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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박물관 신라실] 신라의 금관과 장신구

신라를 대표하는 유물로 화려한 금관을 들 수 있다. 금관은 세계적으로 남아 있는 숫자가 많지 않으며 우리나라에 가장 많이 남아 있어 세계적으로 중요한 유물들이다. 경주 도심에 위치한 5~6세기에 조성된 돌무지덧널무덤에서 5점의 금관이 출토되었다. 금관이 출토된 고분으로는 항남대총 북분, 금관총, 서봉총, 천마총, 금령총이 있다. 신라 금관은 금판을 오려 붙여 만든 것으로 아래쪽에 관테가 있고 그 위에 세움장식을 부착하였다. 세움장식은 나뭇가지모양과 사슴뿔 모양을 하고 있는데, 시베리사 샤먼(Shaman)이 착용했던 것과 유사하다. 이런 연유로 신라 금관을 만든 사람들은 시베리아 유목민들이 한반도 이주했다고 보는 견해도 있다.

그 중 국립중앙박물관에서는 국보로 지정된 황남대총 북분에서 출토된 금관과 금제허리띠가 전시되어 있다. 이 금관의 주인이 누구인지는 밝혀지지 않았지만 그 형태와 화려한 장식 등으로 미루어 왕관으로 추정하고 하고 있다. 황남대총 북분에서 출토된 이 금관은 나무와 사슴뿔 모양의 세움장식에 푸른빛의 곱은 옥이 달려 있고, 전체적으로 금판으로 장식해서 상당히 화려한 모습을 하고 있다. 이 금관이 실생활에 사용한 것인지는 잘 알려지지 않고 있으며 전체적인 구성요소에서 신라의 지배층과 북방 유목민과의 관계를 보여주는 유물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다.

<금관.금허리띠, 국보, 경주 황남대총, 삼국시대(신라) 5세기, 1973년 발굴>

<금관>

앞쪽에는 山자형을 연속해서 삼단으로 쌓아 올린 나무모양을 3개 두고 있으며, 뒷쪽에는 사슴뿔모양을 하고 있는 장식 2개을 두고 있다. 금관드리개는 좌우에 대칭적으로 3개씩 굵은 고리에 매달아 늘어뜨렸다. 안쪽끝부분에는 푸른색의 굽은 옥을 달았고, 바깥쪽에는 나뭇잎 모양의 금판을 매달았다.

<나무모양 세움장식>

나무모양은 하늘과 땅을 연결해주는 왕을 상징하며, 사슴뿔 모양은 시베리야지역의 샤먼을 상징하고 있다고 한다. 신라의 금관에서만 볼 수 있는 독특한 장식이다. 푸른 빛을 내는 굽은 옥을 나무모양에는 16개, 사슴뿔 모양에는 9개, 머리띠 부분에 11개를 달려있다. 원형의 금장식으로 금관을 화려하게 장식하고 있다.

사슴뿔모양 세움장식

금관과 함께 출토된 국보인 황남대총 북분 금제 허리띠이다. 허리띠 아래에는 13개의 띠드리개가 연결되어 있다. 띠드리개에는 물고기모양, 주머니모양, 쪽집게모양 등이 달려 있는데, 북방유목민들이 생활습관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금제허리띠

 28장의 판으로 만들어진 허리띠. 경첩으로 띠드리개와 연결해서 사용한다고 한다.

금관총 금관, 금, 국보,

금관총 금관은 신라 금관 중 가장 먼저 발견된 것이다. 금관에 띠 모양의 관테에 나뭇가지 모양과 사슴뿔 모양의 장식이 세워져 있는데, 장식의 앞면에는 133개의 달개와 57개의 곱은옥이 달려 있다. 세움 장식의 가장자리에는 한 줄의 연속 점무늬, 관테에는 파도무늬가 새겨져 있다. 관테에는 한 쌍의 드리개가 달렸을 것으로 생각된다. <출처:중앙박물관>

세움장식

금관총 금관은 앞쪽에는 山자 모양을 3개 쌓아올린 세움장식을 하고 있으며, 뒷쪽에는 사슴뿔 모양을 하고 있는 전형적인 신라 금관의 형태를 하고 있다.

금관을 장식하고 있는 드리개

금관과 허리띠
금관과 허리띠는 신라의 황금문화와 최고의 금속 공예기술을 보여준다. 금관에는 나무, 사슴뿔, 그리고 새 등의 요소가 담겨져 있는데, 나무는 하늘과 땅을 이어주는 것으로 왕을 상징한다. 사슴뿔의 형태는 시베리아 지역 샤먼(Shaman)이 사용하는 모자에 등장하는 주요한 요소이다. 나무와 사슴뿔모양의 세움장식에는 비취의 열매와 황금잎이 달린 듯 곱은 옥과 달개가 달려 있어 신라의 아름다움을 한껏 보여준다. 금관은 얇은 금판을 오려서 만들었기 때문에 머리에 쓰고 활동하기는 어려웠을 것으로 보인다. 허리띠는 가죽허리띠를 장식하였던 금속의 띠꾸미개만 남아 있다. 드리개는 물고기모양, 주머니모양, 족집게, 곱은 옥 등이 달려 있는데, 고대 북방 유목민족들이 생활에 필요한 작은 도구들을 허리에 찼던 풍습에서 그 유례를 찾아볼 수 있다. <출처:중앙박물관>

신라의 꾸미개(장신구)

신라는 ‘금의 나라’로 알려질 정도로 금과 은으로 수 많은 꾸미개들을 만들었다. 신라금관을 비롯하여 한국을 대표하는 문화재들 중 상당수는 신라에서 만든 금제 꾸미개들이며 특히 금관은 세계적으로 출토되는 사례가 많지 않다고 한다. 금관 외에도 신라의 꾸미개로는 귀걸이, 목걸이, 팔찌 등이 많이 출토되고 있는데 주로 금, 은, 옥, 유리 등을 가공하여 만들고 있으며 출토된 유물의 양도 상당히 풍부하면서 그 세공기법 또한 상당히 뛰어나다. 주로 삼국시대에 중기에 만들어진 무덤부장품들이 현재까지 남아 있으며, 그 세공기술은 후대에서는 불상 등 불교관련 문화재들로 이어진 것으로 보인다.

누금기법 금귀걸이

누금기법 금귀걸이
누금기법은 금속공예품의 표면을 금속알갱이 등을 이용해 표면에 접착하는 기법이다. 경주 보문동 합장분과 양산 금조총에서 출토된 굵은 고리 금귀걸이는 고리 표면이 누금으로 장식되어 있다. 특히 중심 고리에는 수백 개의 금 알갱이로 거북등무늬와 꽃무늬 등이 표현되어 있는데, 신라 고분에서 출토된 귀걸이 가운데 가장 정교하고 화려하다. <출처:중앙박물관>

귀걸이, 삼국시대(신라) 6세기, 경북 경주 보문동 둘무지덧널무덤.

경주 부부총에서 출토된 것으로 태환이식이라고도 한다. 서역에서 전래된 누금세공법이 장식전체에 적용된 것으로 상당한 수준의 세공기술을 필요로 한다.

태환이식,
경주 보문동의 부부총(夫婦塚)에서 출토된 신라시대 한쌍의 금귀걸이로, 길이 8.7cm이다. 태환이식이란 가운데를 빈 공간으로 하여 무게를 가볍게 한 귀걸이를 말한다. 귀걸이의 몸체가 되는 커다랗고 둥근 고리에 타원형의 중간고리가 연결되었으며, 그 아래에는 나뭇잎 모양의 화려한 장식들이 매달려 있다. 커다란 둥근 고리에는 거북등무늬와 같이 육각형으로 나누어 그 안에 4엽 혹은 3엽의 꽃을 표현하였는데, 꽃 하나하나에 금실과 금 알갱이로 장식한 누금세공법(鏤金細工法)을 이용하는 세심함을 보여주고 있다. 밑부분에는 나뭇잎 모양의 작은 장식들을 금실을 꼬아서 달고 장식 끝에 커다란 하트모양을 달았다. 신라 귀걸이 장식에는 대부분 서역(西域)에서 전래된 누금세공법이 사용되었는데 그 중에서 태환을 비롯한 전체 장식에 누금세공법이 사용된 것은 이것이 대표적인 것으로 화려하고 놀라운 세공 기술을 보여주고 있다. <출처:문화재청>

금제드리개, 삼국시대(신라) 5세기, 경주 황남대총 북분, 금제드리개(호우총)

금 팔찌, 보물, 6세기, 경주 노서동 무덤, 안팎에 각각 네 마리의 용이 새겨져 있는 팔찌, 용은 간략하지만 역동적으로 표현되었다. 금팔찌, 삼국시대(신라) 5세기, 경주 황남대총북분, 1973년 발굴, 금팔찌(경주), 금팔찌(경주 황오리), 금팔찌(경주), 금팔찌(경주 황오리)

팔찌, 금, 금관총 출토

경주 노서동 금팔지
경주 노서동에 있는 무덤에서 발견된 지름 8㎝의 신라의 금제 팔찌이다. 납작한 단면 바깥쪽에 각각 59개씩의 돌기를 내어 하나하나에 옥을 상감하였다. 이 돌기 좌우에는 4마리 용이 입을 벌려, 서로 다른 용의 꼬리를 물려는 모습을 생동감 있게 새겼다. 몸에는 비늘을 세밀하게 조각하였고 눈은 음각하였다. 경주 시내에 있는 신라 무덤에서는 각종 금제나 금동제 팔찌가 발견되는데, 장식이 없거나 간단한 문양이 있는 것이 대부분이다. 이같이 용이 조각된 예는 매우 드물며, 그 중에서도 이 팔찌는 뛰어난 걸작품으로 평가받고 있다. <출처:문화재청>

방울(경주), 방울, 금, 삼국시대(신라) 5세기, 경북 경주 황남대총,

방울(금령총).

경주 금령총은 돌덧널무덤으로 금관과 금허리띠와 함께 한 쌍의 말 탄 사람토기와 배모양 토기가 출토되었다. 특히 금관과 허리띠의 크리로 보아 어린 왕자의 무덤으로 추정되며, 금방울이 출토되어 ‘금령총’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금령총 출토 방울
경주 금령총에서는 금관과 금허리띠를 비롯한 말탄사람토기와 배모양 토기 등 다양한 상형토기가 출토되었다. 금관과 금허리띠의 크기가 작은편이기 때문에 어린 왕자의 무덤으로 추정된다. 특히 금방울이 출토되어 ‘금령총’이라는 이름이 붙혀졌다. <출처:중앙박물관>

금반지, 금, 삼국시대(신라) 5~6세기, 경주, 금반지, 삼국시대(신라) 5세기, 경주 황남대총 북분, 1973년 발굴

반지, 금, 금관총 출토

굵은고리귀걸이, 금, 금관총 출토

귀걸이(금령총), 귀걸이(금령총), 귀걸이(금령총), 귀걸이(금척리),

귀걸이(전 경주), 귀걸이(경주), 귀걸이(경주 보문리고분), 귀걸이(호우총),

귀걸이(전 경주), 귀걸이(황남대총), 귀걸이(경주),

 귀걸이(경주 황오리), 귀걸이(황남대총), 귀걸이(금령총), 귀걸이(은령총),

가는 고리 귀걸이, 금, 금관총 출토

귀걸이, 금, 삼국시대(신라) 5~6세기, 경주, 귀걸이의 중심고리의 형태에 따라 굵은 고리와 가는 고리 귀걸이로 구분된다. 특히 굵은고리 귀걸이의 경우 가죽 등으로 묶어 귀에 걸었던 것으로 추정되며, 중심고리는 속이 비어 있어 가볍다. <출처:중앙박물관>

관꾸미개, 보물, 삼국시대(신라) 5세기, 경주 황남대총,

관모에 끼워 장식하는 것으로, 새 날개를 본떠 만든 것이다. 날개가 달려있어 화려하며 날아갈 듯한 새의 모습을 보여준다. 3매의 금판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전체적으로 山자 모양을 하고 있다.

관모와 관꾸미개.

당나라 장회태자 무덤에서 보이는 신라사신의 모습에서 관모와 관꾸미개를 쓴 모습을 볼 수 있다.

관모, 국보, 금, 삼국시대(신라) 5세기,

경북 경주 금관총, 맞새김무늬가 있는 여러 장의 금판을 연결하여 만든 화려한 모자이다. 남성의 머리 위에 쓰는 것으로 주로 관꾸미개와 세트로 출토된다.

새모양 관 꾸미개, 금, 국보

목걸이, 금.유리, 삼국시대(신라) 6세기, 경북 경주 금령총

목걸이, 금, 보물, 삼국시대(신라) 6세기, 경주 노서동 무덤,

나뭇잎모양 달개가 수없이 달려있는 금구슬과 1개의 곱은 옥으로 이루어져 있는 매우 화려한 목걸이이다. 구슬은 새김눈이 장식된 작은 고리들을 연결하여 만들었다. <출처:중앙박물관>

경주 노서동 금목걸이
금소환(金小環) 여러 개를 연결하여 속이 빈 구형(球形)을 만들고 심엽형(心葉形) 금판을 금줄로 연결하여 장식한 것을 44개 연결하고 끝에 비취 곡옥(曲玉) 1개를 달았다. 가운데가 빈 구형(球形)의 구슬은 같은 시대 귀걸이의 중간 장식에서 볼 수 있는 수법이고 목걸이 끝에 곡옥(曲玉)을 다는 형식은 당대 목걸이의 전형적인 양식이다. 그러나 이 시기의 목걸이가 대부분 유리제 청옥(靑玉)을 연결하고 끝에 곡옥(曲玉)을 다는 형식이었으나 이 목걸이는 청옥(靑玉)을 사용하지 않았을 뿐 아니라 구슬 하나하나에 기교를 다하는 등 당대 목걸이로서는 최대의 걸작이다. 끝에 달린 비취 곡옥(曲玉)의 맑은 색은 금색과 좋은 조화를 이루고 있다. 이 목걸이는 경주 노서동 215호 고분(古墳)에서 발견된 것으로 일찍이 이 고분(古墳)에서 출토된 일련의 유물과 함께 일본으로 반출되었다가 1965년에 체결된 한·일협정에 의하여 1966년에 반환된 문화재 중의 하나이다. <출처:문화재청>

목걸이,

목걸이, 유리, 삼국시대(신라) 5세기, 경주 황남대총

목걸이, 수정.마노, 삼국시대(신라) 5~6세기, 경주, 목걸이, 유리, 삼국시대(신라) 5세기, 경주 황남대총,

수십개의 곱은옥 모양의 유리 구슬을 엮어 만든 것이다. 곱은옥은 하늘의 달, 생명의 근원인 태아의 모습을 본뜬 것으로 신라에서 가장 많이 발견된다.

곱은옥의 원산지
비취라고도 하는 경옥으로 만들어진 곱은옥은 아직까지 한반도에서 원산지가 확인된 적이 없다. 금관총 조사를 담당한 하마다 고사쿠 교수는 경옥제 곱은옥을 일본 유물로 판단했다. 곱은옥이 처음 만들어 진 것은 한반도 신석기시대이지만 4세기부터 나오는 경옥제 곱은옥은 경옥을 한반도에서 채굴할 곳이 확인되지 않은 만큼 수입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그렇다면 신라 금관의 경옥제 곱은옥은 모두 일본 열도에서 온 것일까? 앞으로 경옥제 곱은옥에 대한 연구가 기대된다. <출처:중앙박물관>

목걸이, 유리, 삼국시대(신라) 6세기, 경주 황남대총, 구슬, 유리, 삼국시대(신라) 5세기, 경주

 5.곱은옥, 옥, 금관총 출토,  6.유리구슬, 금관총 출토

가슴꾸미개, 삼국시대(신라) 5세기, 경주 황남대총, 간결한 목걸이와는 달리 가슴 앞부분과 어깨, 등부분까지 꾸며준다. 주로 왕릉급 무덤인 천마총과 황남대총에서 확인되며, 잠자리구슬이라고도 불리는 청령옥, 금구슬, 곱은옥 등 다양한 종류의 구슬이 있다.

가슴꾸미개를 장식하고 있는 다양한 재질과 형태의 장신구들

2.물고기모양 꾸미개, 금.은, 금관총 출토, 4.날개모양꾸미개,삼각모양꾸미개, 금동, 금관총 출토

1. 비갑, 금동, 금관총 출토, 3.금제장식,금, 금관총 출토

허리띠와 물고기 장식
이 물고기 장식은 허리띠에 매달려 있었던 것이다. 금관총을 비롯해 신라 대형 무덤에서는 금은제 허리띠가 많이 출토되었다. 허리띠에는 약통, 물고기, 숫돌, 족집게, 곱은옥, 손칼 등이 달려 있는데 허리띠에 물건을 주렁주렁 매달고 생활한 북방 유목민의 풍습과 관련이 있다. 이 중 곱은옥은 생명을, 물고기는 식량 또는 다산을 상징한다고 여겨진다. <출처:중앙박물관>

신라의 꾸미개
신라의 꾸미개는 금관과 허리띠를 비롯하여 관모, 관꾸미개, 귀걸이, 목걸이, 팔찌, 반지, 신발 등이 있는데 재질이나 형태가 화려하고 다양하다. 고대 일본인들이 신라를 ‘눈부신 금.은의 나라’라고 하였듯이 신라의 꾸미개는 대부분 금과 은으로 만들어졌다. 이 외에도 수천개의 유리나 수정으로 만든 목걸이와 손잡이를 용무늬나 봉황무늬로 꾸민 고리자루칼이 있다. 이러한 꾸미개는 몸을 아름답게 꾸며주는 기능 외에도 정치적.사회적 신분을 나타내는 역할을 하였다. <출처:중앙박물관>

신라
신라는 한반도 남동쪽에 있던 진한 12국 가운데 경주 지역의 사로국이 성장.발전한 나라이다. 주변의 소국을 병합하여 영토를 확장한 신라는 6세기에 율령을 반포하고 불교를 받아들여 정치와 사상의 기반을 마련하고 고대국가 체제를 완성하였다. 그리고 대가야를 병합(562년)하는 등 통일의 기틀을 마련하였다. 신라 문화는 돌무지덧널무덤과 불교로 대표된다. 돌무지덧널무덤에서 출토된 금관, 귀걸이 등은 신라를 ‘황금의 나라’로 부를 만큼 화려하고 뛰어난 세계적 금공예품이다. 불교는 골품제와 함께 신라 사회 전반에 많은 영향을 미쳤으며 신라의 정신세계를 지배하였다. 한편 경주지역에서 출토되는 외래의 유물과 토용에서 보이는 서역 문화의 흔적은 신라의 대외교류와 국제적인 면모를 알 수 있는 자료이다. <출처:중앙박물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