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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박물관 도자공예-청자실] 고려청자의 변화

고려후기에는 몽골의 침입으로 오랜 기간 전쟁을 치르면서 국가적으로 경제가 상당히 어려웠던 시기이다. 이는 청자제작에도 영향을 미쳐 전반적으로 전성기의 청자에 비해서 고려후기에는 그 제작수법의 단순해졌으며, 이전의 세련된 기술들이 많이 쇠퇴했던 것으로 보인다. 이는 고려 중기 청자기술의 발달이 남송과의 교역 등을 통해서 크게 발전할 수 있었는데 그 경제적 기반이 약해짐으로써 생기는 어쩔 수 없는 현상으로 보인다. 또한 고려후기 해안지역에는 일본의 왜구가 서남해안 지방을 침입하여 고려청자를 만들던 가마들이 있었던 전남 강진과 전북부안의 장인들이 내륙으로 피난하게 하는 계기가 되었으며, 한강유역을 중심으로 도자기 생산의 새로운 거점이 생기고 조선시대 분청사기가 등장하는 계기가 되기도 하였다.


모란버들 갈대무늬 매병(白磁象嵌牡丹柳蘆文梅甁, 고려 12~13세기, 보물_

이 백자 매병은 동체를 여섯 면으로 나누고 각각의 중심에 모란.갈대.버드나무가 들어간 능화창을 상감기법으로 시문하였다. 능화창과 어깨 및 굽 주변에 돌아간 연꽃잎 안을 청자 흙으로 체워 아름답게 장식하였다. 매병을 굽는 과정에서 동체 일부가 틀어졌으나, 전체적으로 조형미가 뛰어난 작품이다. <출처:중앙박물관>

상감청자(象嵌靑磁, Inlaid Celadon)
끝이 뾰족한 도구로 무늬를 새긴 후 그 파인 부분을 흰흙이나 붉은 흙으로 메우고 유약을 입혀서 구우면 흰흙은 흰색으로 붉은 흙은 검은색으로 무늬가 나타나는 청자이다. <출처:중앙박물관>


풀꽃무늬병(靑磁鐵畵草花文甁, 고려12세기),


연꽃넝쿨무늬매병(靑磁鐵畵蓮唐草文梅甁, 고려12세기)

연리무늬잔(靑磁練理文盞, 고려13세기), 연리무늬꽃모양잔(靑磁練理文花形盞, 고려13세기),

청자토와 백토, 자토를 반죽하여 그릇을 성형한 뒤, 투명한 청자유약을 입혀 구워내면 세가지 흙색이 섞여 대리석과 같은 무늬를 나타낸다. 이러한 무늬를 ;연리문’이라고 한다. 이러한 제작기법은 중국 당나라 시대부터 사용되기는 하였으나 흙의 색이나 유색에 있어서 중국과는 다른 고려만의 감각을 나타낸다. <출처:중앙박물관>

철화청자(鐵畵靑磁, Celadon with iron-brown decoration)
산화철 성분 안료로 무늬를 그리고 음악을 입혀서 구워 무늬가 검게 나타나게 한 청자이다. 철화청자에는 사물의 특징을 간결하면서 생동감있게 묘사한 예들이 많다. <출처:중앙박물관>

꽃모양합(靑磁銅彩花形盒, 고려12~13세기), 잔과 잔받침(靑磁銅彩托盞, 고려12~13세기)

동화청자(銅畵靑磁, Celadon with copper-red decoration)
구리성분 안료를 사용하여 무늬를 그리고 유약을 입혀서 구워낸 적갈색 무늬의 청자로 진사(辰沙)청자라고도 한다. 구리성분 안료를 사용하여 청자를 구워낸 것은 고려의 장인이 세계 최초이다. <출처:중앙박물관>


인삼잎무늬매병(靑磁鐵彩堆花三葉文梅甁, 고려12세기, 보물

철화 안료를 바른후 무늬를 파내고 백토를 입힌 퇴화기법으로 만들어진 흔치 않은 청자이다.

청자 태토로 매병 형태를 만든 후 철화 안료를 칠하고, 다시 몸체 양면에 잎무늬 부분만을 얇게 파낸 뒤 그 위에 백토를 바르고 청자유약을 입혀 구운 작품이다. 이처럼 여러번 공정을 거치는 철채 상감기법은 12세기 전반기부터 나타나고 있으나 그 예가 매우 드물다. <출처:중앙박물관>


연꽃 넝쿨무늬 참외모양 병(鐵彩象嵌蓮唐草文瓜形甁, 고려12~13세기)

바탕흙에 역상감기법으로 백토를 감입하고 배토 상감부를 제외한 전체에 철분이 다량 함유된 철유를 발라 구워낸 꽃병이다. 사당리 가마터에서 이와 유사한 파편이 출토되었다. <출처:중앙박물관>

꽃새무늬항아리(靑磁鐵彩象嵌花鳥文扁壺, 고려13세기)

퇴화청자(堆花靑磁, Celadon with slip-painted)
붓을 이용하여 무늬를 그리는 점에서는 철화청자와 같다. 다른 점은 안료를 그릇 표면에 두껍게 발라서 무늬가 도드라져 보이는 것이다. 중심무늬의 주변을 꾸밀 때 많이 이용된다. 퇴화기법 자체만으로 무늬를 표현한 경우도 있다. <출처:중앙박물관>

12세기에 다양한 기법으로 만들어진 청자들


원숭이토끼무늬항아리(靑磁象嵌金彩樹下猿兔文扁壺, 고려13세기)

『고려사』에는 충렬왕23년(1297) 원에 금으로 채색한 옹기를 바쳤다는 기록과 사신 조인규가 원 세조에게 ‘화금자기(畵金磁器)’를 진상했다는 내용이 있다. 이 항아리는 이러한 기록을 증명하는 중요한 자료로 상감무늬 가장자리에 선을 가늘게 음각하고 파인 부분에 금가루를 발랐다. 1933년 개성 만월대 근처에서 발견되었다. <출처:중앙박물관>

모란 넝쿨무늬 대접(靑磁象嵌金彩牡丹唐草文大楪, 고려13세기)

금채청자(金彩靑磁)
상감청자의 유약 표면에 선을 새기고 금을 붙인 청자이다. 자세한 방법은 알수 없으나 접착제를 사용하여 금분(金粉)을 발랐을 것으로 여겨진다. 고려시대 역사서인 『고려사』에는 중국 원나라에 수차례 선물로 금채 청자를 가지고 갔다는 기록이 있다. <출처:중앙박물관>


용 봉황 넝쿨무늬 항아리(靑磁象嵌龍鳳唐草文扁壺, 고려13세기)


산수 인물무늬 항아리(靑磁象嵌山水人物文扁壺, 고려13세기)

동체 양쪽을 편평하게 눌러 만든 항아리로, 이 같은 기형은 고려 후기에 새롭게 등장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넓은 면을 능화창으로 구획하고 회화적인 무늬를 시문하였다.건물 안 또는 밖에 인물이 있으며, 그 주변으로는 대나무와 국화가 심어져 있고 앞에는 물새가 노닐고 있다. <출처:중앙박물관>

구름 학무늬 잔(靑磁象嵌雲鶴文馬上杯, 고려14세기), 국화 넝쿨무늬 잔(靑磁象嵌菊唐草文馬上杯, 고려14세기)

학 국화 넝쿨무늬 잔(靑磁象嵌雲鶴菊唐草文馬上杯, 고려14세기), 봉황무늬 잔(靑磁象嵌鳳凰文馬上杯, 고려14세기)

물가풍경무늬 귀때발(靑磁象嵌蒲柳水禽文片口鉢, 고려14세기)


구름 용무늬 병(靑磁象嵌銅畵雲龍文甁, 고려 14세기)

입이 밖으로 벌어지고 동체 하부가 풍만한 형태의 병이다. 기물 전체에 상감기법으로 다양한 무늬를 빽빽하게 장식하였고, 특히 원 안에 위치한 용이 주목된다. 원나라의 영향을 받은 서있는 용이 여의주를 붙들고 있으며, 상감기법과 동화기법을 함께 사용하여 화려하게 장식하였다. <출처:중앙박물관>

구름 용무늬 접시(靑磁象嵌雲龍文楪匙, 고려14세기)

구름 봉황무늬 꽃모양 대접(靑磁象嵌雲鳳文大楪, 고려14세기)

구름 용무늬 대접(靑磁象嵌雲龍文大楪, 고려14세기)

구름 봉황 학무늬 합(靑磁象嵌雲鳳鶴文盒, 고려14세기)

‘기사’가 새겨진 꽃 새무늬 대접(靑磁象嵌花卉鳥蟲文己巳銘大楪, 고려1329년)

고려후기에 이르면 간지(干支)가 상감된 청자가 많이 제작된다. 현재까지 ‘기사(己巳)’, ‘경오(庚午)’, 임신(壬申)’, ‘계유(癸酉)’ 등 60간지 중 11개가 알려져 있다. ‘기사’(1269)-’을미’를 13세기 후반, ‘정해’를 1347년으로 규정한 견해와 ‘기사’(1329.1389)-’을미’(1355)를 14세기로 보는 견해가 있다. <출처:중앙박물관>

‘경오’가 새겨진 물가풍경무늬 대접(靑磁象嵌柳蘆水禽文庚午銘大楪, 고려 1330년)

‘임신’이 새겨진 구름 학무늬 대접(靑磁象嵌雲鶴文壬申銘大楪, 고려 1332년)

‘정릉’이 새겨진 연꽃 넝쿨무늬 대접(靑磁象嵌蓮唐草文正陵銘大楪, 고려 1365~1374년)

그릇의 내면 바닥에 뚜렷하지는 않지만 ‘정릉’이라는 글자가 상감되어 있다. 정릉은 공민왕의 비인 노국공주의 능호로 노국공죽 사망한 공민왕 14년(1365)에 축조하였다. ‘정릉’이 새겨진 청자는 1365년부터 1374년 사이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며, 분명한 사용처를 명시하고 있다는 점과 일반적인 그릇의 형태지만 예기(禮器)로 쓰였을 가능성이 있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출처:중앙박물관>


‘을유사온서(乙酉司醞署)’가 새겨진 매병

몸체에 흑상감으로 ‘을유사온사’를 새겨 넣었다. 사온서(司醞署)는 술과 감주 등의 공상을 담당하던 곳으로, 관서의 명칭 변화와 ‘을유’라는 간지를 함꼐 고려할 때 1345년에 제작된 것으로 보인다. <출처:중앙박물관>


버드나무무늬 통모양 병(靑磁鐵畵楊柳文筒形甁, 고려12세기, 국보

철화청자의 특징인 대담한 의장과 구도가 돋보이는 작품이다.다른 철화청자에 비하면 무늬가 비교적 간결하지만 버드나무를 재구성하여 다른 차원의 세련미를 만들어냈다.이렇게 독특한 형태의 통형병은 청자의 기형 가운데 이례적인 형태라 할 수 있다. <출처:중앙박물관>

고려청자의 변화
13세기의 고려는 중국 원나라와 전쟁을 오래 치르면서 국가 경제가 어려워졌고, 이는 청자의 제작에도 영향을 미쳤다. 그릇의 모양은 우아한 곡선을 대신하여 단순해지고, 그릇의 두께가 두꺼워졌다. 또 아름다운 비취색 청자 유약은 녹갈색이나 황갈색을 띠게 되고, 섬세한 상감 무늬는 점점 생략되거나 표현이 조잡해졌다. 이 과정에서 상감 무늬를 새기지 않고 도장으로 찍는 인화 기법이 새롭게 등장했다. 고려청자는 14세기에 들어서 빠르게 쇠퇴하였다. 특히 14세기 후반에 왜구가 침입하여 바닷가와 가까운 강진과 부안 지방의 사기 장인들은 내륙으로 피난하엿다. 이 때문에 청자 가마가 전국으로 확산되었고, 조선시대 ‘분청사기’가 등장하는 계기가 되었다. <출처:중앙박물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