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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성 하목정, 낙동강변에 자리잡고 있는 사랑채로 지어진 건물

대구 달성군 하빈면 하산리에 있는 정자인 하목정이다. 성주에서 대구로 가는 길에 낙동강을 건너는 성주대교 부근에 위치하고 있다. 임진왜란때 의병장이었던 이종문이 1604년에 지은 고택의 사랑채이다. 마을에는 낙동강 나룻터가 있었던 것으로 보이며 낙동강변 경치 좋은 곳에 위치하고 있다. 교통요지에 위치하고 있어 인조를 비롯하여 많은 유력인사들이 이곳에서 묵었던 것으로 보이며 그들이 남긴 글들이 적힌 현판이 대청마루에 걸려 있다.

하목정은 고택 사랑채로 지어진 앞면 4칸, 옆면 2칸의 건물이다.  왼쪽 3칸은 대청마루로, 오른쪽 1칸은 온돌방으로 되어 있는데, 온돌방 측면은 4칸으로 되어 있어 ‘丁’형의 모습을 하고 있다. 인조가 이 곳에서 머물렀다고 하여 특별한 대우를 받았는데, 하목정이라는 현판은 인조가 직접 써준 것이라고 한다. 또한 건물의 서까래는 일반 한옥과는 달래 덧서까래인 부연을 달고 있다. 지금도 후손들이 거주하고 있으며 건물과 정원이 깨끗하게 유지되고 있다.

<달성 하목정>

낙동강변에 위치한 고택 사랑채로 조선중기에 처음 지어졌다. 인조가 왕위에 오르기 전에 이곳에 잠시 머물렀다.

<사랑채로 들어가는 마당>

<대청마루>

건물은 앞면 4칸, 옆면 2칸 규모로 오른쪽 온돌방 앞.뒤로 1칸씩 달아내어 전체적으로 ‘丁’자형 구조를 하고 있다.  낙동강 풍경이 내려다 볼 수 있도록 옆면에도 판문을 달았다.

<옆쪽에서 본 모습>

인조가 머물렀다고 하여 겹처마를 사용하고 있다. 큰 돌로 쌓은 기단 위에 건물을 올렸는데 전체적인 조형미나 건축수법이 뛰어나다.

<마루에서 내려다 보이는 낙동강 풍경>

<사랑채 뒷편에 있는 연못>

<넓은 대청마루 내부.>

‘하목정’이라 적힌 현판의 걸려 있으며, 그 주위로 이곳을 다녀간 유력 인사들이 남긴 글이 적힌 현판들이 글려 있다. 온돌방이 있는 동쪽을 제외한 3면에 문을 두어 여름 한철 시원한 정자 분위기를 만끽할 수 있다.

<뒷편에서 본 대청마루>

<건물 오른쪽에 있는 온돌방>

<사랑채 동쪽에 있는 작은 규모의 안채>

원래 있던 건물은 한국전쟁때 불타버렸으며, 그 후에 복원한 작은 규모의 살림집이다.

<마당 한쪽편에 심어진 배롱나무>

정원에는 선비들이 좋아했던 배롱나무를 비롯하여 다양한 나무들이 심어져 있다.

<석류나무에 매달린 석류>

<안채 뒷편 사당으로 올라가는 계단>

사당과 그 주변에 배롱나무들이 많이 심어졌음을 알 수 있다.

<계단에서 내려다 보이는 사랑채>

<사당을 출입하는 문과 담장>

<불천위 조상을 모시는 사당>

앞면 3칸에 맞배지붕을 하고 있는 전형적인 사당건물이다.

<사당 앞에서 내려다 보이는 낙동강>

성주군과 달성군을 연결하는 낙동강 다리가 내려다 보인다.

달성 하목정(霞鶩亭), 대구광역시 달성군 하빈면 하산리 1043-1
이 건물은 임진왜란 때 의병장이었던 낙포 이종문이 1604년(선조 37)에 세운 것이다. ‘하목정’이라는 정호는 인조가 왕위에 오르기 전에 이곳에 머문 적이 있어, 그 인연으로 이종문의 장남인 이지영에게 직접 써 주었다고 한다. 또한 일반 백성들의 주택에는 서까래 위에 덧서까래인 부연을 달지 않는 것이 관례였으나, 인조의 명으로 부연을 달았다고 한다. 사랑채로 사용하는 이 정자는 정면 4칸, 측면 2칸의 규모로 우측 1칸에는 앞쪽으로 누 1칸을 첨가하고 뒤쪽으로는 방 1칸을 더 만들어 평면이 정자형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지붕의 양쪽 추녀를 조금씩 잘라 처마끝을 둥그스름하게 만든 방구매기 수법을 사용한 것이 특징이다. 건물 내부에는 김명석, 남용익 등 명인들이 남긴 시액이 걸려 있다. (안내문, 달성군청, 2011년)

<출처>

  1. 안내문, 달성군청, 2011년
  2.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2018년
  3.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2018년