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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은 법주사 사천왕문

속리산 법주사 정문인 사천왕문이다. 지금은 앞쪽에 금강문이 있지만, 사천왕문의 원래의 정문이었다고 한다. 조선후기 인조 때 벽암대사가 법주사를 크게 중건할 때 지은 건물로 앞면 5칸 규모이다. 산지 사찰의 경우 언덕을 올라가면서 입구에 사천왕문이 있는 경우가 많지만 법주사 사천왕문은 평지 사찰 출입문의 특징을 잘 보여주고 있다. 사천왕문과 목탑인 팔상전, 금당이었던 대웅전인 일직선으로 나란히 배치된 1탑 1금당식 사찰의 공간배치를 잘 구현해 놓고 있다.

<법주사 사천왕문>

조선후기 인조때 세워진 앞면 5칸의 상당히 큰 규모의 사찰 출입문이다. 그 앞에 전나무 2그루가 나란히 심어져 있다.

<사천왕문 앞 전나무>

<전나무, 사천왕문, 팔상전>

사천왕문, 팔상전, 대웅전이 나란히 일렬로 배치되어 있다. 회랑은 없지만 1탑 1금당식의 삼국시대 평지사찰의 공간배치를 보여주고 있다.

<금강문>

1970년대에 지어진 건물로 앞면 3칸 규모이다. 양쪽에 담장을 쌓아 사찰 내외부를 분리하고 있다. 법주사 정문처럼 사용하고 있다.

<내부에 모셔진 금강역사와 코끼리를 타고 있는 보현보살>

<맞은편 사자를 타고 있는 문수보살과 금강역사>

<금강문을 들어서면 보이는 사천왕문>

금강문과 사천왕문 사이에 박석으로 길을 깔았다.

<2008년 모습>

법주사는 삼국시대 진흥왕 때 (553년)에 창건되었다고 하며 혜공왕 때(776년) 승려 진표가 크게 중창함으로써 미륵신앙의 중심 사찰이 되었다. 오늘날 금동미륵대불이 있는 곳에는 오랫동안 금동대불이 자리하고 있었으며, 대웅전에서는 옛 금당인 장륙전의 모습을 찾아볼 수 있다. 통일신라까지 신앙의 중심이었던 목탑도 유일하게 남아 있다.

<속리산 법주사(사적)>

보은 법주사 사천왕문, 충북 보은군 속리산면 사내리
신라 진흥왕 14년(553)에 처음 세워진 법주사의 정문이다. 그 후 몇 차례 다시 지어졌다가 조선 인조 2년(1624)에 벽암선사가 지은 것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앞면 5칸·옆면 2칸의 비교적 큰 규모이며, 지붕 옆면이 사람 인(人)자 모양인 맞배지붕집이다. 가운데 1칸은 입구이고, 양쪽 2칸은 사천왕상을 2구씩 배치하였다. 법주사 사천왕문의 사천왕상은 우리나라 최대의 걸작품으로 평가받고 있다. <출처:문화재청>

<출처>
1.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2. 두산백과
3. 문화재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