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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덕궁 침전, 국왕의 생활공간 대조전(보물) 일원

창덕궁은 삼조제도(三朝制度)에 따라 신하들의 공간인 외조(外朝), 국왕이 정무를 보는 치조(治朝), 왕과 가족들의 생활공간인 연조(燕朝)가 분리되어 있는데, 경복궁과는 달리 자연지세에 순응하여 치조의 중심공간인 정전 동쪽에 연조가 자리잡고 있다. 창덕궁 대조전은 국왕과 왕비가 거처하는 공간으로 국왕의 일상적인 업무공간인 희정당 뒷편에 자리잡고 있다. 창덕궁 연조는 국왕 침전인 강녕전과 왕비 침전인 교태전이 분리된 경복궁과는 달리 대조전에 국왕과 왕비의 침전이 같이 위치하고 있다. 임진왜란으로 경복궁이 소실되어 창덕궁이 법궁 역할을 하면서 편전인 선정전이 협소하여, 침전이었던 희정당을 국왕이 일상업무를 보는 편전으로 역할이 바뀌었기 때문으로 보인다.

<창덕궁 대조전(보물)>

창덕궁 대조전은 국왕과 가족들의 생활공간인 연조(燕朝) 중에서도 중심이 되는 건물이다. 창덕궁 대조전이 언제 처음 지어졌는지 확인되지 않았지만, 성종 이전에 처음 지어진 것으로 보인다. 임진왜란 때 소실되었다 중건되는 등 여러차례 화재와 전란으로 소실과 중건이 계속되었다. 현재의 건물은 1917년 화재로 소실된 것을 경복궁 침전이었던 교태전을 이곳으로 옮겨 중건한 것이라 한다. 중앙에 대조전을 두고 동쪽에 흥복헌, 서쪽에 융경헌을 달아내고 크고 작은 행각들로 이어져 있다. 뒷편에는 경훈각 등의 부속건물과 언덕에 계단식으로 축대를 쌓아 꽃나무를 심은 화계를 조성해 놓고 있다. 대조전은 전통 궁궐건물을 형태를 하고 있지만, 마지막 황제인 순종의 황후 순정효황후가 1966년까지 거처했던 공간으로 일제강점기 이후 생활 편의를 위해 다양한 시설들이 설치되었으며, 궁궐 원래의 모습이 많이 남아 있는 건물이기도 하다.

<동궐도에 표현된 침전인 대조전 일원>

앞쪽에 월대가 있는 대조전이 있고, 뒷편에 청기와를 덮은 2층 누각인 징광루(澄光樓)과 흥복헌이 보인다. 국왕가족 중 여자들이 주로 생활하는 공간으로 칸막이를 설치하여 시야를 가리고 있는 공간이 많다. 뒷편에 있는 공간은 대비가 거처했던 곳으로 보인다.

<침전과 편전 사이>

<반대편에서 본 모습>

창덕궁에서 국왕의 집무공간과 접견장소인 편전으로 사용된 희정당과 침전인 대조전 사이의 마당이. 희정당은 원래 침전건물이었던 곳으로 두 건물은 복도각으로 연결되어 있다.

<대조전 출입문인 선평문>

<안에서 본 모습>

<대조전>

선평문을 들어서면 국왕과 왕비의 처소인 대조전이 보인다. 대조전 앞에는 월대가 세워져 있으며, 선평문에서 월대까지 판석을 깔아 놓았다. 국왕이 사는 처소로 국왕이 사용하는 어도만 설치한 것으로 보인다. 대조전은 1917년 화재로 소실된 후 경복궁 침전인 교태전 건물을 옮긴것이다. 건물은 앞면 9칸, 옆면4칸에 팔작지붕을 하고 있는 건물로 용마루가 없는 것이 특징이다. 가운데 3칸은 거실, 동.서쪽에 왕과 왕비의 침실을 두었다.

<대조전 월대>

밤에 불을 밝히는 전등과 전통적인 화재방지 시설인 드므가 같이 설치되어 있다.

<거실로 사용한 가운데 3칸>

현판 글씨는 순조가 쓴 것이라 한다.

<어좌와 의자가 설치된 거실 내부>

<대조전 내부>

마루가 깔려 있지만 내부에는 유리문과 전통문이 같이 사용되고 있다.

<옛날 사진>

침실.이발소,욕실 등을 두고  있으며 현대식 건물처럼 사용하고 있다.

<대조전에 설치된 전등>

<추녀마루 잡상>

<대조전 동쪽 흥복헌>

흥복헌은 ‘복을 일으킨다’는 이름과는 달리 경술국치를 결정하는 마지막 어전회의가 1910년에 열련던 곳이다. 현재의 건물은 1917년 화재 이후 중건한 것을 원래의 건물과는 다른 모습이다.

<선평문 좌.우 행각들>

국왕을 수행하는 상궁.나인들이 사용했던 공간으로 보인다.

<동쪽편 행각과 복도각>

<상궁.나인들이 머물던 서쪽편 행각>.

<수라간>

서쪽편 행각 바깥에는 유리창이 있는 건물을 볼 수 있는데, 일제강점기 이후 서양식 주방으로 바뀐 수라간을 볼 수 있다.

<수라간 내부>

아궁이를 비롯하여 다양한 서양식 주방시설과 벽면타일이 특징이다.

<수라간이 있는 건물 내부 복도>

바닥에 전돌이 깔려 있으며, 여러 부속시설들이 건물안에 있는 것으로 보인다.

<수라간 옆 쪽문>

수라간 옆에는 작은 쪽문을 두어서 국왕을 수행하는 사람들이 드나들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바같에서 본 대조전 서쪽 부속건물들>

<수라간이 있는 건물과 바깥쪽으로 연결된 행각>

국왕을 수행하던 상궁.나인들이 뒷편에서 잠깐 쉬던 공간이 아닌가 생각된다.

<대조전 뒷편 경훈각>

앞면 9칸의 상당히 큰 규모의 건물로 대조전과는 복도로 연결되어 있다. 경훈각이 있던 자리에는 동궐도를 보면 청기와를 얹은 2층 건물이 있었는데, 1층은 광세전, 2층은 징광루라 불렀다고 한다. 경훈각은 선조가 명나라에서 받은 망의라는 관복을 보관하던 곳이다. 1917년 대화재로 소실된 후 경복궁 만경전을 헐어 이곳으로 옮겨 중건하였기때문에 원래의 모습과는 다르다.

<대조전 뒷편>

<대조전과 경훈각을 연결하는 복도각>

<대조전 뒷편 누마루>

<누마루 앞 마당>

이곳에 앉아서 후원에 핀 꽃과 나무, 하늘을 감상했다고 한다.

<대조전과 연결된 작은 건물인 청향각>

<대조전 동쪽 승복헌 바깥 마당>

<대조전 뒷마당>

<화계>

<화계에 심어진 나무들>

<굴뚝>

<후원 마당>

대조전(大造殿)  일원
왕과 왕비의 생활공간이며 왕실의 큰 행사도 자주 열렸다. 대조전(大造殿)은 창덕궁의 침전으로 안대청을 사이에 두고 왕과 왕비의 온돌방이 설치되었다. 원래의 흥복헌(興福軒)은 1910년 마지막 어전회의를 열어 경술국치를 결정했던 비운의 장소이며, 행각과 복도로 여러 부속들이 연결되어 있다. 1917년에 불에 타 없어진 터에 경복궁의 침전이 교태전을 옮겨 지어 현재의 모습이 되었다. 마지막 왕비였던 순정효황후의 거처로 해방 후까지 사용되었기 때문에 고유한 장식과 벽화, 문살 등이 잘 남아 있다. 뒤편에 4단의 계단식 정원을 만들어 후원으로 삼았고 누마루를 뒤편으로 돌출시켜 이를 감상하는 장소로 사용했다. <출처:문화재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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