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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성 서운산 청룡사, 인조 셋째아들 인평대군의 원찰로 삼았던 사찰

경기도 안성시 서운면 서운산 자락에 위치한 청룡사(靑龍寺)이다. 고려 원종 때(1265년)에 처음 세워졌으며, 고려말 나옹화상이 크게 중창하면서 청룡사라 불렀다. 나옹선사가 중창한 이후 공민왕의 초상을 모신 사찰이었으며, 조선후기 인조의 셋째 아들 인평대군의 원찰이 되었다. 1900년대부터는 남사당패의 근거지가 되었으며, 부근에 지금도 남사당마을이 있다. 남사당패는 봄부터 가을까지 안성장터를 비롯하여 전국 각지 장터에서 공연을 하면서 생활을 하다가 추운 겨울에 이곳 남사당 마을로 돌아와 지냈다고 한다.

청룡사는 주불전인 대웅전을 중심으로 불전과 요사채들을 갖추고 있다. 건물들이 많지는 않지만 가람배치가 짜임새 있고 고풍스러운 사찰의 멋을 갖추고 있다. 대웅전(보물)은 고려말 사찰을 중창할때 처음 세워졌다고 하며, 조선후기 중건할 때 새로 지은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소조석가여래삼존상(보물), 영산회괘불탱(보물), 감로탱(보물), 18세기 활동한 승려인 사인비구가 만든 동종(보물) 등 문화재를 소장하고 있으며, 사찰 마당에는 세워진 고려시대 삼층석탑이 청룡사의 오랜 내력을 잘 보여주고 있다.

<안성 청룡사>

고려말 나옹선사가 크게 중창하면서 고려 공민왕 초상을 모시던 사찰이었다. 조선후기 인조의 셋째 아들 인평대군의 원찰이 되면서 왕실과 관련이 있는 사찰이 되었다. 대웅전을 비롯하여 소조불상, 괘불, 동종 등 청룡사 소장 문화재들 또한 이 시기에 조성되었다. 주불전인 대웅전을 중심으로 명부전, 산신각 등 여러 불전과 요사채들이 배치되어 있다.

<천왕문>

<주불전인 대웅전(보물)>

앞면 3칸에 다포계 팔작지붕을 하고 있는 건물로 소박하면서도 화려하게 지어진 건물이다.

<옆에서 본 모습>

구불구불하게 자란 원목을 그대로 기둥으로 사용하고 있다.

<소조석가여래삼존상(보물)>

대웅전에 모셔진 소조석가여래삼존상(보물)이다. 석가여래를 본존불로 왼쪽에 보현보살상이, 오른쪽에 문수보살상이 배치된 삼존불상이다. 곡선적이면서도 투박한 조선후기 소조불상 특징을 잘 보여주고 있다.


<대웅전에 보관되어 있는 범종(보물)>

조선후기 여러 사찰의 범종을 제작했던 승려 사인비구가 제작한 범종이다. 청룡사가 왕실과 관련있었던 사찰임을 보여준다.

<청룡사 감로탱(보물)>

감로탱은 조상의 극락왕생을 빌기 위해 그린 불화이다. 숙종 때 제작된 것으로 인평대군 원찰로서의 성격을 보여주고 있다.

청룡사 삼층석탑
이 탑은 높이가 2.38m로 평면 사각형의 단층 기단 위에 3층의 탑신을 올렸다. 이 탑은 부분적으로 파손된 지대석 위에 3단의 받침이 기단을 받치고 있다. 기단은 4장의 돌로 만들어졌는데 각 면에 모서리 기둥과 버팀 기둥이 새겨져 있다. 탑몸돌과 지붕돌은 각각 다른 돌로 만들어졌으며 탑몸돌의 각 면에는 모서리 기둥이 조각되어 있다. 1층 탑신에 비해 2층과 3층 탑신의 높이가 급격하게 낮아져 비례가 흐트러져 봉니다. 지붕들은 경사가 급다가가 전각에 이르러 살짝 반전되었으며, 합각선이 뚜렷하다. 상륜부는 현재 남아 있지 않고 석탑에도 훼손이 있다. <출처:안성시청>

<청룡사 삼층석탑>

단층의 기단 위에 3층의 탑신을 올렸다. 아담하면서 정형화된 고려시대 석탑 양식을 보여주고 있다.

<대웅전 앞 마당에 세워진 당간지주>

<청룡사 연산회괘불탱(보물)>

석가모니가 영취산에서 설법을 하고 있는 장면을 그린 영산회상도(靈山會上圖)이다. 석가모니불을 중심으로 보살, 제자, 제석천, 범천, 사천왕, 팔부중 등이 둘러싸고 있는 모습이다.

<명부전>

<산신각>

<봉향각>

<요사채인 지봉당(智峯堂)>

<맞은편 종무소>

<청룡사 경내 한쪽편에 우뚝 서 있는 고목>

안성 청룡사(靑龍寺), 경기 안성시 서운면 청룡길
청룡사는 고려 원종 6년(1265) 명본국사가 대장암으로 창건, 그 후 공민왕 13년(1394) 나옹선사가 지정연간(1341~1367)에 이 산을 지나면서 지혜의 해가 거듭 빛나고 자비의 구름이 광채를 냄에 이 곳에 신비한 징조가 있겠다고 생각하시고 하루를 묵게 되었는데, 과연 꽃비가 내리고 상서러운 구름이 일면서 용이 오르내리는 것을 보고 이 곳에 주석을 하시면서 절을 크게 중창하여 산 이름을 서운산이라 하고 절 이름을 청룡사라 명명하였다. 절 안에는 대웅전, 관음전, 관음청향각, 명부전 등이 있고, 대웅전 앞에는 명본국사가 세웠다는 삼층석탑이 있다. 대웅전은 다포계의 팔작집으로 고려말 공민왕 때 지어져 조선후기에 다시 지은 것으로 조선 후기의 기법과 양식을 잘 보존하여 보물824호로 지정되었다. 청룡사에서 유명한 것은 자연미를 살린 기둥이다. 구불구불한 아름드리나무를 껍질만 벗긴채 본래의 나뭇결 그대로 살려 기둥으로 세웠다. 사람이 만드는 건축물에 최대한 자연미를 살린 우리나라 건축의 한 특징을 보여준다. 청룡사는 공양왕의 초상화를 봉안하다가 세종19년(1437) 세종의 명에 의하여 고양으로 옮겼고, 후에는 인평대군의 초상화를 모시고 왕실의 태평을 비는 원찰로 삼았었다. 이곳은 조선 후기에 등장한 남사당패의 근거지이기도 하다. 이들은 인근 불당골에서 겨울을 지낸 뒤 봄부터 가을까지 청룡사에서 준 신표를 들고 기예를 뽐내며 안성장터를 비롯해 경기, 충청도 등 전국을 돌아다니면서 연회를 팔며 생활했다. <출처:문화재청>

<출처>
1.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2. 두산백과
3. 문화재청
4. 고궁박물관
5. 위키백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