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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성 벌교읍 김범우의 집, 소설 『태백산맥』에 소개된 대지주 저택

전남 보성군 벌교읍 봉림리에 있는 큰 규모의 낡은 고택이다. 저택은 낡은 담장으로 둘러져 있는데 대문을 들어서면 중문이 있는 사랑채가 있으며, 중문을 들어서면 안채가 배치되어 있다. 두건물 모두 ‘-’자형으로 앞뒤로 나란히 배치되어 있다. 담벼락이 허물어지는 등 아직 정비되지 않은 옛 한옥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으며, 붉은 벽돌로 수리해서 사용한 부분도 남아 있다.

이 집은 대지주였던 김씨집안 소유의 저택으로 조정래 소설 『태백산맥』에서 김범우의 집으로 소개된 곳이다. 조정래 작가 친구가 살았던 집으로 작가에게 좋은 기억이 남아 있어 소설에서는 긍정적으로 표현되었다. 소설에 등장하는 대저택인 현부자집이 당시 신흥부호가 살았던 일본식 주택양식이 반영된 대저택 형태를 하고 있는 반면, 이 저택은 전통 한옥양식을 하고 있다. 저택이 있는 봉림리 마을은 벌교읍이 내려다 보이는 양지바른 나즈막한 언덕에 자리잡고 있으며, 마을 앞 벌교천을 건너는 홍교(보물 304호)를 이용하여 벌교읍으로 들어갈 수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소설 『태백산맥』에서 주인공 김범우 일가의 대저택으로 소개된 고택이 있는 마을. 벌교읍이 내려다 보이는 양지바른 곳에 자리잡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저택 대문. 담장이 앞에 있기는 하지만, 안쪽에 문간방과 외양간이 있는 문간채이다.

OLYMPUS DIGITAL CAMERA대문을 들어서면 안채 출입하는 중문이 있는 사랑채까지 골목처럼 만들어 놓았다. 왼쪽은 사랑채가 있는 마당이며, 오른쪽은 안채에서 사용하는 공간으로 보인다. 담장은 일제강점기 이후에 지은 것으로 보인다.

OLYMPUS DIGITAL CAMERA안쪽에서 본 문간채. 왼쪽에 문간방과 사랑채 마당이 있는데, 담장으로 공간을 분리하였으며, 별도의 출입문을 두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손님을 맞는 공간인 사랑채.

OLYMPUS DIGITAL CAMERA사랑채 앞 마당.

보성 벌교 김범우의집 04-20180324안쪽에서 본 사랑채. 왼쪽 2칸은 사랑채로, 오른쪽은 가족들이 사용하는 공간으로 보인다.

보성 벌교 김범우의집 02-20180324안채는 ‘-’자형 건물로 개방된 대청마루를 두지 않고 앞쪽에 약간 넓은 툇마루를 두고 있다. 가운데 제사 등을 지내는 대청마루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보성 벌교 김범우의집 01-20180324안채 앞 마당. 옆쪽에 곳간채를 두고 있다.

보성 벌교 김범우의집 03-20180324장둑대로 사용되었던 것으로 보이는 공간.

OLYMPUS DIGITAL CAMERA뒷편에서 보이는 안채. 마당에는 다양한 정원수를 심어 놓았다.

OLYMPUS DIGITAL CAMERA저택을 두르고 있는 담장.

김범우의 집
원래 대지주였던 김씨집안 소유의 집이다. 안채의 대문 옆에 딸린 아랫채에서 초등학생이었던 작가가 친구인 이집 막내 아들과 자주 놀았다는 것은 작은 흥미를 일으킨다. 소설에서는 품격있고 양심을 갖춘 김사용의 집으로 그려지고 있다 “과분한 땅이라고? 이 사람아, 요 정도가 내가 지닌 땅 중에서 젤로 나쁜 것이네. 눈 붉은 우리 선대의 유산이 어련허겼는가. 맘 쓰지 말고 밭 일구도록 허게…(태백산맥 1권 141쪽)”. 사랑채, 겹안채, 창고 자리, 장독대, 돌담 등 그 모든 형태와 규모들이 대주주의 생활상을 한눈에 파악할 수 있게 한다. 특히 안채 오른쪽 앞부분 귀퉁이에 있는 돼지 우리는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아무리 대지주라 하더라도 음식 찌꺼기를 함부로 버리지 않으려고 돼지를 길렀음을 알 수 있다. 생활의 알뜰함과 환경오염을 막고자 했던 살아 있는 교훈이 아닐 수 없다. 이 집에서도 오른쪽으로 고읍들녁이 한눈에 들어오는 것은 집자리를 무심코 잡은게 아님을 보여준다. (안내문, 보성군청, 2012년)

<출처>

  1. 안내문, 보성군청, 2012년

춘천 김유정 생가, 지주계층이 살았던 초가집

강원도 춘천시 신동면 증리에 있는 김유정 생가이다. 대지주였던 김유정 일가가 살았던 집을 복원해 놓은 것이다. 건물은 초가지붕을 하고 있지만 사랑채와 안채가 ‘ㅁ’자형 구조를 하고 있는 상당히 큰 규모의 저택이다.  춘천지역 지주계층이 살았던 한옥의 형태를 잘 보여주고 있다.

김유정은 이곳 실레마을에서 태어나 서울에서 살다가 23세 이후 이 마을에 귀향하여 농촌계몽운동을 했다. ‘봄봄’을 비한 그의 작품들은 대부분 그가 이마을에서 머물때 쓰여졌으며, 작품에 등장하는 배경 또한 이 마을인 경우가 많다. 마을은 춘천도심에서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하고 있으며, 예전에는 경춘선 기차역이 있었으나 지금은 다른 곳으로 옮기고 그를 기념하는 역사만 남아 있다.

춘천 김유정 생가 12-20180127강원도 춘천시 실레마을에 있는 김유정 문학촌.

춘천 김유정 생가 09-20180127건물은 초가 지붕을 하고 있지만, 상당히 큰 규모의 저택이다.

춘천 김유정 생가 03-20180127건물 앞쪽에는 넓은마루와 온돌방으로 구성된 사랑채가 있다.

춘천 김유정 생가 02-20180127건물 한쪽편에 안마당을 출입하는 중문이 있다.

춘천 김유정 생가 04-20180127중문을 들어서면 볼 수 있는 안마당. 앞쪽에 사랑채 툇마루가 보이며 뒷편에 안채가 있으며, 두 건물이 연결되는 부분에 부엌이 있다.

춘천 김유정 생가 07-20180127부엌에서 보이는 안마당을 출입하는 중문. 바깥에서 안마당을 볼 수 없도록 공간배치를 하고 있다.

춘천 김유정 생가 05-20180127가족들의 생활공간인 안채. 넓은 대청마루를 중심으로 양쪽에 온돌방이 배치되어 있다.

춘천 김유정 생가 08-20180127바깥쪽 방앗간 등이 있는 별채 건물.

춘천 김유정 생가 10-20180127마당 한쪽편에 소설 ‘봄봄’의 중요 장면을 표현한 조각상이 있다.

춘천 김유정 생가 13-20180127김유정 소설에 많이 등장하는 실레마을.

춘천 김유정 생가 11-20180127소설에 등장하는 실레마을 주요 명소.

작품의 무대가 기념관이 되는 실레마을
김유정문학촌 뜰에 서면, 금병산 자락에 폭 안긴 마을이 한눈에 바라보인다. 멀리 금병산자락 아래 잣나무 숲 뒤쪽은 「동백꽃」의 배경이다. 맞은편 언덕에는 김유정이 움막을 짓고 아이들에게 우리말을 가르친 이한(‘안해’) 터가 있다. 마을 가운데 잣나무숲으로 들어서면 실존인물이었던 「봄봄」의 봉필이 영감이 살았던 마름집이있다. 점순이와 성례를 안 시켜주고 일만 부려먹는데 불만을느낀 ‘나’가 장인영감과 드잡이를 하며 싸우는 모습이 막 눈앞에 그려지는 곳이다. 김유정이 코다리찌개로 술을 마시던 주막터도 남아 있다. 멀리 한들의 할미천에는 산골 나그네(들병이)가 남편을 숨겨두었던 물레방앗간터가 있다. 이들 작품과 함께 ‘총각과 맹꽁이, ‘소낙비’, ‘노다지’, ‘금따는 콩밭’, ‘만무방’, ‘산골’, ‘가을’ 등 12편이 이곳 살레마을을 무대로 한 작품이다. 살레마을 어디에 서 있어도 몽태, 춘호, 근식이, 덕돌이, 덕만이, 점순이 같은 인물들을 만날 것 같다. 살레마을을 내려다보고 있는 금병산(해발 652 m)에는 김유정의 소설 제목을 딴 등산로가 산을 찾는 이들의 발걸음을 소설 속으로 이끈다. 이곳 살레마을은 작가의 생가가 있고, 마을 전체가 작품의 무대가 되는 살아 있는 문학기념관이다. 전국의 많은 문학기념관 중 유일하게 촌(村)자가 붙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안내문, 춘천시청, 2018년)

 

<출처>

  1. 안내문, 춘천시청, 2018년

영주 선비촌, 옛 선비들의 삶을 체험할 수 있는 공간

경북 영주시 순흥면 청구리 소수서원 뒷편에 있는 선비촌이다. 소수서원 뒷문 나와 죽계천을 건너면, 선비촌과 소수박물관을 볼 수 있다. 선비촌에는 영주지역에 남아있는 옛 선비들이 살았던 해우당 고택등 기와집 7동과 초가 5동 등 다양현 규모와 형태의 고택을 복원해 놓고 있다. 또한 옛 사람들의 살았던 모습을 보여주는 정자, 누각, 방앗간, 대장간 등을 재현해 놓고 있다. 소수서원과 함께 옛 선비들의 살았던 삶을 간접적으로 체험할 수 있는 다양한 기회를 주고 있다.

SANYO DIGITAL CAMERA소수서원 뒷문은 나와 죽계천 다리를 건너면 왼쪽에는 영주지역 고택들을 재현해 놓은 선비촌이 있고, 오른쪽에는 소수박물관이다.

SANYO DIGITAL CAMERA선비촌을 들어서면 큰 길에 십이지신상을 세워 놓았으며, 선비들이 살았던 다양한 규모와 형태의 가옥들을 볼 수 있다.

SANYO DIGITAL CAMERA선비촌 입구에 볼 수 있는 열녀를 기르는 정려각인 열부각.

SANYO DIGITAL CAMERA영주 부석면에 있는 중류층 양반가옥인 김상진가옥 대문채. 선비촌 입구 부근에 있다.

SANYO DIGITAL CAMERA건물은 ‘ㄷ’자형을 본채를 중심으로 정면에 마루를 깔고 좌우측에 안채와 사랑채로 구성되어 있다. 중류층 양반이 살았던 크지 않은 아담한 규모의 고택으로 정갈하면서 절제된 분위기를 주고 있다.

SANYO DIGITAL CAMERA영주의 대표적인 전통마을인 무섬마을에 있는 해우당 고택.

SANYO DIGITAL CAMERA해우당고택은 구한말 고위관리를 지낸 김낙풍이 지은 집이다. 안채와, 사랑채가 ‘ㅁ’자형을 평면구조를 하고 있다. 사랑채는 지반을 기둥을 높게 세우고 툇마루에 난간을 둘러 누마루처럼 꾸몄다. 마당 한쪽에는 작은 규모의 작은사랑채를 두고 있다. 사랑채에는 흥선대원군이 친필로 쓴 ‘해우당’이라 적힌 현판이 걸려 있다.

SANYO DIGITAL CAMERA영주시 이산면에 있는 우금촌 두암고택 사랑채이다. 두암고택은 주선중기 해미현감 등을 역임한 두암 김우익이 건립한 가옥으로 ‘ㅁ’자형 본채, 사랑채, 문간채, 사당 등으로 구성된 상당히 큰 규모의 저택이다.

SANYO DIGITAL CAMERA영주시 이산면 석포리에 있는 김구영가옥이다. 방들이 앞뒤로 붙어 있는 양통집으로 경북지방의 대표적인 서민주택이다. 초가지붕을 하고 있지만 중류계층 양반이 살았던 것으로 보인다.

SANYO DIGITAL CAMERA소수서원 강당인 강학당을 재현 놓은 건물.

SANYO DIGITAL CAMERA물레방앗간.

SANYO DIGITAL CAMERA마을 한쪽에 있는  정자인 승운정. 선비들이 경치좋은 곳에서 학문을 논하고 풍류를 즐겼던 공간이다.

<출처>

  1. 안내문, 영주시청, 2009년
  2. 대한민국구석구석, 한국관광공사, 2018년

영주 김상진가옥, 중류층 선비계층이 살았던 아담한 가옥

경북 영주시 순흥면 청구리 영주선비촌에 재현해 놓은 김상진가옥이다. 이 집은 영주시 부석면 소천리에 있는 한옥을 재현해 놓은 것이다. 건물은 ‘ㄷ’자형을 본채를 중심으로 정면에 마루를 깔고 좌우측에 안채와 사랑채로 구성되어 있다. 중류층 양반이 살았던 크지 않은 아담한 규모의 고택으로 정갈하면서 절제된 분위기를 주고 있다. ‘ㅁ’형인 일반적인 안동지역 양반 저택과는 달리 개방된 느낌을 주고 있다.

SANYO DIGITAL CAMERA영주 소수서원 뒷편에 재현해 놓은 선비촌에 있는 고택인 김상진 가옥이다. 중류계층 선비가 살았던 가옥을 대표하는 것으로 보인다.

SANYO DIGITAL CAMERA안쪽에서 본 대문채. 집의 규가 크지는 않지만, 바깥에서 안채를 볼 수 없도록 출입문을 만들고 있다.

SANYO DIGITAL CAMERA본채는 ‘ㄷ’자 형태로 대청마루를 중심으로 오른쪽에 사랑방을, 왼쪽에 안채와 부엌을 배치해 놓았다.

SANYO DIGITAL CAMERA오른쪽 사랑방.

SANYO DIGITAL CAMERA집은 규모가 크지 않지만 대청마루를 넓게 쓰고 있다.

SANYO DIGITAL CAMERA곳간채

SANYO DIGITAL CAMERA안채 옆에 장독대를 두고 있으며, 안방에 출입문이 있다. 툇마루를 두고 있지는 않다.

영주 김상진 가옥, 경북 영주시 부석면 소천리
김상진 가옥은 항상 자신을 수양하면서 늘 바른 마음을 가지기 위해 노력했던 선비들이 곧은 정신과 부드러움이 동시에 느껴지는 집이다. 중류주택의 전형으로 그에 맞는 소박한 멋과 절제가 담긴 가구배치를 지니고 있다. 가옥 안의 가재도구도 중류층 선비의 것을 재현하여 간소하면서도 중후한 느낌을 주도록 하였다. 상류주택과는 다르게 대청에 가구를 배치하여 수장공간으로 활용하는 모습도 볼 수 있다. (안내문, 영주시청, 2009년)

<출처>

  1. 안내문, 영주시청, 2009년

안동 도산서원 전교당(보물 210호), 강학공간 중심건물

경북 안동시 도산면 토계리 도산서원에 있는 전교당(보물 210호)이다. 도산서원 강학공간 중심 역할을 하는 강당 건물로 사당인 상덕사를 제외하고는 제일 높은 곳에 있다. 건물 앞에는 시야를 가리는 건물이 없어서 낙동강과 주변 경치를 감상하기 좋은 곳에 위치하고 있다.

건물은 앞면 4칸, 옆면 2칸 규모로 팔작지붕을 하고 있는데, 앞면 1칸은 온돌방. 나머지 3칸인 넓은 대청마루로 이루어져 있다. 형태나 구조는 간단하며 아주 소박하고 검소하게 지어진 건물로 여겨진다. 대청마루 앞에 문이 없어 개방적인 느낌을 주고 있으며, 옆면과 뒷면에는 쌍여닫이문이 있다. 조선중기 선조 때 세워진 건물로 당시 건축양식이 잘 남아 있다. 대청마루 앞 현판에 적힌 ‘도산서원’이라는 글씨는 선조가 도산서원에 이름을 내리면서 당시 명필인 한석봉 선생이 선조 앞에서 쓴 글씨라고 한다.

SANYO DIGITAL CAMERA안동 도산서원 강학공간 중심건물인 전교당(보물 210호). 앞면 4칸의 강당건물로 단순하면서도 크지 않게 지었다.

SANYO DIGITAL CAMERA건물이 크지는 않지만 잘 다듬은 화강석으로 높은 기단을 쌓고 그 위에 건물을 올렸다.

SANYO DIGITAL CAMERA전교당 대청마루 앞. 걸터 앉아 경치를 감상하기 좋다. 앞쪽에는 문을 달지 않아 개방적인 느낌을 주고 있다.

SANYO DIGITAL CAMERA강당 마루에서 내려다 보이는 모습. 출입문 지붕을 크게 만들어 경치를 막고 있다.

SANYO DIGITAL CAMERA명필 한석봉이 썼다고 하는 ‘도산서원’ 현판.

SANYO DIGITAL CAMERA전교당 대청마루. ‘전교당’이라 적힌 현판을 비롯하여 글씨가 적힌 현판들이 걸려 있다. 뒷쪽에는 쌍여닫이문이 있는데, 조선중기 건물에서 볼 수 있는 형태이다.

SANYO DIGITAL CAMERA넓은 대청마로. 한쪽에는 ‘한존재’라 적힌 온돌방이 있다.

SANYO DIGITAL CAMERA뒷편에서 본 모습. 걸터 앉을 수 있는 툇마루가 있다.

도산서원 전교당(典敎堂), 보물 210호, 안동시 도산면 토계리
이 건물은 퇴계 이황을 추모하는 도산서원의 강당에 해당된다. 전교당은 조선 선조 7년(1574년)에 건립되었다. 건물의 구조는 매우 간소하며 대청과 온돌방으로 구성되었다. 정면 4칸, 측면 2칸의 팔작집인데, 강당인 대청과 거실인 온돌방(한존재)으로 구성되었다. 대청의 전면은 개방되어 있으나 측면과 배면에는 각 칸마다 쌍여닫이문을 두었다. 쪽마루는 건물 뒷면의 대청 뒷부분과 온돌방의 오른편에만 설치하였다. 대청의 윗부분은 연등천장으로 되어 있다. 선조가 이름을 내린 현판의 글씨는 명필인 석봉 한호가 쓴 글씨라고 한다. 전면 좌우에는 부속건물로 동재인 박약재와 서재인 홍의재가 있다. (안내문, 안동시청, 2010년)

<출처>

  1. 안내문, 안동시청, 2010년
  2. 국가문화유산포탈, 문화재청, 2018년
  3.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소, 2018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