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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덕궁 궐내각사, 국왕을 보필하던 직속 관청들

창덕궁 정문인 돈화문을 들어서면 정면에 최근에 복원한 관아 건물인 궐내각사이다. 궐내각사는 의사결정기구인 의정부, 집행기관인 육조와 달리 국왕을 보필하는 직속기관이다. 왕의 정치를 보좌하는 홍문관, 왕의 칙령과 교서를 작성하고 보하던 예문관, 국왕직속 학술기관인 규장각과 장서 발행을 주관하는 검서청, 왕의 건강을 관리하는 내의원 등이 있었고, 그 뒷편으로 역대 국왕의 어진을 모신 선원전이 자리잡고 있다.

궐내각사는 창덕궁 정전 서쪽편을 흐르는 금천을 중심으로 동쪽은 국왕의 업무를 보필하는 홍문관 등이 자리잡고 서쪽편에는 국왕 직속 학술기관인 규장각을 비롯한 관아와 책을 보관하던 책고가 자리잡고 있다. 특히 규장각 일원은 맑은 물이 흐르는 금천을 연못삼아 맑은 공기를 마실수 있는 곳에 위치하고 있다. 정조는 이곳외에 후원에 주합루를 짓고 규장각을 옮기기도 했는데, 학술을 담당하던 관원들을 상당히 우대했음을 알 수 있다. 이들 국왕직속 기관들은 보통 궁궐의 중심인 정전의 서쪽편에 자리잡고 있는데, 창덕궁 또한 인정전 서쪽에 있다. 다만, 궁궐 정문인 돈화문이 서남쪽 모서리에 위치하고  있어, 정문을 들어서면 궐내각사를 처음 볼 수 있다. 창덕궁 궐내각사 건물들은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대부분 없어졌다가 창덕궁 일원이 유네스코문화유산으로 등재되면서 복원하기 시작하여 2005에 현재의 모습을 갖추었다.

<창덕궁 궐내각사>

당상관 이하의 신하들과 일반인들이 출입하는 창덕궁 서쪽편 작은 쪽문인 금호문을 들어서면 제일 먼전 보이는 규장각 행각이다. 왼쪽끝에는 지금은 사용하지 않는 솟을대문이 있고, 행각 가운데 출입문이 있다.

<동궐도에서 보여지는 궐내각사>

현재의 건물들은 동궐도를 기준으로 복원한 것으로 보인다.

규장각과 검서청

창덕궁 돈화문을 들어서면 정면으로 보이는 건물이 궐내각사 중 국왕직속 학술기관이라 할 수 있는 규장각을 비롯하여 장서 발간을 담당하던 검서청과 역대국왕의 글과 그림을 봉안하던 봉모당, 서적을 보관하던 책고 등이 들어서 있다. 규장각은 숙종대에 왕이 지은 글과 글씨인 어제.어필은 봉앙하기 위해 지은 작은 건물이었으나 정조대에 그 기능이 크게 확장되어 학술기관이 되었다. 규장각이 자리한 곳은 북악산에서 발원하여 창덕궁 정전 서쪽을 흐르는 금천가 풍치가 좋은 곳에 자리잡고 있으면서도, 정치의 중심지인 편전이나 홍문관 등과는 떨어져 있는 편이며, 궁궐내에서도 학문에 전념할 수 있도록 독립된 공간을 확보하고 있다.

<규장각 출입문>

‘내각(內閣)’이라고 적힌 현판이 걸려 있다. 내각은 규장각의 별칭으로 검서청을 포함하여 금천 서쪽편 행각과 건물들 전체가 규장각에 속했던 것으로 보인다.

<규장각 행각>

하급실무자들이 근무했던 크고 작은 방들과 서적들을 보관했던 창고로 구성되어 있다.

<국왕직속 학술기관이었던 규장각>

규장각은 앞면 5칸에 팔작지붕을 하고 있는 건물이다. 국왕의 어제와 어필을 보관하는 장소로 통풍을 중요시하여 일반건물에 비해서 마루를 높게 만들었고, 나무계단을 통해 내부로 출입하게 되어 있다. 규장각 건물은 국왕의 권위를 상징하는 건물로 삼도의 형식을 반영한 3개의 계단을 두고 있으며, 추녀마루에는 잡상을 세워 놓았다.

<규장각 동쪽 건물들>

규장각 동쪽편에는 규장각 부속건물로 출판될 서적의 교정과 서사를 맡았던 검사관들이 근무하는 검서청이라는 건물이 금천 옆에 자리하고 있다. 검서관은 규장각에 속한 관리 중에서 실무를 담당하던 관직으로 4명으로 구성되어 있다.

<검서청>

검서청 건물은 앞면 4칸반의 팔작지붕을 하고 있는 건물로 창덕궁에서도 경관이 좋은 금천 바로 옆에 누마루를 세워 놓고 있다. 창덕궁 내에서도 금천이 내려다 보이는 누마루를 두고 있는 상당히 근무환경이 좋은 곳에 자리집고 있다. ‘검서청’이라는 현판을 달고 있지만 실제로는 규장각 고위 관헌들이 학문이나 정치를 논하는 공간으로 사용했을 것으로 보인다.

<검서청 옆을 흐르는 금천>

 숲이 가깝고 맑을 물이 흐르는 곳에 자리잡은 정자와 같은 분위기를 하고 있다. 창덕궁 후원 주합루와 함께 국왕이 규장각 관헌들을 상당히 우대했음을 알 수 있다. 동쪽편 홍문관 옥당에 비해서도 경치가 뛰어나고, 근무하기도 좋은 장소이다.

<출입문>

<마당>

<봉모당>

규장각 뒷편에는 역대 왕들의 글과 그림 등을 보관하고 있는 봉모당이 있다. 마당에는 중국 공자묘 등 사당에 많이 심어지는 측백나무과에 속하는 향나무가 심어져 있다.

<책고 출입문>

<책고>

봉모당을 지나서 서적들을 보관하는 책고로 들어가는 길에는 금천을 포함하여 담장으로 막혀 있다. 외부인의 출입을 엄격히 금했던 것으로 보인다. 봉모당 뒷편 금천을 따라서 들어가면 서적 등을 보관하던 서고인 책고들이 있다. 책고는 국왕직속 학술연구기관이었던 규장각 소장 서적들을 보관했던 곳이다.

홍문관, 예문관, 내의원

창덕궁 정문인 돈화문이나 당상관 이하 관리들이나 일반인들이 출입했던 금호문을 들어서면 국왕직속 학술기관이었던 규장각이 보이고, 궁궐과 바깥세상을 분리해주는 금천을 건너면 실질적으로 국왕을 직접 보필하던 관리들이 근무하던 관청건물들이 빽빽히 들어서 있다. 정전인 인정전 서쪽편에 위치한 이곳에는 조선시대 언론 삼사 중 한곳인 국가의 서적을 관리하고 왕의 자문을 맡았던 오늘날 정책연구소와 비슷한 기능을 갖는 홍문관이 자리잡고 있다. 옥당이라고도 불리는 홍문관은 국왕의 자문기관 답게 궁궐 외조 출입문인 진선문 앞 마당이 내려다 보이는 곳에 위치하고 있어, 국왕을 접견하는 사람들을 살펴볼 수 있고 수많은 사람들이 드나들었던 정치의 중심이 되는 관청 중 하나라 할 수 있다. 홍문관 옆 골목길을 따라서 들어가면 인정전 동쪽편에 위치한 국왕직속 기관인 예문관이 자리잡고 있다. 예문관은 정치적으로 중요했던 기관은 아니지만, 국왕의 말이난 글을 대필하는 기능을 갖고 있는 기관으로 실무적으로 국왕을 보필하는 직속기관이다. 예문관 서쪽편에는 국왕의 건강을 살피는 내의원이 자리잡고 있으며, 그 뒷편에는 역대 국왕의 어진을 모시는 선원전이 있다.

<궐내각사 행각>

창덕궁 궐내각사 중 홍문관과 규장각 사이를 흘러내려오는 금천 위에도 행각이 이어져 있다. 건물이 행각으로 연결되어 있기는 하지만 규장각과 홍문관 사이에 왕래하는 통로를 두고 있지는 않다.

<규장각 동쪽편에 자리잡고 있는 홍문관>

옥당(玉堂)이라고도 불리는 홍문관은 궁궐 정전과 편전을 출입하는 출입문인 진선문 앞 마당이 내려다 보이는 곳에 위치하고 있다. 홍문관은 국왕 자문기관으로 국왕을 접견하기 위해 출입하는 신하들의 움직임을 항상 접할 수 있는 곳에 위치하고 있어 정치의 중심에 있던 기관으로 볼 수 있다. 고위 관료들은 국왕 접견하기 전후에 이곳을 방문하는 경우가 많았던 것으로 보인다.

<옥당>

 홍문관은 세종대 집현전의 기능 중 왕실 도서의 수집.출판을 관장하는 기능을 가진 부서지만, 실제로는 학문을 연구하고 국왕을 자문하는 중요한 요직이었으며, 국왕이 학문을 논하는 경연에 참여하는 왕권을 견제하는 기능을 가진 곳으로 여겨졌다. 옥당 대청마루에서는 국왕을 접견하기 위해 궁궐을 출입하는 사람들의 움직임을 항상 살펴볼 수 있다.

<옥당 마당 담장>

반면 마당에는 낮은 담장을 둘러서 외부에서는 홍문관에서 근무하는 사람들을 볼 수 없도록 하고 있다. 이런 건물 형태는 양반가옥의 안채 입구에서 볼 수 있다.

<행각>

실무관원들이 근무하던 행각과 서적 등 자료들을 보관했던 것으로 보이는 다락방을 볼 수 있다.

<예문관>

 창덕궁 정전 회랑과 붙어 있는 예문관은 단독건물로 이루어져 있지 않고 행각의 형태로 이루어져 있다. 국왕을 가까운 거리에 보좌하는 관원들의 근무하던 건물로 건물자체는 격식이 있게 꾸며져 있다. 예문관은 국왕의 말이나 글을 대필하는 기관이다.

<예문관 마당에서 정전으로 들어가는 출입문.>

예문관은 국왕을 실무적으로 보좌하는 기관으로 정문이 인정문을 사용하지 않고 이곳을 통해 직접 정전으로 출입했던 것으로 보인다.

<내의원 약방>

예문관과 함께 국왕을 직접 보필했던 기관이라 할 수 있는 내의원이 정전과 가장 가까운 곳에 자리잡고 있다. 내의원은 조선시대 최고의 의료진들이 근무했던 곳으로 ‘약방이라는 현판이 걸려 있는 큰 건물을 중심으로 크고 작은 행각들이 오밀조밀하게 모여 있다. 약방 건물은 앞면 4칸, 옆면 3칸의 큰 건물로 앞쪽과 옆쪽으로 행각이 연결되어 있다.

<내의원 뒷편 건물>

<억석루>

선원전으로 연결되는 길에 2층 목조건물인 억석루가 보인다. 억석루에는 역대 국왕이 적은 현판을 보관하는 장소로 한옥이지만 중국풍의 건물형태를 하고 있다.

궐내각사
왕실과 직접 관련이 있는 여러 관청들이 궁궐 안에 설치되었고 이를 궐내각사라 부른다. 그 가운데 정치를 보좌하는 홍문관(弘文館, 玉堂), 건강을 보살피는 내의원(內醫院, 藥房), 정신문화를 담당하는 규장각(奎章閣, 內閣), 왕의 칙령과 교서를 보관하던 예문관(藝文館) 등이 중심 시설이었다. 대부분의 건물이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소멸되었다가 2005년에 복원되었다. 가운데로 흐르는 금천을 경계와 경관 요소로 삼았고, 여러 관청들이 밀집되면서 미로와 같이 복잡하게 구성되었다. <출처:문화재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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