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g Archives: 금속공예

순천 송광사 금동요령 (보물 176호)

송광사박물관에서 소장.전시하고 있는 금동요령(176호)이다. 요령은 불교 의식에서 소리를 내는 도구이다. 높이 20.6. cm, 지름 6.6 cm 크기로 몸은 4각형이고 각면이 팽창되어 둥근 형태를 하고 있다. 송광사에 전해 내려오는 것으로 그 형태와 조각수법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제작연대 등 내력에 대한 설명이 없는 것으로 볼 때 국내에서 제작된 것으로 확인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OLYMPUS DIGITAL CAMERA
송광사 금동요령

요령은 불가에서 의식을 행할 때 사용하는 법구로, 손잡이 부분이 금강저의 모양이면 금강령이라고 한다. 소리를 통해 진언의 법력을 퍼트려 중생들의 모든 업장을 소멸케 하고, 의식 때에는 영혼을 부르는데 쓰기도 한다.  (안내문, 송광사박물관, 2018년)

<출처>

  1. 안내문, 송광사박물관, 2018년
  2. 국가문화유산포탈, 문화재청, 2018년

[중앙박물관특별전, 옛 중국인의 생활과 공예품] 여인들의 생활

중국은 당나라 때 서역의 영향을 받아 화려하면서도 다양한 금속제 그릇과 생활용품 등이 수입되거나 직접 만들어 사용하였다. 지금도 남아 있는 당나라 유물들 중에는 수준높은 공예품들이 있으며, 이는 한반도에도 전해져 삼국과 통일신라 무덤에서는 당시 수입되거나 만들어진 유리나 금속공예품들이 출토되고 있어 당시의 문화교류를 보여주고 있다. 이때 전해전 공예품의 형태는 중국 문화와 융합되어 도자기 등으로 만들어졌다.

OLYMPUS DIGITAL CAMERA당나라 궁정 여인들의 생활모습을 그린 그림.

OLYMPUS DIGITAL CAMERA꽃무늬 금도금 은합, 당

OLYMPUS DIGITAL CAMERA원앙무늬 은합, 당

OLYMPUS DIGITAL CAMERA손잡이 달린 은잔, 당

OLYMPUS DIGITAL CAMERA사자.꽃무늬 금도금 은접시, 당

OLYMPUS DIGITAL CAMERA
포도넝쿨.동물무늬 은병, 당. 고려시대 청자나 은으로 만든 정병에서 볼 수 있는 형태이다.

OLYMPUS DIGITAL CAMERA넝쿨.새무늬가 새겨진 굽다리 은잔, 당

당대에는 실크로드를 통해 접하게 된 서아시아 문화의 영향으로 다양한 형태와 기법의 금은제 그릇들이 제작되었다. 몸체 가운데가 홀쭉하고 아래에 각이 지고 위는 벌어진 형태에 원형의 손잡이가 달린 잔은 소그드지역의 은잔을 본뜬 것이다. 당대에 소그드 상인들이 활발한 상업활동을 하면서 서아시아의 다양한 그릇들이 당으로 수입되었다. 당나라 사람들 사이에서 이국풍이 선풍을 일으키면서 서아시아풍의 그릇도 제작, 사용하였다. 은이나 은에 금도금을 한 손잡이잔, 굽다리잔, 꽃모양 접시 등은 서아시아 그릇에서 영향을 받아 제작된 것들이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2016년)

OLYMPUS DIGITAL CAMERA여인이 거울을 보며 화장하는 모습, 고개지, 여사잠도, 동진, 영국박물관

OLYMPUS DIGITAL CAMERA9개의 소합을 담은 화장렴, 전한, 마왕퇴 1호묘

OLYMPUS DIGITAL CAMERA금.은으로 장식한 화장품 칠그릇, 동한. 큰 합 속에 다양한 내용물이 들어있는 작은 그릇들이 보관되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화장품 그릇을 담았던 용기 뚜껑. 몸체에 동물과 인물 등 다양한 무늬를 얇은 금박과 은박을 붙여서 장식하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화장품 그릇을 담았던 용기.

OLYMPUS DIGITAL CAMERA길게 생긴 화장품 그릇. 동물무늬 등으로 장식하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작은 크기의 그릇

OLYMPUS DIGITAL CAMERA작은 크기의 그릇

OLYMPUS DIGITAL CAMERA작은 크기의 화장품 그릇.

한대의 화장품그릇 중 고급품은 대개 칠기 위에 채색을 칠하고 금은으로 화려하고 정교하게 장식을 하였다. 칠기는 삼베와 같은 직물을 심으로 하여 그 위에 여러 번 칠하여 만든 건칠 기법으로 제작되어 가볍고 단단하다. 칠기의 표면에는 광물성 적색 안료인 진사로 유려한 구름무늬를 그렸고 광물성 황색 안료인 석황으로 강조하는 부분을 칠했다. 그리고 몸체에는 상중하 3단으로 은띠를 붙이고 동물과 인물, 마름모 모양의 무늬는 얇은 금박과 은박으로 붙여서, 까만 칠을 바탕으로 무늬가 하얗고 노랗게 반짝이도록 하였다. 장식 무늬는 동물을 사냥하는 수렵문인데, 다양한 동물과 사수, 선인이 등장해서 흥미롭다. 코끼리, 낙타, 호랑이, 사슴, 승냥이 등이 활보하고 말을 타고 활시위를 겨누는 사수, 그리고 긴 머리를 날리며 걷는 선인을 묘사했다. 이처럼 고대인이 상상했던 선계의 모습으로 무늬를 장식한 예는 한대의 칠기에서 종종 찾아볼 수 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2016년)

OLYMPUS DIGITAL CAMERA은으로 장식한 화장품 칠그릇, 동한

OLYMPUS DIGITAL CAMERA화장품 그릇

OLYMPUS DIGITAL CAMERA나무빗

OLYMPUS DIGITAL CAMERA발이 굵은 나무빗, 발이 가는 나무빗

OLYMPUS DIGITAL CAMERA구리거울. 고대 사회에서 제사장의 권위를 보여주는 예기였던 거울이 전국시대를 지나면서 화장용구로 바뀌었음을 보여주고 있다.

글씨를 새긴 한나라의 거울이다. 거울의 꼭지를 둘러싸며 다음과 같은 내용의 26자를 새겼다. 구리로 거울을 만들어 옷차림을 밝게 비추고 용모를 단정히 한다는 내용이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2016년)

OLYMPUS DIGITAL CAMERA쇠가위, 쇠족집게,

여인들의 생활: 화장용구
여인들의 화장 문화는 선진(先秦)시대부터 발달하였다. 한대에는 서역에서 전해진 호분(胡粉)과 연지를 포함한 다양한 화장법이 유행하였다. 화려하고 섬세한 화장용구들이 지금까지 전해진다. 여러 개의 작은 화장용품을 넣은 그릇을 화장렴이라 하며, 보통 칠기에 색을 칠하고 금속으로 화려하게 장식하였다. 내부는 상하층으로 나누어 아래에는 화장 재료와 족집게, 빗, 작은 가위 등을 담았고 위에는 거울을 얹었다. 큰 화장렴에는 다양한 도구와 재료를 구분해 담을 수 있는 여러 개의 작은 합을 오밀조밀하게 갖추어 넣었다. 한대 마왕퇴 1호묘에서는 작은 합이 각각 5개, 9개 들어 있는 화장렴이 출토되었다. 9자렴에는 타원형의 작은 합 2개에 백색 화장분이, 원형의 작은 합 4개에는 연지와 분첩, 화장분과 가발이 담겨 있다. 말굽형 소합 1개에는 발이 가는 빗과 굵은 빗이, 장방형 소합 2개에는 화장용 기름과 바르는 도구가 담겨져 있었다. 이러한 화장도구는 이미 한나라 때 화장 문화가 상당히 발달되어 있었음을 보여준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2016년)

OLYMPUS DIGITAL CAMERA2016년 겨울 열렸던 “옛 중국인의 생활과 공예품” 특별전.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소장하고 있는 고대 중국사회를 보여주는 유물들을 모아 기획한 작은 전시회였다.

OLYMPUS DIGITAL CAMERA유물이 전시된 전시공간.

<출처>

  1. 안내문, 중앙박물관, 2016년

 

부여 왕흥사지 사리장엄구(보물 1767호), 가장 오래된 사리장엄구

충남 부여군 규암면 신리 왕흥사지(사적 427호) 절터 목탑지 심초석 사리공에서 발견된 사리장엄구이다. 바깥쪽에 청동으로 만든 원통형 사리합을 두고 그 안에 은제 사리합, 금제 사리병이 있다. 동, 은, 금으로 만든 용기에 사리를 모시는 백제 사리장엄구의 특징을 잘 보여주고 있는 유물이다. 원통형으로 만들어진 사리합 바깥에는 6행 29자의 글자가 새겨져 있는데, 사찰의 건립시기와 배경, 사리장엄구의 제작시기 등을 알려주고 있다. 현재까지 확인된 사리장엄구 중 가장 오래된 것으로 백제 사리엄장구를 확인하는 양식적 기준이 되기도 한다.

왕흥사는 백제 사비성 왕궁이 있었던 부소산성과 백마강을 경계로 마주보고 있는 지역에 자리잡고 있다. 왕궁에서 나룻배를 타고 백마강을 건너면 바로 찾아갈 수 있는 중요한 위치에 자리잡고 있어 누가 보아도 왕실과 관련된 사찰이었음을 알 수 있다. 왕흥사는 목탑, 금당, 강당이 일렬로 배치된 형태로 전형적인 1탑 1금당의 가람배치를 하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부여 왕흥사지 목탑지에서 출토된 사리장엄구(보물 1767호). 동, 은, 금으로 만들어진 백제 사리장엄구의 특징을 잘 보여주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1. 청동제 사리합, 바닥이 납작한 원통형 몸체를 하고 있다. 뚜껑 중앙에 연봉형 손잡이가 있다. 바깥쪽에는 사찰 건립 시기와 배경, 사리장엄구 조성시기 등을 알려주는 글자가 새겨져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청동제 사리합에 새겨진 글자.

OLYMPUS DIGITAL CAMERA2. 은제 사리 외병. 은제 사리병은 긴 목 아래에 둥금 몸체와 낮은 굽을 가진 형태를 하고 있다. 뚜껑에는 연봉모야으이 손잡이가 있으며, 그 주위에 연잎을 새겼다.

OLYMPUS DIGITAL CAMERA3. 금제 사리 내병. 호리병 모양을 하고 있으며 가장자리에는 선이 한줄 새겨져 있으며, 뚜껑에는 손잡이가 있다.

부여 왕흥사지 사리장엄구, 보물 1767호, 577년 백제
목탑지 심초석의 사리공에 사리구를 넣고, 주칠로 연꽃넝쿨무늬를 그려 장식한 화강암제 뚜껑을 덮었습니다. 석제 장치 안에 청동합을 넣고, 다시 그 안에 은제 병, 그 안에 사리를 넣는 금제 병을 두었습니다. 석제 장치는 외함으로, 청동합은 내함으로 볼 수 있습니다. 청동합 몸체에 5자 6행 29자가 음각되었습니다. “정유년(577년) 2월 15일, 백제왕 창(昌)이 죽은 왕자를 위해 사찰(혹은 찰주)를 세웠다. 본래 사리가 두 매였는데, 묻을 떄에 신이하게 셋이 되었다.”로 해석됩니다. (”세계유산 백제”, 중앙박물관, 2016년)

<출처>

  1.  문화재청
  2.  두산백과
  3.  위키백과
  4.  한국민족문화대백과
  5.  ”세계유산 백제”, 중앙박물관, 2016.11.29~

 

익산 왕궁리오층석탑 사리장엄구(국보 123호)

전북 익산시 왕궁면 왕궁리 오층석탑에서 출토된 사리장엄구(국보 123호)이다. 1966년 석탑 수리과정에서 출토된 것으로 유리로 만든 사리병, 내함, 외함, 금동불상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출토된 불상의 연대에 따라 통일신라말 또는 고려초에 석탑과 함께 조성된 것으로 추정되었으나, 인근 미륵사지에서 백제 때 조성한 사리구가 발견되면서 백제가 처음 조성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사리를 보관했던 유리병은 연꽃모양의 대좌 위에 올려져 있는데 완전한 형태를 유지하고 있다. 사리병을 보관했던 내함에는 연꽃무늬가 새겨져 있는데 사비기 백제 때 애용되었던 문양이라 한다. 또한 사리 내함에는 금강경이 새겨진 은제도금경판이 같이 출토되었다.

석탑이 있는 곳은 마한시대 도읍지로 알려져 있으며, 백제 무왕이 왕궁을 조성했던 장소이다. 왕궁리는 서동요로 잘 알려진 무왕이 궁궐로 조성했으나, 의자왕대에 이르러 사찰로 변모했다가 통일신라를 거쳐 고려시대까지 존속했다. 최근 발굴.조사 결과 석탑 기단부 아래에 목탑으로 추정되는 건물 기초가 발견되었다. 또한 석탑 주변으로 절터 배치를 알 수 있게하는 많은 유물들과, 바깥쪽을 둘러싸고 있는 성곽 등이 발견되었다.

OLYMPUS DIGITAL CAMERA익산 왕궁리 오층석탑에서 출토된 사리장엄구(국보 123호).

OLYMPUS DIGITAL CAMERA사리병을 보관하는 외함. 정육면체 형태를 하고 있으며 연꽃무늬와 구슬무늬가 새겨져 있다. 내함에 사용된 문양이 미륵사지 석탑에서 출토된 사리구 외호와 비슷한 문양을 하고 있어 백제 때 조성되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
미륵사지 석탑 사리구 외호. 비슷한 형식의 문양을 사용하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사리를 모셨던 녹색 유리병. 연꽃대좌 위에 올려져 있으며, 연꽃 봉우리 모양의 뚜껑이 있다.

국보123호 익산 왕궁리 오층석탑 사리장엄구 06-20090220내함에서 출토된 은제도금금강경판.

국보123호 익산 왕궁리 오층석탑 사리장엄구 07-20090220
오층석탑에서 같이 출토된 금동여래입상. 불상의 양식 등을 고려하여 석탑과 사리장엄구가 조성된 시기를 추정했다.

SANYO DIGITAL CAMERA익산 왕궁리 오층석탑(국보 289호)이다. 고려초에 세워진 백제계 오층석탑으로 추정된다. 높이 9 m의 거대한 석탑으로 1층 기단 위에 5층의 탑신을 올려 놓고 있다.

익산 왕궁리오층석탑 사리장엄구, 국보 123호, 7세기 전반, 익산 왕궁리,
왕궁리 오층석탑의 1층 옥개석 동쪽 사리공에 금동 주칠 사리 외함이 안치되어 있었습니다. 외함 안에는 금제 사리 내함이, 그 안에는 연화대좌 위에 놓인 유리 사리병이 들어 있었습니다. 함께 출토된 불상의 연대에 따라 9세기 말 ~ 10세기 초로 알려졌으나, 미륵사지 사리구가 발견되면서 백제 때 제작되었을 가능성이 높아졌습니다. 왕궁리 금제 사리 내함과 미륵사지 금동제 사리 외호의 세잎무늬는 기본적으로 동일한 의장에 바탕을 두고 있습니다. 짧은 선이 채워진 연꽃무늬는 사비도읍기 백제의 국왕과 귀족들이 애용한 문양입니다. 또한 모두 사리를 담은 용기는 유리병을 사용하였습니다.  (”세계유산 백제”, 중앙박물관, 2016년)

<출처>

  1.  문화재청
  2.  두산백과
  3.  위키백과
  4.  한국민족문화대백과
  5.  ”세계유산 백제”, 중앙박물관, 2016.11.29~

 

 

익산 미륵사지석탑 사리구

익산 미륵사지 석탑에서 출토된 사리구이다. 2009년 석탑 해체.수리 과정에서 심주 중앙 사리공에서 출토되었다. 사리호는 금동제 외호, 금제 내호, 유리병으로 구성되어 있다. 리를 보관하는 사리호, 금제사리봉영기, 청동합과 내부공양품, 진단구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청동으로 만들어진 외호는 부여 왕흥사지에서 출토된 사리호와 비슷한 형태를 하고 있으며, 금제 내호는 뚜껑과 항아리가 붙은 일체형이다. 사리병은 가장 오래된 유리병이지만 파손된 상태로 발견되었다.

사리봉영기에는 미륵사지 석탑 창건 내력에 대해서 기록하고 있는데 무왕의 왕후가 선화공주가 아니라 백제 귀족이었던 사택(沙澤)씨 출신이었다는 내용이 적혀 있다. 사리공에서는 사리호 외에 다양한 사리공양구가 출토되었으며, 심주 아래에는 나쁜 기운을 제압하는 의미를 갖는 진단구가 출토되었다. 아직 문화재로 지정되지는 않았지만 백제의 뛰어난 금속공예 기술 수준을 보여주는 걸작 중 하나이다.

OLYMPUS DIGITAL CAMERA미륵사지 석탑 해체.수리 과정에서 출토된 사리를 보관했던 용기. 아직 문화재로 지정되지는 않았지만 백제의 뛰어난 금속공예 수준을 보여주는 걸작이다.

OLYMPUS DIGITAL CAMERA
금동제 사리 외호

OLYMPUS DIGITAL CAMERA금동제 사리 외호에서 출토된 유리구슬.

OLYMPUS DIGITAL CAMERA
금제 사리 내호.

OLYMPUS DIGITAL CAMERA금동제 사리 내호 출토품.

OLYMPUS DIGITAL CAMERA금제 사리봉영기, 639년, 익산 미륵사지. 2009년 발견된 것으로 미륵사지 석탑 창건 내력에 대해서 기록하고 있다. 무왕의 왕후가 선화공주가 아니라 백제 귀족이었던 사택(沙澤)씨 출신이었다는 내용이 적혀 있다.

사리봉영기는 금판의 앞뒷면에 도자(刀子)를 이용하여 음각하고, 각 획을 따라 주사(朱唦)를 입혀 글자가 더욱 선명하게 보이도록 했습니다. 전체 193자로 앞쪽에는 99자, 뒤쪽에는 94자를 새겼습니다. 좌평(佐平) 사택덕적(沙澤德積)의 딸인 백제 왕후가 재물을 희사하여 가람을 창건하고 기해년(639)에 사리를 봉안하여 왕실의 안녕을 기원하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미륵사의 창건 목적과 시주(施主), 석탑의 건립 연대 등을 정확히 밝힌 것입니다. 미륵사 서탑 창건의 주체가 『삼국유사』에 나오는 선화공주가 아니라 백제 귀족의 딸임이 밝혀져 서동왕자와 선화공주 설화의 진위 여부에 대한 논란을 일으켰습니다. 삼원식(三院式)인 미륵사의 창건에 선화공주를 포함한 서로 다른 발원자가 있었을 것이라는 견해도 있지만, 여전히 논란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세계유산 백제”, 중앙박물관, 2016.11.29~)

OLYMPUS DIGITAL CAMERA3.금제족집게,

OLYMPUS DIGITAL CAMERA 4. 금귀걸이와 금덩이,

OLYMPUS DIGITAL CAMERA5.금판

사리공에서는 모두 18개의 금판이 확인되었는데 그 가운데 3개의 금판에 글자가 새겨져 있습니다. 이 중 하나에는 “중부의 덕솔 지애가 금 1량을 시주하였다”라고 적혀 있습니다. 사리봉영기와 달리 아마도 사리를 봉안할 당시 급하게 쓴 글씨로 추정됩니다. 글자의 내용은 백제의 행적구역(中部)와 관등(德率, 16품의 관등 중4품), 도량형 등을 이해하는데 도움을 주고 있습니다. 1량의 무게는 13.2 g입니다.  (“세계유산 백제”, 중앙박물관, 2016.11.29~)

OLYMPUS DIGITAL CAMERA
사리공 바닥에 깔았던 유리판. 사리공 바닥의 너비에 정확히 맞도록 처음부터 주문 제작된 특수 유리판으로 추정된다.

OLYMPUS DIGITAL CAMERA
유리구슬

OLYMPUS DIGITAL CAMERA3. 소조 나발, 4. 은제 손톱장식

OLYMPUS DIGITAL CAMERA5. 은제 관 꾸미개,

OLYMPUS DIGITAL CAMERA6. 은덩어리, 7. 은제 허리띠 꾸미개

OLYMPUS DIGITAL CAMERA8. 도자(복제품)

진단구
미륵사지 석탑 사리용기가 안치된 심주로 가는 통로의 바닥석 아래에 흩어져 있었습니다. 사찰 건물의 기단 등에 나쁜 기운이 근접하지 못하도록 진압하기 위하여 기단 하부 축조시에 각종 물건을 공양하는 진단구의 역할을 했던 것으로 추정됩니다. 특히 소조 나발과 은제 손톱장식은 중국 남조 장간사 탑 사리 공양 중에 탑 아래에 매납했다는 불조발(佛爪髮), 즉 부처의 손톱과 머리카락 봉안 의례와 관련이 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세계유산 백제”, 중앙박물관, 2016.11.29~)

OLYMPUS DIGITAL CAMERA
1. 청동합

OLYMPUS DIGITAL CAMERA2. ‘상부달솔목근’ 글자를 새긴 청동합

OLYMPUS DIGITAL CAMERA3. 금구슬, 4. 금판, 5. 금못, 6. 곱은옥, 7. 호박구슬, 8. 마노구슬, 9. 유리구슬, 10. 진주구슬

미륵사지 사리구
미륵사지 석탑의 해체 복원 작업 도중 탑의 심초석 사리공에서 사리호를 포함한 사리장엄구가 출토되었습니다.사리호는 외호와 내호, 사리병의 삼중 구조로 되어 있습니다. 연꽃무늬와 넝쿨무늬 등으로 화려하게 장식한 금동제 외호는 왕흥사의 은제 사리병과 닮아 백제 사리기의 전통을 잇고 있습니다. 금제 내호는 외호와 유사하지만 크가가 작고, 뚜껑과 항아리가 붙은 일체형입니다. 내호 안에 있던 사리병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이른 시기의 유리로로 만든 사리기이지만, 발견 당시 뚜껑을 제외하고는 형태를 가늠할 수 없을 정도로 파손되어 있었습니다. 사리공 안에서는 구슬, 장신구, 청동합과 같은 다양한 사리공양구가 함께 발견되었습니다.  (“세계유산 백제”, 중앙박물관, 2016.11.29~)

SANYO DIGITAL CAMERA익산 미륵사지(사적 150호).

『삼국유사』에 따르면 백제 무왕때 이곳에 있던 연못을 메우고 미륵사를 창건했다고 한다. 당시 신라 황룡사에 버금가는 최대 규모의 사찰로 3탑, 3금당식의 독특한 공간배치를 하고 있다. 앞쪽에 목탑을 중심으로 그 양쪽에 석탑이 세워져 있고, 뒷편에도 3개의 금당터가 남아 있다. 금당 뒷편에는 강당이 있고, 그 뒷편으론 3개의 승방이 자리하고 있다. 통일신라를 거쳐 고려, 조선시대까지 조금씩 축소되어오다 폐사된 것으로 보인다.

<출처>

  1.  문화재청
  2.  두산백과
  3.  위키백과
  4.  한국민족문화대백과
  5.  ”세계유산 백제”, 중앙박물관, 2016.11.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