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주 회연서원, 조선중기 유학자 정구를 모신 서원

경북 성주군 수륜면 신정리에 있는 회연서원(檜淵書院)이다. 조선중기 유학자이자 문신인 한강 정구(寒岡 鄭逑, 1543~1620)를 모시기 위해 세워진 서원이다. 조선후기 인조 때 그가 후학을 양성하던 회연초당이 있던 자리에 처음 세워졌으며, 숙종 때 사액서원이 되었다. 구한말 서원훼철령으로 철폐되었다가 1974년 현재의 모습으로 복원되었다. 서원은 강학공간을 동쪽에, 제향공간인 사당을 서쪽에 두고 있는 동학서묘(東學西廟)의 공간배치를 하고 있다. 조선중기 성리학을 이끌었던 그의 위상을 보여주듯 후학을 양성하는 강학공간이 강조되고 있다.

한강 정구는 조선중기 성리학을 이끌었던 유학자로 김굉필의 학풍을 계승하고 있다. 성리학뿐 아니라 병학, 역사 등 여러 분야에 관심을 가졌다. 관직은 주로 외직을 맡으며 선정을 베풀었으며 내직으로 대사헌 등을 역임했다. 외증조부인 김굉필을 모시는 달성 도동서원에 함께 모셔져 있어 구한말 서원훼철령 때 회연서원이 철폐된 것으로 보인다. 서원 앞에는 그를 기리는 신도비가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성주 회연서원. 조선중기 유학자 한강 정구를 모신 서원으로 그가 후학을 양성하던 서당이 있던 곳에 세워졌다. 구한말 철폐되었던 것으로 1970년데 복원하였다.

OLYMPUS DIGITAL CAMERA서원 출입문 문루인 현도루.  가야산에서 발원하여 흐르는 대가천과 주변 경치를 감상하기 좋은 곳이다.

OLYMPUS DIGITAL CAMERA강학공간 중심건물인 강당. 화려하지는 않지만 앞면 5칸 규모의 큰 건물이다. 후학양성을 중시하는 회연서원의 특징을 보여주는 건물이다.

OLYMPUS DIGITAL CAMERA강당 대청마루. ‘경회당’이라 적힌 현판이 걸려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대청마루 옆 작은 온돌방. 앞쪽에도 툇마루를 두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강당 마루에서 보이는 강학공간 마당. 작은 협문을 사용하고 있어 개방된 느낌을 주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유생들의 기숙사인 동재. 앞면 3칸 맞배지붕을 하고 있는 건물로 앞쪽에 툇마루를 두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맞은편 서재.

OLYMPUS DIGITAL CAMERA강당 뒷편에 있는 옛 사당. 작은 규모의 사당으로 원래는 전학후묘의 공간배치였음을 알 수 있다. 교육기능을 강조했던 회연서원의 성격을 잘 보여준다

OLYMPUS DIGITAL CAMERA강당 서쪽으로 옮긴 사당. 서원의 교육기능이 없어지면서 협소했던 사당을 확장하여 옮겼던 것으로 보인다.

OLYMPUS DIGITAL CAMERA새로 지은 사당.

OLYMPUS DIGITAL CAMERA제사를 준비하는 공간인 전사청이 사당 앞에 자리잡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마당 한쪽편에 있는 살림집

OLYMPUS DIGITAL CAMERA서원 바깥에 있는 사당인 향연사. 지역민들의 존경을 받았던 인물들이 모셔져 있다. 일반적인 서원에서는 볼 수 없는 공간이다.

OLYMPUS DIGITAL CAMERA마당 한쪽에 세워져 있는 ‘한강 정구 신도비’.

OLYMPUS DIGITAL CAMERA대구 달성 도동서원(사적 488호). 조선중기 유학자 김굉필을 모시는 서원으로 그의 학품을 계승한 유학자로 이곳에 같이 모셔져 있다.

회연서원, 경북 성주군 수륜면 신정리
회연서원은 조선 선조 때의 대유학자이며 문신인 한강 정구(1543~1620)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고, 지방민의 유학교육을 위하여 그의 사후인 1627년(인조 5) 제자들이 뜻을 모아 세운 서원이다. 서원이 위치하고 있는 곳은 1583년(선조 16) 정구가 회연초당을 세우고 인재를 양성하던 곳이다. 1690년(숙종 16) 현판.서적.토지.노비 등을 하사받아 국가로부터 서원으로서 권위를 인정받은 사액서원이 되었다. 1868년(고종 5) 서원훼철령에 따라 훼철되었다가 1970년 대에 복원하였으며, 매년 음력 2월과 8월에 향사를 지내고 있다. 서원의 주향인 한강 정구는 외증조 한훤당 김굉필이 도학을 전수하고, 그 기반 위에 퇴계학과 남명학을 통합하여 새로운 학통을 세워 실학의 연원을 확립하였으며, 우주 공간의 모든 것을 연구대상으로 삼아 경서, 병학, 의학, 역사, 천문, 풍수지리 등 모든 학문에 관심을 가졌다. 특히 예학에 많은 관심을 기울인 대학자였다. 그는 평소 관직에 뜻을 두지 않았으나, 국가의 부름을 거절하지 못하여 부득이 관직에 나올 경우에는 주로 외직을 맡아 선정을 베풀었으며, 내직으로 우승지, 공조참판, 대사헌 등을 역임하였다. 사후에 문목의 시호가 내리고 영의정에 추증되었다. 경내의 건물로는 구 사당, 강당, 동.서재, 신 사당, 전사청, 견도루 등이 있으며, 정구가 직접 조성한 서원 앞 뜰의 백매원에는 신도비가 서 있다. 그 밖에 한강 정구와 관련된 유물.유품이 전시되어 있는 유물전시관과 향현사, 관리사가 있다. 사당에는 한강 정구를 주향, 석담 이윤우를 종향으로 모시고 있으며, 향현사에는 신연, 송사이, 용재 이홍기, 육일헌 이홍량, 모재 이홍우, 동호 이서 등 한강 정구와 동년배로서 지역민들의 존경을 받았던 인물들의 위판이 봉안되어 있다. (안내문, 성주군청, 2017년)

<출처>

  1. 안내문, 성주군청, 2017년
  2. 국가문화유산포탈, 문화재청, 2018년
  3.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2018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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