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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사라리 유적, 경주의 대표적인 삼한시대 고분 유적지

경주시 서면 사라리에서 발견된 고분유적이다. 1995년 이곳에 공장을 세우는 과정에서 유물이 발견되어 발굴.조사가 이루어졌는데 청동기시대 주거지, 원삼국시대 목관묘, 삼국시대 적석목관묘 등 다양한 시기의 무덤들이 확인되었다. 확인된 무덤 중 130호분에서는 삼한시대를 대표하는 호랑이모양 청동허리띠고리를 비롯하여 청동검과 칼집, 청동거울 등이 출토되었다. 영천 어은동 출토유물과 함께 삼한시대 진한세력의 성격을 잘 보여주는 유믈들이다. 56호분에서는 5세기 고구려의 영향을 받은 말머리가리개와 이형투구, 철갑옷 등이 출토되었다.

<건천읍 사라리 일대>

경주 건천읍 일대에 유력세력의 무덤들이 발견된 사라리 일대는 1995년 이곳에 공장을 세우는 과정에서 많은 유물들이 출토되었다.

<발굴.조사 과정 이후에 공장이 세워져 있는 유적지>

<삼국사기>에는 고조선 유민들이 경주지역으로 이주하여 6촌을 이루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사라리는 대구에서 영천을 통해 경주로 연결되는 주요 교통로에 위치하고 있는데, 고조선에서 남하한 유민들이 낙동강을 거쳐 대구 경산과 영천를 거처 이곳에서 자리잡았다고 추정해 볼 수 있다. 무덤의 주인들은 신라 건국초기에는 이 지역의 지배계층이었으며, 4~5세기 신라를 건국한 박씨집단이 건천읍 일대에서 이주한 이후에도 지역의 주요세력으로 남아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영상사진으로 본 사라리 고분군이 있던 유적지>

<유적지 앞 야산>

<사라리 마을>

<고분군이 있던 공장>

사라리 고분군은 영천에서 경주로 연결되는 중요한 교통로에 자리잡고 있다. 고조선 유민들이 정착했던 삼한시대 유적지이다. 고조선 유민들이 낙동강을 통해 대구와 영천을 거처 경주에 정착했음을 추정할 수 있다. 남쪽편에 신라를 건국한 박씨세력들이 이주하면서 조성된 금척리 고분군이 있다.

<사라리 고분군에서 가장 많은 유물의 출토된 130호분의 형태>

1~2세기 삼한시대 지배계층의 무덤으로 추정되며 껴묻거리로 한국형 동검, 호랑이모양 허리띠고리 등 삼한시대를 대표하는 많은 유물들이 출토되었다.

신라가 건국한 기원전 57년부터 기원후 300년에 이르는 약 350년 동안 사람들이 죽으면 널무덤이나 덧널무덤에 묻혔습니다. 널무덤은 구덩이 안에 나무로 만든 널을 넣은 뒤 흙을 덮은 것으로 오늘날의 무덤과 비슷합니다. 한국식동검, 와질토기, 철기 등을 주검과 함께 넣었습니다. 널무덤에 뒤이어 나타나는 덧널무덤은 구덩이 안에 따로 나무덧널을 만들고 그 속에 널과 부장품을 넣어 묻은 무덤입니다. 이중으로 주검을 보호하는 셈입니다. 덧널무덤은 2세기 중엽 무렵부터 나타납니다. (안내문, 경주박물관, 2012년)

<경주 사라리 무덤에서 출토된 청동검(1~2세기, 중앙박물관)>

<청동검(1~2세기, 경주박물관)>

경주지역에서의 한국식 동검문화를 보여주는 유물이다. 철과 청동으로 만든 유물이 비슷한 형태를 하고 있는 점으로 보아 비슷한 시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보인다.

<쇠칼(1~2세기, 경주박물관)>

청동검과 비슷한 형태로 한국형 동검 양식을 유지하고 있는 쇠칼이다.

<허리띠고리(1~2세기, 중앙박물관)>

사라리 무덤에서 출토된 것으로 삼한시대를 대표하는 유물이다. 비슷한 시기 중국 한나라에서도 많이 출토되고 이다.

<호랑이모양 띠고리(1~2세기, 경주박물관)>

<청동띠고리(1~2세기, 경주박물관)>

<‘8’자 모양 띠고리(1~2세기, 경주박물관)>

<청동팔찌(1~2세기, 경주박물관)>

<청동거울(1~2세기, 경주박물관)>

<청동단추(1~2세기, 경주박물관)>

<청동반지, 청동팔찌(1~2세기, 경주박물관)>

<유리목걸이(1~2세기, 경주박물관)>

<유리목걸이(1~2세기, 경주박물관)>

<유리목걸이(1~2세기, 경주박물관)>

<오리모양토기. (1~2세기, 경주박물관)>


<집모양토기(경주 사라리, 경주박물관)>

집모양토기에서 당시 사람들이 주거양식을 엿볼 수 있다.

<투구(4세기, 경주박물관)>

1995년 경주 사라리 5호 덧널무덤에서 출토된 투구. 투구는 볼 가리개와 이마를 보호하는 쇠판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머리 위쪽을 보호하는 복발이 없는 특이한 형태이다. 경주 서쪽 건천읍 지역으로 경주의 박씨세력이 이주한 4~5세기 이후에도 사라리 지역 지배계층은 유력세력으로 남아 있었음을 보여주고 있다.

<판갑옷(4세기, 경주박물관)>

<말머리 가리개(5세기, 경주 사라리, 경주박물관)>

5세기 고구려의 영향을 받은 말머리 가리개이다. 고구려 철기병을 대표하는 유물이다.

말머리가리개
경주 사라리 65호 덧널무덤에서 1995년 출토되었습니다. 치열한 전투에서 말을 보호하기 위한 것으로 여러 장의 철판을 조립하여 만들었습니다. 말머리의 앞을 덮는 얼굴덮개와 볼 쪽에 매달리는 볼가리개, 그리고 뒤쪽에 경사지게 새워 귀 가리개 역할을 하는 챙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철판 두 장을 이어붙인 얼굴덮개는 고구려계통의 말머리가리개에서 보이는 것으로 양국의 관계를 연구하는데 중요한 자료입니다. (안내문, 경주박물관, 2012년)

<사라리 남쪽 건천읍 지역에 남아 있는 금척리 고분군(사적)>

4~5세기 이 지역으로 이주한 박씨세력들의 무덤인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경주 사라리유적
경상북도 경주시 사라리의 낮은 구릉에서 많은 삼한.삼국시대 무덤이 조사되었다. 특히 130호 무덤은 삼한시기의 널무덤 가운데 가장 독보적이다. 130호 무덤은 길이 325cm, 너비 225cm, 깊이 90cm로 다른 널무덤에 비해 뚜렷하게 크다. 부장갱을 갖추고 있으며 묻힌 이의 지위를 알 수 있는 껴묻거리도 많이 출토되었다. 널안에서는 목걸이.청동팔찌.호랑이모양 띠고리와 함께 청동거울.청동검과 칼집 등이 나왔다. 널 바닥에는 촘촘히 쇠도끼를 깔았다. 널 밖에는 칠기, 철기, 청동기, 와질토기 등을 껴묻었다. 사라리 130호 무덤은 널무덤의 마지막 형태로 덧널무덤으로 발전해 가는 과도기인 2세기초에 만들어졌으며, 이 일대를 다스린 지배자의 무덤으로 판단된다. (안내문,경주박물관, 2012년)

<출처>
1. 안내문, 경주박물관, 2012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