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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궁박물관] 왕실의 행차, 가마와 의장

왕실의 행차는 국왕이 주로 궁궐밖으로 나가는 경우를 말하는데 종묘나 선농단 등에 제례를 올릴때나 왕릉을 참배할 때가 대부분이다. 왕실의 행차는 목적과 의장의 수량에 따라 크게 대가노부.법가누부.소가노부의 3종류가 있다. 국왕이 행차하는 어가행렬은 국왕이 탄 가마를 중심으로 수많은 군병이 호위를 하고 문무백관들이 따르게 하여 국왕의 위엄을 드높이고 민간에 왕실의 모습을 보여주는 기회를 갖게 한다.

고궁박물관에는 국왕의 행차에 쓰였던 왕실의 가마와 의장행렬에 사용된 각종 깃발과 상징물 등이 전시하고 있다. 조선왕조가 남겨 놓은 의궤 중 정조가 아버지 사도세자의 현릉원참배하고 수원화성을 머물렀던 내용을 기록한 『화성행행도병』는 당시 국왕의 행차 내용을 화려하고 세밀하게 묘사하고 있다. 행차에 사용되었던 의장들은 군대의 행렬에 사용되었던 각종 깃발들과 도끼, 칼, 창 등 각종 무기류들과 악기류, 부채 등 실용적인 것들이 있다.

임금의 가마(輦), 조선,

왕이 가장 많이 사용했던 형태의 가마이다. 사림이 메고 이동하는 가마로 가까운 거리나 궁궐내에서 행차할 때 사용하는 가마이다. 근정전 앞에 볼 수 있는 답도는 이 가마가 지나가는 길이다.

조선시대 왕이 행차 시에 탔던 가마이다. 지붕이 있는 형태의 가마라고하여 유옥교라고 표기되었다. 위로 볼록하게 솟은 지붕 위에는 둥근 보주를 올리고, 네 귀퉁이 봉황머리 장식에는 고리를 달아 유소를 길게 내려 뜨렸다. 주칠을 한 사각의 몸체는 곳곳에 금니로 문양을 장식하였는데, 네 모서리에 용을 그린 둥근 기둥을 세우고 기둥 사이에 각기둥을 둔 후 아랫부분에 난간을 돌렸다. 난간 부분에는 백택, 기린 등 상상의 동물들을 그려 넣어 화려함을 더했다. 몸체 상단의 네 면에는 주렴을 드리운 검은 휘장을 달아서 차양처럼 열고 닫을 수 있도록 하였다. 좌우 가마채는 두 개씩 조립해서 연결한 것으로 총 길이는 6m 가량 되며 앞뒤로 8명씩, 총 16명이 어깨에 메고 이동하였다. <출처:고궁박물관>

왕실의 행차
조선왕실의 중요한 이동 수단이었던 가마는 크게 연(輦)과 여(輿)로 나뉘는데, 연은 지붕과 벽체가 있는 가마로 국가 의례의 거행을 위해 궐 밖으로 행차할 때 사용하였는데 타는 사람에 따라 문양과 장식 등에 차등을 두어 만들었다. 여는 궐 안팎의 차단된 공간 안에서 이동할 때 이용한 지붕과 벽체가 없는 가마로, 도성 밖 먼 길을 가야할 때에는 말을 메우는 가교(駕轎)를 사용했다. 한편 공주와 옹주를 비롯한 왕실 여성들은 덩[덕응(德應)]이라는 가마도 탔다. 왕과 왕비, 왕세자가 타는 가마로 말이 끌거나 사람이 메었고, 여는 주로 사람이 메는 가마로 보통 사람들도 탈 수 있는 가마였다. 왕실의 가마는 주로 국가 의례를 거행하기 위해 왕실 가족이 궐밖으로 행차할 때 사용하였다. 사람이 타는 가마 외에도 향정자(香亭子).채여(彩輿) 등 의물(儀物)을 운송하는 작은 가마도 있었다. 어가행렬은 목적과 의장의 수량에 따라 형식이 나뉘다. 중국의 조칙을 맞이하거나 종묘에 제사 드릴 때에는 대가노부(大駕鹵簿)를, 문소전(文昭殿) 등에 제사를 드리거나 군사를 검열할 때에는 법가노부(法駕鹵簿)를 사용했다. 소가노부(小駕鹵簿)는 능 참배 등 교외로 나아갈 때 사용하는 간단한 행렬이었다. 어가 행렬에 사용하는 의장은 크게 깃발 종류인 의장기와 그 외 여러가지 의장물로 나눌 수 있다. 이러한 의장들은 왕의 존재를 다른 이들과 차별화하고 행렬을 부각함으로써 조선 왕실의 위엄을 나타내었다. <출처:고궁박물관>

봉황가마

봉황문양으로 전체를 화려하게 장식한 가마이다. 지붕 및 출입문을 비롯한 가마의 네 측면을 봉황으로 장식하였고, 길이를 짧게 한 붉은 색 휘장에도 봉황을 금박하였다. 지붕은 두 단을 지어 올렸고 삼각의 단 위에는 여덟마리의 봉황을 두르고 비녀못을 끼운 보주를 올였다. 지붕의 각 면에는 구름문양을 그렸으며 네 모서리의 봉황 장식에 유소를 길게 드리웠다. 몸체는 방과 출입구 두 부분으로 나뉘며 앞면과 측면에 난 창문은 들어열개식으로 하고, 출입문은 양쪽으로 여닫게 되어 있다. 가마채는 별도의 고리를 만들어 고정하여 매도록 하였으며 끝 부분은 봉황머리로 장식하였다. <출처:고궁박물관>

가교

먼거리를 이동할 때 사용하는 말이 끄는 가교이다. 그 모습을 정조대왕 행차 그림에서 볼 수 있다. 앞뒤로 말의 안장에 걸쳐서 사용한다.

가교(駕轎)는 가마채를 말의 안장에 연결하여 두 마리의 말이 앞뒤에서 끌고가는 가마이다. 임금이나 왕실 웃어른의 장거리 행차 때 이용하였으며, 정조임금이 화성행차 시에 사용했던 경가교가 이것과 같은 형태였다. 주칠을 한 몸체는 여러 구획으로 나뉘어 꽃, 명찰, 바퀴, 칠부, 수자문 등 갖가지 문양으로 양각되었으며, 양 측면 아랫단은 등나무 자라로 표면을 장식하였다. 창은 겹창으로 만들었으며 미닫이형의 안장은 박쥐와 넝쿨 문장을 투각하였고 지붕에서부터 검은 비단 휘장을 내려 창문을 가렸다. 사각지붕은 곡선으로 나지막하게 솟았으며 정상에는 납작한 모양의 금색 모주로 마무리 하였다. 가마채는 별도의 고리를 마들어 고정하였고 끝부분은 용머리로 장식하였다. <출처:고궁박물관>

남여(藍輿), 조선.

고위 관리들이 사용했던 가마로 국왕도 간단한 행차때에는 사용했다. 사극에서 많이 볼 수 있는 가마이다.

등받이와 팔걸이가 있는 의자를 가마채에 부착하여 만든 것이다. 고위 관료나 늙은 재상이 탔고 간편한 행차 때 국왕도 탔다. 왕실에서 쓸 경우 여(輿)라 하였으며 봉황문 등으로 장식하였다. 세워둘 때에는 받침대 위에 올려 놓았는데 이 받침대는 당시의 것 그대로이다. <출처: 고궁박물관>

초헌(軺軒), 조선.

바퀴가 달린 높은 가마이다. 자리가 높아 권위적으로 보이는 형태이다.

사람이 끄는 외바퀴의 높은 탈 것이다. 세종 때 처음 만들어진 조선 고유의 것이다. 2품 이상의 관원이 탔으나 앉는 자리가 높게 올라가 있어 권위의 상징이었으므로 왕자와 부마도 타고 다녔다. <출처: 고궁박물관>


모당 평생도 중 병조판서 행차부분, 조선.

고위관료로 성공했음을 보여주는 가마로 여겨졌다.

화성행행도병 중 환어행렬도 부분, 조선,

 정조가 사도세자 묘소인 현륭원에 행차했을 때 거행된 8가지 주요 행사장면을 그린 <화성행행도> 중 <환어행렬도>이다. 한양으로 돌아오는 길에 시행행궁에 잠시 들러는 장면을 묘사한 그림으로 조선시대 국왕의 행차모습을 화려하고 묘사하고 있는 그림이다.

1795년(정조 19) 정조가 어머니 혜궁궁 홍씨와 함께 아버지 사도세자의 묘소인 현륭원에 행행했을 때 거행된 8가지 주요 행사장면을 그린 <화성행행도> 중 <환어행렬도>는 화성에서 돌아오는 길에 숙박을 위해 시흥행궁으로 들어가는 어가행렬을 묘사한 것이다. <환어행렬도>의 중간부분에는 ‘둑(纛)’과 ‘교룡기(交龍旗)’를 필두로 한 국왕의 행렬, 정조의 어마(御馬)와 혜경궁의 가교(駕轎) 및 이를 3중으로 호위하고 있는 군병이 묘사되어 있다. 호위군병 등 6,200여명에 달하는 인원과 1,400여 필의 말이 동원된 행렬의 장대함이 한 눈에 느껴질 정도로 탁월한 구성력을 보여준다. <출처:고궁박물관>

어가행렬의 구성

  • 도가(導駕), 어가행렬의 가장 앞에 서는 시위인원으로 왕의 거동을 준비한 관부의 책임자들로 구성된다. 당부관원, 한성판윤, 예조판서, 호조판서, 대사헌, 병조판서의 순서로 등장한다.

  • 선상군병(先廂軍兵), 국왕 행렬의 전체 호위를 맡는 군사들로 투구와 갑옷을 입고 검을 갖춘 군장차림을 하였다. 행렬의 마지막에 등장하는 후상군병과 짝을 이루어 배열하였다.

  • 가전시위(駕前侍衛),어가 앞부분의 시위를 담당하였다. 둑과 교룡기를 내세우 국왕의 전체 행렬에 대한 통솔권을 상징한다.

어가행렬 앞부분

어가행렬 앞부분으로 행사를 주관하는 관원들로 구성된 도가, 둑과 교륭기를 내세우는 가전시위, 그리고 행렬호위를 맡은 군사들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앞쪽에 말이 끄는 가마인 가교가 있는데 아마도 정조를 위한 예비 가마로 보인다. 정조는 말을 타고 있다.

  • 의장(儀仗), 왕의 상징물로 어가 행렬에 위엄을 과시하기 위해 배치하였다. 의장기와 의장물로 구성되는데 모시는 주인공의 위상에 따라 가짓수를 달리 하였다.

교룡기 뒷편

교룡기 뒷편으로는 취타대를 비롯하여 각종 왕의 상징물을 들고 있는 의장이 배치되어 있다. 왕실행차에 중요한 요소인 각종 의장물들의 실제 모습을 잘 보여 주는 그림이다.

  • 어연(御輦).어연시위(御輦侍衛), 왕의 가마가 등장하고, 이어 상의원, 내의원 등 왕을 가까이서 모시는 신하들과 군사들로 이루어진 시위대이다. 어연시위의 마지막에 행렬의 총괄 부서인 병조의 표기가 등장하여 침범할 수 없는 왕의 영역을 표시한다.

  • 가후각차비(駕後各差備).수가백관(隨駕百官), 승지, 사관과 같은 왕의 측근 신하들과 어가를 따르는 종친과 문무백관들로 행렬의 뒷부분에서 왕의 가마를 수행하였다.

  • 후상군병(後廂軍兵), 앞부분의 선상군병과 함께 어가행렬의 전체 호위를 담당했던 군사들이다.

어가행렬 중심

어가 행령의 중심이 되는 장면으로 정조대왕이 행렬 중앙에서 말을 타고 있으며, 그 뒤로는 어머니인 혜경궁 홍씨가 탄 가마가 보인다. 행렬 뒷편으로는 왕을 가까이 모시는 신하들과 군사로 이루어진 어연시위가 보인다.  뒷편으로 신하들고 후상군병들이 따르고 있다.

어가행렬의 의장
어가 행렬에 사용되는 의장에는 행차용 노부의장과 군사지휘용 형명(形名)이 있다. 의장기를 그림의 내용에 따라 분류하면 왕권을 상징하는 용을 그린 기, 사신을 그린 기, 상상의 동물을 그린 기, 팔괘 등 우주의 생성원리를 표현한 기, 해.달.별.봉우리 등 영원한 자연물을 그린 기, 문자를 쓴 기 등으로 나뉜다. 의장물에는 권력을 상징함과 동시에 군사적 성격도 갖춘 도끼.칼.창 등과 같은 것들이 있으며 그늘을 만들어 주는 등 실용적 성격을 가진 개(蓋).산(傘).부채(扇) 등이 있다. 이 외에도 어가행렬을 청각적으로 빛내 주는 나팔.북.각 등 고취악기들과 의자.먼지털이.침그릇.세숫대야.향합.향로 등 일상 용품에 속하는 것들도 있다. <출처:고궁박물관>


교룡깃발(交龍旗).

국왕의 권위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대형깃발이다.

국왕의 지휘권을 상징하는 의장기로 용기(龍旗).용대기(龍大旗),황룡대기(黃龍大旗)라고도 한다. 어가행렬시 주로 선두 호위군사와 국왕의장 사이에 위치하여 국왕이 전체 행렬을 움직이고 통솔함을 보여준다. 3m에 이르는 이 깃발은 왼편의 <화성행행도병> 중 <환어행렬도> 부분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행렬시 군복을 입은 장교가 말을 탄 채 받쳐 들고 4명의 군사가 깃대에 잡아맨 끈을 사방에서 한 가닥씩 잡아 당기게 되어 있다. <출처: 고궁박물관>


황룡깃발(黃龍旗), 대한제국,

국왕이 군대를 친열할 때 각 영에 그 명령을 전달하는데 쓰인 기이다. 독(纛), 교룡기와 함께 왕의 거동 때 세웠다.


청룡깃발(靑龍旗), 조선

대가노부.법가노부에 쓰이는 의장기이다. 군기로서는 대오방기의 하나로 좌영(左營)이나 좌위(左衛)를 지휘하였다. 푸른 바탕에 청룡과 오색의 구름 문양을 그렸고 가장자리에는 불꽃을 상징하는 붉은 테두리를 붙였다. <출처: 고궁박물관>


백호깃발(白虎旗), 조선

대오방기의 하나로 진영의 오른편에 세워 우영(右營), 우위(右衛)를 지휘하는데 쓰였다. 흰 사각 바탕에 적색 날개를 달고 나는 백호와 청.적.황.백 네가지 색깔의 구름을 그렸다. <출처: 고궁박물관>


주작깃발(朱雀旗), 조선

군기의 한가지로 대오방기에 속하며 의장기로 대가노부, 법가노부에도 쓰였다. 군대에서 주작기는 진영 중 남쪽, 즉 전영(前營)을 지키는 깃발이다. <출처: 고궁박물관>


현무깃발(玄武旗)

군기의 한가지로 대오방기에 속하며 후영(後營)이나 후위(後衛)를 지휘하는 데 쓰였다. 대가노부와 법가노부에서는 의장기로 쓰였다. 뱀이 휘감고 있는 거북을 그렸다. <출처: 고궁박물관>


삼각깃발, 조선,

상서스러운 동물 중 하나인 뿔이 셋 달린 사슴을 그렸다. 국왕의 권위를 나타내는 깃발이다.

조선시대 임금이 거동할 때 군중의 위엄을 갖추기 위해 사용한 의장기의 하나로 대가노부.법가노부, 소가노부 등에 사용하였다. 백색 바탕의 사각 깃발로 머리에 세 개의 뿔이 달린 말 모양과 그 들 주위로 청.적.황.백의 네 가지 색채의 구름 문양을 그렸다. 뿔이 셋 달린 삼각은 ‘선왕의 법도를 이루면 나타난다’는 상서로운 동물이다. <출처: 고궁박물관>


백택깃발, 조선,

상서스런 동물 중 하나인 백택이 그려진 깃발이다.

조선시대 임금이 궁중의 위엄을 갖추기 위해 사용한 의장기의 하나로 대가노부, 법가노부에 사용되었다. 백택은 유덕한 군왕의 치세기에 나타난다는 상상의 동물로 용머리에 푸른 머리털을 지녔고 네발로 달린다고 하며, 말을 할 줄 알고 만물을 통달하여 덕이 깊다고 여겼다. <출처: 고궃박물관>


봉황깃발, 조선,

대표적인 상스러운 동물이 봉황이 장식되어 있다.


쌍용부채와 붉은꽃부채, 조선

쌍룡부채(雙龍團扇), 원형 부채모양 의장물로 종이로 초배첩한 후 붉은 명주로 다시 배접하였다. 앞뒷면에 청룡과 황룡 두 마리를 내려오는 모습과 오르는 모습을 다양한 색상과 안료로 그렸고, 금분을 사용하여 화려하게 장식한 흔적이 남아 있다. 붉은꽃 부채(紅花團扇), 둥근 부채 모양의 의장물이다. 종이로 초배접하고 붉은 명주로배접하여 가장자리에 꽃송이를 돌린 후, 두개의 동심원을 그리고 내부에 좌우로 꽃넝쿨을 그렸다. 꽃을 그린 둥근 부채는 고대 중국에서 천자가 수레에 꽃을 그린 흥화단선을 사용한 데서 유래하는데 차츰 그림을 자수로 대체한 홍단선을 사용하였다고 한다. <출처: 고궁박물관>


봉황부채와 꿩깃부채, 조선

봉황부채(鳳扇), 방형의 부채모양 의장물이다. 종이로 초배접한 후 붉은 명주로 배접하고 그 위에 날아 오르는 봉황을 좌우에 그렸다. 명주로 드림을 드리웠다. 꿩깃부채(雉尾扇), 윗부분을 둥글린 아치형의 부채모양 의장물이다. 종이로 초배접한 후 붉은색 명주로 다시 배접하고 가장자리에 꿩의 고리를 그린 다음 그 안에 두 마리의 꿩과 꽃을 그렸다. 뒷면은 본래 파란색 명주 바탕에 모란을 그렸으나 모두 바래서 바탕탯이나 안료색이 거의 남아 있지 않다. <출처: 고궁박물관>


금장도(金粧刀).은장도(銀粧刀), 조선

금장도와 은장도는 나무로 만든 칼을 금색과 은색으로 칠하거나 단청하고 각종 길상문을 그려 화려하게 장식한 의장물이다. 손잡이에 구름 문양을 새기고 유소를 달아 장식하였다. <출처: 고궁박물관>


금월부(金鉞斧).은월부(銀鉞斧), 조선

금월부는 용이 도끼를 물고 있는 나무 조각을 금칠하여 봉에 꿰어 만든 의장물로, 용이 박쥐 문양으로 장식된 여러 개의 날을 세운 원통을 물고 있는 형태도 있다. 같은 형태에 은칠을 한 은월부와 함께 사용한다. 월(鉞)은 날이 한쪽에만 있는 큰 도끼이고 부는 작은 도끼이다. 특히 월은 천자가 장군을 임명할 때 수여하는 의물로서 전권을 넘겨준다는 상징적 의미로 쓰였다. <출처: 고궁박물관>

각 깃발(角旗), 조선

군대에서 진의 네 각에 세워 군사를 정렬시키고 진영을 이루는 데 쓰인 기이다. 문양을 그리지 않고 두 가지 바탕색으로만 만들었다. <출처: 고궁박물관>


표범 꼬리 깃발(豹尾旗), 대한제국,

군대에서 출입을 통제하는 데 쓰던 기이다. 표범의 꼬리를 앞뒷면에 그려 길게 만들었다.


백.흑 고초 깃발(白.黑高招旗), 조선

군영에서 방위에 따라 다섯 곳에 하나씩 세워 길을 가르거나 합치는 신호로 사용했던 깃볼로 고조기(高照旗)라고도 부른다. 동서남북과 중앙 다섯 방위에 푸른색.흰색.붉은색.검은색.노란색 고초기를 달았다. 기면에는 팔괘를 그려 넣었다. <출처: 고궁박물관>

금고깃발과 영 깃발

금고깃발, 명령을 전달하는 신호로 북이나 징을 치던 취타대를 인도하는데 사용된 군기이다. 황색바탕에 검정색으로 ‘금고’ 두 자르 붙였으며 붉은색 비단으로 가장자리를 둘렀다. 영 깃발, 장수의 명령을 전달하는데 쓰던 군기이다. 가장자리가 없는 푸른 색 바탕에 붉은 색으로 ‘령 令’자를 붙였다. ‘영기’와 더불어 영전, 영표 중 한가지를 소유하여야 비로소 명령을 전달받았으며, 영내에 출입하도록 허락하였다. 만약 없으면 비록 장수가 온다 하더라도 명령을 따르지 않으며 영내에 출입하지 못하도록 하였다. <출처: 고궁박물관>

좌독기와 좌독기드림

좌독기, 조선시대 사용된 군기로 행진할 때는 주장의 뒤에, 멈추었을 땐 장대 앞 왼편에 세웠다. 사각형의 검은 바탕에 흰색과 붉은 색 비단을 덧대어 정중앙의 태극을 중심으로 팔괘와 낙서를 표현하였다. 동.서.남.북.중앙의 오방에 해당하는 다섯가지 색의 드림을 함께 달아 사용하였다. 낙서는 중국 하나라의 우왕이 홍수를 다스릴때에, 낙수강에서 나온 거북의 등에 쓰여 있었다는 마흔 다섯개의 점으로 된 아홉개의 무늬를 일컫는다. 좌독기드림, 좌독기와 함께 달았던 기 드림이다. 기 드림은 동서남북과 중앙을 상징하도록 다섯 가지 색으로 만들었는데, 붉은 바탕의 드림은 남방을 상징하는 것이다. 기면에는 일곱 개의 원 안에 28수 중 남방의 별 자리인 정, 귀, 유, 성, 장, 익, 진을 상징하는 들개.양.노루.사슴.말.뱀.지렁이를 그려 넣었다. <출처; 고궁박물관>

기성도병 중 평안감사 선유 부분.

서울역사박물관에 소장된 <기성도병> 가운데 평안감사가 대동강에서 선유하고 있는 장면이다. 평안감사가 탄 정자선 뒤로 좌독기와 다섯가지 색의 드림이 휘날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