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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청 남사마을 사양정사

경남 산청군 단성면 남사리에 있는 고택인 사양정사(泗陽精舍)이다. 1920년대 유학자 정제용의 후손들이 그를 추모하기 위해 지은 재실이다. 앞면 7칸의 팔작지붕을 하고 있는 상당히 큰 규모의 재실 건물이다. 가운데 2칸 대청마루를 두고 왼쪽에 온돌방 2칸 오른쪽에 온돌방 1칸이 있으며 양쪽에 1칸씩 누마루를 두고 있다. 일제강점기에 지어진 일종의 개량한옥으로 자재나 건축수법이 뛰어난 편이다.

산청 남사마을 사양정사 01-20220222<산청 남사마을 사양정사>

산청 남사마을 사양정사 04-20220222<가운데 대청마루>

산청 남사마을 사양정사 05-20220222<왼쪽 온돌방과 누마루>

산청 남사마을 사양정사 03-20220222<오른쪽 온돌방과 누마루>

산청 남사마을 사양정사 06-20220222<사양정사 마당>

산청 남사마을 사양정사 02-20220222<산청 사양정사>

대문채는 솟을대문과 광과 문간방이 있는 7칸 규모의 건물로 웅장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산청 남사마을 사양정사 08-20220222<대문채>

남사마을을 지리산 중산리로 연결되는 교통로에 있는 전통마을로 지금은 남사예담촌이라 부른다. 마을에는 20세초에 지어진 많은 기와집이 모여있다. 성주 이씨, 밀양 박씨, 진양 하씨가 주로 모여살고 있다.

산청 남사마을 사양정사 07-20220222<산청 남사마을>

산청 사양정사(泗陽精舍), 경남 산청군 단성면 지리산대로
사양정사는 한말의 유학자 계제 정제용(1865~1907년)의 아들 정덕영과 장손 정종화가 남사로 이전한 후 선친을 추모하기 위하여 마련한 정사로 1920년대에 지어졌다. 정제용은 포은 정몽주의 후손으로 한말의 유학자인 후산 허유와 유림을 대표하여 파리장서를 작성한 면우 곽종석의 문인이다. 사양정사란 ‘사수’ 남쪽의 학문을 연마하는 집이라는 뜻이다. 여기서의 ‘사수’는 공자의 고향인 중국 산동석 곡부에 있는 강이름인데 공자를 흠모하는 뜻으로 남사마을 뒤에 있는 개울을 사수라 부르고 정사가 개울의 남쪽에 있어 사양정사라 이름하였던 것이다. 건립 이후 주로 자손을 교육하고 문객을 맞아 교유하는 용도로 사용되었다. 사양정사는 정면 7칸, 측면 2칸의 팔작지붕 집으로 천장이 높고 부재가 튼실하며 치목이 정교할 뿐 아니라 다락과 벽장 등 수납공간을 풍부하게 설치하였으며 또한 당시로서는 새로운 건축재료인 유리를 사용하여 근대기 한옥의 변회된 면모를 보여주고 있다. 4칸의 광을 넣어 7칸의 장대한 규모로 구성한 대문채에는 충절을 상징하는 홍살을 넣은 솟을대문을 달아 사양정사의 풍경과 풍부한 경제력을 나타내었다. (안내문, 산청군청, 2022년)

<출처>

  1. 안내문, 산청군청, 2022년
  2.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2022년
  3. 대한민국구석구석, 한국관광공사, 2022년

산청 남사리 최씨고가

경남 산청군 단성면 남사리에 있는 고택인 ‘최씨고가’이다. 남사마을에 남아 있는 고택 중 가장 큰 규로 일제강점기인 1930년대 지어진 한옥이다. 건물은 안채, 외양간채, 사랑채가 ‘ㅁ’자형 평면을 하고 있다. 사랑채 양쪽에 중문을 두고 있으며 안채가 있는 마당은 외부와 분리되어 있어 유교적인 격식을 강조하고 있다. 일제강점기에 지어진 남사마을 한옥을 대표하는 고택이라 할 수 있다.

산청 남사마을 최씨고가 01-20220222<산청 남사마을 최씨고가>

남사마을 한가운데 자리잡고 있는 큰 저택으로 고즈넉한 담장이 있는 골목 안쪽에 위치하고 있다. 대문은 담장에 의지해 4개의 기둥이 있는 사주문으로 기와를 올린 맞배지붕을 하고 있다.

산청 남사마을 최씨고가 02-20220222<대문>

산청 남사마을 최씨고가 07-20220222<안쪽에서 본 대문>

사랑채는 앞면 5칸, 옆면 2칸 규모로 앞뒤로 툇마루를 두고 있다. 가운데 마루가 있고 양쪽에 2칸씩 온돌방이 있어 가족들이 거처하는 생활공간으로 사용되고 있다.

산청 남사마을 최씨고가 05-20220222<사랑채>

산청 남사마을 최씨고가 08-20220222<왼쪽 온돌방>

산청 남사마을 최씨고가 09-20220222<가운데 대청마루>

산청 남사마을 최씨고가 10-20220222<오른쪽 온돌방>

산청 남사마을 최씨고가 06-20220222<사랑채 마당에 있는 창고(외양간)>

산청 남사마을 최씨고가 04-20220222<사랑채 마당 정원>

산청 남사마을 최씨고가 12-20220222<사랑채>

산청 남사마을 최씨고가 11-20220222<안채를 출입하는 중문>

안채는 앞면 6칸, 옆면 3칸 규모의 큰 건물로 팔작지붕을 하고 있다.

산청남사리최씨고가<안채>

남사마을을 지리산 중산리로 연결되는 교통로에 있는 전통마을로 지금은 남사예담촌이라 부른다. 마을에는 20세초에 지어진 많은 기와집이 모여있다. 성주 이씨, 밀양 박씨, 진양 하씨가 주로 모여살고 있다.

산청 남사마을 최씨고가 03-20220222<산청 남사마을>

산청 남사리 최씨고가, 경남 산청군 단성면 지리산대로
이 고택은 전통적인 남부지방의 사대부 한옥이다. 건물은 안채를 중심으로 사랑채, 익랑채가 ㅁ자형으로 배치되어 있으며, 사랑채 좌우에는 중문이 두 곳 설치되어 있다. 동쪽 중문을 통과하면 안채가 한 눈에 들어오지만, 서쪽 중문을 지날 경우 ㄱ자 담으로 차단되어 안채와 익랑채가 보이지 않게 되어 있다. 전통적인 유교 사상에 따라 남녀의 생활상의 공간 분화를 분명히 하고자 했기 때문이다. 안채는 정면 6칸, 측면 3칸 규모에 앞뒤 툇간이 있고, 들보 5량으로 조성된 높은 팔작지붕 건물이다. 뒤 툇간은 폭이 넓어 수장기능의 벽장이 설치되거나 방으로 분할되고 있으며, 겹집형식으로 변모되고 있다. 건물의 사용 자재들은 견실하고 이중 방문의 조각 장식도 섬세하고 아름답다. 사랑채는 정면 5칸, 측면 3칸 규모에 앞뒤 툇간이 있으며, 들보 5량으로 조성된 팔작지붕 건물이다. 안채와 마찬가지로 겹집형식으로 취하고 있다. (안내문, 산청군청, 2022년)

<출처>

  1. 안내문, 산청군청, 2022년
  2.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2022년
  3. 대한민국구석구석, 한국관광공사, 2022년

산청 남사리 이씨고가

경남 산청군 단성면 남사리에 있는 고택인 ‘이씨고가’이다. 마을에서 가장 오래된 고택으로 18세기에 지어졌다. 건물을 안채, 사랑채, 외양간채, 곳간채가 ‘ㅁ’자형으로 배치되어 있다. 안채와 사랑채가 있는 공간은 담장으로 분리되어 있지만 전체적으로 공간을 넓게 사용하여 개방적인 분위기를 주고 있다. 보통 사랑채는 집주인이 손님을 접견하는 용도로 사용하지만 이 집은 가족들의 생활공간을로 사용할 수 있도록 공간배치를 하고 있는 점이 특이하다. 조선후기 남부지방 상류층 저택의 특징을 잘 보여주고 있다.

산청 남사마을 이씨고가 01-20220222<산청 남사마을 이씨고가>

고택은 담장이 있는 골목길 안쪽에 위치하고 있는데 골목길에는 ‘부부 회회나무’로 잘 알려진 2그루의 고목이 아치를 이루고 있다. 드라마 ‘왕의 남자’ 촬영장소로 유명하다.

산청 남사마을 이씨고가 13-20220222<부부 회화나무>

부부 회화나무, 수령 310년
선비나무로 불리는 두 그루의 회화나무는 서로에게 빛을 더 잘 들게 하려고 몸을 구부리며 자랐고, 부부가 나무 아래를 통과하면 금실 좋게 백년해로 한다는 이야기가 전해져 부부나무로 불린다. 중국 주나라 시대에 회화나무 아래 삼공이 모여 정사를 논의한 것에서 유래되어 학자나무라고도 불린다. (아내문, 산청군청, 2022년)

산청 남사마을 이씨고가 14-20220222<대문>

대문을 들어서면 바깥주인의 생활공간이 사랑채와 초가지붕을 하고 있는 곳간채가 있다. 사랑채는 앞면 4칸 규모로 주거용도로 사용되었다. 일반적이 사랑채에 비해 대청마루가 작은 편이며 오른쪽에 온돌방 2칸, 왼쪽에는 누마루와 온돌방 1칸이 있다.

산청 남사마을 이씨고가 15-20220222<사랑채 마당>

산청 남사마을 이씨고가 03-20220222<사랑채>

산청 남사마을 이씨고가 05-20220222<대청마루와 온돌방, 누마루>

산청 남사마을 이씨고가 04-20220222<온돌방>

산청 남사마을 이씨고가 09-20220222<안마당에서 보이는 사랑채>

산청 남사마을 이씨고가 12-20220222<맞은편 곳간채>

산청 남사마을 이씨고가 02-20220222<안채를 출입하는 중문>

산청 남사마을 이씨고가 10-20220222<안마당에서 본 중문>

안채가 있는 살림공간에는 안채를 중심으로 양쪽에 외양간채와 곳간채가 배치되어 전체적으로 ‘ㅁ’자형을 이루고 있다.

산청 남사마을 이씨고가 11-20220222<안마당>

안채는 남부지방에서 많이 볼 수 있는 ‘-’자형 건물로 앞면 7칸 규모로 건넌방 1칸, 대청 2칸, 안방 2칸을 두고 있으며 오른쪽 2칸은 부엌으로 보인다. 온돌방과 대청마루 앞에는 툇마루를 두어 통로로 사용하고 있으며, 오른쪽 방 앞에는 툇마루를 높게 하여 누마루처럼 사용하고 있다.

산청 남사마을 이씨고가 06-20220222<안채>

아래채는 초가지붕을 하고 있는 건물로 앞면 4칸 규모이다. 부엌, 방, 대청 등을 배치하고 앞쪽에 툇마루를 두고 있다.

산청 남사마을 이씨고가 08-20220222<아래채>

곳간채는 앞면 3칸, 옆면 2칸의 기와지붕을 하고 있는 건물이다. 그 규모로 볼 때 상당한 부유층이었음을 알 수 있다.

산청 남사마을 이씨고가 07-20220222<곳간채>

남사마을을 지리산 중산리로 연결되는 교통로에 있는 전통마을로 지금은 남사예담촌이라 부른다. 마을에는 20세초에 지어진 많은 기와집이 모여있다. 성주 이씨, 밀양 박씨, 진양 하씨가 주로 모여살고 있다.

산청 남사마을 이씨고가 21-20220222<산청 남사마을>

산청 남사리 이씨고가
산청 남사리 이씨고가는 남사마을에서 가장 오래된 집으로 1700년대에 세운 전통적인 남부지방 사대부 가옥이다. 남북으로 긴 대지에 사랑채, 외양간채, 곳간채가 안채를 중심으로 ‘ㅁ’자 모양이다. 안채는 앞면 7칸, 옆면 3칸 규모이며, 남부지방에서 가장 잘 나타나는 일(一)자 모양의 건물이다. 사랑채는 앞면 4칸, 옆면 3칸 규모이며, 안채와 앞뒤로 나란히 있다. 일반적으로 사랑채는 바깥주인이 살며 손님을 접대하는 공간이나, 이씨고가의 사랑채는 안채처럼 주로 주거 용도로 쓰였다. 사랑채의 내부는 안채의 내부와 비슷한데 지붕 아래에 방을 두줄로 배열하여 앞쪽에는 생활하는 공간을 두고, 뒤쪽으로는 생활용품이나 가재도구 등을 보관하는 공간을 둔 겹집으로 꾸몄다. 사당은 담장을 둘러 독립적으로 배치하였다. 사당은 안채의 부엌에서부터 먼 곳에 두는 것이 일반적이나 이 고가에서는 가깝게 둔 것이 특이하다. (안내문, 산청군청, 2022년)

<출처>

  1. 안내문, 산청군청, 2022년
  2.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2022년
  3. 대한민국구석구석, 한국관광공사, 2022년

경주 교촌마을 경주법주 고택

경북 경주시 교동 교촌마을에 있는 경주법주 고택이다. 마을에서 가장 오래된 건물이다. 18세기 교촌마을 경주최씨 7대 최언경이 향교 옆으로 이사오면서 지은 집이다. 종가인 경주 최부잣집 옆에 위치하고 있으며 작은댁이라 불린다. 이집은 최부자집에서 대로 빚어온 경주 교동법주를 계승하고 있다. 교동법주는 숙종 때 사옹원 참봉을 지낸 최국준이 처음 빚기 시작했다고 알려져 있으며 현재는 최경이 2대째 기능보유자로 명맥을 잇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경주 교촌마을 경주법주 고택>

OLYMPUS DIGITAL CAMERA<대문채>

OLYMPUS DIGITAL CAMERA<대문채에 전시되어 있는 경주 교동법주>

OLYMPUS DIGITAL CAMERA<사랑채와 중문>

경주 교동 법주(慶州 校洞 法酒), 경북 경주시 교동 69
법주는 경주 교동 최부자댁에 전해 오는 비주(秘酒)로 조선 숙종(宗) 때 궁중에서 음식을 관장하던 관직에 있던 최국선(崔國)이 고향으로 내려와 최초로 빚은 궁중에서 유래된 술이다. 술 빚기는 9월~4월까지가 적기이고, 연중 보관이 가능하다. 술은 그 재료인 물이 중요한데, 이 법주는 최씨댁 마당의 우물물을 써서 만든다. 원료는 밑술로 밀누룩과 찹쌀을 쓰고, 덧술로 찹쌀밥을 넣어 빚는데 100여 일간을 숙성시킨다. 숙성된 법주는 외관이 밝고 투명한 미황색을 띠며, 특유의 향기와 감미에 약간의 산미를 내는 부드러운 술이다. (안내문, 경주시청, 2011년)

<출처>

  1. 안내문, 경주시청, 2011년
  2. 경주교촌마을 홈페이지, 2022년
  3.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2022년

경주 교촌마을 최부자댁, 경주 대지주계층 대저택

경북 경주시 교동에 있는 고택인 경주 최부자댁이다. 1700년 대에 건립되었다고 전해지는 가옥으로 99칸 규모의 대저택이었다. 저택은 사랑채, 안채, 문간채, 곳간, 사당으로 구성되어 있다. 영남일대에서 손꼽히는 부호이지만 저택의 건물규모가 크거나 화려하게 꾸미지는 않고 있다. 조선시대에도 신라 고도 경주를 찾는 사람들이 많았던 것으로 보이며, 지위가 높은 사람 대부분은 이 집에서 묵었다고 한다. 전통주인 교동법주를 비롯하여 손님접대를 성실히 했다는 이야기들이 전해온다. 일제강점기 황태자시절에 서봉총 발굴에 참여했던 스웨덴의 구스타브 국왕도 이 저택에서 머물렀다고 한다. 강릉의 대저택인 선교장과 비슷하게 찾아오는 손님을 맞기 위해 저택 규모가 확장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OLYMPUS DIGITAL CAMERA<경주 교촌마을 최부자댁 솟을대문>

솟을대문 앞에는 고택과 독립운동가 최준에 대한 설명이 적혀 있는 안내판이 양쪽에 세워져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사랑채>

사랑채는 1970년대 화재로 불타버린 것을 다시 중건한 건물이다. 경주 지역의 특징을 보여주는 잘 다듬은 화강석으로 기단을 쌓고 그 위에 건물을 올렸다. 기단을 쌓은 석재나 주춧돌은 통일신라 절터에서 사용했던 것을 재사용한 것으로 보인다. 옆에 있는 경주 향교보다 낮게 보이기 위해 기단과 건물을 낮게 지었다고 한다.

OLYMPUS DIGITAL CAMERA<사랑채 누마루>

OLYMPUS DIGITAL CAMERA<뒷편에서 본 누마루>

사랑채는 앞면 5칸 규모로 왼쪽 2칸은 대청마루, 가운데 2칸은 온돌방, 오른쪽 1칸은 온돌방과 누마루로 구성되어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사랑채 툇마루>

OLYMPUS DIGITAL CAMERA<절터 주춧돌을 재사용한 것으로 보이는 주춧돌>

경주 최부자로 잘 알려져 있는 이 집안은 바람직한 모습을 보였던 조선시대 부호로 잘 알려져 있다. 조선중기부터 터를 잡고 살아온 경주최씨 집안은 9대 진사, 12대 만석군을 배출하였다. 벼슬은 체면유지용으로 진사까지만 하고 정치에 끼어들지 말라는 유지가 있었고 실제를 대부분의 후손들이 이를 실천했다고 한다. 다만 마지막 부자라 할 수 있는 최준은 독립군에 군자금을 대고 백산상회를 설립하는 등 일제강점기에 독립운동에 참여했고, 해방 후에는 전 재산을 기부하여 현재의 영남대학교를 설립하는 등 적극적으로 사회에 참여했다.

OLYMPUS DIGITAL CAMERA<사랑채 뒷편에 있는 사당>

안채는 트인 ‘ㅁ’자형으로 보이나 실제로는 ‘ㄷ’자형 안채와 ‘-’자형 중문채로 구성되어 있다. 중문채는 ‘-’ 자 형으로 오른쪽에 작은 행랑방과 부엌이, 가운데 중문과 창고가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안채 앞 ‘-자형 중문채>

OLYMPUS DIGITAL CAMERA<안채를 출입하는 중문>

OLYMPUS DIGITAL CAMERA<안채에서 보이는 중문채>

안채는 앞면 7칸 규모의 본채를 중심으로 양쪽에 4칸 규모의 날개채를 달아 내었다. 안채는 집안 식구들이 생활하던 공간으로 작은 방을 많이 두고 있다. 앞쪽에는 통로로 툇마루를 달아내어 놓고 있다. 안채 대청마루는 2칸 규모로 저택 규모에 비해 넓지 않은 편이다.

OLYMPUS DIGITAL CAMERA<안채와 안마당>

OLYMPUS DIGITAL CAMERA<본채>

OLYMPUS DIGITAL CAMERA<안채 대청마루>

OLYMPUS DIGITAL CAMERA<동쪽편 날개채>

OLYMPUS DIGITAL CAMERA<서쪽편 날개채>

OLYMPUS DIGITAL CAMERA<사당이 있는 뒷마당과 연결되는 서쪽 날개채 마루>

안채 앞 마당에는 앞면 2칸에 맞배지붕을 하고 있는 큰곳간이 있다. 대문채에도 큰 곳간이 있어 대대로 만석군 집안임을 잘 보여주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큰 곳간>

OLYMPUS DIGITAL CAMERA<대문채>

OLYMPUS DIGITAL CAMERA<마당 정원에 있는 주춧돌>

OLYMPUS DIGITAL CAMERA<석조>

OLYMPUS DIGITAL CAMERA<석탑 지붕돌로 보이는 석재>

OLYMPUS DIGITAL CAMERA<담장 너머로 모이는 별채와 큰 나무>

경주 교동 최씨 고택(慶州 校洞 崔氏 古宅), 경북 경주시 교동 69
이 가옥은 경주 최씨(慶州崔氏)의 종가로 1700년경에 건립되었다고 한다. 월성(月城)을 끼고 흐르는 남천 (南川) 옆 양지바른 곳에 자리 잡았고, 문간채·사랑채·안채·사당·고방으로 구성되어 있다. 원래는 99칸 이었다고 하는데 사랑채와 별당은 1970년에 불타고 주춧돌만 남았다. 안채는 ‘ᄆ’자 모양이고 대문채는 ‘-’자 모양이다. 사당(祠堂)은 사랑채와 서당으로 이용된 별당 사이에 배치되어 공간적 깊이를 느끼게 한 특징이 있다. 조선 시대 양반집의 원형을 잘 보존하고 있어 가치가 크다. 최씨 집안이 경주시 내남면 이조리에서 이곳 교동으로 이주하여 정착한 것은 조선 중기 무렵이다. 여기에서 12대 동안 만석지기 재산을 지켰고, 학문에도 힘써 19대에 걸쳐 진사(進士)를 배출하였다고 한다. (안내문, 경주시청, 2011년)

독립유공자 최준(崔浚) 선생 생가
문파(汶坡) 최준(崔浚, 1884 ~ 1970) 선생은 이른바 9대 진사 12대 만석의 마지막 부자로 이곳 교촌에서 태어났다. 선생은 영남의 대지주(大地主) 로서 조선국권회복단(朝鮮國權回復團)과 대한광복회(大韓光復會)에 군자금을 제공하는 등 독립운동을 지원하였으며, 특히 대한광복회에서 재무를 맡아 총사령관 박상진(朴尙鎭) 의사와 더불어 항일투쟁을 전개하다 일본 헌병대에 체포되어 심한 옥고(獄苦)를 치렀다. 선생은 또 이곳 사랑채에서 백산(白山) 안희제(安熙濟, 1885~1943) 선생과 함께 백산상회(白山商會) 설립을 결의하고 대표에 취임하여 비밀리에 독립운동 을 자금을 지원하였으며,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주석 백범(白凡) 김구(金九) 선생 에게 거액의 군자금을 보내는 등 독립운동사에 빛나는 공적을 남겼다. 이 밖에 선생은 민족혼을 일깨우기 위해 문화사업에도 관심을 기울여, 1920년에 경주고적보존회를 설립하고 1932년 정인보선생 등과 「동경통지」 를 편찬하는 등, 신라문화의 유산을 지키고 널리 알리는데 크게 기여하였다. 해방 직후 선생은 나라를 이끌어 나갈 인재를 길러야 한다며 모든 재산을 기증하여 계림대학과 대구대학을 설립하니, 곧 오늘의 영남대학교 전신이다. 정부는 선생의 공적을 기려 199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이제 애국애족의 일념으로 일생을 항일운동에 헌신한 선생의 숭고한 정신과 실천적 삶을 여기 기록하고, 길이 후세의 귀감으로 삼고자 한다. (안내문, 경주시청, 2011년)

<출처>

  1. 안내문, 경주시청, 2011년
  2. 국가문호유산포털, 문화재청, 2022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