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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례 연곡사 현각선사탑비(보물)

전남 구례군 토지면 연곡사 경내에 있는 현각선사탑비(보물)이다. 이 탑비는 고려초 활동했던 현각선사를 기리기 위해 세워졌다. 글이 적힌 비몸은 없어지고 거북받침돌과 머릿돌만 남아 있다. 거북받침돌은 용의 머리와 거북모양의 몸체로 되어 있다. 머릿돌은 여러마리의 용이 다투고 있는 모습을 조각하였는데 조각수법이 세밀하고 힘이 넘친다. 머릿돌 앞쪽에는 탑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 뒷편에 위치한 고려초 승탑인 북승탑의 주인이 현각선사라는 의견도 있으며, 당대에 영향력이 높았던 승려였던 것으로 보인다.

<구례 연곡사 현각선사탑비(보물)>

<얼굴>

부리부리한 두 눈과 큼직한 입이 웅장하며, 수염이 표현되어 있다.

<비몸을 받치는 부분>

비몸을 받치는 부분에는 안상과 귀꽂이가 새겨져 있다.

<머릿돌>

머릿돌에는 여러마리의 용이 생동감 있게 조각되어 있다. 가운데에 ‘현각선사탑비’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다.

<옆에서 본 모습>

<뒤에서 본 모습>

등에는 육각형으로 거북 등껍질을 묘사하고 있다.

<연곡사 북승탑(국보)>

탑비와 비슷한 시기에 세워진 것으로 누구의 승탑인지 알려져 있지 않다. 현각선사의 승탑으로 보는 견해도 있다.

연곡사는 화엄사의 말사로 지리산의 여러 계곡 중에서 많이 알려진 피아골에 위치하고 있다. 화엄사와 같이 삼국시대 연기조사(緣起祖師)가 창건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통일신라 말과 고려초에는 선종 사찰로 크게 번창하였다. 경내에는 국보로 지정된 동승탑(국보), 북승탑(국보)를 비롯하여 탑비, 삼층석탑 등 석조 유물들이 많이 남아 있다. 임진왜란 때 크게 불타버린 것을 중건하였다. 한국 전쟁 때 대부분의 건물들이 소실되어 내력있는 목조건축물은 남아 있지 않다. 석탑의 위치가 지금은 경내 바깥쪽에 위치하고 있는 것으로 볼 때 원래 사찰 규모에 비해 많이 축소되어진 것으로 보인다.

<구례 연곡사>

구례 연곡사 현각선사탑비, 보물
연곡사 현각선사탑비는 고려 전기 승려 현각선사를 기리기 위해 979년(경종4)년에 건립되었다고 한다. 현재 비의 몸돌은 없어지고 거북 모양의 비석 받침돌인 귀부와 머릿돌인 이수만 남아 있다. 기록에 의하면 비문은 학사 왕융이 지었고, 글씨는 상주국 장신원이 썼다고 한다. 비를 받치고 있는 돌거북은 부리부리한 두 눈과 큼직한 입이 웅장하며, 수염을 가진 용머리를 하고 있다. 등 중앙에 마련된 비를 꽂아두는 부분에는 안상과 꽃조각이 새겨져 있다. 받침돌 위에 놓여 있는 비의 머릿돌에는 여러 마리의 용의 서로 얽힌 모습이 조각되어 있는데, 긴밀하고 사실성이 두드러진다. 앞면의 가운데에는 ‘현각선사비명(玄覺禪師碑銘)’이라는 탑 이름이 새겨져 있어, 현각선사의 탑비임을 알 수 있다. 한국전쟁 때 생긴 피탄 자국이 받침돌과 머릿돌 뒷부분에 아직도 선명하게 남아 있으며, 현재의 탑비는 귀부의 머리 부분과 몸통 부분이 조각난 것을 복원해 놓은 것이다. <출처:문화재청>

<출처>
1.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2. 두산백과
3. 문화재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