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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양 표충서원, 임진왜란 때 큰 역할을 했던 서산.사명.기허당을 모시는 서원

경남 밀양시 단장면 구천리 표충사 사찰 경내에 있는 표충서원(表忠書院)이다. 임진왜란 때 큰 역할을 했던 서산.사명.기허당을 모시기 위한 사당으로 처음 세워졌다. 1839년에 옛 절터가 있던 이곳으로 옮기면서 ‘표충(表忠)’이라는 사액을 받고 서원으로 바뀌었다. 구한말 서원철폐령으로 훼철되었다고 이후 복원되어 서원으로 유지되었다. 1971년 불교계의 요청으로 옛 서원건물을 사찰 경내로 옮기면서 팔상전으로 바꾸었으며 지금은 새로 지은 사당건물이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임진왜란 극복에 큰 역할을 했던 불교가 조선사회에서 다시 인정받았던 대표적인 사례라 할 수 있다.

<밀양 표충사 경내에 위치한 표충서원>

임진왜란 극복에 큰 역할을 했던 고승들을 기리기 위해 유림들이 세웠던 서원이다. 옛 서원 건물들은 거의 남아 있지 않고 최근에 지은 사당만 있다.

<옛 표충서원 사당건물>

경내에 있던 옛 표충서원 사당 건물을 팔상전으로 사용되고 있다.

<밀양 표충사 전경>

표충서원, 경남 밀양시 단장면 구천리
이 서원은 본래 임진왜란 때 큰 공을 세운 서산, 사명, 기허당 등 세분 대사의 충절을 추모하기 위하여 건립되었다. 원래는 무안면 중산리 삼강동에 표충사(表忠祠)라는 사당으로 세워져 있던 것을, 1839년에 옛 영정사 터인 지금의 자리로 옮기면서 ‘표충서원’으로 편액을 걸었다. 이 때 절 이름도 표충사로 고쳐졌다. 서원은 전통 시대의 사설교육기관이자, 대유학자인 선현들을 제사하는 곳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곳 표충서원 역시 건물의 구성과 배치뿐만 아니라 제례절차도 일반 서원과 같았다고 한다. 르러다가 1868년에 대원군의 ‘서월철폐령’으로 대부분의 건물이 파괴되고, 사당도 불전으로 바뀌었다. 1926년에는 대화재가 발생하여 대광전과 세 대사의 영정을 모시던 영당 등이 불탔다. 이듬해에 중건할 때 대광전과 함께 서원 건물도 함께 복원되어 영당에 모셨던 세 대사의 영정과 위패를 모시게 되었다. 그러나 부처님을 모시는 법당과 서원의 사당이 나란히 있을 수 없다고 주장하는 승려들의 요구에 따라, 1971년에 표충서원을 경내 서편에 위치한 팔상전 자리로 옮기고 본래의 서원 건물을 팔상전으로 하였다. 따라서 지금은 당시의 서원 모습을 찾을 수 없다. 매년 음력 3월과 9월 두차례에 걸쳐 제례가 행해진다. 이 표충 서원은 조선 시대 이후의 유교와 불교와의 관계를 보여주는 특이한 사례이다. (안내문, 밀양 표충사, 2008년)

<출처>

  1. 밀양 표충사
  2.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양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