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 안동 풍산읍 상리에 위치한 예안이씨 상리종택이다. 예안이씨 7세손 이훈의 종택으로 중종대에 처음 지어졌다. 건물은 안채와 사랑채로 이루어진 ‘ㅁ’자형 본채만 남아 있다. 안채는 앞면 7칸 규모로 가운데 넓은 대청마루를 중심으로 양쪽에 방과 부엌 등이 배치되어 있다. 사랑채는 중문을 중심으로 왼쪽편에 3칸 규모로 있으며, 중문 오른쪽 끝편에도 작은 사랑방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 집은 시골의 낡은 부잣집 같은 분위를 주고 있는데 평지에 자리잡고 있다. 대문을 들어서면 본채와 넓은 마당이 있다. 마당 오른쪽에는 아주 오래되어 보이는 작은 연못이 있는데 다른 고택의 연못들보다 잘 만들고 가꾸어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 집이 위치한 풍산읍 상리는 옛 풍산읍치에서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하고 있다. 이 마을은 중종대에 조광조와 친분이 있던 이영.이전.이훈 삼형제가 사화를 피해 낙향하면서 그 후손들이 집성촌을 이루고 있는 마을이다.
예안이씨 상리종택. 마을 입향조 중 한명인 이훈의 종택으로 중종대에 처음 지어졌다. 대문채는 없어지고 현재는 안채와 사랑채로 구성된 본채만 남아 있다. ’ㅁ’자형을 이루고 있는 본채는 건물이 낡아 보이지만 꽤 규모가 있어 보인다.
사랑채는 앞면 3칸 규모로 대청마루와 온돌로 되어 있다.
사랑채에는 ‘시은고택市隱告宅’이라 적힌 현판이 걸려있다.
마을에 있는 예안이씨 충효당과 마찬가지로 마당 한쪽에 작은 연못을 두고 있다. 아마도 풍수적으로 부족한 부분을 보완하기 위해 조성한 것으로 보인다. 다른 고택에 비해 연못이 작거나 크지도 않고, 화려하지도 않으면서 잘 꾸며져 있다.
예안이씨 상리종택, 경북 안동시 풍산읍 상리리
이 건물은 예안이씨 7세손 이훈(1489~1552)의 종택으로 조선 중종 20년 무렵에 세워졌다. 그는 연산군 10년 생원시에 급제하였으나 기묘사화의 참혹함을 보고 나서 벼슬의 뜻을 버리고 낙향하여 이 집을 짓고 살았다. 평지에 자리잡은 남서향집으로 대문채는 없어지고 지금은 ‘ㅁ’자형 정첩만 남아 있다. 정면 7칸, 측면 7칸, 뒷면 5칸 규모의 이 건물은 대청이 좌측에 놓이고 안방이 중앙 쪽으로 나오면서 상방이 대청 앞에 자리잡고 있다. 이러한 구성은 일반적인 ‘ㅁ’자형 주택의 안채가 대청 중앙에 놓이고 좌우로 상방과 안방이 대칭적으로 놓여지는 것과 사뭇 다른 것이다. 또한 이 집의 안채와 같은 칸살 구성은 안동지방에서 보이는 특이한 유형으로, 대개 18세기 이후에 건축된 건물들에서 보이고 있다. <출처:문화재청>
<출처>
1.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한국학중앙연구원
2. 한국향토문화전자대전, 한국학중앙연구원
3. 두산백과
4. 문화재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