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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해 김해향교, 김해도호부 중등 교육기관

경남 김해시 대성동에 있는 김해향교이다. 조선시대 김해도호부에서 설치하여 운영했던 중등교유기관으로 김해읍성 북문에서 200m 떨어진 곳에 위치하고 있다. 조선초 대종 때 처음 세워졌으며 전란과 화재 등으로 조선후기 숙종 때 현재의 위치로 옮겨졌다. 김해도호부는 비교적 큰 규모의 고을로 낙동강 뱃길에서 중요한 위치에 있다. 왜구의 침입에 대비해 읍성을 쌓았으며 뒷편에 산성인 분산성을 두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김해 향교>

김해향교는 강학공간인 명륜당을 앞쪽에, 문묘인 대성전을 뒷편에 두고 있는 전학후묘의 공간배치를 하고 있다. 출입문으로 문루인 풍화루를 두고 있으며, 강당건물인 명륜당은 앞면 5칸 규모의 비교적 큰 건물이며, 양쪽에 동재와 서재를 두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풍화루>

OLYMPUS DIGITAL CAMERA<명륜당>

OLYMPUS DIGITAL CAMERA<동재>

OLYMPUS DIGITAL CAMERA<서재>

OLYMPUS DIGITAL CAMERA<강학공간 마당에 있는 고목>

김해향교, 경남 김해시 대성동
향교는 유교의 옛 성현을 받들면서 지역사회에서 인재를 양성하고 미풍양속을 장려할 목적으로 세워진 전통시대의 지방 교육기관이다. 김해 향교는 태종 8년(1408) 고정(지금의 중양여중)에 창건하였다가 그 후 화재 등으로 수차례의 이전을 거쳐 영조 48년(1770) 현재의 위치에 자리 잡았다. 향교는 교육과 제례의 두 기능 영역으로 나뉜다. 유생이 학문을 연마하는 명륜당과 일상생활을 하는 동.서재는 교유기능을 담당하고, 공자를 비롯한 25 성현의 위패를 모시고 춘추로 석전을 봉행하는 대성전과 동,서무는 제례 기능을 담당하고 있다. 김해 향교는 교육공간을 앞쪽에, 제례 공간을 뒤쪽에 두는 향교 건물배치의 일반적인 형태인 전학후묘 양식을 따르고 있으며, 입구에는 풍화루와 홍살문이 자리잡고 있다. <안내문, 김해시청, 2012년>

<출처>

  1. 안내문, 김해시청, 2012년
  2.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2023년
  3.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소, 2023년

철원 철원향교, 조선시대 철원도호부 중등교육기관

강원도 철원군 철원읍 화지리에 있는 철원향교이다. 옛 철원도호부 중등교육기관으로 고려초에 처음 창건되었다고 전해진다. 조선중기 선조 때(1568년)에 중건되었으나 임진왜란 때 소실되었다. 이후 인조 때(1637년) 유림들이 중건하였다. 해방이후까지 철원읍 월하리에 있었으며 고아원으로 사용되기도 했는데 한국전쟁으로 소실되었다. 이후 철원읍 화지리로 옮겨 다시 지었으며 2010년 현재의 위치로 옮겼다. 철원은 조선시대 도호부가 설치되었던 고을로 그 규모에 걸맞게 비교적 큰 규모였던 것으로 보인다.

철원 철원향교 01-20220726<철원향교>

철원향교는 강학공간인 명륜당을 앞쪽에, 문묘인 대성전을 뒷편에 두고 있는 전학후묘의 공간배치를 하고 있다. 강당건물인 명륜당은 앞면 5칸 규모의 비교적 큰 건물이며, 양쪽에 동재와 서재를 두고 있다.

철원 철원향교 02-20220726<명륜당>

철원 철원향교 03-20220726<동재>

철원 철원향교 04-20220726<서재>

제향공간은 문묘인 대성전을 중심으로 동무와 서무를 제대로 갖추고 있다.

철원 철원향교 08-20220726<제향공간>

철원 철원향교 06-20220726<대성전>

철원 철원향교 05-20220726<동무>

철원 철원향교 07-20220726<서무>

철원향교
향교는 유학자들의 위패를 모시는 사당이자 고려 시대부터 조선 시대에 걸쳐 지역 유학 교육의 중심이 되었던 교 육기관이다. 철원 향교는 설총, 안향, 이황, 이이, 송시열을 비롯하여 총 25인의 위패를 모시고 있다. 처음 태봉국 시기에 왕건의 집터에 지었다고 전해지나, 정확한 연도는 알려지지 않았다. 조선 선조 1년(1588)에 새로 고쳐 지었고, 임진왜란에 불타서 없어졌다. 인조 15년(1637)에 박무, 박화 등이 복원하여 광복 이후에는 보육원으로 사용하였으나 한국 전쟁이 일어나 다시 불터 없어졌다. 1957년 철원 화지리에 명륜당, 부속사 등의 건물을 다시 지었고, 2010년에 지금 위치로 옮겼다. (안내문, 철원군청, 2022년)

<출처>

  1. 안내문, 철원군청, 2022년
  2.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2022년
  3.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소, 2022년
  4. 위키백과, 2022년

산청 단성향교, 조선시대 단성현 중등 교육기관

경남 산청군 단성면 누강리에 있는 단성향교이다. 옛 단성현 중등교육기관으로 고려전기 인종 때 처음 창건되었다. 조선초 세종 때 강누리 인근으로 옮겨졌다가 조선후기 영조 때 현위치로 옮겨졌다. 후학을 양성하는 교육기능보다는 공자와 선현에 제사를 올리는 제향기능 위주로 운영되었던 지방의 작은 향교이다. 단성향교에는 <단성현 호적장부>를 보관하고 있었는데 조선후기 사회상을 보여주는 중요한 자료이다.

산청 단성향교 01-20220222<산청 단성향교>

경사진 지형에 건물이 세워져 있는 명륜장을 중심으로 강학공간을 앞쪽에, 대성전을 비롯한 제향공간을 뒷편에 둔 전학후묘의 공간배치를 하고 있다. 일반적이 향교와 공간배치는 비슷하지만 누각형태의 명륜당을 두고 내삼문 양쪽에 출입문을 두고 있는 독특한 건물구조와 배치를 보여주고 있다.

산청 단성향교<단성향교 공간배치>

산청 단성향교 04-20220222<홍살문>

외삼문은 솟을대문을 하고 있으며 양쪽에 행랑채를 두고 있다.

산청 단성향교 05-20220222<외삼문>

산청 단성향교 17-20220222<외삼문과 행랑채>

강학공간은 누각형태의 명륜당이 앞쪽에, 마당과 동,서재가 뒷편에 배치되어 있다. 강당건물인 명륜당(明倫堂, 보물)은 경사진 지형에 축대를 쌓고 누각형태로 지어진 건물로 공(工)형태의 지붕을 하고 있다. 독특한 지붕형태와 가구형식은 다른 향교나 서원 강당건물에서는 보기 드문 형태이다.

산청 단성향교 02-20220222<강학공간>

산청 단성향교 18-20220222<명륜당(보물)>

산청 단성향교 16-20220222<명륜당 내부>

산청 단성향교 10-20220222<내삼문 앞에서 본 명륜당과 강학공간>

산청 단성향교 08-20220222<동재>

산청 단성향교 07-20220222<서재>

제향공간은 대성전을 중심으로 동,서무처럼 보이는 건물로 구성되어 있다. 대성전 앞 건물은 전사청과 제기고 역할을 하고 있다. 내삼문은 앞면 7칸 규모의 특이한 건물인데 가운데 3칸은 삼문을 달고 양쪽 끝에 1칸씩 일상적으로 출입하는 문을 두고 있다.

산청 단성향교 09-20220222<내삼문>

산청 단성향교 12-20220222<대성전>

산청 단성향교 11-20220222<대성전 마당 동쪽 건물>

산청 단성향교 13-20220222<대성전 마당 서쪽 건물>

산청 단성향교 15-20220222<내삼문>

단성현(丹城縣)은 조선시대 산청군 단성면과 주변지역을 관장하던 지방행정 조직이다. 조선초 세종 때 단계현과 강성현을 합쳐서 단성현이 되었다. 1914년 행정개편 때 산청군에 병합되면서 단성, 도산, 생비량, 신등, 북동의 5개 면이 되었다. 단성향교에서는 옛 단성현에서 만든 <단선현 호적장부>를 보관하고 있었다. 이 문서는 조선후기 숙종 때부터 고종 때가 단성현 주민들에 대한 내용을 상세히 기록되어 있다.

산청 단성향교 06-20220222<단성현 호적장부를 보관하던 건물>

단성현호적장부<단성현 호적장부>

산청 단성현 호적장부
호적은 국가에서 인력을 모집하고 세금을 징수하기 위해 만든 공문서이다. 조선시대에는 3년에 한번씩 각 군현에서 호적을 만들었는데 주소, 거주 인구, 신분, 연령, 소유 노비 등을 기록한 뒤 여러 권을 만들어 지방관청인 현청과 감영, 중앙관청인 호조에서 보관하였다. 산청 단성현 호적 장부에는 조선 숙종 4년(1678)부터 고종 25년(1888)까지 단성현(현재 산청군 남부) 주민들에 대한 내용이 기록되어 있다. 단성향교에서 1678년부터 1789년까지 기록한 13책을 보관하다 현재 국립경상대학교 고문헌 도서관에서 보관중이며, 나머지 19세기의 호적 장부는 일제 강점기에 일본으로 넘어갔다. 산청 단성현 호적장부는 17~18세기 당시 단성현에 거주하던 주민들의 인구, 신분, 재산 등을 상세히 기록하고 있어 당시 단성현의 사회상을 확인할 수 있는 매우 귀중한 자료이다. (안내문, 산청군청, 2022년)

산청 단성향교 명륜당 (보물) 02-20220222<단성향교>

산청 단성향교 03-20220222<단성향교가 있는 마을>

단성향교, 경남 산청군 단성면 강루리
이 향교는 고려 인종 5년(1127) 지금의 강루리 구인동에 창건한 후 조선 세종 때 다른데로 옮겼다가 영조 28년(1752) 현재의 위치로 다시 옮겼다고 전한다. 경사지에 배치됨에 따라 외삼문 안에는 학당부인 명륜당을 두고, 내삼문 안에는 문묘부인 대성전을 배치하여 전학후묘의 배치 형식을 따르고 있으며, 대성전 좌.우에는 동.서물, 명륜당 좌.우에는 동.서재를 두었다. 현재의 건물들은 조선 후기 이후의 수법을 보이고 있으나 명륜당 전면을 누 형식으로 꾸며 중앙칸 밑으로 들어가게 만던 동선처리와 지붕 구조 및 내삼문 좌.우에 편문을 둔 것은 특이한 수법이다. (안내문, 산청군청, 2022년)

<출처>

  1. 안내문, 산청군청, 2022년
  2.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2022년
  3.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소, 2022년
  4. 위키백과, 2022년

 

경주 경주향교, 통일신라 국학이 있던 자리

경북 경주시 교동에 있는 경주향교이다. 통일신라 신문왕 때(682) 최고 교육기관인 국학을 세웠던 곳이다. 경주향교의 창건시기는 알려진 바가 없으나 고려시대 향교가 세워졌을 것으로 생각된다. 현재의 향교는 조선 성종 때(1492)에 성균관을 본 떠서 다시 지었다. 이후 임진왜란 때 소실된 것을 중건하면서 오늘에 이르고 있다. 대성전이 있는 제향공간을 앞쪽에, 명륜당이 있는 강학공간을 뒤에 배치한 전묘후학의 배치를 보여주고 있다. 종2품 부윤(府尹)이 고을수령인 경주부에서 설치한 중등교육기관으로 타지역 향교에 비해 규모가 크고 격식을 잘 갖추고 있다. 조선시대 향교를 대표하는 건축물로 대성전, 명륜당, 동무.서무,신삼문이 문화재(보물)로 지정되어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경주향교 외삼문>

경주향교 제향공간은 공자와 선현들을 모신 대성전(보물)을 중심으로 양쪽에 동.서무(보물)를 배치하였다. 출입문으로 외삼문과 내삼문을 두고 있다. 건물들은 임진왜란 이후 중건한 건물들을 보수하면서 유지해 오고 있어 당시 향교 건물 건축양식을 잘 보여주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제향공간 대성전(보물)>

동무, 서무는 향교 제향공간을 구성하는 주요 건축물들로 1604년 중건된 이래 여러차례 보수를 거치면서 오늘에 이르고 있다.  앞면 12칸 규모의 건물로 향교 동,서무 건물 중 가장 큰 규모이다.

OLYMPUS DIGITAL CAMERA<동무(보물)>

OLYMPUS DIGITAL CAMERA<서무(보물)>

OLYMPUS DIGITAL CAMERA<신삼문(보물)>

OLYMPUS DIGITAL CAMERA<흙담장>

강학공간은 대성전 뒷편에 배치되어 있다. 강당건물인 명륜당을 중심으로 양쪽에 유생들의 기숙사인 동,서재가 배치되어 있다. 명륜당(보물)은 1614년 중건된 후 여러차례 보수를 거치면서 오늘에 이르고 있다. 건물은 앞면 5칸, 옆면 2칸 규모로 맞배지붕을 하고 있다. 단일건물로는 향교 강당 건물 중 가장 큰 규모이다.

OLYMPUS DIGITAL CAMERA<강학공간 명륜당(보물)>

OLYMPUS DIGITAL CAMERA<유생들의 기숙사인 동재>

국학을 설립하다 ( 682년 06월(음) )
6월에 국학(國學)을 설립하고 경(卿) 1인을 두었다. (삼국사기 권제8 신라본기 제8 신문왕, 한국사 데이터베이스, 국사편찬위원회, 2022년)
국학(國學)은 예부(禮部)에 속해 있었는데 신문왕(神文王) 346 2년(682년)에 두었다. 경덕왕(景德王)이 태학감(大學監)으로 고쳐 삼았다가 혜공왕(惠恭王)이 본래대로 되돌렸다. (삼국사기 권제38 잡지 제7 직관, 한국사 데이터베이스, 국사편찬위원회, 2022년)

부속건물로는 명륜당 뒷편에 서적 등을 보관하던 존경각, 동재 뒷편 관리이 머물던 고직사 등이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존경각>

OLYMPUS DIGITAL CAMERA<관리인의 거처인 고직사>

OLYMPUS DIGITAL CAMERA<고직사 앞 살림집>

OLYMPUS DIGITAL CAMERA<살림집 마당 우물>

경주향교 (慶州鄕校)
경주 향교(慶州 鄕校)는 본래 신라 신문왕 2년 (682)에 창설한 국학(國學)(지금의 국립대학)이 있던 곳이며, 고려 시대에는 향학(鄕學)으로, 조선시대에는 역시 향교로 이어져 지방 교육 기관으로서의 구실을 해 왔다. 대성전(大成殿)과 동무(東臨)·서무(西無)는 공자(孔子)를 비롯한 성현들의 위패를 모시고 제향을 받드는 곳이며, 강당인 명륜당(明倫堂)과 학생들의 거처인 동재(東齋)·서재(西齋)는 강학을 하는 곳이다. 경주 향교가 처음 지어진 시기는 잘 알 수 없으나, 조선 성종 23년(1492)에 성균관(成均館)을 본따 중수하였다고 한다. 임진왜란 때 소실(燒失)된 것을 선조 33년(1600)에 대성전(大成殿)과 전사청(典祀廳)을 중건하고, 선조 37년(1604)에 동무 · 서무를 광해군 | 6년(1614)에 명륜당과 동재·서재를 중건하여 현재의 모습을 갖추었다. (안내문, 경주시청, 2011년)

<출처>

  1. 안내문, 경주시청, 2011년
  2.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2022년
  3.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소, 2022년
  4. 위키백과, 2022년
  5.  삼국사기, 한국사 데이터베이스, 국사편찬위원회, 2022년

경주향교 동무, 서무, 신삼문(보물)

경북 경주시 교동에 있는 경주향교 동무, 서무, 신삼문(보물)이다. 향교 제향공간을 구성하는 주요 건축물들로 1604년 중건된 이래 여러차례 보수를 거치면서 오늘에 이르고 있다. 동.서무는 앞면 12칸 규모의 건물로 향교 동,서무 건물 중 가장 큰 규모이다. 각각 4곳에 출입문을 두고 있으며 나머지는 흰색 벽면을 하고 있다. 신삼문은 제향공간 출입문으로 앞면 3칸을 하고 있는 평삼문으로 향교 삼문의 모범이 되는 건축물이다.

OLYMPUS DIGITAL CAMERA<경주향교 동무>

OLYMPUS DIGITAL CAMERA<경주향교 서무>

OLYMPUS DIGITAL CAMERA<경주향교 제향공간>

OLYMPUS DIGITAL CAMERA<신삼문>

경주향교_신삼문_전면_1<정면에서 본 모습>

<출처>

  1.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2022년
  2. 위키백과, 2022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