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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박물관 신석기실] 신석기인들의 생활

신석기시대는 빙하기가 끝나고 새로이 토기와 간석기를 만들어 정착한 시기를 말한다. 우리나라의 신석기시대 유적으로는 집터와 무덤, 조개더미가 있으며, 큰 강 주변이나 해안을 중심으로 다양한 지역에 분포하고 있다. 대표적인 신석기 유적으로는 서울 암사동, 양양 오산리, 부산 동삼동 등이 있다. 한반도는 넓은 평야가 많지 않아 한반도 신석기인들은 농경을 주로 했다기 보다는 강가나 바닷가에서 고기잡이이와 사냥, 채집등으로 생활했던 것으로 보인다.

우리나라 신석기시대에는 초기부터 농사가 시작되지는 않았고, 사냥과 어로 이외에는 산에서 도토리를 채집하여 저장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농사는 주로 중기 신석기 이후 조, 기장 등을 재배하였다. 간석기와 뼈로 만든 도구들은 효과적을 식량을 구하는 사용되었으며, 토기는 식량을 저장하고 음식을 조리하는 데 사용되었다. 바닷가나 강가에 발견되는 유적지에서는 어로용 도구들이 많이 출토되는 것으로 봐서는 한반도 신석기인들에게 있어서 어로가 중요한 생계수단이었음을 보여주고 있다. 이들은 실로 짠 이들은 실로 짠 옷감이나 동물 가죽으로 간단한 형태의 옷을 만들어 입었으며, 옥.동물뼈와 뿔. 조가비 등으로 몸을 꾸몄다. 또한 이들은 일본 열도, 중국 동북 지역, 러시아 연해주 등 주변의 여러 집단과 활발히 교류하였다.

중앙박물관 선사.고대관 신석기시대 유물 전시실

만년 전후의 한반도

화살촉.창, 1.제주 고산리(1996년 발굴),

현재까지 한반도에서 발견된 신석기시대 가장 이른 시기의 화살촉으로 눌러떼기 기법을 이용하여 정교하게 만들었다.

고산리식토기, 2.제주 강정동(2008년 발굴),

현재까지 한반도에서 발견된 신석기시대 가장 이른 시기의 토기로 바탕흙에 식물의 줄기 등 유기물질을 넣어 빚어 그 흔적이 무질서하게 남아 있다.

사슴이 새겨진 토기, 3. 부산 동삼동(1999년 발굴, 복제품),

멧돼지 모양 토제품, 4. 경남 통영 욕지도(1988~1989년 발굴),

멧돼지가 새겨진 토기, 5. 경남 창녕 비봉리(2004년 발굴, 복제품)

동물뼈, 6. 부산 동삼동 (1969~1971년 발굴)

약 1만 년 전 날씨가 점차 따뜻해지면서 한반도의 지형, 동식물상은 현재와 비슷하게 변하기 시작하였다. 추운 기후에 사는 대형 동물이 사라지고 멧돼지, 사슴과 같이 작고 빠른 동물들이 나타났다. 다양한 자원을 효과적으로 운반, 보관, 조리하기 위해 토기가 만들어졌고 빠른 동물을 잡기 위해 활과 화살이 사용되었다. 한반도 신석기시대 가장 이른 시기의 토기와 화살은 제주 지역을 중심으로 발견되고 있다. <출처:중앙박물관>

조개무지

부산 동삼동 조개무지(1999년 발굴),

조개무지는 신석기인들이 먹고 버린 조개껍질들이 쌓여 만들어진 일종의 쓰레기장이다. 조개무지에는 동물이나 물고기 뼈들이 잘 남아 있으며 무덤이나 집터, 화덕 자리가 발견되기도 한다. 조개껍질 중 가장 많이 발견되는 것은 굴이다. 소라, 전복 등 깊은 바다속에 사는 것도 발견되는데 이는 잠수를 통해 얻을 수 있다. 바닷가 신석기인의 머리뼈에서 보이는 외이도골종은 잠수 작업으로 인해 생기는 변형으로 현대의 해녀에게서도 발견된다. <출처:중앙박물관>

바다로 나간 사람들

결합식작살, 1.강원 고성 문암리, 2.복제품,  작살(돌), 3.경남 통영 욕지도, 4.함북 웅기 송평, 5.부산 동삼동,

어로생활을 주로 했던 한반도 신석기인들이 많이 사용했던 것으로 작살이다. 작살은 돌이나 동물의 뼈로 만든 고챙이를 자루에 연결하여 물고기를 찔러 잡는 도구이다. 창처럼 손에 쥐고 던지거나 자루에 노끈을 연결하여 사용하는 것이 있다.

이음낚시, 6.부산 범방동, 이음낚시 축, 7.강원 고성 문암리, 이음낚시 바늘, 8.부산 동삼동, 9, 경남 통영 연대도,

이음낚시는 신석기시대의 고기잡이 도구로 허리와 바늘을 돌과 뼈로 따로 만들어 끝으로 묶어 사용하였다. 주로 먼 바다로 나가 대구나 다랑어 등을 잡은 것으로 보인다.

작살 꽂힌 고래 뼈, 12. 울산 황성동, 작살(뼈), 13.울산 황성동

작살(뼈), 10.전남 완도 여서도, 11.부산 동삼동,

그물추, 14.강원 양양 오산리,

그물추, 16.서울 암사동

그물이 찍힌 토기, 15.부산 동삼동,

토기에 찍힌 그물 모양으로 옛 그물의 모습을 유추해 볼 수 있다.

신석기시대에는 빙하가 녹으면서 내륙 깊숙이 바닷물이 들어오고 곳곳에 강이 생겨났다. 신석기인들은 자원이 풍부한 강가와 바닷가에서 생활하면서 고기잡이를 위한 다양한 방법과 도구를 개발하였다. 특히 배를 타고 먼 바다에 나가 작살과 이음낚시를 사용하여 고래, 상어 등 바다동물과 큰 물고기를 잡았던 것으로 보인다. <출처:중앙박물관>

기원전 8천년 무렵 빙하기가 끝나면서 우리나라의 기후와 지형은 현재와 같은 양상으로 바뀌었다. 자연환경의 변화로 신석기인들은 사냥이나 야생식물 채집 외에도 새로운 생계 수단이 필요하였다. 그 가운데 하나가 고기잡이이다. 고기잡이는 우리나라 신석기인들이 농사를 짓지 않고도 정착 생활을 할 수 있었던 중요한 원인 가운데 하나였다. 이는 신석기 시대의 집터가 주로 바닷가나 큰 강가에 집중적으로 분포하고 있다는 점에서 알 수 있다. 고기잡이는 동물의 뼈나 돌로 만든 작살, 낚시, 그물 등을 사용하였는데, 이 도구들은 주로 바닷가의 조개더미에서 출토된다. <출처:중앙박물관>

원거리 교류

일본(조몬)토기, 1.부산 동삼동,

남해안 조개더미에서 발견되는 조몬토기는 신석기시대 한반도와 일본 열도의 교류를 보여주는 중요한 유물이다.

긁개, 2.경남 통영 연대도, 3.경남 통영 욕지도,

일본 조몬문화 고유의 석기로 일본에서는 석시라고 한다. 한반도 남해안에서 발견되는 이러한 형태의 석기는 양 지역 간 교류의 산물로 추정된다.

흑요석으로 만든 도구, 4.경남 통영 연대도, 5,6.부산 동삼동,

7.함북 종성군 수남리,

화산암의 일종인 흑요석은 원산지마다 구성성분이 다르기 때문에 성분분석을 통해 지역 간 문화교류 양상을 파악할 수 있다. 신석기시대 한반도에서 발견되 흑요석은 백두산 주변 및 일본 규슈 지역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출처:중앙박물관>

북촌리식토기, 8. 제주 북촌리, 9.부산동삼동,

토기 아가리 부분에 삼각형의 점줄무늬가 있는 토기로 제주 지역에서 발견된다. 동일한 형태의 토기가 남해랑 지역에서도 확인되어 양지역 간에 교류가 있었음을 알 수 있다.

현무암 알갱이가 들어간 토기, 10.전남 완도 여서도, 현무암, 11.부산 동삼동

남해안에서 발견되는 현무암 알갱이가 들어간 토기, 현무암은 제주 지역과 남해안 지역 간에 교류가 있었음을 보여준다.

배, 경남 창녕 비봉리(2004년 발굴, 복제품),

앞에서 본 모습

창녕 비봉리에서 발견된 나무로 만든 배 조각이 발견되었다. 한반도 신석기인들이 사용했던 배의 형태를 유추해 볼 수 있다.

신석기인들은 부족한 자원을 주변 지역과의 교류를 통해 얻었다. 이러한 과정에서 자원의 분포 상황과 이용방법, 제작기술 등 다양한 정보의 교환도 이루어졌다. 가까운 지역뿐만 아니라 제주, 일본 열도, 중국 동북 지역, 러시아 연해주 등 먼 지역 간에도 접촉이 이루어졌다. 특히 한반도 동남해안 지역과 일본 규슈 지역 간에는 신석기시대 전 시기에 걸쳐 활발한 교류가 있었다. <출처:중앙박물관>

신석기인들은 주변 지역과 활발하게 교류를 하였다. 처음에는 가까운 지역과  필요한 물자를 교환하다가 점차 일본 열도, 중국 동북지역, 러시아 연해주 등으로 그 범위를 넓혀 나갔다. 당시의 교류는 자원뿐만 아니라 자원의 분포 상황 및 이용 방법이나 제작 기술과 관련된 다양한 정보도 교환하였다. 특히 한반도 동남 해안 지역 주민들과 일본 열도 주민들은 신석기시대 내내 활발하게 교류하였는데 이음낚시, 조개팔찌, 흑요석 등이 주된 대상이었다. <출처:중앙박물관>

식물 채집과 농사 짓기

갈판과 갈돌. 1.부산 가덕도, 도토리, 2.경남 창녕 비봉리, 가래, 3.경남 창녕 비봉리,

갈판과 갈돌은 도토리나 가래 등 견과류를 가루로 만들거나 곡물의 껍질을 벗기는 데 사용되었다.

도토리 저장 구덩이, 1.경남 창년 비봉리,

신석기시대 유적에서 많이 발견되는 식물로는 도토리가 있다. 도토리는 떫은 맛이 나는 타닌이라는 성분이 들어 있어 날로 먹기 힘들다. 신석기인들은 이를 없애기 위해 밀물과 썰물이 있는 바닷가 구덩이에 넣어 두거나 토기에 물을 채워 담가 놓았다. 떫은맛이 빠지면 공이로 빻거나 갈판과 갈돌로 가루를 내어 조리해 먹었다. <출처:중앙박물관>

갈판.갈돌, 2.서울 암사동, 3.경기 안산 신길동

식물채집은 신석기시대 중요한 생계수단이었다. 도토리, 가래, 살구 등 다양한 야생 식물을 먹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신석기인들은 점차 땅을 일궈 조, 기장 등을 재배하였다. 농사는 자연이 주는 그대로가 아니라 인간이 특정 자원을 생산해 내기 시작하였다는 점에서 중요하다. 땅을 일구고 이삭을 거두기 위해 괭이, 낫 등을 사용하였다. <출처:중앙박물관>

뒤지개, 1,8. 부산 범방동, 2.경남 김해 수가리, 3,5.부산 동삼동, 4,6.서울 암사동,

7.경북 울진 죽변, 9.경북 청도 오진리,

잡초를 캐내고 땅을 고를 때 쓰인 도구이다. 오늘날의 삽, 괭이 등의 기능을 동시에 수행하였다.

돌칼, 10.충북 청원 쌍청리, 11.부산 동삼동, 12.서울 암사동,

칼은 넙적한 돌의 한 쪽에 날을 세워 만든 것으로 이삭을 따는 도구이다. 신석기시대의 주요 곡물인 조.기장 등은 낟알이 잘 떨어지고 익는 시기가 달라, 칼은 여문 이삭을 골라 따는데 적절하였다.

홈돌.공이, 13.인천 운서동, 14.부산 동삼동, 15.서울 암사동,

곡물을 빻거나 견과류 같은 단단한 열매의 껍질을 깨는데 쓰인 도구이다.

농사는 고기잡이와 함께 신석기시대에 새롭게 시작된 생계수단이었다. 땅을 일궈 곡물을 재배하는 것은 인간이 특정 자원을 생산, 활용한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신석기시대에 들어서면서 곧바로 농사가 시작되지는 않았다. 중기 이후의 유적에서 괭이, 따비, 낫 등의 농경용 석기가 출토되었으며, 황해 봉산 지탑리, 부산 동삼동, 경남 진주 상촌리 유적 등지에서 탄화된 조와 기장이 출토된 점으로 보아 이때부터 농사가 시작되었음을 알 수 있다. 그렇지만 여전히 고기잡이와 사냥, 채집 활동이 중요한 생계 수단이었으며, 농사는 보조적인 수단에 머물렀다. <출처:중앙박물관>

옷짓기

가락바퀴, 함북 경성 원수대

농사는 고기잡이와 함께 신석기시대에 새롭게 시작된 생계수단이었다. 땅을 일궈 곡물을 재배하는 것은 인간이 특정 자원을 생산, 활용한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신석기시대에 들어서면서 곧바로 농사가 시작되지는 않았다. 중기 이후의 유적에서 괭이, 따비, 낫 등의 농경용 석기가 출토되었으며, 황해 봉산 지탑리, 부산 동삼동, 경남 진주 상촌리 유적 등지에서 탄화된 조와 기장이 출토된 점으로 보아 이때부터 농사가 시작되었음을 알 수 있다. 그렇지만 여전히 고기잡이와 사냥, 채집 활동이 중요한 생계 수단이었으며, 농사는 보조적인 수단에 머물렀다. <출처:중앙박물관>

무덤

인골

부산 가덕도 유적 41호 무덤에서는 팔다리를 굽혀 묻기한 인골이 발견되었다. 무덤의 주인공은 키 160cm를 전후한 40대 남성으로 x자 모양으로 놓인 두 팔에 투박조개로 만든 팔찌를 차고 있었다. <출처:중앙박물관>


독널, 1.경남 진주 상촌리

 진주 상촌리 유적, 14호 집터 내 독널

발찌(동물 이빨), 2.경남 통영 연대도

통영 연대도 7호 움무덤

도끼, 3.경북 울진 후포리

울진 후포리 유적 세골장

무덤은 죽음에 대한 신석기인의 정신세계를 엿볼 수 있는 중요한 자료이다. 신석기시대에는 다양한 형태의 무덤이 만들어졌다. 구덩이를 파고 시신을 묻는 경우가 많으나 동굴을 무덤으로 이용하거나 뼈만 추려 토기 등에 넣기도 하였다. 신석기인들은 꾸미개로 죽은 이를 치장하고 토기, 석기 등 필요한 물건을 무덤 안헤 넣었다. <출처: 중앙박물관>

부산 범방과 경남 통영 연대도 유적에서는 구덩이를 파고 그 안에 주검을 넣은 움무덤이, 부산 동삼동과 경남 진주 상촌리 유적에서는 토기를 세워 묻은 독널무덤이 발견되었다. 경북 울진 후포리 유적에서는 시신의 뼈를 모아 놓고 그 위를 돌도끼로 덮었으며, 강원 춘천 교동 유적은 생활공간인 동굴을 무덤으로 사용하였다. <출처:중앙박물관>

꾸미개(옥), 4.부산 가덕도, 5.경남 통영 연대도, 6.강원 춘천, 교동꾸미개(돌), 7.경북 울진 후포리

꾸미개(상어이빨), 8.부산 가덕도, 꾸미개(뼈), 9.부산 가덕도

신석기인의 장식과 예술

무늬가 새겨진 토제품, 1.경북 울진 죽변

동물모양 토제품, 2.부산 동삼동, 3.강원 양양 오산리

조가비 탈, 6.부산 동삼동,

가리비 껍데기에 작은 구멍 두 개를 낸어 눈을 만들고 큰 구멍 하나를 뚫어 입을 만들었다. 의례 시 사용된 도구로 추정된다.  한반도 신석기 시대를 대표하는 유물 중 하나이다.

배모양 토제품, 4.부산 동삼동

여인상. 7.경남 울산 신암리,

잘록한 허리와 풍부한 가슴으로 보아 여인상으로 추정된다. 풍요와 안정을 기원한 신석기인의 바람이 담겨 있는 것으로 보인다.

얼굴이 새겨진 토기, 8.경북 울진 죽변 꾸미개(옥), 10.강원 양양 오산리

귀걸이, 9.부산 동삼동, 흙으로 만든 귀걸이로 귓몰에 구멍을 뚫어 전체를 끼우는 형태이다. 꾸미개(돌), 11.인천 운서동

꾸미개(뼈), 12.전남 완도 여서도 꾸미개(조가비), 13.부산 동삼동 조가비 팔찌,

14.부산 동삼동 귀걸이(옥), 7. 강원 고성 문암리.

신석기인들은 동물의 이빨과 뼈.조가비.돌.흙 등의 재료를 가공하여 몸을 치장하였다. 꾸미개의 종류는 귀걸이.목걸이.팔찌.발찌 등이 있다. 이러한 꾸미개는 아름다움을 표현할 뿐만 아니라 의례 혹은 주술 등 상징적인 목적으로 사용되었다. 이런 종류의 꾸미개는 현째까지도 여러곳에서 그 모습을 찾아 볼 수 있다. <출처:중앙박물관>

생활이 안정되면서 신석기인들은 팔찌나 목걸이, 귀걸이를 만들어 자신의 몸을 꾸몄다. 또한 사람의 얼굴, 여성, 동물, 배 모양을 띤 예술품을 만들기도 하였다. 꾸미개나 예술품은 아름다움을 표현하는 데도 목적이 있지만 집단의 신앙.의례와 관련되거나 소속, 사회적 신분 등을 나타내는 성격이 강했다. <출처: 중앙박물관>

신석기시대
신석기시대는 약1만년 전 빙하기가 끝나면서 변화된 환경에 적응하여 토기와 간석기를 만들었던 시기이다. 신석기인들은 강가나 바닷가에 움집을 짓고 살며 고기잡이, 사냥, 식물 채집을 통해 먹을거리를 얻었다. 가축을 기르기 시작하였으며 농사도 부분적으로 이루어졌다. 또한 일본열도, 중국 동북 지역, 러시아 연해주 등 주변지역과 정보, 자원을 공유하였다. <출처:중앙박물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