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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여 산직리 지석묘, 송국리 유적지 부근에 남아 있는 고인돌

충남 부여군 초촌면 산직리에 남아 있는 청동기시대 지석묘이다. 송국리 주거유적지(사적) 부근 낮은 구릉지대가 끝나고, 넓은 평야의 논이 시작되는 언덕에 위치하고 있다. 2기의 고인돌이 나란히 있는데, 큰 판돌을 4개의 고인돌로 고인 탁자식 고인돌 1개와 받침돌이 없는 덮개식 고인돌 1개가 있다. 동쪽에 있는 탁자식 고인돌은 덮개돌이 길이 5.8 m, 너비 3.7 m로 받돌은 일부만 남아 있다. 서쪽편 고인돌도 길이 5.8 m, 너비 4.2 m로 받침돌이 없으며 매장한 흔적이 남아 있지 않아 제단의 기능을 했던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부근에 있는 송국리 유적(사적)은 송국리형토기를 비롯하여 동시대를 대표하는 다양한 유물들이 발굴된 대표적인 청동기시대 주거유적이다. 1975년 이후 여러 차례의 조사를 통하여 60여 기의 움집과 돌널무덤.독무덤 등이 확인되었다.

<부여 산직리 지석묘>

송국리 유적이 있는 구릉 남쪽편에 2기의 고인돌이 남아 있다.

<동쪽편에 있는 고인돌>

받침돌이 있는 탁자식 고인돌로 규모는 비교적 큰 편이다.

<덮개돌>

덮개돌 위에는 의미가 있는 듯 구멍을 판 흔적이 있지만, 석재로 쓰기 위해 후대에 판 채석공이라고 한다.

<서쪽편에 있는 덮개식 고인돌.>

덮개돌의 규모는 탁자식 고인돌과 비슷한 크기이다. 덮개돌 아래에 무덤 흔적이 발견되지 않아 제단으로 사용했던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고인돌이 있는 구릉 아래로 보이는 논산평야>

<송국리 유적지(사적)>

거대한 바윗돌로 만든 무덤으로 농경의 비중이 점차 커지던 청동기 시대에 나타났다. 큰 판돌을 4개의 돌로 고인 탁자식 고인돌과 고인돌이 없는 덮개식 고인돌이 있다. 석성천으로 흘러드는 연화천에 의해 형성된 낮은 구릉 끝에 자리하고 있어 당시 농경집단의 영역 표시적인 기능과 무덤의 기능을 같이 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2기 모두 일찍이 훼손되어 1991년과 1992년의 발굴 조사에서는 아무런 유물도 확인하지 못하였다. 현재 지석묘의 뚜껑돌에 보이는 자국들은 이 돌을 깨뜨려 석재로 사용하려 했던 후세 사람들의 채석공 흔적이다. (안내문, 부여군청, 2010년)

<출처>

  1. 부여군청
  2. 문화재청
  3.  두산백과
  4.  위키백과
  5.  한국민족문화대백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