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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박물관특별전, 가야 본성] 가야의 갑옷과 투구

가야의 철갑옷은 대체로 긴 철판을 이어 만든 판갑옷이며 이외에 삼각형의 철판을 이어 만든 판갑이나 작은 철판 조각을 비늘갑옷 등이 있다. 가장 많이 사용된 갑옷은 큰 철판 20~30매를 이어서 만든 판갑옷이다. 4세기 말 광개토대왕의 고구려군이 신라를 도와 가야을 정벌하면서 금관가야가 쇠퇴하게 되었으며 고구려의 영향을 받아 비늘갑옷 등 다양한 형태의 갑옷과 말에도 갑옷을 입힌 중장기병이 도입되었다. 4~5세기에 조성된 가야 고분에서는 다양한 형태의 갑옷들이 출토되고 있어 당시 무사들의 모습을 살펴볼 수 있다.

중앙박물관특별전 가야무사 20200212_01<가야의 갑옷과 투구>

중앙박물관특별전 가야무사 20200212_02<가야의 갑옷과 투구>

힘, 가야는 힘이 없었나요? – 철의 무사
42년부터 562년까지, 520년간 가야가 존속할 수 있었던 것은 힘을 가졌기 때문입니다. 가야의 힘은 문화에도 있었지만 무엇보다 철에 있었습니다. 당시 철을 최고의 첨단 소재로서 철을 다루는 기술은 곧 나라의 국력과도 직결되었습니다. 장군들은 철로 만든 갑옷과 칼을 사용했고, 말도 철로 만든 갑옷과 투구를 썼습니다. 4세기 가야는 새와 고사리무늬 등을 장식한 종장판갑옷이라는 독창적인 갑옷을 만들어 사용했습니다. 지금까지 알려진 삼국시대의 갑옷 대부분은 가야에서 만든 것입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20년)

판갑옷은 큰 철판 20~30매를 이어서 만든 것으로 초기부터 가장 많이 사용되었다.  판갑옷은 오른쪽 앞 몸통, 왼쪽 앞 몸통과 뒷몸통 세 부분으로 이루어졌는데 뒷몸통과 앞몸통은 분리할 수 있도록 하거나 가죽, 경첩 등으로 연결하여 갑옷을 쉽게 입고 벗을 수 있도록 하였다.

중앙박물관특별전 가야무사 20200212_61
<갑옷, 어깨가리개, 투구, 5세기, 고령 지산동 32호묘, 국립대구박물관>

중앙박물관특별전 가야무사 20200212_62
<삼각판 갑옷과 차양주, 5세기, 김해 두곡 43호묘, 부경대학교 박물관>

중앙박물관특별전 가야무사 20200212_63
<갑옷과 투구, 합천 옥전 28호묘, 경상대학교 박물관>

중앙박물관특별전 가야무사 20200212_65
<갑옷, 4세기, 김해 대성동 2호묘, 국립김해박물관>

중앙박물관특별전 가야무사 20200212_66
<갑옷, 부산 복천동 86호묘, 복천박물관>

중앙박물관특별전 가야무사 20200212_67
<갑옷, 4세기, 김해 퇴래리고분, 국립김해박물관>

가락국의 판갑옷은 삼국시대 갑옷 중에서 가장 화려합니다. 판갑 표면에 특정 문양을 덧대는 것은 물론이고, 목을 둘러싸는 테두리에 동물의 털을 붙였습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20년)

중앙박물관특별전 가야무사 20200212_68
<투구와 삼각판 갑옷, 5세기, 함안 도항리 13호묘, 36호묘, 국립김해박물관>

중앙박물관특별전 가야무사 20200212_69
<갑옷, 목가리개, 투구, 4세기, 보물, 부산 복천동 38호묘, 복천박물관>

가락국 초기 철갑옷으로, 갑옷을 구성한 개별 철판의 크기가 크고 이를 가죽끈으로 연결한 것이 특징입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20년)

중앙박물관특별전 가야무사 20200212_70
<갑옷과 투구, 4세기, 김해 양동리 78호묘, 국립김해박물관>

여러장의 긴 철판을 연결하고, 고사리 문양을 붙여 만든 갑옷과 투구입니다. 갑옷에 고사리 문양이나 새 문양을 붙이는 것은 가락국 갑옷의 특징입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20년)

비늘 갑옷은 작은 비늘 모양의 철판 조각을 연결하여 만든 것이다. 판갑옷에 비해 움직임이 용이하여 중앙아시아 유목민들이 많이 사용했다. 한반도를 거쳐 일본으로 전해져 사무라이 갑옷으로 애용되었다. 비늘갑옷은 구조가 복잡하고 출토상태가 좋지 않아 원래의 모습으로 복원하기 어려운 점이 있다. 가야의 다양한 지역에서 비늘갑옷이 출토되었다.

중앙박물관특별전 가야무사 20200212_64
<비늘갑옷, 목가리개, 투구, 남원 월산리 M5묘 M1-A호묘, 국립전주박물관>

운봉고원에 자리잡은 기문의 최고 지배자가 소유한 독특한 형태의 투구와 비늘갑옷입니다. 투구는 정수리 부분을 막은 복발이 마치 관모의 모습과 흡사합니다. 이마 부분에는 햇빛을 가릴 수 있는 챙이 달려 있습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20년)

중앙박물관특별전 가야무사 20200212_48<비늘갑옷, 5세기, 김해 열래리 II지구 40호묘, 국립김해박물관>

비늘갑옷은 4세기 후엽부터 확산되기 시작하여 5세기 이후에 크게 유행하였습니다. 비늘갑옷이 유행하면서 종래의 종장판 갑옷은 점차 사라지는 대신 왜계 판갑옷의 수량이 늘어났습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20년)

종장판 갑옷은 긴 철판을 세로로 두고 연결한 것이다. 판갑옷을 개량한 것으로 보이며 광개토대왕 정벌 이후 비늘갑옷으로 바뀌는 전단계 모습을 보여주는 것으로 보인다. 남원 월산리 고분에서 출토된 유물들은 전환기 갑옷과 투구의 보습을 보여주고 있다.

중앙박물관특별전 가야무사 20200212_43
<종장판 투구, 남원 월산리 M1-A호묘, 국립전주박물관>

중앙박물관특별전 가야무사 20200212_44
<목가리개, 5세기, 남원 월산리 M5호묘, 국립전주박물관>

말 탄 무사모양 뿔잔(국보)은 갑옷으로 튼튼하게 무장을 한 가야 기병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높이 23.2 cm 크기의 인물형 도기로 나팔모양의 받침 위에 판을 설치하고 그 위에 말을 탄 무사의 형상을 올려놓고 있다. 표현방법이 매우 사실적이어서 가야무사의 복식과 무기 등을 연구할 수 있는 귀중한 자료이다. 무사는 머리에 투구를 쓰고 오른손에는 창을, 왼손에는 방패를 들고 있는 모습을 하고 있다. 뒤쪽에는 중앙아시아 유목민들과의 교류관계를 보여주는 각배가 있다.

중앙박물관특별전 가야무사 20200212_04<말 탄 무사모양 뿔잔, 5~6세기, 국보, 전 김해 덕산리, 국립경주박물관>

중앙박물관특별전 가야무사 20200212_05<정면에서 본 모습>

무사는 갑옷을 입었고, 손에는 칼이나 창 같은 무기류와 방패를 들고 있습니다. 갑옷은 투구와 목가리개 등이 잘 표현되어 있고, 말에도 무사와 마찬가지로 몸 둘레에 갑옷을 걸쳤습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20년)

중앙박물관특별전 가야무사 20200212_03<가야 무사를 재현한 모습>

철갑옷과 중장기병
문헌 기록이 많지 않은 가야는 다양한 철제 무기와 갑옷으로 세상을 놀라게 했습니다. 함안 마갑총과 고령 지산동 유적에서는 고구려 고분벽화에서 볼 수 있는 철제 말갑옷이 실물로 출토되었습니다. 이 외에도 가야의 여러 무덤에서는 판갑옷과 비늘갑옷이 다양하게 확인되어 당시 가야무사의 모습을 상상할 수 있게 해줍니다. 철갑으로 두른 말을 다루기 위한 말갖춤도 함께 발전했습니다. 중국 북방 선비족의 영향을 받으며 가야의 말갖춤은 더욱 다양해졌습니다. 국보 말탄무사모양 뿔잔은 가야 중장기병의 실례를 보여주는 귀중한 자료입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20년)

중앙박물관특별전 가야무사 20200212_40<말갑옷, 5세기, 함안 마갑총, 국립김해박물관>

중앙박물관특별전 가야무사 20200212_41<반대편에서 본 모습>

가야가 중장기병을 운용했음을 보여주는 중요한 자료입니다. 중장기병은 북방의 고구려와 삼연(三燕) 등 정주화한 유목국가가 널리 활용하였습니다. 가야의 말갑옷은 제철기술과 국력이 주변 나라에 비해 결코 뒤지지 않았음을 보여줍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20년)

중앙박물관특별전 가야무사 20200212_23<말머리 가리개, 4~5세기. 1. 김해 대성동 1호묘, 국립김해박물관>

중앙박물관특별전 가야무사 20200212_24<2. 함안 말이산 6호묘, 국립김해박물관>

중앙박물관특별전 가야무사 20200212_25<재갈, 4~5세기, 3. 김해 대성동 2호묘, 국립김해박물관, 4. 함안 도항리 36호묘, 국립김해박물관>

중앙박물관특별전 가야무사 20200212_26<5. 고령 지산동 73호묘, 대가야박물관>

중앙박물관특별전 가야무사 20200212_27<6. 남원 월산리 M5호묘, 국립전주박물관>

중앙박물관특별전 가야무사 20200212_28<7. 말안장 꾸미개, 6세기, 고령 지산동 45호묘, 국립김해박물관>

중앙박물관특별전 가야무사 20200212_29<발걸이, 5~6세기, 8. 함안 도항리 54호묘, 국립김해박물관, 9. 고성 송학동 1A-1호묘, 10호묘, 동아대학교 박물관>

중앙박물관특별전 가야무사 20200212_30<10. 고성 송학동 1A-1호묘, 10호묘, 동아대학교 박물관>

중앙박물관특별전 가야무사 20200212_31<11. 고령 지산동 75호묘, 대가야박물관, 12. 합천 옥전 M3호묘, 국립김해박물관>

중앙박물관특별전 가야무사 20200212_32<말띠 드리개, 5~6세기, 13. 함안 도항리 4호묘, 8호묘, 54호묘, 국립김해박물관>

중앙박물관특별전 가야무사 20200212_35<13. 말띠 드리개>

중앙박물관특별전 가야무사 20200212_34<14. 고령 지산동 45호묘, 73호묘, 75호묘, 국립경주박물관, 대가야박물관>

중앙박물관특별전 가야무사 20200212_33<15. 말띠꾸미개, 6세기, 함안 도항리 4호, 22호묘, 국립김해박물관>

중앙박물관특별전 가야무사 20200212_37<15. 말띠꾸미개>

중앙박물관특별전 가야무사 20200212_38<말방울, 5세기, 16. 함안 도항리 8호묘, 국립김해박물관, 18. 고성 송학동 1A-1호묘, 동아대학교 박물관>

중앙박물관특별전 가야무사 20200212_39<17. 합천 옥전 M3호묘, 경상대학교 박물관>

중앙박물관특별전 가야무사 20200212_36<19. 기꽂이, 5세기, 합천 옥전 M3호묘, 경상대학교 박물관>

가야의 중장기병
중장기병은 말과 말탄 사람 모두 철갑옷으로 중무장한 전사를 말합니다. 중장기병의 역할은 주로 적진을 향하여 돌진하여 보병의 대열을 흩트리는 것이었습니다. 이때 중장기병은 발걸이에 발을 올리고 안장에 올라타 고삐를 쥐고 달렸습니다. 특히 발걸이는 안정된 자세로 활을 쏘거나 장이나 칼을 휘두를 때, 튼튼한 지지대와 같았습니다. 가야에서 중장기병의 존재를 보여주는 자료는 함안 마갑총, 고령 지산동 75호, 함천 옥전 M3호 무덤 등 여러 곳에서 확인되고 있습니다. 이 무덤의 주인공은 왕이나 왕족과 같은 높은 신분에 해당하므로, 중장기병의 말갖춤이 소유자의 신분을 나타내기도 하지만 실제로 전장을 누볐을 가능성도 충분히 있습니다. 어쨌든 가야 무덤에서 나온 말갑옷과 비늘갑옷은 국력에 직결되었던 제철기술과 군사력이 다른 삼국에 뒤지지 않았음을 보여줍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20년)

<출처>

  1.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20년
  2. 안내문, 중앙박물관, 2014년
  3.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2023년
  4.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소, 2023년
  5. 위키백과, 2023년

 

 

경주 황오동 금귀걸이(보물)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소장하고 있는 경주 황오동 금귀걸이(보물)이다. 1949년 경주 황오동 52호 무덤에서 출토된 귀걸이 한쌍이다. 주고리, 중간식, 마감장식으로 구성된 전형적인 신라 귀걸이이다. 귀에 거는 부분인 주고리는 굵게 만들었으며 중간식에는 이파리 모양의 장식이 매달이 있다. 마감장식는 펜촉모양을 하고 있다. 전형적인 경주식 태환이식 형태를 하고 있는데 제작기법과 조형미가 우수한 걸작으로 평가받고 있다.

경주 황오동 금귀걸이 (보물) 01-20220215<경주 황오동 금귀걸이(보물)>

경주 황오동 금귀걸이 (보물) 03-20220215
<왼쪽편 금귀걸이>

경주 황오동 금귀걸이 (보물) 05-20220215
<옆에서 본 모습>

경주 황오동 금귀걸이 (보물) 06-20220215
<오른편 금귀걸이>

경주 황오동 금귀걸이 (보물) 02-20220215<정면에서 본 모습>

OLYMPUS DIGITAL CAMERA<경주 황오동 고분군 52호 무덤 부근>

<출처>

  1. 국가문화유산포탈, 문화재청, 2022년
  2.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소, 2022년
  3. 위키백과, 2022년

 

황남대총 북분 금은제 그릇 (보물)

국립 중앙박물관과 경주 박물관에서 소장하고 있는 황남대총 북분 금은제 그릇(보물)이다. 황남대총이라 불리는 황남동 고분군 98호 무덤 남분에서 출토되었다. 그릇은 3가지 종류로 높이 8 cm, 지름 10 cm의 은제합, 높이 5.5 cm, 지름 10.5 cm의 은제완, 높이 4.5 cm, 지름 11 cm의 금제완이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은제 합>

은제합은 8개가 출토되었다. 몸체는 반원형이며 아래에 낮은 굽이 있다, 뚜겅도 반원형으로 가운데 3장의 나뭇잎 받침과 고리모양 꼭지가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은제합>

SANYO DIGITAL CAMERA<은제합>

은제완은 4개로 아래에 낮은 굽이 있다. 금제완도 4개로 은제완과 같은 모양을 하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은제완과 금제완>

SANYO DIGITAL CAMERA<금제완>

SANYO DIGITAL CAMERA<은제완>

SANYO DIGITAL CAMERA<경주 대릉원 황남대총(가운데 뒷편)>

<출처>

  1. 안내문, 경주박물관특별전, 2015년
  2.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2022년
  3.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소, 2022년

황남대총 남분 금제 허리띠(보물)

국립 중앙박물관에서 소장하고 있는 황남대총 남분 금제허리띠(보물)이다. 황남대총이라 불리는 황남동 고분군 98호 무덤 남분에서 출토되었다. 허리띠 길이는 99 cm이며 띠드리개는 작은것 18 ~ 22 cm, 큰 것은 79.5 cm이다. 허리띠는 문양이 뚫린 사각형 판과 나뭇잎 장식을 연결하였다. 장식 아래에는 7줄의 띠 드리개가 있다. 금관과 함께 출토된 다른 금제허리띠에 비해 형태는 단순하고, 매달린 드리개 수와 종류도 적다.

SANYO DIGITAL CAMERA<황남대총 남분 금제 허리띠(보물)>

SANYO DIGITAL CAMERA<경주 대릉원 황남대총(가운데 뒷편)>

<출처>

  1. 안내문, 중앙박물관, 2011년
  2.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2022년
  3.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소, 2022년

 

 

황남대총 남분 금제관식(보물)

국립 중앙박물관에서 소장하고 있는 황남대총 남분 금제관식(보물)이다. 황남대총이라 불리는 황남동 고분군 98호 무덤 남분에서 출토되었다. 관모에 끼워 장식하는 것으로, 새 날개를 본떠 만든 것이다. . 날개가 달려있어 화려하며 날아갈 듯한 새의 모습을 보여준다. 높이 45 cm, 날개 끝 너비 59 cm 크기로 3매의 금판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전체적으로 山자 모양을 하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관꾸미개, 금, 삼국시대 5세기, 황남대총, 보물>

OLYMPUS DIGITAL CAMERA<관모와 관꾸미개를 착용한 모습>

SANYO DIGITAL CAMERA<경주 대릉원 황남대총(가운데 뒷편)>

<출처>

  1. 안내문, 중앙박물관, 2011년
  2.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2022년
  3.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소, 2022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