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lture & Hitstory Traveling

Since 2008, Korea & World by younghwan

영월 엄흥도 정려각, 단종 시신을 거두었던 영월 호장 엄흥도에 내려진 정려

강원도 영월군 영흥리 조선 6대 단종의 장릉 능역내에 있는 엄흥도 정려각이다. 엄흥도는 노산군으로 강봉되어 영월로 귀향온 단종이 사약을 받고 죽은 후 버려진 시신을 거두어 묻어 주었다. 그의 충절을 기리기 위해 영조 때 정려가 세워졌으며 각을 세웠다. 이후  순조때 충의공이란 시호를 받았으며 이후 공조판서에 증직되었고, 사육신과 함께 영월 창절사에 배향되었다.

정려각은 내부 비석이 있는 비각 형태로 내부에 정려가 걸려 있다. 비석과 정려에는 「조선충신 영월군호장 증자헌대부공조판서겸지의금부사오위도총관 증충의엄흥도지문」이라 적혀 있다. 왕릉 내 충신을 기리는 정려각이 세워진 것은 아주 특수한 경우이다. 단종의 시신을 거두었던 그의 행동이 높게 평가 받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엄흥도 정려각>

단종의 장릉에 있는 엄흥도 정려각. 단종의 시신을 거두었던 영월 호장 엄흥도에게 내려진 정려이다.

<정려비가 모셔진 비각>


<정려비>

엄흥도에게 내려진 정려의 내용이 적혀 있다.

<정려>

비각 내부에 걸려 있는 붉은색 정려. 비석에 적혀 있는 내용과 동일하다.

<비각 내부 한쪽편에 걸려 있는 글자가 적힌 현판>

영월 엄흥도 정려각(嚴興道旌閭閣), 강원도 영월군 영월읍 영흥리
이 비각은 엄흥도의 충절을 후세에 알리기 위하여 영조2년(1726)에 세운 것이다. 충신 엄흥도가 영월호장으로 있을 때 단종이 노산군으로 강봉 유배되어 관풍헌에서 1457년 10월 24일 사약을 받고 승하하여 그 옥체가 강물에 버려지자 단종의 시신을 거두는 자는 삼족을 멸한다는 어명에도 불구하고 가족과 함께 단종의 시신을 암장하여 충신으로 추앙받고 있다. 순조 33년(1833)에 충의공이란 시호를 받았다. <출처: 문화재청>

<출처>
1.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2. 두산백과
3. 문화재청
4. 고궁박물관
5. 위키백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