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시 수성구 국립대구박물관 야외에 전시되어 있는 정도사지 오층석탑(보물)이다. 통일신라 석탑의 영향을 받은 고려초기 석탑이다. 높이 4.64m의 석탑으로 2층 기단 위에 5층 탑신을 올려 놓았다. 정형화된 형태이지만 통일신라 말의 석탑에 비해 약간 크게 만드는 등 고려 석탑의 특징들도 보이고 있다. 아래층 기단 각면에는 안상이 새겨져 있으며, 위층 기단에는 기둥모양과 탑의 조성 내력을 기록한 명문이 한쪽 면에 새겨져 있다. 몸돌과 지붕돌로 이루어진 탑신 1층 몸돌에는 자물쇠가 달린 문이 새겨져 있다. 기단 위에 1층 몸돌을 받치는 사잇돌이 있으며, 지붕돌 끝을 살짝 들어올리는 등 고려 석탑의 특징들이 반영되어 있다. 전성기 통일신라 석탑에 비해 그 규모나 조각수법, 조형미 등이 떨어지는 편이지만, 다른 지역 고려 석탑에 비해서는 조형미나 조각수법이 양호한 편이다.
경북 칠곡군 정도사 절터에 남아 있던 석탑이다. 일제강점기인 1924년에 경부선 건설과정에서 경복궁 마당으로 옮겼던 것을 1994년에 대구박물관으로 옮겨 전시하고 있다. 탑에서는 향리들이 고려 때인 1019부터 1031년까지 오층석탑을 세운 과정을 기록해 놓고 있다.
칠곡 정도사지 오층석탑(보물). 고려초 칠곡지역 향리들이 10여년에 걸쳐서 조성한 오층석탑이다. 통일신라 석탑 양식을 계승하고 있지만, 고려 석탑의 특징들도 반영되어 있다.
기단부. 아래층에는 안상을 각면에 3개씩 새겨놓고 있다. 안상 안에 새겨진 것은 귀꽃이다. 위층 기단에는 기둥 모양을 새긴 것 외 특별한 장식이 없다.
위층 기단 한쪽면에는 탑의 조성 내력에 대한 글자가 기록되어 있다. 1층 몸돌에는 문짝모양이 새겨져 있다.
몸돌과 지붕돌은 각각 하나의 돌로 되어 있다. 지붕돌 아래 받침은 4단으로 간략하게 표현되었으며 모퉁이를 살짝 들어 올리는 등 고려 석탑의 특징들이 반영되어 있다.
약목군(지금의 경북 칠곡군 약목면)의 향리들이 정도사 석탑을 건립한 과정을 기록한 무선이다. 현종 10년(1019)부터 현종 22년(1031)에 걸쳐 오층석탑을 세운 과정이 잘 나타나 있다. 이 문서는 1905년 경부선 철도를 건설할 때, 철도에 인접한 절터의 석탑을 해체하던 과정에서 탑속의 놋그릇에 담긴 채로 발견되었다.
“(약목)군사의 호장인 인용교위 이원민과 부호장인 응률, 이성, 품유, 신언, 그리고 호정인 굉운과 부호정인 성헌, 관인 광책 등이 태평 3년(현종14, 1023) 계해년 6월 어느날 (그 탑을) 정도사에 안치하도록 의견을 출납하였으므로..” (중앙박물관, 2011년)
칠곡 정도사지 오층석탑, 보물357호, 고려 1031년, 높이 4.64m
경상북도 칠곡군 약목면 복성리 정도사 터에 있던 석탑으로, 1924년 경복궁으로 이전했다가 1994년에 국립대구박물관으로 옮겨 왔다. 신라 석탑의 양식을 이은 고려 초의 석탑이다. 원래 5층이었느나 현재는 5층 지붕돌은 남아 있지 않고, 5층 몸돌 위에 노반만 올려져 있다. 아래층 기단 각 면에는 안상을 세구씩 조각하고 안상무늬의 아랫부분에 귀꽃을 표현하여 장식미를 더했다. 위층 기단 한 면에는 이 탑이 고려 현종 22년 태평 11년(1031)에 국가의 안녕을 빌기 위하여 건립하였다는 명문이 새겨져 있다. 명문을 보존하기 위해 2001년에 새로운 면석으로 교체하여 조립하였으며, 원래의 면석은 별도로 보관하고 있다. 1층 몸돌 정면에는 자물쇠가 달린 문이 새겨져 있다. 탑 안에서는 형지기와 사리장치가 발견되었는데, 형지기에는 이 탑의 이름과 1019년부터 1031년에 걸쳐서 상주계 경산부에 속하였던 약목군의 향리와 백성들이 발원하여 건립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안내문, 대구박물관, 2013년)
<출처>
- 문화재청
- 두산백과
- 위키백과
- 한국민족문화대백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