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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주 상주향교, 상주목 관아에서 설치.운영했던 중등교육기관

경북 상주시 신봉동에 있는 옛 상주목 관아에서 운영했던 중등교육기관인 상주향교이다.  상주향교가 언제 처츰 세워졌는지는 알 수 없지만 조선초 감영이 설치되었던 상주목의 고을 규모나 위상 등을 고려해 볼 때 향교가 처음 세워졌던 고려시대부터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현재의 상주향교 건물들은 조선초 세종 때 처음 지어진 후 임진왜란 때 불탄 것을 중수하였으며 그후 여러차례 중.보수가 계속되어 오다가 1961년 남산중학교 교실로 사용되고 있던 명륜당 등이 화재로 소실되면서 옛 건물은 대성전만 남아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옛 상주목관아에서 운영했던 중등교육기관인 상주향교. 경상감영이 설치되었던 상주목의 규모와 위상에 걸맞게 크고 웅장하게 지어졌다. 일제강점기 이후 남산중학교 교사로 사용되기도 했으나 지금은 옛모습과 규모를 복원해 놓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상주향교 출입문인 문루. “남루”라 적힌 현판이 걸리 2층 누각 건물로 앞면 5칸으로 상당히 큰 문루건물이다.

OLYMPUS DIGITAL CAMERA안쪽에서 본 모습. 일반적인 문루와는 달리 양쪽에 1칸씩 온돌방이 있는 날개채를 달아내어 다른 분위기를 주고 있다. 공부하는 학생들을 위한 공간으로 교육기능이 남아 있었던 상주향교의 성격을 보여주는 부분이다.

OLYMPUS DIGITAL CAMERA강학공간의 중심건물인 명륜당. 일제강점기 이후 남산중학교 교사로 사용되다가 소실된 것을 최근에 복원하였다. 앞면 5칸의 상당히 큰 건물이다.

OLYMPUS DIGITAL CAMERA유생들이 기숙사인 동재. 가운데 1칸 대청마루를 두고 양쪽에 2칸씩 온돌방을 두고 있다. 많은 유생들이 머물렀던 것으로 보인다.

OLYMPUS DIGITAL CAMERA맞은편 서재.

OLYMPUS DIGITAL CAMERA제향공간인 대성전 내삼문.

OLYMPUS DIGITAL CAMERA대성전은 앞면 5칸에 맞배지붕을 하고 있는 건물로 전국 향교 중에서도 상당히 큰 규모이다.

OLYMPUS DIGITAL CAMERA대성전 앞 동무. 선현들을 모시는 공간으로 앞면 10칸의 상당히 큰 규모의 거물이다.

OLYMPUS DIGITAL CAMERA맞은편 서무.

OLYMPUS DIGITAL CAMERA명륜당 동쪽에 위치한 건물.

OLYMPUS DIGITAL CAMERA현재 유림들의 공간으로 사용하고 있는 건물. 보통 유림회관이라 부른다.

상주향교 대성전
이 건물은 조선초에 건립되었으며, 정확한 처음 건립 연대는 알 수 없고 세종 8년(1426)에 판목 조치가 남루를 세웠고, 성종 15년(1485)에는 목사 강구촌이 성전과 재.루를 중수하였다. 임진왜란 떄 완전히 불탄 후 광해군 10년(1618) 목사 정호선이 정경세와 더불어 성묘.동서무.명륜당.동서재 등을 중건하였다. 고종 29년(1892) 목사 유병주가 다시 중건한 후 여러번의 중.보수가 이루어져 오다가 명륜당을 1949년에 상주고등공민학교 교실로, 1961년에는 남산중학교 교실로 사용하다 소실되었다. 그 후 1989년 내삼문 신축, 1991년 명륜당 복원, 1992년 서재 복원, 1994년 고직사 이건, 1995년 외삼문 신축 등이 이루어져 어느 정도 제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화려하지 않으면서도 웅장한 건물로 상당히 큰 규모(정면 10칸)의 동.서무와 함께 대설위 향교로서의 위용을 읽게 한다. (안내문, 상주시청, 2013년)

<출처>

  1. 안내문, 상주시청, 2013년
  2. 국가문화유산포탈, 문화재청, 2020년
  3.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소, 2020년


 

나주 나주향교(사적 483호), 교육기능을 제대로 갖춘 큰 규모의 향교

전남 나주시 교동에 있는 옛 나주목 중등교육기관이었던 나주향교(사적 483호)이다. 나주향교는 조선초 태종 7년(1407)에 처음 창건되었다. 조선시대 설치된 향교 중 전주향교, 강릉향교 등과 함께 가장 큰 규모를 하고 있다. 공자 아버지 위치를 봉안한 계성사가 있어 앞쪽에 제향공간이, 뒷편에 강학공간이 있는 전묘후학의 공간배치를 하고 있다.

제향공간에는 공자를 비롯한 5성, 송조 4현, 우리나라 18현을 모시고 있는데 대성전과 동.서무를 제대로 갖추고 있다. 대성전(보물 394호)은 앞면 5칸, 옆면 4칸의 상당히 큰 규모은 건축물로 대표적인 문묘 건축물로 손꼽힌다. 강학공간은 좌.우익랑을 제대로 갖추고 있는 명륜당을 중심으로 양쪽에 동.서재를 두고 있다. 전체적인 규모나 공간배치에 있어 서울 성균관과 거의 유사하며 교육기능을 제대로 수행할 수 있는 대표적인 향교이다.

SANYO DIGITAL CAMERA나주향교(사적 483호). 나주목 관아에서 운영했던 중등교육기관으로 전묘후학의 공간배치, 좌.우익랑을 갖춘 큰 규모의 대성전과 동.서재 등 성균관에 버금가는 규모를 갖춘 대표적인 향교이다.

SANYO DIGITAL CAMERA나주향교 외삼문. 입구에 표지석과 하마비가 세워져 있다. 강학공간으로는 문묘 옆 골목길을 통해 들어갈 수 이다.

SANYO DIGITAL CAMERA외삼문을 들어서면 마당이 있고 문묘 출입문인 내삼문까지 바닥돌이 깔린 신도가 연결되어 있다. 내삼문은 맞배지붕을 하고 있는 전형적인 삼문형식을 하고 있다.

SANYO DIGITAL CAMERA공자와 선현들을 모시는 제향공간인 문묘. 대성전(보물 394호)를 중심으로 동.서무를 제대로 갖추고 있다.

SANYO DIGITAL CAMERA나주향교 대성전(보물 394호). 앞면 5칸, 옆면 4칸에 팔작지붕을 하고 있는 상당히 큰 규모의 건물이다. 우리나라 문묘 건축을 대표하는 건축물이다.

SANYO DIGITAL CAMERA선현들의 위패를 모신 서무. 앞면 3칸의 맞배지붕을 하고 있다.

SANYO DIGITAL CAMERA향교 외삼문 오른쪽 강학공간으로 들어가는 골목길. 정면에 전사청 등에 해당하는 부속 건물들이 들어서 있다.

SANYO DIGITAL CAMERA강학공간 중심건물인 명륜당. 가운데 넓은 대청마루가 있는 강당을, 양쪽에 협실을 두고 있다. 성균관 명륜당과 같은 규모와 형태를 하고 있다. 교육기관으로 기능을 제대로 할 수 있는 구조이다.

SANYO DIGITAL CAMERA명륜당 현판이 걸려 있는 가운데 강당 건물. 앞쪽에 월대를 두고 있다.

SANYO DIGITAL CAMERA왼쪽편 협실. 앞면 3칸 규모로 넓은 대청마루 2칸과 온돌방 1칸을 두고 있다.

SANYO DIGITAL CAMERA오른쪽 협실. 최근에 크게 수리한 것으로 보인다.

SANYO DIGITAL CAMERA유생들의 기숙사인 동재. 명륜당 앞 마당 방향으로 회랑형식의 툇간을 두고 있다. 성균관 동.서재와 같은 형식으로 다른 향교에서는 보기 힘든 구조이다.

SANYO DIGITAL CAMERA반대편에는 비교적 넓은 마루를 두고 있어 유생들이 일상적으로 공부하면서 생활할 수 있는 구조이다.

SANYO DIGITAL CAMERA맞은편 서재. 동재와 같은 구조이다.

SANYO DIGITAL CAMERA명륜당 월대에서 내려다 보이는 강학공간 마당과 대성전. 마당이 상당히 넓은 편이다.

SANYO DIGITAL CAMERA강학공간 동쪽편 전사청 등 부속건물들이 들어서 있는 공간으로 출입하는 출입문. 성균관과 같은 공간배치이다.

SANYO DIGITAL CAMERA출입문을 들어서면 동재 앞 마당과 부속 건물들이 하나의 공간을 형성하고 있다.

SANYO DIGITAL CAMERA뒷편 도서관에 해당하는 건물.

<출처>

  1. 안내문, 나주시청, 2009년
  2. 국가문화유산포탈, 문화재청, 2019년
  3.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소, 2019년

나주 나주향교 대성전(보물 394호),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문묘 건축물

전남 나주시 교동에 있는 나주향교 대성전(보물 394호)이다. 대상전은 공자를 비롯한 선현들의 제사를 지내는 제향공간 중심 건물로 문묘라고도 부른다. 나주향교는 전묘후학의 공간배치로 성균관 문묘처럼 앞쪽에 위치하고 있다. 건물은 앞면 5칸, 옆면 4칸에 팔작지붕을 하고 있는데 성균관 문묘와 비슷한 규모이다. 지붕을 받치는 공포는 주심포 양식을 사용하고 있으며, 바닥에는 마루를 깔았다. 서울 문묘, 강릉향교, 장수향교와 더불어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문묘 건축물이다.

SANYO DIGITAL CAMERA나주향교 대성전(보물 394호).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문묘 건축물로 서울 성균관 문묘에 버금가는 큰 규모의 대성전이다.

SANYO DIGITAL CAMERA건물은 앞면 5칸, 옆면 5칸 규모이다. 팔작지붕을 사용하고 있으며 지붕을 받치는 공포는 주심포양식이다.

SANYO DIGITAL CAMERA뒷편에서 본 모습

나주 나주향교 대성전 보물394호 01-20190828
건물 내부. 바닥에 전돌대신 마루가 깔려 있으며, 천장은 서까래가 드러나 보이는 연등천장이다.

SANYO DIGITAL CAMERA대성전 앞 월대.

나주향교 대성전, 보물 394호
대서어전은 향교의 중심건물로 공자를 중심으로 한 27위의 위패를 모신공간이다. 건물의 크기나 모양이 우리나라에 남아 있는 대성전 중에 으뜸으로 인정받고 있으며, 유교건축 연구에 있어서도 중요한 자료라고 할 수 있다. 특히 대성전 벽흙은 공자의 고향에서 가져온 것이라는 말과 임진왜란 이후 성균관을 다시 지을 때 나주향교 대성전을 참조하여 지었다는 말이 전해온다. 대성전은 조선시대 나주향교가 건립되면서 처음 지어졌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후 1670년 소두산 목사에 의해 대성전 중수가 이루어졌고 고종 6년(1869)에 대성전을 비롯하여 대대적인 보수를 거쳤으며, 순조 33년 ~ 헌종 3년(1833 ~1837), 고종 32년(1906), 2008년에 대성전 도리이상 해체. 복원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 (안내문, 나주시청, 2017년)

<출처>

  1. 안내문, 나주시청, 2017년
  2. 국가문화유산포탈, 문화재청, 2019년
  3.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소, 2019년

남원 남원향교, 남원도호부 중등교육기관

전북 남원시 향교동에 있는 조선시대 남원도호부 중등교육인 남원향교이다. 남원향교는 조선초 태종 때(1410년)에 처음 창건되었으며, 세종 때 현재의 위치로 옮겼다. 정유재란 남원전투 때 소실되었다가 복원하였으며 여러 차례 중수를 거치면서 오늘에 이르고 있다. 대성전을 비롯하여 동.서무, 강당인 명륜당과 동.서재, 문루인 진강루와 고직사 등을 두고 있다.

남원향교는 고을규모에 걸맞게 건물의 규모가 상당히 큰 편이며 오랫동안 교육기능을 담당했던 것으로 보인다. 전북에 있는 향교 중  가장 많은 서적을 소장하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또한 남원은 지리산과 접하고 있으며 영남지방을 연결하는 중요한 교통로 위치하고 있어 이곳을 찾은 방문객들이 많았던 것으로 보이며 방문객들을 위해 강당을 비롯하여 강학공간의 규모를 크게 했던 것으로 보인다. 동해안명승지에 위치한 강릉향교과 비슷한 특징을 보여주고 있다.

SANYO DIGITAL CAMERA남원 출입문인 진강루. 앞면 3칸, 옆면 3칸 비교적 큰 규모의 2층 문루이다.

SANYO DIGITAL CAMERA안쪽에서 본 모습. 주위 풍경을 감상하면서 쉴 수 있는 휴식공간  역할을 했던 것으로 보인다. 강당과는 통로가 연결되어 있다.

SANYO DIGITAL CAMERA강당인 명륜당. 앞면 5칸의 상당히 큰 규모의 건물이다. 가운데 3칸은 넓은 대청마루로, 양쪽에 1칸씩 온돌방을 두고 있다. 경사진 지형에 2층 건물처럼 지어졌다.

SANYO DIGITAL CAMERA강당과 문루를 연결하는 통로

SANYO DIGITAL CAMERA출입문에서 강학공간 마당으로 들어가는 길

SANYO DIGITAL CAMERA안쪽에서 본 강당.

SANYO DIGITAL CAMERA유생들이 거처하는 기숙사인 동재. 앞면 5칸의 큰 건물로 교육기능을 중시했음을 알 수 있다. 건물 앞에 비석이 세워져 있다.

SANYO DIGITAL CAMERA동재 툇마루.

SANYO DIGITAL CAMERA맞은편 서재. 앞면 4칸 규모이다.

SANYO DIGITAL CAMERA강학공간 안쪽에 있는 고직사.

SANYO DIGITAL CAMERA강당 뒷편 대성전 출입문.

SANYO DIGITAL CAMERA남원향교 대성전

남원향교 대성전, 전남 남원시 향교동
이곳 대성전은 공자를 모신 사당이다. 조선왕조는 유교를 통치이념으로 삼아 나라에서 각 지방에 향교를 세우고 그 안에 대성전을 두어 유학을 장려하였다. 남원향교는 조선 태종 때 성안 서쪽 골짜기에 처음 세웠다가 얼마 후 요천 건너편으로 옮겼는데, 요천이 범람할 때마다 유생들이 향교에 다니기가 어려워 세종 25년(1443)에 지금의 자리로 다시 이사했다고 전한다. 그후 정유재란 때 향교 건물이 모두 불타버렸으나, 선조 32년(1599)에 지방의 유지 유인옥이 대성전을 다시 지었다. 대성전 안에는 공자를 중심으로 여러 성현과 유학자를 모셨으며, 매년 봄가을에 이곳에서 <석전대제>라는 큰 제사를 지낸다. (안내문, 남원시청, 2010년)

SANYO DIGITAL CAMERA대성전 앞 서무.

SANYO DIGITAL CAMERA맞은편 동무.

<출처>

  1. 안내문, 남원시청, 2010년
  2. 국가문화유산포탈, 문화재청, 2019년
  3.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소, 2019년

김제 김제향교(사적 482호)

전북 김제시 교동에 있는 옛 김제군 관아에서 운영했던 중등교육기관인 김제향교(사적 482호)이다. 주로 읍치 바깥에 있던 다른 지역과는 달리 관아에서 130 m 정도 떨어진 곳에 위치하고 있다. 김제향교는 조선초 태종 때(1404)에 처음 세워졌으며, 여러차례 중수를 거치면서 오늘에 이르고 있다. 공자와 선현들을 모시는 대성전은 원래부터 있던 건물이고 명륜당을 비롯한 부속건물들은 일제강점기에 다시 지어진 것들이다. 규모는 비교적 큰 편이며 교육기능을 오랫동안 유지했던 것으로 보인다.

SANYO DIGITAL CAMERA김제향교. 조선시대 중등교육기관으로 대성전, 명륜당, 동.서재, 문루 등을 제대로 갖추고 있다. 조선중기 이후 김제평야의 농업생산력을 바탕으로 번성했던 김제군의 위상을 잘 보여주고 있다.

SANYO DIGITAL CAMERA향교 출입문으로 사용하고 있는 문루.  솟을삼문을 사용하고 있는 다른 지역 향교에 비해 크고 웅장하다.

SANYO DIGITAL CAMERA강학공간 중심 건물인 명륜당.

SANYO DIGITAL CAMERA유생들의 기숙사인 동재.

SANYO DIGITAL CAMERA맞은편 서재

SANYO DIGITAL CAMERA대성전을 출입하는 내삼문.

SANYO DIGITAL CAMERA공자와 선현들을 모시는 공간인 대성전. 김제향교 건물 중 유일하게 조선시대에 지어진 건물이다. 앞면 3칸에 맞배지붕을 하고 있는데 그 규모가 크고 웅장하다.

SANYO DIGITAL CAMERA대성전 옆 동무

SANYO DIGITAL CAMERA맞은편 서무.

SANYO DIGITAL CAMERA김제향교 전경.

<출처>

  1. 안내문, 김제시청, 2018년
  2. 국가문화유산포탈, 문화재청, 2019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