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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 금계리마을, 학봉 김성일 후손들이 모여사는 의성김씨 집성촌

경북 안동시 서후면에 있는 마을 중 하나인 금계리 마을이다. 이 마을은 원주변씨, 의성김씨, 안동김씨의 집성촌으로 의성김씨의 입향조는 학봉 김성일이다. 그는 원래 임하댐 아래 천전마을에 살았는데 결혼후 처가에서 후손을 잇지 못하자 이곳으로 옮겨와 그 터전을 물려받아 자리를 잡아 살아왔다. 마을에는 학봉 김성일 종택을 비롯하여 구한말 초산도호부사를 지낸 김진형이 살았던 겸와고택을 비롯하여 소계서당(小溪書堂), 모계정사(某溪精舍) 등이 있다.

마을은 지세가 거문고처럼 생겨 금지(琴地)로 불리다 김성일이 검제로 고치고 한자로 (金溪)라 하였다. 산악지대와 비교적 넒은 평야지대가 만나는 지점에 위치하고 있어 비교적 물이 좋고 풍부하여 농사 짓기에 좋은 곳이다. 전형적인 양반들이 모여 살았던 세거지(世居地)의 자연조건을 갖추고 있다.

<안동시 서후면 금계리 마을>

조선중기 관리이자 학자로 퇴계 이황의 학풍을 이어받았던 학봉 김성일의 종택이 있는 마을이다.

<마을 들판>

마을은 크고 작은 산들과 들판이 만나는 지점에 위치하고 있다. 물이 풍부하고 깨끗하여 농사짓기에 좋은 자연환경을 갖추고 있다.

<마을 앞을 지나는 길>

북쪽으로는 서후면소재지와 봉정사, 영주와 연결되며, 남쪽으로 안동 도심과 연결된다.

<학봉종택>

학봉종택은 안채와 사랑채가 ‘ㅁ’자형을 이루고 있는 전형적인 경북 북부지방 한옥의 형태를 하고 있다. 종택을 다른 곳으로 옮기고 이곳에 지었던 소계서당 건물을 개조하여 사랑채로 사용하고 있다.

<학봉종택 솟을대문>

원래 현재의 위치에 있었는데 조선후기 영조대에 부근으로 옮겨던 것을 1964년 안채만 옮겼다.

<학봉종택 마당>

이곳은 담장을 두르고 다양한 수목을 정원수로 심어놓고 있다. 학봉종택은 정원을 아름답게 꾸며놓고 지금도 사람이 살고 있다는 느낌을 주는 고급스러운 한옥이다.

<학봉 김성일의 유품들을 전시해 놓은 기념관>

<학봉종택과 담장을 사이로 이웃하고 있는 겸와고택>

이 집은 조선후기 문신 김진형(1801~1965)이 처음 지었는데, 그가 초산도호부사를 지냈다고 초산댁(楚山宅)이라고도 부른다.

<소계서당>

학봉종택에서 100m 정도 떨어진 곳에 소계서당이 있다. 영조대 김성일 후손 김광찬이 종택에 물에 자주 잠긴다고 하고 종택을 이곳으로 옮겼었다. 1960년대 종택을 원래 위치로 옮기면서 종택자리에 있던 소계서당을 이곳으로 옮겼다.

<옆에서 본 모습>

소계서당은 김성일의 후손인 서산(西山) 김흥락이 서당을 세우고 후학을 양성하던 곳이다. 종택 사랑채였던 건물을 소계서당으로 사용하고 있으며 그 옆에 살림집이 있다.

<소계서당 살림집>

<소계서당 안쪽 마을>

금계리마을은 한곳에 집들이 모여있는 것이 아니라 여러곳에 산재해 있다.

<소계서당 앞에서 본 마을 입구>

<맞은편 마을>

학봉종택 맞은 편에도 후손들이 작은 마을을 이루고 있다. 구한말 관리를 지낸 김홍락(金鴻洛, 1868 ~1933)이 지은 정자인 모계정사(某溪精舍)를 중심으로 여러 가구들이 모여살고 있다.

<모계정사>

모계정사는 앞면 3칸에 팔작지붕을 하고 있다. 앞쪽에 난간이 있는 툇마루를 두고 있다.

<모계정사 뒷편에 있는 낡은 한옥>

건물은 많이 낡았지만 안채와 사랑채를 제대로 갖추고 있는 꽤 큰 규모의 저택이다.

<금계리 마을회관>

<마을 앞을 지나는 하천>

봉정사가 있는 천등산 등에서 흘러내려오는 하천으로 수량이 비교적 풍부해서 논농사를 짓기에 적합한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