스(Anubis), 사카라, 기원전 664 ~ 30년(제26왕조 ~ 프톨레마이오스 왕조)

아누비스는 미라를 방부 처리하는 미라제작자, 죽은자를 심판하는 재판의 기록관, 죽은 자를 사후 세계로 인도하는 안내자로 묘사되었으며 가끔은 미라의 수호자이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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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코원숭이, 신왕국시대 이후, 나무

개코원숭이는 따오기와 마찬가지로 글쓰기와 지식의 신인 토트에게 바쳐지던 봉헌물이었습니다. 나무로 만든 개코원숭이 조각상은 토트의 신전을 꾸미던 장식품입니다. 작은 공예품처럼 만든 것은 개코원숭이 이라를 장식하던 것이며,청동으로만든 조각상은 토트를 숭배한 서기들이 사용한 상징물입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17년)

OLYMPUS DIGITAL CAMERA사자, 소하그 혹은 빌라나, 기원전 3300 ~ 3100년경(나카다 3기), 페그마카타이트(화강암의 일종)

머리만 남아 있는 이 사자 조각상은 형태로 보아 이른 시기에 만들어진 동물조각상으로 보입니다. 이집트에서는 예로부터 사자가 왕의 힘과 권력을 상징했기 때문에 이 조각상은 왕의 권력을 드러내는 용도로 사용되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17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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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렛세게르(Meretseger), 사카라, 기원전 1479 ~ 1400년경(제 18왕조), 사암에 채색

사람의 머리에 코브라의 몸을 가진 이 여신은 얼굴과 왕관에 있는 두 손가락의 특징적인 모습을 보아 풍요와 풍년을 관장하는 신인 ‘메셋세게르’로 보입니다. 테베의 수호신 메셋세게르는 ‘왕가의 계곡’과 그 일대에서 일하는 장인들을 보호한다고 여겨졌습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17년)

OLYMPUS DIGITAL CAMERA하마, 기원전 664 ~ 30년(제26왕조 ~ 프톨레마이오스 왕조), 석회석

사원에 봉헌된 이 독특한 조각상은 종 모양의 몸체에서 튀어나오 ㄴ두 동물의 머리가 특징적입니다. 머리와 귀를 보면 하마인 듯하지만, 비늘이 덮힌 피부는 악어와 비슷합니다. 수컷 하마의 조각상은 위험, 혼돈, 무질서의 신인 세트(Seth)를 뜻하고, 암컷 하마는 출산과 다산의 여신 타와레트(Tawaret)를 상징합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17년)

OLYMPUS DIGITAL CAMERA뱀의 관, 기원전 664 ~ 30년(제26왕조 ~ 프톨레마이오스 왕조), 청동

이 관에서 볼 수 있는 사람 머리를 한 코브라는 태양신 아툼(Atum)을 나타냅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17년)

OLYMPUS DIGITAL CAMERA악어가 있는 새김돌, 다함사, 기원전 1295 ~ 1070년경(제19왕조 ~ 제20왕조), 석회석

악어가 새겨진 이 새김돌은 제단과 함께 신전에 놓여 있던 것으로 악어 숭배에 사용되었습니다. 새김돌의 윗부분에서 제단 형상의 주춧돌 위에 있는 악어는 깃털 두 개와 태양 원반으로 이루어진 왕관을 쓰고 있으며, 그 오른편에는 음식과 꽃이 봉헌되어 있습니다. 아랫부분에는 관을 쓰지 않은 두 마리의 악어가 비어 있는 봉헌 탁자를 마주하고 있습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17년)

OLYMPUS DIGITAL CAMERA개코원숭이 장식, 사카라, 기원전 305 ~30년(프톨레마이오스 시대), 리넨

OLYMPUS DIGITAL CAMERA오릭스 모양의 접시, 기원전 1390 ~ 1352년경(제18왕조), 나무

사막에 사는 영양의 일종인 오릭스는 정의의 신인 마아트(Ma’at)를 위협하는 악마의 신으로 여겨졌습니다. 오시리스의 적으로도 인식된 오릭스는 보통 묶여 있는 상태로 표현되었습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17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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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과 함께 있는 호루스, 기원전 3세기(프톨레마이오스 시대), 동석

이집트인들은 이시스가 호루스를 세트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습지에 숨겨서 길렀다고 믿었습니다. 습지에서 자란 호루스는 전갈과 독사의 공격을 이겨냈으며, 이러한 전설은 주술적인 새김돌(이집트어로 ‘카푸스(Cappus)’, 마법의 석비’라는 의미가 만들어지는 배경이 되었습니다. 이 새김돌에는 악어를 딛고 서서 양손에 뱀과 전갈을 쥐고 있는 어린 호루스가 새겨져 있습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17년)

OLYMPUS DIGITAL CAMERA황소의 머리, 기자, 기원전 664 ~ 332년(제26왕조 ~ 제31왕조), 나무.유리.상아

황소는 이로운 힘과 풍요로움을 가져다 주는 신이었습니다. 또한 힘과 생식력은 왕과 연관되었기 때문에 초기 왕들은 자신의 무덤에 황소 미라를 함께 넣었습니다. 신으로 선택된 황소는 특별한 표시가 있었는데, 이마에 흰색 점이 있는 어두운 색의 소가 바로 아피스 황소입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17년)

OLYMPUS DIGITAL CAMERA물고기, 사카라, 기원전 1390 ~ 1336년경(제18왕조), 토기에 채색

흙으로 빚은 다음 아름답게 색을 칠한 이 물고기는 나일강에 사는 ‘틸라피아(tilapia)’를 나타낸 것입니다. 틸라피아는 수정된 알을 부화할 때까지 입에 담고 있기 때문에 이집트인들은 이를 부활, 재생, 번식의 상징으로 여겼습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17년)

OLYMPUS DIGITAL CAMERA물고기, 기원전 664 ~ 30년 (제26왕조 ~ 프톨레마이오스 왕조), 청동

‘물고기들의 우두머리’라는 뜻의 이름을 가진 델타의 여신 하트메히트(Hatmehit)는 물고기 쉴브(shilbe)의 모습 혹은 물고기 장식을 한 여인으 모습으로 등장합니다. 한편 물에 빠져 죽은 오시리스의 몸을 물고기가 내세에서 부활하기 전에 뜯어 먹었다는 신화 때문에 일반인들과는 달리 왕족은 물고기를 먹을 수 없었습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17년)

OLYMPUS DIGITAL CAMERA아피스 황소 (Apis Bull), 기원전 664 ~ 30년(제26왕조 ~ 트톨레마이오스 왕조), 청동

아피스 황소는 동물 중에서도 가장 신성하게 여져졌습니다. 고대 그리스 역사가 헤라도토스는 아미스 황소를 ‘검은 이마에 하얀 다이야몬드가 박혀 있고, 등에는 독수리처럼 날개가 달렸으며, 꼬리에는 털이 두 가닥 있고, 혀 아래에는 쇠똥구리 모양의 표시가 있다”고 했습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17년)

OLYMPUS DIGITAL CAMERA동물무늬 건축용 장식, 헤라클레오클리스, 기원후 4세기(로마시대), 석회석에 채색

둥근 덩굴무늬 안에 동물이 새겨진 이 새김돌은 건물을 장식하던 부재의 일부입니다. 여기에는 야생돼지가 가젤을 쫓고 있고, 하이에나는 개를 쫓고 있는 모습이 담겨 있습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17년)

OLYMPUS DIGITAL CAMERA개구리, 원숭이, 고슴도치

개구리. 개구리 조각상은 글을 새겨 부적으로도 사용했는데, 특히 안전한 출산과 다산을 기원하는 여인들에게 인기가 많았습니다. 이집트 사람들은 부활의 시기인 신년에 개구리 조각상을 선물로 주고 받았다고 합니다. 원숭이. 귀에 구멍이 뚫려 있는 것으로 보아 원래는 금속 귀걸이를 하고 있던 것으로 보입니다. 이집트인들은 인간 흉내를 곧잘 내고 익살스러운 원숭이를 좋아했습니다. 고슴도치.고슴도치는 식량이 부족해지면 오랫동안 땅굴에서 은둔하다가 풍족한 시기가 되면 다시 밖으로 나와 활동합니다. 이집트인들은 이런 습성을 부활관련시켜서 생각했습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17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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숫양을 숭배하는 모습의 비석, 수단 어머라, 기원전 1292 ~1196년경(제19왕조), 사암

이 새김돌의 가장 윗부분에는 “아문 레, 서 아마라 앞 두 개의 땅(이집트)에 있는 왕좌의 주인”이라는 내용의 글이 적혀 있습니다. 그리고 주인공은 양의 머리를 한 사자 앞에 무릎을 꿇고 있습니다. 양은 생색력, 사자는 힘을 상징합니다. 한편 이집트에서의 숫양 숭배는 숫양을 제물로 바치는 유대계 관습과 마찰을 일으키기도 했습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17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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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라피스, 그리스, 기원전 30년 ~ 기원후 335년(로마시대), 대리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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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라피스(앞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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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라피스(뒷면)

이집트를 통치하던 그리스인들은 그리스와 이집트 신들을 결합함으로써 통치를 공고히 하였습니다. 세라피스는 이런 과정에서 나타나 이집트와 그리스 신들이 합쳐진 것을 말합니다. 수염이 난 쪽은 이집트 신 오시리와 그리스 신 제우스, 그리고 수염이 없는 여성스런 모습은 이집트 신 이시스와 그리스 신 헤라가 합쳐진 모습입니다. 그리스에서 만들어진 이 조각상은 사람의 얼굴에 동물의 뿔과 귀를 결합하는 이집트의 관습을 따르고 있습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17년)

<출처>

  1.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 “이집트 보물전”, 2017년
  2. 위키백과, 2018년

 

[중앙박물관특별전, 이집트보물전] 장례의식

고대 이집트인의 사후세계에 대한 생각들은 그들이 남긴 무덤들에서 살펴볼 수 있다. 그들은 영원한 삶을 얻기 위해 생전에 많은 준비를 하였으며 무덤에서 출토된 다양한 껴묻거리와 장례절차를 표현한 문서인 ‘사자의 서’에서 이를 잘 살펴볼 수 있다. 고대 이집트인들은 장례방식인 미이라는 이집트 문명을 대표하고 있으며, 다양한 껴묻거리는 후대 다른 문명권에도 큰 영향을 주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장례방식은 비교적 이른 시기인 초기왕조시대부터 로마시대까지 계속 이어져 왔으며 시대 변화에 따라 다른 문화권과의 교류관계 등 도 잘 반영되어 있다.

부와 명예의 과시, 장례의식
부유한 사람도 가난한 사람도 모두 영원한 삶을 얻기 위해 많은 것을 준비하였습니다. 현재의 삶을 잘 살았다고 하더라도 사후세계에서 부활하지 못한다면, 이는 곧 소멸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실제 자신의 능력을 뛰어 넘는 장례준비를 하였습니다. 경제적으로 여유가 없는 사람들은 값비싼 재료처럼 보이게 하거나, 재료에 상관없이 필요한 물품을 준비하기 위해 여러 방법을 사용했습니다. 무덤에 남겨진 껴묻거리를 보면, 금과 같은 비싼 재료를 사용할 여유가 없는 이들은 재료에 도금을 하거나 금색을 칠하였고, 가난한 사람들은 흙으로 비슷한 모양을 만들어서 사용하였습니다. 그리고 무덤을 파헤쳐 귀한 것들을 훔쳐 재사용하기도 하였습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17년)

OLYMPUS DIGITAL CAMERA인물(이페피) 조각상, 파이윰, 기원전 1870~1750년(제12왕조~제13왕조), 규암.석회석. 죽은이 경제력에 따라 껴묻거리의 적절한 재질을 사용하여 껴묻거리를 만들었음을 보여주고 있다.

이 조각상은 주인공의 형편에 따라 껴묻거리의 재질이 달라질 수 있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저렴한 석회석으로 제작된 봉헌 탁자 위에 앉아 있는 ‘이페피’ 조각상은 값비싼 규암으로 만들었습니다. 이것은 아마도 봉헌 탁자까지 비싼 재료를 사용할 형편이 안 되는 상황을 보여주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17년)

OLYMPUS DIGITAL CAMERA인물(세크엠카) 조각상, 사카라, 기원전 2400~2345년경(제5왕조),

제5왕조의 왕족들은 의자에 앉은 모습으로 자주 표현되었는데, 석회석에 색을 칠해서 만든 받침으로 보이는데 재사용된 것으로 추측됩니다. 석회석으로 만든 판에는 빵, 맥주, 소, 가금류 등 주인공인 ‘세크엠카’가 사후 세계에서 먹을 봉헌물들이 묘사되어 있습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17년)

OLYMPUS DIGITAL CAMERA껴묻거리가 그려진 관의 일부, 아시우트, 기원전 2006~1875년경(제11왕조 ~ 제12왕조), 나무에 안료. 무덤에 들어갔던 껴묻거리의 내용을 보여주는 내용으로 죽은이의 경제력을 잘 보여주고 있다.

중왕국 시대에는 관을 사람모양이 아닌 직사각형 모양으로 만들었으며, 이 안에 미라로 만든 주검을 넣었습니다. 이 나무 판은 관 옆에 해당하는 부분으로 내용을 살펴보면 왼쪽부터 다섯 개의 기름 단지가 놓여 있는 탁자, 미라 제작용 재료가 들어 있는 일곱 개의 아마천 가방이 놓여 있는 침대, 그리고 샌들 한 켤레와 거울이 있습니다. 이 그림의 내용은 미라가 무덤에 들어갈 때 함께 넣었던 껴묻거리를 그려 넣은 것으로 무덤 주인공의 경제력을 가늠할 수 있습니다. 나무판의 두께가 비슷한 시기에 출토된 관들에 비해 얇은 점도 이 주인공의 경제적인 상황을 반영하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17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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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웬아문) 조각상, 테베(룩소르), 기원전 50년경(프톨레마이오스시대), 석회석. 그리스 문화의 영향을 받아 신체를 사실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석회석은 무른 것부터 단단한 것까지 경도가 다양하며, 단단할수록 조각하기 더 어렵고 조각가들의 숙련된 기술이 필요했습니다. 이집트에서는 조각상을 제작할 때 무른 석회석을 사용하였다는 것을 감추기 위해 조각상을 대부분 채색하였습니다. 값싼 재료를 사용해서라도 조각상을 만든 이유는 사후세계에서도 죽은 이의 영혼인 ‘카(ka)’가 이 조각상에 머물면서 음식을 봉헌받기 위해서는 꼭 필요했기 때문입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17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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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센네페르) 조각상, 기원전 1938~1837년경(제12왕조), 석회석에 채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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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사하토르) 조각상, 테베, 기원전 1818~1630년경(제12왕조 ~ 제 13왕조), 석회석에 채색

조각상을 값비싼 재료로 만들 경우에는 색을 칠하지 않지만, 값싼 재료를 사용할 경우에는 따로 색을 입혔습니다. 이 ‘사하토르’의 조각상도 값싼 석회석으로 모양을 만들고, 색을 칠한 것입니다. 그리고 옷에 봉헌문을 쓴 것은 재료를 아끼기 위함이었습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17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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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성 조각상, 아리카, 기원전 2200~2170년경(제4왕조), 석회석에 채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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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 조각상, 테베 데이르 엘메디나, 기원전 1336~1279년경(제18왕조 ~제19왕조), 석회석에 채색

이집트 사람들은 조상의 조각상을 집에 모셔 놓고 사후세계에서의 편안한 삶을 기원하였고, 산 자와 죽은 자가 소통하는 의식에 사용하였습니다. 이러한 조각상의 경우에도 경제적인 차이에 따라 다양한 재료가 사용되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는 집안의 경우에는 석회석이나 더 비싼 재료를 사용하였지만 그렇지 못한 경우에는 흙으로 조상의 모습을 빚기도 하였습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17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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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례용 토기, 테베, 기원전 1479~1279년경(제18왕조 ~ 제19왕조), 토기에 채색

돌로 만든 그릇은 상당히 어려운 작업을 거치기 때문에 값이 비싼 물건이었습니다. 이 토기를 주문한 아몬의 사제인’네페르헤르’는 돌로 만든 그릇을 가지고 싶었지만 경제적 여건이 허락되지 않은 듯 합니다. 그리하여 ‘네페르헤르’는 토기 겉면에 화강암과 같은 색을 입히고, 무늬를 그리는 방법을 선택하였습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17년)

OLYMPUS DIGITAL CAMERA목축장면 새김돌, 텔 엘이마르나, 기원전 1350~1333년 (제18왕조), 석회석

염소를 앞세우고 늙은 염소지기가 따라가고 있는 장면이 그려진 새김돌입니다. 염소지기는 작은 솥의 손잡이를 끼운 장대를 왼쪽 어깨에 메고 오른손에는 막대를 쥐고 염소를 몰고 있습니다. 염소지기는 얼굴도 투박하고, 배도 볼록하게 나와 초라한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이집트에서 이렇게 나이가 든 모습으로 묘사되는 경우는 하층민에서만 나타나고 있으며, 상대적으로 왕과 귀족은 주로 젊은 시절의 모습으로 표현됩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17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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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헌 의식 새김돌, 사카라, 기원전 1539~1292년경(제18왕조), 석회석

죽은 이와 그의 아내는 봉헌 탁자 앞에 앉아 있고 맞은편에는 이들의 아들이 서서 봉헌을 하고 있고, 딸은 아들 뒤편에 앉아 있습니다. 위쪽과 아랫쪽 글자의 형태가 다른데, 이것은 다른 사람의 것을 재사용한 흔적으로 추측됩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17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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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에로글리프 새김돌, 라훈, 기원전 1844~1835년경(제12왕조), 석회석

이 새김돌에 새겨진 히에로글리프는 미라를 제작할 때 사용되는 봉헌과 의식에 대해 기록한 것입니다. 윗부분에 남아 있는 별 모양 무늬는 이 의식들이 밤에 행해졌다는 것을 암시하고 있습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17년)

OLYMPUS DIGITAL CAMERA발덮개, 기원후 1세기경, 로마시대, 석고에 채색.도금

OLYMPUS DIGITAL CAMERA발덮개 바닥에 그려진 그림. 죽은이의 적들이 표현되어 있다.

발덮개는 부유한 상류층만이 사용할 수 있는 사치품이었습니다. 가면이나 미라 덮개는 직접 만들어 서라도 갖춰야 할 필수품이었지만, 발 덮개는 그러한 부류에 속하지 않았습니다. 이 발 덮개 바닥면에는 적들이 묘사되어 있는데, 이는 죽은 이가 사후세계에서 적들을 물리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17년)

OLYMPUS DIGITAL CAMERA미라덮개, 기원후 4세기, 로마시대, 테라코타에 채색

흙으로 만든 이 미라 덮개는 로마 시대 이집트에서 빈부 격차가 장례물품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잘 보여줍니다. 손으로 직접 얼굴 모양을 빚고, 색을 칠해 얼굴을 완성한 이 덮개는 죽은 이의 가족이 직접 만들었을 것입니다. 경제적인 여유가 없는 사람들도 영원한 삶을 보장받기 위해서 반드시 갖춰야 할 물품들을 흙으로라도 빚어서 갖추고자 했음을 보여줍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17년)

OLYMPUS DIGITAL CAMERA관 덮개, 게벨 엘실실라, 기원전 1292 ~ 1075년경(제19왕조 제20왕조), 테라코타에 채색

이 관 덮개는 상감기법을 모방히기 위해 흰색으로 칠한 눈에 눈종자를 파란색으로 그렸습니다. 겉면이 노란 것은 금을 모방하기 위한 것으로 보입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17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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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성 미라 가면, 기원후 1세기, 로마시대, 벽토에 도금.채색

부유한 상류층 사람들은 금박을 입힌 가면을 구입하여 껴묻거리로 사용하였습니다. 이 남성 가면은 황금 가면처럼 보이기 위해 점토로 만든 가면의 표면 일부분에 금박을 하고, 나머지 부분은 노란색으로 채색하였습니다. 눈은 상감을 모방하기 위해 희색 바탕에 파란색으로 외곽선을 그렸습니다. 머리 부분에는 주인공의 사후세계에서의 삶을 기원하는 의미에서 부활과 재생을 상징하는 날개달린 쇠똥구리 모양 장식인 스카라브가 표현되어 있습니다. 머리를 덮는 장식용 천에는 오시리스 앞에 서 있는 미라가 양쪽에 그려져 있는데, 이는 사후세계에 들어서기 위한 심판을 암시합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17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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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미라 덮개, 하와라, 기원후 1세기 로마시대, 암마천에 회칠후 도금.유리.아이앙스

이 미라 덮개는 머리카락과 옷 주름이 매우 섬세하게 표현되어 있습니다. 여성의 눈은 유리로 장식되었고, 목걸이에 보석들이 박혀 있으며, 뱀모양의 팔찌를 양손에 하나씩 차고 있습니다. 그리고 금박을 입혀 화려함을 더했습니다. 전체적인 모습과 재료들로 보아 이 주인공은 상류층에 속하는 여성이었을 것 입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17년)

OLYMPUS DIGITAL CAMERA미라가면, 기원전 1938~1292년경(제12왕조~제18왕조), 판지

이 가면은 크기가 작고 금으로 장식된 점에서 상류층에 속하는 아이의 무덤에서 나온 것으로 보입니다. 아이의 앳된 모습을 잘 표현하였지만, 사후세계의 왕인 오시리를 상징하는 수염을 함께 표현한 것이 특이합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17년)

OLYMPUS DIGITAL CAMERA미라가면, 기운후 2세기, 로마시대, 석고에 채색

로마시대에 석고로 만든 가면은 이집트이 전통을 이은 마지막 단계의 것입니다. 이 개성적인 로마 양식의 가면은 전통적인 이집트 가면과 마찬가지로 미라의 얼굴을 덮을 때 사용한 것입니다. 머리모양과 수염은 당시 로마에서 유행하던 모습을 그대로 표현하였습니다. 현재는 피부가 하얗게 보이지만 원래는 이집트 초기의 남성 미라 가면처럼 짙은 붉은색으로 칠해져 있었을 것입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17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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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덮개, 토우라, 기원전 664~352년(제26왕조 ~ 제31왕조), 테라코타에 채색

흙으로 만들어진 관 덮개는 비교적 신분이 낮은 사람들이 주로 사용하던 것입니다. 이러한 관들은 특징이나 모양새가 제각기 달라 전문적으로 관을 만드는 사람이 아닌 일반인들이 가정에서 만들었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17년)

OLYMPUS DIGITAL CAMERA미라 가면, 기원후 1세기, 로마시대, 석고에 채색

실물보다 다소 작은 이 가면은 젊은 여성들의 머리모양을 보여줍니다. 머리는 모두 뒤로 넘겨 빗어 정수리쪽에서 묶었고, 드러난 이마 위는 짧은 곱슬머리가 살짝 덮고 있습니다. 머리와 눈은 검정색으로 칠했습니다. 목의 양 옆에는 끈이 남아 있는데, 이는 이 여인이 이집트 머리장식을 쓰고 있었음을 추측하게 합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17년)

OLYMPUS DIGITAL CAMERA‘바(ba)’가 그려진 관의 일부, 기원전 945~712년경(제22왕조), 나무와 석고에 채색. 죽인이의 영혼을 뜻하는 사람얼굴을 하고 있는 새의 모습은 그리스신화에서는 사이렌으로 바뀌었다. 이집트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이집트 사람들은 자신들의 영혼인 ‘바’를 사람의 머리를 한 새로 표현하는데, 관 안쪽 면에 주인공으로 짐작되는 이의 얼굴을 한 ‘바’가 날개를 활짝 펴고 있습니다. 뒷면에는 죽인 이를 보호하는 ‘이시스의 매듭’이 그려져 있습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17년)

OLYMPUS DIGITAL CAMERA아이의 관, 기원전 3100~3000년경(초기왕조시대), 토기

흙으로 빚은 그릇 같은 이 관은 어린 아이의 무덤에 사용된 것입니다. 윗부분에 턱이 있는 것으로 보아 뚜껑이 있었던 것으로 생각됩니다. 경제적으로 부유하지 않은 가정의 아이들이 이와 같은 형태의 관을 썼을 것입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17년)

OLYMPUS DIGITAL CAMERA카노푸스 단지, 기원전 664 ~ 525년(제26왕조), 석회석

카노푸스 단지는 미라를 만드는 과정에서 신체 내 장기들을 보관히기 위해 만들어졌습니다. 보통 한 세트가 네 개로 이루어져 있는 카노푸스 단지의 뚜껑은 각각 호루스의 네 아들인 ‘자칼(두아무테프)’, ‘매(케베세누프)’, ‘사람(임세티)’, ‘개코원숭이(히피)’ 모양으로 표현됩니다. 이 단지들은 미라 제작 방법이 변화하여 장기를 껴내지 않게 되면서 뚜껑이 열리지 않는 단순 봉헌 용품으로 사용되기도 하였습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17년)

OLYMPUS DIGITAL CAMERA미라붕대, 기원전 332년 ~ 기원후 1세기(프톨레마이오스 시대 ~ 로마시대), 아마천에 잉크

OLYMPUS DIGITAL CAMERA미라붕대에 쓰여진 글과 그림. ‘사자의 서’에 포함된 내용들이 주로 표현되어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글과 그림이 있는 미라붕대

OLYMPUS DIGITAL CAMERA미라붕대

OLYMPUS DIGITAL CAMERA미라붕대

OLYMPUS DIGITAL CAMERA미라붕대.

아마천으로 만든 붕대는 미라 자체를 보호하기도 하였지만, 죽은이를 사후세계로 잘 인도하기 위한 안내서인 ‘사자의 서’의 내용도 담겨 있습니다. 여기에 전시된 붕대에는 죽인이가 이집트의 특정한 장소를 지키는 신들의 이름을 외우는 데 도음을 주는 내용이 있는 ‘사자의 서’ 제112장에서 제116장까지가 적혀 있습니다. 그리고 ‘사자의 서’ 제145장에서 제146장까지의 내용인 ‘갈대밭’에 있는 오시리스의 집으로 들어가는 21개의 문들이 묘사되어 있는 붕대도 있습니다. 각 문에는 이를 지키고 있는 신과 문지기들이 있는데, 이집트 사람들은 이 신들의 이름과 모습을 알아야만 사후세계로 확실하게 들어갈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17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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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례도구(‘입열기 의식’용), 아크밈, 기원전 3300 ~ 3100년경, 흑요석

흑요석으로 만들어진 이 석기와 같은 모양의 칼은 고왕국 시대부터 ‘입열기 의식’에 사용되었습니다. ‘입 열기 의식’은 미라를 무덤에 넣는 과정의 마지막 단계에서 행해지던 의식으로 죽은 이가 사후 세계에서 먹고, 마시고, 말하도록 하는 의식이었습니다. 이러한 도구가 선왕조 시대부터 만들어졌다는 사실은 ‘입열기 의식’의 기원을 추정해 볼 수 있게 합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17년)

OLYMPUS DIGITAL CAMERA미라의 이름표, 기원전 30년 ~ 기원후 365년, 로마시대, 나무에 안료

사후세계에서 영원한 삶을 누리기 위해선 반드시 죽은이의 이름을 남겨 두어야 했습니다. 로마 시대에는 영원한 삶을 위해 나무로 만든 이름표를 미라에 매달아 두었습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17년)

OLYMPUS DIGITAL CAMERA심장 스카라브, 타니스, 기원전 835 ~ 778년경, 제22왕조, 돌. 스카라브라 불리는 쇠똥구리 모양의 부적은 고대 이집트 유물 중에서도 많이 볼 수 있는 형태이다. 이집트인의 정신세계에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집트인은 독립된 감정과 생각을 가졌다고 믿었던 심장이 최후의 심판에서 자신에게 불리한 증언을 하는 것을 두려워했습니다. 이러한 일이 일어나지 않게 하기 위해 부활을 상징하는 쇠똥구리 모양의 부적에 어떠한 죄도 자백하지 말라는 내용의 글귀를 새겨 미라와 함께 부장했습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17년)

<출처>

  1.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 “이집트 보물전”, 2017년
  2. 위키백과, 2018년

 

 

[중앙박물관특별전, 이집트보물전] 그림이 새겨진 새김돌

고대 이집트문명이 남겨준 유물 중 많이 남아 있는 형태인 그림이 새겨진 새김돌이다. 이집트인들은 신전이나 무덤에 벽화를 그리거나 그림을 얇게 새겨 놓았다. 그림들은 신이나 죽은이를 위해 봉헌하는 의식을 표현하는 내용이 많은 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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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이루카프타) 조각상, 사카라, 기원전 2454~1350년경(제5왕조), 석회석

이 조각상의 주인공은 ‘이루카프타’이며, 사후세계에서 풍족한 삶을 누리기 위해 의자 옆면에 봉헌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새겼습니다. 이집트 사람들은 죽은 사람의 영혼인 ‘카(Ka)’가 깃들어 있는 조각상에 그림을 그리면 그 내용이 사후세계에 그대로 적용된다고 믿었습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17년)

OLYMPUS DIGITAL CAMERA새 사냥꾼이 있는 새김돌, 테베(룩소르), 기원전 1539~1425년경(제15왕조), 석회석

이 새김돌에는 새를 사냥하는 모습의 일부가 남아 있습니다. 아마도 오른손에는 부메랑을, 왼손에는 새를 유인하기 위한 미끼용 새를 잡고 있었을 것입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17년)

OLYMPUS DIGITAL CAMERA물고기 잡는 모습이 담긴 새김돌, 기자, 기원전 2500~2170년경(제5왕조 ~ 제6왕조), 석회석에 채색

이상적인 늪지대 풍경을 담은 이 새김돌에는 물고기와 함께 배에서 낚시를 하는 사람이 그려져 있습니다. 이런 내용은 사후세계에서도 배불리 먹기를 바라는 마음을 보여줍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17년)

OLYMPUS DIGITAL CAMERA봉헌의식 새김돌, 푸르나, 기원전 2065~2000년경(제9왕조), 석회석

인테프와 세네테크 부부가 봉헌탁자 앞에 앉아 있습니다. 탁자 위에는 맥주, 빵, 소 머리와 앞다리, 채소, 가젤 머리, 오리 등이 쌓여 있습니다. 부부가 앉은 의자 아래에는 애완견이 있고 부부의 맞은 편에는 아들로 보이는 인물이 서 있는 모습입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17년)

OLYMPUS DIGITAL CAMERA봉헌의식 새김돌, 기르가, 기원전 2170~2008년경(제7왕조 ~ 제11왕조), 석회석에 채색

부부가 봉헌 음식의 원천인 ‘들판’을 의미하는 히에로글리프와 유사한 모양으로 그려진 봉헌 탁자 앞에 서 있는 모습입니다. 오른쪽에는 사후세계에서 이들에게 빵과 맥주를 제공하겠다는 봉헌문이 새겨져 있습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17년)

OLYMPUS DIGITAL CAMERA봉헌탁자 새김돌, 사카라, 기원전 2006~1630년경, 석회석

봉헌 음식이 쌓여 있는 모습이 있는 새김돌로 사후세계에서 먹을 소머리, 생선, 빵, 양파 등의 음식들이 있습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17년)

OLYMPUS DIGITAL CAMERA봉헌탁자 새김돌,기자, 기원전 2500 2350년경(제5왕조), 석회석에 채색

이 새김돌에는 왕실의 높은 관리였던 세튜가 빵이 쌓여 있는 봉헌 탁자 앞에 앉아 있는 모습이 새겨져 있습니다. 여기에 새겨진 글은 주인공에게 사후세계에서 필요한 많은 음식, 음료, 옷, 화장품, 제례용 기름의 제공을 약속하는 내용입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17년)

OLYMPUS DIGITAL CAMERA봉헌의식 새김돌, 기원전 1292 ~ 1190년경(제19왕조), 사암

이 새김돌에는 죽인 이와 그의 아내가 사제로부터 음료와 연꽃을 봉헌받는 모습이 새겨져 있습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17년)
OLYMPUS DIGITAL CAMERA봉헌의식 새김돌, 아비도스, 기원전 1836 ~1700년경(제12왕조 ~ 제13왕조), 석회석

이 새김돌은 ‘페피’라고 불렸던 남자의 새김돌로 그의 집안과 관련된 내용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여기에는 그의 친인척과 시종 11명의 이름이 새겨져 있습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17년)

OLYMPUS DIGITAL CAMERA봉헌의식 새김돌, 기원전 1292~ 1075년경(제19왕조 ~ 제20왕조), 석회석

이 새김돌에는 죽은이와 그의 아내가 나란히 봉헌 탁자 앞에 앉아 있고 그 맞은편에는 히에로글리프(이집트 상형문자)로 새겨진 봉헌문을 읊는 사제가 서 있습니다. 그리고 여섯 명의 여성들이 사제 뒤에 앉아 있는데, 축제를 위한 옷차림을 하고 있으며 꽃을 들어 향기를 맡고 있는것처럼 보입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17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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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헌의식 새김돌, 아비도스, 기원전 2195~1979년경(제7왕조 ~ 제11왕조), 석회석

이집트의 무덤에는 방문객들이 죽은 이에게 봉헌하고 죽은 이의 영혼이 드나드는 문이 있습니다. 이 문은 자페트카의 딸이 자신의 어미니에게 바친것입니다. 윗부분에는 남편 트제수드와 자페트카가 봉헌탁자를 사이에 두고 앉아 있습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17년)

OLYMPUS DIGITAL CAMERA장례의식 새김돌, 사카라, 기원전 1285~1100년경(제10왕조), 석회석

상류층 사람들은 자신의 장례식 때 애도를 대신할 전문가들을 고용하였습니다. 이들은 장례 의식을 치르는 동안 노래를 부르거나 다양한 소리를 내었습니다. 이 새김돌에서 애도전문가들은 무덤 입구를 향해 앉아 있습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17년)

OLYMPUS DIGITAL CAMERA지하세계의 신들이 묘사된 새김돌, 기자 혹은 사카라, 기원전 1332~1250년(제18왕조 ~ 제19왕조), 석회석

고위급 관리인 예푸 무덤에서 출토된 이 새김돌은 지하세계의 네번쨰와 여섯번째 문을 묘사한 『사자의 서』제145장의 한 장면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죽은 이가 문 앞에서 암송해야 하는 주문이 문지기와 함께 새겨져 있습니다. 당시에는 돈을 더 많이 쓸수록 다양한 주문을 가질 수 있었고 사후세계에 더 안정적으로 들어갈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17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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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조각상, 기원전 4세기(후기왕조시대 ~ 프톨레마이오스 시대), 석회석

왕을 기리고 영원한 삶을 바라는 마음으로 그의 흉상을 만들어 사원에 봉헌하기도 하였습니다. 이 흉상은 머리에 쓰고 있는 모자, 어깨를 타고 흘러내리는 천, 이마 부분에 왕권을 상징하는 뱀 등을 보면 왕읖 표현한 것으로 생각됩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17년)

<출처>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 “이집트 보물전”, 2017년
위키백과, 2018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