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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숙이 그린 19세기를 대표하는 매화 그림(보물 1199호)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소장하고 있는 홍백매도(보물 1199호)이다. 조선후기 도화서 화원이었던 유숙(1827 ~1873년)이 그린 매화가 그려진 8첩 병풍이다. 화면전체에 가지를 펼친 매화를 섬세하면서도 힘찬 필치로 그렸다. 19세기에 유행한 매화그림을 대표하는 걸작으로 그가 그린 유일한 매화그림이다.

OLYMPUS DIGITAL CAMERA홍백매도(보물 1199호). 19세기에 유행했던 매화그림을 대표하는 걸작이다. 화원으로 시사모임 벽오동에서 활동했던 유숙의 대표작이다.

OLYMPUS DIGITAL CAMERA고목에 활짝 핀 매화를 섬세하면서도 힘있는 필치로 표현하고 있다.

화면 오른쪽 화단의 괴석 위에 백매와 홍매 세 그루가 서 있고, 매화 가지가 왼편으로 길게 이어지며 8폭의 화면을 채우고 있다. 병풍의 왼편에는 매화도를 감상하며 고향에 핀 매화를 그리워하는 내용의 중구구 명대 문인 예경의 시를 유숙이 옮긴 제시가 적혀 있다. 화원이자 중인시사 벽오사의 일원이기도 했던 그의 작품에서 조희룡 매화도의 영향을 감지할 수 있다. 유숙의 매화도 화법과 18세기 후반 홍백매도의 유행을 보여주는 중요한 작품이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2016년)

<출처>

  1. 안내문, 중앙박물관, 2016년
  2. 국가문화유산포탈, 문화재청, 2018년

 

흥선대원군 이하응 초상화(보물 1499호)

고종의 아버지 흥선대원군 이하응의 초상화(보물 1499호). 구한말 최고의 어진화사 이한철이 그렸는데 다양한 복식을 하고 있는 5점의 초상화가 남아 있다. 초상화에 나타난 흥선대원군의 복식은 <흑단령포본>, <흑건청포본>, <와룡관학창의본>, <복건심의본>, <금관조복본>이 있다. 의관과 기물이 매우 화려하며 당대 최고의 화가가 그린 초상화답게 표현이 매우 뛰어난 걸작이다. 초상화와 함께 초상화를 보관했던 영덩함 등이 고스란히 전하고 있어 당시 초상화와 관련된 문화를 잘 보여주고 있다. 4점은 서울역사박물관에서 소장하고 있으며 1점은 중앙박물관에서 소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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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점의 초상화 중 <와룡관학창의본>이다. 일상생활에서 입었던 복식으로 주위의 화려한 기물들이 함께 표현되어 있다.

흥선대원군 이하응의 50세 때 초상으로, 와룡관 학창의본이다. 주인공의 서탁 위에는 자명종, 벼루, 전갑, 인장과 인주합, 안경, 타구 등이, 협탁에는 네모난 향로와 시저병이 놓여 있다. 이 기물들은 모두 당시 문인들에게 애호되던 것이다. 자명종이나 청 황실에서 사용했다는 벼루 송화석연, ‘척사검’이라는 글자가 입사된 칼 등의 진귀한 물건은 대원군의 권위와 권력을 상징한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2016년)

<출처>

  1. 안내문, 중앙박물관, 2016년
  2. 국가문화유산포탈, 문화재청, 2018년

 

혜원 신윤복이 그린 풍속화 화첩(국보 135호)

서울 성북구 간송미술관에서 소장하고 있는 풍속화 화첩(국보 135호)이다. 조선후기 화가 신윤복(1758~ ?)이 그린 풍속화로 <주사거배(酒肆擧杯)>, <홍루대주(紅樓待酒)> 등 30여점으로 구성된 화첩이다. 한량과 기녀를 중심으로 남녀간의 애정, 낭만, 양반사회의 풍류 등을 표현하고 있는데, 섬세한 필선과 아름다운 색채가 돋보이는 작품이다. 등장인물들은 선정적인 느낌을 주고 있으며 주위 배경을 사실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2016년 가을 중앙박물관에서 기획한 특별전 <미술 속 도시, 도시 속 미술>에서 2점이 전시되어 일반인들이 직접 볼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되었다.

OLYMPUS DIGITAL CAMERA중앙박물관 특별전에 전시되었던 신윤복이 그린 풍속화. 전체 30점 중 2점이 전시되었다.

OLYMPUS DIGITAL CAMERA주사거배(酒肆擧杯). 주막에서 술을 따르고 있는 장면을 묘사하고 있는데 당시 한량들을 모습을 잘 보여주고 있다. 30점으로 구성된 이 화첩은 대부분 기생과 한량들의 남녀간 행락이나 풍류 등을 소재로 그렸다. 공금횡령 등으로 치부했던 아전들에 의해 조성되었던 18~19세기 한양의 향락적인 분위기를 잘 표현하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홍루대주(紅樓待酒),  기생과 함께 담배를 피우면서 담소하고 있는 한량들을 모습을 표현하고 있다.

<출처>

  1. 안내문, 중앙박물관, 2017년
  2. 간송미술문화재단, 2017년
  3. 국가문화유산포탈, 문화재청, 2018년

 

[중앙박물관특별전, 미술 속 도시] 20세기초 근대 미술을 이끌었던 화가들

개항과 함께 서구의 문물이 급격하게 들어오면서 미술가들도 새로운 변화를 맞이하게 된다. 일부는 서양화라는 새로운 영역에 도전하였으며, 전통 미술을 계승했던 화가들도 서구의 새로운 기법을 적용하는 등 시대의 흐름를 따르게 된다. 마지막 도화서 화원인 조석진과 안중식은 새루운 경향을 받아들였으며 당시 미술가들에 큰 영향을 미쳤다. 구한말 새로운 문화를 이끌었던 한양의 중인층들은 도시의 경제적 여유를 바탕으로, 근대 문물을 수용하는 예술가이자 도시의 지식인으로서 큰 역할을 하게 된다. 20세기 초 한국의 미술계를 이끌어던 대표 화가들의 작품에서 근대 미술의 흐름을 살펴볼 수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서울풍경, 휴버트 보스(1855~1935년), 대한재국 1899년, 캔버스에 유채, 국립현대미술관. 조선을 그린 가장 오래된 유화작품이다. 당시 한양의 모습을 잘 표현하고 있다.

네덜란드 출신 화가 휴버트 보스의 작품으로, 조선을 그린 가장 오래된 유화 작품이다. 주한 미국 공사관 부근 (현재 정동)에서 경복궁 쪽을 바라본 풍경이다. 화면 아래 나지막한 기와집들 사이에서 솟아오른 경복궁의 모습이 드러나 있다. 그 위로는 백악산과 인왕산, 북한산이 화면 전체를 압도한다. 작은 캔버스에 그려진 풍경이지만, 낯선 이방인 화가 휴버트 보스는 조선의 수도, 한양의 지리적 입지와 전통적 경관이 지닌 특징을 분명하게 포착해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2016년)

도시, 근대를 만나다
‘근대’라는 새로운 시대를 제대로 인식하기도 전에 개항과 더불어 서구의 문물과 신매체가 도시에 밀려 들어왔습니다. 미술가들은 낯선 환경 속에서 또 다시 변화를 모색해야 했습니다. 서화 교습소나 미술 단체를 중심으로 근대 화단이 형성되었습니다. 외국 유학을 떠나 ‘서양화’로 진로를 찾아간 화가들도 생겨납니다. 미술가들은 사진, 신문과 잡지라는 새로운 인쇄 매체에 적응하거나, 제작소에서 상품이 된 공예품을 생산하는 등 변화의 흐름에 발맞춰 변신을 꾀합니다. 그들은 근대 문물의 세례 속에서 식민지 현실과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고민하게 됩니다. 도시 지식인으로서의 모습인 자화상, 그리고 낯익은 과거와 낯선 현재가 뒤섞인 도시 경관의 그림은 그러한 근대의 고민을 보여 줍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2016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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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악춘효, 안중식, 1915년, 비단에 엷은 색, 등록문화재 485호. 도화서 출신 화원으로 근대미술에 큰 영향을 미쳤던 안중식의 작품이다. 전통 방식을 계승하면서도 서양식 투시도법 등 서양화의 기법을 적용하고 있다.

화면 상단 가운데 우뚝 솟은 백악산을 중심으로, 새벽안개에 가려진 경복궁과 광화문의 전경을 그린 작품이다. 광화문과 해태상 사이는 서양식 투시도법을 적용하였고, 화면 아래 종로 육조거리는 텅빈 채로 적막감이 감돈다. 1915년은 조선총독부가 조선물산공진회 개최를 위해 경복궁의 전각들을 헐어냈던 시기로, 실제 경치를 보고 그린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전체적인 분위기와 제작 배경에서 마지막 도화서 화사로서 안중식의 자존감을 엿볼 수 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2016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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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문 광장과 경복궁을 표현한 부분.

근대의 길목에서 
19세기 중엽 이후 급변하는 동아시아의 정세는 조선에도 영향을 미쳐, 전통의 시대는 급작스럽게 막을 내렸고 미술계에도 예외 없이 변화가 시작됩니다. 마지막 도화서 화원인 조석진(1853~1920년)과 안중식(1861~1919년)은 전통과 근대를 잇는 교두보의 역할을 담당하여 화단에 많은 영향을 미쳤습니다. 서화고동의 취미는 당대 모던보이들에게 대물림되면서 여전히 유행하였고, 더욱 장식적이고 감각적으로 변모하였습니다. 여항문인에서 모던보이로 이어지는 도시인들은 여전히 경제적 여유를 바탕으로, 근대 문물을 수용하는 예술가이자 도시의 지식인으로서 선구적인 역할을 합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2016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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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악춘효, 안중식, 1915년, 비단에 엷은 색, 등록문화재 485호.  위의 그림과 비슷한 구도와 내용으로 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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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명절지, 안중식, 1914년, 비단에 색, 이홍근 기증. 구한말 많이 그려졌던 그림 형태로 섬세한 표현과 화려한 색감 등 서구의 미술기법을 받아들여 세련되면서도 발전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안중식이 그린 대련의 기명절지도이다. 이전의 기명절지가 주로 담채로 그려진 데 비해, 안중식은 서양식 명암법을 구사한 정밀한 묘사와 사실적인 채색, 그리고 세로로 긴 화면에 맞는 길쭉한 기물의 배치로 세련된 공간을 구성하는 것이 특징이다. 장승업 이후 기물이 풍부해지고 정밀한 묘사가 더해져 완성도가 높아진 안중식의 기량을 잘 보여준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2016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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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명절지, 조석진, 20세기 초, 비단에 엷은 색. 19세 장승업의 화풍을 계승하고 있는 모습을 보여주는 그림이다.

“서창청공(書窓淸供)” 즉 ‘서재의 말고 깨끗한 선비의 물건’들을 뜻하는 화제가 적힌 도화서 화사 출신 조석진의 작품이다. 크고 작은 고동기들이 중심을 이루고 그 아래로 가지나 붉은 무, 배추, 방송이 등과 같은 친숙한 소과들이 어우러져 있다. 사실적인 표현에 주력했던 안중식에 비해 이전 시기 장승업 화풍의 영향이 간취된다. 정확한 묘사보다 엷은 담채로 대상을 담백하게 그리는 전통의 양식이 근대에까지 계승되었음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2016년)

OLYMPUS DIGITAL CAMERA기명절지, 이도영(1884~1933년).고희동(1886~1965년), 1915년, 비단에 엷은 색, 이홍근 기증. 전통 화법을 계승한 화가와 서양화를 배웠던 화가가 함께 그린 그림으로 어색함 없이 조화를 잘 이루고 있다

고희동과 이동영이 그림을 완성하고 그들의 스승인 안중식이 글을 남긴 합작도이다. 화면 우측 이동영은 기물의 음영이나 입체감을 강조하지 않고 담백한 필치를 구사한 반면, 고희동은 옥수수 알의 색을 노란색과 푸른색으로 묘사하는 등 과일의 색채와 명암을 감각적으로 표현하였다. 우리나라 최초의 서양화가인 고희동과 전통 화법을 계승한 이동의 화풍이 한 화면 안에서 대조와 조화를 이루는 작품이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2016년)

OLYMPUS DIGITAL CAMERA기명절지, 이도영, 1923년, 종이에 색, 국립현대미술관

장승업에서부터 조석진, 안중식으로 이어진 기명절지도는 관재 이도영에 이르러 꽃피웠다. 안중식의 첫 제자인 이도영은 스승의 화풍을 이어받아 온건하면서도 유려한 필력을 발휘하였다. 향로를 비롯한 고동기류에서부터 무와 밤, 고추와 같은 흔한 소채까지 소재의 폭이 넓어졌음을 보여준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2016년)

OLYMPUS DIGITAL CAMERA해동역대명가필보, 한남서림 간행, 1926년, 종이에 인쇄

출판사이자 서점이었던 한남서림에서 낸 역대 필적 700점을 모은 서책으로, 표제는 오세창이 썼으며, 책머리에는 김규진(1868~1933년)의 휘호와 윤희구(1867~1926년)의 서문이 있는데, 이들 모두 한남서림 대표 백두용(1872~1935년)과 가까이 교류했던 서화가들이다. 특히 이 서점을 간송 전형필이 인수하여 이곳에 들어오는 고서화를 본격적으로 수집하였고, 훗날 1938년 보화각 건립에 토대가 된 의미 있는 곳이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2016년)

OLYMPUS DIGITAL CAMERA한동아집첩, 오세창(1864~1953년), 1925년, 종이에 엷은 색, 국립중앙도서관

오세창을 비롯한 김돈희(1871~1937년).이도영.고희동 등의 서화가, 한학자이자 시인인 이기(1856~1935년), 승려 박한영(1870~1948년), 역사학자 최남선 등 7명이 시회를 갖고 이를 기념하여 남긴 시화첩이다. 이들은 대부분 기술직 중인 집안 출신으로, 선조들의 시사 전통을 따르며 암울한 일제강점기에서도 지조를 잃지 않는 은일지사의 풍류를 추구하였다. 신지식층이면서도 고전과 민족문화의 연구에 몰두했던 이들에게 시회는 전통과 고전의 가능성을 모색하고 탐구하는 공간이 되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2016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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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벽도, 김규진(1864~1933년) 외, 1920~1933년 경, 종이에 엷은 색

1920년대를 대표하는 서화가 14명이 각각 글과 그림을 나누어 그린 합작도이다. 해강 김규진, 위창 오세창에서부터 소정 변관식, 심산 노수현까지, 다양한 연령층의 서화가들이 참여하였다. 안중식, 조석진이 빠진 것으로 보아 1920년대 이들이 세상을 뜬 후에 제작된 것으로 보인다. 근대기 성행하였던 서화합벽도 제작의 정점을 보여주는 작품으로, 서화가들의 친목 관계를 알 수 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2016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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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죽석도, 김규진, 1922년, 비단에 색, 개인소

세로 1.9미터가 넘는 김규진의 대형 난죽석도이다. 그의 문집과 「매일신보」에 따르면 1922년 제1회 조선미술전람회에 출품하기 위해 그렸다고 하나 실제로는 출품하지 않았다. 김규진은 급변하는 시대의 흐름을 읽고 능동적으로 활동한 서화가였다. 대중의 취향을 잘 파악하여 상업화할 줄 아는 선구적 감각이 있었던 그는 특히 대나무 그림을 잘 그려, 호를 딴 이른바 ‘해강죽’으로 유명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2016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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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송낙일, 지운영(852~1935년), 1917년, 비단에 색, 이홍근 기증

근대 지식인이자 서화가였던 지운영의 작품으로, 해질 무렵 높이 솟은 소나무 숲으로 들어가는 선비의 모습을 주제로 하였다. 지운영은 안중식, 조석진과 비슷한 연배이면서도 그들과는 조금 다른 길을 갔던 인물이다. 그는 일찍이 외국에 나가 선진 문물을 수용한 서화가이자 근대 도시의 지식인으로서 선구적인 역할을 하였다. 화면에 적힌 글을 통해 함께 함꼐 일본에 수신사로 다녀온 적 있는 박영효에게 준 작품임을 알 수 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2016년)

도시의 자화상

전시에서는 일제강점기 최초의 서양화가 고희동을 배출한 일본 도쿄예술대학 대학미술관에서는 당시 조선 유학생들이 졸업작품으로 남겨 놓았던 자화상을 볼 수 있었다. 이들은 졸업후 모두 서양화가로 활동한 것은 아니지만 한국 미술계를 이끌었던 인물이다. 이들의 작품에서는 일제강점기를 살았던 젊은이들의 내면을 간접적으로 살펴볼 수 있다.

1915년, 고희동(1886~1965년)이 도쿄미술학교 서양화과를 졸업하면서 최초의 서양화가가 등장하였고, 당시 그의 졸업은 신문에 날 만큼 큰 화제 거리였습니다. 1920~30년대가 되면 미술을 배우기 위해 떠나는 유학생이 증가하고 각종 전람회와 전시 공간이 확대되며 변화하기 시작했습니다. 초기 서양화가들의 졸업작품인 자화상에서 급변하는 시대의 주인공으로 화가 자신의 내면이 드러납니다. 화가들은 경성이라는 도시 공간의 변화와 함께 일상의 풍경과 삶을 포착하며 삶과 예술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을 해 나갔습니다. 식민지 현실 속에서 근대적으로 변모한 경성의 다양한 모습은 유혹과 동경, 환상과 절망이 교차하는 이중적인 이미지로 형상화되었던 것입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2016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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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화상, 고희동, 1915년, 캔버스에 유채, 일본 도쿄예술대학 대학미술관

최초의 서양화가로 알려진 고희동의 자화상으로, 한국인이 그린 최초의 유화작품 중 하나이다. 고희동은 일찍이 서양 문물을 접하고 1909년 24세에 궁내부 주사의 자격으로 일본 유학을 떠나 도쿄미술학교 서양학과를 졸업하고 돌아와 본격적인 화가의 길을 걸었다. 도쿄미술학교 졸업작품인 이 자화상은 정자관을 쓰고 두루마기를 입은 한국인 관료이자 유학생으로 자신의 모습을 그린 작품이다. 그는 이 높은 정자관을 그리기 위해 본래 자화상 규격보다 긴 캔버스를 사용했다. 궁내부 주사로서 6년간 일했던 한국인 관료이자, 한국인 유학생으로서의 자기의식이 반영된 작품이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2016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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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화상, 김관호(1890~1959년), 1916년, 캔버스에 유채, 일본 토교예술대학 대학미술관

평양 부호의 아들로 태어난 김관호는 1911년 도쿄미술학교 서양화과에 입학했다. 이 <자화상>에는 선배 고희동의 것과 달리 양장을 입고 정면을 응시하는 세련된 근대 지식인의 당당함이 반영되어 있다. 화면 곳곳에서 탄탄한 데생 능력과 뛰어난 색채 감각을 엿볼 수 있다. 최우등으로 졸업하며 화제를 모은 김관호는 귀국 후 개인전을 개최하고 후학을 양성하는 등 활발히 활동했지만, 1927년 이후 화단에서 활동을 보여주지 못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2016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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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화상, 김찬영(1889~1960년), 1917년, 캔버스에 유채, 일본 도쿄예술대학 대학미술관

김찬영은 도쿄미술학교 서양화과의 세번째 한국 졸업생으로, <자화상>은 현재 전하는 그의 유일한 유화 작품이다. 초점 잃은 눈동자와 붉은 구름이 피어나는 강가의 풍경은 몽환적이고 비현실적인 세계로 인도한다. 졸업 후 김찬영은 한국유화가 1세대로 조선미술전람회 출품을 거부하면서 서양 모더니즘 미술의 수용자로서 활발한 비평 활동을 하다, 1930년대 이후에는 고미술수장가로 이름을 떨쳤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2016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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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화상, 김용준(1904~1967년), 1931년, 캔버스에 유채, 일본 도쿄예술대학 대학미술관

화가이자 평론가, 미술사학자이면서 『근원수필』의 저자로 잘 알려진 김용준의 자화상이다. 도쿄미술학교 서양화과 유학 시절, 전통서화를 경시하다 장승업의 기명절지도를 본 순간 서양화가로서 갖고 있던 자부심이 한순간에 꺾였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그의 자화상은 근대 지식인이나 화가의 모습이 아닌, 한복을 입은 젊은 한국 청년으로서의 자의식을 보여준다. 졸업 이후에도 전통에 대한 그의 관심은 지속되었고, 2930년대 후반부터는 전통 회화로 전향하여 조선미술의 특징에 대한 글들을 발표하면서 전통 서화의 사상과 양식을 계승하는 현대미술을 모색하였다.(안내문, 중앙박물관, 2016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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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화상, 길진섭(1907~1975), 1932년 캔버스에 유채, 일본 도쿄예술대학 대학미술관

길진섭은 1932년 도쿄미술학교 서양화과를 졸업한 뒤 1930년대 미술운동을 주도했던 인물이다. 1920년대 후반부터 일본 유학생이 증가하면서 이들의 활동이 활발해지며, 미술인들은 다변화 양상을 보인다. 이 자화상에서는 흰 셔츠에 붉은 넥타이를 맨 1930년대 전형적인 도시인의 모습이 나타난다. 날카로운 눈매로 정면을 응시한 채 왼쪽으로 몸을 삐딱하게 돌린 모습은 화가의 심리적 상태를 드러내 보인다. 한자 “吉”과 한글 “진섭”으로 쓴 서명은 이 시기 서양화가들 사이에서 유행했던 것이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2016년)

OLYMPUS DIGITAL CAMERA인물회화, 고희동, 이도영 외, 1933년 이전 종이에 먹. 춘곡 고희동의 생일날 모임에서 남긴 메모와 그림, 이용우, 이한복, 이도영, 변관식, 이상범이 글과 그림을 남겼다.

OLYMPUS DIGITAL CAMERA북악산을 배경으로 한 풍경, 김주경 (1902~1981년), 1927년, 캔버스에 유채, 국립현대미술관

1920년대 북악산을 배경으로 경성부청 건물이 화면 가운데 자리잡고 있고 오른쪽으로는 조선은행의 상징인 원형 돔이 살짝 드러나 있다. 1920년대 서울은 조선총독부를 비롯한 일제의 식민통치를 위한 건물들이 건립됐던 시기로, 경복궁에서 남산에 이르기까지 육중한 코크리트 건물들이 만들어 낸 경관은 도시의 새로운 상징이 되어 버렸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2016년)

<출처>

  1. 안내문, 중앙박물관, 2016년
  2.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2017년

 

[중앙박물관특별전, 미술 속 도시] 19세기 대표 화가 장승업, 조희룡, 유숙

19세기 한양의 중인들은 전분 분야에서 역량을 바탕으로 그 활동 영역을 넓혀 나갔고 새로운 문물에 대한 안목을 높혀 나갔다. 소박하면서도 절제된 미를 강조했던 양반 계층과는 달리 대담하면서도 감각적이며 세련된 조형미를 과시합니다. 19세기를 대표하는 화가로는 조선 3대 화가로 불리는 장승업을 비롯하여 매화 그림을 잘 그렸던 조희룡, 도화서 화원이었던 유숙이 있다. 그중 조희룡과 유숙은 중인들의 시사 모임인 ‘벽오사’에서 참여하여 활동하였다. 이들의 모임을 그린 유숙의 작품 <수계도(修禊圖)>에서 그들이 교류했던 모습을 살펴볼 수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화조영모(花鳥翎毛), 장승업, 조선 19세기, 종이에 엷은 색. 조선 3대 화가로 불렸던 천재 장승업의 작품이다. 다양한 동물과 식물을 생동감있게 표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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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번째, 2번째 화폭. 나무 아래에서 새를 보고 있는 개와 나무에 앉아 있는 새를 생동감있게 표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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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번째, 4번째 화폭. 바위 아래에서 새를 노리는 고양이와 이를 지켜보는 새의 모습을 표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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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번째, 6번째 화폭. 풀을 뜯고 있는 사슴(or 노루)과 이를 피해서 움직이는 게를 생동감있게 표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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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의 특징을 생동감있게 표현하고 있는 부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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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번째, 8번째. 날고 있는 기러기와 나무에 앉아 노려고 있는 매의 모습이 대조를 이루고 있다. 위의 그림과 마찬가지로 두 동물간의 관계를 연상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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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번째, 10번째. 가지에 앉아 있는 새들의 모습을 표현하고 있다.

꽃, 기러기, 동물, 어해 등 여러 소재와 다양한 화목의 그림을 혼합한 병풍으로, 잡화병에 속한다. 수채화와 같이 묽은 먹에 담채를 섞어 과감하게 구사한 붓질은 형태가 이지러지는 것에도 거리낌이 없던 장승업의 호방한 필묵법을 잘 보여준다. 동물들을 생동감 있게 묘사하였고, 청색과 옅은 녹색조의 참신한 색채가 돋보여 전체적으로 세련된 감각을 보여준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2016년)

OLYMPUS DIGITAL CAMERA기명절지(器皿折枝), 장승업, 조선 19세기, 비단에 엷은 색. 천재 화가 장승업 화풍을 잘 보여주는 작품이다. 당시 상류층이 선호했던 다양한 기물들을 표현하고 있다.

오원(장승업)의 작품으로 세상에 전하는 것을 보면 산수, 인물, 어해(魚蟹), 영모(翎毛), 절지(折枝), 기완(器玩) 등 다방면에 능하지 않은 것이 없었는데, 그 중에도 산수나 혹은 인물의 유는 그 정치함이 비할 데 없는 것이 많고, 어해, 영모, 기명, 절지 등은 거개가 분방한 필치로 되어 있다. 오씨(오경연) 댁에는 중국으로부터 가져온 명가의 서화가 많았는데, 오원은 그 중에서도 기명, 절지 등을 흥미를 가지고 깊이 연구하였다. 그는 명가의 작품을 방모하였을 뿐 아니라 깊이깊이 탐구하는 열은 실재한 물상에 응하여 사형하기를 게을리 하지 않았으니, 그가 흔히 화단 앞에 모란이나 작약 등을 열심히 사생하고 있었다는 것은 자주 듣는 이야기다.
- 김용준, 『근원수필』 중에서 – (안내문, 중앙박물관, 2016년)

OLYMPUS DIGITAL CAMERA1번째, 중국 고동기와 과일을 표현하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2번째.

OLYMPUS DIGITAL CAMERA3번째. 난초 화분과 생동감있게 표현한 게 등이 보인다.

OLYMPUS DIGITAL CAMERA4번째에는 옛 그림에서는 보기 힘든 인삼이 표현되어 있다.

장승업은 기이한 옛 그릇과 꽃가지와 과일, 문방기물 등을 소재로 하는 기명절지화에 능했다. 가로로 긴 화면에 각종 기물과 꽃가지, 난초 화분에다가 조개, 인삼 등 흔치 않은 소재들까지 등장한다. 그는 소재의 배치뿐만 아니라 사물의 형태에 구애받지 않는 과감한 표현, 분방한 필치, 산뜻한 담채와 음영법 등을 능숙하게 구사하여 자유롭고 파격적인 화면을 완성하였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2016년)

OLYMPUS DIGITAL CAMERA홍백매도, 장승업, 조선 19세기, 종이에 엷은 색, 개인 소장. 19세기 상류층에서 유행한 홍백매도를 장승업 특유의 화풍으로 그린 그림이다. 화려한 색감과 생동감 있는 표현 등이 특징으로 당시 상류층의 과시적인 취향을 반영하였 다.

조선 말기의 화가 장승업이 그린 연폭의 홍백매화도이다. 연폭의 홍백매화도는 조희룡을 시작으로 조선 말기에 유행하면서 많은 화가들이 제작하였다. 그 중 장승업의 매화도는 장식적이면서 근대적이다. 10폭 병풍에 매화나무의 위아래를 생략한 채 가운데 부분만을 그린 과감한 구도, 좌우로 뻗은 꽃가지, 화려한 색감은 보는 이를 압도한다. 장승업은 수요층의 취향을 적극적으로 그림에 반영하여 과시적이고 장식적인 매화병풍을 제작하였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2016년)

OLYMPUS DIGITAL CAMERA홍백매도(紅白梅圖), 조희룡(1789~1866년), 조선 19세기, 종이에 엷은 색, 일민문화재단. 19세기 활동한 대표적인 화가인 조희룡의 작품이다. 조희룡은 양반 출신이지만 중인들과 주로 교유하였으며 시사모임인 벽오동의 중심인물이었다.

조희룡이 전라도 귀양 시절에 완성한 매화도이다. 그는 귀양 기간 동안 매화와 난초, 대나무와 돌이 가족이 되었다고 할 만큼 하루도 쉬지 않고 그림을 그렸다고 한다. 이때 벽오사 동인이었던 나기(1828~1854년)가 매화 그림을 부탁하여 제작한 작품이다. 화제에서 ‘줄기 하나를 치더라도 용을 잡고 호랑이를 잡아매듯이’한다고 강조한 것처럼 위로 솟구치는 듯한 괴석과 매화의 동세가 조희룡의 글씨와 어울려 웅장한 감동을 준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2016년)

OLYMPUS DIGITAL CAMERA그림에 표현된 활짝핀 매화와 괴석이다. 섬세하게 표현된 매화는 마치 눈이 내리는 듯한 느낌을 주고 있다.

눈의 흰색과 선홍색은 어떤 경지인가?
광동 나부산의 오색빛깔
신비로운 나비가 산 가득 풀어져 있고,
앞서 홍매화 백매화 날아가는 듯하네.
- 조희룡, <홍백매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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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화서옥도, 조희룡, 조선 19세기, 종이에 엷은 색, 간송미술관. 매화가 활짝핀 동산에 살고 있는 모습을 그린 그림으로 그의 자화상같은 작품이라 할 수 있다. 눈내리는 풍경을 그린 듯 하다.

온통 매화로 둘러싸인 집 안에 한 사람이 앉아 있고, 서안 위에는 책과 묵연, 그리고 매화가지 하나가 병에 꽂혀 있다. 이 인물은 아마도 조희룡 자신일 것이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서옥 바깥은 만발한 매화의 기세가 화면 전체를 채웠는데, 눈과 꽃잎이 날리는 듯 흰 점으로 매화꽃을 표현하였다. 그는 20년 전 자신이 그린 매화서옥도를 감상하며 필묵의 유희와 기이한 기운이 있다고 언급하였다. 매화 속에서 살아가고자 한 조희룡 자신의 모습이 투영된 수작이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2016년)

OLYMPUS DIGITAL CAMERA홍백매도(紅白梅圖), 보물 1199호, 유숙(1827~1873년), 조선 1868년, 종이에 엷은 색, 개인 소장. 19세기 매화를 그린 작품들 중에서도 가장 뛰어난 작품이다. 화원으로 시사모임 벽오동에서 활동했던 유숙의 대표작이다.

화면 오른쪽 화단의 괴석 위에 백매와 홍매 세 그루가 서 있고, 매화 가지가 왼편으로 길게 이어지며 8폭의 화면을 채우고 있다. 병풍의 왼편에는 매화도를 감상하며 고향에 핀 매화를 그리워하는 내용의 중구구 명대 문인 예경의 시를 유숙이 옮긴 제시가 적혀 있다. 화원이자 중인시사 벽오사의 일원이기도 했던 그의 작품에서 조희룡 매화도의 영향을 감지할 수 있다. 유숙의 매화도 화법과 18세기 후반 홍백매도의 유행을 보여주는 중요한 작품이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2016년)

OLYMPUS DIGITAL CAMERA섬세하게 표현된 매화 가지와 꽃.

OLYMPUS DIGITAL CAMERA유숙이 그린 <수계도> 중 모임에 참석한 사람들이 서탁을 중심으로 모여 대화를 나누고 있는 장면이다. 조희룡은 모임을 이끌었던 인물로 김정희와 교류했다는 이유로 주류층의 견제를 받아 귀향을 가지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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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선군접(白扇群蝶) 중 1번째, 2번째, 남계우.박기준, 조선 19세기, 비단에 색. 부채그림과 나비그림이 한쌍을 이루며 조화로운 조형미를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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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번째, 4번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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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번째, 6번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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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번째, 8번째.

백선도 네 폭과 화접도 네 폭을 한 폭씩 교대로 배치한 8폭 병풍이다. 화접도는 나비를 잘 그렸던 남계우가 그렸으며, 백선도는 부채그림으로 유명한 박기준의 것으로 추정된다. 이처럼 19세기에는 서로 다른 그림들을 취향에 따라 재배치하는 것이 성행하였다. 화려하고 장식적인 성격이 강한 백선도와 화접도가 조화를 이루어 새로운 조형감각을 잘 보여 주는 작품이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2017년)

도시의 미감
도시의 여항인들은 양반 못지않은 교양과 지식을 갖추었습니다. 각자의 전문 분야에서 역량을 갖추어 활동 영역과 영향력을 넓혀 나갔고 국제적인 교류와 안목을 높여 갔습니다. 그들의 예술세계는 이전의 졸박하고 소담한 풍치보다는 대담하고 감각적이며 세련된 조형미를 과시합니다. 방을 가득 채우는 병풍에서부터 작은 책상 위 연적 하나까지 새로운 미감을 드러냅니다. 꼿꼿한 선비의 절개를 상징하던 매화는, 도시 화가들의 손을 거쳐 화려한 홍백매화와 화면을 압도하는 매화 한 그루로 거듭납니다. 이처럼 주관적이며 때로 파격적인 미감은 도시의 감성을 완성시켜 갔습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2016)

<출처>

  1. 안내문, 중앙박물관, 2016년
  2.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2017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