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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도 신지리마을 운강고택 및 만화정, 조선후기에 지은 대저택

경북 청도군 금천면 신지리 마을에 있는 고택인 운강고택과 만화정이다. 조선 선조 때 박하담이 서당을 짓고 후학을 양성했던 곳에 후손 박시묵이 분가하면서 살림집으로 지은 집이다. 집은 생활공간인 안채와 사랑채를 분리해 놓고 있다. 사랑채를 중심으로 양쪽에 건물을 ‘ㅁ’자로 배치하고 있다.사랑채 앞 마당에는 중사랑채를 두고 있는데 후학을 양성했던 서당 역할을 기대했던 것으로 보인다. 마을 동창천 옆에 있는 선암서원과 비슷한 공간배치를 하고 있다. 구한말 대지주 계층이 살았던 대저택의 면모를 보여주고 있는데 마당을 상당히 넓게 쓰고 있으며 큰 규모의 곳간채를 두고 있다. 만화정은 이 집을 지은 박시묵이 동강천 옆 경치좋은 곳에 정자로 지은 건물이다.

청도 운강고택과 만화정 05-20200106청도 운강고택. 사랑채를 중심으로 양쪽에 ‘ㅁ’자로 건물들을 배치하고 있는 상당히 큰 규모의 대저택이다.

청도 운강고택과 만화정 04-20200106사랑채 마당을 출입하는 대문채.

청도 운강고택과 만화정 03-20200106운강고택 사랑채. 안마당과 사랑채 마당 사이에 위치하고 있는데 바깥주인이 일상적으로 거처하는 공간이다.

청도 운강고택과 만화정 01-20200106사랑채 마당 가운데 있는 중사랑채. 앞면 4칸 규모로 가운데 넓은 대청마루를, 양쪽에 온돌방을 두고 있는 강당형태의 건물이다. 박하담이 서당을 지어 후학을 양성했던 전통을 계승하고자 하는 의도가 엿보인다.

청도 운강고택과 만화정 02-20200106사랑채 마당에 있는 곳간채

청도 운강고택과 만화정 12-20100705안채는 앞면 7칸 규모의 ‘-’자형 건물로 ‘ㅁ’자형을 하고 있는 경북 북부지방의 전통한옥과는 달리 마당을 넓게 쓰고 개방적인 면모를 보인다.

청도 운강고택과 만화정 13-20100705안마당에 있는 행랑채

청도 운강고택과 만화정 14-20100705넓은 안마당과 행각처럼 길게 지어진 곳간채. 상당한 수준의 경제력을 갖춘 대지주계층이었음을 보여주고 있다.

청도 운강고택과 만화정 06-20200106저택 뒷편에 있는 사당.

청도 운강고택과 만화정 11-20100705집주인이 동창천 옆 경치좋은 곳에 지은 정자 형태의 건물인 만화정.

청도 운강고택 및 만화정, 경북 청도군 금천면 신지리
운강고택은 소요당 박하담(1479 ~ 1560년)이 벼슬을 사양하고 은거하며 사당을 지어 후학을 양성했던 옛터에 조선 순조 9년(1809)에 현재 소유자의 6대조인 박정주가 분가하면서 살림집으로 건립한 가옥이다. 이후 순조 24년(1824)에 운강 박시묵, 1905년에 박순병이 크게 다시 지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이 집은 안채와 사랑채가 별도로 ‘ㅁ’자형으로 되어 있는 대 주택이다. 짜임새 있는 구조와 필요에 따라 세분된 각 건물의 평면배치와 합리적인 공간구성 등이 한층 더 조화를 이루고 있는 상류주택이다. 만화정은 운강고택의 부속 정자로 동창천변에 위치하고 있다. (안내문, 청도군청, 2020년)

<출처>

  1. 안내문, 청도군청, 2020년
  2. 국가문화유산포탈, 문화재청, 2020년

청도 운곡정사와 원모재

경북 청도군 운문면 순지리에 있는 고택인 운곡정사이다. 취죽당 김응명의 후손들이 살았던 집으로 조선후기에 지어졌다. 대지를 2단으로 조성하여 사랑채 마당과 안마당을 분리하고 있다. 사랑채는 좌.우에 중간문과 고방을 두었고 오른 온돌방 문틈에는 중간설주를 설치하였다. 운곡정사 옆에는 취죽당 김응명을 모시는 재실인 원모재가 있다. 1990년대 운문댐을 건설할 때 원래 있던 곳이 수몰되면서 재실과 함께 현재의 위치로 옮겼다.

청도 운곡정사 10-20200106청도 운곡정사와 원모재. 취죽당 김응명의 후손들이 살았던 고택과 재실이다. 운문댐 건설로 원래 있던 곳이 수몰되면서 현재의 위치로 옮겼다.

청도 운곡정사 01-20200106운곡정사. ‘-’자형 사랑채와 안채가 나란히 배치되어 있으며 안채가 있는 안마당은 축대를 쌓아 높게 하였으며 담장으로 사랑채 마당과 공간을 분리하고 있다.

청도 운곡정사 08-20200106운곡정사 사랑채와 안채를 출입하는 중문.

청도 운곡정사 02-20200106대문채는 우진각 지붕을 하고 있는데 한쪽에는 문간방을, 반대쪽에는 외양간을 두고 있다.

청도 운곡정사 03-20200106대문에서 본 사랑채. 가운데 1칸 대청마루를 두고 양쪽에 온돌방과 고방을 배치하였다. 왼쪽 온돌방 문틈에는 중간설주가 있는데 이는 조선중기 한옥에서 볼 수 있는 양식이다.

청도 운곡정사 07-20200106사랑채 앞 마당. 사랑채와 안마당은 축대를 쌓고 그 위에 건물을 올렸다.

청도 운곡정사 04-20200106안채를 출입하는 마당. 그 옆에 재실인 원모재가 있으며 안채 뒷편에 사당을 두고 있다.

운곡정사, 경북 청도군 운문면 순지리
이 정사는 취죽당 김응명이 8대손인 경주인 운곡 김몽노(1828 ~ 1884년)의 생가이다. 운곡은 만년에 본가에서 가까운 운문면 방음리에 낙화정을 세우고 문인들과 교류하였다. 운곡정사의 당활 낙화정이 퇴락한 후 그곳 정자에 있던 편액을 가져다 붙인 이름이다. 대지를 2단으로 조성하여 사랑채 부분과 정침을 구분하고 있으며, 정침 좌측 후편에 사당을 두고 있다. 1993년 운문댐 건설로 인하여 순지리 406번지에서 현 위치로 이전하였다. 특히 사랑채의 구성 중에 좌측 온돌방 문틈에 중간설주를 설치하는 등 옛 방식이 남아 있는 점이 주목된다. (안내문, 청도군청, 2020년)

청도 운곡정사 05-20200106취죽당 김응명을 모시는 재실인 원모재.

청도 운곡정사 06-20200106건물은 앞면 5칸으로 ‘ㄱ’자형을 하고 있다. 왼쪽 뒷편에 날개채를 달아 부엌을 둔 것으로 보인다.

원모재
이 건물은 취죽당 김응명(1593 ~ 1647년)과 그의 아들 운계 김주를 모시는 재실로, 건립연대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1967년에 중수되었다. 본당은 ‘ㄱ’자형으로 독특한 평면구성을 이루고 있으며, 대문채는 우진각 지붕으로 평삼문의 형식을 취하고 있다. 1993년 운문댐 건설로 인해 수몰지역인 순지리에서 현 위치로 옮겨졌다. 화강석과 장대석 2단으로 구성한 기단 위에 높은 원형 주춧돌을 놓고 그 위에 둥근 기둥과 네모 기둥을 세웠다. 재사 건물로서 특이한 평면구성을 보여주고 있다. (안내문, 청도군청, 2020년)

청도 운곡정사 09-20200106운곡정사에서 내려다 보이는 운문댐 호수

<출처>

  1. 안내문, 청도군청, 2020년
  2. 국가문화유산포탈, 문화재청, 2020년
  3.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소, 2020년

상주 양진당(보물 1568호), 낙동강 주변 자연환경이 잘 반영된 고택

경북 상주시 낙동면 승곡리마을에 있는 고택인 양진당(보물 1568호)이다. 임진왜란 때 의병장으로 활동했던 검간 조정(1555 ~ 1536년)이 살았던 고택이다. 상량문에 따르면 1626년에 처음 짓기 시작하여 1628년에 완공되었으며 19세기에도 중수되었다는 사실도 확인되었다. 건물은 앞면 9칸, 옆면 7칸의 ‘ㅁ’자형 건물로 상당히 큰 규모의 대저택이었다. 낙동강 홍수로 자주 침수되는 지형적 조건 때문에 안채는 2층 누각처럼 지은 고상식 가옥이다. 세부적인 건축 수법 등에서 기술적으로 뛰어나며 침수지역이라는 지역적 특징이 잘 반영된 주거형태를 보여주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상주  양진당(보물 1568호). 조선중기에 처음 지어진 앞면 9칸 옆면 7칸의 대저택이다

OLYMPUS DIGITAL CAMERA앞면은 가운데 중문을 중심으로 사랑채가 배치되어 있다. 1966년 대홍수로 낙동강이 범람했을 없어졌던 것을 최근에 복원하였다. 2층 누각형태의 안채와는 달리 일반적인 단층건무이다.

OLYMPUS DIGITAL CAMERA큰 사랑채 대청마루.

OLYMPUS DIGITAL CAMERA옆면은 7칸으로 가운데 마당을 두고 양쪽에 날개채가 있는 형태이다. 안채는 지면보다 10 m 정도 높게 지은 누각 형태의 건물이다.

OLYMPUS DIGITAL CAMERA대문 안으로 보이는 안채. 축대을 높게 쌓고 앞쪽에 큰 기둥을 세운 누각 형태를 하고 있다. 날개채는 다락방이 있는 부엌으로 되어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뒷면.

OLYMPUS DIGITAL CAMERA뒷편에는 불천위 조상을 보시는 사당이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마을 앞 들판. 낙동강 지류인 장천이 마을 앞을 흐르고 있으며 낙동강에서 6 km 정도 떨어져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분재기, 보물 1404-1호, 명종 9년(1544) 11월 27일 재주인 고 찰방 홍윤최의 처 홍씨가 집안 전래의 노비와 논 일부를 외손자 물단개(조정의 아경)에게 별급하는 문서입니다. (안내문, 상주박물관, 201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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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정 문과급제 교지, 보물 1404-1호

OLYMPUS DIGITAL CAMERA풍양조씨세보

상주 양진당, 보물 1568호, 경북 상주시 낙동면 승곡리
이 건물은 조선중기 문신 검간 조정(1555 ~ 1636년) 선생의 가옥이다. 1985년 보수 중 발견된 상량문에 의하면 1626년에 착공하여 3년의 공사로 1628년 6월에 준공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1966년 대홍수로 대문채 등이 유실되었던 것을 2005년 발굴하여 복원하였다. 상습적 침수지역에 정면 9칸 측면 7칸의 ‘ㅁ’자형 평면을 고상(누각)식으로 지은 외관과 다소 복잡하면서 치밀한 내부 공간구성 그리고 정성어린 조형시상을 읽게 해 주는 목조 주택 수법들이 돋보이는 보기 드문 상류주택이다. 1973. 12. 30 자로 경상북도 유형문화재(제85호)로 지정.관리되어 오던 중 조선시대 주거 건축의 지역적 특성과 역사적 변천과정을 파악할 수 있는 학술적 가치를 높이 평가받아 2008. 7. 10자로 국가지정 보물로 승격되었다. (안내문, 상주시청, 2013년)

<출처>

  1. 안내문, 상주시청, 2013년
  2. 국가문화유산포탈, 문화재청, 2020년
  3.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소, 2020년

상주 오작당, 임진왜란 직후에 지은 고택

경북 상주시 낙동면 승곡리에 있는 고택인 오작당이다. 임진왜란 때 의병장으로 활동했던 조정(1555 ~ 1636년)이 지은 집이다. 임진왜란 직후인 1601년에 처음 지었으며, 1661년(현종 3)에 현재이 위치로 옮겼다고 한다. 건물은 안채와 사랑채가 ‘ㅁ’자형을 이루고 있으며 뒷편에 사당이 있다. 낙동강변 저지대에 있는 지형적 조건 때문에 안채는 축대를 높게 쌓고 그 위에 건물을 올려 놓고 있다. 인근에 있는 조정이 살았던 양진당(보물 1568호) 보다 먼저 지어진 집이다.

OLYMPUS DIGITAL CAMERA상주 오작당. 조선중기에 처음 지어진 고택으로 여러 차례 중수를 거치면서 오늘에 이르고 있다. 원래는 40여칸의 큰 저택이었으나 지금은 안채, 사랑채, 사당 만 남아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사랑채. 앞면 4칸으로 왼쪽 2칸은 온돌방 오른쪽 2칸은 넓은 대청마루를 하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가운데 마루가 열려 있을 때의 모습.

OLYMPUS DIGITAL CAMERA안채를 출입하는 중문과 앞면 2칸 규모의 작은 사랑채

OLYMPUS DIGITAL CAMERA중문 사이로 보이는 안마당과 안채. 낙동강 홍수로 인한 침수에 대비하기 위해 안채는 축대를 높게 쌓고 그 위에 건물을 올렸다.

OLYMPUS DIGITAL CAMERA옆쪽에서 본 안채와 사랑채.

OLYMPUS DIGITAL CAMERA상주 오작당 대문 앞 마당.

상주 오작당
이 건물은 임진왜란 때 의병장으로 활약하고 후에 이조참판에 추증된 검간 조정(1555 ~ 1636년) 선생이 선조 34년(1601)에 처음 지었다가 현종 2년(1661) 현 위치에 옮겨 지었다. 당초이 건물은 내사와 외사를 합여여 모두 40여 칸이었다고 하나 정조 5년(1781) 중수 때 부분적으로 훼철되었다. 현재는 안채.사랑채 가묘가 남아 있고, 안채는 겹집이며 본래 좌우에 익사가 있었으나 없어졌다. 또한 기둥에는 모접과 부엌의 판문, 격자창 등이 중후함을 보이며 고식을 간직하고 있다. 인근의 양진당과는 같은 유형이면서도 그보다 오랜 건물로 주목된다. (안내문, 상주시청, 2019년)

<출처>

  1. 안내문, 상주시청, 2019년
  2. 국가문화유산포탈, 문화재청, 2020년

충주 윤양계 고택, 19세기 중부지방 양반가옥

충북 충주시 엄정면 미내리에 있는 윤양계 고택이다. 이 가옥은 병마절제도위를 지낸 윤양계가 1873년에 건립되었다. 건물은  ‘-’자형 안채를 중심으로 서쪽에 사랑채를 동쪽에 별채를 두고 있다.  각 건물들은 대부분 ‘-’형을 이루고 있으며 안채와 사랑채 앞에 넓은 마당을 두고 있다. 앞쪽에 사랑채를 두고 안쪽에 안채를 두어 ‘ㅁ’자형을 이루는 전통적인 양반가옥과는 달리 여러동의 건물을 넓은 공간에 배치하고 있는 등 19세기 중엽 중부지방 양반가옥의 특징을 보여주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충주 윤양계 고택. 널은 공간에 안채, 사랑채, 별채 등의 넓게 배치되어 있다. 사랑채 앞 마당과 안채 마당 사이는 담장이 없는데 원래부터 그러지는 알 수 없다. 마당을 넓게 사용하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솟을대문을 하고 있는 문간채. 바깥쪽을 향해 창문을 두고 있는 도시형 한옥의 특징을 보여주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안쪽에서 본 문간채. 문간방과 외양간이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사랑채로 들어가는 중문이 있고 안채 앞 마당으로는 출입로를 두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안채는 ‘ㄱ’자형 건물로 여러개의 방과 부엌을 두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사랑채는 앞면 3칸 팔작지붕을 하고 있는 건물로 가운데 대청마루를 중심으로 양쪽에 온돌방과 누마루를 두고있다. 사랑채 뒷편으로 초가지붕을 하고 있는 안채에 딸린 건물이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동쪽을 향하고 있는 별채. 독립된 살림공간을 형성하고 있으며 안마당을 향해 방문과 툇마루를 두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바깥에서 보이는 모습. 상당히 큰 규모의 대저택이다.

OLYMPUS DIGITAL CAMERA마을 입구에 있는 고목

중원 윤민걸가옥, 충북 충주시 엄정면 미내리
우리나라 조선시대 양반 가옥의 형태는 사랑채가 있어 남자와 여자의 공간을 구분하고 있는데 남자는 집밖의 사회적 일을, 여자는 집안의 생활과 살림살이를 맡아하는 생활방식에서 연유하고 있다. 마당은 주요 생활의 무대가 되는 중심 공간이며, 마당을 중심으로 여러 건물이 배치되어 있어 전체적 통합이 이루어지게 하는 곳이라는 점을 이 가옥은 잘 보여주고 있다. 이 가옥은 조선말기 중부지방의 전형적인 양반 가옥의 형태로 집 뒤로 낮은 동산이 있고 앞으로는 개울이 흐르는 배산임수 지형이다. ‘ㄱ’자형의 안채를 중심으로 왼쪽에 행랑채, 오른쪽에는 별당이 동쪽을 향해 배치되어 있었지만 현재 행랑채는 없어졌고 사랑채는 조선중기 건축에 주로 썼던 사각뿔형 주춧돌을 사용하였다. (안내문, 충주시청, 2011년)

<출처>

  1. 안내문, 충주시청, 2011년
  2. 국가문화유산포탈, 문화재청, 2019년
  3.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정신문화연구원, 2019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