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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청 단성향교, 조선시대 단성현 중등 교육기관

경남 산청군 단성면 누강리에 있는 단성향교이다. 옛 단성현 중등교육기롼으로 고려전기 인종 때 처음 창건되었다. 조선초 세종 때 강누리 인근으로 옮겨졌다가 조선후기 영조 때 현위치로 옮겨졌다. 후학을 양성하는 교육기능보다는 공자와 선현에 제사를 올리는 제향기능 위주로 운영되었던 지방의 작은 향교이다. 단성향교에는 <단성현 호적장부>를 보관하고 있었는데 조선후기 사회상을 보여주는 중요한 자료이다.

산청 단성향교 01-20220222<산청 단성향교>

경사진 지형에 건물이 세워져 있는 명륜장을 중심으로 강학공간을 앞쪽에, 대성전을 비롯한 제향공간을 뒷편에 둔 전학후묘의 공간배치를 하고 있다. 일반적이 향교와 공간배치는 비슷하지만 누각형태의 명륜당을 두고 내삼문 양쪽에 출입문을 두고 있는 독특한 건물구조와 배치를 보여주고 있다.

산청 단성향교<단성향교 공간배치>

산청 단성향교 04-20220222<홍살문>

외삼문은 솟을대문을 하고 있으며 양쪽에 행랑채를 두고 있다.

산청 단성향교 05-20220222<외삼문>

산청 단성향교 17-20220222<외삼문과 행랑채>

강학공간은 누각형태의 명륜당이 앞쪽에, 마당과 동,서재가 뒷편에 배치되어 있다. 강당건물인 명륜당(明倫堂, 보물)은 경사진 지형에 축대를 쌓고 누각형태로 지어진 건물로 공(工)형태의 지붕을 하고 있다. 독특한 지붕형태와 가구형식은 다른 향교나 서원 강당건물에서는 보기 드문 형태이다.

산청 단성향교 02-20220222<강학공간>

산청 단성향교 18-20220222<명륜당(보물)>

산청 단성향교 16-20220222<명륜당 내부>

산청 단성향교 10-20220222<내삼문 앞에서 본 명륜당과 강학공간>

산청 단성향교 08-20220222<동재>

산청 단성향교 07-20220222<서재>

제향공간은 대성전을 중심으로 동,서무처럼 보이는 건물로 구성되어 있다. 대성전 앞 건물은 전사청과 제기고 역할을 하고 있다. 내삼문은 앞면 7칸 규모의 특이한 건물인데 가운데 3칸은 삼문을 달고 양쪽 끝에 1칸씩 일상적으로 출입하는 문을 두고 있다.

산청 단성향교 09-20220222<내삼문>

산청 단성향교 12-20220222<대성전>

산청 단성향교 11-20220222<대성전 마당 동쪽 건물>

산청 단성향교 13-20220222<대성전 마당 서쪽 건물>

산청 단성향교 15-20220222<내삼문>

단성현(丹城縣)은 조선시대 산청군 단성면과 주변지역을 관장하던 지방행정 조직이다. 조선초 세종 때 단계현과 강성현을 합쳐서 단성현이 되었다. 1914년 행정개편 때 산청군에 병합되면서 단성, 도산, 생비량, 신등, 북동의 5개 면이 되었다. 단성향교에서는 옛 단성현에서 만든 <단선현 호적장부>를 보관하고 있었다. 이 문서는 조선후기 숙종 때부터 고종 때가 단성현 주민들에 대한 내용을 상세히 기록되어 있다.

산청 단성향교 06-20220222<단성현 호적장부를 보관하던 건물>

단성현호적장부<단성현 호적장부>

산청 단성현 호적장부
호적은 국가에서 인력을 모집하고 세금을 징수하기 위해 만든 공문서이다. 조선시대에는 3년에 한번씩 각 군현에서 호적을 만들었는데 주소, 거주 인구, 신분, 연령, 소유 노비 등을 기록한 뒤 여러 권을 만들어 지방관청인 현청과 감영, 중앙관청인 호조에서 보관하였다. 산청 단성현 호적 장부에는 조선 숙종 4년(1678)부터 고종 25년(1888)까지 단성현(현재 산청군 남부) 주민들에 대한 내용이 기록되어 있다. 단성향교에서 1678년부터 1789년까지 기록한 13책을 보관하다 현재 국립경상대학교 고문헌 도서관에서 보관중이며, 나머지 19세기의 호적 장부는 일제 강점기에 일본으로 넘어갔다. 산청 단성현 호적장부는 17~18세기 당시 단성현에 거주하던 주민들의 인구, 신분, 재산 등을 상세히 기록하고 있어 당시 단성현의 사회상을 확인할 수 있는 매우 귀중한 자료이다. (안내문, 산청군청, 2022년)

산청 단성향교 명륜당 (보물) 02-20220222<단성향교>

산청 단성향교 03-20220222<단성향교가 있는 마을>

단성향교, 경남 산청군 단성면 강루리
이 향교는 고려 인종 5년(1127) 지금의 강루리 구인동에 창건한 후 조선 세종 때 다른데로 옮겼다가 영조 28년(1752) 현재의 위치로 다시 옮겼다고 전한다. 경사지에 배치됨에 따라 외삼문 안에는 학당부인 명륜당을 두고, 내삼문 안에는 문묘부인 대성전을 배치하여 전학후묘의 배치 형식을 따르고 있으며, 대성전 좌.우에는 동.서물, 명륜당 좌.우에는 동.서재를 두었다. 현재의 건물들은 조선 후기 이후의 수법을 보이고 있으나 명륜당 전면을 누 형식으로 꾸며 중앙칸 밑으로 들어가게 만던 동선처리와 지붕 구조 및 내삼문 좌.우에 편문을 둔 것은 특이한 수법이다. (안내문, 산청군청, 2022년)

<출처>

  1. 안내문, 산청군청, 2022년
  2.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2022년
  3.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소, 2022년
  4. 위키백과, 2022년

 

 

단성현(丹城縣)은 조선시대 산청군 단성면과 주변지역을 관장하던 지방행정 조직이다. 조선초 세종 때 단계현과 강성현을 합쳐서 단성현이 되었다. 1914년 행정개편 때 산청군에 병합되면서 단성, 도산, 생비량, 신등, 북동의 5개 면이 되었다. 단성향교에서 소장하고 있었던

경주 경주향교, 통일신라 국학이 있던 자리

경북 경주시 교동에 있는 경주향교이다. 통일신라 신문왕 때(682) 최고 교육기관인 국학을 세웠던 곳이다. 경주향교의 창건시기는 알려진 바가 없으나 고려시대 향교가 세워졌을 것으로 생각된다. 현재의 향교는 조선 성종 때(1492)에 성균관을 본 떠서 다시 지었다. 이후 임진왜란 때 소실된 것을 중건하면서 오늘에 이르고 있다. 대성전이 있는 제향공간을 앞쪽에, 명륜당이 있는 강학공간을 뒤에 배치한 전묘후학의 배치를 보여주고 있다. 종2품 부윤(府尹)이 고을수령인 경주부에서 설치한 중등교육기관으로 타지역 향교에 비해 규모가 크고 격식을 잘 갖추고 있다. 조선시대 향교를 대표하는 건축물로 대성전, 명륜당, 동무.서무,신삼문이 문화재(보물)로 지정되어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경주향교 외삼문>

경주향교 제향공간은 공자와 선현들을 모신 대성전(보물)을 중심으로 양쪽에 동.서무(보물)를 배치하였다. 출입문으로 외삼문과 내삼문을 두고 있다. 건물들은 임진왜란 이후 중건한 건물들을 보수하면서 유지해 오고 있어 당시 향교 건물 건축양식을 잘 보여주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제향공간 대성전(보물)>

동무, 서무는 향교 제향공간을 구성하는 주요 건축물들로 1604년 중건된 이래 여러차례 보수를 거치면서 오늘에 이르고 있다.  앞면 12칸 규모의 건물로 향교 동,서무 건물 중 가장 큰 규모이다.

OLYMPUS DIGITAL CAMERA<동무(보물)>

OLYMPUS DIGITAL CAMERA<서무(보물)>

OLYMPUS DIGITAL CAMERA<신삼문(보물)>

OLYMPUS DIGITAL CAMERA<흙담장>

강학공간은 대성전 뒷편에 배치되어 있다. 강당건물인 명륜당을 중심으로 양쪽에 유생들의 기숙사인 동,서재가 배치되어 있다. 명륜당(보물)은 1614년 중건된 후 여러차례 보수를 거치면서 오늘에 이르고 있다. 건물은 앞면 5칸, 옆면 2칸 규모로 맞배지붕을 하고 있다. 단일건물로는 향교 강당 건물 중 가장 큰 규모이다.

OLYMPUS DIGITAL CAMERA<강학공간 명륜당(보물)>

OLYMPUS DIGITAL CAMERA<유생들의 기숙사인 동재>

국학을 설립하다 ( 682년 06월(음) )
6월에 국학(國學)을 설립하고 경(卿) 1인을 두었다. (삼국사기 권제8 신라본기 제8 신문왕, 한국사 데이터베이스, 국사편찬위원회, 2022년)
국학(國學)은 예부(禮部)에 속해 있었는데 신문왕(神文王) 346 2년(682년)에 두었다. 경덕왕(景德王)이 태학감(大學監)으로 고쳐 삼았다가 혜공왕(惠恭王)이 본래대로 되돌렸다. (삼국사기 권제38 잡지 제7 직관, 한국사 데이터베이스, 국사편찬위원회, 2022년)

부속건물로는 명륜당 뒷편에 서적 등을 보관하던 존경각, 동재 뒷편 관리이 머물던 고직사 등이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존경각>

OLYMPUS DIGITAL CAMERA<관리인의 거처인 고직사>

OLYMPUS DIGITAL CAMERA<고직사 앞 살림집>

OLYMPUS DIGITAL CAMERA<살림집 마당 우물>

경주향교 (慶州鄕校)
경주 향교(慶州 鄕校)는 본래 신라 신문왕 2년 (682)에 창설한 국학(國學)(지금의 국립대학)이 있던 곳이며, 고려 시대에는 향학(鄕學)으로, 조선시대에는 역시 향교로 이어져 지방 교육 기관으로서의 구실을 해 왔다. 대성전(大成殿)과 동무(東臨)·서무(西無)는 공자(孔子)를 비롯한 성현들의 위패를 모시고 제향을 받드는 곳이며, 강당인 명륜당(明倫堂)과 학생들의 거처인 동재(東齋)·서재(西齋)는 강학을 하는 곳이다. 경주 향교가 처음 지어진 시기는 잘 알 수 없으나, 조선 성종 23년(1492)에 성균관(成均館)을 본따 중수하였다고 한다. 임진왜란 때 소실(燒失)된 것을 선조 33년(1600)에 대성전(大成殿)과 전사청(典祀廳)을 중건하고, 선조 37년(1604)에 동무 · 서무를 광해군 | 6년(1614)에 명륜당과 동재·서재를 중건하여 현재의 모습을 갖추었다. (안내문, 경주시청, 2011년)

<출처>

  1. 안내문, 경주시청, 2011년
  2.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2022년
  3.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소, 2022년
  4. 위키백과, 2022년
  5.  삼국사기, 한국사 데이터베이스, 국사편찬위원회, 2022년

경주향교 동무, 서무, 신삼문(보물)

경북 경주시 교동에 있는 경주향교 동무, 서무, 신삼문(보물)이다. 향교 제향공간을 구성하는 주요 건축물들로 1604년 중건된 이래 여러차례 보수를 거치면서 오늘에 이르고 있다. 동.서무는 앞면 12칸 규모의 건물로 향교 동,서무 건물 중 가장 큰 규모이다. 각각 4곳에 출입문을 두고 있으며 나머지는 흰색 벽면을 하고 있다. 신삼문은 제향공간 출입문으로 앞면 3칸을 하고 있는 평삼문으로 향교 삼문의 모범이 되는 건축물이다.

OLYMPUS DIGITAL CAMERA<경주향교 동무>

OLYMPUS DIGITAL CAMERA<경주향교 서무>

OLYMPUS DIGITAL CAMERA<경주향교 제향공간>

OLYMPUS DIGITAL CAMERA<신삼문>

경주향교_신삼문_전면_1<정면에서 본 모습>

<출처>

  1.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2022년
  2. 위키백과, 2022년

 

상주 상주향교, 상주목 관아에서 설치.운영했던 중등교육기관

경북 상주시 신봉동에 있는 옛 상주목 관아에서 운영했던 중등교육기관인 상주향교이다.  상주향교가 언제 처츰 세워졌는지는 알 수 없지만 조선초 감영이 설치되었던 상주목의 고을 규모나 위상 등을 고려해 볼 때 향교가 처음 세워졌던 고려시대부터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현재의 상주향교 건물들은 조선초 세종 때 처음 지어진 후 임진왜란 때 불탄 것을 중수하였으며 그후 여러차례 중.보수가 계속되어 오다가 1961년 남산중학교 교실로 사용되고 있던 명륜당 등이 화재로 소실되면서 옛 건물은 대성전만 남아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옛 상주목관아에서 운영했던 중등교육기관인 상주향교. 경상감영이 설치되었던 상주목의 규모와 위상에 걸맞게 크고 웅장하게 지어졌다. 일제강점기 이후 남산중학교 교사로 사용되기도 했으나 지금은 옛모습과 규모를 복원해 놓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상주향교 출입문인 문루. “남루”라 적힌 현판이 걸리 2층 누각 건물로 앞면 5칸으로 상당히 큰 문루건물이다.

OLYMPUS DIGITAL CAMERA안쪽에서 본 모습. 일반적인 문루와는 달리 양쪽에 1칸씩 온돌방이 있는 날개채를 달아내어 다른 분위기를 주고 있다. 공부하는 학생들을 위한 공간으로 교육기능이 남아 있었던 상주향교의 성격을 보여주는 부분이다.

OLYMPUS DIGITAL CAMERA강학공간의 중심건물인 명륜당. 일제강점기 이후 남산중학교 교사로 사용되다가 소실된 것을 최근에 복원하였다. 앞면 5칸의 상당히 큰 건물이다.

OLYMPUS DIGITAL CAMERA유생들이 기숙사인 동재. 가운데 1칸 대청마루를 두고 양쪽에 2칸씩 온돌방을 두고 있다. 많은 유생들이 머물렀던 것으로 보인다.

OLYMPUS DIGITAL CAMERA맞은편 서재.

OLYMPUS DIGITAL CAMERA제향공간인 대성전 내삼문.

OLYMPUS DIGITAL CAMERA대성전은 앞면 5칸에 맞배지붕을 하고 있는 건물로 전국 향교 중에서도 상당히 큰 규모이다.

OLYMPUS DIGITAL CAMERA대성전 앞 동무. 선현들을 모시는 공간으로 앞면 10칸의 상당히 큰 규모의 거물이다.

OLYMPUS DIGITAL CAMERA맞은편 서무.

OLYMPUS DIGITAL CAMERA명륜당 동쪽에 위치한 건물.

OLYMPUS DIGITAL CAMERA현재 유림들의 공간으로 사용하고 있는 건물. 보통 유림회관이라 부른다.

상주향교 대성전
이 건물은 조선초에 건립되었으며, 정확한 처음 건립 연대는 알 수 없고 세종 8년(1426)에 판목 조치가 남루를 세웠고, 성종 15년(1485)에는 목사 강구촌이 성전과 재.루를 중수하였다. 임진왜란 떄 완전히 불탄 후 광해군 10년(1618) 목사 정호선이 정경세와 더불어 성묘.동서무.명륜당.동서재 등을 중건하였다. 고종 29년(1892) 목사 유병주가 다시 중건한 후 여러번의 중.보수가 이루어져 오다가 명륜당을 1949년에 상주고등공민학교 교실로, 1961년에는 남산중학교 교실로 사용하다 소실되었다. 그 후 1989년 내삼문 신축, 1991년 명륜당 복원, 1992년 서재 복원, 1994년 고직사 이건, 1995년 외삼문 신축 등이 이루어져 어느 정도 제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화려하지 않으면서도 웅장한 건물로 상당히 큰 규모(정면 10칸)의 동.서무와 함께 대설위 향교로서의 위용을 읽게 한다. (안내문, 상주시청, 2013년)

<출처>

  1. 안내문, 상주시청, 2013년
  2. 국가문화유산포탈, 문화재청, 2020년
  3.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소, 2020년


 

나주 나주향교(사적), 교육기능을 제대로 갖춘 큰 규모의 향교

전남 나주시 교동에 있는 옛 나주목 중등교육기관이었던 나주향교(사적)이다. 나주향교는 조선초 태종 7년(1407)에 처음 창건되었다. 조선시대 설치된 향교 중 전주향교, 강릉향교 등과 함께 가장 큰 규모를 하고 있다. 공자 아버지 위치를 봉안한 계성사가 있어 앞쪽에 제향공간이, 뒷편에 강학공간이 있는 전묘후학의 공간배치를 하고 있다.

제향공간에는 공자를 비롯한 5성, 송조 4현, 우리나라 18현을 모시고 있는데 대성전과 동.서무를 제대로 갖추고 있다. 대성전(보물 394호)은 앞면 5칸, 옆면 4칸의 상당히 큰 규모은 건축물로 대표적인 문묘 건축물로 손꼽힌다. 강학공간은 좌.우익랑을 제대로 갖추고 있는 명륜당을 중심으로 양쪽에 동.서재를 두고 있다. 전체적인 규모나 공간배치에 있어 서울 성균관과 거의 유사하며 교육기능을 제대로 수행할 수 있는 대표적인 향교이다.

SANYO DIGITAL CAMERA나주향교(사적). 나주목 관아에서 운영했던 중등교육기관으로 전묘후학의 공간배치, 좌.우익랑을 갖춘 큰 규모의 대성전과 동.서재 등 성균관에 버금가는 규모를 갖춘 대표적인 향교이다.

SANYO DIGITAL CAMERA나주향교 외삼문. 입구에 표지석과 하마비가 세워져 있다. 강학공간으로는 문묘 옆 골목길을 통해 들어갈 수 이다.

SANYO DIGITAL CAMERA외삼문을 들어서면 마당이 있고 문묘 출입문인 내삼문까지 바닥돌이 깔린 신도가 연결되어 있다. 내삼문은 맞배지붕을 하고 있는 전형적인 삼문형식을 하고 있다.

SANYO DIGITAL CAMERA공자와 선현들을 모시는 제향공간인 문묘. 대성전(보물 394호)를 중심으로 동.서무를 제대로 갖추고 있다.

SANYO DIGITAL CAMERA나주향교 대성전(보물 394호). 앞면 5칸, 옆면 4칸에 팔작지붕을 하고 있는 상당히 큰 규모의 건물이다. 우리나라 문묘 건축을 대표하는 건축물이다.

SANYO DIGITAL CAMERA선현들의 위패를 모신 서무. 앞면 3칸의 맞배지붕을 하고 있다.

SANYO DIGITAL CAMERA향교 외삼문 오른쪽 강학공간으로 들어가는 골목길. 정면에 전사청 등에 해당하는 부속 건물들이 들어서 있다.

SANYO DIGITAL CAMERA강학공간 중심건물인 명륜당. 가운데 넓은 대청마루가 있는 강당을, 양쪽에 협실을 두고 있다. 성균관 명륜당과 같은 규모와 형태를 하고 있다. 교육기관으로 기능을 제대로 할 수 있는 구조이다.

SANYO DIGITAL CAMERA명륜당 현판이 걸려 있는 가운데 강당 건물. 앞쪽에 월대를 두고 있다.

SANYO DIGITAL CAMERA왼쪽편 협실. 앞면 3칸 규모로 넓은 대청마루 2칸과 온돌방 1칸을 두고 있다.

SANYO DIGITAL CAMERA오른쪽 협실. 최근에 크게 수리한 것으로 보인다.

SANYO DIGITAL CAMERA유생들의 기숙사인 동재. 명륜당 앞 마당 방향으로 회랑형식의 툇간을 두고 있다. 성균관 동.서재와 같은 형식으로 다른 향교에서는 보기 힘든 구조이다.

SANYO DIGITAL CAMERA반대편에는 비교적 넓은 마루를 두고 있어 유생들이 일상적으로 공부하면서 생활할 수 있는 구조이다.

SANYO DIGITAL CAMERA맞은편 서재. 동재와 같은 구조이다.

SANYO DIGITAL CAMERA명륜당 월대에서 내려다 보이는 강학공간 마당과 대성전. 마당이 상당히 넓은 편이다.

SANYO DIGITAL CAMERA강학공간 동쪽편 전사청 등 부속건물들이 들어서 있는 공간으로 출입하는 출입문. 성균관과 같은 공간배치이다.

SANYO DIGITAL CAMERA출입문을 들어서면 동재 앞 마당과 부속 건물들이 하나의 공간을 형성하고 있다.

SANYO DIGITAL CAMERA뒷편 도서관에 해당하는 건물.

<출처>

  1. 안내문, 나주시청, 2009년
  2. 국가문화유산포탈, 문화재청, 2019년
  3.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소, 2019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