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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주 탄금대(명승 42호), 우륵이 가야금을 연주하던 곳이라 여겨진 곳

충북 충주시 칠금동 일대에 있는 탄금대(명승 42호)이다. 삼국시대 가야출신 우륵이 가야금을 연주하던 곳이라 하여 탄금대라 불려왔다. 임진왜란 때 신립장군이 이끄는 조선군이 고니시가 이끄는 왜군을 맞아 큰 패배를 당했던 곳이다. 대문산으로 불렸던 해발 100 m 작은 야산이지만 충주의 주산으로 여겨졌던 곳이다. 충주댐을 지나온 남한강이 속리산에서 흘러 내려온 큰 하천인 달천과 만나는 지점에 위치하고 있다. 하류방향으로는 중앙탑으로 불렸단 탑평리 칠층석탑, 장미산성, 고구려비, 누암리고분군 등 삼국시대 한강유역 차지하기 위한 싸움의 흔적들이 남아 있다.  탄금대의 주인공 우륵 또한 진흥왕이 충주지역을 점령한 후 이주시킨 신라 귀족 집단의 일원이었던 것으로 여겨진다.

OLYMPUS DIGITAL CAMERA충주 탄금대(명승 42호). 삼국시대 가야출신 우륵이 가야금을 연주했던 곳으로 여겨진다. 남한강과 달천이 합류하는 지점으로 빼어난 경치를 자랑한다.

OLYMPUS DIGITAL CAMERA타금대 숲길. 충주시민들을 위한 공원으로 바뀐 지금은 다양한 수목이 울창한 숲을 이루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탄금대가 내려다 보이는 곳에 세워진 정자.

OLYMPUS DIGITAL CAMERA정자에서 내려다 보이는 탄금대.

OLYMPUS DIGITAL CAMERA탄금대 앞을 흐른 남한강. 하류 방향으로 근처에 조정지댐이 있어 남한강 수량이 꽤 많은 것처럼 보인다.

OLYMPUS DIGITAL CAMERA남한강 상류방향.

OLYMPUS DIGITAL CAMERA남한강 하류방향.  이 곳에서 달천과 남한강이 만난다.  탄금대 앞으로 용섬이라는 작은 섬이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전형적인 도시공원의 모습을 하고 있는 공간.

OLYMPUS DIGITAL CAMERA도시공원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조각상

OLYMPUS DIGITAL CAMERA탄금대 충혼탑

OLYMPUS DIGITAL CAMERA팔천고혼위령탑. 임진왜란 때 탄금대전투에서 왜군에 맞서 싸우다 전사한 8천여명의 병사들을 위로하기 위해 세운 탑이다.

충주 탄금대, 명승 42호
탄금대는 해발 108 m 정도의 야트막한 산에 위치하며 남한강과 달천이 합류하는 지점(합수머리)에 자리하고 있다. ‘탄금대’라는 명칭은 악성 우륵선생이 가야금을 연주한데서 유래하였다. 우륵선생은 원래 가야국 사람이었는데 신라 진흥왕이 가야지역을 차지한 후 사민정책에 따라 충주로 이주하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또한 조선시대 선조 25년(1592) 4월 임진왜란시 신립장군은 탄금대에서 8천여명의 병사들과 배수진을 치고 고니시 유키나가 군대에 맞서 싸우다 장렬하게 전사한 옛 전쟁터이기도 하다. 탄금대는 남한강과 달천이 합쳐지는 지점에 위치하여 경관이 아름다워 2008년 명승 42호로 지정되었다. 탄금정 인근에 고대 토성의 흔적이 남아 있으며 충혼탑과 팔천고혼위령탑 등의 현충시설이 있다. (안내문, 충주시청)

<출처>

  1. 안내문, 충주시청
  2. 국가문화유산포탈, 문화재청, 2019년
  3.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소, 2019년

충주 충주댐, 남한강을 막아 조성한 국내 최대 규모의 다목적댐

충북 충주시 종민동과 동량리에 있는 충주댐이다. 남한강 중류 충주시 종민동과 동량면 사이 협곡을 막아서 만든 다목적댐이다. 높이 97.5 m, 제방길이 447 m로 국내 최대규모의 콘크리트 중력댐이다. 댐의 건설로 유역면적이 만수위 때 97 km²에 이르는 엄청난 규모의 인공호수인 충주호를 만들고 있다. 충주댐을 건설하면서 남한강 수로의 교통요지였던 청풍도호부가 있던 청풍면과 단양군 소재지가 수몰되었다. 하류 방향으로 20 km 떨어진 충주시 가금면에 조정지댐이 있으며, 본댐과 조정지댐에 수력발전소를 두고 있다. 충주댐은 전력을 생산하는 발전소의 역할도 있지만, 한강유역 수위를 조절하고 용수를 공급하는데 더 큰 역할을 가지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충주 충주댐. 한강유역 수위를 조절하고 용수를 공급하기 위한 다목적댐으로 소양강댐과 함께 국내 최대규모를 자랑한다. 댐은 콘크리이트 구조물 자체의 무게로 저수지물의 압력을 견딜 수 있도록 건설된 콘크리트 중력댐이다.

OLYMPUS DIGITAL CAMERA홍수 때 물을 방출하는 여수로와 수문.

OLYMPUS DIGITAL CAMERA실제로 수력발전을 한 후 물을 내 보내는 수로

OLYMPUS DIGITAL CAMERA안쪽에서 본 모습

OLYMPUS DIGITAL CAMERA충주댐 건설로 만들어진 인공호수인 충주호. 협곡을 막아 조성한 충주댐 부근은 넓어 보이지 않지만 상류는 청풍면과 단양읍 일대가 수몰될 정도로 넓은 지역을 포함하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댐 안쪽 작은 선착장.

OLYMPUS DIGITAL CAMERA충주댐에서 조금 들어가면 충주호 유람선 선착장이 있다.  이곳에서 40 여 km 정도 떨어진 장화나루까지 유람선이 운행하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충주댐에서 내려다 보이는 남한강. 강폭이 상당히 좁은 협곡 지역이다. 평지와 만나는 동량면 소재지에 남한강을 건너 원주, 제천으로 갈 수 있는 나루터가 있었다.

OLYMPUS DIGITAL CAMERA충주댐 아래에 있는 다리인 충원교에서 본 충주댐

OLYMPUS DIGITAL CAMERA남한강 하류 방향

<출처>

  1. 한국민족문화대백, 한국학중앙연구원, 2019년
  2. 물백과사전, 한국수자원공사, 2019년


 

인제 합강정, 내린천과 인북천인 만나는 곳

강원도 인제군 인제읍 합강리에 있는 합강정(合江亭)이다. 내린천과 인북천이 만나는 곳에 세워진 정자로 조선 숙종 때(1676년) 처음 세워졌음, 여러 차례 중수를 거치면서 오늘에 이르고 있다. 현재의 정자는 1998년 도로 공사로 원래 있던 콘크리이트 정자를 허물면 전통 목조 누각을 복원한 것이다. 정자 뒷편에는 강원감영에서 별여제를 올리던 제단인 강원도 중앙단이 있다.

합강정이 세워진 언덕은 오대산과 방태산에서 발원하여 북쪽으로 흐르는 내린천과 설악산 등에서 발원한 인북천이 만나는 지점이다. 이곳부터 소양강이라 부르며 정자아래에는 나루터인 홍진포가 있었다. 설악산을 자동차를 타고 여행할 때 인제를 지나면 보였던 번지점프대와 함께 볼 수 있는 눈에 익은 풍경이다.

OLYMPUS DIGITAL CAMERA인제 합강정. 앞면 3칸, 옆면 2칸으로 사방이 뚫려 있는 전형적인 2층 누각이다.

OLYMPUS DIGITAL CAMERA오대산에서 발원한 내린천과 설악산에 흘러 내려온 인북천이 만나는 곳에 세워져 있다. 정자 뒷편으로 강원도 별여제를 올리던 중앙단이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합강정 뒷편에 있는 강원도 중앙단. 강원감영에서 주관하여 억울한 귀신을 위한 별여제를 지내는 제단이다.

OLYMPUS DIGITAL CAMERA합강정 정자에서 내려다 보이는 풍경. 오대산과 방태산에서 발원하여 강원도 중부 내륙을 흘러 내려온 내린천이 설악산에서 내려온 인북천과 합류하는 지점이다.

OLYMPUS DIGITAL CAMERA인북천과 내리천이 만나는 지점. 이곳에는 강을 건너는 나루터이 홍진포가 있었으며, 지금은 그 위에 다리가 세워져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이곳에서는 북한강 지류인 소양강이 시작된다.

OLYMPUS DIGITAL CAMERA소양강 옆으로 보이는 인제군 소재지.

OLYMPUS DIGITAL CAMERA합강정 옆에 세워진 번지점프대.

OLYMPUS DIGITAL CAMERA합강정 대신 주변 경치를 감상할 수 있는 전망대.

인제 합강정, 인제군 인제읍 합강리
인제 팔경의 하나인 합강정은 인제에서 가장 일찍 건립된 누각형 정자건물로 이세억 현감 재식시인 숙종 2년(1676)에 건립되었다. 합강정이라는 정자이름은 정자 앞을 흐르는 강이름에서 붙여졌다. 합강리 앞에 흐르는 강물은 동쪽의 오대산, 방태산 등에서 발원하여 흐르는 내린천과 설악산과 서화에서 발원하는 인북천이 홍진포(합강나루터)의 용소에서 합류되어 흐르기 때문에 합강이라고 불렸으며, 합강변을 중심으로 형성된 뛰어난 지세와 경관을 내려다 볼 수 있는 능선에 정자를 건립하면서 합강정으로 이름을 붙인 것이다. 1676년에 인제읍민을 동원하여 지어진 합강정은 화재 등에 의하여 소실된 것으로 보애며, 김선재 현감 재임시인 영조 32년(1756)에 다시 중수되었다. 1760년에 간행된 여지도서에는 “합강정은 십자각 형태의 누각으로 건립되었는데 다섯칸이다”로 기록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18세기 전후에 건립된 합강정은 5칸 규모의 정자였음을 알 수 있다. 이후 1865년에 다시 6칸 건물로 중수된 것으로 전해진다. 근래에 이르러 합강정은 한국전쟁시 폭격에 의해 소실되었으나, 1971년 10월 합강 나루터 능선위에 6칸 규모의 콘크리트 2층 누각으로 신축되어 옛 정자의 모습을 되찾게 되었다. 1983년부터 합강문화제의 제례가 봉행되는 신성한 장소가 되었을 뿐만 아니라 주민들의 휴식처로 이용되어 인제군을 대표하는 전통건조물로 자리잡았다. 지금의 합강정은 1996년 국도확장공사에 의하여 철거된 것을 1998년 정면 3칸, 측면 2칸의 목조 2층 누각으로 복원한 것이다. (안내문, 인제군청, 2011년)

<출처>

  1. 인제군청,
  2. 한국세시풍속사전, 국립민속박물관
  3. 문화재청

영월 청령포(명승 50호), 단종이 왕위를 빼앗긴 후 유배되었던 곳

강원도 영월군 남면 광천리에 있는 청령포(명승 50호)이다. 이곳은 단종이 숙부 수양대군에게 왕위를 빼앗긴 뒤 유배되었던 곳이다. 영월 도심 서쪽 3km쯤 떨어진 곳에 위치하고 있으며, 서강이 굽이쳐 흐르면서 반도같은 지형을 이루고 있다. 동·북·서쪽이 깊은 물로 막히고 육지와 이어지는 남쪽은 육육봉의 절벽으로 막혀 있어 섬과 같은 곳이다. 서강 건너편 나루터에서 배를 타고 들어가야 한다. 단종이 유배되었을 때 머물렀다는 집 주위 울창한 소나무숲과 굽이쳐 흐르는 서강이 빼어난 경치를 자랑하고 있다.

단종은 이곳에서 머물다 홍수로 청령포 일대가 침수되자 영월 관아로 옮겼다가 죽었다. 단종과 관련된 유적으로는 영조때 세운 단묘유지비, 단종시 시름에 잠겼다는 노산대, 외인 접근을 금지하기 위해 세운 금표비가 있으며, 단종이 머물렀던 기와집을 재현해 놓은 단종어가와 단종이 걸터앉아 쉬었다는 관음송(천연기념물 349호)가 있다. 영월읍에는 단종이 마지막으로 머물렀던 영월도호부 관아(사적 534호)와 단종이 묻힌 장릉(사적 196호)가 있다.

SANYO DIGITAL CAMERA영월 청령포(명승 50호). 오대산에서 발원하여 석회암 지대인 영월 일대를 굽이쳐 흐르면서 만들어낸 아름다운 풍경 중 하나이다. 삼면이 강으로 둘러싸여 있으며 뒷편에는 높은 봉우리로 막혀 있어 마치 섬과 같이 외로운 곳이다.

영월 청령포, 명승 50호, 강원도 영월군 남면 광천리
영월군 남면 광천리 남한강 상류에 위치한 단종의 유배지로, 1971년 강원도 기념물제5호로 지정되어 있다. 조선 제6대 왕인 단종이 숙부인 수양대군에게 왕위를 찬탈당하고 상왕으로 있다가,그 다음해인 1446년 성삼문 등 사육신들의 상왕복위의 움직임이 사전에 누설됨으로써 상왕은 노산군으로 강봉되어 중추부사 노득해가 거느리는 군졸 50인의 호위를 받으며 원주, 주천을 거쳐 이곳 청령포에 유배되었다. 청령포는 동, 남, 북 삼면이 물로 둘러싸이고 서쪽으로는 육육봉이라 불리는 험준한 암벽이 솟아있어 나룻배를 이용하지 않고는 밖으로 출입할 수없는 마치 섬과도 같은 곳이다. 단종은 이 적막한 곳에서 외부와 두절된 유배생활을 했으며, 당시에는 이곳에 거처할 수 있는 집이 있어 호장 엄흥도는 남몰래 밤이면 이곳을찾아 문안을 드렸다고 전한다. 그 해 뜻밖의 큰 홍수로 강물이 범람하여 청령포가 물에 잠기게 되니 단종은 영월 동헌의 객사로 처소를 옮겼다. 지금 청령포에는 단종 유배시에 세운 금표비(禁標碑)와 영조때 세운 단묘유지비(端廟遺址碑)가 서있어 옛일을 전하고 있다. 또한 망향탑, 노산대, 관음송이 있다. <출처:영월군청>

SANYO DIGITAL CAMERA배를 타고 건너면 소나무가 울창한 숲을 이루고 있는 단종유배지로 들어갈 수 있다.

SANYO DIGITAL CAMERA단종 유배지 단종어가. 2000년 복원한 이 한옥은 단종이 유배와서 살았던 집을 문헌을 참고하여 복원한 것이다.

SANYO DIGITAL CAMERA노비들이 거처하던 집.

<단종어가>
2000년 4월5일 단종문화제와 때를 맞춰 건립된 단종어가는 승정원일지의 기록에 따라 기와집으로 그 당시의 모습을 나름대로 재연했다. 어가에는 당시 단종이 머물던 본 채와 궁녀 및 관노들이 기거하던 사랑채가 있으며 밀납인형으로 당시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어가 담장 안에 유지비각이 위치해 있다. 이 어가는 어가 또는 적소라는 명칭에 대한 논란과 주거형태, 어가의 위치 등 여러 가지 문제로 한동안 논란을 겪는 우여곡절을 겪었다. 그러나 승정원일지의 기록에 따라 기와집으로 재현했다. <출처:영월군청>

SANYO DIGITAL CAMERA영조때 세운 단묘유지비(端廟遺址碑). 단종이 이곳에 살았다는 내용을 기록하고 있다.

SANYO DIGITAL CAMERA단종 유배지 마당 한쪽편에 가지를 뻗치고 있는 관음송(천연기념물 349호). 단종이 유배생활을 할 때 걸터 앉아 쉬었다는 전설이 있는 소나무이다.

관음송 및 소나무 수림지
청령포수림지에 위치하고 있는 소나무로 단종 유배시의 설화를 간직하고 있다.1988년 천연기념물 제349호로 지정되어 있다. 단종 遺址碑閣(유지비각)서편에서있다. 단종이 유배생활을 할 때는 두 갈래로 갈라진 이 소나무에 걸터앉아 쉬었다는 전설이 있다. 또한 단종의 유배 당시 모습을 보았으며(觀),때로는 오열하는 소리를 들었다(音)는 뜻에서 관음송(觀音松)이라 불리어 왔다. 소나무 크기는 높이 30m, 가슴높이의 둘레 5m로 지상에서 두 갈래로 갈라져 동,서로 비스듬히 자랐다.갈라진 줄기의 밑둘레는 3.3m, 남북 20m로 가지를 펼치고 있다. 수령은 600년으로 보고 있는데, 이는 단종 유배시의 수령을 80년으로 하여 계산된 것이다.청령포는 남한강 상류에 3면이 강으로 둘러싸인 섬과 같은 곳으로 주변에는 우거진소나무의 숲이 있고, 관음송은 그 소나무 숲 중앙에 자리잡고 있다. <출처:영월군청>

SANYO DIGITAL CAMERA청령포 앞을 흐르는 영월 서강.

SANYO DIGITAL CAMERA청령포 단종유배지를 휘감아 돌아서 흘러간다.

<출처>
1.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2. 두산백과
3. 문화재청
4. 위키백과

 

남양주 수종사(명승 109호), 남한강과 북한강이 만나는 두물머리 경치가 아름다운 곳

경기도 남양주시 조안면에 위치한 수종사(水鐘寺, 명승 109호)이다. 남한강과 북한강이 만나는 두물머리가 내려다 보이는 운길산 중턱에 자리 잡고 있다. 세조가 금강산을 다녀오는 길에 이부근에 머물때 사찰을 크게 중수하였다. 전각으로는 대웅전, 웅진전을 불전으로 두고 있으며, 문화재로는 팔각오층석탑(보물 1808호)와 사리엄장구(보물 259호)가 발견된 승탑이 있다. 오층석탑에서는 태종의 후궁과 성종의 후궁들이 발원한 불상들과 인조 때 인목대비가 발원한 불상이 발견되는 등 왕실과 관련이 깊었던 사찰이었다. 한양과 가까우며, 한강의 아름다운 경관을 감상할 수 있는 잇점 등으로 여러차례 중수를 거쳐 오늘날까지 명맥을 이어오고 있다.

수종사는 세조가 종소리가 들리는 굴에서 18나한을 보았다는 창건설화에서 알 수 있듯이 소원을 비는 기도처나 죽은이의 명복을 비는 곳이라기 보다는 남한강과 북한강이 만나는 두물머리 주변 풍경을 감상하면서 수행과 학문을 논하는데 큰 의미를 두었던 곳이다. 예로부터 많은 시인.묵객들이 이곳의 경치를 시, 글씨, 그림으로 남겼다. 특히, 수종사에서 멀지 않은 곳에 살았던 다산 정약용은 이곳에서 초의선사와 차를 마시면서 풍경을 즐겼다고 한다.

SANYO DIGITAL CAMERA남양주 수종사(명승 109호). 남한강과 북한강이 만나는 두물머리가 한눈에 내려다 보이는 경치좋은 곳에 자리잡고 있다. 조선왕실과 관련된 사찰이면서도 선비들이 많아 찾았던 휴식장소같은 사찰이었다.

남양주 수종사, 명승 109호, 경기도 남양주시 조안면 송촌리
수종사에 대한 유래는, 1458년(세조 4) 세조가 금강산(金剛山) 구경을 다녀오다 이수두(二水頭 : 兩水里)에서 하룻밤을 묵게 되었는데, 한밤중에 난데없는 종소리에 잠을 깬 왕이 부근을 조사하자, 주변에 바위굴이 있고, 굴 안에 18나한(羅漢)이 있었으며, 굴 안에서 물방울 떨어지는 소리가 마치 종소리처럼 울려나와 이곳에 절을 짓고 수종사라고 하였다고 전해온다. 운길산 수종사는 북한강과 남한강이 합류하는 두물머리(양수리)를 바라볼 수 있는 저명한 경관 전망지점으로 자연경관 가치가 높은 곳이다. 예부터 많은 시인묵객들이 이곳의 풍광을 시·서·화로 남겼으며, 서거정(1420~1488)은 수종사를 ‘동방에서 제일의 전망을 가진 사찰’이라 하였으며, 봄·여름·가을·겨울 연중 내내 신록·단풍·설경이 신비스러우며, 일출·일몰·운해 등 어느 시간의 풍광이라도 대단히 아름다운 전망을 지니고 있는 조망지점으로서 경관가치가 큰 곳이다. 정약용은 일생을 통해 수종사에서 지낸 즐거움을 ‘군자유삼락’에 비교할 만큼 좋아 했던 곳으로 역사문화 가치가 높은 곳이며, 또한 다선(茶仙)으로 일컬어지는 초의선사가 정약용을 찾아와 한강의 아름다운 풍광을 즐기며 차를 마신 장소로서, 차문화와 깊은 인연이 있는 곳이며, 현재 수종사는 삼정헌(三鼎軒)이라는 다실을 지어 차 문화를 계승하고 있어 차 문화를 상징하는 사찰로 이름이 높다. 겸재 정선(1676~1759)의 경교명승첩(한강의 북한강·남한강 주변경관과 한강과 서울의 인왕산, 북악산 등의 경관을 그린 화첩으로 총 33점으로 이뤄짐)중 독백탄(獨栢灘)은 현재의 남한강과 북한강이 만나는 ‘양수리’의 경관을 보여주는 고서화로서 그 시대의 명승지 경관과 현재의 경관을 비교 감상할 수 있어 회화 가치가 높다. <출처: 문화재청>

SANYO DIGITAL CAMERA사찰입구에 세워진 일주문. 양수리부근 북한강변에서 사찰입구인 일주문 앞까지 자동차로 올라갈 수 있으나 산길이라 자동차로 올라가기에는 약간 험한 편으로 대부분 사람들은 운길산 등산을 겸해서 큰길에서 사찰 입구까지 걸어서 올라온다.

SANYO DIGITAL CAMERA일주문에서 수종사 경내로 들어가는 길.

SANYO DIGITAL CAMERA수종사 주불전인 대웅보전. 두물머리가 내려다 보이는 곳에 자리잡고 있다.

SANYO DIGITAL CAMERA석가모니의 제자들인 18나한을 모신 응진전. 수행도량으로서 수종사의 성격을 잘 보여주는 불전이다.

SANYO DIGITAL CAMERA약사전.

SANYO DIGITAL CAMERA산신각.

SANYO DIGITAL CAMERA수종사 오층석탑(1808호). 조선전기에 만들어진 석탑으로 전체적으로 팔각형을 하고 있는 월정사 팔각구층석탑 양식을 따르고 있다. 조각수법이나 조형미가 뛰어난 것은 아니지만, 우리나라에서 많지 않은 조선전기 석탑 양식을 잘 보여주고 있다.

SANYO DIGITAL CAMERA오층석탑에서는 여러 점의 유물들(보물 1788호)이 출토되었는데 그 중 인조 6년 인목대비가 발원하여 조성한 불상이다.

SANYO DIGITAL CAMERA팔각오층석탑과 함께 있는 승탑이다. 조선시대에 조성된 이 승탑은 전체적으로 팔각형태를 하고 있는 목조건물을 모방한 정형화된 승탑 형태를 하고 있다. 고려초기 승탑에 비해 조각수법이나 조형미 등이 많이 떨어지는 편이다. 승탑 안에서 청자항아리에 든 사리엄장구(보물 259호)가 발견되었다.

남양주-수종사-부도-06-2016_11_15승탑에서 발견된 사리엄장구(보물 259호).

SANYO DIGITAL CAMERA수종사 강당 건물인 삼천헌. 다산 정약용이 수종사에서 초의선사와 차를 즐겼다는 전통을 이어오고 있는 곳으로 운길산 산행을 하는 사람들이 하산길에 차를 얻어 마시면서 유명해졌다. 차를 다 마신 사람들이 툇마루에 걸터 앉아서 휴식을 취하고 있다.

SANYO DIGITAL CAMERA종무소 겸 요사채로 쓰이는 전각.

SANYO DIGITAL CAMERA승려들이 거처하면서 수행하는 공간을 쓰이는 요사채.

운길산을 올라서 산중턱에 위치한 이 곳 수종사를 찾는 가장 중요한 이유는 경내 마당에서 볼 수 있는 북한강과 남한강이 만나는 두물머리(양수리)의 아름다운 경치를 보기 위해서이다. 울창한 오월의 숲속길을 올라서 수종사 경내에 올라서면 발 아래로 북한강이 흐르고 멀리 양수리 일대의 장관을 볼 수 있다. 물론 비가 온 뒤 맑은 날씨에 이 곳에서 경치를 보면 더욱 좋겠지만, 그렇지 않더라도 이 큰 강을 볼 수 있다는 것은 동해의 파도를 보는 것 같은 가슴속이 뚫리는 것 같은 시원함을 주고 있다.

SANYO DIGITAL CAMERA수종사에서 내려다 보이는 남한강과 북한강이 만다는 두물머리.

SANYO DIGITAL CAMERA수종사 아래를 흐르는 북한강.

SANYO DIGITAL CAMERA수종사 북쪽편 해탈문 아래에는 수령이 수백년된 아름다운 은행나무들이 있다. 세조가 수종사를 창건할 때 심었다고 전해진다.

<출처>
1.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2. 두산백과
3. 문화재청
4. 고궁박물관
5. 위키백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