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행촌동 딜쿠샤(Dilkusha), 서울성곽 바깥쪽 언덕에 위치한 서양식 주택

종로구 행촌동 사직터널 윗쪽 인왕산 성곽 바깥 전망 좋은 언덕에 위치한 서양식 주택인 딜쿠샤(Dilkusha)이다. 이 집은 언론인이자 광산업자였던 알버트 테일러(Albert Taylor)가 1923년에 지은 미국식 주택이다. 건물은 붉은 벽돌로 쌓은 2층 건물로 지하층을 두고 있다는데  당시 지어진 서양식 주택 중에서도 상당히 큰 규모를 하고 있다. 2차대전 중 집주인과 가족들이 미국으로 추방되면서 주인없이 오랜기간 많은 사람들이 이집에 거주했던 것으로 보인다. 수리를 거의 하지 않아 지금은 상당히 낡아 보인다. 해방이후 이곳은 양대한매일신보의 사옥으로 추정되어 왔으나 최근 그의 아들이 한국을 방문하면서 이 집의 내력이 알려지게 되었다. 딜쿠샤는 힌두어로 ‘이상향’, ‘행복한 마음’이라는 뜻이다.

알버트 테일러는 금광엔지니어 겸 UPI통신사 특파원으로 일하면서 삼일만세운동을 세계에 알리고 한국의 독립운동가들을 도왔다. 그러나 한국 독립을 도왔다는 이유로 그는 6개월간 수용생활을 하였으며 추방된 후 1948년 미국에서 사망했다. 사망 후 그의 유해는 한국으로 이송되어 양화진 외국인묘지에 안장되었다. 서울시에서는 그의 아들 브루스 테일러에게 명예 시민증을 수여하였다.

행촌동 딜쿠샤(Dilkusha), 서울 종로구 행촌동
본 건물은 미국인 알버트 테일러(Albert Taylar, 1875~1948) 부부가 건축하고 그 별칭을 ‘딜쿠샤(힌디어:매혹, 기쁨, 18세기 축도된 당시 영국령 인도 건물에서 따온 이름)”로 붙이고 거주했던 곳이다. 알버트 테일러는 본업(광산업) 외 국제 통신사의 특파원으로도 활동하였으며, 3.1운동 때는 일본경찰의 수색을 피해 독립선언문을 국제 통신사에 전하여 우리나라의 독립운동을 전 세계에 알리는 데에 일조하기도 하였다. 그는 1942년 일제에 의해 우리나라에서 추방된 후 1948년 미국에서 향년 73세의 일기로 작고하였으며, 우리나라에 묻히도록 해달라는 그의 생전 유언에 따라 그 유해는 서울 양화진 외국인 묘지로 이송되어 안장되었다. 본 건물은 그 건축자가 우리나라 근대 애국운동에 일조한 점은 물론 건축적으로도, 미관을 중시하여 벽돌의 긴면과 짧은 면을 번갈아 쌓는, 동양에서는 희귀한 프랑스식 벽돌 올림이 적용된 점 등 여러모로 중요한 우리나라 근.현대사 자료이다. <출처:문화재청>

OLYMPUS DIGITAL CAMERA인왕산 서울성곽 바깥쪽 전망좋은 언덕에 위치한 서양식 주택인 딜라쿠샤.

OLYMPUS DIGITAL CAMERA붉은 벽돌로 쌓은 2층 집으로 주변 전망을 즐기기 위해 창문을 크고 넓게 만들었다. 화려하게 잘 지어진 건물이지만 오랜 세월 큰 수리없이 많은 사람들이 생활하다보니 많이 낡았지만 원형은 오히려 잘 보존되어 있는 것으로 보인다.

OLYMPUS DIGITAL CAMERA가운데 테라스와 출입문. 많은 가구들이 거주하면서 원형이 훼손된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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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물 양쪽에 날개처럼 바깥으로 약간 돌출시켜 놓고 있다. 크고 넓은 창문을 두고 바깥 경치를 감상하기 좋게 설계되었다. 넓은 거실로 사용했던 것으로 보인다.

OLYMPUS DIGITAL CAMERA다른 서양식 주택들과 마찬가지로 지하실을 두고 있다. 20세기 초에 지어진 미국 도시 주택에서 많이 볼 수 있는 구조이다.

OLYMPUS DIGITAL CAMERA1층 뒷편. 원래 부엌이 있던 곳으로 보인다.

OLYMPUS DIGITAL CAMERA큰 창문이 있는 앞쪽과는 달리 뒷편에는 작은 창문만 몇개 두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건물 뒷편에 있는 작은 창문

OLYMPUS DIGITAL CAMERA딜쿠샤가 있는 이곳에는 권율 장군 집터와 은행나무가 남아 있다. 권율장군의 집은 필운동 배화여고 뒷편에 있었는데, 이곳은 아마도 별장이나 정자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OLYMPUS DIGITAL CAMERA집터 앞 좁은 골목길.

권율장군 집터 및 행촌동 은행나무,
이곳은 임진왜란의 영웅, 행주대첩의 승장인 권율장군의 집터이다. 권율 장군의 집은 필운동 배화여고 뒤편에도 있었다. 권율 장군의 사위가 된 백사 이항복이 이 집을 물려받았다고 한다. 표지석 뒤로 권율 장군이 직접 심었다는 은행나무가 모진 풍파를 견디며 400여년 동안 자리를 지키고 있다. 또한 이 은행나무는 이곳의 지명을 행촌동(杏村洞, 은행나무 마을)이 되게 하였다. <출처:문화재청>

OLYMPUS DIGITAL CAMERA이곳이 권율장군 집터였음을 말해주는 표지석.

<참고문헌>
1. 위키백과
2. 문화재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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