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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박물관 서화관] 행려풍속도, 김홍도가 바라본 세상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소장하고 있는 행려풍속도(行旅風俗圖)이다. 1778년 김홍도의 강희언의 집 담졸헌(澹拙軒)에서 그린 것으로 선비가 세상을 유람하면서 마주치는 풍경을 8폭의 그림으로 표현하고 있다. 대장관에서 쇠를 두드리는 장면과 주막에서 밥을 먹는 나그네의 모습, 강가에서 배를 기다리는 광경이, 포구에서 항아리와 광주리를 머리에 인 아낙, 들녁에서 목화 따는 아낙들을 바라보는 선비의 모습, 당나귀와 물새가 서로 놀라는 돌발적인 상황, 벼타작 풍경, 거리에서 판결하는 태수 행렬 등을 표현하고 있다. 인물의 자세와 표정을 자연스럽게 표현하고 복식이나 소품 또한 정밀하게 묘사했다. 산과 강, 논밭 등의 산수 배경과 인물들이 조화를 이루고 있다. 강세황이 감상평을 글로 적어놓고 있다.

중앙박물관 행려풍속도 20211013_09<행려풍속도(行旅風俗圖), 그림 김홍도 글 강세황, 조선 1778년, 비단에 엷은 색>

김홍도는 길을 떠난 나그네가 조선을 유람하며 보았던 장면을 8폭으로 제작했다. 병풍의 제일 오른쪽의 1폭부터 8폭까지 각각은 <거리의 판결>, <길가대장간>, <나루터>, <어물장수>, <놀란 나그네>, <타작>, <길위의 풍경>, <훔쳐보기>이다. 김홍도는 인물의 자세와 표정을 자연스럽게 표현하고 복식이나 소품 또한 정밀하게 묘사했다. 비단에 섬세하게 그려진 8폭의 병풍은 작은 종이에 핵심 장면만을 간략하게 묘사한 <단원풍속도첩>과는 달리, 산과 강, 논밭 등의 산수 배경과 인물들이 조화롭게 어우러졌다. 각 폭마다 표암 강세황의 평이 적혀 있어 격조와 흥취를 높여 준다. 8폭에는 관서가 있어 1778년 초여름에 김홍도가 34세 중인 화가인 강희언의 집, 담졸헌에서 그렸음을 알 수 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2021년)

중앙박물관 행려풍속도 20211013_01
<1폭 거리의 판결, 취중송사(醉中訟事)>

술이 취한채 판결을 내리는 장면이다.

중앙박물관 행려풍속도 20211013_11<주요장면>

물건을 공급하는 사람들이 각각 물건을 들고 견여의 앞에서 쫓아가니 태수의 행색이 초라하지 않네. 촌민이 다가와 항소하니 형리가 문서에 적네. 취기에 올라 부르고 적으니 어찌하면 오판이 없을 것인가! 표암 강세황이 평하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202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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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폭 길가의 대장간, 노변야로(路邊冶爐)>

대장간에서 쇠를 두드리는 장면이다.

중앙박물관 행려풍속도 20211013_12<주요 장면>

김홍도가 그린 풍속화첩 중에는 비슷한 장면들이다. 있다. 배경을 간단하게 처리하고 장면만을 강조하고 있다. 이 그림을 그리기 전에\ 사전 준비였던 것으로 추정하기도 한다.

단원-풍속도첩보물20210512_02<풍속화첩(보물) 중 주막>

단원-풍속도첩보물20210512_03<대장간>

논에는 해오라기가 날고 높은 버드나무에는 시원한 바람이 분다. 풀무간에서는 쇠를 두드리고 나그네는 밥을 사먹는다. 시골주막의 쓸쓸한 광경이지만 오히려 한가로운 맛이 있네. 표암 강세황이 평하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2021년)

중앙박물관 행려풍속도 20211013_03
<3폭 나루터, 진두대주(津頭待舟)>

강가에서 배를 기다리는 광경을 그렸다.

중앙박물관 행려풍속도 20211013_13<주요 장면>

백사장 머리에 나귀를 세워놓고 사공을 부르네. 나그네 두 세 사람도 같이 서서 기다리네. 강가의 풍경이 눈앞에 완연하다. 표암 강세황이 평하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202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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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폭 어물장수, 매염파행(賣塩婆行)>

  포구에서 항아리와 광주리를 맨 아낙네를 표현하고 있다.

중앙박물관 행려풍속도 20211013_14<주요 장면>

방게, 새우, 소금으로 광주리와 항아리를 가득 채워 포구에서 새벽에 출발한다. 해오라기가 놀라서 날아가기에 한번 펼쳐보니 비린내가 코를 찌른다. 표암 강세황이 평하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202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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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폭 놀란 나그네, 과교경객(過橋驚客)>

당나귀와 물새가 서로 만나 놀라는 장면을 그렸다.

중앙박물관 행려풍속도 20211013_15<주요 장면>

다리 아래 물새는 노새의 발굽 소리에 놀라고, 노새는 날아오르는 물새에 놀라고, 길가는 사람은 놀라는 노새에 놀란다. 놀라는 모양새가 입신의 경지이다. 표암 강세황이 평하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2021년)

중앙박물관 행려풍속도 20211013_06
<6폭 타작, 타도락취(打稻樂趣)>

 벼타작을 하는 장면을 그렸다. 신분 계층에 대한 비판과 풍자를 보여준다.

중앙박물관 행려풍속도 20211013_16<주요 장면>

벼타작 소리 들리는데 탁주는 항아리에 가득하고 수확을 지켜보는 이 또한 즐거워 보이네. 표암 강세황이 평하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202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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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폭 길가의 풍경, 노상풍정(路上風情)>

소를 타고 가는 아낙네를 살펴보는 나그네를 쳐다보고 있다.

중앙박물관 행려풍속도 20211013_17<주요 장면>

소를 타고 가는 시골 노파가 무슨 보잘 것이 있어서 나그네가 말고삐를 느슨히 하고 뚫어져라 보고 있는가? 일시의 광경이 사람을 웃긴다. 표암 강세황이 평하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202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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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속화첩(보물) 중 노상파안(路上破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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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폭 훔쳐보기, 파안흥취(破鞍興趣)>

들녁에서 목화 따는 아낙을 바라보는 선비를 그렸다.

중앙박물관 행려풍속도 20211013_18<주요 장면>

헤진 안장에 여윈 말을 타고 가는 나그네 행색이 몹시 피곤하다. 무슨 흥취 있어 목화 따는 시골처녀에게 얼굴을 돌리는가. 표암 강세황이 평하다. 무술년(1778) 초여름 사능(김홍도)이 담졸헌에서 그리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2021년)

김홍도가 바라본 세상
18세기 대표적인 화가인 김홍도가 바라본 조선은 어떠했을까요? 김홍도의 <행려풍속도 병풍(行旅風俗圖屛)은 나그네가 유람을 하면서 보았던 세상살이를 그린 8폭의 그림입니다. 날씨 좋은 어느 날, 나귀를 타고 길을 떠난 선비는 거리에서 판결을 하는 태수 행렬, 대장간의 대장장이, 논밭에서 일하는 사람들, 소를 타고 이동하는 아낙 등을 만나고, 때로는 강을 건너기 위해 나룻배를 기다리기도 합니다. 김홍도의 스승인 강세황은 김홍도의 탁월한 묘사와 재치에 감탄하여 각 폭마다 평을 적었습니다. 그림과 글을 번갈아 보며 조선 사람들의 세상살이를 재미있게 즐겨보시기 바랍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2021년)

<출처>

  1. 안내문, 중앙박물관, 2021년

 

[중앙박물관 서화관] 신선을 만나다.

신선도(神仙圖)는 신선들의 모습과 설화를 표현한 그림이다. 도교의 신선사상과 함께 발전하였다. 장수(長壽)와 무병(無病)과 같은 생에 대한 애착과 기복적인 바램을 위해 그려졌다. 그림에는 많은 신선들이 등장하지만 그중에 팔선(八仙)으로 불렸던 종리권, 여동빈, 장과로, 한상자, 이철괴, 조국구, 남채화, 하선고가 많이 그려졌으며 노자, 황초평, 마고선년, 하마선인, 동방삭, 서왕보, 장지화 등도 많이 보인다. 그림에 등창하는 신선들은 각자 관련된 설화에서 묘사된 모습으로 표현되고 있다. 중국에서 신도는 남북조시대에 등장하여 당대까지는 인물화로, 북송때에는 불교와 도교를 주제로 한 그림(도석인물화)으로 분류되었다. 남송대 선종(禪宗) 인물화법이 더해지면서 꾸준히 발전했다. 우리나라에서는 고구려 고분에도 신선이 등장하기는 하지만 고려시대에 본격적으로 그려지기 시작하여 조선후기 17세기에 성행하였다. 선비화가인 심사정과 직업화가인 김홍도를 많은 화가들이 작품들을 남겨 놓고 있다.

중앙박물관   신선도20211013_11
<종리권과 여동빈, 여덟 명의 신선들(八仙圖), 맹영광, 중국 명 1640년대, 비단에 먹>

중앙박물관   신선도20211013_12
<하선고와 이철괴, 여덟 명의 신선들(八仙圖), 맹영광, 중국 명 1640년대, 비단에 먹>

중앙박물관   신선도20211013_13
<한상자와 조국구, 여덟 명의 신선들(八仙圖), 맹영광, 중국 명 1640년대, 비단에 먹>

중앙박물관   신선도20211013_14
<남채화와 장과로, 여덟 명의 신선들(八仙圖), 맹영광, 중국 명 1640년대, 비단에 먹>

도교에서 숭상되는 여덟명의 신선인 팔선을 한 폭에 두명씩 그린 4폭의 족자이다. 오른쪽 첫번째 폭부터 죽은 자를 살리는 부채를 든 종리권과 그의 제자 여동빈, 팔선 가운데 유일한 여선인 하선고, 자신의 몸을 찾지 못하고 걸인의 몸으로 살아간 이철괴, 퉁소를 잘부는 한상자, 하늘이 바로 자기 자신이라고 한 조국구, 학을 타고 하늘로 올라간 남채화, 불로장생의 비법을 깨달은 장과로를 그렸다. 섬세하면서도 개성적인 얼굴 묘사와 신선마다 특징적인 지물 표현, 예리하고 날카로운 철선묘(鐵線描)의 옷주름 표현은 당시 중국 화원화가들이 그리는 방식이다. 맹영광은 명말청초에 활동한 중국인 화가로, 병자호란 후 볼모로 잡혀있던 소현세자 일행이 1645년 심양에서 귀국할 때 함께 조선에 들어왔다가 1648년 청으로 돌아갔다. 조선에 머무르는 동안 이징, 이명욱과 같은 화가들에게 영향을 미쳤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2021년)

심사정(1707~1769년)은 조선중기 영의정을 지낸 심지원의 증손이다. 명문 사대부 출신이지만 과거나 관직에 오르지 못하고 일생 동안 그림을 그렸다. 어려서 정선에게 그림을 배웠으며 진경산수뿐 아니라 중국 절파화풍과 남종화풍을 받아들여 독자적인 화풍을 이루었다. 대표작으로 <강상야박도>, <파교심매도> 등이 있다.

중앙박물관   신선도20211013_01<용을 마주한 여동빈, 전 심사정, 조선 18세기, 종이에 엷은 색>

두건을 쓰고 도포를 입은 인물이 동굴 앞 벼랑에 앉아 상서로운 구름 속에서 나온 용과 마주하고 있다. 인물 뒤쪽 동자가 들고 있는 커다란 칼과 용으로 미루어 팔선 중 검사인 여동빈을 그렸을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여동빈은 평화롭게 방석에 앉은 채 용을 바라볼 뿐 싸울 생각은 없어 보이며 한 쌍의 학과 동자의 모습에서도 별다른 긴장감이 느껴지지 않는다. 화면에 심사정의 호 ‘현재玄齋’가 쓰여지고 인장 2과가 찍혔지만, 심사정의 인물화에 비해 공간 배치가 어색하고 인물의 자연스러운 멋이 덜하다.(안내문, 중앙박물관, 2021년)

중앙박물관   신선도20211013_15
<종리권, 작가 모름, 중국 명 15세기, 비단에 색>

종리권은 중국 동한 무장 출신으로 대장군을 지냈다. 나면서부터 체격이 크고 풍채가 당당했으며 푸른 눈에 긴 수염을 길렀다. 전쟁에서 패해 종남산에 들어갔는데 우연히 동화제군을 만나 도술을 전수받고 신선이 되었다. 그림에서 종리권은 파도 위에 서 있는데 왼손의 호리병을 가리키고 있고 죽은 자를 살리는 부채를 허리춤에 차고 있다. 종리권의 신령스런 면모를 강조한 이 그림은 종교화일 가능성이 커서 단동상 혹은 팔선을 그린 여러 폭 중 한 점으로 생각된다. 15세기 명나라 궁중 화원인 유준은 이러한 단독 신선상을 많이 제작하였다.(안내문, 중앙박물관, 2021년)

최명룡(1567~1621년)은 조선중기에 활동한 문인화가이다. 역학에 깊고 수항에도 능통하였다고 한다. 취로 그림을 그렸는데 상당히 수준이 높았다고 한다. <선인무악도(仙人舞樂圖)>는 그의 대표작인데 신선들을 크게 부각시키는 화풍을 따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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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인무악도(仙人舞樂圖), 학과 함께 춤을 추는 네명의 선인, 최명룡, 조선 17세기 전반, 비단에 색>

깊은 산 속 커다란 바위 아래 네 명의 선인이 학을 둘러싸고 악기를 연주하거나 춤을 추고 있다. 네 사람 중 퉁소를 지닌 인물은 한상자, 박을 치는 인물은 조국구일 가능성이 있다. 오래 살아 장수를 상징하는 학과 함께 어우러진 선인들은 부드러우면서도 흥에 겨운 표정을 짓고 있다. 흑백 대비가 심한 절벽 표현, 거칠게 그린 나뭇가지와 나뭇잎 처리, 인물을 강조한 구성, 굵고 진하게 표현한 옷 윤곽선 등은 당시 유행하던 절파 화풍의 영향이다. 오른쪽 위에 적힌 ‘석계 石溪’는 문인화 최명룡의 호인데 그는 역학, 음양학, 불교학 등에 능통했고 그림에 조예가 깊었다고 한다.(안내문, 중앙박물관, 2021년)

정선(1676~1759년)은 당시 인기였던 금강산, 관동팔경 등의 명승과 서울 주변 명소들, 지방관으로 근무했던 지역의 경치 등을 많이 그렸다. 초기에는 실경산수화에 가까운 그림을 그렸으며 점차 자연에서 받은 느낌을 재구성하여 독창적인 진경산수화로 발전시켰다. 산수화 뿐 아니라 신선을 그린 그림들도 작품으로 남겨 놓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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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를 건너는 선인(仙人渡海圖), 정선, 조선 18세기 중반, 종이에 먹>

석장을 잡고 있는 선인이 도포자락을 휘날리며 파도를 타고 바다를 건너고 있다. 그는 고개를 돌려 여유롭게 먼 하늘을 바라보고 있는데; 그 위로 구름에 살짝 가린 둥근 달이 떠 있어 서정적인 분위기를 고조시킨다. 힘찬 필선으로 표현한 옷자락의 생동감, 선인의 인자한 표정, 흐르는 구름과 출렁이는 물결의 유연한 처리 등에서 정선의 뛰어난 기량을 확인할 수 있다. 화면의 시구는 중국 명대 철학자 왕수인(1472~1528)의 시 <범해 泛海>의 일부이다.(안내문, 중앙박물관, 2021년)

중앙박물관   신선도20211013_02<하지장도(賀知章圖), 김홍도, 조선 1804년, 종이에 엷은 색>

당나라 시인 하지장(659~744)이 술에 취해 나귀를 탄 채로 졸고 있다. 그는 세상사에 얽매이지 않고 풍류를 즐겨 두보는 <음중팔선가 飮中八仙歌>에서 하지장을 술취한 팔선 중 첫번째 인물로 묘사했다. 앞쪽에서 시중드는 인물은 주인이 나귀에서 떨어질까 몸을 붙들고, 나귀는 고개를 숙이고 힘겹게 걸음을 내딛는다. 술동이를 메고 뒤따르는 이는 그 모습이 우스운지 미소를 머금고 앞사람과 눈빛을 주고 받는다. 김홍도는 물기 없는 간단한 붓질로 인물을 표현하고 두보의 시 중 하지장 부분을 행초서(行草書)로 썼는데 그림과 글이 절묘하게 어우러진다.(안내문, 중앙박물관, 2021년)

중앙박물관   신선도20211013_03<세발 두꺼비와 노는 유해섬, 심사정(1707~1769년), 조선 18세기, 종이에 엷은 색>

유해섬(劉海蟾)은 중국 오호십육국시대의 전설적인 선인이다. 그는 재상 자리를 버리고 속세를 떠난 초월자이자 내단술(內丹術)인 연금술의 대가였다. 세발 달린 두꺼비는 유해섬을 원하는 곳으로 데려다주는 영물인데 특히 돈을 좋아해 유해섬이 종종 엽전으로 그를 꾀어 내곤 했다. 역적 가문의 자손으로 벼슬길이 막힌 심사정은 평생 그림 제작에 몰두했고 다양한 화목의 많은 작품을 남겼다. 이 그림은 붓 대신 손가락이나 손톱으로 그린 지두화(指頭畵)로 누더기 옷을 걸치고 두꺼비와 천진하게 놀고 있는 유해섬의 거친 느낌을 잘 살렸다.(안내문, 중앙박물관, 2021년)

중앙박물관   신선도20211013_04<해금감, 전 정선, 조선 18세기, 종이에 먹>

가파른 바위 절벽이 절경인 해금강의 뱃놀이를 그렸다. 동해의 기기묘묘한 절벽을 원형으로 배치하고 출렁이는 파도와 암석에 부딪치는 물결을 표현했다. 금강산 근처의 해금강은 18세기 이후 유람의 명소가 되어 많은 이들이 방문했고, 신비로운 대자연을 신선처럼 유람한 경험과 감흥은 시와 그림 제작으로 이어졌다. 절벽을 각지게 표현하고 죽죽 내려긋는 수직준과 파도 표현 등은 정선의 화법과 유사하지만 필세가 다소 떨어져 진작 여부를 검토하게 한다. 정선은 실경산수화의 전통을 바탕에 두고 남종화법을 써서 우리나라의 산천을 특징적으로 표현한 진경산수를 확립했고, 이는 후대 화가들에게 많은 영향을 미쳤다.(안내문, 중앙박물관, 2021년)

중앙박물관   신선도20211013_05<뱃놀이, 심사정, 조선 1764년, 종이에 엷은 색>

쪽배 한척이 파도가 넘실거리는 바다를 유유히 가로지르고 있다. 온 힘을 다해 노를 젓고 있는 뱃사공과 달리 두 선비는 뱃머리에 몸을 기대어 휘몰아치는 풍랑을 바라보고 있다. 이들은 세상 모든 이치를 통달한 듯 느긋한 모습이다. 좁은 배 위에 놓인 서안과 책, 붉은 매화 가지를 꽂은 꽃병, 고목에 살포시 앉은 학은 이 그림이 인간의 세계를 초월한 신선들의 우아한 뱃놀이임을 암시한다. 58세의 심사정은 만년에 완성한 자신만의 개성적인 화법으로 거친 풍랑에도 흔들리지 않는 고결한 존재를 표현했다.(안내문, 중앙박물관, 2021년)

중앙박물관   신선도20211013_18
<번개의 신(雷公圓), 김덕성, 조선 18세기 후반, 종이에 색>

천둥소리를 내는 북과 망치를 짊어지고 칼을 쥔 번개의 신, 뇌공이다. 입을 쩍 벌리고 한쪽 다리를 길게 내려 뻗은 포즈는 마치 악인을 벌하기 위해 하늘에서 내려온 순간을 보는 듯하다. 뇌신은 조선시대 불화에서 여러 신들 가운데 하나로 작게 등장하는데 이를 독립시켜 단독상으로 그린 점이 특이하다. 김덕성은 정조 대에 차비대령화원으로 활동했는데 특히 신장상(神將像)에 뛰어났다고 전해진다. 뇌신의 우락부락한 근육과 송숭한 체모는 역동적인 분위기를 강화하고, 근육에 표현된 음영은 조선 후기 서양화법의 수용을 보여준다. 화면 상단의 제발문은 여항문인이자 송석원시사(松石園試社)의 일원이었던 엄계응이 1804년에 쓴 것이다.(안내문, 중앙박물관, 2021년)

중앙박물관   신선도20211013_19
<약초 캐고 사슴과 벗하기, 전 김홍도, 조선 18세기 말 ~ 19세기 초, 종이에 엷은 색>

지팡이를 든 선인이 뒷짐을 지고 아래쪽의 사슴 한 쌍을 가만히 굽어보고 있다. 곁에 선 동자의 바구니에는 영지와 약초가 가득하다. 험난한 계곡으로 폭포수가 떨어지는데 그 위로 홀연히 나타난 인물에게서는 신선과 같은 신비로운 분위기가 느껴진다. 그림 상단에는 전국시대 위나라 사람으로 도술에 능했던 귀곡자(鬼谷子)의 은둔 생활을 예찬한 당나라 시인 진자앙(661~701)의 <감우시(感遇詩)> 중 일부가 적혀 있다. 김홍도는 말년에 고사인물화를 그렸는데 이 작품은 귀곡자 혹은 속세를 피해 은거한 선인을 그린 것으로 생각된다.(안내문, 중앙박물관, 2021년)

중앙박물관   신선도20211013_20
<남극노인, 조석진, 20세기 초, 종이에 색>

소나무 아래에서 한 손에 복숭아를 든 수노인(壽老人, 남극노인)이 뿔이 길게 자란 흰 사슴 위에 걸터 앉아 있다. 수성(壽星), 즉 남극성(南極星)은 본래 도교에서 중시되는 별자리로, 장수에 대한 사람들의 열망에 따라 의인화되어 노인으로 시각화되었다. 화면에 남극노인과 함께 등장하는 소나무, 복숭아, 사슴 역시 장수를 상징한다. 조석진의 고사인물화는 스승인 장승업으로부터 영향을 받았으며 동일한 도상을 반복적으로 활용해 많은 수의 작품을 제작했다.(안내문, 중앙박물관, 2021년)

중앙박물관   신선도20211013_21
<나귀를 거꾸로 탄 장과로, 작가모름, 조선 19세기, 비단에 엷은색>

장과로는 중국 당나라 7 ~8세기 무렵에 활동한 도사로, 호흡을 조절하는 내단(內丹) 수련을 쌓아 장수했다고 한다. 원나라 때부터 팔선의 한 사람으로 꼽혔는데 팔선 중에 가장 나이가 많았다. 장과로는 종이 나귀를 타고 하루에 수만리를 갔다고 하는데 나귀를 거꾸로 타고 책을 읽는 모습으로 많이 그려졌다. 이 그림은 김홍도의 <과로도기도>(보물)와 도상적으로 매우 유사하여 김홍도의 영향을 받은 후대 화가가 제작한 것으로 생각된다.(안내문, 중앙박물관, 2021년)

중앙박물관   신선도20211013_06<바다를 건너는 신선들(海上群仙圖), 작가모름, 조선 18~ 19세기, 종이에 엷은색>

중앙박물관   신선도20211013_07<뒷부분>

여러 신선들이 신이한 능력을 발휘하여 바다를 건너는 환상적인 그림이다. 가장 오른쪽에는 악을 물리치는 보검을 등에 멘 여동빈, 그와 함께 다니는 버드나무 정령 유자선, 죽은 이를 살리는 부채를 든 종리권이 그려졌다. 술에 취해 나무 아래에 앉아 졸고 있는 이는 당나라의 은자 장지화이고, 약초가 담긴 소쿠리를 든 여성은 수명의 신 마고(麻姑)이다. 왼쪽 끝의 인물들은 방향을 달리하여 오른쪽을 바라보고 있는데 붓을 쥐고 있는 학문의 신 문창(文昌)과 그를 호종하며 두루마리를 든 시동들이다. 넘실거리는 푸른 파도와 옷깃을 휘날리는 바람에도 개의치 않는 신선들의 못븡이 생동감 넘치는 필치로 묘사되었다. 장수와 행복, 성공을 바랐던 사람들의 보편적인 소망을 엿볼 수 있다.(안내문, 중앙박물관, 2021년)

중앙박물관   신선도20211013_41<꿈을 꾸는 여동빈, 백은백, 조선 1863년, 종이에 색>

검사(劍士)가 한 손으로 바닥을 짚고 눈을 감은 채 비스듬히 앉아 있다. 오른손에 쥔 칼과 도복으로 미루어 팔선 중 여동빈으로 생각된다. 당나라 사람인 여동빈은 질병이나 가난으로 고통받는 사람들을 도우며 공덕을 쌓았다. 일반적으로 여동빈은 늠름한 관료의 모습으로 묘사되는데 이처럼 느슨하게 쉬고 있는 모습은 드물다. 이는 여동빈이 꿈을 꾸고 이생무상을 깨달은 뒤 종리권을 스승으로 모시는 황량몽(黃粱夢) 고사와 관계된 것으로 보인다. 임당 백은배는 화원 가문 출신의 화원으로 19세기 중후반에 활동하며 초상화, 고사인물화 등을 그렸다.(안내문, 중앙박물관, 2021년)

최북(1712~1760)은 조선 영조 때 활동환 화원출신 화가이다. 산수, 인물, 영모(翎毛), 화훼(花卉), 괴석(怪石), 고목(枯木)을 두루 잘 그렸다.  성질이 괴팍하여 기행이 많았으며 여행을 즐겼다고 한다. 대표작으로 <미법산수도>, <의룡도> 등이 있다.

중앙박물관   신선도20211013_42<나무그늘에 누워, 최북, 조선 18세기, 종이에 엷은 색, 13면 서화첩 중 제4면>

나무 그늘 아래에 노인이 팔을 괴고 편안하게 누워있다. 붉은 매화 나무 아래의 돌 탁자 위에는 술병과 술잔이 그려져 술을 마신 후 산바람과 계곡물 소리를 즐기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처럼 신선의 삶을 갈구했던 옛사람들은 잠시 세상일에서 벗어나 자연을 벗하며 휴식을 취하거나 명상을 하곤 했다. 최북은 18세기에 활동한 직업화가로, 붓으로 먹고 산다는 호생관(毫生館)이란 호를 사용했다. 이 화첩은 심사정의 모란, 석류 그림 2점과 함께 최북의 소, 게, 파도, 꽃, 인물 그림 9점이 섞여 있는데 모두 대중들이 선호하고 쉽게 이해할 수 있는 그림이다.(안내문, 중앙박물관, 2021년)

중앙박물관   신선도20211013_43<나무 그늘에서의 휴식, 최북, 조선 18세기>

중앙박물관   신선도20211013_44<나무 그늘에서의 휴식, 최북, 조선 18세기>

나무 그늘 아래 앉아 있는 인물을 그렸다. 왼쪽 그림에서는 암석 위에 앉아 쉬고 있는 늙은 승려를 그렸다. 가사를 입고 염주 목걸이를 한 그는 대나무 지팡이에 팔을 걸친 채 어딘가를 바라보고 있다. 오른쪽 그림에는 초립을 쓴 인물이 긴 지팡이를 쥐고 소나무 뿌리 근처에 앉아 있다. 운모가루를 바른 종이 위에 나무와 바위 등을 간략학게 그리고, 인물에 초점을 맞추었다. 바로 옆에 전시된 화첩 그림처럼, 자연을 벗삼아 풍류를 즐기는 인물 그림은 이해하기 쉬었다. 직업화가인 최북은 수용에 맞추어 이러한 그림을 다수 그렸다.(안내문, 중앙박물관, 2021년)

신선을 만나다.
늙지 않고 오래 사는 불로장생(不老長生)은 인간의 오랜 소망입니다. 신선은 초월적인 신과는 달리, 역사적 인물로 수련이나 단약 복용을 통해 불로장생했습니다. 중국 원나라 때 대표적인 여덟명의 신선인 팔선(八仙)이 형성된 이후, 신선은 점점 많아지고 세속화되면서 사람들이 장수와 복을 비는 친근한 존재가 되었습니다. 옛사람들은 속세를 떠니지 못하지만 신선을 동경해 산수유람이나 명상을 하며 신선과 같은 풍류나 아취를 즐기고자 했습니다. 지금 이 순간, 신령스럽고 한편으로는 너무나 인간적인 신선들을 그림으로 만나보시는 것은 어떨까요.(안내문, 중앙박물관, 2021년)

<출처>

  1. 안내문, 중앙박물관, 2021년
  2.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2023년
  3.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소, 2023년
  4. 위키백과, 2023년

 

서직수 초상(보물)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소장하고 있는 서직수 초상(보물)이다. 조선후기 유학자 서직수(1735 ~?)를 그린 초상로 당대 최고의 초상화가인 이명기가 얼굴을 그리고 김홍도가 몸체를 그렸다. 조선시대 초상화는 대부분 앉아 있는 좌상인데 비해 이 그림은 서 있는 모습을 그렸으며, 당대 최고의 화가들이 참여한 작품이다. 형태묘사가 매우 뛰어나며 높은 품격을 보여주고 있다. 1796년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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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직수 초상, 이명기, 김홍도, 조선 1796년, 보물>

62세의 서직수(1735~1811)가 두 손을 모으고 곧게 서 있다. 그는 선비로서의 자아를 도포와 동파관 차림의 초상으로 드러내고자 했다. 이 그림은 당대 최고의 도화서 화원인 화산관 이명기(1756~1802년 이후)와 단원 김홍도가 합작한 초상이다. 이명기는 얼굴에 옅은 안료를 여러 번 붓실하여 사실적으로 묘사했으며, 눈동자의 홍태가 생생하게 빛나도록 표현했다. 김홍도는 탄력있는 선으로 옷의 구김을 자연스럽게 포착한 후 옅은 음영을 넣어 입체감을 나타내었다. 서직수는 화면 위쪽에 “한 조각 정신은 그려내지 못했다.”라는 평을 썼는데, 실제로 만족하지 못했다기보다 그림이라는 매체 자체가 지닌 한계를 지적하고 내면의 수양에 매진하겠다는 다짐으로 읽을 수 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2021년)

<출처>

  1. 안내문, 중앙박물관, 2021년
  2.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2023년

 

[중앙박물관 서화관] 서화감상의 즐거움

국립중앙박물관에서는 2021년 <서화 감상의 즐거움>이라는 제목으로 작품을 구성하여 전시하였다. 서화(書畵)은 그림(회화)과 글씨(서예)를 총칭하는 말이다. 회화는 인간의 삶에서 창조의 결과물로 오래 기원을 가지고 있으며 풍부한 의미를 갖고 있다. 중국에서는 “그림 속에 시가 있고, 시 속에 그림이 있다”라고 하여 시와 그림은 불가분의 관계였다. 그림에는 작가의 감정과 사상이 담겨 있으며, 그런 그림을 통해 예술적인 소양이 길러진다. 서예는 문자의 표현이지만 글쓴이의 정신이 표현되는 예술로 인정받고 있다. 그림과 글씨가 합쳐져서 서화(書畵)로서 작가의 정신세계가 표현된다.

강세황(1713~1791년)은 조선후기들 대표하는 문인화가로 시(詩), 서(書), 화(畵)에 모두 능해 삼절(三絶)로 일컬어졌다. 75세에 사신단에 참여하여 북경을 다녀왔으며 76세 때 금강산을 유람하였다. 스스로 그림 제작과 화평(花評) 활동을 통해 당시 화단에 큰 영향을 미쳤으며 한국적인 남종문인화풍의 정착에 크게 기여하였다. 진경산수의 발전, 풍속화와 인물화의 유행, 서양화법의 수용에도 많은 업적을 남겼다. <피금정도>, <송도기행첩>, <자화상> 등 다양한 분야의 작품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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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나무.대나무.모란, 강세황, 조선 1786년, 종이에 엷은 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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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나무.대나무.모란, 강세황, 조선 1786년, 종이에 엷은 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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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나무.대나무.모란, 강세황, 조선 1786년, 종이에 엷은 색>

엷은 먹으로 바위를 그리고 각각 소나무, 대나무와 모란을 그린 그림이다. 세 폭만 남았지만 본래 네 폭이상의 병풍에서 분리된 일부일 가능성이 크다. 표암 강세황은 젊은 시절 안산의 처가에 머물며 서화에 몰두하였고 서화 감식과 비평에도 많은 힘을 쏟았다. 강세황은 61세에 관직 생활을 시작하여 정2품 한성판윤까지 올랐으며 기로소에 들 정도로 만년에 관운을 누렸다. 이 그림은 74세 때의 작품으로, 먹과 채색의 물을 미묘하게 조절하여 담담하게; 그려내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2021년)

채용신(蔡龍臣, 1850 ~ 1941년)은 구한말을 대표하는 초상화가이다. 벼슬은 종이품에 이르렸으며 산수, 인물, 영모(翎毛, 동물그림)에 모두 뛰어났다. 고종 어진일 비롯하여 여러 국왕의 어진을 그렸다. 대표작으로 <고종 어진>, <최치원 초상>, <최익현 초상>, <전우 초상>, <황현 초상>,  <운낭자상>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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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낭자상, 채옹신 1914년 종이에 색, 등록문화재>

머리를 낮게 쪽진 여인이 아이를 품에 안고 서 있다. 여인은 짧은 저고리 아래 젖가슴이 드러나 있고, 토실토실한 아이는 여인의 두 팔에 안겨 순진무구하게 웃고 있다. 아이가 손에 쥔 귤은 보석처럼 빛난다. 어머니와 아이를 함께 그린 이 초상에서는 마치 성모자같은 신성함마저 느껴진다. 그림의 주인공 운낭자는 평안도 관기로서 기산군수 정시의 첩실이었던 최연홍(1785~1846년)이다. 그녀는 1811년 홍경래의 난 때 정시와 그의 부친이 살해당하자 시신을 거두어 장례를 치르고 시동생을 간호하여 살려내었다. 조정에서는 최연홍의 공적을 인정하여 서인으로 신분을 높여주었다. 이 초상은 석지 채용신이 27세의 최연홍을 상상하여 그린 것이다. 고종의 어진화사로 이름 높았던 채용신은 1899년 전주에 낙향한 후 우국지사의 초상을 여럿 그렸는데, 이 상도 그러한 정황에서 제작되었을 가능성이 크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2021년)

서직수 초상(보물)은 조선후기 유학자 서직수(1735 ~?)를 그린 초상화이다. 당대 최고의 초상화가인 이명기가 얼굴을 그리고 김홍도가 몸체를 그렸다. 조선시대 초상화는 대부분 앉아 있는 좌상인데 비해 이 그림은 서 있는 모습을 그렸으며, 당대 최고의 화가들이 참여한 작품이다. 형태묘사가 매우 뛰어나며 높은 품격을 보여주고 있다. 1796년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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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직수 초상, 이명기, 김홍도, 조선 1796년, 보물>

62세의 서직수(1735~1811)가 두 손을 모으고 곧게 서 있다. 그는 선비로서의 자아를 도포와 동파관 차림의 초상으로 드러내고자 했다. 이 그림은 당대 최고의 도화서 화원인 화산관 이명기(1756~1802년 이후)와 단원 김홍도가 합작한 초상이다. 이명기는 얼굴에 옅은 안료를 여러 번 붓실하여 사실적으로 묘사했으며, 눈동자의 홍태가 생생하게 빛나도록 표현했다. 김홍도는 탄력있는 선으로 옷의 구김을 자연스럽게 포착한 후 옅은 음영을 넣어 입체감을 나타내었다. 서직수는 화면 위쪽에 “한 조각 정신은 그려내지 못했다.”라는 평을 썼는데, 실제로 만족하지 못했다기보다 그림이라는 매체 자체가 지닌 한계를 지적하고 내면의 수양에 매진하겠다는 다짐으로 읽을 수 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2021년)

윤급 초상(보물)은 조선후기 문신 윤급(1697~1770년)을 그린 영정이다. 관복인 사모와 흑단령을 착용하고 표범가죽을 깐 의자에 앉아 있는 모습을 그렸다. 당대 최고의 어진화사였던 변상벽이 윤급의 초상화를 그렸다는 기록이 남아 있어 그의 작품으로 추정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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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급 초상, 전 변상벽, 조선 1762년경, 비단에 색, 보물>

관복 차림의 윤급(1697~1770년)이 표범 가죽을 깐 의자에 앉아 있다. 화가는 66세의 주인공 얼굴에 양미간의 주름, 곰보자국과 검버섯, 사마귀까지 숨김없이 그렸다. 얇은 사(紗)를 겹쳐 바른 오사모 날개에 어른거리는 무늬가 비치고, 구름무늬 비단으로 지은 단령은 실물처럼 질감이 느껴진다. 촘촘한 붓질로 그려낸 흉배와 발 받침의 화문석 문양 표현이 탁월하다. 윤급은 영조 때의 문신으로 1762년 종1품 판의금부사에 오르고 기로소에 들어갔으므로 이를 긴며하여 제작된 초상일 가능성이 크다. <근역서화징>에 변상벽이 윤급의 초상을 그렸다는 기록이 전해진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2021년)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이하응 초상(보물>은 금관조복을 입고 의자에 앉아 있는 모습을 그린 그림이다. 서울역사박물관에 있는 그림과 거의 유사하여 1863년 이한철 등이 그린 그림으로 추정하고 있다. 주인공의 이목구비를 또렷하게 드러내었으며, 금관조복은 매우 세밀하게 묘사하고 있다. 흥선대원군 섭정시기에 그린 그림으로 정치지도자로서의 모습을 표현하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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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하응 초상, 전 이한철 유숙, 조선 1869년, 비단에 색, 보물>

흥선대원군 이하응의 50세 때 초상으로, 금관조복을 차려입은 모습이다. 화가는 필선과 명암으로 주인공의 이목구비를 또렷하게 드러내었다. 금박을 붙인 금량관은 물론 옷깃 바느질까지 한 땀 한 따 그려 넣은 정교한 묘사가 돋보인다. 이하응은 섭정 시기에 다양한 차림새의 자신의 초상을 남겼다. 정치가의 면모와 문인 서화가로서의 정체성을 복식으로 나타낸 것이다. 그 중에서도 이 초상은 가장 격이 높은 예복인 금관 조복 차림으로, 절정의 권력을 과시하고 있다. 서울역사박물관 소장의 이와 흡사한 초상에; 이하응이 1869년에 ‘화사 이한철, 유숙’이라고 쓴 글이 남아 있어 이 초상의 제작 시기와 작가를 추정할 수 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202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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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나무 아래 늙은 승려, 작가 모름, 조선 18세기 중엽, 종이에 먹>

한 승려가 구불거리는 노송 뿌리에 걸터앉아 계곡물을 바라보고 있다. 물줄기는 바위에 부딪혀 물결을 일으킨다. 승려의 무심한 시선을 따라가다 보면 물소리와 소나무 바람소리도 그림 속엣 느껴지는 듯하다. 물은 막힘 없는 도리와 지혜의 상징이어서 물을 바라보는 인물을 그린 그림이 조선시대 내내 그려졌다. 짙은 먹을 사용하고 날카로운 필선으로 사물을 묘사한 수법에 절파 화풍의 영향이 뚜렷하다. 큰 화면을 안정적인 구도와 분명한 형태로 장악한 솜씨가 돋보인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2021년)

김홍도(1745~ 1806년)은 조선시대를 대표하는 천재 화기이다. 풍속화로 잘 알려져 있지문 산수화, 고사인물화, 신선도, 화조화, 불화 등 거의 모든 분야에 뛰어났으며 많을 걸작들을 남겨 놓았다. <신선도>, <군선도(국보>, <선동취적>, <생황을 부는 신선> 등 여러 걸작들을 남겨 놓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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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리부는 어린 신선, 김홍도, 조선 18세기 후반, 종이에 엷은 색>

쌍상투를 튼 어린이가 퉁소를 불고 있다. 등에 맨 붉은 호리병은 신선의 상징으로, 초연한 눈빛과 자연스럽게 흐트러진 머리칼이 신선다운 모습이다. 볼로초와 솔잎을 바구니에 담아 산에서 내려오는 듯, 발걸음은 천천히 앞으로 향하고 있다. 다방면의 그림에 뛰어났던 단원 김홍도는 신선과 부처도 잘 그렸다. 옷 주름의 힘찬 선과 섬세한 얼굴선이 대조되고 옅은 채색이 조화를 이룬다. 불로장생의 의미를 담아 그린 아름다운 신선 그림이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2021년)

김수철은 19세기 중반에 활동한 화가로 당시 화단을 주도한 중인 서화가들과 교유했던 사실이 확인되어 중인신분이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산수와 화훼를 잘 그렸으며 간결한 필치와 대담한 생략, 참신한 조형감가, 말고 투명한 채색이 특징이다. 대표작으로 <송계한담도>, <자양화도>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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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화에 둘러 싸인 서옥(매화서옥도), 김수철(?~1862년 이후), 조선 19세기, 종이에 엷은 색>

바위틈에 집 한 채가 위태롭게 얹혀 있고 주위의 나뭇가지는 철사처럼 거칠다. 먼 산 너머 하늘은 곧 눈이라도 쏟아낼 것 같이 어두워, 산중은 적막하고 쓸쓸하기만 하다. 그러나 나뭇가지 끝에는 매화가 피어나고, 벗이 산중의 서재로 찾아온다. 바야흐로 봄이 오고 있다. 화면 위쪽에 쓴 글에 따라 중국 북송의 처사 임포의 이야기를 그렸음을 알 수 있다. 북산 김수철은 간략한 필치로 대상을 과감히 생략하는 참신한 조형감각으로 조선 말기 산수화에 새로운 영역을 개척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2021년)

오세창(1864~1953년)은 일제강점기 <근역서휘>, <근역인수> 등을 편찬한 서예가이자 언론인, 독립운동가이다. 구한말 역관집안 출신으로 <한성순보> 기자, 관료 등을 역임했다. 천도교에 입교하여 3.1운동 때 민족대표 33인으로 참여하였다. 일제강점기 수집한 문헌과 고서화를 토대로 한국 서화가에 대한 기록을 총정리한 <근역서화징>을 편술하였다.

중앙박물관 서화의 즐거움 20211013_01<오세창이 쓴 <채근담>, 오세창, 1950년대, 종이에 먹>

명나라 말기 사람인 홍자성의 어록 <채근담>의 일부를 쓴 병풍으로, 세상의 도리를 담담하게 밝힌 부분이다. 와당에 전하는 옛 전서와 예서의 상형미를 세련되게 해석한 서체가 돋보인다. 위창 오세창은 한국 서화의 전통을 대한민국으로 이어주었다. 그는 개화파 역관이었던 부친 오경석을 본받아 서화 수집과 연구에 매진하였고 역대 서화가를 망라한 사전인 <근역서화징>을 펴내었다. 오세창의 3.1운동 민족대표의 한 사람으로 옥고를 치렀으며 서거 후 건국훈장 대통령장에 추서된 독립운동가이기도 하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2021년)

김규진(1868~ 1933년)은 일제강점기에 활동한 서화가이자 사진가이다. 젊은 시절 청나라에 유학하여 당시 청에서 유행하던 화풍을 연구했다. 구한말 관직를 지냈으며 영친왕의 서법을 지도했다. 이후 일본에서 사진기술을 배워 사진관을 개설하였다. 청나라의 영향을 받은 대륙적 필력으로 모든 서법에 뛰어났다고 한다. 그림에서는 묵죽(墨竹)과 묵란(墨蘭)에 뛰어났으며 채색화도 잘 그렸다고 한다.

중앙박물관 서화의 즐거움 20211013_02<난초, 대나무와 글씨, 김규진, 1922년 종이에 먹>

해강 김규진은 문인 서화의 전통을 근대로 이어준 서화가이다. 그는 평안도 출신으로 18세 때 중국 유학을 떠나 10년 동안 청나라 서화가 오창석 등과 교유했다. 김규진은 중국에서 대나무의 생태를 연구할 정도로 묵죽화에 열정을 쏟았다. 그는 두꺼운 줄기가 V자로 뻗어 오르는 대나무를 큰 붓으로 단숨에 그려냈다. 이 병풍은 난초와 대나무 그림에 이어서 제5쪽에 예서, 제6폭에 초서 글씨를 쓴 것이다. 화분에 심은 난초를 비롯해 사군자를 먹으로 그린 병풍은 20세기 전반에 크게 유행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2021년)

윤순(1680~ 1741년)은 조선후기 문신이자 서화가로 예조판서와 평안도 관찰사 등을 역임했다. 시문을 물론 산수, 인물, 화조 등의 그림도 잘그렸다. 조선후기를 대표하는 글씨의 대가로 유명했으며 중국과 우리나라의 역대 서법을 두루 익혔다고 한다. 중국 왕희지와 미불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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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순이 쓴 <희답양정수문신이소>, 주희 지음, 윤순 씀, 조선 18세기 전반, 비단에 먹>

백하 윤순은 미불(1051~1107년)을 비롯한 옛 대가처럼 ‘메마른 듯 힘 있고, 속된 아름다움에 치우치지 않은’글씨를 추구하였다. 윤순은 중국에서 편찬된 법첩을 널리 모아 당.송 대가들의 서예 이론을 폭넓게 연구했다. 이 글씨는 남송의 문인 주희의 시를 행초로 쓴 것으로 자유로운 붓놀림이 돋보인다. 정열적이면서도 서정적인 중국 남방 문학의 정취와 활달한 필치가 잘 어울린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2021년)

이광사(1705 ~ 1777년)은 조선후기 서화가로 윤순에게 글씨를 배웠다. 시.서.화에 모두 능했으며 글씨에 특히 뛰어나 후대에 큰 영향을 끼쳤다. 대표작으로 <고승간화도>, <산수도>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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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광사가 쓴 <산록>, 육유 지음, 이광사 씀, 조선 18세기 후반, 종이에 먹>

원교 이광사는 옥동 이서(1622~1723년), 백하 윤순의 글씨를 이어 받아 독자적인 경지를 이룩한 문인 서예가이다. 그는 중국 역대 서예가의 법첩을 연구하여 위진 시대의 소박한 서풍을 자신의 글씨에 녹여 내었다. 구불거리고 꺽이는 멋을 살린 그의 원교체(圓嶠體)는 조선 후기에 큰 영향을 끼쳤다. 이 글씨는 이광사가 남송 문인 육유의 시 <산록>을 행서로 쓴 것으로, 힘이 가득 담긴 재빠른 붓질이 특징이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2021년)

한호 필적 – 석봉진적첩(보물)은 선조 때 활동한 명필 석봉 한호(1543~ 1605년)이 쓴 노년 필적을 모은 것이다. 1, 2첩은 1602년에서 1604년 사이에 쓴 필적이 실려 있다. 내용은 가까운 친구들에게 지어준 시문, 본인의 자작시, 애호하던 중국 시문이다. 흑지나 감지에 금니로 해서,행서,초서로 다양하게 썼다. 3첩은 도교경전을 필사한 것이다. 18세기 유명한 서화수장가 김곽이 수장했던 것으로 각 첩의 이면에는 인장이 찍혀 있다. 지금까지 알려진 한호의 필적 가운대 최고로 여겨지는 유물이다.

중앙박물관 서화의 즐거움 20211013_03<석봉진적첩, 한호, 조선 1602 ~ 1604년, 감지에 금니, 보물>

중앙박물관 서화의 즐거움 20211013_04 <석봉진적첩, 한호, 조선 1602 ~ 1604년, 감지에 금니, 보물>

중앙박물관 서화의 즐거움 20211013_05<석봉진적첩, 한호, 조선 1602 ~ 1604년, 감지에 금니, 보물>

석봉 한호는 16세기를 대표하는 명필이다. 한호는 왕실 문서에 글씨를 쓰는 사자관(寫字官)으로 활약하며 선조의 총애를 받았다. 한호 이전에는 원나라 조맹부(1254~1608년)의 부드럽고 장식적인 송설체(松雪體)가 유행했다. 한호는 왕희지의 고전적 서풍으로 회기하여 소박하면서 힘있는 글씨를 완성하였다. 한호의 글씨를 새긴 목판본 <천자문>이 유포되면서 그의 석봉체(石峯體)는 조선후기 서예에 새로운 기준이 되었다. 이 서첩은 한호 만년의 글씨를 모은 것으로, 의관이자 서화 수장가로 이름 높았던 석종 김광국이 소장했던 작품이다. 금가루를 개어 써 내려간 유려하고 원숙한 필치가 돋보인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2021년)

비단에 금가루로 매화와 대나무를 그린 이금화(泥金畵)이다. 조선후기에는 일본으로부터 상당량의 금이 유입되어 금으로 그린 그림이 유행했다.

중앙박물관 서화의 즐거움 20211013_06<매화와 대나무, 작가 모름, 조선 17세기, 비단에 금니>

매화와 대나무는 소나무와 더불어 한겨울 추위를 이겨내는 세한삼우(歲寒三友)로 고려시대부터 그려졌다. 이 두 그림은 금가루로 그린 이금화(泥金畵)이다. 이금화는 바탕이 어두워야 금빛이 돋보일 수 있기에 주로 쪽이난 먹을 칠한 비단과 종이에 그려졌다. 금박을 문질러 고운 가루로 낸 후 아교 녹인 물에 잘 섞어 붓으로 그리면서 수묵처럼 농담을 표현하기도 한다. 이금화는 중국과 일본을 잇는 중계무역으로 상당량의 일본산 금이 조선으로 유입되었던 17세기에 특히 유행했다. 한양의 고위 계층은 이금화를 영원성의 상징으로 선호했다고 한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2021년)

오준(1587~1666년)은 조선중기 대사헌 등을 역임한 문신이자 서예가로 활동했던 인물이다. 인조 때 산신으로 청나라를 다녀왔으며 <인조실록>의 편찬에도 참여하였다. 당시 글씨로 유명해서 많은 비문과 글씨를 남겼다. <삼전도비>, 아산 <충무공이순신비>, 구례 <화엄사벽암대시비> 등이 그의 글씨이다.

중앙박물관 서화의 즐거움 20211013_08<오준이 쓴 <전적벽부>, 오준, 조선 1645년, 종이에 먹>

<전적벽부>는 북송의 문인 소식이 황주(黃州) 유배 때 지은 글이다. 유배의 실의를 극복하고 이루어 낸 동아시아 문학의 걸작으로 후대에도 깊은 사랑을 받았다. 소식은 1082년 음력 7월 16일 밤에 적벽에서 뱃놀이를 하고 <전적벽부>를 지었다. 만물이 무상하면서도 영원하다는 상대적 우주관을 대화형식으로 풀어내었다. 물안개 속에서 시공간의 경계가 사라지고 주인공과 자연이 하나로 녹아드는 물아일체의 세계를 낭만적으로 표현하였다. 글씨를 쓴 죽남 오준은 석봉 한호를 이은 명필이었으며, 단정한 왕희지체로 이름 높았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2021년)

중앙박물관 서화의 즐거움 20211013_07<오준이 쓴 <후적벽부>, 오준, 조선 1645년, 종이에 먹>

북송이 문인 소식(1037~1101년)은 <전적벽부>를 짓고 석 달이 지난 음력 10월 보름에 <후적벽부>를 지었다. 시에는 쓸쓸한 정감이 가득하다. 그사이 계절이 바뀌어 강물이 줄어들고 나뭇가지가 앙상하여 늦여름에 노닐었던 곳과 같은 장소임을 알아볼 수 없을 정도였다. 강 위를 날아갔던 학이 신선의 모습으로 꿈속에 찾아왔다는 표현은 소식이 몰입했던 도가적 세계관을 잘 보여준다. 오준은 문장에 능하고 글씨를 잘 써서 왕실의 길흉책문과 서울 삼전도비, 평택 대동법시행기념비, 구례 화엄사 벽암대사비 등 수많은 비석 글씨를 남겼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2021년)

중앙박물관 서화의 즐거움 20211013_09<중희당에서 거행한 정조 임금의 인사 행정, 작가 모름, 조선 1785 ~ 1786년경, 종이에 색>

1785년 12월, 창덕궁 중희당에서 종조가 친히 관료의 인사를 거행하는 장면을 그린 기록화이다. 전각 중앙의 일월오봉도 병풍 앞에 놓인 빈 의자는 임금의 자리를 상징한다. 탁자 위에는 인사 고과를 기록한 책자가 가득 놓여있다. 마당에 늘어선 호위군관들은 국왕의 위엄을 과시한다. 관료들은 사모 위에 방한모를 덧쓰고 있고, 활엽수들은 앙상한 가지만 남아 있어 한겨울 추위가 느껴진다. 정조는 나라의 장래를 위해서 공평한 인사가 가장 중요하다는 뜻을 전하기 위해 세자궁인 중희당에서 인사 행정을 거행했다. 병풍 첫째 폭에는 정조의 어제시와 이에 화답한 신하 19명의 시가 적혔 있었으며, 이들의 명단이 마지막 폭에 있다. 당시 좌부승지였던 홍인호가 이 병풍을 하사 받았고, 그의 양자인 홍희조가 후데 글을 덧붙였다. 홍희조는 제1,2폭 상단에 1820년 동지를 맞아 새해를 축하하는 글을 썼고, 1831년에는 제8폭 왼쪽 여백에 자신의 차운시를 더하였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2021년)

중앙박물관 서화의 즐거움 20211013_10<곽분양의 즐거운 잔치, 작가 모름, 조선 19세기 전반, 비단에 색>

중국 당나라 장군 곽자의(697~781년)가 수많은 가족과 함께 잔치를 즐기는 모습을 그린 병풍이다. 곽자의는 안록산의 난을 평정한 공으로 분양군왕에 봉해졌다. 그는 85세까지 장수했을 뿐 아니라 아들과 사위가 모두 입신출세하여 세속의 행복을 남김없이 누린 인물로 기억되었다. 조선후기에는 곽자의가 대저택에서 장수 축하 연회를 즐기는 장면을 병풍으로 많이 그려졌다. 음악과 춤으로 흥겨운 잔치 모습과 아이들이 뛰어노는 장면에 부귀영화와 다산을 향한 소망이 담겨 있다. 곽분양행락도 병풍은 왕실의 가례의식에 사용되었고 민간에서도 유행하여 많은 수가 전하고 있다. 이 병풍은 19세기 곽분양행락도의 전형을 보여준다. 섬세한 묘사와 화려한 채색은 왕실이나 지체높은 짐안을 위해 만든 병풍이었음을 짐작하게 한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2021년)

조속(1595~ 1668년)은 조선 후기에 활동한 서화가이다. 시,서,화에 모두 뛰어났으며 그림은 매화(梅), 대나무(竹), 산수와 수묵 화조(水墨花鳥)를 잘 그렸다. 대표작으로 신라 시조 김알지 탄설화를 그린 <금궤도>와 <노수서작도>, <고매서작도> 등이 있다.  이 그림은 국왕을 위해 그린 그림으로 섬세하게 풍경을 잘 묘사하고 있다.

중앙박물관 서화의 즐거움 20211013_53
<금궤도(金櫃圖), 조속(1596~1668년), 조선 17세기, 비단에 색>

경주 김씨의 시조 김알지의 탄생설화를 그린 그림이다. 나무에 금빛 상자가 걸려 있고 그 아래에 흰 닭이 울고 있다. 관복 차림의 인물은 탈해이사금의 명을 받아 닭 울음소리 나는 곳을 찾아온 호공으로 보인다. 상자 안에는 어린 아이가 있었는데, 금궤에서 나왔다 하여 성을 김씨로 하였고, 뒤에 그의 후손 미추이사금이 신라 최초의 김씨 왕이 되었다. 그림 위 인조가 지은 글에 따르면 1636년 그림을 그리도록 명하였지만 병자호란 때문에 실제로는 그 이후에 그려진 것으로 추정된다. 사대부 화가 창강 조속은 수묵 화조화에 뛰어났지만 국왕의 감상을 위한 어람용 그림에 알맞도록 이 그림에서는 섬세한 청록산수를 구사하였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2021년)

이징(1581~ ?)은 조선후기에 활동한 화가로 문인화가 이경의 서자이다. 산수, 인물, 영모, 초중에 모두 뛰어나 당대를 대표하는 화가로 손꼽힌다. 많은 작품을 남겼는데 <난죽도>와 <화개현구장도>가 잘 알려져 있다.  이 그림은 청록색으로 봄날을 풍경을 섬세하면서 아름답게 표현하고 있다. 조선초기 안견파의 화풍을 이어받은 것으로 여겨진다.

중앙박물관 서화의 즐거움 20211013_54
<산수도 전 이징(1581~ 1653년 이후), 조선 17세기 중엽, 비단에 색>

넓은 수면에 잔잔한 물결이 일고 고깃배와 놀이배가 한가로이 흘러간다. 물가에는 몇의 초가집이 들어서 있다. 사람들은 독서를 하거나 손님을 맞으며 저마다 하루를 보내고 있다. 먼산 아래에는 복사꽃과 버드나무 새순이 빛나고, 숲 사이로 큰 기와집 지붕이 모습을 드러낸다. 화가는 아름다운 청록 채색으로 봄날의 정경을 따뜻하게 묘사했다. 넓은 강물을 중심으로 전경의 언덕에 집과 소나무를 배치하고 원경에 산과 마을을 그려 넣는 3단 구도는 15~16세기 안견파 화풍의 전통을 이은 것이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2021년)

중앙박물관 서화의 즐거움 20211013_11<꽃과 새, 동물, 안중식, 대한제국 1901년, 비단에 색>

다양한 소재를 열두폭에 그린 병풍으로 매 폭마다 동식물에 어울리는 옛 시를 농익은 행초 서체로 쓰고 인장을 찍었다. 심전 안중식은 장승업에게 배운 구도와 필법으로 장식정인 화조영모화를 여럿 남겼다. 안중식은 1881년 영선사의 일원으로 중국 텐진을 다녀왔고, 1899년에는 일본 교토 등지에서 서화활동을 하는 등 국제적으로 활동한 서화가였다. 이 그림은 장승업과 해상화파를 계승한 구도와 일본 근대 회화의 사실적 세부 묘사가 융합된 작품이다. 부드러운 붓질과 온건한 구도는 안중식이 추구한 미감을 잘 보여준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2021년)

중앙박물관 서화의 즐거움 20211013_55
<빈풍칠월도 중 겨울, 작가 모름, 조선 18세기, 비단에 색>

고대 중국 빈(豳)지방의 농촌생활을 노래한 <시경>의 <빈풍 칠월> 중 겨울에 하는 일을 모아 그린 그림이다. 눈 쌓인 깊은 계곡에서는 얼음을 깨어 옮기고 있고, 먼 들판에서는 새 사냥과 사슴 사냥이 한창이다. 얼어붙은 강을 끼고 두 사람이 사냥감을 옮기고 있다. 소나무 아래 초가에서는 마을 사람들이 농한기를 맞아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고 있고 마당에는 안주로 쓸 염소가 있다. 조선시대 빈풍청월도는 농사짓는 어려움을 알게 해주는 교훈이 되는 그림으로 인식되어 궁중에서 제작되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2021년)

중앙박물관 서화의 즐거움 20211013_12<빈풍칠월도첩 이방운(1761~1823년), 조선 18세기 후반 ~ 19세기 초, 종이에 엷은 색, 8면 중 1, 2면>

<시경>의 <빈풍豳風 칠월七月>은 주나라의 발상지인 빈 지방 농촌 생활을 철따라 읊은 노래이다. 기야 이방운은 <빈풍 칠월>의 각 장을 소재로 하여 그림을 그리고 시를 썼다. 오른쪽 면은 봄기운을 머금은 들에서 농사를 짓는 장면이다. 농부는 소를 몰아 쟁기질을 하고 아낙은 새참을 한가득 내놓는다. 왼쪽 면에는 꽃이 핀 들판에 쑥을 캐고 뽕잎을 따러 나온 여인들이 그려져 있다. 버드나무 사이에서 지저귀는 꾀꼬리 소리에 잠시 마음을 빼앗긴 이들도 보인다. 문인화가 이방운은 수채화처럼 맑은 색감과 부드러운 필치로 봄날의 정경을 그려내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2021년)

서화 감상의 즐거움
서화(書畵), 한 글자씩 떼어 읽으면 글씨와 그림일뿐이지만 붙여 놓으면 먹 향기 그윽한 낱말이 됩니다. 상고시대 사람들이 그림 같은 갑골문으로 하늘의 뜻을 점친 이후 동아시아에서 글씨와 그림은 늘 짝을 이루어 왔습니다. 서화 감상은 즐겁습니다. 종이와 비단 위를 쓸고 간 붓 흔적을 더듬어 보아도 좋고, 솜씨 부린 채색의 맛을 보아도 좋습니다. 서화를 조금 더 깊이 들여다보면 문학과 상상, 현실과 소망이 한데 뒤섞인 옛 서화가의 마음자리가 드러납니다. 이번 전시에서는 서예와 산수, 화조와 궁중장식화에 이르기까지 조선시대 서화의 향연이 펼쳐집니다. 옛 사람들이 누린 서화감상의 즐거움을 오늘 당신의 마음에 담아가시기 바랍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2021년)

<출처>

  1. 안내문, 중앙박물관, 2021년
  2.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소, 2023년
  3.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2023년

 

[중앙박물관 서화관] 우리가 사랑한 동물그림

국립중앙박물관에서는 2021년 <우리가 사랑한 동물 그림>이라는 주제로 작품을 구성하여 전시하였다. 동물그림은 영모화(翎毛畵)라 하여 많이 그려졌으며 사랑를 받았던 그림의 주제였다. 동물을 인간세상에 빗대어 의미를 부여하여 복을 기원하거나 풍자, 본능적인 심리묘사를 표현하였다. 전시에는 조선후기를 대표하는 화가 장승업이 그린 <게>, 18세기에 활동한 동물그림으로 유명한 화원 변상벽의 그림을 중심으로 다양한 동물의 모습을 표현한 그림들이 전시되었다.

장승업(1843~1897년)은 구한말을 대표하는 천재화가로 손꼽히는 인물이다. 도화서 화원출신으로 벼슬은 감찰을 역임했다. 그의 그림은 당대에도 유명하였는데 절지(折枝), 기완(器玩), 산수, 인물, 영모(翎毛), 사군자 등 다양한 소재를 그렸다. 대표적인 작품으로 <기명절지도>, <풍림산수도>, <팔준도> 등이 있다.

중앙박물관 동물그림 20210512_02<갈대밭의 게, 장승업, 조선 1891년, 종이에 엷은 색>

가로로 길게 펼쳐진 갈대밭 사이에 게 열 마리가 분주히 움직인다. 예로부터 게(甲)는 으뜸을 의미하고 ‘갈대 로(蘆)’자는 임금께서 합격자에게 주는 음식인 ‘려’자와 발음이 비슷하여 장원급제를 바라는 마음을 담아 게와 갈대를 함께 그리곤 했다. 장승업은 윤곽선을 그리지 않고 먹물만으로 게딱지와 다리를 그렸는데 먹의 농담과 붓질의 강약이 절묘하여 생동감이 느껴진다. 가운데에 외다로 있는 게는 붉은 색으로 엷게 칠해 유독 눈에 띈다. 화가 안중식이 스승 장승업을 그리워하며 함께 그림을 그리던 추억을 귀퉁이에 적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2021년)

변상벽은 18세기에 활동했던 화원출신 화가로 벼슬은 현감을 역임했다. 영조 어진 제작에도 참여 했으며 닭과 고양이를 잘 그렸다. 조선후시 사실주의 화법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 대표적인 작품으로 <추자도>, <묘작도> 등이 있다.

중앙박물관 동물그림 20210512_11
<고양이와 참새, 변상벽, 조선 18세기, 비단에 색>

어린 고양이 한마리가 참새를 쫓아 위로 나무 기둥을 타고 올라가고 있다. 나무 아래에서 이를 지켜보는 고양이의 한껏 돌아간 목과 움츠러든 꼬리에서 새끼를 걱정하는 어미의 마음이 묻어나오는 듯하다. 나뭇가지에 앉은 참새들은 고양이가 쫓아오는 것을 아는지 모른는지 지저귀기 바쁘다. 고양이 그림은 조선 후기에 자주 그려졌는데, 이는 고양이를 뜻하는 한자 ‘묘猫’와 칠십을 뜻하는 ‘모耄’의 발음이 유사하여 장수를 기원하는 의미를 지녔기 때문이다. 참새(雀) 또한 그 한자 발음이 ‘벼슬 작(爵)’과 같아 출세를 상징한다. 고양이를 특히 잘 그리는 것으로 유명했던 변상벽은 이러한 소재를 단순히 길상적으로 다루지 않고 아이를 걱정하는 어미의 마음까지 표현하였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2021년)

중앙박물관 동물그림 20210512_12
<어미닭과 병아리, 변상벽, 조선 18세기, 비단에 색>

암닭 한 마리가 부리로 벌 한마리를 들고 돌아오자 마당 한편에서 놀고 있던 병아리들이 어미 곁으로 올망졸망 모여 든다. 볕이 제법 따뜻한지 병아리 한 마리는 어미 뒤에 선 채로 졸고 있고, 바위 뒤에서 고개를 내민 분홍색 장미꽃으로 벌과 나비가 모여든다. 변상벽은 18세기에 활동한 화원화가로 자는 완보(完甫), 호는 화재(和齋)이다. 변상벽은 초상화와 동물 그림에 뛰어났는데 특히 닭과 고양이 그림을 잘 그려 ‘변계(卞鷄)’, ‘변고양(卞古羊)’이라는 별명으로 불리기도 했다. 어린 새끼를 바라보는 어미 닭의 따뜻한 눈빛, 병아리들의 다양한 동작과 솜털 표현에서 화가의 치밀한 관찰력과 섬세한 묘사가 엿보인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2021년)

중앙박물관 동물그림 20210512_13
<대나무 아래 두마리 학, 작가 모름, 조선 16세기, 모시에 색>

깊은 산 속, 두 마리의 학이 물가 옆으로 조용히 서 있다. 푸른 댓잎은 바람에 흔들리고, 그 아래에서 학들이 쉬고 있는데, 수면 위로 거북이 한 마리가 고개를 내밀고 있다. 학과 거북은 장수를 상징하는 대표적인 동물로 십장생이었다. 또한 화면에 그려진 산과 돌, 구름, 대나무도 십장생에 포함된다. 학과 대나무 등을 정교하게 그리고, 암속과 산봉우리를 청록으로 아름답게 채색한 점에서 화가의 탁월한 기량을 확인할 수 있다. 제작 시기가 올라가는 16세기 길상화이자 장식화이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2021년)

중앙박물관 동물그림 20210512_14
<사슴과 원숭이, 작가 모름, 조선 16~17세기, 비단에 색>

맑은 눈망을과 아름다운 뿔을 가진 사슴이 물가 쪽으로 걸아가고 있다. 소 나무 가지 위에서 열매를 먹고 있던 원숭이 중 한마리가 사슴을 내려 보며 긴 팔로 빨간 열매를 내려 주려는 듯하다. 소나무의 껍질은 진한 먹으로 소용돌이처럼 굽이치게 표현했고, 솔잎은 밤송이처럼 둥글게 묘사했다. 사슴과 원숭이 각 동물의 자연스러운 자세와 세밀한 털 묘사가 돋보인다. 소나무와 사슴은 전통적으로 장수를 기원하는 소재로 자주 그려졌으나 원숭이 그림은 많지 않다. 원숭이는 재치있고 꾀가 많으며 나쁜 일을 물리치는 벽사의 동물로 알려져 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2021년)

중앙박물관 동물그림 20210512_01<강둑에 풀어놓은 말, 작가 모름, 조선 18세기, 종이에 먹>

털색과 무늬가 제각각인 한 무리의 말이 강둑에 모여있다. 얌전하게 풀을 뜯거나 목을 축이는 말도 있지만 강에 뛰어들어 헤엄치거나 땅에서 마음껏 뒹굴거나 서로 목을 맞대며 힘을 겨루는 말도 보인다. 강 건너편에는 뼈가 드러날 정도로 수척한 암말이 망아지에게 젖을 먹이는 모정을 보여준다. 중국 황실에서는 황제에게 진상된 말을 기록하기 위해 초원을 배경으로 건강하고 훌륭한 말들이 자유롭게 노니는 대폭이 백준도(百駿圖)를 제작하였다. 큰 규모의 화면과 빼어난 솜씨롤 보아 중국 말 그림의 영향을 받은 전문화가가 그렸을 것으로 추정된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2021년)

중앙박물관 동물그림 20210512_15
<국화와 고양이, 작가 모름, 조선 18~19세기, 비단에 색>

중앙박물관 동물그림 20210512_16
<어미닭과 병아리, 국화와 고양이, 작가 모름, 조선 18~19세기, 종이에 색>

어미닭과 병아리를 일컫는 자모계(子母鷄)는 중국에서 늦어도 송나라 때부터는 하나의 독립된 화제로 그려지기 시작했다. 어미를 따르는 병아리들의 천진난만하고 귀여운 모습과 자신의 배를 굶주리며 새끼의 배를 채워주는 어미닭의 자애로움이 잘 드러나는 주제이기에 청대까지도 큰 인기를 끌었다. 고양이 역시 중국에서 당나라 때부터 그려졌으며 장수를 상징할 뿐만 아니라 책을 갉아먹는 쥐를 잡는 동물로서도 문인들에게 애호되었다. 조선 후기에는 화조와 영모를 함께 그리는 것이 유행하였는데 특히 고양이는 국화꽃 앞에 앉아 있는 모습으로 자주 그려졌다. 두 그림의 화면에는 각가 “화재가 그렸다”고 적혀 있거나 “화지” 인장이 찍혀 있으나 그림 묘사가 섬세하지 못해 생동감이 덜하다. 동물그림에 뛰어났던 벽상벽의 영향을 받아 후대에 제작된 것으로 생각된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2021년)

중앙박물관 동물그림 20210512_17
<개와 고양이, 작가 모름, 조선 20세기, 종이에 색>

개 한 마리가 고양이를 쫓고 있다. 나무를 타고 올라간 고양이가 놀리듯 아래쪽의 개를 바라보고 있고, 화가 난 것 같은 개는 고양이를 올려보며 짖고 있다. 이러한 그림은 변상벽의 <고양이와 참새> 이후 유행했는데, 19세기에는 왼쪽의 영모화처럼 나무 아래 고양이가 개로 바뀌었다. 조선후기에 유행한 오동나무 아래서 짖는 개(오동폐월)의 소재와도 연관성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 작품에서는 나뭇가지의 참새는 사라졌다. 개와 고양이는 앙숙으로 알려졌는데 두 동물간의 실랑이가 보는 이의 미소를 자아낸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2021년)

중앙박물관 동물그림 20210512_19
<개와 고양이, 작가 모름, 조선 19세기, 비단에 색>

중앙박물관 동물그림 20210512_18
<매와 토끼, 작가 모름, 조선 19세기, 비단에 색>

중앙박물관 동물그림 20210512_21
<한쌍의 꿩, 작가 모름, 조선 19세기, 비단에 색>

육지와 바다, 하늘에 사는 동물들을 다양하게 조합하여 그린 네쪽이다. 매서운 눈빛으로 사냥 중인 매와 잔뜩 겁에 질려 머리를 한껏 웅크린 토끼, 유유자적 물속을 노니는 물고기들과 수초 위에 올라앉은 앙증맞은 개구리, 마치 무지개처럼 화려한 깃털을 뽐내는 장끼와 그 옆에서 느긋하게 졸고 있는 까투리, 약 올리는 듯한 익살스러운 표정이 고양이와 잔뜩 성나 이를 쫒는 개 등 다양한 동물의 다채로운 표정과 자태가 재미있게 묘사되었다. 매가 토끼를 사냥하는 그림은 새해를 축하하는 뜻으로 제작된 세화(歲畵)에사 자주 다루어졌고, 잉어 역시 다산과 벽사의 의미가 있어 조선시대에 길상화로서 잘 그려졌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2021년)

중앙박물관 동물그림 20210512_03<소나무 아래 호랑이, 작가 모름, 조선 19세기, 종이에 색>

소나무 아래 호랑이 한 마리가 늠름하게 앉아 있다. 커다랗게 치켜뜬 호랑이의 노란 눈과 짙은 눈썹은 무섭기보다는 친근하게 느껴진다. 배경에 비해 호랑이가 크게 그려지고 표정이 의인화된 점, 간결하고 소박한 세부 표현 등으로 보아 민화 계열로 볼 수 있다. 예로부터 호랑이는 잡귀나 나쁜 기운으로부터 사람들을 지켜주는 수호동물로 여겨졌으며 장생을 뜻하는 소나무와 함께 새해에 많이 그려졌다. 벽사와 상수를 소원했던 사람들의 바람이 담겨 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2021년)

중앙박물관 동물그림 20210512_04<두꺼비와 잠자리, 거미줄의 거미, 작가 모름, 조선 18~19세기, 종이에 먹>

여름철 정원에서 볼 수 있는 꽃과 풀, 곤충 등을 묘사한 그림이다. 오른쪽 그림에서는 해당화가 한창 핀 괴석 아래로 두꺼비가 기어가고 있고 난초 위로는 잠자리 한 쌍이 꼬리를 맞대고 날고 있다. 왼쪽 그림은 원추리와 갈대 사이에 쳐 있는 거미줄과 그 중앙에 걸린 매미에게 서서히 다가가고 있는 거미가 그려져 흥미롭다. 두꺼비 등의 울퉁불퉁한 혹, 잠자리의 겹눈, 원추리 꽃잎 등 대상의 세부를 선과 점으로 자세하게 묘사하고 농담을 주면서 먹으로 채색했다. 조선 후기에 관찰을 바탕으로 한 백과사전식 화조영모화가 다수 제작되었던 경향을 보여준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2021년)

중앙박물관 동물그림 20210512_05<벌을 보는 개구리, 새끼오리 한쌍, 백은배, 조선 19세기 중후반, 종이에 색>

수초가 보이는 맑은 물가에 개구리 한 마리가 나뭇잎 위에 앉아 있다. 공중의 먹잇감을 응시하고 있는 개구리가 곧 긴 혀를 뻗어 벌을 잡아 먹을 것만 같은 긴장감이 느껴진다. 왼쪽 그림에서는 노란 새끼 오리 한 쌍이 부리를 맞대고 정답게 헤엄치고 있다. 청개구리, 진노랑색의 꽃송이, 옅은 노란색의 보송한 오리털, 하늘거리는 담녹색 소초 등은 시각적 즐거움을 준다. 임당 백은배는 화원 가문 출신의 화원으로 초상화, 고사인물화 등의 인물화에 뛰어났다. 화첩 마지막 면에 백은배가 1863년, 고법을 모방하여 12폭의 그림을 그렸다는 기록이 남아 있는데, 화첩에는 총 20첩이 있어 후에 일부 그림이 추가된 것으로 생각된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2021년)

최북(1712~1760)은 조선 영조 때 활동환 화원출신 화가이다. 산수, 인물, 영모(翎毛), 화훼(花卉), 괴석(怪石), 고목(枯木)을 두루 잘 그렸다.  성질이 괴팍하여 기행이 많았으며 여행을 즐겼다고 한다. 대표작으로 <미법산수도>, <의룡도> 등이 있다.

중앙박물관 동물그림 20210512_06<온종일 소를 몰다 돌아오다., 최북, 조선 18세기, 종이에 엷은 색>

우람한 소가 아이를 태우고 개울을 건너는 중이다. 18세기에 활동한 직업화가 최북은 뿔이 한껏 솟고 억센 털로 온 몸을 빽빽하게 휘감은 소를 생동감 있게 묘사했다. 소는 휘돌아 흐르는 물결에 아랑곳 않고 머리를 치켜 세우고 앞으로 나아가는 반면, 소 등에 올라탄 아이는 잔뜩 긴장한 듯 고삐를 꼭 쥐고 있다. 당나리 시인 류가의 시 <목동> 중 “온종일 소를 몰다 돌아오내”라는 구절이 적혀 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2021년)

중앙박물관 동물그림 20210512_07<말과 소, 작가 모름, 조선 17~18세기, 종이에 엷은 색>

중앙박물관 동물그림 20210512_08<반대편>

말고 소들이 언덕과 바위, 나무, 물가를 배경으로 봄날을 즐기고 있다. 장난스럽게 뛰어 놀다가도 풀을 뜯으며 여유를 부리는 모습이 정겹다. 화가는 배경을 최대한 생략하고 엷은 먹과 색을 조심스럽게 칠하여 전체적으로 맑고 은은한 분위기의 화면을 구성했다. 말갈기와 꼬리의 터럭까지 한 올 한 올 정성스럽게 그려진 말 그림은 탄성을 자아낸다. 훌륭한 말은 지조와 덕을 지닌 사대부를, 한가로이 낮잠을 자는 소는 은일을 상징한다. 긴 두루마리에 자유로이 노니는 말과 소는 곤직에서 물러나 평온한 은거 생활을 즐기고픈 사대부들의 바람을 담고 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2021년)

우리가 사랑한 동물 그림
동물의 특징적인 생김새와 습성을 포착해서 그린 동물 그림은 영모화(翎毛畵)라고 불리며 일찍부터 발달했고 사랑받았습니다. 동물그림은 이해하기 쉽고 보기에도 즐겁습니다. 뿐만 아니라 동물에 인간 세상을 빗대어 갖가지 의미를 부여했으므로 그림에는 복된 상징이나 풍자가 담겨 있습니다. 이번 전시에는 장승업(1843~1897)의 <게> 등 손창근 선생의 기증품을 비롯해 동물화에 뛰어났던 화원 변상벽(1726이전 ~ 1775)의 사실적이면서도 서정적인 <고양이와 참새>, <어미닭과 병아리> 등을 선보입니다. 그림 속 동물들의 천진난만한 매력에 빠져 보시고 그림이 비유한 우리의 삶도 한번쯤 돌아보시길 바랍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2021년)

<출처>

  1. 안내문, 중앙박물관, 2021년
  2. 위키백과, 2023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