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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집트 기자(Giza)] 기자 피라미드군(Giza necropolis)

이집트 카이로 부근에 있는 기자 피라미드군(Giza necropolis라고도 함)이다. 고왕국 제4왕조(BC2613~BC2494)시기 파라오였던 쿠푸(Khufu), 카프레(Khafre), 멘카우레(Menkaure)의 무덤으로 알려진 3기의 피라미드, 대스핑크스와 부속건물, 무덤들, 노동자 숙소 등이 남아 있다. 역사 이래 고대 이집트문명의 상징으로 여겨져 왔으며, 헬레니즘시대 7대 불가사의 중 하나로 오늘날까지 유일하게 남아 있는 건축물이다. “멤피스와 네크로폴리스-기자에서 다슈르까지의 피라미드지역(Memphis and its Necropolis – the Pyramid Fields from Giza to Dahshur)”이라는 이름으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어 있다.

SANYO DIGITAL CAMERA<이집트 기자 피라미드군>

SANYO DIGITAL CAMERA<카이로에서 본 기자 피라미드군>

기자의 피라미드군은 3기의 피라미드와 부속 건축물로 구성된다. 3기의 피라미드는 남서축으로 동일선상에 일정한 간격을 두고 세워져 있다. 각 피라미드는 정사각형 평면을 하고 있으며 각면은 동서남북을 정확하게 가르키고 있다. 피라미드 동쪽 방향에는 장제전, 경사로, 계곡사원이 일렬로 배치되어 있으며 앞에는 스핑크스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피라미드 옆에는 작은 규모로 여왕들의 피라미드가 세워져 있다. 그 외에 ‘태양의 배’를 묻었던 구덩이, 귀족들의 무덤 등이 주위에 배치되어 있다.

737px-Giza_pyramid_complex_(map)<기자의 피라미드군 지도, 위키백과, 2023년>

SANYO DIGITAL CAMERA<카프레의 피라미드, 쿠푸의 피라미드>

SANYO DIGITAL CAMERA<카프레의 피라미드, 멘카우레의 피라미드>

피라미드 건축

기자의 피라미드들은 무거운 하중을 받칠 수 있도록 거대한 기반암 위에 세워졌다. 피라미드를 구성하는 석재로는 석회암, 하얀 석회암 외장재, 화강암 외장재 등이 있다. 내부 블럭으로는 주변에서 가져온 서 석회암을 사용했다. 쿠푸의 피라미드는  블럭으로 사용된 석재는 평균 2.5톤 정도이며 비슷한 크기의 블럭이 많이 사용되었다. 반면에 카르레의 피라미드와 멘카우레의 피라미드는 블럭의 크기가 작은편이다. 외벽용 흰색 석회암은 동부 사막의 투라 채석장에서 나일강을 통해 가져왔을 것으로 추정된다. 가장 큰 바위인 화강암은 왕의 방을 구성하는 것인데 무게가 약 20~80톤에 이른다. 멀리 아스완에서 가져왔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SANYO DIGITAL CAMERA<피라미드 주변에 남아 있는 기반암들>

SANYO DIGITAL CAMERA<카프레의 피라미드 뒷편 석회암>

SANYO DIGITAL CAMERA<쿠푸의 피라미드를 구성하고 있는 석회암 블럭>

피라미드는 외장재로 흰색 석회암을 사용하였다. 외벽들은 대지진 등으로 일부가 허물어졌으며 그후 술탄들이 성과 요새, 사원 등을 짓기 위해 피라미드 외벽을 대거 벗겨갔다. 카이로에 있는 이슬람 사원에서 피라미드 외벽을 볼 수 있다고 한다. 흰색 석회암으로 덮힌 모습은 카프레왕의 피라미드를 통해 간접적으로 살펴 볼 수 있다. 바닥면 부근에는 흰색 석회암이 일부 남아 있다. 멘카우레 피라미드 바닥면에서 외장재로 사용한 아스완 화강암의 실제 모습을 볼 수 있다.

SANYO DIGITAL CAMERA<쿠푸의 피라미드 하단에 남아 있는 흰색 석회암 외장재>

SANYO DIGITAL CAMERA<카프레의 피라미드 상단에 남아 있는 흰색 석회암 외장재>

SANYO DIGITAL CAMERA<멘카우레 피라미드에서 볼 수 있는 아스완에서 가져온 화강암 외장재>

멘카우레 피라미드 북쪽면에는 큰 수직홈을 볼 수 있는데 이는 1196년 이집트 술탄이 피라미드 철거를 시도했던 흔적이다. 피라미드의 철거는 건설만큼 어려운 일이어서 작은 흔적을 남기고 그만두어야 했다.

SANYO DIGITAL CAMERA<멘카우레 피라미드 북쪽면>

 기자 대피라미드(쿠푸의 피라미드)

파라오 쿠푸의 무덤으로 알려져 있어 쿠푸의 피라미드(Pyramid of Khufu)라고도 불린다. 고대 그리스에서 언급된 세계 7대 불가사의 중 한 곳이자 현재까지 남아 있는 유적이다. 기자(Giza) 지역에는 제4왕조 시기에 세워진 3기의 큰 피라미드가 있으며 그 중 가장 큰 규모이다. 대피라미드는 기원전 26세기에 약 20년에 걸쳐 건설되었으며  1311년 잉글랜드 링컨 대성당이 세워지기까지 가장  높은 인공구조물이었다.

SANYO DIGITAL CAMERA<기자의 대피라미 (Great Pyramid of Giza)>

쿠푸왕의 대 피라미드는 기자 피라미드 지구내의 언덕에 있고 많은 사람들이 가장 먼저 찾는 곳이다.  20년 동안 연 3만명 이상의 인원이 동원되어 지어졌다고 전해지지만 정확한 내용은 아직도 미스터리로 건축방법에 대해서 수많은 의견들이 있다. 높이는 약 146.5m였는데 현재는 돌들이 깎여나가 138.8m 정도이다. 아랫면의 길이는 모두 230.4m로 바닥 4면의 길이 차는 58mm 정도로 정밀하다. 바닥의 4면은 동서남북을 정확하게 가리키고 있어 거의 완벽한 정사각형을 이루고 있다. 원래는 하얀색 석회암 외벽으로 덮여 있었는데 바닥 부근에만 일부 남아 있고 안쪽에 쌓았던 돌들만 볼 수 있다.

SANYO DIGITAL CAMERA<아래에서 본 상층부>

SANYO DIGITAL CAMERA<피라미드 바닥면>

SANYO DIGITAL CAMERA<피라미드 서쪽면>

피라미드 내부에는 3개의 주요 방(왕실, 여왕실, 지하 방)을 비롯하여 대회랑 및 다양한 복도와 통로로 구성되어 있다. 피라미드 서쪽편에 내부로 들어가는 2개의 출입구가 있다. 하나는 원래 만들어졌던 통로 입구이며, 다른 하나는 ‘강도의 터널’이라 불리는 후대인들이 강제로 뚫은 통로이다. 관광객들은 ‘강도의 터널’을 통해 내부로 들어갈 수 있다.

SANYO DIGITAL CAMERA<피라미드 내부로 연결되는 2개의 통로 입구>

피라미드 동쪽에는 장제전(Funerary Temple), 경사로(Cause way), 계곡 신전(Valley Temple)이 일렬로 배치되어 있다. 장제전 양쪽으로 ‘태양의 배’를 묻은 구덩이(Boat pit)가 있다. 주변에는 여왕의 피리미드, 신전, 귀족들의 무덤(Mastabas) 등이 배치되어 있다.

SANYO DIGITAL CAMERA<쿠푸의 피라미드 장제전 건물터 주변>

장제전 앞으로는 경사로의 일부가 남아 있으며 입구에 있었던 계곡의 신전과 스핑크스는 볼 수 없다.

SANYO DIGITAL CAMERA<쿠푸의 피라미드 경사로>

대피라미드 동쪽에는 3개의 배모양 구덩이가 있다. ‘태양의 배’는 태양의 신 라(La)가 우주를 여행할 때 태양의 배를 이용한다는 전설에 따라 쿠푸왕이 하늘을 여행할 때 사용하기 위하여 만들어진 배이다.

SANYO DIGITAL CAMERA<배모양 구덩이(북쪽편)>

SANYO DIGITAL CAMERA<배모양 구덩이>

‘쿠푸의 배(Khufu Ship)’는 1954년 구덩이에서 묻혔던 나무조각들이 발견되었으며 1968년 재조립되어 피라미드 옆 ‘태양의 배’ 박물관에서 전시되었다. 태양의 신 라(La)가 우주를 여행할 때 태양의 배를 이용한다는 신화에 따라 만들어진 배이다. 배가 발굴된 구덩이 외에 2개의 구덩를 대피라미드 옆에서 볼 수 있다.  ‘쿠푸의 배’는 2021년 이집트 대박물관으로 옮겨졌다.

SANYO DIGITAL CAMERA<구덩이에서 발견된 ‘태양의 배’>

SANYO DIGITAL CAMERA<배가 전시되었던 ‘태양의 배’ 박물관, 2008년>

동쪽편에는 4기의 작은 피라미드가 있는데 쿠푸의 여왕의 피라미드라 불리고 있다. 대피라미드에 비교되어 왜소해 보이지만 작은 규모는 아니다.  하얀 석회암 외피는 남아 있지 않으며 훼손이 심한 편이다. 그중 하나는 심하게 파괴되어 인식할 수 없으나 관으로 사용했던 석재가 발견되었다.

SANYO DIGITAL CAMERA<여왕의 피라미드>

 카프레의 피라미드(Pyramid of Khafre)

카프레의 피라미드(Pyramid of Khafre)는 2번째로 큰 규모로 가운데에 위치하고 있다. 꼭대기에 흰색 석회암으로 만든 외장재(casing stones)가 남아 있다. 기자 지구 정문에서 볼 수 있는 장면으로 대스핑크스와 함께 기념촬영에 많이 등장한다. 피라미드 앞에는 제단과 스핑크스로부터 오르는 길도 남아 있어 웅장한 멋을 더해주고 있다. 기록이 있는 쿠푸의 피라미드와는 달리 기록이 남아 있지 않아 쿠푸의 후계자인 카프레의 피라미드로 짐작할 뿐이다.

SANYO DIGITAL CAMERA<카프레의 피라미드>

이 피라미드의 한변의 길이는 215.5m이고 높이는 136.4m이다. 쿠푸의 대피라미드에 3m 정도 낮으나 기울기는 가파르다. 바닥에 사용된 석회암 석재는 큰 편이지만 위로 갈 수록 크기자 작아진다. 하얀 석회암 외장석재가 상층부에 남아 있어 피라미드의 옛 모습을 상상할 수 있게 한다.

SANYO DIGITAL CAMERA<피라미드 하단>

카프레의 피라미드는 동쪽 정문에서 대스핑크스와 일렬로 배치되어 있다. 대스핑스 옆에는 카프레의 사원 단지가 있으며, 피라미드까지는 길로 연결되어 있다. 피라미드 동쪽 앞에는 장제전의 흔적이 남아 있다.

SANYO DIGITAL CAMERA<장제전(Funerary Temple of Khafre) 유적>

SANYO DIGITAL CAMERA<경사로(Cause way)>

SANYO DIGITAL CAMERA<경사로와 피라미드>

카프레의 계곡 사원(Valley Temple)은 상당히 양호한 상태로 남아 있는데 피라미드 계곡 사원을 대표할 수 있는 곳이다. 이집트 사원의 구성요소인 입구 홀, 기둥이 있는 안뜰, 파라오의 석상을 위한 다섯개의 벽감, 다섯개의 보관실 및 내부 성소를 잘 갖추고 있는 최초의 사원으로 알려져 있다. 피라미드와 마찬가지로 큰 돌을 블럭으로 석재를 사용하여 지어졌다. 주로 석회암이 사용되었으며, 흰색 석회암, 아스완에서 가져온 화강암 등도 사용되었다.

SANYO DIGITAL CAMERA<카프레의 계곡 사원(Valley Temple)>

SANYO DIGITAL CAMERA<뒤에서 본 모습>

대스핑크스(Great Sphinx)는 제2피라미드인 카프레왕의 피라미드와 함께 조성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으며, 일부는 그 조성방법이 다르고, 홍수의 흔적이 남아 있어 1만년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하는 의견도 있다. 원래 있던 거대한 석회암 바위를 조각한 것으로 길이 70m, 높이 20m, 얼굴 너비 4m 정도의 거대한 규모이다. 얼굴은 카프레왕의 생전모습을 조각하였다고 하며, 코를 중심으로 상당 부분 파손되었다.

SANYO DIGITAL CAMERA<기자의 대스핑크스(Great Sphinx)>

SANYO DIGITAL CAMERA<피리미드와 대스핑크스>

SANYO DIGITAL CAMERA<뒤에서 본 모습>

SANYO DIGITAL CAMERA<옆에서 본 모습>

멘카우레의 피라미드(Pyramid of Menkaure)

멘카우레의 피라미드(Pyramid of Menkaure)는 가장 작은 규모로 남쪽에 위치하고 있다. 다른 피라미드와는 건축양식이나 자재 등은 거의 비슷하여 이 피라미드를 통해 다른 피라미드의 건축방식이나 내부 형태 등을 추론해 볼 수 있다. 내부에서 사람뼈가 있는 나무관과 현무암을 만든 석관 등이, 피라미드 앞 신전 유적에서는 조각상을 비롯하여 많은 유물이 발견되었다.  멘카우레는 이집트 4왕조 파라오로 카프레의 아들이자, 쿠푸의 손자이다. 쿠푸나 카프레의 피라미드에 비해 상당히 작게 건설하였다는 전설이 있다. 실제로는 국력이 약해져 이전처럼 크게 지을 수 없는 당시 상황이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SANYO DIGITAL CAMERA<멘카우레의 피라미드>

SANYO DIGITAL CAMERA<장제전 앞 경사로>

귀족들의 무덤들(Cemeteries)

피라미드가 건설되면서 주변에는 귀족들을 위한 무덤들이 건설되었다. 주요 무덤군으로는 쿠푸의 피라미드 동쪽에 위치한 동쪽 묘역(East Field), 서쪽에 위치한 서쪽 묘역(West Field), 중앙 묘역(Central Field), 남쪽 묘역(South Field) 등이 있다.그외에 피리미드 건설에 참여한 노동자들의 무덤들이 산재해 있다. 귀족들의 무덤은 마스터바(mastabah)라고 부르는 경사진 측면과 평평한 지붕의 직사각형 구조를 하고 있다. 내부 묘실은 기반암을 깊숙히 파서 만들었다.

SANYO DIGITAL CAMERA<쿠푸의 피라미드 동쪽 여왕의 피라미드와 무덤들>

SANYO DIGITAL CAMERA<쿠푸의 피라미드 서쪽에 있는 귀족들의 무덤 중 하나>

SANYO DIGITAL CAMERA<쿠푸의 피라미드 남쪽 귀족들의 무덤들>

SANYO DIGITAL CAMERA<근처에 있는 무덤들>

SANYO DIGITAL CAMERA<귀족들의 무덤들>

SANYO DIGITAL CAMERA<귀족들의 무덤들>

기자의 피라미드군(Giza pyramid complex)

기자의 피라미드군은 나일강 중류 기자 평원에 자리잡고 있다. 카이로에서 약 9km 정도, 고대 이집트 수도였던 멤피스(Memphis)에서 17km 정도 떨어진 곳에 위치하고 있다. 헬레니즘시대 세계 7대 불가사의로 알려진 후 오랜 세월 많은 관광객들이 찾았단 인류 역사적 명소이다. 지금도 많은 사람의 눈에 익은 장면을 접할 수 있다.

SANYO DIGITAL CAMERA<기자 피라미드군 입구 마을>

SANYO DIGITAL CAMERA<정문 너머로 보이는 피라미드와 대스핑크스>

SANYO DIGITAL CAMERA<관광객을 상대로 흥정하는 모습>

SANYO DIGITAL CAMERA<대기중인 관광버스들>

SANYO DIGITAL CAMERA<사막 느낌을 주는 분위기>

<출처>

  1. “기자의 피라미”, 위키백과, 2023년
  2. “Giza pyramid complex”,  Wikipedia, 2023년

[이집트 기자(Giza)] 대스핑크스(Great Sphinx)

이집트 카이로 기자(Giza) 지역에 피라미드들과 있는 남아 있는 대스핑크스(Great Sphinx)이다. 대스핑크스는 제2피라미드인 카프레왕의 피라미드와 함께 조성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으며, 일부는 그 조성방법이 다르고, 홍수의 흔적이 남아 있어 1만년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하는 의견도 있다. 원래 있던 거대한 석회암 바위를 조각한 것으로 길이 70m, 높이 20m, 얼굴 너비 4m 정도의 거대한 규모이다. 얼굴은 카프레왕의 생전모습을 조각하였다고 하며, 코를 중심으로 상당 부분 파손되었다.

스핑크스는 머리는 사람이고 사자의 몸을 하고 있는 존재로 파라오의 권력을 상징적으로 표현한 것이라고 한다. 이집트를 비롯하여 앗시리아.바빌로니아.페니키아.페르시아.그리스 등 문명이 발생했던 중동과 지중해 부근 대부분의 지역에서 널리 알려져 있던 존재로 그 기원은 이집트라 할 수 있다. 기자의 대스핑크스는 오늘날 남아 있는 많은 스핑크스들 중에서 가장 오래되고, 규모도 가장 큰 스핑크스이다.

SANYO DIGITAL CAMERA<기자의 대스핑크스(Great Sphinx)>

고대 이래로 이집트 카이로를 찾은 많은 여행자들이 보게 되는 기자 피라미드의 웅장한 광경이라고 할 수 있다. 수천년 세월이 흐르는 동안 변하지 않은 모습으로 대스핑크스가 여행객을 맞이 하고 있다.  스핑크스 앞에서 사진을 찍었다는 것은 아마도 이집트를 다녀갔다는 상징이 될 수 있을 정도로 고대 이집트를 상징하는 장소이다.

SANYO DIGITAL CAMERA < 카프레왕 피라미드를 지키면서 앉아 있는 기자의 대스핑크스(Great Sphinx of Giza). >

스핑크스는 사람의 얼굴을 하고 있으며, 몸은 사자의 형상을 하고 있는 상상의 존재로 왕의 권력을 상징한다. 이집트와 앗시리아의 왕궁.무덤 등에서 다양한 형태의 조각상들이 발견되고 있는데 그중 이곳 기자의 카프레왕 피라미드를 지키고 있는 대스핑크스가 가장 크고 오래되었다고 한다.  앞으로 뻗은 다리 사이로 투트모세 4세의 석비가 있다. 투트모세4세(Thutmose IV)는 이집트 18왕조 8대왕(재위 기원전 1401~1391)으로 젊은 시절 기자의 스핑크스 발치에서 잠을 자다가 태양신의 목소리를 듣고 모래를 치워 스핑크스를 발견했다고 전해지는 인물이다. 석비에는 그의 꿈에 대한 이야기를 새겨 놓고 있다고 한다.

SANYO DIGITAL CAMERA<대스핑크스>

SANYO DIGITAL CAMERA<옆에서 본 모습>

SANYO DIGITAL CAMERA<반대편에서 본 모습>

뒷쪽에서 보면 대스핑크스는 카이로와 이집트 고왕국 수도였던 나일강 서안지역을 내려다 보고 있다.

SANYO DIGITAL CAMERA<뒤에서 본 모습>

대스핑크스의 얼굴은 카프레왕의 얼굴이라고 추정하고 있으며, 코를 중심으로 얼굴이 많이 파손되어 있다.  근처에는 최근에 복원한 것으로 보이는 계단이 있는 제단처럼 생긴 구조물이 있다. 기자의 대 스핑크스(Great Sphinx of Giza)는 석회암으로 되어 있는데 돌을 쌓아서 만든 것이 아니고 원래 있던 바위를 통째로 조각한 것이다. 스핑크스의 조각수법이나 재료가 카프레왕 피라미드와 달라 원래부터 있었던 것으로 추정하는 의견도 많다

SANYO DIGITAL CAMERA<대스핑크스 얼굴>

SANYO DIGITAL CAMERA<옆에서 본  얼굴>

제단, 대스핑크스, 카프레왕 피라미드가 일렬로 배치된 것처럼 보인다.스핑크스 앞에도 별도의 제단이 있고, 그 앞에는 신전이 자리하고 있다. 옆에 있는 경사로를 통해서 카프레왕의 피라미드 앞 제단으로 오르게 되어 있다.

SANYO DIGITAL CAMERA<제단, 대스핑크스, 카프레왕 피라미드>

옆쪽에서 보면 대스핑크스 너머로 기자 피라미드 중 제1피라미드로 불리는 구푸왕 피라미드를 볼 수 있다.

SANYO DIGITAL CAMERA<쿠푸왕의 피라미드와 대스핑크스>

기자 피라미드군(Giza necropolis라고도 함)에는 고왕국 제4왕조(BC2613~BC2494)시기 파라오였던 쿠푸(Khufu), 카프레(Khafre), 멘카우레(Menkaure)의 무덤으로 알려진 3기의 피라미드가 남아 있다. 인류가 남긴 가장 크고 위대한 구조물로 널리 알려져 있는 피라미드와 함께 입구에는 대스핑크스(Great Sphinx)가 남아 있다.

SANYO DIGITAL CAMERA<카프레왕의 피라미드와 대스핑크스>

아침 7시경 아직 피라미드 관람을 위한 출입문이 열리지 않은 시각 출입문 안쪽으로 스핑크스와 피라미드가 한눈에 들어온다. 이쪽 출입문이 정문이기는 하지만 이 곳으로 들어가면 쿠푸왕의 피라미드 내부를 관람하기 힘들어 낭패를 볼 수 있다.  쿠푸왕 피라미드는 하루 관람 인원에 제한이 있으며, 매표소는 반대편 출입구에 가까운 언덕위에 있기 때문에 뛰어가도 반대편 출입구를 통한 사람보다 늦게 매표소에 도착해서 인원제한에 걸릴 가능성이 많다.

SANYO DIGITAL CAMERA<출입문 바깥에서 보이는 대스핑크스와 피라미드>

<출처>

  1. “기자의 대스핑크스”, 위키백과, 2023년

[독일 프랑크푸르트(Frankfurt)] 뢰머광장(Römerberg), 도시의 중심

뢰머광장(Römerberg)은 마임강변에 자리잡은 프랑크푸르트 구도심 중앙에 위치한 광장이다. 뢰머(Römerberg)는 신성로마제국 황제의 대관식이 끝난 후 축하연이 열렸던 유서깊은 장소로 광장은 뢰머와 대관식이 열렸던 대성당 사이에 조성되어 있다. 첨탑처럼 생긴 경사가 심한 지붕과 목조 기둥이 장식적인 효과를 보여주고 있는 뢰머는 중세이래로 600여년간 시청사 건물로 사용되었다고 한다. 뢰머는 상인들이 시의회에 이건물을 1405년에 팔았다고 하며 그 이후 시청으로 바뀌면서 오늘에 이르고 있다고 한다. 웅장한 석조건물로 시청사와 길드홀을 지었던 유럽의 다른 도시들과는 달리 뾰족한 목조건축물 형태를 유지하고 있다. 뢰머를 중심으로 광장에는 크고 작은 목조건축물들이 빽빽히 들어서 있는데, 이들 건물들은 프랑크푸르트를 중심으로 독일 여러지역을 상대로 활동했던 상인들이 지은 저택으로 특히 쾰른의 비단상인이 많았다고 한다. 이들 건물들을 통칭하여 오스트차일레라고 부른다. 현재의 건물들은 대부분 제2차세계대전 당시 연합군의 폭격으로 대부분 파괴되었으며, 현재의 건물들은 원형에 가깝게 복원한 것이라고 한다.

프랑크푸르트는 라인강 지류인 마인(Main)강 하류에 위치하고 있는 독일의 교통, 경제의 중심지로 신성로마제국 황제 선거와 대관식이 프랑크푸르트 대성당에서 거행된 도시이다. 19세기 프로이센이 독일을 통일하면서 독일 정치의 중심지가 프로이센의 수도 베를린으로 되기 이전에는 독일에서 실질적인 수도였던 곳이기도하다. 지금도 뮌휀과 함께 독일 경제의 중심이 되는 도시이라 런던과 함께 금융중심지로 자리잡고 있다. 시청사 건물이라고 할 수 있는 뢰머를 중심으로 한 구도심 광장은 독일 정치나 경제에서 차지하는 위상에 비해서 규모가 작고 소박한 편이다. 근처는 이곳 출신 대문호인 괴테 생가와 신성로마제국 황제 대관식이 치러졌던 프랑크푸르트 대성당이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 뢰머광장(Römerberg)은 독일의 경제 수도라 할 수 있는 프랑크푸르트 구도심 중심부에 있는 광장이다. 유럽 대부분의 오래된 도시들과 마찬가지로 신성로마제국 황제의 대관식이 거행되었던 프랑크프루트 대성당을 중심으로 형성된 광장이라 할 수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뢰머광장(Römerberg)에서 중심적인 기능을 갖고 있는 건물인 옛 시청사인 뢰머(Römerberg)이다. 이 건물은 신성로마제국 황제 대관식이 끝난 후 화려한 축하연을 베풀었던 장소이며, 르네상스 시대인 1405년부터 시청사로 사용되었다. 현재의 건물은 2차세계대전 때 폭격으로 파괴된 것을 복원한 것이라 한다. 웅장하면서 화려한 석조건축물로 지어진 다른 도시의 시청사와는 달리 이 지방 전통적인 목조 건축물 양식을 유지하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뢰머(Römerberg)는 다른 건축물과 지붕이 심한 마찬가지 심한 경사를 이루고 있다. 이런 지붕들은 눈이 많은 지방에서 겨울동안 눈의 하중을 견디기 위한 구조로 알프스와 가까운 지리적 특징을 반영하고 있다고 할 수 이다.

OLYMPUS DIGITAL CAMERA뢰머를 장식하고 있는 조각상들

OLYMPUS DIGITAL CAMERA뢰머광장에는 목조구조를 하고 있는 건물들이 둘러싸고 있다. 이들 건물들을 오스트차일레라고 부르는데, 15세기 프랑크푸르트를 중심으로 활약하던 15세기 쾰른의 비단상인들이 지었던 건물들이라 한다. 현재의 건물들은 2차세계대전때 폭격으로 파괴된 것을 복원한 것이라 한다. 중세 독일 거리를 대표하는 건축물형태라 할 수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첨탑처럼 뾰족한 지붕이 특징인  오스트차일레.

OLYMPUS DIGITAL CAMERA지금은 대부분 관광객들을 상대로 기념품을 파는 가게로 바뀌었으며 아직도 주민들이 살고 있는 터전이 되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건물에 사는 주민이 유리창을 닦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중세 도시에서 크고 작은 행사가 벌어졌던 넓은 광장. 프랑크푸르트는 신성로마제국 황제 대관식이 열렸던 독일 정치의 중심지로 대관식이 열렸던 대성당과 축하연이 열렸던 시청사인 뢰머 사이에 넓은 광장이 조성되어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뢰머광장의 또다른 명소의 ‘정의의 여신’ 조각상이 세워져 있는 분수.

OLYMPUS DIGITAL CAMERA19세기 양식의 건축물들도 광장 주위에서 볼 수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광장 한쪽편에 볼 수 있는 교회

OLYMPUS DIGITAL CAMERA광장에서 황제 대관식이 열렸던 프랑크푸르트 대성당으로 연결되는 길

OLYMPUS DIGITAL CAMERA뢰머광장에서 도심으로 연결되는 길

OLYMPUS DIGITAL CAMERA광장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 전통 목조 건물.

 

[이탈리아 제노바(Genova)] 지중해 해상무역을 장악했던 대형 갤리선

십자군 전쟁과 그 이후인 14세기 지중해 해상무역을 장악했던 베네치아와 제노바의 대형갤리선이다. 이 배는 길이가 35m가 넘고 양쪽에 각각 30개 이상의 노젓는 자리가 있었으며, 상단부에는 화포를 설치하였다. 속도가 아주 빨랐으며, 해상전투시 기동력도 뛰어났다고 한다. 갤리선은 선박의 측면에 노를 달아서 전투시 빠른 추진력을 얻으며, 평상시에는 돛을 달아 바람을 이용해 추진력을 얻는다. 초기에는 갑판에 노를 장착한 1단 갤리선이 일반적이었으나 빠른 추진력을 얻고, 함포를 장착하는 등 전투의 효율성을 위해 2단.3탄의 대형 선박으로 발전하였다.

지중해 해상권력을 장악하기 위한 갤리선 간의 해상전투는 고대 이래로 빈번한 편이었으며, 그 중 베네치아와 투르크 함대가 격돌한 레판토 해전이 가장 유명하여, 이후에 베네치아가 지중해 해상권력을 장악했다고 할 수 있다. 그 이후 스페인과 포르투칼의 대항해시대 이후에는 원양항해에 부적합한 갤리선은 쇠퇴하고 튼 돛대에 돛을 올려 항해하는 항양선이라고 불리는 범선의 시대로 발전했다.

제노바(Genova)과 베네치아와 함께 르네상스시대에 대형갤리선과 함께 지중해 해상무역을 장악하면서 최전성기를 누렸다. 지중해 연안에 위치한 항구도시로 밀라노를 중심으로 이탈리아반도에서 생산력이 높고, 곡창지대를 이루고 있는 롬바르디아 평야지대의 관문이 되는 항구이다. 반면에 베네치아가 아드리아해와 연결된 이탈리아와 독일의 관문 역할을 했던 도시이다. 대형갤리선 시대 해군력을 바탕으로 부를 축적하고 유럽의 중심도시가 되었지만, 프랑스와 인접한 지리적 위치때문에 프랑스의 압력을 많이 받았던 곳이기도 하다. 지금도 밀라노와 토리노의 공업지대를 배후로 하고 있는 이탈리아 제1항구로서 지위를 유지하고 있다. 아메리카 신대륙을 발견한 콜롬버스가 제노바 출신인 것은 우연이 아니라 할 수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제노바(Genova) 항구에 정박해 있는 갤리선. 제노바가 지중해 해상무역 패원을 장악했던 르네상스 시기 해군의 주력 함대이다. 갤리선은 지중해 해상무역을 주름잡았던 기원전 7세기경 그리스인과 페니키아인들이 사용한 이래로 지중해 바다를 누렸던 군함으로 대항해시대 범선에 밀려나기까지 해군의 주력이었다. 조선시대 임진왜란 당시 연안에서 왜군을 상대로 큰 위력을 발휘했던 판옥선도 갤리선이라 할 수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고대 지중해 갤리선은 갤리선은 선박의 측면에 노를 달아서 배를 젓고 운항했다. 평상시 이동할 때는 돛을 달고 바람을 이용하여 운항하기도 했지만 전투시에는 선원들이 노를 저어서 빠른 속도로 움직일 수 있었다. 배의 속도를 빠르게 하고 함포를 장착하는 등 기술의 발달과 시대의 변화에 따라서 2단.3탄의 대형 선박으로 발전하였다. 제노바가 지중해를 장악했던 시기에는 주로 3단으로 된 대형갤리선을 사용하였다. 이 갤리선에서 보듯이 아래층 1단에는 노를 장착하고, 그 위에 함포를 2단으로 설치하여 전투력을 향상시켰다.

OLYMPUS DIGITAL CAMERA노를 장착하여 선원들이 노를 저었던 1단. 이 갤리선의 옆면에는 약 12개의 노가 설치되어 있으며, 그 위로 함포가 설치되어 있다. 해상전투시 적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서 2중의 문을 달아 놓고 있으며, 선박외부는 목재를 붙여서 사용하고 있다. 갤리선 노를 젓는 모습은 영화 ‘벤허’를 비롯하여 로마시대 해전을 묘사하는 영화에서 많이 볼 수 있다. 물론 임진왜란을 배경으로 한 우리나라 영화나 드라마에도 볼 수 있는 장면이다.

OLYMPUS DIGITAL CAMERA 노를 장착할 수 있는 구조물을 설치해 놓고 있으며, 안팎으로 문을 달아 놓았다.

OLYMPUS DIGITAL CAMERA갤리선 2,3단에는 화포를 장착해 놓고 있다. 화포가 등장하기 전까지 해전은 서로 충돌하여 배를 격파하고나 근접시켜 무장한 군인들이 백병전을 벌이는 것이 일반적이었으나, 화포의 등장으로 화력으로 전투의 승부를 결정지었다. 갑판 아래쪽에는 문을 달아 놓고 있으며, 갑판에 설치된 대포에는 문이 달려 있지 않고 구멍만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 갤리선 선수의 마스터. 바다를 상징하는 신 포세이돈과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사이렌을 장식으로 달아 놓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 배의 선수부를 장식하고 있는 인어상

OLYMPUS DIGITAL CAMERA배를 정박할 때 사용하는 닻. 오늘날 해군을 상징하는 심벌이라 할 수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갤리선 갑판에는 바람을 이용하기 추진력을 얻기 위해 3개의 거대한 돛대를 달아 놓고 있다. 평상시 운행할 때는 돛을 이용하지만 빠른 속도를 낼 수 없었기 때문에 근접 전투시에는 노를 저어서 추진력을 얻었다고 한다.

OLYMPUS DIGITAL CAMERA제노바 항구에 정박해 있는 갤리선. 르네상스시대 지중해 해상무역을 장악했던 제노바 해군을 기념하기 위한 기념물로 복원해 놓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선원들이 탑승할 수 있는 출입문이 있는 갤리선 반대쪽 측면.

OLYMPUS DIGITAL CAMERA갤리선과 제노바 항

 

[스페인 톨레도(Toledo)] 타호강(Rio Tajo)을 건너는 알칸타라 다리(Puente de Alcántara)

마드리드에서 열차를 타고 톨레도 기차역에 도착해서 10분쯤 걸어들어가면 스페인 카스티야 지방의 중심지이자 옛 수도인 톨레도를 들어가는 관문인 알칸타라다리(Puente de Alcántara)를 볼 수 있다. 이 다리는 스페인 중부 카스티야 지방에서 발원해서 포르투갈 리스본을 을 거쳐 대서양으로 흘러드는 이베리아 반도에서 가장 긴 타호강(Rio Tajo) 협곡을 건너는 중세풍의 다리이다. 이 다리는 로마시대 트라야누스 황제때인 104년 경에 처음 세워진 뒤 파괴되었다고 이슬왕 왕조때 중건하는 등 여러 차례 중건을 거쳐 15~16세기 복원된 것이 오늘에 이르고 있다. 타호강 협곡에 거대한 교각을 세우고 돌을 쌓아 만든 아치형 다리로 로마시대부터 고트왕조, 아랍시대의 석재들이 남아 있다. 다리 양쪽으로는 방어시설로 이슬람왕조때 무데하르 양식으로 세워진 거대한 망루가 있었는데 지금은 톨레도 성곽 쪽 망루만 남아 있다. 알칸타라는 아랍어로 ‘다리’를 뜻하는 말이라 한다. 이 다리가 있는 강변에서 보는 톨레도(Toledo)시의 풍경이 상당히 아름답다고 한다. 아래로는 Tajo강의 거센 물살이 흐르고 있으며, 도심은 성벽너머로 웅장한 중세풍의 건물들이 우뚝 서 있는 모습이다.

톨레도는 마드리드 남쪽에 위치한 유네스코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중세의 흔적이 남아 있는 도시이다. 톨레도는 Tajo강 중상류지역에 위치한 협곡에 자리잡고 있어 교통이 편리하고 지형적으로 요새를 형성하고 있어서 로마시대이래로 이베리아반도의 정치.경제적 중심지였다고 한다. 게르만족 이동 후 코트왕국의 수도 였으며, 이슬람 왕조때에는 중요한 거점이었으며, 스페인을 통일한 카스티야 왕국의 수도로 마드리도로 스페인의 수도를 옮기기 전까지 정치, 경제,문화의 중심지 였던 도시이다. 중세에 스페인을 통일한 후 유대인 및 아랍인들에 대한 박해가 있었을 때 그 중심지가 톨레도 였다고 하며, 지금도 톨레도는 중세의 분위기를 간직하고 있어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구도시 전체가 지정되어 있다고 한다.

OLYMPUS DIGITAL CAMERA 로마시대에 처음 세워진 알칸타라 다리(Puente de Alcántara), 타호강(Rio Tajo) 협곡에 세워진 아치형으로 된 이 다리를 건너서 톨레도(Toledo)로 들어갈 수 있다. 이 다리는 로마 트라야누스 황제때인 104년 경에 세워졌다가 파괴된 것을 이슬람시대에 다시 세웠으며 이후 15~16세기에 다시 복원하였다고 한다.

OLYMPUS DIGITAL CAMERA타호강 중간에 세워진 거대한 교각. 톨레도는 타호강 중.상류에 위치하고 있어 강폭이 좁아 중간에 1개의 교각만 세우고 있다. 오늘날 기준으로도 건설하기 힘든 다리이다.

OLYMPUS DIGITAL CAMERA톨레도 기차역에서 도심으로 들어오는 길. 겨울철인데 타호강(RIo Tajo)의 짙은 안개로 알칸타라 다리를 비롯하여 톨레도 성채가 거의 보이지 않는다.

OLYMPUS DIGITAL CAMERA톨레도(Toledo)는 기차역에서 도보로 약 10분쯤 걸어서 알칸다라 다리를 건너 들어가는 것이 일반적이다. 들어가는 길에는 이 지역에서 많이 볼 수 있는 돌로 쌓은 성벽들을 볼 수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알칸타라 다리를 건너서 톨레도 도심으로 들어간다. 톨레도(Toledo)는 바위산 위에 세워진 요새 알카사르(Alcazar)와 대성당을 중심으로 중세풍의 도시가 형성되어 있다. 북쪽을 제외하고 3면이 협곡으로 된 타호강(Rio Tajo)이 막고 있어 중세때까지 이 다리가 톨레도를 들어가는 유일한 다리였다고 한다. 관광객이 많지 않은 겨울이라 마치 중세시대 순례자들처럼 다리를 건너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알칸타라 다리 중간에 만들어진 전망대 같은 시설. 원래는 강을 오가는 배나 사람들을 감시하는 초소였던 것으로 보인다.(?)

OLYMPUS DIGITAL CAMERA다리를 건너 톨레도 성채 입구에는 커다란 망루가 세워져 있다. 원래는 다리 양쪽에 방어시설인 망루가 세워져 있었는데 지금은 다리 입구의 망루는 없어지고 톨레도 성채 입구 망루만 남아 있다. 망루는 중세시대 고트족을 물리치고 톨레도를 장악했던 이슬람세력이 쌓은 요새로 무데하르양식의 건축물이라 한다.

OLYMPUS DIGITAL CAMERA반대편 다리 입구에 있던 망루는 없어지고 출입문이 만들어졌다. 다리 너머 언덕에는 중세에 세워진 산세르반도성(Castillo de San Servando)이 남아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망루를 장식하고 있는 독수리가 새겨진 중세시대 문장

OLYMPUS DIGITAL CAMERA망루 여러곳에 문장과 특별한 의미가 있는 부조상을 새겨 놓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망루 안쪽에 새겨진 부조상들

OLYMPUS DIGITAL CAMERA다리를 건너 톨레도 성벽 아래 도로에서 본 망루. 망루를 지나서 옹성형태로 지어진 성문을 통해 톨레도를 들어갈 수 있다. 지금은 타호강(Rio Tajo)을 따라서 성벽 아래로 도로가 나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성벽아래 도로에서 본 알칸타라 다리. 타호강(Rio Tajo) 중간에 교각을 세우고 거대한 아치형 다리를 건설하였다. 로마시대에 처음 세워진 이래로 여러차례 중건하였는데, 협곡일 지나는 거대한 아치형 다리형태를 계속 유지했던 것으로 보인다.

OLYMPUS DIGITAL CAMERA다리 아래를 흐르는 타호강(Rio Tajo). 타호강은 포르투칼어로 테주(Tejo), 영어와 라틴어로는 타구스강(Tagus River)라 부른다. 길이 1,007km로 이베리아반도에서는 가장 긴강이다. 스페인의 중심부 카스티야지방에서 발원하여 포르투갈 리스본을 통해 대서양으로 흘러간다.

OLYMPUS DIGITAL CAMERA톨레도는 타호강이 굽이쳐 흐르는 바위산에 세워진 도시이다. 강에서 톨레도 성벽까지는 바위절벽을 이루고 있으며, 산책로를 통해 한번 둘러볼 수 이다.

OLYMPUS DIGITAL CAMERA톨레도 성벽에서 내려다 보이는 알칸타라 다리.

OLYMPUS DIGITAL CAMERA알칸타라 다리가 연결된 알카사르(Alcazar)와 대서당을 비롯한 도시의 중요한 시설들은 높은 지대에 위치하고 있고, 주거지는 강과 가까운 낮은 지대에 위치하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중세도시 톨레도를 들어가는 관문인 알칸타라 다리. 안개 가득한 1월의 톨레도 풍경은 햇빛으로 대표되는 스페인 풍경과는 다른 중세적인 분위기를 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