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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덕 괴시마을, 목은 이색 생가터가 있는 영양남씨 집성촌

경북 영덕군 영해면에 있는 전통마을인 괴시(槐市)마을이다. 옛 영해도호부 읍치였던 영해면소재지에서 고래볼 해안으로 가는 길목에 위치하고 있다. 마을 앞으로 큰 하천인 송천이 동해로 흘러들어가며 늪지가 형성되어 있어 호지촌으로 불렸는데 목은 이색이 이곳을 중국 괴시마을과 비슷하다고 하여 괴시마을로 불린다. 마을 뒷편으로 동해안을 따라 산줄기가 이어지고 있으며 앞쪽으로 넓은 영해평야와 태백산맥 봉우리들을 바라보고 있는 형태이다.

고려말 목은 이색이 태어난 외가가 있던 곳으로 여러 성씨들이 모여 살았는데 조선중기 이후 영양남씨가 집성촌을 이루며 살고 있다. 마을에는 영양남씨 괴시파 종택을 중심으로 고택 30여 호가 골목길을 따라서 모여 살고 있다. 마을에는 후학양성을 위한 공간으로 종택 옆 물소와서당과 마을 입구 작은 정자인 괴정이 있다. 고택들은 대부분 양반들이 살았던 것으로 보이며 그 원형이 잘 보존되어 있다. 마을 뒷편에는 목은 이색이 태어난 생가터가 있다.

<영덕 괴시마을>

영양남씨 집성촌으로 양반들이 살았던 한옥이 30여 호 모여 살고 있다. 마을 앞으로는 송천이 동해로 흐르고 있으며, 넓은 영해평야가 펼쳐져 있다.

<마을 안내도>

동쪽 산을 등지고 있으며 넓은 평야가 펼쳐진 서쪽을 향해 마을이 형성되어 있다. 마을 가운데를 가로지르는 골목길을 따라서 고택들이 모여 있다.

<마을 앞 들판>

<마을 앞 정원>

마을 앞으로 펼쳐진 넓은 영해평야가 이싿.  멀리 태백산맥 봉우리들이 보인다.

<마을입구 주차장에서 마을로 들어가는 길>

기와가 얹혀진 흙담장에서 양반들이 터를 잡고 살았던 마을임을 알 수 있다.

<첫번째로 보이는 한옥>

옛 한옥형태를 하고 있는데, 유리창문을 다는 등 생활 편의를 위해 개량된 한옥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옛 통한옥의 모습을 유지하고 있는 고택>

문화재로 등록되지는 않았지만 ‘ㅁ’자형 전통한옥의 원형을 잘 유지하고 있다.

<마을 중심부를 남북으로 연결하는 큰 골목길>

고택들은 대부분 이 골목을 중심으로 좌.우에 배치되어 있다.

<괴시리 영감댁>

마을 골목길에서 첫번째로 볼 수 있는 문화재로 지정된 고택인 ‘괴시리 영감댁’이다. 19세기 중반에 지어진 것으로 ‘ㅁ’자형 건물이다.

<마을 안쪽으로 들어가는 골목길>

<주곡댁>

골목길 안쪽에 출입문이 있는 ‘주곡댁’이다. 사랑채는 앞면 3칸 규모로 독립적인 형태를 하고 있다. 마을에서 비교적 큰 규모의 집으로 안채가 남향을 하고 있다.

<천전댁>

주곡댁 옆에 있는 고택인 ‘천전댁’이다. 안채와 사랑채는 전체적으로 ‘ㅁ’자형을 평면을 하고 있는데, 양쪽이 약간 돌출되어 있다. 사랑채는 건물을 높게 세우고 팔작지붕을 올려 격을 높게 하면서 독립된 형태를 보여주고 있다.

<‘천전댁’ 앞 골목길>

천천댁은 골목길을 향해 창문이 있는 문간채를 두고 있다. 19세기 한양의 도시형 한옥을 모방한 모습을 보여준다.

<뒷편에서 본 천전댁>

<천전댁 맞은편에 있는 ‘ㅁ’자형 한옥>

<맞은편 골목길>

<사곡댁>

골목길 안쪽에 있는 고택인 ‘사곡댁’이다. 전체적으로 ‘ㅁ’자형을 평면을 하고 있는데, 중문 오른쪽에는 사랑채와 아랫방이, 왼쪽에는 외양간이 배치되어 있다.

<괴시마을 종택으로 들어가는 골목길>

<물소와고택>

골목길 입구에 있는 큰 규모의 고택인 ‘물소와고택’.  조선후기 좌승지 물소와 남택만의 후손들이 지은 고택이다. 사랑채 마당 앞과 안채 앞을 분리하기 위해 담장을 쌓았은 것이 특징이다.

<영양 남씨 괴시파종택>

골목 안쪽에 있는 영양 남씨 괴시파종택이다. 앞면 8칸으로 상당히 큰 규모의 대저택으로 ‘ㅁ’자형을 평면을 하고 있다. 왼쪽에 중문과 본채, 오른쪽에는 3칸 규모의 사랑채가 있다.

<종택 뒷편에 있는 불천위 조상을 모시는 사당>

<물소와서당>

사당 옆으로 후학들을 양성하기 위해 지은 ‘물소와서당’이 있다.

<물소와고택을 지나면 볼 수 있는 서남향을 하고 있는 고택인 ‘경주댁’>

<골목길>

경주댁 옆 골목길을 따라 들어가면 고려말 유학자 목은 이색이 태어난 생가터를 볼 수 있다.

<골목길에서 볼 수 있는 한옥>

<목은이색 생가터 아래에서 보이는 괴시마을과 영해평야>

<마을 뒷편 목은 이색 유적지>

<괴정>

경주댁을 지나면 후학양성을 위해 세웠던 정자인 ‘괴정’을 볼 수 있다.

<괴정>

괴정은 가운데 2칸 넓은 대청마루를, 양쪽에 1칸씩 온돌방을 두고 있는데, 서원이나 향교의 강당건물과 비슷한 구조이다. 정자 서쪽에 넓은 들판이 보이는 방향에는 작은 연못이 있다.

<괴정을 지나 안쪽으로 이어지는 골목길>

<구계댁>

괴정 맞은 편에 있는 고택인 ‘구계댁’이다. 안채와 사랑채로 구성된 ‘ㅁ’자형 주택이다. 중문과 안채가 있는 본채 건물은 서향을 하고 있으며, 사랑채는 남향을 하고 있다.

<구계댁 사랑채>

툇마루가 있는 사랑방과 사랑마당이 남쪽을 향하고 있다.

<해촌고택>

그 옆으로 볼 수 있는 ‘해촌고택’. ‘ㅁ’자형 주택으로 비슷한 형태를 하고 있다.

<대남댁>

그다음에 있는 고택인 ‘대남댁’. 본채 건물은 서향을 하고 있으며, 중문 오른쪽에 앞면 2칸 규모의 사랑채가 있다.

<골목길이 거의 끝나는 부분에 있는 솟을대문이 있는 고택인 영은고택>

<사랑채>

‘ㅁ’자형 주택으로 중문 양쪽에 툇마루가 있는 온돌방을 1칸씩 두어 사랑채 역할을 하고 있다. 팔작지붕 박공이 정면을 향하고 있어 ‘ㄷ’자형 주택처럼 보인다.

<고택 앞에서 본 골목골>

남북으로 이어지는 넓은 골목길을 따라 오래된 고택들이 모여 있다. 대부분 기와을 얹은 흙담장을 하고 있다.

괴시마을
괴시마을은 동해로 흘러드는 송천 주위에 늪이 많고 마을 북쪽에 호지가 있어 호지촌(濠池村)이라 부르다가 고려말 목은 이색 선생(1328~1396년)이 문장으로써 원나라에 이름을 떨치고 고국으로 돌아와 구양박사의 괴시마을과 자신이 태어난 호지촌의 시야가 넓고 아름다운 풍경이 비슷해 괴시라 고쳐 이름지었다고 전한다. 마을 앞에는 기름진 영해평야가 펼쳐져 있으며, 남동쪽의 망일봉에서 뻗어 내려오는 산세가 마을을 입(入)자 모양으로 둘러싸고 있으며, 이러한 자연 지형에 맞추어 대부분의 가옥들이 서남향으로 자리잡고 있다. 고려말에 함창 김씨가 마을에 처음 입주하였고, 그 후 조선 명종 년간에는 수안 김씨와 영해 신씨, 인조 8년(1630)에는 영양 남씨가 시거하였다 그 후 3성은 점차 다른 곳으로 이주하여 지금은 영양 남씨의 집성촌을 이루고 있다. 괴시마을은 경북 동해안의 다른 지역에 비하여 전통 건축물이 매우 잘 보존되어 있으며 문화와 예절이 훌륭하게 전승되고 있다. 마을 내에는 영양남씨 괴시파종택을 비롯하여 여러 지정 문화재와 고가옥 30여호가 밀집되어 있어 조상들의 생활과 멋을 엿볼 수 있는 전통 문화마을이다. (안내문, 영덕군청, 2017년)

<출처>

  1. 안내문, 영덕군청, 2017년
  2. 영덕군 군지, 영덕군청, 2017년
  3. 국가문화유산포탈, 문화재청, 2017년
  4. 한국민족문화백과, 한국학중앙연구소, 2017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