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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양 재약산 표충사, 표충서원이 있었던 사찰

경남 밀양시 단장면 구천리 재약산에 있는 표충사(表忠寺)이다. 임진왜란 때 큰 역할을 했던 사명.서산,기허당을 모시는 사당인 표충서원이 있던 특이한 성격의 사찰이다. 이곳은 원래 통일신라 때 창건된 영정사라는 사찰이 있던 곳을 경내에 남아 있는 삼층석탑에서 그 내력을 찾아볼 수 있다. 영정사는 임진왜란 때 불타버린 후 절터만 남아 있었으나 조선후기 헌종 때 사명대사를 모신 사당이 이곳으로 옮길때 표충사라는 사액을 받아면서 서원으로 바뀌었다. 이후 서원철폐령으로 훼철된 이후 사찰로 다시 바뀐것으로 보인다. 표충서원은 1970년대 불교계의 요청으로 없어지면서 사당건물은 주불전 옆으로 옮겨지면서 팔상전으로 바뀌었다.

표충사는 석가여래를 모시는 대광전을 주불전으로 삼고 있으며, 불전으로는 팔상전.명부전.관음전을 두고 있다. 원래 사찰이 있던 절터를 서원으로 바꾸었기때문에 가람배치나 건축물 등에서는 서원 건물의 특징들도 반영되어 있다. 삼층석탑도 아래쪽 요사채가 있는 공간에 위치하고 있는데 원래의 자리에서 옮겨진 것으로 보인다. 소장유물로는 청동은입사향완(국보), 삼층석탑(보물) 등이 있다.

<밀양 표충사>

조선후기 서원으로 바뀌었던 곳으로 일반적인 사찰과는 약간 다른 느낌을 주고 있는 공간배치를 하고 있다. 요사채들이 있는 아래쪽 공간에 삼층석탑이 배치되어 있다.

<표충사 들어가는 길>

계곡 주위로 조성된 조용하면서 울창한 숲길이다.

<표충사 출입문>

2층 문루건물로 서원이나 향교에서 많이 볼 수 있는 출입문 형태이다. 표충서원 출입문 형태를 유지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안쪽에서 본 모습>

<표충서원>

문루를 들어서면 왼쪽편에 표충사 사당이 있다. 이곳에 있던 옛 서원건물은 경내로 옮겨져 팔상전을 사용하고 있다.

<사천왕문>

표충서원이 있는 공간을 지나면 사찰 출입문인 사천왕문이 있다.

<표충사 삼층석탑(보물)>

사천왕문을 들어서면 요사채들이 있는 공간에 삼층석탑이 세워져 있다. 단층 기단 위에 3층 탑신을 올려 놓은 높이 7.7 m의 삼층석탑이다. 몸돌과 지붕돌은 각각 하나의 돌로 만들었으며, 몸돌 모서리에 기둥을 새겨놓았다. 꼭대기에는 쇠막대기가 세워져 있으며 머리장식이 비교적 많이 남아 있다. 통일신라 후기에 만들어진 석탑으로 전체적인 비례에서 주는 조형미와 세부 조각수법이 양호한 편이다.

<삼층석탑 옆에 있는 요사채인 만일루>

표충사 만일루
이 H자형의 독특한 건물은 1860년(철종 11) 당시 방장 월암상인이 조성한 것이다. 48칸의 선실을 108평의 부지어 지어 동림고사라 이름하였는데, 혜원법사의 유풍을 받드는 뜻을 담고 있고 불교의 48원과 108번뇌를 염두에 둔 것이다. 이 곳은 아미타불을 봉안하고 대중들의 정진 장소로 쓰였으며, 무량수각 혹은 서래각으로 편액되어 선방으로 사용되었다. 1926년 화재로 소실된 것을 1929년에 중건하였고 지금의 것은 1992년에 보수된 것이다. 중건을 계기로 영남제일선원으로 새로 걸었다. 이 곳은 조계종 통합종단의 초대 종정을 역임한 효봉대종사꼐서 말년을 보내시고 열반한 곳이기도 하다. (안내문, 밀양 표충사, 2008년)

<표충사 주불전인 대광전>

일제강점기 이후 표충사가 사찰로 다시 바뀌면서 조성된 불전이다. 앞면 5칸의 상당히 큰 규모의 불전이다. 석가여래를 중심으로 약사여래, 아미타여래를 모시고 있다.

대광전은 표충사의 중심 불전으로 가운데 있는 석가모니불을 중심으로 동쪽에는 질병과 무지를 다스리는 약사불을, 서쪽에는 서방 극락세계를 주관하는 아미타불을 각각 봉안하고 있다. 신라 시대에 처음 지어졌다고 하지만, 전란 등으로 불타 버린 것을 1929년에 다시 지었다. 이 건물은 정면 5칸, 측면 3칸의 단층 팔작 다포계 양식이다. 기둥머리의 용머리 조각과 추녀이 장식들이 화려하고 섬세하며, 기둥과 기둥 위 장식들의 간격이 동일하게 배치되어 균형미를 잘 살리고 있다. 건물 네 귀퉁이에는 추녀가 처지는 것을 막기 위해 4개의 기둥을 따로 두어 추녀를 받치고 있다. 4개의 기둥 중 앞쪽의 기둥은 팔각형인 데 반해 뒤쪽의 기둥은 원형으로 되어 있는데, 이런 구성은 매우 특이하다. 건물을 받쳐주는 받침돌은 잘 다듬어져 있으며, 주춧돌 역시 다듬은 돌로 되어 있어 건물의 품의를 높여주고 있다. 전체적으로 보아, 이 건물은 화려하고 섬세한 조선 후기 건축양식을 잘 유지하고 있다. (안내문, 밀양 표충사, 2008년)

<대광전 옆에 위치한 팔상전>

표충서원 사당으로 사용되었던 건물로 1970년대 불교계의 요청으로 현재의 위치로 옮겨졌다.

팔상전은 부처님의 생애를 여덟 가지 모습으로 나누어 표현한 탱화와 존상을 모시는 법당이다. 팔상은 하천, 탁태, 강탄, 출가, 항마, 성도, 전법륜, 입열반으로 구성되어 있다. 표충사에는 조선 철종대에 환월선사가 지장전 옛 터에 세운 팔상전이 있었으며, 지금의 것은 표충서원이 있던 곳에 1971년 옮겨 온 것으로 그 창건 연대는 확실하지 않다. 표충서원은 사명대사 8세 법손 월파당 천유가 서산, 송운, 기허 삼대사의 영정을 보안하고 향사를 받들던 곳이다. (안내문, 밀양 표충사, 2008년)

<사찰 안쪽에 위치한 명부전>

표충서원이 있던 시절에는 고승들의 영정을 모시는 영당이 있었다.

명부전은 유명계의 심판관인 시왕(十王)을 모시고 있다고 하여 시왕전(十王殿) 또는 지장보살을 중심으로 모시고 있다 하여 지장전이라고도 한다. 시왕은 죽은 자들의 죄를 심판하는 10명의 지옥왕으로, 일반인에게 널리 알려져 있는 염라대왕은 이 가운데 다섯 번째 왕이다. 지장보살은 불교 구원의 이상을 상징하는 보살로서, 모든인간이 구원을 받기까지 자신은 부처가 되는 것을 미루면서 천상에서 지옥에 이르는 육도(六道)의 중생을 낱낱이 교화시키는 역할을 맡았다고 한다. 표충사 경내에 관음전과 나란히 있는 이 명부전의 건립시기는 확실하지 않다. 그러나 임진왜란 전에 이미 있었던 같으며, 당시 건물은 임진왜란때 소실되었다. 이후 광해군대에 복구되었지만 숙종대의 화재로 다시 소실되고 주지 도한 등에 의해 다시 곧바로 복구가 이루어진다. 헌종대에는 월파선사가 명부전 자리를 서산, 송운, 기허 삼대사의 영정을 모시는 영당으로 바꾸기도 하였다. 지금 전하는 것은 1929년에 복원한 것을 1989년에 개축한 것이다. (안내문, 밀양 표충사, 2008년)

<명부전 옆에 위치한 관음전>

<표중사 맞은편에 위치한 누각>

사찰을 찾는 신도들을 위한 공간으로 조성한 것으로 보인다. 계곡 경치를 내려다 볼 수 있는 곳에 세원 앞면 7칸 규모의 2층 누각건물이다.

<범종루>

<명부전 안쪽에 있는 요사채>

<표충사 청동은입사향완(국보)>

표충사에서 소장하고 있는 대표적인 유물이다. 고려시대에 만들어진 것으로 창녕 용흥사에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표충사 청동은입사향완, 국보
향로는 불전에 향을 피우는 용기로 고려시대에 많이 제작되었다. 이 향로는 57자의 명문으로 제작연대를 알 수 있는 귀중한 유품이다. 명문에는 제작년월일, 발원, 발원자, 중량을 기록하고 있으며, 명칭은 함은향완이라고 하였다. 그리고 받침 안쪽면에는 ‘창녕북면용흥사’라는 명문이 새겨져 있어 원래 이 향완이 있었던 곳이 창녕의 용흥사였음을 알 수 있다. 언제 표충사에 옮겨지게 되었는지는 알 수 없으나 조선 선조가 사명대사에게 하사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제작연대는 1177년(명종7)으로 우리나라 향로로서는 가장 오래된 작품이며, 일본의 법륭사에 있는 향로보다 1년 앞서 제작된 것이다. 높이는 27.5 cm, 구경 26.1 cm이다. (안내문, 밀양 표충사, 2008년)

<명부전 앞에서 보이는 표충사 경내>

계곡을 따라는 건물들이 들어서 있으며 마당이 상당히 넓은 편이다.

재약산 표충사, 경남 밀양시 단장면 구천리
표충사는 여러 차례 절의 이름이 바뀌었다. 신라 무열왕 원년(654) 봄에 원효대사가 지금의 극락암 자리에 작은 암자를 짓고 수도하던 중 어느날 아침 재약산 기슭을 바라보니 대밭 속에서 오색의 상서로운 구름이 떠올랐다. 원효는 곧바로 하산하여 그 자리에 절을 세우고 이 절의 이름을 죽림사라고 하였다. 지금도 그 흔적이 절 뒤 대밭 속에 남아 있다. 이후 흥덕왕 4년(829)에는 왕의 셋째 왕자가 풍병으로 고생할 때, 이곳의 신비스런 우물 물을 마시고 병이 나았으므로 절 이름을 영정사로 고쳤다. 조선 선조 25년(1592) 임진왜란으로 불타 버린 것을 선조33년(1600)에 혜징화상이 중건하였다. 지금의 표충사란 명칭은 헌종 5년(1829)에 사명대사의 8세 법손인 천유선사가 임진왜란 때 구국을 위해 헌신한 사명.청허.기허대사 등을 기리기 위하여 밀양군 무안면 표충사 사당에 있던 삼대선사의 진영과 위패를 옮겨와 모시면서 고쳐 부르게 되었다. 그러므로 이 절의 명칭인 표충사란 불교와 유교의 이념이 통합된 뜻을 담고 있다. 이 절의 도특한 유래와 연혁만큼이나, 이곳에는 국보와 보물 및 다양한 지방문화재들이 소장되어 있다. (안내문, 밀양 표충사, 2008년)

<출처>

  1. 밀양 표충사
  2.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양연구원
  3. 문화재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